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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서거] 장례 및 차기교황 선출 절차

    [교황 서거] 장례 및 차기교황 선출 절차

    교황 서거가 발표된 뒤 바티칸 궁무처장은 옥새는 물론, 교황이 생전에 손가락에 끼고 있던 ‘어부의 반지(페스카토리오)’를 빼내 파기한다.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곧바로 교황 처소 등 바티칸의 주요 장소가 봉쇄되고 서거 이튿날엔 9일간의 공식 애도기간이 선포된다. ●세례명 세번 불러 서거 확인 관례대로 궁무처장인 에두아르도 마르티네스 소말로(78) 추기경은 교황의 세례명인 ‘카롤’을 세 차례 불러 응답이 없음을 확인했다. 예전에는 은으로 만든 손망치로 교황 이마를 두드려 확인했는데 지금도 이 방식이 사용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서거 확인 후 궁무처장은 옥새뿐 아니라 교황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페스카토리오를 파기하고 새 반지 제작에 들어간다. 고대 로마의 풍습에 따라 애도기간은 9일로 설정되고 시신은 성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클레멘타인 소성당으로 옮겨진 뒤 재위기간과 이름이 적힌 납관 등 3중 관에 입관된다. 이르면 4일 오후 바실리카성당으로 다시 옮겨져 일반 참배객들 앞에 전시된다. ●3중 관에 모셔져 참배객들 앞에 전시 1996년 제정된 규정에 따라 장례식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후 4∼6일 안에 성베드로 광장에서 치러진다. 최근 수세기 동안 대다수 교황들은 성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묻힐 것을 선택했다. 교황의 관은 장례 미사 후 대성당 주(主)제대(祭臺)의 왼쪽에 있는 ‘죽음의 문’을 통해 운구된다. 이때 종이 한 번 울리고 무게 500㎏의 관은 대리석관 안으로 옮겨진 뒤 거대한 석판으로 덮여진다. 교황이 장례에 대해 어떤 희망을 피력했는지 교황청은 밝히지 않고 있다. 생전에 고향인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바벨 대성당에 묻히길 원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19세기 말까지는 교황의 심장만 떼내 고향에 안치하기도 했다. ●필체 위장까지 서거 후 15∼20일 사이에 시스티나성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교황선출 추기경회의)는 엄격한 비밀 엄수 의무를 강요받는다. 추기경들은 필적을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하라는 권고를 받게 된다. 추기경들은 첫날 저녁 한 차례 투표를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과 오후 각각 두 차례씩 투표하게 된다. ‘나는 교황을 뽑는다.’라고 적힌 직사각형의 투표 용지에 지지 후보의 이름을 적은 뒤 두번 접어 길이 62㎝의 황금 성배에 넣는다. 투표자와 용지 수가 일치할 때만 개표에 들어가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소각한다. 3분의2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가 계속되며 오전과 오후 투표 결과 차기 교황이 나오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벽난로에 넣어 태운다. 교황을 선출한 경우 마른 재를 넣어 투표가 완료됐음을 알린다. 사흘째에 오전 투표결과 실패하면 오후에는 묵상과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12일동안 30차례 투표에도 교황이 나오지 않으면 절대 과반수로 규칙이 바뀐다. ●즉위명 스스로 선택 교황이 선출되면 추기경단 단장은 수락 여부를 묻고 즉위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알린다. 하얀 연기가 솟은 뒤 2시간 동안 교황은 흰색 교황복으로 갈아입고 시스티나성당에서 추기경 각자로부터 경배와 복종의 서약을 받는다. 그후 추기경단 단장은 바실리카성당 중앙 발코니에 나와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이라고 외치면서 새 교황의 이름을 알리고 새 교황은 전세계에 축복을 내린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이사람] 조선옥새 맥잇는 전각장 민홍규씨

    경기도 이천 시내를 벗어나 설성면 장천4리, 속칭 독정 마을에 이르면 가래나무가 인상적인 시골집이 하나 있다. 전통 옥새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옥새전각장 세불(世佛) 민홍규(51)씨의 집이다. 오죽(烏竹)과 어우러진 능진수원(能盡水源·생명이 다할 때까지 행한다)이라는 당호가, 집 주인이 하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은 것임을 일러준다. 토불(土佛) 황식에서 시불(示佛) 황소산, 석불(石佛) 정기호로 이어지는 전통 옥새의 제작기법을 계승해 오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그를 이천 집에서 만났다. ●열여섯살때 ‘석불’ 정기호 만나 인연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이곳은 용터라고 할 수 있어요. 땅의 기가 세, 아무나 살기 힘든 터라고 하지만 창작활동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이지요.” 민씨는 자신의 작업이 방해 받을까봐 동네 면사무소에서 만들어준 ‘옥새 보러가는 길’이란 집 안내 팻말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옥새는 왕이 사용하는 도장으로, 중국 진시황제가 옥에 새긴 도장을 쓰면서 ‘옥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옥새는 도화원 화공이나 교서관·서자관 관원 중에서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인정받는 사람 한 명에게만 그 기술이 전수됐다. 위조를 막기 위해서다. 옥새의 전통을 외롭게 이어가고 있는 민씨로서는 그만큼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 열 여섯 살에 석불 정기호를 만나 옥새와 인연을 맺은 민씨가 조선왕조 옥새 복원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5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국새를 만든 전각예술의 대가 석불이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옥새의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그는 밤잠을 잘 수 없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어보의궤’, 규장각 문서인 ‘보인부신총수’등 옛 문헌을 뒤지며 옥새 제작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더욱 몰두했다. ●옥새문화계승 우리나라밖에 없어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고종황제의 옥새를 찬탈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옥새는 곧 왕권이자 국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는 고종이 쓰던 73개에 이르는 옥새를 모두 빼돌렸다. 그중 절반가량은 현재 복원돼 있는 상태. 민씨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은 해인 지난 98년 일제 때 소멸된 옥새 5과를 경기도 박물관에 복원 기증한 것을 비롯,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옥새를 만들어 기증했다.“돈이나 명예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만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지요. 주위에서 나의 옥새 작업을 격려해 주는 분들이 쌀이며 가전제품이며 여러가지 정성어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전통방식의 옥새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옥새의 맥이 끊어졌고, 일본도 국보급 전각가인 고바야시 도완이 지적했듯이 전통 옥새의 주조기술이 전수되지 않아 재현이 불가능한 상태예요. 국가를 상징하는 옥새는 소중하게 보존 계승돼야 합니다.” 민씨는 먼저 옥새와 옥새전각장이라는 이름의 내력부터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조선 고종 13년(1876)에 제작된 ‘보인소의궤’를 보면 국가를 상징하는 인장을 보인(寶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을 보장(寶匠)이라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1897년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뀐 뒤 고종이 임금의 도장이 보인, 어보(御寶)등 옥새보다 낮은 격으로 불려왔음을 알고 칙령을 내려 옥새라고 품계를 올려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그것을 만드는 장인의 명칭도 보인을 새기는 보장에서 옥새를 ‘전각하는’ 옥새전각장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궁중문화 꽃이자 종합예술 옥새는 궁중문화의 꽃이자 명실상부한 종합예술이다.“옥새는 서예와 조각, 회화, 전각, 연금술, 도자기술, 주조기술 등 적어도 7개 분야를 모르고선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민씨의 말. 그런 점에서 민씨는 가히 ‘르네상스 맨’이라 할 만하다.1990년 현대서예협회를 만들어 글씨체 현대화운동을 주도한 민씨는 추상회화와 서예가 접목된 작품들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예 작품에 나부를 그려 넣어 ‘문제작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한 목가산(木假山) 작업은 그의 예술가적 독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두툼한 황유목(黃油木) 판에 부조 형식으로 새겨진 산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예술이다. 민씨는 최근엔 모필 대신 죽필(竹筆)를 즐겨 쓰고, 칡뿌리 끝을 두드려 만든 갈필(葛筆)작업까지 시도하고 있다.‘자연과 호흡하는 예술’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다. 또 예서와 행서, 초서, 전서, 해서 등 5체를 섞어 쓴 ‘녹서(綠書)’라는 새로운 서체의 병풍을 완성했는가 하면, 옥새가 묘사된 ‘예궐반차도(詣闕班次圖)’도 그리고 있다.“그러나 중요한 건 다시 옥새입니다. 창작의 고통과 희열은 옥새에 온전히 바쳐질 때 비로소 제값을 다할 수 있지요.” 민씨는 진흙 거푸집을 사용한 전통주조법을 계승하고 있다. 진흙용주(鎔鑄) 기법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고대 주조기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만드는 옥새는 인뉴(印 )에서 더욱 빛난다. 뉴( )는 도장 위에 새겨진 조각을 가리키는 말로, 고대에는 이것으로 관인(官印)의 등급을 표시하기도 했다. 민씨는 최근 삼족오(三足烏) 형상의 손잡이가 달린,4㎏이 넘는 옥새를 4년여 만에 완성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족오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고구려 벽화에는 삼족오가 용이나 봉황보다도 그 위에 그려져 있어요. 격이 더 높다는 얘기이지요. 한 몸뚱이에 발이 세 개라 함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라는 동양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입니다.” ●무형문화재 지정안돼 안타까워 어느새 옥새와 동의어가 된 세불 민홍규. 그에게는 요즘도 일본으로부터 귀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일본은 문화가 아니라 사람을 수입하려 합니다.” 그의 쓸쓸한 한마디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지금이야말로 살벌한 문화전쟁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도 옥새는 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민씨는 “문화상등국의 우선순위는 궁중문화의 보존과 대책에 놓여져야 한다.”는 유홍준 문화재 청장의 한 강연 내용을 들려주며 옥새문화는 결코 천민문화가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소돌이(小乭伊·옥새 제작용 망치)를 마치 자식인 양 대견스레 들여다보는 그에게서 장인의 체취를 느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요즘도 하루 두세 시간씩 자며 마당의 대왕가마를 지키고 또 옥새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조그만 결실이 곧 ‘조선 옥새의 비밀-영새부(榮璽 )’(도서출판 인디북)라는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영새부!옥새여 영원하라.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북한, 조선 고종때 쓰던 옥새 공개

    북한이 TV를 통해 조선시대 왕이 사용했던 옥새(玉璽)를 처음으로 공개해 관심을 모았다. 북한 중앙TV가 지난 19일 이례적으로 모습을 보여준 이 옥새는 조선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종(高宗)시대의 것.중앙TV는 금으로 제작한 거북 모양의 옥새를 공개하면서 “전시된 옥새는 조선시대 왕들이 사용하던 옥새 중 하나이며 한일합방 후 일본이 강탈해 간 것을 경상도 지역 한 서당의 훈장 아들이 다시 빼내 김일성 주석에게 바쳤다는 설이 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중앙TV에 따르면 김 주석은 이 옥새를 조선역사박물관에 전시할 것을 지시하면서 “이 옥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전체 인민이다.나는 임금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다.나는 심부름꾼일 뿐이다.따라서 이 옥새는 전체 조선 인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역사박물관에 갔다 놓고 전체 인민의 소유로,인민의 재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학계는 고종시대 때 관인용으로 70여개 정도의 옥새가 사용됐으며 북한에서도 상당 수의 옥새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 왔다.이번 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존경하는 글귀(존호)를 새긴 어보 외에 각 행정부의 수장들이 사용하는 결재용 옥새를 구분해 사용했다.이 가운데 일본인들이 수탈해 간 옥새의 90% 이상이 결재용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왕조는 중국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주로 거북 모양의 국새를 사용했으나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부터는 이전의 옥새 형태를 완전히 바꿔 용의 모양으로 제작한 ‘대한국새’와 ‘황제지보’‘황제지새’ 등을 사용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일제만행 세계에 고발한 민족의 은인

    ●장충식 이사장 베델 선생의 업적은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언론의 싹이 채 나지도 않았던 시기에 신문으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것은 우리 국민 이상의 애국적 기여라고 봐야겠지요.더욱이 국한문 신문과 영자신문에 더해 서민들을 위한 한글신문까지 발간,전 국민과 외국인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침략 만행을 고발한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이런 업적의 일부가 교과서에 실려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베델 선생을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대한매일신보의 역사를 이어받은 서울신문이 이분의 업적을 상세히 알리는 역할을 맡았으면 합니다.기념사업회가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진채호 회장 그렇습니다.기념사업회는 우선 베델 선생의 동상 건립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장학회와 언론상 등도 추진하고 있습니다.장기적으로는 ‘베델기념관’을 설립,그의 애국심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직접 보고,듣고,체험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장 이사장 베델 선생의 정신은 진실,역사,정의,평화입니다.러일전쟁 취재차 우리나라에 와 선생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대한제국의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언론매체가 가장 필요한 거죠.그후 명성황후를 일본인들이 살해했고,을사보호조약에 고종황제가 옥새를 찍지 않았다는 등 일제의 침략 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했습니다.우리 국민 누구도 할 수 없던 일을 한 것이지요. ●진 회장 그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칭송을 받았습니다.1909년 그가 세상을 떠나 양화진에 안장될 때 매킨지 기자가 추모 행렬을 촬영했는데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잇단 폭로 활동으로 독립운동의 기운이 거세지자 일제가 그를 공안사범으로 몰아 2차례 재판에 회부,벌금형을 선고했을 때도 성금이 답지하여 벌금을 내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장 이사장 어째 선생에 대한 대접이 당시만 못한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많은 국민들이 그를 잘 모르는 만큼 베델 알리기에 나서야 합니다. ●진 회장 다행스럽게 베델 선생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의 역사를 서울신문이 계승하고 있습니다.베델 선생이 신문을 창간했을 때의 어려웠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이사장님께서는 특히 남북관계,만주문제 등에 관심이 많으신데요. ●장 이사장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가급적 많이 만나야 합니다.개성공단 건설도 고무적이지요.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화해·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백범 선생이 이미 제시했던 방안입니다.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들 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든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진 회장 이사장님께서는 백범기념사업회장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가 지원에 남다른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까. ●장 이사장 독립운동가를 지원하면 사찰대상으로 찍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친일파들이 득세했을 때지요.독립운동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오늘이 만들어진 것입니다.그래서 외국인인 베델 선생이 더 존경스러운 겁니다. 정리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집중탐구 5黨의 ‘길’]⑥끝- 활로찾는 민주당

    민주당의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3일 고(故) 박태영 전남지사의 광주 영결식에 참석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예방하러 서울 동교동으로 다시 모였다.개인 사정상 불참한 김종인·이승희(비례대표) 당선자를 제외하고 7명이 함께 모인 것은 한화갑 대표가 당을 추스른 이래 처음이다.“이제는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민주당의 활로 찾기는 이같은 행동 통일에서 일단 출발한다. ●DJ,“인생은 새옹지마” 민주당의 ‘창업주’인 DJ는 창당 이래 가장 혹독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당선자 7명을 따뜻이 맞았다.DJ만큼 따뜻한 품이 또 있을까.당선자들은 박 지사를 떠나보내며 새삼 ‘배신감’에 서늘해진 가슴을 DJ의 덕담으로 달랬다.DJ는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며 위로했다. 한 대표는 “가능하면 이른 시일 내 창당 수준의 전당대회를 열겠다.”고 당 재건 의지를 다졌다. DJ는 그러나 선거 결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전했을 뿐 현실정치 불개입 원칙을 이날도 고수하면서 예민한 말은 되도록 아꼈다.특히 ‘6·5 재·보궐선거에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는 “여러분이 잘 되길 바란다.좌절하지 않으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화답했다.이번 동교동 방문은 햇볕정책이라는 민주당의 주 브랜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은 앞서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참여정부 들어 대북정책에 전혀 진전이 없다.”며 “대북송금 특검과 분당(分黨)만 없었으면 지금쯤 비무장지대를 관광지로 개발했을 것”이라고 현 정부를 비판,햇볕정책이 민주당 전매특허임을 강조했다. ●전남지사에 ‘박준영 카드’ 민주당엔 이번 6·5 재·보선이 또 하나의 분수령이다.지난 4·15 총선에서 전남 지역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표가 5대4 정도로 나온 만큼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박준영 카드’가 채택될지 주목된다.이날 한 대표는 DJ 의사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박 전 수석은 “당의 뜻을 따르겠다.”며 적극적인 출마 의지를 내보였다.당 안팎에선 장성민 전 의원과 김성훈 전 농림장관,김정길 전 법무장관 등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발표는 여론조사와 현지 실사를 거쳐 5일 이뤄진다.박 지사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전남지사직을 ‘박 지사가 (생전에)입당을 했네.안 했네.’라고 입씨름하던 열린우리당에 내주지는 않겠다는 게 민주당 생각이다.그러나 전남도민들이 여당 지사를 포기하겠느냐는 게 갑갑한 요인이다.장전형 대변인은 “총선 후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선 민주당이 좀더 잘 하라고 든 회초리가 걷지도 못하게 한데 대해 후회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면서 희망을 접지 않고 있다. ‘40대 트리오’ 구상은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혀 있다.장성민 전 의원과 함께 낙선한 추미애 의원을 제주지사에,김민석 전 의원을 서울 영등포구청장에 각각 내보낸다는 복안이었지만 추 의원은 주소 문제가 걸림돌이다.출마하려면 선거 두 달 전에 제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과 진도군수 후보에는 20여명의 신청자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호,당분간 ‘시계 제로’ 그러나 민주당에 낀 안개는 당분간 쉽사리 걷혀지지 않을 것 같다.당장 당사도 못 구할 만큼 재정상태가 열악한데다 당선자 9명의 ‘화합’도 미지수다.이승희 당선자는 탄핵과 ‘옥새전쟁’ 등을 통해 한 대표 진영과 앙금을 쌓았고,이낙연·김효석 의원 등 비교적 친노(親盧) 성향의 인사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도 당의 진로 설정에 잠복 요인이다. 박정경기자 olive@˝
  • [총선 D-13] 秋 선대위원장직 계속 수행밝혀

    민주당이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조순형-추미애 갈등’의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소위 ‘개혁공천’이 수포로 돌아가자 추 위원장을 지지했던 소장파들이 잇따라 탈당하거나 불출마해 선대위의 앞날도 혼미하다.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1일 추 위원장의 불참으로 선대위 회의가 취소된 데 이어 방송사 주관 5당 선대위원장 합동토론회에도 그는 나가지 않았다. 전날 ‘옥새전쟁’에 패한 뒤 탈진,칩거 중이던 추 위원장은 이날 오후 늦게서야 장전형 선대위 대변인을 통해 “백척간두에 처한 엄중한 시기에 민주당을 반드시 재건하고 평화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단기필마로라도 앞장서겠다.”고 밝혀 선대위원장직은 계속 수행할 뜻을 전했다. 앞서 임창열 전 경기지사와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김충일 전 의원,조동회·강득구·권승렬·정종렬 후보 등 수도권 공천자 등 40여명이 출마를 포기했다.임 전 지사는 “묻지마 투표가 횡행하는 데다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로 당이 지리멸렬해졌다.”고 한탄했다.그러나 임 전 지사는 이날 후보로 등록했으며 이는 측근이 대신해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강원도의 안상현·황창주 의원도 “당이 민심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마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비대위는 이날 26명의 새 비례대표 명단을 발표하고 지역별 정책공약집도 내는 등 선대위와 무관하게 선거활동을 시작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총선 D-14] 추미애 ‘불발쿠데타’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옥새(玉璽)전쟁’이 하루 만인 31일 조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중앙선관위가 조 대표의 당인(黨印)·대표직인 변경등록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선대위가 움켜쥐고 있던 당인과 대표직인은 무용지물이 됐고,조 대표가 새 옥새를 손에 넣었다.선대위측이 전날 단행한 중진 4명 공천취소 결정도 백지화됐다. 과로로 탈진한 추 위원장은 “암담하다.”며 낙담했고,조 대표측 비대위는 “당연한 결과”라고 환영하면서도 선대위측과의 갈등 봉합에 부심했다. ●하루 만에 무산된 ‘추미애 쿠데타’ 총선 후보등록 첫날인 이날 조 대표는 오전 9시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로 달려가 당인·대표직인 변경등록을 신청했다.추 위원장측 선대위가 보관 중인 당인과 대표직인을 사실상 ‘도난된 상태’로 규정짓고,새 당인·대표직인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선관위는 오후 5시 전체위원회의를 소집,2시간 가까이 논의한 끝에 조 대표의 손을 들어 주었다.“당 대표자의 당인 변경등록 신청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진 4명의 공천을 전격 취소하며 단행된 ‘추미애 쿠데타’는 하루 만에 무위로 끝났다.조 대표와 추 위원장간 팽팽한 균형추도 일단 조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선관위 결정을 전해 들은 추 위원장은 “암담하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과로로 쓰러져 국회 의원회관 의무실에서 링거주사를 맞다 소식을 들은 추 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당이 죽을 길로 가고 있다.”고 짤막하게 답변하고는 입을 닫았다.장전형 선대위 대변인도 “국민이 바라는 개혁공천이 좌절돼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선대위측은 이날 밤 국회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비례대표 후보 조정방안 등을 논의하려 했으나 성원 미달로 결국 무산돼 선관위 결정에 따른 충격을 방증했다. 반면 조 대표는 “개혁의 명분과 취지가 좋더라도 법과 원칙에 맞게 추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환영한 뒤 “모두가 단합하고 화해해서 나아가야 한다.”고 전열정비를 다짐했다.이승희 대변인은 “선대위측과 비례대표 후보 인선을 협의,11일 중 명단을 선관위에 제출할 것”이라며 발길을 재촉했다. ●출마 포기 잇따를 듯 공천파문은 하루 만에 일단락됐지만 민주당의 전열은 사실상 와해 직전의 단계에 접어들었다.수도권 지역 후보 상당수가 무기력감에 휩싸인 모습을 보였다. 김효석 전갑길 의원과 서울 구로을 출마 예정자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은 “중앙당은 포기했다.”“마지막 당의 회생 노력이 이렇게 무너지느냐.”“더이상 민주당에 희망이 없다.”고 탄식했다. 민주당 수도권·호남지역 공천자 30여명은 이날 국회에서 모임을 가지려 했으나 무기력감에 아예 취소됐다.M,L씨 등 일부 공천자들은 “마지막 개혁공천마저 무산돼 승산이 없다.”“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 어렵게 됐다.”며 후보등록을 포기할 뜻을 내비쳤다.후보들의 줄사퇴도 예상되는 대목이다.이에 앞서 김중권 전 대표는 30일 내분이 확산되자 서울 마포갑 출마를 포기하며 탈당했다.고향인 경북 울진·봉화에 무소속 후보로 나설 예정이다. ●비례대표 후보도 수정 불가피 조 대표 손을 들어준 선관위 결정으로 이날 낮 추 위원장측이 선관위에 낸 비례대표 후보 명단도 전면 백지화됐다.조 대표 진영은 선대위측의 명단 제출에 앞서 전화로 박강수 배재대 총장과 조남풍 당 안보위원장,장재식 의원 등 3명을 비례대표 12번 안에 넣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그러나 선관위의 당인 변경 승인으로 비례대표 인선작업도 사실상 조 대표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이와 관련,조 대표측 비상대책위는 이날 밤 국회에서 회의를 갖고 비례대표 후보 인선작업을 집중 논의했다. 당초 선대위측은 김성재 전 총선기획단장과 이승희 대변인 등 조 대표측 인사는 40명 명단에서 전원 제외했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seoul.co.kr˝
  • [총선 D-15 / 지도부행보] 민주 ‘이중공천’ 법적 논란 가능성

    민주당이 후보등록을 하루 앞두고 공천장 교부도 다 마치지 못하는 등 또다시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30일 임진각에서 열린 선대위 발족식에서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일부 지역 공천을 취소하자,당사자들은 물론 조순형 대표와 당권파들도 “월권”이라고 반발하며 비상대책위 구성으로 맞섰다. ●‘거사’ 전날 밤 모의 선대위는 지난 29일 밤 서울 모호텔에서 비공개로 ‘공직후보 재심특위’(위원장 이종찬)를 열어 솎아낼 총선후보를 골랐다.이종찬 위원장은 하루 만인 30일 오후 위원장직을 내놓고 중진들의 자진 사퇴를 촉구해 앞으로 전개될 ‘충격과 공포’를 피해가는 기민함도 보였다. 박상천(전남 고흥·보성)·유용태(서울 동작을) 의원은 이른바 ‘한·민공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동교동계 구파인 김옥두(전남 영암·장흥)·최재승(전북 익산갑) 의원은 호남 물갈이 차원에서 공천이 취소됐다는 것이다.당 지지도 제고를 위한 ‘극약 처방’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추 위원장은 이날 아침 조 대표를 찾아 이를 통보했고 조 대표는 격분한 나머지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그러나 선대위는 예정대로 띄워졌고 공천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자신의 공천장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 챈 유용태 의원측이 일부 공천장을 빼돌리는 소동도 빚어졌다. 공천 취소 사실을 모르고 선대위에 참석했던 김옥두 의원은 “그럴 리 없다.”며 당황해 했다. 박상천 의원은 급거 상경해 “분란을 예상하면서 불법 행동을 한 것을 보면 추 의원이 총선에 승리할 생각이 없고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면서 “특히 2곳을 무공천으로 남겨둔 것은 열린우리당에 내주려는 의도로 해당(害黨)행위”라며 추 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급기야 조 대표는 당헌 119조에 따라 비대위를 소집해 최명헌·장재식·이윤수·최영희 의원 등 중진 10여명을 한밤 국회로 불러들였다.최명헌 사무총장을 내정,앞으로 비대위가 당 운영을 맡겠다는 선언도 했다.공천 취소자 4명에게는 비대위 권한으로 공천장을 교부해 31일 접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대위원으로 지명된 정균환 의원은 오지 않았고 김경재 의원은 양측의 중재에 나섰다.한화갑 의원은 성명을 통해 “추 위원장을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총선 승리에 매진해야 한다.”고 선대위 손을 들어줬다. ●“옥새(玉璽)를 찾아라” 공천 취소에 대한 적법성 논란이 일자 추 위원장은 “지난번 조 대표와의 합의에 따라 재심 기능을 선대위에서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혀 정면 돌파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조 대표와도 전화통화를 통해 설전을 벌였다.장전형 선대위 수석부대변인은 당헌 96조 ‘각급 선거대책기구의 권한과 기능은 당의 다른 기관의 권한과 기능에 우선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편 선대위가 공천장에 찍는 대표 ‘직인’을 내놓지 않고 있어 조 대표측이 도난신고를 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조 대표측은 끝내 ‘옥새’를 찾지 못하면 선관위에 당과 대표의 직인을 변경하는 신청서를 내기로 했다. 아직 공천이 안된 비례대표 공천을 위해서다.선관위측은 이중등록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헌당규와 권한위임 절차 등을 따져야 할 것”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언급,법적 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조선시대 옥새’ 이렇게 생겼네

    고려·조선시대 때 빈번히 사용됐지만 백성들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왕의 도장인 옥새가 전통기법 그대로 복원,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31일까지의 일정으로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옥새-오백년 조선옥새의 비밀’전.전통 옥새전각 장인인 민홍규(50)씨가 옛 기법 그대로 복원해낸 고종황제 시대의 옥새 29점,금장 12점,도자기인장 11점,목인 3점,도식그림 10폭,옥새함 2개 등 총 130점이 나와있다. 민씨는 대한제국의 국새 제작자인 황소산에 이어 조선조의 옥새 전각을 계승한 정기호 문하에 16세에 입문하여 전통제작법을 전수받은 인물.일제시대 때 소멸된 ‘대한국새’ 등 옥새 5과를 복원하는 등 전통 옥새의 복원에 공을 들여왔으며 현재 경기도 이천에서 옥새전각연구소와 설성 문화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중인 옥새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이전 조선왕조가 중국의 변방국 입장에서 사용했던 거북이 모양 국새에서 벗어나 용의 모양으로 제작한 국새인 ‘대한국새’와 ‘황제지보’‘황제지새’.조선왕조는 중국과의 사대관계로 인해 거북 모양의 국새를 사용했으나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선포 후 이전의 옥새를 폐지하고 용모양의 옥새를 새로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
  • 샹하이 나이츠/쿵후·쌍권총이 엮는 ‘퓨전액션’

    14일 개봉 올해 마흔여덟살의 청룽(成龍).한국 영화판에서라면 거의 ‘환갑’의 나이지만,비디오 가게 주인들에겐 변함없이 인기있는 이름이다.할리우드에서 뒤늦게 스타대접을 받고 있는 그가 새 작품을 들고 나왔다.‘샹하이 나이츠’(Shanghai Knights·14일 개봉)는 그의 장기인 쿵후를 볼거리로 앞세우고 여백 곳곳을 자잘한 폭소 아이디어들로 채운 코믹액션.2000년 개봉한 ‘샹하이 눈’의 속편이다. 중국 황제의 딸을 구출하겠다며 댕기머리에 치마를 두르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의 카우보이가 된 전편의 장 웨인(청룽). ‘황야의 건맨’으로 자리잡고 사는 그가 상하이의 여동생으로부터 한통의 비보를 받는다.청나라 황실의 옥새를 지키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옥새까지 뺏겼다는 것.복수의 칼날을 세운 장 웨인이,여전히 얼치기 건맨으로 흥청망청 세월을 보내는 로이(오웬 윌슨)와 손잡으면서 영화는 액션 어드벤처의 신호탄을 쏜다. 옥새를 찾아간 영국 런던을 무대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두 남자의 모험담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쿵후와 쌍권총이 엮는 ‘퓨전액션’의 성찬.회전문을 이용하거나 시계탑의 시계바늘에 매달려 벌이는 액션시퀀스 등이 때론 익숙하게,때론 짜릿한 흥분으로 시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청룽에게 할리우드 진출의 본격 시험장이었던 전편에 비하면 긴장도는 떨어진다. 달리는 열차에서 긴박감 있는 액션을 펼치던 전편의 선굵은 이미지도 이번엔 아기자기하게 쪼개졌다. 드라마의 묘미도 떨어진다.허풍선이 로이가 장 웨인의 여동생 린(판 웡)과 엮는 로맨스가 극의 한 축을 이룰 때까지 액션의 잔재미만 늘어놔 지루한 느낌마저 든다. 진득한 관객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청룽이 영어대사가 서툴러 고생한 촬영장면 등을 담은 NG모음이 덧붙었다. 황수정기자 sjh@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작가와의 대화

    본지에 연재될 작가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새로움을 한꺼번에 독자에게 선사할 전망이다.잊어버린 맛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고 작가 ‘황석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하는 것이다.모두 우리의삶을 살찌우는 새 기억이고 새 모습임이 틀림없다. 충남 홍성 부근의 덕산에 신축한 집에서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는 작가를 서울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오래된 정원’의 독자사인회 상경길이었다.웬 요리 이야기냐는 등의 질문에 논리정연한 대답을 내놓았다.그만큼 이 연재물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숙성된 표시였다. 작가는 우선 요리가 “새로운 세기에도 대단히 중요한 일거리로 남을 것임”을 강조한다.사람끼리의 사적인 관계와 소통,인간적인 작업,비획일성,다양함,생산의 창조적인 과정 등이 사라지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요리는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영역으로서 한층 소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거기에 세계화에도불구하고 요리는 지역적 전통적 특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고섞여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새 세기의 인간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덧붙인다. “한 시대의 먹거리는 당대 삶의 표현입니다.이 점은 글쓰는 사람한테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옵니다.담론의 형식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면 요리를 통해서 시대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거죠” 시대의 실체를 밝히는 소설을 쓰듯 이번 연재물에 접근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소설이 재미있어야 하듯 ‘맛따라 추억따라’는 작가의 구수하고흥미진진한 음식 이야기가 먼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장떡 개떡 수제비 술찌게미 보리밥 장아찌 등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음식은 물론 베트남유럽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북한에 체류하면서 작가가 유일하게 경험한 음식 이야기가 ‘입담좋게’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맛따라 추억따라’는 이런 구상적인 소재와 소품 일색이 아니다. 작가는 음식,요리로 인간과 삶을 꿰뚫어보고 싶은 것이다.작가가 그간 작성한 집필 메모를 읽어보면 이같은 인문학적인 시선과 각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일정한 기간 단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가 하루 중에서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가를 알게되었을 것이다.‘끼니’를 잇는 일은 생명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잠자는 시간 외에 깨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적절히 분할해주고 매 단락을 맺어준다.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으면 하루가 엄청나게 길고 모든 것이 갑자기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매우 소중한 발견은 만남이나 헤어짐이나 대화나 목소리 얼굴의인상 따위와 같은 사람끼리의 관계가 빠져버린다는 점이다.천하가 적막하고고요할 뿐이다.남과의 소통은 당연히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맛있는 음식은 노동의 땀과,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오래 살던 땅,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그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자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쥬앙처럼 말이다” 이어 작가 황석영은 “무엇보다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작정”이라는 말로 음식에 관한 멋지고 선도적인 담론을 쓰기 위한 집필메모를 마무리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삽화 민홍규 화백…“우리색채로 고유의 맛 우려낼 것”. 황석영씨와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새달부터 시작되는 새연재 제목처럼 황씨의 파란만장한 삶속에 녹아있는 구수한 맛의 향수를 단화(單畵)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만만치 않을 일로 본다. 맛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응과 묘한 맛이 배어있어 때론 정반합의 역설화법이 필요하다.삽화의 획일성에서 가끔 벗어나는 일도 있어야 한다. 독자들의 일방적 ‘감상 들추기’에 폭넓은 구상,비구상 형식이 전개될 것이다. 된장찌개는 할머니의 손맛으로,장떡은 코흘리개 아이들의 가슴으로,보리개떡은 늦은 봄 야윈 어머니의 미소로 그려내고 싶다.밥상 위에 다양한 맛의반찬이 있듯 ‘우리색채’로 맛을 우려내려고 한다.아울러 고단한 우리네 삶을 녹여주는 숱한 표상을 그려내고 싶다. ■프로필 1952년 경남산청에서 출생했다.중학시절 석불문하에서 ‘옥새전각’전수생활을 했고 극장간판을 그리기도 했다.90년 옥새전각의 종합성으로새로운 미술사조인 LAP ART(선묘,문자예술) 장르를 정립했다.1991년 ‘현대서예협회’를 창립해 서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현재 옥새복원작업을 하고 있으며 해외 LAP ART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 음식에얽힌 삶의 담론…새달부터週1회 연재

    요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 전문가의 기능적인 조언이 아닌, 우리 맛과 음식에 관한 진정하고 재미있는 담론이 강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대한매일은 ‘객지’‘장길산’에 이어 최신작 ‘오래된 정원’ 등의 소설과 진보적인 행적으로 이미 한국문학사에 우뚝 선 작가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를 6월1일부터 12월까지 약 7개월간 매주 목요일에 연재합니다.누구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인생경험을 자랑하는 작가는 음식에 얽힌 추억을 구수하게 펼치는 한편 일상적인 요리와 식사행위 등에 숨어있는 수많은 인문학적인 의미를 예리하게 캐낼 것입니다.컬러 1개면이 할애될 이 연재물은 옥새전각장인 민홍규 화백의 기백 넘치는 삽화가 서정적인 색채를 더하게 됩니다.줄곧 역사의 전면에 서왔던 작가 황석영이 이제 맛과 추억의 뒤안을 밟아보며 힘차게 펼칠 삶의 담론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말. 음식에 대한 글을 쓰려는 순간 예전의 단식 경험과 함께 막 거른 포도주,검은 빵 뿐이었던 젊은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순수한 처음의 식사를 회복하는 일은 자기 시대를 정화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 출발점이었다. 무엇보다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시간에 얽힌 기억들의 촉매이다.나는앞으로 어떤 것보다도 내 시대의 추억을 되씹으면서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볼 작정이다.
  • 뉴스피플,16대총선 판세분석…출마자 총점검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최고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은 창간8주년을맞아 푸짐한 읽을 거리와 흥미진진한 화제로 ‘무장’했다.우선 최근 ‘테헤란 밸리’를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권력’의 모습을 커버스토리로 상세히 다뤘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테헤란로’의 도전과 젊음을 통해 21세기의 ‘디지털 코리아’를 전망해봤다. 창간 8주년 기획특집도 마련했다.부동산 재테크의 노하우,21세기 핵심 화두인 인터넷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앞서가는 젊은 벤처기업가 4인의 이야기, 그리고 21세기 유망직종을 총망라했다. 또한 골프 애호가들을 위해 ‘초보에서 싱글로가는 베스트 포인트’를 별책부록으로 발간했다. 두번째 부록에는 16대총선 판세분석과 출마자들을 총점검하는 내용을 실었다.필진보강과 새 연재물로 읽을거리가 더욱 풍부해졌다.역사학자 이도학씨의‘다시쓰는 한국고대사’와 전통옥새전각장인 민홍규씨의 ‘우리문화읽기’,그리고 창원대 도진순 교수가 ‘시론’의 새 필진으로 합류했다.
  • 고목에 꽃피는 시대­가을/민홍규 옥새 전각장(굄돌)

    조선 태종 이방원은 신하를 길들이는 방편으로 국새(옥새)를 세자에게 물려주는 연출을 자주 했다. 태종을 이은 세종은 ‘국가와 왕권의 상징’인 국새를 제작하는 나라는 황제국,받는 나라는 조공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국새를 고려때처럼 직접 제작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숙종때 민진후는 나라에서 봉급을 주는 옥새전각장을 두도록 상소한 뒤 이 분야가 오늘에 이른다. 국새란 종합예술적으로 제작되므로 옥새전각장은 회화·조각·서예·주물·동양사상·문자운기학·역사 등의 학문과 실기,계율을 확고히 계승한 자에게만 인정되는 혹독한 분야이다. 지난 1월 인수위원회가 대한민국 국새를 공개했다. 이때 필자는 신문을 통해 국새교체를 건의했고 행정자치부는 “그동안 사용한 국새가 낡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그후 담당자에게서 “새 국새는 부분으로 나눠 제작하겠다”는 방침을 듣고 국새전수자로서 동참을 거절했다. 국새제작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다수가 분야별 작가들이며,새 국새는 이들이 자기 분야에서 선택한 사람에게 작업시켜 편집하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눈과 코와 입을 떼어 모아 최고 미인을 만든다는 식은 이미 알려져 있듯이 부정적이다. 행정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국가상징의 전통·법통성은 결여되어 있다. 마치 송대에 한 사내가 벼를 잘자라게 하려고 매일 벼를 뽑아올려 결국 죽게 만든 ‘조장(助長)’의 고사처럼,전래 국새의 형태를 새로 만들 수는 있으나 전문지식없이 제작되는 새 국새는 요즘 전문가들을 살맛나게 하는 정부의 ‘신지식인’표방에 상반된다. 현대의 금속공학은 얼마전 에밀레종 버팀못 재현에 실패했다. 국가 상징인 국새마저 서양식으로 만들고 겉장식인 매듭·궤는 전통기능으로 하겠다는 국새담당자의 행정·문화의식을 보며,국가를 위해 오래 간직할수록 아름다운 것이 이 시대에 힘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못한다.
  • 고목에 꽃피는 시대­여름/민홍규 옥새 전각장(굄돌)

    금괴를 얻어 부자가 된 사내가 샴페인을 터트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을 본 바람과 태양이 사내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했다. 먼저 바람이 그를 스쳐갔지만 사내는 태연했다.더 세게 부딪쳐도 반응이 없자 화가 난 바람은 삭풍으로 변했다.깜짝놀란 사내는 금괴마저 내던지고 외투를 꼭꼭 여미며 종종걸음을 쳤다. 정말 차가운 경제난이 우리에게 왔다.한의학에서 배가 아프면 등에 침을 놓듯 동양식 처방으로는 따스한 문화가 차가움을 이기는 해법이다.이를 위해 정치인들은 옛부터 구조적인 틀을 만들어 운영했으며,지금 우리에게 닥친 구조조정은 곧 틀을 조정하는 일이다. 어느 미술가가 자신의 표현은 틀없는 무한정신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그러나 틀이 있기에 초월할 수 있는 것이며,틀을 벗어났다고 주장해도 결국 그것이 새로운 또하나의 틀안에 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어느 음악가가 악보 없이 창작 연주를 했더라도 연주를 한 그 내용 자체가 악보로 남는 것이다. 산수화를 시작한 당나라 오도자등의 미술론이 송대에는‘사실을 그리되 외형을 넘어 생기를 그리는’필간형구(筆簡形俱)식 황전의 화론(畵論)을 낳아 서양 현대미술론을 몇백년 앞선 것도 모두 옛틀 덕분이었다.서예가 인간적인 원숙함과 같이가는 인서구로(人書俱老)정신인 것,추사체가 고송일지(古松一枝)사상인 것도 전래한 틀이 있어서이다.최근 진행되는 벤처기업의 신소재개발,정치 경제계의 새로운 조정,예술가의 독창성 모두 묵은 틀이 있기에 가능하다.한 시대의 틀은 언제나 경이로운 결과를 낳는 필요한 기성물이다. 종교·예술계 내부에 갈등도 있지만 어차피 삶이란 사람과 사람이 비벼가며 이루는 것.문화예술인부터 서로의 틀을 인정하자.그리고 새 천년을 맞는 이때 우리의 ‘신토불이 정신’을 달구어 IMF의 외투를 벗기자.
  • 고목에 꽃피는 시대­봄/민홍규 옥새 전각장(굄돌)

    볼 일이 있어 수원 북문 앞을 급히 지나고 있었다. 언제나 고궁을 지날 때면 묵은 빈집의 적막함에 늘 공허하다.고인(古人)을 보고자 북문 계단을 쳐다본 순간 깜짝 놀랐다.동풍에 나부끼는 노란 적삼때문이었다.다시 보니 인형이 아닌 수문장을 세운 것으로 그 모습이 시리도록 감동적이었다. 얼마전 정부에서 국제브랜드로 김치를 비롯해 10대 전통문화를 제정하더니 최근은 농산물도 브랜드가 인정받는 시대라 오랜 전통일수록 내외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국제 미술계를 보아도,미국은 100여년 역사로 오랜 유럽문화마저도 주도한다.그나라 미술관계자들이 모여 팝아트를 가장 미국적인 문화표출로 삼는,소위 미국미술 브랜드화를 선언한 후 유럽의 피아크미술제 등지에서 거래를 석권하면서 현대미술에서 종주성(宗主性)을 띠고 있다. 뒤질세라 일본도 그들 미술의 고급·선진성을 기치로 국제성을 찾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상품을 상륙시키는 정·재계의 움직임이 돋보인다.미국은 평범한 화장실 낙서가를 팝아트 대표작가로,일본은 항해선원의 작품도 인정하는 안목으로 국가간 문화전쟁에 응하고 있다. 올해도 광주비엔날레 등 몇가지 미술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광주의 경우 창작주제를 주어 국제작가들을 참가시켰으며 언제나처럼 잔치 뒤에는 말이 분분했다.이제 20세기 마감을 앞두고 우리도 내년 봄쯤 우리 정서를 주제로 한 미술사조,즉 한국미술의 브랜드화를 실험적으로라도 시도해 보면 어떨까. 서양이 팝아트·옵아트·추상표현 등을 내세운 것처럼 우리에게는 음양사상의 하모니즘이나 우리 문화원형·전통예술을 현대미술화한 랩아트 등이 가능하다.동양문화의 지명도와 우리 전통의 지역 독창성을 울타리로 해,나날이 짙어가는 문화경쟁 시대에 우리 문화를 봄꽃처럼 피워보자.물론 몇몇 작가의 인지도에 연연하지는 말고 말이다.
  • 잊혀진 황제의 ‘印鑑’/전각장 민홍규씨 대한제국국새 복원

    ◎일제에 넘어갔다 맥아더 통해 환수/6·24때 또 분실… 54년 3과만 되찾아/망실 조선조 20과 연재 추가제작 옥새전각장 민홍규씨(43)가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복원 제작한 구한말 대한제국의 옥새(玉璽) 5과를 최근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 1897년 고종이 황제위에 오른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제고지보’(制誥之寶),그리고 2개의 ‘칙명지보’와 ‘내각지인’(內閣之印), ‘내각총리대신장’(內閣總理大臣章) 등 모두 8과의 옥새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들 옥새는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강탈하면서 함께 빼앗아갔는데 해방후 맥아더원수를 통해 반환받았다. 당시 총무처는 49년 1월13일 서울에서 되찾은 이 옥새를 구한말의 조약문서들과 함께 특별전시,일반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6.25전란중 다시 잃어버렸다가 54년 6월 ‘대원수보’ ‘제고지보’ ‘칙명지보’등 3과만 다시 찾았을 뿐 나머지는 지금까지 행방을 모르고 있다. 이번에 민씨가 복원한 옥새는 ‘대한국새’ ‘황제지보’ ‘내각지인’ ‘내각총리대신장’ ‘칙명지보’등이다. 조선의 ‘어보의궤’인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를 기본으로 해 전통옥새 제작방법에 따른 것이다. 민씨는 현재 경기도 이천 설성면 장천4리에 전통옥새 제작방법에 따라 손수 대왕가마를 설치하고 작업중인데 이번에 복원한 옥새외에도 금년말까지 망실된 조선시대의 옥새 20과를 더 제작,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한편 민씨는 지난해 11월 경기도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옥새제작용 대왕가마를 손수 설치하고 옥새를 만들 때 행하는 제의식을 시연한 바 있다.
  • 국새문양 시비 유감/朴燦 문화생활팀 부장급(오늘의 눈)

    ‘용’이나 ‘봉황’은 우리 동양사회에서 예로부터 최고의 권위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전설적인 동물들로 알려져 왔다. 용은 왕이나 위인과 같이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이고 봉황은 성인이 세상에 나타날 때 함께 나타나는 상서롭고 귀한 새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래서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옷을 용포(龍袍)라 했고 중국에서는 용을 옥새 손잡이장식으로 사용했다. 대한제국에서도 중국과의 사대관계에서 벗어나 자주주권 국가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용 손잡이모양 옥새를 만들었다. 봉황은 뭇새의 왕이자 환상적인 새로 귀하게 여겨 궁궐에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장식물로 이용돼 왔다. 최근 ‘제2의 건국’을 맞아 행정자치부가 국새(國璽)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우리 전통과 고유의 가치를 무시한 편의주의,또는 무사안일의 표본이 아닌가 여겨진다. 국새 손잡이 모양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위촉된 12명의 국새제작자문위원들이 용과 호랑이,봉황,태극기,무궁화 등을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용이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다.그러나 용이 ‘사탄’을 상징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일부 기독교인의 반대에 부딪치자 그렇다면 무난한 태극기와 무궁화로 변경할 뜻을 비쳤다. 태극기나 무궁화로 국새 손잡이를 만드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문위원들로부터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은 ‘용’이 특정 종교의 반대에 부딪쳐 채택되지 않고 차선으로 바뀔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그동안 다방면에 걸쳐 나라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일부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무시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정부시책까지 관여하는 일도 있다. 문민정부시대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험일이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뀐 것도 한 예다. 한국은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에 특정종교가 교리를 이유로 정부시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바른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고 설득해야 한다. 종교는 ‘교리’를 내세우기보다는 사회의 한 구성요소로 양보와 조화를 앞세우는 성숙한 아량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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