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기업] (9) KT
영화 올드보이에는 층(層)과 층 사이에 숨겨진 사설감옥이 나온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KT광화문 사옥에도 1층과 2층 사이에 M1층이 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M1층에는 구리길이라는 ‘동도(銅道)’가 있다. 하나당 7200가닥의 전화선과 144가닥의 광케이블을 묶은 케이블이 가득찬 곳으로 전국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통신망의 시작점이다. 통신회사로서의 KT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KT가 탈(脫)통신회사를 선언했다. 종합미디어·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1896년 10월 덕수궁에 처음으로 전화가 설치됐다. 이후 전화망은 계속 뻗어나갔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에는 비약적인 전화수요가 생겼다.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통신시설의 확충과 효율적 관리를 위해 1981년 12월 만들어진 것이 현재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전국의 전화망을 1조 9524억원에 인수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2002년 민영화를 통해 KT가 됐다.1조 5610억원의 자본금으로 만들어진 KT는 2006년 12월 현재 자산 17조 9623억원, 매출 11조 7721억원의 공룡기업으로 변신했다.KT는 뉴욕과 런던증권거래소에도 상장되어 있다.
KT의 경쟁력은 102년동안 축적된 통신망에서 나온다. 도시는 물론 전국의 산과 바다에 깔려 있는 유선전화망과 초고속인터넷망 등은 다른 사업자가 쉽게 넘볼 수 없는 자산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17일 “KT의 힘은 망(網)에서 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이같은 통신망을 바탕으로 KT는 성장을 했지만 더이상 통신회사로만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남중수 KT 사장조차 지난해 10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케이블·위성방송협회 총회에 참석해 “KT는 더 이상 통신업체가 아니다.”면서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과 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종합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의 자회사들을 보면 이같은 남 사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회사엔 이동통신사인 KTF와 디지털주파수공용통신 사업자인 KT파워텔 등도 있지만 싸이더스FnH와 올리브나인이라는 곳도 있다. 싸이더스는 국내 최대의 영화제작사로 지난해 12월 ‘용의주도 미스신’을 시작으로 배급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싸이더스를 내세워 KT가 영화배급사업에 손을 댄 셈이다. 특히 남 사장은 취임 한달만에 싸이더스를 인수했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남 사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올리브나인은 왕과 나, 주몽, 불멸의 이순신, 해신, 파리의 연인 등을 만든 잘나가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 중 하나다.KT는 2005년엔 싸이더스를, 지난해엔 올리브나인을 손에 넣었다. 또 자회사인 KTF를 통해 도레미레코드의 지분을 지난해 인수했다. 전산장비와 컴퓨터 등 IT장비를 임대하던 KT렌탈은 의료장비와 건설용기계, 자동차 임대사업부문까지 영역을 넓혔다.KT렌탈의 리스금융과 할부금융이 독립해 KT캐피탈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KT는 종합미디어·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유·무선 통합 등 네트워크 통합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등의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KT관계자는 “올해는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 이에 따른 LG통신그룹의 공격적 경영활동 등 통신환경의 급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당장 유·무선 통합을 핵심사업의 첫번째로 꼽고 있다. 우선 유선시장에선 초고속인터넷인 메가패스를 중심으로 인터넷TV(IPTV)인 메가TV, 이동통신, 유선전화를 결합한다는 것이다. 무선시장에서도 휴대인터넷(와이브로)과 인터넷전화(VoIP), 근거리무선통신인 와이파이(Wi-Fi)와 3세대 이동통신도 합친다는 계획이다.KT의 다른 관계자는 “올해 KT의 중점 신성장사업은 메가TV, 와이브로,VoIP”라며 “메가TV는 150만, 와이브로는 40만,VoIP는 100만 가입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민영화 이후 처음으로 매출 12조원의 벽을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유선전화 명성찾기 ‘안간힘’
통신업계의 공룡 KT에도 약점은 있다. 다름아닌 유선전화 사업이다.KT 영화(榮華)의 요체가 유선전화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유선전화는 KT에서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효자’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민영화 초기인 2002년의 유선전화 매출 비중은 전체의 61%를 차지했다.2006년에는 50.7%, 지난해엔 48% 정도였다. 아직도 매출의 절반가량이 유선전화에서 나온다.
문제는 유선전화의 매출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침체의 연속이다.98%에 달했던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초 92%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0월엔 90.8%로 곤두박질했다. 후발업체들의 틈새공략이 먹혀들었다. 집전화뿐만 아니라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통화량도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유선전화 매출이 줄어들면서 전체 매출도 정체상태다.5년째 11조원대다.‘마(魔)의 12조원’이란 말이 나온다. 유선전화 때문에 인터넷전화(VoIP) 사업에 소극적이었던 측면도 없지 않다. 인터넷전화 활성화는 곧 유선전화 매출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T는 지난해까지 유선전화 지키기에 안간힘을 썼다. 문자메시지(SMS), 통화중 자동연결 등 다기능 집전화기 안폰을 전면에 내세웠다. 안폰은 가입자당 매출이 일반전화보다 3000원가량 높아 수익면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시내·시외통화요금이 같은 전국단일요금제 등 3종의 할인요금제도 선보였다.
하지만 집전화보다는 이동전화가 대세라는 점을 KT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KT 내부에서조차 “집전화 감소를 감안하면 현재의 유선전화 매출은 오히려 마케팅을 잘한 ‘성과’”라고까지 해석한다.KT는 유선전화 가입자 2000만명을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다른 부문의 매출 비중을 높여간다고는 하지만 매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선전화 사업을 포기할 순 없다. 동시에 VoIP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유선전화와 VoIP의 조화와 균형이 KT의 약점을 보완해줄지 결과가 주목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KT호(號) 이끄는 남중수 사장
‘넥타이를 왜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이 되니까 옷 스타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며 소탈하게 웃음짓는 사람.“최고경영자를 뜻하는 CEO의 E는 경영이 아닌 연예 E(엔터테인먼트)의 약자”라며 “CEO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상큼함을 전하는 사람. 직원들을 위해 칵테일 쇼와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KT 남중수 사장이다.
3월이면 남중수 사장의 2기가 시작된다. 남 사장은 2005년부터 KT 사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차기 사장후보에 추대됐다.3월 주총에서 통과되면 앞으로 3년간 KT를 이끌게 된다.5년 넘게 국내 최대 통신업체를 지휘하게 되는 셈이다.
남 사장은 온화한외모와 달리 냉철한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00년 IMT-2000사업을 총괄하는 KT IMT사업추진본부장으로 비동기식 사업권을 따냈다. 한국통신의 민영화 작업에도 견인차 역할을 했다.2001년 재무실장으로 있을 때다.
남 사장은 KT의 신성장동력인 휴대인터넷(와이브로)과 IPTV의 전 단계인 메가TV를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해외 인수·합병에도 수완을 발휘했다. 러시아 연해주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이동통신회사를 인수,1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시장점유율 1위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부드러운 이미지는 그의 발언에서 쉽게 포착된다. 남 사장은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한다.“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라. 그러면 이해와 배려가 싹트고 이는 신뢰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남 사장의 철학은 기업의 경영과 사회적 책임이란 축으로 묶인다. 그가 CEO에 올라 지켜온 철칙이 ‘상생’이다. 지난해 2월 IT 지식 나눔을 통한 소외계층 해소를 목표로 한 사회공헌 활동인 ‘IT서포터스’를 만드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 왔다. 상생의 전도사인 남 사장은 지난해 말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지속가능경영 대상에서 기업인 부문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 통신업계 최초로 사회적 책임(CSR) 보고서를 발간해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IT 전문지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활동을 추진한 것이 수상의 배경이 됐다.
화려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 사장에겐 ‘그늘’도 있다. 경영 수치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오르지 않고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와이브로도 움이 트는 단계다. 메가TV의 가입자가 늘고 있지만 활짝 꽃을 피우려면 2∼3년은 필요하다. 이런 시선에 대해 남 사장은 “지금까지는 기초 다지기”라고 가볍게 받아넘긴다. 남 사장은 지난해 모죽(母竹)론을 들고 나왔다.“심은 지 5년이 지나야 쑥쑥 크는 모죽처럼 그동안의 기반을 바탕으로 KT가 올해는 새로운 성장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