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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0)’민중교육’지 사건

    1985년 2월12일 치러진 제12대 총선은 학생과 민주화 운동권의 적극적인 참여로 야당인 신민당 선풍 현상을 일으켜 제1당으로 부상시켰다.대학생들은서울의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사건(5월23일)을 계기로 반군부 독재 운동을 격화시키기 시작했다.문공부는 봄부터 ‘김대중 옥중 서신’‘타는 목마름으로’ 등을 압수 수색했고,7월에는 민중미술 ‘힘전’전시회를 중단시켰다.집권 민정당은 이종찬(당시 여당 원내총무)의원을 비롯한 온건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문 11조 부칙 3항으로 된 학원안정법을 마련하여 여름 방학때 통과 시키려했다.세칭 학원 안정법 파동의 시작이었다.학원 소요나 집회시위 등 시국 관련법 위반 학생에게 재판 없이 검사가 ‘선도’처분을 내릴수 있다는 내용이 그 골자였다.학원 안정법 통과를 위한 여론의 세몰이 회오리 속에서 끔찍한 필화사건 하나가 속죄양으로 떠올랐다.바로 ‘민중교육지사건이었다. 시인 김진경(당시 양정고 교사,현 한국교육 연구소 연구위원)은 ‘오월시’동인으로 함께 참여했던 윤재철(성동고 교사.지난 9월 복직),고광헌(선일여고 교사,현 한겨레신문 문화부장)과 함께 1984년 초부터 문학을 통한 교육개혁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무크지 ‘민중교육’ 창간작업에 들어갔다.서울을 중심으로 주요 지방까지도 망라할 수 있는 참여교사 조직을 만든 후 ‘민중교육’이 실천문학사에서 선보인 것은 1985년 5월이었다. 교육 관련 논문과 시평 및 시·소설·수필·현장의 목소리·서평·학생들의작품·번역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담아낸 이 무크지는 곧 사회의 화제로떠올라 주목을 받게 되었다.특히 김성재(당시 한신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유상덕(성동고 교사),심성보(보성중 교사,현 대구 교대 교수),임은경(서울대 사대 학생,현 교사) 등이 참여한 권두좌담 ‘분단 상황과 교육의 비인간화’와,특집 ‘교육의 민주화’(집필 김진경·윤재철·이철국·심임섭·이규환),교육 시평 ‘스포츠문화와 학교 교육’(고광헌) 등은 한국 교육의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 해준 글들이란 평을 들었다. “교육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명제죠.또 그것은 자율성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의 온갖 제도·구조·가치관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변혁의 기능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인간은 사회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부단히인간다움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두가지 큰 목적”(27쪽)이라는 기본 정신을 내세운 이 무크지는 그 인기의 상승도와 함께 기존 교육계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윤재철 시인이 밝힌 바(‘교육 민주화의 횃불’)에 따르면 “책이 나온 한달 뒤인 6월 25일 경 서울 여의도고교 교장이 ‘민중교육’지가 불온하다며서울시 교위 학무국장에게 책자를 전달하고,학무국장은 그것을 시 교위 담당 안기부 조정관에게 내용의 검토를 의뢰함으로써 비롯되었다”(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분단시대의 피고들’ 398쪽)고 한다. 이어 관련 교사들의 언동을 관찰하는 등 내부 단속을 펴다가 7월18일부터 경찰에서 소환하기 시작했다.때를 맞춰 문교부의 보도의뢰에 따라 텔리비전들은 ‘민중교육’지가 학생운동 조직이었던 삼민투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뒤,7월31일(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 기자회견에서 학원 사태를 해결코자 법률 보완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그날)에는 각 교위를 통해 관련교사를 파면 등 중징계 하도록 하달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대한시론] 安重根 의사 의거 90주년

    이달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伊藤博文)를 ‘포살’한지 꼭 90년이 되는 날이다.그의 의거는 당시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세계를긴장시켰다. 안 의사의 의거는 20세기 초,동아시아가 일제의 침략적 야욕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전개되었다.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하려던 야욕을 노골화하였다.1907년부터 일본과 러시아는 한국만주 외몽고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는데,그 일괄타결을 위해 1909년 10월말하얼빈에서 이토와 러시아 재무상 코코후초프 사이에 회담이 계획돼 있었다. 이 회담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분할을 논의할 참이었다.또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그간 한일간에 맺은 제반협약을 확인시켜 기정사실화하려 했고,러시아는 일본으로부터 외몽고에 대한 러시아의 복수이권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런 시점에서 10월 26일 아침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는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의장대의 사열을 받다가 안 의사에게 포살된 것이다.안 의사는 곧 체포돼 적법하지 못한 재판에서 사형에 언도되고 여순감옥에서 복역중 1910년 3월26일,거사한지 꼭 5개월만에 순국하였다. 그는 옥중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의연한 자세로 의거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그러나 일제가 사형을 조기집행하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안 의사는 이 글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일제의 침략논리를 반박하였다. 올해로 안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대의를 결행한 지 꼭 90년이 되지만,의거지를 돌아보는 이들은 아직 그곳에 기념표지 하나 세우지 않은 후예들의무성의를 부끄러워 한다.일제하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넘었건만 남북의 정권들은 이제껏 그 역사적인 유적지에 한 점의 표지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이 자기의 영토 안에 그런 기념물을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변명되지 않는다.안의사의 의거가 한국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 중국의 반제운동사에도 큰 충격과 파장을 미쳤던 만큼 항일 반제의연대를 굳건히 한다는 점에서 중국정부를 설득,기념물을 건립했어야 했다.이런 점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있을 때 왜 그런 기념물 하나를 남길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그 뿐인가.내년 3월 26일이면 안 의사가 순국한지 꼭 90년이 된다.그는 순국하기에 앞서 그의 두 동생에게 조국광복이 이루어질 때 유해를 고국으로옮기라는 유언을 남겼다.그런데도 아직 그의 무덤이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남북 당국은 중국의 비협조를 핑계대면서 자신들의 무성의를 합리화했고,상대방이 안 의사의 유해를 어떻게 하지 않나,서로 의심만 하면서 중국정부를상대로 남북한이 합의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정말 부끄럽고 한심한 작태다.국권이 회복됐으면 가장 먼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유해를찾아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 후손들의 마땅한 도리이거늘,남북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와 정통성 과시에 도움이 되는데만 선열의 유해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남북은 안 의사 의거지 기념사업과 그의 유해발굴을 위해서라도 함께의논하여 합의된 의견을 가지고 중국정부를 상대로 교섭해야 한다.이것은 중국이 안 의사의 의거지 기념사업과 유해발굴 문제를 두고 더이상 남북한의눈치를 보거나 저울질하는 자세를 갖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도 있다.남북한이 안 의사 문제를 두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면,중국과의 교섭통로를 단일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이 일이 실마리가 되어 남북의 논의구조가 해외에있는 다른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와 선열들의 유해발굴 보존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면,아직도 조국의 안식처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을 헤매는 선열의혼령들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안 의사는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인들도 숭모하고 있다.안 의사의거지에 기념물을 세우고 그의 유해를 찾아내는 데에 남북한 당국이 계속무성의하게 대처한다면,중국이나 일본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벌이는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이런 연대는 20세기 초반 동아시아에서 풍미했던 침략주의 강권주의가 더이상 기를 펴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안 의사가 주장했던 한중일 3국이 평등과 호혜를 기초로 한 진정한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대한생명 법정분쟁 일단락 이후

    지난달 30일 대한생명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둘러싸고 두 달여를 끌어온법정 분쟁이 마무리됨에 따라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될 전망이다.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이 법원 판결에 불복,항소를 준비하고는 있으나 판결내용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 의미 금융감독위원회의 부실금융기관 지정과 감자명령은 정당하며 최 회장의 사적(私的) 이익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이는 정부의 대한생명 경영정상화 계획이 정당하며,최 회장은 주주권을 박탈해 부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최 회장은 ‘감자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당한 데 이어 본안 판결에서도 패소해 더 이상 ‘옥중반란’을 꿈꿀 여지가 없어졌다. ?향후 일정 금감위는 이날 대한생명 임원에 대해 업무집행정지 명령을 내리고 관리인단을 선임키로 결정했다.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돼 기존 주식의 무상소각과 500억원 증자결의가 이뤄진다.대한생명의 부실 규모는 2조7,000억원 정도인데 금감위는 절반인 1조3,500억원 이상을출자해 주도록 예금보험공사에 요청할 계획이다.구체적인 출자 규모는 예금보험공사의 자산·부채실사 작업 후 결정된다.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한생명은 새로운 대표이사와 경영진을 구성하고 신동아건설 등 부실계열사 정리에 본격 나서게 된다.신동아화재를 대한생명에서 분리매각해 부실을 메울 예정이며,신동아그룹 계열 부실계열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대한생명을 깨끗한 보험사로 만들 방침이다. 곽태헌기자 tiger@
  • 金대통령 ‘국민속으로’ 행보 가속

    지방휴양소인 청남대에서 3박4일동안 머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6일 귀경길에 추석연휴 구상의 단초를 읽을 수 있는 행보를 선보였다.용인시 묘봉중리 선영에 성묘한 뒤 인근 벼세우기 현장을 방문,태풍으로 피해를 본 농민들을 위로하고 지원에 나선 군장병과 용인시청 공무원들을 격려했다.또 지난여름 수재를 당한 경기북부와 강원지역의 복구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관계부처에 주문하는 것도 잊지않았다. 9월 한달동안 이뤄진 민생현장 방문과 연관지으면 ‘중산층·서민에 가까이다가서는 DJ’의 일면으로 정리할 수 있다. 金대통령은 지난 3일 서울 경덕전자 방문을 시작으로 9일 남대문시장과 용산의 농협상가인 하나로마트,22일여의도의 실향민 가정 및 장애어린이 보호시설과 파출소을 살펴보았고 23일에는 귀성객들로 붐비는 서울역과 서진전자를 방문했다. 이달에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과 뉴질랜드·호주 국빈방문과추석 연휴 등이 겹친 것을 감안하면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는 현장확인 행정에 김대통령이 어느 정도 심혈을 기울이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청남대에 머물며 청와대 수석을 비롯,외부인사는 거의 만나지않고 산책과 독서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청남대의 배나무에서 손수 배를 수확하기도 했다고 한다.특히‘대통령 링컨’이라는 전기소설과 지난 여름휴가 때 못다 읽은 ‘맹자’,자신의 저서 ‘옥중서신’을 읽었다고 박대변인은 밝혔다.링컨전기는 남북전쟁의 국난기에 보여준 링컨의 리더십과 정책 등을 소개하고 있고 옥중서신에는개혁에 대한 金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로 미루어 김대통령의 앞으로 행보는 재벌 및 정치개혁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민 속으로’의정치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경제프리즘] 실패를 위한 ‘3중창’

    서울 행정법원이 지난 21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한생명은일단 경영정상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하지만 대한생명 사태를보면 좋지 않은 것들이 모두 종합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정부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대한생명을 제3자에게 제때 처분했더라면 일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다.하지만 5대그룹도 대한생명을 인수할 수 있다고 했다가 제외한다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했다.대표적인 정책혼선의 사례다.또 매각에 실패하자 최순영(崔淳永) 신동아그룹 회장측에 의견진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감자(減資)명령을 내렸다.마냥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시간만 지연시킨 셈이다. 물론 최 회장이 잘한 것은 없다.회사를 부실덩어리로 만들었으면서도 경영권을 지키기에만 혈안이 됐다.옥중에서도 계속 저항해 경영정상화 시기만 늦춘 꼴이다.대한생명 직원들의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다.이들은 그동안 정부와 최 회장측 사이에서 눈치만 봤다.좋게 말하면 중립이지만 눈치보기나 마찬가지다.금감위가 지난 3일 “잘못될 경우에는 계약이전 명령방식으로 퇴출시키겠다”는 원칙을 제시하자 그때서야 정부 편을 들고 나왔다.직원들이 처음부터 정부 입장을 지지했다면 행정법원은 지난 달에 이미 금감위의 손을 들어줬을 지도 모른다.결국 대한생명 사태는 정부와 최회장,직원 간의 ‘좋지않은 합작품’으로 부채만 늘린 결과를 가져왔다.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대한생명 사태는 우리나라 행정학자들의 대표적인 사례연구감이 아닐까. 곽태헌기자
  • [매체비평] 재연된 우리언론의 ‘냄비보도’ 행태

    한일관계에서 반일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는 우리나라 언론이 가장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는 아이템 중의 하나이다.각 신문들이 거의 보름동안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김희로)씨 석방과 입국에 관한 소식으로 사회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독자들은 한일 양국간에 권씨의 석방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권씨가 무슨 옷과 신발을 신고,몇시 몇분에 어떤 비행기를 타고 입국할 것이며,비행기 안에서는 무엇을 먹게 되는지 따위의 소식에 압도당했다.또 권씨가 묵을 호텔과 국내에서 지낼 아파트 주소,귀국후의상세한 일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자상하게 알려주었다.그래놓고는일본 야쿠자들의 테러위협을 부풀리면서 권씨의 안전을 걱정했다. ‘민족감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편집은 중앙일보에서 두드러졌다.이 신문의 8월27일자에는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당당히 서있는 권희로씨의 전신사진을 싣고 지면 윗쪽에는 ‘(김희로씨) 일본 용서’,아래쪽에는 ‘일(日)선 보복’이라는 제목의 상자기사를배치했다. 다음날에는 또 대비 편집 기법을 사용하여 ‘김희로씨 맞는 두 여심’이라며 위쪽에는 ‘설레는 여인’,아래쪽에는 ‘눈물짓는 여인’이란 제목으로그를 뒷바라지하게 될 사람과 과거 그와 옥중결혼을 했다가 소식이 끊긴 사람을 소개하는 등 여성지를 방불케했다.대대적인 화제거리로 키울 인물에게문제가 있어선 곤란하다.이미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도되면서 권씨는 충분히미화되었다.그는 ‘재일한국인 차별에 항거한 투사’로 표현되고,영웅처럼묘사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언론들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권씨가 미화될 경우의 위험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입국이 임박해지면서 과열보도 경계론이 대두되고 방송사의 생중계가 취소된 것은 단지 한일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서가 아니었다.권희로씨가 화제가 될수록 ‘(차별 고발이라는)목적이 (살인,인질극이란)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당혹스런 결론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이때부터 각 신문들은 ‘권씨를 조용히 맞자’,‘권씨 미화,상업적 이용말아야’라는 사설과 기고를 게재하면서 발을 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후로도 언론들은 권씨 귀국일정을 대서특필했다.행동으로는 권씨에 대한 상업화를 실컷 부추겨놓고,말로는 점잖게 그러면 안된다고 한 셈이다.한동안 호들갑을 떨고 난 뒤 우리언론은 그 여느 사안처럼 권씨를 아마도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다.
  • 金대통령 관련서적 해외출간 잇따라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자서전과 저술이 해외에서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수십년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김 대통령의 철학과 인간적 면모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특히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경제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가는지,경제정책의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김대통령의 저술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로도 풀이된다.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해외에서 출간된 김 대통령의 자서전이나 관련 서적은 모두 8종으로 다음과 같다. ▲일본 센소쇼보(千早書房)출판사 ‘나의 삶 나의길’ 일어판(98년 4월)▲일본 NHK출판사 ‘나의 자서전’ 증보판(98년 9월) ▲중국 외문(外文)출판사 ‘나의 삶 나의길’ 중어판(98년 9월)▲러시아 리퍼블릭출판사 ‘대한민국김대중 대통령’전기 노어판(98년 12월) ▲러시아 리퍼블릭출판사 ‘새로운시작을 위하여’ 노어판(98년 12월) ▲뉴욕 첼시 하우스 퍼블리셔스 ‘세계의 지도자 김대중 대통령’(99년 1월)▲스웨덴 스톡홀름대출판사 ‘옥중서신’스웨덴어판(99년8월)▲중국 중앙민족대학출판사 ‘DJ nomics’ 중어판(99년 8월)양승현기자 yangbak@
  • 초대대통령 유력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저항운동 지도자로,미래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으로확실시되고 있는 사나나 구스마오(52). 7년간의 자카르타 시피낭 감옥생활을 끝내고 오는 8일 석방,동티모르 유엔파견단(UNMET)에 신병이 넘겨질 예정이다.무장독립투사에서 행정대통령으로변모할 그의 향후 변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스마오가 착수할 주 과제는 동티모르 내부의 평화정착및 지도부 형성문제.점차 심화되고 있는 치안상황과 관련,4일 인도네시아 정부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급한 유엔평화유지군 파견을 호소했다.동티모르의치안실태는 구스마오의 신변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저항운동의 2인자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정치운동에 주력해온 주세 라모스 오르타,그리고 평화적 독립운동을 벌여온 펠리페 시메네스 벨로주교와 함께 정부구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그는 초대 대통령 가능성 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더 훌륭한 대통령 후보들이 많다”면서 “그러나 분명하고중요한 것은 동티모르의 평화정착을 위해 모든 파벌및 구성원들이 합심하는일”이라고 말했다. 동티모르에서 태어나 신학교를 졸업한 구스마오는 74년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강제합병하자 무장투쟁에 뛰어들어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지난해 ‘나의 바다 티모르’란 옥중시화집을 내기도 하는 정글속 시인 투사로 알려진 카리스마적인 인물이다. 김수정기자
  • 김희로 수감10주년 성명서 21년만에 공개

    “내가 목숨을 걸고 사건을 일으킨 것은 일본 경찰과 사회로부터 받은 민족적 차별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재일교포 무기수 김희로(金禧老·71)씨가 지난 78년 일본에서 발표했던 성명서가 20여년만인 2일 공개됐다.‘재일교포 김희로 석방 후원회’ 회장 이재현(李在鉉·53·서울 관악구 봉천3동)씨가 공개한 ‘김희로의 어필(appeal)’이란 제목의 성명서에는 김씨가 야쿠자를 살해한 배경을 비롯,어머니와조국에 대한 그리움 등이 애틋하게 담겨져 있다. 성명서는 그해 2월 일본 시즈오카 현민(縣民)회관에서 열린 ‘김희로 사건10주년 시즈오카 시민집회’에서 일본인 가지무라 히데키씨(도쿄 가나카와대교수)가 옥중에 있던 김씨를 대신해 발표했다. 김씨는 성명서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우면서 한민족으로서의 나 자신을되찾았다”면서 “일본의 양심적인 분들 덕분에 편견과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지식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김씨는 “시즈오카현 지방재판소에서 재판장과 검사를 향해 ‘우리 어머니는 당신들의 어머니보다 훨씬 인간적인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던 일이 떠오른다”며 효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金대통령 옥중서한집 스웨덴서도 번역출판

    [파리 연합]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옥중서한집(Prison Writings)’이 지난달 28일 스웨덴 국립 스톡홀름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 의해 스웨덴어로번역,출판됐다.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판에 이어 외국어 번역본으로는 다섯번째가 되는 이번 스웨덴어판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와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전총리의 부인 리스벳 팔메 여사가 서문을 썼다. 아웅산 수지 여사는 서문에서“김 대통령이 미얀마에 공정하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심으려는 우리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고“그의 옥중서한집은 보다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움직임에 상당한 기여가 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또 이번 출판을 주도한 스톡홀름대학 아태연구소 토르비욘 로디엔 교수는“세계적 인권지도자인 김 대통령의 일생과 사상을 북유럽사회에 소개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김 대통령의 독실한 신앙과 가족애를 직접 접하게 되어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 김희로씨 석방 뒷얘기

    재일교포 장기수 김희로(金嬉老·71)씨가 석방되기까지 남모르게 도운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정몽준(鄭夢準) 현대중공업 고문의 밀명을 받고 김씨의 석방을 극비리에 추진한 금강기획의 임삼(林森·67) 고문과,20년 동안 국내에서 구명운동을 펼친 이재현(李在鉉·53·서울 관악구 봉천3동)씨가 그들이다. 정 고문의 일본관계 자문역을 맡고 있는 임 고문은 일본 법무성 등 관계자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임 고문이 정 고문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5일.30년 동안 아들의 석방을 기다려 온 김씨의 노모 박득숙(朴得淑)씨가 숨을 거두었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이다.“자세히 내용을 알아보고 도울 길을 찾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임 고문은 박삼중(朴三中)스님을 찾았고,친분이 있는 일본인 관계자들에게의견을 물었다.자민련 이건개(李健介)의원이 주도하는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협력제도 연구모임’에 도움도 청했다.얼마후 일본인들로부터 “석방을적극 돕겠다”는 대답을 들었고,박스님의 구명 운동도 급진전됐다. 이재현씨가 김씨의 구명운동에 뛰어든 것은 지난 70년.당시 신문을 통해 김씨의 투옥 사연을 보고 ‘또 다른 한국인 차별’이라는 분노를 느꼈다.75년김씨 석방후원회장을 맡은 뒤에는 이발관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거리로 나섰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국회의원 60여명 등 3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옥중에 있는 김씨에게는 200여통의 편지를 보내 위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義烈 독립투쟁] 金祉燮 의사(3)

    ‘동지 여러분 앞.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제(弟)는 288시간만에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참말 지저(地底)의 생활이었습니다.그 속에서 생각할 때에는 이 세상 비애,적막,번민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이 사람의 흉중으로 총집되어 경도광랑(驚濤狂浪)의 소리만 들릴 적에 할 일없이 어서 나와 어복(魚腹)으로 들어가라고 유인하고 최촉하는 공포를 주던 것이 마치 왕생(往生)의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1924년 1월 5일 도쿄 소재 일왕(日王)의 궁성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투척,조선민족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일본에 도착한 후 상하이(上海)의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의 모두 부분이다.무려 12일간을 석탄 운반 화물선의 창고에 몸을 숨긴채 일본에 도착한 김의사는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마치 죽었다 살아 나온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김 의사는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다.20대 청년시절 한때상주보통학교 교원과 금산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으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귀향하여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아 국권회복의길을 강구하였다.이후 김 의사는 만주·연해주·상하이 등을 다니며 독립운동에 전념하였으며 1922년 4월에는 고려공산당에,그 해 여름에는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이중교 의거’에 앞서 김 의사는 1923년 3월 같은 단원인 김시현(金始顯)·유석현(劉錫鉉) 등과 함께 국내에 있는 일제의 침략기관을 파괴하기로 하고 대량의 폭탄을 중국으로부터 국내로 반입하려 했다.그러나 이 계획은 동지로 위장침투한 경기도 경찰부 소속 조선인 경찰 황옥(黃鈺)의 밀고로 실패하고 말았다.김 의사는 다행히 사전에 피하였으나 김시현·유석현 등은 일경(日警)에 체포돼 옥고를 겪었다. 그 해 12월 김 의사는 거사 자금을 마련키 위해 조선인 총독부 판사 백윤화(白允和)에게 5만원을 요구하였다.그러나 백은 요구를 들어줄 듯하다가 결국에는 배신,동지 윤병구(尹炳球)만 체포되고 말았다.백방으로 거사자금 마련을 하던 중 1924년 초 도쿄에서 일본 총리를 비롯하여 조선총독 등이 대거참석하는 ‘제국의회(帝國議會)’가개최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김 의사는 일제 침략주의자들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동지 최윤동(崔允東)에게서 입수한 폭탄 3개와 여비 100원을 준비하여 상하이 포동(浦東)부두에서 도쿄로 향했다.당시 김 의사는 일본인 소유 석탄운반선 천성산환(天城山丸)의 창고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이 과정에는 일본인 공산주의자 히데시마 히데지(秀島廣次)와 선원 고바야시 간이치(小林幹一)·구로시마 리게이(黑島里經)의 도움이 있었다. 1923년 12월 31일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에 도착하여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彦太郞)라는 일본 이름으로 여관에 투숙한 김 의사는 여기서 3일을 보낸후 모포·외투·시계 등을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마련한 다음 도쿄로 향했다.기차 안에서 제국의회가 휴회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 의사는 거사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왕(日王)의 궁성을 폭파키로 결정하였다. 1월 5일 도쿄에 도착한 김 의사는 우선 궁성의 규모·구조를 사전답사한 후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오후 7시경 일본인 관광객과 뒤섞여 이중교 앞으로 접근하자 감시 경찰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더 이상 궁성 쪽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종용하자 김 의사는 일경을 향해 폭탄 한 발을 던지고 재빨리 이중교를 건너 궁성 정문쪽으로 향하였다.이에 궁성 보초병 2명이 달려들며 김 의사에게 총을 겨누자 김 의사는 나머지 폭탄 2발을 일경들이 달려드는 궁성쪽을 향해 연속적으로 던졌다.그러나 김 의사가 던진 폭탄 3발은 모두가 불발이었다.김 의사가 타고온 배는 습기가 많은 화물선이어서 도쿄로 오는 동안폭탄의 화약이 모두 젖어버린 탓이었다.김 의사의 의거로 일본전역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자신들이 ‘신(神)’으로 받드는 일왕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내무차관의 견책에이어 경시총감·경무부장·궁성 경비책임 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파면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히비야(日比谷)경찰서에 구금돼 있던 김 의사는 1924년 9월 9일 열린 공판에서 직업을 묻는 판사에게 “조선 독립당원과 혁명사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였다.또 10월 11일 공판에서는 장문의 ‘진술서’를 통해 일제의 침략정책을 통박한 다음 “이번에 내가 취한 행동은 침략정치에도취된 왜국(倭國)관민을 각성시키고 반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밝혔다. 재판정에서 김 의사는 자신에게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줄 것을 주장하였으나 일제는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1927년 20년으로 감형된 김 의사는 옥중에서도 의거 당시의 의기를 굽히지 않았으나 고문 후유증이 악화돼 이듬해 2월 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 때 김 의사의 나이는 44세였다.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金祉燮 의사 후손 근황 김지섭 의사의 직계 유족으로는 며느리 최수희(崔秀禧·75·대구 거주) 여사와 손자 3형제가 있다.김 의사의 외아들 재휴(在烋)씨는 생전에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94년 78세로 노환으로 작고했다. 김 의사의 손자 3형제는 모두 각자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장손 두현(斗鉉·47)씨는 경북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수재로 현재 전남 여수에거주하고 있는데 독일계 외국인회사인 한국바스프(주)생산부장으로 재직중이다.슬하에 1남1녀. 둘째 손자 광현(洸賢·44)씨는 대학졸업 후 롯데건설에 근무중이며 경기도부천에 거주하고 있다.셋째 손자 기현(己鉉·39)씨는 모친 최 여사를 모시고 대구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장손 두현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며 “할아버님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열심히 살고 있다”면서 “현재 선산에 안장돼 있는 할아버지를 국립묘지로 이장하고싶다”고 말했다. 김 의사의 묘소는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대지동에 자리잡고 있다.김의사를 기리는 기념물로는 경북 안동 영호루에 있는 기념비와 독립기념관 경내 시비(詩碑)가 있다.매년 2월 20일 김 의사 순국일에 추모행사가 거행되고 있으나 별다른 기념사업회는 없는 상태.1962년 김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됐다.정운현기자 jwh59@*日 궁성 어떤 곳인가 일본인들은 그들의 왕이 거주하는 궁성을 ‘황거(皇居)’라고 부른다.수도도쿄(東京)시내 치요다구(千代田區)에 위치한 일본의 왕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권을 잡고 막번체제(幕藩體制·1603∼1867)를 이끌 시기에는 에도성(江戶城)으로,제122대 왕인 메이지(明治·1868∼1912)가 ‘황거’를 교토(京都)에서 옮겨온 이후에는 도쿄성(東京城)으로 불렸다.막번시기에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쇼군(將軍)이 궁성의 주인이었으며 메이지 이후부터는 왕의 거주지가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은 이에야스는 자신의위엄을 살리기 위해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大阪城)보다 훨씬 더 큰 궁성을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따라서 이 궁성은 그의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시대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이같이 오랜 기간 대규모로 축조된 궁성의외부에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해자(垓字·궁성 밖으로 둘러서 판 연못)가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해자는 간다천(神田川)에서 북서방향으로 우시고미·이치가야·요쓰야·아카사카 등을 띠를 두르듯 감싸고 있다.그리고 궁성에는 아카마쓰 성문(파수꾼이 망을 보는 바깥쪽 성문) 등 36개의 성문이설치돼 있다.현재는 안쪽 해자로 둘러 싸인 약 30만평의 땅에 궁성이 조성돼 있고,현 일왕 아키히토(明仁)가 이 곳에 살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왕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부터는 한국 의·열사들이 폭파대상으로 삼은 주요 목표물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그곳에 거주하는 일왕 역시 처단대상이었다. 김지섭(金祉燮) 의사의 ‘이중교의거’ 이외에도 1932년 1월 8일에는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왕궁의 사쿠라다문(櫻田門) 앞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김 의사가 폭탄을 던진 이중교는 궁성 정문 앞에 있는 다리.이중으로구성돼 있다고 해서 이중교(二重橋)라고 부른다.길이는 약 29m,폭은 약 7m다. 채영국 연구원
  • 구속 지방자치단체장‘옥중결재’없어진다

    논란이 돼왔던 구속중인 지방자치단체장의 ‘옥중 결재’가 없어진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소가 제기된 후 구금상태에 있으면 부단체장이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한 지방자치법이 13일 폐회된 제206회 임시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이 법은 공포절차를 거쳐 빠르면 이달 말부터 시행에들어간다.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옥중 결재를 못하게 되는 단체장은 임창열(林昌烈)경기도지사와 김창현(金昌鉉)울산동구청장등 2명이다.선거법 위반 등으로 입건·재판중인 단체장은 31명이지만 지난해 12월 배임혐의로 구속된 박용권(朴容權)광주남구청장 등 2명은 이미 사표를 냈으며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 상태다. 구속중이더라도 인사권은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더욱이 부단체장들은 단체장의 측근들이다.때문에 단체장의 ‘내락’없이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 뻔해 이 법이 시행돼도 사실상 옥중결재는 이뤄지는 셈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구속된 단체장들이 재판을 통해 무죄가 될 수도 있고 다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부단체장이 단체장과의상의를 생략하기란 어려울것이라는 게 공무원들의 공통된 견해다.행자부 관계자는 “법적으로 부 단체장의 결재권을 인정함으로써 사사건건 단체장의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의 낭비를 막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
  • 유태인 학살주범 아이히만 옥중수기 獨넘겨져 출판될듯

    이스라엘 정부가 보관중인 2차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옥중 수기가 독일측으로 넘겨져 출판될 예정이다.지난 62년 아이히만이처형된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비밀 문서로 분류돼온 그의 옥중 수기는 30여년간 역사학자들과 작가들의 관심사항이었다. 10일 이 결정을 내린 이스라엘 정부의 목적은 학살의 생생한 증거를 독일측에 전달,출판하도록 함으로써 최근 부흥하고 있는 신나치즘 및 홀로코스트부정론자들의 움직임에 대응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남미로 도망갔다 지난 60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에 위해 붙잡힌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62년처형당할 때까지 2년 동안 1,300페이지에 달하는 옥중 수기를 남겼다. 옥중수기를 분석한 역사학자 야에브야타르 프리셀씨는 “수기에는 당시 나치 지도자들의 유럽내 유태인정책이 시간대별로 소상하게 드러나있다”면서결코 그는 수기에서 참회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8·15특집 풍성… 해외취재물 눈길

    8·15를 맞아 방송사마다 다채로운 특집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KBS1TV는 2차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지목돼 옥사한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최후의 외무대신,도고 시게노리’를 두차례로 나눠 15일과 22일 방송한다.도고 시게노리는 국제신의와 평화를주창하며 태평양전쟁을 반대했던 인물.이 다큐는 그가 정유재란 때 일본에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도고 시게노리의 옥중수기 ‘시대의 일면’을 바탕으로 정수웅PD가 8개월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혼자촬영과 연출,구성을 맡았다. KBS1TV는 또 15일 오후 8시 ‘일요스페셜-소설가 이문열의 공개편지:북의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를 방송한다.월북한 아버지 이원철씨를 만나기 위해중국 옌지(延吉)로 떠난 소설가 이문열씨의‘50년만의 부자 상봉’을 다룰예정이었으나 이원철씨가 사망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내용을 수정해 방송한다. KBS 1TV가 9일부터 방송하는 대하 다큐멘터리 ‘해방’도 눈길을 끌고 있다. ‘땅’‘무지’‘식민’‘독재’‘전쟁’ 등으로 주제를 나눠 지난 100년을정리한다. 이와 함께 15일 오후4시엔 각계 인사 6만여명이 독립문에서 판문점까지 61㎞에 걸쳐 인간띠를 이루며 통일을 염원하는 행사인 ‘이제 우리손 잡아야한다’를 생중계한다. MBC는 15일 밤10시35분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550만 해외동포를 연결하는 특집 ‘21세기 한민족 네트워크’를 대표적인 특집으로 내보낸다.러시아 중국일본 미국 멕시코 프랑스 독일 등에 사는 교포의 생활상을 2개월간 밀착취재했다.전대협 의장을 지낸 임종석씨가 프랑스와 독일 취재를 맡아 이채롭다. SBS는 13일 오후3시 특집 다큐멘터리 ‘트럭섬의 비명’을 방송한다.남태평양 트럭섬은 1차대전 초 일본이 점령해 2차대전까지 사용한 기지.이 곳에 끌려가 기지공사를 한 한국인 징용자가 1만여명에 이른다.이들은 44년 2월 미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된 이후 일본의 최종 항복까지 500여일간 굶주림과 싸웠다.차별과 학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함께 종군위안부 거주지와 생체실험실 현장 등이 소개된다.15일 밤12시10분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50년사를 정리한 ‘남북이산가족,그 희망과 좌절의 기록’을 보여준다. EBS는 13일과 14일 밤10시40분과 15일 밤10시30분 역사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역사,한반도의 왜’를 내보낸다.왜가 한반도에 존재했던 정치세력이며,광개토대왕의 남하정책에밀려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왜의 실체를 규명한다. 이밖에 한국남자와 일본 여자의 사랑을 그린 MBC ‘미치코’(13일 밤 10시)와 일본 경찰서장 아내와 노총각 바우의 사랑을 그린 SBS ‘아키코의 꽃신’(13일 오후1시) 등도 특집으로 기획됐다. 허남주기자 yukyung@
  • 崔淳永회장 경영에서 완전히 손떼야

    최순영(崔淳永) 신동아그룹 회장이 옥중에서 또한번의 분루를 삼켰다.최 회장은 5일 대한생명 이사회를 기습적으로 열어 파나콤의 증자참여를 의결했으나 금융감독위원회가 6일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함으로써최 회장의 재기를 위한 몸부림은 한낱 ‘옥루몽(獄淚夢)’으로 끝나게 됐다. ?최 회장의 옥루몽 대한생명 3차 입찰이 유찰로 굳혀지자 최 회장은 다급해졌다.유찰은 공적자금 투입을 뜻하고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전제로 한다.이경우 대한생명 지분은 100% 소각돼 최 회장 보유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뿐만아니라 78년 회장 취임후 갖은 정성을 들인 대한생명의 경영에도 완전히손을 떼야 한다. 최 회장은 시간을 벌기 위해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늦추게 하라고 옥중에서지시했다.최 회장의 법정구속 이후 부인 이형자(李馨子)씨 주재로 열리던 가족회의가 긴급 소집됐고 궁여지책으로 파나콤의 증자참여를 결정했다. 최 회장의 5촌 조카인 최희종(崔喜鍾) 전 대한생명 부사장이 옥중결재를 통해 전권을 위임받아 5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거사’를 도모했다.그러나 대한생명 경영관리인으로 파견된 송준채(宋準彩) 금감원 은행검사3국장이 승인하지 않아 집행을 못하는데다 금감위가 6일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면서 감자명령을 내렸다. 최 회장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파나콤이 3차 입찰의 유찰과부실금융기관 지정에 법적대응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금감위는 법적인 하자가 전혀없다고 일축했다. ?대한생명의 운명 공적자금이 투입돼도 정상화에는 최소 3년 정도가 예상된다.매각이 차질을 빚으면서 영업조직이 흔들렸고 고객들도 보험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했다.정부는 14일까지 기존 지분을 소각하는 것과 동시에 500억원을 1차적으로 출자,대한생명을 국영보험사로 만들 예정이다. 추가로 최소한 1조3,500억원을 출자하고 경영은 공개모집을 통해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기로 했다.임시주총에서 파나콤의 추천으로 선정된 7명의 사외이사는 정부가 경영을 접수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효하고 전문경영인이 선정되면 전부 교체될 예정이다.국내외 3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은 취소됐으며생보사 상장시 정부지분을 팔아 출자비용을 회수한다는 복안이다. 백문일기자
  • 서양화가 홍성담 ‘1999 탈옥’전

    ‘오월(五月)화가’‘통일화가’‘인권화가’….서양화가 홍성담(45)에게는 늘 이런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그러나 그는 정작 80년대 민중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활동가로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심정이랄까.요즘 그는 한 단계 성숙한 의식과 명상을 통한 자아의해방을 꿈꾼다.1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1999 탈옥(脫獄)’전은 저항에서 명상으로 나아가려는 작가의 의식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1980년 5월 광주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었다.이런 배경 아래서 모순된 현실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이 태동한 것은 당연한 시대적요구였다.홍성담은 변혁운동의 중심부에서 민중적 사실주의 미술운동을 펼쳤다.89년에는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사건으로 투옥돼 3년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그 감옥의 기억은 지금도 작가의 의식을 옥죄는 심리적 올무다.이번 전시에서는 일련의 ‘감옥’ 연작을 통해 감옥으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을 시도한다.고문과 감옥이라는 소재를명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홍성담의 탈옥’은 무한한 상상의 지평을 얻는다.특히 그의 근작들은 민중미술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줘 관심을 모은다. 전시 작품은 크게 옥중체험을 토대로 한 ‘식구통(食口通)’연작과 ‘밥’연작,물고문 명상시리즈,92년 출소 이후의 대표작들로 나눠 볼 수 있다.옥중장면 그림 가운데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정사각형 캔버스 화판에 흙으로 만든 안료로 그린 ‘밥’연작이다.‘밥’ 사상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수십개의 화판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또 저항과 명상이라는 주제를 차분히 소화해낸 ‘물속에서스무날’도 주목할만한 작품.작가의 물그림 시리즈는 유화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1996)와 같은 직설적인 배설(排泄)의 작품에서부터 연꽃이 피어오르고 물고기 뱃속에서 사람이 잠을 자는 상생(相生)의 경지를 다룬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그 그림들은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을 표현한 ‘십우도(十牛圖)’를 보는 것 같은느낌을 준다.나아가 작가가 대립과 갈등의 터널을 빠져나와 화해와 상생의밝은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내용뿐 아니라 양식적인 면에서도 특색이 있다.작가는 자신의사회적 이념과 내면세계를 도상학적인 형태로 보여준다.부적문양과 물결문양 등 민화나 전통회화의 도상양식이 등장한다.그의 작업은 캔버스에 종이찰흙으로 부조형태의 도상(圖像)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20여가지의 흙과 안료를 발라 색을 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감옥이나 고문 등 강한 주제를 부드러운 흙색으로 녹여내고 있어 색다른 기분이 들게 한다. ‘1999 탈옥’전은 작가가 서울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다.지난 20년동안 우리 역사의 현장을 뜨겁게 지켜온 ‘저항화가’로서 이른바 제도권 미술계에공식 데뷔하는 셈이다.그런 만큼 그의 각오는 새롭다.“멕시코 혁명기의 3총사 화가였던 시케이로스와 오로스코,리베라는 만만찮은 성과를 남겼음에도항상 제3세계 작가로 폄하되곤 합니다.저항성에 치중하다 보니 직관에 의한명상이 부족했던 것도 그 한 원인이죠.저항과 명상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되는 진정한 리얼리즘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김종면기자 jmkim@
  • 지자체장 옥중결재 없앤다…유고때 부단체장이 대행

    이르면 다음달 말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구금(拘禁)된 경우 부(副)단체장이 권한을 대신 행사하게 된다.이렇게 되면 사퇴를 거부하고 옥중결재를하고 있는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도 8월 말부터는 지사의 권한을 행사하지못하게 된다. 국민회의는 25일 자방자치단체의 장이 구금되는 등 유고시에는 부단체장이그 권한을 대행하는 내용으로 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다음달 2일 개회되는제 206회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한나라당도 이같은 개정안에 반대하지 않고 있어 통과되는 데 문제는 없을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 22일 전남 광양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법을 어기면 처벌하고 구속될 경우 부단체장이업무를 결재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고 밝혔었다. 부단체장이 단체장의 권한을 대행하는 내용으로 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지난 4월말 국회 행정자치위에서는 통과됐지만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당초 행자위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구속되는 경우’ 부단체장이 대행할수 있도록 했으나 여권은 이를 ‘구금되는 경우’로 수정해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국민회의 등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70∼80%의 국민들은 임지사의 옥중결재에 반대하고 있으며 즉각적인 사퇴를 바라고 있다. 곽태헌 추승호기자 tiger@
  • [대한매일을 읽고] 수감 단체장에 道政 결재 받다니

    ‘임창열 지사 사퇴할까’ 제하의 기사(대한매일 19일자 3면)를 보면 국민회의측이 임창열씨의 지사직 자진 사퇴를 유도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 지사가 사퇴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경우 대법원에서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어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매주 1∼2차례씩 서류를 들고 인천구치소에서 옥중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경기도 공무원들이나 경기도민들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불행한 일인 것이다. 형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금품수수라는 범죄행위로 수감이 된 단체장에게서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따라서 엄연히 부지사라는 직책이 있는 데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현행법은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이다. 이지석[대구 북구 칠성2가]
  • 林지사 ‘구치소 道政’

    임창열(林昌烈)경기도지사의 첫 옥중결재가 21일 인천구치소에서 이뤄졌다. 임지사가 지난 15일 검찰에 소환된 이후 6일 만이다.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구치소 2층 특별면회실에서 진행된 옥중결재에서 임지사는 김덕배(金德培)정무부지사와 황준기(黃俊基)자치행정국장이 가져온도정 현안을 챙겼다. 결재된 것은 이달 말 명예퇴직자 및 2차구조조정에 따른 직원 50명에 대한인사 건이었다.임지사는‘씨랜드’화재사고 희생자 보상문제 등에 대한 지침도 내렸다. 백장생(白長生)인천구치소장은 “검찰의 지시로 옥중결재가 허용됐으며 앞으로도 계속 임지사의 옥중결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치소장이 수감된 3급 이상 공직자에게 허용할 수 있는 특별면회 형식의옥중결재는 1일 1회로 제한된다.시간은 10분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외자유치,이천 레고랜드사업,수도권 광역교통기구 설립 등 각종 도정 현안이 결재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시급한 현안이 많은 만큼 행정공백이 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옥중결재를 허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검찰의이러한 ‘선의’를 액면 그대로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한 “공소유지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임지사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기 위해 옥중결재를 불허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부담으로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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