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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문학단체 「기사」의 무대 송강(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7)

    ◎항청투쟁 불지른 저항시인의 한맺힌 절규…/소곤산 자락끝 하윤이부자 무덤 비석 외로이/“항청복국” 부르짖던 옥중시 4백편 그날을 증언 들 넓고 물 많은 땅에 배 따뜻하면 무슨 근심이겠냐고 하지만 꼭 그런 법만은 아니다.명말때 문학의 실용성과 현실성,그리고 반만청의 혁명에 참여,장렬하게 희생당했던 「복사」나 「기사」 등의 문학단체들은 바로 상해를 중심한 남북근교,곧 태창·곤산·송강 등지의 시인이었고,뒷날 반만청과 반봉건을 주창했던 문학의 진보단체 「남사」가 또한 소주와 오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그곳들은 일망무진의 평원이라서 풍요로운 곡창이요,바다가 가까워서 근대화의 전진기지였다. 그중에도 「기사」의 성원들인 진자룡(1608∼1647),하윤이(1596∼1645),하완순(1631∼1647) 등은 모두 송강 사람이요,따라서 기사의 무대는 송강인 것이다. 상해시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벗어나는 곳,송강은 옛날 화정·운간·곡수·송릉·입택 등으로 불리웠는데 모두 시정이 물씬하다.상해의 근교라서 근대의 문물을 타고 중국 최초의 천문대와 중국 최대의 성당으로 사산 천주당이 있는가하면 서진때의 유명한 평론가 육기와 명나라때 서예가 동기창이 모두 여기 사람인데다 중화민국국부였던 손문이 그의 혁명단체 「동맹회」의 전국총회를 소집했던 곳도 바로 송강시내에 있는 명청대의 원림 취백지의 설해당이었다. 송강의 문단 맥락이나 산수 경개도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1934년 편찬한 「중국문학가사전」에 수록된 송강 출신의 문인이 90명이요,「중국미술가인명사전」에 수록된 미술가가 586명이라는 통계만으로도 문학예술의 맥을 알겠거니와 송강에는 봉황산,육보산,사산·소곤산 등 9봉이 있고,원림이 상기한 취백지말고 강남의 으뜸이라는 방탑원이 있다. 그럼에도 숭정초(1628∼) 이 고장에서 발족된 「기사),그 주요시인은 한결같이 장렬하게 순국했다.태창·곤산지역에서 먼저 발족된 「복사」처럼 명나라 초엽 소위 「전후7자」의 복고운동을 계승한 동인이다.그를 「기사」로 일컬음은 바로 「끊겨진 학문을 재기하는 기틀(기)」이란 뜻이었다.그러나 그들은 진보적이었다.정치의 진화를 강조하면서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다.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데 문학의 족쇄를 풀었고 만청에 항거하여 순국의 시를 쓰다가 그 저항은 강희연간까지 불길을 지폈다. 「기사」의 맏형격인 하윤이는 한때 복건의 장락지현을 살았건만 기사를 창립,청병이 침노하자 울분끝에 투신 자살했고,「복사」의 후기수령인 진자룡은 「기사」를 창설 주도하고 그의 웅혼하면서도 창량한 시를 무기로 항청 투쟁에 참여했다.그는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강남 각지를 전전하면서 의병 투쟁을 벌이다 소주에서 피체,남경으로 압송 도중,하윤이처럼 강물에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하윤이의 아들 하완순은 나이 겨우 13살로 진자룡의 의병을 따르다가 청군에게 피체,열여섯 꽃같은 나이로 처형당했는데 그는 법정에서 최후까지 오랑캐들의 만행을 규탄했다. 더욱 놀랄 일은 하완순이 어린 나이임에도 영웅열사를 가송하거나 항청복국을 절규하는 옥중시를 4백편이나 남겼는데 그가 청군에게 압송될 때 그의 향리를 마지막 작별하면서 썼던 「운간을 이별하며」는 천고의 절창이다.「삼연기여객,금일우남관. 무한산하누,수언천지관. 이지천노근,욕별고향난. 의백귀래일,영기공제간.」 「3년을 타관 떠돌다가/이제는 또 한번 옥 살이. 저 산하가 모두 눈물인걸/누가 이 천지를 넓다하랴! 이제 가면 황천길이지만/고향 떠나기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 젊음,넋으로 돌아오는 날/하늘가에 가물거릴 혼령의 깃발이여!」 참으로 장렬했다.한낱 열여섯살 소년 시인의 목숨이 이토록 아름답게 메아리 칠 줄이야. 그들 부자는 나란히 묻혔다.송강서 서북쪽 13㎞쯤 소곤산 낮은 산자락 저 끄트머리 양지쪽 탕만촌뒤에 쓸쓸히 묻혔다.비록 그 동남쪽에 수수라는 작은 시내가 굽이 돌았지만 그들의 넋을 위로할만한 여울이 들리거나 솔바람 소리조차 스쳐가지 않았다.쓸쓸한건 하윤이 부자의 무덤만 아니다.서진때의 대시인이요,대평론가였던 육기와 그 아우 육운이 여기 소곤산 양지쪽에 살았다는데 아무런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진자룡의 무덤은 훨씬 화려했다.역시 송강에서 서북쪽으로 10여㎞쯤 진산 못미쳐 왼쪽으로 광부림이라는 마을,그 동쪽 평지에 동향으로 앉았는데 그는 청나라 건융때 충유라는 시호를 얻은데다 묘비에 묘전,묘정등 세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 「기사」의 장렬했던 시인들,그 무덤들을 순례하고 다시 송강으로 돌아왔다.그 유명한 방탑원과 취백지를 한바퀴 돌아야만 했다.어쩌면 「기사」들의 족적이 거기에 남았을지도 몰라서였다. 송강시 중산동로에 자리한 방탑원은 중국 강남에서 손꼽는 원림이다.그 안에는 북송,1068년에서 1094년 사이에 세운 높이 42.5m,누각형 9층의 전목을 함께 쓴 방탑을 비롯,명나라 홍무 3년(1370),방탑의 북쪽에 세운 도교의 부조로 새긴 조벽,그리고 방탑의 3층에 그려진 송대의 불상화와 송교 등이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날씬한 몸매에 펄럭이는 치마 모양의 방탑,더구나 서북쪽으로 약간 기우뚱하여 언젠가 피사의 탑을 닮을지 모를 방탑과 용의 대가리에 사자의 꼬리,소의 몸통에 사슴의 발톱에 기린의 비늘을 지닌 탐이라는 괴수가 세상의 보배를 지니고도 모자라 하늘의 해를 삼키려 쫓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마는 그 부조가 인상적이다.그런가하면 단 한장 널찍한 화강석으로 덮개를 삼은 송교와 찰랑하게 물이 찬 연당을 살짝 덮도록 가설된 널찍한 부석교는 고전미와 현대미를 융합했다. 청대 초엽,당시의 부호 고대신이란 사람이 백낙천을 흠모하는 뜻으로 시공했다는 또 하나의 원림인 「취백지」도 운취가 그윽했는데 이러한 경개가 시인을 기르고 「기사」를 형성했는지도 몰랐다.
  • 시집에도 없는 1945∼55년 작품/잊혀진 미당의 시 15편

    ◎국문학자 최현식씨,「밤」·「눈」·「통곡」 등 논문서 소개 「민족 방언의 요술사」「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한국시의 최고봉 미당 서정주씨(82)의 시가운데 시집을 통해 접할수 없었던 시들이 새롭게 발굴됐다.국문학자 최현식씨(연대 박사과정)가 2월 창간될 계간 「한국문학평론」에 기고한 논문 「전통의 변용과 현실의 굴절」을 통해 지난 1945∼55년 발표된 미당의 시가운데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채 잊혀진 15편을 소개한 것. 이 시들은 「개벽」「현대문학」 등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수록됐으나 스크랩 등 자료로 남지 않아 그의 시집이나 전집 등에 실리지 못했던 것. 새로 발굴된 작품은 「밤」「눈」「통곡」「피」「저녁노을처럼」「선덕여왕찬」「춘향옥중가(3)」「백옥누부」「곰」「그날」「깐듸송가」「팔월십오일에」「영도일지(대)」「일선행차중」「산중문답」 등.이 작품들은 41년 발표된 첫시집 「화사집」의 원죄의식에서 60년대 「신라초」「동천」 등의 동양적 윤회와 영원성으로 이행한 미당 시세계를 이해하는데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있을것을…… 서 있을것을……//구부러져 내리는 나무 그늘에/맨발 벗고 서 있을것을//푸른 지식의 잎사귀들이/하늘에서 처럼 소근거리는/나무 그늘에 서 있을것을/오르 내리는 맥박을 세며/높았다 낮아지는 숨결을 세며/물이랑 위에 떠서 있듯이/호수운 사람으로 서 있을것을 //금줄의 근네위에 서 있을것을//누었을 것을…… 누었을것을……/어둡고 무거운 밤하늘 아래/누른 소같이 누어 있을것을/입에다 너을 여물도 풀도 없이/아귀 삭이고 누었을것을/이리도 쉽게 헤어져야할/우리들의 사랑이었더라면/만나서 반가워 소리쳐 우던 날의/통곡을 통곡을 그치지말것을!〉(통곡전문.46년 12월 「해동공론」 수록)
  • 「판소리 3대가」 창극 무대/춘향·흥보·심청가 주요장면

    ◎14∼21일 국립극장서 대향연 감칠맛 나는 우리 판소리의 고갱이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국립창극단(단장 전황)이 96송년공연으로 펼치는 「창극대향연」(14∼21일,국립극장 소극장).「춘향가」,「흥보가」,「심청가」등 판소리 3대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골라 가무극인 창극으로 꾸며 선보이는 무대이다. 올해 국립창극단이 실시한 판소리 다섯마당 완창무대의 앙코르공연. 「춘향가」에서는 「갈가부다∼」로 시작되는,춘향가의 백미 「옥중가」대목과 이도령이 춘향모 월매와 만나는 대목 등 극적인 장면들이 소개된다.또 「흥보가」에서는 놀보가 마당쇠에게 글 가르치는 우스꽝스런 대목과 흥보 박타는 대목,놀보 제비다리 부러뜨리는 대목 등 놀보와 흥보의 극명한 성격차를 엿볼수 있는 장면들이 선보인다.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와 뺑덕어멈이 만나는 대목,심봉사가 맹인잔치에서 심청과 상봉하는 대목 등 희극·비극의 엇갈린 장면들이 소개된다. 국립창극단은 그동안 여러차례 공연됐던 대본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각색,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무대를 꾸몄다. 연출은 지난 94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흥보가」의 연출을 맡았던 심희만씨,작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한상일씨가 각각 맡았다.창지도는 국립창극단 지도위원인 김영자명창,무용안무는 국립무용단 수석단원인 윤상진씨. 심청역에 안숙선,심봉사 역에 최영길,뺑덕어멈 역에 김경숙,황봉사역에 윤충일,춘향역에 나태옥,이몽룡역에 왕기석,월매역에 김영자 등 중견 소리꾼들이 출연한다.이밖에 강정자 정순임 김학용 등 젊은 소리꾼들의 신선함도 곁들인다.
  • 오대산 상원사 범종 비천상(한국인의 얼굴:86)

    ◎천상에서 주악에 심취/신라여인의 아름다운 자태 우리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종은 뛰어난 공예품의 하나다.주종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거니와 반드시 미적 감각이 뒤따랐다.종은 대체로 동종을 의미했다.그런데 동종의 큰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범종이 차지했다.예불용 법구사물중에 으뜸인 범종은 그 소리로 절집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렸다. 범종의 생명력은 소리에 있다.떨림으로 우는 울음과 울고 나서도 귓가에 맴도는 듯한 소리가 매력이다.그러니까 서로 다른 두 파장의 진동이 겹칠때 일어나는 소리가 강약을 거듭하는 맥놀이를 따라잡을 종은 세계 어느 구석에도 없는 것이다.오죽하면 지옥중생도 구제할 수 있는 소리라 했겠는가.인간들 일백여덟가지 번뇌마저도 소멸시킨다고 했다.날 저문 산사에서 저녁 종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면 다 안다. 그 범종의 소리는 자태가 빼어난 몸통에서 울려나왔다.과연 공예품다운 범종의 조형미,거기에는 환상의 세계가 있다.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8세기 초반 통일신라시대 범종(국보 36호)이 그러했다.범종 몸통에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늘을 나는 천인을 돋을새김해 놓았다.이를 가리켜 주악비천상이라 했다.대단히 경쾌하면서도 아름답다. 천인은 머리에 보관을 써서 보살인 듯싶다.두 천인은 입으로 부는 악기 생과 손가락으로 줄을 타는 악기 공후를 연주하는 중이다.하늘을 날면서 주악에 심취한 나머지 슬며시 눈을 감았다.무아의 경지에 들지 않고는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없다.동그란 얼굴에 그리 높지 않은 코가 작은 입과 오목조목 이웃했다.눈매와 눈썹이 뚜렷한데,눈두덩이 좀 소복하고 보면 동양의 미인을 그린 모양이다.신라의 여인일 것이다. 구름을 무릎으로 밟고 몸을 일으켜 세운 천인들의 자태는 육감적일 수 있다.무릎 세운 다리는 미끈하고,흘러내린 어깨 곡선이 가히 여성적이다.생을 연주하는 천인은 목에 치레걸이를 주렁주렁 매달았다.젖가슴이 드러날 법도 하나,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 고리가 살짝 감추어 주었다.엉덩이를 매듭지어 돌린 옷자락 끈이 다리 사이를 휘감고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범종에는 개원13년에 주성했다는 새김글씨가 들어있다.통일신라시대인 성덕왕 24년에 해당하는 AD 725년의 일이다.본래 경북 안동에 있었던 것을 무슨 연유에서인지,조선 예종때인 1469년 왕명에 따라 이 절로 옮겨왔다.
  • 도 무오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19세부터 독립운동… 상무장관 등 역임/작년 4월 방한… 「과거」정리·협력틀 다져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은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힌다.무오이 서기장은 79세의 고령이지만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며,레 둑 안 국가주석,보 반 키에트 총리와 함께 베트남의 정치·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무오이 서기장의 학력등 어린 시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19세이던 36년부터 항불혁명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입당한 것으로 전해진다.41년 프랑스당국에 체포돼 4년동안 옥중생활을 했으나 탈옥후 하동성 및 남딘성 당서기에 선출되는등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나갔다.무오이 서기장은 58년 상무장관을 지낸 이후 국가물가위원회위원장,부총리 겸 국가기간산업건설위원장,기간산업건설 및 공업·교통·운수담당 부총리를 역임했다.무오이 서기장은 지난 82년 당 정치국원에 선출된 뒤 87년 당서기,88년 총리를 거쳐 91년부터 서기장을 맡고 있다. 무오이 서기장은 지난해 4월 우리나라를 방문,한·베트남간의 한때 불행했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협력관계를 다지는 기틀을 마련했다.무오이 서기장은 지난 7월 베트남을 방문한 공노명외무부장관이 예방했을 당시,20분전부터 면담장소에 나와 기다리며 기자들의 사진촬영과 질문에도 응하는 등 「열린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신한국 포항북 지구당 개편대회 스케치

    ◎목소리 낮춘 대권주자들 「낮은 포복」/지역감정 타파 외치며 「TK 껴안기」 부심 15일 신한국당의 경북 포항북(위원장 이병석)과 대구 수성을(위원장 박세환)지구당 개편대회에서는 정국쟁점으로 떠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지역감정 타파를 강조하며 「TK(대구·경북)껴안기」에도 부심했다.이홍구 대표위원과 이한동·박찬종 고문 등 이른바 「대권주자」들이 연사로 나섰지만 민감한 대권발언은 일절 자제하는 「낮은 포복」의 자세를 취했다. 포항시민회관에서 열린 개편대회에서 이대표는 『OECD,즉 선진국클럽에 가입함으로써 안보와 통일을 위한 선진국의 이해와 협조,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이대표는 『역사는 뒤로 갈 수 없다.전진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며 야당의 OECD가입 반대를 비난했다.이한동 고문도 『OECD가입은 선진국 무임승차권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며 가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행사에서는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이대표는 『고비용 저효율구조가 가장 심각한 영역이 바로 정치』라면서 『지역감정을 볼모로 하는 구태의 정치야말로 시급히 청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한동 고문은 『지역감정을 이용해 정치목적을 달성하려는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그릇된 행태가 우리나라를 사분오열시켰다』며 국민통합론을 강조했다.박찬종 고문은 허화평 의원의 옥중 당선을 빗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인정에 앞서 나라와 역사를 위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대구 수성관광호텔에서 열린 대구수성을 개편대회에 연사로 나선 이만섭 고문도 『참다운 TK정서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라며 『대구·경북이 「나라 바로세우기」에 다시 한번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 건설교통위·법사위·통신위(국감중계)

    ◎“가스관은 지뢰밭” 안전 무대책 질타/“철도청 1조3천여억원 부채 대책있나”­건교위/허화평 의원 옥중서 교정행정 서면질의­법사위 ▷건설교통위◁ 17일 철도청에 대한 감사에서 의원들은 철도청의 만성적자와 낡은 철도시설의 개선대책을 추궁했다. 신한국당의 김진재·김운환·박시균 의원과 자민련 유종수 의원 등은 1조3천여억원에 이르는 철도청의 부채를 줄이는 방안으로 불요불급한 철도유휴부지를 매각하거나 위탁개발할 것을 제안했다.신한국당 최욱철의원은 『태백선의 열차집중제어장치(CTC)가 시대에 뒤떨어진 286급 컴퓨터로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손전등으로 열차운행을 지시하는 실정』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국민회의 김봉호 의원은 『전국 철도의 251개 교량과 193개 터널이 누수와 시설노후 등의 이유로 개·보수가 시급하다』며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진경호 기자〉 ▷통산위◁ 한국가스안전공사 국감에서는 최근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가스사고에 대한 원인과 대책마련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원들은 지하매설 가스관을 무방비 상태의 「지뢰밭」으로 비유하면서 당국의 「안전 무대책」을 질타했다. 신한국당 임인배·노기태 의원은 『서울에서 지난 3개월동안 하루 최고 244회 등 모두 1천건이 넘는 가스누출이 발생했다』며 『전체 사고원인의 30%에 육박하는 도시가스 배관부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라고 따졌다. 구천서(자민련)·조순승(국민회의) 의원은 『석유화학 플랜트의 노후화와 지하철공사장의 안전시설 미비로 대형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며 보수관리의 시급함을 제기했다. 최인영 사장은 이에 『도시가스의 실제배관위치를 파악,정밀한 배관도면을 재작성하겠다』며 『도시가스 상설점검반을 활용,순회점검을 보다 강화하겠다』고 밝혔다.〈오일만 기자〉 ▷법사위◁ 법무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대검찰청과 서울지검 등에서 공방을 벌였던 검찰의 중립화 문제와 함께 선거사범 사법처리의 편파성 등이 다시 쟁점이 됐다. 국민회의 조찬형 의원은 『여당이 엄청난 금품선거를 한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야당 7명을 기소에 여당 3명 기소라는 것은 노골적이고 편파적 수사』라며 검찰 중립화 방안에 대한 장관의 견해를 요구했다. 신한국당 정형근 의원은 『검찰제도의 개선이 검찰을 행정부에서 독립된 별개의 부를 신설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12·12 및 5·18사건과 관련,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수감중인 법사위 소속 허화평 의원(무소속·포항 북구)은 서면질의를 통해 교정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해 눈길. 허의원은 『사방 1.8m의 공간에 3명의 재소자가 눕거나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볼 수 있느냐』며 『겨울에는 80명이 수용된 사동의 복도에 연탄 난로 1개만 설치돼 있을 뿐』이라며 개선책을 촉구.〈박홍기 기자〉
  • 도서출판 범우사 「서지학자료집」 출간

    ◎1912년 첫선/서민의 책 「딱지본」 아시나요?/70년대초까지 사랑받았던 「육전소설」류/춘향·심청전 개작 「옥중화」·「강상련」 인기 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시골 장날에는 난전에 거적을 깔고 얼룩덜룩한 육전소설을 펴놓은 채 서민들의 관심을 끄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서울에서도 8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 종로3가 세창서관 앞 골목이나 파고다공원 근처에서 이런 소설책을 파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이 이야기책이 바로 191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의 읽을거리로 사랑받은 구활자본,곧 딱지본이다. 최근 도서출판 범우사에서 내놓은 「한국의 딱지본」(소재영 숭실대 교수 등 엮음)은 이러한 딱지본 출현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다룬 서지학 자료집으로 관심을 모은다.특히 이 책은 딱지본의 역사뿐 아니라 각종 이야기책의 출판현황,사회적 가치와 독자층의 확산,그것을 통한 대중문화의 형성과 성장과정까지 아울러 소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딱지본은 19세기 이전의 창작형태인 필사본에서 1910년 한일합방 전후까지 유통된 방각본을 거쳐 1910년대 초반에 첫선을 보였다.이 당시 출판사들은 소설을 대중화시키고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가격경쟁을 벌여 이야기책 한 권의 값이 장터 국수 한그릇값인 육전 정도였다.그래서 딱지본은 일명 「육전소설」로도 불렸다. 딱지본이란 책의 표지가 아이들 놀이에 쓰이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돼 있는 데서 유래한 말.그 크기는 사륙판으로 소설류가 대부분이었다.딱지본으로 출간된 최초의 소설은 춘향전의 개작으로 보급서관에서 1912년에 펴낸 「옥중화」다.같은 해 심청전의 개작인 「강상련」이 광동서국에서 출판되었으며 토끼전의 개작인 「불로초」가 유일서관에서 나왔다.이렇게 쏟아져 나온 딱지본 소설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졌으며 그 종류는 무려 250여종에 이른다. 이 책은 이 중에서 190여종의 작품을 골라 표지사진과 함께 실었다.딱지본의 표지는 작품내용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을 뽑아 그려놓은 것으로,그림만 보아도 이야기의 대체적인 얼개와 줄거리를 짐작케한다.또한 당시의 글자와 활자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사씨남정기」 「배비장전」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고대소설에서부터 조중환의 「장한몽」,최찬식의 「추월색」 등 신소설,「무정의 눈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등 연애소설,「농가월령가」 「한양오백년가」 등 가사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망라돼 있다.때문에 이 책은 서지학이나 인쇄장정의 발달,출판문화사 연구뿐 아니라 한국 소설문학사의 자취를 살피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김종면 기자〉
  • 장세동씨 추석날 옥중 회갑(조약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추석인 27일 회갑을 옥중에서 맞는다. 그는 현재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복역하기는 네번째다. 지난 89년 5공비리사건과 93년 이른바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으로 수형생활을 했고 12·12와 관련,지난 2월 구속된뒤 8월19일 1심 구속만기로 풀려났다가 8월2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다시 법정구속됐었다. 옥중에서 회갑을 맞는 장피고인은 의외로 담담하다.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마련하려던 소연도 극구 만류했다. 이 날은 공휴일이라 가족에게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교도소측이 제공할 추석 별식을 잔칫상으로 대신할 참이다.선친과 전남 고흥에 사는 노모를 향해 큰 절이나 올릴 계획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회갑을 이틀 앞둔 25일 부인과 측근들의 방문을 받았다.공군과 육군에서 사병으로 복무중인 두아들 걱정도 했다.쓸쓸이 맞을 「주군」(전두환 피고인)의 추석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위로하는 측근에게 『새마을복을 입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 행정공백 없게 부교육감이 대리/전북교육감 구속후 교육행정

    ◎법원 확정판결전까지는 권한 유지/“집무계속” 우기면 옥중결제 가능성 선거과정에서 금품을 뿌린 혐의로 염규윤 전북도교육감이 10일밤 검찰에 구속되면서 향후 전북도교육청의 학사·교육행정업무 처리가 궁금하다. 현직 교육감의 구속사태는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뀐 이래 처음 생긴 일인 만큼 선출직 교육감의 유고에 따른 권한위임의 선례 역시 아직까지 단 한건도 없는 실정이다. 도교육청은 염교육감이 검찰에 소환된 10일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그의 구속이 집행된다 하더라도 업무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11일부터는 윤한철 부교육감이 교육감을 대리해 도교육청의 전반적인 행정을 이끌어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통상 법원에 기소만 되면 직위해제되는 임명직 교육감과는 달리 선출직 교육감은 설사 수사기관에 의해 구속되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직위나 권한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어서 염교육감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그의 교육감 권한은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때까지는 유지된다. 특히 염교육감이 자신의 사퇴문제와 관련,아직까지 한마디 언급도 없어 교도소에서라도 집무를 하겠다고 우길 경우 당분간 「옥중결재」가 불가피하다. 또 염교육감이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유죄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확정판결 이전에 구속적 부심이나 보석,집행유예판결 등의 사유로 구속상태에서 풀려날 경우 교육감직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
  • 「옥중 딸출산」 절도 여인/김상연 사회부 기자(현장)

    ◎“아기봐서 용서…” 벌금형에 눈물 30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8호 법정.피고인이 입정하는 순간 법정이 잠시 술렁거렸다.30대 여인이 갓난 아기를 품에 안고 피고인석에 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너무 울어 눈이 부은 듯한 여인은 1심에서 절도죄로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생활을 하던중 딸을 낳은 정모씨(38·여).절도전과 8범의 상습절도범이었다. 방청객들의 눈길은 영문도 모르고 방글방글 웃는 생후 4개월된 아기와 재판장사이를 쉴새없이 오갔다.모두가 숨소리마저 죽인채 판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재판장 박성철 부장판사의 선고.『피고인이 비록 절도전과 8범인 상습절도범이지만 구치소에서 난 딸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딱한 사정을 참작,벌금형 1백만원에 석방한다』고 말하는 순간 대부분의 방청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판사는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는 것이니까 아기를 봐서라도 다시는 나쁜 짓 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여인은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마치 아버지가 딸을 야단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씨는 지난 1월 서울의 한 사우나에 갔다가 남의 옷장속에서 핸드백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임신 7개월의 몸이었다. 당시 검사는 홑몸이 아닌 정씨를 고민끝에 상습절도혐의가 아닌 단순절도혐의로 기소했다.상습절도죄가 적용되면 실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심재판부는 절도전과가 많은 점을 고려,징역 1년을 선고했다.
  • 만해기념관(외언내언)

    님은 갔습니다./아 아,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만해 한용운님의 대표작 「님의 침묵」첫 구절.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서정시이지만 그 내면에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절절한 한이 서리서리 맺혀있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분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쓴 만해는 당대의 민족시인이자 「불교유신론」을 제창했던 큰스님.까까중머리에 검정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검정고무신만 신던 그는 3·1운동 거사후 감옥에 갇혔을때 「옥중투쟁 3대원칙」을 철저히 지켰다.첫째 변호사를 대지 말것.둘째 사식을 먹지 말것.셋째 보석을 요구하지 말것. 서울 성북동에 「심우장」이란 옥호를 붙이고 살던 조그마한 그의 기와집은 북향이다.일제의 총독부쪽은 바라보기도 싫다는 고집 때문.그 집에서 한겨울에도 장작불을 지피지 않고 살았다. 어느날 지조를 꺾은 육당 최남선이 길거리에서 그를 보고 반가워하자 『육당은 벌써 죽었어』라면서 침을 탁 뱉고 돌아서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민족대표 33인중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지만 그만은 대쪽같은 기개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온 진정한 애국지사였다.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만해는 광복을 한해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1944년 5월9일,그의 나이 65세였다. 만해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한 「만해기념관」이 그가 「님의 침묵」을 집필했던 백담사에 세워진다.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백담사 일주문 오른편에 1백평규모로 세울 이 기념관은 내년 가을 완공될 에정.이곳에는 만해 한용운의 사상과 발자취를 살필수 있는 각종 유품과 관련서적들이 전시되며 문학캠프 등 다양한 문화행사장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반갑고 뜻깊은 일이다. 선각자들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받는 건 후손들의 도리일 것이다.만해의 그 도도한 기개와 투철한 애국정신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덕목이다.〈황석현 논설위원〉
  • 권씨 “진실만 말한다”… 담담히 진술/23차 공판 이모저모

    ◎허화평 피고,선배 권씨에 「증인」이라 호칭/전 피고인만 긴팔 수의입고 입장 “눈길”/피고인들,“핵심 역할한 사람이 증인석에 있다” 비아냥도 22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23차 공판에서는 검찰이 5·18사건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의 증언을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피고인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권씨는 『시국수습방안이 처음부터 집권시나리오로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답변하는 등 검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객관적으로 진술. 권씨는 전두환 피고인을 염두에 둔 듯 『인간적으로 괴롭다.과거 직속상관과의 관계는 지금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기를 바랐지만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차라리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수사에 응했다』고 해명. 권씨는 증언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면서도 『시국수습방안이 곧 「집권시나리오」라는 얘기는 언론에서 나온 말이지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없는데 왜 나를지목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주장하고 『시국수습방안을 토의한 모임 자체를 저 사람들이 왜 부인하는지 모르겠다』고 부연. 이어 『나를 배신자로 묘사하지 말라.나는 하나회 회원도 아니고 실세도 아니었기 때문에 5·17을 주도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81년 신당 창당 등 정계 개편이 끝난 뒤 정권의 핵심부에서 밀려났다』고 주장. ○…육사 16기인 허화평 피고인은 증인에 대한 피고인 직접신문에서 육사 2기 선배인 권씨에 대해 시종 「증인」이라고 호칭하며 설전. 반면 권씨는 지난 15대 총선때 포항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옥중 출마해 당선된 허피고인에 대해 「허의원」이라고 부르면서 깍듯이 예우. 유학성 피고인도 『현역의원시절 형님 동생하며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생생한데 피고인과 증인이라니 마음아프다』며 서운함을 표시. 권씨는 그러나 『누구를 불리하게 하거나 유리하게 할 생각이 없고 진실만을 말할 뿐』이라며 담담하게 진술. 권씨는 변호인단과 피고인들이 『증인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피고인석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할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자 「검찰의 판단」이라며 예봉을 회피. ○…다른 피고인은 모두 반팔의 여름 수의로 바꿔입고 있는데도 전피고인은 지난 1일 18차 공판때부터 계속 긴팔 수의를 입고 입정해 눈길. 검찰관계자는 전피고인이 건강에 약간의 이상이 있어 긴팔 수의를 입었을 뿐이라고 설명. 반면 지난 16일 구속만료일을 하루 앞두고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불구속상태로 첫 재판을 받는 유학성·황영시·이학봉 등 3명의 피고인은 양복 차림의 밝은 얼굴로 재판에 임해 대조적인 모습. ○…하오 1시쯤 상오 재판이 끝난 뒤 재판부에 이어 피고인들이 퇴정하자 5·18 유족회원인 50대 여인 6∼7명이 「○○○을 사형시켜라』며 고함. 광주에서 올라온 흰 소복 차림의 이들은 그 후 10여분동안 큰 소리로 피고인들에게 욕설을 계속.〈박상렬 기자〉
  • 김일성 찬양보다 북 개혁 촉구해야(박화진 칼럼)

    『한때 일본에서도 대학시절 「자본론」「유물론」「변증법」따위 마르크스·엥겔스 저서들을 읽고 진보적사상에 심취해보지 못한 사람은 지식인 대열에 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오늘의 사정은 매우 다르다.대학가서점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들이 사라진지 오래다.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부 한국대학생들만,러시아나 중국에서도 외면당하는 파산선고의 마르크스 사상과 이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않는다』 옛공산권 붕괴와 개혁이 한창이던 시절 어떤 서울주재 일본신문특파원이 쓴 글의 한토막이다. 북한은 마르크스·레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옛소련이 세계적화전략의 일환으로 만든 위성국의 하나다.그 종주국의 공산주의체제는 붕괴된지 오래며 아시아공산권의 대부였던 중국과 베트남,몽골까지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데도 자본주의 도입은 커녕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공산체제를 고집하고 있는 북한이다.사회주의체제가 옛소련이나 중국과는 달리 북한에만은 그들이선전해온 「지상천국」을 건설해 주었기 때문인가.그렇다면 세계는 물론 우리도 당연히 따르고 배워야할 일일지 모른다.고르바초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강조한 적이 있지만 이념과 체제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하기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북한이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지상천국아닌 지옥을 방불케 하고있지 않은가.연이어지는 탈북자,북한 여행자 증언 가운데 절반을 과장이라해도 오늘의 북한은 지옥중에서도 상지옥이란 말이 훨씬 어울린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먹을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일가족 동반자살이 잇따른다』는 탈북귀순자 정순영씨의 9일 증언에 많은 우리국민은 연민과 충격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을 이처럼 비참하게 만든 책임은 과연 누구와 어디에 있는 것인가.옛소련과 동구 그리고 아시아공산권에서 실패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체제 50년의 결과이며 그체제를 도입하고 주도한 장본인으로 지난 8일 2주기가 지난 김일성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 김일성을 찬양하며 재평가해야 한다는 성명이 북한정권아닌 한국 대학생단체에서 나왔으니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부 좌경학생집단에 지나지 않으면서 한국의 전체대학생을 대변하는양 「한국대학총학생연합」(의장=정명기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란 거창한 과장단체명을 쓰고있는 이른바 「한총련」이라는 단체의 성명이다.『김일성주석은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고 해방후 한반도에 들어와 친일파청산과 「새사회건설」을 위해 노력했다』며 이북사회를 50년간 이끈 지도자로서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개인숭배의 김씨세습왕조 건설을 위해 민족분단을 강요하고 6·25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했으며 오늘의 북한을 「공포와 굶주림의 동토공화국」으로 전락시킨 것을 「새사회건설」의 노력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니,아직은 배우는 학생들이라지만 말문이 막힌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범국민적 분노와 개탄을 샀던 김일성사망조문 파동이후 기세가 꺾였던 일부 좌경학생들의 김일성찬양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최근의 미묘한 내외정세 전개와 관련이 있는것은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식량지원등 미국의 대북 관용태도와 총선등을 통한 러시아및 동구 사회주의세력 부활 움직임등에 고무되고 그에 편승한 교활한 국민기만의 행동일지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허황된 환상과 미망에서 하루속히 깨어나야 한다.미국과 우리의 북한지원이나 관용은 한반도안전을 위협할수 있는 북한의 갑작스런 파멸을 가능한 막으며 질서있고 자발적인 민주화 개방·개혁의 연착을 돕고 유도하기위한 것이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체제 고수를 돕기위한 것이 아니며 동구나 러시아총선의 사회주의 세력부상도 부진한 개혁성과에 대한 불만과 채찍의 의사표시이지 공산독재체제의 복귀에 대한 지지증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으로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고 2천만 북한동포를 도우려 한다면 조문파동에서 보았듯이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방해하고 동결시킬 김일성 재평가·찬양 성명발표같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라 북한의 조속한 민주화 개방·개혁과 민족화합에의 동참을 촉구하고 유도하는 일에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할것임을 한총련 학생들은 조속히 깨달아야 할것이다.〈심의·논설위원〉
  • 허화평 피고의 소신과 독설

    ◎“5·6공에 충성한 검찰 단죄권한 없다”/“5·18특별법 제정 배후에 운동권 움모 숨어” 허화평피고인이 17일 공판에서도 예의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이른바 극우보수 논리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지나친 독설이 두드러졌다. 허피고인은 5·17 계엄확대 조치는 최규하 대통령이 시국수습을 위해 내린 정치적 결단이라고 주장했다.당시 재야정치인들과 일부 학생들이 최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물리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쓰러뜨린다는 과격한 투쟁전략과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특히 투쟁세력들은 기존 세력을 제거하고 「빠리꼬뮨」과 같은 민중정권을 세우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5·17조치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무한 대권경쟁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며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3김씨」를 간접 비난했다. 역설적으로 민주화세력이 분열되고 과격한 민중전술을 동원하는 바람에 5공 정권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이 12·12사건을 6공 때는 무혐의 처리하고 94년에는 불기소 처분했다가 이번에 기소한 데 대해 수긍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피고인은 『내란·반란죄로 기소된 사람들이 주축이 된 5·6공하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해 온 검찰 수뇌부들에게는 피고인들을 단죄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가 부여돼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또 민정계가 주축이 된 민자당과 그 당명만을 바꾼 신한국당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90년 2월9일의 민자당 창당선언문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한다」는 대목을 예로 들기도 했다. 5·18특별법 제정의 배후에는 운동권 세력의 음모가 숨어있다고 주장했다.요소요소에 진출한 운동권이 민주·진보세력 등으로 위장,보수우익 세력을 반민주·반통일·외세의존주의자로 매도,타격을 가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논리다. 그는 『지난번 총선때 옥중당선된 것은 지역구민이 나의 정당성을 정치적으로 승인한 것』이라며 『현역의원을 구속해 정당활동을 봉쇄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고 말했다.〈박선화 기자〉
  • 전씨 5·18 혐의벗기 안간힘/14차 공판 이모저모

    ◎“검찰은 수사를 정확히 해야” 직격탄도/“반대 신문 천천히” 재판부 이례적 주문 1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4차 공판에서는 최대 쟁점인 5·18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시작됐다.전두환피고인은 『검찰이 5·18사건의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 (나를) 정치적 속죄양으로 만들었다』고 포문을 열었다. ○…전피고인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5·18사건의 중요성을 의식한 듯 『민족의 아픈 상처』,『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의 필요성』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사건이 정치적인 당리당략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논리로 휩쓸려 왔다』고 주장. 이어 『이 법정에서 5·18사건의 진실을 규명,민족의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창조의 산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 ○…전피고인의 변호인측은 지난 해 말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될 당시부터 『가장 중요한 쟁점은 5·18사건』이라며 전피고인이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공언. 이양우 변호사는 당시 모 월간지와의인터뷰를 통해 『5·18 특별법을 제정해 처벌할 수 있으면 하라.그러나 5·18사건 만큼은 한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이변호사는 지난 해 7월 5·18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고 판정을 내린 검찰의 애초 결정을 검찰 공소사실에 대한 반박논리로 제시.이변호사는 『검찰이 새로운 증거의 제시도 없이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수사를 재개했다』고 검찰의 약점을 파고든 뒤 『원래의 수사결론을 뒤집은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주장. ○…전피고인은 온갖 수사적 표현을 동원,5·18사건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검찰은 수사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모함을 받으며 법정에 서게 되니 허망하고 분한 생각이 든다』는 등으로 검찰에 직격탄을 쏘는가 하면,『죄가 있으면 엄하게 처벌받고 없으면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앞서 열린 5·17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거규헌피고인은 『검찰조사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과거는 기억하지 못한다』,『6·25전쟁 때 맞은 총탄이아직도 몸에 박혀있다』는 등의 사유를 들며 재판부에 『노병으로 하여금 안정된 마음으로 사라질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호소. ○…15대 총선에서 옥중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검찰이 범죄사실을 입증하는데 주요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권정달·한용원 전 보안사 정보처장을 상대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공박. 허피고인은 『5·16혁명에 관해 연구하라는 전두환피고인의 지시를 받았다는 한씨의 진술은 악의에 가득 찬 거짓말』,『한씨의 거짓말은 장군진급에 실패한 데 불만을 가진데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주장. ○…익히 알려진대로 달변의 허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70·80년대의 군계보를 상세히 설명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 검찰측에 유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백동림 전 보안사 대공과 수사과장은 신군부측과 대립관계에 있던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의 직계로 하나회의 숙청작업을 진행했던 주역이라고 주장. ○…이학봉피고인은 전피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것과 관련,『정권장악은생각지도 않았으며 당시 치열한 정쟁으로 혼란한 시국을 하나하나 수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자연히 지도자로 부상된 것』이라며 전피고인을 한껏 추켜세우기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당시의 「3김씨」에 대해서는 『정부측과 협의해서 헌법개정과 정치일정에 합의하지 않고 집권욕 때문에 내각 사퇴·계엄해제·거국내각의 구성 등을 요구했다』고 비난. ○…전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도중 방청석에 앉아있던 5·18사건 피해자 가족 10여명은 전피고인이 답변할 때마다 비난조의 말을 하거나 한숨을 내뱉어 재판장으로부터 『신문에 집중할 수 없다』는 따끔한 질책을 받기도. 이들은 하오 5시쯤 휴정으로 퇴정하는 전피고인 등을 향해 『사람을 죽이고도 웃고 있느냐』며 고함을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워 법정경위가 강제로 퇴정조치. ○…5·18사건과 관련,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에 앞서 검찰은 공소장 정정 변경허가 신청서와 석명서를 재판부에 제출. 검찰은 이 날 5·18사건에 대해 국헌문란과 「자위권 보유 천명=발포명령」이란 두부분에 대해 공소장을 변경.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반대신문이 시작되기 전에 공소장 변경을 마쳐야한다』며 난색을 표명하며 설전을 벌일 태세였으나 재판부로부터 공소장 변경에 따른 변호인 보충신문 기회를 약속받고는 곧바로 5·18사건 반대신문을 진행. ○…하오 공판에서 김영일 재판장이 이학봉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맡은 조재석 변호사에게 이례적으로 『좀 천천히 신문하라』고 주문하는 해프닝이 발생.이에 대해 조변호사는 『빨리 빨리 하라고 해서 빨리한다』고 답변해 방청석에 잠시 웃음. 재판장은 『너무 빨라 내용을 잘 들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맞받았고 조변호사는 지친 듯 신문을 석진강 변호사에게 인계.〈박은호 기자〉
  • 천안문사태 7주년 북경 “평온”

    ◎광장 내외 관광객들로 붐벼… 대학가 조용/진압주역들중 이붕 총리만 같은 자리에/수배 1호 학생운동가 왕란 재수감돼 옥중투쟁중 「6·4 천안문사태」 7주년을 맞은 4일 북경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가 극소수의 가정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역사의 현장 천안문광장에선 불과 한 여성만이 헌화하려다 경찰에 끌려가는 등 겉으론 별다른 소요없이 조용한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천안문광장은 평상시처럼 내외관광객들로 붐볐다.중무장한 인민복차림의 공안요원이 광장에서 순찰에 임했으나 예년과는 달리 외국기자들의 사진이나 비디오촬영을 금하지는 않았다. 다만 젊은 여성 한명이 광장 중앙의 인민영웅기념탑쪽으로 한다발의 꽃을 가지고 가려다 공안요원들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조그마한 사건이 발생.공안요원들은 이 여인으로부터 꽃다발을 낚아챈후 강제로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워 재빨리 광장을 빠져나갔다. ○…대학가에서도 이제 6·4는 외견상 잊혀져 가는 모습이다.북경민주화운동의 온상이라던 북경대만해도 지난해에 비해 무척 느슨해진 모습이다.학생들도 최악의 취업난때문인지 정치문제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북경대 정문등 모든 출입문에선 학생들의 이름과 기숙사번호가 찍힌 서류를 들고 경비들이 수상쩍은 사람들을 서류와 대조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는 했지만 역시 예전보다 무척 부드러워진 분위기다. ○…천안문사태의 진압주역들중 이붕 총리(68)만이 아직까지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 있다.이붕 총리와 함께 계엄령을 선포했던 양상곤(87) 당시 국가주석은 지난 93년 은퇴했고 무력진압에 가장 앞장섰던 왕진국가부주석은 이 해에 사망했다.진희동 당시 북경시장은 반부패운동의 올가미에 걸려 가택연금된 상태. ○…학생운동가출신으로 천안문사태의 수배1호인 왕란은 지난해 출감한지 얼마 안돼 재수감돼 옥중투쟁.소수민족출신인 우얼카이시는 대만 유학생과 결혼,화제를 뿌리기도.미국에 망명한 방려지 교수는 애리조나대학 물리학교수로 재직중이며 지난달 출옥한 조자양의 전비서 포동(64)은 북경 교외에 격리중.〈북경=이석우 특파원〉
  • 신한국 중간당직 개편/세계화추진위장 박세직/국책자문위장 한승수

    ◎기획조정위원장 김형오/조직위원장 이재명/홍보위원장 박종웅/정세분석위원장 정형근/제1정조위원장 손학규/제2정조위원장 이강두/제3조정위원장 정영훈/수석부총무 박주천 신한국당은 11일 당 세계화추진위원장에 박세직의원,국책자문위원장에 한승수 당선자,평화통일위원장에 황병태 당선자를 각각 임명하는 등 15명에 대한 후속당직개편을 단행했다. 또 기획조정위원장에 김형오의원,조직위원장에 이재명의원,직능위원장에 전용원당선자,지방자치위원장에 윤한도당선자,홍보위원장에 박종웅의원,여성위원장에 권영자당선자,정세분석위원장에 정형근당선자를 각각 임명했다. 중앙연수원장은 박명환의원,중앙당기위원장은 박헌기의원,재정위원장은 거수명의원,재해대책위원장은 이신항당선자,이북도민위원장은 조웅규당선자가 각각 임명됐다. 제1정책조정위원장은 손학규의원,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이강두의원,제3정책조정위원장은 정영훈의원,민원위원장에는 김광원당선자가 임명됐다. 또 중앙상무위 운영기획위원장에 맹형규당선자,국제협력위원장에 노승우의원,국책자문위 정책평가위원장에 최인기 지구당위원장(원외),중앙연수원 교육평가위원장에 서한샘당선자를 임명했다. 당 부대변인에는 이사철·원유철·김영선당선자와 김충근·이성헌·심재철 지구당위원장(원외)가 각각 임명됐다. 연수원 부원장에는 이윤성당선자와 김영순·렴홍철·김영춘·조규범씨(원외)가 임명됐다.또 신한청 총단장에는 홍문종당선자가 임명됐다. 원내 수석부총무에는 박주천의원,부총무에는 유용태·이상현·김학원·김기재·이원복·김길환·송훈석·임인배당선자가 각각 임명됐다. 대표위원 특별보좌역에는 강성재·김문수·최연희·허대범·오양순당선자와 구본태·전성철씨(원외)가 임명됐다.〈김경홍 기자〉 □핵심 중간당직 8인의 면면 ◎김형오 기조위원장/온화한 성품… 업무추진 완벽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이나 업무추진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추구형. 14대때 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경부고속전철과 관련한 1백쪽이 넘는 질의서를 준비하는 등 맹활약을 했다.3당합당전 민정당 부산 영도지구당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 ▲부산(48) ▲서울대 외교학과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신한국당 민원위원장. ◎이재명 조직위원장/호방한 성격… 대인관계 폭넓어 듬직한 체구에 걸맞게 대인관계가 폭 넓어 「왕발」로 통한다.두주불사형의 호방한 성격. 이용희 전 통일원장관의 장남으로 14대 국회때 전국구로 정계 입문.대우그룹에서 40대 사장을 지냈으나 지나친 엘리트 의식이 흠이라면 흠.부인 신주연씨와의 사이에 1남1녀. ▲서울(48) ▲서울대 정치학과 ▲대우기전·그룹기획실 사장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전용원 직능위원장/다양한 직종 기업경영 경험 성품이 온화하지만 목표는 끝까지 추구하는 끈질김도 지녔다.14대총선에서 코미디언인 정주일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으나 착실한 지역 관리로 이번 총선에서 재기했다. 양조장·가구업 등 다양한 직종의 기업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직능위원장에 발탁됐다. ▲구리(51) ▲경희대 정외과 ▲회천양조장대표·보림상사 대표 ▲신한국당 정책자문위원. ◎박종웅 홍보위원장/「상도동」 비서출신… 의욕 넘쳐 매사에 의욕적인,김영삼 대통령의 「3세대 비서」출신.87년 상도동 캠프에 합류,대언론 창구로 궂은 일을 도맡으면서 넓혀놓은 언론과의 지면으로 홍보위원장에 적격이라는 게 중평. 용모가 날카롭고 할말은 하는 형이지만 마음만 맞으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타입. ▲부산(43) ▲경남중·고,서울대 법대 ▲신민당 김영삼총재 비서 ▲청와대 민정비서관 ▲당 신한청총단장 ◎박주천 수석부총무/자수성가형… 서울서 재선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을 딛고 금배지까지 단 자수성가형.표정이 밝고 붙임성이 있어 언론과 야당 모두에게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편. 국회운영위의 경험이 많은데다 서울(마포을)에서 재선한 점을 높이 샀다는 평. 유명디자이너 이신우씨가 부인. ▲충남 논산(54) ▲서울대 자원공학과 ▲대한체육회빙상경기연맹 부회장 ▲민자당 원내부총무. ◎손학규 1정조위장/대변인 경력… 설득력 뛰어나 진보적인 학자출신으로 14대 경기 광명을 보궐선거 때 영입인사로 당선돼 정계에 진출. 남의 얘기 듣기를 좋아하며 자기의 주장을 조용히 관철시키는 설득력을 지녔다.신한국당 대변인 시절 정연한 논리로 야당의 정치공세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등 활약이 컸다. ▲서울(50)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박사 ▲인하대·서강대 정치학과교수 ◎이강두 2정조위장/경제관료 출신… 친화력 탁월 정통경제관료 출신.모나지 않고 친화력있는 스타일이나 업무처리는 매우 치밀하다. 14대 총선에서 민자당후보로 거창에 출마했으나 지구당행사 때 금품살포혐의로 구속,민자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옥중당선되는 등 한때 불운을 겪었다.2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다시 민자당에 입당했다. ▲경남 거창(59) ▲고려대 정외과 ▲경제기획원 예산심의관 ◎정영훈 3정조위장/매사에 꼼꼼… 원리원칙 충실 교통부에서 18년동안 근무한 관료출신 재선의원(경기 하남 광주).매사에 꼼꼼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하다. 14대때는 전직 관료출신 의원들의 연구 모임인 「상록회」간사를 지냈다.본회의가 늦어지면 의원 회관 사무실에서 줄넘기를 할 정도로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경기 광주(63)▲연대 법대 ▲교통부 기획관리실장 ▲민자당 민원실장
  • 거시적 안보정책은(21세기 여는 15대 국회:8)

    ◎“「통일 한반도」 4강역학에 대비할때”/군비 첨단화… 해·공군 전략군 육성을/핵 재처리 기술보유 국민적합의로 추진해야/대북문제 초당적 협력… 군­산 기술연계 확대 제15대 국회에 들어갈 군 또는 안보전문가 출신 당선자들은 대북 위주의 현행 군사정책이 한반도 주변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한 세계적 차원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또 지난 16일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4자회담에 대해서도 여야 구분없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국방안보 정책은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여야 영수회담의 결과일 수도 있으나 국가의 안보정책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국민의 대표인 이들 당선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국방정책의 각론에 들어가서도 여야는 물론 정당 별로도 큰 시각차는 없었으나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평화적 목적의 핵기술 보유 등 일부 사안에는 적지않은 편차를 보이기도 했다. 15대 국회에 진출한 군 출신(예비역 대령 이상) 당선자는 모두 16명.초선 4명,재선 5명,3선 이상 7명이다.14대와 비교하면 20명이나 줄었다. 군 출신 국회의원 숫자가 문민정부의 출범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줄었으나 전문가 집단으로 보면 적정수준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이다.군사정권 시절에 비교해 다원화된 사회의 당연한 결과라는 풀이다. ○대북위주서 탈피 서울신문이 최근 이들 초·재선 군 출신 당선자들과 안보분야 관련 당선자 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군사주권과 관련,흥미있는 응답이 눈길을 끈다. 옥중에 있는 육사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의 비핵화선언과 관련해서다.당시 이 선언에 대해 제도권안팎에서 비판이 거셌다.개발도상국가인 파키스탄마저 핵을 갖고 나라를 지키는 마당에 열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에서의 핵은 「필요악」이라는 지적이 핵심이다. 상당 수의 당선자들은 평화적인 핵 재처리 기술보유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정부의 「비핵」 방침이 15대 국회에서 상당히 비판받을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답변들이 많았다. 신한국당 박세환당선자(전국구·전 2군사령관·예비역육군 대장)는 『안보면에서 주권을 행사하고 미국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핵 잠재국가」로서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천용택당선자(전국구·전 2군단장)는 『핵 잠재적 능력이 국제사회에서 힘을 부여받는 것』이라면서 『국제적 감시아래 플루토늄 등 핵 재처리 시설을 갖춘 일본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응답자들의 대부분은 평화적인 핵 재처리기술 보유는 국민적 합의만 있다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현재 우리의 군사정책은 북한의 침공에 대비한 대북 위주의 정책이다.그러나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의 붕괴와 이어지는 남북통일에 대비해 정책의 전반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 인원조정,전력증강,새로운 구도의 한반도 주변국과의 평화협정이나 군사동맹 등 새로운 대안들이 거시적으로 제시돼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군개혁 긍정평가 신한국당 허대범당선자(경남 진해·전 해군 교육사령관)는 『통일이후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열강과 겨루려면 국방예산 증강을 통해 군사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문민정부들어 단행된 인사비리척결,율곡사업비리 수사,하나회 제거 등 군 개혁조치에 대해서는 모두 긍적적으로 평가했다.그럼에도 ▲인사 ▲무기등 군수물자 조달체계 ▲인력구조재편 등의 개혁은 미흡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안기부1차장을 지낸 신한국당 정형근당선자는 『지금까지의 군 인력구조는 지연,학연에 얽매여 있다』고 지적,『우수하고 실력있는 사람이 군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사교장 출신의 자민련 김부동당선자(대구 동갑)는 『국방예산의 70%이상이 인건비 등 운영유지비로 충당되고 실질적인 전력증강에는 예산배정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군 인원을 30만∼40만명으로 줄이고 남는 예산은 첨단기술 획득과 개발에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군은 육군 위주로 편성돼 있다.해·공군은 주변국과 비교하면 상당한 열세이다.때문에 비대한 육군조직을 과감하게 축소시키고 해·공군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군 내부에서공감해왔으나 현실적으로 군 구조개편문제는 『군부내의 역학관계상 상당기간 어렵지 않겠는가』하는 회의가 강했다. 육군대장 출신인 박세환당선자조차도 『미래에는 보병보다는 해·공군을 강화시켜 기동성있는 전략군대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형근당선자는 『현대전의 최강부대는 해군』이라고 지적,『우리가 계속 제해권을 보유해야만 현대화된 최강의 군사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대범 당선자는 『독도 영유권 분쟁때 해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민들이 인식한 계기가 됐다』면서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해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의 발전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감군에 대해서는 『현재도 준전시 상태이므로 감군논의조차 시기상조이며 통일후 주변 정세와 다른 나라의 군비축소에 따라 가능할 것』(안기부장출신인 박세직·정형근당선자)이라고 반대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일 군사동맹에 대해서는 일부 찬성의견에도 불구하고 『한­미,미­일 군사동맹이 있으므로 한­일 군사동맹까지는 필요없으며 과거를 둘러보거나 현재의 국민감정에도 맞지 않다』(정형근·박세직당선자)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하사관 처우 개선 군 기술과 산업과의 연계방안에 대해서 김부동당선자는 『군사기술은 얼마든지 일반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군·산기술연계를 일반화하고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협의 또는 자문기관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자회담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했다.『4자회담이지만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박구일당선자·자민련·대구 수성을),『현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천용택당선자),『남북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면 즉각 추진돼야 한다』(김부동당선자).여기에 정형근당선자는 『이 회담의 주체는 남북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소외된 러시아를 다독거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밖에 15대 국회에 들어가 추진하고 싶은 군 관련 입법에 대해서는 당선자마다 의견이 달랐다. ▲하사관 처우개선 및 군인가족 복지증진(신한국당 허대범) ▲군 구조개편 및 장교양성(〃 박세환) ▲직업군인출신 전역후 직업안정(국민회의 천용댁) ▲군 장비의 과학화(자민련 박구일) ▲상근 예비역제도의 재검토(〃 김부동)등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초선의 당선자들은 정계에 입문한 이유를 『정치가 안정돼야 국가의 안보나 경제도 튼튼해질 수 있다는 평소의 소신 때문』이라며 『군 경험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국방위에서 일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15대 국회의 과제는 통일에 대비한 기초준비를 하는 과정으로 보고 심도있는 연구와 정책대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이들 군 출신 당선자들의 다짐이다.〈황성기·박찬구 기자〉
  • 전씨 변호인단 전격 법정퇴정/“하야위로금 제공” 검찰신문 발단

    ◎변론권제한에 재판부 원색비난/“「검은돈」 발견된 후 반격카드” 해석 전두환 전 대통령측이 검찰신문 및 재판부의 재판진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양우·전상석 변호사는 5차 공판이 열린 21일 하오 6시쯤 『전직 대통령과 국민을 모독하는 법정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법정퇴정을 전격 선언했다. 변호인단의 재판거부는 지난 70∼80년대의 시국사건에서는 비교적 「흔한」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없다. 직접적 발단은 전씨가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하야 위로금으로 1백75억원을 주었다는 검찰신문에서 비롯됐다.이른바 「조명작전」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야사」다. 전씨는 이에 『대통령직을 돈으로 주고 산다는 얘기인 모양인데,증거가 있으면 대라.최 대통령 본인에 대한 모독이요,전 국민에 대한 수치』라고 발끈했다.변호인단도 가세했다.이양우 변호사는 『검찰이 3류 잡지에 난 글을 인용해 마치 사실인 양 신문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변호인단은 이어 재판부에 공판중지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판부도 공격했다.이변호사는 『변론권을 제한하는 재판정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한 뒤 일방적으로 법정을 나가버렸다. 전씨측은 법정 밖에서 『재판부 기피신청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도 덧붙였다.전씨측의 「강공」은 이 날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예고됐었다. 검찰신문 직전 『검찰이 수사와 관련해 시정 잡설에 불과한 뒷 얘기들을 언론에 흘려 재판부에 예단을 주고 있다』며 『재판거부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전씨측의 이같은 태도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추궁하는 검찰신문 방식을 꼬집으면서도 변호인단이 「복선」을 깔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서 현금 61억여원을 사과상자 25개에 담아 숨겼던 사실이 드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고,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신을 문제삼은 전씨의 옥중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검찰에 대한 「반격카드」를 내밀었다는 해석이다.〈박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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