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성장 파고 이렇게 넘자] 멈춘 기업의 혁신… ‘스타트업’ 융합으로 다시 뛴다
야구경기 세계 최초 VR 생중계 등 스타트업, 아이디어로 신시장 창출 통신 3사·인터넷 업계, 투자·인수 바람 벤처캐피털 재원도 6조서 15조원 ‘쑥’ 우버 등 전세계 산업계 혁신도 이끌어 애플·구글 등 IT업계 스타트업 모시기
지난 3월 경기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위즈의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360도 가상현실(VR)로 촬영돼 관중들에게 생중계됐다. 1루와 3루, 포수석에 설치된 총 3대의 VR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조합돼 관중들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것이다. KT는 이를 위해 VR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무버와 손잡았다. 2011년 설립된 무버는 4시간에 가까운 야구 경기를 세계 최초로 VR 생중계에 성공하며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 냈다.
“갓 창업했을 때는 VR 스타트업이라는 설명에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만난 김윤정 무버 대표는 “고화질의 VR 영상을 만들어도 이를 전송할 네트워크가 없어 영상을 압축하는 게 늘 고민거리였다”면서 “창업 후 2년간은 좌충우돌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며 상황은 반전됐다. 통신3사가 5G 네트워크 선점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차세대 콘텐츠를 발굴하던 KT의 눈에 띈 것이다. 김 대표는 “빠른 네트워크를 찾던 우리의 수요와 5G 네트워크에 적합한 대용량 콘텐츠를 찾던 KT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KT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무버는 VR 야구 중계를 시작으로 아이돌 그룹 쇼케이스 VR 중계와 프로야구 올스타전 VR 중계 등 KT의 VR 콘텐츠 사업 핵심 파트너가 됐다. 미국과 일본, 호주 등 각국에서 러브콜이 이어지고 투자자들이 판교에 있는 사옥을 찾아오고 있다. 김 대표는 “위성 네트워크를 통한 VR 촬영 등과 같은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평창동계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이벤트에서 VR 생중계의 가능성을 타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성장의 늪은 스타트업에 ‘날개’를 달아 주기도 한다. 성장이 정체된 산업계가 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으로부터 수혈받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는 2011년 874억 달러에서 지난해 2438억 달러로 확대됐다. 국내에서도 벤처캐피털 총재원이 2007년 6조 9000억원에서 지난해 15조 4000억원으로 1.5배 느는 등 국내외의 자본은 혁신 스타트업 발굴에 몰리고 있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타트업은 기존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특히 신산업 형성 초기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면서 “스타트업은 기존 기업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신시장 창출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IT 업계는 스타트업 모시기에 한창이다. 전 세계에 ‘AI 인공지능 쇼크’를 던진 구글 딥마인드는 구글이 2014년 인수한 스타트업이다. 애플은 기계학습과 음성인식, 사진인식 등 AI 분야의 스타트업을 문어발식으로 인수하며 구글에 맞서고 있다. 산업계 혁신의 진원지도 스타트업이다. 전 세계에 차량공유산업 붐을 일으킨 데 이어 자율주행차 경쟁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우버, 숙박공유라는 개념을 도입해 전 세계 여행산업의 변혁을 가져온 에어비앤비 등은 모두 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이른바 ‘데카콘’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문화가 산업계에 뿌리내린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사도 짧고 저변도 미약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조업과 금융, 건설 등 전통적인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한 ‘융합’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 산업계도 혁신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있다. 통신 3사는 5G와 사물인터넷(IoT), VR 등 차세대 먹거리에서 스타트업과의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스타트업 발굴 및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오픈랩을 세우기도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업계는 스타트업 인수와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O2O(온·오프라인 연계)와 콘텐츠, 위치기반 서비스 등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핀테크와 O2O, IoT 등 스타트업의 기술은 금융과 유통, 건설 등 산업계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창업 지원 프로그램 ‘브라보! 리스타트’를 운영하며 5G와 IoT, VR 등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는 SK텔레콤 관계자는 “신규 사업 창출을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 즉 내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협력할 때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