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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수옥씨 제1회 유관순상 수상

    충남도,동아일보,이화여고가 공동 제정한 제1회 유관순상 수상자에 사회복지사업가 조수옥(趙壽玉·88·경남 마산시 구암 2동)씨가 선정됐다. 조씨는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평양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고 광복 직후인 46년 사회복지법인‘인애원’을 설립,전쟁고아와 불우청소년 등을 보살펴왔다. 시상식은 다음달 29일 오후 2시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다. 대전 이천열기자
  • 3월의 독립운동가 이필주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李文遠)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였던 이필주(李弼柱·1869∼1942) 선생을 2002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서울 정동에서 몰락한 선비 이윤영(李允永)의 장남으로태어난 선생은 구한국 군대 사병으로 들어가 군생활을 하다가 자식남매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교회를 나가게되어 1903년 W.B.스크랜튼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후 목회자로 일하면서 활발한 민족운동을 벌였다. 1911년 협성신학교 입학,1915년 목사 안수를 거쳐 1918년 정동교회 목사로 초빙됐다.1919년 3·1운동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을 한 뒤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1년 일제가 교회 예배에 궁성요배,황국신민서사 등을요구하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이듬해 4월21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은 다음달 1일부터 선생의 사진 및 공판 보도기사,재판기록 등 관련자료를 모아 선생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노백린장군 76주기 추모식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노백린(盧伯麟) 장군의 76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임정 묘역에서 열린다. 노 장군은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나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으나 1900년 귀국한 뒤 신민회를 조직,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이어 임시정부의 군무총장,참모총장,국무총리를 역임하다 26년 현지에서 순국했다. 한편 임시정부 의열단원으로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르던서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金相玉)열사의 79주기 추모식도 같은 시각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열사의동상 앞에서 열린다. 김경운기자 kkwoon@
  • 서울대 ‘사노맹 교수’ 임용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에 앞장서온 진보적 법학자 동국대조국(曺國·37)교수가 모교인 서울대 법대 교수에 임용됐다. 서울대는 7일 “지난달 31일자로 조국 교수를 법대 조교수로 발령했다”고 밝혔다.조 교수는 3월부터 강의를 하게된다. 82학번인 조 교수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UC 버클리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및 리즈대 등에서 영 ·미형법 박사와 ‘박사후 연수’과정을 밟았다. 법대 시절에는 ‘운동권’으로 활동하면서도 학사와 석사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쳤다. 조 교수는 92년 이후 울산대와 동국대의 교수로 일하면서공권력의 사법행위로 인한 시민의 기본권 및 인권 침해의실정법상 문제점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2년에는 ‘사상과 자유’라는 책을 발간,당시 금기로만여겨졌던 국보법 폐지 논의를 공론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93년 울산대 재직시절에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6개월간옥고를 치른 일이 계기가 돼 국제 앰네스티로부터 양심수에선정되기도 했다.최근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과 대법원의 양형제도 연구위원을 맡아 소수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왔다.서울대 법대측은 조 교수의임용에 대해 “국가보안법 존폐에 관한 학자의 주장은 교수 임용 평가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고교 선배인 조 교수는 “대학 시절 선·후배들이 신념 때문에 희생되는 것을 목격하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관심을갖게 됐다”면서 “학자로서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실천적 노력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피력했다. 윤창수기자 geo@
  • 1월의 독립운동가 곽재기 선생

    국가보훈처는 2일 항일의열투쟁가 곽재기(郭在驥·1893-1952)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서울 경신학교의 애국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활동했고 졸업후 청주 청남학교교사로 재직하면서 민족교육에 힘썼다. 선생은 3·1운동 후 ‘필설'(筆舌)의 방법으로는 독립할수 없다고 보고 중국 지린(吉林)으로 건너가 의열단을 조직하고 항일 암살·파괴활동을 벌였다.1920년 5월 폭탄 13개와 권총 2자루,실탄 100발 등을 국내로 반입시킨 뒤 서울로 잠입한 선생은 인사동에서 동지들과 암살·파괴계획을 모의하다 일경에 체포됐다.1921년 최고형인 징역 8년을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인 1930년 다시 망명,만주와 상하이,노령 등지에서독립운동을 하다 1945년 11월 귀국했다. 이후 정치활동을접고 ‘한국에스페란토어학회'를 운영하는 등 교육사업에종사하다가 1952년 별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송건호선생 영전에“민주언론 후배들에 맡기시고 고이 가소서”

    선생님의 부음(訃音)을 듣고 30년 넘게 가까이 모시며 직접 훈도의 은고(恩顧)를 입은 후학은 황망 중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선생님 영전에 고합니다. 선생님께서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계시던 지난 1974년 10월 24일 편집국 기자들과 동아방송 사원들이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벌였을 때 선생님께서는 회사 경영진의 완강한 제동에도 불구하고 후배들보다 앞장서서 자유언론을 실천하셨습니다.이듬해 3월 회사가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에 굴복해서 사원들을 축출하자,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사표를 던지셨습니다.이같은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아닙니다.동아일보사에서 무더기로 쫓겨난 기자 프로듀서110여명은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선생님을 정신적 지주(支柱)로 모시고 13년 동안 ‘거리의 언론인’시대를 견디게 됩니다.그 역경의 세월,선생님께서 걸어 오신 형극(荊棘)의 길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권력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언론인’의 대표로서 재야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후배 언론인들이 오히려 아슬아슬할 지경이었습니다.결국 선생님은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해 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얽혀 옥고를 치르시게 됩니다.당시 후학들은 “과연 천도(天道)라는 것은 있는가?” 하늘을 원망했습니다.그때 합수부 수사과정에서 당하신 그 야만적인 고문의 후유증이 결국 오늘 선생님과의 사별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1984년 75·80년 해직기자들이 중심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의장직을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셨으며,‘민언협’기관지 ‘말’지의 ‘보도지침 폭로사건’을 통해 전두환 독재정권의 언론탄압 실상을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화가 좌절돼 민주진영이 더없는 낙담에 빠졌을 때,선생님께서는 몇몇 후배들과 기존 신문과는 전혀그 지향을 달리하는 ‘민주·민족 언론’의 창간을 구상하셨습니다. 청암선생님.저희가 미처 몰라서 하늘을 원망했지 ‘천도’는 분명 있습니다.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이 선생님의 언론 정신을 굳건히 이어가겠다며결의를 다지는 것이 바로‘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우리 시대의 마지막 언론인 청암선생님이시여,이 땅의 민주·민족언론은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눈을 감으소서.삼가 합장(合掌). 2001년 12월 21일 대한매일 장윤환 논설고문.
  • 마산 인애원 조수옥원장 일생 日서 책으로

    일제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사회사업에 평생을 바친 팔순 할머니의 삶이 일본인에 의해 최근 일본에서 책으로 출간돼 화제다. 화제의 책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교인,조수옥의 일본통치 저항 증언’으로 주인공은 경남 마산시 구암동 아동보호시설 인애원 조수옥(趙壽玉·87)원장. 목사이면서 작가인 와타나베 노부오(渡邊信夫·74)씨가수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증언 청취로 파란만장했던 조원장의 일생을 담아 일본 신쿄(新敎)출판사에서 출간했다.국내 번역판은 내년중 나올 예정이다. 1914년 경남 하동군 하동읍에서 태어난 조원장은 진주 성경학교를 졸업,부산 초량교회 등에서 전도사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부산 유치장과 평양 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르고 해방과 함께풀려났다.일제는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조원장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자 결국 사형 언도까지 내렸다.조원장의 사형집행일이 45년 8월 17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틀전 일제의항복으로 모면했다. 조원장은 이듬해인 46년 9월 마산에 정착,장군동 일원에아동보호시설인 인애원을 설립,지금까지 55년간 부모 없는 아동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헌신하고 있다.인애원에 들어와 조원장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은 아동들이 무려 1,700여명이나 된다. 조원장의 삶은 지난 2년간 일본 잡지 ‘복음과 세계’에연재돼 일본 기독교인들 사이에 반향을 일으켜 이번에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와타나베씨는 조원장을 일제치하때 신사참배를 거부해 옥고를 치루고 생존하는 유일한 조선 기독교인으로 소개했다. 조원장은 “소외가 사라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만들기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3代째 항일운동…소송동참 기쁩니다”

    “반세기 동안 묻혀져왔던 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송사건에 동참하게 돼 기쁩니다.방한기간 중 위안부 및 징용 소송사건을 널리 홍보하고 한국 관련단체로부터 지원도 받고 싶습니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외할머니,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진행중인 ‘일본군위안부 및 징용 피해’ 소송의 원고측 변호인단에 합세한 재미한인 변호사가 14일 방한했다.주인공은 지난 86년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된 미국 최대의 아시아계 법률회사 ‘림,루거앤드 김’의 공동대표인 크리스토퍼 김(49)변호사. 김 변호사는 3대에 걸쳐 80년 넘게 ‘일본과의 싸움’을 계속해 오고 있다.김 변호사의 외할머니 홍인명(1898∼1988)여사는 국내는 물론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만세운동을주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1921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재미교포 사회에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을 전담해 ‘만세 할머니’로 유명했던 인물.홍 여사의둘째사위이자 김 변호사의 아버지 패트릭 김씨(71년 작고)는 2차대전당시 미 육군으로 참전,필리핀 등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 김 변호사가 공동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미국에서의 ‘위안부소송’은 일제의 성노예 피해자들이 미국법정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최초의 소송으로,한국 대만 필리핀 중국 등 4개국 피해자 15명이 각국의 피해자들을 대표해 제소한 집단소송이다.작년 9월 18일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제소하였으나 일본정부가 금년 3월 소송기각 신청을 내고 지난 10월 연방법원이 소송기각 판결을 내려 현재 원고측이 항소중이다.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인권문제로 접근하고 있으며,결과를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김 변호사 일행은 한국내 구 일본군 위안부 관련단체 및 당국자들을 방문,지원을 요청하고 15일밤 출국할 예정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홍남순 변호사 뇌출혈 투병

    민주화의 산증인이자 호남지역 대표적 재야 원로인 홍남순(洪南淳·89)변호사가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투병중이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3일 홍 변호사의 가족들에 따르면 홍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오전 광주 동구 궁동 자택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전남대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이 회복되지 않아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다. 홍 변호사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매일 사무실에 나와 업무를 보았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30여년동안 양심수 무료 변론과 인권운동가의 외길을걸어온 홍 변호사는 80년 5ㆍ18민중항쟁 때는 70에 가까운나이에도 불구,신군부에 체포돼 1년7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市·區의원 초대석/ 신경식 시의원

    서울시의회 신경식(申坰植·59·서대문4·민주)의원을 아는 사람은 대부분 “담백하고 복선없는 사람”이라는 인물평을 내놓는다.지사적 풍모에 언행이 직선적이고 곧아서다. 많은 의원들로부터 ‘선배’로 불리는 그에게는 확실히뭔가가 있다.그것은 힘겨웠던 우리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그의 이력이 풍기는 권위같은 것이다. 6·3사태때는 물론 10월 유신때도 김상현씨 등과 함께 283일간 옥고를 치른 투사다.게다가 ‘야당 30년’이라는 강골(强骨)의 정치야전군 출신치고는 지독하게 안풀린 편에속하지만 아직도 그의 목소리에는 기백이 짱짱하다. 시의회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유급보좌관제를 도입하고,지방자치법을 개정,행자부 등 정부의 ‘통치적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그는 서울시 법률고문운영조례 개정 등 왕성한 입법활동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도했다. 이런 그에게 가장 보람있는 의정성과는 상암동을 월드컵전용구장 후보지로 결정한 일.후보지 선정위원이었던 그는“쓰레기매립지는 안된다”는 축구협회측에 “그것도 우리쓰레기”,“또 강남이냐”는 논리로 맞서 결국 상암축구장건립계획을 관철시켰다.서대문구를 위해 다른 곳보다 많은서울시 재정지원을 얻어낸 것도 기분좋은 기억. 서대문에서만 34년동안 법률사무소에 몸담아 ‘서대문 신경식’으로 통하는 그는 첫인상이 무뚝뚝하고 날카롭다는평가다. 이에대해 그는 “보기와 달리 가슴 따뜻하고 유약한 사람”이라고 자평한 뒤 “최선을 다한 의정활동에 후회는 없다”는 소회를 밝혔다. 부인 김정임(金貞任·58)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취미로 두는 바둑이 아마3단 수준. 심재억기자 jeshim@
  • 민주당 새 당직자 5人 프로필

    [이협 사무총장] 13평 연탄보일러 아파트에서 18년동안 살아오다 올해 28평짜리 전세 아파트로 이사하는 등 청렴한생활자세가 돋보이는 기자출신의 4선 의원. 79년 10·26사태 이후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공보비서로 정계에 입문,광주 민주화운동 때 옥고를 치른 그는민추협 대변인을 거쳐 13대 총선 때 처음 금배지를 단 뒤연거푸 4선을 기록했다. ▲황해 서흥(60) ▲서울대 법대 ▲중앙일보 기자 ▲민추협대변인 ▲국회 문광위원장 ▲총재 비서실장. [박종우 정책위의장] 서울시내 5개 구청장과 인천시장을 거친 지방자치 행정가 출신의 재선의원. 15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당시 여당 후보를 꺾은 뒤신한국당에 입당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 직후 현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소탈한 성품이나 자기 주장도 강하다는 평. ▲경기 김포(60) ▲서울대 법대 ▲서울시 마포·강남·동작·동대문·구로구청장,기획관리실장 ▲인천광역시장 ▲국민회의 지방자치위원장. [송석찬 지방자치위원장] 지난 95·98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회의 간판으로 충청지역에서 유일하게 구청장에 당선됐던초선의원. 대전 유성구청장 시절 지방자치단체의 학교 급식시설 지원근거를 마련했다. 지난해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을 위해자민련행을 결행할 정도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한충성심도 강하다. ▲대전(49) ▲유성농고 ▲명지대 법학과 ▲대전시 유성구청장 ▲민주당 원내부총무 ▲민주당 대전시지부장. [이낙연 대변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의 초선의원으로합리적이고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깔끔한 브리핑능력과 함께 한·일관계에도 일가견이 있다. 동아일보 기자시절, 93년부터 퇴직 때까지 ‘칼럼’을 쓴그는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문 등을작성,‘필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남 영광(49)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 ▲민주당 제1정조위원장. [심재권 기조위원장] 선비형 풍모에 침착한 언행으로 신망이 높다.서울상대 시절부터 유신반대 운동에 앞장서다 71년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퇴학을 당한뒤 73년에는유신반대시위 주동자로 10년간 수배를 받았다. 94년 10여년간 호주에서의 정치적 망명생활을 마치고 정계에 입문했다. ▲전북 삼례(55) ▲서울대 상대(제적) ▲호주 멜버른 모나시대 정치학 박사 ▲민주당 총재비서실장
  • 아프간 전장에서/ 난민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전장의땅 아프가니스탄.삶 자체는 힘겹지만 이곳 사람들은꿈을잃지 않고 있다. 다슈테칼라 동쪽 보이링가 마을에 사는 마푸르(10)는 눈먼 아버지의 길잡이가 돼 구걸로 생계를 이어간다.아버지시에르(60)는 10여년 전 시력을 잃었다.마푸르는 몸이 아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대신해 아버지와 함께 시장통에 나선다. 그래도 마푸르는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꿈이있기 때문이다.그는 “참고 기다리면 학교에 갈 수 있는날이 올 것”이라면서 “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꼭교수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호자바우딘의 시장 한켠 책을 파는 좌판.한 군인이 30여분째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그는 호자바우딘에서 30명의부하들을 통솔하는 소대장급 지휘관 헤모므딘(28)이다.판지쉬르가 고향인 그는 3년 전 22명의 친척이 탈레반군에처형되자 복수를 위해 군인이 됐다.그러나 그의 가장 큰관심사는 책을 읽는 것.300만 아프가니(약 40만원)의 월급에서 고향의 아내와 두 자녀에게 200만 아프가니를 보내고나머지는 모두 책을 사는데 쓴다는 그는 “참고 기다리면우리도 강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자바우딘 시장에서 양고기를 파는 아지 주라바이(62),올람 게술(47) 형제도 전쟁의 상처를 보듬으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이들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년 전.전에는호자가르에서 다른 10명의 형제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그러나 탈레반군이 2명의 동생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는 바람에 60명의 가족들을 이끌고 호자바우딘으로 피란길에 올랐다.8명의 동생들은 형제의 복수를 위해 군에 입대했다.주라바이는 “장남으로서 고향 호자가르로 돌아갈 때까지 가족들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면서 “입에 풀칠하기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동생과 함께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고향집에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그때까지 열심히 살 것”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자바우딘에서 카밥(양고기 꼬치구이)과 팔라우(볶음밥의 일종)를 파는 모하마드 아크람(35)의 소원은 아들 바하롬(8)을 의사로 키우는 것.소련 침공 때 군인으로 참전,카불에서 5년 가량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열심히 일해꼭 아들을의사로 키우고 싶다”면서 “아들이 공부를 잘해 피곤한 줄 모른다”고 자랑했다. ‘호자바우딘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책상과 전등이 없고,창문에유리가 없어 비가 들이치는 교실이지만 600여명의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날마다 1시간 45분의 산길을 걸어 학교에 오는 쇼이굴(19)은 “먼 길이지만 좋아하는 다리어와 화학공부를 할 생각을 하면 힘들지 않다”면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호자바우딘(아프간 북부) 전영우 이영표특파원anselmus@
  • [만나고 싶었습니다] 일명 ‘이동광복회’주인공 정진한·이재윤씨씨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의 권익신장과 위상제고에 미력이나마 보탠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국내 독립유공자 사회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주변에서 ‘이동 광복회’로 불리는 ‘짝꿍’이 있다.주인공은 정진한(鄭鎭漢·78)씨와 이재윤(李載允·73)씨.두 사람모두 독립유공자 후손이다.두 사람은 지난 87년 구 서대문형무소(현 독립공원)보존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후 ‘바늘과 실’처럼 함께 활동해 왔다. 두 사람은 그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오랜 숙원사업 해결에 유능한 ‘해결사’ 역할을 했다.94년에 전몰군경 원호사업 위주로 만들어진 국가유공자법에서 독립유공자를 따로 떼내 별도로 ‘독립유공자예우법’을 제정하는 일을 비롯,생존 독립유공자 예우금(품위유지비) 신설,독립유공자 후손 특례입학 및 전화세·TV수신료 면제,의료보호 확대 등 10여 건에 달하는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들의 권익확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서대문형무소 보존운동을 하면서 국회의원들과 쌓은 인연이 아까워 이를 독립유공자 사회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활용하기로 했지요.그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요즘도 두 사람은 여전히 바쁘다.해방후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연금혜택이 손자 대까지 연장되도록 규정 개정,매국의 대가로 축적한 친일파들의 재산환수 등을 골자로 한 ‘민족정통성회복 특별법’의 제정,‘국군의 날’을 현행 10월 1일에서 광복군 창건일(9월 17일)로 변경 등의 현안해결을 위해국회의원,당국자,학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14년째 ‘돈이안되는 일’을 해온 두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유공자 사회의 박수와 ‘빚’이었다.두 사람 모두 살던 집까지 경매로 날리고 이제 거리로 나앉을 처지다. 정씨의 조부(鄭寅琥)는 3·1의거 직후 구국단을 조직,단장으로 활동하다 6년여 옥고를 치렀으며,이씨의 부친(李定烈)은 상해 임시정부에 거액의 재산을 군자금으로 바친 독립인사로 각각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 ‘의병전쟁과 서대문형무소’ 학술행사

    서울 서대문구청은 2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3주년을맞아 ‘의병전쟁과 서대문형무소’를 주제로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현재 독립공원으로 불리는 구 서대문형무소에서 많은 항일애국지사 및 독재저항 민주화인사들이 옥고를 치렀다. 이날 독립공원내 지하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성수 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운강 이강년 의병장과 서대문형무소’,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한말 의병장 이인영과 서대문형무소’,그리고 이현희 성신여대 교수는 ‘허위의 의병투쟁과 서대문형무소’ 등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순국한 애국선열들의 항일투쟁 활동을 각각 발표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김호일 중앙대 교수,정제우 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정영희 인천시립대 교수 등이 참가했다.이날 행사에는 순국선열유족회 회원,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운현기자
  •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 별세

    국회부의장과 민정당 대표를 지낸 윤길중(尹吉重)씨가 11일오후 9시 3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6세. 윤 전 부의장은 일본대 법과에 재학중이던 지난 38년 22세의 나이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후 일제 때 강진·무안군수를 지냈으며,국민대 초대학장에 이어 2대 민의원 선거 때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5대 민의원,8·11·12·13대에 당선됐으며 국회부의장,민정당 중앙집행위원,대표위원,상임고문과 헌정회 원로의장 등을 역임했다. 진보당 등 혁신계 활동으로 옥고를 치른 적도 있으며,조봉암선생 추모사업회장으로도 일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애(金永愛·80)씨와 장남 석인(石仁)차남 성주(聖柱) 장녀 숙자(淑子) 차녀 송자(松子)씨 등 2남 2녀.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으며,발인은 15일 오전 6시 서대문구 연희1동 연희성당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 [민선2기 3년 단체장에 듣는다] 이유택 송파구청장

    지금까지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송파구의 위상은 언제나 앞자리였다.자족적 형태를 갖춘 쾌적한 도시여건이그렇고,창의성이 돋보이는 앞선 행정이 그랬다. 그런 송파구에 역동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올림픽로와 석촌호 주변의 관광명소화’와 ‘1차량 1주차장 확보사업’이 추진되는가 하면 ‘골목할아버지’ 제도와 청소년 예절교육,경로당 어른들에게 점심드리기 등 선진복지를 지향하는 시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유택(李裕澤) 구청장은 이런 일련의 변화를 “전통 미풍양속에 뿌리를 둔 깨끗하고 편안한 생활터전 가꾸기”라고 설명한다.물리적 발전을 단순하게 추구하기보다 발전의바탕에 우리의 전통가치관을 깔아 ‘색깔과 성격이 뚜렷한 송파’를 일구겠다는 것이다. 송파구는 최근 ‘올림픽로 및 석촌호 주변 관광명소화’사업계획을 확정했다.‘88 서울올림픽’의 무대였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올림픽공원에 이르는 5.5㎞와 석촌호 주변을 국제적인 문화·관광명소로 꾸민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포함된 46개 단위사업에는 23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이중 33개 사업은 내년 월드컵대회 이전에 마무리할 예정으로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림픽로 상징조형물은 설계공모에 들어갔으며 석촌호 명소화사업은 이미 실시설계를 시작했다. 앞서 지역내 상업지역을 확대하고 가락시장 등 부적격시설의 외곽 이전과 거여·마천·풍납·장지동 지역의 체계적인 개발계획 등의 구상을 밝힌 이 구청장은 “지나치게베드타운화하는 등 주거 중심으로 편제된 도시기능에 상업·근린시설 등 역동적 기능을 더해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가꾸려는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골목할아버지 제도는 마을의 어른으로 대소사를 관장하던 옛날의 ‘호랑이 할아버지’처럼 퇴역한 노인들을 지정,주민 계도와 청소는 물론 도로나 보안등 파손 등 동네의주민 불편사항을 챙기도록 하기 위해 구청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제도다. 지금까지 아파트단지를 제외한 일반 주택지에 380명이 골목할아버지로 위촉돼 주민들도 이들의 활약에 흡족해 하고있다. 각 동별로 1,000면씩 모두 1만9,000면의 주차장을 확보하기로 하고펼친 ‘1차량 1주차장 확보사업’도 눈길을 끄는 시책. 갈수록 늘어나는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사유지세금감면 등을 내세워 불과 1년3개월만에 목표보다 6,000면이 많은 2만5,000면의 주차장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밖에 자녀들의 맞벌이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점심을 거르는 노인들을 위해 관내 전 경로당에서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도록 지원,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는가하면 풍납동 경단연립 보상문제 등 인화성 높은 집단민원을 해결해 주민들의 시름을 덜기도 했다. 이 구청장은 “구정 슬로건인 ‘누구나 살고 싶은 송파’를 가꾸기 위해 취임 2년째인 올해도 최선을 다해 구정을이끌고 있다”며 “주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송파를 서울의 새 중심으로 일구겠다”고 다짐했다. ●이 구청장 집안 이야기. 가문의 뼈대를 두고 말한다면 이유택 송파구청장도 할 말이 많다. 증조부인 이삼현(李參鉉)은 3.1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옥고까지 치른 독립유공자.부친인 이희원(李羲元)은 도산서원 원장을 역임한 유학자였다. 그는 이런증조부와 선친의 훈육이 “호랑이보다 무서웠다”고 기억한다.말이 쉬워 ‘훈육’이지 언행에 조그마한빈틈만 보여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가풍이었다는 것. 이 구청장은 사범대를 마친 뒤 일선 학교에서 교육자의길을 걸었다.지난 66년부터 6년여를 동대문여중과 청량중등에서 교직생활을 한 것. 이런 가풍과 교직경험은 공직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골목길 호랑이할아버지 제도나 경로당 점심드리기,경로효친사상을 가르치는 청소년 예절교육관 등이 그 예라는 설명이다. 그는 “아무리 문명이 진보해도 정신적 뿌리가 박약하면사상누각”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충효나 노인공경 등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된다”고 새삼 강조했다. “송파구청장 선거에서 패한 뒤 2년동안 체험한 야인 생활이 ‘공직’과 ‘민생’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는이 구청장은 “공직자로서 끝까지 초심을 지켜 모든 구민이 공감하고 동참하는 구정을 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심재억기자 jeshim@
  • ‘9월 독립운동가’ 심훈 선생

    9월 독립운동가로 ‘상록수’의 작가 심훈(沈熏·본명 大燮) 선생이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출생한 선생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망명,베이징에서이회영(李會榮) 선생을 만나 신학문을 수학했다.24년 순종황제가 승하하자 돈화문 앞에서 ‘통곡 속에서’라는 시를 ‘시대일보’에 발표했다. 31년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 선생은 33년 신문에 ‘영원의미소’,‘직녀성’을 집필하고,농촌 계몽운동을 위한 장편소설 ‘상록수’를 통해 민족항일운동을 일깨웠다.36년 장티푸스로 3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정부는 지난해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기자커뮤니티 엿보기/ 누가 통일 저해세력인가

    '생각은 자유다!'사상의 자유를 표현한 독일 속담입니다.언론과 사상의 자유,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바입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상의 자유가 없었던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사상' 때문에 감옥에 가고,죽고,옥고를 치렀습니까? 그러나 요즘엔 '사상' 때문에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우파는 우익의 주장을 하고,좌파는 좌파의 논리를 펼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저는 다소 어지럽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주장이나 논리를 펼 수 있는 시대가 과거보다는 훨씬 발전한 시대라고믿습니다. 물론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싸움을 하는양상도 있지만, 한쪽이 완전히 눌려 '감정적인 논쟁'마저힘든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러 평양을 방문했던남쪽 대표단의 행적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문제는 문제인데….그 핵심은 뭘까요?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내에 있는 김일성 밀랍상 앞에서 수십 명의참가자들이 큰절을 올리고,몇몇은 엎드려서 크게 울먹였다”“일부 인사들은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내용의 '한별을 우러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큰 충격을 받을만한 내용들이긴 합니다.그러나 저는 강정구 교수가 정말'만경대정신'을 흠모한다고 해도 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어쨌든 사상은 자유입니다.또 누군가 '한별을 우러르건,두별을 우러르건' 개의치 않습니다.'그들이 김일성장군'동상 앞에서 울건 웃건 내 생활이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그들의 자유입니다.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출하건,표정으로 나타내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우리 국민들을 당혹하게 하는 행동을 했던 방북단 일부의 행동은 실수든,돌출 행동이든,사려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자신들의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통일 운동을 그만둬야 합니다.그런 분들은 '반통일세력'은 아니라고 하더라도,적어도'통일저해세력'입니다. 통일을 위해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신념을 실천해 왔는데 어떻게 보수우익과 같은 비난을 받아야 하냐고요? 사회학자 베버가 창안한 개념 가운데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인간들의 '의도된,합리적인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의도'가 어찌됐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오히려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물론 남쪽에서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려는 생각은없었겠지요.그러나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국민들에게남북 교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 않습니까.물론 일부 언론이 이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해서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경향은 있습니다.그러나 방북단일부의 행동은 분명한 사실(fact)입니다. 북한에서도 이런 상황을 유도하려고 계획한 집단이 있다면 그들도 역시 통일 저해세력입니다.자신들의 행위가 ‘인민'들의 어려움을 덜어 주려는 남쪽 ‘동포'들의 ‘더운 피'를 식혔다면 반성해야 합니다. 통일은 물질적 기반과 함께,정신적 준비도 필요합니다.극좌나 극우는 얼마되지 않습니다.목소리는 크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대다수 국민들은 이산가족들이 반세기만에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방북단 일부의 어이없는 행동에 분노합니다.그리고 결국 통일을 이뤄갈 사람들은 ‘많은 국민들,평범한 사람들'입니다.현실에 발을디디지 않은 관념적 과격성은 통일운동을 후퇴시킵니다.자신들의 노선이 과연 통일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지 성찰해야 합니다.일부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각은 자유지만,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전영우 사회팀 기자
  • 이총재 일문일답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싱가포르 방문 및 시국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어려운시기에 영수회담은 필요하다”고 밝혔다.그는 “경제와 민생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대통령을만날 용의가 있다”는 원칙적 입장과 함께 여권의 태도를지켜본뒤 영수회담을 최종 수용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영수회담에 대한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입장 변화는 없다.처음 제의가 왔을 때도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했다. 다만 여당의 제의가 어려움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위한 것이고,이번 회담에서조차 성과가 없다면 여야 모두국민에게 죄짓는 것이다.(민주당 안동선 최고위원) 개인의말 가지고 언급하지 않겠다.중요한 것은 신뢰의 문제다. ■여야 모두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국정조사를 할 생각이없는 것 아닌가. 아니다.반드시 해야 한다.여당은 세무조사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를 놓고 다시 국정조사를 하자는 것인데,그럴 거면 뭐하러 하나.언론탄압 여부에 대한 진실을가리자는 게 우리 주장이다. ■방북단 파문을 어떻게 보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좌경 친북세력을 보호하면서 이 사태를 비판하는 국민과 야당에게 거꾸로 색깔론을 뒤집어 씌우려 하거나 말장난으로 적당히 넘어가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 ■부친의 친일행각 주장에 대한 느낌은. 가족에 대한 허위음해에 많이 당했다.분노를 넘어 슬프다.부친은 청렴강직한분으로 소문났다. 해방 이후 빨갱이로 몰려 검사 신분으로옥고까지 치렀으나 나중에 복직했다. ■언론사주 구속은 법원의 영장 발부로 가능했는데,판사출신으로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나. 법원은 검찰의 제시자료를 근거로 판단했을 텐데,문제는 검찰이 수사단계서 구속을 원칙으로 했다는 점이다.설령 모호한 점이 있더라도 언론탄압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불구속했어야 했다.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사안별로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지금현안이 많다. 옳다고 생각하면 공조하는 게 바람직하다.공동정권은 너무나 많은 폐해를 낳았다.인사만 봐도 그렇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대망론’은 어떻게 보나. 누구나대망을 가질 수 있지 않나.(웃음) 그분은 경륜이 크신 분아닌가.다른 생각은 없다. 이지운기자 jj@
  • 향토사학자 추경화씨 “숨겨진 애국지사 찾아내 뿌듯”

    지난 15일 광복5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 포상자 111명 가운데는 이상수(李尙銖·애국장)선생·장학순(張學順·애족장)여사 등 2명이 포함돼 있었다.이상수 선생은 유명국 의병부대의 중군장 출신으로,1908년전후 경남 산청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12년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순국한 의병장이며,장학순 여사는 1919년 3·1의거 당시 경남 남해 지방의 만세시위에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들이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포상을 받게된 데는 지역 향토사학자의 숨은 공로가 있다.주인공은 경남 진주에 살고 있는 추경화씨(秋慶和·50). 추씨는 경남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관련자료 부족으로 독립유공 포상을 받지못한 인사들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내 그동안 여러명이포상을 받도록 해왔다.이상수·장학순 선열 역시 그런사례다. 검정고시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추씨는 각종 자료수집·관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특히 독립운동사 분야에서는전문 연구자와 어깨를 겨룰만큼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자랑한다. 지난 95년에 펴낸‘항일투사 열전·1’은 부자·부부·형제 등 가문별 애국지사들의 면면을 꼼꼼히 엮어,애국선열 현창에 큰 기여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하동군의 의뢰를 받아‘하동지역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1929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활동했던 한 여성애국지사(생존)를 찾아내기도 했다.추씨는 “경남일대의 항일운동사는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향토의 자랑스런 역사를 힘닿는 데까지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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