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옥중
    2026-05-31
    검색기록 지우기
  • 출해
    2026-05-31
    검색기록 지우기
  • 이은미
    2026-05-31
    검색기록 지우기
  • 이민영
    2026-05-31
    검색기록 지우기
  • 수입
    2026-05-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50
  • “재범막기 사랑이 묘약”/서울신문 교정대상 大賞영예 朴甲敦 교위

    ◎출소후 인생상담 해올때 눈물나도록 고맙고 뿌듯/전문기술 배우고 나가면 사회서 새출발 기회주길 【공주=李天烈 기자】 제16회 서울신문 교정대상 대상 수상자인 공주교도소 朴甲敦 교위(51·7급)는 재소자들로부터 선생님 또는 형님으로 불린다. “사랑을 베풀라는 기독교 교리에 따라 이를 실천하느라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묵묵이 일해 온 보람을 느낌니다” 朴씨는 혼자 큰상을 받어 동료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란다. 그가 보람을 느낄 때는 교도소를 나간 수용자들이 직접 찾아 오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다.이들이 ‘형님,최근에 집도 사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때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한다.또 출소한 이들이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로 선뜻 상담해 올 때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朴씨는 “교도소에서 각종 전문기술을 배우고 출소해도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 때문에 제대로 적응치 못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올 때가 가장 괴롭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에게는 이처럼 ‘사람냄새’가 난다.따르는 수용자들이 많은 것도 이같은 까닭에서다.무의탁 수용자 13명을 교화위원들과 자매결연시켜 갱생의지를 북돋아 주거나 폭력 혐의로 구속된 수용자 3명의 벌금을 대신 내줘 출소시킨 일도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지난 87년부터 가구제작과 자수 등 전문기술을 가르쳐 지금까지 모두 43명에게 기능사 등 자격증을 따게 했다. 꽃씨모으기 운동으로 꽃과 나무를 심어 교도소 뜰을 가꾸거나 이웃에 있는 산 3천여평을 농경지로 조성,연간 5백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梁奉泰 공주 교도소장도 “불행을 당한 동료들을 모금해 돕는 등 직원들의 신임도 두터워 직원이나 수용자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朴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옥중결혼식이다.지난 86년 3월 살인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30대를 10년 이상 옥바라지해 온 애인과 공주시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려줘 지금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있다. 朴씨는 “출소한 수용자들이 재범을 저지르지 않고 건강하게 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교화에 더 힘쓰겠다”고 말했다.
  • 李相兆 밀양시장 구속/금품살포 혐의/후보등록 시장으로는 처음

    【창원=이정규 기자】 창원지검 공안부(송인보 부장검사)는 20일 한나라당 밀양시장 후보이자 현 시장인 이상조씨(58)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지방선거 후보등록 이후 현직 단체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시장은 지난 2월6일 밀양시 가곡동 노인위안잔치에 시보조금 1백50만원을 지급하고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여 동안 선거운동원들에게 8차례에 걸쳐 3백만원의 경비를 제공하는 등 지금까지 4백40만원 가량의 기부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 시장은 지난 달 초 밀양시 내이동에 자신의 선거사무실을 내고 선거유사기관인 ‘21세기 밀양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어 지역민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다. 이 시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옥중 출마결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DJ,옥중서한 수록 책 받아

    ◎작년 국제펜클럽 창립 75주년 기념 발간/솔제니친·하벨 등 저명투옥작가 글 함께 金大中 대통령이 12일 장 피에르 물랭 국제펜클럽 스위스지 회장으로부터 지난 세계 저명인사들의 옥중 글 모음집인 ‘옥중수기’와 대통령 취임축하 서한을 받았다. 이 옥중수기에는 지난 85년 김 대통령이 쓴 옥중서한이 수록돼 있다. 국제펜클럽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발간된 이 옥중수기는 金대통령 외에 옛소련 반체제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체코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등 세계 각국의 투옥작가들의 글이 수록됐다. ‘아버지의 죄’로 이름 붙여진 이 서한에서 金대통령은 부인 李姬鎬여사와 아들들에게 수감생활 도중 정성들여 가꾼 페튜니아,접시꽃 등이 간밤에 내린 서리로 시들어 버린데 대해 찢어지는 아픔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이어 그는 “내인생이란 결국 무엇일까.살아오면서 나는 시련밖에 겪지못했소. 하나의 시련이 지나면 또다른 시련이…”라고 되뇌이면서 “나같은 인생도 인생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自問)하고 있다.차가운 옥중에서 사색한 인생에 대한 처절한 고뇌와 번민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는 후회하지 않소”라고 자답(自答)했다.“시련이 우리의 죄를 벌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어째서 그 숱한 악한 인간들은 번영을 누리고 선한 자들은 짓밟히는 것일까”라는 종교적 회의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디미트리 카라마죠프가 시베리아 유배의 고통속에 한 말에서 해답을 찾고있다.“도대체 왜 나는 죄도 없는데….틀림없이 나는 내 어깨위에 나 자신의 과거의 죄뿐 아니라 내 아버지와 모든 러시아 민족의 죄를 지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 “한국 민주주의 한단계 성숙”/김 대통령 취임 외지 반응

    ◎미­“화합 물꼬 터… IMF 위기 잊지 말아야”/일­“경제난 극복… 제2 한강기적 이룰것” 【워싱턴=김재영·도쿄=강석진·파리=김병헌·모스크바=유민 특파원】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세계 각국의 언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축하하고 경제난 타개의 기대와 함께 한국의 위기극복 여부는 국제사회에 하나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화합의 상징이라고 보도하고 작년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당시 급격한 동요를 보였던 민심이 가라앉아 서울거리는 훨씬 평온해졌다고 전했다. 또 김대통령이 국내외에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개혁에 착수했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측근들은 이처럼 국민이 안심하고 있는데 오히려 우려하고 있다면서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인데 국민이 두달 전의 절박했던 심정을 벌써잃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유종근 경제고문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김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결의와 자신감을 강조하면서 경제난 타개를 위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실시를 천명한 것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옳바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또 한국이 해방후 ▲6·25사변 ▲경제기적 ▲올림픽 개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 등 4번에 걸쳐 세계를 놀라게 했음을 지적,한국이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하고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경우 국제사회에 주는 영향이 예상외로 크다고 말했다. 한편 독일의 한델스블라트는 “수십년 동안 권력의 박해를 받은 김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면서 그가 지난 84년 ‘옥중서신’을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한국의 발전방향을 제시했으며 특히 경제발전에만 치우친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비판은 현재 한국 경제위기를 볼때 올바른 판단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일간 시보드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92년 ‘부패한 장군들’로부터 매우 급속히 발전된 경제를 상속받았던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취약해진 경제를 물려받았다고 소개하고 김대통령의 취임사는 “어떻게 하면 경제 호랑이를금융파탄 상태에서 탈출시킬 것이냐”하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분석했다. 벨기에의 드 스탄다르드는 25일 김대통령은 건실하고 사려깊은 대통령이 되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40%의 지지율로 당선된 김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최근 80%로 높아졌으나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면서 ▲실업 급증 등의 경제.사회적 고통 ▲재벌 개혁 ▲총리 인준 등의 정치적 난제 ▲인권 문제 ▲대북한 문제 등을 지적했다.
  • 책 읽는 대통령/임영숙 논설위원(외언내언)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이삿짐은 이사 대행 업체들에게 환영받기 힘들듯 싶다.1주일 후 일산에서 청와대로 옮기는 김당선자의 이삿짐은 대부분 책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 대행 업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객이 책 많은 집인데 김 당선자의 장서는 1만5천여권에 이른다.불과 몇백권의 장서를 가진 일반 가정의 이삿짐도 잔손 많이 가고 시간 많이 들고 무겁다고 싫어하는 업자들에게 이런 이삿짐은 액운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입장에선 참으로 보기 좋은 이삿짐이다.책을 읽는 대통령은 안 읽는 대통령보다 훨씬 믿음직스럽다.“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장”(보르헤스)이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또 “도서관은 일종의 마술상자다.이 상자속에는 인류의 가장 좋은 정신들이 마술에 걸려 있다”(에머슨).우리 선조들도 한평생 다섯수레 분량의 책 읽기를 권장했다. 김 당선자의 장서는 다섯수레를 훨씬 넘어선다.그러나 조선조의 이름난 장서가들에는 못 미친다.영의정을 지낸 심상규는 4만권 이상을 소장했고 풍양조씨 세도가의 조병구는 3만∼4만권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두차례의 북경 방문(1614,1615년)에서 4천권의 책을 사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당시 우리 선조들의 서적 구입열에 대해 명나라의 문인 진계유는 이렇게 증언했다.“조선인은 책을 가장 좋아한다.사신의 입공은 50인으로 제한돼 있지만 옛책과 새책,패관소설로서 조선에 없는 것을 날마다 시중에 나가 책의 목록을 베껴 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두루 물어보고 비싼값을 아끼지 않고 구입해 간다” 물론 당시 책의 분량과 지금 책의 분량은 달라서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또 에머슨이 말했듯이 마술에 걸린 ‘인류의 가장 좋은 정신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마술상자를 여는 수고,즉 책을 읽어야 한다.김 당선자의 장서 1만5천권은 옥중에서,해외 망명길에서,동교동 자택 연금시절에 읽은 손때 묻은 책들이라 한다. 청와대 서고가 출판인들이 기증한 책이 아니라 손때 묻은 책들로 채워진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책 읽는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체,아니 전국민적인 것이다.
  • 비교문학 연구서 ‘한국문학 속의 세계문학’

    ◎우리 문학에 녹아 든 외국문학/유미주의자 와스카 와일드의 수용 양상 해부/50년대 실존주의·러 사실주의 영향 등 고찰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는 괴테의 피카레스크적 방랑구조와 교양소설적 구조가 주인공 이형식과 박영채를 통해 드러나 있다.반면 염상섭은 소설 ‘E선생’을 통해 괴테의 범신론적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으며,‘제야’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모티브를 수용하고 있다.이는 이 작가들이 괴테 문학을 창작면에서 주체적으로 변용하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외국의 문예사조 또는 작가의 작품이 한국문학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살핀 연구서 ‘한국문학 속의 세계문학’(이보영 등 지음,규장각)이 나왔다.이 책은 한국문학에 관한 비교문학적 연구가 변변찮은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한층 커다란 의미를 지니다. 외국문학의 영향은 1920년대 들어 하나의 전기를 맞는다.데카당스 문학인 퇴폐적·악마적 유미주의 사조가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이와 관련,춘원 이광수는 ‘문사와 수양’(1921)이란 글을 통해 “발아기에 있는 우리 문단에 ‘데카당스’의 망국정조가 풍미해 마치 아편 모양으로 청년 문사와 독자들의 정신을 미혹하게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춘원은 이러한 데카당스 문학의 유행을 “불건전한 일본 문단의 전염을 받은 결과”로 규정했다.그러나 데카당스 문학을 오로지 일본의 데카당스 문학의 ‘전염’으로만 본 것은 잘못이라는 게 이 책의 입장이다.그 당시 일본에서는 아카키고헤이(적목연평)의 ‘유탕 문학의 박멸’(1916)같은 평론이 나올 만큼 데카당스 문학이 유행했다.그 영향을 조선작가들이 일정 부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1920년대 데카당스 문학이 유행하게 된 진짜 이유는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허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이 책에서는 특히 유미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영국의 괴재 오스카 와일드 문학의 수용양상을 꼼꼼히 살핀다.와일드는 ‘옥중서간’에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반율법주의자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악마적 유미주의와 퓨리터니즘의 갈등을 겪은 것은 주위의 기독교적 전통과 옥스포드대학 재학시절의 은사인 러스킨과 페이터의 도덕적 유미주의의 영향 탓이다.그러나 와일드의 유미주의의 영향을 받은 김동인의 경우는 그같은 종교적 전통과 스승의 영향이 없었다.김동인의 작품 ‘광염소나타’의 백성수나 ‘광화사’의 솔거의 유미주의가 단지 악마적이거나 이기주의적인 방향으로만 진행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이에 비해 염상섭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와일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유일한 작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염상섭 역시 초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데카당스 풍조에 깊은 관심과 공감을 보였다.이는 소설 ‘암야’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사이비 데카당스의 수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나,‘표본실이 청개구리’에 나오는 다눈치오의 ‘죽음의 승리’에 대한 언급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염상섭이 진정으로 와일드에 공명하고 그로부터 배운 것은 바로 휴머니즘 정신이다.염상섭에 끼친 ‘휴머니스트’ 와일드의 영향은 염상섭의 작품 ‘진주는 죽었으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그 구체적인 예로 이 작품에는 ‘사특한 계집아!’라는 대목이 나온다.이것은 와일드의 ‘살로메’에서 세례 요한이 음욕을 품고 자기를 바라보는 살로메를 꾸짖을 때 ‘바빌론의 딸’‘소돔의 딸’ 혹은 ‘간음의 딸’이라고 그녀를 부른 것을 모방한 것이다.이 경우에도 염상섭은 ‘와일드’를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살로메’는 퇴폐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염상섭은 살로메의 타락한 정신을 준엄하게 꾸짖는 세례 요한의 도덕의식만을 그의 작품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이 책에서는 이밖에 한국에서의 독일 표현주의 수용사,1950년대 한국 문학작품에 나타난 실존주의의 양상,톨스토이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수용과 그 한국적 변용 등을 주요 주제로 다뤘다.
  • 창작악극 ‘눈물젖은 두만강’/일제시대 비극의 한 가족사

    악극의 대명사 극단 가교가 다섯번째 창작악극 ‘눈물젖은 두만강’을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일제하인 1930년대 두만강과 만주,상해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항일 독립운동과 이에 연루되는 한 일가의 비극의 가족사를 눈물과 진한 감동으로 그린 작품.두만강 백사공의 딸 정애는 독립군 승빈이 총상을 입은채 일경에 쫓겨 집으로 찾아들면서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간다.독립군의 정인이 된 관계로 일제의 갖은 박해를 받다 화류계 여성으로 전락,일본 현병대장을 암살하고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는 정애의 인생유전을 중심으로 그녀의 부모,승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민우,일경의 앞잡이로 승빈을 밀고 하는 오빠 등 두만강변 한 가족이 겪어가는 불행한 민족사가 구슬픈 노래와 대사로 전개된다. ‘홍도야 울지마라’ ‘울고넘는 박달재’ 등 다수의 악극에서 기량을 쌓은 권소정이 주인공 정애역을 맡았으며 박인환 최주봉 윤문식 김진태 태민영 박승태 등 TV를 통해 낯이 익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눈물젖은두만강’ ‘물새야 왜 우느냐’ ‘청춘 블루스’ 등 흘러간 우리 옛노래와 ‘카르멘 조곡’ ‘인 더 무드’ 등 외국곡을 합해 총 35곡의 노래를 들려준다. 김상열 작·연출.하오 4시·7시30분(월요일은 쉼).369­2911.
  • 역경 이긴 반세기…한국혼 다시 일깨운다/정부수립50주년 기념사업

    ◎‘경제50년사’ 등 백서 발간… 고난 극복의 역사 재조명/창작극 ‘대한국 창조’ 순회공연… 국민축제 행사 다양/21세기 걸맞는 정책 수립… 학술대회 통해 비전 제시/‘겨레의 노래’ 재정·보급 등 나라사랑운동 지속 전개 98년은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반세기동안의 발전과 우여곡절을 되돌아보는 한 해이면서 동시에 21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정부의 회갑’을 맞아 알뜰하고 다양한 기념사업 계획을 범정부적으로 추진중이다.특히 광복 50주년 행사를 이미 3년전 치른 만큼 내실있는 행사 위주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연중 기념사업을 펼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오는 8월15일에 행사가 절정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말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강영훈 전 총리)를 구성,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또 기념사업위원회 산하에는 정부 14개 부처 관계자들과 국회·법원 등 범정부적으로기념사업실무위원회(위원장 우근민 총무처 차관)가 구성돼 기념사업 계획의 수립·추진 및 조정작업을 맡고 있다.이와 함께 기획추진반(반장 최석충 총무처의정국장)이 구성돼 부처별 추진계획을 종합지원하고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각 분야별 기념사업 계획안은 다음과 같다. ▷정부수립의 의의 부각◁ ▲세미나 개최=서울 뿐 아니라 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 등의 지역을 순회하는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정부수립의 의의를 재조명한다.통계숫자로 사회변화를 알아보는 통계세미나를 개최한다. ▲독립운동 사료집 발간=해외에서 전개된 각종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문헌을 발굴,보급한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개관=애국지사들의 영혼이 서려있는 서대문 형무소를 역사관으로 꾸며 선열들의 옥중 수감생활과 모습을 재현해 청소년들과 후세들을 위한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한다. ▷역사·기록의 재정리◁ ▲정부 백서 발간=‘교육 50년사’로 교육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등 각 부처별로 백서를 발간해 반세기를 정리한다. ▲‘정부조직 변천사’ 발간=확장과 축소를 거듭하면서 50년동안 우여곡절을 겪어온 정부 조직 변천의 모습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또 ‘한국지방행정 50년사’를 발간해 지방행정의 변화상을 알아본다. ▲기념 영상물 제작=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룩한 과정을 영상물로 제작하고 사진과 그림 등을 통한 화보집을 발간한다. ▲기념전시회=기록으로 우리나라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국가기록물을 전시한다.또 정부수립 이후 발간된 문헌과 자료 가운데 현존하면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한다. ▷정부수립 유공자 발굴◁ ▲유공자 발굴=아직도 가려있는 정부수립 유공자를 찾아내 훈·포장을 하고 생존 애국지사와 제헌의원 및 초대 각료들을 위문해 격려행사를 갖는다. ▲유엔 참전용사 초청=생존해 있는 유엔참전용사들의 방한을 초청해 격려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를 갖는다. ▷국민과 함께하는 행사◁ ▲8·15 경축식=국민 각계 각층이 참석하고 정부수립 유공 외국인 및 재외교민을 초청해 국가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도록 한다.동대문 운동장에서 광화문 사이에서 길놀이 행사를 갖고 국민적인 축제행사로 승화시킨다. ▲문화행사=종합가무극을 열고 표어 및 포스터를 공모해 국민의 참여의식을 높인다.또 지난 반세기동안의 생활용품을 전시한다.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한국의 발전과 역동적인 모습을 세계에 소개하는 영상자료를 제작한다. 서울미술제를 개최해 공예대전,서예대전,사진대전,미술대전,도시와 영상전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다. 특히 충청북도는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변화과정을 연극으로 만는 창작극 ‘대한국 창조’를 전국 순회공연할 계획이다.이와함께 봉화올리기 행사를 재현해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한다. ▲국가상징물의 선양=태극기 거리를 조성하고 건물에는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등 태극기 사랑운동을 전개한다.나라꽃인무궁화 사랑하기 운동을 펼쳐 무궁화 분재·사진전시회·글짓기대회를 개최한다. 또 무궁화를 널리 선양한 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한다.이와함께 나라사랑하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겨레의 노래­응원가’를 제정해 보급한다. ▲건군행사=건군 50주년을 맞아 국민과 군의 안보 공감대 형성을 위한 건군 행사를 갖는다.군부대를 공개하고 안보현장에 대한 견학 기회를 넓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회개원 행사=국회내에 헌정기념관을 세워 헌정에 관련되는 영상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대한민국 국회 50년사를 발간한다. ▷새시대를 미래상 정립◁ ▲21세기 정부의 비전 제시=지난 50년을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지향적인 행사와 함께 미래지향적인 정부의 미래상을 정립한다.이를 위해 앞으로 지향해야 할 정부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부처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학술대회 개최=21세기에 걸맞는 정부 미래상의 의견수렴을 위해 종합학술대회인 ‘21세기 정부의과제와 전망’을 개최한다.학술대회는 정치·행정·경제·사회 등의 분야별로 개최한다.통일에 대비한 해양정책토론회와 태평양 해양과학기술회의를 개최해 해양국가로의 잠재력을 높인다. ▷연중 추진계획◁ ▲1월 기념사업 공식 휘장 선정·보급 ▲2월 기념사업 표어 및 홍보 ▲3월 대한민국 정부50주년 기념사업 세부추진계획 확정 ▲4월 부처 및 단체별 세부추진계획 시행 착수 ▲5월 국회개원 50주년기념 관련행사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의 달 선포 ▲8월15일 정부수립 50주년 중앙경축식 ▲10월 건군 50주년 행사 ▲12월 기념사업 평가 및 정리,결과 보고서 채택 ◎정부조직 개편사/‘11부4처’로 출발… 40차례 변화/50년대 부흥부 전후부흥·경제정책 기획 조정/5·16뒤 경제기획원 신설… 수출드라이브 주도 대한민국 정부 50주년 역사는 정부조직 개편에서 찾을 수 있다.정부조직은 시대 변화와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48년 8월15일 11부4처로 출발한 ‘미니 정부’는그동안 40여차례에 걸쳐 변화를 거듭했다. 광복과 6·25를 겪은 50년대에는 체제형성 및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총리제의 폐지로 대통령중심의 체제정비와 3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전쟁 이후 부흥과 경제정책을 종합적으로 기획·조정하는 기구로 부흥부가 신설됐다. 60년 제2공화국 출범으로 행정권이 국무원에 소속되면서 정부조직은 또다시 개편을 맞았다.3·15 부정선거를 겪은 직후여서 경찰의 중립 확보를 위해 공안위원회가 구성됐고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감찰위원회가 부활됐다. 5·16 이후에는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조직의 근간이 바뀌었다.부흥부(건설부로 바뀜)가 건설부로 바뀌면서 산업정책기능과 산하 산업개발위원회를 통합한 경제기획원이 탄생했다.공보처와 중앙경제위원회 등이 신설됐다. 60·70년대에는 늘어나는 민원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청 단위의 행정단위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 특징이다.노동·철도·검찰청(63년),국세·수산·산림청(66년),관세·병무청(70년),항만청(75년),특허청(76년) 등으로 행정조직은 확대됐다.또 77년에는 동력자원부가 신설됐고 환경문제가 증가됨에 따라 79년에는 환경청이 새로 생겼다. 70년대 말에 들어서자 경제규모의 급격한 확대와 산업구조의 다변화로 거대한 정부조직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이에따라 81년 정의사회 구현과 복지사회 건설을 기치로 내건 출범한 5공화국은 행정개혁을 통해 과감한 중앙행정부처의 부서 통합과 인원감축을 단행했다.공무원 숫자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신설된 부처는 올림픽 개최 결정으로 인한 체육부 정도에 불과했다. 88년 출범한 6공화국 역시 ‘작은 정부’ 정책을 유지했다.환경청이 환경처로,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89년) 바뀌었다.문민정부 들어서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 군살빼기가 계속됐다.집권초기인 93년3월 문화부와 청소년체육부가 문화체육부로,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상공자원부로 각각 통합됐다.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은 행정쇄신위원회가 1년10개월 작업한 끝에 이뤄졌다.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거대화됐으며 이 과정에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건설부과 교통부가 건설교통부로 합쳐졌으며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환경처가 환경부로 바뀌었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비대해진 경제기획원이 최근의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또다시 정부조직에 또다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정부조직이 어떤 형태로 짜여질지 주목된다.
  • 최고들이 만드는 완판 춘향전

    ◎국립극장 내년 2월 무대에… 배역 공개모집 아기자기한 만남과 애절한 헤어짐,천신만고 끝에 이룬 사랑과 극적 신분상승….5대 판소리 중에서도 춘향가는 가장 볼거리 많은 한마당으로 통한다.이런 춘향가 한바탕을 통째 극으로 만날수 있게 됐다.국립극장이 기획한 완판창극 ‘춘향전’이 그것. 인기 레퍼토리 춘향가를 토대로 한 창극은 부지기수.하지만 이야기 얼개를 살려 두서너시간짜리로 발췌한 편집극이 대부분이었다.이에 비해 국립극장‘춘향전’은 대여섯시간짜리 판소리 한바탕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기는 것.창극 ‘춘향전’의 원형을 창출,후세에 남기고 중국 경극이나 일본 가부키처럼 우리것을 문화유산화하는 작업이다. 취지가 취지인만큼 최상급 스태프들이 모였다.총연출 임진택,대본 김명곤,작창 성창순,음악감독 박범훈,무용감독 국수호씨 등.신재효본 등 고전창본,박유전 등의 강산제본,김소희본,박동진본 등 모든 창본에서 최선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낸다는게 대본 원칙.소리의 유산을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자연스런 흐름,풍부한 표현을 지향했다고 김명곤씨는 밝힌다.‘사랑가’‘이별가’‘옥중가’ 등 더늠을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판소리에 없는 노래나 춤등을 오버랩시키는 것이 그런 예. 98년 2월14~22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 상연을 앞두고 있는 완판창극 ‘춘향전’은 배역을 공개 모집한다.지역 명창대회 입상자,5년이상 전수자,전공학생들 가운데 선발되면 판소리명창들과 한 무대에서 기량을 겨눌 기회를 얻는다.21일까지 서류접수,문의 02)264­8448.‘춘향전’을 필두로 국립극장은 앞으로 판소리 다섯마당 모두를 완판창극으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 장영자씨 옥중서 자전소설 ‘환영의 창’4천장 분량 탈고(조약돌)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인 ‘큰손’ 장령자씨가 옥중에서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한 것으로 밝혀져 눈길. 94년말 가석방 상태에서 사기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아 잔여 형기까지 도합 9년의 형기를 살고 있는 장씨는 지난 달초 서울지검 특수부 수사검사 시절 자신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던 양인석 변호사에게 고문 변호사를 맡아주도록 의뢰하는 서신을 보내면서 소설 집필 사실을 공개. 장씨는 “수감 이후 ‘환영의 창’이란 제목으로 소설 집필에 매달려 원고지 4천장 분량을 완성했다”면서 “섬유재벌가의 딸로 태어난 주인공이 사업을 일으켰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설명.〈김상연 기자〉
  • ‘깐수’ 영 역사서 중국가는길 옥중 번역

    아랍인 무하마드 깐수로 위장,12년 동안 간첩활동을 해온 혐의로 징역15년을 선고받은 남파간첩 정수일 피고인(63·전 단국대 교수)이 옥중에서 7개 외국어로 된 역사서 ‘중국,거기에로의 가는 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변호인 김한수 변호사는 11일 “정피고인이 수감 7개월만인 지난 3월 200자 원고지 2천114장 분량으로 번역을 완료했다”면서 “오는 10월말쯤 형이 확정된 뒤 출판된다”고 밝혔다.
  • 민주화인사도 사면복권 검토/이회창 대표

    ◎추석직후 구체선별작업 착수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에 이어 추석 직후 투옥중인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복권조치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표는 1일 상오 여의도 당사를 방문한 김문수 안상수 이우재 홍문종 의원 등 당내 개혁성향의 초선의원들로부터 ‘전·노씨와 광범위한 민주화 인사들사이의 균형있는 조치’를 건의받은뒤 “기본적으로 공감하며 추석직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는 이대표가 ‘국민 대통합 정치’ 차원에서 보수와 개혁 세력을 총망라한 대화합조치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 DJ 네티즌 공략 본격화/인터넷에 통합 홈페이지 구성

    국민회의가 ‘네티즌유권자’공략을 강화한다.인터넷에 이중 개설된 당의 ‘새정치네트’와 김대중 총재의 ‘DJ포럼97’을 통합한다.가칭 ‘DJ사이버캠프’로 정했다.오로지 DJ를 중심으로 하는 대선 홍보전략이다.9월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 통합 홈페이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첫째 ‘DJ도서관’이다.DJ의 모든 것을 3개 코너에 담기 위해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한창이다.1부는 망명과 투옥 등 인동초 역정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엮고 있다.주로 볼거리 위주로 재미있게 꾸밀 생각이다.공개되지 않은 희귀사진도 가능한 한 많이 실을 예정이다. 2부는 DJ의 TV토론회 재방송 코너다.부드러운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다.방대한 양도 그렇고,‘DJ집중’을 위해 답변만 화상으로 제공된다.3부는 DJ자료실로 학력,경력,연대기표,주요 연설문,옥중서신,청년과 여성에 대한 공약,DJ보도 신문기사 등이 집결되어 있다. 두번째 부분은 대화방이다.네티즌들이 직접 참여하는 코너로 활발한 논쟁의 장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 정태수씨 옥중 정치권 로비 파문

    ◎변호사와 필담서 여 인사 거명 1억 적어/허 변호사 “수임료문제 논의한 것” 밝혀 한보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 피고인이 그룹 재건을 위해 신한국당의 경선후보 4명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은 정피고인이 변호사와 나눈 대화내용이 4일 언론에 공개되면서 비롯됐다.A4용지 10여장 분량의 필담메모지에는 신한국당 유력 경선후보들의 이름과 함께 “가지고 있는 것 좀 사용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특히 특정 후보와 정치발전협의회 소속 모 중진의원의 이름을 선으로 연결한 뒤 ‘1억’이라고 적어 로비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정피고인과 필담을 주고받은 장본인인 허정훈 변호사는 이날 “메모 내용은 지난달 정피고인과 구치소 접견때 필담으로 주고 받은 것을 적은 것”이라면서 “문제의 1억원은 수임료 요구에 대해 정피고인이 우선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쓰라는 뜻으로 적은 것”이라며 로비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허변호사는 “당시 정피고인이 경선에 관심을 표하며 ‘누가 되겠느냐’고 물어 3인의 후보를 얘기했고 이 가운데 한 후보를 정발협에서 지지하고 있다고 적은 것일뿐”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일단 정피고인을 소환해 사실여부를 조사키로 했다.그러나 경위야 어쨌든 메모지 내용으로 미루어 정피고인이 여전히 재기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해 흥미를 끈다. 정피고인은 메모지에 “지금 정부 힘 없음.대선 끝나고 내가 나가서 문제 해결한다”며 자신에 대한 사면 시기를 오는 12월 대선 직후로 예상한 뒤 “한보철강 공매 등 민사문제를 지연시키면 내가 석방된 뒤 채권은행단의 동의를 얻어 법원의 한보철강 법정관리 취소를 이끌어 내 경영권을 다시 인수하겠다”고 재기의욕을 밝혔다.
  • 현대시인 애청의 금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5)

    ◎생가어귀엔 수령 500여년 느티나무가…/절강성 중심부에 위치한 비산비야/대시인 기리는 3층높이 방려 이채 이제 발걸음을 강소성에서 훌쩍 절강성으로 옮겼다.옛날 춘추때 같으면 오나라에서 월나라로 건너온 것이다. 금화는 절강성의 중부,그 수도인 항주에서도 남쪽으로 약 170㎞.그토록 멀리 깊숙이 나래를 편 것은 거기가 매력적인 작가로 명말 청초의 희곡가요,소설가인 이어와 중국 현대시 80년사에 가장 많은 독자를 지녔던 공산당 당적을 가진 시인 애청(1910∼1996·중국발음 아이칭)을 낳았기에 말이다. 애청은 필자가 맨처음 해후했던 사회주의 시인이다.아직도 냉전시대였던 83년1월,싱가포르정부가 주최한 제1회 세계중국어작가회의에서 만난뒤,우리는 여러차례 감격의 회동이 있었음에도 막상 그의 고향을 찾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65년간 시집 20여권 남겨 금화는 비산비야였다.금화시에서 북으로 30여㎞를 달렸을때 작은 소읍 부성을 만났다.부성에서 애청의 생가가 있는 반전장으로 좌회전할때 난데없이 하늘을 뚫을듯 커다랗게세워진 방려을 보고 나를 동행하던 아동문학가요,전 절강사대 총장이었던 장풍씨는 내 어깨를 쳤다. 과연 놀랍도록 높았다.족히 삼층 높이였다.필자가 문학기행하는 동안 처음 보는 시인을 위한 방려다.사실 애청이 이 나라 이 체제에 끼친 문학적인 지위는 이 방려의 높이에 상당했다.1932년부터 지난해까지 65년동안 벌써 스물몇권의 시집에,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란 감투도 그러했다.그러나 그의 외형적인 간판보다는 중국이 가장 암울했던 30년대와 40년대,50년대를 겪는 동안 중국인에게 민족의 긍지와 광명의 추구를 절규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서를 비장하게 무장시켰던 시인이다.특히 30년대,그의 출세작인 ‘따옌허,나의 유모여!’를 비롯해 ‘북방’‘횃불’‘태양에게’‘눈은 중국의 대지에 내리고 있다’‘거지’‘나는 이땅을 사랑한다’‘나팔수’ 등 중일전쟁때의 작품들은 모든 중국인에게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었던 민족의 감동이었다. 방려에서 서쪽으로 5리 남짓.편편한 농촌으로 차를 돌렸다.여기가 ‘반전장’이다.애청의 본명 장해징대로 여기는 장씨의 집성촌이다. 그는 여기 장씨 마을에서 대농이요,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8년 항주의 국립미술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8년동안 살았다. ○대농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차가 이윽고 마을 복판에 있는 공터에 닿았다.바로 그 앞 2층집 하얀 흙벽 까만 대문위에 ‘애청고거’라는 글씨가 붙어있다.필자는 왈칵 치미는 감개에 목이 메었다.우선 생전에 깊었던 교분때문이요,다음은 최근 10년동안 그는 매년 10월마다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던 석패의 주인공이었다는 점, 거기다가 그는 지방 토호의 아들이요,전위적인 화가였고,애국적인 당원이었지만 한 평생 울분과 불우속에 살다 간 비국의 화신이었다.사실 필자는 그의 뜨거운 눈물을 여러차례 보았다.다만 그의 만년이 순풍이었지만 그것은 욕된 안일이었다. 애청은 출생과 함께 미신의 희생물이었다.그의 명줄이 짧아서 남에게 출양해야 오래 산다는 점쟁이 말대로 그는 장씨 마을에서 10리쯤 떨어진 따옌허(대언하)’라는 빈촌,거기서 빈농으로 살아가는 조(1878∼1924)씨라는 아낙네에게 4년을 입양,다섯살때에야 부모의 슬하로 돌아왔다. 또 한번의 울분,1932년,그가 상해에서 ‘중국좌익미술가연맹’에 가입,‘춘지예술사’를 조직했다가 국민당 정부에 체포,4년이나 옥살이한 것이다.그는 비록 옥중에서 그의 출세작 ‘따옌허­나의 유모’등 많은 명작을 썼지만 국민당에 대한 설원이 깊어 그의 필명을 ‘애청’으로 정했는데 바로 애자는 국민당의 수령인 장개석의 장씨 그 초두를 가위표로 부정한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4년동안 옥살이도 또 한번은 중공이 건국한 뒤,‘중국문학예술가연맹’을 발족하고 중국 대표적인 문학지인 ‘인민문학’이나 ‘시간’ 등을 창간하고 그를 편집하는 등 활동을 펴던 1957년 뜻밖에 우파로 몰려 1978년 복권되기까지 20여년 흑룡강·신강 등 변방지역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다. 필자는 문안으로 들어섰다.목조 2층,약 80평의 생가는 입구자 구조,작은 마당 복판에는 우물,우물가 건넌방이 애청의 공부방이란다.그때 쓰던 홍목 책상과 걸상이 당년의 부잣집 흔적임이 역연했지만 벌써 70여년전 소년 장해징의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지 들리는 듯했다. 애청의 생가를 나와 뒷 터로 나갔다.거기는 커다란 연못에 500∼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인양 서있다.애청의 시집속에 나오는 ‘두그루 나무’나 애청의 그림속에 자주 나오는 고목이 바로 여기서부터 얻은 시상이요,화상임을 확인했다. ○무덤엔 황량한 풀더미만… 실상 필자가 애청의 생가를 찾은 것은 애청 문학의 발화점인 따옌허를 찾기 위해서였다.따옌허는 애청 유모가 살던 고을 이름이요,동시에 애청 유모의 이름이기도 했다.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시집온 아낙네를 그 친정 고을로 부르는 택호를 썼기 때문이다. 그 따옌허는 농촌 개조로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현지의 말때문에 그만 두고 그대신 따옌허의 무덤이 생가에서 불과 5리 떨어진 논가 작은 언덕에 있다는 것이다.귀가 번쩍 트였다.사실 말이지 따옌허같은 여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애청은 없었을지 모른다.애청이 그녀의 젖을 먹고 그녀의 두꺼비같은 손으로 지어준 밥을 먹고 자랐기에 겨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 무덤은 황량한 풀더미였다.하지만 그의 ‘대연하지묘’라는 묘표와 ‘따옌허는 나의 유모입니다.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하는 비명이 모두 당대 최고의 시인 애청의 친필로 세워졌다는 사실도 필자를 감동시켰다.
  • 이한동 고문 전·노씨 옥중면회

    ◎보수대표 이미지 제고·구여권 결집 겨냥/이틀간 대구 방문 앞서 TK 민심 돌리기 신한국당 이한동 고문이 17일 구속 수감중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면회했다.여권의 8용중에서는 처음이다.그만큼 전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이고문은 전전대통령 밑에서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노 전 대통령 아래서는 내무부장관과 원내총무를 지냈다.한때 모셨던 주군을 찾아보는 것은 하등 이상할게 없다.그러나 당내경선전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전·노씨를 방문한 것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사면과 관련,긍정과 부정이 혼재되고 있는 상황이다.따라서 이고문의 구치소 방문은 얻는게 있는 만큼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유일한 보수대표로서의 이미지 제고와 함께 구여권세력의 결집에 상당한 효험을 발휘할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전체의 60%에 달하는 민정계 대의원들을 한데 묶는 것은 물론 민정계 모임인 「나라회」가 지지후보를 결정하는데도 압박카드로 작용하리란 계산이다.나라회는 전반적으로 이회창 대표쪽으로 기운 가운데서도 이대표와 이고문 사이에서 저울질이 한창이다.따라서 나라회가 자신을 지지케 하는 「외곽때리기」 전법의 하나로 전·노씨 면회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또 18,19일 이틀동안의 대구 방문에 앞서 그쪽의 민심 어우르기 차원도 감안했을 것이다. 이날 면회에서 전·노씨는 이고문에게 『경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고 이고문은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국민통합을 위한 포용과 화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 동경성의 대종교(송화강 5천리:27)

    ◎발해 도읍지서 꽃핀 민족종교/1930년대 본거지 구축… 동북3성서 독립운동/발해농장·이상촌 건립… 조선족에 살길 열어/단군섬이던 교인들은 일제탄압에 뿔불이/자금난 본떠 만든 궁궐터엔 깨진 기왓장만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은 해동성국으로 일컬었던 발해국에서 따온 지명이다.발해역사 229년동안 두 번이나 도읍지가 되었던 상경용천부는 바로 발해진에 있다.동경성이라고도 불리는 상경용천부의 도성은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서 조영했다는 것이다.장방형을 이룬 도성은 외성과 내성,궁성을 갖추었다. ○궁궐터를 밭으로 개간 오늘날 남아있는 외성에는 버드나무가 길길이 자라 숲이 되었다.북쪽 외성의 길이는 5.5㎞,남쪽 길이는 5㎞,동서 길이 3.5㎞에 달했다.외성안에는 마차가 다니는 80m의 거리가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당나라 장안을 방불케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이야기다.그리고 내성 역시 장방형으로 그 둘레가 4.5㎞에 이르고 있다.당시 삼성육부가 자리잡았던 내성에는 성터와 금원자리가 그런대로 남았다.이른바 어화원이라고도 하는 2만㎡의금원 자리에는 인공못과 조산흔적이 아직도 보인다. 궁성의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궁성의 남문인 오문은 그 흔적이 뚜렷하다.오봉루로 더 널리 알려진 오문은 누각만이 없을뿐 높이 6m,너비 20m 규모로 잘 복원되었다.오문 북쪽 5개의 궁전터에는 크나큰 주춧돌만이 잡초속에 묻혔다.16부 130개 현을 호령했던 왕실의 권력이 오간데가 없는 이 황성을 누가 자금성이라 했던가.가장 큰 궁전터 동쪽에는 팔보 유리정이 있다.왕이 마신 어수가 솟아올랐다는 이 샘의 석축에는 이끼가 창연하다. 용천부를 두루 밟노라면 허무한 생각이 가슴에 쌓인다.세월과 함께 모든 영화가 사라진 궁궐 옛 터전에는 깨어진 기왓장만 나뒹군다.그래도 누군가가 궁궐터를 밭으로 부쳐서 여름이면 옥수수가 검푸르게 자랐다.이 땅은 발해 이전에는 고구려 강토였고,더 올라가면 고조선의 영토였다.청나라때인 강희16년(1677년)에는 청조의 발상지라는 이유로 봉금구가 되어 인적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변경민들이 사선을 넘나들었다.새벽에 강을 건너 농사를 짓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조선인들을 더이상 막을수 없게 된 청조는 이른바 「혼춘영고탑초간장정」을 반포했다.이는 조선족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는데,영고탑은 오늘날 행정구역상으로는 혼춘이 아니라 발해진에서 15㎞에 불과한 영안시에 있다.그래서 1889년께 이 일대에 조선개간민촌 고려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려영은 주로 영고탑성향으로 형성되었다. ○1889년에 고려영 형성 그 당시 조선인은 1천200∼1천400명이었다.이후 조선민은 더 늘어나 1930년에는 3천88명,1932년에는 1만2천767명을 기록했다.이들은 바로 중국 동북3성에서 독립운동을 거의 주도한 대종교의 기반이 되었다.그러다 대종교는 1911년 길림성 화룡시 용성향 청호촌을 거쳐 1920년에는 흑룡강성 밀산시 당백진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다녔다.1928년에 다시 흑룡강성 영안시 남관으로 들어온 대종교 본부는 1934년 발해의 옛 읍지인 영안시 발해진 동경성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대종교는 총본사를 동경성으로 옮기면서 조직과 기구를 정비했다.3·1학원을 세우고 발해왕궁터 바로 남쪽에 천진전을지었다.교주는 윤단애 선생이었다.그 무렵에 조만춘이라는 사람이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그런데 조만춘이 만주국 사법과 밀정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그의 밀고로 대종교 요원들이 모두 체포되었다.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하는데,영안시 삼량향 남향촌의 이인희옹(70)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그는 대종교 주요 멤버였던 이수원의 손자다. 『우리집은 대종교 총본사와 200m 밖에 떨어지지 않았디요.아침에 깨어보니 할아버지께서 본사에 다녀오신 모양입데다.그리고 나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일제가 동원한 경찰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디요.할아버지께서는 옷을 챙겨 입으시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식구들이 울면서 만류했디 않았겠습네까.다 잡혀갔으니끼리 뒤에 수습을 하셔야 된다고….그래서 피신을 하셨디요.식구들은 대종교 서적과 서류를 마대에 넣어 한족집에 맡기는 것도 보았디요』 단군을 섬긴 대종교인들은 거의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다.영안시 동신촌 이병조(72)의 부친 이련건도 그런 분이었다.일제의 주구 조만춘의 유혹도 뿌리친 그는 옥중에서 동지들한테 보낸 한시에서 이런 구절을 남겼다.「발해성터에서/무엇을 해야 할꼬/나라일 걱정에/하룻밤이 일년 같구나」.나라를 잃고 독립을 위해 망명지에서 어렵사리 살았던 우국지사들의 고뇌가 엿보였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933년 동경성에 정착한 대종교 요인이다.동만농장 토지를 사서 발해농장을 꾸리기도 했다.당시 논을 개간하며 쌓은 둑은 지금의 아보저수지에 묻혀버렸지만,그가 「발해농장」간판을 걸었던 건물의 잔영은 남아있다.발해진 상경로 17호 발해진청사에 절반쯤 남은 건물이 그것이다. ○격변의 세월 한족촌 탈바꿈 안희제 선생은 임오교변으로 체포되었다가 이듬해 8월3일 병보석을 받았다.그러나 감옥문을 나선뒤 세상을 떴다.그는 동경성일대의 조선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생전에 많은 추앙을 받았다.그와 더불어 추앙을 받았던 인물을 더 꼽으라면 김소래 선생이 있다.반일투사이자 교육가인 선생은 1928년 오늘의 영안시 와룡향 홍기임장에 이상촌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바뀌어 한족들이 그 자리에 살고있다.김소래 선생을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본래가 조선족 이상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를만큼 변해버렸다.지금 임장사무실로 쓰는 건물 뒤쪽으로 흐르는 실개천 건너의 언덕이 선생의 집자리였다고 한다.물론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그보다 더 애석한 일은 선생의 유해가 묻힌 묘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아마도 묵묘로 남았다가 세상이 바뀌어 자취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김소래 선생은 1933년에 피살되었다.선생은 피살전에 죽음을 예견했는지 몰라도 책과 서류를 산속 동굴에 감추었다고 한다.그런데 광복후 사냥꾼 이기송이 집으로 가져왔으나,마을 사람들이 담배를 말아 피우는 종이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발해 도읍지의 독립운동사는 그렇게 역사 뒤안으로 사라졌다.
  • 진보문학단체 「기사」의 무대 송강(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7)

    ◎항청투쟁 불지른 저항시인의 한맺힌 절규…/소곤산 자락끝 하윤이부자 무덤 비석 외로이/“항청복국” 부르짖던 옥중시 4백편 그날을 증언 들 넓고 물 많은 땅에 배 따뜻하면 무슨 근심이겠냐고 하지만 꼭 그런 법만은 아니다.명말때 문학의 실용성과 현실성,그리고 반만청의 혁명에 참여,장렬하게 희생당했던 「복사」나 「기사」 등의 문학단체들은 바로 상해를 중심한 남북근교,곧 태창·곤산·송강 등지의 시인이었고,뒷날 반만청과 반봉건을 주창했던 문학의 진보단체 「남사」가 또한 소주와 오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그곳들은 일망무진의 평원이라서 풍요로운 곡창이요,바다가 가까워서 근대화의 전진기지였다. 그중에도 「기사」의 성원들인 진자룡(1608∼1647),하윤이(1596∼1645),하완순(1631∼1647) 등은 모두 송강 사람이요,따라서 기사의 무대는 송강인 것이다. 상해시에서 서남쪽으로 30㎞쯤 벗어나는 곳,송강은 옛날 화정·운간·곡수·송릉·입택 등으로 불리웠는데 모두 시정이 물씬하다.상해의 근교라서 근대의 문물을 타고 중국 최초의 천문대와 중국 최대의 성당으로 사산 천주당이 있는가하면 서진때의 유명한 평론가 육기와 명나라때 서예가 동기창이 모두 여기 사람인데다 중화민국국부였던 손문이 그의 혁명단체 「동맹회」의 전국총회를 소집했던 곳도 바로 송강시내에 있는 명청대의 원림 취백지의 설해당이었다. 송강의 문단 맥락이나 산수 경개도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1934년 편찬한 「중국문학가사전」에 수록된 송강 출신의 문인이 90명이요,「중국미술가인명사전」에 수록된 미술가가 586명이라는 통계만으로도 문학예술의 맥을 알겠거니와 송강에는 봉황산,육보산,사산·소곤산 등 9봉이 있고,원림이 상기한 취백지말고 강남의 으뜸이라는 방탑원이 있다. 그럼에도 숭정초(1628∼) 이 고장에서 발족된 「기사),그 주요시인은 한결같이 장렬하게 순국했다.태창·곤산지역에서 먼저 발족된 「복사」처럼 명나라 초엽 소위 「전후7자」의 복고운동을 계승한 동인이다.그를 「기사」로 일컬음은 바로 「끊겨진 학문을 재기하는 기틀(기)」이란 뜻이었다.그러나 그들은 진보적이었다.정치의 진화를 강조하면서 민족의 단결을 호소했다.그래서 현실을 반영하는데 문학의 족쇄를 풀었고 만청에 항거하여 순국의 시를 쓰다가 그 저항은 강희연간까지 불길을 지폈다. 「기사」의 맏형격인 하윤이는 한때 복건의 장락지현을 살았건만 기사를 창립,청병이 침노하자 울분끝에 투신 자살했고,「복사」의 후기수령인 진자룡은 「기사」를 창설 주도하고 그의 웅혼하면서도 창량한 시를 무기로 항청 투쟁에 참여했다.그는 명나라의 멸망과 함께 강남 각지를 전전하면서 의병 투쟁을 벌이다 소주에서 피체,남경으로 압송 도중,하윤이처럼 강물에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하윤이의 아들 하완순은 나이 겨우 13살로 진자룡의 의병을 따르다가 청군에게 피체,열여섯 꽃같은 나이로 처형당했는데 그는 법정에서 최후까지 오랑캐들의 만행을 규탄했다. 더욱 놀랄 일은 하완순이 어린 나이임에도 영웅열사를 가송하거나 항청복국을 절규하는 옥중시를 4백편이나 남겼는데 그가 청군에게 압송될 때 그의 향리를 마지막 작별하면서 썼던 「운간을 이별하며」는 천고의 절창이다.「삼연기여객,금일우남관. 무한산하누,수언천지관. 이지천노근,욕별고향난. 의백귀래일,영기공제간.」 「3년을 타관 떠돌다가/이제는 또 한번 옥 살이. 저 산하가 모두 눈물인걸/누가 이 천지를 넓다하랴! 이제 가면 황천길이지만/고향 떠나기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 젊음,넋으로 돌아오는 날/하늘가에 가물거릴 혼령의 깃발이여!」 참으로 장렬했다.한낱 열여섯살 소년 시인의 목숨이 이토록 아름답게 메아리 칠 줄이야. 그들 부자는 나란히 묻혔다.송강서 서북쪽 13㎞쯤 소곤산 낮은 산자락 저 끄트머리 양지쪽 탕만촌뒤에 쓸쓸히 묻혔다.비록 그 동남쪽에 수수라는 작은 시내가 굽이 돌았지만 그들의 넋을 위로할만한 여울이 들리거나 솔바람 소리조차 스쳐가지 않았다.쓸쓸한건 하윤이 부자의 무덤만 아니다.서진때의 대시인이요,대평론가였던 육기와 그 아우 육운이 여기 소곤산 양지쪽에 살았다는데 아무런 자취도 찾을 길이 없다. 진자룡의 무덤은 훨씬 화려했다.역시 송강에서 서북쪽으로 10여㎞쯤 진산 못미쳐 왼쪽으로 광부림이라는 마을,그 동쪽 평지에 동향으로 앉았는데 그는 청나라 건융때 충유라는 시호를 얻은데다 묘비에 묘전,묘정등 세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 「기사」의 장렬했던 시인들,그 무덤들을 순례하고 다시 송강으로 돌아왔다.그 유명한 방탑원과 취백지를 한바퀴 돌아야만 했다.어쩌면 「기사」들의 족적이 거기에 남았을지도 몰라서였다. 송강시 중산동로에 자리한 방탑원은 중국 강남에서 손꼽는 원림이다.그 안에는 북송,1068년에서 1094년 사이에 세운 높이 42.5m,누각형 9층의 전목을 함께 쓴 방탑을 비롯,명나라 홍무 3년(1370),방탑의 북쪽에 세운 도교의 부조로 새긴 조벽,그리고 방탑의 3층에 그려진 송대의 불상화와 송교 등이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 날씬한 몸매에 펄럭이는 치마 모양의 방탑,더구나 서북쪽으로 약간 기우뚱하여 언젠가 피사의 탑을 닮을지 모를 방탑과 용의 대가리에 사자의 꼬리,소의 몸통에 사슴의 발톱에 기린의 비늘을 지닌 탐이라는 괴수가 세상의 보배를 지니고도 모자라 하늘의 해를 삼키려 쫓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마는 그 부조가 인상적이다.그런가하면 단 한장 널찍한 화강석으로 덮개를 삼은 송교와 찰랑하게 물이 찬 연당을 살짝 덮도록 가설된 널찍한 부석교는 고전미와 현대미를 융합했다. 청대 초엽,당시의 부호 고대신이란 사람이 백낙천을 흠모하는 뜻으로 시공했다는 또 하나의 원림인 「취백지」도 운취가 그윽했는데 이러한 경개가 시인을 기르고 「기사」를 형성했는지도 몰랐다.
  • 시집에도 없는 1945∼55년 작품/잊혀진 미당의 시 15편

    ◎국문학자 최현식씨,「밤」·「눈」·「통곡」 등 논문서 소개 「민족 방언의 요술사」「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한국시의 최고봉 미당 서정주씨(82)의 시가운데 시집을 통해 접할수 없었던 시들이 새롭게 발굴됐다.국문학자 최현식씨(연대 박사과정)가 2월 창간될 계간 「한국문학평론」에 기고한 논문 「전통의 변용과 현실의 굴절」을 통해 지난 1945∼55년 발표된 미당의 시가운데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채 잊혀진 15편을 소개한 것. 이 시들은 「개벽」「현대문학」 등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수록됐으나 스크랩 등 자료로 남지 않아 그의 시집이나 전집 등에 실리지 못했던 것. 새로 발굴된 작품은 「밤」「눈」「통곡」「피」「저녁노을처럼」「선덕여왕찬」「춘향옥중가(3)」「백옥누부」「곰」「그날」「깐듸송가」「팔월십오일에」「영도일지(대)」「일선행차중」「산중문답」 등.이 작품들은 41년 발표된 첫시집 「화사집」의 원죄의식에서 60년대 「신라초」「동천」 등의 동양적 윤회와 영원성으로 이행한 미당 시세계를 이해하는데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있을것을…… 서 있을것을……//구부러져 내리는 나무 그늘에/맨발 벗고 서 있을것을//푸른 지식의 잎사귀들이/하늘에서 처럼 소근거리는/나무 그늘에 서 있을것을/오르 내리는 맥박을 세며/높았다 낮아지는 숨결을 세며/물이랑 위에 떠서 있듯이/호수운 사람으로 서 있을것을 //금줄의 근네위에 서 있을것을//누었을 것을…… 누었을것을……/어둡고 무거운 밤하늘 아래/누른 소같이 누어 있을것을/입에다 너을 여물도 풀도 없이/아귀 삭이고 누었을것을/이리도 쉽게 헤어져야할/우리들의 사랑이었더라면/만나서 반가워 소리쳐 우던 날의/통곡을 통곡을 그치지말것을!〉(통곡전문.46년 12월 「해동공론」 수록)
  • 「판소리 3대가」 창극 무대/춘향·흥보·심청가 주요장면

    ◎14∼21일 국립극장서 대향연 감칠맛 나는 우리 판소리의 고갱이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국립창극단(단장 전황)이 96송년공연으로 펼치는 「창극대향연」(14∼21일,국립극장 소극장).「춘향가」,「흥보가」,「심청가」등 판소리 3대가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골라 가무극인 창극으로 꾸며 선보이는 무대이다. 올해 국립창극단이 실시한 판소리 다섯마당 완창무대의 앙코르공연. 「춘향가」에서는 「갈가부다∼」로 시작되는,춘향가의 백미 「옥중가」대목과 이도령이 춘향모 월매와 만나는 대목 등 극적인 장면들이 소개된다.또 「흥보가」에서는 놀보가 마당쇠에게 글 가르치는 우스꽝스런 대목과 흥보 박타는 대목,놀보 제비다리 부러뜨리는 대목 등 놀보와 흥보의 극명한 성격차를 엿볼수 있는 장면들이 선보인다.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와 뺑덕어멈이 만나는 대목,심봉사가 맹인잔치에서 심청과 상봉하는 대목 등 희극·비극의 엇갈린 장면들이 소개된다. 국립창극단은 그동안 여러차례 공연됐던 대본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각색,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도록 무대를 꾸몄다. 연출은 지난 94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흥보가」의 연출을 맡았던 심희만씨,작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한상일씨가 각각 맡았다.창지도는 국립창극단 지도위원인 김영자명창,무용안무는 국립무용단 수석단원인 윤상진씨. 심청역에 안숙선,심봉사 역에 최영길,뺑덕어멈 역에 김경숙,황봉사역에 윤충일,춘향역에 나태옥,이몽룡역에 왕기석,월매역에 김영자 등 중견 소리꾼들이 출연한다.이밖에 강정자 정순임 김학용 등 젊은 소리꾼들의 신선함도 곁들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