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완전 개방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이산가족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 합병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주택 시장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 모범 기업
    2026-03-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86
  • 「비동맹외교」에 열올리는 평양(오늘의 북한)

    ◎내일 자카르타서 10차정상회의/한중수교 따른 동요 막으려 적극적/75년 가입… 제3세계에 경협제공 등 선심공세/냉전와해로 열기 시들… 북 대응 주목 비동맹국 정상들의 모임인 「비동맹정상회의」가 오는 9월1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열번째를 맞는 이번 비동맹정상회의는 특히 북한 김정일의 참석설이 나돌아 회의 개막전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지난 1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인도네시아 현지 소식통을 인용,김정일이 김일성을 대신해 이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김정일의 외교무대 공식데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참석「서열」이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급보다 낮게 내정된데 불만, 최종 불참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의 국제사회 등장무대로는 격이 맞지 않는다는게 이유인듯. 김정일의 참석여부와 무관하게 북한이 비동맹회의에 기울이는 관심은 지대하다. 특히 동구 및 구소련 붕괴에 이은 한중수교라는 국제환경의 돌변은 향후 북한으로하여금 비동맹외교에 더욱 비중을 두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한중수교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나 이념의 누수를 비동맹정상회의에서의 반제국주의 이념강화를 통해 일시적이나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이미 지난 17일 당기관지 노동신문 제10차 비동맹정상회의와 관련,강한 톤으로 비동맹운동의 지속적인 강화·발전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북한이 비동맹정상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지난 75년 8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외상회의에서 였다. 6·25동란후 「진영외교」를 펼치던 북한은 70년대 들어 중립국가들을 상대로 한 「다변외교」로 노선을 전환했다. 이같은 북한외교방침의 변화는 중국의 유엔가입(71년),중·일국교정상화(72년)및 닉슨 미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이은 미중우호관계 형성등 국제적인 화해분위기 성숙이 그 동인으로 꼽혔었다. 북한은 비동맹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각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정,북한정책에 대한 지지확보에 주력해왔다. ▲주한미군철수 ▲유엔군 사령부(UNC)해체 ▲7·4성명에 기초한 한반도 통일안 지지 ▲핵무기 폐기 및 모든 전쟁수단제거등 북측의 주장들이 대부분인 한반도 관련「결의안」이 4차정상회의서부터 8차에 이르기까지 채택됐다. 북한은 9차 베오그라드회의 개막과 함께 진행된 집행부 구성에서 아시아 7개국·아프리카 5개국·남미 5개국등 23개국으로 구성된 부의장국에 피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들어 비동맹국가들이 부국과의 대결보다는 협조를,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또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격상됨에 따라 비동맹회의서의 북한의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89년 9차 비동맹정상회의서 북한이 「한반도문제 결의안」초안에 대한 수정안조차 제출하지 못한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올 상반기중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비동맹외교의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쿠바 라오스 시리아 캄보디아의 정부 대표단 및 국가수뇌를 초청하는 한편 김영남 외교부장의 인도네시아 비동맹조정위 각료회의 참가(5월 9일)및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순방등 방문외교를 펼친 것이 그 예. 지난해 망명한 전북한외교관 고영환씨는 『북한은 잠비아 모잠비크 세이셸 마다가스카르등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이들 국가들이 계속 친북세력으로 남게하기 위해 경제지원을 포함,권력층의 장기집권을 위한 무기무상지원까지 해주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그는 또 향후 북한이 이같은 경협공세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비동맹그룹의 탄생기반이었던 냉전구조가 완전히 와해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비동맹정상회의가 갖는 의미와 비중은 점차 퇴색·약화되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비동맹가입국들이 경제우선의 신국제질서속에서 각기 자국의 실리와 이해관계에 얽힌 현실을 중시하는 노선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이후 개방·개혁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과연 이번 회의에서 어떤 자세변화를 보일지가 궁금하다.
  • 멕시코 투자환경 간단하지 않다(NAFTA이후 현지표정:상)

    ◎시장 조사·연구후 진출 서둘러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조인 이후 멕시코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어떤 면에선 NAFTA를 무기로 멕시코내 투자를 은근히 강요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 멕시코측 인사들은 한·멕시코 경제협력이 필요하며 이는 곧 한국기업들의 대멕시코투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살리나스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민당의 정주영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특히 멕시코 경제발전에 한국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멕시코뿐아니라 한국경제발전에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NAFTA이후 투자대상으로서의 입지가 급부상된 멕시코 사람들의 자신감과 의욕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확실히 멕시코는 우리로선 서둘러 투자를 해야할 대상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이곳 주재 대사관·상사직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무역진흥공사 멕시코관장 최영범씨는 『서둘러 투자진출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캐나다시장을 멕시코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기업들이 너무 망설이는 것같다』고 지적한다. 현재 멕시코는 인구밀집대도시 이외의 모든 지역을 「마킬라도라(보세구역)」로 지정,외국인에게 개방한 상태고 1백% 과실송금이 보장되는등 비교적 좋은 투자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최관장의 설명이다.멕시코가 NAFTA에 조인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연 1백만명이상씩 늘어나는 노동인구를 감당할 길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미국자본을 유치,고용창출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그 정도로 노동력이 풍부하다.특히 멕시코는 인구의 50%이상이 29세미만인 특이한 인구구조를 갖고 있어 훈련하기에 따라선 양질의 노동력도 충분히 확보 가능하다는 것이다.멕시코의 이같은 잠재적 가능성 때문에 「마킬라도라」지역투자의 70%를 점하는 미국은 물론,일본 유럽등 선진국과 우리의 경쟁상대국인 대만 홍콩까지도 이미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멕시코 투자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 이곳 주재 상사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NAFTA이후 멕시코정부는 외국인투자요건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또 임금인상 압력이 거세지는등 대멕시코 투자환경이 점차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포항제철의 김경화멕시코지사장은 『현재 멕시코 인건비는 국내의 절반정도이나 점차 상승추세에 있어 NAFTA가 완전 발효되는 시점에 가면 메리트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멕시코투자는 이익을 겨냥해서는 곤란하며 미국등 제3국에 진출하기 위한 「코스트 다운」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즉,상품수요처에 보다 가까이 위치해서 납기와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기 위해 멕시코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NAFTA에 따라 강화된 원산지부품사용 비율규정도 대멕시코투자에 적지 않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할수 있어 투자에 앞서 이에대한 대비책도 강구되어야 한다.포철의 김지사장은 『원산지부품사용비율이 NAFTA권역국가의 경쟁력이 강한 제품은 비교적 높지만(자동차의 경우 62%) 전자등 일부제품은 30%정도로 천차만별』이라며 『투자에 앞서 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통신·도로등 사회간접자본투자가 엉망이어서 통상 전화 10대를가설해 놓으면 5대는 불통상태이기 일쑤라고 한다.교통경찰이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돈을 받는등 관료부패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게다가 야당과 지식인 그룹들은 NAFTA조인을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경제때문에 이념을 포기한 것과 비교하며 「대미예속화」라고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 한·중 우호시대에 부쳐/방한기 중국 인민대교수(특별기고)

    ◎서울­북경 상호보완적 관계로 중국과 한국 두나라 외교수뇌가 일련의 외교담판을 거쳐 지난 24일 정식으로 국교수립을 선포한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그 의의 또한 막중하다. 무엇보다도 양국 외무장관이 서명한 공동성명은 정부의 정식 문건이 되어 지난 40여년간 양국 사이를 단절시켰던 역사에 찍었다는데 가장 큰 뜻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차대전후 조선반도는 두쪽으로 갈렸다.그후 중국은 반도 북쪽의 조선인민공화국과 관계를 맺은채 남쪽의 대한민국과는 모든 왕래를 단절시켜 왔었다.이는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이에따라 수십년간에 걸쳐 양국간에 생겨났던 불유쾌하고 비정상적인 역사가 이제 완전히 과거속에 묻히게 됐다는 얘기이다. 양국 공동성명에 의해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됨에 따라 이미 시작됐던 여러 분야의 교류가 더욱 활기차게 발전해 나갈 것은 물론 자명한 일이다. 우선 양국간에는 북경·서울을 잇는 직항로가 생겨나 인적교류의 폭을 크게 늘려갈 것이다.이는 물론 제3국을 거치거나 중국내 지방도시를 통해 양국을 왕래하는 번거로움이 옛날 얘기로 남게 됐다는 얘기이다.서울∼북경간 거리와 시간이 크게 단축된 기쁨을 맛보게 된것이다. 중한수교는 등소평동지가 주창해온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추진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이는 한국이 중국의 친밀한 무역파트너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분명하다.한국의 수많은 수출품목들이 중국발전에 적합할 뿐아니라 중국의 잉여생산품을 한국에 팔 수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기능도 매우 크다. 한국기업들의 대중국투자도 중국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종목들이 많아서 개혁개방정책에 잘 부합될 것으로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기업들은 중국이 제공하는 광활한 시장을 확보하게 되고 중국 역시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얻을수 있는 데다 상호보완적인 무역을 확대해 나갈수 있게돼 서로 이익이 된다는 말이다. 중한수교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도 매우 유익하리라 본다.중국정부 주장이나 노태우한국대통령의 성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중국이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했다는 사실은 과거 냉전시대의 패가름에서 오는 대결과 불안요인을 말끔히 제거할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더구나 남북한이 유엔에도 동시가입한 데다 중국과도 동시수교를 했다는 사실은 남북관계개선을 촉진시키고 쌍방의 건설적 대화를 유도하거나 자극시킬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이는 과거 동아시아 지역 불안의 핵심과제였던 남북한 대결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전체 아시아지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도 중한수교가 기여하는바 크다는 의미를 숨길수 없다는 말이다. 이같은 상황변화는 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을 촉진시킬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한수교로 양국간 인민들의 왕래가 보다 빈번해지면 상호이해의 바탕을 넓혀 우호증진에 기여할 것도 분명하다.상대편을 너무 모르는 상황에서 특히 수십년간 왕래가 없다가 갑자기 교류를 하게되면 자연히 잡음이 생겨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만해도 양국인민들은 꽤 활발한 교류를 해온게 사실이다.이미 상호 수출물품이 상대편 지역 연안까지 직송할수 있게 됐고 경제·무역계 인사들은물론 정치 문화 체육계 등 여러분야의 지명인사들도 벌써 수차례씩 중국을 방문했다.양국의 보통인민들과 교민들도 벌써 여러지역들을 둘러보며 친척 방문을 자유롭게 하는가 하면 학자들의 학술교류도 날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한 예로 올해초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 불교학술토론회에도 중국에서 많은 학자들이 참가했을 정도이다.중한수교는 이같은 다양한 분야의 인민간 접촉을 더욱 촉진,양국의 우호증진에 이바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중국과 한국관계는 지리적으로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일의대수의 이웃관계를 유지해왔다. 역사적으로도 양국인민은 줄곧 밀접한 전통적 우의관계를 다져왔다.양국인민의 왕래는 기원전 2∼3세기 때부터 시작됐으며 중세기 이후 문화교류는 매우 활발해졌다. 당나라 때의 많은 중국시인들의 작품이 한국인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는가 하면 명·청시대에는 정치 경제 문화등 제분야의 왕래가 매우 빈번해졌다. 한국의 서울대학이 영인본으로 출판한 태조∼순종간 5백18년의 「이조실록」에는 중국과 관련된 부분의 글자가 3백80만자에 달할 정도이다.지금도 중국의 역사책들에는 한국과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이 보존돼 있다.이같은 사실들은 두나라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었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현 중국신문사학회 회장,「중국 고대신문」 등 저서 다수
  • 동서문화 평형관계 확립 계기되길

    ◎한·중교류 통해 「21세기 동양문화」 꽃피워야 보편적 기록만으로는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이후로 반세기 동안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9세기 말렵부터 일제시기를 지나 한세기가 넘게 근대 이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중국문화는 단절되었다.이에따라 우리 문화계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화의 유입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급기야는 거의 전 분야의 예술계에 있어서도 서구중심의 사조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이는 비단 문화예술 뿐만이 아니라 철학,문학,사학등 학술체제의 기본구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8·24양국수교는 완전히 그 체제를 달리하는 큰 변화를 예고한다.첫째는 동양문화의 근원을 이루어온 중국이 개방됨으로써 동서간의 평형을 이룰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이는 특히 회화,건축,음악,공예,서예,연극,문학 등 현대예술의 교류에 있어서도 수십만명에 달하는 예술계 인구가 추구하고 있는 각종 양식들과 교류를 통한 우리예술계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유구한 전통을 간직해온 근대 이전의 문화유산들로부터 수용될수 있는 동양예술사상의 근원적 탐구 역시 지나칠 수 없는 관심거리이다. 둘째로는 수천여명에 이르고 있는 중국의 예술,철학,미학,예술사상사,고고학자들과의 문헌,인적형태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하여 동양,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발현해 가는데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이 문제는 특히 21세기가 동양의 정신과 문화예술의 조류에 의해 세계적인 흐름이 주도되리라는 예견에 한 발자욱 다가서는 진전으로써 아시아의 문화 균형을 바꿔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즉 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이 특수한 중립적 위치와 경제력을 앞세워 오다 문화예술의 주도적 위상을 리더해왔으나 이제는 한국의 보다 자유로운 입지가 확립됨으로써 보다 폭넓게 기초적인 학문연구에 뒷받침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앞으로의 가능성이나 전망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우리 문화계·학술계의 상황은 적지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그것은 곧 대중국 문화의 전문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양성이 미흡했다는 점이다.이는 지금까지 거의 경제 일변도로만 치우쳐왔던 대공산권 접근의 기본노선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하지만 중국의 경제나 정치의 가장 근원적인 실체는 바로 문화적 내용과 현상위에 서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다가올 21세기의 동양문화시대를 위해서라도 한국적 정체성의 바탕위에 중국을 수용하고 대등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배양해 가야할 것이다.
  • 대만 반한의 겉과 속/유세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한중수교에 대한 대만의 반응은 배신감과 그에 따른 분노의 표현이었다.이는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신의를 저버리고 국제정의를 짓밟았다』는 대만측 비난에 한국은 할말이 궁하다.태극기를 짓밟거나 불태운 행위를 놓고 「지나친 행동」이며 대만정부가 이를 방관한 것은 잘못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그래도 대만에서의 분노표시를 이해하고싶다. 한·대만관계에 완전한 단절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양측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한국은 『단교가 되더라도 최고수준의 민간관계는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만도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민간경제및 무역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얼마간의 냉각기간이야 피할수 없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한·대만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선 대만국민들의 분노가 해소돼야 하고 대만정부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한다. 대만정부의 강경자세는 분노하는 국민들이나 중국에 대한 주권포기와 독립국으로서의 유엔가입을 주장하는 민진당을 겨냥한 국내용 정치제스처라는 분석이 따르기도 한다.외교문제가 감정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음을 잘아는 대만정부가 겉으로는 국제도의를 내세운 것도 이같은 측면에서라고 여겨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대만관계를 가능한한 과거에 가깝게 유지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대만내의 반한감정을 무마시키는 한편 그간 양국이 맺었던 정부차원의 협정들을 민간차원의 협정으로 전환하고 한국에 남아 있는 화교들의 법적 지위문제등을 논의할 협상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동북아 경제의 주요세력으로서 대만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수 없다.게다가 공산주의의 퇴조라는 세계적 추세,중국의 개혁·개방정책,실용외교를 내건 대만의 외교정책 등으로 중국·대만간에 협조관계가 형성될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때문에 중국관계와 병행하는 대만관계의 유지는 한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과의 수교는 남북한 교차승인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한반도통일이란 궁극적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게 했다.이같은 목표와 「동북아의 안정」이란 대명제아래 한국의 대중국관계와 대대만관계를 재정립하는게 지금 한국에주어진 과제다.대만도 역시 겉으로 표현되는 분노는 감출 수 없을지언정 이같은 현실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할 것이다.
  • 한반도주변 정세 어떻게 변할까(한·중수교/동북아 새 질서:2)

    ◎「탈이념」 가속… 정치역학 대변환/한국,「힘의 균형」 주역으로 통일 주도/주변 4강 남북교차승인 당겨질듯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세계 유일한 냉전지대인 한반도와 그 주변정세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그 변화의 폭과 속도를 결정해 주는 열쇠는 오로지 북한이 갖게 됐지만 하나뿐인 형제국가 중국의 이탈은 북한으로하여금 개방과 평화정착,그리고 통일이라는 외길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할 것이 확실하다. 이에따라 핵문제가 걸림돌이 돼 난항을 겪어왔던 일·북한 수교교섭과 미·북한 관계개선이 본격화돼 바야흐로 미·일·중·러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남북교차승인이 가시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또 소련의 해체와 미군의 단계적 철수로 생겨난 힘의 진공을 틈타 점차 영향력을 증대시켜가는 일본과 아시아국가 가운데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견제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인 중국의 향후 거취에 따라 동북아지역 질서재편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즉,중국의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유역 개발계획에 있어 핵심당사국인 일본의 대북 영향력의 정도에 따라 완전한 탈냉전후의 북한의 모습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김요일의 충격적인 뉴스는 북한권력층,특히 강경파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충격을 주었음직하다. 북한은 러시아 및 동유럽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부터 탈고립을 위해 대외정책에 상당한 수정을 가해왔다.체제를 불안케 하면서까지 개혁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강경파와,체제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방의 정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온건파의 의견이 맞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 경제관료들이 주축이 된 온건파의 입지가 강화돼 왔다.그 이면에는 김일성을 불러들여 경제특구를 시찰시키면서 은연중 개방압력을 넣은 중국의 측면지원도 컸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이제 중국이 완전히 등을 돌리리라고까지는 예상되지 않지만 전과 같은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물론 남북상호사찰을 수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미·일등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하게됐다. 따라서 남북고위급회담과 핵통제공동위등 남북간의 대화채널이 활성화되는 동시에 24차에 걸친 참사관접촉에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미·북한간의 막후접촉,8차회담의 일자까지 정하지 못할만큼 교착상태에 빠진 일·북한수교교섭이 활기를 띠게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를 펼쳐온 한국에 비교해 수세에 몰렸던 북한이 미·일과 공식적인 자리에서 수교교섭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한중수교가 대만을 제외한 주변관계국 모두에게 유익한 진전이라는 21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한중수교는 일본에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일본은 동남아는 물론 중국,시베리아까지 자신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 두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 특히 북한지역에 대해서는 북한핵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투자및 관계개선을 보류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때문에 관망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문제의 해결을 서두를 것이 확실시되는 이상 북한과의 수교교섭에 적극적인 자세로나올 것으로 보인다.한편으로 북한이 일본보다 수교를 갈망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일·북한간의 관계개선은 한중수교보다 훨씬 간략하게 빠른 시일내에 성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으로서는 적어도 남북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전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득실을 저울질해가며 대한반도정책을 펼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수교는 중국이 남북한을 동시에 상대하며 이 지역에서 일본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물론 당분간 중국이 한반도문제에 있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한국보다 북한쪽에 기우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일본의 대한반도 영향력 행사에 관해서는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있어서는 상당한 굴욕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미국은 북한을 이라크처럼 위험한 존재로 규정,관계개선의 반대급부차원에서 북한을 철저하게 길들이려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정책기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가들의 이해가 난마처럼 얽혀 섣불리 장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평화정착이라는 건설적인 쪽으로 잡힌 듯하다. 한중수교는 한국의 전방위외교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에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예상케 하는 것이다.
  • 2차 한·미 쇠고기협상/31∼1일 워싱턴서

    제2차 한 미쇠고기협상이 오는 31일(미국시간)부터 이틀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다. 21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이번 협상은 지난 6월11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협상과는 달리 정부간 협상과 업계간 회의로 나누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협상은 제1차협상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쇠고기시장의 완전개방문제를 비롯해 수입쿼터의 확대,고급육 수입방식인 동시매매입찰제(SBS)확대등이 중점논의될 전망이나 양국의 입장이 제1차협상때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없는데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등 양국이 쉽게 양보할 여건이 아니어서 난항이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협상중 업계간 회의에는 축협중앙회와 쇠고기 수입창구인 축산물유통사업단의 대표가 참석하고 미국측에서는 육류수출협회와 식품협회의 대표가 참석,상업적이고 세부적인 문제를 논의해 양국 정부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 “선경 특혜설은 사실무근”/송언종 체신부장관 일문일답

    ◎“평가기준·신청서류 등 모두 공개/국민·신청업체 결국 수긍해줄 것” 송언종체신부장관은 20일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결과를 발표한 직후 기자회견을 가졌다.다음은 일문일답. ­오늘 하오 청와대 주례회동이후 발표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서둘러 아침에 발표한 이유는. ▲주례회동과 이번 발표는 아무 관련이 없다.평가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어젯밤 집계가 완료됐고 보안문제도 있는 이상 빨리 발표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사 평가기준이나 가중치가 선경에 유리하게 적용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1차심사에서 재무상태와 자금조달능력에 30%의 가중치를 둔 것은 막대한 초기투자가 필요한 제2이동통신사업의 성격상 행한 것이며 실제로 이항목에서 선경은 3위를 차지했다. ­대통령사돈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된데 대한 개인적인 소견은. ▲선경은 다른 신청업체보다 우수해 선정된것이다.대통령사돈업체라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송장관은 이를 대학입학시험을 보는 대학총장 아들에 비유,총장아들이라고 해서 실력이 뛰어난데도 불합격시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했다). ­선경특혜설과 관련,체신부나 청와대등에서 평가기준등 정보를 사전에 유출했다는 설이 있는데. ▲평가기준은 참여업체 모두에 공개했기 때문에 특혜설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선경의 신청서류가 체신부의 기준과 콤마까지 똑 같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신청서류를 공개했으니 확인해보라. ­국민의 반감과 정치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2이동통신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통신은 국민의 편의시설일뿐만 아니라 산업발전을 뒷받침하는 사회간접자본이다.통신이 낙후되면 경제발전이 어렵다.특히 선진국들의 통신시장개방요구와 관련,낙후된 무선통신분야의 대외경쟁력 강화가 시급했다.수도권지역의 주파수가 소진되고 있는 것도 제2이동통신을 강행한 이유다. ­매출액 대비 18.4%라는 선경의 연구개발투자계획은 믿기어려운 규모 아닌가. ▲사업 초기의 연구개발투자비율을 안정된 가전업체나 외국 통신업체와 비교하는 건 잘못이다.연구개발투자 비율은 허가권에 연계해 법적 제도적으로 실현성을 보장하겠다. ­선정결과는 언제 보고 받았으며 국민들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제 하오 중간보고를 받았고 구체적인 수치는 오늘 새벽 보고 받았다.청와대에는 아직 보고하지 못했다.선정과정에서 많은 설이 있어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평가기준 「가중치」항목별 득점평가를 완전 공개했고 업체별신청서류까지 공개한만큼 결국은 국민들도 수긍해줄 것이다.
  • NAFTA 주요내용

    ◎3국간 관세·쿼터제 15년간 단계철폐/멕시코 석유산업 일부·금융시장 개방 ▲3개국간에 거래되는 물품에 대한 관세,쿼터 및 기타의 무역장벽이 제거된다.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시행되고 기타는 5∼10년간의 기간동안에 단계적으로 제거되며농산물등 가장 민감한 품목에 대한 관세는 15년까지 지속될수 있다. ▲협상기간중 가장 말썽이 많았던 자동차의 경우 타협안이 이루어져 미국산 자동차및 부품의 대멕시코 수출에 대한 관세가 협정 비준후 반으로 줄게 된다. 또 북미산 부품이 65% 이상을 차지하는 모든 승용차와 트럭의 수입에 대한 세금이 면제된다. 미국은 협상과정에서 70%이상을 요구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는 50%를요구했으나 타협이 이뤄졌다. ▲60억달러에 달하는 멕시코의 원거리통신 시장에 대한 미국의 자유로운 접근이 95년7월까지 허용된다. ▲멕시코의 금융시장이 오는 2000년1월1일 개방되며 미국과 캐나다의 금융및 보험업무가 확대된다. ▲멕시코는 엄격하게 보호해온 그들의 석유산업 일부를 외국투자에 개방한다는데 동의했다. ▲판권·특허권·상표를 보호한다. ▲2억5천만달러의 섬유류 수출에 대한 관세장벽은 즉각 해제되며 추가의 7억달러분에 대한 장벽은 앞으로 6년동안 완화되고 10년내에 완전히 제거된다. ▲농산물 분야에 대해서는 가금류와 낙농및 설탕산업에 대한 캐나다의 보호주장을 제외하고 모든 시장접근을 허용한다는데 합의했다. ▲트럭 운송업과 버스업자에 대해서는 북미대륙 전역에 걸쳐 국경선 월경의 제한이 제거된다. ▲3개국은 자체의 환경·보건및 안전 보호를 추구하는 것이 허용된다. 단 투자유치를 위해 보건·안전·환경의 기준을 낮추어서는 안된다.
  • NAFTA 창설 각국 반응

    ◎무역질서 왜곡·보호주의 색채 우려/일본/“아주국 수출경쟁력 약화 가능성”/불·독/당사국 야당·업계,실업증가·공해문제 들어 반대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해 일본등 경쟁상대국들은 자유무역에 배치되는 조치라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협정당사국내의 야당과 노동계 업계등도 실업증가 가능성등을 들어 반대견해를 나타냈다. ▷일본◁ 통산성은 이 협정이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추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언론들도 이 협정의 보호주의적 요소를 일제히 지적했다.요미우리(독매)신문은 「북미협정의 충격」이라는 시리즈기사에서 『전후 관세및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를 지지해온 미국이 지역주의를 겨냥하고 있다』면서 『이 협정은 세계무역체제를 크게 바꿔놓을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자동차공업회는 특히 자동차부품의 현지 조달률 상승에 큰 관심을 표명,『이 협정은 자유무역시스템을 저해하는 협정』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일본정부는 이 협정이 「배타적경제권」형성으로 나타날 것을 우려,신다각무역교섭(우루과이라운드)의 조기종결을 서두르는등 자유무역체제강화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또하나의 공동시장」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협정이 유럽공동체의 복제품처럼 보인다면서 아시아의 신생 경제세력들은 미국과의 현재까지의 관계를 멕시코에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평했다.이 신문은 또 이 협정이 하나의 공동시장일뿐 경제통합이나 화폐통합은 아니라고 설명되고 있지만 세나라 사이의 심한 경제적 격차때문에 『어떤면에서 이미 미국 달러화로 단일통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고 반문했다. ▷독일◁ 독일 언론들은 이 협정이 유럽공동체보다도 더큰 세계최대의 경제블럭이라는 점에서 국제무역의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평했다.신문들은 「열대에서 한대까지의 경제 대블록」이라는 제목으로 자본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이 완전개방되면 북미지역은 획기적인 경제발전의 계기를 맞게 되나 미국의 자동차산업,캐나다의 섬유산업이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또 미국기업들의 임금이 싼 멕시코에의 투자가 늘어 미국에서만 15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멕시코의 공해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들은 이어 이 협정이 비준되기까지는 많은 논쟁이 있겠으나 정식으로 발효되는 94년 이후 유럽공동체와 아시아국가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했다. ▷중국◁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우리는 이 협정이 북미의 지역경제협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믿는다』고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지역경제블록화는 개방돼야 하고 배타적이 아니라 신세계경제질서를 창출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리브공동체◁ 카리브해 지역 13개국으로 구성된 카리브공동체의 에드워드 캐링턴 사무국장은 이 협정으로 『미국과 캐나다 시장이 저임금을 주무기로 하는 멕시코 생산업자들에게 개방됨으로써 카리브해지역에 대한 미국의 무역특혜가 침식될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하고 『카리브해 지역에 대한 외국투자의 이탈방지를 위해 기업체들은 생산효율을 높여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티베트 전면 개방/중국,관광진흥 노려

    【북경 AFP 연합】 중국당국은 경제적 번영을 촉진하고 인종분리주의운동을 약화시키는데 목적을 둔 과감한 개혁조치의 일환으로 그동안 인종분규가 끊이지 않아온 티베트(서장)지역을 외부세계에 완전 개방키로 결정한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이날 북경에 접수된 지난 3일자 서장자치구정부 기관지 서장일보는 티베트지역의 전면적인 대외개방을 발표하면서 『서장자치구 공산당위원회와 인민정부는 지난 7월14일 현행 폐쇄경제체제를 국내외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에 따라 서장자치구정부는 외국인투자문호를 개방하고 북경·카트만두·홍콩과의 직항노선 개설과 관광진흥을 위한 전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인도등 다른 나라와의 국경무역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 비디오카메라·체중계·냉장고 개방땐 값70% 폭락/대외경제연 분석

    국내유통시장이 완전개방되면 비디오카메라와 체중계·냉장고등 3개품목은 값이 70%이상 떨어지고 다리미·TV·시계도 50%이상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시장완전개방시 냉장고·TV·세탁기등 가전제품의 국내시장규모는 개방전보다 2배이상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신세돈교수(숙명여대)에 연구의뢰해 4일 발표한 「유통산업의 개방효과와 대응전략」이라는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공산품가운데 국내가격이 국제가격보다 높아 유통시장개방때 파급효과가 큰 전자레인지등 11개품목의 시장개방효과를 실증분석한 결과 비디오카메라의 가격하락율이 77%로 가장 높았다.체중계(73.7%) 냉장고(71%) 다리미(69.8%) TV(52.4%) 시계(51.9%)등도 50%이상의 높은 가격하락률을 보였다. 특히 시장개방이 서서히 진행되더라도 비디오카메라와 냉장고는 개방초기에 가격변화가 두드러지고 전자레인지나 세탁기·진공청소기·체중계·TV등은 점진적으로 값이 떨어지며 헤어드라이어나 전기다리미·시계·카메라등은 개방후기로 갈수록가격변화가 뚜렷해질 것으로 분석됐다. 또 완전개방때 국내시장규모는 비디오카메라가 현재보다 2.39∼3.54배까지 확대되고 체중계·냉장고등 나머지 품목도 최저 2.03배에서 최고 3.47배까지 시장규모가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그러나 개방에 따른 사회적 잉여증대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생산업체의 고용감소등 부정적 효과도 있다고 지적하고 『유통시장 개방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유통구조와 유통산업의 기능강화등 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14기 전국대표회의 두달 당겨 9월개최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 공산당의 개혁파 진영은 당제14기 전국대표대회(14전대회)의 개최를 오는 9월말쯤으로 약2개월 앞당길 것이라고 홍콩의 더 스탠더드지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만의 중국시보 보도를 인용,등소평은 진운과 국가부주석 왕진(84),팽진(90) 등 보수파 원로지도자들의 일부가 개혁·개방정책을 지지하고 있거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모두 입원중인 기회를 이용하여 당내 보수세력의 반대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어 14전대회를 오는 10월1일 정부수립기념일 이전으로 앞당겨 치를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 인 최대 금융스캔들… 정·재계 “휘청”

    ◎증권브로커­은행원 공모사기/주식 위장매매로 1조원 챙겨/상업장관 인책사임… 야선 내각불신임 공세 개방경제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인도에서 최근 독립이래 최대의 금융스캔들이 발생,정·재계 모두가 휘청거리고 있다. 모두 3백54억루피(한화 약1조원)에 달하는 이번 사기사건은 인도의 금융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은것은 물론 모처럼 붐이 일기 시작하던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또 수천명의 주식투자가들을 「닭 쫓던 개」 꼴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인도 굴지의 국립주택은행(NHB)의 마노하르 페르바니 행장과 UCO은행의 마르가반투 행장등이 이 사건과 관련,사임했으며 스테이트 뱅크 오브 인디아(SBI)와 차터드뱅크,시티뱅크,그린들레이뱅크,뱅크 오브 아메리카등 외국은행의 많은 간부들이 교체됐다. 이 사건의 파장은 또 정치권에도 미쳐 지난해 6월 출범이래 비교적 무난하게 개방정책을 펴온 나라시마 라오 정권에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개방화정책의 중심인물의 하나이던 치단바람 무역·상업장관이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7월초 사임했음에도 야당측은 라오총리의 오른팔인 만모한 싱 경제장관등 2∼3명의 각료에 대한 추가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간부 대폭 경질 또 지난 15·16일 양일간 개최된 임시국회에서는 부결되긴 했으나 내각불신임안이 표결에 부쳐지기까지 하는등 야당의 거센 공세에 휘말리고 있다. ○18개월간 사기행각 그러나 이 사건이 더욱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유는 이 엄청난 사기사건의 주인공이 하르샤드 메타라는 37세의 젊은 증권브로커라는 사실에 있다.그가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편것은 지난해 2월부터 이 사건의 꼬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올 4월까지 18개월 동안이다. 이 기간동안 그는 혼자 거래한 금액만 9백억루피(약2조4천억원)로 지난 2월 개인소득세만 2억6천만루피(약70억원)를 내 1년전까지만해도 재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일약 국내 최고액의 개인세 납부자로 부상했다.그는 봄베이 최고의 주택가인 월리해변에 9홀의 골프연습장까지 갖춘 대저택을 마련하고 재계의 총아로 군림했다. 미니극장과 당구장 연회장등이 완벽하게 갖춰진 그의 저택에서는 항상 초호화판의 파티가 벌어졌으며 봄베이 사교계에서는 그의 파티에 초대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였다.또한 그의 나들이에는 항상 최신형의 외제승용차들이 앞뒤에서 호위를 했고 어디를 가나 그의 전기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홍보팀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댔다.그래서 그는 재계의 「아미타브 바찬」(인도 최고의 영화배우로 현직 국회의원)으로 불렸다. 평범한 증권회사 직원이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수 있었는가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지금까지 밝혀진바에 따르면 머리가 비상한 그가 경제자유화에 따라 은행들이 정부보증의 채권이나 주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봄베이 증권가에 「그로모어 리서치」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은행들을 상대로 통큰 사기행각을 벌인것. 즉 정부의 시장개방정책으로 주가가 연일 치솟고 있는것을 악용해 국립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주식이나 채권등을 허위로 빼돌려 증시에서 팔고사는 것을 조작,그 차액을 챙기는 수법을 써왔다.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사기극의 수사과정에서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은 가공의 계좌를 만들고 가공의 입출금등에 협력해준 국립은행 간부등 15명에 불과할뿐 더이상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의혹 안풀려 지난 4월에 인지된 사건이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이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인도정보국(CBI)에 경제범죄를 다룰만한 수사관들이 없어 더욱 애를 먹고 있기 때문.따라서 정부측에 주식및 금융 전문 관리들의 지원을 요청해놓고 있는 형편이다.CBI의 한 수사관은 『현재 인도 전역에 경제범죄전문 수사관이 5백여명 있는데 이들이 다 투입돼도 모자랄 지경이다.그나마 정교하고 복잡한 주식이나 금융관계를 다룰수 있는 수사관은 극소수』라고 실토하며 『따라서 영국의 잉글랜드은행과 미국의 연방은행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귀띰.
  • 한­러시아 「우호·협력의 레일」놓는다/옐친 9월공식 방한의 의미

    ◎“동북아평화 정착의 두축”재확인/시베리아 진출등 실질경협 가속/북한개방 촉진… 남북관계 개선도 기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오는 9월 공식 방한은 한·러 양국관계가 명실상부한 우호협력국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90년 12월 노태우대통령의 모스크바방문과 지난해 4월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의 제주방문을 통해 다져졌던 한·구소련간의 선린관계를 한차원 높게 격상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관계발전은 엘친대통령이 방한기간중 노태우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서명하게될 「한·러기본관계조약」을 통해 구체화하게 된다.이조약은 90년 12월 한·구소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모스크바」선언의 정치적 의미를 법적 구속력과 실천성을 갖는 우호협력차원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즉 양국이 우호협력국으로서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겠다는 법적 합의로 규정할 수 있다. 양국은 이 기본조약을 기반으로 이해와 우호를 증진시키며 정치·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동반자관계로 접어들게 됐다. 이조약은 이상옥외무부장관이 지난번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체결에 합의를 본 것으로 오는 8월 쿠나제 러시아외무차관의 방한때 가서명될 예정이다. 이제까지의 실무교섭을 통해 확정단계에 이른 이조약에서 두나라는 「양국 공통의 역사에 있었던 불행한 시대의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노력하며…자유민주주의 인권존중 시장경제체제등의 가치관을 공동추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또 조약본문에는 「양국간 무력위협과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모든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옐친대통령이 이외무장관에게 밝혔듯이 『러시아는 소련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점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러시아가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태어난 만큼 한·러 관계도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를 딛고 새출발해야 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옐친대통령은 양국간 과거청산노력의 일환으로 방한기간중의 국회연설을 통해 6·25와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사과의 뜻을 표명할 것으로 전해졌다.옐친대통령이 구소련의 KGB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진 KAL기 격추 관련자료를 우리측에 제공할 것인지 여부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양국간 기본조약에도 명시되듯이 옐친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동북아평화질서 정착에 중요한 발판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남북한관계개선,특히 북한의 개방화에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동북아의 역학구조적 측면에서 옐친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한·러시아의 직접적인 우호협력관계확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이는 구소련이 대한관계에 있어 일본등 주변국가들과의 힘의 균형및 관계개선을 염두에 두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대한관계증진에 있어 러시아의 이같은 적극적인 태도는 이미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한중관계정상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옐친대통령은 이미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적 유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한걸음 더 나아가 옐친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남북한문제,특히 핵문제에 있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러시아정부의 방침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이 이어질 경우 북한은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될 수 밖에 없고 내부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감안할 때 자구책 차원에서 대외개방화,특히 남북한관계개선에 적극 나설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한·러시아간의 이같은 관계증진은 지난해 4월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의 제주회담에서 양국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하면서 이미 정해졌던 수순으로도 볼 수 있다.특히 보다 개혁적인 옐친대통령이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전면에 나섬으로써 「시간문제」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옐친 등장이후 국제적 여건이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이른바 한·소경협에 대한 기대다. 옐친대통령은 2박3일간의 체한기간중 우리 기업인들과 직접 접촉을 갖고 우리기업의 대러시아투자를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시베리아와 천연자원 개발에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구소정부간에 체결됐던 30억불의 경협차관과 관련,상환보장장치의 보완을 약속하며 잔여분 15억3천달러의 제공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정부도 이에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정부로서도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과학기술을 보유한 러시아와의 실질협력증진은 대외지향적인 우리경제의 활동영역을 확장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옐친대통령의 이번 방한이 소연방해체이후 출범한 러시아연방의 대통령으로서 첫번째 한반도방문이라는 점도 역사적 의미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 “생필품공장 연20∼30일 가동”/귀순 김영성씨 일문일답

    ◎젊은세대 정치에 무관심… 50대이상 “함구”/월남자가족 출간추방… 「이산재회」 걸림돌 ­귀순동기는. 『58년 맏형이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고 1·4후퇴때 두 형이 월남했다는 사실이 70년대초 밝혀져 그때부터 불이익을 받아왔다.그후 체코유학동기생들의 도움으로 재기,89년 55세에 후보당원이 되기는 했으나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중 동독파견근무이후 동구권몰락의 엄청난 변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개방밖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이로인해 베를린 대표단장으로 부터 질책과 감시를 받아왔다.귀국하면 큰형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됐고 이때문에 탈출을 결심했다』 ­북한의 건축기술수준과 평양과 지방의 차이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괜찮았으나 65년이후 설계전문교수들이 성분불량으로 숙청된 이후부터 설계원 처우가 낮아 인재고갈상태에 있다. 만수대혁명박물관등 기념비적인 건물과 살림집들과 건축설비나 자재등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거의 모든 건설이 평양에 집중되고 있다.때문에 남포·원산 등 일부 지방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건축물들은 60년대 지어진 「성냥곽같은」조립식 주택들이 고작이다』 ­김정일비서도 50년대말 동독 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다고 하는데. 『김정일이 한때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 유학제의를 받았으나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서만 공부하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그가 외국유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새세대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다.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반면 50세이상의 나이많은 사람들은 최근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식해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않는다』 ­월남가족이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대우와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월남자의 가족으로 자기 고향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그들은 모두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때문에 이산가족의 명단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월남자의 가족은 최저생활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가족을 둔 사람은 이들의 방문을 「구원의 천사처럼」기대하고 있다.단번에 집이 새로 생기고 잘하면 평양으로 이주시켜 주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경제실상은. 『현재 완전 가동중인 공장은 금광이나 시멘트공장 군수공장등 외화벌이용 공장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청진의 경우 ▲청진제강소 5∼6년전부터 가동완전중지 ▲김책제철소 4개 대형용광로중 1개만 가동 ▲청진화학섬유공장 20% 가동 ▲생필품공장 김부자생일선물공급시 20∼30일정도 가동등이 최근 나타난 엄연한 현실이다.
  • 요율 싼 「무배당보험」 8월 시판

    ◎내년4월부터 재보험산업 단계 개방/재무부 보험시장개방안 확정 생명보험등 기존 보장성보험상품보다 보험요율이 7%쯤 싼 대신 배당이 없는 무배당 보험상품이 오는 8월부터 등장한다. 또 내년부터 수출입업자가 수출입을할때 국내 보험사를 거치지 않고 외국보험사와 직접적하보험계약을 할수 있으며 93년 4월부터는 재보험산업이 단계적으로 개방된다. 이와 함께 보험대리점이 2개 이상의 보험사 상품을 전국적인 판매망이 없는 외국보험사도 자동차보험을 취급할 수 있게된다. 재무부는 30일 이같은 내용의 「보험시장 개방안」을 마련,보험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했다. 이 방안에 따라 우선 오는 8월 생보사의 암보험등 보장성 보험과 양지보험등 전통적 양로보험에 국한해 무배당 상품이 허용된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외국보험사에 대한 수출입 적하보험개방에 이어 95년 1월부터는 수입적하보험·항공보험에까지 단계적으로 허용된다. 또 93년 4월부터 국내 손해보험회사가 항공기에 대해 재보험을 들 때 반드시 대한재보험사를 통해 외국사와 계약을 하도록 하던 제한을 철폐,대한재보험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외국사와 재보험계약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오는 96년 4월에는 선박에 대한 재보험규제가 풀리며 98년 4월에는 화제보험을 포함,조립 기계보험등 특종보험까지 모든 보험에 대한 재보험규제가 완전 폐지된다.
  • 구소 드브나핵연구소의 고민/전일동교수 연대·핵물리학(해시계)

    모스크바 시내를 흐르는 모스크바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약200㎞ 올라가면 볼가강과 운하로 삼각지가 형성되어 외부와 격리된 인구 약 4만의 작은 과학도시 「드브나」에 이른다.여기에는 원래 작은 원자로가 있었는데 19 54년에 핵물리학 연구에 필수적인 고에너지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발전하게 되었으며 모스크바시에서 드브나까지 철도도 가설되었다. 이곳에 설립된 연구소는 핵물리학 공동연구소 「Joint Institute Of Nuclear Research」란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그동안 사회주의 국가들의 핵물리학 연구센터로서 큰 역할을 해왔고 구 소련의 위신을 세우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따라서 입구는 엄격히 통제되어 있어서 미리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다.모스크바대학 노이다친 교수의 배려로 필자는 어려움없이 이 관문을 통과 할 수 있었다.연구소에는 약 2만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각 분야의 연구실 128개가 있다.입자가속기도 수 대가 있다고 한다.그 중 가장 큰것이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프로튼 싱크로트른이며 에너지는 60억 전자v(1전자v는 양성자를 전압 1v로 가속할 때 얻어지는 에너지)이다.물론 이 가속기는 완전히 소련 과학자들이 독자적으로 건설한 것이며 몇십년 동안에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다.이 입자가속기를 포함한 입자 물리학 실험 부문의 책임자는 이론 물리학자인 발딘 교수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실험 분야 4개부문중 3개부문의 책임자가 이론가라고 한다.이론가들이 더욱 활발하고 정치적이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안내를 맡은 스미노프교수가 웃으면서 말해 주었다.입자가속기가 있는 장소에서 약2㎞ 떨어진 위치에 이론물리학 연구소가 있으며 약 100명의 이론물리학자가 연구하고 있다.이것은 놀랄만한 숫자이며 아마 세계최대일 것이다.미국에서 가장 큰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 수가 70명 정도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론과 실험을 다 합친 수이며 이론은 그것의 약3분의1,즉20명이 고작이다.이론물리학 연구소 건물 입구의 벽에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였던 블로힌체프(D.I.Blokhinzev)교수의 마스크가 박혀있다.이 교수가 초대 소장을 지냈기 때문이다.블로힌제프 교수의 아들은 현재 모스크바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 소장이며 딸은 드브나의 물리 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핵물리학 공동연구소(JINR)는 그동안 서방국가로 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으나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공화국이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서방국가 과학자와의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고 연구 업적도 개방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소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공동 핵물리학 연구소(CERN)와 같은 개방된 또 하나의 공동연구소로서 그 위상을 바꾸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 연구소의 고민은 역시 두뇌유출이다.국가 발전의 기본 요소는 우수한 과학자를 많이 보유하는 것임을 러시아 사람들은 강조한다.
  • 경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경제 자율화·국제화속 「제몫찾기」분출/민주화대가불구 한해평균 9%성장/1인당 국민소득 5년새 2배로 늘어/주택 2백만호 건설로 부동산투기 잠재워/근소세 부담 크게 줄여 서민생활 안정 도모 6·29선언이후 5년,경제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엄청나게 변했다.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이 당초 관주도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경제의 모든 부문을 지배해 오다시피했던 정부의 입김이 6·29선언의 자유화정신에 의해 민간자율에 맡겨졌다.농·수·축협등 농어민단체의 장들을 직선으로 뽑고 거의 모든 산업에의 참여가 기업들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다소 떨어지고 과소비가 생기는 등 많은 대가도 치렀지만 궁극적으로는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유경제체제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는 평가이다.경제분야의 변화를 경제부 기자들의 방담으로 정리해 본다. ▷경제부기자 방담◁ 정 신 모 차장(부장급) 염 주 영 기자 박 재 범 〃 권 혁 찬 〃 우 득 정 〃 박 선 화 〃 육 철 수 〃 오 풍 연 〃곽 태 헌 〃 ­6·29선언 이후 전반적인 민주화 추세 속에서 경제분야에도 개방화·자유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속도가 너무 빨라 경제적효율이 걱정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성장이나 국제수지 물가등 거시지표의 모습이 다소 나빠졌지만 실업률이 완전고용이랄 수 있는 2% 수준에 계속 머문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요즘 물가가 불안하다고 야단이지만 그동안 물가보다 소득이 훨씬 더 올랐기 때문에 국민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완전고용에 육박 ­완전고용이라는게 경제정책의 최종목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업적이지요.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도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노조결성의 증가와 함께 급격한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며 고임금시대로 접어든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87년 4·4분기 이후 89년 1·4분기까지 근로자의 명목임금이 62.5%나 올랐어요.노동계는 그동안 억눌렸던 임금상승요인이 현실화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들은 가파른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야단입니다.분명한 것은 그동안 저임금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우리 경제가 기술위주의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국면을 맞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득향상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비해 정부의 권한은 크게 약해져 물가관리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권위주의 시절에 쓰이던 정부의 강압적 억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5공 이후 누적된 공공요금 인상요인과 정책대응이 불가능한 외식비 및 교양오락비등의 지출이 늘면서 정부의 물가관리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그런데도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여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동산투기가 수그러들면서 집값이 안정돼 서민들이 내집마련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이는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개발부담금제등 선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고 다소 초법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토지공개념 관련법에 힘입은 것입니다.일본도 우리의 공개념법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주택 2백만호 건설및 토지공개념의 도입은 대단한 사건입니다.다소 무리한 계획을 단기간에 추진하느라 건자재파동,건설경기 과열,인력난등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만성적인 주택난과 주기적인 가격폭등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또 자력으로 내 집마련이 불가능한 법정영세민을 위해 재정에서 85%를 부담하는 영구임대주택을 19만호나 지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요. ­소득세법을 여러차례 개정해 근로소득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준 것은 월급쟁이에게 커다란 선물입니다.5인가족 기준으로 한달에 70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88년에는 월급에서 4만7백50원을 근로소득세로 뗐지만 89년에는 1만9천9백10원으로,91년에는 6천30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근로소득세 면세점 또한 89년에는 4백4만원이었으나 90년에는 5백13만원으로 1백9만원이 높아졌습니다.올해에도 연내 면세점을 인상하거나 세율을 내리는 방안 중 하나를 택해 세법을 또 고칠 예정이기 때문에 세부담은 앞으로 더 가벼워집니다. ○재벌탈세등 응징 ­권력과 재계와의 관계 변모도 특기할만하지요.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은 재벌과 협조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를 통해 기업들은 확장을 해왔습니다.이런 밀월관계는 6·29선언에 따른 개방화·민주화로 상당부분 무너져버렸습니다.90년의 5·8조치와 대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여신관리 강화,현대그룹 탈세에 대한 거액의 추징 이후 누적된 재계의 불만은 재계의 대표주자였던 정주영씨의 국민당 창당에 이은 14대 총선참여로 집권여당에 대항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지요. ­6·29선언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경제민주화 여론을 배경으로 6공의 두번째 부총리겸경제기획원장관으로 등장한 조순씨는 재임 15개월 동안 토지공개념 관련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추진하는등 개혁에 힘을 쏟았습니다.금융실명제는 여러가지 이유로 실명되고 말았지만 개혁조치들은 사사건건 재계와의마찰을 초래했고 그 결과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탈냉전시대에 맞추어 북방경협이 활성화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88년 7·7선언(대사회주의국가 문호개방)이후 구 소련및 동구국가와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북방교역이 연평균 30%씩 증가해 지난해 81억달러에 달했습니다.북방투자도 지난해말까지 1백83건,2억1천7백만달러가 허가돼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북방국가와의 경협추진은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우회적으로 촉진함으로써 장차 남북한 민족경제공동체의 기반조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6·29이후의 경제를 증시와의 힘겨운 투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초기 한때 1천대를 돌파했던 종합주가지수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며 5백선까지 떨어졌습니다.종합주가지수는 집권당 치적에 대한 종합평점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는 증시를 떠받치는데 안간힘을 쏟았습니다.이 결과 나온 89년의 12·12조치는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두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기계·전자·철강·석유화학등 8개 업종별 공업법이 모두 폐지돼 민간자율을 강조하는 공업발전법으로 통합되고 산업합리화 조치마저 풀리면서 업계를 좌지우지하던 상공부의 권한이 크게 축소됐습니다.이전까지는 이런 개별공업법에 따라 새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공발법에 따라 신고제로 바뀌며 신규 참여가 자유로워졌습니다.지금은 오히려 정부의 간섭이나 중재를 바라는 실정입니다.최근 삼성중공업의 특장차 생산참여가 대표적 예입니다.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기존 업체들이 정부에 삼성의 신규 참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석유화학업종에 진출하던 재작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은지위 높아져 ­한때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까지 불렸던 한은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88년 한은법 개정에 관한 재무부와 한은의 논쟁 이후부터 양측의 저울추가 대등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특히 조순총재 취임을 계기로 양측의 업무협의가 보다 원활하고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조총재는 최근 『한은 독립을 명문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관행상으로 실질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양측의 공조체제가 형성됐음을 시사했습니다. ­6개사가 과점하던 생명보험 시장이 대·내외적으로 개방돼 회사수가 33개로 늘어났고 동화·대동·동남·하나·보람은행등이 신설됐으며 외국 증권사의 진출이 허용되는등 금융시장이 폭넓게 개방됐습니다.금리자유화도 국제화·개방화에 따른 조치입니다. ­증권업계나 투신업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어 과거 당연한 관행으로 치부되던 재무부나 증권감독원의 말발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인천에 있는 한일투자신탁은 지난 2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무부가 부사장으로 뽑아줄 것을 요청한 전덕순씨(전대한투자신탁부사장)의 선임을 부결했습니다.가히 혁명적인 변화이이지요. ­농어민의 권익도 크게 신장됐습니다.농·수·축협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장및 각 단위조합장을 농어민이 직접 뽑게 되자 이들 단체들이 말 그대로 농어민을 위한 단체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조합원이 반대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업은 하지 못하고 농어민의 소득증대로 연결되는 각종 유통·가공사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중수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노사분규등 민주화초기 난관 극복/시장경제 창달위해 직업의식 확립 절실 먼훗날 우리 경제를 돌이켜 본다면,지난 수년간만큼 경제체제 및 정책운용의 변화가 컸던 시기도 없을 것같다.권위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추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정부주도형 성장전략을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의 창달로 전환시키게 하였다.또한 지금까지 양적 성장을 목표로 하던 경제발전전략이 질적 내실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이는 60년대초 이후 지속되어온 고도성장정책이 계층간 불형평및 부문간 불균형이라는 경제구조의 모순을 낳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경제제도의 개선 및 경제가치관의 정립을 통하여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정책결정의 민주화란 정책입안부터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민주화의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여건에서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적 행동을 불러일으킬 측면도 없지 않다.더구나 정부부처조차 정책조정 과정에서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처간 할거주의가 나타나게 되었으며,실제로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같은 일들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민주화를 촉진하게 된 시점을 전후하여 우리 경제는 3저효과 등 대내외 요인에 힘입어 미증유의 국제수지 흑자를 시현하고 있었다.하지만 그후 흑자에서 적자로의 반전 역시 민주화의 대가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경제운용관행의 급격한 변화가 물적 생산측면에서의 효율성을 과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춘 결과를 초래하였다고는볼 수 있다.그러나 그 효과를 계량화할 수는 없으나 시장경제의 각 경제주체들로하여금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원리 및 정책선택의 현실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이득은 아마도 우리 국민의 공동체의식함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권위주의 시대에서는 경직된 조직운영으로 말미암아 구성원들의 대립의식이 형성되었으며 민주화 초기단계에서 일어난 집단이기주의,격심한 노사분규 등이 그 결과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서의 각 경제주체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아울러 예전처럼 과격한 주장이나 행동으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명시적으로 추구하려는 추세는 사라져가고 있다.작년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었을때 사회적으로 일어난 과소비억제 캠페인은 국민 각계각층으로하여금 건전한 경제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우리 산업의 경쟁력제고를 위한 최근 언론주도의 캠페인 등도 실로 경제민주화의 긍정적 부산물인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자율화와 분권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이는 시장경제의 창달로써 이룰 수 있다.각 경제주체의 건전한 직업정신의 함양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실히 느껴야 하며,이러한 경제정의의 확립이야말로 선진경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 국가경영전략연,「6·29」5돌 성과와 과제 심포지엄

    ◎「제도적 민주화」 걸맞는 의식선진화 시급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사장 강경식)은 29일 6·29선언 5주년을 맞아 「한국민주화의 현재까지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이날 하오 2시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김동환변호사가 「법과 질서」, 이동찬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능률과 형평」, 정진석외국어대교수가 「민주발전과 언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가의 당면과제와 2천년대 재도약을 위한 종합전략을 제시했다. ◎법과 질서/김동환 변호사/지자제등 「자율」 크게 확대/다양한 욕구 타협적수렴 바람직 6·29특별선언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관심과 노력이 정치현상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특히 5·16군사혁명이후 정치권력이 경제의 주동력이 되자 국민들의 경제생활·사회생활이 정치권력의 향배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국민의 관심이 정치상황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극도로 혼란한정치상황이 국민의 동요를 배제하기 위한 처방으로써 6·29선언이 구상되었다고 보며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6·29선언의 본질적이며 직접적인 의의는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함으로써 정치상황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있었다. 또한 이 선언이 정치상황의 안정에 본래적인 의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나타난 효과는 국민의 의식과 생활전반에까지 미치고 있다.특별선언이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사회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특별선언 여섯째 항목에서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자제실시,대학교육의 자율화,교육의 자치 등을 예시하고 있는데 비추어보더라도 제도를 통한 자치와 자율의 확대보장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제도에 의한 자치와 자율의 확대보장은 국민적 욕구를 처리하기엔 너무나 미흡했다.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주장,안전한 소비생활을 요구하는 주장,적정한 책임과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하는 주장,참다운 교육을 실시하고 받아야 한다는 주장,장애가 있는 사람이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성별·지역별·학력별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등 다양한 주장들이 알게 모르게 분출된 것이다. 정확히 말해 6·29선언이 다양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행위를 자유롭게 허용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주장들이 개입되었으며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억제되고 획일화를 요구받던 다양성의 회복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경험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다보니 현행 질서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던 것도 사실이다.당면한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는 궁극적으로 손실을 초래한다는 경험을 가지게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다양한 시민적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질서의 실현이다.정리되지 않은 다양성을 정리하여 발현하는 자율적인 시민활동의 활성화를 통하여 그러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제도는 사적자치의 확대강화와 공권력개입의 축소약화라는바탕위에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지방자치제의 활성화에 따라 생활법률분야를 조례에 위임하는 방안이 권장되어야 한다.자치와 자율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공공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하는 경우 문제의 그 우선순위 등에 따르는 불만은 해소될 것이다. 모든 생활법률은 규제가 아닌 인도를 기본정신으로 하여 제정되어야 한다.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의 생활수요를 능동적으로 발굴하여 민원에 앞서 제도화하는 적극적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건전한 시민의식은 준법생활로 부터 시작된다.법을 지키지 않으면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엄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국민을 맡아서 처리하는 당국자들의 깊은 철학과 결연한 의지,그리고 국민모두의 인고와 호응이 있어야 제도의 정비와 의식의 정립이 이룩될 수 있다. ◎능률과 형평/이동찬 경총회장/고임금따른 역기능 표출/「경제풍향」제시할 일관정책 긴요 우리경제는 6·29이후 일대 변혁기를 맞는다.그것은 성장가도를 달리며 뒤돌아볼 틈이 없었던 우리경제가 잠시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성장의 그늘속에서 잠시 유보시켜 놓았던 문제인 분배와 균형에 관한 요구가 경제민주화 조치와 함께 자연스럽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5주년을 맞는 요즈음 다소 안정되어 가는 느낌도 있지만 그간의 문제해결에 있어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6·29의 본래취지가 어떤면에서는 왜곡되어 너무 조급하게 변화를 바랐던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경제와 관련된 일련의 정책들도 경제발전을 위한 순기능적인 역할도 많이 했지만 일시에 많은 변화를 요구한데서 오는 역기능도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88서울올림픽의 주최는 우리민족에게는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그것은 바로 경제의 힘이었다.우리경제가 세계10대 교역국으로까지 성장할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기업들의 노력도 간과할수 없지만 역시 최대의 공로자는 우리 근로자였다.그러나 계속된 성장위주의 정책은 근로자복지 향상면을 다소 소홀히 하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해주었다.근로자들의 쌓인 욕구불만은 결국 6·29경제민주화 조치와 함께 일시에 도출되면서 산업계는 홍역과 같은 과도기적 현상을 맞게 된다. 6·29선언은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풍미하는 가운데 잠시 잊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되돌아 보게끔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근로자들이 자신의 몫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패배감에 젖게 됐고 이 패배감은 과격한 노사분규로 이어져 기업현실이 등한시된채 과도한 임금인상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87년이후 임금인상은 생산성 향상의 뒷받침없이 이루어졌다.사회적변화와 요구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 너무 조급하게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음을 간과할 수 없다.근로자들의 가계수지가 사상유례없는 높은 임금인상률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소득 5천달러는 결코 잘사는 나라의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소비 풍조의 만연,주택및 전·월세가격의 상승등은 결과적으로 근로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빈곤감을 더해준 꼴이 된 것이다.해마다 6천개가 넘는 기업이 도산하고 있으며 과소비풍조속에 자고나면 없어지는 것은 중소제조업이고 늘어나는 것은향락산업이다.우리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있다.최근들어 경제단체및 언론이 주체가 되어 「우리경제를 되살리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6·29선언은 경제정책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주택 2백만호 건립은 주택문제해결과 부동산가격안정에 실로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원자재및 임금상승을 부추겼고 성장도 제조업위주에서 건설·서비스분야가 중심이 되는등 급기야 제조업경쟁력강화 문제가 대두되는등 역기능도 무시할수 없다.5·8부동산조치도 부동산가격의 상승을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신념에 따라 많은 성과를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기업의 활동은 위축되었다.금융정책에 있어서도 계속된 긴축정책은 물가안정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기업의 활동성을 약화시킨 면도 있었다.이상 몇가지 예는 6·29이후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너무 급하게 모든 것을 처리하려했던 면과 정책의 일관성이 더러는 없었다는 아쉬움때문이다. 6·29 5주년시점에서의 과제는 각자 제역할을 다해야 한다는데있다.국민은 근검절약하는 가운데 저축을 생활화해야하며 기업도 근로자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정립하여 복지향상을 통한 실질적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근로자는 경제시국에 대한 위기감을 공감하는 가운데 땀흘려 일하는 풍토를 재조성해야 한다.정부도 강력하고도 가시적인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일관되게 시행해나가야할 줄 믿는다. ◎민주발전과 언론/정진석 외대교수/언론 급신장속 질 못따라/사이비매체 봇물… 부작용 없애야 6·29선언은 언론의 모습을 크게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6·29선언의 8개항목 가운데 가장 특기할 부분은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언론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겠다는 항목이다.언론의 자유는 6·29이후 오늘까지도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29선언 이후에 정치상황의 변화,서울올림픽 개최등을 통해서 언론은 이전의 여러가지 통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영역을 과감하게 보도할 수 있게 되었다.87년11월에는 언론기본법이 폐지됐고 이에앞서 8월에는 주재기자제도가 부분적으로부활됐다.6년만에 신문의 증면이 이루어졌고 기독교방송이 뉴스방송을 다시 시작했다.또 신문·잡지의 발행을 자율화함에 따라 새로운 언론매체가 대량으로 등장했다.60년 4·19직후 제2공화국이 발행의 자유를 제한없이 보장했던 이후 30여년만에 처음 나타난 현상이었다.언론사의 노조결성,언론의 민주화노력등 언론활성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6·29선언때 32종이던 일간지가 92년3월말 현재 99개로 3배이상 늘었다.88년1월과 7월에는 월북작가 1백20여명의 작품을 해금했다.88년7월7일 대통령특별선언이 나온이후 정부는 북한의 자료를 9월3일부터 제한적으로 개방했다.이때부터 북한서적이 시중서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6·29이후 신문발행의 자유가 상당부문 회복되면서 언론계와 정부당국은 또다시 제2공화국 시절과 같은 언론기관의 난맥상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그러나 4·19직후와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90년 상반기부터는 신문이 연중무휴 발행을 실시하고 있다.석간지의 일요판과 조간지의 월요판 발행은 5·16후 군사정부의 언론정책에 따라 62년8월부터 중단됐었다.30년 가까이 지켜져왔던 금기의 벽이 무너지고 연중 쉬는날없이 신문이 발행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언론자율화현상의 하나이다. 6공언론을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은 언론노조의 결성과 기자들의 집단적인 활동이다.89년 1월까지 전국 43개 언론사에 노조가 결성되었고 조합원수가 1만4천여명에 이르렀다. 6·29선언이후 언론자유의 신장과 언론사·언론인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르는 문제점도 있었다.첫째,언론사의 급격한 증가로 사이비기자와 사이비 경영인이 발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사이비기자에 의한 피해를 막기위해서는 공보처와 신문협회·언론중재위등에 「사이비기자 고발센터」를 두기도 했으나 완전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둘째,기자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언론자유의 신장에 비례해서 높아지지는 못했다.과거의 비리가 많이 시정되었으나 언론계의 자정노력은 큰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셋째,언론은 지면을 배가함으로써 전달하는 정보의 양적규모를 확대하는 것처럼보이지만 증가된 지면의 반이상을 스포츠·연예오락·광고가 차지하고 있다.균형잃은 지면배정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기본권에 관계된 정보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넷째,과당경쟁으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인권및 프라이버시침해등의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끝으로 발행의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매체가 기존매체와 경쟁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기존매체는 자율화이전에 이미 대기업화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매체는 기존매체에 비해 모든면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어 여론의 획일화현상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