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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육필원고·동인지로 재조명

    삼성출판박물관은 내용이 알찬 전문박물관이다. 국보 제26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과 `월인석보(月印釋譜)´ 등 9점의 보물이 있다. 전적과 서화, 근현대 도서 등 소장품은 모두 40만점에 이른다. 운영자는 `문화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그는 7년동안 역임한 박물관협회 회장 자리를 지난 2월 물려주었다. 그는 “그동안 출판박물관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회장이 자기 박물관에만 신경쓴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의 마음을 찾아서´특별전은 `회장 박물관´에서 `회원 박물관´으로 돌아간 뒤 갖는 첫번째 기획전이다. 특별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의미있는 전시회를 차곡차곡 열겠다는 것이다.13일 개막식을 대신한 시 낭송회가 열렸다. 김남조, 성찬경, 허영자, 이근배, 오세영, 신달자, 장석주, 정끝별 시인이 참여했다. 연극인 박정자는 이육사의 `청포도´를 노래하기도 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기획한 전시회에서는 김소월과 한용운, 윤동주, 이육사, 오장환, 유치환, 김광섭 등 한국 현대시 역사의 주류를 이루는 시인들의 서화와 친필원고, 시집, 동인지 등 15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삼성뮤지엄아카데미´도 20일부터 7월11일까지 매주 열린다. 첫날에는 김상현 동국대 교수와 만해 한용운의 옥중시를 감상하고, 작가 박범신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펼쳐보이게 된다.(02)394-6544.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태어날 애기까지 영화에 동원

    태어날 애기까지 영화에 동원

    『남(男)과 여(女)』『파리의 정사』등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프랑스」의 「클로드·를루쉬」감독이 새 영화 『깡패』의 「로케」에 한창이다. 이 영화엔 「를루쉬」감독의 아내인 「크리스틴」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더욱 화제. 각본(脚本)서부터 분장까지 자신이 직접 도맡아서 「클로드·를루쉬」하면 귀재(鬼才)가 많은 「프랑스」영화계에서도 제1급의 귀재로 손꼽힌다. 새 영화를 만들었다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데가 없다. 줄거리를 정하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가하면 「로케이션·헌팅」은 물론 감독과 촬영, 심지어는 분장까지 자신이 도맡는다. 『물론 내가 천재이거나 욕심장이는 아니지요. 그러나 영화가 완성되어 일단 상영되면 그 영화에 대한 잘, 잘못은 모두 내게 향해져요. 그러니까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선 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지요』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만사를 제쳐놓고 몰두 「를루쉬」감독의 숨김없는 고백이다. 지방흥행사나 거물배우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우리나라의 감독들과는 생각부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대전제속에 「를루쉬」감독은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만사를 제쳐놓는다. 아내와의 저녁약속, 친구들과의 「포커」약속쯤은 아예 지키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연 아내인 「크리스틴」은 불만이 많기 마련.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새 영화『깡패』에선 아내 「크리스틴」을 주연여배우로 씀으로써 이제 이 두 부부는 24시간동안 함께 지내게 되었다. 「프랑스」감독으로 자기 아내를 곧잘 영화에 출연시켜 온 사람은 「로제·바딤」. 그의 아내였던 「브리지드·바르도」「아네트·스트로이버그」「제인·폰다」「캐더린·드뇌브」등은 모두 「바딤」이 주연여우로 쓰던 얼굴들. 『사실 그 역을 아내에게 주자고 마음먹고 쓴 것은 아니었죠. 그러나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난 뒤 그 역을 맡길 여배우를 찾아보니 아내밖엔 없더군요』 그러니까 자신은 아내의 연기력을 전혀 몰랐던 것. 전직 「패션·모델」이며 잡지의 표지아가씨였던 「크리스틴」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매력적인 아가씨. 「를루쉬」감독의 「카메라·테스트」에 손쉽게 「패스」했다. 영화에 출연한 아내를 가정서도 연기자 취급 『일단 영화에 출연하니까 그이는 절 아예 아내가 아니라 영화속의 여인으로 만들려고 들더군요. 영화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때로는 이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죠. 하지만 영화에만 몰두하는 그이의 성격을 아니까 제가 참지요』-「크리스틴」이 아내로서 하는 말이다. 올해 33살의 한창 나이인 「를루쉬」는 처녀작『남과 여』(「아누크·에메」「장·루이·트랭티냥」주연) 한 편으로 명성을 얻은 귀재. 이 영화가 개봉된후 세계각국에선「모노크롬」(단색(單色)화면)의 촬용이 활발해졌다. 그후『파리의 정사』(「이브·몽땅」「아니·지라도」「캔디스·버겐」주연),『나를 좋아하는 남성』(「장·폴·벨몽도」「아니·지라도」주연』등을 발표하여 영상작가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새 영화『깡패』는 지금까지의 「로맨스」영화와는 달리 「갱」영화. 「를루쉬」감독으로선 처음 변신을 꾀하는 셈이다. 스토리는 개봉전 까지 절대로 밝힐수 없다고 「스토리」는 실제 있을 뻔했던 사건을 그대로 빌어온 것. 「스위스의 시몬」이란 별명을 가진 한 전과자가 1백만「달러」를 갖기 위해 6년간 옥중에서 계획한 치밀한 완전범죄다. 『바로 그 「시몬」이 저와는 군대시절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설득했죠. 다시 범행을 하다가 감옥엘 가느니 차라리 내게 상세한 계획을 알려주면 영화수입의 얼마를 떼어주겠다고요』 이런 「를루쉬」의 설득에 「시몬」은 범행을 포기하고 자신의 기발한 범죄계획을 털어 놓았다. 각본은 물론 「를루쉬」자신이 쓰고. 「스토리」가 이런 것이고 보니 궁금증도 대단한데 「를루쉬」감독은 개봉전 까지는 절대 밝힐 수 없다고. 「시몬」역을 맡은 배우는 「를루쉬」의 절친한 친구이자 「프랑스」의 1급 연기파배우인 「장·루이·트랭티냥」 (남과 여). 그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은 「오토·레이서」(자동차경주선수)와 변호사였는데 『남과 여』에선 「오토·레이서」역을, 이번『깡패』에선 전직 변호사역을 맡게 되어 어렸을적의 꿈을 「스크린」에서나마 이룬 셈이다. 「로케」장소는 「파리」에 있는 「를루쉬」의 「스튜디오」와 「파리」의 변두리 거리들. 그러나 야외 「로케」일 경우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는 주연 배우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를루쉬」의 취미다. 그저 배우들은 「를루쉬」가 일러주는대로 행인들 틈사이를 빠져 나갈뿐. 이 부부합작을 기념하기 위해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까지 「시몬」으로 미리 정했다니까 말하자면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도 영화에 동원했으면 하는 눈치. [선데이서울 70년 9월 27일호 제3권 39호 통권 제 104호]
  • “올것이 왔다” 침통… 한화 비상경영 불가피

    “올 것이 왔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너지면서 최악의 상황이 되자 11일 밤 한화그룹 본사에 남아있던 임직원들은 매우 침통해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서려는 한화그룹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한화는 올 초 기업통합이미지(CI)까지 바꾸고 의욕적으로 출발했으나 총수 구속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앞날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김승연 회장 구속과 함께 한화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사업의 좌절과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다. 한 계열사의 사장은 “한화는 최고경영자(CEO) 독립경영체제”라면서도 “해외사업이 주춤해질까봐 걱정”이라고 속내를 내비쳤다.“해외기업 인수 및 합병(M&A), 해외투자 등 그룹이 나갈 큰 방향은 회장님이 직접 제시해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룹 분위기는 매우 침통했다. 한 직원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총수 공백 사태가 발생한 만큼 비상경영체제는 불가피해졌다. 금춘수 경영기획실장 중심으로 갈 예정이다. 김 회장도 최악의 상황을 예감한 듯 금 실장에게 뒷일을 단단히 당부했다. 김 회장은 최근 대책회의에서 “지금은 금 실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각 계열사 사장단과 잘 협조해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화 관계자는 “회장님이 옥중(獄中)경영을 하실 수밖에 없다.”며 “금 실장이 회장님의 재가를 받아 계열사 사장단에 전달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김승연회장 ‘보복폭행’ 의혹] 겉으론 “설마” 속으론 “혹시나”

    한화그룹이 ‘회장 유고(有故)’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30일 “그렇게(김승연 회장 구속)까지야 되겠느냐.”면서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대책이란 비상경영체제다. 구속될 경우 ‘옥중 경영’을 할 것이라는 말까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CEO는 “계열사들이 독립경영을 해오고 있지만 해외사업과 신성장동력 등 그룹의 큰 방향은 회장님이 제시하고 있다.”면서 “(구속되면)아무래도 이런 부분이 주춤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김 회장은 계열사 경영에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수 및 합병(M&A), 해외투자 등 그룹의 명운을 가를 핵심 현안은 직접 챙겨왔다. 비상경영체제는 김 회장이 구속됐을 때 가동된다. 구조조정본부장을 역임, 그룹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금춘수 경영기획실장(사장급)이 ‘대리인’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화 관계자는 “김 실장이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계열사 사장들에게 지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회장의 재가를 받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계열사간 독립경영이라는 기존의 틀은 유지된다. 그룹 단위의 조율이 필요한 부문은 고문단 역할을 하는 부회장단의 자문 등을 받으며 경영기획실에서 챙기는 방안도 있다. 비상경영에 돌입하더라도 한화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글로벌 경영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강한 추진력을 갖춘 선장이 없는 상태에서 해외 M&A 속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일을 그룹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결정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서 쉽지 않다. 주력 계열사들이 준비하는 해외투자도 속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화석유화학의 중동 진출 검토 및 대한생명 해외법인 설립 등이 일정기간 보류될 수 있다. 한화는 개인변호사 3명으로 변호인단을 구성, 법무팀 소속 변호사 10여명과의 협조를 통해 대응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구속적부심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한화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제부터는 그룹 이미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세번 구속 세번 무죄’ 박주선 前의원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세번 구속 세번 무죄’ 박주선 前의원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제이유 사건 무혐의 처분 사례를 계기로 사법개혁의 필요성이 또한번 관심사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을 언급,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박주선 전 의원은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피해자.‘세번 구속, 세번 무죄’로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 후보자로 대중 앞에 다시 나섰던 전직 검사. 그를 만나 검찰권의 문제점과 제도적 개혁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검사 소영웅주의·수사평점제도 문제 ▶제이유 사건 연루 의혹을 받았던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무혐의처분을 받은 데 이어 검찰이 이 전 비서관을 엮어 넣기 위해 허위진술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검찰 살인’의 피해자로서 이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검찰 수사에 성역이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억울하게 기소가 됐다 무죄가 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아직도 검찰 조직 내에 소영웅주의와 매명(賣名)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를 표적으로 삼아, 고위공직자나 사회저명인사를 구속시켜 ‘한 건’ 하기 위해 참고인 등에게 나를 한 번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검사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왜 이런 식의 수사가 계속될까요. “검사의 소영웅주의, 공명심과 함께 수사평점제도도 원인이 됩니다. 중요사건을 수사하여 ‘한 건’하면 평가가 올라가거든요. 이번 사건에는 해당이 안되지만 정치권에 아부하려는 일부 검사들도 문제입니다. ▶전관예우란 말도 있는데, 거꾸로 ‘친정’이라 할 검찰에서 더 지독한 핍박을 당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2005년 5월 최종 판결이 났을 때 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취재좀 해 알려달라고 했던데요. “수사검찰 입장에서 죄가 있다면 검찰 출신 피의자라고 봐줘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제 경우 검찰의 독자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제 사건 수사 책임자들이 영전하거나 승진하고 있잖아요. 검사가 기소한 사건이 무죄판결이 났다면 그 검사는 오히려 책임을 져야지요. 옷로비 의혹 때는 정치권과 여론의 광풍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됐고, 나라종금, 현대그룹 뇌물의혹 때는 민주당 고사작전에 피해를 본 것이지요. 검찰 쪽으로부터 외압얘기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박 전 의원은 나라종금 사건 당시 현역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시민단체들까지 국회앞에서 체포조를 구성해 시위를 벌였던 일을 회상하며,“피의자의 명예와 인권을 이토록 짓밟을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죄판결은 났지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다른 것일 뿐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안대희씨는 대법관 청문회에서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역사적으로 그 일을 안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검찰은 할 일을 다했는데 법원이 잘못했다는 듯, 정당성을 호도하고 견강부회하고 있는 거예요. 최소한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요. 민주 법치사회는 죄형법정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법원에서 죄가 아니라고 하면 검사가 아무리 죄라고 말할지라도 죄가 돼서는 안됩니다. 거꾸로 아무리 개인이 무죄라고 하더라도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면 죄가 되는 겁니다.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놓고 역사적으로 그일을 안했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대법관이라는 분이 할 수 있는 겁니까.” 너무 기능주의적 언급이라고 생각돼서 추가질문을 해보았다. ▶법원이 꼭 옳은 판결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긴급조치위반사건 판결 판사 명단도 그래서 공개된 것 아닙니까. “물론 재심을 통해 판결이 번복되는 수도 있지요. 민청학련 사건은 재심을 통해 수사과정부터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한 것으로 드러났지요. 이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러나 긴급조치 건은 국민 96%가 찬성해 만든 긴급조치권에 의한 판결로써 경우가 다릅니다. 물론 수사와 법 적용을 잘못한 사례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포괄적으로 판결자체를 문제시해 명단을 공개한 것은 사실상의 보복, 면박주기입니다.” ●배심원제도 도입해야 ▶무죄판결을 받고 그동안 피해에 민사·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진행상황은. “개인적인 원망, 금전적인 피해 같은 것은 다 용서하고 잊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시는 나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진상규명과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게 잘 안되고 있어요.” 제도적 장치란 첫째, 불구속 수사 대폭 확대, 둘째 무죄 선고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책 수립, 셋째 외부인사 참여에 의한 투명한 검사 평점제도와 무죄 선고시 이를 평점에 반영하는 것 등이다. 넷째는 검사 동일체원칙에 따라 상사가 철저하게 수사 결재를 함으로써 법률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박 전의원은 “법무장관의 수사통제권이 엉뚱한 곳에 행사됐다.”며 구속 자체로 모든 명예와 사회적 기회를 날려버린 자신의 경험을 상기시켰다. 특히 “옥중출마한 17대 총선 때는 선거기간 중엔 구속시켜 놓더니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석시켜 주더라.”고 허탈해 했다. 박 전의원은 죄없이 336일 동안 구속된 보상금으로 국가로부터 2399만원을 받았다. 이 돈은 좋은 일에 쓰기 위해 따로 보관 중이라고 했다. ▶사법개혁이 지지부진한데요. “공판중심주의는 공감하지만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대법원장은 검찰조서는 휴지통에 던져버리라고 했다지만, 검찰 조서의 증명력과 증거능력은 구별돼야 한다고 봅니다. 증명력을 갖기 위해 수사능력을 개발해야겠지요. 불법 수사는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배심원 제도도 하루빨리 들여와야 한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운명을 사회경험 일천한 법관이 결정하는 것보다는 일반 시민이 판단해 주는 게 의미가 있어요.”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의 고난은 하늘의 뜻으로 보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나가려고 해요. 아내는 그렇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고 또 정치를 하려느냐고 하지만, 우리에겐 분열과 갈등을 청산하고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총합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반민주, 좌·우, 세대차이를 넘어서 융합하는 총합세력이 만들어지면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형적인 우등생 이미지. 검찰 때문에 역경을 겪어 ‘암벽을 뚫고 솟아나는 소나무’가 되겠다면서도,‘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만은 숨기지 않는 게 신기해 보였다. ‘조직´은 그래서 힘이 센가 보다. yshin@seoul.co.kr ■ 그는 누구 1949년 전남 보성 출생(만57세).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행상으로 가족을 부양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중학교 입학금 마련을 위해 피를 팔기도 했다. 남동생은 형의 대학진학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희생을 했다.1974년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16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 검사로서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초임부터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화려하게 출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검사, 서울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모두 거쳤다. 장래 검찰총장 감이 확실하다는 평이었다. 1998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인생행로가 꼬이기 시작했다.‘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기구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옷로비 의혹 사건에 휘말려 1차 구속됐다. 무죄 판결이 난 후 국회의원에 당선돼 명예가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나라종금퇴출저지 로비,2004년 현대그룹 뇌물수수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무죄로 풀려나는 불운이 계속됐다.17대 때는 피의자 신분으로 옥중출마해 낙선. 작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시장 선거 때 시정원칙으로 내세운 것이 ‘억울함이 없는 시정’‘약자를 보듬는 시정’. 이른바 ‘검찰살인’의 피해자로서 7년간 겪은 고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현재 민주당 평당원으로 정치적 재기를 준비 중이다.
  • [이색거리 탐방] (7) 성북구 성북동길

    [이색거리 탐방] (7) 성북구 성북동길

    서울 성북구 성북동 뒷길에는 근현대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험난한 역사를 묵묵히 걸어온 선인의 발자취를 찾아 훌쩍 떠나보자.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시민문화 유산 최순우 옛집 성북동길에서 만나는 첫 문화유산은 최순우 옛집이다.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고려청자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그는 1920년대 이 한옥을 지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냈다. 미닫이창, 이름 모를 나무, 추녀 끝의 소방울, 백자 항아리….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특히 2002년 이 집은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시민들이 되살렸다. 문화유산위원회가 민간모금운동을 펼쳐 집을 사들였고 1년여 보수공사 끝에 복원했다. 이후 ‘시민 문화유산 1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누에 풍년기원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 건너편에는 선잠단지가 있다. 옷감짜는 일이 중요하던 시절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던 곳이다. 매년 늦은 봄(음력 3월) 뱀날(巳日)에 왕비가 친히 참여하는 친잠례(親蠶禮)가 열렸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50여그루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 선잠단지를 지나 성락원길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사적 378호)이 나온다.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줄기가 폭포와 연못을 돌아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정원으로 유유히 흐른다. 추사 김정희가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는 글씨를 남겼다. 개인소유라 방문할 수가 없다. 담 너머로 경치를 훔쳐보고 돌아섰다. ●환골탈태 길상사 성락원의 아쉬움을 길상사에서 위로받았다. 길상사는 1980년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져 있다. 주인 고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에 감명받아 7000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약 1000억원)을 시주하면서 1997년 길상사로 환골탈태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조선시대 별장처럼 아늑하고 평화롭다. 숲 속을 걷듯 계곡물이 맑고 새소리가 정겹다. 일반인이 불교 경전과 수행법을 쉽게 체험하도록 ‘길상선원’을 개원했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최초의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 보인다. 고 전형필(1906∼1962) 선생이 33세 때인 1938년에 세웠다. 종로 부호의 아들이던 전 선생은 휘문고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길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 가산을 쏟아부어 평생 민족문화재를 수집했다. 매년 5월과 10월에 전시회를 열 때만 출입이 허용된다. ●전통 찻집 수연산방 성북2동 동사무소 옆에 자리한 전통 찻집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을 손녀가 개조한 곳이다. 전통 차를 마시며 한옥에 정취에 빠져들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둥그런 의자와 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 바깥쪽 자리.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까닭이다. ●20세기 한옥 이재준가 이태준가 맞은편 덕수교회 안에는 이재준가가 있다.190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집터 주위의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우러져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이라는 사람의 별장으로 소설가 이재준씨가 살았기에 이렇게 부른다. 교회가 관리하고 있어 주로 문이 닫혀 있다. ●만해 한용운 집 심우장 만해 한용운(1979∼1944) 선생의 집 ‘심우장’은 폭 1m 골목에 숨어있다. 만해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가 없을 때 주위 도움으로 지은 집이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싫어서 집을 남향이 아니라 북향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있다.1944년 조국의 광복을 앞두고 그는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방에는 만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쓸쓸히 놓여 있다. ■ 북악스카이웨이와 서울 성곽 길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3.2㎞)는 성북구민회관에서 성가정입구를 거쳐 북악골프장, 팔각정, 종로구 경계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등산하듯 산을 올라 힘겹지만, 곧이어 북한산과 남산, 한강, 서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펼쳐진다. 숲 속길이 대부분이지만, 도로와 맞닿은 산책로도 있다. 매연이 싫다면 손수건을 준비하자. 아쉽게도 북악골프연습장 부근에서 산책길이 끊긴다. 성북구가 구름다리 설치공사를 시작했다.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성곽(4㎞)이 또 다른 산책로다. 바닥에서 쏘아올리는 야간 경관조명이 은은히 밤하늘을 비추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돌계단이지만, 길 따라 쉼터가 많아 초보자도 걷기에 힘들지 않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노부부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10대까지 다양한 사람도 구경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우리소설 스웨덴서 ‘오디오북’ 부활

    김동인의 ‘감자’, 황순원의 ‘소나기’와 ‘학’, 한말숙의 ‘장마’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 스웨덴에서 ‘오디오북’으로 부활했다. 2003년 스웨덴에서 번역출판된 ‘한국단편선집’이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오디오 콤팩트 디스크(CD)’로 제작돼 스웨덴 각지의 도서관에 보급됐다. 스웨덴 유명 성우인 안나 되블링이 직접 녹음한 이 CD는 5시간44분 분량이다. 스웨덴 문화성은 50여년 전부터 30여만명의 시각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해 유명 문학작품을 오디오북으로 제작, 보급해 왔다. 동양권에선 처음으로 한국 단편소설들이 오디오북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오디오북 제작에는 스웨덴의 교포작가 최병은(70)씨가 큰 역할을 했다. 최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문학을 스웨덴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등 ‘한국문학 불모지’였던 스웨덴에 우리 문학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 왔다. 오디오북의 모태가 된 ‘한국단편선집’도 그의 번역으로 태어났다. 지금까지 최씨가 번역해 현지에 소개한 우리 문학은 조병화(1993년)와 구상(1997년)의 시집,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수기’(1999년), 고은의 ‘선시집’(2002년) 등이 있다. 지난해에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박완서의 ‘나목’을 소개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서정주, 구상, 조병화, 김소월, 이육사, 윤동주 등의 시화전을 현지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스웨덴한인회장을 역임한 최씨는 스톡홀름 문단과 스웨덴 왕가, 정·관계 등에도 발이 넓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등에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은 시인이 재작년과 지난해 2년 연속 노벨문학상 유력후보에 오른 것도 이런 그의 ‘한국문학 알리기’와 무관치 않다. ‘하얀사슴’(白鹿) 등의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한 최씨는 “북유럽권에서 이제 한국문학의 진가가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이들 지역에 있는 수만명의 한국인 입양아들에게 한국문학을 읽혀 정체성을 찾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진실씨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수잔브링크의 아리랑’ 촬영 때 자신의 집을 촬영장소로 제공하는 등 입양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1968년 단돈 70달러를 들고 유학을 가 현지 대학에서 해양법을 전공한 뒤 석유회사 등에서 근무한 그는 자신의 소설 제목처럼 ‘하얀사슴’이 뛰어노는 연못(백록담)이 있는 제주에 핀란드의 ‘산타마을’(노마노마)을 재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설과 허구에 불과할 뿐이지만 ‘산타마을’은 연간 6조원의 관광수입을 올립니다. 우리 문학작품에 녹아 있는 전설들을 관광상품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증오 말라… 지하드 만세”

    “내 영혼을 신에게 희생물로 바친다. 나는 여러분에게 작별을 고하지만, 우리의 피난처이며 정직한 신도를 실망시키지 않는 자비로운 신과 함께 할 것이다.” 향후 30일내 사형 집행 확정 판결을 받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국민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이 27일 공개됐다. 영국 BBC와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 편지는 후세인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11월5일 작성됐다. 후세인은 서신에서 “증오는 사람들이 공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고, 공정한 생각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이라크 정부와 국민을 분열시킨 외국 사람들도 증오하지 말아 달라.”고 용서를 강조했다. 그러나 후세인은 스스로를 희생물(sacrifice)로 규정하고, 적들에 대항해 인내심을 갖고 투쟁할 것을 주문했다.‘대통령 및 이라크 이슬람전사 군대 총사령관’ 명의의 편지 말미에는 ‘지하드와 무자헤딘 만세’‘팔레스타인 만세’ 등의 표현을 사용, 이라크 수니파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한편 후세인의 사형 집행 확정 판결은 국제사회에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인도 정부는 후세인 사형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나브테즈 사르나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이번 판결이 실제로 이행되지 않고 사면이 내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워치’ 등도 후세인 사형선고 확정에 대해 ‘승자의 정의’라고 비판했다.이와 관련, 후세인을 지지하는 바트당은 이날 자체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후세인을 처형할 경우 미국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6년 지구촌 사라진 별들

    올해도 우리와 호흡을 함께 하던 사회 각계 인사들이 동시대인들의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등졌다. 해외에서는 독재자·인권유린자들이 많이 생을 마감한 것이 눈에 띈다. #정계 최규하 전 대통령이 10월22일 급성 심부전증으로 향년 87세로 세상을 떴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 집권 당시 8개월 동안의 증언이나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눈을 감아 79∼80년 격동기의 진실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됐다.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민관식씨도 1월16일 88세로 타계했다. 그는 3,4,5대 민의원,6대와 10대 의원을 지냈고,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맡아 국내 체육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재야운동의 대부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었던 인권변호사 홍남순씨는 10월14일 94세로 영면했다. 한·일 국교수교의 주인공으로 ‘최연소 외무부장관’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은 11월18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5공화국 시절 야당인 민주한국당 총재를 지낸 유치송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은 6월2일 82세로 숨졌다.조연하 전 국회부의장도 8월 유명을 달리했고, 한나라당 총재 권한대행과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낸 강창성 전 의원도 2월14일 76세로 별세했다.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은 11월15일 46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떴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주천 전 의원은 12월2일 지병인 특발성 폐경화증으로 65세에 별세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사회계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지난 5월22일 집무 도중 쓰러져 유명을 달리했다.2003년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오른 그는 에이즈와 결핵 등 질병 퇴치와 예방, 각국 보건의료행정 지원에 애쓰며 세계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11월26일에는 ‘거지왕’ 김춘삼씨가 향년 77세로 세상을 등졌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면서 일약 전설적 인물로 떠오른 그는 거지구제사업을 벌이는 등 사회사업에도 큰 공헌을 했다. 지난 11월14일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서병길(57) 소방관은 우리에게 살신성인의 정신을 깨우쳐 주었다. 첫 귀환 국군포로인 조창호(76) 예비역 중위는 11월21일 타계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문화계 “예술은 반은 사기”라는 말을 남긴 천재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1월26일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늘 새로운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예술을 해석하는 데 온 삶을 바쳤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말년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갈 만큼 열정적이었다. 한국 최초의 ‘햄릿’역을 맡은 연극배우 김동원은 5월13일 90세를 일기로 타계, 자신의 바람대로 ‘영원한 햄릿’으로 우리 가슴에 남았다. “노력과 열정, 창의력, 그리고 최은희가 내 영화의 전부다.”라던 신상옥 감독은 4월11일 80세로 별세했다. 함북 청진 출신인 신 감독은 납북과 북한 생활, 탈북 등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으로 불린 극작가 차범석도 6월6일 82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팔순 때도 신작을 발표했을 만큼 쉼 없는 창작열로 젊은 후배들의 귀감이 된 그는 6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한국 개신교계의 큰 어른이었던 여해 강원용 경동교회 명예목사는 8월17일 89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평생을 우리 사회의 갈등을 걷어내기 위해 좌·우를 몸으로 껴안는 구도자의 삶을 걸었다. 한국 바둑계의 산증인 조남철 9단은 7월2일 83세로 타계했다. 그는 1945년 한국기원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했고 조훈현, 조치훈을 일본에 유학 보내 바둑 강국의 기반을 마련했다. 1980년 데뷔 이래 ‘회장님, 우리 회장님’‘탱자 가라사대’ 등 시사풍자 개그로 한때를 풍미했던 개그맨 김형곤씨는 지난 3월 46세의 한창 나이에 팬들과 이별, 아쉬움을 남겼다. ‘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의 작가 박영한, 원로가수 신카나리아와 ‘불나비 사랑’을 부른 가수 겸 영화배우 김상국도 사랑했던 팬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다. 국내 최고의 조선왕조궁중음식 전문가 황혜성씨는 12월14일 86세로 별세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경제계 한국 중공업 발전의 초석을 다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7월20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인 그가 숨짐으로써 ‘영’자 항렬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만 남게 됐다. 해운업계는 두 명의 별을 잃었다.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 11월24일 79세를 일기로 타계한 지 이틀 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이 52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체육계 통쾌한 ‘박치기’로 1960∼70년대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던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77)씨가 심장마비로 10월26일 삶의 링에서 내려왔다. 라이벌이었던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78)씨는 앞서 8월8일 지병인 파킨슨 병에 따른 흡인성 폐렴으로 별세했다. 프로축구 성남에서 K-리그 3연패를 이룬 차경복(69) 전 성남 감독이 10월31일 타계했고,1950∼60년대 대표선수를 지낸 뒤 축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문정식(76)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12월25일 생을 마감했다.김형칠(47)씨는 12월7일 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 출전했다가 낙마사고로 숨져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해외 미국의 지원으로 아옌데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뒤 17년간 공포정치를 편 칠레의 철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지난 12월10일 고문 등으로 사망한 4000여 피해자 가족들의 원망을 외면한 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1990년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보스니아계 무슬림 20만명을 학살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지난 3월11일 옥중 사망했다. 독재자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도 최근 사망했다. 김선일씨를 납치·참수한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도 지난 6월7일 미군 공습으로 사망했고,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는 러시아군 공격으로 숨졌다. 지난 7월21일 여든에 사망한 캄보디아의 타목은 ‘킬링필드의 도살자’로 불렸다. 논쟁의 중심에 선 경제학계의 두 거목도 유명을 달리했다.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현대 자유주의 경제학의 정신적 지주이자 통화주의의 수장.11월16일 94세로 세상을 떴다. 그 대척점에 선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도 앞서 4월29일 97세로 타계했다. 정부의 사회문제 개입을 적극 주장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능케 한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관리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스타워즈’로 유명한 전략방위계획을 추진했던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무부 장관이 지난 3월 88세의 나이로, 네오콘의 대모격이랄 수 있는 진 커크패트릭도 12월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백악관 안보 담당 핵심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유엔대사로 활동한 커크패트릭은 공산권 붕괴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미망인으로 킹 목사의 뒤를 이어 인권 운동에 헌신한 코레타 스콧 킹과, 세계 여성운동계의 ‘신화’였던 베티 프리단은 모두 2월에 각각 78세와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악어 사냥꾼’(사실은 동물보호운동가)으로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스티브 어윈은 지난 9월 촬영 중 가오리 꼬리가시에 심장을 찔려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골프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바이런 넬슨,1950·1960년 보스턴 셀틱스를 이끌며 통산 9회의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명장 레드 아우어바흐도 각각 9월과 10월에 사망했다. 회계부정 스캔들로 미 월가를 뒤흔든 엔론의 전 회장 케네스 레이도 지난 7월 선고 재판을 3개월 앞두고 심장병으로 돌연사, 끝내 명예회복을 하지 못했다.52년간 중국의 ‘국민 의사’로 불리며 의덕을 베풀어온 화이웨이가 지난 8월 73세의 일기로 사망, 중국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만인의 어머니’로 불린 미국의 배우 제인 와이어트도 10월 96살의 나이로 삶의 무대를 떠났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어둠 속의 외침, 감방(YTN 오후11시5분) 민주화운동가들의 옥중투쟁 뒤에는 ‘민주교도관’이 있었다. 지난 70∼80년대 정치범을 보고 독재정권의 부당성을 깨달은 이들은 김지하의 양심선언문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부영의 ‘비둘기 편지’의 반출을 도왔다. 이들의 육성 증언을 직접 들어본다. ●EBS장학퀴즈(EBS 오후5시) 가톨릭학교인 천안복자여고와 야구의 명문 인천고의 대결편. 천안복자여고의 박지성·김윤옥 팀은 스피드퀴즈에서 종전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고 인천고의 천윤수군은 거침없이 버저를 눌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 두 학교의 대결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SBS 오전7시40분) 이번 주 손님은 날카로운 실명비판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다. 강 교수가 특별한 것은 글을 쓰는 것 외에는 대외적인 활동을 삼가해온 교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최근 저서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요즘 진보·보수 논란에 대해 말한다. ●누나(MBC 오후7시55분) 승주는 뮤지컬 티켓을 들고 건우를 기다린다. 그러나 건우는 우수논문상을 받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승주는 홧김에 팩소주를 마시고 건우의 회식장소를 찾아가 행패부린다. 한편 건세는 유순과 결혼을 빨리 진행하려 하지만 가족들은 만류하는데, 이 와중에 건세는 더 잘 살겠다 다짐한다. ●비타민(KBS2 오후10시5분) 한국인의 경제질환 시리즈 가운데 가장 관심이 많을 법한 주제 ‘비만’을 다룬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매의 소유자 모델 변정민과 이에 대비되는 탤런트 맹상훈, 가수 정원관·신동 등이 초대손님으로 나와 퀴즈를 풀면서 비만의 문제점과 올바른 다이어트법에 대해 알아본다. ●일요다큐-내장산(KBS1 오후11시50분) 올 가을 단풍은 유난히 즐길 거리가 없었다지만, 그 와중에도 내장산은 빛났다. 예로부터 내장산은 조선8경 가운데 하나로 꼽혔지만 그 숨은 맛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그래서 화가이자 산악인인 이상조 교수와 그의 친구들이 내장산 최고의 절경 입암산성 코스를 보여준다.
  • 日帝 유관순열사 순국뒤 시신토막 옥중 여성열사들 성고문도 자행

    일제가 강점기 당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토막내 훼손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옥에 갇힌 여성 열사들을 성고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1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 8주년을 맞아 연 학술심포지엄 ‘3·1운동기 여성과 서대문형무소’에서 밝혀졌다. 서대문구(구청장 현동훈)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여성 열사들의 옥중투쟁과 일제의 잔인한 고문상이 낱낱이 드러났다.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형무소’를 발표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유관순 열사를 비롯, 여성들이 받은 고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는 옥중에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1920년 3월1일에는 3·1운동 1주년을 기해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 일로 심한 고문을 당해 방광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고, 그해 10월 순국하게 된다. 이틀 뒤에야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미스 프라이와 미스 월터가 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하자,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은 시신을 넘겨줬다. 김 관장은 발표문 중 ‘고문방에서 토막살해 설도’라는 소주제에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머리와 몸통, 사지 등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고, 코와 귀도 잘려 있었다는 기록을 소개했다.‘간수들은 유관순이 고문에 못이겨, 아니 고문으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살해 가능성을 언급하는 문헌도 인용했다.일제의 만행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행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 관장은 “간수들이 말린 황소의 생식기를 고문도구로 사용하다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여성 열사들이 있으면 이 도구를 이용해 성기를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동단 단원이었던 이신애 열사는 서간문과 구술자료에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악명높았던 종로경찰서 미와 경사가 면상을 세게 내리치자 아래턱이 퍽 소리와 함께 왼편으로 돌아가 붙어버렸다. 아이쿠 하려 애를 써도 그때부터 전혀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신애 열사는 옥중에서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전기고문을 받아 손목이 다 타버렸고, 끝내 임신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11·1 개각] 장관급 내정자 프로필

    [11·1 개각] 장관급 내정자 프로필

    ■ 이재정 통일장관 내정자 종교인 출신의 정치인으로 성격은 온화하지만 컬러와 추진력이 분명하다는 평이다.1981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에 보수 진영이 장악해 오던 평통 자문위원을 진보인사로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는 평가를 야당측으로부터 받았다. 지난해 여름 행사장에서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으로부터 맥주 세례를 받은 일화도 이런 평가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옛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을 지냈으며 같은 당 정책위의장도 맡았다.16대 국회에서 초선인데도 당 정책위의장도 맡았고,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중앙선거대책위 유세본부장으로 활약한 대선 공신이다. 한화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옥고를 치렀고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서 사면·복권됐다. 17대 총선에 불출마한 뒤에는 외국인노동자 쉼터인 ‘샬롬의 집’ 사목 활동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통일과선교위원회 위원장, 범종교단체 남북교류협력협의회 공동대표의장 등을 맡는 등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에도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부인 박영희(55) 여사와 1녀. ▲충북 진천 ▲고대 독문과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 신학박사 ▲부정방지대책위원장 ▲성공회대 총장 ▲16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고문 ■ 송민순 외교장관 내정자 자신의 자리를 걸고 협상에 임하는 ‘뚝심의 협상꾼’이다. 1990년대 초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담당하던 미주국 안보과장 시절에 끝까지 밀어붙이는 능력으로 협상상대인 미측으로부터 인정받아 군인보다 더 군인 같다는 뜻에서 ‘커널(colonel·대령) 송’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인 지난해 북한과 미국을 상대로 절묘한 설득과 때론 ‘압박전술’을 구사해 결국 9·19 공동성명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지난해 6자회담에선 미묘한 협상 내용을 특유의 비유와 암시를 섞어 전달해 ‘비유의 달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9·19 공동성명을 이끈 성과를 바탕으로 차관보에서 일약 장관급인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두 단계 뛰었고, 안보실장이 된 후에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안보실장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실질적으로 조율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부인 이명숙(53)씨와의 사이에 1남1녀. ▲경남 진양(58) ▲서울대 독문학과 ▲외무고시 합격(9회) ▲외무부 북미1과장 ▲북미국장 ▲주폴란드 대사 ▲경기도 자문대사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김수정 기자 crystal@seoul.co.kr ■ 김장수 국방장관 내정자 외모만 보면 학자나 종교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온화한 이미지다. 목이 길고 몸매가 호리호리해 군복 입은 학,‘녹학(綠鶴)장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실제 성품도 모나지 않고 적이 없다는 평가다. 그러면서도 업무에 대해서는 빈틈이 없어 윗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주요 직책을 두루 섭력한 ‘정통 육군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전·전략분야의 핵심보직을 거쳐 군내 대표적인 작전·전략통으로 꼽힌다.1996년 1군사령부 작전처장 시절 강릉 잠수함 사건으로 50여일간 집에도 못 들어가며 작전을 지휘했던 일은, 그의 체력과 정신력을 확인시켜준 일화로 회자된다. 특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재직 경력은 ‘한·미동맹 조정’이 최대 국방현안으로 대두한 이때 그의 발탁에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관운이 좋다는 평도 붙는다. 기독교 신자이며, 가족은 부인 박효숙씨와 미혼의 1남1녀가 있다. 아들은 육사를 나와 소위로 복무하고 있고, 딸은 회사원이다. ▲광주(58) ▲광주일고 ▲육사 27기 ▲수방사 작전처장 ▲1군 사령부 작전처장 ▲6사단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 국내와 해외, 북한 정보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정통 국정원맨’.1974년 공채로 중앙정보부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국내정보를 거쳐 16년 넘게 해외 분야에서 일했다. 기획과 인사분야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국제감각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부지런함과 성실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뒷산에서 등산을 한 뒤 업무를 시작할 정도라는 것.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 시절인 2003년 11월 이라크 파병안 수립을 위한 제2차 정부합동조사단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2004년 2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뒤에는 국정원 개혁안인 ‘비전 2005’ 작성을 주도했고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출범과 운영에도 관여했다. 평소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남긴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라는 글귀를 수첩 맨 앞장에 적어두고 있다고 한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다. ▲부산(60) ▲부산고 ▲서울대 법대 ▲주미대사관 정무참사관 ▲NSC사무처 정보관리실장 ▲국정원 기조실장 ▲국정원 제1차장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연세대 ‘김대중 전시실’ 개관 수의·국정노트등 3600점 한자리

    연세대 ‘김대중 전시실’ 개관 수의·국정노트등 3600점 한자리

    우리나라 최초의 전직 대통령 전시기념관인 ‘김대중 전시실’이 문을 연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물품과 관련 사료 3600여점을 모은 전시실을 개관한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으로 단독 전시실이 마련되기는 처음이다. 전시실은 2003년 11월 개관한 김대중도서관의 내부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지상 1,2층 전시실과 지하 1층 카페형 서가로 구성돼 있다. 전시 내용은 김 전 대통령이 기증한 사료 및 해외 수집 사료 500여건과 대통령 재임 때 해외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 183점, 김 전 대통령 기증 장서 3000여권, 각종 영상자료 등이다. 대부분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층 전시실에는 김 전 대통령의 1950년대 각종 언론기고문, 재야 정치인 시절 활동 관련 문서, 노벨평화상 수상 자료 등이 일대기 순으로 전시된다. 목포상고 재학시절 학적부, 옥중에서 가족들과 주고받은 서간문, 결혼 반지 등 김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개인물품도 여럿 공개된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입고 있던 수의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직접 떠준 털장갑 등도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대통령 취임 직후 국정노트에 적은 ‘대통령 수칙’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15가지 항목으로 나뉜 수칙은 ‘인사정책이 성공의 길, 아첨한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불행한 일도 감수해야, 다만 최선 다하도록’‘국회와 야당의 비판 경청,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서 말아야’ 등 대통령으로서의 다짐들이 적혀 있다. 동교동 옛집을 복원한 미니어처,1987년 망월동 묘역 방문 때 영상, 대통령 집무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대통령 되어보기’ 코너 등도 마련됐다. 특별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 재직 당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받은 공직자 선물 중 183점과 정상회담 때 입었던 의상 등도 전시된다. 입장료는 없다. 개관식은 2일 오전 11시 김 전 대통령, 한명숙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부고] 장기수 출신 한학자 이구영씨 별세

    북한공작원 출신으로 22년간 복역한 이력을 지닌 한학자 노촌(老村) 이구영씨가 20일 오전 2시 경기 안양 자택에서 별세했다.86세. 1920년 충북 제천 출생인 노촌은 집안 대대로 저명한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연안 이씨 후예로 조선중기 때 저명한 정치인이자 문인인 월사 이정귀의 후손이다. 부친 이주승과 작은아버지 이조승은 구한말 의병활동에 참여해 의병장들인 이강년과 유인석의 종사관(비서)을 각각 지낸 전력이 있다.1943년에는 독서회 사건에 연루돼 1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공간에는 사회주의 계열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했다. 1958년 공작원으로 남파된 그는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공작도 못해 보고” 경찰에 검거돼 22년간 복역하다가 1980년 출소했다. 젊은 시절 벽초 홍명희를 사사하며 한학을 익힌 그는 장기수로 지내는 동안 옥중에서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와 심지연 경남대 교수를 비롯한 시국사건 투옥자들을 제자로 거느리며 그들에게 한문과 서예를 가르쳤다. 출소 이후 ‘이문학회’라는 한학 관련 모임을 만들어 후학양성과 작품활동에 투신했다. 유족은 1남2녀. 빈소는 강북삼성병원, 발인은 22일 오전.(02)2001-1096.
  • [유림 속 한자이야기] 葉書(엽서)

    儒林(684)에 나오는 ‘葉書’(잎사귀 엽/글 서)는 ‘간편한 通信(통신)을 위해 만들어진 통신방식으로 봉투에 넣지 않고 그대로 부칠 수 있는 카드 형식의 郵便(우편)’을 말한다. ‘葉’자는 본래 ‘ ’(초)가 없는 형태로 쓰였다. 아랫부분은 ‘나무’의 상형이며, 윗부분은 가지에 매달린 ‘잎새’를 본뜬 것이다.用例(용례)에는 金枝玉葉(금지옥엽:임금의 가족을 높여 이르거나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一葉片舟(일엽편주:한 척의 조그마한 배),枝葉(지엽:식물의 가지와 잎처럼 본질적이거나 중요하지 아니하고 부차적인 부분),秋風落葉(추풍낙엽:어떤 형세나 세력이 갑자기 기울어지거나 헤어져 흩어지는 모양)’ 등이 있다. ‘書’자는 ‘글을 쓰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오른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인 ‘聿(붓 율)’과 먹물이 담긴 벼루 모양에서 변화된 ‘曰’을 합한 會意字(회의자).‘書寫(서사:글씨를 베낌),書案(서안:예전에, 책을 얹던 책상),雁書(안서:먼 곳에서 소식을 전하는 편지),精書(정서:정신을 가다듬고 주의를 집중하여 글씨를 씀)’ 등에 쓰인다. 세계 최초의 郵便葉書(우편엽서)는 1869년 10월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發行(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엽서의 시초는 1843년 골이 考案(고안)한 것이라 하며,1846년 빅토리아 여왕 夫妻(부처)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우편으로 보냈다는 記錄(기록)이 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독일의 출판업자 슈바르츠의 양부모가 마그데부르크에서 발이 묶이자, 슈바르츠가 시국 사정을 알리기 위해 印刷所(인쇄소)에 있던 ‘포대도(砲隊圖)’를 엽서에 인쇄하여 여기에 짧은 글을 적어 보낸 것이 그림엽서의 시작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림엽서는 인쇄술이 발달한 독일에서부터 各國(각국)으로 전파되었다. 풍경사진이 담긴 그림엽서는 1875년 독일에서 나왔고,1888년에는 베를린의 匠人(장인) 헨델이 자기 공장의 사진을 넣은 선전용 그림엽서를 만들어 주목을 끌었다.官製(관제) 그림엽서는 1880년 헝가리 우정청이 歷史(역사),風俗(풍속),風景(풍경)을 주제로 하여 3색판으로 만든 것이 嚆矢(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葉書는 光武(광무) 4년(1900) 5월10일, 우체엽서(郵遞葉書)라는 이름으로 발행한 국내용인데 액면가가 壹錢(일전)이었다.國內用(국내용) 普通葉書(보통엽서) 1전,往復葉書(왕복엽서) 2전,國際用(국제용) 普通葉書 4전,往復葉書 8전의 4종이 있었다.1차는 1900∼1901년 국내에서,2차는 1903년 6월 독수리우표와 함께 프랑스에서 인쇄하였다. 보통엽서 1전은 大韓帝國(대한제국) 農商工部(농상공부) 인쇄국에서 製造(제조)한 것과 전환국에서 제조한 것 2가지가 있었다. 金大中(김대중) 前大統領(전대통령)이 이른바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으로 육군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서 收監生活(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보낸 獄中(옥중) 書信은 많은 사람들의 心琴(심금)을 울렸다.死刑囚(사형수)와 無期囚(무기수)로서 수감 생활 동안 가족에게만 월 1회의 봉함편지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단 한 장의 葉書에 빼곡하게 쓴 29통의 서신이 矯導官(교도관)들의 면밀한 검열을 거쳐 집으로 우송되었음은 물론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인사]

    ■ 재정경제부 (전보) △종합정책과장 金哲周△경제분석〃 李燦雨△복지경제〃 金二泰△부동산실무기획단 조세반장 曺圭範△재정경제부 尹琮源■ 건설교통부 ◇팀장급 전보△수도권정책팀장 朴茂翊△물류정책팀장 朴宗欽△국외훈련 金景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승진 △통합민원관리본부장 趙誠烈◇전보△운영지원팀장 李憲植■ 국가청소년위원회 ◇서기관 승진 △행정지원팀 林長洛△혁신인사기획팀 申俊鎬■ 서울특별시교육청 (초등) ◇교장 승진 △양동초 강성인△미양초 강운식△정릉초 고윤종△대은초 권영숙△수유초 권중만△대현초 김귀순△상도초 김문숙△북성초 김병환△염리초 김선희△난우초 김순영△대영초 김용례△수서초 김인숙△면북초 김인효△갈산초 김종관△소의초 김진성△묵현초 김창원△숭신초 김탁영△길동초 김태영△동교초 김효한△인왕초 나학균△대곡초 남재엽△신명초 노정우△오금초 류관석△은평초 문홍율△면일초 박수환△역촌초 배종용△구일초 백기철△동작초 백영후△선사초 백용현△명원초 서종태△개일초 신명수△방이초 심대섭△서일초 양천희△왕북초 오명렬△영희초 유재철△도봉초 윤영민△신곡초 이기선△동신초 이동식△서초초 이숙하△영본초 이육범△신길초 이재임△영풍초 이정준△길음초 이해직△숭덕초 이혜숙△영일초 장공주△신자초 정건영△녹천초 정승길△원명초 정용례△경동초 정제갑△방현초 정준교△학동초 조은식△온곡초 최선표△고산초 최선필△도림초 최세열△월정초 최홍근△삼양초 한점섭△정애학교 이후자◇교장 중임△가동초 김학봉△우이초 박찬우△휘경초 신용기△장충초 이경숙△지향초 이경순△미성초 정종규△포이초 최진억△신용산초 황시범◇초빙 교장△상봉초 백형윤△오현초 송경헌△신묵초 원정환△상암초 정덕현△등원초 정운필△영등포초 정익교△송천초 최여규△강월초 최오복◇교장 전보△무학초 류지연◇교장 전직△영원초 김동래△중곡초 고영택△중마초 권혁인△장월초 김영화△창일초 김옥자△성수초 송봉종△선린초 임현철△영화초 조철행◇교육전문직(관급) 승진 및 전직△본청 교원정책과장 조학규△〃 초등교육정책과 장학관 오효숙△〃 학교체육보건과 〃 손웅◇교육전문직(관급) 전보△강동교육청 교육장 정병수△남부교육청 학무국장 진장관△본청 교원정책과 장학관 김동춘△강남교육청 초등과장 임점택◇교육인적자원부로 전출(국립교장 포함)△교대부초 박대한△사대부초 전학도△방송통신대 교육연구관 전우성◇교감 승진△동부교육청 고종만 김경달 김혜정 노재원 류연동 박정숙 양삼양 이동선△서부교육청 김영미 김재근 박숙자 서기연 이승환 전상권 조경숙△남부교육청 강명제 김수일 김일주 김홍집 박승선 오 택 이희선 전은숙 하두봉 한상철△북부교육청 김길자 김재민 나철균 문재원 백승익 손경재 이경숙 이의구 임승빈 장원갑 정남기 정내석 최순주△중부교육청 진 연 황명순△강동교육청 강석란 김선자 박혜영 신윤철 이경숙 임선덕△강서교육청 김종진 남기열 서진숙 서풍연 이득세 이혜자 지화영 최명록 최영길△강남교육청 국윤옥 김덕행 김수영 김영숙 김학윤 박금은 박한흥 신명철△동작교육청 김옥순 박호준 이유호 이재순 조의상△성동교육청 김민수 차종섭△성북교육청 김선용 김재식 김홍기 박순재 유금효 윤부현 한재윤△서울정인학교 현광영◇교감 전보△동부교육청 이규순△서부교육청 문영환 서성숙△북부교육청 한문자△중부교육청 최미경 최정신△성동교육청 권경숙 김명수 이태일 조성익 채건묵 홍성숙◇교육전문직의 교감전직△남부교육청 한철수△강동교육청 김영철 김정혁△강서교육청 김재환 박영애△강남교육청 이경자 장석진△성동교육청 김남규 최정근△서울광진학교 박희수◇교육전문직간 전직△동부교육청 채주식△서부교육청 김창희△성동교육청 김종덕 홍은경△교육연수원 안명일 정선숙◇교육전문직간 전보△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정책과 김해충△교원정책과 최평구△학교체육보건과 배창식△과학활성화추진단 강종훈△동부교육청 안일홍△강서교육청 한기천△강남교육청 이상봉◇교육전문직으로 전직△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정책과 이재관△교원정책과 유재준△서부교육청 서석영 양영식 김정선△남부교육청 오언석△북부교육청 김춘예 김형태△강동교육청 김선희 신재우△강남교육청 오행자 유정원△동작교육청 남미애 송현숙△성동교육청 장용선△성북교육청 한경옥△교육연구정보원 서금화△교육연수원 김미숙 최미숙◇교감의 교육인적자원부 전출△최덕찬(중등 교장·교감)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연서중 박현춘△은평중 최정호△구산중 이재능△고척중 박문수△당산중 오재원△대영중 김윤식△여의도중 정헌우△노곡중 김용국△도봉중 조사부△상경중 송수자△ 호여자중 장무순△장원중 문민식△문정중 박현태△신암중 강선희△거원중 이경수△오금중 나종태△가원중 최우섭△강신중 양기동△등명중 박순덕△금옥중 성동준△송정중 나현수△수서중 이양자△원촌중 정근옥△신구중 김경숙△동작중 황기수△상현중 추병화△옥정중 이내수△강북중 이범윤△석관중 백종현△월곡중 김은배◇교감에서 초빙교장으로 승진△국사봉중 김종대◇교장 중임△성동고 이기용△영등포고 이승원△강서공업고 고석달△동호정보공업고 이태선△서초전자고 조남수△신사중 차완영△강남중 김종천◇교육전문직(관급)에서 교장 전직△경기상업고 이남호△용산고 김걸△삼성고 김현중△동원중 송석원◇교장 전보△덕수정보산업고 이인원△성동공업고 정병복△서울로봇고 이명하△종로산업정보학교 김휘권△ 경동고 고필곤△수도여자고 조정숙△신목고 박범덕△중화고 이현우△청량고 마건일△여의도고 박원영△무학여자고 신성호△노원고 박대윤△등촌고 엄영주△천호중 남태욱△양재고 최난주△서울북공업고 김용래△태랑중 신호춘◇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당곡고 곽근식△잠신고 오경석△서울공업고 황근태△동부교육청 이선용 김신△남부교육청 최광철 배정문 김종영 임춘희△중부교육청 민병무△강동교육청 임승춘 황성희△강서교육청 이운기 김용국 오건오 공영택△강남교육청 주명자△동작교육청 고영애 염동락 서태석△성동교육청 박혜선△성북교육청 윤종경◇교육전문직에서 교감으로 전직△구정고 김용호△불암고 홍기춘△서울고 길산석△신현고 홍영호△여의도여자고 홍석△성동여자실업고 조재순△북부교육청 이진영△북부교육청 이동환△강서교육청 김영길 정관영△성동교육청 정상현◇교감 전보△관악고 김중호△구일고 이만대△명일여자고 이상욱△석관고 김서구△도봉정보산업고 안광식△서울공업고 노승희△서울경영정보고 박용구△동부교육청 지영호 김철웅△서부교육청 오희석△동작교육청 박상기(중등 교육전문직 ◇교육전문직(관급) 승진△남부교육청 교육장 주영기△직업진로교육과 과장 김환섭◇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교육연수원 원장 이병호△서부교육청 학무국장 정만섭◇교감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중등교육정책과 장학관 장우석◇교육전문직(관급) 전보△강동교육청 학무국장 봉성근◇교사에서 교육전문직(사급)으로 전직△직업진로교육과 이대우 박정희△남부교육청 김미란△북부교육청 최명숙 강요식△강서교육청 최종석 양신호△동작교육청 김낙영△성동교육청 서준형△성북교육청 고은정△교육연수원 송형세 조호규△학생교육원 류상국◇교육전문직(사급) 전보ㆍ전직△공보담당관 김남형△교원정책과 윤웅호△학교체육보건과 성계숙 강동숙△학교운영지원과 김정화△동부교육청 최진흥△강서교육청 진명희△교육연수원 김병혁 전용각△교원정책과 유종도△학교체육보건과 백해룡△남부교육청 이준자△강동교육청 이경임◇교육전문직(사급)에서 교육전문직(관급)△북부교육청 중등과장 이준용◇교육인적자원부 전입·전출△자양중 김영윤△수도여자고 정금배△서부교육청 민경란△교육인적자원부 박제윤 임용우■ 세계일보 (논설위원실)△논설위원 田天實 安炅業(편집국)△기획위원 朴秉憲 金善敎△특별기획취재1팀장 蔡禧昌■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 延昌萬△교원나라상호저축은행 사장 趙在烈△천마개발 〃 南奉鉉■ 산재의료관리원 ◇전보 △총무국장 朴元鐘△인천중앙병원 행정부원장 林永吉△태백중앙병원 〃 吳圭眞■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승진 (수석급) △선임연구본부 崔康潤△전기·신호연구본부 박현준 鄭相基(책임급)△기획조정실 文鎭韓△정책개발실 李羲業△미래기술실용화센터 李京喆△첨단교통기술개발사업단 鄭樂敎△철도시험인증연구센터 尹聖哲 金明龍△도시철도기술개발사업단 李祐東(선임급)△기획조정실 南恩景△정책개발실 李哲叫 趙世熙△행정실 朴琁暎△철도시험인증연구센터 李剛遠△철도시스템안전연구본부 玉珉煥△전기·신호연구본부 金周洛 張東旭△궤도·토목연구본부 金兌昱△도시철도기술개발사업단 李翰旼(주임급)△기획조정실 金周煜△행정실 崔榮準△행정실 陳在善△도시철도기술개발사업단 吳世燦■ 머니투데이 △뉴욕특파원 柳勝皓■ 현대증권 ◇전보 △M&A 팀장 李廣周△서초지점장 李桓盛△익산〃 朴龜千
  • 신영복 교수 ‘콘서트 퇴임식’

    옥중서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영복 교수의 정년퇴임식이 콘서트와 토크쇼라는 파격적 형식으로 마련된다. 성공회대는 22일 “신 교수의 정년퇴임식이 25일 오후 8시부터 교내 야외무대인 ‘1만광장’에서 학생과 지인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헌정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퇴임식에는 신 교수의 제자이며 로커인 윤도현(신문방송학과 재학)을 비롯해 강산에, 안치환, 한영애, 장사익과 포크그룹 ‘나팔꽃’, 성공회대 교수 밴드인 ‘더 숲 트리오’ 등이 무대에 선다. 가수들의 공연 중간에는 재학생들을 비롯해 지인인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성공회대 김성수 총장, 연기자 권해효씨 등이 이야기 손님으로 나선다. 대학시절 신 교수의 입주과외 제자였던 심실 유니원 커뮤니케이션 회장과 브랜드네이밍 업체 크로스 포인트의 손혜원 사장이 신 교수와의 추억을 회고할 계획이다. 사회과학부 교수와 제자들이 함께 제작해 신 교수의 삶을 돌아보는 영상물도 상영된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출소해 17년 간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국내 대표적 좌파 지식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퇴임식에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노회찬·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유홍준 문화재청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유명 인사와 신 교수의 학창시절 동창생, 교내외 학생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성공회대 관계자는 “틀에 갇힌 퇴임식보다는 동네잔치처럼 자유로운 축제 분위기 속에서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제자와 지인들이 뜻을 모아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를 맡아 강단을 지킨다.연합뉴스
  • 아나키스트의 흔적을 찾아서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자처럼 잊혀진 사람들이 또 있다면 아나키스트들이다. 누구보다 정열적이었지만 ‘무정부주의자’라는 번역어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어감이 짙게 남아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독립기념관이 광복절을 맞아 15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이들을 재조명하는 ‘아나키스트들의 항일 투쟁-조국을 강탈한 적의 심장을 겨냥하라’ 전시회는 뜻깊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마당을 마련한 셈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는 것은 오직 무장투쟁의 길밖에 없다고 선언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명문장 ‘조선혁명선언’, 주중 일본공사를 테러하려 했던 육삼정 의거의 주역 백정기·이강훈·원심창 선생의 유품들, 이들을 감시·탄압하기 위한 일제의 보고서 등이 전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일왕을 죽이려던 계획이 드러나 22년간 옥살이했고, 이때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의 러브스토리가 널리 알려진 박열 선생의 유품들. 이번에 전시되는 옥중 노트, 한국에서 발간한 잡지 ‘신조선’(1946년 7월호) 등의 자료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변호사 1만명시대] ‘그늘’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은 변호사들

    [변호사 1만명시대] ‘그늘’ …넘지 말아야 할 선 넘은 변호사들

    경쟁과 불황이라는 이중고 때문인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 변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변호사들의 비리는 브로커 고용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변호사 스스로 사기, 횡령 등 일반 형사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사업가 김모씨는 최근 A변호사를 사기죄로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고소했다.A변호사가 구권화폐 교환을 미끼로 수십억원을 받아가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 김씨는 “유명 변호사가 ‘40% 이윤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하는데 안 넘어갈 도리가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들이 넘는 ‘불법 능선’은 다양하다. 경매브로커에게 변호사 명의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거나,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의뢰인을 석방시켜 주겠다며 법원 로비명목으로 1000여만원을 건네받은 변호사도 있다. 심지어 B변호사는 의뢰인이 채무금을 변제하려고 법원에 공탁금으로 맡긴 6900여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검찰은 최근 이들을 모두 불구속기소했다. 구속수감된 이용호 G&G그룹 회장에게 주식 시세조회 단말기와 휴대전화를 갖다 주는 등 ‘옥중경영’을 돕는 대가로 2억원을 받은 이른바 ‘집사 변호사’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범죄뿐 아니라 변론의 질적 저하도 변호사 1만명 시대의 그늘이다. 지난해 사건을 수임하고도 소송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항소기간이 지난 줄도 몰라 패소한 사례도 20건이나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징계 건수는 벌써 23건에 이른다.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7건,130명의 변호사가 징계를 받았다.2002년 15명,2004년 42명, 지난해 56명 등으로 징계를 받는 변호사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변협은 법무부에 비리 변호사 9명의 업무를 정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동안 변호사의 비리에 대한 징계는 ‘솜방망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변협의 징계는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몇 개월의 정직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다. 수임비리 등으로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이 넘는 수익을 얻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직이나 과태료를 받더라도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김효섭 박경호기자 newworld@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8) ‘한국천주교 순교1번지’ 전동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8) ‘한국천주교 순교1번지’ 전동성당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박해와 그로 인한 희생의 흔적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전북 전주는 그 가운데서 참수·능지처참 등 극형으로 목숨을 잃은 초기 희생자가 유난히 많아 ‘순교의 땅’으로 통한다. 그 ‘순교의 땅’ 전주에서도 전동성당(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 주임 김준호 신부, 사적 제288호)은 최초의 순교자를 낸 ‘순교 1번지’에 세워진 호남의 모태 본당이다. 호남 지방의 근대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웅장한데다 곡선미가 빼어나 ‘호남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회자되는 성당. 그러나 화려한 명칭과는 다르게 초기 한국천주교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신앙 증거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전동성당은 전주 시내에서 전북도청을 관통하는 남문로의 남쪽 끝부분에 오똑 앉아 있다. 초기의 성당들이 대부분 구릉지에 세워진 흐름에서 비켜 평지에 세워진 몇 안 되는 성당이다. 맞은편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셔놓은 경기전이 있고 동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곳엔 고려 때 쌓은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이 우뚝 서 있다. 거듭된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풍남문’.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그의 외종사촌 권상연이 처형당한 곳도 이곳이다. 한국의 초기 천주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분주폐제’(焚主廢祭,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움)와 ‘대박청원’(大舶請願, 선교사를 데려오기 위해 서양선박을 불러들임). 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에 살던 윤지충은 1791(신해)년 5월 모친상을 당한 뒤 외종형 권상연과 상의해 유교식 조상 제사를 폐지했는데 이는 당시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른바 ‘진산사건’. 결국 두 사람은 진산에서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풍남문 밖’인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에서 참수되어 9일간 풍남문에 내걸렸다. 이곳 신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혹한에도 선혈이 응고되지 않았다.”는 기적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가 탄생한 것이다.‘대박청원’은 호남의 부호이면서 천주교를 가장 활발하게 전교했던 ‘호남의 사도’ 유항검이 중국에서 사제 영입운동을 전개한 사건. 유항검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조선 땅에 잠입시켰다.”는 이유로 대역무도죄와 사학괴수로 몰려 1801년 역시 ‘풍남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전동성당은 윤지충·권상연이 순교한 지 100년이 지난 1891년 봄 두 사람의 순교 터에 본당 터전을 마련해 전교를 시작한 호남의 모태 본당.1908년 초대 주임인 프랑스의 보두네 신부가 성당 건축을 시작,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14년 완공됐다. 당시 일제 통감부는 전주에 신작로를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었는데 보두네 신부가 그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윤지충·권상연·유항검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목을 효수했던 현장의 돌을 주춧돌로 사용해 순교지와 ‘신앙의 요람’임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성당 지하에는 당시 썼던 주춧돌이 성당을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다. 공사에는 중국인 벽돌공 100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고, 석재는 전북 익산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해 왔다. 목재는 지금의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전주 시내뿐만 아니라 인근 진안, 장수, 장성 등지의 신자들이 밥을 지어먹을 솥과 양식을 짊어지고 와 공사를 거들었다. 그렇게 해서 성당봉헌식이 열린 것은 1931년.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무려 23년이 걸린 것이다. 정면 중앙 종탑부와 양쪽 계단에 비잔틴 풍의 뾰족 돔을 올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12개의 창이 달린 종탑부와 8각형 창을 낸 좌우 계단의 돔은 이 성당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초기의 적·회색 벽돌색이 그냥 남아 있는 성당 내외벽도 인상적이다. 내부 공간은 서울 명동성당에서처럼 공중 회랑에다 자연채광이 되도록 많은 창을 내었다. 그래서인지 명동성당은 ‘아버지 성당’,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당 양측 벽면 18개 창 가운데 신자석을 향한 12개의 색유리창에는 성인품에 오른 103위 한국 순교자 중 전주 숲정이와 서천교에서 희생된 7명의 성인과 본당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권상연, 유항검과 유관검, 그리고 동정부부 순교자인 유중철·이순이, 본당 초대주임 보두네 신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와함께 제대 주위에는 예수의 탄생부터 수난·부활·승천·성령강림·성모승천을 보여주는 색유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가장 아름다운 교회’라는 명성에 걸맞게 신자들의 순례지는 물론 영화계와 결혼을 앞둔 커플들의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강재규 감독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일부분과 영화 ‘약속’중 주인공 박신양·전도연의 결혼식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1937년 전주교구 설립과 동시에 주교좌 성당으로 격이 오른 전동성당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점령당해 전라북도 인민위원회와 차량 정비소·보급창고로 사용되면서 제대와 성당 내부가 파괴되었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엔 전라북도 지역 ‘민주화의 성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던 중 1988년 10월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여 동편 2층 회랑이 전소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 북한군에 의해 파괴된 십자가의 길 14처를 복구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차례 보수 공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래의 마룻바닥은 1973년 인조석으로 교체되었고 유리창은 1975년에 개수됐다.1992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 부식된 벽돌을 새 벽돌로 교체했고 성당 양측 벽면 창문 18개도 유리화로 새단장했다. 원래 있던 담장도 헐어 시민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얇은 얼음위 걸어가는듯… 유혹 이겨낼수 있도록 기도” 전주는 숱한 순교자를 낸 ‘순교의 땅’으로 유명하지만 그가운데서도 동정부부 유중철·이순이는 빼놓을 수 없는 ‘순교자의 꽃’으로 자주 회자된다. 이 동정부부는 세계 천주교사에서도 이례적인 것으로 외국에까지 알려져 있다고 한다. 유중철은 ‘호남의 사도’로 불리다 전주 남문 밖에서 처형된 유항검의 맏아들이고, 이순이는 조선 태종의 14대손으로 지봉 이수광의 8대손인 이윤하와 권일신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 신앙심이 두터운 가계에서 자라난 두 사람은 중국에서 들어온 주문모 신부에 의해 동정부부로 연을 맺었다. 호남 지역 전교길에 나섰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유항검의 집(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일명 초남이)에 머물던 중 유항검의 장남 중철이 동정으로 살겠다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고 혼사를 주선한 것이다.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이듬해 초남이 유항검의 집에 내려온 두 사람은 4년간 동정 부부의 생활을 하다가 신유박해 때 처형되는 비운을 맞았다.20세의 나이에 전주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이순이가 참수되기 직전 옥중에서 친정 어머니와 언니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동정부부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 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두 사람은 동정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4년을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런 중에 육체적인 유혹을 근 십여 차례 받아 하마터면 동정서약을 깰 뻔했어요.”(어머니에게)/“육체적인 유혹이 심해서 마음이 두렵기가 얇은 얼음 위를 걸어가는 듯, 깊은 물가에 서 있는 듯했어요. 주님을 우러러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지요. 주님의 도우심으로 간신히 그 유혹을 떨쳐 동정을 온전하게 지켜내었습니다.”(언니에게) 두 사람이 4년간 동정부부로 살았던 유항검의 집은 유항검 일가가 참형으로 순교한 뒤 조정에 의해 헐려 연못으로 변했다. 조선시대 중죄인에게 가해지는 파가저택(破家宅)이 된 것이다. 지금 그 터에는 작은 웅덩이 하나가 남아 있어 천주교계에서 성지로 가꾸고 있다. 유항검과 유중철·이순이 동정부부의 무덤은 전주 교동의 치명자산(중바위)에 있으며 여기에는 국내 신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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