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옥수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4차 산업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시흥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통과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탐구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47
  • 석유도시 대경의 조선족(송화강 5천리:23)

    ◎중 최대 유전도시개발 대역사 참여/인구 87만중 5천여명… 유화업종에 종사/석유관리국 최기남 총공정사 “돌출한 과학자”로 두각/민족교육에는 뒷전… 자체 유치원시설 한곳없어/한어교육에 집착… 중국인 한국어교습 열풍과 대조 조선족과 모국어 하얼빈 서북쪽 160㎞ 밖에는 대경이라는 석유도시가 있다.하얼빈과 만주리간 공로를 고물 버스로 4시간을 옹골지게 달려 대경시에 도착했다.이른바 흑하지구에 해당하는 대경일대는 농사도 잘되었지만,대부분이 버려진채 묵어나는 황무지격의 무인지대였다.그런데 1957년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화학공업지대로 탈바꿈했다.공산당이 국가를 세운지 10주년이 되는 해에 유전이 발견되어 크게 경사스럽다는 뜻에서 대경이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표본 공업지대로 명성 대경의 첫 인상은 도시라기 보다는 드넓은 평원에 마을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은 거대한 군락처럼 보였다.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무인지대가 수십리씩 이어졌다.무인지대에는 석유를 탐사하는 시추기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과연 중국 최대의유전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대경의 유전면적은 2천334㎢에 이르고 있다.중국전체 석유매장량이 47%를 차지하고 대경유전은 중국의 표본공업지대이기도 했다.모택동은 생존시 틈만 있으면 「공업은 대경을 따라 배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그래서 대경은 중국인들 귀에 못이 박힌 석유화학공업지대인 것이다. 대경의 첫 석유는 정확히 1959년9월26일 하오 송기3호 시추기가 박힌 탐사정에서 분출되었다.석유가 본격 생산되면서 근로자와 그 가족을 위한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이 무렵 중국정부는 석유개발과 함께 개간농업을 추진하기 위해 근로자 가족들을 끌어들였다.그래서 대경은 1979년 시로 승격한 이후에도 농공결합도시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석유 말고도 옥수수·밀·조·수수·콩·농사 등 대경의 농업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대경시 인구는 87만9천명으로 집계하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5천35명으로,모두가 유전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유전개발 당시 와서 뿌리를 박았거나,그 이후 학교는 졸업하고 직장을 따라 온 간부·기술자·근로자와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다.조선족 대표인물로는 대경석유관리국 시추제1공사 최기남 총공정사(56)를 꼽는다.1963년 북경석유학원을 졸업하고 기술원으로 대경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30여년간 석유공업 발전에 뚜렷한 공을 세웠다.그는 「돌출한 과학전문가」와 유전의 「10대 우수종업원」이라는 영예를 얻은 탁월한 인물이었다. 대경시는 조선족들이 석유공업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했다.그러나 민족을 위한 사업에 발벗고 나선 사람들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5천명이나 되는 조선족들은 자기네 문화관 같은 시설 하나를 챙기지 못했다.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소학교 307군데,중학교 92군데,대학 및 전문학교 27군데가 모두 한족학교다.대경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창작을 하는 작가 이주천씨(34)의 말을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직장이 같지 않으면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습네다.조선족이 많기는 하지만,동서남북으로 멀리 흩어져 살기 때문이디요.교육도 기래요.조선족 학교를 세운다고 해도 기숙제를하지 않고는 학교를 보낼수가 없다 이 말입네다.그래서리 대경의 조선족들은 자식을 유치원에서부터 한족교육을 그대로 받고 있디요』 ○영·일어 이어 한국어 인기 조선족 모두가 잡거구에 사는 터여서,아이들이 조선족유치원에 들어가지 않고는 모국어를 알 턱이 없다.어린시절을 한족유치원에서 보내고 조선족소학교를 가도 중국에서 조선어라 호칭하는 한국어가 외국어처럼 되기는 매한가지다.그렇다고 조선족 어른들이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다.왜냐하면 중국에 살자면 어차피 중국어에 능통해야 된다는 선입견으로 해서 아이들의 한족학교 입학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조선족학계에서도 한국어보다 한어를 우선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중국에 자리를 잡은만큼 한어가 국어고 한국어는 모국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국어를 영어나 일어 정도로 보아야한다는 한어 주창론자들은 조선족들의 못리판인 연길에서도 한어를 모르면 문밖을 나설수 없지 않는가라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견해에 날카롭게맞서는 이들도 있다.말은 민족의 마음이고,글은 민족의 얼굴이어서 모국어를 멀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따라서 한국어가 만약 일어나 영어와 같은 외국어 위치에 놓인다면 민족은 자기의 모습을 잃어버린 꼴이 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모국어 옹호론자들은 한국어가 세계에서 17번째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한국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면서 한족들의 한국어 학습열기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모국어 옹호론자들 입장에서 보면 뿌듯할 수 밖에 없다.그래서 언어의 표준화 및 규범화,우리말과 우리글의 보급이 시급하다는 옹호론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이는 소수민족의 자기언어 우선은 물론 소수민족지구 한족간부들도 해당 소수민족 언어를 배우도록 부추기는 중국 정부 소수민족정책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족간부들 가운데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어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로 자리잡았다.길림성 교하시 조선족소학교 교원 허순옥씨는 산동성 위해시 직업학교 교장으로부터편지 한 통을 받았다.내용은 한국의 외국어학원과 비슷한 한국말학습반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 위해로 와서 한국말을 가르쳐 줄 뜻이 없느냐는 것이었다.말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교사가 부족한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제2외국어로 통하는 한국말을 배우고 싶은데,교과서를 구할 수 없느냐?」는 편지가 수없이 날아든다고 했다. ○대학서도 관련학과 설치 붐 지난 1995년 하얼빈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족유치원이 문을 열었다.정원이 110명이었는데,50명을 초과할만큼 인기가 높았다.이는 1991년5월 하얼빈시 조선족 기초교육건설 모금위원회가 하얼빈시에 여러 차례 건의하여 이루어진 사업이다.지난 해에는 정부 허가를 받은 하얼빈중급한국어학교가 설립되어 15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였다.그리고 흑룡강성 외국문서점에서는 「한국어백일통」「한한대조 365」「현대한국어회화」를 내놓았다.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를 단숨에 제치고 영어와 일본어에 이어 3위에 오르면서 판매량이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어 바람은 중국내 유명대학에까지 불어 한국어학과 설치가 늘어나고 있다.그 때문에 연변대 조선어학과 출신들을 앞다투어 모셔가는 일이 벌어졌다.조선족들의 한국어 외면과 달리 한족들에게 오히려 한국어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이다.
  • 대북 민간 쌀지원 허용/외국산 포함… 경제단체도 참여/정부

    정부는 그동안 민간차원의 대북지원 품목에서 제외해온 쌀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고 경제단체를 통할경우 민간기업들의 대북 지원도 허용하기로 했다.〈관련기사 2면〉 정부는 그러나 직접 현금지원이나 언론의 모금은 계속 금지하기로 했다. 통일원은 31일 『정부는 북한주민들의 식량사정이 계속 어려워지고 있는데 따라 민간차원의 지원품목과 참여범위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면서 『외국산 쌀을 포함한 곡물의 민간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통일원은 그러나 『쌀지원 문제는 북한측이 비싼 쌀보다 옥수수등 저가곡물의 다량지원을 원하고 있는데다 우리의 수급사정 등도 감안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조치가 곧바로 국내쌀의 대규모 북한반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통일원은 또 『최근 한적이 그동안 참가를 제한해온 기업의 지원참여를 공식요청해 왔다』면서 『기업의 개별적 지원은 남북경협 참여 기업체에 대한 북한측의 무리한 요구나 민간단체들의 이중모금등 예상되는 문제점을 감안해 경제단체를 통해서만 지원이 가능해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 식량 6월께 바닥… 7∼8월 최대고비

    ◎“길거리에 아사자 시신” 목격담 잇따라/외부원조 없인 대량난민·폭동 가능성 북한의 식량사정이 갈수록 악화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대규모 외부지원이 없는한 6월쯤 재고가 바닥이 나 7·8월쯤에는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북한 주민들의 식량실태를 살피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국제기구 요원및 친척을 만나기 위해 방북했던 재일교포나 북한에 식량을 실어나르는 중국의 트럭운전수들은 주민들의 생활상이 참담하다고 전하고 있다.길거리에 굶어죽은 사람의 시체가 덮여있고 흙까지 먹는 어린이를 보았다는 것이 이들의 비참한 목격담이다. 북한의 식량사정은 김정일이 지난해 12월에 행한 비밀연설에서 『식량문제로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있으며 군량미도 바닥이 났다』고 실토했을 정도로 절박하다.또 지난 2월초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는 작년말 현재 식량재고가 24만6천t 뿐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이같은 북측의 발표에 대해 대부분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외국으로부터 더 많은 식량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북한이 의도적으로 재고량을 축소했을 것으로 보았다.이러한 발표가 사실이었다면 지난 1월중에 이미 재고가 바닥이 났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시점에서의 북한의 식량사정은 심각하지만 다수의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정부당국이나 대다수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세계식량계획(WFP)의 보고서나 중국 등이 추정한 자료를 분석하고 북한이 지난해 외국에서 도입했거나 원조를 받은 곡물량을 감안해볼 때 아직도 적지않은 재고가 남아있고 비축미도 상당하리라는 추정이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연간 곡물수요량을 5백70만t으로 볼 때 지난해 생산량이 3백69만t으로 어림되고 있고 도입량이 1백만∼1백10만t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양곡연도인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은 지탱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관계당국은 그러나 올들어 외국의 지원과 외국으로부터의 도입량이 12만t에 불과해 식량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북한의 농업과 식량문제를 계속 추적하고 있는 농촌경제연구원의 김운근 박사는 지난해 곡물생산량량을 2백50만∼3백만t으로 추정하고,11월 이전에 70만∼80만t을 앞당겨 소비해 재고가 많이 줄었들긴 했으나 배급량을 최소량으로 줄인다면 금년 상반기까지는 재고와 햇감자등으로 북한주민들의 연명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김박사는 그러나 옥수수가 나오기 직전인 7월쯤 위험한 고비를 맞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식량난이 최악의 상황에 이른다해도 북한체제가 당장 붕괴될 것으로는 보지않고 있다.그러나 배급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태수습이 불가능하거나 대량난민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가뜩이나 식량난으로 사회일탈현상이 팽배한 가운데 식량난의 장기화에 따른 영양실조로 사망자가 늘고 당장 먹을 것이 없을 경우 극한행동으로 나올수 밖에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북한은 연내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권력공식승계를 앞두고 이처럼 식량사정이 절박해지자 유럽과 미국등지에 대표단을 보내 식량지원을 호소하는 한편 식량지원을 보장한다면 4자회담에 참석하겠다고 하는 등 식량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북한 작년 마이너스 3%내외 성장/통일원 경제동향 분석

    ◎건설·교통­자재·장비부족으로 실적 54.9% 감소/농업­홍수 등 영향 평년작보다 45만t 미달/광공업­공장가돌률 30%미만… 위탁가공 20%/대외무역­총규모 19억불… 무역적자 6억2천만불 북한의 지난해 경제는 수재와 에너지 및 원자재부족 등으로 농업과 건설·광공업 등 거의 전부문에서 생산차질이 빚어져 전년대비 마이너스 3%내외의 성장을 기록했다고 통일원이 20일 밝혔다. 이로써 북한경제는 지난 90년부터 7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심각한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통일원은 밝혔다. 통일원이 이날 발표한 「96년 하반기 북한경제 동향」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농업생산은 7,8월의 국지성 집중호우로 작황이 불량,평년작 414만t에서 10.8%가 감소한 369t에 그쳤다. ◇건설·교통=하반기중 완공·조업된 총건설실적은 자재와 장비부족으로 전년동기의 51건보다 54.9% 감소한 23건에 불과했다.이나마 정치선전목적의 상징물 16건,선행부문 4건등 소규모 건설사업이 주류를 이뤘다.또한 이미 추진중이던 건설사업들도 중단되거나 공사진척이 부진,김정일의 지시로 역점추진하던 원산∼금강산간 철도공사의 경우 12월말 현재 공사진척도가 50∼60%에 머물렀다. ◇농업=96년 농업생산량이 전년대비 6.9% 증가했으나 국지성 집중호우와 홍수피해 미복구 등으로 평년작 414만t에는 45만t 미달한 369만t에 머물렀다.쌀 134만t,옥수수 197.6만t,두류 12.1만t,기타잡곡 25.2만t을 수확했다.수해로 28만8천여㏊의 농경지가 침수·유실됐고 소 761두,돼지 1천710두등 2만7천여두의 가축피해를 입었다. ◇광공업=내수용 생필품 생산증대에 주력했으나 시설개체가 이뤄지지 못해 침체가 여전했다.에너지와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가동률이 30%미만으로 떨어졌다.다만 섬유·봉재는 한국과 일본의 위탁가공으로 비교적 생산이 활발,남북한 위탁가공 교역규모가 2천428만달러로 전체 교역의 20.3%를 차지했다. ◇대외무역=지난해 대외무역 총규모는 19억달러로 전년도 20억5천만달러보다 7.3%가 감소했다.수출 6억4천만달러에 수입 12억6천만달러로 6억2천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특히 극심한 식량난과 관련,하반기 밀가루와 곡물류 수입액이 7천123만달러로 전년동기의 57만달러보다 무려 125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식집/회 한접시에 밑반찬 20가지

    ◎서비스명목 추가음식 절반도 못먹고 남겨/체면치레 접대에 음식쓰레기 발생 “1순위” 지난 15일 상오 11시 40분쯤 서울시내 대표적인 음식점 골목인 중구 북창동의 한 일식집.좀 이른 시각이지만 주말인 때문인지 일찌감치 일을 끝낸듯 말끔한 양복 차림의 신사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왔다. 이들 가운데 일행 4명인 한 팀은 아예 긴 점심을 작정한 듯 방에 자리를 잡았고 초청자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메뉴를 보는듯 하더니 호기있게 음식을 주문했다. 『우선 생선회 3인분과 생선튀김 한 접시,술을 달라.식사는 나중에 주문하겠다』 1인분에 6만원 정도하는 생선회,생선튀김 등이 곁들인 식사는 점심으론 지나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일행중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않았다. 곧바로 간단한 죽과 밑반찬,상치와 무 파 당근 등이 가득 담긴 야채접시가 상에 올랐다.해삼,멍게 등도 주문한 생선회와 관계없이 서비스로 추가됐다. 이어 술잔이 한 순배 돌때쯤 주문한 생선회와 생선튀김이 나왔다.접시 바닥에는 모양을 내기 위해 무를 가늘게 썰어 깔았고 상치,파슬리 등이 원을 그렸다. 생선회 접시가 한 구석쯤 비워졌을 무렵 옥수수를 볶은 요리를 비롯,생선과 무 조림,생선구이 등 추가 서비스 요리가 음식상을 가득 채웠다.상이 모자라 일부 먼저 나온 음식은 거의 손이 가지 않은 상태에서 새 요리에 밀려 치워졌다. 널부러지게 차린 음식을 앞에 두고 1시간쯤 지나자 종업원이 들어와 『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라고 물었다. 이미 나온 음식만 20여가지.하지만 초청자는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요』라며 일행에게 식사주문을 권했다.대구탕·알탕 등의 음식이 주문됐다. 1시간30분쯤 뒤 일행은 거나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섰고 종업원들은 남은 음식을 치우느라 바빴다. 생선회와 생선튀김 등 주요리는 그래도 상당 부분 소화됐으나 뒤늦게 시킨 탕류와 밥은 3분의 1 정도밖에 비워지지 않았다.서비스로 나온 음식 대부분도 그대로 남아 잔반통에 버려졌다. 식당주인 박모씨(40·강남구 일원동)는 『일식집이 불필요한 서비스요리를 많이 제공해 음식물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모든일식집 및 손님들이 많은 서비스요리를 제공하고 제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이를 고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생선회 등을 먹은 뒤 우동 등 간단한 식사를 주문할 수 있으나 접대자리에서는 체면치레 때문에 지나치게 주문하는 경우가 잦다』고 덧붙였다.
  • 내일 개막 뉴욕 4자회담 설명회 전망

    ◎북 구슬러 회담 일정 합의 기대/정부,구체적 식량지원·경협안 마련/북도 미에 경제제재 완화 건의할 듯 오는 5일과 7일 뉴욕에서 열리는 4자회담 설명회와 미북회담은 북한 권부내에 심각한 변화가 진행중인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이뤄지게돼 더욱 큰 관심을 끈다.최근 북한 노동당 황장엽 국제담당비서의 망명과 현준극 국제부장 해임의 여파로 북한의 대외정책의 무게중심은 강석주 부부장 등 「상대적 개방파」가 자리잡은 외교부측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분석된다.따라서 이번 설명회와 미북회담은 이러한 변화가 북한의 향후 대남,대미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설명회의 공식적인 의제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16일 제주도 정상회담을 통해 4자회담을 제안하게 된 배경과 회담의 목적,형식,의제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정부는 이같은 공식적인 의제외에 북한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식량지원과 경협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를 해두고 있다.단순한 식량지원 차원을 넘어,최근 국내에서 개발된 「수퍼 옥수수」의 재배방법을 전수하는 방안까지 포함돼 있다.정부는 설명회에서 식량지원을 약속하지는 않겠지만,북한이 4자회담에 나올 경우 어떤 혜택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한다는 방침이다.한미 양국은 북한이 황비서 망명사건에도 불구하고 설명회에 나오는 점으로 미뤄볼 때,결국 4자회담에도 나설 것으로 믿는다.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성과가 나온다면 4자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의 일정에 관한 합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7일 열리는 미북회담에서는 미군유해 발굴 및 미사일 협상 재개,연락사무소 상호개설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라고 미국측이 전해왔다.북한은 겨울동안 중단됐던 유해발굴 재개는 물론,지금까지 미뤄왔던 미사일 회담과 연락사무소 개설에도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따라서 북한은 이번 회담이 끝난뒤 세가지 공식의제에 대한 합의사항과 함께 대북 경제제재 추가완화 조치를 발표하도록 미국에 제안할 것으로 관측된다.미북 회담이 끝난뒤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은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이근 미주국 부국장을 비롯한 나머지 북한대표단은 『연락사무소 대상지를 둘러본다』는 이유로 곧바로 워싱턴 방문을 추진중이어서 미북관계 개선이 가시화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설명회와 미북회담을 전후한 한미간,그리고 한·미·일간의 공조도 긴밀하게 진행된다.정부는 4자회담의 참석대상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뉴욕대표부측에 설명회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 대북 식량 600만불 지원/정부/WFP요청에“인도적 차원 동참”

    정부는 20일 북한의 식량난 해소를 돕기위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600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강호양 통일원대변인은 『WFP가 최근 북한에 4천160만달러 상당의 제3차 식량지원을 계획하고 우리측에 참여를 요청해옴에 따라 인도적인 차원에서 동참하기로 했다』면서 『지원규모는 600만달러 상당이 될 것이며 구체적인 품목과 시기는 유엔기구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대변인은 『정부는 그러나 현단계에서 정부차원의 직접적인 대규모 식량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북한당국의 공식 요청이 있거나 북한이 4자회담에 참여할 경우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WFP의 대북한 식량지원계획에 따라 미국정부도 20일 1천만달러 부담방침을 발표했으나 일본은 아직 구체적인 액수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강대변인은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국제기구를 통해 300만달러 상당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한바 있는데 이번 지원규모 600만달러는 국제시세에 비출때 쌀 2만t을 구입할 수 있는 액수다. ◎미도 1천만불 제공 미 국무부는 19일 북한의 식량난을 지원하기 위해 총 1천만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에 대한 식량난 지원호소에 부응,1천만달러의 인도적 원조를 제공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번스 대변인은 『미국정부의 이번 원조는 미 공법 480조에 따른 비상곡물원조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라면서 『특히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위한 옥수수,콩 혼합곡과 홍수 이재민을 위한 쌀과 옥수수가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 퇴직교원 3,017명 훈·포장­표창

    정부는 20일 이달말로 정년(명예)퇴직하는 교원 2천672명과 교육경력 15년이상인 의원 퇴직교원 345명 등 모두 3천17명에게 교육발전에 헌신해온 공로로 훈·포장 및 표창장을 수여키로 했다. 문선재 전 강원대총장 등 4명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것을 비롯,▲김정한 전 여수수산대총장 등 28명은 국민훈장 모란장 ▲이재운 서울 중화초등학교 교장 등 1천20명은 국민훈장 동백장 ▲정춘식 대구 범어초등학교 교감 등 571명은 국민훈장 목련장 ▲민병달 부산 백산초등학교 교사 등 570명은 국민훈장 석류장 ▲강옥수 광주 주월중 교사 등 363명은 국민포장을 수여받는다.이밖에 461명은 대통령표창과 국무총리·교육부장관 표창을 각각 받는다.
  • 「한반도 식량과 안보」 미 심포지엄 발언록

    ◎“북이 기댈곳은 한국뿐”/미,남북대화­핵동결 입장에 이완 없어야/식량문제 계속땐 미래세대 정신적 불구/자본소유 허용 등 평양내부 개혁 움직임 「한반도 식량과 안보」 심포지엄이 18일 미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대학에서 열렸다.주요 발언자들의 발언 요지를 소개한다. ▲찰스 카트만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대행=북한의 기아 상황은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식량위기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북한은 쇠약해가는 나라다.북한 군부집단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선 항상 조심해야 한다.한미 두 대통령이 제안한 4자회담에 대해 북한은 말을 빙빙 돌리고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량과 관련해 북한은 홍수재해 이전부터 지난 몇년간 중국으로부터 연 70만t 가량을 싸게 들여왔고 지금도 계속 그렇다고 보여진다.유엔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물량은 필요량의 아주 조그만 일부에 불과하며 북한은 나름대로 상업구매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국 북한이 바라볼 곳은 한국이다.북한의 식량지원 호소에 관한 실질적인 대답은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아니라 한국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한국은 북한을 도울 의사가 있지만 북한의 태도에 따라 지원에 대한 한국의 여론이 결정되고 있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대사.현 메릴랜드대 홍보학 교수=북한이 미국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은 돈을 개인숭배 동상이나 세우는데 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경제개혁을 행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지원은 「밑바진 독에 물붓기」(블랙홀)식이다.북한 농업개혁에 대해 이를 실행한 중국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다.미국은 미북 기본합의 속의 남북대화,핵동결에 대해선 조금도 이완된 자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망명한 황장엽이 서울에 올 경우 북한내 정세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향후 북한관련 사태전개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높혀줄 것이다. ▲스티브 린튼 북한전문가겸 유진벨 재단회장=북한은 경제난에 대해 자신들의 체제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제재가 문제라고 여긴다.북한 어린들이 식량위기의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며 이는 통일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외형이나 사고에 영향을 끼쳐 영영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한반도에 부족한 것은 식량이 아니라 상호신뢰이다. ▲존 메릴 국무부 분석관=아주 제한적이지만 북한에 경제개혁이나 농업구조 개선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현상들이 보이고 있다.생산자에 의한 일부 소유허용과 탈중앙화,암시장이지만 도시내 시장의 자발적 발생 등을 꼽을수 있다.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에 반응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존 다이크 농무부 아시아팀장=북한의 식량 자급자족은 자연조건 등으로 해서 역사적으로 아주 어려운 과제였다.또 아무리 강인한 주체사상을 지닌 농부라 할지라도 연료,기계,비료 등이 부족하고 이에 대한 투입이 없는 한 자급자족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이다.북한주민 1인당 1년 옥수수,쌀,밀 등 곡물 필요량을 188㎏으로 보고 여기에 91년부터 95년까지의 평균 생산량 360만t을 참고하면 현 시세로 북한은 98년엔 2억8천만달러,99년엔 1억5천달러,그리고 통일이 안될 경우 2010년엔 2억4천만달러 어치의 식량을 한해도 빠짐없이 수입해야 한다.
  • 부산교도소 탈옥수/교도대원 매수 기도/검찰수사서 드러나

    무기수 신창원씨 탈옥사건을 수사중인 부산지검과 부산교도소는 신씨가 지난 89년 서울구치소에서 경비교도대원을 매수해 탈옥을 하려 했었던 사실을 밝혀냈다. 신씨는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돼있던 지난 89년 경비교도대원 김모씨(30)에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면회객을 접근시켜 『신씨를 빼돌려주면 1억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가 김씨의 거절로 탈옥에 실패했다.
  • 탈옥수 서울 잠입한듯/114교환원에 전화…“자수·자살” 횡설수설

    ◎발신지 태릉일대 추정 한국통신 114 교환원 정모씨(42·여)는 23일 『상오 1시55분쯤 부산교도소를 탈주한 무기수 신창원(29)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와 「언론보도가 너무 일방적이다」,「억울한 사정이 제대로 보도되면 자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등 50여분 동안 통화했다』며 서울 동대문 경찰서에 신고했다. 정씨는 『신씨가 「지난 89년 친구와 같이 사람을 살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친구는 돈이 있어 10년형을 선고 받았고 나는 돈이 없어 사형을 선고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는데 그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씨는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면서 『나는 절대로 잡히지 않겠지만 만일 나를 붙잡는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하겠으며 인질극은 절대로 벌이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 전화가 면목 전화국을 통해 114에 걸려온 점으로 미루어 전화를 건 장소가 태릉 일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서울시내 전역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그러나 발신지를 추적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환원과 장시간 통화한 점으로 미루어 정신이상자의 장난 전화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주민생활(흔들리는 동토 북한:3)

    ◎연변TV방송 몰래 시청/남한사회 실상 잘알아/학생들 노력동원 일쑤… 사금채취까지 시켜/옥수수·도토리로 가정서도 밀주제조 “판매” 북한에서 새 TV는 북한 화폐로 1만4천원,중고품은 5천원 가량을 줘야 살 수 있다.노동자 평균 월급은 50원 정도.무척 비싼 가격이지만 TV를 갖고 있는 집은 상당히 많다. 김경호씨 일가가 살던 회령 등 중국 접경지역 주민들은 바깥사정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중국 연변에서 송출되는 TV방송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인 북한 중앙방송은 인기가 없다.국경 인근 주민들은 창문·문틈을 이불로 가려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한 뒤 재미있고 다양한 연변방송을 본다.그래서 집집마다 감시하러 다니는 보위부원들과의 숨바꼭질이 매일 밤 이어진다. 회령지역 주민들은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을 잘 안다.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진상은 물론 지존파 사건,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실도 익히 안다. 김씨 일가는 『주민들은 연변TV와 조선족 방문 등을 통해 남한의 실상을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밤 감시요원과 숨바꼭질 북한에서는 중국제를 최고로 친다.북한제 비누는 15∼18원이나 중국제는 30원.하지만 중국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중국제는 남쪽 황해도,강원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파고들었다.미제나 일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일반 자녀들은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다.각종 노력동원 등으로 예습·복습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과외공부는 말할 것도 없다.학교에서 수업받는 것이 전부다.회령에 사는 학생들은 방과 후면 농촌으로 가 힘든 노동을 해야 하고,사금채취에도 동원된다.게다가 학교에서는 수시로 고철,파지 등을 가져오라고 숙제를 낸다.노력동원은 인민학교 4년,중학교 6년 내내 계속된다.부모들의 교육적 부담도 크다.사회주의의 장점이라고 내세우는 「무상교육」은 구호일 뿐이다.실습준비물을 빌미로 값비싼 전깃줄,양동이,빗자루 등을 요구한다.그때마다 사줄 형편이 못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진땀을 흘린다.심지어 수업과 상관없는 토끼가죽까지도 1년에 석장을 보내줘야 한다.○중국제 물품 최고로 인식 회령에서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정주부들은 1주일에 세번씩 농사일에 동원된다.또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을 통해 사상·기술·문화에 대한 교양교육을 받는다.과거 주부들은 대개 직장에 나갔지만 최근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월급은 없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급표만 주기 때문이다.대신 집에서 술과 떡을 빚어 장마당에 나가 팔 궁리만 한다. 민간인의 술 제조는 원래 금지돼 있다.그러나 식당·분식점은 물론,일반 가정에서까지 너도나도 옥수수·도토리·쌀뜨물 등으로 밀주를 만들어 판다.돈을 벌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한달 한번 목욕도 힘들어 술을 사서 가게에서 먹으면 한병에 45원을 받는다.안주로는 간장을 곁들인 따뜻한 두부가 인기다.가장 값싼 안주지만 이나마 19원을 줘야 한다.그래도 술장사는 잘된다.외상 술을 먹은 가장이 외투를 맡기고 집에 와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잦다.술을 많이 먹고 싶은 날 일부러 가장 낡은 옷을 입고가 실컷 먹고 옷을 맡긴 뒤 찾아가지 않는 얌체족이 극성을 부린다. 물사정도 좋지 않고 비누도 없어 청결한 생활은 기대하기 힘들다.당국에서는 목욕은 1주일에 한번,머리는 4일에 한번씩 감도록 권장한다.실제로는 한 달에 한 번 목욕하기가 힘들다. 북한에서는 오랜 사회주의체제를 거치면서 고유의 예의범절이 많이 사라졌다.나이가 서너살 차이가 나도 「야」「자」 반말하기 일쑤다.김씨 일가는 말투·앉는 자세 등 남한의 예의범절이 엄격해 불편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최현실씨는 『남한 생활 40일동안 북한과 너무도 다른 생활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면서 『마치 유치원생이 대학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차남 성철씨는 『북한에서는 그동안 임꺽정을 소재로 한 영화와 TV드라마를 즐겨 방영했지만 지금은 방송하지 않고 있다』면서 『임꺽정을 방영하면 분명히 주민들이 동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과 자주 나눴다』고 말했다.
  • 부산 탈옥수 500만원 현상

    부산교도소 탈옥수 신창원씨(29)를 쫓고있는 검찰과 경찰은 22일 현상금 5백만원을 내걸고 전국 각 기관과 고속도로톨게이트 등에 신씨의 흑백사진과 인적사항 현상금등이 붙은 수배전단 500장을 배포했다.
  • 독립운동가의 딸들(송화강 5천리:15)

    ◎“반동”낙인 찍혀 은둔… 90년대 양지로/김좌진 장군 외동딸 한때 「가짜」 오해받아/중국인­부친 옛동지 손에서 불우한 어린시절/문혁때 화입을까 유품 모조리 불태워/흑룡강성 승소운 할머니 마지막 꿈은 고국방문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은 마지막 부인 김영숙과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다.지금 흑룡강성 목단강시에 살고있는 김산조 할머니가 장군의 딸이다.장군은 1927년 단오를 이틀 앞둔 날 참모들의 간곡한 권유로 당시 19세 처녀를 부인으로 맞았다.그리고 나서 다음해 딸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산조여사의 나이는 올해 69세이다. 산조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해림(현 목단강시 해림현)에 살던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산시로 가다 옥수수밭에서 낳았다.어머니는 뒤따라온 일제 끄나풀 손에 죽음을 맞았으나 산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당시 상황으로 어쩔수 없었던 장군은 딸을 중국인 집에 주었다.장군이 세상을 뜨자 측근들이 중국인 한테서 찾아다 영안현 해남촌 산골에서 길렀다.해림 일대에서는 산조가 장군의 딸로 널리 알려져 화를 피해 산골에서 키웠던 것이다. 1949년 연수현에 정착한 산조는 위정규와 결혼하고 1953년 지금 사는 목단강시로 나앉았다.지금은 남편과도 사별하고 30㎡가 될까말까 하는 비좁은 아파트에서 외동딸 위련홍(47)내외와 함께 살고있다.자동차 수리공장에 다니는 딸과 전동기정비공장 공정사로 일하는 사위 김재원(48)에게 얹혀서 산지도 꽤 오래되었다.딸 부부가 한달에 버는 돈은 750원에 지나지 않아 살림살이 밑천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일제 앞잡이에 모친 잃어 그녀가 어렸을때 보살펴 주었던 사람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측근이었던 김기철이었는데 그도 1946년에 세상을 떴다.양부이기도 했던 김기철은 임종 직전 김좌진 장군에 관한 기록을 딸 산조에게 넘겨주었다.한때는 귀중하게 보관했지만 귀신도 무서워 치를 떨었다는 문화대혁명을 맞아 모두 불태워 버렸다.김좌진 장군의 딸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죽음을 면치 못할 판국이었거니와 외동딸 위련홍의 장래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장군의 유품이라고는 체력단련을 할 때 쓰던 석마돌 하나가 혜림시 산시진 동광촌 마을 빈터에 남아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의 독립운동가들은 반동적 민족주의자로 낙인 찍혀 그 후손들의 처지도 말이 아니었다.그 무렵 세상을 살면서 목이 메도록 고마웠던 일이 하나 있다면 딸 위련홍의 결혼이다.산조는 딸의 혼담이 오갈때 신랑집에 『없던 일로 하자』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그 이유로 『출신 성분이 나쁘다』고 했더니 신랑집에서 펄쩍 뛰었다.『출신이 무슨 상관인가,사람을 보고 며느리를 삼자는 것인데…』라고 오히려 신랑집에서 우겨 혼례를 치렀다. 그런 사연으로 해서 김산조 할머니는 1990년에서야 비로소 출생성분을 밝혔다.한때 학계가 「가짜 장군의 딸」이라고 한 것은 사실상 당연했는지도 모른다.갑자기 나타난 김좌진 장군의 딸 김산조.그녀의 정체는 끝내 진실로 드러났다.불을 종이에 쌀 수 없듯이 역사의 진실이 밝혀져 지난 1995년 한국에서 열린 「95세계한민족축전」에 초대되었다.그래서 외동딸과 함께 한국을 다녀왔다. 중국에서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장원급제 쯤으로 여기기 일쑤다.가난한 살림에 부대끼는 그들 모녀가 축전이 끝나자마자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했다.이어 지난해 7월6일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을 때는 대통령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고국이 자랑스럽기는 했지만 한국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또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김산조 할머니는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과 선물 받은 시계를 내보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가난으로 해서리 굶어 죽어도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디요.그러지 않아도 불법체류 조선족이 많은 판에 이 늙은이까지 눌러앉으면 무슨 꼴이 되겠습네까.좋은 사이는 좋은 사이로 지켜야디요』 흑룡강성 수분하시 남2조가 17호에 사는 승소운(78) 할머니도 김산조 할머니와 도토리 키재기를 할 만큼 같은 처지의 독립운동가 후손이다.평북 정주군 신안면 안흥동 태생인 그녀는 15세 때인 1934년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승정균을 잃었다.그녀는 흑룡강성 쌍압산시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8년 퇴직하고 지금은 여관업을 하는 딸 주정숙씨(56)와 함께 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기념사진 그녀의 아버지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가였다.경술국치때 요령성 환인으로 건너와 1913년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1917년에는 배달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승진(1890∼1931년)이 바로 그녀의 백부다.1920년에는 편강렬·양기탁 등과 의성단을,1924년에는 정의부를 조직한 승진은 동아일보 길림지국장을 맡기도 했다.그러다 일제 끄나풀 권수정 일파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둘째 백부 승병균(1893∼1920년)은 당시 봉천성 통화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군의 습격을 받아 배달학교 직원들과 함께 순국했다. 한국에서는 이들 형제의 독립운동 공로를 기려 백부에게 건국포장을,둘째 백부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는 것이다.북한을 다녀온 승소운 할머니의 딸 주정숙 여사의 말을 들어보면 고향 정주에서도 이들 형제를 알아주는 모양이다. 『할아버지 형제들이 고향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동안 사용했다는 움집터가 남아있습데다.그리고 큰 할아버지(승진)가 춘원 이광수와 오산학교동기동창이라는 말도 정주에 가서 들었디요.삼형제분이 고향을 떠나면서 마을에 전답을 내놓고 조상 무덤을 보살펴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기래요』 승소운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백부의 힘이 컸다.아버지가 죽음을 맞자 백부가 친분이 두터웠던 중국인 동선교에게 어린 소운을 맡겼다.북경대학 출신의 엘리트였던 동선교는 그녀를 키웠을 뿐아니라 공부도 시켜주었다.그래서 가목사시 화천중학 사범반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백부 승진과 함께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동선교는 광복이후 가목사시 시장,흑룡강성법원장,길림성 정치협상회의 사무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녀의 소원은 한국을 한번 가보는 것이다.그래서 지난 1955년 광복50주년때 고국참관을 희망했는데 초청을 받지 못했다.실망이 너무 큰 나머지 풍을 맞고 쓰러진 그녀는 지금 겨우 몸을 움직일 정도가 되었다.그러나 아직도 한국방문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부친 3형제가 독립운동 『아버지 삼형제께서는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습네까.하늘도 무심하시디….그 세분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만 모질게 살아 남았수다.살대로 다 산 몸입네다만,독립한 고국에 가서 독립기념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디요.그래야디 저승에 가서라도 세분 아버지 형제들께 들려드릴 이야기 꺼리가 생기디…』 김산조와 승소운은 둘이 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다.딸네집에 얹혀산다는 것까지 공통점을 가진 비극속의 여인들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들 여인에게 엇갈리는 명암이 없지도 않았다.그 명암은 그토록 가고 싶은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과 방문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 북한의 식량난(흔들리는 동토 북한:2)

    ◎94년 배급사정 악화… 작년부터 “감감”/풀·산나물 끼니 연명… 무뿌리 건지면 “행운”/가축 밀도살 성행… 먹을 것 찾아 유랑 일쑤 『북한에서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에 훔칠 것이 없나,집어갈 것은 없나,주워갈 것은 없나를 연구합니다.하다못해 자기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라도 하지요』 김경호씨의 셋째 사위 박수철씨(40)는 북한의 식량난과 이로인해 피폐해진 사회상을 이렇게 요약한다. ○80년대까지는 무난 북한의 식량사정은 80년대까지는 괜찮았다.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루 700g,직장 없는 사람은 300g씩 보름마다 배급이 나왔다.비축미,도정미 등 명목으로 일부를 떼이더라도 각각 560g,250g씩은 됐다. 그러나 지난 92년부터 배급이 며칠씩 늦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때만해도 나중에 그동안 밀린 배급분을 다 받을 수 있었다.파탄지경에 이른 것은 94년도부터였다.점차 밀린 배급을 주지않더니 지난해 1월부터는 배급 자체가 완전히 끊겼다. 주민들은 쌀이 없어 옥수수죽이나 풀죽,산나물 등으로 끼니를 대신할 때가 많다.옥수수를 그냥 쪄서 먹으면 금방 동이 나기 때문에 옥수수 알갱이를 떼내 물과 함께 솥에 붓고 끓여 먹는다.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지만 양은 풍족하기 때문이다. 풀죽은 먹기도 어렵지만 소화도 되지 않아 영양실조·위염 등 갖가지 부작용을 낳는다.김씨 가족은 『굶어죽은 사람은 본 적 없으나 결핵,간염,영양실조 등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질병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집단농장에서는 옥수수나 벼가 여물기도 전에 주민들이 몰래 뜯어다 먹기 때문에 수확기가 돼도 쭉정이밖에 남지 않는다.회령시의 한 농장에서는 1정보당 강냉이가 평균 280㎏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논·밭을 지나가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일단 손으로 땅을 이곳저곳 파본다.어쩌다 캐지 않은 무뿌리 하나라도 발견하면 큰 행운이다. 육류섭취를 위해 산간이나 농촌 등지에서는 가축 밀도살이 성행한다.돼지고기 1㎏에 노동자 평균월급의 3배가량인 150원이나 된다.식량사정이 그리 나쁘지않았던 김씨가족도 1년에 잘해야 2번 정도 먹을수 있었다. ○비렁뱅이 가족 흔해 식량난 때문에 집을 팔고 유랑민이 되는 주민들도 크게 늘고 있다.처음에는 당국에서도 국가소유인 집을 팔지 못하게 통제를 했지만 지금은 묵인하고 있다.상황이 너무 안 좋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시가지에 번듯한 집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가재도구를 하나둘씩 팔아치우다가 결국은 집까지 내놓고 집값이 싼 농촌으로 간다.거기서도 먹을 것이 없어지면 모든 것을 다 내놓은 뒤 유랑생활에 나선다.역 대합실이나 강변 등지에는 비렁뱅이 생활을 하는 일가족들을 쉽게 만날수 있다. 최현실씨는 『다른 도시보다 비교적 생활수준이 나은 회령에서도 풀죽조차 먹지 못한 채 강기슭에 비닐천막을 치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가족을 6가구나 봤다』며 『식량걱정을 안하고 사는 가구는 30%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풀죽,산나물 등으로 연명하거나 시장에 가재도구를 내다팔아서 끼니를 이어간다』고 전했다. ○양잿물로 비누 사용 강원도 원산에 사는 큰 딸 명희씨(40)가같이 오지 못한 것도 집을 팔고 유랑생활을 하고 있어 연락을 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은 식량만이 아니다.비누는 생선기름이나 양잿물로 만들고,치약은 소금으로 대신한다. 석유나 땔감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기히터 코일이 큰 인기다.전기가 통하면 붉게 발열하는 철선만을 사다가 진흙과 반죽해서 「사제난로」를 만들어 난방과 취사에 쓴다.전력난에 허덕이는 당국은 전력소모가 많은 전기코일을 단속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많은 주민들은 장사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한다.일반 서민들은 쌀이나 옥수수로 떡이나 술을 빚어 장마당에 내다 팔고 장사밑천이 두둑한 사람들은 외지에서 물건을 사들여와 되판다.이들 중에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하루 100∼200원을 버는 사람도 있다.장마당에는 도둑이 많다.그래서 물건을 한쪽은 내놓고 한쪽은 천 등으로 가리고 판다. 중국과의 밀무역도 극성이다.조선시대부터 중국과의 교역지로 유명했던 회령의 밀무역 규모는 북한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꼽힌다.중국으로 나가는 물품은 주로 청자 백자 고서화병풍 등 골동품,아편,금 은 동,분말로 만든 뱀독(사독),송이버섯,금강석 분말 등 특수광물이다.때로는 중앙국가창고에서 나오는 기계장비도 있다.
  • 경비 소홀·늑장 보고… “안일한 대처”/구멍뚤린 교도행정

    ◎탈출확인이후 5시간 “허둥지둥”/도주과정 제2범죄 가능성 커 부산 강서구 대저1동 부산교도소 무기수 탈옥사건은 허술하고 엉성하기 짝이없는 우리 교도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이번사건은 또 교도소측이 사건발생후 5시간이나 지난후에야 상부기관에 늑장 보고하는 바람에 초기 검거를 놓치고 탈옥수가 멀리 달아날 시간을 준꼴이 돼 탈옥수에 대한 교도소측의 안일한 대처자세가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살인전과가 있는 탈옥수가 도주과정에서 제2,제3의 강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불안감을 더해 주고 있다. 검경은 신씨의 탈출과정이 상당히 치밀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감시가 소홀한 새벽시간대를 택했고 ▲교도소담벼락에 나일론 로프가 걸려있는 점 ▲변장을 위해 인부대기실과 사무실을 뒤져 옷을 훔친점 ▲지형지물 숙지등을 들수있다.또 동료재소자들이 눈치를 채지못하도록 전날밤 자정까지 책을 읽었으며 베개를 이불밑에 넣어 두툼하게 해 깊이 잠든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도소측의 경계근무 소홀히탈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신씨가 수감된 감방은 부산교도소 3사 상동6방으로 재소자 6명과 함께 사용했었다.감방사이에 공동화장실이 설치돼 있는데 신씨는 바로 이 화장실 환기통을 뚫고 밖으로 탈출했었다.그리고 교도소 남쪽 교회당 신축공사현장으로 으로 몸을 숨긴뒤 교도소외벽에 가설한 임시펜스를 넘어 탈옥했다.교도소측은 이 부근에 경비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등 경비가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신씨가 탈출과정에서 공사장 인부들의 대기실에 들어가 옷가지 등을 뒤지는 등 시간을 보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못했다.또 교도소측은 사건발생후 상부와 경찰에 늑장보고를 한것으로 나타났다. 교도소측이 신씨의 탈옥사실을 처음안 것은 20일 상오 2∼3시 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도 교도소측은 시간을 끌다 부산지검과 관할인 강서경찰서에 각각 이날 상오 7시 50분,상오 8시21분에 보고했었다.부산지방경찰청이 수배를 내린시각은 상오 8시25분.결국 신씨의 탈옥에서 경찰의 수배까지 걸린 시간은 최소5시간이 넘어신씨가 이미 부산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 “남·북 농업협력 본격 추진”/정 농림,서울신문 회견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해소를 위해 농자재지원,식량작물의 재배기술전수 및 보급,신품종 공동연구개발 등 농업분야에서 다각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이 금년중에 추진된다.〈관련기사 7면〉 정시채 농림부장관은 16일 『북한의 농업생산성을 향상시켜 식량난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비료·농약·농기계 등의 농자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정장관은 이날 서울신문 김영만 경제부장과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정부는 북한에 다수확신품종 벼와 옥수수재배기술 및 가공기술 등을 이전하고 우리 농업기술자를 보내 일정기간 상주하며 북한의 농업전문기술요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장관은 『이같은 남북한간 농업교류·협력사업은 남북관계가 진전될 경우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식량생산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각종 식량작물의 신품종에 대한 공동연구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림부는 남북농업교류·협력사업에 대비,현재 강원도 철원과 진부 등 북한의 기후와 토양이 비슷한 2개 지역을 선정,북한벼인 평양15호 등 69종의 북한품종에 대한 개량작업을 진행중이다.또 오대벼·소백벼 등 21종의 남한품종이 북한에서 잘 재배될 수 있도록 개량하는 시험도 하고 있다. 정장관은 또 농산물시장개방시대에 농업의 경쟁력강화와 수출농업을 집중육성하기 위해 경기·경남·전남 등 3개 지역에 대규모 수출농업단지를 금년중에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기상 이변·재배 감소/국제 곡물가 폭등

    ◎밀·콩·옥수수 수입 의존 한국 타격클듯 【워싱턴 연합】 국제곡물 가격을 주도하는 미국 시카고 곡물시장의 밀과 콩·옥수수 가격이 세계적 기상이변과 파종면적 감소 등으로 급등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양곡자급률이 30%도 안돼 밀과 콩은 물론 사료용 옥수수를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전망이다. 10일 미 농무부가 올해 재배면적 감소와 기상영향으로 밀·콩·옥수수의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 직후 개장된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이미 상승세를 계속해온 콩과 옥수수 가격을 더욱 부추겨 종일 큰폭의 오름세를 유지했다.그동안 큰폭으로 상승한 밀은 이식매물이 나와 다소 약세를 보였으나 거래량은 크게 증가했다. 이날 콩은 1월 인도분이 부셸당 30.75센트나 오른 7.265 달러에 거래됐으며 옥수수 3월 인도분 역시 부셀당 7.25센트가 오른 2.655달러에 거래됐다. 또 귀리 3월 인도분은 부셸당 2센트가 오른 1.59달러에 거래됐다. 한편 콩과 옥수수의 경우 재고량이 예상보다 적어 이미 물량부족 현상이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콩은 수확기인 9월까지 가면 재고량이 20년래 최저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농무부는 겨울밀의 경우 밀농사를 시장기능에 맡기기로 한 이른바 자유농업법에 의한 첫 파종이어서 올해 재배면적이 4천8백20만 에이커로 지난 겨울의 5천2백만 에이커에 비해 7%나 줄었으며 이는 지난 78년 이후 최소면적이라고 밝혔다.
  •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국회차원 노벨상 추천작업

    ◎대구방문 김덕용 의원 「옥수수 박사」로 알려진 경북대 김순권 교수(51)에 대한 노벨상 후보 추천 작업이 국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구를 방문중인 신한국당 김덕용 의원은 10일 『슈퍼 옥수수를 개발해 아프리카의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한 경북대 김순권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후보 추천작업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 김덕룡 의원 새해 첫 대구 방문

    ◎2박3일간 머물며 지역경제 현장 체험/여권 취약지서 경제지도자 이미지 심기 지난 연말 정무장관직을 물러난 신한국당 김덕용 의원의 행동반경이 커지고 있다.김의원은 9일 퇴임후 첫 공식활동으로 대구를 찾았다.위천공단건립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여권의 취약지를 택한 셈이다. 2박3일 동안의 길지 않은 이번 대구방문에서 김의원은 무려 15개의 크고 작은 행사를 갖는다.이중 대부분이 경제현장 방문과 지역경제인,근로자 접촉이다.경제지도자의 이미지를 쌓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두마리 토끼를 숨가쁘게 쫓고 있음을 읽게 하는 대목이다. 김의원은 이날 상오 동대구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비산염색공단내의 동국화섬공업(주)을 방문,근로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고 공단을 둘러 보았다.이어 섬유기술대학과 상공회의소를 찾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저녁에는 그랜드호텔에서 지역경제인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10일에는 대구 학생운동의 정신이 담긴 휴류공원의 2·28탑과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선생 묘소를 참배한다.슈퍼옥수수를 개발한 경북대 김순권 박사의 농장도 찾는다.자신의 과거와 미래,즉 민주화투쟁 경력과 과학입국을 향한 의지를 자연스레 부각하는 자리인 셈이다. 김의원의 측근은 발빠른 그의 행보를 「21세기 젊은 희망열차의 발진」으로 표현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