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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특집] 신한금융그룹

    [금융특집] 신한금융그룹

    “신한과 협력회사에 갑을 관계란 없다.” 27일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신한금융의 따뜻한 온기를 고객에서 협력업체로 확대하겠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따뜻한 금융을 통해 동반성장하는 것이 곧 사회공헌 중 하나라는 게 한 회장의 지론이다. 이를 위한 ‘4가지 기본원칙’도 세웠다. 우선, 상생 원칙이다. 입찰 때 업무수행과 직접 연관이 없는 조건에 대해서는 일절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했다. 그룹 측 관계자는 “특별한 기술력이 필요하거나 계약의 중요성, 리스크 헤지(회피) 차원에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시설이나 인력, 규모 등 외형상의 차이로 입찰자격을 제한하거나 평가상의 차등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적정가격 보장 원칙이다. 협력업체의 정당한 대가를 인정해 주겠다는 의도다. 보통은 구매비용 절감을 원칙으로 삼지만, 협력회사가 재무적으로 안정돼야 결과적으로 신한금융도 이익이라는 ‘역발상’에서 도출한 원칙이다. 비용뿐 아니라 서비스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 번째는 거래관계 불합리성 제거 원칙이다. 굳어진 검수·대금지급을 신속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추진 원칙이다. 협력회사를 대상으로 CSR을 추진하고, 나아가 CSR 활동을 함께 하겠다는 취지다. 협력회사가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컨대 수주한 작업이 끝났을 경우, 검수가 아직 안 됐더라도 자금 사정이 어려운 영세기업에는 잔금의 60%까지 대금을 먼저 지불할 계획이다. 입찰 때 이행보증서 면제도 검토 중이다. 한 회장은 “단순한 지원보다는 미래 동반성장을 위한 파트너십 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호로만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회장은 각 계열사 대표들로 구성된 ‘따뜻한금융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는 분기별로 ‘따뜻한 금융’ 추진실적을 점검한다. 올 3분기에도 계열사별 33개 선정과제에 대한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세웠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 최고금리를 3% 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한 결정도 여기서 나왔다. 소비자 보호지수를 영업점 KPI(핵심성과지표)에 도입하기로 한 것도 신한이 앞서가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장기 거래고객 회생지원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총 2603건, 233억원을 지원했다. 해외펀드 손실고객 대안상품 지원을 통해서도 1만 1163건, 1758억원을 지원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 고객정보 수집 때 사회적 가치에 반하는 항목과 관행적으로 수집하던 정보도 삭제했다. 불합리한 차별행위는 지속적으로 ‘퇴출’한다는 방침이다. 신한카드는 지난 7월 시각장애인용 점자카드를 개발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특별 지원 프로그램 발굴에 힘쓰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수수료 우대서비스를 도입했다. 신한생명은 ‘오프라인 고객패널단’에 이어 온라인 패널단도 50명 선발해 고객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 계획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시선집중] (4)동작구 ‘희망복지지원단’

    [시선집중] (4)동작구 ‘희망복지지원단’

    ‘허들링 정신’으로 무장한 ‘희망복지지원단’이 동작구의 복지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고 있다. 문충실 동작구청장은 지난 5월 위기 가정 발굴, 자활, 긴급구호 등 통합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희망복지지원단’을 발족했다. 남극의 황제펭귄이 서로 몸을 밀착해 세찬 눈보라를 극복하는 방식인 허들링을 본떠 공무원은 물론 주민 모두가 불우 이웃 돕기에 나설 수 있도록 체계를 새롭게 갖춘 것이다. 위기 가정 발굴부터 사후 관리까지 3단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장 조직인 동 주민센터에서는 지역 주민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발견해 신고하면 우선 상담을 실시한다.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희망복지지원단에 서비스 지원을 의뢰한다. 지원단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동 주민센터에 사후 관리를 맡기는 방식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면서도 제도를 잘 알지 못해 지원받지 못하는 가정, 치료가 필요한 알코올 중독자, 독거노인, 조손 가정 등이 주요 서비스 대상이다. 주민생활지원과 직원 4명과 사회복지통합서비스 전문 요원 4명, 동작복지재단, 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관, 아동복지시설, 노인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50개 기관이 협력 관계를 맺어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서비스의 정점에는 문 구청장이 있다. 8월에는 복지위원 70명을 위촉해 현장에서 저소득층 발굴에 앞장서도록 했다. 일례로 주민센터에서 알코올 중독자를 발견하면 지원단이 회의를 통해 치료 기관을 연계하고 지역자활센터에서 취업 교육을 받도록 하거나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게 돕는다. 지원단은 지난달 중순까지 약 6개월 동안 일반상담은 912건, 심층상담은 133건 진행했다. 또 127건의 사례회의를 했고 111건의 욕구조사를 마쳐 현재 16건에 대해서는 서비스 지원을 완료했고 64건은 심사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상도동에 거주하는 박모(51)씨는 동작구 보건소, 지구촌 복지재단, 이랜드 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료 틀니 서비스와 일자리 상담을 받았다. 생계 지원 등 단순 서비스는 한달 안에 마칠 수도 있지만 정신질환과 가장의 사망, 생계 위기 등 여러 위기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면 관리를 마무리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는 기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위기 가정을 탈출하지 못해 다시 위급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이 종료돼도 지원단은 6개월 단위로 사후 관리 서비스를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구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전국 지방자치평가에서 희망복지지원사업 분야 최우수 자치구로 선정됐다. 전달 체계 개편과 인력 배치, 통합 사례 관리 수행, 초기 상담 적극성, 서비스 협력 체계 등 모든 분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문 구청장은 지원단을 꾸린 뒤에도 복지업무 담당자에 대한 교육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적극적으로 불우 이웃을 발굴하려면 현장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는 취지로 교육을 진행했다. 지원단 구성 직후 최일선 현장 인력인 통장과 새마을부녀회장에 대한 교육도 함께 했다. 문 구청장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외 계층을 배려하고 이들을 특별 관리해 주민이 감동할 수 있는 행정을 펼치고 싶다.”면서 “사회의 온기가 제대로 미치지 못한 빈곤층을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원스톱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더 많이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이승희 두 번째 시집 ‘거짓말처럼… ’

    시가 너무 우울하다. 이승희(47)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문학동네 펴냄)가 그렇다. 그의 첫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2006년)를 두고 시인 정승호는 “부정적 곡괭이보다 긍정적인 호미”를 사용해 시를 짓는다고 평가했다. 제목과 달리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는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가 독자의 발목을 잡아채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발자국마다 벼랑이다. 바람 속에 찍힌 무수한 새의 발자국은 누가 남긴 유서인가.”(그림자들)라든지, “햇살이 가만히 죽은 나무를 쓰다듬는 동안 나는 죽은 내 얼굴을 만져볼 수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맨드라미는 지금도)라고 했다. 맨드라미는 한국의 아열대성 우기인 7~8월에 닭벼슬처럼 빨간 꽃을 피우는 건강하고 활기 있는 꽃이다. 꽃말도 ‘건강’ ‘타오르는 사랑’이다. 그는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을 시를 길어 올리며 의지해 살았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들킬까 겁이 난다.”고 했다. “내 몸 어딘가에 나 살고 있기나 한 걸까?”라고 묻는 그에게 막걸리라도 한잔 사줘야 할 것 같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때는 사람의 온기로 가득찼을 터 이제는 바래진 기억을 담아봅니다

    한때는 사람의 온기로 가득찼을 터 이제는 바래진 기억을 담아봅니다

    요즘 새로 짓는 건물들이야 이런저런 놀이터를 만들어 두지만, 어릴 적 최고의 놀이터는 동네 빈터였다. 그 가운데 최고의 빈터는 공장터였다. 공장이 있던 자리이다 보니 다른 빈터와 달리 반질반질한 바닥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 신나게 뛰놀았던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12월 26일까지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1층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최영만 작가의 개인전 ‘터’(Lot)를 지켜보노라면 이 기억이 떠오른다. 작품에 따라 약간 기이하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작가의 작품은 대개 빈터다. 휑한 기운도 있지만 땅이 가진 두꺼운 질감 때문에 유화물감을 몇번이고 덮어 씌운 느낌이 나기도 한다. 작가의 고민은 한 화면에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다. 사진은 순간이다. 찰나다. 맛깔나게 쓰인 단편소설처럼,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앞뒤로 연결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특징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단점을 극복하려는 작품들도 나온다. 어떤 작가는 구석구석 다 찍은 자신을 이어 붙여 입체적으로 만든다. 공간감을 준 게 아니라 사진으로 공간 그 자체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을 쓱 베어내는 게 아니라 쭉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의 출발점이다. 작업방식은 이렇다. 어떤 이야기가 묻어 있을 것만 같은 곳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을 1㎡ 단위로 재단한다. 그 다음은 이 재단한 단위별로 촬영을 진행한다. 이 사진들을 한데 모은 뒤 디지털 작업을 통해 미세하게 이어 붙인다. 그러니까 한 장의 사진이긴 한데 그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또 개별적으로 한 장씩 찍어 나가는 시간의 층위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순간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찰나의 평면인데 실제로는 시간이 어긋난 단층이 되는 방식이다. 작가가 이런 작업을 시도한 것은 땅 그 자체만도 아니고 인간 그 자체만도 아니라, 인간과 땅의 관계를 다루고 싶어서다. “어려서부터 건설과 파괴현장이 주요 관심사였어요. 건설과 파괴는 사람과 가장 밀접한 현상인데 이상하게 그런 장소는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가까이 있더라도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지요.” 그 속살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애잔하고 슬픈 것만은 아니다. “관심 있는 것은 애수나 향수 같은 게 아니라 변신이나 변형을 앞두고 축적하고 있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터라는 제목도 사람과 땅을 매개한다는 취지에서 붙인 것이다. 그래서 작업 대상도 사람의 체온이 짙게 배어 있는 곳으로 고른다. 집이 있었던 곳, 거대한 상가건물이 있었던 곳, 그리고 한때 공장이었다 철거된 곳, 아니면 허물기 직전 건물의 옥상들이다. 인간의 체취가 조금 더 과격하게 남아 있는 곳도 골랐다. 한창 개발 중인 동부산관광단지에 가서 수천 채의 집과 건물이 파괴된 수만평의 땅 위에 섰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곳 위에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말끔하게 밀어버린, 혹은 이런저런 쓰레기가 어지러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글자글한 주름살처럼 남아 있는 균열들이다. 작가는 이걸 두고 “고려청자에 은근히 퍼져 있는 잔금보다 더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게 인간이 땅에 남긴, 터가 지닌 체온이다. 이번 전시는 일우사진상 수상작가 선정 기념 전시다. (02)753-650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朴 “온기 윗목·아랫목 퍼져야” 文 “대기업·골목 두 날개 성장” 安 “고용창출·골목 정책 병행”

    朴 “온기 윗목·아랫목 퍼져야” 文 “대기업·골목 두 날개 성장” 安 “고용창출·골목 정책 병행”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출마선언 이후 두 번째로 한자리에 섰다. ●출마 이후 두 번째로 한자리에 세 후보는 29일 오후 서울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골목상권 살리기 운동 전국대표자회의에 나란히 참석, 저마다 중소·소상공인 보호 정책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과학기술 나눔마라톤대회 이후 보름여 만이다. 특히 이날 행사가 캠프마다 경제민주화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골목상권 분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박 후보는 “요즘 경제민주화에 대해 많이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우리 경제의 아랫목 윗목 할 것 없이 온기가 골고루 퍼져야 다 같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골목상권 보호 공약으로 대형마트 진출 시 사전신고 및 입점예고제 도입, 사업조정제도 개선, 카드·은행·백화점 등 3대 수수료 인하 등을 제시했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중심 경제전략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면서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두 날개로 성장해야 더 높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소상공인 적합업종 보호특별법, 대형유통업체 입점 허가제 전환,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가칭) 중소상공부 신설 등 자신의 공약을 내세워 표심을 끌었다. 안 후보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구직자가 자영업에 뛰어들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일자리 만들기 정책이 골목상권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중소·소상공인 대책으로 자영업자 임대료 조정위원회 설치, 간이사업자 기준 현행 연매출 4800만원에서 9600만원으로 상향 조정,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 등을 약속했다. ●축사 순서 놓고 미묘한 신경전 한편 세 후보는 축사 순서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도 벌였다. 통상 박 후보, 문 후보, 안 후보 순으로 축사를 하지만, 사회자가 돌연 “대회장 도착 순서대로 축사를 하겠다.”고 하면서 행사장이 술렁였다. 이날 행사장에는 문 후보, 안 후보, 박 후보 순으로 도착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문 후보가 바로 단상에 오르지 않아 3분 정도 겸연쩍은 상황이 연출되자 사회자가 “문 후보가 양보하셨다.”며 순서를 정정해 박 후보가 처음으로 연설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문화마당] 세월을 견디는 90년대 음악/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세월을 견디는 90년대 음악/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첫사랑이 말한다. 훗날, 집을 지어달라고. 그리고 계약금으로 ‘전람회’ 앨범을 한 장 내놓는다. 그녀는 CD플레이어에 꽂힌 이어폰을 첫사랑의 귀에 꽂는다.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기억의 습작’이 흐른다. 올해 3월 개봉해 411만 관객이 찾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이다. 1994년 전람회 1집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는 영화의 중요한 매개체로 존재한다. 최근 케이블채널에서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역시 1990년대 사랑받았던 대중가요가 등장한다. 가수들이 주연한 이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 ‘우리 사랑 이대로’(주영훈·이혜진), ‘올포유’(쿨),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김동률)는 당시 추억을 되새김질하면서 음악 사이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X세대’라 불렸던 30대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 10대들은 이제 30대가 되었고, 갓 입학했던 초등학생은 20대 후반으로 성장했다. 어떤 시대에도 복고의 유행은 불문율처럼 존재했다. 2000년대 초반 7080세대의 복고가 유행하더니, 2012년 들어 1990년대가 음악·영화 각 문화 분야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90년대는 라디오 시대의 듣는 음악에서 비주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보는 음악이 고개를 든 시대였다.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의 교차 지점에 접어든 90년대는 그야말로 대중음악 중흥기였다. 양질의 문화 콘텐츠가 대거 생산된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재조명하고 재해석될, 할 말이 많은 시대였다. 90년대 가요계엔 1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돌파하는 가수가 심심찮게 쏟아졌다. 10만장을 판매한 가수들이 다음 앨범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을 만큼 음악 수용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존재했다. 또한, 김동률·이적·유희열·윤상 등 자신의 음악 세계를 탁월하게 만들어 가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중의 가슴을 관통하며 주목을 받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재진행형의 뮤지션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90년대의 음악이 얼마나 큰 감성의 주축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서다. 더불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아이돌이 서로 경쟁하며 팬클럽 문화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도 90년대였으니 듣고 볼거리가 많은 시대였다. 그러니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그 이전 세대보다 ‘문화적 추억’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계 전반에 ‘웰 메이드 상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90년대 콘텐츠’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힘을 갖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성장기에 영향을 줬던 것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위안과 스스로의 격려는 세월이 흘러도 잔존하게 마련이다. 당시 돈을 타 쓰며 눈치 보던 세대는 이제 콘서트 티켓, CD를 당당히 구매하는 핵심 문화 소비자가 됐다. 90년대의 음악이 세월을 견디는 까닭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문화 코드인 복고는 옛 감정을 되살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을 한다. 복고의 힘은 그 당시 사연들을 간직한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울림을 준다. 단순한 추억 곱씹기를 넘어 문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콘텐츠의 힘이다. 그러나 복고 열풍의 이면에는 새로운 콘텐츠의 고갈이 깔려 있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는 디지털 싱글 음원들은 음악을 곱씹어 볼 겨를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뮤지션이 탄생하지 않고 복고가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대중문화 발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일이다. 편지는 이메일로 대신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선물을 보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낡은 테이프. 비록 불법이었지만 한 곡 한 곡 정성스럽게 녹음하고 표지에 노래 제목을 곱게 적어 건네 온 선물은 당시 하도 많이 들어서 재생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지지 못하고 책상 앞에 자리하고 이유는 사람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 30여년 만에 빗장 푼 제주 차귀도

    30여년 만에 빗장 푼 제주 차귀도

    차귀도를 아십니까. 제주시 한경면 자구내 포구에서 2㎞쯤 떨어진 섬입니다. ‘일출은 성산, 일몰은 차귀’란 말이 전할 만큼 제주의 해넘이 명소로 통하지요. 제주 해안에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지만 섬엔 30여년간 사람의 온기가 없었습니다. 1970년대 주민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최근 공휴일 100명에 한해 입도가 허용되면서 차귀도에 점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있습니다. 차귀도는 제주 본섬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난 풍경을 감춰두고 있습니다. 제주올레 12코스에 속한 이 구간에서 ‘제주 올레 걷기 축제’도 열린다고 하니, 일정을 그에 맞춘다면 보고 즐길 것 많은 제주 나들이가 될 듯합니다. “서제주의 보석들을 주우며 가는 길”이라고 했다. 제주올레길 12코스에 대한 고광훈 고산 1리 이장의 단상이다. 그는 무릉리 무릉생태학교에서 절부암 전설이 깃든 용수포구까지 가는 동안 수월봉 등 보석 같은 풍경들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보석이 차귀도다. ●“서(西)제주의 보석들을 주으며 가는 길” 차귀도는 면적 0.16㎢로 제주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크다. 큰섬, 혹은 죽도라고 불리는 차귀도와 매바위(지실이섬), 쌍둥이 바위(썩은 섬) 등 부속섬들이 모여 차귀도를 이룬다. 제주의 서쪽, 고산리 자구내 포구에서 약 2㎞쯤 떨어졌다. 섬은 척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섬의 테두리는 죄다 바다를 향해 솟았고, 중심부는 평지와 얕은 언덕들로 이뤄졌다. 무엇보다 섬 주변의 해안절벽들이 인상적이다. 수차례 일어난 화산 폭발의 흔적들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였다. 인터넷 검색창에 차귀도를 치면 수많은 자료들이 검색된다. 거개가 일몰, 혹은 낚시 명소로서의 차귀도에 관한 내용들 일색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밖에서 본 차귀도 이야기들일 뿐, 섬의 내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1970년대 주민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30여년 동안 섬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제한된 일부의 사람들이 섬을 방문한 이후, 비로소 세상에 제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엄밀히 보자면 차귀도는 제주올레길 구간이 아니다. 대신 ‘차귀도 트레일’이 조성돼 있다. 섬이 작은 만큼 트레일 길이도 1.5㎞로 짧다.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섬이 작다고 담긴 풍경마저 작으랴. 북유럽의 척박한 섬을 연상케하는 이국적인 풍모와 다양한 식생들, 그리고 화산이 남긴 풍경만큼은 여간 옹골차지 않다. 특히 미기록종 동식물이 꾸준히 발견되는 등 학술적 가치도 높다. 2000년에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422호)로 지정된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볼레기 언덕에 서면 바람이 보인다 자구내 포구에서 ‘도댓불’(어류의 기름을 태워 불을 밝힌 제주 전통 등대)의 배웅을 받으며 5분여 달리면 차귀도다. 섬에 들면 오른쪽에 커다란 해식동굴이 보인다. 고춘자(60) 문화해설사는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신나게 놀았던 곳”이라고 전했다. 20여m 쯤 오르막을 오르면 차귀도는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 볼레기 언덕과 등대가 아련하고, 가까이는 사초 등 키 낮은 잡초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아우성을 처댄다. 언덕 오른쪽엔 누군가 살았음직한 건물이 벽만 남긴 채 스러져 가고 있다. 트레킹은 왼쪽 언덕을 오르며 시작된다. 자구내 포구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이 이곳이 제주에 속한 섬이란 걸 새삼 일깨우고 있다. 언덕 꼭대기에 서면 바다 위로 크고 작은 무인도들이 가득하다. 장군바위와 매바위(독수리 바위), 쌍둥이 바위 등 차귀도를 이루는 작은 섬들은 죄다 이곳에 모여 있다. 조막만한 차귀도지만 전해 오는 얘기들은 예닐곱을 넘는다. 우선 길 들머리의 장군바위다. 주민들은 흔히 ‘500장군 바위’라고 부른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 할망이 500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가 차귀도 장군바위란다. 나머지 499명은 한라산에 있다는 것. 안내판은 “장군바위는 ‘송이’(Scoria)를 분출한 화산 활동 때 화도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언덕 아래는 붉은 황토 빛깔의 송이 지대다. 일종의 돌숯으로, 화산 폭발 때 고열에 탄 화산석을 가리킨다. 주민들이 ‘부끌레기’라고 부르는 제주의 독특한 광물질이다. 제주 외부로의 방출은 금지돼 있지만, 화장품 등의 원료로 알려져 있어 언제까지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화산이 만든 해안 풍경을 지나면 볼레기 등대다. 섬 주민들이 ‘볼렉볼렉’(헐떡헐떡) 가쁜 숨을 내쉬며 돌과 흙을 날라 만들었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 등대가 서 있는 볼레기 언덕 또한 뜻은 같다. 볼레기 언덕 아래는 대마 난류와 구로시오 난류의 분기점이다. 늘 물살이 거세지만, 그 덕에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볼레기 언덕에 서면 바람이 보인다.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사초와 억새들이 일렁인다. 차귀도는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드센 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춘자 해설사에 따르면 평균 초속이 제주 여느 지역에 견줘 두 배가 넘는 9.6㎧에 이른다고 한다. 사초와 억새가 점령한 섬 한 편에서 제주조릿대 군락지가 눈에 띈다. 조릿대를 캐러 차귀도에 오다가 조난 당한 용수포구의 어부와 그를 기다리다 숨진 아내가 등장하는 절부암 전설의 연원이 된 곳이다. ●제주가 가장 아름다울 때 열리는 올레걷기축제 ‘2012 한국 방문의 해 기념 특별이벤트’에 선정된 ‘2012 제주올레걷기축제’가 오는 31일~11월 3일 제주올레 10~13코스 구간에서 열린다. 코스 길이는 평균 16㎞다. 참가자들은 매일 1개 코스씩 5~6시간 정도 걸으며 15개 마을에서 준비한 문화공연을 즐기고 각종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소리울 오카리나 연주, 곶자왈 챔버오케스트라 등 음악공연도 준비됐다. 억새풀 넘실대는 바닷가 언덕에서 듣는 첼로와 바이올린의 앙상블은 정말 감동적이다. 창작 뮤지컬 ‘힐링 제주’, 올레꾼 전통혼례, 도자기 아울렛 등 50여개의 다채로운 체험과 볼거리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안전대책도 마련됐다. ‘나홀로’ 여성 탐방객은 공항 등에서 ‘SOS 단말기’ 대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위급상황 발생시 버튼만 누르면 치안센터 등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경찰 등 약 600명으로 구성된 올레길 순찰대와 약 150명의 민간인이 참여하는 올레길 지킴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개막행사는 31일 오전 9시 10코스 출발점인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폐막식은 11월 3일 오후 6시 저지리 녹색체험마을에서 각각 열린다. 폐막식엔 1980년대 최고의 록 밴드로 꼽히는 ‘들국화’가 출연한다. 홈페이지(www.ollewalking.co.kr) 참조. 글 사진 제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차귀도는 주말과 공휴일 등에 한해 100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 배낭과 스틱 등은 지참할 수 없다. 11월말까지만 운영되다 새해 3월부터 다시 입도가 허용될 예정이다. 배삯은 왕복 1만원이다. 차귀도 뉴파워보트 738-5355. 고광훈 이장 773-1943. -하얏트 리젠시 제주(www.jeju.regency.hyatt.kr)는 제주 올레 걷기 축제 기간 동안 호텔 투숙객 중 올레 패스포트 소지자에게 ‘올레 안전 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간단한 구급약과 휘슬, 양말, 생수, 올레 코스 지도 등이 들어 있다. 또 모든 올레패스포트 소지자에게는 호텔 정문 앞에 마련된 올레 카페에서 무료로 아메리카노 1잔을 제공하며, 호텔 레스토랑의 메뉴 이용시 10% 할인된다. -제주관광공사가 중문단지 컨벤션센터에서 운영하는 내국인 면세점도 올레 축제 기간 중 축제장에 비치된 할인 쿠폰을 가져온 고객에 한해 10% 추가 할인혜택을 준다.
  • 9·10 대책에 경매시장 ‘온기’

    지난달 24일 연내 취득 주택에 대한 취득세 감면이 확정되면서 서울 주택경매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9·10 대책은 12억원 이하 주택의 취득세를 50% 감면해 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14일 부동산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10일까지 한 달간 서울 주택 경매시장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24일을 기점으로 낙찰률과 입찰률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득세 감면 일자가 확정되지 않았던 지난달 24일 이전에는 1072건 가운데 289건이 낙찰돼 낙찰률이 26.96%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732건 중 224건이 낙찰되면서 낙찰률이 30.6%로 3.7% 포인트 상승했다. 입찰자 수도 늘었다. 24일 이전 23일간 1183명이던 입찰자 수는 이후 17일간(9월 24일~10월 10일) 1170명으로 비슷했다. 9·10 대책 확정 이전 51.4명이던 하루 평균 입찰자가 이후에는 68.8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4.09대1이었던 입찰 경쟁률도 5.22대1로 더 치열해졌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인 낙찰가율도 72.38%에서 74.91%로 소폭 상승했다. 부동산태인 정대홍 팀장은 “11일에는 서울중앙지법 경매장을 찾은 입찰자가 140여명으로 평소의 3배에 이르렀다.”면서 “취득세 감면을 받을 수 있는 연말까지 저가 매물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수석팀장은 “취득세 감면 조치로 집값 추가 하락에 따른 리스크가 감소해 저가 매수자가 유입되고 있다.”면서 “기존 주택시장에서도 반짝 거래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죽은 여친 지키는 ‘러시아판 견공’ 로미오와 줄리엣

    죽은 여친 지키는 ‘러시아판 견공’ 로미오와 줄리엣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친구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견공이 감동을 주고 있다. 견공의 러브 스토리가 주민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는 곳은 필리포브카라는 러시아의 한 도시. 이곳에선 지금으로부터 약 1주 전 자동차에 치어 암컷 개 한 마리가 죽었다. 남자친구로 보이는 수컷 개의 여자친구 돌보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개는 도로 한복판에서 숨이 끊어진 여자친구를 길 밖으로 끌고 나갔다. 여자친구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줄 아는 듯 개는 죽은 개에 몸을 맞대고 온기를 전해줬다. 한 주민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가 자신의 몸으로 죽은 개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 안고 만지기를 쉬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개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 죽은 개의 옆을 지키는 게 안타까워 일부 주민은 개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식음을 전폐한 개는 여자친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람이 접근하면 으르렁거리며 바짝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사설] 대선후보들 민생경제 살릴 리더십 보여라

    글로벌 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와해 직전 상태에 있다.’는 경고에서는 섬찍한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오늘 일본 도쿄에서 열릴 연차총회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2%대 국내 경제성장 전망의 대열에 곧 한국은행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경제가 사상 유례 없는 장기 저성장 터널에 진입한 모양이다. 현재 경제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을 투입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섰건만 회복 기미는 요원하다. 우리 정부도 추경에 버금가는 13조원의 재정투자에 나섰으나 회복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선 후보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에 몰입해 있는 양상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와 재벌 개혁이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복지와 재벌 개혁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정책목표다.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성장 없는 경제민주화는 사상누각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어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차기 정부가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보다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민주화의 프레임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는 주문으로 읽힌다. 세계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력이 꼽힌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치권이 바뀌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경제위기가 길어질수록 위기의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특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까닭에 대선 주자들은 민생경제를 살릴 공약 제시와 리더십 발휘에 주력해야 한다. 암울한 경제상황을 극복하는 해법을 제시해야 할 궁극적 주체는 임기를 4개월여 남긴 이명박 정부가 아니다. 바로 대선 후보들 가운데 한 명이 떠맡아야 할 과제다. 당장 정기국회 예산심의에서 정부가 장밋빛 전망으로 편성한 새해 예산안의 세입과 세출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경제민주화, 신성장 동력 발굴과 함께 경제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재원 배분 정책의 조화도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 터키(TURKEY)-바이블보다 오래된 터키 이야기

    터키(TURKEY)-바이블보다 오래된 터키 이야기

    바이블보다 오래된 터키 이야기 이름도 생소한 터키의 말라티아Malatya와 샨르우르파 Sanliurfa에 다녀왔다. 태어나 처음 가본 지역들은 신생의 시간으로 충만했고, 낯선 지명만큼이나 생경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태초의 자연과 신비로운 유적이 새로 태어난 시간 속에서 뒤채였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터키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02-336-3030 유프라테스 강변의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유프라테스 강가에 살포시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배출한 강에 저녁노을이 고여 흥덩흥덩 넘칠 것만 같았다. 강안의 풍경은 평화로웠고, 강바람은 선들선들했다. 살구 도시의 건강 밥상 터키 동남부에 위치한 말라티아의 6월 말 날씨는 무더웠다. 낮 기온이 32도로 높았으나 대기는 건조했다. 그늘에 몸을 숨기면 금세 열기가 가라앉았다. 물기가 사라진 공기에서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바싹 메마른 땅에서는 누런 흙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그렇다고 해서 황량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처에 과실수들이 즐비했고, 군데군데 수풀이 우거졌다. 말라티아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 도시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살구였다. 시市 관계자들이 한국에서 온 미디어와 여행사 관계자들을 위해 내건 플래카드에는 ‘살구의 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말라티아는 전세계 말린 살구의 80%가 생산되는 곳이다. 살구 이외에 오디와 체리도 유명하다. 말라티아에 머문 3박 4일 내내 과일의 향기가 진동했다. 예실유르트Yesilyurt의 한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대접받았다. 예실유르트의 ‘예실’은 녹색을 뜻한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식당은 연한 녹음에 싸여 있었다. 대여섯 가지의 빵, 서너 가지의 치즈, 올리브와 각종 채소, 살구 잼과 직접 벌치기를 해서 얻은 꿀, 호박튀김, 살구와 체리 등이 식탁에 올랐다. 한눈에도 재료의 싱싱함이 느껴졌다. 이만한 건강 밥상이 또 있을까 싶었다. 누군가 터키 동부 지방 사람들은 직접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많이 먹는다고 귀띔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성대한 아침상이었다. 먼 길 달려온 손님을 위해 아침부터 이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했나 싶었지만 다른 상차림을 엿보아도 2인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양과 종류 모두 푸짐했다. 말라티아의 옛 시가지인 에스키 말라티아를 찾았다. 1637년에 지어져 대상들의 숙소로 쓰였던 케르반사라이Kervansaray가 흥미로웠다. 여기서 대상은 ‘大商’이 아니라 ‘隊商’이다. 즉 장사를 크게 하는 상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나 초원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 집단을 의미한다.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이 사라진 오늘날 케르반사라이의 역할도 바뀌었다. 소박한 예술이 숨쉬는 공방으로 변모한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에브루Ebru 작업실이었다. 터키 전통의 에브루는 마블링 기법의 일종이다. 물이 담긴 네모난 철판 위에 유성물감을 떨어뜨리고 송곳처럼 생긴 도구로 모양을 만든 다음, 종이를 물 위에 덮으면 물감이 묻어난다. 물과 기름과 종이의 상호작용에 전문가의 손길이 보태어지니 어느 틈에 꽃 한 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케르반사라이에서 나와 바탈가지Battalgazi 골목을 걸었다. 바탈가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공공 미술의 거리였다. 투박하지만 개성 있는 작품들이 살림집의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조붓한 골목길과 예스런 집들보다 더 마음 밭에 밟혀드는 것은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스카프로 멋을 낸 여인들은 수줍은 듯 두 뺨에 홍조가 떠올랐으며, 천둥벌거숭이 같은 꼬맹이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며 들까불었다.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비스듬한 오후 햇살에 실려 나붓거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말라티아 시내에서 차로 30~40분을 달려 만날 수 있는 레벤트 협곡은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흡사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터키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을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다 2 다렌데의 소문주바바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신도 3 레벤트 협곡의 동굴 집 4 토흐마 강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식당 수크르 쿠르트씨의 동굴 집 내부는 조붓했다. 살림에 필요한 가재도구들이 집주인의 검박한 생활을 말해 주는 듯했다. 오랜 세월 대대의 어른들이 살았던 집은 그 자체로 생활사 박물관이라 이를 만했다. 1,000년을 살아온 동굴 집 케르반사라이와 바탈가지, 그리고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1600년까지 7개 시대 문명의 흔적이 켜켜이 아로새겨진 아슬란테페Aslantepe 유적지를 돌아본 날 저녁식사를 한 장소는 유프라테스Euphrates 강변의 레스토랑이었다. 메인 요리인 송어 구이가 나올 무렵, 태양은 이미 고도를 한참이나 낮춰 거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에 강과 하늘이 불콰해졌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유프라테스 강의 면모는 평범했다. 도드라진 특징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유프라테스는 풍경의 강이 아니라 의미의 강이었다. 말라티아가 간직한 풍경의 절창은 시내에서 차로 30~40분 떨어져 있는 레벤트Levent 협곡이었다. 직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은 아찔했고, 귀부로 다듬은 듯한 바위기둥은 기기묘묘했다. 지금이야 가장 높은 지점이 해발 1,400m에 이르지만 6,500만년 전 협곡은 바다였다. 어느 순간 거대한 융기 현상이 일어났고 길고 긴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작용을 겪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됐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레벤트 협곡에는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28개나 있다. ‘지질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레벤트 협곡의 안쪽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트레킹을 해야 한다. 28km와 48km의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그런데 협곡을 찾았을 때 한쪽에서는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었다. 번지점프대를 필두로 각종 레포츠 시설도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편일 것이었다. 하지만 자연을 꼭 이런 식으로 소비해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연을 어디에나 있는 인공 시설에 의지해 감상해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편의 시설 확충을 검토하게 될 것이고, 고육지책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늘지 않는다면 시설물은 흉물로 남을 수도 있다. ‘Let it be’는 위대한 자연 앞에서 가장 절절한 문장이다. 레벤트 협곡 일대에는 9,5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자연 동굴은 물론이고 인공 동굴을 만들어 집, 창고, 무덤, 교회 등으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요즘도 동굴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퀴추크퀴르네 마을의 수크르 쿠르트씨가 그 주인공이다. 1949년생인 그는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다. 자식만 19명이다. “조상 대대로 1,000년 이상 동굴에서 살았다”고 전한 쿠르트씨는 현재 말라티아 시내에 거처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자식들 교육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동굴은 주로 여름철에 이용하고, 겨울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들른다. 동굴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85년의 일이었다. 당시 마을 촌장이었던 쿠르트씨가 말라티아가 고향인 수상에게 편지를 보내 동굴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했던 것이 주효했다. 그전까지는 동굴 내부의 천연 냉장고에 물건을 보관했다. 자신의 동굴 집 내력을 담담하게 밝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갑작스런 이방인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파문이 일지 않는 강물처럼 고요해 보였다. 그의 일상도 그의 얼굴만큼이나 평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 말라티아와 아드야만 주의 경계에 위치한 넴루트 산. 산 정상의 서쪽 테라스에 안티오코스 1세의 조각상이 있다 2 넴루트 산 유적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기념엽서들 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에 있는 레벤트 협곡 4 숯불에 구워 먹는 닭고기와 토마토 5 다렌데의 토흐마 강을 따라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 넴루트 산 정상의 주인은 콤마게네 왕국의 통치자 안티오코스 1세의 명을 받들어 조성된 돌무덤과 조각상들이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믿으며 영원불멸을 꿈꿨던 왕의 과대망상은 지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신의 영역을 넘봤던 왕 레벤트 협곡을 떠나 다렌데Darende의 토흐마Tohma 협곡을 방문했다. 래프팅과 트레킹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석회질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색깔이 뿌연 강 주변으로 야외 식당과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들은 숯을 피우고 부채질을 해가며 닭고기와 토마토를 구워냈다. 맛있는 냄새가 계곡을 지배했다. 군침을 흘리며 지켜보고 서 있으려니 사람 좋은 인상의 한 사내가 고기 한 점을 맛보라며 권했다. 올해 들어 먹어 본 숯불구이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사람들이 대형 고무보트를 실은 차량을 타고 강의 상류로 나아갔다. 안전모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노를 손에 쥐었다. 탑승이 완료되자 이내 보트가 출발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직접 래프팅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다시 차를 타고 하류로 내려와 ‘피니시라인’ 부근에서 보트의 귀환을 기다렸다. 나중에 래프팅을 경험한 이들에게 전해 들으니 생각보다 물살이 빨라 흥미진진했다고 한다. 트레킹 코스는 대략 1.3km에 달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웅장한 절벽을 벽면으로 삼은 야외 수영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협곡의 생김새에 순응하며 조성된 트레일은 신비한 풍경화를 거듭거듭 만나게 해주었다. 바위에 쪼그려 앉은 중년의 사내는 계곡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에서 차를 타고 5분가량 이동했다. 40m 높이의 균프나르 폭포를 앞에 두고 미리 주문해 놓은 닭고기 요리를 음미했다. 단단한 바위산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줄기를 바라보자니 자연의 신비가 새삼스러웠다. 말라티아에 작별 인사를 고하기 전, 도심의 재래시장에 잠시 들렀다. 말라티아의 재래시장에는 요즘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에서도 사라져 가거나 이미 사라진 풍경들이 여전히 자리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장간이었다. 벌겋게 달궈진 쇠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선 사내들이 번갈아 망치질을 해댔다. 땅, 땅, 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저잣거리에 울려 퍼졌다. 말라티아에서 가장 맛있다는 케밥 식당도 이곳 시장에 자리했다. 말라티아는 넴루트Nemrut 산 여행을 위한 거점 도시이기도 하다. 말라티아에서 차로 3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넴루트 산 정상 아래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강풍을 뚫고 해발 2,150m의 정상에 오르니 50m 높이의 돌무덤과 거대한 조각상들이 시야를 막아섰다. 넴루트 산의 유적은 콤마게네 왕국의 통치자 안티오코스 1세에 의해 조성됐다. 신이 되고자 했던 그는 신들과 악수하는 자신의 조각상을 비롯해 대표적인 신들인 아폴론·제우스·헤라클레스 등의 조각상과 사자 및 독수리의 조각상을 세웠다. 자신이 건설한 능과 조각상이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던 안티오코스 1세의 호언장담은 지진에 의해 물거품이 됐다. 조각상의 머리 부분은 몸통에서 떨어져 내렸고, 조각상이 앉아 있던 의자는 무너져 내렸다.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욕망은 한낱 부질없는 꿈에 불과했다. 1 샨르우르파의 할페티 마을. 대형 댐의 건설로 마을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다 2 아브라함이 15년간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하란 3 아브라함 탄생 동굴과 메블리드 이 할릴 자미 4 도넛 모양의 빵에 깨를 듬뿍 뿌린 시미트를 머리에 이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행상들. 터키 사람들이 특히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다 샨르우르파 곳곳에서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들과 마주쳤다. 그가 태어났다는 동굴을 비롯해 화형을 당하기 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전설을 품은 연못, 그리고 그를 흠모했던 여인이 투신했다는 연못 등에는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도시에 새겨진 아브라함의 흔적들 넴루트 산에서 내려와 샨르우르파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호텔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었다. 이튿날 본격적인 도시 탐험에 나섰다. 아브라함과 관련된 장소들이 주요 볼거리인 샨르우르파는 말라티아에 비해 종교적인 색채가 훨씬 진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랐다는 동굴은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출입문이 각기 달랐다. 내부에는 간단한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나오는 물을 성수로 여기는 듯했다. 동굴의 안쪽은 유리를 통해서만 들여다보게 돼 있었다. 아브라함 탄생 동굴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니 직사각형 모양의 ‘성스러운 연못’이 나왔다. 연못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아브라함이 지역에 만연한 우상숭배를 비난하자 격노한 지배자는 그를 화형에 처한다. 불길이 아브라함을 덮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불은 돌연 연못으로 변하고 화형에 쓰인 장작은 물고기로 바뀌었다. 한낮의 연못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노닐었고, 연못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몇몇 사람들이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었다. 한 아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연못의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신성한 연못의 기운을 받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더위를 식히려는 것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성스러운 연못 남쪽에 또 다른 연못이 자리했다. 님로트 왕의 딸인 젤리하가 평소 연모하던 아브라함이 화형을 당하게 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을 던졌다는 곳이다. 공주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구하는 기적을 끝내 보지 못했다. 슬픈 전설을 안고 있는 연못은 아름다웠다. 호수 주변을 푸른 수목이 호위했고, 햇살이 호면에서 자글거렸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연못을 유람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샨르우르파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하란Harran은 아브라함이 15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정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아내가 될 라헬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던 장소인 야곱의 샘도 이곳에 있다. 하란에서는 원추형 지붕의 흙집이 눈에 띄었다. 지붕 모양 때문에 천장의 공간이 넓어져 여름에는 태양열을 분산시키고 겨울에는 온기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흙집에는 사막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샨르우르파 일정의 마지막은 외곽의 괴벡리테페Gobeklitepe가 장식했다. 괴벡리테페는 어수선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까닭이었다. 육중한 석회암 기둥과 그 위에 돋을새김된 동물들이 앞선 문명의 위엄을 웅변하는 듯했다. 1만2,000년 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을 지탱했던 돌기둥 중 가장 큰 것은 높이가 무려 5.5m에 달한다. 어떠한 도구도 없었던 그 옛날, 수레나 짐을 나르는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 거석을 운반하고 다듬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인간의 머리로 풀어낼 수 없는 역사의 비밀 앞에 돌연 마음이 숙연해졌다. 선뜻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travie info 항공편 터키항공(www.turkisharilines.com)이 매일 인천~이스탄불 구간의 직항 편을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10시간 50분. 이스탄불에서 말라티아와 샨르우르파까지는 국내선으로 각각 1시간 20분,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화폐 터키의 화폐단위는 리라. 1리라는 약 640원이다. 날씨 터키는 한반도 면적의 3.5배에 달한다. 각 지방마다 기후가 다르지만 대체로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다. 여름은 고온 건조하고 겨울은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린다. 샨르우르파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다. 바람이 많이 부는 넴루트 산을 오를 때는 한여름에도 긴팔 옷이나 얇은 점퍼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쇼핑 말라티아는 살구, 체리 등의 과일이 풍성하다. 말린 살구는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샨르우르파는 고추의 집산지다. 대부분의 음식에 고추를 곁들인다. 호텔 말라티아의 숙소 중에는 아네몬 호텔(www.anemonhotels.com)이 깔끔하다. 말라티아 공항에서 20km, 말라티아 시내로부터는 6km 떨어져 있다. 샨르우르파에서는 힐튼 가든 인(hiltongardeninn3.hilton.com)을 추천할 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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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국경제 저성장 고착화에 경각심 가질 때

    우리 경제가 심상치 않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가 수출환경 악화와 소비 및 투자 심리 위축 등 대내외 악재로 위축되면서 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3.6%에서 2.5%로 떨어뜨렸다. 넉달 만이다. 이에 앞서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IB)들과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5% 내외로 수정한 바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만이 3%대 성장 전망을 고수하고 있으나 조만간 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 중반으로 추락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자칫하다가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저성장의 고착화라는 덫에 걸려 주저앉을 수도 있다. 정부는 최근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해 감세를 통해 재정 지원을 강화하는 2차 경기부양 카드를 내놓았다. 하지만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와 야당의 반대로 관련법령의 처리가 미뤄지면서 시장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 게다가 임기말과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맞물리면서 기업들도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투자를 미루고 버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 다른 경제주체인 가계는 빚에 짓눌려 이자 내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경제민주화’든, ‘온돌 성장론’이든, ‘일자리 대통령’이든 모두 공허할 수밖에 없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지 않는데 함께 나눌 온기가 어디 있겠으며, 파이가 커지지 않는데 어떻게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겠는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방법은 분명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부채 의존적인 가계와 기업구조를 건전화하고 금융·의료·관광·교육 등 서비스분야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고통과 갈등이 뒤따르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래야만 생산가능인구 급락에 따른 성장 둔화와 자산가격 하락, 정부부채 상승 등 앞으로 닥칠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다. 국가신용등급 상승이라는 외부 칭찬에 도취돼 안주하기엔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이 너무 심각하다. 정부는 물론 대선주자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사설] 유동성 랠리에 취하지 말고 외환관리 힘써야

    수출 부진과 내수 위축으로 움츠려 있던 우리 경제에 잇따라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주말 한국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이 불과 19일 만에 한 국가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올린 기록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글로벌 경제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Q3) 조치를 일제히 반겼다. 국가부도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 일본보다 낮아졌다. 우리나라도 현재 3.0%인 기준금리를 연내 0.25% 포인트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일련의 경제 현상들은 글로벌 자금의 국내 유입을 촉진시켜 유동성 랠리의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양적완화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고 경제심리를 회복시켜 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작용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양적완화로 연말까지 매달 850억 달러(약 96조원)의 돈이 시중에 풀릴 전망이다. 매달 400억 달러(44조원) 규모의 주택저당증권 매입, 초저금리 기조의 6개월 연장, 단기채권을 매도하고 장기채권을 매수해 장기채권 금리를 인하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의 지속 등 ‘3종 세트’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다. 양적완화가 주택시장 부양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물경기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할 경우 부작용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위태위태한 원자재 시장을 자극해 인플레이션만 초래할 소지를 안고 있다. 양적완화가 연말 미국 대선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고,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하면 미국의 ‘재정절벽’은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신용등급 상향과 유동성 랠리 효과에 빠지지 말고 부작용에 대한 대비를 미리미리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유출·입 폭이 큰 우리로서는 글로벌 자본 유입의 부작용은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미국에서 풀린 돈이 한국으로 몰릴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의 대책도 세우고, 신용등급 상향의 온기가 서민들에게도 돌아가도록 배려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 9·10 양도세 감면대책 이후… 지방 아파트 분양시장 보니

    9·10 양도세 감면대책 이후… 지방 아파트 분양시장 보니

    몇 년간 지방의 주택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 가격은 하락세가 지속된 반면 지방의 주택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대구의 주택가격은 지난달까지 4.1%가 상승했다. 광주도 3.3% 올랐고 부산과 춘천도 1.3%와 1.6%씩 올랐다. 이 기간 서울의 주택가격 변동률은 -1.6%였다. 그러나 요즘은 심상찮다. 지난달 주택가격 조사에서 부산과 광주가 0.1%씩 떨어지면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산과 광주는 3년 넘게 주택가격이 상승한 지역이다. 지방의 부동산 경기는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10일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안을 내놓으면서 계약률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때문에 최근 분양이 진행된 대구와 경남 등의 분양단지 계약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취득·양도세 감면 방안이 발표된 이후 계약을 받은 주요 아파트의 초기 계약률은 대체로 60%대 이상을 기록했다. 두 곳에서 한꺼번에 2000가구가 넘게 쏟아진 대구 달서구 월배지구에서는 ‘월배 아이파크’와 ‘e편한세상 월배’가 나란히 10~12일 당첨자 계약을 진행한 결과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월배 아이파크를 공급한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기간 내에 60~70%대 계약율을 보였다.”면서 “중대형도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림산업도 50%대의 초기 계약률을 기록했다. 월배 아이파크보다 하루 늦게 당첨자 발표를 하는 바람에 두 아파트에 중복 당첨된 150여명의 계약이 금지되는 악재 속에서도 이 정도 계약률을 기록한 것은 상당히 선방했다는게 회사 측 평가다. 부동산 관계자는 “대구의 경우 큰 아파트 거주가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 수도권처럼 중소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양도세 혜택 때문에 계약 포기를 고려하던 당첨자도 일부 있었지만 실제로 포기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양도세 감면 대책의 부작용이 우려되던 동탄2신도시 합동분양도 60% 정도의 초기 계약률을 보였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대책의 수혜를 입지는 못했지만 청약 경쟁률이 높았던 만큼 계약도 무난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12일까지 계약을 접수한 경남 ‘창원 상남 꿈에그린’ 아파트도 60%대 이상의 계약률을 보였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저층은 계약률이 낮았지만 다른 층들은 성적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꺼져가는 지방 부동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영호 닥터아파트 소장은 “지방 분양실적이 좋았던 것은 주변보다 분양가가 낮았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주변보다 가격을 높여 분양하는 곳이 적지 않다.”면서 “올 상반기까지 지방 시장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온기가 차츰 내려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사설] 수도 서울의 그늘에 온기를 불어넣으려면

    서울시가 어제 마을공동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2017년까지 마을공동체 약 1000개를 조성하고 마을활동가 3000여명을 육성하는 것이 골자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주민들끼리 만남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친해지는 것으로 박원순 시장의 핵심공약이다.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 서울은 그렇지 않아도 가구구성비에서 1인가구의 비율이 최대치에 이르는 등 단절과 소외가 깊어지고 있다.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해 시민들 간 소통과 나눔의 씨앗이 발아되기를 기원한다. 마을공동체 사업은 주민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 교육과 양육이다. 자녀교육을 담당하는 부모커뮤니티는 올해 130개(7억원)에서 2017년 1010개(61억원)로 늘어나 수혜자는 9100명에서 7만 1900명으로 확대된다.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육아를 책임지는 돌봄공동체도 올해 10개소에서 2017년까지 70개소로 늘어나 56억원이 인프라 구축 및 운영비로 지원된다. 또 공공시설의 718개 유휴공간을 주민들에게 북카페, 마을예술창작소, 청소년 휴카페 등 문화예술공간으로 제공하고 리모델링비 및 운영비로 2000만~5000만원을 보조해 준다. 200만~5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작은도서관 사업도 내년 30곳에서 2017년 150곳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사업은 은평구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올해 190명 등 마을활동가도 양성한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성공하려면 주민의 참여가 절대적이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였던 만큼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동인과 적극적인 유인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종 사업도 주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지 지원을 명분으로 서울시가 간섭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 대신 사후점검은 철저히 해 예산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2012 대한민국 中企현주소] 수출 中企에만 ‘떡’ 주는 정부

    [2012 대한민국 中企현주소] 수출 中企에만 ‘떡’ 주는 정부

    정부와 정치권이 연일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3~4차 협력업체와 종업원 20인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에는 ‘온기’가 전달되지 않고 있다. 22일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중소기업 수출금융 15조원 지원 등 한시적인 수출 중소기업 대책을 내놨다. 또 시중은행들도 중소기업이 이자를 최대 2% 할인해 주는 등 중소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또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제 민주화를 앞세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벌개혁 등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장 중소기업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중기 자금 지원 대책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수출 중소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역 1조 달러 달성에 빨간불이 켜지자 수출 중소기업의 자금지원과 보험 확대 등으로 수출 늘리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반 영세 중소기업들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경기 파주시의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그렇게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아도 눈 한 번 깜박하지 않는다.”면서 “하루빨리 내수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시중은행의 이자감면도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시중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월평균 6%대이다. 하지만 신용이 낮은 영세중소기업은 이자가 15~18%로 치솟기도 한다. 보통 은행 저축이자가 3~4%대인 것을 고려한다면 은행은 앉아서 10% 이상의 이익을 취하는 셈이다. 여기에 1~2%의 이자를 낮춰 준다고 얼마나 혜택이 있느냐는 것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금융정책과 함께 해외시장 판로 개척과 연구개발 지원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 자체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위기 때마다 중소기업에 돈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최근 온라인을 통해 해외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은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우수 인재가 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한국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약점은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때문에 저효율과 저임금 구조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게 임금 보전 등의 정부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도 희망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중소기업이 3분의2 이상 차지한 업종에는 대기업의 진출을 규제하는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무분별하게 진출하는 것을 막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대기업 진입 시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를 형사 처벌하고 사업을 철수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게 하겠다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이 대선 주도권을 잡으려고 정책을 내놓는 것 같아 실제 현실로 반영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배준호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불황인 지금 정치권은 당장 위기에 닥친 중기에 저금리 유도를 통한 실질적인 금융 혜택을 정부가 줄 수 있도록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내놓는 게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한준규·김동현기자 hihi@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8)소록도 중앙공원 솔송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8)소록도 중앙공원 솔송나무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준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아무래도 멀리 떠났던 소년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뒤가 아닐까 싶다. 힘없이 나무에게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자신이 더 내어줄 게 없어 안타깝다면서, 그루터기만 남은 자신의 몸 위에 편히 앉아 쉬라고 한다. 이제 늙은 노인이 된 소년은 그루터기에 앉았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무가 사람에게 주는 것의 그 끝이 어디일까. 나무가 감동을 주는 건 물질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나무로부터 정신적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참으로 나무를 가까이 하게 되는 이유이지 싶다.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만 무성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닌 데다, 보시다시피 예쁘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말들을 만들어낸 모양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확인된 사실은 없어요.” 한센병 환자이며, 시와 수필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러내며 살아가는 강창석(60) 시인은 소록도 중앙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인 솔송나무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이 대부분 헛소문이라고 단언했다. 나무의 값이 2억원이나 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5억원을 웃돈다고도 했다. 그러나 강 시인에 따르면 나무를 조경 전문가들에게 감정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대개는 말 좋아하는 관광 가이드들이 나무의 아름다움을 놓고 임기응변으로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나무의 값어치뿐 아니다. 이 나무를 어떤 권세가 혹은 부유한 가문의 누군가가 값을 지불하고 캐 가려 했지만, 소록도에서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들이 몸으로 막아내 가져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졌다. 한데 이 역시 근거 없는 이야기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이 나무 한 그루를 가져가려고 마음먹었다면 그게 뭐 그리 힘들었겠어요. 우리 환자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걸 막겠어요. 할 수 없이 보냈겠지요.” 자연 속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나무의 자연미를 탐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정원수를 가꾸는 호사가들이라면 탐을 낼 수 있을 만큼 소록도 중앙공원의 솔송나무는 조경수로 매우 잘생긴 나무다. 한눈에도 오랫동안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을 타고 자란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울릉도에서만 사는 토종 나무 솔송나무는 강 시인의 이야기대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일본이나 북아메리카에서는 대형 목조 건축의 주요 재료로 쓰기 위해 널리 키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다. 그나마 군락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고, 한두 그루씩 띄엄띄엄 자랄 뿐이다. 울릉도 태하령 부근의 솔송나무 군락지도 천연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긴 했으나 섬잣나무, 너도밤나무의 무리 안에서 몇 그루가 발견되는 정도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솔송나무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늘푸른 바늘잎나무인데, 잘 자라면 30m 높이까지 자라는 큰 키의 나무다. 잎이 소나무에 비해 짧고 납작하며, 솔방울은 소나무에 비해 작다는 특징을 가진 우리 토종 나무다. 소록도 중앙공원 가장자리에서 자라난 솔송나무는 키가 8m를 조금 넘고, 줄기 둘레는 1.2m밖에 안 된다. 30m까지 자라는 솔송나무의 본성을 생각하면 아직 한참 더 자라야 할 나무다. 한센병 치료 전문 병원인 자혜의원이 설립된 1916년 즈음에 심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나이도 고작해야 100살 미만인 어린나무다. 소록도 솔송나무의 생김새는 저절로 자라는 솔송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자연 상태에서 솔송나무는 나뭇가지가 수평으로 펼쳐지며 전체적으로 원뿔형으로 자란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나무나 구상나무에 가까운 수형이다. 그러나 소록도 솔송나무는 반원형의 우산을 덮어놓은 듯 단아하다. 나뭇가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느다란 바늘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듬어낸 듯한 흔적이 엿보인다. 숙련된 조경사의 빼어난 솜씨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를 목숨을 걸고 키워낸 치열한 수고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모습이다. 돌아보면 솔송나무뿐 아니라, 중앙공원의 모든 나무들에 소록도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이 배어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위로와 평안 아낌없이 주는 나무 “소록도 주민들의 말로 다 못할 고난을 누구도 달래주지 않았어요. 홀로 삭이며 살아야 했죠. 중앙공원의 나무들은 주민들에게 큰 위안이었지요. 나무를 보듬어 안으며 끝내 지워지지 않는 천형의 고통을 씹어 삼켰다고 해야겠지요.” 중앙공원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국립 소록도 병원에서 관리하게 돼 있지만 그동안 조경 관리라든가, 나무 관리 담당자가 배정된 적이 없었다.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는 소록도 주민들의 눈에 나무가 들어왔기에 다가섰고, 나무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나누어 준 것이다. “중앙공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는 한센병 환자들의 썩어 문드러진 입술을 타고 저절로 흘러내린 침으로 키워낸 겁니다. 돈 몇 푼으로 값을 매길 수 없지요.” 옅은 미소를 띤 채 고난의 세월을 이야기하는 강 시인의 몇 마디 남지 않은 뭉툭한 손은 여느 한센병 환자의 그것처럼 서늘하리만큼 차가웠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생명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평안과 위로를 아낌없이 건네주는 나무와 함께 한 긴 세월이 있었음이리라. 글 사진 소록도(고흥)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가는 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336-7. 목포~광양 간 고속국도의 벌교나들목으로 나가 1.5㎞쯤 가면 나오는 벌교교차로에서 고흥 방면으로 난 국도 15호선으로 우회전한다. 32㎞쯤 남쪽으로 가면 고흥고등학교 앞의 호형교차로에 닿는다. 직진하여 국도 27호선을 타고 서남쪽으로 18㎞쯤 더 가면 국도 77호선과 만나는 차경사거리가 나온다. 소록도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 남짓 가면 소록대교가 나온다. 대교를 건너서 곧바로 나오는 안내소에서 안내를 받으면 중앙공원에 갈 수 있다.
  •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프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길은 할리우드에서 꽤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다. 돈벌이에는 관심 없던 그는 시나리오를 접고 통속소설도 아닌 순수문학으로 전업을 결심한다. 때마침 ‘된장녀’인 약혼녀 이네즈와 미래의 장인·장모와 함께 파리여행을 간다. 쇼핑과 관광에만 몰두하는 그들과 달리 길은 위대한 예술가의 도시 파리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뿐. 어느 날, 자정을 알리는 종이 열두 번 울리자 거리를 홀로 산책하던 길 앞에 클래식한 푸조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대 파리. 평생 동경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F 스콧 피츠제럴드, T S 엘리엇, 루이스 부뉴엘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을 만나 친구가 된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피카소를 동시에 애타게 했던 여인 아드리아나와 묘한 감정에 빠진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뤘다. 그렇다고 공상과학(SF) 영화는 아니다. 지적이고 재치 있으며 로맨틱하고 귀여운 판타지다. 시니컬한 풍자와 조소를 즐기던 뉴욕 깍쟁이 앨런의 영화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정점에 서 있는 듯하다. 앨런이 헌사를 바친 파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파리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는 극 중 길의 대사가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여든 살을 눈앞에 둔 노감독(77세)의 한 수 가르침도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약혼녀와 그 가족들에게 질린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하지만 1920년대 파리 사교계에서 ‘만인의 여인’이던 아드리아나는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 등이 활약했던 1880~1890년대 파리야말로 진정한 ‘벨에포크’(황금시대)라며 추앙한다. 이 대목에서 길은 깨달음을 얻는다. 과거로 회귀하고픈 욕망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과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했도 그때의 사람들은 ‘대과거’를 동경한다는 것을, 결국에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다. 지난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을 배우들이 튀지 않는 연기로 품격을 더했다. 길 역의 오언 윌슨과 아드리아나 역의 마리옹 코티아르가 최적의 캐스팅인 것은 물론이다.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살바도르 달리)와 케시 베이츠(거투루드 스타인)를 비롯해 로맨틱 영화의 단골 여주인공 레이철 맥애덤스,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카를라 브루니(박물관 가이드) 등이 조연에 머문 건 우디 앨런의 영화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터. 해외에서는 지난해 5월 개봉했다. 불과 1700만 달러(약 19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미드나잇 인 파리’의 흥행수익은 1억 5111만 달러(약 1737억원). 앨런 감독의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인 셈. 평점을 취합하는 로튼토마토닷컴은 이 영화의 신선도를 93%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5일 개봉된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쓸쓸한 예감… 그럼에도 온기를 품다

    쓸쓸한 예감… 그럼에도 온기를 품다

    쿠바 출신 난민이다. 동성애자다. 에이즈 환자였다. 남자 애인이 죽고 5년 뒤, 그 역시 에이즈 합병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 서른아홉의 나이로 숨졌다. 그럼에도 숱한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불린다.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1957~1996). 일부러 그랬을 턱은 없지만, 그래서 미안하지만, 불멸의 신화로 되살아나기엔 좋은 조건을 갖췄다.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였으니까. 이제 작품만 나오면 된다. 작품을 통해 화냈을까, 싸웠을까, 항의했을까. 작가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으로 대답했다. 생존작가들이 나서는 베네치아비엔날레에 2007년 미국관 작가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안소연 부관장은 “소수자의 정치적 작품이라 해서 변방을 떠돌 것이 아니라 중심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로 치자면 민중미술 대신 미니멀리즘을 표현기법으로 정한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애인과 자신에게 예정된 죽음을 잔잔하게 응시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9월 28일까지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더블’(Double)이란 제목으로 열린다. 뉴욕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빌린 44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아시아지역 첫 회고전이다. 플라토뿐 아니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신촌역, 남이섬 등 곳곳에 사탕, 종이, 전구 등을 응용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그의 작품에는 일관되게 사라지고야 말 것이라는 쓸쓸한 예감, 그럼에도 따뜻하게 온기를 나누고 싶다는 작은 열망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분신과도 같은 애인의 죽음과 자신의 예정된 죽음이라는 것이 더블의 의미다. 가령 흑백사진이 즐비한 가운데 유일하게 화려한 꽃 컬러사진이 있다. ‘무제 - 앨리스 토클라스와 거트루트 스타인의 묘지, 파리’다. 거트루트는 헤밍웨이의 스승이자 미술후원자로 피카소가 그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던 여류작가. 그런데 레즈비언이었다. 사랑만은 영원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이 들어 있다. ‘무제 - 완벽한 연인들’ 역시 마찬가지. 흔히 볼 수 있는 아날로그 벽시계를 두개 나란히 붙여뒀는데 아무리 시간을 딱 맞춰놔도 기계적 특성 때문에 시간은 다소 엇갈리게 마련이거니와, 언젠가는 멈추기 마련이다. 알록달록한 사탕을 한가득 깔아놓고 관람객들이 집어갈 수 있도록 해둔 설치작품도 마찬가지다. 남이섬 등 야외 현장에 설치되는 침대 사진도 그렇다. 새하얀 시트 위에 베개만 덩그러니 놓인 사진인데, 불과 몇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다정하게 누워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장면이다. 아니, 지금도 누군가 누워있는데 사람만 말끔히 지워버렸다 해도 상관없는 장면이다. 작가는 그 사진 속에서 죽어버린 애인과 곧 사라질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어둔 듯 보인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무제 - 고고댄싱 플랫폼’이다. 전시공간 사방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운 자연사박물관 사진이 나열되어 있다. 들여다보면 애국가, 작가, 탐험가 같은 단어가 새겨져 있는 단상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백열등이 둘러쳐진 무대가 있다. 반짝이 팬티만 입은 무용수가 하루 가운데 딱 5분 그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춘다. 주류 백인 남성 문화에 대한 비주류 비백인 동성애 작가의 묘한 비웃음이다. 3000원. (02)2014-655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진이 흐려졌다… 느낌이 살아났다

    사진이 흐려졌다… 느낌이 살아났다

    척 봤을 땐 이질감, 그리고 거기서 오는 거부감이 들었다 해야겠다. 너무 깔끔하고 세련되고 단정해서다. 노정하(46) 작가는 핀홀 기법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핀홀, 그러니까 작은 구멍 안에다 아날로그 필름을 깔아두고 빛을 수동으로 조절해가며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의 원형, 카메라 옵스큐라의 전통을 되살렸다. 그래서 찍혀나온 사진을 보면 흐뭇한 풍경화의 느낌이다. 바늘구멍 부분은 거무튀튀하니 가려져있고 전반적으로 흐릿하지만, 그 속에서 따뜻한 빛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회화적 효과를 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카메라의 본질만 한번 남겨보고 싶었어요. 기계적 메커니즘이 자꾸 발달하다 보니 사진가들이 모였다 하면 전부 장비 얘기만 해요. 거꾸로 사진기, 렌즈 같은 고가의 장비를 다 버리고 작업한다면, 자연스러운 빛의 충돌에 더 집중한다면 어떨까 싶었던 거지요.” 핀홀 연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카메라의 원형 ‘핀홀기법’ 사용 최근작은 완전히 다르다.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디지털 작업이 등장했다. 덕분에 사진 속 형상들은 모두 명료하니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따뜻한 느낌보다는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핀홀 연작은 다가서게 만드는데 최근작은 뒤로 물러나게 만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가의 표현 방식 때문이다. ‘여름 휴가’ 연작은 사진을 다 조각조각 잇대어 놨다. 잇대어 놓은 것을 교묘하게 위장했다거나 가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대놓고 이거 다 잇대어 붙여놨소, 해놨다. 지극히 조작적인데, 잇대는 방식에서 다름 아닌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당신이 여름 해변에 들어선다고 해 보자. 시선이 어디로 갈까. 저 멀리 모래밭 한번, 옆에 누운 여자 한번, 파라솔 기둥 한번, 급하게 뛰어가는 여자 아이 뒷모습 한번…. 뭐 이런 식으로 쳐다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잇대어 뒀기 때문에 작품을 들여다보면 작가의 시선이 어떻게 움직였을까 느낌이 온다. 그래서 ‘모션 포토’(Motion Photo) 연작은 사진 자체로는 더 흐릿한데 오히려 더 생생하다. 모션이란 단어에서 봤듯, 들여다보고 있으면 천천히 사진이 변한다. 모션 픽처는 영화고, 포토는 사진이니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다는 얘기다. 이름만 듣고는 영화처럼 찍은 뒤 프레임을 뺀 게 아니겠느냐 싶었는데 “사진 수백장을 찍은 뒤 레이어를 계속 갈아끼우는 방식”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저 멀리 하늘,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 얼굴, 그때 옆을 지나던 자동차 등의 모습들이 스쳐간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작가가 거닐었던 그 거리의 냄새가 전해져 온다. 똑 떨어지는 깔끔한 디지털 사진을 이용해 작가의 시선을 냉철하게 따라가는 ‘여름 휴가’ 연작보다 오히려 작가의 감수성이 더 잘 전달된다. ●최근 작업선 디지털 카메라도 활용 사진은 현재를 영원히 남기는데 도전하는 매체다. 오늘날 수많은 친구, 연인, 부모들이 디카 하나 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출몰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사진은 그 영원이라는 것이 결국 과거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매체다. 사진이 생생하면 생생할수록, 그때 그랬지라는 감정이 더 짙어지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작가의 작품에 멜랑콜리, 바니타스처럼 낭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작가의 작품은 그걸 묘하게 넘어서는 구석이 있다. 생생하게 사실적이어서 영원히 남겨주려는 욕망 대신, 흐릿한 시선으로 그곳의 느낌을 슬며시 전달해줘서다. 그러니까 핀홀 기법으로 찍은 사진들처럼, 카메라를 쓰되 작가의 시선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전시는 7월 29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1관. 미술관이 선정하는 ‘내일의 작가’ 수상전이기 때문에 ‘자화상’ 시리즈, ‘공주’ 연작 등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다. 5000원.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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