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완전 복종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4
  • 윤창중 낙마, 朴대통령 ‘나 홀로 수첩인사’ 탓… 시스템 개혁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1호 인사’인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 파문으로 낙마한 것은 박 대통령의 ‘불통 수첩인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윤 대변인의 인선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음에도 박 대통령이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어 청와대 대변인으로까지 중용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인사’가 빚은 참사라는 비판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10일 “새정부 출범 초 장관 등 정부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컸다”면서 “북한발 안보위기 속에 미국방문 등으로 인해 국정운영에 대한 저평가에서 힘들게 벗어났는데 윤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부정적 인식이 다시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당장 민주당 등 야당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전 교수도 “대변인이 국정을 망쳤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윤 대변인의 낙마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완전히 망친 것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변인의 임명을 보면서 인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서 “방송에서도 술자리에서나 할 정도의 부적절한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실의 얼굴인 대변인으로서도 기자들과의 소통 등에서도 역대 최악”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는 인사들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후보가 99%를 담당했다”고 할 정도로 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혼자 힘으로 당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때문에 박 대통령 주변에는 인사 등 국정현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인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의 인사는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측근하고만 결정하는 방식이라서 혼란이 초래된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 주변에는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복종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가 앞으로의 대통령의 인사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 실장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권 초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인사권이 존중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앞으로는 잘못된 인사에 대한 반감이 더 강해질 것이고 이러면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기는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번 성추문 파문에 대한 해법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윤 대변인의 개인의 자질문제가 더 크다”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현재 과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믿고 쓰자며 임명했던 사람이 실책이나 과오를 했을 때 이를 교정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시스템이 앞으로 공직자들이 행동하는 데 규범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국제질서 속 좌절된 자력독립 ‘혁명의 러시아’를 희망 삼다

    ‘일요일 도착 예정. 만남에 필요한 조치 요망. 박철환.’ 죽산 조봉암(1899∼1959)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25년 6월 17일 모스크바로 보낸 전보다. 식민지 조선의 출판인이자 지식인이었던 27살의 조봉암은 왜 박철환(朴鐵丸)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모스크바로 갔던 것일까. 성균관대 임경석 사학과 교수가 최근 쓴 ‘모스크바 밀사’(푸른역사 펴냄)는 조봉암을 주인공으로 ‘1925~1926년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 경위와 여정을 담은 실화’다.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던 영역에 도전한 성과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한 자료까지 꼼꼼히 챙겼다. 일본 경찰의 추적과 이를 피하려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피 말리는 활동은 탐정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조봉암은 1925년 5월 말쯤 조선공산당의 전권대표 조동호의 보좌역이자 고려공산청년회의 대표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됐다. 박철환이란 가명은 ‘쇠로 만든 총알과 대포알’이란 뜻으로 조선의 혁명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깨뜨리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조봉암의 결심이 내포된 것이다. 조봉암의 모스크바 파견은 전보를 치기 2개월 전인 4월 17일의 조선공산당 창당과 관련 있다. 이날 서울 시내 황금정 1정목에 위치한 중국요리점 아서원에서는 인텔리풍의 청장년 19명이 모여 ‘제1차 당대표회 비밀결사’를 했다. 19명은 조선의 마르크스 혁명가 130명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19명 중 11명은 3·1만세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최소 9개월에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살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형기를 모두 합치면 20년가량 됐다. 임 교수가 “3·1만세운동은 조선사회주의 운동의 모태다. 이 운동이 없었으면 조선사회주의 운동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루 뒤인 4월 18일 밤 12시에는 박헌영(1900~1955)의 살림집이 있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표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조선공산당의 지도에 복종하며 국제공청에 가입할 것”을 결정했다. 1925년 4월 창당한 조선공산당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중심이 간도와 연해주, 만주, 러시아 등으로 망명했거나 이민해 활동하고 있던 해외 독립운동가에서 조선 내부로 들어왔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운동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임 교수는 판단했다. 조봉암처럼 1920년대 조선의 20~30대 젊은 지식인들은 사회주의 이론에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왜 그랬을까. 임 교수는 “3·1만세운동은 고종이 승하한 1919년 1월이 계기였지만, 시선을 넓히면 1919년 세계 1차대전이 끝난 뒤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을 서구 열강에 촉구하는 시위였다. 그런데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국제회의, 즉 파리강화회의(1919년 1월 18일)나 워싱턴회의(1921년 11월)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질서 안에서 조선의 독립은 완전히 좌절된다. 러일전쟁까지 이긴 일본과 싸워 조선이 자력으로 독립을 취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준 세력이 있으니 1917년 혁명으로 새롭게 태어난 러시아(소련)였다”고 했다. 파리강화회의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김규식(1881~1950)이, 워싱턴회의에는 이승만(875~1965)이 참가했지만, 외교적 성과는 없었다.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8년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발표했지만 1차대전 승전국에는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 강제 점령 문제는 묵인됐다. 이때 신성처럼 나타난 소련이 식민지로 신음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니, 절망을 뚫는 희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 교수는 ‘모스크바 밀사’가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정정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통설은 코민테른은 조선 문제의 의사결정에서 조선 대표자를 배제한 채 권위주의적으로 결정했고, 조선공산당이 코민테른에 종속적이었다는 주장들이다. 1925~26년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의 가입에 조건부 승인을 하는 ‘9월 결정서’를 내놓았다. 당 강령, 규약, 결정과 관련한 서류를 제시할 때까지 가입은 유보했지만, 조선공산당의 지위는 인정했고, 유학생 파견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노선으로 해방된 조선의 미래로 소비에트공화국을 제시하자 조봉암이 조선의 실정을 무시한 급진적이고 좌경적인 목표라고 지적하며 민주공화국 설립 안을 내놓았다. 또 1925년 조선공산당이 진행한 ‘반종교·반기독교운동’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는 1926년부터 실현됐다. ‘모스크바 밀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올바른 역사의 해석과 대중화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설립)와 함께 기획한 문고판형 한국사 시리즈 100권의 첫 간행물로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 책장’이란 시리즈의 1권은 ‘고려의 부곡인, 경제인으로 살다’(박종기 글), 2권은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여행’(전호태 글)이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고민하지 않는 사회, 사유하지 않는 사회와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입시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과 스펙 쌓기에 열 올리는 대학생, 연봉과 승진에 목을 매는 직장인들에게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시진핑 “군권이양 후진타오가 먼저 제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완전 퇴진’은 후 주석 스스로 원했던 것이라고 밝히며 당에 대한 군의 충성을 요구했다. 18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총서기는 16일 새지도부 출범 직후 주재한 첫 정치국 회의에 이어 열린 중앙군사위 확대회의에서 “후 주석은 스스로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더 이상 맡지 않겠다고 밝혔고, 당 중앙은 이 같은 후 주석의 뜻에 따른 것이다.”고 후 주석의 ‘완전 용퇴’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후주석의 (완전 은퇴)결정은 그가 당·정·군의 발전을 바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는 그가 마르크스주의 정치가이자 전략가로 넒은 도량과 멀리 내다보는 식견, 고상한 인품과 맑은 절개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며 후 주석의 통 큰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시 총서기는 군권(중앙군사위 주석직)이 후 주석으로부터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강조한 뒤 “추호의 동요 없이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 영도(지도)를 견지해야 한다.”며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군대가 당 중앙과 중앙군사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날 회의에 참석한 후 주석은 시진핑의 군 경력을 강조하며 그가 군권을 이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내세워 시 총서기에게 힘을 보태줬다. 후 주석은 “당 중앙이 시 동지를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정한 것은 매우 적합한 일로 그는 반드시 군을 잘 단결시키고 영도해 군사위 주석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잘 수행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시진핑시대 개막] 군부 충성맹세… 시진핑 권력인수 급물살

    중국 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권력 인수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와 병사, 무장경찰이 시 총서기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을 통해 16일 보도했다. 전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으로부터 권력의 핵심인 ‘군권’(중앙군사위 주석)을 물려받아 당과 군을 동시에 장악하게 된 시 총서기 쪽으로 군심(軍心)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망에 따르면 중앙군사위 산하의 총참모부, 총정치부, 총후근부, 총장비부 등 4총부는 토론회를 열고 새로 출범한 지도부가 모든 당, 군,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뛰어난 지도층이라며 “시 총서기의 지휘에 절대 복종해 당과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광저우(廣州)군구와 남해함대를 비롯한 주요 군구와 부대들도 토론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가 순조롭게 출범한 것은 당의 단결과 성숙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당 중앙과 중앙군사위, 시 총서기의 지휘에 절대 복종하고 충성하겠다.”고 맹세했다. 군의 이 같은 발 빠른 충성 맹세 등에 힘입어 시 총서기가 후 주석으로부터 국가주석직을 물려받아 당·정·군을 모두 장악하게 되는 내년 3월까지 권력 인수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후 주석은 전날 시 총서기를 비롯한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및 원로들과의 기념 촬영식장에서 “당, 군과 모든 인민이 시 총서기의 지도 아래 중국 특색 사회주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시 총서기도 “당과 인민 사업 계승을 위해 후진타오 동지가 솔선해 물러난 것은 숭고한 인품과 고상한 기풍, 맑은 절개를 보여준 것”이라며 후 주석의 ‘완전 퇴진’을 극찬했다. 기념 촬영에는 전현직 상무위원들뿐만 아니라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리루이환(李瑞環)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으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서울광장] 우리 군은 강해지고 있나/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 군은 강해지고 있나/임태순 논설위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읽다 로마병사의 병영생활이 나의 군생활과 너무나 비슷해 깜짝 놀랐다. 초병근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병사들에게 사역을 시키는 대목이었다. 로마군은 경계근무를 소홀히 해 적의 공격을 받자 문제의 병사를 2열 종대의 대열 속으로 걸어가게 해 동료들의 곤봉세례를 받아 죽게 했다. 군에서 들었던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근무에 소홀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이 새삼 기억났다. 로마군은 또 평시에 병사들을 그대로 놀려두지 않았다. 진지를 보수하고 외곽을 정비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다. 졸병 시절 달콤한 휴식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도 사역병 집합이었다. 최근 군에서 병영문화 개선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신세대 장병들의 취향에 맞추려면 병영에도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친구끼리 입대하고 희망하면 형제끼리 같은 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군에 대한 거부감·부정적 인식을 씻어내는 데 일조를 했다. 부모와 함께 입대하고 훈련소를 마치면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핵가족 시대의 추세와 보폭을 같이한다. 그러나 동기 내무반과 사역 금지 검토 등의 조치는 아무리 눈높이를 신세대에 맞춰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지금 일부 부대에선 내무반 공사가 한창이다. 고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동기끼리 자유롭게 내무반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범실시 결과 동기 내무반은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노출하고 있다. 선임병이 없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기 내무반에도 나이나 적응력, 완력 등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또 행군, 완전군장 등 선임병으로부터 군생활의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고 계급별 내무반에 비해 인내심,복종심도 훨씬 덜하다. 얼마 전에는 병사들을 사역의 부담에서 덜어주겠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대 보수, 환경 개선 등 사역은 민간에 맡기고 병사들은 훈련에만 전념토록 해 전투력을 증강시키겠다는 취지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방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 여건에서는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야전에선 부대원 스스로 각종 돌발상황에 대처하고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주둔지 주변의 진지를 보수하고 울타리나 배수구 등을 정비하는 것은 병사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협동심, 단결력도 길러지는 만큼 작업도 전투력의 중요한 요소다. 놀려주지 않기 위한 불요불급하고 과다한 사역은 정비해야겠지만 부대 유지·운영을 위한 사역까지 외부에 맡겨선 곤란하다. 장병들 대부분이 독자로 태어나 부모들의 사랑 속에 귀하게 자라온 현실을 감안하면 연성 병영문화는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자식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병영생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즉시 부대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요즘의 부모들이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들보다 더 센 것이 군부모라는 말도 나온다. 부모로서 자식의 안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너무 세진 군부모는 군을 위축시키고 있다. 지휘관들을 전투력 강화보다는 안전사고 없이, 말썽 없이 부대를 운영하도록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초급간부와 부사관들의 가벼운 처신도 군 특유의 견고한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들은 과거 같으면 병사들의 고충을 보듬어 주는 형님이고 어른이었지만 함부로 내뱉는 불평불만과 가벼운 언행으로 인해 간부와 병사 간의 가교 역할도 약해지고 있다. 군대는 첨단무기 등 화력의 우위가 중요하지만 정신력과 의지 또한 이에 못지않다. 무기를 정비하고 작동하는 것은 결국은 병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첨단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군기와 규율이 뒷받침된 병사들과 그러지 않은 병사들 사이에선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역과 계급사회에서 배우는 인내력, 협동심, 단결력 등의 덕목도 결코 소홀히 해선 안 된다. stslim@seoul.co.kr
  • “가슴도 없는 게” 성희롱 당한 女소방관, 도리어...

    “가슴도 없는 게” 성희롱 당한 女소방관, 도리어...

    “네가 예쁜 줄 아냐. 여자가 가슴도 없는 게.” 회식 자리에서 소방서장이 여성 소방관에게 한 발언이다. 5일 전남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소방서장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한 이모(30·여) 소방사가 지난달 29일 1년여 동안 몸담았던 소방직을 떠났다. 이씨는 2010년 11월 전남도소방본부 영광소방서 홍농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소방관 생활에 첫발을 내디뎠다. 각종 사건 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관 업무에 매료돼 간호직을 포기하고 구급대원 자격시험을 거쳐 소방직에 투신했다. 하지만 잘못된 조직 내 음주문화 때문에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지난해 1월 말 센터장의 권유로 참석한 소방서장과의 회식 자리가 문제였다. 소방서장이 권하는 폭탄주를 사양하자 성희롱 발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네가 못 마시면 어쩔 건데. 내 말 안 들으면 (다른 근무지로) 보내 버린다.” 등 견디기 힘든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첫 술자리 이후 소방서장이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술자리 참석을 강요했고 이씨가 이를 거부하자 명령 불복종이라며 “사표를 가지고 오라.”고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후 다른 119센터장으로부터도 술자리에 나올 것을 수차례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자 사표를 요구받는 등 시달리다 다른 지역으로 전보됐다. 그러다 소방서장의 성희롱 사실 등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주위의 시선 탓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겼고 결국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조직을 위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폄훼하는 소방 조직에 이제는 미련이 없다.”면서 “소방 조직이 사회적 존경을 받으려면 내부 변화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를 성희롱했던 소방서장은 지난해 11월 해임됐으며 술자리를 강요했던 센터장은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한편 소방방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선량한 소방직 공무원들의 분노를 전하기로 한 듯 “직장 내 성희롱, 추행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의 비판 글들이 올라와 있다. 무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36) 목졸려 살해된 시신, 라면박스만 없었어도… 범죄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1677년 네덜란드 헤이그. 판 데르 스픽은 자신의 집에 하숙했던 친구의 책상을 조심스레 포장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는 시신도 없는 텅 빈 관(棺)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참이었다. 친구의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던 중 도난당했다. ‘신을 모독한 불경스러운 자’라는 꼬리표가 시신 역시 편치 못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그 친구는 몇 주 전, 자신이 죽으면 책상을 암스테르담의 한 출판사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포장재에는 어떤 것도 적지 말고 세관에 내용물을 신고하지도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조심성 많은 친구의 도움 덕에 책상은 무사히 출판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티카’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곧 금서로 지정돼 압수되었다. 비록 익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글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던 것. 그 책의 저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였다. 베네딕투스가 불경한 자로 낙인 찍힌 것은 1656년, 그의 나이 겨우 24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종교재판을 피해 에스파냐에서 포르투갈로,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1632년에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이름은 ‘바뤼흐’. 이 말은 히브리어로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었다. ●불경한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니 당시 신생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유대인 상인들을 받아들여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공화국은 종교와 인종에 관용적이었던 만큼 한계 또한 분명히 규정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존의 신앙 이외에 이단적 교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 금지의 선을 넘어버렸다.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에 나가도…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부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 스피노자가 신성모독의 발언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유대인 공동체는 그의 파문을 결정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태어난 이후 발생한 14건의 파문 중 이와 같은 분노의 파문서는 없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책이나 가르침을 퍼뜨린 적 없는 청년이 받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저주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파문을 전후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요컨대 파문은 일종의 경고였던 셈. 그러나 스피노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 회유도, 격리시키겠다는 협박도, 암살 기도의 공포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부모님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상속을 거부했고,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고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이 파문 사건에 대해 어떤 억울한 심정도, 항변도 토로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열려 있는 길로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련다.” 신성모독죄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 여겼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신이란 말 그대로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다. 그런 존재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요컨대 신이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 그 자체며, 세상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 인간이 성취해야 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 즉 자유로운 삶이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로운 삶을 일구는 것이야말로 구원이었다. 하지만 기존 교회 속의 신은 복종을 원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러한 신은 인간을 자유가 아닌 예속 상태에 두기 위한 상상의 작품이었다. 교회는 응답하고, 심판하고, 처벌하는 신, 즉 인간화된 신을 꾸며냈다. 스피노자에게 공화국이란 종교의 예속과 반대되는 자유를 의미했다. 전제군주와 결탁한 교회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유대인들이 정착했던 자유의 국가. 바로 이곳 네덜란드가 그러한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그 공화국은 1669년 스피노자의 친구인 쿠르바흐에 대한 종교적 탄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제주의 최고의 비결이자 그것을 떠받치는 큰 기둥은 사람들을 계속 기만의 상태에 처해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억압될 수밖에 없게끔 공포를 조장하고 그것을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그것이 구원인 양 오히려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전제주의를 이끄는 원리가 공포라면, 공화국의 존립 근거는 무엇보다도 자유에 있었다. 그렇다면 쿠르바흐에 대한 탄압을 공모한 공화국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려버린 셈이었다. 자유에 대한 억압, 그것은 곧 공화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우려는 2년 후 현실로 드러난다. ●자유인, 그 불온한 자 1672년 프랑스의 침공에 네덜란드는 가까스로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죽음과 기근이 만연했다. 이 절망의 틈새를 군주제를 원했던 오란예 집안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위기의 원인을 공화국의 탓으로 돌렸다. 폭도로 변한 군중은 공화국의 지도자인 데 비트 형제를 거리로 끌어내 처참하게 살해하고, 살점은 구워 먹거나 기념품으로 팔았다. 비통함에 빠진 스피노자는 ‘극한의 야만인들’이란 격문을 들고 거리로 나서려 했지만 하숙집 주인이자 친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완강히 스피노자를 막아 세웠다. 왜 군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공화국을 거부하고 전제주의라는 예속을 향해 달려가는가. 스피노자는 공화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알았다. 자유는 국가가 ‘보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구성’하지 않는 한, 어떤 국가 체제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스피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에티카’에 적어내려 간다.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하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산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권력은 오로지 수동적 신체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돈과 명예, 신의 이름으로 쾌락과 절망, 희망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우리에게 복종을 이끌어냈다. 지배자들에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작동할 수 없는 능동적 신체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에티카’는 단지 자유인이라는 자기 구원을 위해 능동적 신체를 구성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지배자들에게는 불온한 것이었다. ●자유를 생산하는 앎과 삶 스피노자는 1676년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 대학이란 기존의 법과 종교의 계율 위에서 작동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대학은 철학함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자유의 철학을 생산하기에도 부적합한 곳이었다. 대학교수직을 거절한 스피노자는 하숙집 책상 위를 자기의 공부 현장으로 삼았다.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와 만남은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는 대학 강당 대신 헤이그의 하숙집에서 조용히,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자유인의 삶을 만드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돈, 명예나 신, 그 무언가에 의해 미래에 찾아올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 미래로 유예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자유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시신마저 사라진 뒤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바지 두 벌, 셔츠 일곱 장, 손수건 다섯 장뿐이었다. 예속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구원의 열정. 그리고 자유인의 소박하지만 정갈했던 삶. 바로 이것이 혁명을 외친 적 없었던 스피노자를 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남산 강학원 연구원 신근영
  • 中공무원, 지하 비밀감옥에 성노예 6명 감금

    30대 중국 공무원이 평범한 집을 개조해 은밀한 지하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여성 6명을 가둬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중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의 영문뉴스 블로그 차이나 허시에 따르면 허난성 뤄양에 사는 공무원 리 하오(34)가 길게는 무려 2년간 여성 6명을 감금하고 피해 여성 가운데 2명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2일(현지시간) 경찰에 체포됐다. 소방관 출신으로 현재 뤄양시 품질 및 기술관리국에 소속된 리 하오는 직장에서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명랑한 성격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평범하고 모범적인 가장이라고 알려졌던 리 하오에게는 사실 무시무시한 비밀이 존재했다. 2년 전 리 하오는 집 근처 한 아파트 지하실을 개조해 방 2개짜리 비밀감옥을 만들었다. 이곳은 지하 1층에서도 폭 60cm의 좁은 비밀통로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은밀한 공간이었다. 2년 전부터 리 하오는 나이트클럽, 유흥주점 등에서 만난 여성 6명을 차례로 납치해 이 감옥에 가뒀다. 그는 거의 매일밤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여성들을 유린했으며, 여성들을 복종시킨다며 폭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방에는 여성들의 취미생활용으로 컴퓨터 2대가 놓여 있었다. 리 하오는 여성들이 탈출을 감행할까봐 이틀에 한번 꼴로 음식을 내려 보냈다. 순종하지 않는 여성은 때려 숨지게 한 뒤 방 한쪽에 매장하기도 했다. 폭력과 감금에 익숙해진 피해여성들은 리 하오를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심지어 서로 잠자리를 하겠다고 싸우다가 1년 전 여성 1명이 리 하오 손에 살해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길게는 2년, 짧게는 3개월 씩 이어지던 피해 여성들의 감금생활이 끝이난 건 한 피해여성의 용기 있는 신고 덕분이었다. 리 하오는 돈이 떨어지자 자오 칭에게 나가서 돈을 벌어오도록 시켰는데, 자오 칭이 리 하오의 감시를 피해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피해 여성 4명이 구조될 수 있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지하감옥으로 내려갔을 때 여성들이 경찰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면서 “리 하오는 자신의 이중생활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인에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 ‘월든’! 우리는 흔히 그 책을 나이 지긋한 은자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책을 펼치면 도처에서 마주치는 신랄한 풍자와 전투적 문체 때문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월든’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높은 이상과 패기만만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과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고작 2년 동안의 숲 생활로 ‘월든’을 쓰고, 단 하루의 감옥 경험으로 ‘시민불복종’을 썼던 자. 그러나 단 두 권의 이 책들로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사람.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스물여덟살 청년의 독립선언 19세기 초 미국, 하느님의 영광은 자본주의의 영광이 되었다. 고작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거나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호수의 물을 수도관으로 마을까지 끌어와 설거지를 할 생각”이나 하고, 철도는 “귀가 찢어질 듯 비명 소리를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각종 ‘비즈니스’를 통해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의 땅 콩코드에서 나고 자란 소로. 어디에서나 인디언의 기억과 전통이 배어 있는 부싯돌과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던 평원에서 여섯 살부터 암소를 몰고 맨발로 쏘다닌 소로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리석거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왜 야생딸기를 직접 먹는 대신에 사람들은 딸기를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산발적 질문을 체계적 사유로, 나아가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소위 ‘초월주의 운동’을 통해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끈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랄프 에머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직업이 필요하다. 소로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으로 자기 자신을 학교 교사, 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일꾼,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또는 삼류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나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자연에 대한 탐구를 유일한 ‘비즈니스’로, 산책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모든 사람들이 축포와 성조기로 ‘미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찬양하던 그날, 소로는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스물여덟의 독립 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월든 숲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가끔씩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과 벽장이 갖춰져 있는 오두막을 완성했다. 오두막에 쓴 비용은 단돈 28달러. 그리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거울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단지 하나와 램프가 그의 전 살림목록이었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걸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신의 노예감독관이 되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쉴 새 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다닌다. 비교적 작은 시골마을 콩코드에서도 그랬다. 농부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면 부유해지기보다 더 빈곤해진다. 그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된다. 오우, 가련한 하우스 푸어들! 삶의 모든 곁가지들을 들어내자.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살자. 먹는 것은 쌀과 거칠게 간 옥수수 가루와 감자가 전부였으나, 필요하다면 숲에서 잘 익은 월귤을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칠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살면 입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어찌나 단출한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는 모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다. 그리고 산책과 노동!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모든 관목과 야생 열매와 새와 동물들, 그리고 호수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땅을 갈아 콩, 감자를 심고 가꿨다. 첫해의 수익은 고작 8달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그때마다 마을에서 날품을 팔면 그뿐이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느낌, 더 많은 감정,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다. 점점 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소로. 그는 걷고, 뛰고, 수영하고, 배를 젓는 데 전문가였고, 거리와 높이를 발과 눈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손으로 정확히 달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통 속에 있는 연필을 한 번에 열두 개씩 꼬박꼬박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척도-되기! 동시에 점점 더 신비해지는 소로. 그는 어떤 사냥개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인디언처럼 땅에 귀를 대지 않고서도 먼 곳의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시맨-되기! 이제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가 된다. 두 해 후 소로는 월든을 떠난다. 물론 오두막에서의 삶은 자족적이고 충만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오두막은 마치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때에 맞춰 무르익는 것! 완전히 무르익은 곡식이 열매를 맺고, 완전히 자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자유,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는 일체무위의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곳이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정부의 통치를 거부한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통해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이 노예제도 지지자였다. 소로는 다른 많은 당대의 개혁가들처럼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이런 전쟁과 노예제도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말로 하는 반대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소로의 선택은? 세금납부 거부! 소로는 6년간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투옥된다. 단 하루 동안! (소로의 동의 없이 가족이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소로는 하루만에 풀려난다) 그리고 감옥에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 감옥 안에는 국가가 없으며 감옥은 결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둘 수 없다고. 소로는 면회를 온 에머슨이 “자네, 왜 그곳에 있는가?”라고 묻자 “선생님은 왜 밖에 계십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는 그 하루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가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편의적인 체제’이다. 그런데 그런 편의적인 체제가 갑자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부당한 질서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때 ‘저항’은 의무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부당한 국가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누가? 바로 내가! 1859년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이 노예를 도망시키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에 직면했을 때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첫 번째 공개강연을 한 것도 소로였다. 아마 소로는 존 브라운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유한 생명력과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었다. 월든을 떠나 온 후 소로는 주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측량기사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자비 출판한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은 초판 1000권 중 700권이 반납되었다. ‘월든’ 역시 그가 살았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소로는 간결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았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회한은 없었다.” 어떤 것들은 끝마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년간 주로 편지로 소로와 교류했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는 소로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때때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개봉되지 않았고, 아직 나에게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서신들은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발송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소로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부박한 일상 속에서 ‘월든’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각자 물을 일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현대판 노예”… 다단계 피해 어머니의 절규

    무려 8년간이었다. 서울 유명 사립대에 재학 중인 아들이 ‘다단계’에 빠져 가족을 속여온 것도, 업체에서 나올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며 완전히 딴사람이 된 것도. 어머니 한모(56)씨는 최근 그 사실을 알고 억장이 무너졌다. 아들을 망가뜨린 불법 다단계 업체를 수사해 달라며 지난 5월 경찰서를 찾았다. 내성적이고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아들 김모(31)씨가 변한 것은 제대한 지 사흘 만인 2003년의 어느 날. 군대 고참을 만난 뒤 “돈을 벌겠다.”며 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전에서 직장을 구했다며 방값으로 1000만원이 넘는 돈만 받아 갔다. 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엔 우수사원으로 뽑혀 영국으로 연수를 떠난다며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생활비를 부쳤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복학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등록금이 필요하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학비가 필요하다.’는 아들의 말만 믿고 부모는 8년간 5000만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올 초 졸업 뒤 호주에 갔다던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한씨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결국 계좌와 인터넷 쇼핑 주소지 등을 확인한 끝에 아들이 그동안 서울 송파구 인근에서 머물렀던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내 한씨는 지난 5월 서울 오금동의 다단계 업체 반지하 합숙소에서 아들을 찾아냈다. 그곳에는 이미 10여명의 남녀가 혼숙을 하며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부모를 거부했다. 한씨는 “아들이 업체 말에만 복종하는 ‘현대판 노예’가 됐다.”면서 “어리숙하고 정 많은 사회 초년병들을 세뇌시켜 바보로 만들었다.”며 울먹였다. 경찰도 청년층을 유혹하는 불법 다단계 범죄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송파경찰서는 거여동·마천동 일대 다단계 업체에서 5000명의 판매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고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미 지난달 21일 무허가 다단계 판매업체 대표 A씨 등 피의자 25명을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청은 1일부터 9월까지를 불법 다단계 특별단속 기간으로 정했다. 경찰이 파악한 이들 업체 수법 중 대표적인 것이 ‘8일 요법’이다. 조사 결과 다단계 업체들은 처음 1~3일간은 피해자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지인을 동원해 비위를 맞추고, 4일째엔 잠을 재우지 않거나 고소득을 미끼로 현혹해 가입 승낙을 얻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피해자가 가입 결정을 하면 5~8일째 되는 날 제2금융권 등을 통해 물품구입, 방값 명목으로 돈을 대출받게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8일이 지난 뒤부터는 군대 동기나 선후배, 친구를 유인하거나 자사의 물건을 비싼값에 사들이게 하는 등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을 유인할 때마다 통상 150만원의 수당을 줬다. 송파서 관계자는 “방문판매업법 위반 등은 처벌이 강하지 않아 재발이 우려된다.”면서 “취업 재수생이나 등록금을 마련하려는 대학생들은 불법 다단계 업체가 사실상 사기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4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고전 톡톡 다시 읽기] (4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누구나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 행복을 위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에 맞춰 자신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꿈도 그 꿈을 보아줄 누군가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고, 영화를 찍는 사람은 관객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혼자 떠나는 여행조차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설령 새로운 만남을 바라진 않더라도 결국은 그 여행담을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혼자 떠나는 여행의 소중함을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여행자의 역설. 그것은 바로 인간이란 존재가 갖고 있는 인간적 한계의 증거다. ●행복의 조건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와의 만남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진 못한다. 나와 너의 만남이 ‘우리’라는 이름을 갖게 될 때 우리 사이에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선 반드시 너라는 존재가 필요하지만 ‘우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나의 행복만을 고집할 수가 없다. 난감한 일이다. 너를 떠나보내자니 홀로 되어 버린 내가 행복해질리 만무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너와 함께 있자니 나의 존재가 점점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다. 행복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올더스 헉슬리는 바로 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 존재의 질문을 ‘멋진 신세계’를 통해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철저하게 ‘우리’에게 맞춰져 있는 세계다. 세계 국가로 통칭되는 이 세계의 모토는 ‘공동사회, 동일성, 안정’이다. 이 모토에 위반하는 모든 요소들은 철저히 통제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멋진 신세계’에서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계급 구분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알파, 델타, 감마, 입실론이라는 계급으로 나뉘어져 태어난 인간들은 신생아 때부터 무의식적 세뇌를 받음으로써 제 계급에 대한 불만을 모두 제거 당하게 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개인의 불만은 하나의 이기적인 질병으로, 그리고 유전자 생산과정의 불량품으로 판정되어 약을 처방받거나 멋진 신세계에서 추방 당한다. 개인의 자유라고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완전한 디스토피아. 하지만 멋진 신세계의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는 이 모든 통제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멋진 신세계’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절대 불행하지 않다고 단정 짓는다. ‘멋진 신세계’, 그 안에서는 과학의 발달로 노화를 방지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은 언제든 국가에서 제공받을 수 있으며, 섹스마저도 자유롭다. 그러니 사랑이나 고독, 슬픔, 복수 따위로 골머리를 썩일 일도 없다. 한 사람의 욕망이 다른 한 사람을 집착하지 않는, 그래서 누구도 외롭지 않은 ‘우리’의 세계. 그는 바로 이런 세계야말로 인간들이 진정으로 꿈꾸는 유토피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개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이란 누군가를 상처내고 죽이는 잔인한 이빨일 뿐이다. 그는 이 세계의 어느 누구도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설령 ‘멋진 신세계’의 통제방식에 문제가 있다 한들, 이런 그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과연 이 세상 어느 누가 서로에게 상처 받거나 상처 주면서 살길 바라겠는가. 무스타파 몬드의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을지언정 그의 꿈은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에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이기심과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감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사랑도 행복도 무의미하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기 위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끗이 거세한 채 육체만을 서로 공유하는 행위는 결국, 나 홀로 떨어져 외로움에 고통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복종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멋진 신세계’의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의 말에 맞서 ‘멋진 신세계’의 이방인인 새비지와 ‘멋진 신세계’의 ‘불량품’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늙어서 추해지고 무능하게 되는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를, 기아의 권리를, 더러워질 권리를,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를,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를, 말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를.’ 도대체가 말도 안 돼 보이는 이러한 권리. 하지만 이는 ‘누군가를 위해!’ 라는 망상으로 빚어진 독재에 대한 저항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애초부터 ‘우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존재들은 절대 진정한 의미의 ‘우리’를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안에는 ‘나’와 ‘너’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렇기에 이방인 새비지와 불량품들은 자신이 불행해질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의 자유를 그토록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는 진정한 ‘우리’를 위해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저 홀로 견뎌내어야 하는지. ‘나’의 자유를 당당히 주장하던 이방인 새비지조차도 결국은 홀로 있음, 그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만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나 홀로 고립된 세계, 이 또한 디스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겁내지 마라, 고립은 없다 인간의 삶 속에서는 ‘우리’를 향한 나와 너의 싸움이 멈추지 않는다. 멈출 방법도 없다. 그 끝나지 않는 지독한 싸움에 지친 자들이 이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간은 고독하다고 느낄 때조차 그 누구도 혼자일 수 없다. 내가 고독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반드시 ‘너’라는 존재를 상정하고 있어야 하니까. 내가 고독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우리’라는 싸움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인 것이다. 만약 그 고독이 ‘너’를 상정하지 않은 고독이라면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기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을 테니까. 어처구니없지만 그 순간 ‘나’는 저 어딘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삶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없는 곳에 고독이 어떻게 숨어든단 말인가. 그러니 나와 너의 싸움에 고통받을까봐 겁내지 마라, 고립은 없다. 부디, 우리의 싸움에 지치지 마시길. 영상글밭 사하 이종영
  • 애완견에 얼굴 잃을 뻔한 2세아기 ‘충격’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워온 애완견이 2세 아기를 공격해 하마터면 얼굴을 잃을 뻔한 충격적인 사건이 영국에서 벌어졌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브룩워스에 사는 조수아 만(2)은 지난 4일(현지시간) 주말을 맞아 부모를 따라서 앤도버스포드에서 양 농장을 운영하는 할머니를 찾았다. 어른들이 밀린 농장일을 하는 사이, 조수아는 할머니가 아끼는 애완견이자 양치기개인 콜리종 로시(Rossie)에게 다가가서 장난을 쳤고, 순식간에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다. 꼬리를 붙잡힌 로시가 흥분하더니 조수아의 얼굴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 뒤늦게 이 상황을 본 조수아의 아버지가 달려와 개를 발로 차며 말렸지만 로시의 광기어린 공격은 계속됐다. 결국 눈과 코, 볼 등이 찢어져 얼굴이 흥건히 피로 젖어서야 조수아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는 그곳에서 찢어진 얼굴을 200 바늘 넘게 꿰매는 대수술을 받았다. 어머니 리사 만(23)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아들이 죽을까봐 두려웠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도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에 따르면 로시는 겁이 많고 복종심이 강한 성격으로, 지금껏 한 번도 사람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스트레스로 이상행동을 보인 것 같다.”고 의아해 했다. 조수아는 몇 차례 성형수술을 더 받아야 하지만 상처가 워낙 깊어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의료진은 내다보고 있다. 조수아의 가족은 “애완동물의 공격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영국 동물학대금지협회(RSPCA) 측 역시 “흔히 로트와일러나 불독과 같은 견종만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위험한 개는 종류는 따로 없다.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같은 장소에 둘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문화마당] 먼 길/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먼 길/신동호 시인

    축제의 날이 지나갔다. 대학가는 ‘변함 없이’ 젊음이 넘쳤고 열기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강의실을 벗어난 학생들은 지그재그로 세상을 걸었다. 잠시나마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접시를 닦아보고 파전을 부쳤다. 학생들이 열어놓은 주점 사이를 떠돌며 20년 전 대동제의 시절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그 시절의 뭉클함이 어깨를 툭툭 쳐, 엉겁결에 스무 살의 착각으로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그리 낯설지 않았다. 옛 시절의 친구들이 반항기 어린 학생 몇과 겹쳐 떠올랐다. 그렇구나, ‘변함 없이’…. 학생들의 주점에 앉아 문득 “이것 말고 더 즐겁고 의미 있는 건 없을까?” 물었더니 “주점 말고는 할 게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학의 문화는 미래 우리 사회의 거울이라고 얼마나 되뇌었던가. 또 한 세대가 지난 길을 반복하며 되풀이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복제되는 축제처럼 학생들은 앞선 이들의 발자국 위에-그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새로운 길은 없지 싶다. 공간의 길도, 역사의 길도, 생각의 길도 역시. 도시가 정비해 놓은 길로 우리는 걷는다. 차선을 벗어나는 순간 법을 위반한다. 구청이 구획해 놓은 산길 밖은 시민들이 갈 수 없다. 그 길 위에 복종의 선을 그어놓고 주변에는 광고와 국가의 선전물들이 시선을 가둔다. 우리는 교과서에 쓰인 역사의 결과물이다. 벗어날 길이 없고, 선택할 수도 없다. 생각의 길을 차단당한 지는 이미 오래다. 국가가 결정하고, 신문이 쓰고, 정보기관이 감시하면 그게 생각의 길이다. 피곤하니까 참지만, 참다가 그저 인정하게 된다. 때로 도착한 오솔길에는 이미 발자국들이 어지러울 뿐이다. 도대체 새로운 길은 어디 있는가. 자주 진보의 주장에서 새로운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 미지의 길에 대한 흥분과 기대 때문에 일상을 접는 일도 수두룩했다. 어떤 불완전함, 어떤 미숙함, 그로 인해 참여의 길은 넓어졌고 늘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진보진영도 제각각의 깃발로 길을 안내한다. 왜 그들은 새로운 길이 많다고 고백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가령, 그들은 민주주의를 빼앗겼다고 걱정한다. 보수가 민주주의의 역사를 뒤로 돌렸다고 한다. 나는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런데 우리들에겐 민주주의를 이룩한 자와 빼앗은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택만 남겨졌다. 슬로베니아의 지성 지젝의 말을 빌리면 민주주의는 “도래하는 것”이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자신의 개념 안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민주주의 혹은 전제주의 하에서 시민들이 갈 새로운 길은 없다. 선거운동의 합법적 공간에서 보복·심판 같은 부정적 단어들이 난무하던 지난 2주일, 나는 또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을 유보해야만 했다. 그래도 우리는 먼 길을 가야 한다. 어느 날 몸 어디에서 티옥신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우리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초원을 떠나지 않고 툰드라의 거센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추위를 찾아 알래스카의 개들처럼 엉켜 이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내가 타인을 도와야 그도 언젠가는 나를 도울 것이란 생각이 시작되었다. 빙하기를 지나서야 이전과 다른 우리가 태어났다. 화가 나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전 같았으면 타제석기를 들어 내리칠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를 꼭 껴안았을 때 냉기는 사라져갔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알 수 없는 단백질 하나를 형성시켰다. 그 단백질 덩어리가 우리에게 양보심을 주었다. 인간성의 출발이었다. ‘변함 없이’ 반복되는 길에서 새로운 유전형질을 기대할 수는 없다.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민주주의는 열려 있고 우리 모두 도래할 길을 향해 가야 한다. 새로운 길에서 평화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 축제는 그 날을 예감하며 치러져야 한다.
  • 돈에 예속되는 자유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

    돈에 예속되는 자유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은 누구 편에서 읽느냐에 따라 이야기 서사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야기의 얼개는 착한 노총각 나무꾼이 어느날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 한 마리를 구해주고, 그 대가로 예쁜 선녀가 목욕하고 있는 옥녀탕에 대한 따끈따끈한 정보를 받는다. 사슴은 그 중 한 선녀의 날개옷을 숨기면 선녀가 하늘로 올라갈 수 없으니 나무꾼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슴은 또한 둘 사이에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는 나무꾼이 파놓은 함정에 대해 고백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고 나자 마음이 풀어졌는지, 또는 양심의 가책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과거를 고백한다. 다음날 아침 개운한 마음에 일어난 나무꾼은 날개옷을 입고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아내를 발견하고 목을 놓아 운다. ●소비욕구=자기파멸적인 욕망의 충족 이 전래동화의 교훈으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든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를 손꼽는다면 나무꾼의 입장에서 서사구조를 지켜본 것이다. 선녀 입장으로 돌아가면 그 결혼은 원천 무효다. 양쪽이 자유의지를 가진 대등한 관계에서 결정된 결혼이 아니라 선녀의 날개옷을 나무꾼이 불법점유하고, 거짓과 속임수로 완성된 결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녀의 날개옷은 평범한 의상이 아니다. 날개옷이 타인이 침해할 수 없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선녀의 자유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라면, 자유를 되찾은 선녀는 나무꾼과 같이 살 이유가 없다. 나무꾼과 사슴의 관계도 되돌아봐야 한다. 나무꾼이 진정 착한 나무꾼이었다면, 착한 일을 한 뒤 사슴이 제공하는 은밀한 정보를 듣고, 불같이 화를 냈어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착한 일에 대해 왜 너는 불법적인 일을 하라고 제안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이같은 은밀한 거래는 뇌물과 같은 것이라, 슬쩍슬쩍 넘어가 이익을 취하다 보면 부패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선녀와 나무꾼’을 통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 펴냄)의 저자 강신주씨는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와 비슷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날개옷(자유)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자유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세속적인 삶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자유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노동을 팔 수 있는 자유와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소비로 탕진해 다시 노동을 팔아야 하는 자유로, 돈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자유라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생존 비결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팔게 하기 위해 화려한 도시의 윈도와 불빛, 멋진 점원 등을 활용해 돈을 쓰도록 유혹하고 욕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소비욕구는 자기파멸적인 욕망의 충족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암세포처럼 번식하는 욕망은 우리의 소비 욕망이 치열해질수록 자본의 힘을 강화시킬 것이고, 그 안에 사는 우리의 삶은 점차 병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물신주의에 푹 빠진 인류는 내세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신(神)을 현세의 행복을 약속하는 돈으로 대체하고, 교회를 은행으로 바꾸고, 간절한 기도 대신 저축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유를 꿈꾸면서 자본에 묶인 현대인들은, 또한 산업자본주의가 낳은 대도시에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독한 고독과 권태를 경험한다. 인격과 인격을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돈과 물건을 교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란 비인격적·비개성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어쩌다 들른 편의점의 늙수그레한 점원이 젊고 버릇없는 고객에게 단 한마디라도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이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젊은 고객을 충고하는 점원을 피해 다른 가게로 옮겨가게 할 뿐이다. 이런 대도시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누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상호무관심과 속내 감추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조건이 우글거리는 군중 속에서 쓸쓸함과 권태를 느끼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인들이 가정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도 간명하다. 대도시의 익명성에 익숙한 개인들이 가정이라는 간섭과 충고가 가능한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삶에 대한 철학적 분석·진단 선녀와 나무꾼과 같이 익숙한 동화를 통해 자유의 문제를 돌아보는 저자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거리두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좌표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우리 내면을 탐색하고 성찰함으로써 현재 자본주의적인 삶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성찰의 방식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모던보이인 시인 보들레르, 20세기 경성의 모던보이인 소설가 이상의 감수성을 철학자 벤야민과 지멜을 통해 분석했다.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노래한 시인 유하와 투르니에의 사유를 철학자 부르디외와 보들리야르를 통해 진단했다. 보들리야르의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실제의 물건이 아니라 ‘기호소비’”라는 진단은 유효하다. 저자는 노동자가 소비자로 환치되는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가 자본가로도 환치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지역교환거래제도)의 도입 등을 짧게 다뤘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09 ‘우수 저작 및 출판 지원 사업’ 교양부문 선정작이다. 1만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연리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완벽한 절망으로 닫힐 듯하던 무대는 마지막 순간 실낱 같은 희망의 틈새를 열어 두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모리츠, 낙태수술을 받다 숨진 벤들라의 무덤 앞에서 이 모든 비극의 원인 제공자인 멜키어는 끝내 죽음의 유혹을 떨치고 일어선다. 자신들을 절벽끝으로 몰아붙인 기성 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노라 다짐하면서. 10대 청소년들의 욕망과 절망을 이토록 과감하고 격정적으로 드러낸 무대가 또 있을까.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누구나 경험했고, 익히 알고 있지만 감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임신과 낙태, 자살, 동성애 등 감추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것일수록 더욱 환한 조명아래 노출시키는 대범함은 이 작품이 왜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뮤지컬로 불리는지를 입증한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명확한 이분법적 대립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권위와 억압으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와 사춘기의 충동과 열정에 사로잡힌 청소년들. ‘어른도 아이도 아닌 몸’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은 어른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왜곡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성애 묘사와 노출신은 예상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줄에 매달린 이동 무대에서 불안하게 이뤄지는 벤들라와 멜키어의 성애 장면은 줄타기하듯 위태로운 그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오히려 교복 품안에서 마이크를 꺼내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고,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내면의 분노를 날 것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 기성세대에겐 더 심리적인 충격일 수 있다. 김무열(멜키어)과 조정석(모리츠), 김유영(벤들라) 등 주연 배우들에게선 잠재적 기량이 엿보였지만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10년1월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44-433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신중해야/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신중해야/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도덕이 개혁되고 건강은 보존되며, 산업이 살아나고 훈령이 확산되며, 대중의 부담은 줄어들고 경제가 반석에 오른다.”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는 제러미 벤담의 첫마디. 벤담은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창조품이 최고의 효율적인 통제 시스템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원형감옥 파놉티콘(panopticon). 이른바 일망(一望) 감시체제의 탄생! 파놉티콘의 기획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는 단 한 사람만으로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감시·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이용한 노출과 은폐다. 곧 중앙의 감시탑은 항상 어두워 그 안이 감춰진 반면에 주변의 감방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죄수들의 방은 햇빛을 들이는 거대한 실외창과 저녁이면 점등되는 등불로 늘 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앙의 간수는 밤낮으로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할 수 있으나 죄수들은 간수를 볼 수 있기는커녕 간수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죄수는 규율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못할뿐더러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하여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된다. 참으로 ‘완벽한 통제의 유토피아!’ 그러나 비대칭적인 시선을 통해 감시의 극대화와 영구화를 도모한 벤담의 원형감옥은 당시 영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파놉티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미셸 푸코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감금과 교정은 물론 훈련·노동·교육·치료 등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 장치로 폭넓게 활용되었고, 그럼으로써 이를 본뜬 감옥·군대·공장·학교·병원 등 갖가지 전문기관들이 근대 이후 창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산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규율권력’의 야심 때문이다. 푸코에 따르면 그 성격과 목적 등에서 근대의 규율권력은 전근대적 처벌권력과는 완전히 다르다. 처벌권력은 공개교수형과 같은 구경거리로서의 처벌 행위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공공연히 과시한다. 반면에 규율권력은 감금형과 같은 지속적이고도 밀폐된 교정 행위를 통해 자신의 힘을 은밀하게 행사한다. 이는 권력 행사의 목적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처벌을 통해 복종을 강요하는 처벌권력과는 달리, 규율권력은 훈육을 통해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함은 물론 이에서 더 나아가 ‘유용한 생산적인 신체’를 산출코자 애쓰기 때문이다. 곧 ‘쓰임새가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나아가 완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순종적인 신체’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규율권력의 목표인 것이다. 이를 통해 ‘유동적이고 혼란하며 무익한 수많은 신체와 다량의 힘’을 ‘가장 사소한 움직임에서까지도 순종하는 신체’로 뒤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푸코가 볼 때 현대 사회는 거대한 파놉티콘과 다름없다. 곧 ‘개인들을 분류하고 공간 안에 고정시키고 배분하며, 등급을 매기고, 최대한의 시간과 최대한의 신체적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인들의 육체를 훈련하고, 그들의 연속적인 행동에 규율을 부과하며, 그들을 빈틈없는 가시성의 테두리 안에 가두고, 그들 주위에 온통 관찰·등록·평가의 장치를 조직’해대는 ‘감시 사회’가 오늘날의 실상인 것이다. 최근 여당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모든 전기통신사업자는 감청설비를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고, 검찰 등의 수사기관에 고객의 통화 내역 등을 제공하며, 1년 범위 이내에서 통신사실 확인 자료를 보관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지능·첨단 범죄를 잡아내고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여당의 변(辨)이다. 그러하기만 바랄 뿐이다. 결코 이 법이 파놉티콘으로의 길이 아니길 정말로 소망할 따름이다. 김현식 한양대 사학과 교수
  • [1·19 개각] 한나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격앙

    [1·19 개각] 한나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격앙

    ‘1·19개각’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은 한마디로 격앙 그 자체였다. 개각의 내용은 물론이고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개각 명단을 발표·통보한 것을 두고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당이 요구한 ‘정치인 입각’이 무산되고, 나아가 당 지도부와 상의조차 없이 청와대가 언론에 개각을 발표하자 당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박희태 대표는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을 겸한 정례회동을 가졌지만 ‘정치인 배제’, ‘경제팀 중심의 소폭 개각’ 등 개각의 가이드라인만 통보받았다. 박 대표는 회동에서 당 출신 의원의 입각을 건의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박 대표는 회동 직후 당 최고위원회의 도중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개각 명단을 전화로 통보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불만은 여과 없이 표출됐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당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느냐. 과거 여당은 사전 협의도 하고 사전 통보도 했는데 (이번 개각에는)전혀 없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특히 안경률 사무총장을 지목하며 “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면서 “만날 청와대 혼자 나가고, 여당은 끌려가고 있다. 실세 사무총장이 역할을 똑바로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참모들이 와서 직접 챙기라.”고 했다. 고성과 삿대질도 오갔다. ●“靑 독주에 여당 끌려만 다녀” 한 중진 의원은 “인사의 내용은 그렇다 쳐도 최종 결정되기 전에 최소한 당 대표에게는 연락을 미리 취하는 모양새를 갖췄어야 한다.”면서 “청와대가 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재오계인 진수희 의원은 “자리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내각의 정무적 역량, 국회 인식 등에 대한 당·정·청간 간극을 메우는 차원에서 정치인 입각 필요성이 제기됐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감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리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당·청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경환 당 경제위기극복종합 상황실장이 반드시 고정멤버로 참석해야 한다.”며 청와대의 독주에 불만을 표시했다. 정몽준 최고위원도 “청와대 지하벙커가 있다는데 그렇게 좋은 게 있으면 우리도 견학 좀 하자.”며 꼬집었다. ●민주 “탕평인사 국민적 요청 무시” 한편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 인사는 강권통치를 교사한 것이자 경북, 고려대, 공안통을 배치한 ‘KKK 인사’”라면서 “탕평인사, 통합인사라는 국민적 요청을 완전히 무시한 국민 반란 수준의 인사”라고 혹평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연애시의 두 형식,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 - 이병률과 김행숙의 시/박슬기

    1 잘못 보내진 연애편지 -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있어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날씨 이야기이거나 나의 일상 이야기이거나하는 내용의 편지다.그런데 편지는 며칠 후 수신자 부재라는 빨간 도장을 얹고 되돌아온다.혹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는데 잘못된 번호라는 안내 방송만이 내게 대답해 줄 때,나는 망연히 슬퍼진다. “면아 네 잘못을 용서하기로 했다”(‘별’)라고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그런데,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이번엔 감옥에 면회를 와 달라는 내용을 담은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아무것도 아닌 편지’)가 나에게 배달된다.봉투에는 버젓이 내 주소가 적혀 있지만,내 이름이 아니기에 나는 답장을 보낼 수가 없다.어찌할까 망설이며 오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가,나는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여 되돌려 보낸다. 며칠 뒤 편지는 되돌아온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편지를 보낸 이가 출옥했거나 아니면 그가 편지를 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라고 생각한다.편지를 받을 사람이 사라진 일로 그가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문자는 잘못 보내지고,편지는 받을 사람이 없다.당신이 떠났거나,죽었거나,혹은 나의 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나는 그래도 열심히 쓴다. 그러므로 이병률(‘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2003),‘바람의 사생활’(2006))의 시는 붉은 도장을 얼굴에 찍고 울먹이는 편지다.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보고 싶고,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정성껏 썼다.답장이 오기는 왔는데 거기에는 비웃음과 냉소만 가득하다.전화를 걸었는데,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그럴 때 나는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무서워지거나,당신에게 상처를 받아서 화가 날 것이다. 소년이 손에 칼을 꽉 쥐어서 피를 낸 다음에,은밀히 그것을 소녀에게 보여준다.자해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다만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인데 소녀는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칼-사춘기 3’)라고 비웃어버린다.소년은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소녀가 무서워진다. 아이들이 울자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봐요”(‘우는 아이’)라고 무심히 말할 때,“우수수 이별 눈물/ 받아도 마음의 용수철은 움직이지 않”(‘정석가’)을 때, 건네진 마음의 신호는 당신의 표면에서 미끄러져버린다.김행숙의 시집 ‘사춘기’는 당신의 표면에서 튕겨 나와 당신과 나 사이에서 떠도는 언어들이다.귀신들과 여자들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무수한 ‘사.랑.해.요.’와 ‘&.%.*.#’,그 어디로도 스며들지 못하고 떠도는 독백이자 대화.여기에는 내가 미쳤는지 당신이 미쳤는지 혹은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하여간에 서로가 존재하는 양식이 너무 달라서 결코 서로를 알아 볼 수 없는 사태가 있다.“우편물을 잘못 배달했을지도”(‘다섯 살을 떠나며’) 모르지만,무슨 상관이랴.어차피 전달되지도 못할 말인 것을.그래서 “그뿐입니다.언제나 그뿐이에요.그뿐.”이라고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체념이 여기에 있다.그래도 나는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모르는 신호를 받는다.그러니 김행숙(‘사춘기’(2003),‘이별의 능력’(2007))의 시는 외계어로 쓰인 편지다. 한 편에서 편지는 도달점을 찾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고 있고,한 편에서는 누구도 해독하지 못할 내용을 담은 편지가 마구잡이로 보내지고 받아진다.즉,둘 다 편지를 잘못 보낸 것이다.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다르지 않은데,결코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둘은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에 빠져 있다.그러나 타인에게 건네는 말이란,늘 잘못 보내지는 편지가 아닌가? 소통 불능의 아픔은 애당초에 해결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래도 이들은 또 다시 편지를 보낸다.어떻게 하면 당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그러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의 시는 연애편지다. 잘못 보내진. 2 김행숙, 기이한 변신담 - 함께 사라져 희미해지기 당신이 미쳤거나 귀신들이어서,즉 나와 전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존재들일 때 나는 그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에게 도달하고자 한다면,존재를 겹쳐 놓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이러한 방법을 동일화라고 부르되,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하나는 내가 그들이 되는 방법이고,또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나를 닮도록 만드는 방법이다.전자의 방법을 취하는 자가 있어,그가 귀신의 언어로 말하고 귀신의 흉내를 낸다면 우리는 그를 광인이라고 부른다.그러나 광인은 아직 ‘인간’,즉 미쳤을 뿐인 인간이기에 귀신의 존재 형식을 따르지 못한다.그는 다만 ‘흉내’만을 낼 뿐이다.만일에 정말로 전자가 되고자 한다면,죽는 길밖에 없다.죽어서 귀신이 될지 어떨지는 알지 못하므로,여기에는 존재를 건 도박이 있다.그러나 존재를 걸고 도박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후자의 방법을 취해왔다.그것을 ‘계몽’이라고 부르거니와,계몽이란 나와 다른 존재 형식을 가진 타자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 형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그것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 쫓기’다. 예수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할 때,그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귀신들을 불쌍히 여겨,예수는 그들로 하여금 근처에 모여 있던 돼지떼들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귀신들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자,남자는 살았으되 미친 돼지떼는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복음서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계몽이 미신을 몰아낸 서사이자,예수라는 동일성이 어떻게 “미친 것”들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었는가에 대한 서사이다.그런데, 돼지의 몸 속에 들어가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던 그 미지의 타자들이 “목욕하는 여인”에게 돌아와서,뻔뻔하게도 “그대와 내가 복수이니 우리네”(‘귀신 이야기 3’)라고 말한다. 귀신이 말하는 이야기란,이런 식이다.“너는 십 년 만에 비춰보는 내 거울이야.난 그때 네가 꼭 죽을 줄만 알았는데,그래서 유감없이 탈출했는데,같이 죽기에는 피차 지겨웠으니깐,이해해?”(‘귀신 이야기 1’) 귀신은 나에게서 10년 전에 탈출했다.아니 정확하게 10년 전엔 귀신과 나는 한 몸이었다.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또한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등을 구부릴 때,나는 의문형”(‘귀신 이야기 8’) 이 되는 방식으로 말한다.나는 왜 귀신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으며,왜 귀신에게 내가 아는 언어로 대답할 수 없는가? 그것은 귀신이 나에게서 쫓겨난 존재이므로,그로 인해 그와 나의 세계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행숙의 시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고 서로 소통할 수 없다.내가 보는 것은 “그를 비껴간 것”일 뿐이고,라디오에서 웃긴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기에 나는 “왜 웃는지 알 수 없”(‘타일’)다.마치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공간에 여러 겹의 층이 있는데,우리는 각각 다른 층에 있어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것과도 같다.우리가 서로를 “총총히 관통해”도 “아무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이 세계에서 나는,그리고 당신은 다만 “분명히 장애물이 아니다.”(‘사소한 기록’)라는 정도의 인식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귀신들’인 것이다. 남자에게서 쫓겨나 울며 사라졌던 귀신들은 복음서의 명령을 어기고 돌아와 몰래 속삭인다.‘너와 나는 하나이니라’.돼지떼 속에 몰아 넣어 그들을 쫓아버린 계몽의 역사가 있었다.이를 니체를 따라 역사적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가 이 분리의 아픔을 넘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그것은 망각이되,아픔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역사적 기억을 잊는 일이다.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망각하고,나아가 나에게 혹은 당신에게 붙여진 이름들,계몽의 전략이 구사한 ‘이름붙이기’의 역사를 망각하는 일이다.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으면서 세상이 감기는 걸 느끼”고,“이렇게 간단히 세상이 바뀌는 걸 뭐,”(‘기억은 몰래 쌓인다’)하고 중얼거린다.망각을 통해 세상은 눈을 감는 것과 함께 도르르 감긴다.물론 이러한 망각은 백치의 그것이 아니다.당신과 내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조건 자체를 망각함으로써 아픔의 기원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기원은 이미 ‘나’라는 주체의 존재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망각이란 나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일과 동일해진다.나의 차원을 망각하고,당신의 차원을 망각해서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무한한 거리를 마치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잊음,망각은 새로운 행위를 위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눈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나는 점점 이상해진다는 말을 들었다.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좀 말해줄래?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나는 아직 남아 있는데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눈사람’) 밤의 정원.저녁의 정원에도 정혜,은혜,미혜 같은 명찰이 붙여진 나무들이 잎사귀,그림자,잎사귀,그림자를 드리우나.정원의 여자들은 어디로 다 흩어졌나.//우리들은 어디에 모여서 한 사람이 되었나.우리는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이름들을 붙였다,뗐다,붙였다,투명테이프처럼.안녕.안녕.금방 버려진 이름들과 함께하였던 우리의 유머와 블랙.사랑과 블랙.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한 사람3’) 눈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눈사람을 닮아 가는 화자는 눈사람에 한없이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다.눈사람이란 태양이 비치면 녹아버리는 것,눈사람이 녹아서 사라지자 그에게 가까이 가 있는 나는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 거울이 얼굴을 비춰주지 않는다.눈사람과 나는 이런 식으로 만난다.나는 녹아내려서 눈사람이 되고,나의 정체성의 상징인 얼굴은 사라지지만 여전히 나는 “남아 있는” 존재다.그러나 나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눈사람들에게 얼굴을 나누어 준 형태로,즉 눈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이 눈사람들은 “은혜,정혜”와 같은 이름표들을 달고 있는 “나무”와도 같은 존재들이고,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다.붙였던 이름표들은 떼어도,붙여도 상관없는 얼굴들일 뿐이다.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다 갖다 버리고서 서로에게 “달려오”고,그렇게 만나서 “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 이 모호해짐,이것이 김행숙의 시에서 만남의 사태다.여기에는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 버리는 시도가 있다.그러나 이 만남의 사태는 내가 당신-사물을 끌어당겨서 나를 닮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내가 당신-사물들에게 가서 나를 버리고 당신-사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다만 이미 녹아내려 주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들,타자라고도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가”서 “함께 희미해”지는 일(‘다정함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함께 희미해지는 방법,당신과 내가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망각의 능동적 행위와 결부될 때,이는 “어쩌면 포개질지도 모를”(‘귀신이야기 8’) 가능성을 겨냥한다.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개진다는 것,그것은 둘이자 하나이고 하나이자 모든 것이 되는 방법이다.나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사라져서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없는 상태로 그리고,“끝까지 다 듣지 못했”다는 말조차 완결할 수 없는 상태로 사라지지만(‘더 작은 사람’) 나는 소멸되지 않는다.나는 “더 작은 사람,더 작은 개,더 작은 도마뱀”에서 “파동의 굴절,만져지는 빗방울,빗방울”이 되다가 “돌풍과 함께 지나가는 소나기”가 되는 변신의 끝에 모든 것이 되어 세계를 뒤덮어 버린다.이러한 만남의 사태에서 사람과 사물의 존재 형식의 구별이란 없다.끝없이 그 존재 형식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그러니 한 사람은 한 “개찰구”도 되고,“안내 방송”도 되고,“주차장”도 되고, “기둥”도(‘한 사람 2’) 된다.그리고 ‘고양이’가 된다. 어쩜 너는 고양이처럼 생겼구나.죽은 고양이 미미,죽은 고양이 샤샤,죽은 고양이 쥬쥬,저 골목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림자가 되는 고양이 라라를 정말이지 군데군데 닮았어.그런 고양이는 불멸의 이름이야.그들은 희미하게 사라졌기 때문이지. (‘소녀 고양이군을 만나다’) 고양이가 되겠다고 집을 뛰쳐 나온 ‘고양이군’은 한 고양이이면서도 여러 고양이이다.죽은 고양이 미미,샤샤,쥬쥬,라라를 “군데군데” 닮은 고양이이기 때문이다.이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서로 달려와 함께 희미해졌을 때 나타나는 고양이이다.고양이군은 미미이자 샤샤이고, 쥬쥬이며 라라인 동시에 그 어느 고양이도 아니다.이 고양이들을 합쳐 놓는다고 해서 고양이군이 되지도 않는다.즉,고양이군은 고양이군이면서도 다른 모든 고양이인 것이다.이러한 ‘변신’은 그러므로 한 고양이의 변태 양상이 아니다.애당초에 ‘고양이군’이라는 변신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양이군이 고양이가 되기 위해 집을 뛰쳐 나오기 전에도 “원래 고양이 새끼”(‘고양이군의 수업시대’)였던 것처럼 하나의 변신의 원천이 있어서,그것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하나에 여럿이 덧붙여져서 나타나는 고양이인 것이다.그러므로 고양이군이 “불멸의 이름”(‘고양이군의 25시’)이 된다고 했을 때,이는 고양이를 초월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양이의 존재를 덮어씀으로써,덮어쓴 채 사라지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므로,사라지면서 생성되는 많은 것들은 오직 그 ‘흔적’들일 뿐이다.그것은 나의 흔적이자 나에게 덧붙여진 타자의 흔적이고,동시에 타자에게 덧붙여진 나의 흔적이다.나와 타자는,이 둘은 서로의 기원이 혼종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이는 실로 변신하되 변신하지 않는 변신,기이한 변신담인 것이다.김행숙의 시에서 이 기이한 변신의 최종 형태는 “해변의 얼굴”이다. 이 얼굴은 “코는 한없이 옆으로 펴지고”,“귀는 늘어져 늘어져”(‘얼굴의 몰락’) 있는 이상한 얼굴이고,녹아내렸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얼굴의 높이”를 회복할 수 없는 얼굴이다.“녹아내리는,끝없이 다가오는,웅웅웅웅 끓어오르는,” 얼굴(‘소수점 이하의 사람들’)은 이렇게 녹아내려서 한없이 펼쳐진 평면이 된다.이는 “얼굴로부터 넘친 얼굴”이자,우리 모두가 밟고 지나가고 그 위에서 휴가를 보내는 “해변”(‘검은 해변’)인 것이다.이 얼굴은 나의 얼굴이 깨어지는 순간,즉 사라지는 순간 나타나는 얼굴이고 ‘다른 모든 것’이 들어 있는 해변으로서의 얼굴이다.그것은 나의 얼굴이자 다른 모든 것의 얼굴이다. 우리의 현재를 구성해 온 과거의 역사를 접어버리면,새로운 미래가 열린다.세계를 깜빡 “정전”(‘정전’)시켜 버리고 당신과 나는 그 암흑의 거리를 넘어서 만난다.마구 달려와 잠깐 숨 죽였다가 팡!팡! 터져서 조각조각 떨어지는 얼굴들의 축제.분리의 사태라는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고,기어이 서로를 만나려는 열정에 찬 기쁜 얼굴들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마구 터져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3 이병률, 바람의 삶 - 당신에게 가지 않는 방랑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이 세계가 아예 마치 없는 것처럼 깜빡 잊어버릴 수 없다면,아니,서로 다른 언어로 떠든다는 사실은 모른 체하더라도,나의 말을 전할 수 있는 당신이 ‘거기’에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어느 가을날,/저는 열차를 타고/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편지를 띄웠습니다//5시 59분에 도착했다가/6시 14분에 발차합니다//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겨울이 왔고/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장도 열차’)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쓴 편지에는 아마 이런 내용이 덧붙어 있었을 것이다.‘부디 나와 주길 바랍니다’라고,혹은 ‘안 나와도 괜찮지만,혹시 시간이 된다면’.이 편지를 당신이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당신은 나오지 않는다.나는 오지 않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당신을 기다린다. 5시 59분에서 6시 14분까지,15분 동안 길게 뺀 삶 위로 가을이 내리고 겨울이 내려 마음이 어둑어둑해진다. 이병률에게 삶은 온전히 한 사람을 만나고 잊는데 바쳐진다.“만나는 데 삼십 년”,“잊는 데 삼십 년”(‘생의 절반’)이 걸린다면,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이어서 이 삶이란 온전히 슬픔의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혹시 당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 나의 편지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니,당신을 찾아 내 편지가 도달하는 곳에 앉혀 놓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병률의 시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당신을 향해 가는 열차가 아니라,당신을 지나치는 열차를 탄 것처럼,그는 당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더라도 가급적 피한다. 그는 “깊은 밤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치자 “뒷걸음질”(‘累(루)’)을 치고,“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낯선 타국에서 만난 동양 사내가 말을 건네자 “고개를 저을 뿐 그에게 왜 혼자냐고 묻지 않”(‘동유럽종단열차’)음으로써 대화를 거부한다. 나는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당신과 만나기를 원하지 않고,오히려 당신이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겹’) 그래서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하고 바란다.행여나 약속을 하더라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여한이 없겠다”면서,“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화분’)라고 고백한다.당신과 이별한 사태,멀리 있는 당신을 더 멀리 보내고 당신을 결코 만날 수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화자는 당신과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 놓는다.이러한 방식을 아픔에 대한 ‘승인’의 방식이라도 해도 좋겠다.당신과 내가 이별한 상태,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론적 조건 자체를 승인함으로써 출발하는 것이다.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오지 않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이후의 만남의 약속에 대한 열망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이다.그러니 이러한 방식은 아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아픔에 복종하는 자는 아픔의 원인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여기에 비난을 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비난은 아픔을 낳고,아픔은 다시 비난을 낳으니,이 사람은 결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려는 자세,당신의 어떠한 존재 조건도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결의가 있다.나는 당신과 나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당신을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겠다는 것은 당신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만들겠다는 폭력이기 때문이다.나는 당신을 그렇게 다루기를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는 내가 당신에게 한량없이 베푸는 호의가 아닌데,당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 내가 맡은 일은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도화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었다(…)처음 한 일은 붓으로 벽을 터는 일이었다 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나왔다(…)벽을 찔러 조심스레 들어내어 박물관으로 옮기면서 육백여 년 동안 그려진 그림이 수십 겹이라는 사실에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나는 가매지고 무거워진다 책 냄새를 맡는다 살 냄새였던가 (‘별의 각질’) 한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인기척’)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옮겨 그리는 일을 맡은 한 사람이 있다.그는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 밑에 숨어 있는 그림의 원본을 조심스레 드러내고 싶었기에,“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 붓질을 한다.이토록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깊은 곳까지 알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천천히 말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그런데 이렇게 말을 걸자,예기치 못하게 “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출현한다.한 그림 밑에 그림이 있고,또 그 그림 밑에 다른 그림이 있어서 벽에 그려진 그림은 “수십 겹”인 것이다.여기서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애초에 원본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수십 겹의 그림을 무시하고 하나의 원본을 찾아내어 도화지에 옮겨 그린다면,그림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당신을 아는 일이 그러하지 않겠는가.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 온 존재이니,섣불리 ‘이것이 당신이오’라고 말할 수 없다.말할 수 없기에,당신을 일러 수십 겹의 각질을 가진 ‘별’이라고 부른다.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별을 둘러싸고 있는 ‘각질’일 뿐이다.그러니 화자는 그림을 도화지에 옮기지 못하고 벽 전체를 들어내면서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가매지고 무거워진다”.당신을 알 수 없는 상태,결코 당신을 만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슬픔의 무거움이 여기에 있다. 당신은 도저히 내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육백여 년 동안 겹이 된 그림처럼 “한 오만 년쯤 걸어”서 나에게 온다.당신은 나에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르지만,나는 망설이고 망설인다.당신이 짊어진 그 오만 년의 세월이 온 세상을 다 걸어도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를 가졌기 때문이다.내가 당신의 제안에 혹하여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가”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그 죄란 당신이 걸어온 오만 년을 한순간에 없애버리는 일을 가리킬 것이며,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에게 걸어 온 오만 년의 시간 동안을 다시 거슬러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만 년의 세월과 육백 여년의 시간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당신과의 온전한 만남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그것은 당신의 존재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며,그런 한에서 나는 이 이별의 사태를 나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이병률의 시가 이 이별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능하다.이 무한한 거리,만남의 불가능성을 온몸으로 승인할 때,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일 뿐이다.그것은 당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여행이 아니고,당신을 나의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 일도 아니다.차라리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라고 부를진대,그 방랑은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년을 흘렀던”(‘바람의 사생활’) 바람의 삶이다.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떠도는 이 거대한 방랑은 마치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이되 “자신을 타이르는” 일이다.그렇지 않고서는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이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끝없이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당신과 나의 거리를 끝없이 벌려 놓는 방랑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경로”이자,“문득 부닥친 한 목숨에게/뼈가 아프도록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넣는 일”(‘피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가 알고자 하는 자리에 있지 않을 때,그래서 결코 도달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서 점점 더 멀리 가고자 한다.그것은 당신을 떠나고자 하는 방랑이자 아주 먼 곳에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방랑이어서,오직 당신을 스쳐 지나갈 뿐인 바람의 방랑인 것이다. 4 연애편지 전하기 - 사랑을 실현하는 윤리적 주체들 아픔의 사태가 있다.당신에게 전해지지 않는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자의 삶이 매달려 있는 고통이다.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데,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나의 사랑은 수신자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에서 떠돌거나,결코 응답받지 못한 채 당신의 마음을 비껴나간다.결코 만날 수 없는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를 두고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주체들은 결코 사랑을 실현할 수 없다는 고통과 마주친다.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사랑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들 앞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놓일 것이다. 당신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수긍하고,아픔의 사태를 ‘승인’하는 방식과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여,아픔의 사태를 ‘거부’하는 방식이 그것이다.이병률의 시를 아픔을 승인하고 당신의 주변을 떠도는 바람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김행숙의 시는 아픔을 거부하고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변신담의 세계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일 뿐이다.그러므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이들의 시는 연애시다.당신을 향한 사랑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김행숙의 시에서 사랑은 오직 ‘사랑하라’라는 내면의 명령을 끝까지 추구할 때 실현된다.당신과 나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서,당신과 만나고 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주체는 당신을 향해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주체다.내가 거주하는 세계를 접어 버리고,그 동안 나라고 믿어 왔던 나의 정체성인 얼굴마저도 없애버린다.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이 나에게 어떤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이런 주체에게는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어서,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그리고 모든 것을 한순간에 희생함으로써 사랑을 실현한다.그러므로,‘사랑하라’라는 마음의 명령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주체는 윤리적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달려가 만나고 싶지만 당신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자 역시 사랑을 실현한다.이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다.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이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도 포함된다.나는 모든 것과 함께,사랑마저도 포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사랑을 실현한다.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사랑만은 최후에 남는다.그것은 그가 가진 마지막 것이자 유일한 것이다.그러나 이 사랑마저 버리는 자에게는 사랑마저도 남지 않는다.그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랑이 솟아오른다.사랑의 ‘절대성’을 포기함으로써,부정적으로 사랑을 실현하는 이 주체 역시 윤리적이다. 이 두 윤리적 주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픔의 사태를 넘어선다.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자의 내면에는 오직 열정적 기쁨만이 자리하기 때문에 아픔에 포섭되지 않는다.또한 모든 것,결코 버릴 수 없는 것마저도 버린 자에게는 무한한 슬픔만이 있지만 그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에 그는 아프지 않다.이를 두고 각각 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윤리적 주체들은 아픔의 밖에 거주하는 자들이다.이들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윤리적이다.이는 새로운 ‘감정 윤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윤리적 주체들은 자신들의 기쁨과 슬픔으로 우리 시의 지도 위에 뚜렷한 기압도를 그려 넣는다.소통 불능의 언어를 주고 받는 모든 ‘포스트 모던’한(이렇게 이름붙일 수 있다면) 시들이 그려 넣는 것은 아마 기쁨의 기압도일 것이다.자신의 욕망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시,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시들이 거칠고 파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마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결코 다른 것들을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다른 한편에 한없이 슬퍼하는 시들이 있다.그들은 체념하고,그 체념으로 인해 슬퍼한다.그러나 이 체념은 패배적이지 않다.그들은 기쁨을 포기함으로써,당신과 만나는 사랑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기쁨의 기압도 옆에다 슬픔의 기압도를 그려넣는다.그러니 그 기쁨과 슬픔의 강도와 모양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네모나거나 동그랗거나 하는 다양한 기압도가 지금,현재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 ‘미네르바 정체 암시’ 글 전문

     21일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네티즌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새벽 2시쯤 포털사이트 다음의 논쟁 사이트인 아고라에 ‘read me’란 필명의 네티즌은 “‘미네르바’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인 K씨”라고 글을 올렸다.  ●다음은 read me가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의 전문  오늘같은 밤,  겨울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은  런던의 워털루역 앞 길고 어둡고 지린내나는 지하보도의 벽에  낙서처럼 남겨진 이름 모를 시(詩)를 생각나게 한다.  I am not afraid as I descend,  step by step, leaving behind the salt wind  blowing up the corrugated river...  (우리는 저 암흑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두려워 않으리...) 사실 미네르바 개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글을 안 쓰려 했다.  그런데...  어떤 누구에게서 한밤중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K란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왜?  극비사항인데... K가 바로 아고라의 미네르바 라는군...    K... 01001011...    모교 동기 중에 그런 이름의 희미한 얼굴이 스쳐갔다.  삼십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추억이다.  내 자신 이십여년 넘게 외국생활을 했고,  K 또한 오랫동안 해외에서 일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아마 런던 시티 어디에선가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점심 때면 외로운 이방인이 영란은행 앞 킹 윌리암 거리를 따라 내려와  캐논 거리 코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빨대로 마시며  진로 소주를 병 째 빨아대던 그 겁없던 시절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근처 다이와 보험회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본인 젊은 무리들을  동경 반 경멸 반 흘려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소외감을 잊으려고  로이터 터미널에 빠져들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런던 브릿지 위에서  남쪽 강변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는지도...  내가 워털루 다리 밑 사우드 뱅크의 노점에서 헌 책을 뒤적이고 있을때  K는 사우드와크 다리 양쪽 LIFFE와 FT에서  텔렉스와 컴퓨터와 마이크로필름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두 에트랑제가 아마 그 시간 테임즈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십 수년이 또 지나고...  나는 아직도 부(富)란 무엇이냐는 형이상학의 질문에서  수도원의 늙은 유폐자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K는 그동안 대한민국 재계의 유명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그에 걸맞는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그가 올라가 있다고 했다.  또 그는 훌륭한 사회활동도 많이 하여 존경받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지도 않았다.  구태여 그래야 할 이유나 핑계도 없었다.  동창이란 것 외에 우리의 관심이나 특히 처지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옛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일부러 피하며 살았지만,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쫒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던 날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의 화신을 만난다.  십 수년 전...  테임즈 강변 사우드와크의 미네르바 하우스를 떠올린다.  아테나의 파르테논을 연상시키기에는  너무나 소비에트적인 현대식 건물과 우중충한 거리.  의미도 모른 채 예쁜 이름이 참 안 어울리는구나 생각했다.  마치 낡은 화력발전소 속에 숨어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처럼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갈등과 타협이 이해할 수 없이 얽혀진  그런 모순의, 그런 도시의, 그런 건축의, 그런 이름 이구나...  라는 느낌을 흘려 버리고 지나갔다.  그런 불가사이의 미네르바를 여기 아고라에서 다시 만난다.  좌절과 희망과 평화와 복수와 수학과 역사가 동시에, 모두,  엄청난 파괴력으로 폭발하는 그의 글을.    K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지혜와 용기의 수호신이었다.    삼십여년전 그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어린 시절 6년의 긴 시간을 같이 부대끼며 지냈겠지만,  말 한마디 나눠본 기억도 별로 없다.  이른바 명문학교의 얼마 안되는 수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는 너무나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아마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았던지,  좀 더 촌구석에 살았던지,  좀 더 생활이 어려웠던지 (당시는 모두 못살았지만), 아뭏든...  무척 어른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K를 미네르바의 암호에서 해독한다.  토끼처럼 유순했던 아이가 어느날 외로운 늑대가 되어 돌아왔다.  비밀의 가면 뒤에서 그러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현란한 검술을 뽐내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또는 고탐 시의 억만장자 흑기사 뱃트맨이 어울릴까.  무엇이 그를 정의의 분노에 불타게 했을까.  지금 그 나이와 그 명성에...  뭇 사람들이 선망과 질시를 함께 느껴야 할  지금 그처럼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그가 속한 하이 소사이어티의 남들은  탐욕의 절정에서 더 많은 돈 더 많은 힘을 가지기 위해  금력과 권력을 휘둘러 힘없는 자를 탄압하며 갈취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풍요와 안락의 유혹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저 아래 천민의 편에 서서 저 아래 천민을 위하여  자기가 그 정점에 앉아 있는 자기 발 아래의 피라미드를 부수고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정열과 노력으로...  왜?  모든 것을 가져본 자의 한낱 변덕일까?  청년 시절 하지 못한 초로의 때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 슘페터가 말했듯이 -  자본주의 시장경제 진화의 극대점에서 드디어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의 이상치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체제 내적 모순의 변증법적 완성일까?  자기 자신을 불살라 없애는 생산적 에로스의 충동일까?  생명의 원죄를 드디어 깨달은 종교적 속죄 의식일까?  아니면... 저 멀리 아마존 숲 속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슈퍼 컴퓨터 미네르바의 프로그램에 삑. 삑.. 삑...치명적인 버그를 일으키기라도 했단 말일까?    왜 K는 자기가 있는 이너서클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려 할까?    70년대 폭압과 혼돈의 대학시절,  민주와 자유의 선구적 외침 속에서 나는 K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의 이상주의는 철저한 현실주의 밑에 가려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나와 같이 영원히 무능한 회색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이가 된 이제, K는 미네르바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중학입시를 경험한 세대이다.    나는 국민학생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 어린 나이에  밤 12시까지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리는 내 또래 소녀의 어두운 포토 리포르타쥬를, 어른들이 보는 신동아에서 읽은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비틀즈와 월남전과 두브체크와 꽁방디를 거쳐 오일쇼크와 검은구월단과 아라파트와 바더 마인호프와 그리고 딥퍼플과 마리화나가 대변하는 해방의 시대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주의 사회의 이른바 자유경쟁은 우리를 능력 껏 뛰게 해주는 자유가 아니라 발을 얽맨 노예의 사슬이었고 시험은 우리에게서 상상과 비판을 박탈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차라리 군사교육 교련은 운동장에 나와 공기를 마시고 동무들과 장난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옥은 오히려 자유에의 투지를 키우는 장소이며 전체주의는 내일에의 희망을 지울 수 없다.  우리들의 작은 꿈,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나라 만들거야...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을 거라고.  전쟁도 없고 독재도 없는 나라,  미군 트럭 뒤를 쫒아 뛰며 지아이에게 기브 미 껌,  쵸콜렛 냠냠 손 내밀지 않는 나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영화 속의 이윤복 같은 어린이가 없는 나라,  언젠가 우리는 그런 나라 만들어 행복하게 살거야 라고.    우리 세대가 지난 삼십여년간 이룬 것은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나라가 아니었다.  더 살벌한 경쟁과 더 잔인한 교육과, 더 오만하고 더 탐욕스런 부자들과,  더 가난하고 더 불쌍해진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파트라 불리우는 콩크리트와 플라스틱의 쓰레기 속에서 생존의 무자비한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변태의 사회.  정치인들은 더 추해졌으며, 공직자들은 더 썩었으며,그 부정과 부패를 교활히 감추기 위해 온갖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법과 규제와 관습과 편견이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얽어맨 그런 세상.  어느날 삼십년간 잊어왔던 내 모습을 봤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것은 비겁하고 무식한 돼지였다.    누구를 위해서 우리는 살아왔나...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남겨주겠다는 거짓 희망과 거짓 지식으로 우리 자신을 속여왔다.  현실주의의 미명 아래 힘을 휘두르는 자에게 아부하고 높은 자에게 가까이 붙기 위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권위와 폭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노예사회에 종속시킴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 발전에 이바지함이며 장차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 믿으려 해왔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나의 가장 탐욕스런 이기일 뿐이었다.  나라의 성장은 내 신분상승과 재산형성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만들었노라고 자랑스러이 보이고 싶어한 이 사회는 결국 거대한 분뇨 덩어리였다.    불행하게도 개인의 부의 총합은 국가의 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부란 더해질 수 있는 어떤 스칼라 량(量)이 아니며, 그것을 더하려는 행위 자체가 궤변이다.  - 플라톤, 데카르트, 로크, 케네 -    미네르바는 오늘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거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미네르바이다.  나는 삼십년전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K...  넌 2반이었지, 이과반.  담임이 오래 전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  난 문과반이었지만 제일 좋아하던 분이었지.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었고...  넌 기억나니, 그 시절이?  * * *  이것이 내가 아는 미네르바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비밀한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다.  미네르바가 노란 토끼의 미래를 이곳에 예언해야 했듯이  나는 미네르바의 과거를 이곳에 증언한다.  왜?  미네르바의 현재는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일 미네르바의 신분이 이 정권에 의해 폭로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명박 강만수와 그 수하 한나라당이 내세워왔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데올로기가 그 순간 몰락하며,이 정권 자체가 파멸의 헤어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왜?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기 때문이다.  극상위층의 대표적인 인물 K가 미네르바의 필명으로 일부 상위층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수탈주의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완전한 개.사기이며 날.강도질임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이데올로기의 정강 위에 세워진 한나라당 세력의 정치적 존재 자체는 허구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와 국가에 대한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절대왕조와 중금주의의 야합에 불과한 소위 공급주의 친기업정책,  무한경쟁 약탈경제를 내세운 시대착오적 신자유주의,  교육의 상업화와 룸펜 부르조아지들의 천박한 귀족화,  복지와 후생과 군비의 감소,  그에 따른 국론의 분열과 국력과 국방의 쇠퇴,  실용주의를 빙자한 맹목적이고 고립적인 사대주의,  게다가 오만한 독재와 언론의 독점...  이 모든 것은 국가 파괴를 구성하는 죄목일 뿐이다.    소망교회 장로정권이 절대 충성과 복종을 맹세했던 돈의 신(神)들 중에서도  가장 풍요하고 가장 지혜로운 신 미네르바가 나를 향한 너희의 거짓 예배는 신성모독일 뿐이라며 분노한다.  너희의 주인인 0.1% 부자는 너희들 아랫 것 0.9% 졸부들의 패악한 정치를 부정한다.  너희가 경제를 빙자하여 국민에게서 강탈한 장물들을 나에게 뇌물로 바치려들지 말라. 그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며, 기업가를 위함도 노동자를 위함도 국부를 위함도 국민을 위함도 아니며, 다만 국가를 욕되게 함이라.    기회주의 기득권자들이 국민을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서 그들이 영구독점하는 시장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내세울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며 이상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얼굴 K,  일류학교 일류직장 일류기업의 일류코스를 모두 밟은 초글로벌 리더 최고선진 CEO의 얼굴인 K는 이제 기생충 계급의 일류선진국 데마고지가 숨기고 있는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얼굴 없는 미네르바로 돌아왔다.  이 정권이 미네르바의 가면을 벗기려 함은 이 정권 스스로의 손으로 아포칼립스 제7의 봉인을 뜯어 한 때 마리 앙뜨와네트의 가증스런 무식을 단두했던 그 시퍼런 날이 정권의 목 위에 떨어지도록 자초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택할 길은 오직 하나...  미네르바와 국민들 앞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살려만 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것이다.  오만과 아집이 과연 목숨보다도 소중하지는 않겠지.  국민의 안녕과 따라서 정권의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이명박과 강만수는 국가의 부도를 맞기 전에 정권의 부도를 자백해야 한다.  숙주(宿主)가 죽는다면 기생충도 따라 죽어야 된다는 상식 쯤은 물론 알고 있겠지.  이 정권의 추종자들이 자기 생존의 본능까지 버릴 정도로 최소한의 이성 마저 잃고, 감히 미네르바와 국민들에게 대항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소망교회 이명박 강만수 광신장로들이 성서의 억지해석을 바탕으로 패륜목사들의 꾐에 혹하여 운명을 그르칠까봐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사악하고 탐욕한 장로정권의 자멸에의 충동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A Dieu!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96246&hisBbsId=best&pageIndex=7&sortKey=regDate&limitDate=-30&lastLimitDate=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