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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지방 변협 새 회장 황계용변호사(인터뷰)

    ◎“「돈만 아는 변호사」란 그릇된 인식 씻을터” 『서울지방 변호사협회 사상 처음으로 협회장에 무투표당선된 것은 책임감을 가지고 협회발전과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하라는 회원들의 뜻으로 받아들여 앞으로 2년 임기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26일 서울변호사협회장으로 뽑힌 황계룡변호사는 변호사들의 기본적인 사명이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므로 무엇보다 이 사명을 염두에 두고 시대변화에 맞는 현대적인 변호사회의 활동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87년 설치된 고문신고센터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형사피해자뿐 아니라 공해로 인한 피해자와 기업에 의해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의 보상문제 등 개인변호사가 할 수 없는 폭 넓은 의미의 인권옹호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황회장은 이를 위해 각종 피해자들이 변호사들을 좀더 쉽게 접근해서 실질적인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임은 물론 「돈만 아는 변호사」란 그릇된 인식을 씻고 국민으로부터 사회정의실천자라는 신뢰를 받는 변호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지방자치선거에도 회원들이 많이 출마해 법조인으로서 법치주의가 확립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겠습니다』 그는 또 회원들의 후생복지 문제와 점차 심화되고 있는 회원상호간의 세대간 격차 해소문제에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경북 상주출신으로 지난 58년 고시사법(10회)·행정(11회)양과에 합격한뒤 서울민·형사지법과 대구지법 판사를 거쳐 69년 변호사를 개업한뒤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 및 서울지방변호사회 제1부회장 등을 지냈다. 부인 서덕생여사(56)와의 사이에 2남2녀가 있다. 취미는 핸디12의 골프.
  • 노조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사설)

    얼마전에 한국노총이 지자제선거 참여 등 직접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겠다고 했을때 현실 정치권은 물론 일반국민들도 그 추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또 그들의 정치활동선언 자세가 매우 구체적이고 지속적이라는 데에서도 몇가지 문제점이 제기되었었다. 한때 민자당과 평민당 등 정치권 내부에서도 노총의 정치참여 움직임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는 듯했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같다. 그런데 최근 전교조가 다시 올봄 실시예정인 지자제의 기초의회 선거에 후보를 내겠다고 나섰다. 기초자치단체의회는 정당이나 정파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전교조가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명분으로 내세워졌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기초의회이건 광역의회 또는 국회이건 그 선거에 참여함은 직접적인 정치활동이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과 노동관계법은 노동3권은 물론 노동조합과 그 활동을 최대로 보호보장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노동조합법 제1조는 이 법이 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며 복지를 증진함으로써 그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과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노조법 제12조는 노조의 정치활동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공직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수 없게 돼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번 노총이 선언한 바 「특정 후보의 지지 또는 반대」 「다른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선거감시활동」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노조와 그 활동이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은 그것을 통해 헌법이 보호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근로자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대의에 입각한 것이다. 확실히 지적하건대 노동조합이란 경영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법으로 보호되는 절차를 통해 근로자의 실질적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한 조직이지 정치관련법 조항이 정한 절차를 뛰어넘어 곧바로정치조직화하거나 정치 그 자체에 뛰어들 수 있는 조직이 아닌 것이다. 결론은 명백하다.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전교조가 내세운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의 직접참여 역시 법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법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시대적 추세와 사회여건에 따라 수정 보완될 수 있다. 또 갈수록 다양화되어가는 사회에서 근로자의 현실참여의 폭이나 정치참여의 욕구는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상황을 방영하는 법의 정신과 그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는 일은 국익과 사회유지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근로자의 직접적인 정치참여 욕구를 막을 수 없는 경우라면 노조 또는 노총의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활동으로서 또는 근로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정당의 결성과 그 강령아래 정치에 참여토록 해야한다. 노조는 정당이 아니며 정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장기화 국면의 걸프전황

    ◎“후세인,3월 라마단전후 대반격 기도”/이라크 의회,“미 항모에 자살공격” 허용/악천후 겹쳐 후세인거처 공습 실패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회교도의 대행사 기간인 오는 3월의 라마단때 대공세를 취하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으로 믿고 있으며 따라서 그는 걸프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가 버티다가 라마단때 한바탕 결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집트의 중동문제 전문가이자 중견 언론인인 아델 아메르씨가 25일 말했다. 중동통신(MENA) 편집부국장인 아메르씨는 사담 후세인이 현재 다국적군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력의 열세에 처해있는 이라크가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의 비축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라크측으로서는 지금이 전쟁을 피하려고 하는 회교력의 7번째달인 라자브(1월17∼2월15일)에 해당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아메르씨는 회교도들은 라자브기간중 전쟁을 하는 것을 하나의 죄악으로까지 간주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그는 다국적군의 공격을 버티다가 오는 3월반격을 시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계속 중립 고수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25일 이란이 이라크편에 가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자살행위」라며 일축했다.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걸프전쟁에서 이란이 취하고 있는 중립정책을 옹호하며 『우리는 이라크가 걸프로 가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이라크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미국에 가담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란의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이라크를 지원할 것을 촉구했으나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라며 『이라크가 걸프로 가는 통로를 획득한다면 이는 지역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담정권 결국 전복” ○…모셰 아렌스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5일 걸프전쟁이 수개월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이나 이라크군의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은 걸프전쟁이 끝나기 훨씬 이전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렌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걸프전쟁의 추이를 이렇게 전망하고『결국은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후세인을 몰아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전쟁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밝히고 『이제까지 우리는 두세번 공격을 받았으나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국적군은 지난주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거처추적에 성공,공습하려 했으나 이라크 중부지방의 폭풍때문에 폭격기 출격을 취소했다고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가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실패한 이 임무는 이라크군의 지휘 및 통제기지를 파괴함으로써 이라크군에 치명타를 줄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밝혔다. ○독,걸프지원금 증액 ○…독일은 다국적군에 대한 지원분담금을 20억마르크(13억3천만달러) 이상 증액할 것이라고 독일외무부의 한 대변인이 25일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의 지원금은 모두 53억마르크로 늘게 되었는데 헬무트 콜수상은 지난해 9월 다국적군에 33억마르크를 지원키로 다짐했었다. 독일지원금 33억마르크중 약 절반은 이라크의쿠웨이트 침공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전선국가」들에 대한 지원으로,나머지 절반은 미군에 대한 군사장비 구입에 책정됐다. ○…이라크 의회는 25일 비밀 지하벙커에서 회의를 갖고 이라크 공군 조종사들이 미국 항공모함에 대해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스페인의 엘 문도씨가 바그다드발로 보도했다. 엘 문도씨의 알폰소 로조 기자는 이같은 보도를 육로를 이용,요르단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전송했으며 이 대사관은 또 팩시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마드리드로 급전했다. 그는 익명의 이라크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이라크 조종사들이 2차대전 당시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미 항공모함에 대해 자살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하고 『이같은 자살공격은 조시 부시 미 대통령의 사기에 치명상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피난민 8만 ○…다국적군의 이라크 공격으로 피난민이 된 이라크인 8만여명이 앞으로 2∼3일내 국경을 넘어 인근 국가들에 도착,수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카이로의 중동통신(MENA)이 25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인근 국가들에 설치된 캠프는 피난민 약 40만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담부인 해외 피신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부인 사기다가 친척들과 함께 잠비아에 피신중이라고 영국 데일리 텔리그라프지가 외교 소식통들을 인용해 24일 주장. 보도에 따르면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1차공습이 있는 직후 일단의 피난민들이 모리타니 항공편으로 바그다드를 빠져나와 누악쇼트에 기착,다시 잠비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 도착했으며 이들은 케네스 카운다 대통령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정부 귀빈휴양지로 향했다는 것. ○미 기자,쿠웨이트행 ○…걸프전쟁을 취재중이던 미 CBS­TV의 보브 사이먼 특파원과 PD,카메라기자 등 4명의 CBS 취재진이 실종됐으며 사우디 당국은 이들이 쿠웨이트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 뉴욕의 CBS방송 대변인은 사이먼 특파원과 PD인 피터 블러프,카메라기자 로베르토 알라레즈,음향담당요원 후안 칼데라 등 4명의 취재진이 지난 21일 이후 실종됐다고 말하고 사우디 군순찰대가 사우디 북부지역에서 이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을 발견했다고 설명. ◎불 공군,공화국수비대 대대적 공습/미,“이스라엘에 곧 패트리어트 증파”/걸프전 25일 상황 ▷상오1시29분◁ 이라크 공군은 처음으로 엑조세미사일을 걸프지역에 발사했으며 2대의 이라크 미라주 전폭기가 사우디아라비아 공군기에 격추. ▷상오2시◁ 걸프에 배치된 이라크함정 3척에 대한 다국적군의 공격으로 3명의 이라크인이 죽고 22명이 생포됐다고 영국군 대변인이 발표. ▷상오3시20분◁ 바레인 공군이 처음으로 이라크에 대한 공습에 참전했다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변인이 발표. ▷상오6시30분◁ 쿠웨이트의 KUNA통신은 다국적군 성명을 인용,『다국적군이 쿠웨이트의 카루섬을 탈환했다』고 보도. ▷하오2시15분◁ 이라크,바스라항을 폭격하던 영국 전폭기를 격추시키고 조종사를 생포했다고 발표. ▷하오4시55분◁ 이라크,다국적군 공군기와 미사일 등 14건 이상의 항공물체를 격추시켰다고 발표. ▷하오7시10분◁ 프랑스,다국적군에 참가중인 프랑스 공군기가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고 발표. ▷하오8시◁ 미 국방성,이스라엘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추가배치 할 것이라고 발표.
  • 박종철군 4주기/재야단체 추모식/대학생 1천명 시위

    고 박종철군 4주기를 맞아 박군추모 기념사업회와 「전민련」 등 6개 재야단체회원 2백여명은 14일 하오6시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박군 추모식 및 인권보고대회」를 갖고 각종 고문사례 발표와 반고문 인권옹호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여명도 이날 하오2시 동국대에서 추모집회를 가진뒤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려다 저지하는 경찰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미 의회,페만 개전 싸고 “뜨거운 고전”/무력사용안 표결결과 주목

    ◎“전쟁출혈 막게 경제봉쇄 통한 해결을”/비둘기파/“중동평화 정착위해 후세인 응징 마땅”/매파 부시 미 대통령이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한 무력 사용을 민주당지배 의회로부터 승인받기 위해 치열한 로비 활동을 벌였다. 부시는 11일 공화,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1백25명을 백악관으로 초치,『사담 후세인에게 미국의 결의를 알리는 마지막 기회가 당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무력사용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미 의회는 부시 대통령에게 무력 사용권을 부여할 것인지 아니면 대이라크 경제제재가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촉구할 것인지에 관한 토론을 빠르면 12일(한국시간 13일) 중에 끝내고 무력 사용 여부를 결정짓는 표결에 들어간다. 11일 토론에서 상원의 샘 넌 군사위원장(민주)은 무력사용 반대 결의안 제안 설명을 통해 『전쟁이 쉽게 끝나고 미군 희생이 경미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면서 『전쟁이 5일을 끌지,아니면 5주일,5개월을 끌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며 부시진영이 주장하는 「속전속결」을 공박했다. 그러나 뒤이어 등단한 민주당의 헤리 레이드 의원은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라크가 시간을 끌면서 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미국의 동맹을 파괴하려는 시도뿐』이라며 부시 지지를 선언,민주당의 분열상을 드러냈다. 10일의 첫 토론에서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 조지 미첼의원은 『전쟁 여부를 가름하는 중대한 결정이 조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무력 사용론을 비판하면서 『사태 해결을 경제 및 외교압력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로버트 미첼의원은 『사태 해결 지연의 위험성이 전쟁의 위험성 보다 더 크다』고 지적하면서 『인내가 외교정책의 목표가 된다는 건 미덕이 아니다』 『대가를 치르는 인내는 정책이 아니라 도피』라고 맞섰다. 하원 군사위는 경제제재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는 윌리엄 웹스터 CIA(중앙정보국) 국장의 서한을 공개,무력사용 승인안을 옹호했다. 이 서한에서 웹스터국장은 대이라크 금수가 경제적 효과는 나타내고 있으나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몰아내는데 필요한 정치적·군사적 타격을 충분히 주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경제제재가 앞으로 6개월∼12개월을 더 계속되더라도 경제난 하나만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하거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위태롭게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웹스터는 내년이 되면 경제 제재가 이라크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시인했다. 현재 미 의회는 대이라크 무력사용과 관련,4개의 결의안을 심의중이다. 우선,하원의 공화당 총무 로버트 미첼의원과 민주당 소속 스티븐 솔라즈 의원이 제출한 부시 지지결의안은 유엔이 설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15일 자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부시 대통령에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음,상원의 민주당총무 조지 미첼의원과 넌 군사위원장이 제출한 이른바 비둘기파의 결의안은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진 않지만 가장 현명한 선택은 경제제재와 외교적 해결책임을 강조하며 부시가 무력을 사용하려면 의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밖의 다른 두 결의안은 미첼 넌결의안과 별차이가 없거나 부시에게 전쟁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에 관해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원과 하원의 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현시점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에 반대하고 있어 부시가 투표결과를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지난 9일 제네바에서 베이커­아지즈 담판이 결렬됐을때만해도 분위기가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으나 토론진행과 더불어 반전 목소리가 증폭된 것이다. 미 의사당내의 일반적인 견해는 전쟁으로 가는 행진 속도를 가급적 늦추자는 것이다. 이번 표결에서 의원들의 판단을 좌우할 또 하나의 요인은 40년전 한국전때 잃은 의회의 전쟁 선포권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미 대통령은 미 육군과 해군의 총사령관이지만 미 헌법은 의회에 대해서만 전쟁선포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 의회가 이 권한을 마지막으로 행사한 것은 미국이 일본·독일·이탈리아에게 전쟁을 선포했던 2차대전 때였다. 1950년 6월 한국전 발발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에 전쟁선포를 요청하지 않은채 유엔 결의에 의거,한국에 파병했다. 부시도 이번에 그랬다. 한국전에서 미국은 5만4천명의 전사자와 약 6백70억달러의 재정 출혈이 있었다. 이처럼 엄청난 희생을 생각할 때 전쟁을 대통령 단독으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이다. 표결이 실시되면 하원의 경우 80명 이상의 민주당 의원이 부시 지지에 가세,무력사용 승인안은 그런대로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경제제재를 선호하는 상원이 부시의 무력대응을 훼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표결전날의 한 분석은 50대 50,아니면 단 1표가 결과를 좌우하는 가운데 부시에게 불리하게 결말이 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해 한때 백악관을 긴장시켰다. 공화·민주 양당지도부는 상원에서 자파의 승리를 각기 호언하고 있으나 언론은 공화당의 신승을 점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 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10명 가운데 8명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무력 사용을 승인한 유엔 결의안을 미 의회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응답자의 3분의 2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이 철수할 경우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이 주장해온 중동문제에 관한 국제회의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며 아랍­이스라엘 회담을 지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여 주목되고 있다.
  • “소는 「KAL기 격추」 진상 밝히라”/희생자 유족·인권옹호련등

    ◎「유해소각」 보도에 경악/“희생자 다시 한번 죽인 만행”… 사죄 요구 「대한항공 007편여객기 피격희생자 유족회」(회장 홍현모·53)는 7일 소련당국이 사고여객기를 사할린 근해에서 격추시킨 뒤 유해를 극비리에 수거,소각했다는 외신보도에 대한 성명을 내고 『소련당국의 행위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소련은 진상을 모두 밝히고 유족들에게 진실로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유족회는 『최근 정부의 북방정책 등으로 소련과 수교하는 등 외교관계가 활발히 진전되고 있는 마당에 이같은 사실이 밝혀져 통분을 금할 수 없다』면서 『예상됐던 보도이기는 하지만 유해를 몰래 소각해 묻었다는 것은 희생자들을 다시한번 죽인 만행』이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유족회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한소양국 합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이 밝혀지는 대로 소련당국은 사과·사죄와 함께 보상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방한중인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이 이같은 보도에 대해 공식해명하고 정부도 공식적인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사고당시 부모를 잃은 박애란씨(39·주부)는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져 부모님의 유골이라도 찾아 우리땅에 묻고 싶다』면서 『우리 정부는 소련과의 관계개선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민감정을 고려해 주체성을 갖고 소련으로부터 진실한 사과를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도 이날 성명을 발표,『소련당국이 소련전투기에 격추당해 희생된 2백69명의 탑승객 유해를 발견하고도 신원을 확인하여 유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유해를 모두 소각했다는 사실에 온 국민과 함께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연맹측은 또 『한·소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소련정부에 정확한 진상규명은 물론 정식사과와 보상을 요구해야하며 소련정부도 과거의 잘못을 시인,진실을 밝혀 희생자의 원혼과 유족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소련의 우파와 좌파/곽태헌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제4차 소련 인민대표대회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볼셰비키혁명이후 소련의 지도자로는 최대의 「합법적」인 권력을 넘겨준채 지난 27일 폐막됐다. 이번 인민대표대회는 대통령의 권력강화안을 통과시켰고 신연방안 및 토지사유제의 국민투표 실시 등을 결의,고르바초프의 의도를 대부분 수용했다. 다만 폐막일인 27일 고르바초프가 하루전 신설된 부통령에 지명한 야나예프이 인준을 1차에서 거부,「거수기」의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을 내외에 과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인민대표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지난 20일 「독재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전격 사임을 발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외신들은 셰바르드나제나 우파(Rightist)의 독재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는데 소련의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독자들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좌우파의 개념은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에서 볼때 좌측에 급진파인 자코뱅당이,우측에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의석을 자리잡은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통설로 되어있다.일반적으로 좌파(Leftist)는 급진진보 혁신의 성격을 띠는데 반해 우파는 보수권위주의 반동적인 성격을 갖는 상호대조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40여년 동안 냉전의 틀속에서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과 대치상태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때 좌파는 좌익 즉 공산주의자를,우파는 우익 즉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셰바르드나제가 지적한 우파란 정통 사회주의를 선호하며 페레스토로이카(개혁)에 반대하는 군부 및 관료 등 비개혁론자들을 지칭한 것이다. 다시말하면 소련의 우파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좌파 즉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을 의미한다. 반대로 소련의 좌파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는 개혁세력,즉 자본주의와 공존을 모색하는 온건 사회주의자들을 말한다. 또한 일부 외신들이 최근 고르바초프가 「좌」에서 「우」로 변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는 데 이는 고르바초프가 「개혁」쪽에서 「보수」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소련 및 동구관련 기사에서 우파는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려는 세력을,좌파는 보다 개혁지향적인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구에서 쓰는 좌·우의 개념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는 냉전적 사고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어느 체제에서든 현상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보수세력을 우파로,거기에 개혁을 가하려는 세력을 좌파로 보면 무방할 듯싶다.
  • 평민 총장에 김봉호의원

    ◎연수원장 유준상의원/인권위장 이상수의원/당기위장 허만기의원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29일 김봉호 국회경과위원장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는 등 당직인사를 단행했다. 김총재는 9역중 중앙정치연수원장에 유준상의원,인권옹호위원장에 이상수의원,중앙당기위원장에 허만기의원을 각각 임명하고 김영배총무와 조세형 정책위의장 등 나머지 당 5역은 유임시켰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신순범의원은 국회경과위원장에,권노갑의원은 총재비서실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사무총장 ▲전남 해남출신(57) ▲전남대 농대졸 ▲10,12,13대 의원 ▲평민당 정책위원장 ▲국회경과위원장 ◇유정치연수원장 ▲전남 보성출신(49) ▲고대졸 ▲11,12,13대 의원 ▲김대중 대통령후보 유세위원장 ▲국회경과위원장 ◇이인권위원장 ▲전남 여수출신(44) ▲고대 법대졸 ▲사법시험합격 판사 변호사 ▲평민당대변인 ◇허당기위원장 ▲경남 합천출신(60) ▲연세대 중퇴 ▲평민당 총재특보 ▲한국경제과학연구소 이사장
  • 「신사고」실천… 새 평화시대 주도/셰바르드나제 재임 5년 공적

    ◎소 개혁 이끌고 고르비­레이건회담 중재/획기적 군축 실현,동구변혁의 계기 제공 20일 전격 사임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지난 5년간 페레스트로이카의 신사고 외교로 전세계에 평화를 가져온 개혁의 대변자였다. 그가 지난 85년 7월2일 그로미코의 후임으로 외무장관에 발탁된 것만큼이나 이번 그의 사임은 전세계에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사임이 전격적이기도 하지만 그가 고르바초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를 떠받쳐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고 영어에도 능통하지 못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취임후 하루 18시간이나 되는 근무와 끈질긴 노력으로 국내외 파트너들을 설득시킴으로써 대결과 정복의 소련외교를 화해와 공존의 외교로 전환시키고 소련을 국제무대에서 평화의 옹호자로 이미지를 개선시켰다. 그의 업적을 분야별로 짚어본다. ▲동서냉전의 종식=그가 남긴 첫번째이자 가장 큰 업적은 85년 11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의 미 소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 6년만에 열린 이 정상회담은동서냉전의 해빙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동서 대결시대의 종식을 위해 그가 남긴 일들은 이외에도 무수하다. 그는 미 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 소 화해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3차례의 정상회담을 더 마련했으며 지난 11월에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더 이상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로 신뢰감을 쌓았다. ▲군축=개방정책 추진이후 종래의 군축방침을 대폭 수정,서방측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감축하게 되는 동률감축방침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88년 6월에는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정이,올해 11월에는 유럽배치 재래식전력(CFE) 감축협정이 체결됐다. 또 미 소 전략무기를 3분의 1 가량 감축하는 협정이 내년 2월 체결 예정으로 있다. ▲동구개혁 및 독일통일=89년 소련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동유럽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체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는 과정에 동의함으로써 전후냉전체제의 구조적 붕괴를 가져왔다. 그는 이로 인해보수파로부터 동구를 잃고 소련의 안보를 손상시켰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으나 「분단된 독일이 통일된 독일보다 더 위험하다」는 그의 주장을 관철해 나갔다. ▲지역갈등 해소=그는 10년 가까이 수렁을 헤맨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이라며 철수토록 결정을 내리도록 외교정책을 이끌었다. 남부아프리카에서도 쿠바군을 앙골라에서 철수시키고 나미비아를 독립시켰다. 89년 2월에는 중국을 방문,중 소 정상회담을 마련함으로써 오래된 중 소의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일본·한국·이스라엘 등과의 관계도 개선시켜 동서화해의 물결이 지구 곳곳에 미치도록 했다. 페만사태에서도 소련은 미국과 거의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평화회복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그의 업적은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토록 한 것이다. 그는 외무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 시절 절친한 친구인 고르바초프와 흑해변을 거닐며 「모든 것이 썩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 노대통령 방소 계기로 본 두나라 관계사

    ◎극동패권 겨냥,러시아함대 1854년 첫 입항/거문도 상륙뒤 한달동안 동해지역 실측/열강침탈 막으려 1884년 조·로조약/노·일전에 지자 공식관계 끝나… 일제땐 독립운동의 무대로 근대에 들어와서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정식으로 맺게 되는 것은 1884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관계의 수립에 앞서서 러시아인과 한인들 사이의 교섭관계가 선행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1850년대 초반에 러시아와 미국은 일본의 개항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때에 러시아의 해군중장 푸티야틴은 대일교섭을 위하여 마닐라에서 북상하여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분산된 함대의 집결장소로 거문도를 지적하였다. 1854년 4월2일 푸티야틴의 기함 팔라다호를 위시로 러시아함대는 5일간 거문도에 상륙하였다. 러시아함대는 계속 북상하여 4월20일부터 5월 중순까지 약 1개월간 한반도의 동해지역을 실측하기도 하였다. 푸티야틴은 또한 강원도 봉천군 금난진과 함경도 안변부 화등해진,영흥부 고령사 대암진 등에 상륙하거나 정박하였다. 이러한 사건은당시에 빈번하게 출몰하였던 많은 이양선사건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러시아는 조선을 개항시키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의 다른 특별한 관계는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는 19세기 중엽에 극동으로의 진출을 활발히 하게 되어서 1858년에는 아이훈조약을 통하여 아무르지방을 러시아영토로 편입하였고 1860년에는 이어서 북경조약을 체결하여 우수리지방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리하여 연해주를 통하여 조선과 러시아는 국경을 맞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러시아와 조선과의 관계가 일어나는 조건을 만들게 되었다. 1863년에는 조선에서의 흉년을 계기로 함경도의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함으로써 재소 한인의 첫 이민그룹을 형성하였다. 이어서 많은 한인들이 연해주로 속속 이주하였고 이들 한인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양측간의 교섭도 이루어졌다. ○흉년 못견뎌 국경 넘어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의 극동의 정세로서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은 한반도를 침탈하여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조선정부는 러시아에 대하여 대단한 공포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에 기대어 나라의 독립을 유지해 보려던 계획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조선정부는 방향을 바꾸어 적성국이었던 러시아를 끌어 들였다. 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그리고 영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때에 또한 러시아측으로서도 코르프가 프리아무트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동아시아정책을 적극화 하여 일본의 한국지배를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와 한국과의 외교는 급진전되어 1884년 7월7일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국교를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과 러시아의 첫 외교관계는 이같이 열강의 침입을 외교적 균형을 통해 회복하려는 조선의 노력과 그 열강의 일원으로서 동아시아정책을 강화하려던 러시아의 정책이 만남으로써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국교수립 이후의 조선은 아직 자주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의 외교적 힘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침략하고 있는 외세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존심만 키워주었고 그것조차도 결국은 만족되지 못하였다. ○1896년 친로내각 러시아는 결국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권을 위하여 한국에 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에 친러세력이 조정에서 형성되었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삼국간섭을 통하여 일본의 세력을 견제한 러시아의 외교적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여 친러세력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바로 이렇게 강화된 친러세력의 형성으로 인하여 1896년에는 아관파천이 일어나고 친런내각까지 성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친러내각의 성립은 러시아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해 주는 역할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강화되어가는 러시아세력과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기도하던 일본과의 대립은 드디어 1904년에는 러일전쟁으로 폭발하였고 이 전쟁에서 일본이 기선을 제압하면서 1904년 5월18일에 한로 조약은 폐기되어 공식적으로 한로관계는 차단되고 만다. 한로조약의 폐기 이후 한국은 얼마 안되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상태로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공식적으로 외교적 관계는 없었지만 한국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다양한 형태를 통하여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하여 나라를 빼앗긴 한인들은 노령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여 거기에서 독립운동의 꿈과 실질적 힘을 키워나갔다. ○북방정책의 결실 맺어 또 1917년의 러시아의 10월혁명 이후에는 소비에트정부의 민족해방운동의 지원을 기대하고 민족운동자들로 하여금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한인들은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소련의 지원을 기대한 것이므로 이 기대는 종종 기대 수준에 못미쳤을 뿐 아니라 민족운동의 발전에 역행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21년 6월에는 자유시 사변이 일어나고 1925년에는 일로협약에 의하여 한인의 독립운동이 또다시 제약을 받았으며 그외에도 소련은 자주적 민족운동세력이 새로운 한국건설의 주역이 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이로써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패권주의에 입각하여 미국과 더불어 남북한을 분단시키고 북한에서도 자주적 성격의 정권이 성립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분단된 한반도에 냉전논리를 강요하면서 소련은 북한을 사회주의국가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지원하였고 그 결과 남한은 소련과 적대적인 채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1985년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중 냉전논리의 현실적 적용의 결과 1950년에서 1953년까지 피비린내나는 내전이 있었으며 이는 스탈린의 승인에 의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후 한국과 소련은 서로 적의 상태에서 남남이었다. 이 기간중 1978년 KAL기 무르만스크호수 기착과 같이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소련이 한국에 대하여 인도주의적 일반원리를 따라서 행동한 적도 있었지만 1983년에는 KAL기를 격추하여 2백69명의 승객을 전원 사망케 하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며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다. 소련은 남한의 경제력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으며 동북아의 냉전구도를 바꿀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남한 역시 통일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냉전논리에서 탈피하여 1988년부터 북방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한국과 소련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되어 1990년 6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양국의 정상이 회담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9월에 한소 수교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12월13∼16일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공식적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렇게 하여 한로관계의 역사상 두번째로 다시 국교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국과 소련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을 가지고 있다. 소련은 더이상 한국에 대해 패권주의를 강요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며 한국은 더이상 저개발국이 아니다. 한국은 경제면에서 소련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한국민이 원하면 한국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정책은 소련의 기본적인 정책과 어긋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은 한국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실질적으로 이루어나가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북경TV에 다시 등장한 「동지」호칭/우홍제 홍콩특파원(특파원수첩)

    ◎개방 이후 붕괴된 평등의식 고취 안간힘 『시청자 동지들 안녕하십니까!』(관중동지문 만상호!) 중국전역과 홍콩 일부지역에서도 방영되는 북경 중앙TV의 저녁뉴스시간에 아나운서들이 하는 인삿말이다. 종전에는 그냥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각위 관중문 만상호!)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중순부터 「동지들」로 바뀌고 있다. 중앙TV의 이같은 호칭변경을 옹호하듯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얼마전 평론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정신에 의한 자아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동지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방개혁을 추진해온 80년대 우리 주변에는 공산혁명이전의 낡은 시대에나 쓰이던 아가씨(소저) 부인(태태)선생이란 말이 다시 범람하기 시작했다』며 경고성 논평을 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에서 아가씨란 호칭은 과거에 주로 기녀나 여자종을 가리키던 것이고 선생은 자기 남편 또는 다른 여자 남편의 높임말로,부인도 과거 지주나 관리의 아내에 대한 존칭으로 많이 쓰였다는 설명이다. 굳이 한국식으로한다면 선생은 「주인님」,부인은 「사모님」「마님」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중국에서 이러한 말들은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과거의 예를 들어 언어사용의 반혁명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쨌든 중국 당국은 앞으로 그들 국민이 동지란 호칭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쓰도록 강요할 것 같다. 동구 등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이 서구식 민주개혁을 단행하는 데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중국 공산당지도자 입장에선 어떻게 하든 국민들이 사회주의 혁명정신으로 더욱 강하게 무장되기를 바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다시말해 개방개혁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매우 염원하는 바이지만 정치사상적으론 사회주의 노선을 더욱 굳게 견지하고 싶은 것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동지란 호칭은 손문이 청조타도의 혁명을 주장할 때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뒤 공산혁명 투쟁기간과 중국 정부수립 이후의 대륙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중국 국민들이 어두운 색깔의 중산복을 입고 혁명을 외치는 등 겉모양이나 의식이 획일화한 구석이 많아서 상호간 호칭이 「동지」로 단일화 하는게 자연스러웠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개방개혁 이후 중국 국민들은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옷차림이 제각기 달리 밝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의식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동안 해외에 있던 화교들이나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상대방에 따라 동지란 말을 쓰기가 거북하게 느껴져서 아가씨·선생 등으로 다양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북경 TV 뉴스시간의 인삿말도 80년대 중반쯤 「동지들」에서 「시청자 여러분」으로 달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방개혁의 영향외에 중국에서 동지란 호칭이 외면당하는 또다른 큰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 평등의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중국의 고위직 당원이나 관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랫사람이나 일반국민이 자신을 동지라 부르는 것을 대단히 불경스럽게 생각해서 이름뒤에 직위를 붙여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성장·국장·청장하는 식으로불러줘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동지」는 본래의 평등개념을 상실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또는 국민들 사이에서나 간혹 쓰이게끔 천대를 받게 됐고 게다가 개방이 확대되자 이 말을 쓰면 구식의 촌놈으로 놀림받기까지 됐다. 한편 중국 당국은 지난해 천안문 사태 이후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이고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한 국민사상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안문 민주화요구 시위를 반혁명 폭란으로 널리 선전함은 물론 모택동이 장정끝에 혁명기지로 삼았던 연안참배를 강력히 권유하는 등 혁명정신을 고취시키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동지란 호칭을 쓰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취해지는 언어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복고조의 사상교육이 개방바람에 맞서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국민훈장 받은 “인권옹호” 두 유공자(인터뷰)

    ◎박삼중스님/“재소자 교화에 헌신… 누범 막게 재활 부축을” 「재소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비사주지 박삼중스님이 제42회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10일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인권옹호유공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부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어디부터 찾아가 중생을 구제 하겠습니까. 비록 한때의 잘못이 있을지라도 갇혀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마음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남달리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쏟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승려라면 누구도 한번쯤은 눈을 돌려볼만한 평범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현생한 불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조금이라도 불타를 닮으려는 작은 노력이 재소자 교화사업이었다는 스님은 지난 67년 대구 근교 용연사주지로 있을 때부터 교도소 안의 갇힌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70명의 사상범을 전향시키고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 등 7개 교도소 및 소년원의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1천5백여회의 교화강연을 갖기도 했다. 『사람은 마음에 따라 성인이 되고 악마도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불가의 교리에는 누구나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 교화의 목표는 재소자들에게 불성을 심는 것이었습니다』 사형수 1백여명을 만나 순화시키는 가운데 모두를 불교에 귀의시킨 스님은 그들에게서도 자비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처형을 당하면서 안구와 심장을 기증한 10여명의 사형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많은 범죄가 출소자들을 사회가 냉대하는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넉넉하게 그들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재소자 후원회장으로 뛰고 있는 스님은 이웃 일본 재소자들에게까지 교화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스님은 서울신문사 제정 교정대상 「자비상」을 지난 86년에 받기도 했다. ◎문일평씨/“비행 소년 선도 11년… 응달진곳 돕는데 보람” 제42회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문일평씨(63)는 11년째 비행청소년 선도와 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소리없이 봉사해 왔다.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된장·고추장을 만드는 삼학식품공업주식회사를 경영하고있는 문씨는 지난 79년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처음 실시됐을때 『좋은 일인데 나부터 실천해 보자』는 생각에서 우발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무섭다는 검사님」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 청소년을 맡아 선도하면서 선도·교화위원으로서 첫 인연을 맺었다. 『재소자 교화위원으로 위촉돼 교도소에 드나들자 혹시 보복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식구들이 많이 말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씨 뿐만 아니라 여동생(62)과 조카들까지도 솔선해 목포교도소 교화위원으로 봉사하고 있어 「교화위원 가족」으로 주위에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다. 『선도대상 청소년들이나 재소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의 벽을 갖고 있다』는 문씨는 『이 벽을 깨고 훈훈한 정을 나누는 관계가 되도록 무진 애를 쓰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 놓았다. 더구나 교도소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있어 선도하는데 비교적 어려움이 덜한 재소자들에 비해 「비행」청소년들은 온갖 유혹이 널려 있는 사회라는 열린공간에 개방돼 있어 곱절의 노력이 든다고 한다. 문씨는 10여년동안 비행청소년 30명을 선도,취업을 알선해 주고 목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 2백60여명에게 상담을 통해 갱생의욕을 심어주며 교화해 온 공로로 광주지역 선도대상과 지난 86년 「교정대상」에 이어 이번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악에 강한 사람이 선에도 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이들을 대한다는 문씨는 『음지에서 봉사하는 다른분들도 많은데 제가 이런 영예를 안게돼 송구스럽다』고 겸손해 했다.
  • 인권의 날 기념식

    제42회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이 10일 상오10시 이일규 대법원장·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이종남 법무부장관·박승서 대한변협 회장 등 법조인과 시민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세종문회회관에서 열렸다. 기념식에서는 인권옹호에 공이 큰 이태영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장 등 34명에게 국민훈장과 대통령·국무총리·법무장관 표창이 수여됐다. 국민훈장을 받은 사람은. ▲무궁화장=이태영 ▲모란장=조희채(변호사) ▲동백장=김영태(법무사) ▲목련장=박삼중(서울구치소 종교위원) 문일평(소년 선도위원).
  • 일,자위대병력 감축 고려/시사통신/방위력 증강계획도 재검토

    【도쿄 AFP 연합 특약】 일본정부는 자위대병력 감축을 포함 방위력 증강계획 전반에 관한 재검토를 고려하고 있다고 시사통신이 정부소식통들을 인용,5일 보도했다. 이 소식통들은 방위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 관방장관이 동서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이유로 지난 76년에 마련된 방위력 증강계획의 수정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이어 일본정부가 총 18만명으로 책정된 육상자위대 병력규모를 다시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동 방위력 증강계획 재검토에는 전투기 및 전함의 감축 가능성을 포함,해상·항공 자위대 사항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방위청 관리들은 이같은 시사통신 보도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하고 이와 관련한 정책변경은 방위위원회 의장인 가이후(해부)총리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 종막이 보이는 대처의「11년권좌」/2차투표로 가는 영 보수당수선거

    ◎민심 급속 이탈… 보수당 위기 반증/언론·당원로들은 명예퇴진 촉구 20일 실시된 영국 집권보수당수 선출투표에서 대처 영국총리는 2백4표를 획득,1백52표 획득에 그친 헤슬타인 전 국방장관보다 52표 앞섰으나(기권 16) 당선에 필요한 15%의 차이에 조금 못미치는 14.6%의 차이만을 기록함으로써 보수당의 새 당수선출은 27일의 2차투표로 넘어가게 됐다. 그리고 극히 미미한 것으로 보이는 0.4%의 차이이지만 이는 대처의 11년 권좌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될 수도 있다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투표결과가 밝혀진뒤 표에서 뒤진 헤슬타인측에선 마치 승리라도 한듯 환호한데 반해 대처진영에선 『최악의 결과』라며 실망을 표시하고 있는데서 양측의 명암은 뚜렷이 갈라지고 있다. 현직총리가 1차투표에서 당수지명에 실패했음은 사실상의 패배라는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참석차 파리에 머물고 있던 대처는 『과반수를 얻어 기쁘지만 2차투표까지 가게돼 실망스럽다』면서 『그러나 2차투표에선 반드시이길 것』이라며 투지를 보였으며 헤슬타인도 투표결과가 나온 즉시 2차투표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2차투표에는 또다른 후보들도 당권도전에 나설 수 있으며 1차때와는 달리 단순과반수만 얻으면 승리가 확정된다. 2차투표에 새로 후보로 나서려면 22일까지 후보등록을 마쳐야 하는데 더글러스 허드 외무장관이나 존 메이저 재무장관 등 제3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처가 후보를 사퇴한다면 출마할 수도 있지만 대처에게 도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현재로선 2차투표에서도 대처와 헤슬타인이 맞붙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며 그럴 경우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했던 대처가 승리할 가능성이 조금은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처총리에 대한 인기가 현재 사상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집권초기 치유곤란한 것으로 여겨지던 영국병을 잡고 자유경제체제를 옹호하는 대처리즘의 신화를 이룩한 대처지만 10년만에 되돌아온 경기침체로 이제 대처리즘의 기적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전국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말썽많은 주민세 신설문제를 강행하는 등 11년이 넘게 계속돼온 대처의 독단적인 통치스타일에 대한 반발도 갈수록 거세져 이제 반대처 감정은 영국민들의 일반적인 감정이 됐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만큼 뿌리깊게 확산돼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16개월간 노동당에 비해 인기도가 떨어졌던 보수당이 과연 대처의 지휘아래 92년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보수당내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2차투표에서 설사 대처가 이긴다 해도 보수당의 앞날은 험난하기 그지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처가 1차투표에서 당수지명획득에 실패하자 파이낸셜타임스와 인디펜던트지는 즉각 대처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촉구하고 나섰고 또 많은 보수당내 원로들도 대처가 2차투표에도 계속 나서기로 결정한데 대해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처가 당내외의 후보사퇴 압력을 받아들여 자신이 아끼는 인물을 제3의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헤슬타인이 보수당수가 될 경우 노동당 대신 보수당에 투표하겠다는 유권자가 20%나 된다는 최근의 여론조사결과는 해석하기에 따라선 보수당수가 꼭 헤슬타인이어야 한다는게 아니라 대처만 아니라면 보수당쪽에 투표하겠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 보수당이 2차투표에선 대처 대신 제3의 후보로 하여금 헤슬타인과 대결하게할 가능성도 뒷받침해주고 있다. 여하튼 1차투표에서 당수지명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철의 여인」대처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을 입게 됐으며 동시에 11년 이상 지속돼온 대처시대도 이제 거의 그 종막에 이르게 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국내경제의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냉전시대가 끝나고 미소화해의 새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강력한 외교를 펼치는 대처스타일이 더이상 국제무대에 어울리지 않게 된데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처총리는 80년대의 분위기에는 적합하지만 90년대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전 대처내각의 각료 이안 길모어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 유럽안보회의 채택 「파리헌장」 요지

    ◎민주주의 강화… 소수민족 독립성 존중/내년 11월 오슬로서 인권옹호 세미나/시장경제 지향… 번영된 통일유럽 건설/화학무기 금지·영공개방조약 곧 체결 동서냉전의 종식을 공식선언한 역사적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은 21일 「파리헌장」을 채택하고 3일간의 회의를 마칠 예정이다. 다음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 파리헌장의 요지이다. ▷민주주의 평화 통합의 새로운 시대◁ 우리들 참가국정상은 커다란 변화와 역사적인 기대의 시기에 파리에 모였다. 유럽에 있어서 대립과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가 존경과 협력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선언한다. 유럽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다. 헬싱키 최종문서의 이념은 유럽에 민주주의와 평화·통합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인권·민주주의·법의 지배 우리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를 건설,강화할 의무를 진다. 인권과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으며 법으로 보장된다. 정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의 자유의사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인간과 법의 지배 존중에 기초를 둔다. 우리는 국내 소수민족의 민족·문화·언어·종교적 독자성을 존중한다. ▲경제적 자유와 책임 경제적 자유,사회정의,환경문제에 관한 책임은 번영에 불가결하다. 자유와 정치적 복수주의는 시장경제발전에 필요한 요소이다. 시장경제 이행을 성공시키는 일은 중요하며 번영의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참가국간의 우호관계 유럽에서 새 시대가 탄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유럽제국 미국 캐나다 사이의 우호관계 및 협력을 확대,강화하고 제국민간의 우정을 촉진하기로 결의한다. 유엔헌장 및 헬싱키 최종문서에 따라 모든 나라의 영토보전·정치적독립에 대한 군사력에 의한 위협과 그 행사를 금지한다. ▲안전보장 유럽재래식전력(CFE) 조약조인을 환영한다. 일련의 실질적인 새로운 신뢰­안전조성조치의 채택을 시인한다. ▲통합 「독일문제의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에 커다란 만족을 표명한다. 북미와 유럽 각국 양측의 참가가 CSCE의 기본적 특징이다. 공통행동과 협력·연대에 의해서만 직면한 도전에 대처할 수 있다. ▲CSCE와 세계 참가국의 운명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연결돼 있다. 유엔을 지지하고 국제평화촉진에 기여하는 유엔의 역할강화를 희망한다. ▷장래의 지침◁ CSCE의 모든 원칙·조항을 완전 이행하고 나아가 균형잡힌 포괄적인 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인권분야 우리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불가침한 것으로 존중한다. 이 목적을 위해 1991년 11월4일부터 15일까지 오슬로에서 전문가 세미나를 연다. 소수민족보호가 충실히 되도록 협조하는 일이 긴급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수민족문제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91년 7월1일부터 19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한다. ▲안전보장 CFE조약과 신뢰조성조치(CBM)에 관한 협의의 성과를 한층 강화한다. CBM과 CFE를 계속하여 92년 개최예정인 헬싱키 재검토회의때까지 협의를 완료하도록 노력한다. 또 화학무기의 포괄적 금지조약 및 영공개방계획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촉구한다. ▲경제협력 시장경제에 기초한 경제협력은 참가국간 관계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고번영된 통일유럽을 건설하는데 유효하다. 시장경제의 확립과 자립경제기반의 창설에 애쓰고 있는 제국에 대해 지원을 계속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환경 참가국은 환경문제 해결의 긴급성과 개별적이고 공동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또 환경파괴에 관한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유럽환경기관(EEA)의 설립을 환영한다. ▷CSCE의 새로운 구조와 제도 차기 정상회담은 92년 헬싱키에서 열리는 재검토회의와 함께 열리며 그후 2년에 1번씩 개최된다. 이사회로서 외무장관회담을 적어도 연1회 연다. 이 이사회는 CSCE 정치적 협의의 주요장이 된다. 제1회 회의는 91년 베를린에서 연다. 고급 사무레벨위원회가 이사회를 준비하고 그 결정을 이행하며 참가국의 합의에 따라 긴급현안사항을 검토하는 특별회의 및 각료회의도 개최할 수 있다. 이들 협의사항을 행정지원 하기 위해 프라하에 사무국을 설치한다. 이사회에 의한 분쟁의 위기경감을 지원하기 위해 빈에 분쟁방지센터를 설치한다. 선거에 관한 참가국간의 접촉과 정보교환을 위해 바르샤바에 자유선거사무소를 설치한다. 전가맹국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CSCE 의회 협의회를 통해 각국의 회의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한다.
  • 소 「러시아공화당」 창당/옐친등 개혁파

    ◎연정 조속구성·토지개혁 촉구 【모스크바 AP 연합】 일단의 소련 공산당 출신 개혁주의자들은 17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간의 연립정부 구성을 촉진하고 강경 공산주의자들의 부활을 예방키 위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공화당」을 창당했다. 러시아공화국 전역에서 모인 2백35명의 당원들은 이날 적·백·청색의 러시아 제국기로 장식된 대회장에서 창당식을 갖고 ▲자본주의 옹호 ▲토지개혁 옹호 ▲러시아공화국 주권 옹호 등 3개 항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옐친을 비롯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시장 등 공산당을 탈퇴했던 「민주강령파」 개혁주의자들을 핵심으로 결성된 러시아공화당은 이날 창당식에서 현 소련 지도부의 경제·정치 정책을 강력히 비난했으며 뱌체슬라프 쇼스타코프스키 전 공산당중앙위원회 위원은 니콜라이 리슈코프 총리가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한다』고 비난하는 한편 공산당 보수주의자들 또는 군부독재가 부활할 것을 우려,공화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또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연정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한편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경제개혁 5백일 안을 지연시킴으로써 중앙정부에 주도권을 내줬다고 비난했지만 옐친의 러시아공화국 의회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시했다.
  • 빛바랜「혁명」…흔들리는「소 제국」/「혁명기념일 총격 소동」의 파장

    ◎최대 국경일에 4만 반정시위/개혁붐 타고 연방 해체위기감 볼셰비키혁명 73주년 기념일인 지난 7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열린 화려한 혁명기념 퍼레이드 도중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한 남자가 레닌묘 사열대 부근에서 총 2발을 쏜 것 뿐이고 정치적 목적이 있는지,고르바초프를 겨냥한 것인지도 분명치는 않아 1회성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지만 공산당과 중앙정부가 총질을 받을 만큼 권위와 위세가 추락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혁명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1시간만에 「붉은 광장에서의 레닌추방」「KGB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는 1만여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광장을 점거했다.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고르바초프와 불화를 빚고 있는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과 포포프 모스크바시장은 혁명기념식에도 참석하고 이어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도 합세했다. 4만여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고 사하로프박사의 집까지 행진하면서 「공산당 타도」「미국 맥도널드 햄버거 만세」 등을 외쳐대기도 했다. 최대의 국경일에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15개 공화국 가운데 절반가량이 혁명기념식을 갖지 않겠다고 공표해 왔고 일부에서는 「국가적 비극의 날」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혁명기념식을 갖지 않겠다는 레닌그라드시장 소브차크는 시민들에게 월동준비를 하고 행사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쯤되면 「자본주의와 지주의 압제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기틀을 세운」 볼셰비키혁명은 이미 빛이 바랬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대접을 받는 것은 혁명기념식뿐만이 아니다. 혁명의 대의를 세우고 혁명을 지도한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창건의 아버지 레닌도 곳곳에서 재평가작업과 동상철거의 수모를 겪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스탈린은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개혁정책을 레닌의 저작에 기초해서 옹호해 왔다. 이번 혁명기념일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레닌의 이름과 대의를 수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닌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혁명이전에는 성 페테르스부르크라는 이름을 가졌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절반가량은 레닌그라드가 혁명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성 페테르스부르크로 이름을 환원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발트 3국에서는 레닌동상이나 초상화 등 기념물이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발트 3국으로부터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등에 이르기까지 널리 확산돼 있고 모자라고 구하기 어려운 경제사정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연방이 언제 붕괴되지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인상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의 보수적인 헤리티지재단이 앞으로 10년안에 소련이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 황당하게만 들리지 않을 만큼 소련은 존망의 위기에 몰려 있다. 자유ㆍ평등ㆍ박애의 프랑스 혁명은 2백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속에 빛나고 있으나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은 불과 73년만에 벌써 퇴색하고 기틀마저 흔들리고 있다.
  • 대만 야 대통령 후보/독립선동죄로 피체

    【대북 로이터 AFP 연합】 대만 야당 인사들 가운데 최초로 대통령 후보임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 대만의 분리,독립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고 대만의 야당인 민주진보당(DPP)의 제임스 첸 사무차장이 4일 밝혔다. 첸 사무차장은 정치적 이유로 이미 2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며 스스로를 민진당 대통령 후보로 자처하고 있는 후앙 화씨가 대만독립을 옹호했다는 혐의로 3일 저녁 중부 도시 타이충에서 체포됐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페르시아만에 자위대를 파병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드높은 가운데 일부 국가 지도자들이 파병지지 발언을 해 관심을 끝다. 일제의 군화에 짓밟힌 쓰라린 과거가 있는 나라들은 한결같이 파병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가져오는 일이라며 이에 강력한 항의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헌데 일제와 거리가 멀었던 일부 국가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일본의 파병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이다. ◆자위대 파병을 반대하는 일본 신문들은 『아시아의 친구들에게 호소한다』 『이웃의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사설을 연달아 싣고 있으며 한국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일제 치욕의 어두운 역사를 가진 나라들은 너나할것없이 반대목소리들이다. 중국은 양상곤 국가주석 등의 입을 빌려 자위대 파병 계획은 과거 역사의 재현이라고 강력한 경고를 했고 필리핀과 베트남은 일본이 자행한 잔혹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런데 호주의 호크 수상은 최근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기 위한노력으로 다국적군에 일본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캄보디아분쟁 해결을 위한 유엔의 평화유지 계획에 참여하는 것도 환영할 것이라고 발언. 싱가포르의 고촉동 제1부수상 겸 국방장관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면 일본 중국 인도 등 세 나라가 나서야 할 것이라며 은근히 일본의 역할을 옹호하고 있는 실정. 인도네시아의 한고위관리도 미 일 안보조약 준수를 이유로 일본의 협력 제스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을 보면 일본의 침략사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거나 나몰라라 하는 인상.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최호중 외무장관은 29일 야나기 주한 일본대사와 만나 자위대 파병과 관련,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커다란 피해를 입은 우리로서는 자위대 파병을 시발점으로 일본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했다. 이제 일본 정부는 「작은 지지」보다 「큰 반대」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그것이 아시아에서의 고립을 면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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