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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실한 통독행보와 한반도(사설)

    미리 준비된 계획표대로 착착 진행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독일통일의 행보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한마디로 부럽고 착잡하기만 하다. 불과 6개월전만해도 상상키 힘들었던 조기통독은 지금 확고부동한 눈앞의 현실로 실현되어 가고 있는데도 우리의 분단상황에는 이렇다할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순조로운 통독의 행보를 지켜보며 한반도의 상황을 다시 한번 냉철히 반성하고 재검토해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기 통일의 달성을 위한 동ㆍ서독의 노력은 12일 자유총선에 의해 선출된 비공산 동독정부의 출범과 동독정부를 구성하는 5개 정당의 통일을 위한 「정부계약」합의로 본궤도에 진입했다. 새 동독정부의 「정부계약」은 통일방식의 경우 동독이 분단이전의 5개 주로 재편,서독연방에 가입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는 서독기본법(헌법) 23조에 따르기로 하고 통일 독일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잔류케 하며 양독통화의 환율은 1대1의 환율로 하는 한편 오는 7월1일까지 사회ㆍ경제통합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통일이라는 서독정부의 기본방식에 새 동독정부가 동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독과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부분은 마르크화의 환율부분으로 서독정부는 서독마르크의 대동독 마르크환율을 1대2로 할 것을 고집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협상을 통한 정치적 타결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문제도 반대하고 있는 소련이 잠정적인 나토,바르샤바 동시 잔류안을 내는등 타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어 해결책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며 장애물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동ㆍ서독은 부활절 휴가가 끝나는 17일부터 본격적인 통일협상에 들어간다. 우선 실무급 협상을 거쳐 23일부터 1주일간 동ㆍ서독총리,외무장관회담이 이루어지며 이 자리에서 「통화통합,경제ㆍ사회공동체 창설에 관한 조약」의 최종 초안이 마련되고 2개월내에 조인해 7월1일까지 1단계 통일의 사회ㆍ경제통합이 달성된다. 이와 병행해서 4월 말부터 통독을 위한 전승 4국과 동ㆍ서독대표간의 이른바 「2플러스4」회담이 진행된다. 12월엔 서독국민이 총선을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며 콜 서독총리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후반에 동ㆍ서양독 자유총선이 실시되어 통일 독일의회가 발족되고 완전통일을 달성한다. 동ㆍ서독지도자들이 구상하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통일의 시간표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돌발사태가 없는 한 그런 수순으로 전후 최대의 국제정치적 사건이 될 독일통일이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고 보는 것이 많은 관측통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독일인들은 그것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특히 서독은 헌법의 경우 등에서 보는 것 처럼 분단이후 줄곧 통일에 대비하고 모든 문제를 통일의 시각에서 처리하면서 기회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동유럽의 대변혁,통일을 저해하던 냉전질서의 붕괴라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때 모든 것을 총동원한 신속한 움직임으로 통일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독일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면 그것은 동시에 한반도 통일의 달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ㆍ서독과 남ㆍ북한의 분단은 모두 동ㆍ서 냉전체제의 산물이다. 그리고 냉전의 종결로 분단이 해소되어야 한다면 한반도가 먼저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상황은 이렇다할 어떤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처한 현실과 상황이 다르다면 적어도 통일의 토대만이라도 마련되어야 할 기회가 아닌가. 그 전제조건이 될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필요하다면 강요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기회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쟁같은 일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김일성의 딜레마(특별 기고)

    ◎북한,「폐쇄적개혁」ㆍ「배타적개방」기로에/「정치안정」ㆍ「경제활력」 두 과제사이서 갈등/주민요구ㆍ국제환경 대응할「변화」불가피/소련개혁 결과따라 개방여부 결정될듯 북한에서는 4월15일이 김일성의 생일로 「민족 최대의 명절」이 다. 이날에는 김일성의 「위대성」을 조작하고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는 각종 경축행사가 국내외적으로 성대히 펼쳐진다. 금년 78회 생일날에도 북한의 공식적 발표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신 위대한 수령」이라든가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임을 자축하고 있지만 북한의 현실적조건은 아마도 북한정권 수립이래 「최대의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북한은 6ㆍ25이후 지금까지 주변환경의 충격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변화된 환경에 「창조적」 「주체적」으로 적응해 왔고 주체사상에 기초한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충실히 밟아왔다. ○북한,「최대궁지」에 1953년 스탈린 사망,1964년 국제 공산주의운동 원칙에 관한 중소이념논쟁,1979년 미ㆍ중국 국교수립 등국제환경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주체적 적응방식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1989년6월 중국 천안문에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군중에 총격을 가한 유혈사태를 비롯,1985년에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1989년11월 베를린장벽의 붕괴,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국과 공산권과의 급속한 관계개선,그리고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부처에 대한 전격적 처형사태에까지 직면한 북한은 이제 소련ㆍ동구사회주의 여러나라의 혁명적 대개혁 앞에 더이상 「주체적」 대응방법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당도한것이다. 이와같은 급격한 대변혁의 폭풍속에서 북한은 이제 체제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그것은 현존체재를 어떻게 유지ㆍ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김일성 주체사상의 기초위에서는 찾아내기 어렵게 되었다는데 있다. 기존 체제이 고수를 위해 대내적 통제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따라서 대외적 개혁ㆍ개방을 강행할 것인가를 놓고 그 어느쪽도 김일성 자신이 지금까지 시도해왔고 의도했던 바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은 김일성이 하고자 했던 제반 정치적 목표달성을 보장할만한 조건들이 성숙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체사상」도전 직면 여기에서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계속해서 그 정당성을 입증하고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기존의 김일성 유일사상체제를 고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외적 환경변화 속에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대를 이은 혁명노선」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명분이 어느정도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라는 현실적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체제고수”입장 불변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은 제4의 공산주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통적 마르크스ㆍ레닌주의로부터 변형되고 편향되어 있다. 지난해 9월9일 정권창립 41주년 기념 노동신문 사설에서 『우리 혁명은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전환적 계선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북한사회주의는 중국의「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나 소련의 개방ㆍ개혁적 사회주의,그리고 동구제국의 사회민주주의와도 구별되는 북한 특유의 독자노선(주체노선)을 주창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엄청난 실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의 대변혁속에서도 현존체제를 그대로 고수한다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다. 그 논리는 ①북한의 혁명목표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으며 혁명전략에 있어서도 근본적 변화가 없고 ②40여년간의 사회주의 혁명과정을 거쳐 김일성주체사상이 유일적으로 지배하는 「김일성 한사람의 나라」가 건설되었으며 ③「수령론」이라든가 「대를 잇는 충성」그리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내세워 부자간의 세습체제까지도 합리화할 만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④그뿐만 아니란 아직도 북한 사회내부에는 기존체제에 저항할만한 도전세력의 조직화 가능성이 희박하며 ⑤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주체의 지도적 지침」에 기초한 위로부터의 의도적 변화만이 진척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이를 뒷받침한다. ○「주체적」선택 어려워 이런 면에서 북한은 외래사조를 「잡사상」「썩어빠진 부르주아 생활양식」이라 규정하고 오직 『수령을 충성으로 받들며 수령의 사상과 의지대로 싸워 나가야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고 김일성ㆍ김정일의 영도를 떠나서는 오늘의 번영과 내일의 전도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고 가르치고 있다(노동신문 1989년7월14일). 공식적 공표와 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이 대내적인 사상통제와 사회구조적 폐쇄성을 당장 늦추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40년 넘게 1인1당 독재체제를 지속시켜온 북한 사회가 대변혁의 국제환경에 대하여 기존의 주체노선으로만 대응이 가능할 것인가도 또한 의문이다. 적어도 대외적 측면에서 최근에 있었던 몇가지 징조들은 북한이 대공산권은 물론 대서방에 대해서도 몹시 서두르는 접근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의 대외개방적 움직임은 한국의 북방정책,동구권의 대변혁,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르바초프의개혁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귀결되며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보다 직접적 작용력이 될 것이다. 소련은 최근 북한에 대하여 『개혁흐름을 외면함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가 겨냥하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구축에 중대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련의 언론매체들은 아직까지 제한적이고 조심스런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비해서는 전혀 새로운 입장에서 남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김일성은 빨치산의 한 부대만을 지휘한 소련군대위였다」는 등,김일성과 김일성주체사상을 격하하고 있으며 「항일 빨치산 투쟁」의 성과에 대한 북한측의 과장을 견제하는 내용의 보도를 의도적으로 공개하고 있는가 하면 북한정권 수립과정과 6ㆍ25에서의 소련의 기여를 유달리 강조하고 있다. 그 반면 한소관계에 있어서는 「양국관계에 장애요소는 없다」는 입장변화와 더불어 김영삼-고르바초프 회담과 같은 충격요법을 사용함으로써 현실에 기초하여 북한에 대한 소련의 일방적인 북한지지자세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경고적 태도표명이 점차 노골화 되고 있다. 이는 북한-소련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가 된다는 면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취할 수 있는 활동공간이 그 만큼 좁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민의식 점차 와해 물론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대단히 비판적이고 단호하다. 북한 중앙통신은 「한민전」의 성명을 인용하는 형식을 빌려 『우리의 우방인 소련은 우리 인민의 적과 친구가 되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고귀한 사회주의 주권국가가 남한과 외교관계 수립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을 건전한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김영삼의 방문에 대한 모스크바의 코뮈니케가 사실이라면 이는 소련이 남한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점령을 묵인하고 노태우 군사파시스트 정권을 지원,한반도의 분단상태를 영구화하는데 협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북한중앙통신 90년4월10일)』. 이상과 같은 북한의 비난태도는 한소관계의 진전을 북한으로서는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현실임을 인식하고 있다는증거이며 나아가 한소수교를 계기로 소련으로부터 더욱 드센 개혁ㆍ개방적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상황을 인식한데서 오는 반사적 행동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북한은 개방이냐 고립이냐, 체제고수냐 체제개혁이냐의 갈림길에서 그 어느쪽의 선택도 「주체적」으로 내릴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상과 같은 대외적 변혁흐름과 더불어 체제내적 사회문제들을 안고 있는 북한이 주민들의 사상을 강화하고 「90년대 속도창조운동」과 같은 구태의연한 정치행정적 대중동원운동을 촉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만큼 효과를 볼 것인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평축」이후 현재까지 전주민들을 대상으로 외래문화에 대한 배타심을 길러내기 위하여 정치사상사업을 적극 강화하고 있지만 외래문화의 전파,즉 「제국주의자의 문화적 침투」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풍토는 주체사상이 지금까지 발휘했던 사회정치적 기능이 점차로 약화되고 나아가 김일성ㆍ김정일 지향적인 의식구조마저 와해되고 있다는 한 증거이다. 이러한 북한상황의 특수성을 전제할 때 북한으로서 선택해야 할 체제유지 방법은 산업화 과정에 따른 주민의 기대상승과 외부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개혁적조치(혁명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가 불가피하게 된다. 인민의 요구와 환경적 작용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그 체제 자체의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적 혁명」의 연장 그러나 현실조건은 북한사회의 체제존속을 위해서 개방화,민주화 방향의 변화가 필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우리식대로」사회주의 혁명을 한다는 방법상의 현실적용 차원에 한정시키려 할 것이며 김일성 주체사상이나 체제자체의 본질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북한이 1958년 사회주의적 제도의 개혁이 완성된 이후 일관해 왔던 「보수적 혁명」의 연속된 실험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북한사회는 결국 사회주의의 발전단계에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정치적 안정과 과학ㆍ기술에 바탕한 경제적 효율을 동시에 극대화시켜야 할 상황이며 이 두가지 목표간의 상극적 관계 때문에 이른바 「폐쇄적 개혁」 내지 「적대적 협력」「배타적 개방」이라는 모순 내포적 변화형태를 선택해야 할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신강폭동은 민족분규의 전주곡/소수민족 불씨 중국에 인화

    ◎소ㆍ몽고 개혁바람 편승,불만 표출/반한 감정 쌓인 티베트ㆍ내몽고에도 확산 가능성 중국 소수민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3월 티베트 수도 라사에서 대규모 소요가 발생한데 이어 지난 6일 최서북 변방인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도 위구르인들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인종분규는 이제 민주화 운동과 함께 북경 당국을 괴롭히는 새로운 발등의 불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위구르인들의 폭동에 북경측은 즉각 군대를 투입,무력진압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수백명의 시위군중 가운데 얼마만큼의 사망ㆍ부상자가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지난해 6ㆍ4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안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최대규모의 소요인데다 종교문제까지 포함된 것이어서 그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을 것이란 예측을 낳게 하고 있다. 신강위구르 자치구는 역사상 한족 아랍 터키 러시아 몽고제국들의 격전지였으며 면적은 1백60여만㎢로 중국대륙의 6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 최대의 민족자치구. 1천5백만 주민 가운데 6백만명이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인이며 같은 수의 한족과 기타 카자흐ㆍ타지크ㆍ우즈베크 등의 소수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는 인종의 모자이크 지역으로 유명하다. 특히 동북과 서남으로 소련ㆍ몽고ㆍ아프가니스탄ㆍ파키스탄ㆍ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민족분규 발생의 소지가 많았던 곳이다. 이번 폭동은 소련과 동구 및 몽고의 민주개혁을 발생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더욱이 소련내의 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분쟁,발트 3국의 분리독립요구 시위 등을 시발로 확대되고 있는 인종 분규는 키르기스ㆍ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 번져가고 있으며 이러한 대변혁의 파장이 신강위구르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함께 지난 10년간의 개방ㆍ개혁정책 추진으로 중국의 중부 및 동남지역이 크게 발전한데 비해 서북부는 심한 낙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신강위구르는 물론 티베트ㆍ내몽고등지 소수민족의 반한 감정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88년12월에도 위구르 대학생들이 자치구 수도인 우르무치에서 북경당국의 소수민족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었다. 위구르인들의 이번 폭동은 또 지난 연말 소련ㆍ동구변혁의 국내 파급을 크게 의식,이붕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소수민족 독립을 주장하는 반혁명 분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고 소요발생 가능지역에 대한 군사적 경계를 강화했음에도 일어 났다는 사실이 크게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은 헌법 4조에 「중화인민 공화국은 통일된 다민족 국가이다」라고 명시,그동안 소수민족들에 대해 꾸준히 동화정책을 펴 왔다. 11억 인구인 중국의 민족구성은 지배계층인 한족이 92%정도이고 나머지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돼있다. 때문에 숫자로는 9천만명에 지나지 않으나 이들이 차지하는 지역은 전국토의 60%에 이르고 각종 부존자원이 풍부하므로 국가전략적 가치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북경당국은 강ㆍ온 양면의 정책으로 이들을 회유해 왔고 소수민족 자치구에 한족을 이주시킴으로써 일체감을 조성하려고 애써 왔던것이다. 그러나 인종ㆍ역사ㆍ종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뿌리깊게 내린 반한의식이 완전히 씻겨질 수는 없는 것이고,게다가 국제적 대세인 민주개혁을 거부하는 현중국지도층의 강경ㆍ보수적인 국가 운영 등으로 해서 이들 소수민족의 항쟁은 끈질기게 되풀이될 전망이다.〈홍콩=우홍제특파원〉
  • 전월세 3만가구 7백만원씩 지원/경제활성화대책 1문1답

    ◎실명제 유보한 대신 과세형평 주력/시외전화료 내주 10% 앞당겨 인하/아파트분양가는 여건 성숙되면 자율화 다음은 12개부처장관 합동기자회견 내용이다. ­금융실명제의 유보조치는 사실상의 백지화가 아닌가. ▲이승윤부총리=실명제는 6공이 추구하는 경제정의와 복지사회,공평분배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의 공약사업이다. 그러나 실명제의 유보조치를 결정하기까지 정치적 공약과 침체된 경제를 살리느냐를 놓고 고민 끝에 경제력회복에 우선을 둬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실명제 여파로 증시가 위축되고 부동자금이 투기화하는 등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몰렸으며 일반인들은 정당하게 축적한 자기재산의 노출에 강력히 반발해왔다. 토지공개념의 확립없이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그 성과보다 부작용이 심할 것으로 생각돼 국민경제와 일반국민에 미칠 여파를 줄이기 위해 실명제를 연기가 아니라 유보하는 것이다. ­실명제를 유보한 데 따라 파생될 문제점의 해결책은. ▲정영의재무장관=실명제시행에 따른 부작용은 기업의 투자 의욕감퇴와 유동자금의 투기화,과소비현상 등으로 나타났다. 이를 극복,이제는 각 경제주체가 「경제하려는 의지」를 되살려야 한다. 정부는 곧 2단계 세제개편을 통해 과세형평을 꾀하도록 준비중이다.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것이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할 우려는 없는가. ▲이부총리=87년 이후 부동산 값이 폭등한 것은 86∼89년 호황으로 인한 소득증대와 실명제실시에 따른 것이었다. 부동산 값 안정을 위해 단기적으로 투기자금을 차단하고 경제외적 규제조치 등을 통해 가수요를 강력히 봉쇄해 나가겠다. ­서민주택건설 방안과 아파트 분양가의 완전자율화는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권영각건설부장관=서민을 위한 전월세 지원자금으로 1가구당 7백만원씩 3만 가구에 해택을 줄 계획이다. 담보 능력이 없는 서민을 위해서도 대출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 7년 동안 1백34만원대에 묶여 물량공급에 차질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분양가의 완전 자율화 방향으로 가겠지만 물가에 미칠 영향과 서민의 집값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자율화시기는 이같은 여건의 성숙여부에 따라 정책적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이번 조치로 기업의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인가. 그렇지 못할 때의 추가조치는. ▲이부총리=그동안 기업이 재테크ㆍ부동산투기ㆍ3차산업에 집중투자해 자금의 흐름이 왜곡되고 자본주의 성숙단계의 조로현상마저 나타났다. 이같은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경제활성화를 위한 방법으로 제조업부문의 투자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을 위해 1조5천억원의 투자 및 수출금융지원을 할 방침이다. ­통화팽창에 따른 인플레의 우려는 없는가. ▲정재무=한정된 금융자금을 생산과 수출 등 실물활동에 지원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3월까지 총통화가 전년대비 23.7%가량 늘어났으나 올해 억제선 15∼19%를 달성하도록 통화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 ­수출부진으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데 올해 20억달러에 국제수지 흑자달성이 가능한가. ▲박필수상공부장관=3월까지 통관기준으로 19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이번 조치로 하반기 들어 수출의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경제가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최근 일본 엔화의 절하현상도 일시적인 것으로 보여 투자및 무역금융지원책이 제조업의 생산과 수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공금리의 인하계획은. ▲정재무=물가와 유동성ㆍ국제금리및 저축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금리인하는 어려우며 기업의 금융비용을 덜기 위해 제2금융권의 실질금리를 1%이상 인하토록 유도해 나가겠다. ­전기ㆍ가스ㆍ전화료 등 공공요금의 인하폭과 시기는. ▲이희일 동자부장관=전기료 인하는 최근 유가와 발전원가의 상승으로 어려운 실정이나 산업용의 경우 5% 안팎으로,가정용은 영세민 다가구 주택에 대해 다음주중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하겠다. 가스료도 5%가량 인하할 방침이다. ▲이우재체신부장관=시외전화료를 10%가량 상반기중 내릴 방침이었으나 이를 앞당겨 내주중 인하하겠다. 이로 인해 2천억원 가량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정부가 환율조작개입과 수출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미국과의 약속위반이 아닌가. 92년 자본시장 개방은 연기되는 것인가. ▲이부총리=시장환율제도의 실시로 외환의 실세를 반영하겠다는 것이지 정부가 환율조작에 개입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무역금융금리와 일반공금리와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수출보조책을 쓰는 게 아니며 더욱 과거와 같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 개방일정은 종전과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번 조치에 거론되지 않았다.〈박선화기자〉
  • “과소비의 주범” 수입급증의 원인과 실태(뉴스 추적)

    ◎“칫솔서 고급차까지” 호화 외제품 몰려온다/냉장고 5백ㆍTV 2백% 수입증가/중기도산 속출,일부산업 공동화 현상/관세인하등 개방화가 수입가속화 부추겨 요즘 백화점마다 외제상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미국산 개밥,일제 플래스틱 바가지,서독제 손톱깍이에서부터 1천만원대의 찻잔세트까지 없는게 없다. 이가운에 악어가죽 숙녀화는 57만8천원,타조가죽 핸드백은 2백85만원,영국산 웨지우드 찻잔세트는 1천만원을 넘는다. 또 미제웨스팅 하우스냉장고(5백59ℓ)가 2백36만원,일제 TV(19인치)가 1백98만원,이탈리아제 홈바용 수레는 2백만원에 팔리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이제 고급 외제승용차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고급 BMW승용차(서독산)는 1억4천3백만원이나 하며 수천만원대의 외제승용차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외제차 수입상들은 즐거운 비명이다. 고급 내구소비재뿐만 아니라 외제상품은 이제 술 장난감 칫솔 속옷 젓가락등 우리네 일상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급속한 수입확대에 따라 과소비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수입자유화의 배경및 실태,부작용,앞으로의 대책등을 점검해 본다. ▷수입금증의 원인과 배경◁ 최근의 외제품 범람현상은 정부의 시장개방 정책에 편승하여 외국상품이 국내에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는데다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많은 국민들이 소비성향이 외제 선호쪽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입자유화율(농산물 포함)은 지난 88년 95.4%였으나 89년 95.5%,90년 96.3%로 높아졌고 공산품의 경우 자유화율은 99.7%로 사실상 완전 개방된 상태를 맞고 있다. 마약류ㆍ총포류등 국민건강과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10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92년부터 모든 공산품의 수입이 완전 자유화된다. 따라서 90년대에는 귀금속을 포함한 사실상의 모든 공산품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들어오게 되며 소비자들은 어떤 외제품이든 살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이처럼 수입개방정책을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지난 86년이래 수출이 잘 돼 수입보다 수출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 흑자는 통상마찰을 불러 일으켰고 통화관리에 지장을 초래했다. 때문에 무역흑자관리의 일환으로 수입자유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정부의 관세인하 5개년계획에 따른 평균관세율의 단계적 인하조치도 수입급증의 원인이다. 관세인하 5개년계획은 평균고나세율을 88년 18.1%에서 93년까지 7.9% 내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89년 한해에만 거의 6%포인트 대폭적인 인하가 있었다. 이 가운데 사치성 소비재 품목의 관세는 더욱 대폭적으로 인하돼 88년 30∼50%에서 90년대에는 16%로 떨어졌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87년8월 수입개방 당시 관세율 50%에서 현재 20%로 대폭 인하돼 89년중 고급 외제승용차 수입은 1백84%나 증가했다. 여기에 사치성 소비재의 경우 국내제품에도 같이 적용되는 특별소비세도 대폭 인하,수입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입자유화 실태◁ 수입이 본격 개방된 지난해 우리나라는 지난 81년이후 처음으로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한 지난 86년이래 88년까지 3년동안 연평균 26.1%의 높은 증가율을나타냈으나 89년에는 2.8% 증가에 그쳐 급격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면 수입은 87년에 29.9%를 기록한 이래 88년 26.3%,89년 18.6%의 높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물량기준으로 보면 89년중 수출은 6.0% 감소한 데 반해 수입은 13.9%나 늘어나 수입물량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한마디로 수출증가세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도 수입증가세는 별로 둔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원자재,자본재보다 소비재가 수입을 주도하고있는 현실이다. 지난 86년이루 89년까지 우리나라의 소비재 수입증가율은 연평균 23.5%를 기록,같은 기간의 총수입증가율 18.5%를 크게 넘어섰다. 이에 따라 85년중 8.5%이던 총수입에 대한 소비재 수입비율이 89년에는 10.0%로 올라갔다. 특히 89년 한햇동안 외제 냉장고의 수입증가율이 5백52.3%를 기록한 것을 비롯,가스레인지(2백79.4%) 칼라TV(2백42.3%) 세탁기(2백28.9%) 골프용구(2백5.3%) 승용차(59.3%) 등은 각각 엄청나게 수입이 늘어났다. 내수용 수입과 수출용 수입에 있어서도 88년이후 내수용이 수출용 수입의 증가율을 넘고 있다. 89년에는 수출용 수입이 6.2% 늘어난 데 비해 내수용 수입은 27.2%나 증가했다. 총수입에 대한 내수용 수입비율은 64%에 이르러 84년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부작용◁ 급격한 수입증가추세와 소비재수입의 격증은 우리나라 국민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즉 흑자재원을 고갈시키는 것을 비롯,주요 수출산업의 공동화촉진,대일편중의 수입 구조심화,건전한 국민소비생활 저해등의 부정적인 특면을 낳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인 측면의 대표적 사례는 과소비풍조의 확산이다. 30만원짜리 재떨이가 심심치않게 팔리는가 하면 해외에서 4천원짜리 약이 국내에 수입돼 4만원으로 둔갑해 팔린다. 3천만원대으 모피 패션쇼가 열리는 일류호텔은 항상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만원이다. 과소비 풍조는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은 물론 인플레 및 제조업공동화 현상의 우려를 낳는다. 망국의 외제병을 국내 제조업체가 앞장서서 유발하고 있는 현실은 부끄러울 정도다. 국내대기업이 자사생산품과 같은 품목의 외제품수입에 앞장서는 사례가 그것이다. 대우ㆍ기아ㆍ쌍용등 자동차 업체가 외제차 수입으로 짭잘한 재미를 보고 있고 위스키시장이 개방되자 OB,진로등 주류업계도 수입선이 되고 있다. 해태ㆍ농심등 제과업체도 초콜릿,카라멜까지 수입해 구색맞추기를 이유로 판매대행에 재미를 붙였다. 가전제품의 경우 삼성ㆍ금성ㆍ대우등 가전3사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제 대형냉장고ㆍ컬러TVㆍVTRㆍ음향기기등을 수입하고 있다. 또 수출촉진을 위해 설립돼 정부의 정책금융지원을 받아 성장한 종합무역상사들이 최근들어 수출보다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에 치중,수입증가세를 주도해 비난받고 있다. 이처럼 과소비 열풍을 타고 쏟아져 들어오는 고급소비재들 때문에 상당한 수준에 있던 국산소비재들이 시장침식 위협을 받고 있으며 수입개방때문에 생존기반을 잃고 있는 국내업체들의 도산폐업이 속출,산업피해 구제신청을 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내수용 수입가운데 자본재수입은 수출경기의 회복에 따라 수출용으로 전환될 수도 있고 자본재수입 자체는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여,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수출이 늘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내수용 수입의 증가는 무역흑자기조를 위협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고있다. 또 이제까지 수출주종 품목이었던 철강ㆍ자동차ㆍ기계ㆍ섬유등의 수입이 크게 늘고있는 것은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해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정종석기자〉
  • 세계10위 자원국… 공업화 서둘러

    ◎몽고 울란바토르서 우홍제 특파원 제2신/석유ㆍ구리등 매장풍부… 기술취약/“한국은 발전모델”경험이전 희망/본격 경협위해 항로ㆍ통신 불편 해결돼야 몽고의 당정치국 기관지인 우넨(진리)은 27일 「몽고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외교수립에 관한 공식 소식」이란 긴 제목의 머릿기사로 한ㆍ몽 수교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몽고언론이 대한민국(부크트 네람바흐 솔롱고스올스)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은 지난 1924년 몽고정부 수립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남조선(굼노드 솔롱고스)으로만 표기했을 뿐이다. 이 신문은 또 1페이지에 걸친 한국특집기사를 통해 인구ㆍ국토면적등 기본통계에서 6ㆍ25사변,87년의 대통령선거등 정치사회현황 소개와 함께 한국은 빠른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 바람직한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극구 찬양했다. 몽고가 한국과의 수교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경제협력이다. 몽고는 89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천1백달러로 한국의 4분의 1도 안되며 광활한 초원을 이용한 목축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양 1천4백만마리를 비롯,말ㆍ낙타등 가축이 2천3백만마리에 달해 인구 1인당 12마리정도를 키우는 셈이다. 몽고는 이같은 1차산업 위주의 구조를 탈피,공업화를 서두르기 위해 개발 경험이 풍부한 한국과 오래전부터 수교하기를 열망했다는게 이곳 외교소식통들의 전망이다. 몽고에는 구리ㆍ몰리브덴ㆍ석유등이 매우 풍부해 세계10위의 부존자원국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기술ㆍ자본ㆍ노동력의 부족으로 제대로 개발해오지 못한 상태이며 한국과의 경협을 통해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울란바토르 시민들은 대부분이 서울 올림픽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정도로 생각했으며 올림픽이후에야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가는 경제대국으로 보고 있다는게 이곳으로 최근에 유학온 유일한 한국인인 계노이씨(57ㆍ전 한국마사회감사)의 말이었다. 그렇지만 몽고가 완전한 내륙지방이므로 수송문제등 교역을 비롯한 경협활동의 장애요인이 적지 않다. 현재 서울에서 몽고까지 서신이 도착하려면 20일 이상 걸리며 전화통화는 모스크바∼뉴욕을 거쳐야 하므로평균 1∼2시간,때에 따라서는 아예 통화를 못하기도 한다. 항로도 모스크바 북경등을 거쳐야만 하는 등 불편한 점이 매우 많다. 이번 양국수교회담때 관광객을 위한 서울∼몽고간 전세기운항 방안도 거론되기는 했으나 문제는 몽고측이 이러한 애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상의 노하우가 거의 축적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한편 몽고의 민주개혁은 주로 소련ㆍ동구ㆍ영국등지서 교육을 받은 40대 혁신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유학생수가 전체 인구(2백만명)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편이어서 민주화와 함께 개방ㆍ개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요즘 들어서는 오치르바트 국가원수는(47)를 주축으로한 신정권이 들어선뒤 울란바토르시내에서는 가두시위를 거의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또 몽고의 집권공산당인 인민혁명당은 오는 4월10일 전당대회를 개최,당헌개정 및 다당제도입등 민주개혁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당대회는 당초 창당 70주년을 맞는 내년 6월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급속한 국내민주화 추이를감안,앞당겨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몽고 고원에 가득한 민주화열기와 함께 수도 울란바토르 50만 주민들은 옛 영광을 되새기기 위해 너나할것 없이 칭기즈칸 배지를 달고 민족적 긍지를 과시하는가 하면 한곳밖에 없는 외국인 전용상점에서 물건을 살 달러를 구하느라 자국화폐(투그리크)의 대달러 공정환율이 1대3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에게 1대25로 바꿔주겠다고 제의하기도 한다.
  • 북방외교/아주 사회주의 무대 첫 “상륙”/한­몽고 수교의 의미

    ◎중간 단계 안거치고 예상밖의 급속 성사/중국ㆍ베트남 등 「수교 도미노」 기대 우리나라가 몽고 인민공화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그동안 공략이 힘들게 여겨졌던 아시아 사회주의국가와는 처음으로 수교하게 되었다는데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몽고와의 수교로 이제 우리나라가 외교관계를 맺어야 할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는 중국을 비롯,베트남ㆍ라오스ㆍ캄푸치아 등 4개국 뿐이다. 한­몽고 국교수립은 특히 몽고가 지난 수십년 동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데다 북한과도 상당히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에서 한ㆍ중ㆍ소 관계 정상화 및 이에 따른 남북 관계개선도 한 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이번 몽고와의 국교수립은 다른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에서도 그랬듯이 영사관계나 상주대표부 설치 등 중간단계 없이 곧바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수교방식이 완전 정착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ㆍ베트남 등 4개국도 우리와의 관계정상화 문제에 능동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일종의 「대한 수교 도미노현상」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동구권 국가중에서는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ㆍ체코ㆍ불가리아 등 5개국과 수교를 맺었기 때문에 현재 동독ㆍ루마니아ㆍ알바니아 등 3개국만 남았으나 이들 국가도 대부분 대한 수교를 상반기내에 달성하겠다는 적극성을 띠고 있어 대동구권 수교는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상태다. 결국 우리 북방외교의 중간목표지점은 짐바브웨ㆍ탄자니아ㆍ잠비아 등 친북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남아프리카 「전선국가」들과 쿠바 등 중남미의 미수교 사회주의 국가들로 재편성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일련의 수교현상은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현격히 고양되고 있음을 뜻하며 우리외교에도 이제는 그동안의 미ㆍ일 등 서구 편향적인 「절름발이 외교」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전방위 입체외교」로 체질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몽고는 지금까지 유엔 및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등 국제기구에서 철저히북한편을 들면서 우리측을 괴롭히는 친북한 외교노선을 견지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몽고와의 수교는 예상치 못한 일대경사로 볼 수 있다. 양국간의 수교협상 움직임은 주일한국대사관과 몽고대사관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 16일 주일몽고대사는 이원경 주일대사에게 급히 연락,한­몽고간 수교를 제의하는 한편,이를 위해 우리측 정부대표단의 방몽을 초청하는 몽고정부측의 의사를 전달했다. 이러한 연락은 즉각 동구순방중이던 최호중 외무부장관에게 보고됐고 최장관은 지난 19일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한­유고 수교 축하리셉션에 참석한 카슈바트 주유고 몽고대사에게 양국간 수교에 관한 정부의 기본입장을 전달,이번에 수교의정서 서명에까지 이르게 됐다. 한마디로 대몽고수교는 북방외교의 종착역격인 중소와의 관계개선에 확실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소련측은 우리측의 방소대표단에게 양국관계를 상주대표부 설치로 격상시키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대소 관계개선은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또 몽고와의 수교는 중국측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여하튼 이번 몽고와의 수교는 북한측에 개방을 유도하는 강한 압력으로 작용함과 동시에 『대한 수교는 국제사회에서 냉엄한 현실』이라는 인식을 다시한번 심어줬다고 평가할만 하다.
  • 한소경협시대 본격 “발진”/양국 경제교류의 진도 어디까지

    ◎포괄논의 벗어나 분야별접촉 활기/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도 크게 기여/소 개혁 성패 불투명… 정상궤도 진입까진 난제 “첩첩” 한소간의 경제협력템포가 한결 빨라지고 있다. 방소중인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전격회담과 한소간 총영사관개설합의등 정치권에서 메가톤급 뉴스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23일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2차 한소경제인합동회의,그리고 럭키금성그룹계열인 럭키개발의 레닌그라드개발사업참여 발표등은 양국 경협관계가 급진하고 있는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한소경제인합동회의는 소련경제인들이 23명이나 대거 참여,우리나라 경제인들과 실질교역과 투자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상담을 벌일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모스크바에서의 1차회의에 이어 열린 이번 한소경제인합동회의는 이제까지의 포괄적인 경협논의에서 벗어나 교역ㆍ산업ㆍ투자ㆍ기술 및 금융등 3개분과 위별로 심도있는 협의를 벌임으로써 양측의 경협사업발굴이실질차원으로 발전될 전망이다. 국민생활 향상이라는 개혁ㆍ개방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소련은 이번회의에서 자기네들의 군수산업을 민간소비재 산업으로 전환하는데 한국기업의 참여를 요청했다. 또 지난 1월 현대종합상사에서 이어 대우ㆍ삼성물산ㆍ럭키금성상사등 3개 종합상사에게도 모스크바지사 설치허가서를 공식 전달할 예정이다. 이같은 경협관계진전은 소련이 야심적으로 추진중인 시베리아 극동개발사업에 우리나라 대기업을 끌여들이기 위한 일환이지만 우리측으로서도 새상품시장확보와 시장다변화를 추구할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이해타산이 딱 맞아떨어진 결과로 이해된다. 한소경협이 이처럼 「봄바람」을 맞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관계와 맞물려 양국경제가 서로 보완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은 극동지역개발을 위해서는 한국의 경제발전 및 국제시장진출 경험이 절대 유익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소련극동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개발에 참여,안정된 자원공급원을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소련정부가 나홋카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경우 한국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양호하다는 것이 우리업계의 분석이다. 이번에 럭키개발이 소련의 최대 종합철강ㆍ중공업체인 이조르스키자보드사와 함께 레닌그라드개발 사업에 참여키로 합의한 것은 소련정부가 한국기업을 평가한 좋은 예로 보여진다. 레닌그라드개발 사업에는 럭키개발과 이조르스키사외에도 세계최대의 엔지니어링업체인 미국의 벡텔사까지도 참여,한ㆍ미ㆍ소 3국기업간의 기업공동진출방식을 띠고 있어 이례적인 성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와 함께 대소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최근 소련을 방문,시베리아 톨보스크의 대규모 석유화학플랜트건설에 참여키로 합의한 사례 등은 그동안 다각적인 한소경협관계 증진 움직임이 이제 피부로 느낄만큼 가시화되고 있는 증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대소수출 주종품목이 섬유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어 선박ㆍ전기ㆍ전자ㆍ신발ㆍ비누ㆍ치약등 소비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 수입은 선철ㆍ니켈ㆍ석탄ㆍ원면ㆍ수산물등 원자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앞으로 양국간 교역확대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한소경협이 안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양국간에 아직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고 한국기업들의 소련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김영삼 최고위원의 방소를 계기로 오는 7월쯤 양국간 총영사관개설과 함께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침체ㆍ인플레ㆍ재정적자와 민족분규에 따른 사회불안으로 고르바초프가 내건 경제개혁의 성패가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한소경협이 완전한 정상궤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여러 난제가 남아있다. 소련측은 현재 방소중인 김최고위원 일행을 통해서,또 방한중인 골라노프소련연방 상의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소투자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지나치게 소련진출에 신중한 한국기업들에게 다소 불평을 표시 할 정도로 우리나라와의 경협에 능동적인 자세로 전환해 있다.그만큼 소련측은 정식수교같은 공식관계보다 경제협력강화를 통한 실리추구의 입장을 중시하고 있는 느낌이다. 초기단계인 한소간의 경협에 성급한 기대를 갖는 것보다는 국제정치,외교에의 파급효과를 감안해 가능한 분야부터 단계적인 경협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시점에 온 것 같다.
  • 중기 공제기금 대출/새달부터 완전 개방

    중소기업공제기금의 대출한도가 크게 늘고 문호도 완전 개방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공제규정을 개정,오는 4월13일부터 공제기금대출한도를 현행 1억2천6백만원에서 2억1천만원으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와함께 현재 업종별 협동조합에 속한 중소기업에만 대출혜택을 주던 것을 전 중소기업체로 확대하는 한편 대출자격도 가입후 1년에서 6개월로 완화했다.
  • 몽고,외국인 투자 허용/5월부터/진출기업엔 3년간 면세 혜택

    【울란바토르 AFP 연합】 몽고는 22일 공산당 1당 독재 종식과 때를 같이해 획기적 입법을 통해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문호를 개방했다. 오는 5월1일부터 발효될 이 법률은 완전한 외국인 소유기업의 영업활동을 허용하고 해당 외국기업의 영업개시일로부터 3년동안 각종 세금을 면제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은 또 외국인 소유자산의 국유화를 금지하고 몽고 정부가 외국인들의 기업활동 방식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마타빈 펠지 몽고 부총리는 이날 66년에 걸친 몽고인민혁명당(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키기 위해 소집된 인민대회에서 이같은 법률을 상세히 설명했다.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의 몽고대표인 펠지부총리는 몽고가 이같은 법률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에서와 같이 외국투자에 대해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몽고가 앞으로 외국투자에 대해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을 것이며 몽고의 국영기업 및 개인과의 합작투자는 물론 완전한 외국인 소유기업의 설립도 허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 무역보복 내년 5월까지 모면/한ㆍ미 쇠고기협상 타결의 의미

    ◎“개방땐 축산업 붕괴… 농산물 수입중단”배수진/미도 보복보다 실익 선택… 개방일정 요구 철회/남은 기간동안 농가육성ㆍ구조조정 서둘러야 한미쇠고기협상이 21일(미국시각) 극적으로 타결됨으로써 미국의 무역보복을 당분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협상은 미국이 오는 4월27일을 시한으로 무역보복리스트를 작성중인 가운데 열려 우리나라에는 사실상 마지막 접촉이었고 미국측에서도 무역보복을 취하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실익을 위해 진지하게 협상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측은 당초의 강경방침을 완화,우리측이 제시한 카드중 상당부분을 수용했고 우리는 최소한 91년 5월까지는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개방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28일 우리나라의 쇠고기 수입제한조치를 불공정무역행위로 판정할 당시 우리측에 보복시한인 오는 4월27일까지 전면 수입개방을 요구하는등 강경일변도 였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3∼5년 이내에 자유화일정의 제시를 주장하는 선으로 강도를 낮추었고 최근에는 우리가 오는 97년 7월까지 농산물수입을 완전자유화하도록 한 GATT의 결정에 쇠고기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등 적극적인 협상자세로 전환했었다. 이는 쇠고기전면수입개방이 우리의 취약한 축산기반을 무너뜨리고 정치ㆍ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임을 들어 무역보복을 감수하더라도 수입개방을 허용할 수 없다는 우리의 완강한 입장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미국이 무역보복을 취할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우리의 으름장과 미국에서 볼때 우리쇠고기 시장이 일본다음으로 크기 때문에 이를 잃지 않겠다는 계산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이같은 여건과 입장에서 이번 회담에 나서면서 우리측에 명시적으로 자유화일정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97년 7월까지 수입자유화를 전제로 89년의 계약기준 수입량(6만5천t)을 기준으로 올해부터 92년까지 수입쿼타를 소비증가율을 감안,미리 정하고 92년이후의 쿼타는 계속 협상을 통해 결정해 나가자고 요구했었다. 또 관광호텔,레스토랑용 고급쇠고기 수입창구에 축산물유통사업단을 배제하며 수입상 기술적문제등을 풀기위해 업계간의 대화를 주장했었다. 우리측은 이에대해 수입쿼타를 지난해 실제 수입량 5만t을 기준으로 수급상황에 따라 매년 10%내외에서 늘리며 관광호텔 및 레스토랑의 쇠고기수입에서 축산물유통사업단을 제외시키는 것은 사실상 수입자유화라며 반대입장을 보였다. 또 GATT 패널보고서에서 인정한대로 쿼타제가 운용되는 한 국영무역형태로 축산물유통사업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이와 함께 앞으로의 수입개방시기 및 방법등을 결정하기 위해 양국 업계대표로 우리축산업에 대한 공동조사단을 구성할 것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열린 이번 협상에서 양국대표단은 팽팽히 맞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자 수석대표만의 최종담판에 들어가 진통끝에 21일 하오8시30분(미국시각) 타결을 끌어낸 것이다. 합의된 사항중 쇠고기 시장개방일정은 미국측이 GATT BOP위원회의 보고서대로 97년 7월내에 구체적인 쇠고기시장개방일정을 제시하라고 마지막까지 주장했으나 GATT규정에 일치하겠다는 기본입장만을 고수한 우리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수입쿼타증량문제는 미국측이 올해 7만5천t을 시작으로 매년 20%씩 늘릴 것을 고집했으나 지난해 통관기준수입량 5만7천t을 기준으로 90년 쿼타를 결정하자는 우리측 주장이 수용돼 90년 수입량은 지난해보다 1천t 증가한 5만8천t으로 합의됐다. 이밖에 관광호텔ㆍ식당용 쇠고기 직거래문제는 미국이 우리측에서 과거에 관광용품센터에서 수입했던 것처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데 비해 우리는 국내 수입제도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현재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요자와 수입업자가 연결돼 쇠고기를 공동입찰형식으로 구매하는 동시 입찰구매방식(SBS)을 제시,이 방식에 의해 수입기관을 확대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이번 협상이 이처럼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한 명시적인 일정제시가 없이 타결됨으로써 미 육류업계의 청원으로 비롯된 미국의 보복조치를 가까스로 피하게 됐으나 양국 공동조사단에 의한 우리 축산업현황조사가 끝나는 91년 5월이후에는 그 결과에 따라 다시 개방일정등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수입쿼타는 매년 증가하지만 최소한 91년 5월까지는 보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이라도 낙후돼 있는 국내축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위해 지원책을 강구하고 개방화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향적인 자세와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채수인기자〉
  • 한ㆍ미 쇠고기 협상 타결/개방일정 미룬 대신 수입쿼타 늘려

    【워싱턴=김호준특파원】 한미 양국간의 최대 통상현안인 한국내 쇠고기 시장개방협상이 타결됐다. 이로써 한국의 쇠고기 수입규제와 관련한 미국의 대한 보복위협은 일단 제거됐다. 한미양국은 21일 한국의 쇠고기 수입자유화 문제를 당분간 거론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쿼타를 오는 92년까지 매년 4천t씩 상향조정해 나가기로 합의한 후 작년 이래 계속해온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워싱턴의 미무역대표부(USTR)에서 가진 이번의 마지막 협상에서 한국은 쇠고기 수입쿼타량을 작년의 5만7천t에서 금년 5만8천t,내년 6만2천t,92년 6만6천t으로 각각 늘려 나가는 한편 93년 이후 문제는 92년7월 이전에 양국이 다시 협의를 시작해서 결정키로 했다. 양측은 오는 97년까지 한국의 쇠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을 완전 개방하도록 한 작년 10월의 GATT BOP위원회 결정에 유의하기로 합의,미측이 다시 한국에 대해 쇠고기 시장 개방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지난 1월 서울회담에서 미측은 쇠고기 수입자유화 일정의 즉각제시를 요구한 반면 한국측은 양측 농가 보호를 위해 이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서 회담이 하루만에 결렬됐으나,이번엔 한국이 수입자유화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GATT의 권고 사항은 유의하기로 약속함으로써 타협점을 찾았다. 양측은 공동 조사단을 구성,한국 축산업의 취약성이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일정에 미칠 영향을 검토키로 했다. 양측은 또 한국의 쇠고기 수입 쿼타량 중 7% 이내의 범위에서 동시매매입찰 제도를 적용,응찰대상에 기존의 축산물 유통사업단 이외에 축협ㆍ한국냉장ㆍ관광용품센터 등을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 대 동구권 외교 마무리 단계에/한­체코ㆍ불가리아 수교의 함축

    ◎북한개방에 「외압」 작용… 관계개선 촉매 역할/첨단기술ㆍ자본공여 요청이 부담스러운 「짐」 우리나라가 이번에 체코및 불가리아와 수교를 맺게 된 것은 7ㆍ7선언 이후 꾸준히 추진해온 정부의 북방외교가 본격 개화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 국가와의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은 또 그동안 말로만 떠들어왔던 「전방위 입체외교」가 완전 정착됐음을 의미한다. 즉 우리 외교가 동서 양진영을 대상으로 경제ㆍ통상 등 비정치 분야에서의 제한된 교류에서 벗어나 정치ㆍ외교를 포함한 다각적인 협력과 교류로 확대 발전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지난해 2월1일 헝가리와 역사적인 첫 수교를 맺은 이래 폴란드(11월),유고(12월) 등과 국교를 수립했고 이번에 체코및 불가리아와도 수교를 맺음으로써 대동구권 외교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풀이된다. 동구 8개국 중 현재 우리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는 동독ㆍ루마니아ㆍ알바니아 등 3개국 뿐이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오는 28일 미트라우외무차관을 단장으로 한 수교교섭대표단을 서울에 보내 우리측과 수교일정에 합의할 예정이다. 또 동독은 제3국의 외교경로를 통해 대한수교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으나 오히려 우리측이 통독과정의 추이에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한ㆍ동독수교는 시간문제라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동구에서는 비교적 이데올로기 성향이 강한 알바니아만 대한수교를 주저하고 있으나 알바니아도 최근 개방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 조만간 관계개선의 물꼬를 틀 것으로 전망된다. 동구권의 이러한 「대한수교 도미노현상」은 결과적으로 한­중소 관계개선에도 커다란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를테면 동구 대부분 국가들의 잇따른 대한수교는 중소에 외압으로 작용,『한국과의 수교는 국제정세의 흐름에서 볼 때 당연한 현실』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같은 외교전략은 우리 정부가 북방외교를 추진할 당시 수립했던 장기계획의 일환임은 분명하다. 특히 소련과는 방소 중인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이 전격적으로 고르바초프대통령과단독회담을 갖고 한소수교 일정에 관해 깊숙한 얘기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져 연내수교의 장미빛 기대를 자아내고 있다. 대동구권 수교는 또 북한의 개방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과 이에따른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수교는 우리 정부의 유엔외교에도 한 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여겨진다. 최호중외무부장관이 이들 수교 대상국가의 외무장관들과 회담을 가질 때마다 이들로부터 『한국의 유엔가입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전달받은 사실은 정부가 유엔가입을 신청만 한다면 금방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번 수교를 계기로 다른 미수교 사회주의국가와의 관계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장관도 서남아및 동구 등 5개국 순방에서 인도 파키스탄 유고 등 비동맹주도국에 이러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몽고 짐바브웨 탄자니아 등 친북한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바로 이 점은 화해와 협력의 신데탕트추세를 바탕으로 우리외교가 상승기류를 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대체코및 불가리아수교는 이들 국가가 한국의 경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자본과 첨단과학기술 등의 투자를 강하게 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우리측에 새로운 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판단된다. 동구권국가들은 한결같이 자국경제의 낙후성을 우리측에 호소하면서 『경제협력의 최적격 파트너는 한국』이라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서슴없이 털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여하튼 북방외교가 예정된 수순에 따라 중소와의 관계개선및 남북한간 평화구조정착이라는 최종목표를 향해 쾌속순항하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한종태기자〉
  •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취임사 요지

    ◎“아시아­유럽에 「평화공동체」 건설/소 영토밖선 무력사용하지 않겠다” ▲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만이 소련과 같은 국가가 전체주의적 관료주의체제에서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국가로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요한 업적은 민주주의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개방은 체르노빌 원전사건,아르메니아 사태,자연재해 그리고 세계시장의 급격한 침체등 여러가지 악조건으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우리의 투자정책에 있어 실수로 인한 손해는 조금도 없다. 대형손해 재난은 인종분규 과정에서 심지어 이 분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관리들의 직무태만으로 인해 발생했다. 변화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나는 그늘에 가려져 있는 반페레스트로이카 세력들의 방해적ㆍ파괴적 책동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상황의 극적인 요소,문제의 복잡성과 이례성,사회의 혼란상태를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당황할 이유는 없다고 보며 더구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보다 급격한 경제개혁을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우리는 경제개혁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 각종 우려와 번거로움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의 독점을 폐기하기 위한 법률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경쟁력을 가진 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국가는 경제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믿을만한 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이윤과 개인소득에 대한 합리적인 세제와 소련 국영은행에 의한 금융관리와 통제,경제의 실제상황에 상응하는 이자율 등이 책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점증하는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 경향에 맞서 싸울 것이며 이 나라의 통합을 위해 힘쓸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나는 실생활과 우리 연방의 개발 필요성,그리고 국민 개개인에 상응하는 새로운 연방협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새로운 연방협정은 각 공화국의 특수한 상황과 가능성을 고려해 다양하게 손질돼야 한다. 연방헌법에 보장된각 공화국의 주권과 연방탈퇴를 포함한 자결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최고회의는 빠른 시일내에 연방탈퇴문제를 검토,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대통령과 연방회의가 최고회의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군사적 대결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에 우선이 주어져야 하며 대통령의 활동중 필수적인 요소는 이성적인 충분성과 새로운 군사 독트린,그리고 군대에 대한 우려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방위정책의 향도역을 하는 것이 돼야 한다. 군대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시행할 것이며 우리나라는 앞으로 공격을 받지 않는한 의회의 승인없이 우리의 영토밖에서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있게 될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미소관계의 개선을 위한 새로운 조치는 물론 세계정치의 긍정적 흐름을 통합하기 위한 양국의 중요한 기여 등의 주요한 결정이 준비되고 있다. ▲독일문제도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이 문제는 오늘날 유럽정치에 있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통일을 향한 독일인들의 천부적 권리를 인식하는 것은 독일영토로부터 발생하는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그리고 영원히 배제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4개전승국의 권리,국경불가침,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불허,2차대전의 결과에 기초한 평화조약의 필요성등 기타 문제는 모두 이 문제에서 파생한다. ▲대통령의 권한행사와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 나는 인민과 그들의 의사ㆍ도덕성ㆍ지혜ㆍ지성ㆍ상식에 의존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려운 시대를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결하면 이 난관은 극복될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과 낙담을 불식하고 우리의 위대한 힘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소련 인민과 소련내 모든 기타 인민들은 그들의 모국을 소생시킬 것이며 페레스트로이카와 사회주의적 혁신의 길을 통해 그 임무를 기필코 달성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문제에 관해 말하면 나는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서 발표한 모든 제안을 실행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평화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유럽­아시아 전대륙을 하나의 안전체제로 통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 “주체사상에 회의” 민단전향 러시(흔들리는 조총련:상)

    ◎북 「경비」조달·충성강요로 이탈 가속화/재일동포 68만중 한때 45만가입,위세떨쳐 최근한국의 위상변화 따라 20만으로 “위축” 소련·동구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개방물결은 마침내 재일조총련 사회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북한체제를 아무런 비판없이 옹호해온 조총련계 동포들중 일부 인사들이 「김일성독재타도」를 내세워 궐기대회까지 준비하고 있어서 조총련 조직은 물론 북한체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크게 주목되고 있다. 변혁기운이 감도는 조총련의 어제와 오늘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재일 한인 사회에는 38선과도 같은 무형의 분계선이 있다.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두 조직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갈라진 「45년 분단사」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패전으로 귀결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조국의 해방과 본국으로의 귀국을 갈망하고 있던 재일한국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에 살고 있던 2백30여만명의 한국인 대부분은 해방조국에 돌아 갔으나 60여만명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본에 계속 남게 되었다. 이러한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냉철하게 사태를 주시하던 일단의 재일 한인들은 1945년 8월20일 도쿄에서 「재유조선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중심인물은 이해삼·권혁주·권일 등이었다. 이후 22일에는 시부야(삽곡)에서 구니모토 다케요시(방본무의·한국명은 미상)를 중심으로 「재일조선동포귀국 지도위원회」가,이타바시(판교)에서는 최학림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대책위원회」,또간다「신전)의 YMCA에서는 「재일본조선인 거류연맹」등이 각각 결성됐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해방된 조국이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인하여 남북이 분단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대동단결을 부르짖고 좌우사상과 신앙등 일체를 초월하여 하나의 대표적 민족단체로 뭉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실이 1945년 10월15일 도쿄에서 일본각지의 준비위원회 대표 5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결성된 「재일조선인연맹」(조연)이었다. 조연의 당초 결성목적은 정치적 색채가전혀 없는 재일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일한인들을 위한 대표적인 조직이었던 조련은 이후 급격하게 좌경화되고 만다. 조련의 집행부가 이처럼 일본공산당소속 한인들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이 조직은 일본공산당 외인부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한신(판신)교육사건」 「메이데이 투쟁」등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민단과 일경·점령군을 상대로 충돌을 빚어 오던 조련은 1949년 9월8일 일본정부로부터 전격적인 해산통고를 받는다. 조련간판은 내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재산을 몰수당한데 이어 조련계 학교마저 폐쇄되었다. 조련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에따라 조련중앙은 해산통고를 받은 즉시 또다시 「조선인민해방연맹사무소」라는 간판을 급조해 붙였다. 한편 조련의 고문이던 김천해는 해산취소를 제소했으나 행정소송의 방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달리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게 되자 이들은 지하로 잠복했다. 조련의 지하간부들은 국제공산주의 노선을 따를수 있는 새로운 조선인단체협의회를 만들려던 중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비상체제로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을 결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조련계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국방위위원회」(조방위)를 조직,미일안보조약반대·한일회담분쇄운동등을 전개했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공산당은 53년7월 구조련의 주도권을 민전이 장악하도록 사주했다. 이에따라 민전노선을 고수하려는 ............와 북한지지파로 나누어 지게되었다. 그뒤 민전과 조방위를 해산,「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조직이결성되었으며 이것이 반민족적인 폭력조직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약 67만8천명의 재일동포가 있다. 이들 가운데 41만명이 민단계이며 조총련계는 20여만명으로 집계된다. 나머지 6만8천여명은 그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조총련계 한인 숫자는 한때 45만명에 이른 때도 있었으나 최근들어 급격히 감소,지금은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역전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적 발전,국제적 지위의 상승에 따라 전향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생필품및 국가운영 경상비의 조달을 위해 조총련계 사업가들에게 무리한 자금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으나 일본에서의 민단계와 조청련계 사이의 벽은 아직 높다. 이것은 남북이 통일되어야만 완전히 없어질 마음의 경계선인 것이다. 〈도쿄〓강수웅 특파원〉
  • 한미 통상마찰 재연 조짐/미 업계서 「우선 협상국 지정」 압력

    오는 4월 미행정부의 제2차 우선협상대상국(PFC) 지정을 앞두고 미국업계에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어 향후 미국의 한국통상압력이 격화될 전망이다. 미행정부가 지난 2월 실시한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에 관한 업계여론조사 결과 한국을 지정해줄 것을 요청한 업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경제기획원이 밝혔다. 국별로는 한국이 20개업체,일본이 15개업체,유럽공동체(EC)가 10개업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경제기획원은 미업계의 이같은 대한시각이 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코자하는 미업계의 불만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고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펴나가기로 했다. 이와 관련,이형구 기획원차관은 이날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주한미상공인 정기총회에 참석,『한국은 상품시장,서비스,금융 및 외환등 각분야의 국제화와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미간의 통상관계는 양국산업간 협력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대화와 협조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양국은 현재 농수산물,통신,지적소유권 등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오는 97년까지 쇠고기시장 완전개방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제시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과 국내축산농가보호,관세 및 무역일반협정(GATT)의 예외조항 등을 들어 단계적인 시장개방을 추진하겠다는 한국의 입장이 맞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 고르바초프 대통령(사설)

    공산 종주국 소련이 마침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정치방식인 대통령 중심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소련의 의회격인 인민대표대회는 13일 그동안 준비되어온 경제의 자본주의방식 도입과 함께 공산당독재 포기및 강력한 대통령중심제 도입등 혁명적 정치ㆍ경제개혁의 내용을 담은 헌법개정안을 압도적 다수로 최종 확정시켰다. 이로써 소련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후 70여년의 공산당 독재통치를 청산하고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정치ㆍ경제제도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공식 출범시키게 되었다. 고르바초프공산당서기장은 개방ㆍ개혁ㆍ민주화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를 마침내 완성하게 되었으며 소련의 초대대통령으로서 정치ㆍ경제적 민주화개혁을 본격적으로 가속화시켜 나갈 수 있게 됐다. 새 헌법에 따르면 소련의 대통령은 이제까지 최고회의의장과 최고회의및 최고회의간부회가 분산해 갖고 있던 권한을 한몸에 집중해서 갖게 되며 군통수권및 최고사령관임면권,선전포고권 등을 독점함으로써 그동안 당의 지배하에 있던 군이 대통령의 지배하에 들게 되었다. 계엄령및 비상사태선포권등 비상대권은 물론 법안거부권 등의 막강한 권력도 독점,일부 공화국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제동도 걸 수 있게 되었다. 미ㆍ유럽 서방국들과의 정치제도적 차이를 없애버린 소련의 새 대통령중심제는 한마디로 미국과 프랑스의 그것을 혼합한 형식이면서도 대통령의 권한면에서는 미국ㆍ프랑스의 경우보다 훨씬 강력하며 견제장치는 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때문에 인민대표대회에선 당의 독재가 개인의 독재로 변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토의가 하루 연기될 만큼 강력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중심제선택의 배경이다. 공산당통치 70년의 침체와 타성에 빠져 있는 소련의 혁명적 정치ㆍ경제개혁을 위해선 공산당서기장보다 더 강력한 권한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5년동안의 통치경험을 통해 고르바초프는 통치권력의 중심을 국민적 불신을 사고 있는 공산당으로부터 능률적인 정부로 옮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애쓰는 공산당조직의 유형ㆍ무형의 저항이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당을 통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이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지지부진한 페레스트로이카에 활력을 불어 넣고 그것을 보다 가속화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순서로 대통령 중심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그는 권력의 강화뿐 아니라 5년의 임기가 보장된 안정된 기반 위에서 당서기장의 경우와 같은 당정치국의 간섭을 받지않고 마음놓고 원하는 개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게된 셈이다. 그러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완전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소연방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리투아니아사태를 여하히 연명하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운명을 건 첫 과제이자 시련이라 하겠다.
  • 강택민의 평양 방문(사설)

    지난해말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개혁개방의 물결에 휩쓸렸을때 세계는 그 엄청난 변혁에 놀라면서 이윽고는 그들의 이목을 대륙의 중국과 한반도의 북한에 돌린 바 있다. 그러나 6ㆍ4천안문사태의 충격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북경당국은 현재로선 수구와 강경을 견지하고 있고 북한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세기적인 「지각변동」을 짐짓 외면하며 폐쇄를 고집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중국공산당총서기 강택민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난다.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소련을 시원으로 하여 동구를 강타한 사회주의권의 탈이념,개혁의 파도는 드디어 최후의 수구적인 은자로 지목되던 알바니아마저 움직였고 드디어는 몽고를 거쳐 대양건너 쿠바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까지 강경한 자세로 공산당일당독재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회주의국가는 중국이 있고 북한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강택민과 김일성이 만나면 무엇인가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북한에 관해 안팎으로 김일성ㆍ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권력승계설,부분적인 개혁추구설 등이 나돌고 있다. 국제적으로 북한이 조만간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분석이 일반화된지도 오래이다. 중국역시 그러하다. 중국은 지금 이념과 현실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사회주의노선을 포기 않는다고 다짐하지만 서방국가들의 협조없이는 그 경제를 유지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려있다. 경제적 필요성때문에 개방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정치적 체제유지를 위해 온갖 분야에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40여년 쌓아온 일당독재와 세습체제 유지고수를 위해 주민사상강화를 더욱 다지고 그럴수록 문단속을 철저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경당국자들은 천안문사태의 재발을 막기위해 수구와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만나 협의하고 다짐할 과제는 무엇인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일성은 그가 작년 11월 북경을 방문해서 약속한대로 「천안문사태저지방식」의 등소평지지를 재확인하고 소련ㆍ동구ㆍ몽고의 개혁노선을 반대할 것이다. 그 대가로 자신의 부자권력승계체제에 대한 북경 당국의 지지를 요청할 것이다. 강은 아마도 폐쇄속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된 평양측을 위로 고무하고 북경당국의 일관된 정책노선인 이른바 중국의 대한 4원칙을 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88서울올림픽으로부터 비롯된 한국ㆍ중국간 개방과 교류 나아가서는 중국의 대한수교원칙을 설명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야말로 같이 수구적인 평양ㆍ북경당국이 공유하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한 것이다. 평양과 북경당국은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결국 그 해결점은 「변화」밖에 없다. 특히 북한의 변화는 빠를수록 좋다. 역사적으로 평양과 북경,평양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정형화된 것이 없다. 김일성은 그 체제유지와 대남전략의 효율성여하에 따라 평양과 북경및 모스크바와의 거리를 조절해왔다. 지금은 그가 북경과 밀착하여 페레스트로이카의 거센물결을 외면하지만 역사와 시대가 그러하듯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다. 북한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서독,옛독일 영토회복 공식 포기/콜총리의 대폴란드 국경 인정 의미

    ◎국내외 거센 반발에 「조건부 인정」철회/통독 최대장애 제거… 나토잔류가 문제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6일 현 동독­폴란드 국경선에 대한 독일측의 「무조건 인정」용의를 표명하게 된것은 국내는 물론,국제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볼수 있다. 콜 총리는 얼마전 동독­폴란드 국경선,즉 현재의 오데르­나이세강선을 인정하는 대가로 폴란드측이 독일에 전쟁 배상요구를 하지 않을 것,폴란드내 독일계 주민들에 대한 신분보장을 요구하는 조건부 안을 제시했었다. 콜총리의 조건부 안이 밝혀지자 서독내 야당은 물론 소속 기민당(CDU)과의 연립정부 파트너인 자민당(FDP)까지도 혹독한 비판을 퍼부었고 콜 총리는 결국 무조건 「인정」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콜 총리의 지난번 기습제의는 일종의 악수(?)로 이안이 나오자 프랑스ㆍ폴란드를 포함한 주변국가들의 비난은 물론,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경고」등 국제적 압력은 더욱 거세었다. 독ㆍ파국경문제가 콜총리의 이번 양보조치로 일단 불은 꺼졌으나 독일통일에 대한 유럽제국의 불안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독일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해결해야할 외부 문제의 두가지 최대 난제는 통독의 군사적 지위와 영토문제. 통일독일이 중립화하느냐,아니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머무르느냐 하는 것이 군사적 지위 문제라면 통독이 구독일영토를 회복해야 하느냐,아니면 현재의 동서독이 단순히 합치느냐는 영토문제이다. 독일이 옛영토를 회복하려할 경우 우선 당사자는 바로 폴란드. 현재 동독과 폴란드의 국경인 문제의 「오데르­나이세선」은 2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지난 45년 포츠담회담에서 「잠정협정」에 의해 국경으로 결정됐었다. 소련은 폴란드의 동쪽 렘베르지방을 점령하는 대신 오데르강과 나제르강을 경계로 하는 실레지아 지방등의 동독땅을 폴란드에 떼어주었던 것이다. 폴란드에 편입된 동독땅은 넓이가 10여만 ㎢로 남한보다도 크다. 현재 이 지역에는 전체 폴란드 인구의 3분의1이 살고 있으며 중요한 산업시설이 밀집돼 있다. 오데르­나이세문제는 동독 또는 「통일독일」과 폴란드간의 「옛땅논쟁」에서 한걸음더 나아가 전후재편된 전유럽 국경선 문제와 연결돼 주변 유럽국가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면서 통독이 현실로 나타나자 이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국제법상 동서독이란 두개의 국가가 소멸하고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게 되면 동서독이 기왕에 외국과 맺었던 조약도 무효라는 논리가 가능하며 그렇게되면 자연히 현재의 동독ㆍ파국경도 새로 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법하다. 이같은 사태에 직면하게 되자 폴란드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통일독일이 구영토를 주장하게 되면 폴란드는 소련에 옛 폴란드 영토의 반환을 요구해야 되고 이런 상황이 되면 결국 전쟁이 불가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통일독일만이 국경문제를 논의할수 있다고 한 콜총리의 발언은 오는 12월 총선에 대비,우익세력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서독내에선 통독열기가 높아가면서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고조,옛 독일땅을 되찾자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우익정당측이 이에 편승해 일부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게사실이다. 콜총리는 그러나 이번 「양보」로 인해 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더욱 가중되게 됐다. 이는 그가 이끌고 있는 기민당의 세력기반이 현 폴란드령 독일지역 출신 실향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후 폴란드 영토로의 편입과 함께 대거 서독으로 이주해온 이들 실향민 및 후손들은 약 1천2백만명에 달하며 그동안 기민당의 주요 득표기반이 돼왔는데 콜총리가 실지문제에 신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밖에 콜총리의 이번 「양보」는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독일통일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4+2)을 원활하게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4개전승국에 두 독일이 참여하는 통독 6자회담이 국경선 문제로 난항을 겪게 되면 통독문제 그 자체가 벽에 부딪힐 공산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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