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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영화 나올 법한 21세기판 열차습격 사건 발생

    서부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열차습격(?)사건이 브라질에서 발생,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현지 언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상파울루에서 옥수수 50톤을 싣고 달리던 화물열차가 도둑을 맞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둑들은 레일에 기름을 칠해 바퀴가 헛돌게 만들었다. 열차속도가 떨어진 틈을 타 54량으로 편성된 화물열차에 실려 있던 옥수수를 훔쳐갔다. 현지 언론은 “크레인이 설치된 트럭을 이용해 헛발질(?)을 하며 달리는 열차에서 옥수수가 실린 컨테이너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열차에는 옥수수와 설탕 60톤이 적재돼 있었다. 산토스 항으로 옥수수와 설탕을 싣고 가던 화물열차는 인적이 드문 농촌지역에서 도둑을 만나 옥수수를 몽땅 잃어버렸다. 현지 언론은 “말을 타고 달리는 기차를 습격하는 서부활극 같은 사건이 21세기에 다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들기름 개발만큼 경기중계 열정 쏟을 것”

    “들기름 개발만큼 경기중계 열정 쏟을 것”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미식축구 해설을 계속하고 싶네요.” 올해 9월 8일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식품연구원의 신임 원장으로 임명된 윤석후(58) 원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3년부터 꾸준히 모 방송사의 미식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3년 전 그 방송사의 해설위원이라는 공식 직함은 그만뒀지만, 미식축구 해설위원으로 최근에 복귀했다. ●1993년부터 방송 활동한 ‘괴짜박사’ 윤 원장은 서울대 농화학과에 입학한 1973년부터 선배 권유에 따라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미식축구는 격렬한 만큼 부상이 잦은 운동이다. 학업과 운동을 계속 병행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1978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대학원)에 진학한 윤 원장은 미식축구 심판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대학원 2학기 때 대한미식축구협회에서 발행하는 국제심판 7호 자격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일곱 번째 국제심판이 된 것. ●유지 전문가로 세계 100대 과학자 선정 윤 원장은 취미로 미식축구 활동을 하면서 과학자로서의 역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83년 카이스트 식품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으로 발탁됐다. 이후 1988년 한국식품연구원 창립 멤버로 자리를 옮겼다. 식품연구원은 ‘햇반’(무균포장밥), ‘여명808’, ‘옥수수 수염차’ 등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기관이다. 윤 원장은 식품연구원에 몸담은 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유지(기름) 관련 최고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2008년에는 영국 국제인명센터에서 세계 100대 과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윤 원장은 국내에서 제일 비싼 고급 라면인 S식품의 ‘장수면’을 직접 개발했다. 현재 윤 원장은 오메가3, 오메가6 등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우리나라 들기름을 세계로 수출하기 위한 과제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들기름이 함유된 제품(들깨죽, 들깨라면 등)을 개발해 수출하면 한식 세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주말 영화]

    ●사운드 오브 뉴욕(KBS1 토요일 밤 1시 5분) 꿈을 위해 뭉친 헝가리 삼형제 아코슈, 코마슈, 온두라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삼형제는 미국 할리우드 프로듀서 알렉스에게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또다시 마피아에게 휘말리면서 얼떨결에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산더미 같은 빚을 안고 이들은 다시 영화계로 돌아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 알렉스를 만나 그에게서 돈을 빼내 올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기대와 달리 알렉스는 교묘하게 이들을 조종해 뮤지컬 무대에 서도록 설득하고, 자신이 영화에 투자해 잃은 돈을 메우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연극을 성공시키며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이들의 인생은 풀어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로 뒤덮이고 연애전선에도 이상이 생기고 만다. ●친니친니(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목연과 만이가 사랑에 빠진 날, 가후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그리고 말 못한 자신의 사랑을 소리없이 접는다. 만이와 목연의 행복은 잠시, 바람둥이 목연의 과거를 우연히 알게 된 만이는 진실하지 못한 목연과의 사랑이 두려워 목연에게 이별을 고한다. 목연은 만이의 아파트 입구에 안녕이란 인사말을 남긴 채 아파트를 떠나고, 상심한 만이는 가후를 만나 위로받으며 목연과의 첫 만남을 고백한다. 우연히 목연을 보았고 그래서 이 아파트로 이사오게 되었다는 것. 가후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해피 엔딩으로 승화시킨 소설을 어느 비 오는 날,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온다. 출판사 직원은 어설프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후의 소설을 읽으며, 편집장을 향한 자신의 슬픈 사랑을 돌이켜 보게 된다. ●꿈의 구장(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꿈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깊고 조용한 감동의 영화가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 존 킨셀라는 아일랜드계이다. 시카고에 정착하자마자 화이트 삭스 팀에 푹 빠져버린 아버지. 내 이름은 레이 킨셀라. 3살 때 어머니를 잃은 나를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키웠다. 자장가 대신 유명한 베이브 루스를 비롯해 루 게릭과 ‘맨발의 조’ 잭슨의 일대기를 들어야 했다. 아버지가 양키 편이면 나는 라이벌인 다저스를 응원했다. 다저스가 홈구장을 옮겨 나는 다른 투쟁거리를 찾았다. 영어를 전공했고, 1960년대 청년들의 성향에 발맞춰 데모는 물론, 대마초도 피웠고 시타르 음악에도 빠져들었는데…. 그 후 1987년 아이오와주. 36살의 평범한 농부인 레이는 아내와 딸과 함께 옥수수밭을 일구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서 일하던 그는 훗날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만들면 그가 온다는 계시에 따라 레이는 야구장을 짓지만 주위의 시선은 냉담할 뿐이다.
  • [씨줄날줄] 맞춤형 공적개발원조/구본영 논설위원

    1960년대 말 보릿고개 끝자락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이라면 공유하는 아릿한 추억일 듯싶다. 점심시간, 미국의 원조로 만든 옥수수빵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처음엔 1인당 1개씩이었으나, 나중엔 청소 줄당번들에게만 제공됐다. 그러다가 아예 끊기자 적잖은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무상 급식에 반찬 투정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도무지 와 닿지 않겠지만…. 그제 부산에서 세계 160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세계개발원조총회가 개막됐다.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만든 빵을 맛보았던 세대여서인지 감회도 남다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성장한 모범사례로 한국을 지목했다니 말이다. 하기야 부산 지역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미국산 밀가루·옥수수를 하역하던 부산항은 어느덧 세계 5대 항만으로 발돋움했다지 않은가. 물론 “박정희 시절 한국의 개발 경험을 배우겠다.”(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등 각국 대표들의 ‘한강의 기적’에 대한 칭송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닐 것이다. 십수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우리로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해서 ‘엽전은 안 된다.’는 식의 자학사관(自虐史觀)에 젖을 이유 또한 없을 게다. 건국과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우리 근대사는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일군, 보기 드문 성공 스토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내실을 다지면서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의 기여도도 높여 나가야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적은 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까닭에 “우리가 지금 남을 도울 형편인가.”라는 옹졸한 입장에만 머물러선 안 될 것이다. 일과성 시혜가 아니라 관계 증진을 통해 ‘뉴 프런티어’(새로운 영역)를 연다는 긍정적 발상이 필요하다. 중국처럼 원조를 빌미로 후진국의 자원을 싹쓸이하는 듯한 인상을 줘선 안 되겠지만…. 블레어 전 총리는 회견에서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낫다.”고 탈무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돈 몇 푼을 그냥 던져줄 게 아니라 수혜국 스스로 개발정책을 세우게 해 ‘맞춤형 ODA’를 하란 조언이다. 우리의 경험에 비춰 일리 있는 얘기다. 쌀과 비료에다 현금까지 쥐여줬지만, 북한지도부의 폐쇄적 속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공단을 함께 운영하며 시장원리를 가르쳐주자 개성 주민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부고]

    ●장정수(전 부산항만관리청)옥수(사업)민수(한국쉘 부장)정찬(월곡중 교장)정희(현대건설 연구개발본부 상무)기봉(기남폴리텍 대표)순희(덕산중 교사)씨 부친상 양용준(인하대 교수)조덕연(미래로법률사무소 실장)씨 장인상 이영주(장안대 교수)이은주(행정안전부)씨 시부상 2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5시 (02)3010-2265 ●김용준(전 대전시의회 부의장)씨 별세 30일 대전성모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 (042)220-9976
  • 일반 달걀보다 4배 큰 ‘슈퍼 에그’ 中서 등장

    중국에서 일반 달걀보다 약 4배 더 크고 무거운 ‘슈퍼 에그’(Big Egg)가 등장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일반 달걀의 무게가 약 40g인데 반해, 쓰촨성에 사는 왕씨의 닭이 낳은 알은 무려 150g, 크기도 일반과 비교해 약 4배 이상이 커 주위를 놀라게 했다. 왕씨는 “수 십년간 양계장을 해 왔지만 이렇게 큰 달걀은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빅 에그’를 낳은 닭은 다른 닭과 마찬가지로 평소 옥수수와 벼 낟알 등을 먹고 자랐으며, 특별한 사료를 먹인 적은 없었다고 왕씨는 설명했다. 오히려 이 닭은 몸집이 작고 알을 잘 낳지 못했지만, 이번에 낳은 것은 보기 드물게 크고 무거웠다. 왕씨는 “이 달걀을 내다 팔려 했지만, 식용상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아져 팔 수 가 없게 됐다.”고 난감해 했다. 이에 청두시(市 )동물방역과 관계자는 “150g이 넘는 달걀은 매우 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지만 비정상적인 크기라고 말하기엔 어렵다.”면서 “만약 알을 낳은 닭의 영양상태에 큰 문제가 없었다면 식용으로 써도 무리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신흥무관학교 옛 터 가보니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던 신흥무관학교는 흔적조차 찾기 쉽지 않다. 학교가 있던 자리는 옥수수밭으로 변했고 벽돌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흔한 표지석이나 기념비 하나 없었다. 학교가 세워졌던 지린(吉林)성의 고산자(孤山子), 합니하(哈泥河), 추가가(鄒家街) 3곳 모두 사정은 똑같다. 세월 탓이라기보다는 후손들의 무관심 탓이 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달 20~23일 신흥무관학교 창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진행된 현지 답사에 함께 나서 중국 지린성 일대의 유적지를 찾았다. 첫날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도착해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던 류허(柳河)현으로 이동, 조선족 완전중학교를 방문했다. 류복현 교장은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신흥무관학교터를 차례로 들렀다. 추가가는 이회영·이상룡·김대락 선생의 가족이 집단으로 망명해 1911년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를 열었던 곳이다. 중국 공안은 조선족들의 민족의식 자극을 우려, 답사단의 차량을 따라붙기도 했다. 취재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한 현지 동포는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사관학교의 시초이자 항일투쟁의 핵심”이라면서 한국 정부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4월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 선생을 비롯, 양기탁·이상룡 선생 등이 세운 군사교육기관이다.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이자 초대 주필인 양기탁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를 결성했다. 대한매일신보와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양 선생의 혼이 밴 산물이다. 글 사진 선양(중국)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WFP 통한 대북 식량지원 재개하나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 차원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중단됐던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식량 지원이 재개될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규모의 대북 직접 식량 지원 대신 국제기구를 통해 소규모 식량 지원을 시작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7일 “최근 유엔 고위 관계자의 방한과 류 장관의 방미 협의 등을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다.”며 “5·24조치 내에서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방한했던 밸러리 에이머스 유엔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 겸 긴급구호조정관은 외교통상부·통일부 당국자들을 만나 북한의 어린이·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으며, 정부 당국자들도 공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류 장관이 반 총장의 대북 지원 제안에 대해 “국제기구를 통해 의약품, 의료장비를 시작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식품 공급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하면서 지원 재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WFP를 통한 정부의 대북 지원 현황’에 따르면 정부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WFP를 통해 혼합곡물 및 옥수수·분유·밀가루·콩 등 모두 1억 277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2001년부터 매년 옥수수 10만t을 지원하는 등 한국이 WFP 대북 사업의 최대 수원국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강경책에 따라 정부의 직접 식량 지원은 물론 WFP를 통한 지원도 멈췄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한은 “국제유가 상당기간 100弗대 유지”

    한은 “국제유가 상당기간 100弗대 유지”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앞으로 상당 기간 100달러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가 1% 상승할 때 국내총생산(GDP)은 0.046%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는 0.1%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가 1% 오를 때보다 2배 높은 2% 상승하면 우리 경제가 받는 타격은 2.78배로 훨씬 심했다. 한국은행이 7일 내놓은 ‘국제 유가의 고수준 지속 가능성 평가’ 보고서 등에 따르면 ▲유럽 국가 채무문제의 확산 ▲미국의 경기회복세 약화 ▲리비아 사태 종료 가능성 등 경기둔화 예상에도 국제유가는 100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일 런던국제석유거래소에서 브렌트유 현물가격은 112.06달러,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107달러였다. 브렌트유는 지난 2월 1일 이후 198일이나 100달러를 초과해 2008년(147일)을 웃돌았다. 특히 브렌트유와 두바이유의 10월 말 가격은 지난해 말보다 각각 16.1%, 19.3% 올라 소맥(밀·-20.9%), 원면(-29.4%), 옥수수(2.9%), 동(-17.3%), 알루미늄(-10.7%) 등 다른 원자재보다 상승폭이 월등했다. 고유가가 유지되는 것은 수급불균형 때문이다. 향후 주요국의 경기둔화가 예상되지만 아직 생산 관련 지표는 비교적 양호하다. 미국의 제조업지수는 지난 8월 이후 상승 반전했고, 중국의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나 높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고유가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데 있다. 유가가 1% 상승하면 1년 후 GDP는 0.033% 내려가고 2년 후 0.046% 하락한다. 소비자물가는 1년 후 0.045% 오르고 2년 후 0.1% 상승한다. 특히 유가가 2% 상승할 경우 1년 후 GDP는 0.092% 하락해 유가가 1% 오르는 경우보다 타격은 2.78배에 달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ISD 판결 기준은 합리성과 비례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야권은 ISD의 폐해 사례를 들어 위험성을 부각시키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내국인의 대외 투자 안전장치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6일 ISD를 다루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 판정 사례를 들어 ISD 분쟁 중재의 기준은 양국 간 협정문이며 판결의 준거는 합리성과 비례성(비차별성)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한 예로 멕시코 정부는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을 개발해 자국의 탄산음료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카길사에 대해 HFCS 등 설탕 이외의 감미료를 사용하는 음료에 20%의 소비세(IEPS Tax)를 부과했다. 중재를 요청받은 ICSID는 카길사와 멕시코 설탕제조업체는 동종 상황이며, 자국 제조 설탕 사용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이행 요건 부과 금지 조항을 어겼다고 판정해 멕시코 정부에 773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산 HFCS의 수입을 놓고 미국 정부와 무역 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카길사를 겨냥해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국내산업·기업과 차별 말아야” ICSID 중재인으로 등록된 신희택 서울대 법대교수는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가 운영하는 사업, 기업을 규제할 때는 합목적성과 합리성을 띠어야 하고 내국 산업·기업과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제도가 합리성과 차별성을 띠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 분야 등 제소 대비해야 다른 예로 미국의 투자펀드인 AIG캐피털파트너스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주상복합주택 프로젝트에 참여해 부지를 매입하고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사업 부지가 국립수목원 부지에 해당한다며 건설사업 중단을 통보했고 시 의회도 프로젝트 중지, 사업 부지 환수를 결의했다. 하지만 ICSID는 국립수목원 부지라 하더라도 사업 계약을 맺었다가 보상 없이 수용한 것은 수용 조항 위반이라며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이 원하는 공공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이나 사업을 제약할 수 있다면 신중히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정부는 전기, 통신 등이 ISD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하고 미래 유보가 있어 괜찮다고 하지만 향후 사회복지·공공질서·보건 의료 분야에 대해서도 ISD로 제소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적 규제 자제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ISD로 인해 홍역을 치른 국가들은 급격한 정책의 변화가 잦았고, 포퓰리스트적인 외국인 투자 규제 및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 부여 등 위기를 자초한 사례로 꼽힌다. 따라서 ISD를 피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합리적이고 차별성 없는 정책과 함께 관련 전문 조직의 신설, 전문가 육성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ISD의 위험을 줄이려면 포퓰리즘적인 규제를 없애고 중재와 교섭 차원에서 전문 통상 인력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서울시민의 삶 보살필 시장/최병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서울시민의 삶 보살필 시장/최병규 사회2부 차장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의 일이니, 35년을 훌쩍 넘긴 옛날 얘기다. 입학식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1학년 8개 반은 물론이고, 온 학교에 소문이 짜하게 퍼졌다. 당시 서울시장을 지내고 있던 분의 아들이 우리와 같은 학교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A는 제3공화국 말기 내무부장관을 거쳐 1987년 정계에 입문, 신민주공화당과 민자당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등을 두루 지냈던 고위층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와 같은 반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품행과 행동거지가 늘 전교생과 선생님들의 입과 귀를 바쁘게 했던 것만은 생생하다. A는 중학생 어린 나이에도 안하무인이었다. 잘못한 일을 나무라는 선생님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물론 선생님들의 꾸지람도 시늉에 그쳤던 게 어린 눈에도 확연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컸던 A는 2학년이 되자 늘 옆에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다녔다. 이른바 ‘꼬붕’들이었다. 그 둘은 방과 후 학교 문을 나설 때면 A의 가방을 건네받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그 대가는 학교 앞 옥수동의 제법 번듯한 중국집에서 파는 짜장면 한 그릇이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흐르고, 시대도 바뀌었다. 권력이란 것을, 그 자식들이 흉내내는 건 물론이요, 친인척들이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우쭐대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작은 권력자’를 자처하던 A와 같은 경우는 지금이라면 정말 큰일 날 일이다. 공직자라는 말이 우리의 귀에 익기 훨씬 이전에 한때 서울시장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 3~4대 시장 이기붕을 시작으로 제6공화국 때까지 서울시장은 국가 최고권력자와 직·간접적으로 통했다. 힘과 총칼을 앞세워 백성을 몰아붙이던 독재시절, 서울시장은 이 나라의 2인자를 자임하고 또 그 특혜를 진하게 누린 자리였다. 그런 암흑의 시대와는 분명 다를 테지만,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은 이 시대에도 우리에게 꽤 묵직하게 받아들여진다. 지금 당장 2인자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1인자의 자리를 향해 나갈 기회를 얻고 발판을 닦고 숨을 고르는 자리라는 까닭에서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승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당시 한양을 다스리던 한성판윤의 자리를 반드시 거치는 것이 정도였다. 그 직분도 지금 못지않게 중요해 한성판윤만 잘 뜯어봐도 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영의정 버금가는 실세를 누린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당파 간 암투가 무척이나 심했다. 나라 안팎으로 정세가 들끓었던 구한말인 1890년 고종 27년에는 한 해에 25명의 판윤이 바뀌는 바람에 ‘반나절 판윤’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제 일주일 남짓 뒤면 제34대 서울시장이 우리 앞에 나서게 된다. 후보 4명 가운데 1명이겠지만, 사실상 결과는 한나라당과 통합야당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정해질 것이 뻔하다. 전 시장이 이런저런 이유로 임기 도중 물러나는 바람에 치르는 보궐선거인 터라 민망하기도 하지만, 이 선거가 또 결국 이 나라 집권당-비집권당 간의 대결구도가 됐다는 게 영 입맛이 씁쓸하다. 평범한 민초들이 당파와 정치를 논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들에게 선거라는 건 그저, 고단한 우리네 삶의 주름을 조금이라도 펴기 위해 누군가를 대표로 내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뽑힌 그 대표는 대표답게 일해 줘야 한다는 게 그들의 순진한 요구다. 선거에 나선 이의 머릿속에 이 단순한 명제가 각인돼 있다면 지금처럼 여당과 야당, 고소와 맞고소, 흑색선전 따위의 단어는 지금 귀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라는 서울시장은 권력을 시음해 보기 위해, 또 차기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진심으로 서울과 시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그런 우리의 대표자다. cbk91065@seoul.co.kr
  • 국제 원자재값 줄줄이 하락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지면서 구리뿐 아니라 다른 국제 원자재 가격도 줄줄이 떨어지고 있다. 6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국제원자재 가격지수인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지수가 지난 4일 종가 기준 293.28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10월 19일 292.98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지난 4월 29일 연중 최고치인 370.56을 기록한 후 반년도 채 지나기 전에 20% 넘게 하락한 것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 종가 기준 두바이유 선물가격은 지난달 말 배럴당 98.64달러로 7개월여 만에 100달러대가 깨진 데 이어 3일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4일 95.60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도 지난달 30일 80달러 아래로 내려앉은 뒤 연일 추가 하락하면서 75.67달러를 기록했다. 런던ICE선물시장 기준 브렌트유는 99.79달러로 100달러선이 무너졌다. 곡물 가격도 줄줄이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종가 기준 옥수수 선물가격은 부셸당 587.75센트로 지난해 12월16일 587.40센트 이후 가장 낮았다. 대두(콩) 선물가격도 부셸당 1160센트로 지난해 10월11일 1152.40센트 이후 약 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소맥(밀)과 쌀 선물가격은 9월 한 달간 각각 18.2%와 9.3%의 낙폭을 기록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 종가 기준 주석 가격은 세계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수출 중단 발표에도 9월 한 달간 16.68% 급감했으며, 알루미늄과 아연도 각각 12.6%와 18.8% 떨어졌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中 돼지값 뛰니 곡물값 요동… 세계 인플레 주범?

    中 돼지값 뛰니 곡물값 요동… 세계 인플레 주범?

    “중국 돼지고기값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지난해 이후 사료값, 인건비, 방역비 등의 증가로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해 평균 4%대에 머물렀던 물가상승률을 올 들어 6%대 이상으로 끌어올려 중국 경제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인플레 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 사료값 안정을 위해 곡물 수입을 늘리면서 국제 곡물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이중 침체(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커져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할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긴축을 위한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위안(약 1만 8400원)만 들고 시장에 가도 제법 풍성하게 먹을 만큼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절반도 채우기 힘들어요. 그나마 중국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살기가 좋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뛰는 베이징 물가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교민 이영숙(43·여·베이징시 차오양구 왕징신청)씨가 늘어놓는 푸념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의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 상승했다. 지난 7월(6.5%)보다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중국 소비자물가는 식품 부문이 주도하고 있고, 돼지고기가 식품 부문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돼지고기 단일 품목이 전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10%라는 게 중국 사회과학원의 설명이다. 상무부에 따르면 돼지고기 가격은 1월 초 1㎏당 18.90위안에서 지난 23일 26.29위안으로 뛰어올랐다. 1년 전보다 무려 65%나 치솟았다. 앞서 7월 돼지고기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57% 올랐을 때 식품 가격은 14.8% 상승했고, 소비자물가는 6.5% 상승하며 3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돼지고기 가격 상승이 7월 물가를 1.37% 포인트나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돼지가 중국은 물론 세계 인플레의 주범’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를 ‘중국돼지지수’(China Pig Index)라고 부를까. 그렇다고 양돈 농가의 소득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돼지 50여 마리를 기르는 쓰촨(四川)성 광한(廣漢)시 롄산(連山)진의 뤄아이(羅阿姨·53·여)는 요즘 죽을 맛이다. 사료값, 인건비, 방역비 등 사육 원가가 너무 올라 이익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가 보도했다. 뤄아이는 “1년 동안 뼛골 빠지게 돼지를 길러도 모래 채취 사업을 하는 남편의 한달 월급 3000위안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6개월 기른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면 1500위안 정도 받는데 사료비 등 원가를 제하면 실제로 손에 거머쥐는 돈은 거의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들 양돈 농민이 기르는 돼지는 지난 4월 말 현재 4억 6530만 마리다. 세계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돼지는 곡물 먹는 ‘하마’로 불린다. 돼지 체중 1㎏을 불리기 위해서는 3㎏의 곡물이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다 엄청난 식성을 지닌 돼지를 기르는 중국으로서는 사료용 옥수수·콩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이 곡물 수입에 나서다 보니 국제 곡물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2009년 5만t에 불과했던 옥수수 수입량은 올해 6만t(추정치)으로 2년 새 20%나 급증했다. 옥수수 가격이 지난해 8월 1t당 143달러에서 지난달 284달러로 98.6% 오른 데는 중국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미국 시카고선물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콩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해외에서 사 간 콩은 2009년 4100만t에서 올해 5500만t(추정치)으로 폭증했다. 가격도 1년 새 35% 상승했다. 야오젠(姚堅)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의 도시화로 돼지고기 수요가 늘면서 중국은 돼지고기의 품질과 가격 통제에 대한 새로운 국면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돼지고기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커져 사회 불안요인으로 등장하자 중국 지도부가 가격 안정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최근 ‘돼지고기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대형 양돈장에 25억 위안을 지원하고, 양돈 농가에는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퇘지 1마리당 100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안에는 돼지고기 가격을 무조건 낮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중국 돼지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뒤흔든다

    중국 돼지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뒤흔든다

    “중국 돼지고기값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지난해 이후 사료값, 인건비, 방역비 등의 증가로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해 평균 4%대에 머물렀던 물가상승률을 올 들어 6%대 이상으로 끌어올려 중국 경제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인플레 관리에 비상이 걸린 것은 물론, 사료값 안정을 위해 곡물 수입을 늘리면서 국제 곡물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이중 침체(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커져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야 할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긴축을 위한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위안(약 1만 8400원)만 들고 시장에 가도 제법 풍성하게 먹을 만큼 장바구니를 채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절반도 채우기 힘들어요. 그나마 중국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살기가 좋았는데?.” 하루가 다르게 뛰는 베이징 물가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교민 이영숙(43·여·베이징시 차오양구 왕징신청)씨가 늘어놓는 푸념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중국의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2% 상승했다. 지난 7월(6.5%)보다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중국 소비자물가는 식품 부문이 주도하고 있고, 돼지고기가 식품 부문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돼지고기 단일 품목이 전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10%라는 게 중국 사회과학원의 설명이다. 또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돼지고기 가격은 1월 초 1㎏당 18.90위안에서 지난 23일 26.29위안으로 뛰어올랐다. 1년 전보다 무려 65%나 치솟았다. 앞서 7월 돼지고기 가격이 전년 동기보다 57% 올랐을 때 식품 가격은 14.8% 상승했고, 소비자물가는 6.5% 상승하며 3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돼지고기 가격 상승이 7월 물가를 1.37% 포인트나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돼지가 중국은 물론 세계 인플레의 주범’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를 ‘중국돼지지수’(China Pig Index)라고 부를까.  그렇다고 양돈 농가의 소득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돼지 50여 마리를 기르는 쓰촨(四川)성 광한(廣漢)시 롄산(連山)진의 뤄아이(羅阿姨·53·여)는 요즘 죽을 맛이다. 사료값, 인건비, 방역비 등 사육 원가가 너무 올라 이익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가 보도했다. 뤄아이는 “1년 동안 뼛골 빠지게 돼지를 길러도 모래 채취 사업을 하는 남편의 한달 월급 3000위안에도 미치지 못한다.”면서 “6개월 기른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면 1500위안 정도 받는데 사료비 등 원가를 제하면 실제로 손에 거머쥐는 돈은 거의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들 양돈 농민이 기르는 돼지는 지난 4월 말 현재 4억 6530만 마리다. 세계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돼지는 곡물 먹는 ‘하마’로 불린다. 돼지 체중 1㎏을 불리기 위해서는 3㎏의 곡물이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에다 엄청난 식성을 지닌 돼지를 기르는 중국으로서는 사료용 옥수수·콩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이 곡물 수입에 나서다 보니 국제 곡물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2009년 5만t에 불과했던 옥수수 수입량은 올해 6만t(추정치)으로 2년 새 20%나 급증했다. 옥수수 가격이 지난해 8월 1t당 143달러에서 지난달 284달러로 98.6% 오른 데는 중국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미국 시카고선물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콩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해외에서 사 간 콩은 2009년 4100만t에서 올해 5480만t(추정치)으로 폭증했다. 가격도 1년 새 35% 상승했다. 야오젠(姚堅)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의 도시화로 돼지고기 수요가 늘면서 중국은 돼지고기의 품질과 가격 통제에 대한 새로운 국면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돼지고기 가격의 고공행진으로 서민들의 부담이 커져 사회 불안요인으로 등장하자 중국 지도부가 가격 안정을 위해 두 팔을 걷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최근 ‘돼지고기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대형 양돈장에 25억 위안을 지원하고, 양돈 농가에는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퇘지 1마리당 100위안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안에는 돼지고기 가격을 무조건 낮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42년 ‘신출귀몰’ 美탈옥수 포르투갈서 검거

    살인·강도 혐의로 복역 중 탈옥, 항공기를 납치해 알제리로 달아났던 미국인이 범행 40여년 만에 포르투갈에서 붙잡혔다. 탈옥수의 용의주도한 범행에 놀아났던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검거로 오랜만에 자존심을 세우게 됐다. FBI 뉴어크사무소는 27일(현지시간) “42년째 도주생활을 해온 조지 라이트(68)가 우리 측 요청으로 어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포르투갈 당국에 체포됐다.”면서 “그가 잔여 형기를 채우도록 본국 송환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라이트의 신출귀몰한 범행 및 도피 행각은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62년 11월 23일 일당 3명과 무장한 채 뉴저지의 한 주유소를 털다가 2차대전 참전용사 출신인 주인을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범행 직후 체포된 라이트는 변호인 도움 없이 징역 15~30년형을 선고받고 뉴저지 주 베이사이드 교도소에 복역하다 8년 만인 1970년 8월 19일 탈옥한다. 흑인인 그는 이후 2년간 아프리카 출신이 만든 공산주의운동단체인 흑인해방운동(BLA)에 참여하다가 1972년 7월 31일 동료 4명과 디트로이트에서 마이애미로 향하던 델타항공 소속 여객기를 납치한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신부로 위장한 채 성경책 속을 파내고 권총을 숨겨 비행기에 올라탔다. 라이트 일당은 승객 86명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100만 달러를 요구해 FBI로부터 돈을 챙겼다. 이는 당시까지 몸값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였다. 라이트의 범행 이후 미국의 모든 공항은 스캐너를 이용해 승객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몸값을 챙긴 이들은 승객을 모두 내보낸 뒤 조종사를 위협해 대서양을 건너 알제리로 망명했다. 알제리 정부는 항공기와 몸값을 압수해 미국으로 돌려보냈지만 라이트 등 일당은 현지에 잠시 가뒀다가 석방했다. 당시 알제리 대통령이 라이트가 한때 몸담았던 흑인해방운동에 깊은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1976년 5월 공범 4명이 프랑스 파리에서 검거됐지만 라이트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내 친척에게 연락을 취하려다 40년 넘게 그의 뒤를 쫓던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마이클 워드 FBI 뉴어크사무소장은 “라이트 검거는 법 집행의 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자평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金’ 급락… 더 내린다? 내년 오른다!

    ‘金’ 급락… 더 내린다? 내년 오른다!

    올해 들어 최고의 투자 자산으로 주목 받던 금 가격이 1주일 새 급격히 추락했다. 한때 온스당 2000달러를 바라봤지만 향후 1100달러까지 급락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27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금값은 온스당 1594.8달러다. 1주일 전인 22일(1808.1달러)보다 11.4%나 급락한 것이다. 같은 기간 유럽발 금융위기는 경기침체 우려까지 낳을 정도로 심화됐다. 금융위기가 일어난 후 지난 8월 중순 급값이 1900달러 선을 돌파한 것을 볼 때 최근의 하락세는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는 달러와 금을 중심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일으키지만 경기둔화가 겹칠 경우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금값도 ‘투자자의 패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 2008년 8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1주일간 급격한 금융혼란 속에 금값은 10% 올랐지만 글로벌 금융 둔화가 시작됐던 2007년 말에는 1분기 뒤에 금값이 단기간 하락한 바 있다. 게다가 금융기관들이 원자재 투자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차익을 실현한 것도 금값 하락의 주요한 이유다. 이승제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금값이 최근에 크게 내렸어도 연초부터 1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반면 소폭(4%)의 수익을 거둔 옥수수를 제외하면 원유는 -19%, 천연가스 -12%, 구리 -24%, 콩 -8.6% 등 대부분이 손실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의 ‘닥터둠’ 마크 파버는 금값이 온스당 110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다시 금값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둔화 우려가 급값을 하락시키지만 심해질 경우 반대로 글로벌 경기부양책이 나오면서 통화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금은 영구적 가치 때문에 인플레이션 때는 가격이 급등한다.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금값이 앞으로 몇년간 더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을 포함해 신흥국의 중앙은행들은 금을 팔기는커녕 달러 위주의 외환보유고를 금 매입으로 다변화하는 추세여서 금의 공급량이 크게 늘어날 여지도 거의 없다. 최근 1주일 새 국제 금값이 11.4%가 내리는 동안 국내 금값은 7.1%만 하락한 것도 같은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용환 골드스토어 사장은 “국제 금값이 온스당 1594.8달러일 때 국내 ‘살 때’ 금값은 1돈당 20만원 선으로 내렸어야 하지만 24만 5000원을 기록했다.”면서 “급등한 원·달러 환율 탓도 다소 있지만 그보다 단기간의 조정 후에 금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식품·철강·항공·해운업계 비상 걸렸다

    식품·철강·항공·해운업계 비상 걸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국내 업체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 등 수출 주력 업종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달러화 표시 가격 하락으로 수출 증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철강과 해운 등은 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여지가 더 커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안 떨어지고… 22일 국내 재계 등에 따르면 최근 환율 상승은 곧바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원유와 철광석, 각종 곡류 등 원자재를 전량 수입하다시피하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화 표시 수입가격이 뜀박질할 수밖에 없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9.9원 뛰어 오른 1179.80원을 기록했다. 이번 달 들어서만 113원(10.6%)이나 상승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 원자재가격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주로 들여오는 원유인 두바이유 선물 가격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직후인 지난 9일 연중 최저치인 배럴당 100.13달러를 기록한 뒤 최근 6% 넘게 반등했다. 21일(현지시간)에도 전날 대비 1.01달러 상승한 107.11달러에 마감됐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도 9일 79.30달러에서 85.92달러까지 상승한 상태다. 옥수수와 대두 등 주요 곡물의 선물가격도 이달 들어 횡보하는 모습이다. 금과 원유, 구리, 밀 등 총 19개 국제 상품가격의 움직임을 반영한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는 지난 19일 323.58을 기록하며 이달 들어 5% 가까이 하락했지만 최근 3개월간 최저치였던 지난달 9일(316.12) 수준에는 못 미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융 불안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원유 등 원자재의 불안정한 수급 때문에 투기세력이 여전히 원자재 시장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車 등 수출업종 이익 기대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 역시 고환율과 고원자재가격 등 이중고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들여 내수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제당·제분 등 식품업계는 환율 상승이 고스란히 비용 증가로 연결된다. 국내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 때문에 가격도 쉽게 올리지 못한다. 철강업계 역시 최근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이 크다. 포스코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연간 600억원 정도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의 일부를 철광석과 석탄 등 수입에 쓰지만 원자재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은 덜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조원 정도의 달러화 부채와 2조원 정도의 엔화 부채에 따른 외화평가손실 역시 만만찮다. 항공과 해운업계 역시 울상이다. 환율 상승에 따라 수송선과 항공기 연료 가격이 오르면서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 다만 전자와 자동차 등 업종은 아직까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원자재가 부담은 커지지만 달러 등 외화표시 가격은 하락해 이는 곧 수출 증대로 연결될 수 있다. 관련 업계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삼성전자는 연간 3000억원, 현대차는 800억원, 기아차는 5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환율 상승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현상이고, 이는 2~3년 전과 유사하게 글로벌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어 단기적인 득실과 상관 없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산업부 종합 douzirl@seoul.co.kr
  • [부고]

    ●이경자(경희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전 경희대 서울부총장)씨 모친상 20일 경희의료원, 발인 22일 낮 12시 (02)958-9545 ●박재헌(전 감사원 감사위원)씨 별세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010-2231 ●소영인(대한탁구협회 임원)영삼(동광공사 임원)씨 모친상 정평섭(세방그룹 부회장)이명희(세방전지 임원)씨 장모상 20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2)2258-5969 ●김형국(전 성균관대 교수)씨 별세 원경(익수건설 상무)원철(미토콘 대표이사)영미(경희대 교수)씨 부친상 박정호(고려대 교수)씨 장인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30분 (02)3410-6916 ●정동준(자영업)씨 부친상 허문찬(한국경제신문 영상정보부 기자)씨 장인상 20일 상계 백병원, 발인 22일 오전 5시 30분 (02)950-1491 ●김정욱(한국경제 가치혁신연구소 차장)씨 부친상 김봉일(한창종합건설 이사)씨 장인상 19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2)2001-1092 ●박성순(푸르덴셜투자증권 법인자산영업팀장)씨 부친상 임옥수(자영업)이동주(〃)씨 장인상 20일 부평 세림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32)508-1348 ●이경우(문경 회장·전 국민대 사업본부장)씨 모친상 1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30분 (02)2227-7594
  • 성동, 동별 장학재단 첫 설립

    성동구가 전국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동별 장학재단 설립을 마무리했다. 구는 1998년 용답동 주민센터 장학회 설립을 시작으로 올해 행당2동과 마장동, 왕십리2동, 옥수동 등 17개동 주민센터 장학회 설립을 모두 완료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역의 모든 중·고교생들에게 동별로 1인당 50만~100만원의 장학금 혜택을 줄 수 있게 됐다. 구에서도 51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 모든 동에서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다. 용답동 장학재단은 청소년육성위원회 회원 48명이 매월 3만원씩 모은 장학금으로 중고생 230명에게 연 4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이 지난해 스위스 글리옹대 호텔경영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수석 입학하기도 했다. 고재득 성동구청장은 “동별 장학재단의 경우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에게 수혜자 선정을 맡겨 수요를 거의 정확하게 충족시킬 수 있어서 한층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 ‘월든’! 우리는 흔히 그 책을 나이 지긋한 은자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책을 펼치면 도처에서 마주치는 신랄한 풍자와 전투적 문체 때문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월든’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높은 이상과 패기만만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과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고작 2년 동안의 숲 생활로 ‘월든’을 쓰고, 단 하루의 감옥 경험으로 ‘시민불복종’을 썼던 자. 그러나 단 두 권의 이 책들로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사람.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스물여덟살 청년의 독립선언 19세기 초 미국, 하느님의 영광은 자본주의의 영광이 되었다. 고작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거나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호수의 물을 수도관으로 마을까지 끌어와 설거지를 할 생각”이나 하고, 철도는 “귀가 찢어질 듯 비명 소리를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각종 ‘비즈니스’를 통해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의 땅 콩코드에서 나고 자란 소로. 어디에서나 인디언의 기억과 전통이 배어 있는 부싯돌과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던 평원에서 여섯 살부터 암소를 몰고 맨발로 쏘다닌 소로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리석거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왜 야생딸기를 직접 먹는 대신에 사람들은 딸기를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산발적 질문을 체계적 사유로, 나아가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소위 ‘초월주의 운동’을 통해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끈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랄프 에머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직업이 필요하다. 소로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으로 자기 자신을 학교 교사, 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일꾼,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또는 삼류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나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자연에 대한 탐구를 유일한 ‘비즈니스’로, 산책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모든 사람들이 축포와 성조기로 ‘미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찬양하던 그날, 소로는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스물여덟의 독립 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월든 숲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가끔씩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과 벽장이 갖춰져 있는 오두막을 완성했다. 오두막에 쓴 비용은 단돈 28달러. 그리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거울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단지 하나와 램프가 그의 전 살림목록이었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걸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신의 노예감독관이 되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쉴 새 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다닌다. 비교적 작은 시골마을 콩코드에서도 그랬다. 농부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면 부유해지기보다 더 빈곤해진다. 그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된다. 오우, 가련한 하우스 푸어들! 삶의 모든 곁가지들을 들어내자.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살자. 먹는 것은 쌀과 거칠게 간 옥수수 가루와 감자가 전부였으나, 필요하다면 숲에서 잘 익은 월귤을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칠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살면 입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어찌나 단출한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는 모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다. 그리고 산책과 노동!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모든 관목과 야생 열매와 새와 동물들, 그리고 호수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땅을 갈아 콩, 감자를 심고 가꿨다. 첫해의 수익은 고작 8달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그때마다 마을에서 날품을 팔면 그뿐이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느낌, 더 많은 감정,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다. 점점 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소로. 그는 걷고, 뛰고, 수영하고, 배를 젓는 데 전문가였고, 거리와 높이를 발과 눈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손으로 정확히 달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통 속에 있는 연필을 한 번에 열두 개씩 꼬박꼬박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척도-되기! 동시에 점점 더 신비해지는 소로. 그는 어떤 사냥개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인디언처럼 땅에 귀를 대지 않고서도 먼 곳의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시맨-되기! 이제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가 된다. 두 해 후 소로는 월든을 떠난다. 물론 오두막에서의 삶은 자족적이고 충만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오두막은 마치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때에 맞춰 무르익는 것! 완전히 무르익은 곡식이 열매를 맺고, 완전히 자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자유,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는 일체무위의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곳이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정부의 통치를 거부한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통해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이 노예제도 지지자였다. 소로는 다른 많은 당대의 개혁가들처럼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이런 전쟁과 노예제도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말로 하는 반대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소로의 선택은? 세금납부 거부! 소로는 6년간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투옥된다. 단 하루 동안! (소로의 동의 없이 가족이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소로는 하루만에 풀려난다) 그리고 감옥에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 감옥 안에는 국가가 없으며 감옥은 결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둘 수 없다고. 소로는 면회를 온 에머슨이 “자네, 왜 그곳에 있는가?”라고 묻자 “선생님은 왜 밖에 계십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는 그 하루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가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편의적인 체제’이다. 그런데 그런 편의적인 체제가 갑자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부당한 질서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때 ‘저항’은 의무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부당한 국가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누가? 바로 내가! 1859년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이 노예를 도망시키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에 직면했을 때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첫 번째 공개강연을 한 것도 소로였다. 아마 소로는 존 브라운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유한 생명력과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었다. 월든을 떠나 온 후 소로는 주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측량기사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자비 출판한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은 초판 1000권 중 700권이 반납되었다. ‘월든’ 역시 그가 살았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소로는 간결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았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회한은 없었다.” 어떤 것들은 끝마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년간 주로 편지로 소로와 교류했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는 소로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때때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개봉되지 않았고, 아직 나에게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서신들은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발송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소로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부박한 일상 속에서 ‘월든’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각자 물을 일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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