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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뻐둥새‘에서 잭 니콜슨 괴롭힌 수간호사 플레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뻐둥새‘에서 잭 니콜슨 괴롭힌 수간호사 플레처

    잭 니콜슨의 미친 연기로 인상 깊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는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수간호사 밀드레드 랫치드가 나온다. 노역을 피하려고 정신병자인 것처럼 굴었던 맥머피(니콜슨)는 사사건건 잔인하고 계산적인 랫치드와 대립하다가 결국은 굴복하고 만다. 기성사회의 논리와 시스템에 저항하거나 따지는 젊은이들을 기성사회가 어떻게 다루고 굴복시키는지 폐쇄적인 정신병동에 은유했다. 기존 질서에 대드는 환자들에게 뇌 절제 시술 등으로 응징하는 수간호사는 체제의 수호자를 상징했다. 그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루이스 플레처가 88세를 일기로 23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프랑스 남부 몽두로스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에 둘러싸인 채 잠을 자다 숨을 거뒀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플레처는 앨라배마주 버밍햄 출신이었는데 배우가 되려고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한 뒤 TV 시리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1960대 초 결혼해 두 아들을 낳으면서 11년 동안 연기를 중단했던 ‘경단녀’였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켄 키지(1935~2001)의 1962년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밀로스 포먼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하고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랫치드 캐릭터가 워낙 강렬해 맡으려 하지 않았다. 안젤라 랜스베리와 엘린 버스틴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에게 퇴짜를 맞자 포먼 감독이 떠올린 것이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영화 ‘우리같은 도둑들’(Thieves like us)을 통해 복귀했던 플레처였다. 당시 그녀의 이름은 캐스팅 명단에서 맨아래에 있었지만 배역을 따냈고,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미국영화연구소는 수간호사 랫치드를 영화 사상 최악의 악당 순위 가운데 , 서쪽의 사악한 마녀(오즈의 마법사), 다스 베이더(스타워즈), 노먼 베이츠(사이코), 한니발 렉터 (양들의 침묵)다음에 매김할 정도다. 부모가 청각장애인이었던 그는 수상 소감을 수어로 전달하는, 당시로는 파격을 선보였는데 “여러분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밝혀 큰 화제가 됐다. 불혹의 나이에 오스카상을 탄 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드라마 ‘조안 오브 아카디아’와 ‘피켓 펜스’에 출연해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스타 트렉-딥 스페이스 나인’에서는 바조란의 종교 지도자 카이 윈 아다미 역을 맡았다. 그는 1960년대 프로듀서 제리 빅과 결혼해 1977년 이혼했는데 두 아들 존과 앤드루가 유족으로 남았다. 친구들과 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추모의 글을 나누고 있다. 고인과 피켓 펜스에서 호흡을 맞춘 청각장애 배우 마를리 매틀린은 트위터에 “영민한 여배우”라고 고인을 돌아본 뒤 오스카 수상 연설에 수어를 처음 사용한 배우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타 트렉: 딥스페이스 나인의 작가 휴잇 울프는 “루이스 플레처를 위해 대본을 쓴 것은 영예이자 즐거움이었다”고 애도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로 세상 떠난 장뤼크 고다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로 세상 떠난 장뤼크 고다르

    영화사에 변혁을 몰고온 누벨바그(Nouvelle Vague) 사조를 이끈 프랑스의 거장 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91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는데 고인이 스위스에서 합법인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을 통해 눈을 감았다고 해서 더욱 화제다. 프랑스는 관련 법령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고다르는 13일(현지시간) 로잔 근처의 소도시 롤레의 자택에서 역시 영화감독인 배우자 안느 마리 미비유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가족 대변인이 전했다. 법률 고문인 파트릭 잔느레는 “복수의 불치성 질환”을 앓은 고인이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조력자살 방식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잔느레는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에 “고다르는 당신이나 나처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는 평생 그래왔듯 굉장히 명료하게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말했다”고 설명한 뒤 고인이 ‘존엄하게’ 죽기를 희망했다고 덧붙였다. 조력 자살은 의료진이 약물을 처방하되, 환자 스스로 약물을 복용 또는 투약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환자의 요청으로 의료진이 직접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해 환자의 생을 마감케 하는 안락사와 구분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은 특정 조건 아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2016년 개정된 법률에 따라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 연명치료를 멈추고 숨을 거두기 전까지 수면유도제를 투여하는 것만 허용되고 있다. 안락사나 조력자살은 여전히 불법이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일부 환자들은 안락사 등이 허용되는 유럽 다른 나라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려 떠난다.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스위스의 조력 자살을 이용해 지난해 죽음을 맞은 이가 있었다. 그 동행 여행의 아픈 경험담을 옮긴 책이 최근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고다르의 죽음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도 조력자살 등에 대한 합법화 논의가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고다르 별세 당일인 이날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토론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보건 분야 종사자들과 협력해 몇 개월 동안 논의할 것이며 지역별 토론도 전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정당 소속 의원들과 논의도 진행해 내년쯤 법 개정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올해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앞서 조력자살 합법화에 개인적으로는 찬성한다고 밝혔다.마크롱 대통령은 “고다르는 누벨바그 영화인 중 가장 뛰어난 관습 파괴자이자 천재였다”며 “우리는 오늘 국보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클로드 샤브롤, 에리크 로메르,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 등과 함께 1960년대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한 그는 통념적인 서사와 기존의 영화 관습을 깨뜨리는 연출로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고다르는 1930년 12월 3일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의사였고, 어머니는 BNP 파리바를 설립한 스위스 은행가의 딸이었다. 영화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하던 그는 1960년 갱스터 로맨스 ‘네 멋대로 해라’로 파란을 일으키며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화면이 거칠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법, 장면과 장면을 급작스럽게 전환하는 ‘점프 컷’, 실존주의적 대사 등 통념적인 서사와 기존의 영화 문법을 거스르는 급진적이고 과감한 연출로 주목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여자는 여자다’(1961년), ‘국외자들’(1964년), ‘미치광이 피에로’(1965년), ‘알파빌’(1965년) 등이 있다. ‘알파빌’로는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1968년 학생 혁명 때 파리 거리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와 학생들의 행진 모습을 담을 정도로 현실을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1970년대 들어서는 좌파사상과 반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1960년대와 같은 큰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다. 그 뒤 스위스에서 칩거하던 그는 2014년 ‘언어와의 작별’, 2018년 ‘이미지의 책’을 내놓는 등 80대에 접어들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로이터는 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네 멋대로 해라’와 ‘사랑과 경멸’ 등은 영화의 지평을 넓혔고, 그의 전성기였던 1960대 이후 많은 ‘관습 파괴적’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다.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코시지,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매쉬’의 로버트 올트먼, ‘부기 나이트’의 폴 토마스 앤더슨 등 할리우드 거장들이 고인의 영향을 받은 감독들로 꼽힌다. 타란티노는 자신의 영화 프로덕션 이름을 고인의 말년 작품 제목을 따와 ‘A Band Apart’라고 지었다. 스코시지는 브리지토 바르도가 주연한 고인의 연출작 ‘경멸’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 10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로이터 통신은 “헝클어진 머리와 굵은 뿔테 안경 차림의 고다르는 영화감독과 배우를 일류 화가나 문학의 대가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진정한 혁명가였다”고 언급했다. 고다르는 생전에 비평가들과 그리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비평가들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비평가 피터 브래드쇼는 그를 ‘비틀스’의 존 레넌,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 등에 비교하며 “20세기의 마지막 위대한 모더니스트가 숨을 거뒀다”고 애도했다. 영화잡지 버라이어티의 기 로지 평론가는 “고다르가 모든 것을 바꿨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는 정말 많은 것을 바꿨다”고 촌평했다. 한편 고인의 유족은 장례 예식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며 유해는 화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인간두뇌 냉동해 디지털화’…美 신생기업 등장

    ‘인간두뇌 냉동해 디지털화’…美 신생기업 등장

    미국의 한 신생 벤처기업이 인간 두뇌 속 기억이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해 영원히 보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서 화제가 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미 일간 뉴욕포스트, 기술지 MIT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신생 기업 ‘넥톰’(Nectome)은 인간 두뇌를 완전한 형태로 냉동 보존해 뇌에 저장된 기억이나 의식을 디지털 테이터로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넥톰은 알데히드 안정 냉동 보존법(ASC)로 불리는 최첨단 방부처리기술을 활옹해 뇌를 보존한다. 이후 보존된 두뇌에서 사람의 의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되살린다. 하지만 뇌를 보존하려면 몸에서 뇌를 온전히 제거해야하는데 이과정이 의사 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과 유사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넥톰의 공동 창립자 로버트 맥킨타이어는 “뇌를 생생히 보존하기 위해 마취한 환자 몸에 인공심폐장치를 연결하고 목 경동맥에 방부처리한 화학물질을 주입한다. 덕분에 부패되지 않는 상태로 수천 년 동안 언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 사명은 뇌속 모든 기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으로, 우리는 현 세기 내에 뇌 속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의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가상세계에서 재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넥톰 웹사이트에서는 1만 달러(약 1070만원)에 뇌 보존 희망 신청자를 받고 있다. 25명이 대기인원에 오른 상태며, 그 중에는 미 실리콘밸리 창업 지원기업 와이콤비네이터의 최고 경영자 샘 올트먼(32)도 포함돼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IT 신트렌드] 사회적 약자를 위한 AI 기술/추형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IT 신트렌드] 사회적 약자를 위한 AI 기술/추형석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현대의 인공지능(AI) 기술은 가히 혁신적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도구로서 AI는 이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편의를 제공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것은 AI의 특성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결과다. 인간의 인식·추론·판단을 대체하는 AI 기술은 장애로 인해 부족한 기능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로 유튜브(미국 구글의 동영상 사이트)의 자막 서비스가 있다. 이것은 음성을 자막화하는 기술인데 2009년에 처음 소개된 이래 하루에 약 1500만번 활용될 정도로 저변이 확대됐다. 최근 유튜브는 구글의 기계학습 기법을 활용해 자막 서비스를 한층 강화했다. 박수 소리, 웃음, 노크 소리부터 동물의 울음, 한숨 소리까지 인식해 청각장애인이 영상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이미지나 영상을 설명하는 AI 기술은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미지 인식 분야는 이미 인간의 인지능력을 능가할 정도로 성숙했다. 이에 따라 이미지를 설명하는 ‘이미지 번역’ 기술 역시 상용화 수준에 근접해 정밀한 상황 묘사로 시각장애인에게 실감 있는 정보를 전달한다. 최근에는 이미지보다 더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는 영상으로까지 확대돼 각종 국제 경진대회가 개최되는 등 활발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용자 편의를 위해 영상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했던 미국 IBM의 AI ‘왓슨’은 자폐증 환자를 돕는 기능을 익히고 있다. 과거의 기술이 자폐증의 원인을 규명하고 유전학적으로 치료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현재의 IBM 왓슨은 자폐증 환자와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을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폐증 환자가 구사하는 언어와 표현을 학습해 환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자폐증 환자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목소리의 억양을 조정하는 등 대상에 최적화된 기술도 제공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AI 기술은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기술이다. 이는 AI를 인류에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하자는 ‘오픈(Open)AI’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오픈AI는 테슬라 모터스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와이콤비네이터의 샘 올트먼이 출자한 비영리단체다. 오픈AI의 역할은 AI를 악의적으로 이용할 경우에 대비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AI 기술을 공개하는 데 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AI 기술을 활용해 보편적인 공익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할 것이다.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눔의 힘 시민의 쉼’ 기부의 씨앗… 불모지에 피운 예술꽃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나눔의 힘 시민의 쉼’ 기부의 씨앗… 불모지에 피운 예술꽃

    20세기 초까지 예술의 중심 무대였던 유럽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황량해졌다.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예술가들을 두 팔 벌려 맞아들인 곳이 미국이었다. 자본이 원활하게 흐르고, 모더니즘 정신이 깃든 20세기 초의 뉴욕은 멋진 신세계였다. 부유한 사업가들은 유럽에서 망명 온 예술가들의 후원자가 됐고 그들 작품의 컬렉터가 됐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속속 문을 열었고, 뉴욕은 단번에 자타 공인 현대미술의 메카가 됐다. 그 화려한 명성대로 도시의 곳곳에서 세계적인 미술관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으로 예술 산책을 떠나 보자.뉴욕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과거와 현재, 예술과 자연, 기계와 인간이 극적으로 조화를 이룬 데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센트럴파크의 동쪽을 따라 길게 나 있는 5번 애비뉴의 ‘뮤지엄 마일’을 따라가 보면 뉴욕이 과연 자연과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5번 애비뉴의 80번 스트리트에서 84번 스트리트까지 4개의 블록을 차지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 백미다. #150년의 세월… 5만여평에 300만점 전시 약칭으로 ‘더 메트’(The MET)라고 불리는 이 미술관의 사명은 ‘기원전 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권과 시대를 망라하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예술적 위업을 나타내는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다. 고대의 근동,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의 조각품부터 중세 미술, 근대 유럽의 회화, 동시대의 현대미술, 다양한 장식미술과 의상 등 장르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소장품을 지닌 이곳은 규모나 소장품의 내용 면에서 미국이 자랑하는 백과사전식 종합미술관이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영국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박물관, 베를린의 박물관섬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유럽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예술적 토양에서 소박하게 시작했으나 1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미술관 건물과 소장품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5만 7500평의 면적에 300만점에 이르는 경이적인 규모가 됐다. 방대한 소장품을 연구하고 관리하기 위한 학예부서만도 17개 부서로 나뉘어 있으며 1800여명의 풀타임 직원과 9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다.#민간 주도… 백과사전식 종합미술관 탄생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커다란 미술관이 정부의 지원 없이 시작돼 운영된다는 점이다.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군주의 후원과 왕조의 유산을 기반으로 출발해 국가의 지원을 받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순수하게 민간 주도로 만들어졌고 시민들의 기부와 기증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파리에 머물고 있던 변호사 존 제이는 1866년 7월 4일 지인들과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독자적인 박물관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뜻에 동참하기로 맹세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870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탄생했다. 1880년 현재의 위치인 센트럴파크에 캘버트 복스와 제이컵 레이 몰드가 지은 신고딕 양식의 간소한 미술관 건물이 개관했다. 여전히 소장품은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메트의 소장품 컬렉션은 1872년 철도사업가 존 테일러에 의해 작품이 기증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유럽의 박물관과 같은 소장품을, 그것도 진품을 구입하기엔 턱없이 예산이 부족해 세계적 걸작의 복제품과 석고 모형을 수집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1902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뉴저지주 패터슨에서 기관차 제조업을 하는 사업가 제이컵 S 로저스가 미술품 구입비로 500만 달러를 기부한 덕분에 메트로폴리탄은 수많은 진품 걸작을 구입하며 미술시장의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메트로폴리탄이 자랑하는 피터르 브뤼헐의 ‘추수하는 농부들’, 빈센트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폼페이 벽화와 중동의 유물 등 많은 걸작은 ‘로저스 기금’으로 구입한 것이다. 당시 혁신적이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공공미술관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치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1913년에는 벤저민 올트먼이 뒤러의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예수’를 비롯한 1000여점의 수집품을 유증했다. 1929년에는 호러스 해브마이어가 엘 그레코의 ‘톨레도 풍경’ 외에 드가, 마네, 세잔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기증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인 컬렉션 중 하나인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1967년 유증됐다. 중세부터 모더니즘에 이르는 2600점의 작품 가운데 시모네 마르티니의 ‘성모자상’, 한스 멤링의 ‘수태고지’, 엘 그레코의 ‘학자 성 제롬’,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두 소녀’ 같은 걸작들이 로버트 리먼 윙에 전시돼 있다. 20세기 초 걸작품 구입에 매진했던 수집가들의 통 큰 기부 덕분에 메트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고 기부 전통은 수세대에 걸쳐 계승되고 있다.#건물의 확장… 센트럴파크와 어울림 무게 외형의 변화도 드라마틱하게 진행됐다. 메트가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미술관으로 성장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이는 1904년 관장으로 부임한 J P 모건(1837~1913)이었다. JP모건의 설립자이자 전설적 금융가인 그는 당대 유명한 예술품 컬렉터이자 예술 후원자였다. J P 모건은 관장에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증축 작업에 들어갔다.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드보자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제1호 유학파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에게 증축 작업을 맡겼다. 5번가에서 바라보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정면은 리처드 모리스 헌트의 설계로 지어졌다. 이어 북쪽 날개 부분과 남쪽 날개가 찰스 매킴과 미드, 화이트의 설계로 각각 19011년과 1913년 완공됐다. 현재의 미술관 정문 파사드와 입구는 1926년 완성됐다. 1954년 대규모 개축으로 근대적 스타일의 전시장을 완비했다. 센트럴파크 내의 건물 증축은 미술관 개관 100주년을 맞은 1970년 케빈 로시에 의해 새롭게 단장됐다.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 로시는 감상자들이 느끼는 박물관 피로증의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1층 북쪽 끝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센트럴파크의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로시는 헌트의 건물 앞에 기다란 계단광장을 만들어 진정한 박물관 거리를 조성했다. #한국실 등 동서고금 넘나드는 수많은 공간 계단을 올라 메인 출입구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로비가 나온다. 미국은 모든 게 다 크다고 하는데 미술관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로비는 세 개의 정사각형 평면에 세 개의 돔 천장을 갖추고 있는데 건물을 설계한 리처드 모리스 헌트의 아들인 리처드 하울랜드 헌트가 내장을 맡았다고 한다. 긴 로비의 왼쪽으로 가면 그리스·로마관, 오른쪽은 이집트관, 정면 계단으로 오르면 유럽 회화관으로 인도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복도를 통해 다른 건물의 수많은 전시실로 연결된다. 15~19세기 대가들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소묘와 판화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옆으로 유럽 회화 작품들이 시기별로 구분돼 전시돼 있다. 미국 회화관에서는 유명한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과 존 싱어 사전트의 ‘마담X’를 볼 수 있다. 2층과 3층에는 고대 근동, 아랍, 터키, 이란, 중앙아시아 및 후기 남아시아 미술이 전시돼 있고 그 반대편에서 아시아 미술을 볼 수 있어 시공을 넘나들며 세계 일주하는 기분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한국실에는 귀한 고려불화 수월관음보살상과 조선시대 달항아리도 있다. 소장품이 너무 많아서 한 번 방문으로 모두 감상하는 것은 무리다. 시간을 잘 배분해서 꼭 보고 싶은 작품을 찾아가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미술관 안내지도를 보면 가장 빠른 시간에 메트를 관람하고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루트를 붉은 점선으로 표시해 놓았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영화프리뷰] ‘에브리씽 머스트 고’ 버려야만 채울 수 있는 그런 게 바로 인생이야

    [영화프리뷰] ‘에브리씽 머스트 고’ 버려야만 채울 수 있는 그런 게 바로 인생이야

    닉은 잘나가는 대기업 중견 간부다. 넓은 잔디밭과 수영장이 딸린 주택은 그의 성공을 대변한다. 하지만 어느 날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과거 알코올 중독 경력과 성추행 의혹 때문이다. 설상가상 집에 와 보니 아내는 이별을 통보하는 편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자물쇠는 모두 바뀌었고, 닉의 물건은 마당 밖에 쌓여 있다. 신용카드마저 정지되고 은행계좌 역시 아내가 인출을 못 하도록 막아 놨다. 빈털터리가 된 닉은 마당의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잔디밭 수도로 샤워하는 노숙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시(市) 조례에 따르면 자신의 집이라도 마당에서 거주하는 건 불법이다. 다만 쓰던 물건을 마당에 내놓고 파는 ‘야드 세일’(yard sale)은 5일 동안 할 수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닉은 동네 소년 케니를 고용, 정들었던 사인볼과 LP 디스크, 손때 묻은 폴라로이드 카메라, 낚싯대, 그릴, 믹서기 등을 팔기 시작한다. ‘에브리씽 머스트 고’는 미국 단편 문학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으시겠습니까’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카버는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숏컷’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각본·연출을 맡은 덴 러시 감독은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야드 세일’이란 소재를 통해 버리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채울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인종과 나이, 신분을 떠나 친구가 되는 흑인 소년 케니, 만삭의 몸으로 이웃에 이사를 온 사만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고교 동창 딜라일라 등 주변의 새 인물들로 닉은 인생을 돌아보고 뒤늦게 철이 든다. 필름이 끊긴 닉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던 여성은 결국 ‘꽃뱀’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복직된다든지, 아내가 돌아온다든지 하는 해피엔딩은 없다. 진짜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러시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닉 역을 맡은 윌 페럴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한 영화다. 인기 TV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통해 이름을 알린 페럴은 현재 미국에서 빌리 크리스털, 로빈 윌리엄스, 짐 캐리의 뒤를 잇는 코미디의 황제다. 배우로서 강점은 코믹 연기뿐 아니라 심각한 얼굴에서 비롯된 페이소스(동정과 연민) 넘치는 연기에 있다. 직장과 가정, 친구에게 버림받은 닉 역할이야말로 장기를 발휘하기에 적절한 캐릭터인 셈. 사만다로 나오는 레베카 홀은 우디 앨런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국내에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로 개봉)에서 비키 역을 맡았던 배우다. 최근 제시카 차스테인 대신 ‘아이언맨 3’에 합류가 확정될 만큼 할리우드에서 상종가를 찍고 있다. 북미에서는 지난해 5월 개봉했다. 흥행 수익은 제작비의 절반 수준인 271만 달러에 그쳤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작품의 신선도를 75%로 평가했다. 페럴의 진지함과 주제 의식은 호의적인 평단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관객에겐 이도 저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12일 개봉.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브레이브’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브레이브’

    사업차 떠난 아빠가 총을 맞고 죽는다. 인디언 구역으로 피신한 악당을 체포하는 데 아무도 나서지 않자, 열네살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직접 복수에 나서기로 한다. 악당을 잡으려면 연방 집행관이 필요하다는 말에 매티는 루스터 코그번(제프 브리지스)에게 접근한다. 악명 높은 인물이 적역이라고 생각해서다. 처세에 능한 어린 소녀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카우보이의 만남은 시작부터 덜컹거린다. 동행 여부, 계약금 흥정 등 문제마다 충돌했으나 마침내 100달러에 계약을 맺고 코그번은 혼자 길을 떠난다. 그런데 동일한 범인을 쫓는 텍사스 레인저 라뷔프(맷 데이먼)가 여정에 끼어들고, 매티 또한 동행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찰스 포티스가 1968년 발표한 소설 ‘트루 그릿’(얼마 전 한국에서 번역·출판됐다.)이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동명 영화가 제작되기에 이른다. 한국 관객에겐 ‘진정한 용기’로 알려진 영화는 존 웨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즈음 미국에서 주인공 코그번의 인기는 대단해서 이후 원작과 상관없는 속편이 만들어졌다. TV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적도 있다. 2010년 코언 형제가 세대를 뛰어넘는 원작을 같은 제목으로 재작업했는데, 한국에서 ‘더 브레이브’라는 멍청한 제목으로 곧 소개될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은 당연히 유사하지만, 인물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두 영화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진정한 용기’를 연출한 헨리 해서웨이는 서부영화의 장인 가운데 한명이다. 웨스턴의 장인들은 미국 역사를 ‘서부의 신화’로 해석했으며, 그들은 물론 미국 관객들에게도 ‘진정한 용기’의 주연배우인 웨인은 신화 그 자체나 다름없다. 더욱이 정통 웨스턴의 황혼기에 제작된 영화는 웨인에게 바치는 헌사로 기능했다. 극 중 웨인은 늙고 뚱뚱하며 괴팍한 집행자로 분했으면서도 결코 신화적 지위를 잃지 않는다. 원작의 결말을 지운 대신 웨인의 이미지로 엔드 크레디트를 채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웨인의 무게에서 해방된 ‘더 브레이브’는 원작에 충실하며, 제프 브리지스는 코그번을 지저분하고 때때로 볼품없기까지 한 카우보이로 연기했다. 그는 돈에 연연하고 실수로 동료의 몸에다 총을 쏘며, 내내 술에 취해 있다. ‘진정한 용기’의 클라이맥스에서 4명의 악당과 겨루는 웨인의 코그번은 당당하고 멋있지만, ‘더 브레이브’의 같은 장면에서 브리지스의 코그번은 술김에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코그번의 마지막 나날을 언급하는 ‘더 브레이브’의 결말은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올트먼(1925~2006)이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혹은 시팅불의 역사 수업’을 왜 만들었는지 되새긴다. 코언 형제가 오랜 미국의 신화에 맞서 꿈꾼 건 미국식 우화다. 죽어서 눈 아래 누운 남자의 아늑한 풍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전작 ‘시리어스 맨’의 프롤로그를 재현하며 재차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원작에 맞춰 로스의 1인칭 시점을 종종 구사하는 ‘더 브레이브’는 선과 악이 엉겨 붙은 황야에 던져진 소녀가 다양한 인물과 함께 벌이는 한바탕 모험을 통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담은 작품이다. 코언 형제는 교훈극이 여전히 아름다운 감동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24일 개봉. 영화평론가
  • 영화에세이「어두운방안에서내다본 밝은세상」발간 김화영교수(인터뷰)

    ◎“영화는 삶과 같이 순간 놓치면 되돌릴 수 없어” 『영화는 「게으른 이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축제」지요.하지만 우리 영화관엔 젊은이들만 붐빌뿐 정작 축제의 느긋함을 알만한 나이든 사람들이 안보여 아쉬워요』 산문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손꼽히는 문학평론가 김화영씨(고려대 교수)가 자신의 영화감상을 모은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을 현대문학에서 펴냈다. 프랑스 유학시절 기숙사 시네클럽의 회장이었다는 저자의 만만찮은 영화이해는 우선 영화 고르는 안목에서 드러난다.그는 국내 개봉작중 「블루」「레드」「비포 더 레인」 등을 가려내고 「궁전의 침묵」(튀니지) 「논의 사람들」(캄보디아) 「타티아나」(핀란드)등 알려지지 않은 수작들을 정선,소개한다.미할코프,올트먼 등 감독론과 나름의 문화산업비평까지 곁들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은 불문학자의 격조높은 문장을 맛보며 영화를 다시 「읽는」 일.빛나는 감성과 긴장된 절제사이에서 출렁이는 명문들은 문학평론가만이 가능한 영화해석의 예를 보여준다.「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놓곤 소설과 영화의 접근방식을 비교,두 장르의 차이점을 드러내는가 하면 「그린 파파야 향기」의 화면을 다음과 같이 독해한다. 〈무이가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집은 닫혀있으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이중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도처에 수직선의 살대들이 나란히 늘어선 목책이나 난간,촘촘한 수평선의 덧문살,나란히 이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의 계단들,바둑판 무늬의 창살,네모난 창살.…여기에 선풍기의 망,귀뚜라미집의 대나무 창살,모기장까지 추가되어 존재와 사물들은 항상 열려진 동시에 닫혀진 반투명의 공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거나 움직인다.…모든 피사체는 목책이나 난간이나 모기장 저 너머에 있다〉 김씨는 『영화는 문학과 달리 순간순간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삶과 더 닮아있다』고 영화의 매력을 말했다.〈손정숙 기자〉
  • 클린턴 참모에 부자 많다/각료·보좌관 재산내역 공개

    선거유세 과정에서 공화당이 부유층을 편애,영합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안에 공화당의 레이건및 부시 대통령때보다 훨씬 많은 백만장자 각료와 보좌관들이 자리잡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각료들 및 백악관 보좌관들이 신고한 재산내역에 따르면 클린턴정부의 백만장자들은 9명으로 레이건 행정부 출범때의 7명이나 부시 행정부 출범때의 6명보다 2∼3명이나 더 많다. 우선 핵심각료인 로이드 벤슨 재무장관의 재산은 5백90만달러로 신고됐고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4백20만달러. 월 스트리트에서 모셔온 두명의 경제고문 로버트 루빈과 로저 올트먼은 이들보다 2배가 넘는 1천만달러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다. 이들말고도 헤이즐 올리어리 에너지장관이 2백40만달러,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이 1백40만달러,리처드 라일리 교육장관이 1백20만달러,로널드 브라운 상무장관이 1백만달러 이상의 재산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료급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대사도 3백10만달러의 재산을 신고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각료 및 각료급 보좌관들의 재산신고가 정밀한 것이 아니고 아주 개괄적인 것이어서 백만장자는 더욱 많을지도 모른디. 가령 브루스 배비트 내무장관은 재산을 89만3천42∼2백50만달러,헨리 시스네로스 주택도시개발장관은 76만5천13∼1백70만달러,제시 브라운 원호장관은 81만3천∼1백80만달러,도너 슐레일러 보건장관은 62만8천∼1백50만달러로 신고,그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이처럼 백만장자가 많이 포함돼 있는데 대해 지난번 선거유세과정에서 『공화당이 집권 12년동안 부유층을 편애해 왔으며 그들에게 영합해 왔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공화당측은 매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으로 일한 로버트 모스배커씨는 『백만장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거나 경멸의 대상으로 보는덴 물론 반대이나 클린턴씨를 비롯한 민주당진영이 선거유세때 보인 언동을 상기할때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공직자들 상당수가 백만장자임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고 전제하고 『그들은 아마도 그들 행정부내 백만장자 공직자들은 공화당 행정부내 백만장자 공직자들과 질이 다르다고 강변할는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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