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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친다 그날의 함성, 휘날린다 태극기

    외친다 그날의 함성, 휘날린다 태극기

    “대한 독립 만세!” 3·1절 98주년을 맞는 1일 그날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진다.서울 성북구는 김영배 구청장이 28일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입적한 성북구 심우장에서 2년 뒤 예정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지방행정협의회 양해각서 체결식을 했다고 밝혔다. 강원도 홍성군, 인제군, 고성군, 속초시, 서울 성북구, 서대문구 등 6개 지자체로 구성된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행정협의회’와 경기도 가평군, 서울 강북구, 충남 논산시, 강원도 양양 등 4개 지자체도 참여했다. 김 구청장은 이 자리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한 전국의 지방정부와 민간기관이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준비한다는 뜻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종로구는 3·1절 당일에 3·1운동의 함성이 거셌던 역사 현장에서 ‘만세의 날’ 거리 축제를 한다. 운동의 발상지인 인사동, 종로, 보신각 등지를 시민들이 함께 걸으며 만세 운동을 재현한다. 우선 남인사마당 야외무대에서 오전 10시부터 3·1절 기념 퍼포먼스와 민족대표 33인 소개, 독립선언서 낭독, 대한독립만세 삼창 등을 한다. 인사동에는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식당인 태화관 터가 남아 있다. 기념식 후에는 대형 태극기와 민족대표 33인으로 분한 참가자들을 앞세우고 당시 의상을 입은 청소년 자원봉사자 500여명이 손으로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한다. 종로 2가와 YMCA를 지나 보신각까지 600m를 행진한다. YMCA는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준비한 거점이고 종로3가 탑골공원은 3·1운동의 함성이 가장 먼저 나온 곳이다. 정오에 보신각에서 33회 타종 행사를 한다. 서대문구는 1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연극배우들이 일제에 저항하는 뜻을 담은 3·1 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를 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정문에서 독립관을 거쳐 독립문까지 400m 구간에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3·1 독립만세운동 행진을 한다. 김구,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의 대형 초상화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500여명의 이름을 쓴 현수막이 행렬에 동참한다. 강북구에서도 우이동 솔밭근린공원에서 3·1운동 발상지인 우이동 봉황각까지 2㎞가량 태극기 거리행진을 한다. 3·1운동 당시의 복장을 한 자원봉사 학생 800여명을 선두로 시민들이 ‘손 태극기’를 들고 참여한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서울시청 앞 서울도서관 정면 외벽 꿈새김판에 평화소녀상을 게시했다. 3·1절을 맞아 애국지사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자는 취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평화소녀상과 빈 의자 5개 그림이 있다. 그림 속 평화의 소녀상과 빈 의자는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6분의1인 39명만 생존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뒤흔들 3월 1일 ‘그날의 함성’

    서대문형무소 뒤흔들 3월 1일 ‘그날의 함성’

    독립선언서 낭독·만세 삼창 등 순국선열 저항 정신 되새겨3·1만세운동의 감격을 되살리는 행사가 순국선열의 흔적이 생생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다. 서울 서대문구는 제98주년 삼일절인 다음달 1일 오전 9시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가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개소한 이래 3·1만세운동 때 잡혀온 유관순 열사가 순국하는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은 곳이다. 특히 올해는 서울시가 이 일대를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히 뒤 처음 열리는 행사다. 독립운동 유적 클러스터는 서대문구 의회 자리에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문을 엮어 역사유적지로 조성하는 계획이다. 이날 행사 하이라이트인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퍼포먼스’는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린다. 역사관 관람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역사관 내 특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일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의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33명으로 구성된 서대문역사어린이합창단은 독립군가, 태극기, 삼일절노래를 부른다. 애국지사 후손과 어린이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민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한다. 이어 역사관 정문에서 독립관을 거쳐 독립문까지 약 400m 구간에서 3·1독립만세운동 행진이 펼쳐진다. 시민들은 현장에서 나눠주는 소형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 깃발과 대형 태극기를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한다. 김구, 유관순,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대형 초상화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500여명의 이름을 새긴 캘리그래피 현수막은 사물놀이패 장단과 함께 행렬을 이룬다. 거리 행진 후에는 대동놀이를 통해 선조들의 협동·단결 정신을 기억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되새기고,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 정체성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김선신 아나운서 결혼, SNS에 선물꾸러미 공개 “이런 선물 처음이야”

    김선신 아나운서 결혼, SNS에 선물꾸러미 공개 “이런 선물 처음이야”

    ‘야구 여신’ 김선신 아나운서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며 그녀의 SNS에도 눈길이 모인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지난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선물 처음이야. 최연길 위원이 고생하는 엠스플투나잇 스태프들을 위해 건넨 선물꾸러미. 쌍화탕. 경옥고환. 건강 챙기세요. 훈훈해”라는 글과 함께 선물 인증샷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셀카는 스시집이지”라는 글과 함께 셀카를 올렸다. 결혼을 앞두고 물오른 예비신부의 미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MBC스포츠플러스 측 관계자는 8일 “김선신 아나운서가 3월 중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선신 아나운서의 예비 남편은 방송사 관계자로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2011년 MBC스포츠플러스에 입사, ‘베이스볼 투나잇’, ‘엠스플투나잇’ 등을 진행하며 스포츠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인명진 ‘탈당 선언’ 비주류에 잔류 요청···“분당 이유 국민 납득 어려워”

    인명진 ‘탈당 선언’ 비주류에 잔류 요청···“분당 이유 국민 납득 어려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인명진(70) 목사가 집단 탈당을 선언한 비박계 의원들에게 잔류를 요청했다. 당의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직위를 맡게 된 만큼 보수 정당의 사상 첫 분열만은 막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23일 안 내정자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주류 의원들의) 탈당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원내대표 선거에 졌다. 비대위원장에 이 사람(유승민 의원을 지칭)을 안 받았다’는 것들 아니냐”면서 “(당이) 나뉘면 안 된다. 같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 내정자는 “그런 건(이유는) 보수 정당을 분열하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면서 “그 일 때문에 분열됐다고 하면, 모든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에 미래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택시를 타고 오는데, 새누리당 당사 간다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망한 당에 왜 가느냐’고 해서 ‘조문하러 간다“고 얘기했다”면서 “보수 정당도 어떤 때는 국민 사랑을 받다가 때론 잘못해서 국민에 매를 맞고 지탄받기도 한다. 정당 역사가 그런 것 아니냐. 새누리당은 지금 매를 맞는 때”라고 답했다. 인 내정자는 비박계 탈당파를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왜 못 만나느냐”면서 “나가려는 분이나 여기 남은 분이나 오랫동안 당을 같이 해왔고 이념, 정책에서 특별한 차이가 있지 않다. 뭐하러 나뉘어 딴살림하느냐”고 밝혔다. 비주류 의원들의 집단 탈당의 원인을 제공한 친박계 핵심들의 ‘2선 후퇴론’과 관련해 “본인들도 어떤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지 안다고 생각한다”면서 “본인들이 우리 새누리당을 위해, 나라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어떻게 책임지는 게 적당한 책임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서 지혜롭게 처신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 내정자는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인권·노동·민주화 운동에 앞장 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송 및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 비대위원장에 인명진…野 “유신독재시절 옥고치른 분이…”

    새누리 비대위원장에 인명진…野 “유신독재시절 옥고치른 분이…”

    23일 새누리당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에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 내정되자 일제히 유감의 뜻을 밝혔다. 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인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이 신당을 만들기 위해 탈당하는 상황에서 탄핵을 끝까지 반대했던 당의 비대위원장이 됐다”며 인 위원장의 행보를 비판했다. 이어 인 위원장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로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위해 ‘대통령 위법행위 위헌 확인 헌법소송 및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신청했던 점을 지적, “현재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인 위원장의 지난 발언을 문제 삼기도 했다. 금 대변인은 “지난 달 비대위원장 하마평에 올랐을 당시에는 ‘새누리당은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냐’라고 했다”면서 “새누리당 해체에 대한 지금의 입장도 설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이행자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인 위원장의 비대위원장직 수락은 유감”이라며 “인 위원장은 유신독재정권시절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인권운동,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오신 분이다. 명예로운 삶에 오점이 되지 않을까 안타까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77회 순국선열의 날 12명 포상

    오는 17일 제77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12명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들이 새로 포상을 받는다. 1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이번에 포상 대상으로 선정된 유공자는 건국훈장 5명(애국장1, 애족장4),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5명 등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7회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될 예정이다. 건국포장 대상자인 이응열 선생은 충무공의 14대 종손으로 1941년 서울에서 조선국자 주식회사 사무원으로 재직 중 동료 등에게 일제가 내세우는 내선일체론을 비판하고 조선독립을 역설하다 체포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10개월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장학선 선생은 1920년 음력 4월 평남 덕천군 태극면에서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해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받고 6년 이상의 옥고를 치렀다. 1949년 이래 지난해까지 독립유공자로서 포상을 받은 사람은 건국훈장 1만 654명, 건국포장 1178명, 대통령표창 2744명 등 총 1만 4576명이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부고] ‘항일 학생운동’ 정규섭옹 별세

    [부고] ‘항일 학생운동’ 정규섭옹 별세

    국내에서 항일 학생운동을 한 애국지사 정규섭 선생이 7일 오전 별세했다. 88세. 선생은 1943년 경남 진주공립중학교 재학 중 하익봉, 김상훈, 강필진 등과 독서 모임인 광명회(光明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광명회에서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일제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 방식을 도모했다. 이듬해 9월 선생은 진해비행장 건설공사를 위한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진주공립중학교 학생들과 천막 막사에서 공동숙식을 하며 온갖 중노동에 시달렸다. 광명회 회원들은 노역에 동원된 학생들에게 우리말 사용을 생활화할 것과 독립군의 활약상을 전파하는 활동을 하다가 같은 달 23일 일본헌병대에 체포됐다. 선생은 진해 헌병대에서 약 40일 동안 구금돼 체벌과 고문을 당했다. 1944년 11월 7명의 동지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형무소에 투옥돼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빈소는 진주 경상대학병원 장례식장 101호실이며 발인은 11일 오전 8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이다. (055)750-8651.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독립운동가 연병호 선생 기념 증평군에 항일역사공원 준공

    충북 증평 출신 독립운동가인 연병호(1894~1963) 선생을 기리는 항일역사공원이 31일 준공됐다. 충사업비 45억원이 투입된 이 공원은 도안면 석곡리 연병호 생가 일원에 3만여㎡ 규모로 조성됐다. 연 선생의 성장과정과 독립운동 등의 자료를 모아 놓은 전시실, 연 선생이 독립신문에 기고한 글을 응용한 조형물 등으로 꾸며졌다. 연 선생은 1894년 증평군 석곡리 555에서 출생했다. 3·1운동 직후 대한민국 청년외교단을 결성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의 연계활동을 위해 대한정의단군정사에 합류했다. 이어 1937년 친일파인 상해거류조선인 회장 저격사건으로 상하이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초대, 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홍성열 증평군수는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군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는 문화관광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평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부고] ‘광주 민주화 운동 대부’ 조비오 신부 선종

    [부고] ‘광주 민주화 운동 대부’ 조비오 신부 선종

    광주 시민사회 대표 원로 인사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오전 선종했다. 78세. 조 신부는 1938년 4월 1일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전남 나주·진도, 광주 계림동 등 성당의 주임신부, 광주·전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5·18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했다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하는 등 억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으며 통일과 민족 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최근 전신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고인은 23일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된다.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 대신 쌀 화환을 받아 농민과 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조비오 신부 타계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조비오 신부 타계

    광주 시민사회 대표 원로 인사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오전 선종했다. 향년 78. 조 신부는 1938년 4월 1일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전남 나주·진도, 광주 계림동 등 성당의 주임신부, 광주전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5·18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했다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하는 등 억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으며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최근 전신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고인은 오는 23일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된다.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 대신 쌀 화환을 받아 농민과 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조비오 몬시뇰 신부 췌장암으로 선종…“5·18 민주화운동 산 증인”

    조비오 몬시뇰 신부 췌장암으로 선종…“5·18 민주화운동 산 증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오전 3시 20분 췌장암으로 선종(善終)했다. 향년 78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해 부조리에 맞서다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잔학한 학살행위를 증언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으며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건강이 호전되지 않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퇴원해 광주로 돌아왔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분단문학의 큰 별’이 지다

    ‘분단문학의 큰 별’이 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 월남작가 ‘탈향’·‘판문점’ 등 작품 통해 전쟁·남북 분단의 아픔 다뤄 분단문학을 대표한 소설가 이호철씨가 별세했다. 84세.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중 최근 병세가 악화된 고인은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서 운명했다.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고인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압축된 필치와 자의식이 투영된 세련된 언어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작가다.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동원되어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1955년 문예지 ‘문학예술’을 통해 단편 ‘탈향’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약 60년간 장편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門(문)’, ‘그 겨울의 긴 계곡’, ‘재미있는 세상’, 중·단편 ‘퇴역 선임하사’, ‘무너지는 소리’, ‘큰 산’, ‘나상’, ‘판문점’, 연작 ‘남녘사람 북녁사람’ 등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에 천착했다. 고인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하다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얽혀,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3·1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한 고인의 작품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은 물론 독일,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등 유럽과 영미권으로도 번역, 출간돼 호평받았다. 특히 독일에 번역된 ‘남녘사람…’으로 2004년 독일 예나대학이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인 프리드리히 쉴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또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초청돼 낭독회를 열고 한국의 분단 현실을 널리 알렸다. 2011년에는 팔순을 기념해 고인을 따르는 문인, 예술인 등이 주축이 된 사단법인 ‘이호철 문학재단’이 발족했으며 최일남, 이어령, 신달자, 김승옥 등 동료 문인과 지인, 제자 등 87명의 글을 모은 기념문집 ‘큰산과 나’가 출간됐다. 유족으로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씨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1일 오전 5시. 장지는 광주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추석선물 특집] KGC인삼공사 ‘정관장’, 18일까지 10% 할인 ‘엄지척 홍삼’

    [추석선물 특집] KGC인삼공사 ‘정관장’, 18일까지 10% 할인 ‘엄지척 홍삼’

    명절 선물로 수요가 많은 건강기능식품인 홍삼은 올 추석에도 꾸준히 인기다. 명절을 앞두고 가격이 급등하는 한우나 과일과 달리 홍삼은 가격이 일정하고 배송 중 변질의 염려가 없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1위 홍삼 브랜드인 KGC인삼공사의 ‘정관장’이 올 추석에는 23종의 다양한 선물세트를 마련했다. 정관장은 시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팔리는 ‘홍삼톤골드’와 인기 선물제품인 ‘홍삼정옥고’, ‘황진단’ 등을 함께 담은 ‘윤택할-윤세트’, ‘홍삼톤마일드’와 ‘홍삼정옥고’를 함께 담은 ‘은율세트’를 누구에게나 선물하기 적합한 제품으로 추천했다. 유독 날씨가 더웠던 올여름 체력관리를 위해 인기상품이 된 ‘홍삼달임액’과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봉밀절편’을 담은 ‘평온할-온세트’도 올 추석 높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됐다. 정관장은 오는 18일까지 제품 구매 시 10%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주는 ‘올해 추석엔 엄지척’ 행사를 진행한다. 정관장 관계자는 “홍삼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면역력 개선, 피로회복, 기억력 개선, 혈행 개선, 항산화 기능 등 기능성을 공식 인정받은 건강기능식품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섭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부고] ‘민주화운동 산증인’ 박형규 목사 별세

    [부고] ‘민주화운동 산증인’ 박형규 목사 별세

    한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5시 30분 자택에서 별세했다. 94세. 1923년생인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 불렸다. 1959년 4월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공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며 목회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박 목사는 1973년 4월 이른바 ‘남산 부활절 사건’으로 구속됐다. 박 목사는 당시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배포하려다 실패한 뒤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됐다. 이어 1978년 2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새 민주헌법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3·1 민주선언’을 발표했다가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무려 6차례 옥고를 치렀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박 목사는 2014년 법원 재심 결과 무죄를 선고받으며 35년 만에 억울함을 벗었다. 저서로는 ‘해방의 길목에서’, ‘해방을 향한 순례’ 등이 있다. 유족으론 아들 종렬·종관씨, 딸 순자·경란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02)2072-2020.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의병장이 사재 털어 쌓은 산성… 항일 운동 성지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의병장이 사재 털어 쌓은 산성… 항일 운동 성지로

    경북 영양의 검산성(劍山城)은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생 출신의 의병장이 사재를 털어 쌓았기 때문이다. 검산성은 둘레가 500m 남짓에 불과하다. 남아 있는 성벽은 길이가 200m 정도이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뒤편 절벽 아래로 청계천이 흘러 그런대로 자연 해자의 역할을 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내륙의 궁벽한 곳에 의병 산성의 존재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뜻을 세운 사람의 의기(義氣)는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산성을 쌓은 사람은 벽산 김도현이다. 스스로 바다에 걸어들어가 자결하는 도해순국(蹈海殉國)으로 극치의 항일 정신을 실천한 인물이다. 검산성은 그가 태어난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의 마을 뒷산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는 16세기 후반 처음 지어졌다는 생가도 남아 있다. 몇 년 전까지 검산성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서 일대가 ‘벽산길’로 명명됐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도 ‘벽산생가’가 오르면서 이제는 초행길에도 크게 헤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벽산, 단발령 내려지자 검산성서 의병 일으켜 산성을 쌓은 시기에는 조금 혼란이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계기가 됐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게 시해된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계기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벽산은 왕조시대 세계관에 충실한 인물이었던 만큼 전국적인 농민의 봉기에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초축 시기와 관계없이 검산성은 이후 벽산이 주도한 항일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는다. 벽산은 1895년 8월 을미사변에 이어 11월 단발령이 내려지자 통문을 돌려 거병을 논의한다. 당시 지역 유생과 일가 권속으로 이루어진 영양 의병은 검산성에서 기치를 들었다고 한다. 벽산은 이듬해 2월 이들을 이끌고 봉화 청량산으로 들어간다. 벽산이 이끄는 영양 의병은 곧 경북 지역 7개 의병과 연합의진(聯合義陣)을 꾸리고 3월에는 상주의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는 이해 10월 15일 의병을 해산해 을미의병장 가운데 최장수의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도의와 학문의 지방인 영남으로서 태만하게 넘기고 한가롭게 지내다가 머리 깎는 화가 이른 날에야 거의(擧義)를 하였으니…” 하며 통탄하는 편지를 남겼다. 을미사변으로 일본의 야욕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머뭇거리다 단발령에 이르러서야 봉기한 것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벽산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이른바 을사5적의 처단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각국 공사관에 ‘포고서양각국문’(布告西洋各國文)을 보내 조선을 강제 병합하려는 일제의 횡포를 막는 데 힘써 달라고 호소한다. 이듬해 1월에는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 주변 각 고을에도 의병 궐기를 촉구한다. 하지만 1907년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다. ●영흥학교 설립도… 국권 빼앗기자 자결 결심 그는 이후 지역 인사들과 옛 영양관아의 객사를 수리해 영흥학교(英興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에 힘썼다. 하지만 1910년 일제가 병탄 조약으로 국권을 빼앗자 자결을 결심한다. 하지만 유학자에게 부모보다 먼저,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뜬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일 수 없었을 것이다. 병환 중이던 아버지가 1914년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자 그는 시를 지어 뜻을 밝혔다. ‘늦게야 죽으려니 묻힐 땅이 어디인가. 옛 나라의 남겨 둔 땅이 없구나.’ 벽산은 영양을 떠나 영해 울티(泣峙)를 넘고 산수암(汕水巖)에 이르어 미리 써 놓은 임절시(臨節詩), 곧 ‘죽음에 임하여 쓴 시’를 남기고 지팡이를 짚으며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1973년 그가 순국한 산수암에는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다. 해마다 벽산의 생일인 음력 7월 14일 ‘도해단 전례’가 이곳에서 열린다. 올해 벽산의 생일은 광복절 다음날인 8월 16일이다. dcsuh@seoul.co.kr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 동네] 은평 ‘진관사 태극기’ 나흘간 게양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우리 동네] 은평 ‘진관사 태극기’ 나흘간 게양

    독립운동가였던 백초월(白初月) 스님의 ‘진관사 태극기’가 광복 71주년을 맞아 은평구 대로에 다시 나부낀다. 서울 은평구는 올해 시작된 백초월 스님 선양사업의 일환이자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관내 사찰인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등록문화제 제458호)를 12일부터 나흘간 가로기로 게양한다고 10일 밝혔다. 관내 주요 가로 5곳(통일로, 은평로, 증산로, 연서로, 서오릉로)에 총 1360여기가 걸린다. 진관사 태극기는 백초월 스님이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하면서 사용하고 숨겨둔 것으로 추정되며 2009년 5월 진관사 칠성각 해체 및 보수공사 도중 발견됐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백초월 스님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고, 비밀단체 일심회를 결성하는 등 불교 교리로 독립의식을 고취했지만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1944년 6월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태극기는 변색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손상됐지만 대체로 양호하다. 현재 태극기와 비교하면 4괘 중 감·리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고 태극은 현재의 문양을 뒤집어 오른쪽으로 90도 틀어놓은 모습이다.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하다. 김우영 구청장은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은평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높일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新국토기행] 익산의 노을은 백제와 더불어 살아간다

    [新국토기행] 익산의 노을은 백제와 더불어 살아간다

    전북 익산시는 백제 왕도를 품은 역사·문화·관광도시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분기하는 교통·물류·유통 중심 도시로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북의 서북부 지역으로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과 마주 본다. 29개 읍·면·동으로 이뤄졌다. 도내 14개 시·군 가운데 전주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31만명)가 많다. 국내 유일의 국가식품클러스터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식품도시로 발돋움한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볼거리] ●미륵사지·왕궁리… 백제 왕도와 만날 시간 익산시에는 백제와 마한의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다. 어딜 가나 흔하게 과거가 현재에 오버랩된다. 국보 3개, 보물 8개, 다수의 사적이 분포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가장 유명하다.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 가람으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다.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로 발휘됐다. 신라의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 배치다.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뤘다. 사적 제150호인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은 1998년 9월 사적 제408호로 지정됐다. 면적은 21만 6862㎡에 이른다. 미륵사지와 함께 백제 최대 규모 유적으로 꼽힌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과 백제 후기 익산 천도설 등 역사적 가설이 뒷받침되는 유적이다. 이곳에는 국보 제289호인 왕궁리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국보 제153호인 사리장엄구 등을 전시하는 유적전시관이 2008년 개관했다. ●국내 유일 보석박물관… 눈 호강할 시간 왕궁면 호반로에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이다. 부지 14만 1990㎡,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 2403㎡ 규모다. 진귀한 보석 11만 8000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보석 꽃, 탄생석, 오봉산일월도 등 진귀한 보석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10년 9월 개관한 주얼팰리스에는 65개 매장이 들어서 시중보다 싼 값에 보석을 판매한다. 일본, 중국 등 해외 업체도 입점해 다양한 보석을 선보인다. 2011년 이후 매년 보석대축제를 개최한다. 보석박물관 옆에는 화석전시관과 공룡테마공원이 조성돼 가족단위 휴식공간으로도 인기를 끈다. ●이병기 생가… 고풍스러운 선비의 삶 엿볼 시간 여산면 가람1길 64-8에 자리잡은 전북 기념물 제6호다. 생가의 탱자나무는 전북 기념물 제112호다. 이병기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문학의 선구자다. 현대시조 중흥을 이룩한 시조시인이다. 별, 난초, 냉이꽃 등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다수 남겼다. 우리말과 얼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전북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진을 양성해다. 생가는 조선 후기 양반집 배치를 따랐다.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모정 등이 남아 있다. 모정 앞쪽에는 작은 연못 2개를 파 놓았다. 초가지붕이고 건물 자체는 큰 특징이 없지만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모정과 연못이 선비 집안의 조촐한 느낌을 준다. ●4대 종교 성지… 신과 대화할 시간 익산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를 상징하는 4대 종교 성지를 간직하고 있다. 숭림사(웅포면 백제로 495-57)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보광전은 보물 825호다. 청동은입문향로는 도 유형문화재 67호, 목조석가모니불좌상은 도 유형문화재 188호다. 나바위성당(①·망성면 나바위1길 146)은 국가사적 제318호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금강하구인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1897년 본당을 설립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신축공사를 시작해 1907년 완공했다. 프랑스의 프아넬 신부가 설계하고 중국 노동자가 건축했다. 붉은 벽돌의 서구식 건축양식에 한국식 기와지붕을 얹은 독특한 양식이다. 두동교회 구본당(성당면 두동길 17-1)은 전북 문화재 제179호다. 1923년 한옥 형태로 지은 교회다. 오른편에 예배를 알리는 데 쓰는 종탑이 있다. 기독교와 한국의 전통을 잘 살린 건축물이란 평가다. 건물 내부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 휘장이 처져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했다. 원불교 중앙총부(익산대로 501)는 1924년 9월 최초로 총부가 건립된 이후 개축과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등록문화재 제179호다. 소태산 박중빈이 원불교를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원불교의 역대 지도자들 유해를 봉안한 곳으로 원불교의 상징적 공간이다. 본원실, 공회당, 대각전 등 목조 건축물 8동과 소태산 대종사 탑, 비석 석조물 등이 있다. ●웅포관광지… 강 위 일몰에 반할 시간 웅포(②)는 바다가 아닌 강 위로 일몰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서해 낙조 5선 중 하나인 웅포 곰개나루에는 캠핑장이 있다. 금빛으로 물들이는 금강을 곁에 끼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은 일반캠핑장 58면, 오토캠핑장 6면을 갖췄다. 시원한 풍광을 좋아하는 캠퍼들이 즐겨 찾는다. 캠핑장 옆 수상레저클럽에서는 수상스키 등을 즐길 수 있다. 그 옆으로 난 자전거길을 달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좋다. 입점리 고분전시관, 숭림사, 함라산 둘레길 등 인근에 볼거리가 풍성하다. 캠핑장 옆 덕양정에서는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곰개나루는 포구의 지형이 마치 곰이 금강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물리쳤던 진포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매년 12월 31일에는 해넘이 축제가 열린다. 익산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고구마… 날씬이로 만들어줘요 고구마는 익산을 대표하는 농특산물이다. 익산의 고구마 재배는 1834년 전라관찰사였던 서유구가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대 ‘황등고구마’로 명성을 날렸다. 색깔이 붉고 목이 막힐 정도로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로 유명하다. 2000년대 다이어트 붐을 타고 ‘날씬이고구마’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2010년 익산의 농산물 대표 브랜드 ‘탑마루고구마’로 이름 붙여졌다. 삼기면, 황등면, 왕궁면, 팔봉동 등이 주생산지다. 2600여 농가가 750㏊에서 1만 965t의 고구마를 생산해 160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익산 고구마는 오염되지 않고 비옥한 황토밭에서 재배된다. 구릉지대로 토질, 기후, 강수량 등이 고구마 재배에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당도가 높고 칼륨과 인, 비타민C가 풍부하다. 익산시가 기후와 토질에 맞는 우수 품종을 개발하고 무병묘, 유기질 비료, 땅 뒤집기 지원을 한다. 재배 단계별로 엄격한 품질관리를 하고 하품은 출하를 금지한다. 최근에는 밤고구마와 물고구마의 장점만 가진 신품종을 재배해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마약밥… 마의 모든 맛을 보여드려요 신동 마요리 전문점 ‘본향’은 ‘마’를 이용해 각종 음식(③)을 선보이는 한정식집이다. 200여가지의 창작요리를 선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전국 100대 음식점’에 선정된 전국구 맛집이다. ‘2006 대한민국 우리 농산물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7년 국제음식박람회 향토요리경연대회’에서는 농림부장관상 금상을 받았다. 마 전문 음식점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모든 음식에 마가 들어간다. 익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마를 주재료로 한다. 마는 한방에서 위장장애, 소화불량, 당뇨예방에 좋은 약재로 쓰인다. 마즙, 마죽, 마샐러드, 마녹차전, 마튀김, 마조림, 마떡갈비 등은 기본이다. 잘게 채를 썬 마를 고명으로 얹은 오징어 먹물 잡채, 유부 안에 마와 두부를 다져 넣어 만든 마누라가 유명하다. 마와 연어, 다시마를 곁들여 먹는 마삼함, 마식혜, 각종 약재와 마를 담아 쪄낸 약밥이 절로 구미를 당기게 한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오방색 삼계탕이 인기다. ●고려당… 50년 전통의 만두 맛이 끝내줘요 중앙동 익산역 앞 골목길에 있는 50년 역사의 분식집이다. 대표 메뉴는 만두와 찐빵, 메밀국수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온 이후 손님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만두는 어른 주먹 크기의 옛날식 만두다. 피가 거칠고 두껍지만 자연 발효시켜 식감이 쫄깃하면서 부드럽다. 만두소는 말린 무가 주재료로 소화가 잘된다. 당면과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 있다. 꼬들꼬들한 식감과 담백한 뒷맛이 일품이다. 8개 1인분에 60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찐빵은 인공발효제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팥 앙금이 가득한 옛날 찐빵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한다. 메밀국수는 무즙 대신 땅콩가루를 뿌려 먹는다. 시원하면서 정갈한 맛을 자랑한다. ●황등비빔밥… 토렴할까요, 그냥 낼까요 황등면에는 유명한 비빔밥 식당 3곳이 있다. 2곳은 밥 위에 더운 선짓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는 토렴을 거치는 육회비빔밥집이고 1곳은 토렴을 하지 않는 식당이다. 토렴을 하면 밥이 질척해지면서 찰기가 생기고 양념이 스며들어 구수하면서 깊은맛을 낸다. 진미식당은 토렴을 거친 비빔밥 위에 황포묵과 파채, 김, 시금치 등 고명을 얹어 낸다. 간이 세지 않아 심심한 맛이나 질리지 않고 은근한 풍미를 자랑한다. 풍물시장 안에 있는 시장국밥은 밥과 콩나물을 함께 토렴한 뒤 시금치를 넣고 참기름 양념장과 비벼 먹는다. 특별한 고명은 없지만 파채와 함께 무쳐진 특유의 육회 맛과 돼지비계에서 나오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한일식당은 토렴을 하지 않은 비빔밥 위에 메밀묵과 당근, 호박, 콩나물 등 각종 계절 나물 고명을 얹는다. 알싸한 고추장 소스가 식감이 풍부한 나물과 어우러져 깔끔한 맛을 낸다. ●탑마루쌀… 전국 최고의 쌀로 밥 지어보세요 익산시 공동브랜드 탑마루쌀(골드라이스)은 전국 최고의 쌀로 유명하다. 2013년 전국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에서 금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쌀의 품위, 품종 순도, 식미 등 25개 항목 평가에서 모두 상위 평가를 받는다. 태릉선수촌에 납품돼 국가대표 쌀로 통한다. 농가들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생산, 수집, 가공, 포장 등 각종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고품질을 유지한다. 익산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 별세

    [부고]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 별세

    일제에 강제 징집된 상황에서도 항일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전상엽 선생이 지난 5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선생은 1943년 평양 대동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1월 일본군 ‘조선인 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도’의 이름 아래 평양사단 내 42부대로 강제 징병됐다. 평양사단은 그해 7월, 훈련병 과정을 마치고 42부대를 중심으로 집단항쟁을 계획했다. 선생은 김완룡, 최정수, 김윤영, 박성화 등과 모의해 8월부터 동지 포섭 등의 항쟁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평양사단 내 각 부대 학병들은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했고, 선생은 학병 항쟁 조직의 작전참모로 활약했다. 평양사단 병영폭파 등을 계획했지만, 폭약과 탄약 입수가 어렵게 되자 부대를 탈출해 만주 접경지대 등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때를 기다려 평양사단을 폭파하기로 했다. 그는 1944년 11월로 날을 택해 거사를 준비하던 중 발각돼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감시하던 일본 헌병을 때려눕히고 탈옥했지만 2개월 만에 체포됐다. 1945년 6월 징역 8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등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2남 3녀가 있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빈소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층 특실. (02)2258-5940.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최남선·이광수 문학상/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최남선·이광수 문학상/박홍환 논설위원

    육당(六堂) 최남선과 춘원(春園) 이광수. 동시대의 또 다른 걸출한 인물 벽초(碧初) 홍명희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던 한국 근대 문학사의 양대 거두다. 두 사람 모두 문인이면서 사상가였고, 문화운동가인 동시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씻을 수 없는 친일의 오점도 함께 남겼다. 한국의 현대 시는 각 7행씩 6연으로 구성된 육당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1917년 벽두부터 6개월간 매일신보에 연재한 춘원의 장편소설 ‘무정’은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로 문단사에 기록돼 있다. 10대 청소년기 일본 유학 시절부터 교류한 육당과 춘원은 ‘소년회’ 활동과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로 꼽히는 ‘소년’ 창간 등을 통해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각성을 위한 신문화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이 창간한 ‘소년’ ‘청춘’ 등은 민중 계몽의 도구이자 문학 발전의 토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독자들은 육당의 논문과 춘원의 글을 통해 시대정신을 깨우쳤다. 육당과 춘원은 독립운동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3·1독립선언서를 대표 집필한 육당은 2년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일본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춘원은 곧바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춘원은 독립신문을 창간해 사장 겸 편집국장, 주필로서 임정의 선전활동을 담당했다. 역사가 여기까지였다면 두 사람에 대한 인물평은 긍정 일변도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육당과 춘원은 긴 일제 암흑기를 견디지 못하고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운동가보다는 학자이기를 원했던 육당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 유포를 위해 설립한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으로 참여했는가 하면 각종 신문 등에 내선일체 등 친일 칼럼을 기고했다. 임정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춘원은 ‘민족개조론’을 통해 식민지 통치에 타협적인 입장을 내보이더니 이름까지 가야마 미쓰로로 바꿔 버렸다. 육당과 춘원은 태평양전쟁 시기에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1943년 11월 24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 모인 1000여명의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두 사람은 황국(皇國)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육당과 춘원이 친일 행각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한국문인협회는 “친일 행각과 문학적 성과는 별개”라며 내년부터 최남선·이광수 문학상을 시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문인들은 “친일 문학상을 만드냐”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적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도 조만간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문학사의 ‘문제적 인물’인 육당과 춘원이 또다시 문단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보훈처, 北 김일성 주석 ‘외삼촌’에게 ‘건국훈장’ 수여 논란

    보훈처, 北 김일성 주석 ‘외삼촌’에게 ‘건국훈장’ 수여 논란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의 외삼촌으로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예우받고 있는 강진석이 국가보훈처의 추천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부실 검증’ 의혹을 제기했으나 보훈처는 “강진석의 공적내용이 합당하고, 광복 전 사망해 북한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7일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2012년 광복 67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강진석은 김일성의 큰외삼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훈장은 국가보훈처의 추천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수여했다. 당시 보훈처장은 박승춘 처장이다. 건국훈장 중 4등급에 해당하는 애국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기를 공고히 함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된다. 강진석에게 훈장이 수여된 사유는 “평남 평양의 청년회와 백산무사단 제 2부 외무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로 돼 있다. 강진석이 3.1운동 직후 백산무사단(‘백산’은 백두산의 줄임말)의 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당시 일본 경찰의 체포 기록과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 등을 통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 문제는 보훈처가 훈장 수여를 위한 공적심사 과정에서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는 포상 대상자에게 흠결은 없는지, 훈격은 적절한지 등을 심사하는 기구로, 후보자들의 친일 행적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과의 관련 여부 등도 검증해야 한다.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다하더라도 이후에 친일로 변절하지 않았거나 북한 정권 수립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진석은 북한 내에서 김일성 3대를 포함해 ‘선생님’ 칭호가 붙여진 5명 가운데 한 명이다. 북한에서는 ‘최고 존엄’의 표현을 ‘선생’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스타파>는 “더 심각한 문제는 보훈처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도 잘못을 바로잡기 보다는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기준 보훈처의 공식적인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전체 포상은 318명으로 이 중 애국장은 50명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재 보훈처 홈페이지에는 2012년도 전체 포상 인원이 317명, 그리고 애국장은 49명으로 수정돼 있다. 강진석이 통계에서 빠진 것이다. 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강진석 관련 정보가 일제히 사라진 것도 지난해 3월 이후다. 보훈처는 이때까지만 해도 훈장을 전달하기 위해 강진석의 후손을 찾고 있었지만 지금은 훈장 미전수자 명단에서도 강진석을 삭제한 상태다. <뉴스타파>는 “박 처장은 2011년 2월 취임 후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 위원 50명 중 23명을 한꺼번에 교체해 물의를 일으켰다”며 “이는 선례가 없던 일로 부실 심사 가능성은 물론, 뉴라이트나 친정부 인물을 심사위원회에 포함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며 부실심사의 책임이 박 처장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간 정부가 북한 정권 참여자는 물론 최고 권력자의 친인척에게 서훈한 전례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강진석을 훈장 수훈자에 포함시킨 것은 검증 부실로 인한 ‘사고’로 추정된다”면서 “박 처장이 취임 직후인 2012년 초 정치적 의도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위원들을 대폭 물갈이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보훈처는 “2012년에 강진석이 추서 받은 것은 맞고, 지난해 ‘어떻게 김일성의 외삼촌에게 서훈할 수 있느냐’는 민원이 들어와 확인한 결과 김일성 외삼촌이 맞았다”면서 “그래서 재심했는데 당사자가 광복 전 사망해 북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고, 공적 내용이 포상 기준에 합당하다는 결론이나와 서훈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료관 통계 등에 빠져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재심 기간에는 일단 통계에서 빠지는데 결론이 나온 후 업데이트가 안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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