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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휴게실] 고려초기 관리 채용방법

    고려시대에는 왕권이 많은 도전을 받았다.초기에는 호족에게,중기에는 무인에게 흔들렸다.말기에는 몽골의 침탈을 받기도 했다. 이런 왕권의 기복은 관리 임용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특히 고려초기와 무인 집권시기에는 임용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초기의 관리 임용방식은 과거제와 음서제가 대표적이다.음서제는 조상의 음덕으로 그 자손이 관리가 될 수 있게 하는 제도.왕권이 확립됐을 때는 과거제가,귀족이나 호족 세력이 강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음서제가 활발했다. 과거제는 4대인 광종 때 도입됐다.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공신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시행된 것이다.이전까지는 호족연합 정권인 탓에 호족과 왕족이 관직을 독점했다. 과거제 시행 초기에는 일정 신분 이상이면 예비시험 없이 본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관료체계가 정비되면서 복잡해졌다.8대인 현종 때는 지방에서 시험에 응시할 경우,주·현의 크기에 따라 1∼3명씩으로 응시인원을 제한했다.지방에서 시험에 합격해도 서울로 올라와 국자감에서 재시험을 친 다음에야 본시험을 볼 수 있었다.9대인 덕종 때는 지방과 중앙을 막론하고 모두 본시험에 앞서 예비시험인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보도록 했다. 시험과목은 제술업과 명경업,그리고 잡업 등으로 나눠졌는데,제술업을 가장 중요시했다.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과거 외에 승려를 대상으로 승과가 실시됐으나,무인을 양성하는 무과는 거의 실시하지 않은 것이 이채롭다. 음서제는 삼국시대의 천거제와 신라 귀족사회의 틀 속에서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손을 관리로 임용하는 것이다.성종 때에 이르러 제도적으로 정비됐다.왕족의 후예나 공신의 후손,5품 이상 고급관료의 자손 등이 혜택을 봤다.음서출신자에게 승진의 제한은 없다.음서출신자의 대부분이 5품 이상 고위직에 오를 수 있고,5품 이상으로 승진하면 그의 자손은 다시 음서로 공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5∼6세에 음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15세가 되면 관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과거에 붙은 뒤에도 오랫동안 공직에 나가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그만큼 음서 진출자가 많았다는 얘기다.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음서로 진출한 관리 가운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다시 과거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조덕현기자 hyoun@˝
  • 사회 플러스 / 美수능교과서 “한국사 오류 수정”

    국내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미국 최대의 SAT(대학수능시험) 교과서에 기술된 한국사 관련 오류가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네티즌 1만 200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 바로알리기 사이버 민간기획단 ‘반크’(www.prkorea.com)는 14일 미국의 SAT 교과서 출판사인 ‘맥그로 힐’이 내년 교과서 개정판 발간 때 한국사 관련 오류를 고치겠다는 서한을 보내왔다고 밝혔다.현재 세계사 부문의 출제에 주로 사용되는 미국 교과서에는 조선을 청나라의 영역으로 표시하거나 한국 왕조가 중국 왕조의 도움으로 왕권을 유지했다고 기술하는 등 한국사를 중국 속국의 역사로 소개하고 있다.
  • 기고/盧대통령 ‘지도자 의무’ 잊지 말아야

    노무현 대통령의 뮤지컬 관람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토론방이 시끄럽다.그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그후 주변인사들이 나와 대통령을 거드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일이 더 커져서 그렇다. 초대형 태풍이 반도 남쪽을 몰아칠 때,다시 말하면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속출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가족과 비서들을 동반해 한가로이 공연관람에 시간을 보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었다.그것은 솔직히 그가 혹 1억∼2억원의 뇌물수수에 연루되었다거나 부정한 여성 행각을 저질렀다는 뉴스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어떻게 그럴 수 있나. 대통령은 법적으로 국정 최고책임자이며 도덕적으로는 정신적 최고지도자다.지도자는 갖은 일에 솔선수범하고 분골쇄신하여야 한다.나서서 우리가 8시간 일할 때 10시간,12시간 일해야 한다.그러므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태로운 지경에서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별 생각없이 뮤지컬 공연을 즐겼다는 것은 어떤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과거 전제 왕권시대에도 나라에 재난이 생기면 지도자(왕)는 백성의 고통에 동참해서 음식을 삼가며 자신의 부덕을 꾸짖어 하늘에 용서를 빌었다.그것이 지도자의 일반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신의였다.항차 우리가 필요해서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대통령)가 기대를 이렇게 저버린 것에 대해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실망과 배신감이 든다. 태풍소식에 접하자마자 대통령은 모든 관람계획을 취소하고 즉시 태풍이 휘몰아치는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지 않았을까.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진두지휘하는 상기된 대통령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가관인 것은 측근인사들의 이어지는 변명이다.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연극 한 편 볼 수가 없느냐고 볼멘다.어느 장관은 우리나라도 이제는 태풍 때 골프도 치고 연극도 보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거든다.또 한 장관은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이 올 때 오페라 보면 안 되느냐고 노골적으로 항변했다.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정말 모르고 그러는가,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거드름을 피우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일단의 식자들이노 대통령의 지도자정신 부실을 책망하기보다는 주위 참모들의 보좌능력의 취약함을 꾸짖는 것이다.말하자면 동행한 비서실장·경호실장이나 또는 관련 비서들이 가지 말 것을 건의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과연 그럴까.되레 그들이 가자고 적극 권유해도 대통령이 나서 극구 만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엊그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의 해프닝도 크게 다르지 않다.행사 참가 부대에 대한 열병을 하면서 국방부장관은 줄곧 대통령을 위해 우산을 받쳐들었다.사람들은 나이 먹은 장관이 젊은 대통령을 위해서 우산 받쳐든 모습이 안쓰럽다고 하지만,그보다는 비맞고 서있는 장병들 앞에서 우산 쓴 대통령의 모습이 더 흉하다.우산 받쳐든 국방장관이 문제가 아니라 우산쓴 대통령이 문제라면 문제다.우산이니 우의 따위 다 그만두고 장병과 함께 그냥 비 맞는 채로 밝고 늠름한 모습으로 사열하는 대통령을 우리는 정말 보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은 법적으로 국군 최고통수권자이며 도덕적으로는 정신적으로 최고지도자다.‘지도자는 스스로를 더 묶는다(Nobility obliges).’ 지도자는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는 말이다.우리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인 노무현 대통령은,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이 점을 부디 명심해야 한다.우리들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황필홍 단국대 교수·정치철학 명예논설위원
  • 비극적 악녀로 다시 사극 도전/SBS ‘왕의 여자’ 주연 박선영

    “연달아 사극을 한다니까 주변에서 다들 놀라워하더군요.사실 저도 처음엔 망설였는데 워낙 탐나는 배역이라 놓치기 싫었습니다.” ‘야인시대’후속으로 새달 6일 첫방송하는 SBS 80부작 대하사극 ‘왕의 여자’(극본 윤정건,연출 김재형·정효)의 히로인 박선영(27).수십년 경력의 베테랑 연기자들도 할때마다 어렵다고 혀를 내두르는 사극을 한달만에 다시 시작한데는 무엇보다 연기자로서의 욕심이 컸다.KBS2 특별기획 ‘장희빈’에서 인현왕후로 분했던 그는 지난 4일 죽음을 맞는 마지막 방송에서 애절한 눈물 연기를 펼쳤다. ‘왕의 여자’는 SBS가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대작.‘여인천하’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스타PD 김재형이 ‘새로운 매력의 사극을 보여주겠다.”고 호언하고 있는 야심작이기도 하다.월탄 박종화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원작으로 한 ‘왕의 여자’는 선조와 광해군 부자로부터 동시에 사랑을 받은 궁녀 개시(개똥이)의 파란만장한 삶이 기둥이다. 자칫 불륜 논쟁에 휘말릴 수 있는 데다 광해군이 왕권에 오를수 있도록 갖은 권모술수를 휘두르는 역할이라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을 터.그는 “부자 사이를 오가는 악녀로 비춰질 수 있지만 개시가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광해군”이라면서 “궁녀라는 이유로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는 비극적 인물”이라고 분석했다.하지만 후반부에 선조와 임해군 암살에 관여하는 등 독한 연기 장면이 많아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광해군역을 맡은 탤런트 지성과는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동갑내기 동료여서 연기하기가 편한 편.그러나 지성은 사극 도전이 처음이고,자신도 인현왕후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고 털어놨다. 같은 시간대 경쟁 드라마인 MBC ‘대장금’과의 불꽃튀는 한판 승부도 세간의 관심거리.공교롭게도 ‘대장금’의 여주인공 이영애는 이전 김재형PD가 연출한 사극 ‘서궁’에서 개시 역할을 한 적이 있다.시청률 경쟁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하는 주인공으로서의 각오는 어떨까.그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와 다양한 캐릭터,여러 사건들이 다층적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순녀기자 coral@
  • 이런 책 어때요 / 동북아시아 샤머니즘과 신화론

    김열규 지음 아카넷 펴냄 샤머니즘과 신화를 통해 한국 문화의 원류를 살폈다.저자(계명대 교수)는 ‘해모수-동명왕-유리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시조 3대의 신화와 박혁거세신화·탈해왕신화·수로왕신화·고조선신화를 분석,한반도가 무권(巫權)과 왕권이 중첩된 무왕(巫王)신화권에 속함을 밝힌다.또한 북유럽신화의 오딘·보단·볼바,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지닌 샤먼으로서의 속성을 밝혀 샤머니즘이 국지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저자는,샤머니즘은 억압된 욕망과 좌절된 본능을 발산케 해 난장이나 서양의 카니발처럼 공동체 내부의 상흔을 해소시킨다고 말한다.2만2000원.
  • 폭군인가, 유약한 인간인가/ 8년만에 돌아온 ‘연산’

    연출가 이윤택의 역사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포악한 독재자로 알려진 ‘연산’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지난 95년 배우 유인촌 이혜영의 주연으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초연돼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는 11일부터 2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막올리는 이번 공연은 국립극장 남산 이전 30주년을 기념해 연출가 이윤택이 국립극단과 손잡고 마련한 무대이다.그는 “워낙 규모가 큰 작품이라 그동안 쉽게 재공연 엄두를 못냈다.”면서 “극장측의 안정적인 지원과 20대부터 70대까지 배우층이 두터운 국립극단의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제적 인간 연산’은 성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을 몰고온 수구세력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벌이면서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독단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무너진 왕권을 암시하듯 낡은 폐허가 된 궁안.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유약한 연산은 밤마다 악몽을 꾼다.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제를 올리던 중 폐비 윤씨의 혼이 녹수에게 들어와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된다.이때부터 연산은 선왕을 모시던 대신들을 향해 가차없는 피의 숙청을 단행한다. 이 과정에서 연산은 ‘비판할 줄만 알고,정작 책임지지 못하는 혓바닥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개혁의 정당성을 내세운다.하지만 권력을 잡은 후 충신 ‘처선’의 고언을 듣지 않고,그 자신 과거에 발목잡혀 폭정을 휘두르면서 개혁의 의미는 퇴색하게 된다. 이윤택은 “연산은 낡은 인습에 맞서 현실을 바꾸려는 개혁적인 정치인이었으나 결국 독단에 빠져 추락한 인물”이라면서 “공교롭게도 요즘 한국 정치현실과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에너지와 속도감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초연과 달리 대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이전보다 이성적이고 정제된 이미지의 장치들을 선보일 예정이다.동해안 별신굿을 재현한 굿판과 대나무를 활용한 장면 등 볼거리도 한층 정교해졌다. 연산역의 이상직,장녹수역의 계미경 등 젊은 배우들의 열정과 장민호(대신)백성희(인수대비)신구(성종)등 국립극단 전현직 원로배우의 연륜이 빚어내는 연기의 조화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이다. 이윤택은 “대형 뮤지컬,축구장 오페라 등 요란하고 상업적인 작품들이 관객의 주목을 끄는 요즘,연극도 정통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대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평일 오후 7시30분,추석 연휴,토·일 오후 4시.1만∼3만원.(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 비정규직 ‘차별의 벽’을 넘어 / 정규직 노조는 막강… ‘노·노갈등’ 증폭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단순히 고용 안정을 떠나 임금과 복지 등 처우 수준이 180도 다른 것이다.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노동의 유연성 확보와 인건비 절약,강성 노조를 의식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양산은 기업이나 정규직 근로자들에게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전망이다.정규직 근로자의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나 비정규직의 노조 결성 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몸값은 정규직의 절반 한국노동연구원의 안주엽 박사는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실태 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정규직 근로자의 43∼79%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안 박사는 특히 “비정규직의 주당 근로시간(평균 54.8시간)은 정규직보다 최대 4시간이나 더 많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격차는 최근 들어 더욱 벌어지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현대차에서 일하는 1차 하청업체 직원의 명목상 급여는정규직원의 70% 수준이다.”면서 “그러나 하청업체에서 수수료를 떼고 직원에 급여를 주는 데다 각종 복리후생이 따르지 않고 고용보장도 없어 정규직의 절반 수준도 받지 못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상당한 수준이다.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500인 이상 기업의 임금상승률은 17.5%로 10∼29인 기업 상승률인 6.2%보다 11.3%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다. 석유화학·정유 등 일부 대기업의 생산직 17년차 연봉은 7000만원을 웃돈다.평균 연봉도 5700만원을 상회,전산업 평균(2443만원)의 2배가 넘는다.이는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 선수 평균연봉(57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또 조선·자동차·철강업계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도 4500만원선이다. ●비정규직의 반란,정규 노조가 초래?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규 직원 채용 대신 아웃소싱을 늘리면서 노·노 갈등이 점차 불거지고 있다.특히 대기업 노조의 생산직 직원은 인력순환이 잘 안돼 ‘동맥경화’ 현상도 보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협력업체수는 1999년 86개에서 2000년 91개,2001년은 107개로 늘어났다.수주 호조로 일감이 증가했지만 강성 노조를 의식해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해결한 탓이다.이에 따라 신규채용은 지난 97년 이후 끊겼다.생산직 평균 연령대도 1998년 40.4세에서 지난 5월에는 43.6세로 고령화됐다. 현대중공업도 정규 직원(2만 6000여명)의 절반 수준인 1만 3000명이 협력업체 근로자로 전체 생산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현대차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최근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을 결성했다.정규직과의 각종 차별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왕' 현대차 노조는 올 임단협에서 ‘조합원의 자격 범위 확대’와 ‘완전한 유니온숍의 도입’을 요구했다.그러나 완전한 유니온숍이 되면 노조에서 특정 직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할 경우 사측은 그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노조가 왕권에 가까운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갖는 것이다. 노조는 이밖에 최근 기업들이 잦은 파업과 높은 임금으로 속속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추세에 대응해 ▲해외공장 이전시 노조 합의 ▲노조의 경영참여 등을 단협의 요구 사항으로 내세우고 있다.사측은 이에 대해 노조가 경영까지 간섭하겠다는 것은 회사를 내놓으란 얘기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LG화학 가공노조도 무리한 임금 인상(기본급 포함 총 22.45%)을 요구하며 13일째 전면 파업을 벌이고 있다.회사내 장치노조와 임금격차가 너무 큰 만큼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타사보다 10%이상의 높은 임금 수준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과다한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특히 장치 부문은 노동강도가 가공 부문보다 더 강할 뿐 아니라 위험도가 높아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임금 수준이 높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장치 부문의 인건비 비율은 7.4%인 반면 가공 부문은 10%를 초과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정규직 근로자들은 사무직이 ‘사오정(45세 퇴임)’에 시달리고 비정규직의 고용이 불안정한 것과 달리 정년이 보장된다. 현대차는 정년이 58세까지 보장된 데다 평생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고용안정협약서까지 체결한다.복리후생의 경우 ▲자녀 2명에 한해 학자금 지원(중·고등학교 전액,대학생은 1학기 100%,2학기 75%) ▲최대 1500만원 한도내 연금리 5%로 주거 지원금 대출 ▲15만원 상당의 직원 명절 선물지원(연2회) ▲단체 상해보험 가입(작업중 상해사고 또는 일반 상해사고 사망시 최고 2000만원까지 보상) ▲매년 정기 건강진단 등이 제공된다.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와 철강,석유화학업계 등도 56∼57세까지 정년 보장을 해준다.이와 함께 복지 수준이나 처우도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현대차 노조는 노동강도가 강하고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지난해에는 9명,2001년에는 13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주현진 김경두 기자 golders@ ■대기업 정규 생산직 고학력자 대거 몰려 대기업 정규직은 높은 임금 수준과 정년 보장 등으로 대졸사원 공채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이에 따라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도 생산직에 몰리고 있다. 16일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생산직에 지원한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은 1999년 3754명에서 지난해 1만 2991명으로 최근 4년간 246% 늘어났다.그러나 상당수 기업들이 공채보다는 수시 모집에다 자체 교육원이나 협력업체에서 채용하기 때문에 실질 경쟁률은 더욱 높다는 분석이다. 현대중공업은 자체 기술교육원에서 인력을 충당한다.지난해 기술교육원에서 배출한 기술자는 1200명 수준으로 교육원 입사 희망자는 이보다 7배 이상 많았다.하지만 지난해 생산직 채용 인원은 400여명이다. 현대삼호중공업도 이와 비슷하다.지난해 기술교육원 입사 경쟁률은 3대 1수준이었다. 현대차도 지난해 공장 직원을 신규 채용했지만 외부에도 알리지 못한 채 사내 공고를 통해 몰래 1000명을 뽑았다.관계자는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인원억제가 최대 목표”라면서 “이같은 방침에 따라 지난해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울산공장(2만 6000명)내에서만 인력 공고를 냈는데 이력서가 1만통이 넘게 왔을 정도”라고 귀띔했다.그나마 당시 채용된 1000명중 400여명은 현대차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인 비정규직에서 선택됐다. 다른 관계자는 “생산직 채용 자격은 고졸이지만 전문대출신들의 지원이 많아 전문대 졸업을 고졸로 인정하는 추세”라면서 “종종 대졸 출신들이 지원하는 사례도 있어 이들을 솎아 내는 것도 일이다.”고 덧붙였다. 주현진 김경두기자 ■비정규직 처우개선 “나몰라라” 올해 대기업 임단협의 주요 쟁점사항인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장이 시나브로 사그라들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주5일 근무제나 임금협상에 주력한 결과,비정규직의 차별 철폐가 뒷전으로 밀려난 탓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 ‘정규직의 파이’를 일정 부문 양보해야 하지만 이를 받아들 수 없다는 정규직 노조원들의 밑바닥 정서도 한몫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9년째 무분규 협상에 성공했지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은 노조 요구안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두산중공업 노조도 노사협상에 들어가기 전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그러나 올 초 노사분규로 수주 실적이 악화되면서 지금은 임금협상에만 주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비정규직에 대해 ‘나몰라라’한 것은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을전체 생산직의 16.9%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노사가 합의했지만 올 7월 현재 비정규직은 30%(현대모비스 포함)에 육박하고 있다. 비정규센터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보는 인식이 일반적이다.”면서 “사측은 이같은 점을 이용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겨난 희생양적인 계층”이라면서 “지난해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치던 정규직 노조가 올해는 강도를 낮추거나 아예 언급도 안하는 것은 정규직들이 자신들의 살 길을 걱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처우는 정규직이 양보할 부분이 아니라 사측이 배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 [씨줄날줄] 네페르티티

    고대 이집트 역사는 세 명의 걸출한 여왕의 이름을 남긴다. 여성 최초로 왕인 동시에 신이기도 한 최고 통치자 ‘파라오’를 자처한 하쳅수트(재위 기원전 1490∼1468)여왕.제 18왕조 3대 군주 투트모스 1세의 딸이었던 그는 이복오빠인 투트모스 2세와 결혼했으나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의붓아들 투트모스 3세를 제치고 왕권을 장악해 20여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다.나일강 서안 테베 시에 있는 거대한 데이르 엘바하리사원은 여왕의 막강했던 권력을 상징해주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클레오파트라7세 여왕(재위 기원전 51년∼30년)은 비록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 역사에 종말을 고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지만 뛰어난 미모와 기지로 격동기를 헤쳐가고자 한 수완가였다.지중해에 연한 이집트 북부의 미항 알렉산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근거지로서 최근 클레오파트라 관련 유물이 속속 발굴되고 있다. 반면 18왕조의 왕 아크나톤(재위 기원전 1379∼1362)의 왕비였던 네페르티티는 이름까지 ‘미인이 왔다.’는 뜻일 정도로 미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지만 정치적 행적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남편 아크나톤이 태양신 ‘아몬’을 유일신으로 한 종교개혁을 주창하는 등 혁명에 가까운 통치 끝에 독살된 탓인지 여왕 말년의 기록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나톤의 재위기간은 이집트의 황금시대였던 신왕조시대로서 미술에도 황금기였다.아크나톤은 수도를 테베에서 아마르로 옮기고 각종 개혁과 함께 활기찬 양식의 미술을 장려해 대담하고 자유로우며 섬세하고 우아한 미술품들을 남긴다.네페르티티의 가냘프고 신비스러운 미모도 이 시기 흉상과 두상 조각품이 발굴됨으로써 후세에 전해졌다.이집트 미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투탄카멘 왕의 가면도 이 시기 작품이다.투탄카멘은 아크나톤 다음의 파라오로서 네페르티티의 의붓 아들이다. 최근 네페르티티 왕비의 미라가 확인됐다는 보도는 잊혀졌던 네페르티티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깨운다.카이로의 이집트국립박물관에 ‘젊은 여인의 미라’란 이름으로 방치된 한 미라의 주인공이 네페르티티라는 것이다.네페르티티는 단지 절세 미인 여왕이었을까,일설대로 남편에 맞서 자신의 종교를 지키거나 권력을 휘둘렀던 여왕이었을까.이번 발표가 후속 연구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연숙 논설위원
  • 이런 책 어때요 / 고려 무인 이야기 상·하권

    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펴냄 고려시대 최충헌·최이·최항·최의로 이어진 최씨 일가 4대 62년간의 무인집권 안정기를 다룬 대중역사서.저자는 ‘최씨왕조’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도입해 최씨 일가의 창업과 수성,통치공학을 살펴본다.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진 무인정권은 확고한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극심한 권력투쟁과 잦은 정권교체는 그런 허약성을 드러냈다.하지만 최씨 정권은 최충헌의 직계자손들이 통치권을 세습했을 정도로 강고했다.‘왕권 위 통치권’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최씨왕조’란 표현은 이해할 만하다.상권 1만 2000원,하권 1만 1000원.
  • [씨줄날줄] ‘여인천하’

    여성이 한 국가의 최고 권좌를 차지한 경우를 우리 언론은 곧잘 ‘여인천하’라고 표현한다.지난 2001년 스리랑카에 이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여성 대통령이 잇달아 탄생하자 아시아가 왜 ‘여인천하’가 됐는지를 분석한 기사들이 여럿 나왔다.이번에는 핀란드가 연정 구성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나란히 여성이 맡게 된 사실을 놓고 ‘여인천하’를 열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여인천하’는 조선 중종기의 궁중비화를 그린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로 최근까지도 동명의 TV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왕의 ‘은총’과 후계 구도를 놓고 여인들이 벌이는 암투는 극적 흥미가 만점이다.그러나 여기에서 묘사되는 ‘여인천하’는 전근대적인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음모와 술수,사악함이 넘쳐나는 불의의 공간이다.또한 ‘여인’은 왕이나 왕자,다시 말하면 오직 남성을 통해서만 야심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제2의 성’일 뿐이다.이런 맥락에서 봉건적 냄새가 가득한 ‘여인천하’란 호명은 당사국,또는 ‘여인’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겐 결코 달가운것이 못된다. 아직 여성 국가 수반을 가진 여러 나라들이 전근대적 자취를 갖고 있기는 하다.왕의 딸이자 후계자의 계모로서 왕권을 대리하다 마침내 왕의 지위를 꿰어 찬 이집트의 하쳅수트 여왕은 여성 권력 획득의 고전적 모델이지만 인도네시아,필리핀,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현역 여성 국가 수반들이 모두 부모의 후광을 업고 정권을 잡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핀란드,뉴질랜드 등은 여성의 참정권과 복지 등이 세계 최고수준에 오르고 있는 명실상부한 선진 국가로서 여성 국가 원수의 출현은 필연에 가깝다.벌써 두번째 여성 총리를 내고 있는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실현했고 핀란드는 1906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공직 진출을 인정한 국가다.뉴질랜드는 19명의 장관중 여성이 8명,여성 시의원의 비율은 47.5%에 이르고 핀란드는 아직 내각 구성이 안 됐지만 기존 각료 중 40%,국회의원 중 37%가 여성이라는 평등 환경을 실현해 내고 있다. ‘여인천하’란 말엔 정상이 아닌 기이함의 시각이 담겨 있다.‘남성천하’적 시각으로 ‘여인천하’를 들여다보기보다 여성 정치할당제 등 사회의 인간화를 실현한 그들의 ‘노하우’를 연구분석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내고장 바로 알기’ 區 프로그램 봇물

    자치구들이 ‘내 고장 바로 알기’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용산구는 관내에 연고를 둔 애국선열들의 어록 게시판을 오는 21일쯤 버스정류장에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전문가들이 동참하는 선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대상 선열은 모두 10여명으로 정류장 27곳에 이들의 어록이 등장,오가는 시민들의 가슴에 희생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에는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되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여야 한다.”는 내용.이봉창 의사 어록에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고자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로 왔다.”는 글이 실린다. 중대부속병원 앞,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입구 등에 가로 90㎝,세로 150㎝ 크기로 설치될 게시판에는 사진과 인물소개 안내문도 곁들인다. 강동구는 현재 구에 편입된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출신으로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을 다진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과 백제역사 재조명사업을 펼치고 있다.최근 신익희 선생의 아동 전기(傳記) 발간작업을 마치고 관내 각급학교와 청소년 시설에 1000부를 나눠줬다.오는 6월에는 천호동에 해공문화체육센터를 개관한다.‘해공축제’와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백제문화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김충환 구청장이 “고구려 동명왕릉(평양시 강동군)과 신라 박혁거세왕의 능(경주)은 있는데 백제의 도읍지인 옛 하남위례성 주변엔 이에 걸맞은 능이 없어 역사의 한 축을 잃는 결과가 됐다.”고 지적한 뒤 불이 붙었다. 이에 따라 ‘온조대왕 기념사업’에 올해 최대의 역점을 두고 세종대 교수진에게 사당 건립을 위한 규모 및 형태,지리적 위치 선정을 의뢰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부지는 암사동 선사주거지 건너편,또는 하일동 능골이 유력하다. 동작구는 관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달 27일까지 상반기 문화재 탐방교실을 운영한다.벌써 500여명이 신청해왔다.조선조 태종의 맏아들로 세종에게 왕권을 내준 비운의 왕자 양녕대군의 묘가 있는 상도4동 ‘지덕사’와 노량진1동 사육신묘 등 유적 7곳을 도는 코스다.동양중 인근 ‘할딱거리’(고갯마루가 가파르기 때문에 오르려면 숨이 가빠진다고 해서 붙인 별명) 등 각 동네의 옛 지명을 소개하는 140쪽짜리 소책자도 만들어 배포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무너진 후세인 / 終戰수순과 과제 / 친미過政 세워 反美 달래기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바그다드가 함락됨으로써 미군은 단기간에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그러나 전쟁을 끝내는 것 못지 않게 중동지역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일궈내야 하는 문제는 향후 미국이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이다. 전쟁의 명분을 싸고 시작된 국제사회의 알력과 반목은 이라크 복구사업의 이권을 둘러싼 ‘후유증’으로 재현될 수 있다.미군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랍권은 여전히 ‘침략군’으로 본다.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게 오히려 아랍권에서는 반미 정서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후세인과 생화학무기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은 전쟁 너머로 보다 큰 ‘산’에 직면해 있다.이는 중동권뿐 아니라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의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찰라비의장 ‘유대 3인방'이 지원 후세인 정권의 공백을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메우느냐가 일단 급선무로 떠올랐다.약탈 등 치안부재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도체제의 정부가 필요하다.미국은 이를 위해 이라크 전역의 망명·반체제 인사들이 참석하는 일련의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친미 정권을 내세우려 한다는 점이다.특히 아랍권이 가장 우려하는 ‘친(親) 이스라엘’ 정권의 출범이다.런던에 근거지를 둔 이라크 국민회의(INC)는 미국 매파 가운데 ‘유대 3인방’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정책차관,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 등이다. 특히 펄 전 위원장은 INC 지도자인 아흐마드 찰라비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석유개발권을 미국에 넘기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적극 지지해 온것으로 전해졌다. 석유개발회사인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은 찰라비의 고향인 나시리야에서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내부 반발로 취소하는 등 석연찮은 면을 드러냈다. 이라크내 찰라비의 인지도가 낮고 부정과 치부로 얼룩진 전력 때문에 자칫 이라크 정파간 분열만 조장시킬 수 있다.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의 선례를 따라 유엔이 중심이 돼 과도정부를 출범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지원을받는 반체제 인사들이 난립할 경우 이라크의 민주화는 요원할 수 있다. ●아랍권 반미정서 치유 최우선 과제 미국이 이라크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믿는 아랍 국가들은 거의 없다.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제사회가 이라크의 석유 장악과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가 전쟁의 실질적 이유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 등 주변 왕권체제의 아랍국가들에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이라크 북한 등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란은 ‘민주정권’이라는 역풍을 우려한다. 무엇보다도 미군이 안보상의 이유로 장기간 군정을 실시할 경우 이슬람권에 대한 기독교 세력의 침략으로 비춰질 수 있다. ●부시 戰後 재건 유엔역할 강조 미국이 이라크의 유전을 노린 게 아니라면 향후 전후 복구 사업을 독식할 필요는 없다.전쟁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프랑스 등 반전국가를 이라크 재건에서 제외시키는 것 역시 미국의 속셈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감정 때문에 국제사회의 질서를 도외시하겠다는 의도일수밖에 없다.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전후 재건에 유엔의 ‘결정적 역할’을 강조했다.그러나 구체적인 내역은 밝히지 않아 정치·외교적 역할에서 미국의 주도권까지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미국이 단기적으로는 전비 분담을 위해 유엔의 틀에서 움직이겠지만 실속을 챙긴 뒤 장기적으로 유엔의 기능을 미국의 뜻에 맞게 개편할 수도 있다.이 경우 국제사회는 2차 대전이후 최대의 외교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mip@
  • [씨줄날줄]개국 공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잡아먹힌다(토사구팽·兎死狗烹).’ 100만 대군을 수족처럼 부렸던 한나라 명장 한신(韓信)이 천하 통일 후 여후(呂后)의 계략에 빠져 처형된 사례를 일컫는 고사다.한신은 처형 직전 ‘공은 세우기는 어려우나 무너지기는 쉬운 법’이라며 천하를 3등분해 하나를 차지하도록 권유했던 세객(說客)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 반면 장량(張良)은 ‘세치의 혀로 제왕의 군사(軍師)가 되어 열후의 반열에 올랐으니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느냐.선계(仙界)에서 여생을 보낼까 한다.’며 논공행상을 마다하고 관직을 사임했다.월왕 구천(句踐)을 섬긴 범여(范^^)는 위업을 성취한 후 권력에서 멀어짐으로써 천수를 누렸지만 자리에 집착했던 문종(文種)은 결국 반역의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던 일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직후 재산공개 파문에 휩싸여 오명을 쓴 채 정치권을 떠나야 했던 한 원로 정치인도 뒤늦게 한신과 장량의 고사를 떠올리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중국의 제도를 모방해 공신에게 녹공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제도적으로 갖춰진 것은 고려 태조 왕건 때다.개국에 공을세운 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돼 상이 하사됐다.공신당의 벽에 화상이 보관된 1등,2등 공신은 훈전(勳田)이 세습됐을 뿐 아니라 자자손손 관직에 등용됐다.조선조에서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개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을 비롯해 영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28종의 공신이 배출됐다.하지만 광해조에 책봉된 4차례의 공신이 인조 반정 이후 삭제되는 등 권력투쟁의 결과에 따라 첨삭도 적지 않았다. 개국공신들의 명암은 몇해전 방영된 TV사극물 ‘용의 눈물’이나 지금 방영 중인 ‘제국의 아침’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왕권과 신권의 다툼에서 신권의 편에 섰던 공신들은 훗날 역신으로 몰려 참화를 면치 못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자천,타천으로 ‘노당’에 속하는 인물들이 급부상하고 있다.조선조의 기준에 따르면 정국(靖國)공신쯤 된다고 하겠다.‘토사구팽’까지는 아니더라도 ‘권력은칼 끝에 묻은 꿀을 빠는 것과 같다.’고 했던 옛 성현의 말씀을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
  • 일요영화/왕의춤 外

    ◆왕의 춤(KBS1오후 11시40분) ‘파리넬리’의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2000년작.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음악과 희곡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했던 루이 14세를 소재로 한 영화다. 17세기의 프랑스,14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브누아 마지멜)는 이탈리아 출신의 왕실악단 지휘자 륄리(보리스 테랄)의 무곡에 매료된다.륄리와 왕실극단 연출자 몰리에르(체키 카리요)도 ‘태양왕’ 루이 14세의절대권력과 위엄을 드러내는 음악으로 총애에 보답한다.그러나 이들은 지나치게 신랄한 작품들로 귀족과 성직자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루이 14세는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게 등을 돌린다. ◆타인의 도시(EBS 오후 2시) ‘데드 위시’의 마이클 위너 감독의 67년작.60년대 후반 특유의 현란한 옷이며 떠들썩한 파티로 표현되는 시대적 역동성과,공립학교 등으로 대변되는 삭막한 분위기가 잘 대비된다.‘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가 출연하고,올리버 리드,캐럴 화이트 등 60년대 스타들이대거 등장한다.성공과 행복 뒤의 공허함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광고회사 중역 앤드루 퀸트(올리버 리드)는 작가가 되고 싶어 잡지사에 취직한다.퀸트는 그곳에서 조지아나(캐럴 화이트),조시(마리안 페이스풀) 등여인들과 전처(웬디 크레이그)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MBC 밤 12시50분) 서윤모 감독의 91년작.최수종,하희라주연.라디오 프로 ‘별이 빛나는 밤에’ 청취자들이 보내온 편지 내용을 집약해 만들었다. 전투경찰 진호는 어머니의 탈상을 위해 영남에게 4시간 동안만 대신 전투경찰이 돼달라고 부탁한다.영남은 시위진압에 나섰다가 돌에 맞아 실명하는데…. 채수범기자 lokavid@
  • KBS ‘장희빈’ 띄우기 빈축

    KBS 정통역사 다큐 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KBS1,토 오후8시)이 같은 방송사 드라마 ‘장희빈’(KBS2,수·목 오후9시50분) 띄우기에 동원됐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아닌 역사다큐 프로그램에서까지 드라마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다큐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항의다. ‘역사 스페셜’은 지난 23일 ‘장희빈은 재벌가의 딸이었다’편을 방송,조선왕조실록을 토대로 장희빈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최근 시작한 자사 드라마 ‘장희빈’이 기존의 선악 이분법을 탈피하고 제시한 색다른 시각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방송에서는 “장희빈은 중인에 해당되는 재벌가의 딸로 호구지책을 위해 궁녀가 된 것이 아니다.요부·악녀로 알려진 기존의 ‘장희빈’은 해방 후까지 우리 지식인 사회와 학계의 중심세력으로 작용했던,그의 반대파 서인들에의해 쓰여진 역사이며,시대흐름의 희생양”이라고 소개했다. 드라마도 역대 ‘장희빈’과 달리,서인과 대치하던 남인의 역모에 뒷돈을 대던 중인계급의 갑부 삼촌 장현의 몰락을 계기로 옥정(김혜수)이 궁녀가 될 것을 결심하는 것으로 묘사한다.‘장희빈은 재벌가의 딸이었다’는 다큐 제목은 극중 장희빈이 몸종까지 부리는 부잣집 딸로 나오는 부분과 일치한다. 다큐는 또 숙종이 당시 한없이 약해져 있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술을 발휘했다는 부분도 자세히 다뤘다.이 역시 드라마가 기존의 장희빈과 달리숙종을 기존의 ‘유약한 왕’이 아닌 ‘카리스마 강한 왕’으로 묘사하겠다는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이밖에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유인촌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도 빈축을샀다.유인촌은 장희빈(김혜수)을 궁녀로 입궐시키고,꾸준히 도와 남인의 훗일을 도모하는 동평군 역이다. 제작진은 “역사스페셜이 역사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것을 모토로 삼는 프로그램인 만큼 TV에서 방송되는 사극의 소재를 주제로 택한 것은 이상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역사스페셜’은 지난 2월에도 ‘고려 광종,제국의 아침을 열다’편을 통해 자사 드라마 ‘제국의 아침’ 북한 촬영기와 주인공 인터뷰 등을 방송,시청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 주현진기자 jhj@
  • 풍납토성 특별전 리뷰/ 꼼꼼히 보면 ‘잃어버린 王都’ 보여요

    풍납토성에서 발굴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97년부터다.발굴지역도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당연히 일부 지역의 한정된 출토유물만으로 풍납토성의 전모를 보여주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풍납토성’ 출토유물 특별전을 찾으려면 이렇듯 ‘관대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 좋다.특별전 깃발이 휘날리는 건물 밖 축제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시험공부를 하듯 집중하지 않으면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을 만큼 ‘어려운’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풍납토성 발굴의 의미는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 고대국가의 성립시기를 크게 앞당기는 바탕이 됐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폭 43m,높이 11m의 성벽을 3.5㎞나 쌓았다면 왕권에 해당하는 절대권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특별전에 ‘잃어버린 왕도(王都)를 찾아서’라는 부제를 단 것을 보면 준비한 사람들도 이 점을 부각하려고 애썼음이 분명하다.전시실에 들어서면 1925년 을축대홍수 뒤끝에 드러났다는 손잡이 달린 세발 그릇(초두)이 눈에 들어온다.중국 서진(265∼317) 때 것으로 추정된다니 한성백제가 대외교류에도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조금은 답답해진다.대부분의 공간을 지나칠 만큼 토기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마치 ‘신석기시대실’에 온 것같다.출토유물의 대부분이 토기인 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다. 그럼에도 ‘풍납토성의 의미’를 살리려는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초기백제 시대에는 왕궁이나 관청,사찰에만 기와를 썼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기와의 대량 출토 자체가 풍납토성 내부에 ‘특별한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왕궁에만 쓰였다는 벽돌(塼)과 역시 평범하지 않은 건축물을 떠받쳤을 정교한 10각 흙초석 조각도 있다.이미 문자생활이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흙벼루는 지식인과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존재를 무언으로 설명해준다. 유물만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는 ‘풍납토성의 과거와 현재' ‘주거지' ‘의례' ‘대외교류' 등 주제별로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다.그러나 패널에 담긴 설명은 일반 관람객 수준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말각방형(抹角方形) 주거지는…부석식 노지를 채용하고 있으며,경질무문토기 태토에 희미한 타날문을 시문한 심발형 토기…”라는 대목은 고고학과 출신이 아니라면 이해하기가 불가능할 듯하다.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비로소 의미가 다가오는 특별전이지만,입구에 걸린 두 장의 사진만큼은 충격적이다.1972년과 2002년에 각각 풍납토성을 찍은 항공사진이다.불과 30년전,집보다는 밭이 훨씬 많던 국가지정 사적 안쪽에 지금은 고층아파트를 비롯한 온갖 건축물들로 빈자리 없이 빽빽하다.20세기,그것도 종반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저질러진 일이다. 특별전은 지난달 29일 막을 열어 새달 8일까지 이어진다.(02)724-0144. 서동철기자 dcsuh@
  • 책/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프랑스사회 ‘촌철살인’ 비판

    18세기 초 프랑스 사회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한 루이 14세가 신의 대행자임을 자처한,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종교 또한 엄청난 권력체로서 만인 위에 군림했다.그런 삼엄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세상에 흩어진 지식을 집대성하려 한 ‘백과전서’의 정신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백과전서’의 집필을 주도적으로 이끈 백과전서파의 핵심사상은 계몽주의였고,몽테스키외는 바로 이 사상의 한복판에서 살면서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몽테스키외가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냥 넘겼을 리가 없다.1721년 출간된 ‘페르시아인의 편지’(몽테스키외 지음,이수지 옮김,다른세상펴냄)는 한마디로 촌철살인의 프랑스 사회비판서다. 법·군주·종교·인권·자유·개인·덕·정의 등 책에 드러난 몽테스키외의 언어들을 좇다보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었는지,국민이얼마나 권력자들의 우롱에 찬 행태에 휘둘리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책은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하렘을 소유한 우스벡을 주축으로 그의 친구들,하렘에 있는 처첩들과 관리인들,그리고 종교인들이 주고받은 총 161통의 편지로 구성돼 있다.편지들을 읽어가다 보면 현재의 모든 제도적 장치나 이데올로기를 국민 스스로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무지한 채로 있다가는 어느 사이인가 자기도 모르게 당하고 만다는 것,정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는 몽테스키외의 외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간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적절치 않게 가혹한 형벌은 오히려 반란을 부추긴다는 주장이나,부패한 절차로 임용된 관리는 본전을 뽑으려고 마치 점령자처럼 마을을 약탈하여 황폐화한다는 것 등은 읽는 이에게 사색에 잠기게 하는 그 무언가를 던져준다. “가장 완벽한 정부는 작은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정부인 것 같다.다시 말해 국민의 성향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을 빌려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완전한 거지.”“국민이 형벌이 좀 가혹하다고 해서 법에 더 복종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형벌이 가벼운 나라 국민은 형벌이 포악하고 끔찍한 나라 국민만큼이나 형벌을 두려워하는 법이거든.”“인간은 덕성을 지키기 위해 태어났으며 정의는 인간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인간 고유의 특성이네.” 비록 체계적으로 몽테스키외 자신의 의견을 저술한 사상서는 아니지만 오히려 명료한 사상서보다도 더 뚜렷하게 당시의 시대정신,즉 계몽의 모티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책에서 그린 인물상들과 권력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우리 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사회의 병든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1만4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강현숙 동국대교수 학술 논문/高塚 고구려 왕권성장따라 변화 피정복민 동화에 200년 걸려

    지배자의 권력을 과시하듯 거대한 규모로 축조된 봉분을 흔히 고총(高塚)이라고 부른다.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런 무덤들이 많이 나타났다. ‘동아시아 대형고분의 출현과 사회변동’을 주제로 지난 14일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제11회 문화재연구 국제학술대회는 바로 이 고총을 다룬 것이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이 학술대회에선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및 중국·일본·러시아의 대형고분을 다룬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이 가운데 강현숙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고구려 고총고분의 등장과 정치발전’은 강력한 왕권의 성장과 왕을 정점으로 한 일원적 지배체제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을 고총의 변화양상으로 설명하여 눈길을 끌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 왕의 힘이 새로 영토로 편입된 지역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였고,고구려 지배자들과 피정복자들이 동류의식을 가진 것은 6세기 들어서였으니 200년이나 걸린 셈이다. 4세기 고구려 무덤은 크게 돌방돌무지무덤(석실적석총)과 돌방무덤(석실봉토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그 분포 범위는 확대된 영역을 나타낸다.확대된 고구려 영역에서 중앙과 같은 묘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정복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왕의 권위가 정복지에 직접 미쳤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3세기대까지 고구려 중심묘제이던 구덩식 돌덧널돌무지무덤(수혈식 석곽적석총)은 압록강 중하류 지역 양안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반면 새로 편입된 지역에선 확인되지 않는다.따라서 고총고분의 등장은 3세기와는 달리 왕의 힘이 확대된 고구려 전역에 직접 미쳤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고총고분의 전개과정은 또 고구려 원민과 새로 복속·편입된 다른 종족 사이의 동류의식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5세기대에 들어서면서 초대형 돌방돌무지무덤과 돌방벽화무덤(석실봉토벽화분)은 서로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고,둘의 결합은 5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늘어나게 된다.돌방벽화무덤에서도 등장기에 보이던 중국 관련 요소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시작하고 초대형 돌방돌무지무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6세기에 접어들면 벽화가 있느냐 없느냐의 구분만 있을 뿐 무덤의 겉모습에 따른 구분은 없어진다.이런 무덤은 왕릉을 포함하여 전역에서만 들어지는데,이는 고구려 전역에 대한 왕의 일원적 지배가 완성된 결과로 고구려민이라는 동류의식이 완성되었음을 시사한다고 강 교수는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 토요영화/ 브레이브 하트 등

    ◆브레이브 하트(KBS2 오후 10시)= 13세기 말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한다.월레스는 처형된 애인에 대한 복수심과 폭정에 맞서 사람들을 모아 저항군을 결성한다.실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결연히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제작·감독·주연을 도맡은 멜 깁슨에게 96년 오스카 감독·작품상을 안겨준 작품. 소피 마르소도 성숙된 여인으로 얼굴을 비친다. ◆야수인간(EBS 오후 10시)=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게임의 법칙’의 감독 장 르누아르의 1938년작.그가 주로 다룬 사회의 부패와 계급의 허상이 인간관계 속에 잘 녹아든 작품이다.남편의 일자리를 지키고자 그 상사와 정을 통하고,질투심에 눈이 먼 남편은 상사를 죽이고,비밀을 아는 다른 남자와 다시 불륜을 저지르는 과정을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본다.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에밀 졸라 원작을 영화화. ◆인디아나 존스(MBC 오후 11시10분)=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가운데 두번째 작품.신비의 돌을 찾는 고고학자 인디의 모험이 정신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선악의 구별이 명확하고 비현실적인 내용 탓에 평단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한 영화.스필버그 감독의 부인이된 케이트 캡쇼의 춤 장면도 감상할 수 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8)군사교육 지원의 전모

    ***“6000精兵 양성” 러 군사교관단 2차례 파견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閔泳煥) 특명전권공사는 1896년 6월13일 외무장관 로바노프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민영환 특사는 러시아군대 파견,군사교관단 파견,차관제공,재정고문 초빙,전신선가설 등 5가지 요청 사항을 제시했다.이중 러시아군 및 군사교관단 파견요청에 대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답은 다음과 같다. 고종의 호위를 위해 러시아 군대를 조선에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동안 러시아 해군이 호위할 것이다.공사관에 체류하고 싶은 만큼 체류할 수 있다.(로바노프).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왕을 호위할 군사교관 200명을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군사교관은 파견할 것이나 빠른 시일안에는 곤란하다.(로바노프) 당시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아관파천(1896년2월11일∼1897년 2월20일)기간중이었고 러시아가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고종은 자신의안위를 보호해줄믿을 만한 군대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러시아군이 그같은 역할을해줄 것으로 여겼다.고종은 일본인 특히 일본 군사고문단의 한반도 진출을 꺼려했다.일본 군사고문단 대신 러시아 군사교관단을 초청하고 싶었다.하지만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러시아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열강을 동원한 일본과 친일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러시아로서도 극동주둔 군사력의 대(對)일본 열세를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군대 파견의 전제조건이자 러시아의 확고한 한반도 지배의사로 해석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896년 2월23일 일본 군사무관 보각 대령은 참모본부 학술위원회에 보낸 전문에서 “조선의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요청에 동의하면 일본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이 경우 일본 정계에서 조선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협력을 하려는 분위기를 파국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일본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 군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팽배했다.이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파견결정을 차일피일미뤘고 주한 베베르 대리공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결국 군사고문단의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생색내기용’파견이 이뤄졌다. 조선의 불안한 정세로 보아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문제를 고종과 협의하기는아직 시기상조이다.(1896년 3월1일 로바노프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서울주재 공사대리에게) 가능하면 신속하게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그것이 왕권강화,질서회복 그리고일본견제책의 유일한 수단이다.(같은해 3월2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문)국방부에서 검토한 결과 고종의 시위대는 러시아인 장교를 지휘관으로 한인 1개 대대로 구성하고 교관은 위관급 5명,상사 4명,하사관 10명과 소총 1000정이 적합하다고 한다.(1896년 4월28일 외무장관이 베베르에게).고종은 무기와 교관단 파견결정에 감사를 표했다.조선군은 4000명이기 때문에 왕의 시위대외에 서서히 다른 부대의 교육도 위탁하고자 한다.(같은해 같은달 3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1896년 11월22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민영환 특사와 청국주재 군사무관이던푸차타 대령 사이에 제1차 군사교관단초청 계약서가 체결됐다.계약에 따르면 초청기간은 1년이며,인원은 장교 2명,하사관 10명,군의관 1명,악장 1명 등 모두 14명으로 돼있다.조선측은 장교급에겐 매월 150엔,사병에게 20엔의 월급과 숙소를 제공키로 했다.제물포까지의 여비와 부임수당 등도 별도로 부담하는 조건이었다.이들 중악장을 제외한 13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레마쉬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했다. 곡절끝에 13명의 제1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은 1896년 10월24일 조선땅에 들어왔다.고종이 요청했던 200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숫자였지만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의 의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는 군사교관단의 파견과 함께 푸차타 대령을 군사교관단장에 임명했다.또 1896년 1월 동부 시베리아 제2보병여단 소속 스트렐비스키 중령을 서울주재 러시아공사관 군사무관(軍事武官)으로 임명했다.1895년 6월17일 아무르군관구 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이제 서울에도 별도의 상주 군사무관이 필요하다.앞으로극동의분쟁에서 조선의 무력이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스트렐비스키 무관은 1902년 라벤 중령과 교체될 때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조선은 청·일전쟁(1894∼1895)이전까지는 지리적 특성으로 러시아 우수리지방의중요한 국경을 보호해 주는 방벽구실을 했다.현재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앞으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그러나 조선의 최근 역사를 분석해 볼 때 아마도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정치적 욕망이 많은 열강,특히 일본의 세력각축장으로 변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의 1897년 수기)조선은 6000명의 상비군을 보유해야 국내 질서가 안정될 것이다.고종은 유럽식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3000명의 정병(精兵)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6000명 정병양성은 조선의 영토나 국민수로 보아 외국의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조선과 병력양성문제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과 협의를 해야 할것이다.군부에 만연돼 있는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예산집행이 이뤄져야 한다.(1897년 6월17일 푸차타의 비밀보고서) 푸차타의 이같은 조선군대 증강계획안에 대해 일본은 거세게 항의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증강계획을 포기하든지 일본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전쟁은 러시아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 계획에 착수하면 돌이킬수 없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제1차 군사교관단의 대한제국군 군사조련은 일단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1897년6월9일 고종과 각부 대신 그리고 주한외교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선군 의장대 사열식은 참석자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대한제국군중 러시아교관단 산하부대로 들어오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당시 서울에는 대한제국군 5개 대대병력 4000여명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30대의 젊은 한국인 대대장이 부대에 출근할 때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감행세’를 하기 일쑤였다.병력중 많은 숫자가 ‘유령 병력’이었다.식비를 횡령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린 탓이다.대부분이 군인 신분을 창피하게 여겨 밖에 나갈 때는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교관단은 이중 1600여명을 선발해 2개 대대로 조직했다.이들은 궁정을 경비하는 시위대 요원이었다.따라서 훈련과목에는 궁중 예절과 궁중 호칭법 등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정부는 대한제국 군대의 개편을 포함,재정지원을 제공하고 제2차 군사교관단을 또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장교 3명,하사관 10명,사관학교 교관·병기병·군악대지휘자 각 1명,군악대원 3명,위생병 2명 등 총 21명이다.(1897년 5월15일 베베르가 무라비요프 외무장관에게) 1차 군사교관단의 성공에 고무된 러시아가 제2차 군사교관단을 파견했다.2차 교관단의 장교와 하사관 등 13명은 아무르군관구에서 차출됐으며 나머지 기능직은 예비역중에서 선발됐다.하지만 독립협회의 활동과 친일파의 득세 등으로 인해 대한제국내 정세는 급격하게 반(反)러감정이 확산되고 있었다.급기야 1897년 8월14일 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이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알렉세예프 중위에게 교관단 통솔권이 위임됐다.푸차타 대령의 야심찬 조선군 증강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후 소장으로 진급,아무르지사로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최근 여러 보고서로 미뤄볼 때 대한제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모든 당파가 러시아에 적대적이며 친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고종황제 역시 매우 의심스럽게 되었다.이러한 상황 때문에 러시아가 대한제국 국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니콜라이 황제께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정부가 향후 러시아의 지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지 문의하라고 하셨다.대한제국의 요청으로 파견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이 필요치 않다면 러시아는 마땅히 소환하겠다.(1898년 3월3일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에게)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적인 회답을 보냈다.현재 러시아의 군사 및 재정고문(알렉세예프)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러시아는 모든 외국인 고문의 파면을 요청하고 최근 통역관(김홍륙)살해 음모자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대한제국 정부가 거부하면 공사관 기를 내리고 원산을 점령해야 한다.(같은해 3월12일 스페이예르의 회신) 평소 거칠고 직선적인 언사 때문에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가 10년동안 한국에서 닦아놓은 외교적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스페이예르는 ‘공사관철수 후 한반도 북부 무력 점령’이라는 극단 처방을 내놓았다.니콜라이 2세는 1898년 5월4일 대한제국에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의 철수를 허락했다.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철수한 이후 대한제국군의 조직은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다.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20명의 한국인 장교들이 교관이 되었다.1901년 1월 당시 대한제국군은 장교 372명에 사병 1만 5200명이었고 군대예산은 360만엔이었다. 1,2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과 철수시기를 전후해 일본과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모스크바 프로토콜)체결,1898년 로젠-니시협정(러·일특별협정) 등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정을 맺었다.러시아가 일본과 일련의 협정체결과 함께 군사교관단을 철수시킨 것은 대한제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사실상 접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종은 이후 국내외 압력에 밀려 러시아교관단이 철수하도록 등을 떼민 자신의 ‘우둔한’결정을 한없이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눈엣가시’러시아군이 떠나자 일본의 한반도 점령 프로젝트 추진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노주석기자 joo@ ■'거문도 사건' 러 대응 1885년 4월15일부터 23개월 동안 영국의 극동함대가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를 무단 점령한 사건은 러시아의 태평양진출정책을 경계한 열강,특히 영국의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 사건이었다. 새로 발굴된 러시아문서보관소의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러시아 군부는 거문도 점령 당일 외무부에 급보를 띄워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서울점령 등 강공책을 제시하는 등 급박하게 움직였다.하지만 영국의 무력시위 앞에 러시아는 다소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이 과정에서 영국과 청의 비밀거래설도 제기돼 주목된다. 블라디보스토크호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귀국하는 길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거문도를 방문한다.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행위는 러시아에 적대적인 것이다.러시아의 태평양함대사령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영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도록항의해야 한다.영국과의 협상에서 카스피해 동부지역과 조선이나 일본의 항구를 점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야 한다.(1885년 4월15일 해군부관리관이 기르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문서). 만일 영국이 거문도를 합병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순양함대는 동해에서완전히 군사적으로 봉쇄당하게 된다.또한 일본군이나 청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게 되면 러시아군이 그들을 몰아내고 아예 서울을 점령해야 한다. (1885년 4월1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코르프가 황제의 시종무관장에게 띄운 암호전문). 러시아는 정보라인을 총동원,영국의 점령의도와 군사력 등을 파악했다.거문도점령 9일후인 4월23일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코스틸예프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는“거문도에는 1척의 영국전함이외에 2척의 소형함정이 있다.오늘 식료품을 실은 기선이 거문도로 출발했다.그곳에는 상륙병 50명이 있으며 나가사키에 있는 영국군함에는 200명의 수병이 승선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또 베이징주재 러시아 공사 파포프는 1885년 9월20일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은 영국의 거문도점령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그는 종속국인 조선의 보호를 의무로 여기고 있다.청국의 거문도철수항의를 영국이 수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거문도 때문에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면 영국은 거문도를 떠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영국의 거문도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결과로 분석된다.”라고정확하게 분석했다.청국주재 군사무관 시누에르는 1885년 11월17일 참모본부학술위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확증은 없지만 청과 영국의 비밀거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홍장의 한 측근은 나에게 ‘영국은 러시아와 전쟁시 거문도를 요새로 사용하고 전쟁후에는 시설물 일체를 청국에 팔기로 했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해 영국과 청의 거래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결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중재에 의해러시아는 한국영토의 어느 지점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했고 영국함대는 1887년 2월27일 자신들이 헤밀턴섬이라고 이름붙인 거문도를 떠났다. 노주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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