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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호영 “‘한명숙 억울한 옥살이’ 민주당 주장에 동의 못해”

    주호영 “‘한명숙 억울한 옥살이’ 민주당 주장에 동의 못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지난 2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해왔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만기 출소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전 총리의 출소를 계기로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치부를 드러내고 다시는 사법 적폐가 일어나지 않는 기풍을 새롭게 만들었으면 한다”면서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밝혔다.그러자 야권에서는 여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사법부의 판결을 부정한다’면서 한 전 총리의 옥살이가 부당했다는 취지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연세가 많은 정치인이 2년 간 복역하고 나온 것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리지만, 여당 지도부의 언행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여당 지도부가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는 것인 만큼 웃어넘길 수 없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의원·원외 위원장 연석회의를 통해 “여당의 주장은, 한 전 총리는 잘못이 없는데 권력(박근혜 정부) 때문에 기소되고 사법부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라면서 ”만약 전직 총리 한 사람이 죄가 없는데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났다면 그냥 못 넘어간다. 민주당 지도부 말이 사실이라면 국조(국정조사)를 통해서도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당 지도부가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는 것인 만큼 웃어넘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 원내대표는 ”당 지도부에 제안한다. 말 재판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제 국정조사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서 ”여당은 국조를 제안해달라. 기꺼이 받아들여 진실을 대할 용기가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동철 “秋의 과거정부 사법부 판결 비판은 이분법적 사고”

    김동철 “秋의 과거정부 사법부 판결 비판은 이분법적 사고”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3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잘못됐다’는 발언에 대해 “과거 정부의 사법부 판결까지 겨냥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자 배격하고자 하는 구악 중의 구악”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혼란과 무질서를 부추기는 여당 대표의 퇴행적 인식을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명숙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기소와 재판 모두 잘못됐다는 식으로 추 대표가 말했다”며 “이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주당 “한명숙, 억울한 옥살이…정말 고생 많았다”

    민주당 “한명숙, 억울한 옥살이…정말 고생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만기 출소와 관련해 “향후 사법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밝혔다.김현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억울한 옥살이에서도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염원한 한 전 총리님,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당 “사법정의 세우겠다”···강력한 사법개혁 시사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때 추모사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한 전 총리를 향해 이명박정권 하에서 정치보복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1차 곽영욱 재판 실패 후 박근혜 정권하에서 기어이 징역 2년이라는 선고로 피눈물 나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온 한 전 총리의 석방에 먼저 죄송함과 미안함부터 전한다”며 “일부 정치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검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 전 총리에 대한 2번째 재판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더불어 잘못된 재판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보여준 사건”이라며 “정치탄압을 기획하고 검찰권을 남용하며 정권에 부화뇌동한 관련자들은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당당한 한 전 총리의 말씀에 우리는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열린우리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5년 8월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000만원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수감됐다. 이날 새벽 2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한 총리는 “2년동안 정말 가혹했던 고통이 있었지만 드디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됐다.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명숙 전 총리 출소에 김경수 의원 “고맙고 미안했다”

    한명숙 전 총리 출소에 김경수 의원 “고맙고 미안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새벽 출소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열린 한 전 총리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빨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무고함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 총리의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문희상 의원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늘 그랬듯 역사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한 국민 누님으로서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해서는 “역사 앞에서 용감할 일이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참여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출소 현장에 마중나온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그분의 양심을 믿는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정의롭지 못한 사법은 반드시 개혁돼야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야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수 의원 역시 “겨울을 이겨낸 봄꽃처럼 가혹한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고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셨다. 총리님께서 마중나온 우리들을 거꾸로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맙고 또 미안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 속 북소리] 엄동설한에 거리 나선 소녀의 사연

    [역사 속 북소리] 엄동설한에 거리 나선 소녀의 사연

    부하들 녹봉 빼돌려 중앙에 뇌물 배달 사고로 의금부 모진 옥살이 숙종, 효심 감명… 유배로 마무리 숙종 25년(1699년) 1월 한 소녀가 대궐 앞에서 풍물패가 쓰는 북을 두드리며 원통함을 호소했다. 그는 이튿날도 북을 치며 대궐 앞 도로에서 통곡했다. 왕은 어린 소녀가 엄동설한에 북을 치며 우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고 관리를 보내 연유를 물었다. 소녀는 전(前) 남해현령 이상휘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관내 관리에게 줄 녹봉(월급) 일부를 가로챈 것이 발각돼 의금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에 연루된 다른 관리들은 가벼운 형벌을 받고 풀려났음에도 유독 그의 아버지만은 모진 고문을 받으며 옥에 갇혀 있어 억울하다는 것이었다.사실을 확인해 보니 남해현령 이상휘는 수령 자리를 유지하고자 관리들에게 제공해야 할 녹봉 100석(200여 가마)을 빼돌려 중앙 관리들에게 뇌물로 바쳤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실수로 일부 청렴한 관리에게도 뇌물을 돌려 행각이 드러났다. 의금부 조사가 본격화되자 관리들이 속속 자수해 조정은 아수라장이 됐다. 남해 지역과 한양 간 연락 업무를 하는 경저리(京邸吏)의 집 앞에는 앞다퉈 뇌물을 반납한 이들로 가득 찼다. 누가 얼마를 반납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상휘의 죄는 당시 엄벌로 다스리던 장오(臟汚·뇌물죄)여서 참형에 처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왕은 소녀의 행동을 한나라 문제(漢文帝)의 고사에 비유하며 칭찬했다. 한문제 13년(기원전 167년) 지방 관리로 있던 순우의(淳于意)가 죄를 지어 처벌을 받게 되자 그의 딸 제영이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관비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러자 문제가 딸의 효심에 감동해 아비의 죄를 용서했다. 숙종도 효심 깊은 소녀의 호소에 감명받아 그의 아버지를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결정에는 효를 중시하는 조선 사회의 오랜 전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에는 조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또는 선친의 묏자리 문제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려고 신문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버지의 부정부패 행적이 자식들의 앞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다 보니 신문고를 쳐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 8년(1426년) 사례를 보면 조선 사회가 얼마나 강력하게 반(反)부패정책을 시행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비 장경지는 과거 시험을 보려고 수십년간 공부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죄를 범한 탓에 시험에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장경지의 부친은 전라도 감사를 지냈으나 관청의 면포와 종이 등을 다른 용도로 쓰다가 적발돼 충청도 부여로 유배됐다. 아버지가 장리(贓吏·부패한 관리)로 이름을 올린 만큼 아들 장경지는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다.그는 “아버지가 부패 관리라는 이유로 자식에게 시험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신문고를 쳤다. 결국 세종은 그의 탄원에 일리가 있다고 보고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부정부패를 방지하고자 장리연좌제(贓吏連坐制)를 실시해 뇌물을 받거나 비위로 물러날 경우 자식들까지 과거를 볼 수 없게 했다. 설사 부패 관리의 자식이 과거 시험에 합격해 등용됐더라도 일정 직급 이상은 승진시키지 않았다. 이 경우 장리의 자식들은 인정(人情)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아버지의 잘못이 대물림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신문고를 치곤 했다. ■출처:세종 8년(1426년) 1월 15일, 숙종 25년(1699년) 5월 5일 곽형석 명예기자(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 ‘약촌오거리 살인’ 누명 벗은 피해자 보상금 기부

    ‘약촌오거리 살인’ 누명 벗은 피해자 보상금 기부

    8억 4000만원의 10% 내놓기로 진범 15년형… 영화 ‘재심’ 모티브‘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연루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가 형사보상금의 10%를 기부하기로 했다. 피해자 최모(33)씨의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3일 “최씨가 형사보상금 8억 4000여만원을 받으면 사법 피해자를 돕는 단체와 진범을 잡는 데 도움을 준 황상만(63)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에게 각각 5%를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 주는 제도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최근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씨에 대한 형사보상금액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 7분 당시 다방 배달일을 하던 최씨가 약촌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시비가 붙은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최씨는 징역 10년이 확정됐고 2010년 만기 출소했다. 그후 최씨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면서 재심을 청구한 끝에 16년 만인 지난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심 무죄 과정에서는 당시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던 황씨의 공이 컸다. 황씨는 2003년 6월 또 다른 택시강도 사건을 수사하다 진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사에 나섰지만 확정판결을 뒤집진 못했다. 하지만 황씨가 작성한 수사 서류들은 재심에서 결정적 증거가 됐다. 뒤늦게 잡힌 진범 김모(36)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배우 강하늘과 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됐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억울한 옥살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피해자, 보상금 10% 기부

    억울한 옥살이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피해자, 보상금 10% 기부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연루돼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형사보상금 10%를 기부한다고 밝혔다.피해자 최모(33)씨의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3일 최씨가 형사보상금 8억 4000여만원을 받으면 사법 피해자 조력 단체와 진범을 잡는 데 도움을 준 황상만(63)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에게 각 5%를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주는 제도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최근 살인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씨에 대한 형사보상금액을 결정했다. 다방 배달일을 하던 최씨는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 7분쯤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시비가 붙은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징역 10년이 확정됐고 2010년 출소했다. 그러나 최씨 확정판결 후에도 진범과 관련한 첩보가 경찰에 입수되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 논란이 일었다. 최씨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면서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지난해 1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심이 이뤄진 데는 당시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던 황씨의 공이 컸다. 황씨는 2003년 6월 또 다른 택시강도 사건을 수사하다 진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수사에 나섰지만, 확정판결을 뒤집진 못했다. 하지만 황씨가 작성한 수사 서류들은 재심에서 결정적 증거가 됐다. 뒤늦게 잡힌 진범 김모(36)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박 변호사는 “최씨와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 피해자들이 모은 형사보상금은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될 것”이라며 “‘선한 연대’에 많은 시민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덕유산 자락의 ‘아무 곳도 아닌 곳’…불의를 거부한 선비 머문 땅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덕유산 자락의 ‘아무 곳도 아닌 곳’…불의를 거부한 선비 머문 땅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아무개는 모공(某公)·모우(某友)를 따라 모향(某鄕)에서 모서(某書)를 강론하고 드디어 모리(某里)로 갔다. 계회를 마치고 모당(某堂)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모수(某水)·모산(某山)을 배회하다 돌아왔다. 문중의 모군(某君)이 또 모지(某地)·모일(某日)·모사(某事)·모설(某說)을 추급해 기록하여 ‘모리기행록’을 만들었다.…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某)가 서문을 지음’ 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니다. 글을 쓴 사람은 성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대계 이승희(1847~1916)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제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각국 공사관에 보냈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참수하고 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려 감옥살이를 했다. 1909년에는 이상설과 함께 중국 지린성 황무지에 한흥동(韓興洞)을 세워 한인 청소년을 교육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인물이다.모(某)라는 것은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이 정지된 상황이니 모든 게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모리기행록’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계는 모리(某里)를 방문하고 이 글을 썼다. 그런데 모리는 지도에 나타나는 마을 이름이 아니다. 창과 칼이 득세하고 의리는 땅에 떨어진 현실을 떠난 ‘아무 곳도 아닌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자 했던 인물이 창조한 가상의 동네다. 주인공은 절의(節義)의 대명사인 거창 선비 동계 정온(1569~1641)이다. 동계는 광해군 시절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에게 피살되자 격렬한 상소를 올려 정항의 처벌과 이른바 폐모론(廢母論)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동계는 제주도 대정에 위리안치된다. 인조반정으로 10년 만에 유배에서 풀린 동계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오랑캐에게 항복하는 수치를 참을 수 없다며 칼로 자결하려 했지만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후 덕유산 골짜기 자신이 명명한 모리에 은거한다. 거창은 경상남도 서북단에 자리잡은 고을이다. 북서쪽은 전라북도 무주, 북동쪽은 경상북도 김천, 남쪽은 동으로부터 경남의 합천, 산청, 함양과 차례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과 동쪽, 서쪽은 해발 1614m 덕유산을 비롯한 소백산맥의 고산준령(高山埈嶺)이 가로막고 있고 남쪽에는 992.6m의 감악산이 버티고 있는 커다란 분지(盆地)라고 할 수 있다. 산이 높으니 물이 맑은 것은 당연지사다. ‘영남 제1의 명승’이라는 안의삼동(安義三洞)은 모두 덕유산 아랫동네에 있다. 조선시대 안의현(安義縣)이었던 화림동(花林洞)과 심진동(尋眞洞), 원학동(猿鶴洞)이다. 오늘날 화림동과 심진동은 함양, 원학동은 거창 땅이다. 동계가 태어나고 죽은 원학동은 안의삼동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동천(洞天)의 줄임말인 동(洞)이란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뜻한다.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온 갈천은 북상면 소재지에 이르러 남덕유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든 위천과 합류한다. 이곳에서 물줄기를 넓힌 위천이 만들어 놓은 걸작이 수승대(搜勝臺)다. 위천은 거창읍내를 관통한 뒤 황강에 합쳐지고 합천호를 지난 황강은 다시 낙동강에 합류한다. 동계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은 자연스럽게 수승대에서 시작하게 된다. 온갖 각자(刻字)가 빼곡히 채우고 있는바위를 비롯해 요수정(樂水亭)과 구연서원(龜淵書院), 관수루(觀水樓)가 아름다운 계류와 조화를 이룬다. 수승대 초입에는 최근 축제극장과 야외극장이 지어졌다. 축제극장 앞에는 셰익스피어의 동상도 세워졌다. 여기서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있으니 동서양의 문화가 접점을 찾는 시도라고 해도 좋겠다. 28일 개막한 올해 연극제는 8월 13일까지 열린다.동계종택이 있는 강동마을은 수승대에서 1㎞도 되지 않는다. ‘문간공 동계 정온지문’(文簡公 桐溪 鄭蘊之門)이라고 쓴 정문(旌門)이 눈길을 끈다. 인조가 동계의 충절을 기려 내린 것이다. 곧바로 보이는 사랑채에는 충신당(忠信堂)이라는 당호가 보인다. 왼쪽으로 모와(某窩)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데 ‘모리에 은거한 동계가 살던 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안채에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다. 모리재로 가려면 위천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북상면 소재지에서 위천이 돌아드는 대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농암리에 이르면 왼쪽에 모암정(帽巖亭)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강선대다. 동계는 ‘강선대에 올라’(登降仙臺)라는 칠언시를 남겼는데, 이곳을 글자 그대로 신선이 사는 세계로 표현했다. 모리재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2㎞ 남짓 올라가야 한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만큼 좁다. 게다가 통행하는 차량이 적은 탓에 수풀이 길 중간까지 덮고 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온다면 피할 곳도 없다. 운수가 좋지 않으면 1㎞ 정도를 후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니 모리재는 여유를 두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모리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얼마나 세상과 동떨어진 동네인지를 알 수 있다. 동계의 시대에는 지금보다도 거리감이 훨씬 컸을 것이다.그런데 모리재에 닿으면 뜻밖에 반듯한 누각이 탐방객을 맞는다. 화엽루(花葉樓)다. 스승의 절의를 기려 제자들이 지은 것이다. 동계는 ‘서숭정십년역서’(書崇禎十年歷書)에서 ‘숭정이란 연호가 여기서 멈추었으니/ 명년에 어떻게 다른 역서를 보리/ 이제 산사람은 더욱 일이 줄어들 터/ 단지 꽃피고(花) 낙엽지는(葉) 것으로 계절 가는 것 알리’라고 읊었다. 명나라 연호로 숭정 10년은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인조 15년(1637)이다. 실제로 동계는 청나라 책력을 보지 않았다.모리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제법 규모 있는 집이다. 은거하던 초가집을 동계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다시 지어 선생을 기리며 공부하는 공간으로 썼다고 한다.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 ‘모리재’를 중심으로 왼쪽에 구소(鳩巢), 오른쪽에 채미헌(採薇軒)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구소’는 동계 자신의 표현처럼 ‘비둘기집처럼 허술한 집’이라는 뜻이다. 고사리를 캔다는 뜻의 ‘채미’ 역시 백이·숙제처럼 고사리로 굶주림이나 면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동계는 모리에서 네 해 남짓 살았다. 그의 무덤은 거창 가북면 용산 아래 있다. 동계종택에서 출발해도 무덤까지는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다. 이곳에는 동계의 어머니 진주 강씨가 먼저 모셔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계가 3년 동안 시묘한 움막터에는 순조 8년(1808) 용천정사(龍泉精舍)가 세워져 오늘에 이른다. 거창에 남은 동계의 흔적을 둘러본 뒤 제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서귀포 대정읍 안성리의 ‘동계 정선생 유허비’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헌종 8년(1842) 그의 적소(謫所)터에 세웠던 것을 지금은 보성초등학교 앞으로 옮겨 놓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노회찬, 황병헌 판사 판결 질타…“조윤선은 투명인간이었나”

    노회찬, 황병헌 판사 판결 질타…“조윤선은 투명인간이었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개월 옥살이 끝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에 대해 “이 판결대로 하자면 조윤선 전 장관은 투명인간이었다”며 황병헌 부장판사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28일 지적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황병헌)는 전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 조 전 장관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들을 놀라게 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보고, 많은 분들이 실망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상황을 보고는 있었지만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거다”라며 “지금 보면 위증죄만 인정을 하고 직권남용, 즉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지원 배제가 관철되는 데에 대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재판부의 판결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거 자체가 납득 안된다”라며 “실제로 이 블랙리스트를 이렇게 이 방침에 따라서 어디는 돈을 더 주고 어디서 돈을 덜 주고 작업을 한 TF가, 민간단체보조금 TF가 정무수석실 산하에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그것이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 되기 전부터 정무수석실에 배치가 돼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정무수석인 상태에서 그것이 진행되고 진행되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중단시킬 권한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원내대표는 “그것도 직권남용에 속하는 것”이라며 “진행되게 방조한 것이기 때문에 공범관계에 있다고 본다. 김기춘이 지시하고 다 했다고 이번에 인정했는데 김기춘과 공범관계에 있는 게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었고 문체부 장관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걸 실행을 했기 때문에 공모관계를 인정해야 되는데 그걸 안 했다는 건 판결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황병헌 판사의 판결에 대해 노 원내대표는 “팔이 안으로 굽는 판결이 아니냐”라며 “법조인 출신들끼리 이제 봐주고 하는 그런 관계의 의혹을 살 수 있다”고 봤다. 또 노 원내대표는 전날 ‘블랙리스트’ 판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1심의 판결을 계속 법원이 유지한다면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기춘은 징역, 조윤선은 집행유예…남편 박성엽 변호사 ‘눈물 변론’ 덕분?

    김기춘은 징역, 조윤선은 집행유예…남편 박성엽 변호사 ‘눈물 변론’ 덕분?

    지난 27일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는 징역 3년형,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는 집행유예 판결이 났다. 28일 법조계에서는 조 전 장관이 6개월의 옥살이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을 두고 남편인 박성엽 김앤장 변호사의 공이 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박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을 때부터 사실상 다른 일을 포기하고 아내 조 전 장관의 변론에 전념했다. 박 변호사는 통상이 전문 분야다. 전문이 아닌 형사 사건이지만 조 전 장관의 재판과 관련된 일이면 어김없이 법정에 나와 직접 변론까지 했다. 그 스스로도 지난 3일 열린 조 전 장관 등의 결심 공판에서 최후 변론을 하며 “변호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왔지만 개인적으로 형사 법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형사 소송 문외한”이라고 고백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최후변론에서 남편이자 변호인으로서 조 전 장관을 지켜보는 심경을 떨리는 목소리로 풀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조윤선 피고인이 블랙리스트의 주범이라는 보도가 있은 후 저희가 할 수 있는 말은 ‘우리는 한 적이 없다’고 외치는 것 외에 달리 없었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평생 후회하지 않도록 이 사건에 전념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간의 소회를 말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이 구속됐을 때를 떠올리며 “집에 돌아와 텅 빈 방을 보면서 결혼해서 데려올 때 했던 나의 다짐,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무력감을 느꼈다”면서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남편의 변론을 옆에서 듣던 조 전 장관도 감정이 복받친 듯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남편의 ‘성심 변론’ 덕분인지 조 전 장관은 27일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직권남용 혐의는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박 변호사는 조 전 장관이 지난 1월 국회 청문회에 나갔을 때 메신저로 ‘깨알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가 조 전 장관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로 ‘해당 부분 증언은 계속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사정당국에서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하여야 할 듯’이라고 조언한 내용이 취재진에게 포착된 것이다. 실제 조 전 장관은 당일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의혹에 대해 ‘모른다’거나 ‘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하기도 했다. 서울대 동문인 두 사람은 김앤장에서 함께 변호사 생활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중 양국 의료진 보완… 임상 결과 기대, 성공한다면 뇌질환 연구 불씨 다시 지필 것”

    “한·중 양국 의료진 보완… 임상 결과 기대, 성공한다면 뇌질환 연구 불씨 다시 지필 것”

    “이번에 공개된 뇌졸중 치료제 ‘뉴 2000’은 현존하는 후보물질 가운데 가장 앞선 것으로 보이며 임상 진행 설계도 잘 이뤄진 것으로 판단됩니다.”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을 지낸 데니스 최(한국명 최원규)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의과대 신경학과 학과장 겸 신경과학연구소장은 지난 21일 중국에서 열린 ‘뇌졸중 치료제 임상실험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지켜본 소감을 27일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중국의 임상 2상은 앞으로 진행하면서 약간의 조정은 필요하겠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약의 기전이 좋고 양쪽 의료진이 상호 보완적인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뇌졸중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최 소장은 “뇌졸중에 대한 연구 방향이 잘못됐기 때문으로 판단된다”면서 “뇌졸중은 여러 경로로 오는데 지금까지 연구는 한 가지 표적만으로 접근해 실패를 거듭했다”고 지적했다. 뇌졸중은 싱글타깃이 아닌 다중타깃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이번에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임상 2상이 진행 중인 ‘뉴 2000’이 바로 그런 약물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신경과학회 회장과 다국적 제약사 머크사 부사장을 지낸 최 소장은 “머크사에서도 2006년 한국 기업이 개발한 ‘뉴 2000’의 기술을 이전받으려 했으나 당시 회사가 개발한 신약의 부작용으로, 피해보상에 엄청난 돈을 쓰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최 소장은 “인류에게 큰 부담을 주는 뇌졸중을 정복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번에 임상 2상이 성공하면 과거 실패하고 떠났던 많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회귀해 뇌질환 연구에 다시 힘을 쏟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3년부터 3년간 KIST 뇌과학연구소장을 지낸 동기에 대해 최 소장은 “조부와 선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내가 갖고 있는 재능과 지식을 아버지 나라에 기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데니스 최 소장의 할아버지 최창식(1892~1957)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을 주도하고 임시의정원 초대의원을 지낸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치하에서 황성신문 기자와 오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역사 저술물을 발간했다는 죄목으로 옥살이했다. 아버지인 최영화 박사는 1960년대 KIST 설립을 돕고 1970년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만드는 등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초석을 다진 주인공이다. 그는 끝으로 “앞으로 뇌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는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학문과 진단 및 치료를 위한 실질적인 투자 등 두 가지로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임상 네트워크를 구성해 플랫폼에 들어온 각종 아이디어들이 현실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10년 누명 옥살이’ 보상금 8억 6000만원

    사건 발생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익산 약촌 오거리사건’의 당사자 최모(33)씨가 형사 보상금 8억 6000여만원을 받게 됐다. 24일 이 사건을 변론한 박준영 변호사에 따르면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청구인 최씨에 대해 이같이 형사 보상금액을 결정했다. 최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형사보상 신청 사건을 인용한 것이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 주는 제도다. 형사보상법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구속 등으로 구금된 뒤 무죄가 확정되면 구금 일수에 따라 구금 연도의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일급 최저임금의 최대 5배까지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씨는 16살이던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쯤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복역을 마쳤다.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며 그는 법원의 당시 판단에 불복해 2013년 재심을 청구했다. 광주고법은 2년 만인 2015년 6월에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의 이야기는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져 지난 2월에 개봉하기도 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유서 대필 사건’ 피해자 강기훈씨 국가배상 판결에 검찰 항소 포기

    ‘유서 대필 사건’ 피해자 강기훈씨 국가배상 판결에 검찰 항소 포기

    이른바 ‘유서 대필 조작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54)씨에 대해 법원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국가배상 소송 수행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국가는 (형사재판) 재심 무죄 판결이 확정돼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존중하고, 분쟁의 조기 종식을 통한 신속한 권리구제 등을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24일 밝혔다.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강경대 치사 사건’에 항의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진 것과 관련,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씨가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강씨는 거듭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2015년 5월 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인 필적감정서가 위조된 점 등이 인정돼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강씨는 그해 11월 총 3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김춘호)는 지난 6일 강씨와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와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모씨가 함께 강씨에게 5억 2000여만원 등 총 6억 8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 2명은 필적감정 조작에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검찰의 항소 포기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삼례 3인조’ 사건 당사자 등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들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박열 의사 ‘동지 겸 부인’ 가네코 추도식

    박열 의사 ‘동지 겸 부인’ 가네코 추도식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박열’이 흥행하고 있는 가운데 박 의사의 동지이자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23일 열려 관심을 모았다.박열의사기념관(이사장 박인원 전 문경시장)은 이날 경북 문경시 마성면 박열의사기념공원 내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 앞에서 91주기 추도식과 추모기념 워크숍을 열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이었지만 식민지 한국인의 처지에 공감하며, 박열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인물이다.이날 추도식에는 문경지역 기관·단체장을 비롯해 시민, 독립운동가 및 후손,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역을 열연한 배우 최희서씨 등 모두 200여명이 참석했다. 박인원 박열의사기념관 이사장은 “영화 박열로 높아진 국민의 관심 속에 반제국주의 사상을 온몸으로 보여준 박열 의사와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 정신을 다시금 기억하는 시간을 마련해 감개무량하다”면서 “앞으로 두 분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기념사업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문경 출신인 박열은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해 무정부주의 운동을 주도했으며, 1923년 당시 애인이었던 가네코의 도움으로 일왕을 암살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두 사람은 대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박열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8091일 동안의 감옥살이를 마쳤지만, 가네코는 1926년 7월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문경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구금에 가혹 행위까지…30년 만에 ‘간첩 누명’ 벗은 70대 노인

    구금에 가혹 행위까지…30년 만에 ‘간첩 누명’ 벗은 70대 노인

    간첩으로 의심받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70대 노인이 30여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제갈창)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강모(76)씨의 재심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씨는 1962년 일본으로 밀항해 17년을 살다가 1979년 7월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그해 8월 제주경찰은 강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강씨는 65일간 갇혀 각종 가혹 행위를 받은 뒤 풀려났다. 그런데 1986년 검찰은 ‘강씨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5년간 간첩활동을 했다’며 강씨를 영장도 없이 다시 체포했다. 당시 검찰은 강씨가 북한과 조총련 지시를 받아 국내 정보를 수집·제공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강씨는 그해 5월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항소는 기각됐다. 2013년 4월 강씨는 가혹 행위 때문에 허위진술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8월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강씨는 재판에서 “수사기관의 고문과 불법 구금 등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거짓으로 진술했다”며 간첩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안부대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장기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가혹 행위 등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검찰에서도 임의성 없는 진술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국 인권운동 상징 류샤오보, 간암으로 사망…中, 인권탄압 비판 직면

    중국 인권운동 상징 류샤오보, 간암으로 사망…中, 인권탄압 비판 직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13일(현지시간) 사망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병원 입원치료를 받은 지 한달여 만이다. 류샤오보 조치를 관장하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사법국은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문에서 병원에서 간암 치료를 받아온 류샤오보가 13일 사망했다고 밝혔다. 류샤오보를 치료했던 선양 소재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은 “12일 오후부터 류샤오보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호흡 곤란을 겪었으며 신장, 간 기능이 떨어지고 혈전이 생겨 고통스러워하더니 13일 오후 숨졌다”고 말했다.류샤오보는 지난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08헌장’ 서명 운동을 주도했다. 이듬해 그는 ‘국가전복’ 혐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진저우교도소에 수감됐다. 지난 5월 말 정기 건강검진에서 류샤오보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수일 뒤 가석방됐다. 류샤오보는 유럽 등 서방으로 출국해 선진 의료진 치료를 받기를 희망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류샤오보는 사망 전 “죽어도 서방에서 죽겠다”며 강력한 출국 희망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결국 그는 타향인 선양 병원에서 눈을 감게 됐다. 선양시 사법국은 지난 3일 “최고의 의료진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의술과 요법으로 간암 진단을 받은 류샤오보를 치료하고 있다”며 “병원 측이 간암 전문의들과 상의해 종합적인 치료법을 류샤오보 치료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5일에는 “미국, 독일 등지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간암치료 전문의를 중국으로 초청키로 결정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내막을 보면 입원 기간 류샤오보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류샤오보는 3일 배에 찬 복수를 뺀 뒤 병세가 호전되는 듯 했지만 5일 갑자기 다시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 전 수일간 복수가 증가하고 간 기능이 떨어졌고, 간 기능 저하로 인해 양약이나 한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류샤오보가 간암을 얻게 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긴 옥살이로 인한 심신 탈진이 원인이 아니겠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아울러 교도소 당국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아서 병을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제대로 손쓰지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치료가 어려운 간암 말기에 이르기까지 류샤오보의 병세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개된 한 CCTV 영상에는 류샤오보가 자신이 B형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20여 년 전부터 알고 있다는 의료진과의 문답 장면이 담겨 있다. 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이런 사실에 주목했다면 류샤오보의 B형 간염 보균이 간암으로 진전됐겠느냐고 꼬집었다. 징역살이 중에 치료를 위해 가석방됐던 반체제 인사 가오위는 “류샤오보가 감옥에 가기 전만 해도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7년 후에 그가 불치병과 싸울지 누가 상상이냐 했겠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6년만에 ‘유서대필 누명’ 국가 배상… 수사 검사는 ‘면죄부’

    26년만에 ‘유서대필 누명’ 국가 배상… 수사 검사는 ‘면죄부’

    법원 “허위 필적감정 후유증 커”당시 ‘강압 수사’ 강신욱 등엔 시효 지나 배상청구 못 해 강씨측 “유감… ‘핵심’ 책임 부정”‘한국판 드레퓌스’로 알려진 ‘유서 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54)씨에 대해 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 김춘호)는 6일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강씨와 가족에게 국가와 허위로 필적을 감정한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씨가 함께 5억 2937만 8132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강씨의 아내에게 1억원, 두 자녀에게 각각 1000만원, 두 동생에게 각 1833만여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재판부는 “강씨가 이미 형사재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아 민사상 보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상황에서 피의사실 및 강씨의 인적 사항 등이 언론에 공개되고 유서를 대신 써 자살을 방조했다는 오명을 쓰는 등 강씨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강씨는 석방된 뒤에도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에 많은 지장이 있었고 이후 태어난 자녀들, 수사 과정에서 함께 힘들어했을 아내와 부모, 친지들도 역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씨에 대해서도 “국가기관이 필적 감정을 함에 기본적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이 허위 감정 결과가 수사와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가 됐으며 그러한 잘못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지 못했다”며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또 다른 피고인으로 유서 대필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당시 강신욱 전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신상규 주임검사에 대해선 수사 과정의 강압행위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필적 감정을 조작하는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강씨 측 소송대리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판결 결과에 대해 “큰 틀에서 유감스럽다”면서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가해자이고 몸통이라 할 수 있는 핵심 당사자들(검사)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국과수 감정인의 책임만 인정한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강경대 치사 사건’에 항의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진 것과 관련,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씨가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강씨는 거듭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형을 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2015년 5월 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인 필적감정서가 위조된 점 등이 인정돼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강씨는 그해 11월 총 3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편 이 사건은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증거 없이 종신형을 선고받자 지식인들이 이를 비난하고 나섰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비유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재심 끝에 34년 만에 무죄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당하거나 옥살이를 한 당사자들이 34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故)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고 최낙전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갔다온 뒤 조카인 낙전·낙교씨를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며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수사관들에게 40여일 동안 고문당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넘겨져 수사를 받았다. 당시 공안검사는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낙교씨는 1982년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다. 이듬해 3월 1심 재판부는 을호씨에게 사형을, 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1985년 10월 을호씨가 형장의 이슬이 됐고, 낙전씨는 9년을 복역하고 나온 뒤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고문으로 인해 작성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1달러’ 때문에 6개월 간 억울한 옥살이 한 남자 사연

    ‘1달러’ 때문에 6개월 간 억울한 옥살이 한 남자 사연

    단돈 1달러 때문에 6개월간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한 남성의 황당한 사연이 알려졌다. 뉴욕포스트 등 미국 현지 언론의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살렘이라는 이름의 남성은 2014년 11월, 한 의류매장에서 코트를 훔친 죄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초 현지 법원은 그에게 5만 달러(약 5680만원)의 보석금을 책정했다가, 이후 그의 처지와 사안 등을 고려해 보석금을 1달러(약 1140원)로 대폭 낮췄다. 살렘은 사실상 ‘무전’으로 불구속상태가 돼 남은 수사 및 재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가 교도소 밖으로 풀려난 것은 보석금 선고로부터 약 6개월 후였다. 이유는 그에게 법률 상담을 해주던 변호사 및 그가 수감돼 있던 뉴욕 라이커스교도소 관계자들이 누구도 그에게 보석금이 낮춰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렘은 출소를 불과 약 1주일 앞둔 2015년 4월에서야 알게 됐다. 1달러만 내면 풀려날 수 있었지만 무려 100일을 넘게 교도소에 있었던 셈이다. 현재 또 다른 절도죄로 복역중에 있는 살렘은 당시 자신에게 법률 상담을 해준 변호사 및 라이커스 교도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보석금이 1달러로 낮아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듣지 못해 약 6개월 간 교도소에서 생활한 것은 불법 투옥 및 자유의 구속에 해당되며 이로 인해 심리적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살렘의 변호사인 웰튼 위샴은 “내 의뢰인과 같은 사유로 인해 라이커스 교도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있을까봐 매우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해당 법률자문 변호사가 소속된 법률구조위원회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며, 라이커스 교도소 측은 문제의 사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삼례 3인조’ 형사보상금 총 11억 받는다

    사건 발생 1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당사자들에게 형사보상금 11억 4600만원이 지급된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 이석재)는 9일 ‘삼례 3인조’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청구인들에 대해 이같이 형사보상금액을 결정했다. 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 주는 제도다. 형사보상법은 구금 연도의 최저임금법에서 정한 일급 최저임금의 최대 5배까지 보상하도록 규정한다. 이번 결정으로 국가는 임명선(38)씨에게 4억 8400여만원, 최대열(38)씨에게 3억 800여만원, 강인구(37)씨에게 3억 5400여만원을 지급한다. 이들 보상금을 모두 합하면 11억 4600만원이다. 이들은 살인강도 혐의로 억울하게 기소돼 각각 2008일, 1277일, 1469일간 옥살이를 했다. 재판부는 당시 최저임금 등을 고려해 하루 보상금액을 24만 1200원으로 정하고 구금일을 곱해 형사보상금을 결정했다. ‘삼례 3인조’와 유가족은 이와 별도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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