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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진주시, 더밸류뉴스, 대구시교육청, LF 트라이씨클

    ■ 진주시 ◇ 4급 승진 △ 기업유치단 정종섭 △ 기획예산과 정중채 ◇ 5급 승진 △ 복지정책과 박해철 △ 여성가족과 임현주 △ 교통행정과 조창균 △ 청소과 우종찬 △ 수도과 정상훈 △ 하수운영과 안성인 △ 농업정책과 이왕권 △ 농산물유통과 정종범 △ 청소과 김애동 △ 건설과 박정철 △ 수도관 이봉옥 ■ 더밸류뉴스 △ 경제산업부장(부국장) 김재창 ■ 대구시교육청 ◇ 3급 승진 △ 정책지원국장 주진욱 △ 중앙도서관장 정근식 △ 남부도서관장 배호기 ◇ 3급 전보 △ 학생문화센터관장 조태환 △ 2·28기념학생도서관장 이경훈 ◇ 4급 승진 △ 감사관 감사총괄청렴담당 한성식 △ 학생문화센터 총무부장 신호우 △ 서부도서관장 이인숙 ◇ 4급 전보 △ 대외협력담당관 이재복 △ 총무과장 김충하 △ 총무과(교육부 파견) 박종성 △ 학교운영과장 전종섭 △ 회계정보과장 김칠구 △ 교육연수원 총무부장 배근영 △ 창의융합교육원 총무부장 김조일 △ 낙동강수련원장 안국상 △ 교육시설지원센터단장 장봉호 △ 동부도서관장 노경자 △ 서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변흔갑 △ 남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임재용 ◇ 5급 승진 △ 총무과(교육부 파견) 박현주 △ 해양수련원 총무부장 차충협 △ 서부고 강동우 △ 상인고 이영자 △ 운암고 천성희 △ 대구여고 천도연 △ 서부공고 장진은 △ 중앙도서관 독서문화과장 주해숙 △ 자료봉사과장 신경아 △ 서부도서관 자료봉사과장 홍종애 △ 교육복지과 학교급식안전담당 이재현 △ 서부교육지원청 학생복지지원과장 홍종호 ◇ 5급 전보 △ 대외협력담당관 의회·시정협력담당 김성호 △ 유아특수교육과 유·특학사지원담당 박영희 △ 초등교육과 초등학사담당 이광수 △ 총무과(시의회 파견) 이종근 △ 학교운영과 학생배치2담당 이주연 △ 재산사학담당 임호 △ 교육복지과 평생교육담당 박선옥 △ 행정안전과 공무직관리담당 이유정 △ 조직관리담당 최은숙 △ 예산법무과 예산담당 김동찬 △ 학교예산담당 김재길 △ 미래교육연구원 행정정보부장 이명우 △ 동부도서관 총무과장 안영우 △ 서부도서관 총무과장 이상진 △ 교육박물관 총무부장 김진무 △ 교육시설지원센터 총무부장 김미숙 △ 경북고 윤득용 △ 외국어고 박병규 △ 성서고 장기철 △ 시지고 조현상 △ 대곡고 황덕삼 △ 전자공고 조진희 △ 상원고 김진영 △ 소프트웨어고 권오태 △ 동문고 김진열 △ 수성고 박상원 △ 성보학교 김영석 △ 동부교육지원청 학생복지지원과장 김철수 △ 남부교육지원청 재정평생교육과장 권정수 △ 동부도서관 독서문화과장 이재숙 △ 남부도서관 독서문화과장 이계향 △ 수성도서관장 조정희 △ 두류도서관장 오선화 △ 달성도서관장 김화숙 ■ LF 트라이씨클 ◇ 전무 승진 △ 권성훈 대표이사
  • 사우디, 아람코 IPO 승인… 세상 가장 비싼 상장회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고 가치가 큰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주식이 시장에 공개된다. 사우디 자본시장청은 3일 보도자료에서 “아람코의 타다울(리야드 주식시장) 등록과 일부 주식의 발행 신청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국내시장 기업공개(IPO)가 승인됨에 따라 아람코는 지분의 5%를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아람코는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 일단 타다울을 통해 지분 2% 안팎을 매매할 예정이다.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 IPO를 준비하면서 자체 추산한 기업 가치는 2조 달러(약 2329조원)로 애플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조 6000억∼1조 8000억 달러 정도로 추정한다. 그러나 최저치로 잡아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되는 셈이다. 사우디 왕권을 유지하는 ‘왕관의 보석’으로 불린 아람코는 세계 산유량의 10%(하루 약 1000만 배럴)를 차지하는 막강한 에너지 회사다. 기업 가치를 2조 달러로 계산하면 5%는 1000만 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IPO였던 2014년 중국 알리바바 공모액(250억 달러)의 4배가 된다. 자본시장청의 승인 사실 외에 공개 주식수, 공모가 산정, 매매 개시일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사우디 국영 알아라비야는 거래 개시일이 다음달 11일이라고 보도했다. 아람코의 IPO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탈(脫)석유시대 대비 경제·사회개혁 계획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이다. 사우디 정부는 IPO로 확보한 자금을 관광, 대중문화 등 비석유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아람코는 이날 올해 1∼9월 3개 분기 순이익이 680억 달러(약 79조 2000억원), 매출은 2440억 달러(약 284조 10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애플의 2배에 가깝고 매출은 1.4배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 사우디 아람코 상장 첫 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 사우디 아람코 상장 첫 발

    사우디, 아람코 국내시장 IPO 승인지분 5% 국내외 주식시장 상장 계획아람코 1~9월 순이익, 애플 2배 육박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주식시장에서 기업공개(IPO)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이익을 많이 내 기업 가치가 가장 높은 회사가 베일을 벗고 시장에 공개되는 것이다. 사우디 자본시장청(CMA)은 3일(현지시간) 아람코의 사우디 국내시장의 IPO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자본시장청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CMA 이사회는 아람코의 타다울(리야드 주식시장) 등록과 일부 주식의 발행 신청을 승인했다”라고 발표했다. 아람코는 지분의 5%를 국내외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아람코는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 일단 타다울을 통해 지분 2% 안팎을 매매할 예정이다.사우디 정부는 세계 주식시장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아람코의 IPO를 하겠다는 뜻을 2016년 1월부터 줄곧 밝혔지만 드디어 이날 사우디 당국의 승인으로 IPO를 위한 공식 절차를 개시한 셈이다.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의 IPO를 준비하면서 자체 추산한 기업 가치는 2조 달러(약 2329조원)로 애플의 2배가 넘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조 6000억∼1조 8000억 달러 정도로 추정한다. 미국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기업 가치가 1조 달러 정도인 만큼 최저치로 잡아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되는 셈이다. 사우디 왕권을 유지하는 ‘왕관의 보석’으로 불리기도 하는 아람코는 세계 산유량의 10%(하루 약 1000만 배럴)를 차지하는 막강한 에너지 회사다. 기업 가치가 2조 달러라면 아람코가 공개할 5%는 1000억 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 IPO였던 2014년 중국 알리바바의 공모액(250억 달러)을 훌쩍 넘긴다. 자본시장청의 승인 사실 외에 공개할 주식 수, 공모가 산정, 매매 개시일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사우디 국영 매체 알아라비야는 거래 개시일이 다음달 11일이라고 보도했다.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은 “사우디 정부가 최대 주주가 되리라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라며 “아람코가 상장되면 새로운 투자자가 사우디의 이익을 수확할 수 있고, 사우디가 국제 투자자에게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동영상을 통해 “자본시장청의 주식 발행 승인은 아람코에 전환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다”라고 연설했다. 관심을 끈 해외 증시 상장과 관련, 알루마이얀 회장은 “적절한 때 알리겠다. 지금까지는 타다울 상장만이다”라며 “국제적 투자 기관의 수요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아람코의 IPO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탈 석유시대를 대비한 경제·사회 개혁 계획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이다. 사우디 정부는 IPO로 확보한 자금을 관광, 대중문화 등 비석유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당국의 승인에 맞춰 아람코는 3일 올해 1∼9월 3개 분기의 순이익이 680억 달러(약 79조 2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매출은 2440억 달러(약 284조 1000억원)로 집계됐다. 미국의 애플과 비교하면 같은 기간 순이익(애플 353억 달러)은 2배에 가깝고 매출(애플 1758억 달러)은 1.4배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아람코가 27.9%, 애플이 20.1%로 계산할 수 있다. 아람코가 올해 초 공개한 지난해 순이익은 1111억 달러(약 129조 4000억원)로 미국의 대표 기업인 애플, 구글 자회사 알파벳,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회사 엑슨모빌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3개권역 나눠 치매안심센터 설치… “시흥형 치매관리정책 운영”

    3개권역 나눠 치매안심센터 설치… “시흥형 치매관리정책 운영”

    박명희 경기 시흥시 보건소장은 29일 언론브리핑에서 “시흥시만의 지역특성과 생활권을 반영한 3개 권역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해 시흥형 치매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3개권역은 대야·신천, 연성, 정왕권역이다. 또 시흥시는 신천·신현·죽율·연성동 등 5개 치매안심마을을 집중 관리·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에 발맞춰 ‘치매가 있어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치매안심도시 시흥’을 비전으로 각 센터에서는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진행단계에 따른 적절한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흥시의 1년 치매관련 예산은 15억원가량으로 내년 1월부터 직영체제로 운영할 방침이다. 박 소장은 “시흥형 치매관리정책으로 진단에서 치료까지 환자는 물론 가족까지 책임지는 권역별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치매 조기발견을 위해 1, 2차 선별 검진을 무료로 시행하고 추가 감별 검사가 필요한 경우 시흥내 4개 전문병원과 연계해 원스톱 진단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매 발병 가능성을 낮추고 발병 시기를 늦춰주는 각종 인지 훈련과 운동법 등 예방·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또 “치매 환자와 돌봄가족 지원 사업으로 ‘환자 쉼터’를 운영하고, 치료관리비와 조호물품 등을 지원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말했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권역별 치매안심센터에서 자조 모임과, 헤아림 교육 등 다양한 힐링프로그램을 통해 경험과 정보를 공유한다. 시민 누구나 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반드시 병원을 가지 않아도 초기 선별 검사를 비롯해 고가 진단검사와 사후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올해 치매 조기 검진자는 9586명이며, 보건소에서는 현재까지 진단검사를 통해 2100여명 환자를 센터에서 등록·관리 중이다. 박 소장은 온 마을이 함께 치매를 보듬는 ‘치매안심 환경조성’도 강조했다. 시는 디자인을 적용한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치매파트너를 발굴·육성할 계획이다. 또 지역사회 협의체들과 서비스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둬 치매에 대해 지역공동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먼저 주거·시설 환경 개선으로 치매 환자 특성에 따라 인지 디자인을 적용한 손잡이 설치와 출입문 단차 줄이기 등 치매 환자 가정 74가구와 노후 경로당을 대상으로 생활 속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했다. 보건소 앞마당에는 인지 디자인을 적용한 어르신 생활건강증진 광장을 조성했다. 1300여명에 달하는 치매파트너는 치매에 관심 있는 주민과 치매 환자가족, 자원봉사자 등 시민들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중·고교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치매 서포터즈’도 치매 어르신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치매 친화적 환경을 만들고 있다. 치매 환자와 가족을 인터뷰해 자서전을 발간하는 ‘옛날 옛적에’, 경로당 대상 인지놀이교구를 제작·보급하고 어르신과 함께 놀이 활동을 하는‘얼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주도한다. 박소장은 향후 “치매관리정책을 국가책임제에서 시흥 지역중심형 책임제로 나아가겠다”며, “2020년 ‘치매가 있어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 조성을 목표로 센터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가정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 치매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치매국가책임제에서 한발 더 나아간 ‘지역중심형 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혼자 생활하는 고령자 등 조기 발견이 어려운 고위험군을 집중 발굴·관리하고, 동별 맞춤형복지팀과 협력해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만 60세 진입자의 선별 검진과 예방관리를 기존 5%에서 10%로, 만 75세 진입자의 1차 선별 검진은 기존 30%에서 6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만 60세 진입주민은 총 6200여명에 이른다. 또 검진 결과를 반영한 ‘맞춤형 인지강화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할 계획이다. 시흥시 치매관리사업은 그동안 노력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달 제12회 치매극복의 날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경기도 치매 추정 인구수는 15만명이며, 10월 현재 시흥시 치매 환자는 41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데스크 시각] 빅뱅이론으로 보는 조국 사태/김상연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빅뱅이론으로 보는 조국 사태/김상연 정치부장

    왕정인 조선에서 가장 특이한 관직은 이조전랑(정 5~6품)이었다. 직급은 이조의 중간 관료(현재의 중앙부처 국장급)에 불과하지만, 전체 관리에 대한 인사 추천권과 함께 핵심 권력기관인 3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관리의 임명권까지 가진 막강한 자리였다. 정승이나 판서 같은 고위관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조전랑에게 넘치는 권력을 준 것이 결과적으로 그 자리를 막후 실세로 만들었다. 개명한 나라에서의 권력은 곧 인사권이라고 한다면, 이조전랑의 권력이 얼마나 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에서 이조전랑과 비슷한 직위를 찾으라면 청와대 민정수석을 꼽고 싶다. 직급은 국무총리나 장관보다 낮지만 그 권력의 크기는 1인지하(人之下) 모든 공직자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서슬 퍼렇다. 대통령의 인사를 검증하거나 추천하고, 대통령 가족과 측근 등의 부정을 감시하는 한편 국가정보원 등 각 정보·사정기관에서 올라오는 고급 정보를 취합하고, 검찰 등 사정기관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간접 지휘(문재인 정부 등 역대 정권은 이 부분을 공식적으로 부인한다)하는 자리가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런데 이 막강한 민정수석 권력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권력, 즉 역대 정권이 모두 부인해 온 그 권력이 지난 7월 16일부로 검찰총장에게 넘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일약 검찰총장에 임명된 날이다. 윤 총장이 임명된 이후 단행된 기수 파괴적인 검찰 인사로 70여명의 검사가 줄줄이 옷을 벗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윤석열의 인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조선시대로 치면 사헌부 수장(대사헌) 내지 의금부 수장(판사)이 이조전랑의 권력까지 꿰찬 셈이다. 그리고 이후 검찰 개혁론자인 조국 전 민정수석이 검찰총장의 상전인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과거 대한민국 역사에선 볼 수 없었던 ‘사상 초유’ 시리즈가 시작된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검찰이 기습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하는 도중에 장관 후보자 부인을 검찰이 전격 기소한 일 등은 모두 사상 초유다.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댄 이유를 분석하는 정치학적, 사회과학적, 윤리학적 언설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 각도를 틀어 순전히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큰 권력을 갖게 된 검찰총장의 힘이 외부로 급속히 팽창,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 권력 내부의 밀도와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국가 권력 전체에 빅뱅(대폭발)을 몰고 왔다는 얘기다. 조선시대 3사는 임금을 쥐고 흔들 정도로 권력이 강했다(사실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은 왕권보다 신권이 강한 나라였다). 그런 3사의 핵심인 사헌부와 의금부에다 이조전랑 권력까지 합체가 돼서 왕에게 칼을 겨눌 때 임금은 ‘도대체 누가 이 나라의 임금인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고, 결국 사생결단의 대결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력은 나눌 수 없고 대등할 수 없다. 대등해지면 다시 대등해지지 않을 때까지 싸운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정재)은 김종서(백윤식)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면서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에게 이렇게 절규한다. “이 나라가 이씨의 나라인가, 김씨의 나라인가. 태조께서 피 흘려 세운 종묘사직을 가지고 노는 것들! 네가 손잡은 늙은 호랑이가 내일 당장 어린 왕을 밀어내고 권력을 잡을 수도 있어.” 여기까지 쓰고 보니 왠지 스티븐 호킹 박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carlos@seoul.co.kr
  • ‘나의 나라’ 양세종X우도환X김설현, 운명 뒤바뀐다 “잔인한 재회”

    ‘나의 나라’ 양세종X우도환X김설현, 운명 뒤바뀐다 “잔인한 재회”

    격변의 시기를 맞은 양세종, 우도환, 김설현의 운명이 본격적으로 뒤바뀐다.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연출 김진원, 극본 채승대, 제작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나의나라문화전문유한회사) 측은 4회 방송을 앞둔 12일, 서로 다른 길 위에서 위기를 맞은 서휘(양세종 분), 남선호(우도환 분), 한희재(김설현 분)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들과 필연적으로 얽히는 이방원(장혁 분), 이성계(김영철 분), 강씨(박예진 분)의 모습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 11일 방송된 ‘나의 나라’ 3회에서는 각자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서휘, 남선호, 한희재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희재는 이화루를 떠나 포천부인 강씨에게로 갔다. 군역으로 요동에 끌려간 서휘는 사흘을 버틸 수 없다는 오합지졸 선발대들을 이끌고 일주일을 버티고 있었다. 오직 동생 서연(조이현 분)에게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남선호는 이성계와 함께 정벌을 따라나섰다. 압록을 눈앞에 두고 회군을 결정한 이성계는 선발대를 지우기 위해 남선호를 포함한 척살대를 요동에 보냈다. 남선호는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면 중용하겠다는 약조를 받고 강을 건넜다. 선발대와 척살대의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펼쳐지던 그때, 서휘와 남선호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재회했다. 살아남아야 하는 서휘와 죽여야 하는 남선호, 벼랑 끝에서 만난 친우의 잔인한 재회가 궁금증을 증폭했다. 그런 가운데 공개된 사진 속 서휘와 남선호의 날 선 대립이 긴장감을 높인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멱살을 그러쥔 두 사람의 눈빛에는 뜨거운 분노와 열망이 이글거린다. 적이 되어 다시 만난 서휘와 남선호는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베어야 하는 상황. 친우 남선호의 배신으로 고통스러운 삶에 놓인 서휘의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편 남선호를 매번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는 아버지 남전이다. 더없이 차가워지는 남선호의 표정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흑화’한 남선호의 야망과 살아야만 하는 서휘의 운명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행수 서설(장영남 분)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힘을 기르기 위해 이화루를 떠난 한희재는 시작부터 위기를 맞는다. 이성계의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씨와 두 아들이 볼모로 잡혀선 안 되는 상황. 최영이 풀었을 이들에게서 그의 가솔들을 지키기 위해 한희재는 직접 칼을 들었다. 여기에 이방원과 이성계의 대립도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부자이자 군신이며 왕권을 두고 부딪친 이방원과 이성계의 서사가 묵직한 힘으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나의 나라’ 제작진은 “새 나라 조선이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서휘, 남선호, 한희재의 운명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본격적인 등장이 이들의 삶에 어떤 파란을 가져올지 지켜봐 달라”며 기대감을 자극했다. ‘나의 나라’ 4회는 오늘(12일) 밤 10시 5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130년 전의 한일 관계와 현재의 한국 사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지방에 있는, 나름대로 큰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친구와 얼마 전에 만났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인데도 꽤 놀라운 통찰력을 자랑한다. 그의 이번 분석은 현재 한국 정치에 관한 것이다. “알파고! 현 정부가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최저임금을 확 올려 주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대기업들을 힘들게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냐? 현 정부 뒤에는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의 민심이 있어. 그래서 조국 후보 사태 하나만으로 쉽게 힘들지도 않고, 대기업들에 쌀쌀(살살) 하지도 않을 것 같아.” 대충 이해가 됐지만, 선택한 단어 때문에 중간에 우왕좌왕했다. 그래서 물었다. 조금 전에 지적한 “젊은층으로부터 나온 어마어마한 분노”는 무슨 말인가? 그는 일단 자기 회사 경험을 제시해 설명을 시원하게 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말 그대로 예의가 없다. 얼마 전에 모두들 앞에서 누구에게 욕을 한 다음에 우리 보고 “내가 준 그 봉급에는 나의 욕설도 담겨 있어”라고 했다. 회식하러 가면 그는 늘 “내가 돈을 내서 마음껏 처먹어라” 하면서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외국인이니까 영향을 덜 받지만 한국인 회사원들에겐 큰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말한 분노는 바로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다.” 한국 노동시장은 예전보다 물론 많이 변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특히 수도권 쪽에 있는 회사라면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지적된 수많은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곳곳에 이런 직장환경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6월 민주화 항쟁의 기억이 생생한 부모 밑에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귀중한 자식’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그러한 비우호적 환경에 들어가면서 심리적인 갈등이 더 심해진다. 이렇게 직장 갑질에 노출된 젊은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만들 때 기업들과 동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다. 보수인 야당이 현 정부를 자꾸 사상적으로 비판할 정도로 기업들은 비교적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세대 간에 정치·경제 충돌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노출됐다. 바로 한일 경제전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의 그림이 약 130년 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개항기에 한반도에 욕심이 생긴 일본이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 조선은 급진 개화파와 극단 보수파 사이에 왔다 갔다 했다. 통합을 못 한 왕권과 신료들이 결국 조선을 일본이 쉽게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지금과 뭐가 다를까? 삼성이 주도한 기술력으로 세계적으로 시장을 장악하려고 한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 그리고 그 시장을 탐내는 일본. 물론 한일 경제전쟁의 배경에는 다른 정치적 요인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인 주목에 일본이 경제적인 칼을 휘둘렀다면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위기 상황에서 한국이 통합됐는가. 아니다. 한국의 직장환경을 한꺼번에 싹 바꿔 버리고 싶은 급진세력과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아주 천천히 개혁하자는 세력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일이 경제전쟁을 한다면 한국이 이긴다고 해도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한일 무역갈등에서 일본을 상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길게 설명하며 국내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 글에선 좌우의 이념적 통합을 의미했었다. 이번 글에서 필자가 아주 중요하게 어필하고 싶은 것은 시민과 기업의 계층 통합이다. 일본이 경제적 칼을 들고 나섰다면 경제전쟁이 끝날 때까지라도 두 계층이 잠시 휴전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일본, 비쭈기나무와 ‘신의 나라‘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일본, 비쭈기나무와 ‘신의 나라‘

    비쭈기나무는 반짝이는 초록색 잎을 가진 아름다운 나무다. 차가운 겨울날에도 푸르른 모습을 보여 주기에 일본에서 이 나무는 생명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이 고운 나무가 아베 총리 때문에 해마다 수난을 겪는다.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위패가 보존된 야스쿠니신사의 이름과 함께 비쭈기나무가 ‘마사카키’(眞榊)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것은 비쭈기나무에 덧씌워진 신화적 상징성 때문인데, 잎눈이 비쭉 올라왔다고 해서 ‘비쭈기’라 불리는 그 소박한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총리가 다가올 15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가능성에 대해 언론에서는 여러 견해를 내고 있는데, 설사 정치적 입장 때문에 직접 가지 못한다 해도 그는 분명 또 비쭈기나무를 공물로 바칠 것이다. 그는 왜 자기가 직접 가지 못할 때 비쭈기나무를 대신 바치는 것일까.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 신사가 갖는 정치적 함의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신앙의 전통을 내세우며 참배한다고 해도 그곳에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을 기리며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근대 이후 동아시아 전체를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의 우익이 여전히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그곳에 공물로 바쳐지는 비쭈기나무에 우리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소위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핵심에 자리한 천신 아마테라스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왕권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는 서사는 낯선 것이 아니다. 천신을 숭배하는 많은 민족이 자신들의 기원을 하늘에서 찾는다. 우리의 단군신화뿐 아니라 고대 중국, 몽골이나 만주, 티베트의 신화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계보는 언제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의 후손에 의해 시작된다. 그 신화가 권력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신성한 기원을 밝히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민족을 배제하고 침탈하는 논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직 일본만이 천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라 일컬어지는 왕을 ‘현인신’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천황’이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는 것이니, 일본은 ‘신의 나라’라는 논리로 주변국들을 야만으로 규정짓고 침탈을 감행했던 것이다. 바로 그 ‘천황’의 계보가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한 여신 아마테라스가 동생 때문에 화가 나 동굴 속에 숨어 버려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인다. 그때 아마테라스를 불러내기 위해 거행한 신들의 의례에서 동굴 앞에 세워진 것이 비쭈기나무다. 신들은 비쭈기나무에 종이와 천, 구슬 등을 걸어 놓았고, 무녀는 상반신을 드러내고 춤을 춘다. 수탉의 울음소리와 신들의 웃음소리에 아마테라스가 동굴에서 얼굴을 내밀고, 마침내 세상에는 다시 빛이 돌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비쭈기나무가 아마테라스의 상징물이 된 것인데, 지금도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 곳곳에는 비쭈기나무가 걸려 있다. 생각해 보면 샤머니즘적 사유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서 나무는 언제나 신이 강림하는 장소에 서 있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도 신단수가 등장하고 만주나 몽골의 제사 장소에도 언제나 큰 나무가 서 있다. 그것은 그 공간이 하늘의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생명의 장소임을 알려 준다. 신과 인간이 소통하며 함께 키워 나가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나무다. 그래서 나무는 종종 어머니 여신과 동일시된다. 나무는 배제와 침탈의 공간적 상징성이 아니라 소통과 연결의 상징성을 지닌다. 한 그루 푸른 비쭈기나무가 정치적 상징성에서 벗어나 본연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지만, 아베 정권하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 딱 한 달…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반에 첫 공개

    딱 한 달…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반에 첫 공개

    궁궐건축의 정수… 재현품 전시도 관람일 7일 전부터 홈피 예약해야조선 제일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중심건물이자 궁궐건축 정수로 평가받는 국보 제223호 근정전의 내부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법궁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을 가리킨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경복궁 정전(正殿)인 근정전 내부 시범 특별관람을 이번 달 21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한 달 동안 매주 수∼토요일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안내사가 정전 기능과 내부 상징물·구조물에 관해 설명하며,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해 20분 정도 진행한다. 근정전은 국왕 즉위식과 문무백관 조회, 외국사절 접견 등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데에 이용했다. 1395년 세웠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고종 재위기인 1867년 조선 후기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재건해 궁궐건축의 정수로 불린다. 궁궐 중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을 수호하는 십이지신과 사신상으로 장식한 상·하층의 이중 월대(月臺·널찍한 기단) 위에 건립해 법궁으로서 위엄을 드러낸다. 겉보기에는 높은 천장을 받드는 중층 건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위아래가 트인 통층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웅장하다. 화려하고 높은 천장 중앙의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여의주를 희롱하는 황룡(칠조룡) 조각을 설치해 왕권을 극대화했다. 북쪽 중앙에는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는 해·달·봉우리 5개를 그린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을 세웠다. 어좌 위에는 정교하고 섬세하게 처리한 작은 집 모양 조형물인 닫집이 있다. 근정전 내부에는 현재 전문가들이 고증을 거쳐 만든 재현품이 전시됐다. 특별관람은 만 13세 이상이면 참가할 수 있다. 관람일 일주일 전부터 경복궁 홈페이지(royalpalace.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무료이며, 회당 정원은 20명씩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봄철 창경궁과 창덕궁 정전인 명정전, 인정전 내부 관람을 허용한 바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하와이 섬의 숨겨진 비밀, ‘하와이 왕국’의 눈물 ②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하와이 섬의 숨겨진 비밀, ‘하와이 왕국’의 눈물 ②

    매년 6월 11일, 하와이 섬 중심의 호놀룰루 시 일대에서는 과거 하와이 원주민 왕국의 초대 대왕이었던 ‘카메하메하 데이(King Kamehameha day)’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된다. 하와이 섬 문화에 대해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도, 과거 이곳에 ‘하와이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오직 ‘여행지’로의 하와이에만 관심있게 지켜보는 많은 이들에게 보란 듯, 하와이에 존재했던 유일한 하와이 왕국의 초대 대왕을 기념하는 이날 하루만큼은 ‘킹 스트리트(King Street, 왕의 동상이 세워진 거리라는 점에서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거리명 역시 킹스트리트다.)’에 우뚝 선 킹 하메하메하 동상 위로 색색의 레이(lei) 장식이 등장하며 이 일대에서는 눈에 띄는 화려한 모습의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하와이 일부 관광지역을 중심으로 365일 쉬지 않고 실시되는 다채로운 축제에 현지 관광업 종사 업체들과 해외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열광하는 것과 비견해, 킹 하메하메하 데이 행사에는 현지 원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줄을 잇는 다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날 하루 들뜬 축제 열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축제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원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 하와이 왕국을 상징했던 깃발을 한 손에 든 이들의 수가 제법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시선 속 이들의 모습은 비록 미국의 50번 째 주인 하와이에서 출생, 미국 시민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섬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 출신이라는 의식을 가진 이들로 비춰졌다. 이들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 하와이 원주민 가운데 필자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 중 한 사람인 A씨는 올해로 31세의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 과정 중인 학생이다. 학생이면서 동시에 현지에서는 시민 운동가로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A씨가 꾸는 꿈은 ‘하와이 자치정부 수립’이다. ‘하와이 자치정부설(說)’은 외국에는 널리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하와이에는 그와 같은 하와이 자치 정부 수립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의 수가 제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과거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그의 이름 역시 하와이 전통 언어식으로 지어졌다) 박사는 ‘하와이’에 대해서 ‘휴양 천국’이 아닌 ‘미국의 식민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A씨와 하우나니 카이 트라스크 박사 등을 포함한 하와이 자치정부 수립에 대한 꿈을 가진 이들은 주로 현지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이들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들 스스로 하와이 섬의 주인 의식을 가진 소위 이 땅에 대한 ‘역사적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칭할 때 미국인이라는 테두리 대신 ‘하와이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검은 피부와 제법 큰 덩치의 외모를 가진 그들을 일컬어 미국 사람이라고 에둘러 부를 때마다 그는 ‘나는 하와이 원주민이며,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말과 문자,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다.이 같은 의식에 대해 일각에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파라다이스인 하와이에서 무슨 ‘독립운동’이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세계인들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지상낙원 하와이와 ‘독립운동’이라는 단어가 가진 ‘투쟁적 이미지’는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하와이 독립국’에 대한 의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그 역사가 꽤 깊다. 원주민들이 하와이 독립정부 수립에 대한 소망을 거론할 때마다 가장 먼저 불거지는 역사적 사건은 지난 1778년 무렵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섬에 처음으로 상륙한 직후 벌어진 현지 인구의 급감 사건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명 ‘하올레(haole)’라는 원주민의 언어로 지칭되는 대륙에서 건너온 백인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면역력이 있으나, 현지 주민에게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섬에 가져오게 되는데 그로 인해 무려 100만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구수가 4만 명으로 급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원주민 몰살 사건이다. 그런데 당시 백인들은 원주민 몰살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명목 하에 하와이 왕국의 왕을 압박,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케 한 뒤 백인들을 위주로 한 이들이 스스로 농장주를 칭하고 원주민들을 농장의 노예로 전락시킨 사건이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1875년 무렵에는 백인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하는 헌법을 추진, 이로 인해 백인들은 섬에서의 정치적인 권력을 원주민들로부터 찬탈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또, 당시 백인들은 자신들이 선거권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원주민들이 가졌던 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는 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대부분이 가난한 소작농이거나 노예 수준에 머물렀던 원주민들은 이로써 섬에서의 완전한 정치력을 상실하게 됐다. 더욱이 ‘하올레’로 불리던 당시의 백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미군 해병을 동원, 왕조를 전복하고 심지어 자신들의 뜻에 맞는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현지 원주민들은 당시 사건에 대해 미국 해병대가 궁전 앞에 진을 쳤으며, 이름 뿐이었던 원주민 출신의 여왕은 1893년 무렵 미국에 정치력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이양했다고 기억해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다. 하지만 미국은 이날에 대해 ‘평화적인 이양, 합병’이라고 기록해오고 있다. 이는 현지 원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오는 당시 기억과는 반대되는 기록이다. 이 뿐 만일까.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는 원주민들에게 ‘하와이 원주민은 식인 습성을 가진 난폭한 인종이자 영아 살해를 즐겼다’고 가르쳤다. 또, ‘독재 왕권은 하와이 농토를 모두 장악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부렸으며, 이를 해방시킨 것은 미국’이라고 교육해왔다고 현지 원주민들은 기억한다. 특히 미국 정부에 의해 주도된 ‘난폭적인’ 내용의 역사 교육은 하와이 국공립 교사과에 그대로 실렸고, 많은 수의 하와이 시민권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환경에 놓여졌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문서상으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원주민들이 기억한 ‘진짜’ 역사적 사실들은 살아있는 하와이 원주민 각 가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하와이 원주민의 수는 전체 인구의 20~25%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속적인 실업률과 낮은 교육 수준(대부분의 현지 거주 학사 학위 수여 이상자는 외지에서 온 백인, 동양인이다, 더욱이 이들은 학사, 석사, 박사 등의 학위 과정 이수 이후에는 섬을 떠나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셈이다. 또, 하와이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기억되는 ‘훌라춤’은 본래 하와이 원주민의 전통 종교 의식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그 의미를 상실한 채 오직 세계인의 구경거리가 됐다. 여기에 더해, 하와이 주의 8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의 상당수는 미군의 핵 잠수함이 드나드는 병영 기지로 전락했다. 때문에 실제로 하와이 시정부가 소재한 호놀룰루 도시는 가장 큰 섬이 아닌 그 외의 ‘나머지’ 섬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거주민들 역시 대부분 호놀룰루 시 일대에 밀집해 거주한다. 천해의 자연을 품은 대부분의 섬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다는 지리적, 군사적 의미로 미군의 요충 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하와이에서도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호놀룰루 시를 여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하와이국기를 창문 밖으로 자랑스레 걸어 놓은 가정집들을 발견할 수 있다. 폭력적인 투쟁을 할 수 없는 미국 정부에 완전히 통제된 ‘하와이 군도’에서 원주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독립 의지 표명’ 방식이 바로 자신들의 전통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호놀룰루 시에 소재한 시청과 박물관 전시관, 경찰서, 초중고교 등 모든 관공서에는 미국의 성조기와 함께 하와이를 상징하는 전통 국기가 함께 게양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하와이 섬에 도착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그 곁을 에둘러 싼 와이키키 해변이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거기에 더해 ‘알라모아나’로 대표되는 거대한 쇼핑센터와 환상적인 여행지의 분위기 등에 취해 현지 원주민들의 이 같은 ‘독립’에 대한 염원을 눈치 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한 가운데 외떨어져 있는 하와이 섬의 진짜 주인인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면, 한 때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추었다던 그들의 ‘훌라춤’이 좀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은 달린다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시간은 달린다

    꽤 오래전 일이다. 철도청(현 철도공사)에서 추억 관광 상품으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려 했으나 국내에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중국에서 중고 기관차를 수입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디젤기관차 시대를 지나 KTX, SRT 등 고속열차가 일반화한 오늘날에도 증기기관차는 옛 시절을 일깨워 주는 추억의 대상이다. 연배가 있는 세대는 기억할 것이다. 에어컨이 없던 그 시절 여름에는 열차의 객실 창문을 열고 달렸다. 객실 천장에는 선풍기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창문을 연 채로 터널 몇 군데를 거쳐 목적지에 도착하면 코밑이 새까맣게 돼 있곤 했다. 실내로 유입된 석탄 연기 때문이다. 연기를 뿜으며 칙칙폭폭 달리던 증기기관차는 이제 아련한 추억의 대상이다. 철도공사 고객센터 대표번호 1544-7788도 ‘칙칙폭폭’에서 따왔다. 하지만 기차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유럽에선 반응이 사뭇 달랐다. 당시 사람들에게 증기기관차는 두려운 이미지였다. 시커먼 연기를 뿜고 괴성을 지르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증기기관차는 ‘녹색의 정원’에 난입한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수천 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살던 인류는 갑자기 밀어닥친 산업혁명과 공업화의 파도에 미처 적응할 겨를이 없었다. 이렇듯 200년 전만 해도 부정적인 이미지였던 증기기관차가 지금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했다. 같은 사물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공화정에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왕권신수설이 공공연히 주장되던 17세기 유럽에서 공화주의란 국왕 살해를 획책하던 반역자들의 급진 과격 사상이었다. 왕을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던 그 시절에 공화주의는 끔찍한 신성모독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냉전시대에 사회주의를 급진 과격 사상으로 낙인찍던 세태와 흡사하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공화당은 오히려 보수 정당의 대명사다. 이미지의 180도 전환이다. 증기기관차 시대는 디젤기관차 시대를 거쳐 고속열차 시대로 접어들었다. 모내기가 끝난 들판을 고속열차가 질주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다. 우리 다음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갈까?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황교안이 구세주라는 유림 양반, 그 보수의 뿌리는 제대로 아시오?

    황교안이 구세주라는 유림 양반, 그 보수의 뿌리는 제대로 아시오?

    지난달 13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북 안동을 방문했다. 그를 맞은 건 영남지역 종손 모임인 영종회 회원, 경북향교재단 관계자 등, 영남 종가와 유림의 간판이라 할 면면이었다. 종가의 권위가 ‘봉제사 접빈객’에서 나온다 했으니, 나름 법도에 충실했다. 문제는 ‘접빈객’의 내용이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고 하는데 건국 100년, 3·1운동 100년을 맞아 (정치 혼란 상황에서) 나타난 사람이 바로 황교안 대표다.”(박원갑 향교재단 이사장) “보수가 궤멸해 가는 이 어려운 처지를 건져 줄 우리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 극복을 해줄 구세주.”(김종길 선비문화수련원장) 요즘 막말로 상종가를 치는 한기총 전광훈 회장이 지난 3월 예방한 황 대표에게 했다는 ‘칭송’을 연상시켰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교안 대표님을 자유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주시고….” 지난해 12월 “마음만 연합하면 문재인 저놈을 끌고 나올 수 있다”고 했던 인물이다. 시민의 반발이 없을 수 없다. 고성 이씨 문중인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고성 이씨)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씨는 이렇게 개탄했다. “말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니까 시민들로부터 유림이 욕을 얻어먹는다.” 서애 유성룡의 14세손 유돈하씨는 18일 1인 피켓 시위를 했다. “어찌 선비가 되어 속유나 부유가 되어 소인배를 따르는가.” 24일 이런 펼침막이 안동 곳곳에 걸렸다. “안동 선비 어데 가고 아첨쟁이 넘쳐나노.” 오늘 펼침막은 더 걸린다. 이 꼴을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경당 장흥효, 대산 이상정, 정재 유치명, 서산 김흥락, 석주 이상룡 등이 보고 있다면 무어라 할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허언을 하지 않던 이들이었고, 직언에 목숨 거는 걸 영광으로 알던 이들이었다. 사실 더 부끄러운 건 만천하에 드러난 ‘무지’였다. 지금의 이른바 ‘보수’는 제헌헌법부터 지금까지 헌법 전문에 명기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려 했다. 일부 족벌신문과 함께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그들이다. ‘임시정부의 법통’도, 이 나라 건국의 초석이 된 항일독립운동의 의미도 지우려 했다. 선비의 기개와 항일독립운동의 기백은 안동 자존심의 두 축이다. 안동은 지자체 차원에서 처음으로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웠다.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은 의성 김씨, 고성 이씨, 진성 이씨, 전주 유씨 등 안동 명문가 출신이 대부분이다. 민족학교의 효시였던 협동학교도 이들의 지원 속에서 설립됐고, 협동학교는 혁신유림의 산실이었다. 밀양에 약산 김원봉이 있다면 안동엔 하구 김시현(안동 김씨)이 있었다. 김시현은 영화 ‘밀정’ 주인공의 모티프가 된 인물로, 황옥 경부를 의열단으로 끌어들였다. 이승만을 처단하려다 체포돼 9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런 김시현을 두 번씩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이 바로 안동 시민이었다. 물론 서인-노론의 경화세족, 세도가가 돼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고, 병탄 뒤엔 일제에 빌붙어 작위와 은사금을 챙긴 가문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다. 근대사의 이런 기백은 목숨 걸고 조선을 개혁하려 했던 사림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성리학의 도통은 정몽주(경북 영천)에서 길재(경북 선산)-김숙자(경북 선산)-김종직(경남 밀양)-김굉필(대구 달성), 정여창(경남 함양)으로 이어졌다. 조광조(경기 용인) 이후 영남의 이언적(경북 경주), 이황(경북 안동), 기호의 이이(경기 파주), 성혼(서울), 호남의 기대승으로 분화되지만 영남과 안동은 사림의 원류를 이뤘다. 김종직에서 조광조에 이르기까지 사림은 훈신과 척신의 전횡을 극복하고 조선의 정치를 혁신하려 했다. 훈척이 일으킨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로 지도자들이 극형에 처해졌지만, 이들의 결기는 결국 선조에 이르러 공론정치에 기초한 사림의 시대를 열었다. 특히 조광조의 기개는 사림의 귀감이었다. 훗날 훈척의 길을 택한 기호와 달리 영남은 조광조의 길을 따랐다. 조광조가 위훈삭제를 놓고 중종, 훈척과 맞섰던 상황은 사림의 기개를 보여 준 조선 역사 최고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조광조는 중종의 절대적 신임 속에 초고속 승진해 출사 후 불과 3년 만인 1518년 사헌부 대사헌에 올랐다. 그사이 향약을 보급해 지방의 자율성을 높이고, 균전제와 한전제를 관철했다. 당시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었다’던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공론정치의 기틀을 마련해 훈척의 농단을 막으려 했다. 현량과를 관철해 과거제를 혁신했다. 조광조 개혁의 마지막 승부처는 왕권마저 위협하던 훈척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중종 14년(1519년) 10월 25일(음력) 조광조는 칼을 빼 들었다. “정국공신에 폐주(연산군)의 총신이 많으며, 반정에 공이 없는 자도 많습니다. 공신을 중히 여기면 공과 이익을 탐내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게 됩니다.” 그는 편전까지 따라가 박원종, 유자광, 성희안, 유순정, 강혼, 유순, 구수영, 권균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공신 명부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종은 “이익의 근원을 어찌 한꺼번에 막을 수 있는가”라며 거부했다. 중종도 완강했지만, 조광조는 더 완강했다. 중종실록은 그로부터 30일까지 위훈삭제를 둘러싼 논란만 기록하고 있다. 왕은 두려웠다. 왕의 면전에서도 눈을 부라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등 반정공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늙고 병들었지만, 그 자식, 친척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나라의 병권을 쥐고 있었고, 심지어 사병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11월 8일 밤이 돼서야 중종은 한발 물러섰다. 3사의 수장을 사정전으로 호출했다. “70여 인을 어찌 삭제할 수 있겠는가. 공의가 시끄러운 자라면 개정해도 되겠다.” 9일 검토가 시작됐다. 왕과 조광조, 대간 사이에 105명 가운데 지목된 76명 전원의 삭제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다. “전에는 뚜렷이 드러난 자를 개정하자고 청하고서 이제는 모두 개정하자고 하니, 어찌 전후가 다른가.” 왕은 역정을 냈다. 10일 다시 회의가 열렸다. 왕은 76명 삭제를 거부했다. 조광조가 나섰다. “어찌하여 다들 옳다고 여기는데 뜻을 고집하십니까. 임금의 뜻이 어딘가 매인 곳이 있는 것 아닙니까.” 대사간 이성동이 나섰다.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뜻이 있다면 크게 두려운 일입니다.” 대제학 정광필이 따졌다. “어찌하여 우리의 말이 전후가 다르다고 하십니까.” 왕은 궁지에 몰렸다. “전후가 다른 것을 그르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12일 결국 중종은 전지를 내렸다. “이효성, 유순 등 76인의 외람된 것을 추가로 바로잡아서 공권을 맑게 하라.” 위훈삭제 후 불과 사흘 뒤 훈척의 친위쿠데타가 일어났다. 왕은 호랑이 같은 훈척이 싫었다. 하지만 물러설 줄 모르고 채근하는 사림파보다 이들이 차라리 편했다. 조광조와 사림은 역도로 몰려 숙청되고 처형됐다. 기묘사화였다. 사후 초기 그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마음으로부터 조광조를 섬겼던 퇴계조차 “타고난 기질은 아름다웠으나 학력이 충실치 못하여 하는 일이 지나침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실패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오래지 않아 바뀐다. “그로 말미암아 선비들이 학문의 지향할 바를 알게 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한때 사림의 화는 애석하지만, 선생이 도를 높이고 진정한 학문의 뜻을 높인 공로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광조의 학문과 자세는 이황을 통해 영남 사림으로, 이이를 통해 기호 서인으로, 그리고 훗날 이황을 사숙한 성호 이익을 통해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등 기호 남인으로 이어졌다. 성호 이후 남인은 보수적인 영남 성리학파와 진보적인 남인 실학파로 분화됐지만, 구한말 노론 훈척들이 일제에 몸을 던질 때 이들은 한결같이 구국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다. 민주국가에서 주군은 국민이고, 대의는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아무리 염량세태라지만, 최순실과 그가 조종하던 로봇 대통령에게 신명을 바쳐 출세 가도를 달렸던 사람을 두고 이 나라 보수의 구세주라고? 지금 그가 대표한다는 ‘보수’의 뿌리가 가까이로는 친일매판, 멀리로는 영남 남인을 봉쇄했던 ‘훈척 사림’이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걸까. 퇴계와 학봉과 서애가 사당 문을 박차고 나올 일이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8일 뜬금없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론’을 다시 꺼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선진화의 아버지가 그것이다. 국부론이 성립하려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돼야 하고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은 부정돼야 한다. 상하이임시정부 법통론을 두고, 그가 북한 정권 수립을 옹호하려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이른바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관변 학자들이 나서서 ‘8월 15일은 건국절’이라고 주장했다. 건국절이 된다면, 이승만은 자연스럽게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역사를 아예 정부가 관장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국부화’는 이들에게 찍힌 친일과 독재의 낙인을 한 방에 지울 수 있는 수단이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 나라의 정통성의 원천으로 공인받는 것으로 그 후예들은 이 나라의 적통이 된다. 역사적 정통성은 현실 정치에서 집권의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거부하면 체제 부정 세력이 된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모 인사가 제기하고 가짜 보수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민주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한국 현대정치의 흑역사를 열어 놓은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1952년 5월 25일 계엄령 선포부터 같은 해 7월 7일 제1차 개정헌법 공포까지 이어진 정치적 소요)을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건국, 산업화는 물론이고 민주화까지 혈통 속으로 끌어들여 ‘한국판 백두혈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부화’ 논란은 조선의 문묘종사 정쟁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 등장한 붕당은 제각각 자파의 영수를 문묘에 종사하기 위해 대를 이어 가며 정쟁을 벌였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법통을 승계했음을 공인받는 것이다. 집권의 정당성은 이념적 정통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대한민국 역사의 문묘 맨 윗자리에 그 위패를 안치하려는 것이니, 조선의 문묘종사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운운’하는 것이 조선의 ‘현인’ 논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구리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인조 13년(1635년) 성균관(지금의 국립서울대학교에 해당한다)에 난리가 났다. 유생들이 수업 거부, 동맹휴학, 제적, 자퇴, 가투까지 벌였다. 시위대가 대궐 앞까지 진출했으니 왕조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난리였다. 5월 11일, 송시형을 소두(상소의 대표자)로 하여 유생 270여명이 서인의 종장인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우율 문묘종사 상소’다. 그러자 남인 유생 57명이 채진후를 소두로 하여 맞섰다. 농성장인 동학(관립 4부학당 중 하나. 지금의 동대문 옆 옛 이화여대부속병원 자리에 있었다)으로 가면서 지름길인 지금의 대학로를 놔두고 굳이 창덕궁 앞으로 돌아갔다. 대궐 앞 시위를 위해서였다. 인조는 우율 문묘종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들고일어났다. 12일 영의정 윤방, 우의정 김상용이 중신 회의에서 우율 문묘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3일엔 송시형이 다시 상소를 올렸고 오윤겸, 조익 등 대신들이 두둔했다. 점입가경이었다. 서인은 채진후 등 남인계 유생 6명에게 정거(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벌) 처분을 내렸고 남인계 유생 50여명은 수업 거부에 해당하는 권당에 들어갔다. 조정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 성균관 관련 직책인 대제학과 지성균관사의 사표를 걸고 3명에 대한 정거를 주장했다. 지방에서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충청도의 서인 유생들이 릴레이 상소를 했다. 인조는 불쾌했다. 최명길이 낸 대제학, 지성균관사 사표를 수리했다. 지방 유생들의 상소에는 “유생의 본분이나 지킬 일이지 알지도 못하는 일을 거론해 남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우율 문묘종사 청원이 시작된 것은 인조반정 직후였다. 반정에 성공하고 불과 13일 만인 1623년 3월 27일, 서인 유순익이 율곡 이이의 문묘종사를 청원했다. 이에 민성징, 이민구, 유백증 등 반정공신들이 인조에게 윤허를 청했다. 인조는 점잖게 거부했다. ‘중차대한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조는 문묘종사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42년의 논란 끝에 광해군 초 결말이 난 5현 문묘종사의 전말을 지켜봤고 이언적과 이황의 위폐를 문묘에서 빼는 문제(회퇴변척)를 놓고 벌인 북인과 남인의 정쟁도 지켜봤다. 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정통성까지 독점해 항구적인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닌가. 재위 기간 내내 상소는 계속됐지만 인조는 외면했다. 정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효종 즉위년이었다. 서인은 왕이 어리숙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650년 1월 성균관 유생 홍위 등 수백 명이 문묘종사를 청원하는 상소를 했다. 긴장한 남인 유생들은 2월 경상도 진사 유직을 소두로 900여명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영남의 거의 모든 읍이 참가했다. 그러자 성균관의 서인 유생들은 유직에게 삭적과 부황의 처벌을 내렸다. 유생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의 이름을 쓴 종이를 큰 북에 붙이고 북을 치며 장안을 도는 처벌이었다. 흉악범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과 같은 조처였다. 남인 유생들은 공관으로 맞섰다. 일종의 동맹휴업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구차스럽게 반궁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서인 유생도 염치가 없었던지 공관을 했다. 효종은 속이 끓었지만, 자신의 즉위를 기념해 치르는 증광시가 무산될 수 있어 걱정이었다. 영의정 이경여와 우의정 조익이 부황 처벌만 면제하는 수습책을 냈다. 그러나 서인 유생들은 막무가내였다. ‘선현을 모욕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수 없다.’ 효종은 역정을 냈다. “너희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러자 서인 유생들은 “‘불학무도한 놈’이 어떻게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느냐”며 다시 수업을 거부했다. 손을 든 것은 효종이었다. 7월 3일 ‘군왕으로서 거친 말을 한 것은 잘못’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박세채 등이 우율 문묘종사 청원과 함께 부황 처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효종이 상소의 수용을 거부하자 이번엔 승정원에서 치받았다. ‘유생의 상소에 답하지 않는 것은 선비를 대우하는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효종은 다시 사과를 해야 했다. ‘유생들에게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럽다.’ 성균관 공관 사태는 이것으로 일단락됐다. 6년 뒤 서인의 두 영수가 직접 소두로 나섰다. 송준길은 1657년 10월, 송시열은 이듬해 12월에 우율 문묘 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은 거부했다. 서인의 의도와 집요함에 넌더리가 났다. 현종이 즉위하자 서인들은 다시 공세에 들어갔다. 즉위년(1659년) 관학 유생 윤항 등이 5차례 상소를 올렸고 부제학 유계 등 대간들도 차자를 올렸다. 효종 3년엔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전라도 유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상소했다. 현종 역시 거부했다. 우율 문묘종사 정쟁은, 당쟁을 왕권 강화에 이용한 숙종 때에야 끝났다. 경신환국(1680년·숙종 6년)으로 남인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뒤 숙종은 서인의 요구에 따라 1682년 우율 종사를 윤허했다. 처음 청원이 있고 59년 만이었다. 숙종은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을 통해 서인을 숙청한 뒤 남인의 주장에 따라 우율의 위패를 문묘에서 철거(철향)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숙청한 뒤 위패를 복향했다. 무려 71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이와 성혼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문적 정치적 궤적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인의 권력 기반은 확고부동해졌다. 서인의 노론 소론 분당 이후엔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의 종장이 차례로 문묘에 종사됐다. 조선은 노론의 천하가 되었다. 조선이 불가역적인 쇠락의 길을 걷던 조선 말(고종 20년)에는 김집의 문묘 종사가 이루어졌다. 참으로 집요했다. 그 집요함은 지금 ‘대한민국 아버지’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3일간의 대관식 마친 태국 국왕… 불안한 정국 안전판 될까

    3일간의 대관식 마친 태국 국왕… 불안한 정국 안전판 될까

    망명 중인 탁신 등 야당 인사와도 친분 군부 중심 여당 사이서 정치 줄타기할 듯 푸미폰과 달리 낮은 국민 신임이 관건 태국의 마하 와치랄롱꼰(67) 국왕이 6일 오후 왕궁 발코니에서 국민에 대한 인사를 끝으로 3일간의 전통적인 불교 및 힌두교 의식이 결합된 대관식 일정을 끝내고 승계 절차를 모두 마쳤다. 이제 그가 정치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가 불안정한 태국 정국의 주요 변수로서 관심거리다. 태국은 1932년 절대왕정을 접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지만 국왕과 왕실의 권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왕실모독죄로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다. 2016년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얏데 전 국왕은 쿠데타가 관례화될 정도로 잦았던 정국의 조정자이자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절대 권위를 누렸던 푸미폰과 달리 그는 아직 국민적 신임을 얻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삶과 행적 탓도 있다. 세 번 이혼한 그는 대관식을 사흘 앞둔 지난 1일 26살 연하인 수티다 와치랄롱꼰 나 아유타야 왕실 근위대장과 ‘깜짝 결혼’을 결행하기도 했다. 왕실은 엘리트 관료, 기업인, 군부, 도시민과 친화적이다. 그러나 현 국왕은 망명 중인 탁신 전 총리 등 야당 인사들과도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군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현 여당과 농촌 및 저소득층에 기반을 둔 야당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가 예상된다. 그는 최근 현실정치에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야당인 푸어타이당의 자매정당인 타이락사찻당이 국왕의 누나인 우본랏 라차깐야 공주를 총리 후보로 지명해 파장이 커지자 국왕은 당일 밤 칙령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명해 이를 무산시켰다. 그는 왕권 강화 조처도 취해 왔다. 왕실 사무와 경비를 담당하는 5개 기관을 국왕 직속으로 이관하고 ‘왕실 자산 구조법’ 제정을 통해 최소 300억 달러(약 33조 4800억원)로 추산되는 왕실 자산을 직접 관할·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그는 5일 16명의 병사가 멘 왕실 가마를 타고 3개 사원을 돌며 불교 의식을 가졌다. 약 7㎞ 거리에 달하는 행진에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등도 참여했고, 태국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옷 등을 입은 시민 20만명이 참관했다. 69년 만에 거행된 대관식에 태국 정부는 약 10억 바트(365억원)를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해치’ 정일우♥고아라, 애틋 키스 ‘숨막히는 긴장+뭉클 감동’[종합]

    ‘해치’ 정일우♥고아라, 애틋 키스 ‘숨막히는 긴장+뭉클 감동’[종합]

    SBS 월화드라마 ‘해치’ 정일우가 거침없는 조선 개혁을 시작해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둔 ‘해치’는 애틋한 사랑과 숨막히는 긴장, 가슴 뜨거운 감동을 모두 담아내며 명품 사극의 진면모를 선보였다. 지난 29일(월)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해치’(극본 김이영/ 연출 이용석/ 제작 김종학프로덕션) 45회, 46회에서는 영조(정일우 분)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당파를 막론해 인재를 등용하며 개혁에 앞장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특히 노론과 소론, 사헌부의 거센 반발에 직접 제좌를 여는 등 영조의 결단력이 앞으로 새로운 조선을 열 것으로 기대를 높이게 했다. 이날 드디어 영조는 ‘이인좌(고주원 분)의 난’을 일으킨 역적의 수괴 이인좌와 대면했다. 이인좌는 “자격 없는 임금”이라며 영조를 능멸하고 “내가 죄가 있다면 남인으로 태어난 것뿐이다. 그 썩어 빠진 세상을 바꾸려 했을 뿐이야”라며 반성의 기미 없이 울분을 토했다. 이에 영조는 “나 역시 죄라면, 천출의 피를 가진 것뿐이었으니, 허나 너는 틀렸다. 세상은 결코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내가 반드시 증명해 보일 것이다”라며 이인좌가 추구한 방법이 결코 옳지 않았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영조는 이를 바로 행동으로 보여줬다. 영조는 편전회의를 주최해 남인들을 관리에 등용하는 도승지의 교지를 반포했다. 노론과 소론을 막론하고 편전이 떠나가라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후 중신들은 편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반정을 드러냈다. 아수라장이 된 편전을 바라보며 영조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지만 서늘하게 이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광좌(임호 분)는 혼란을 염려해 속도를 조절할 것을 충언하나, 이 또한 영조의 큰 그림이었다. 영조는 자신이 아직 왕권이 단단하지 못한 군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탕평책 시행을 위해서는 민심을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 혼란이 가시지 않은 이때 제 살길을 위해 싸움만 하는 중신들의 모습이 민심의 분노를 일 것이라 전했다. 한편 밀풍군(정문성 분)은 천윤영(배정화 분)으로부터 ‘이인좌의 난’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왕족이지만 인정 받지 못하고 굴욕적이었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밀풍군은 점차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천윤영은 청국으로 도주하려 하지만 배 편을 사주한 사내에게 배신 당하고, 밀풍군을 지키다 숨졌다. 유일하게 제 편에 남아 있던 천윤영이 죽자 밀풍군은 이성의 끈을 놓고 실성하고 만다. 무엇보다 방송 말미에서 밀풍군이 궐 안에 난입해 충격을 안겼다. 제 스스로를 주상이라 칭하며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밀풍군의 절규가 보는 이들의 소름을 유발했다. 더욱이 “왕은 나야. 내가 바로 내가 왕이란 말이야”라며 관군에 포위된 밀풍군의 모습이 그려지며 그의 최후에 관심이 한껏 고조됐다. 그런가 하면 이날 영조와 여지(고아라 분)이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고, 첫 키스를 나눠 설렘을 자아냈다. 함께 수많은 역경을 견디고 헤쳐나갔던 두 사람이 우정을 넘어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시청자들의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다. 특히 이때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그려진 두 사람의 키스가 심장을 더욱 몽글거리게 만들었다. 민진헌(이경영 분)은 오랜 정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헌부가 먼저 움직이고, 이후 사간원과 홍문관이 지원해 탕평을 막아설 것이라고 충언한다. 민진헌의 말처럼 사헌부의 반발이 시작됐다. 사헌부는 이인좌의 장인의 집을 수색해 그와 식솔들을 심문하려 했다. 이는 연좌(가족 관계를 이유로 죄를 무고하게 처벌 당하는 일)가 없을 것이라는 영조의 명을 어긴 것. 더욱이 영조는 이광좌를 영의정에, 조현명(이도엽 분)을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하지만 사헌부 대관들이 조현명의 출근을 막아서는 경악스런 사태까지 일어나고 만다. 이를 들은 영조는 “그것은 결국 다시 후퇴한다 할지라도 지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오래된 희망을 끝내 놓지 않는 것. 세상은 그로부터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민진헌의 충언을 되새겼다. 이어 사헌부를 직접 찾아가 제좌를 여는 초강수를 뒀다. 무엇보다 영조는 “과인은 헌부의 이 오랜 병폐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사헌부의 인사권을 쥐고 있었던 이조전랑을 혁파하고, 그 제도를 전면 개혁할 것을 천명하노라”라고 전해 제좌청을 발칵 뒤집었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변화와 개혁을 위해 나아가는 영조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전개 속 박진감 넘치는 영상미가 몰입도를 더욱 극대화시켰다. 마지막까지 힘을 놓지 않은 이용석 감독의 단단한 연출력은 시청자들을 감동으로 이끌었다. 특히 관군들의 날카로운 칼날이 가득 메운 가운데 칼날을 끌고 ‘주상전하 납시오’를 외치는 밀풍군의 모습은 포기하지 못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보여줌과 동시에 애정을 갈구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권력의 이면을 생생히 느끼게 했다. 또한 제좌청에서 탕평책에 반대하는 신료들로 둘러싸인 속에서도 요목조목 강건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히는 영조의 모습이 카리스마 넘치게 그려지며 안방극장의 흡입력을 높였다. ‘해치’ 방송이 끝난 후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조선을 통해 작금의 세태를 꼬집는 해치. 진짜 명품사극”, “탕평책 그 어려운 것을 영조가 해내는 것이다. 너무 멋있음”, “역시 왕이 현명해야 돼”, “이제 마지막이라는 너무 아쉽다”, “오늘 몰입도 최강이었다”, “오늘 영조-여지 키스신 너무 아름다웠다” 등 댓글을 남기며 뜨거운 반응을 드러냈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오늘(30일) 최종회가 밤 10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바로크 시대는 16세기에 시작해 18세기까지 계속된다. 절정기는 1650년쯤이다. 바로크는 르네상스처럼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원죄로 인해 일그러진(‘바로크’한) 존재로 그린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의 바호쿠(barrocoㆍ비뚤어진 모양의 진주)에서 왔다. ‘거칠고 조야하다’는 뜻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사상과 감정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두 자극(磁極)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립과 극단 속에서 회의하고 고뇌하는 모습이다. 무가치한 존재라는 자기 비하와 새롭게 얻은 막강한 힘에 대한 자부심, 두 극단을 오르내린다. 조울증과 흡사하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유럽인들이 근대 초기에 겪었던 낯선 경험 때문이다. 바로크 양식을 등장시킨 폭발력은 부분적으로는 ‘우주적’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사회적’이었다. ‘우주적’인 폭발력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제공했다. 지구 중심적인 천동설의 우주관에서 누리던 편안함은 사라지고, 광대무변한 우주 속의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을 통해 얻어진 막강한 힘에 대한 의식이 고개를 쳐들었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인식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바로크는 무기력과 막강함의 양극적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 폭발력은 또한 ‘사회적’인 것이었다. 화약과 대포의 등장으로 봉건 영주들은 더이상 돌로 쌓은 성벽 안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지역적 권력과 자부심을 든든히 지켜 주던 보루가 힘없이 무너진 후, 새로이 등장한 막강한 중앙집권적인 왕권 앞에서 철저한 무력감이 귀족들을 사로잡았다. 고독과 소외와 절망이라는 새로운 느낌이 엄습했다. 귀족계급의 몰락과 더불어 강력한 왕권을 배경으로 국민적 군주국가가 성립했다. 바로크 양식은 그러한 심각한 양극성을 바탕으로 등장했다. 국왕의 막강한 권력과 몰락한 귀족의 무기력, 이 두 경험이 바로크 시대 유럽인들이 주변 세계에 대해 보인 새로운 반응의 핵심이었다. 담장 위에 엎드린 백구는 몰락한 백기사다. 뭇 행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성벽 안에서 누리던 독립성을 잃고 소외와 절망에 빠진 채 ‘바로크적 고독’에 신음하는 봉건귀족이다.
  • 김영진 시흥시 환경국장 “예산 97억원 들여 다양한 미세먼지 저감 정책 펼치겠다”

    김영진 시흥시 환경국장 “예산 97억원 들여 다양한 미세먼지 저감 정책 펼치겠다”

    경기 시흥시가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미세먼지 저감 관리대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 시흥시는 26일 김영진 환경국장이 시청에서 언론브리핑을 갖고 2024년까지 지난해 미세먼지 농도 대비 20%를 저감하는 ‘시흥시 미세먼지 저감 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월 미세먼지대응팀 신설 후 미세먼지 TF팀을 만든 시는 올해 ‘미세먼지 피해예방과 저감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총 예산 97억원을 들여 다양한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펼친다. 먼저, 장기적으로 미세먼지 감소 효과가 우수한 나무를 심고 ‘도시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산현공원에 9300그루, 정왕동 보행자 도로와 오이도 가로변에 6000그루, 완충녹지에 2630그루 등 총 2만 3540그루를 심는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숲을 조성하기 위해 주민이 직접 곰솔누리숲과 개별 사업장에 2600그루를 심을 계획이다. 특히 시민과 함께하는 미세먼지 대응을 강조했다. 지난 15일 시흥스마트허브 환경개선을 위해 시흥스마트허브 입주 기업과 환경단체, 정왕동 시민들이 모여 ‘맑은공기 푸른정왕 지킴이’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은 1사 1녹색사업과 하천 환경 정화활동을 비롯해 지역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열어 미세먼지 해결에 앞장선다. 더불어 시가 지난해 7월 스마트도시 실증도시로 선정되면서 지방정부 최초로 시민참여 기반 도시 대기환경 측정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2022년까지 시민이 전문가와 함께 직접 미세먼지 측정기를 제작·시험하고, 정왕권역에서 실증·운영해 미세먼지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또 친환경 차 보급과 인프라 확충에 힘쓴다. 올해 전기차 구매 지원금으로 22억원을 편성해 대당 1400만원씩 155대를 지원한다. 또 시흥시 등록 노후경유차 2680대는 조기폐차나 저감장치 장착 등을 지원하고, 배출가스 5등급 경유 차량 1만 7814대는 오는 6월부터 운행제한제도를 시행한다. 소규모 영세사업장 지원으로 사업장 미세먼지 관리도 강화한다. 4곳에 노후 미세먼지 방지시설 개선과 신규 설치비용 1억 6000만원을 지원한다. 저녹스 버너 및 송풍기 등 부대시설 보급에 1억 9000만원을 투입한다. 현재 1700개에 이르는 대기·악취 배출 사업장에 민·관 합동점검도 수시로 진행한다. 대규모 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이 한창인 시흥은 소음과 비산먼지의 거주지 유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 7회에 걸쳐 사업장 지도·점검을 추진한다. 일반 보일러를 저녹스 보일러로 교체 시 대당 16만원을 지원하고, 다중이용시설 325곳에 실내공기 질 관리 여부를 점검하는 등 생활환경 미세먼지 차단에 힘쓸 계획이다. 현재 시흥스마트허브와 정왕동·대야동 3곳에 설치된 대기오염 측정소를 확대 설치한다. 올해 1억 9000만원을 들여 목감동 측정소를 신설하고, 2022년까지 정왕대로와 배곧·장현 등 주요 택지개발지구에 설치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4곳에 설치한 ‘미세먼지 신호등’은 더 많은 시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역사와 광장 주변에 2대를 추가 설치한다. 김영진 환경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세먼지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시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게 책무이자 의무”라며 “앞으로 지속·실천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 미세먼지 문제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덕수궁 즉조당·준명당 내부 첫 개방… 덕수궁 전각 특별관람 27일 시작

    대한제국 시기 정전과 고종 침전으로 사용한 덕수궁 즉조당과 준명당이 처음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문화재청은 전문해설사와 함께 석어당, 함녕전, 중화전, 즉조당, 준명당 등 덕수궁의 주요 전각 내부를 돌아보는 특별관람을 오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즉조당은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과 인조(재위 1623∼1649)가 즉위했다고 알려진 곳으로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쓰이다 후에는 집무실인 편전으로 쓰였다.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돼 있는 준명당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와 황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궐에서 보기 드문 중층 목조 건물인 석어당은 2층에 오르면 화사하게 핀 살구꽃을 감상하기 좋은 전각이다. 고종이 1919년 승하한 장소인 함녕전은 내부에 조선시대 커튼인 무렴자(솜을 두어 누빈 커튼)와 왕의 의자인 용교의, 왕권을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병이 전시돼 있어 궁궐의 옛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별관람은 하루에 2회(오전 10시와 오후 4시) 진행되며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참가 신청은 26일 오전 10시부터 덕수궁관리소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에서 하면 된다. 참가비는 없다. 회당 정원은 15명.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형은 발레·동생은 탭댄스… 편견 깨는 춤꾼 형제

    형은 발레·동생은 탭댄스… 편견 깨는 춤꾼 형제

    “처음에는 장난치지 말라고 했죠. 예술이란 게, 춤이란 게 쉽지 않다고….”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가 6년 만에 돌아오는 동생이 전화통화에서 대뜸 “한국에서 탭댄스를 하겠다”고 하자 형은 걱정부터 앞섰다. 어릴 적 자신이 발레를 하겠다고 아버지와 싸울 때는 이해할 수 없다던 동생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귀국 후 동생이 연습실에서 탭댄스를 추는 것을 보고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의 형은 생각이 바뀌었다. ‘장난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구나. 나름 경지가 보이는구나’라고. 춤에 인생을 바친 형제라고 불러도 되겠다. 민간발레단을 이끌며 발레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김길용(52) 와이즈발레단 단장과 ‘대한민국 1세대 탭퍼’ 김길태(50) 탭꾼탭댄스컴퍼니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7~9일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2019 서울 탭댄스 프린지’ 공연을 앞두고 두 형제를 만났다. “발레는 백인, 귀족이 추는 춤이고, 탭댄스는 흑인, 서민이 추는 춤이죠. 하하.”(김길태 대표) 인터뷰 시작과 함께 동생은 형부터 치켜세웠다. 1988년 김 단장이 대학 무용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남성이 발레를 한다는 것은 무척 생경한 일이었다. 30년 넘게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맞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 온 형에 대한 존경이 동생인 김 대표의 말에 묻어났다. 김 대표는 케이블방송국 PD를 그만두고 오른 뉴욕 유학길에서 탭댄스를 만난 뒤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뉴욕 브로드웨이 댄스센터, 스텝 온 브로드웨이 등에서 탭댄스를 배운 김 대표는 국내로 돌아와 2002년 탭꾼탭댄스컴퍼니를 만든다. 당시 탭댄스를 ‘흉내’만 내던 한국에 미국 본토의 ‘진짜 탭댄스’를 갖고 온 것이었다. “동생의 뉴욕 유학 6년 동안 서로 통화한 게 2번 정도예요.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은 통화하고 있어요.”(김길용 단장)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형제가 함께 어울린 기억이 많지 않다. 더욱이 김 단장이 10대 때 부산의 가족을 떠나 서울 계원예고에 입학한 뒤로 형제 간 왕래는 더욱 뜸했다. 하지만 동생이 형을 따라 ‘춤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흰머리가 희끗한 이들 형제는 ‘자매’ 같은 사이가 됐다. 김 단장은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고 예술을 토론하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면서 “아내가 아니라 동생과 쇼핑을 보기도 한다”며 크게 웃었다.발레와 탭댄스는 사실 정반대의 춤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발전시킨 발레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쓰이기도 했던 유럽의 춤, 귀족의 춤이다. 반면 탭댄스는 흑인들이 백인의 춤에 아프리카의 리듬을 결합해 만든 미국의 춤, 노예의 춤이다. 더불어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 동작이 상징하듯 발레가 중력을 거스르려는 춤이라면, 탭댄스는 끊임없이 바닥을 구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김 대표는 “발레리나의 망가진 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레가 보여 주는 자연스러운 선은 사실 댄서들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통해 만들어진다”며 “반면 탭댄스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데 관객들은 공옥진의 ‘병신춤’을 볼 때와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고 비교했다. 형제는 이질적인 두 장르를 결합해 국내 최초로 발레와 탭댄스의 협연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와이즈발레단이 선보인 창작발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에서 탭댄서와 발레리나의 2인무를 선보였고, ‘호두까기 인형’의 장난감 병정 역할로 탭댄서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작품을 올리며 형제는 서로 단체에 각각의 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동생이 추는 탭댄스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요동치는 흥분을 느꼈습니다. 일반인 사이에서 취미발레가 인기를 끈 것처럼 조만간 탭댄스도 큰 붐이 일 거예요.”(김 단장) “어릴 때는 여성이나 추는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죠. 남성적인 카리스마와 여성적 아름다움을 함께 가진 게 발레의 매력이 아닐까요.”(김 대표)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씨줄날줄] 솔로몬과 한유총/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솔로몬과 한유총/박록삼 논설위원

    솔로몬은 강한 왕권을 휘두른 이스라엘 왕이었다. 특히 그는 인류사에서 ‘지혜의 상징’과도 같은 이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난처한 상황 속 소송 판례를 보여 주는 과거 어떤 TV 프로그램 제목이 ‘솔로몬의 선택’이었을까. 사실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그는 사후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킨 실패한 왕이었다. 1000명의 처첩을 둬 불성실한 지아비로, 금은보화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드러내는 등으로 비판의 여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지혜로운 판관의 상징을 훼손하지는 못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명재판을 남겨 둔 덕이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니 짧게 소개하자면 두 여인이 갓난아이를 들고 와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다툴 때 솔로몬은 칼을 꺼내고서 “아이를 반으로 잘라 나눠 가지라”고 판결한다. 가짜 어미는 “왕의 판결에 따르겠다”고 말한 반면, 생모는 울면서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말해 자연스럽게 생모를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모성애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 주된 교훈이다. 3000년 지난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일부 사립유치원의 각종 비리 실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고, 정부는 지난 1일부터 각종 지원금 및 세제 혜택을 받는 사립유치원에 국가관리 회계 시스템인 에듀파인 도입 추진 뜻을 밝혔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는 지난 4일 에듀파인 도입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개학연기’를 강행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1995년 창립한 한유총은 2002년 공립단설유치원 설립,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2012년 누리과정 도입, 2017년 재정지원 확대 요구 집단휴원 예고 등 각종 집단행동으로 여러 교육정책을 무산시키곤 했다. 한유총의 ‘든든한 빽’은 바로 유치원생들이었다. 학부모들은 혹여 우리 아이가 다칠까 걱정하는 ‘솔로몬 재판 속 생모’의 심정으로 그들 편을 들어줬고, 정부는 이들과 번번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한유총의 홈페이지 소개글을 보면 ‘사랑과 정성으로 교육하여 즐거운 기억만을 갖도록 하겠다’며 사립유치원 연합체로서 믿음직스러운 포부를 밝힌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치건 말건 제 이익은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가짜 어미’가 누구인지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한유총의 설립 허가를 취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쏟아지는 비난과 반대 여론,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뒤늦게 확인한 한유총은 부랴부랴 백기를 들었지만 신뢰는 이미 깨지고 말았다. 솔로몬이 한국 땅에 환생한다면 내려줄 지혜가 궁금하다. 유치원생을 등에 업고 학부모와 정부를 협박하며 제 주머니를 채우는 사립유치원장에게 정신이 번쩍 나는 판결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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