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오한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자립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한 표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절정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 수정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01
  • [김영만칼럼] 고령사회, 歸農과 아버지의 위엄

    [김영만칼럼] 고령사회, 歸農과 아버지의 위엄

    나라가 빨리 늙어 야단이다. 대통령이 주관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구성이 추진되고, 충남 서천군은 발 빠르게 ‘노인공동농장’계획을 발표했다. 노인 150가구를 농장에 입주시켜 하루 4시간 근로에, 월 20만원을 주겠다 한다. 요양원·찜질방·병원을 둬 노인·농촌 문제를 같이 푸는 구상이다. 실업이나 노인문제를 농촌에서 풀려는 시도는 전에도 더러 있었다. 외환위기 때 일었던 실업자들의 귀농바람이 많은 예중의 하나다. 귀농바람은 그러나, 이들이 얼마뒤 다시 탈농촌해 농업은 여전히 수익모델이 아님을 확인하는데 그쳤다.1990년 삼양식품 대관령목장의 노인목부 실패사례도 동경속의 농촌과 실제 생활이 다름을 보여줬다. 당시 50∼65세 부부 10쌍의 공모에 대기업중역·고위공직자·교사부부 등 500쌍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주택과 식사, 월 70만원의 임금을 주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두달새 모두 목장을 떠났다 한다. 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들은 우울하다.21년 뒤에는 경제인구 한명에 노인 한명씩이 딸린다. 가장 우울한 일은 ‘30∼40년을 은퇴자로 살아야 한다.’는 예고다. 이러니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60세 이후를 ‘두번째 인생’으로 부른다. 여류 심리학자 게일 쉬히는 남자의 제 1직장 은퇴와 함께 오는 50대를 ‘갱년기’로 분류, 제 2직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세대 이상을 은퇴자로만 산다면,‘인류진화사상 가장 심오한 변화’라는 장수(長壽)도 도시에선 축복 아닌 재앙이다. 도시는 은퇴자가 아닌 현역의 공간이다. 공원과 노인정, 무임승차권에서 늙은 아버지들이 존엄할 방법을 찾기는 난해하다.‘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일자리는 줄어들 것’(제러미 리프킨)이므로 도시에 살고자 해도 답이 안 나온다. 이런 때 문민정부의 농촌개발계획인 ‘돌아오는 농촌’을 생각한다. 도시의 돈과 사람을 농촌으로 U턴시켜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10여년 전엔 생뚱맞았지만, 여러 통계는 이 컨셉트가 두번째 인생 문제를 풀 효과적인 대책중의 하나임을 역설한다. 현재 농촌의 농업경영주중 23%는 일흔이 넘었다.60대는 36.2%. 농산물의 절반도 환갑을 넘은 이들이 만들었다. 한세대 앞서 고령화된 농촌의 통계속에 고령사회 해결을 위한 역설(逆說)의 키워드가 있는 셈이다. 이 통계의 묘미는 농촌이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경영주로 활동하는 유일공간이란 점이다. 팔순에도 농사 짓고, 오래 건강하게 사는 보너스도 있다. 한부부가 네댓 마지기로 생활하며, 약간의 노후자금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수백만명을 수용할 휴경지도 농부를 기다리고 있다. 또 있다. 최근 경남의 한 마을에서는 일흔한살 동갑끼리 이장선거에서 경합했다. 낙선자는 후년의 선거를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다. 농촌에서 일반화된 이런 현상이 고령화가 낳은 그림자만은 아니다. 노인세대가 생산자로서만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현장이다.65세이상을 노인으로 본 것은 1891년 독일 비스마르크의 ‘노령연금법’이다. 평균수명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되던 때다. 인간백세시대의 오늘에 ‘일흔한살 이장’은 인간진화 사례로 축복할 일이다. 1960년대 후반이후 한국은 20년 넘게 대규모 이농의 시대였다. 농촌청년들이 공장으로 가고, 도시로 유학을 간 농촌 아이들도 그곳에 머물렀다. 어느날, 조기퇴출을 말하는 사오정세대가 된 45세어름에서 60 초반까지가 바로 이들이다. 농촌경험을 가진 이들부터 귀향하면 어떤가. 생활인으로, 또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지키고 미래세대의 짐을 더는 방책이 거기 있음이다. 서천군은 대관령의 실패도 눈여겨봐야 한다. 성공하는 귀농 만들기는 사실 서천군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몫이지 않을까 싶다. 논설실장 sangchon@seoul.co.kr
  • 뮤지컬 ‘헤드윅’ 제작발표회

    뮤지컬 ‘헤드윅’ 제작발표회

    새달 12일부터 대학로 라이브극장을 뜨겁게 달굴 뮤지컬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록가수의 이야기. 음악이 생명인 작품의 특성에 맞춰 14일 오후 7시 홍대 앞 라이브클럽 롤링홀에서 이색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주인공 ‘헤드윅’ 역에 송용진, 조승우, 김다현, 오만석 등 네 명의 매력적인 배우가 캐스팅돼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터라 이날 공연장의 열기는 웬만한 록콘서트장을 뛰어넘을 정도. 취재진과 뮤지컬 팬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네 명의 주인공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헤드윅’을 연기해냈다. 불이 꺼지고 고막을 찢을 듯한 기타 소리가 튀어 나왔다. 현란한 조명에 눈이 부신 틈을 타 등장한 사람은 송용진. 로커 출신답게 하드록 느낌이 강한 ‘헤드윅’의 오프닝곡 ‘테어 미 다운(Tear Me Down)’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몸짓도 예사롭지 않다. 격렬하게 흔들다가도 흐릿한 눈빛을 한 채 한없이 흐느적거리고 야릇한 행동과 표정도 서슴지 않는다. 두 번째 주자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조승우. 그의 출연분 표가 일찌감치 동난 상황에서 그가 과연 트랜스젠더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어둠 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조용히 무대 앞으로 다가 선다. 그의 노래는 가장 변화무쌍한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절정을 향해 서서히 끓어 오르는 록발라드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 이중성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딱 알맞는 곡이었다.“내 얼굴엔 메이크업/카세트 테이프 노래/가발로 마무리하면 어느새 난 미소 짓는 미인대회 여왕님”. 애교스럽게 노래하며 살짝 짓는 미소는 이날 만큼은 더없이 퇴폐적이다. 격렬한 사운드와 리듬이 분출하자 무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더니만 급기야 객석으로 내려 앉는다. 골이 흔들릴 정도로 한바탕 춤을 춰대자 뒤 편에 자리한 팬들은 자지러진다. 만약 일반 관객이 객석에 앉아 있었다면 그는 아마 조용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으리라. 기자들의 다소 썰렁한 반응에 던지는 콧소리.“너무 조용하시다∼. 오케이 에브리바디?” 이날 네 명의 주인공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트렌스젠더 분위기를 발산하려고 애썼고 조승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승우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김다현은 이날 가장 중성적인 매력을 뽐낸 주인공. 워낙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다 목소리도 세 명에 비해 하이톤이라 유리(?)했다.“즐거우세요?정말 즐거우세요?어깨를 들썩거릴 준비 됐나요?들어갑시다∼.” 노래에 앞서 교태를 부리는 듯한 말투와 미소는 그가 다음에 보여줄 퍼포먼스의 예고편이었다.‘슈가 대디(Sugar Daddy)’는 제목처럼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로큰롤. 흥겨우면서도 끈적거리게 달라 붙는 멜로디에 맞춰 엉덩이를 쓸어올리거나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의 노래가 끝난 뒤 여성팬들이 숨넘어갈 듯 “어떻게∼어떻게∼”를 연발할 만하다. 이날의 스타를 뽑으라면 단연 오만석.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그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가 담긴 ‘오리진 오브 러브(Origin Of Love)’를 불렀는데 이렇다할 제스처 없이 강렬한 눈빛만으로 승부했다. 조승우보다 더 큰 갈채와 환호를 받아서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네 명의 남자가 한 무대에 서서 ‘앵그리 인치(Angry Inch)’를 부르는 장면. 모노 드라마인 이 뮤지컬에서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확실한 볼거리였다. 공연은 6월26일까지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펼쳐진다.(02)3485-874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오만석 다른 캐릭터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역할이라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핏 속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축구하는 거 좋아하는데 허벅지가 더 두꺼워질까봐 못 가고 있다.(웃음) 김다현 음악이 충격적이었다.‘Origin Of Love’ 같은 곡들은 듣는 순간 삶 자체를 허무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조승우 ‘헤드윅’ DVD를 조기 예매해서 사볼 정도로 좋아했다. 내가 받은 충격과 감동을 연기로 꼭 표현해 보고 싶었다. 연습에 들어간 뒤 말투가 느린데 더 느려졌고 행동도 연약해지는 거 같다. 배우에게 없던 성격까지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송용진 ‘헤드윅’을 100번도 더 봤다. 작품을 본 순간부터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떠들고 다녔다. 연기력 부족을 걱정하는데 ‘그리스’를 1년하면서 연기에 대한 감잡았다. 연기력을 높이기 위해 트랜스젠더 클럽에 매주 간다.(웃음) ■ 연출가가 말하는 4인 4색 ‘헤드윅’은 누구나 욕심낼 만한 매력적인 역할이지만,1시간 40분 동안 11곡의 노래를 부르고 혼자서 극을 끌고 가야하기에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한 역할이다.3개월 넘도록 나홀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초인에게만 가능한 일. 이런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관객들은 같지만 또 다른 ‘헤드윅’을 만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회를 갖게 됐다. 이지나 연출과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4인4색의 ‘헤드윅’을 들어보자. ●이지나 연출의 품평회 송용진은 록버전의 곡을 가장 잘 소화해낸다. 뮤지컬 ‘렌트’‘그리스’ 등의 작품을 통해 연기파로 변신하고 있다. 조승우는 얄밉다. 연출자가 왜 필요한가 하는 자괴감이 들게 한다. 나이 어린 사람 때문에 입을 턱턱 벌어지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김다현은 커밍아웃을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트랜스젠더적인 요소가 가장 많다. 송용진과 함께 요즘 트랜스젠더들을 살핀다는 미명 하에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를 뻔질나게 들락거린다.(웃음)성실도가 높다.오만석은 내가 연출한 첫 작품부터 함께 해온 배우다. 인간적·능력적으로 쌓아가는 힘에서 감동을 받는다. 나중에 가장 큰 감동을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생활의 지혜] 오한·두통 동반한 감기는

    오한과 두통을 동반한 감기에는 배추뿌리차가 좋다. 배추 뿌리를 깨끗이 씻어 생강과 흑설탕을 넣고 차를 끓여 물 마시듯 하면 된다. 또 생강즙 한컵에 술을 한 스푼 넣고 달여서 공복에 마시면 효과있다.
  • [녹색공간] 부족함과 모자람의 축복/오한숙희 여성학자

    사고로 발을 다쳐 두 달 반 동안 깁스를 했었다. 깁스를 푸는 날, 골다공증이 심하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운전면허가 없는 덕에 다리 힘 하나만은 장담하는 바였는데 고작 두 달 반 사이에 골다공증이라니. 탓할 대상도 없이 야속하기만 했다.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굳은 재활의 결심을 했지만 굳어버린 근육은 움직일 때마다 심한 통증을 일으켜 발을 딛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내 하소연에 물리치료사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부지런히 두드리라면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다리를 안 쓰고 가만 놔두니까 영양공급이 오질 않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앉아서라도 마사지나 안마로 자극을 주세요. 그러면 혈액순환이 되면서 영양분이 오게 되지요.” 우리 몸은 냉정하게도 활동하지 않는 신체부위에는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학생때 생물시간에 외웠던 용불용설(안 쓰는 신체기관은 퇴화된다는 이론)의 정확함에 무릎을 칠 수밖에. 그러나 사고의 후유증은 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걷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다리근육도 많이 되돌아올 무렵 나타난 후유증은 자식농사의 이상기후였다. 입원으로 인한 어미의 부재기간이 아이에게는 해방공간이었다. 엄마에게 사후 승인을 받겠다는 단서를 달고 할머니 대행체제의 틈새를 횡행했다. 가불해 간 용돈은 요상스러운 옷들로 쌓여 있었고 고무줄이 되어버린 귀가 시간과 외출시간은 지저분한 방과 열혈 자유주의자의 불안한 눈빛을 만들어 냈다. 반성은커녕 자신의 개성이라고 합리화하며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사춘기적 저항정신 앞에서 나는 아연했다. 이건 골다공증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엄청난 공백이었다. 뼈의 공백은 다리를 쓸수록 메워지건만 자식의 공백은 노력할수록 오히려 커져만 갔다. 그 무렵 거실에서 키우던 나무 한 그루가 죽어나갔다. 공교롭게도 그 나무는 재작년에 아이의 생일 선물로 내가 사 준 것이었다. 제 키보다 더 큰 나무에 감탄하는 아이에게 나는 ‘이 나무가 곧 너라는 생각으로 잘 길러라.’라고 말했었다. 큰나무가 남긴 거실의 공백은 설 쇠고 마을온 이웃집 할머니의 눈에도 확연했다. 그렇잖아도 쓰린 가슴을 애써 달래던 어머니가 예의 자위적 발언을 펼치셨다.“오래전부터 비실비실하더라고. 갑자기 죽은 게 아니니까 수명이 고만큼인가 보다 받아들여야지.” “에이구, 물 많이 줬구먼. 처음 비실거릴 때 물을 딱 끊어서 바짝 말리지 그랬어.” “비실거리니까 물이 모자라 그런가 하고 또 줬지.” “모자라면 지들이 알아서 아껴 쓴다고. 넘칠 때가 문제야. 주체를 못하니까.” 이 말에 내 정신이 버쩍 들었다. 나무가 죽은 원인, 어쩐지 거기에 아이의 공백을 채우는 열쇠가 있을 것만 같다고 여겼던 마음에 ‘넘칠 때가 문제’라는 말이 꽂힌 것이다. 인생선배들의 말대로 사춘기의 시한부 시대정신일 뿐이라고 애써 믿으면서 그럴수록 아이에게 관대하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왔음을 명료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쓰지 않으면 퇴화되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생명의 자연이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며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 가능하면 몸을 쓰지 않도록 하는 편의주의 시대는 내 몸을 퇴화시키고, 맘만 먹으면 쏟아부을 수 있는 물질 풍요의 시대는 자식농사를 망친다. 자연을 착취하고 오염시키면서 만들어내는 몸의 안락과 물질적 풍요는 결국은 인간에게 재앙이 된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관계는 오히려 불편함과 부족함 속에서 나온다니, 생명체의 신비는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오한숙희 여성학자
  • 주말 극장가 ‘3색 사랑이야기’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부터 생각에 잠기게 하는 고급 멜로물까지. 이번 주말 다채로운 사랑이야기가 극장가를 점령했다.3색 멜로, 취향따라 골라보자. ●지적인 대사의 맛 일품 ‘우디 앨런의‘ “코미디엔 심오한 지혜가 담겼어.” 영화 속 우디 앨런의 대사가 바로 그의 영화를 설명한다. 유쾌한 상황과 대사 속에 심오한 삶의 의미들이 숨겨져 있는 것. 특히 이번 영화 ‘우디 앨런의 애니씽엘스’(Anything Else)는 삶을 관조하는 여유있는 태도가 녹아들어 있다. 친구의 애인인 아만다에게 첫 눈에 반한 젊은 극작가 제리. 각자의 연인과 헤어진 뒤 둘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이기적인 아만다 때문에 제리의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의 풍경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게 하는 힘을 지닌 영화다. 우디 앨런 특유의 ‘속사포’ 대사의 맛도 여전하다.‘아메리칸 파이’의 청춘스타 제이슨 빅스와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가 호흡을 맞췄다. ●엇갈리는 사랑의 깊은 감성 ‘클로저’ “안녕 낯선 사람” 신문 부고기사를 쓰는 댄(주드 로)은 출근길에 스트립 댄서 앨리스(내털리 포트만)를 보는 순간 그렇게 말한다. 낯선 사람에 대한 강렬한 유혹이 운명 같은 사랑을 뜻하는 걸까. 영화 ‘클로저’(Closer)는 우리가 흔히 운명이라고 믿는 ‘사랑’을 클로즈업해 그 속성을 속속들이 들춰낸다. 소설가로 데뷔한 댄은 책 표지를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와 또 한번 ‘낯선’ 설렘을 경험한다. 엇갈리는 큐피드의 화살 사이에서 질투하고 집착하고 상실감에 떠는 인간들의 세세한 감정결을 잘 살린 영화. 톱스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졸업’‘워킹걸’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 ●톡톡 튀는 로맨틱코미디 ‘B형 남자친구’ “이 남자 믿어도 될까요?” ‘B형 남자친구’(제작 시네마제니스)는 성격이 판이한 연인이 좌충우돌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로맨틱코미디물이다. 똑같은 휴대전화가 뒤바뀌면서 사랑이 시작된다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작은 일상 속에서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이 감각적이면서도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멋있게 망가지는 이동건과 귀여운 한지혜의 연기도 볼 만하다. 최석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천수이볜, 中에 대화재개 촉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과 타이완의 양안(兩岸)에 훈풍이 불고있다. 지난달 29일 역사적인 양안간 직항기 운행에 이어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이 2일 중국대륙을 향해 정치대화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천 총통은 이날 타이베이에서 거행된 타이완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해기회) 구전푸(辜振甫) 회장의 추도식장에서 이같이 밝혔다. 구 회장은 49년 공산정권 출범 이후 93년 4월 양안간 최초의 공식접촉으로 기록된 ‘왕다오한(王道涵)-구전푸 회담’의 장본인이다.. 때문에 천 총통은 정치재개와 함께 아직도 건재한 왕다오한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系協會) 회장을 타이완으로 공식 초청했다. 향후 중국·타이완의 가교역으로 지목한 것이다. 양안간 긴장 완화 분위기는 중국이 지난 1일 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차관급 고위인사를 구 회장의 조문사절로 보낸 것이 신호탄이다. oilman@seoul.co.kr
  •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화단의 원로 이상원(70)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가다. 보풀 한 올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극도의 세밀한 붓터치는 ‘사진 그 이상’이란 평을 듣는다.‘하이퍼 리얼리즘의 거장’ 이상원 화백이 리얼리즘 회화의 본고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트레차코프미술관 최초 한국인 작품전 개막일인 25일에는 발렌친 로디오노프 트레차코프미술관장, 김재섭 주 러시아대사, 현지 미술평론가 등 1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구 소련 시절 문화부 차관을 지낸 로디오노프 관장은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최근엔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 작가가 이 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여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 화백의 사실적인 작품은 근대 이후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러시아에서도 호소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월1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에는 ‘시간과 공간’‘막(膜)’‘동해인’‘연(緣)’‘영원의 초상’ 시리즈 가운데 대표작 55점이 나와 있다. 특히 헝클어진 백발에 논두렁처럼 깊게 팬 주름살이 인상적인 노인의 표정을 담은 작품 ‘동해인’에는 유난히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삶에 대한 은유로 가득한 이 작품에서 지나간 신산한 세월의 흔적을 읽어낸 것일까. 배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풍년’도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서구 리얼리즘 끝에 선 수묵의 날카로움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혹시 사진을 찍어 확대한 것 아니냐.”며 이 화백의 극사실주의적인 붓질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동양의 수묵과 서구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한 데 어우러져 그처럼 담백하고 강렬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화백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젊은 시절 영화간판과 인물 초상화를 그리다가 불혹의 나이에 순수미술의 길로 들어선 입지전적인 작가다. 그야말로 무사자통(無師自通)인 셈이지만 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공모전에 잇따라 입상하면서 순수화가로 인정받았다. ●산업사회 이후 전통에 대한 향수 표현해 이 화백의 작품세계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혹은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애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땅속 깊이 팬 타이어 자국이나 바닷가의 폐그물, 온갖 폐수와 곰팡이로 뒤덮인 수막, 너덜너덜해진 마대, 평범한 촌로나 어부의 고단한 삶…. 이런 것들은 모두 작가의 심오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찬가로 승화된다. 러시아 미술평론가 페트르 푸르도프스키는 “이상원은 어부나 해녀들의 이미지 묘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회화의 예술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어 항상 고향의 전통에 충실해 왔다.”면서 “그의 그림은 산업사회 혹은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밀려난 전통적인 세계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를 가장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화백은 지난 30여년의 화업을 통해 1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소품까지 포함해 800여점의 작품을 그린 데 비하면 대작 위주의 작업을 하는 이 화백은 단연 다작(多作)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았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고가에 작품을 사겠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그동안 작품을 팔아왔다면 이같은 전시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훗날 미술관을 지어 나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화백은 오는 4월쯤에는 자신의 작품활동 여정과 그림을 담은 자서전 ‘바람의 초상’(가제)도 펴낼 예정이다. 모스크바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레차코프미술관은 19세기 러시아의 부호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차코프 형제의 소장품으로부터 출발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에르미타주미술관, 러시언미술관, 푸슈킨미술관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1856년에 설립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1892년 모스크바 시의회에 기증된 뒤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state gallery)으로 거듭났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대 러시아 성화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종다양하다. 러시아 미술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있는 세계 미술의 보고다. 레핀, 말레비치, 칸딘스키, 샤갈 등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통의 작품과 아방가르드 작품 등 13만여점이 소장돼 있다.11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은 라브루쉰스키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20세기 현대 미술은 주로 크림스키에 위치한 트레차코프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레핀의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 페로프의 ‘도스토예프스키’, 수리코프의 ‘유형지로 끌려가는 마리조바 여인’ 등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 이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샤갈의 ‘유대인 극장-패널화’는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예술작품의 보존과 수복, 교육 등을 통해 명실공히 러시아 학문과 예술의 중심 역할을 다하고 있다.
  • [녹색공간] 새해에 부르는 ‘컵의 노래’/오한숙희 여성학자·방송인

    “그래, 우리도 이제부터는 절대 종이컵을 쓰지 맙시다.” 손에 잡히는 환경운동의 실천을 호기롭게 결의하긴 하였으나 종이컵을 쓰지 않기로 한 첫날부터, 우리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더니 사흘쯤 지나자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요. 컵을 씻을 곳도 너무 멀리 있고….” 화근(?)은 신년특집 프로그램에 있었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명사들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희망제안’을 듣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나무를 베어 만드는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개인컵을 가지고 다니자.’는 의견을 냈다. 헤아려 보니 우리가 한달에 쓰는 종이컵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방송시간 2시간 반 동안 초청연사가 평균 5명이니 일요일 쉬고 한달에 25일을 치면 무려 175개의 컵을 소비하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맡은 다음부터만 쳐도 500개가 넘는 종이컵을 잡아먹은 터였다. 공동 진행자와 나는 개인컵을 쓰지만 출연자들에게는 종이컵에 음료가 제공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내심 걸리더니 눈에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나도 별 생각없이 종이컵을 쓰는 날이 야금야금 늘기 시작했다. 한묶음이 되는 방송 원고와 자료뭉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아차 컵을 놓치는 수가 왕왕 있었다. 개인컵에 비하면 종이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탱탱한 새 것을 부담없이 꺼내 쓰고 손으로 구겨버리면 설거지가 끝이니 관리에 따른 스트레스 대신 원스톱으로 처리되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방송이 끝난 스튜디오에서 종이컵을 구겨 들고 나올 때면 오지여행가 한비야씨의 말이 떠올라 괴로웠다. “아마존 밀림에 사는 사람들 중에 요즘 실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나무그늘 아래 사는 데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무가 베어져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서 시력을 잃는 거예요. 특히 노인과 아이들은 면역성이 약해서 치명적이에요. 우리가 톡 뽑는 부드러운 화장지 한 장, 생각없이 쓰는 종이컵 하나가 그 사람들의 눈과 맞바꾸는 거라는 생각을 해봐요. 너무 무섭지 않아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명사의 제언을 계기로 합의를 본 다음날 나는 집에 있는 머그잔 다섯 개를 가져갔다. 그러자 우리 팀에서 누구 하나는 스튜디오로 그 컵들을 나르느라 손이 묶였다. 운반하는 컵의 개수를 줄인 날은 중간에 한번 씻으러 가야 했는데 수도가 있는 곳은 스튜디오의 반대편 끝에 있었다. 청취자 참여 전화를 받다가 컵을 씻으러 가야 하는 ‘환장할’ 순간에는 종이컵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작심삼일의 현대적 해석은 사흘마다 결심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렷다. 또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볼멘소리 다음의 작심삼일 앞에 빨주노초파 다섯가지 색깔로 다정하게 포개앉은 플라스틱 컵세트가 우리를 찾아왔다. 컵 오총사를 내미는 우리는 떳떳하다. “자, 원하는 색을 뽑으세요. 저흰 일회용 컵 안 쓰거든요. 방송부터 앞장을 서야지요.” 작심삼일 다섯 번을 넘긴 지금, 오색 컵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불편하지만 가야 할 길입니다. 가다보면 길이 듭니다.” 오한숙희 여성학자·방송인
  • 호주제 대체 새 신분등록 “1人1籍制 도입”

    호주제 대체 새 신분등록 “1人1籍制 도입”

    국회가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호적부를 대신할 새 신분등록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적사무를 관장하는 대법원은 2년여 동안 호적제도 개선소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국민 개개인이 다른 신분등록부를 갖는 ‘1인 1적(一人一籍)’(개인별 신분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민법 개정안을 제출한 법무부는 이날 ‘신분등록제도 개선위원회’를 발족, 가족부제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 정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개선위원회에는 행정자치부·여성부 등 관련 부처와 대법원, 변호사, 법무사, 법대교수 등이 참여한다. ●개개인이 다른 신분등록제 가져 새 신분등록제는 크게 개인별 신분등록제와 가족부제로 나뉜다. 대법원이 마련한 개인별 신분등록부에는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 등 기본 가족사항과 혼인·이혼·입양 등 본인의 신분변동 사항이 적혀 있다. 형제 자매나 배우자, 자녀의 신분변동 기록은 없다. 개인의 신분변동이 모두 나타난 증명서는 본인과 국가기관만이 뗄 수 있다. 가족이라 해도 본인의 허가가 없으면 발급이 불가능해 개인정보가 철저히 보호된다. 가공의 입양자 고일남(32)씨 가족을 예로 들어 보자. 고씨는 2002년 2월 아내 오여인(33)과 재혼했다. 자녀는 오숙, 오성, 오한림양이다. 친부모는 고장부씨와 이장녀씨다. 고일남씨의 개인별 신분등록에는 모든 가족관계가 적혀 있다. 또 고일남씨가 2000년 1월 박여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김이남·정미자씨에게 입양이 됐다가 입양이 취소됐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아내 오여인씨나 자녀 오숙, 오성, 오한림양이 자신의 신분등록 증명서를 통해 고일남씨의 신분변동 내역을 알 방법은 없다. 오여인씨의 신분등록등본에는 배우자 고일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본적만 나올 뿐 입양·이혼 등의 기록은 전혀 표시되지 않는다. 현행 호적제는 모든 가족의 신분변동 사항을 한꺼번에 공시하고 있다. 여성단체는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호주제 폐지란 입법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라고 지지한다. 반면 신분등록 단위가 개인으로 바뀌면서 가족의 해체가 심화되고 다른 가족의 신분변동 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워 상속 등 가족간 법률관계를 확정하기도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가족 단위로 신분등록 가족부제는 현행 호적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은 큰아들이라 해도 결혼하면 집안에서 나와 따로 가족부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또 기준인이 남성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가족부는 기준인, 배우자, 미혼자녀가 기본단위다. 부부 합의에 따라 한 배우자를 기준인으로 정하면 가족관계 및 신분변동 사항이 가족부에 기록된다. 고일남씨 가족은 남편 고씨를 기준인으로 정했다. 배우자 오여인과 자녀들이 가족으로 표시된다. 가족의 신분변동 사항에는 혼인·이혼·입양 등 고씨 기록이 적힌다. 고씨의 기록은 아내 오여인이나 자녀들이 가족부 증명서를 뗄 때도 고스란히 남는다. 가족단위로 신분이 등록되기 때문에 혼외 자녀에 대한 차별은 현행 호적부와 마찬가지다. 기준인의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생부, 생모의 이름이 가족부에 기재되지 못한다. 가족부제는 국민 정서에 맞고 가족간 신분관계를 파악하기 쉽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는다.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자 가족부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에 취약하고, 다양한 결손가족을 포함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새 제도 2007년쯤 도입 국회는 대법원과 법무부의 의견을 받아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2월에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국회는 호주제 폐지후 새 신분등록제도를 시행할 때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둔다. 그러나 대법원은 시스템을 정비하고, 현행 호적정보를 옮기는 데 2년6개월 정도 걸린다고 전망한다. 개인별 신분등록제든, 가족부제든 오는 2007년엔 새 신분등록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 호적부는 ‘제적부’로 전환, 대법원이 보관한다. ●가족관계 증명할 신분제도 필요 호적부가 사라지면 어떤 사람이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사는지를 나타내 주는 주민등록만 남아 가족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유럽 등은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 외에도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가족수첩을 만들고 있다. 일본도 가족 단위 가족부제를 통해 친족관계를 증명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生生 인터뷰] ‘천상병시인의 삶’ 다룬 연극 만드는 김청조·양정웅 母子

    [生生 인터뷰] ‘천상병시인의 삶’ 다룬 연극 만드는 김청조·양정웅 母子

    “어머닌 그 때 왜 그러셨어요?” “정말 그 땐 왜 그랬지? 간이 부었었나봐.” “물정을 몰랐었던 거죠. 하하하” 극작가인 어머니 김청조(60)와 연출가인 아들 양정웅(36)은 연극 때문에 아파트 한 채를 날려먹은 얘기를 하면서도 연신 배꼽을 잡는다. 14년 전 모자는 테드 모젤의 ‘즉흥극’이란 작품을 인사동 카페와 대학로 한마당예술극장 등에서 무료로 공연했다. 둘은 연극에 대한 열정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매일 밤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는 남의 소유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과거가 쓰라린 추억은 아니다. 당시 어머니는 연출을 했고 아들은 배우였다. 두 사람이 또 한번 의기투합한다.2월2일부터 5일까지 의정부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소풍’을 통해서다.‘소풍’은 기인으로 통하던 시인 천상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이번에는 어머니가 극본을 쓰고 아들이 연출을 맡았다. 김청조는 6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84년엔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다. 주로 TV 단막극을 집필해 이름을 알렸던 그녀는 ‘소풍’을 통해 희곡 작가로 데뷔한다. ●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2년 전 작고한 아버지(양문길)도 연극을 사랑한 소설가였다. 밥상머리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자양분도 함께 섭취한 양정웅은 현재 한국 연극계를 짊어질 차세대 연출가로 평가받고 있다. 극단 ‘여행자’ 대표인 그는 ‘연 카르마’‘한여름밤의 꿈’‘카르멘’ 등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고 ‘연 카르마’로 2003년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을 수상한 상복 많은 연출가다. 공식적으로 합숙한지 3주됐다는 이들 모자는 세상에서 가장 죽이 잘 맞지만 연극을 할 때만은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혹여 어머니의 입김이 아들에게 영향을 끼칠 거란 걱정은 붙들어 매두란다. 김=(연출가로는)엄청 무서워요. 다른 사람하고는 안 싸우는데 우린 옛날부터 엄청 싸웠던 거 같아. 그리고 연출가가 작가 대접을 너무 안해줘. 양=지구상에서 적어도 한 사람하고는 싸워야 되지 않겠어요? 작품 잘 나오기 위해서 긴장을 유지해야죠. 친구고 뭐고 없어요.(웃음) 대를 거쳐서 예술을 완성하는 게 어머니가 품은 삶의 목표. 그의 뜻에 따라 이렇듯 대견하게 자란 아들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아들의 작품 보러 갈때가 가장 화려한 외출” 김=아들의 작품을 보러 나설 때 세상에서 그보다 화려한 외출은 없어요. 무대가 역동적이라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아요. 어머니의 칭찬에 아들이 가만 있을쏘냐. 양=5년을 졸라서 작품을 받았어요. 저도 글을 쓰지만 삶이 묻어나오는 장면이나 대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이 느껴지죠. 가족을 다 떠나서 작가로서 존경스러워요. 김=얼마 전 대본을 수정하며 혼자 대사를 읊고 있었는데 얘가 옆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듣고 있었나봐요. 자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더니 “어, 그거 좋은데요? 다음은요?” 이러는 거예요. 어찌나 웃기면서도 멋있게 보이던지. 경제 관념이 투철하지 못한 모자는 이번에도 돈 안되는 작품을 골랐다며 한바탕 웃어 제쳤다. 김=오래 전부터 천 시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연극이 될 줄은 몰랐어요. 기인으로만 비쳐진 천 시인의 치열한 삶을 조명해보고 싶었어요. 작품을 쓰다보니 먼 발치에서만 봤던 그 분의 고뇌에 다가갈 수 있어 기뻤고요. ●‘항상 관객과 어떻게 호흡할까’ 고민 양=예전엔 시를 알아야 사랑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실용적인 것만 추구하는 시대에 시인 얘기를 꺼낸다는 게 부담스럽긴 해요. 관객과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시가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에피소드 별로 전개될 이 작품에서 천 시인의 유작은 대사로, 노래로 태어난다. 주인공은 김청조가 작품을 쓸 때부터 염두에 뒀던 연기파 배우 정규수가 맡았다. 김=심오한 재미를 줄거예요. 정말 우스운 장면이 많아요. 천시인이 아마 너무 웃겼기 때문에 기인이란 소리를 듣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지만 웃고 나면 반드시 눈물이 나죠. 울지 않고는 웃을 수 없어요. 채플린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에요. 양=아, 어떻게 연출하라고, 자꾸. “상상의 세계가 통한다.”는 이들 모자가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유시첸코, 티모셴코 총리지명 지지 야누코비치 “총리직 고수” 반발

    |키예프·도네츠크 연합|우크라이나 대선 결선 재투표에 패배한 뒤 아직 총리직에 머물고 있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여당 후보는 29일(현지시간) 현재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결코 총리직을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후보이자 대통령 당선자 빅토르 유시첸코의 지지자들에 의해 이날 총리실 출근을 저지당한 야누코비치는 “지난 26일 재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총리)자리를 내놓지도 않을 것”이라며 선거무효 소송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야누코비치는 의회의 불신임 결정으로 총리직이 사실상 박탈됐지만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는 포고령에 서명하지 않고 있어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유시첸코는 이날 자신을 승리로 이끈 ‘오렌지혁명’을 주도한 여성 정치인 율리아 티모셴코의 총리 지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티모셴코가 총리로 지명될 경우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회에 제출할 총리 후보 1호가 티모셴코라는 뜻은 아니며 최종 결정은 아직 협의 대상이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티모셴코는 일찌감치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돼 왔으나 야누코비치 지지세력이 극도로 혐오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는 29일 오후 야누코비치의 텃밭 동부 도네츠크를 방문,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민들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보냈지만 적대적 질문들이 이어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 오피니언 필진 바뀝니다

    새해부터 서울신문 오피니언면의 ‘CEO칼럼’ ‘토요일 아침에’ ‘녹색공간’ ‘문화마당’ ‘옴부즈맨 칼럼’ 등 5개 칼럼의 필진이 바뀝니다. ‘CEO칼럼’은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는 방안과 경영혁신의 생생한 현장체험을 다룹니다. 명상칼럼 ‘토요일 아침에’는 종교인이 들려주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환경칼럼 ‘녹색공간’은 삶과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문화마당’에서는 우리사회의 문화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각계인사가 참여하는 ‘옴부즈맨 칼럼’에서는 비판자의 시각에서 서울신문을 분석·평가하고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한 제안도 하게 됩니다. ●CEO 칼럼 기옥(금호폴리켐 사장) 김범수(NHN 대표) 이해익(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윤창번(하나로텔레콤 사장) ●토요일 아침에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박기호(천주교 서울서교동성당 신부) 하용조(온누리교회 담임목사) 권도갑(원불교 도봉교당 주임교무) ●녹색공간 이현주(목사) 조연환(산림청장) 오한숙희(여성학자) 안병옥(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이상헌(지속가능발전위원회 에너지산업팀장) ●문화마당 강주헌(전문번역가) 이보아(추계예술대 교수) 전경린(소설가) 진희숙(음악칼럼니스트) 문흥술(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옴부즈맨 칼럼 홍의(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염희진(성균관대신문사 전 편집장) 김춘식(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영재(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박상건(서울여대 겸임교수) 천원주(한국언론재단 출판팀 차장)
  • 美 북인권특사 후보 대부분 ‘매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북한 붕괴론자인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 EI) 선임연구원이 결국 북한인권특사 후보로 선정됐다. 북한인권 관련단체의 연합체인 ‘북한자유연합(NKFC)’은 22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6명의 북한인권특사 후보를 추천했다. 추천된 인사는 에버스타트 외에 제임스 릴리 전 주한·주중 대사,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 인권변호사 출신인 잭 렌들러 북한인권위원회 의장, 국방부 아·태지역 부국장을 지낸 척 다운스 정치평론가, 유대계 인권단체 사이먼 위젠털의 에이브러햄 쿠퍼 부대표 등이다. 숄티 회장은 이날 주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의 북한 송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뒤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부시 대통령이 대사 경력을 중시한다면 릴리 전 대사를, 국제 인권단체들과의 연대를 중시한다면 렌들러 회장을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숄티는 “내년 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가 의회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는 대로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자유연합과는 별도로 의회도 상원 외교위원회를 중심으로 북한인권특사 후보를 추천할 계획이다. 북한자유연합이 추천한 특사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외교관 출신인 릴리 전 대사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가 모두 대북 ‘강경론자’들이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이달 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기관지 위클리 스탠더드에 ‘북한의 독재자를 무너뜨려라’라는 글을 기고할 정도로 북한체제를 혐오한다. 한반도 전문가인 에버스타트는 북한 핵 문제의 6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제시한 적도 있다. 숄티가 운영하는 디펜스포럼은 황장엽씨의 방미를 성사시킨 기관이다. 숄티는 6명의 후보 가운데 한국인 운동가 및 탈북자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녀는 한국인 대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북한인권단체 ‘LiNK’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인권변호사회 사무총장 출신인 렌들러는 90년대부터 러시아를 배회하는 벌목공 출신 탈북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해 왔다. ‘북한의 협상전략’이라는 책을 출간한 척 다운스는 북한정권의 ‘벼랑 끝 전술’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으며, 유대교 랍비인 쿠퍼는 이달 초 “북한이 정치범을 독가스로 처형하고 대량살상무기 시험을 위한 생체실험에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dawn@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살인광 시대(EBS 오후 11시50분) ‘코미디의 왕’ 찰리 채플린이 프랑스의 유명한 연쇄살인마 이야기를 대공황 시대로 옮겨와 현대 자본주의 비판을 시도했다.1947년작. 당시 흉흉했던 매카시즘의 광풍에 휘말려 채플린이 1952년 미국에서 추방당하는 계기를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채플린 특유의 감상주의가 제거된, 명확하고 심오한 비관주의 코미디’라고 호평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채플린 영화 중 최초로 흥행에 실패했다. 은행원 베르두는 불황 탓에 30년이나 일해온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실업자가 된 베르두는 돈 많은 과부들과 결혼한 뒤 살해해 재산을 빼앗는 새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살해용 독약 처방을 알아내고, 실험을 위해 거리를 방황하는 젊은 여자를 집에 데려온다. 베르두는 그러나 오히려 그녀에게 감동해 돈을 줘서 돌려보내는 등 시행착오를 계속하는데….119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안녕!유에프오(KBS2 오후 11시15분) 버스 안에서 자신이 녹음한 가짜 방송을 트는 것이 낙인 버스 운전기사와 시각장애인의 사랑 이야기. 이범수 이은주 봉태규 출연. 김진민 감독의 2004년작. 선천성 시각장애인 경우는 밤마다 막차 버스를 타면서 ‘박상현과 뛰뛰빵빵’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런데 사실 ‘박상현과‘은 버스 운전기사 상현이 직접 녹음한 가짜 방송. 둘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지게 되지만 상현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정체를 계속 숨기게 된다.103분.
  • [녹색공간] 거북이 도배 명상/오한숙희 여성학자

    지은 지 2년이면 새집 축에 들련만 우리집은 벽에 곰팡이가 피고 바닥장판이 쭈글거리는 것이 몇십 년은 족히 산 낡은 집과 닮아 버렸다. 집들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한지를 바른 벽이 얼룩지는가 싶더니 곰팡이균의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 주는 현장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장판과 벽지를 조금 뜯어본 우리는 경악했다. 애초에 집을 지을 때 새집증후군을 우려하여 양옥으로 지으면서도 벽과 바닥의 마감을 시멘트가 아닌 황토로 해놓고 무척 흐뭇해 했는데 장판에는 화학 접착제를 사용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황토와 한지는 공기가 통해야 하는데 화학제가 발린 곳은 숨을 쉬지 못해 습기가 찼고 거기 물이 고이면서 곰팡이가 피어나게 된 것이었다. 집수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새로운 고민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의 의도를 헤아려 자연친화적으로 시공해줄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칠순의 어머니가 걷어붙이고 나서셨다. “얘, 예전에는 식구들끼리 집도 지었는데 방 서너개 도배 정도야 우리 손으로 못하겠니. 괜히 사람 사느라 애쓰고 돈 쓰고 할 것 없다.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안 해주면 더 속상할 수도 있고.” 솔직히 시간이 문제였다. 일요일 밥 한끼도 가족들이 다 모여 먹기 어려운 처지에 어느 세월에 이걸 끝낼 것인가. 젊은 것들이 머리만 굴리며 날짜를 보내고 있는 동안 늙은 어머니의 손은 냄새나고 축축한 종이들을 말끔히 벗겨냈다. 젊은 것들이 날 한번 잡아 싹 해치우자고 차일피일 하는 동안 어머니의 손은 거북이처럼 초배를 시작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집에 놀러 왔던 내 후배들이 담소중에도 쉬지 않는 어머니의 거북이 도배에 끌려들기 시작했다. 밀가루 풀을 쑤며 예전에는 이걸 밥처럼 간식처럼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나오고 손바닥으로 풀을 주물러 한지에 바르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예술치료의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풀먹은 한지를 조심조심 맞들고 가며 호흡을 맞추는 사이 서로를 깊이 느끼게 되고 협동의 아름다움도 연출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풀기를 대충 씻은 손에 따뜻한 차 한잔씩 들고 둘러 앉으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이구, 훤하네.” “다 마르면 더 이쁠거야.” 사람의 손길을 받아 변해가는 방의 모습을 품평하노라면 노동의 나른함과 뿌듯한 만족감이 함께 녹아 들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좋은 기분이라고들 했다. 거북이 도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서둘러 끝내자고 독려하는 사람도, 지쳤다고 그만 하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방을 도배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로 도배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뭐든 빨리, 속이야 어떻든 겉보기에 깔끔하게, 내 힘으로 하기보다 돈주고 해결하려는데 익숙해진 마음들이 어느 새 하나 둘 벗겨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일하는 도중 걸려온 휴대 전화에 대고 후배 하나가 소리친다. “이건 도배가 아니라 명상이야. 명상.” 오한숙희 여성학자
  • [녹색공간] 내 몸안의 환경도 중요/오한숙희 여성학자

    여자들이 밥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어머니가 남은 반찬 밀어주며 ‘이거 마저 먹어 치워라.’하는 소리이다. 내 친구 중의 하나는 그 말이 듣기 싫어 결혼을 했더니 시어머니는 그 보다 한술 더 떠서 ‘이거 마저 쓸어 먹어라.’하더라며 피할 수 없는 여자의 잔반처리 인생을 한탄했었다. 우리 세대는 딸들에게 절대로 ‘먹어 치우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있지만 다이어트 열풍 속에 사는 요즘의 딸들에게는 그런 말이야말로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매일 밥상에서는 뒀다먹기도 그렇고 버리기엔 양심에 걸리는 애매한 반찬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나니 그 앞에서 갈등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입에 털어넣는 것으로 갈등을 무마해 버리는 일이 주부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오늘 아침 우리집 밥상에서도 그런 풍경이 벌어졌다.“얘, 요거 한 숟가락이 안 들어가서 남겼냐?” 음식 버리면 당장 하늘에서 마른 벼락이 떨어지는 줄 아시는 70대의 우리 어머니.“할머니 진짜 못 먹겠어요, 그거 마저 먹으면 속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완강하게 잔반처리를 거부하는 10대의 딸아이. “어머니, 남겨 두세요. 나중에 먹게 하지요 뭐.” 중재에 나서는 40대의 나.“고거 한 숟갈 나중에 먹게 안 된다. 이리 다오.” 마침내 50년 이상 익숙해온 바대로 잔반처리를 자임하는 우리 어머니.“아, 할머니, 제가 나중에 먹을 게요.” 그릇을 들어 올려 할머니의 손길을 피하며 애원하는 딸아이. 이쯤되면 해결책은 하나뿐이다.“이러면 다 됐죠?” 한숟갈 남은 음식을 내 입에 털어 넣으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딸아이에게서는 고마워하는 시선을, 어머니에서는 어쩌냐고 걱정하는 눈길을 받는 내 기분은 샌드위치 심정이었지만 어쩐지 어머니에게로 섭섭함의 저울이 기우는 것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거스르지 못해서만이 아니다. 며칠전에도 어머니는 잔반처리 과식으로 속탈이 나셨고 더 전에는 맛이 가기 직전의 음식을 드시고 고생하신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어머니의 잔반처리 욕구는 소식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할 중년의 나로 하여금 술상무를 닮은 잔반상무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하였다는 원망이 드는 것이다. 요즘 젊은 며느리들은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어머니 이 음식 지금 버릴까요, 냉장고에 넣었다가 버릴까요.” 음식을 둘러싼 세대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우스갯소리 같은 현실이다. 어른들은 ‘요샛것들이 음식 귀한 줄 모른다.’고 하시고 젊은 축들은 ‘기성세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궁상스러움’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음식을 귀히 여기는 마음은 당연히 대물림해야 하지만 자신의 몸속을 잔반처리통쯤으로 여기는 정서는 단절되어야 한다. 이 둘의 절충점은 어디일까.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정정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은퇴 여교수 한 분은 늘 이런 말을 하신다.“음식을 남겨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내 몸의 환경문제도 중요해서요.” 여성들을 흔히 환경문제 해결의 주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쓰레기 청소의 주책임자라는 수준의 것이었다. 여성의 진정한 환경 주체성은 바로 자기 몸의 환경문제부터 관심 갖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오한숙희 여성학자
  •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대회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대회

    서울신문사와 국토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삼성물산(주) 건설부문과 국민은행이 협찬했으며,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지리교육학회가 후원한 제9회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대회에서 정두영(전북 이리 남창초등 6년)군이 개인부문상(국토연구원 원장상) 대상을 차지했다. 금상은 전시현(경북 포항 대흥초등 1)군과 김두하(서울 휘경초등 4)군에게 돌아갔으며, 은상은 최현아(인천 경인교대부설초등 2), 전대원(전남 목포 북교초등 2), 이종혁(충북 청주 증안초등 3), 김영명(경기 용인 양지초등 4) 어린이가 각각 받았다. 전국 196개 학교에서 2931편이 응모한 이번 대회에서 정군은 기행문 ‘국토대장정을 하며 본 두 세상’을 써내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군과 김군은 각각 ‘우리도 살고 싶어요’와 ‘멋진 여행지, 청계천’으로 금상을 받았다. 이밖에 동상 50명과 우수상 300명이 선정됐다. 단체부문상(서울신문 사장상)에서 대상은 경북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금상은 서울 휘경초등학교, 은상은 충주 중앙초등학교가 받았으며, 지도교사상(삼성물산(주) 건설부문 기관장상)은 대상에 김정호(포항제철동초등) 교사, 금상에 이현희(서울 휘경초등) 교사, 은상에 주대생(거제 계룡초등) 교사가 뽑혔다. 국토사랑 글짓기대회는 우리의 미래를 가꿔나갈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인 국토와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수상자 명단은 서울신문 26일자 30면과 국토연구원(www.krihs.re.kr) 홈페이지에 실렸다. 시상식은 31일 오전 11시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국토연구원 강당에서 열린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대상수상작 지난 여름방학에는 친구와 둘이서 청소년 자연탐험학교 주관으로 양양에서 서울까지 260㎞를 종단하는 14일간의 국토대장정을 다녀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 겁나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권유와 국토대장정이란 매력에 끌려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한 168명의 또래들은 주로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었고 나처럼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입소식을 마치고 처음 쳐본 텐트속에서 첫날밤을 맞이했다. 둘째 날부터 걷기 시작한 우리는 얘기도 나누면서 걸었지만 왠지 보통 걷는 것과는 달리 훨씬 힘들었다. 평소에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많이 걸어본 나도 기운이 쑥쑥 빠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아 조금밖에 먹지 않았던 밥도 날이 갈수록 잘 먹게 되었고, 텐트를 치는 기술도 나날이 늘어 빨리 치게 됐다. 변화라면 걸을 때 말이 없어진 것이다. 지치지 않으려면 힘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고 그냥 묵묵하게 걷다보니 생각하는 것도 많아졌다. 가족 생각도 나고, 별 생각이 다 났다. 내가 사는 곳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평야지대라서 교과서에서 배웠던 국토의 7할이 산지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여기서 실감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비록 아스팔트길이었지만 강원도 지방은 보이는 것이 산 아니면 계곡 천지였다. 힘들어하는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시원한 그늘을 가진 산과 풍부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은 우리가 서울에 입성하는 날까지 내내 따라다녔다. 책에서만 읽었던 ‘금수강산’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일정의 중간쯤에는 래프팅도 하며 짜릿함을 느끼며 찌는 듯한 무더위를 식히기도 하였다. 이렇게 시원하고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게 하는 것도 잘 가꾸어진 큰 산이 있기 때문이다. 산은 우리 몸속의 허파와 같고 계곡을 흐르는 풍부하고 깨끗한 물은 젖줄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산과 계곡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숨막히게 하고 목마르게 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그대로 보존하는데 힘 써야 한다. 자연을 잘 가꾸지 못한 결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 나중에는 인간들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만다. 텔레비전에서 본 어마어마하게 큰 산을 파헤쳐 황토 흙이 보일 때는 사람 몸에 난 징그러운 상처같았다. 그렇게 되면 그 곳에서 자라던 아름드리 나무들도 다 사라질 텐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수 십년도 넘게 자란 나무들을 베어내고 수 천년을 내려온 땅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는 개발은 두 번 세 번, 아니 여러번 생각해 본 뒤에 해야 할 일이다. 물이 부족하다고 무턱대고 댐을 건설하려는 것도, 수많은 농경지나 산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까지도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 국민들보다 물 소비량이 더 많아서 생긴 일이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물을 아껴 써서 댐 건설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표지판에 가끔씩 ‘서울’이 보이기 시작하자 계곡이 먼저 일찌감치 사라지고 산들은 점점 멀어져갔다. 서울에 들어오니 매캐한 공기부터가 우리를 불쾌하게 했고, 뿌연 하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과 들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걸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보이는 건 빌딩과 아파트뿐이었다. 이번 국토 대장정을 마치며 두 세상을 경험해 보았다. 제9회 전국 초등학생 국토사랑 글짓기대회 입상자 명단 ●개인상 대상 정두영(전북 이리 남창초등 6) 금상 전시현(경북 포항 대흥초등 1) 김두하(서울 휘경초등 4) 은상 최현아(인천 경인교대부설초등 2) 전대원(전남 목포 북교초등 2) 이종혁(충북 청주 증안초등3) 김영명(경기 용인 양지초등4) 동상 (50명) (서울)최명석 이정원 한유리 임경환 천지연(부산)김태현 (대구)정다은 이석현 우혜주 (인천)김민아 전다빈 (울산)최가은 (경기)최민정 홍순지 고승준 박진훈 황정윤 신지원 김하은 (강원)정유라 이지인 (충북)박민정 (충남)홍종훈 김은지 (전북)소 원 곽지영 강수경 채미화 이다빈 이현지 이건아 김맑은샘 (전남)주연우 김은혜 (경북)진재석 권소현 정다정 서우현 이진희 임진철 문혜영 강채량 오채은 정연진 배지윤 (경남)박수미 권수완 (제주)강우철 현지연 고미화 우수상(300명) (서울)조수연 김세림 진수현 전희상 정윤정 문현석 안혜리 김슬기 성 현 이경민 김효진 장윤하 최한솔 송해나 박용재 구본승 권혜란 윤석현 문준원 함해영 변규원 노민영 김진우 인은지 유소정 성의현 홍지혜 박수현 손경은 김수호 서재한 손일진 유혜원 윤 활 홍대근 이민형 김성빈 (부산)강윤지 장희정 박재영 윤지현 홍진희 황소희 조현지 이수민 이지영 (대구)우지훈 김종원 김지민 민승환 노재영 설지윤 인성규 박정은 한수민 이준욱 박인규 강태욱 박상빈 김하린 이준엽 김민지 이동근 조윤정 이연해 정난희 최규진 김수진 김형준 김동환 신혜원 (인천)류영채 조윤주 이현섭 배여리 김효진 (대전)김나은 유효림 이서연 권수진 윤덕진 주대환 박준환 조선화 (울산)황채은 안혜빈 이승희 (경기)조승원 허지은 박유진 문성원 박준철 추연우 서동섭 최호연 이건우 고성효 곽예은 김 빈 박준수 홍석채 김지민 박준범 임새람 김미지 황정민 이정원 이정주 박상미 이의재 김보경 김영은 윤선주 유지연 이승희 최유림 유지연 정재우 추현진 김은지 우혜승 이준호 김영훈 이성호 김선영 김나래 조건휘 전승미 안수현 김선우 이영현 배서연 김근우 김상우(강원) 손수빈 김서예 한수희 위수미 조은별 김예현 김준미 정다영 이승현 진한아 (충북) 윤현지 이주희 최지호 김민지 함윤수 안지영 임소영 우단비 이서영 변아라 송은선 김은환 홍수현 유지희 조은정 (충남)나예지 김수민 구희선 윤혜민 신배규 박정은 이가현 최경현 김영경 김진희 권서연 남소현 이정은 신예림 조수지 김민지 성채린 조수환 김희연 박누리 오솔미 김하정 이윤서 이은정 정한나 정선주 여범기 박은정 (전북)김성진 김영현 최인호 정승연 강예일 전다솜 문원영 박찬미 이지양 김세희 김채현 이상훈 김나영 류용준 최 빈 서수진 정병수 이유라 신은경 전태미 송수한 임소라 이새롬 최수정 김혜진 이에스더 김진호 한지혜 서현히 서연호 고해경 김아라 김다희 김빛나 (전남) 문준호 박안나 박준영 고예은 방수영 양시라 김소연 임은이 문혜림 위연욱 이창신 조은빛 주수민 이유린 김영우 김은진 임송이 최슬기 (경북)이승주 김지나 황현정 남영신 김정우 이혜림 최병진 홍윤영 김재혁 최나영 임민정 김성하 유현주 김명지 박제원 전유정 이호성 권희영 권민정 도호경 서지원 박미정 장지우 정수진 이동희 손성민 석효정 김소연 이누리 진재현 손다솔 유상록 정경선 장형수 박동호 이수진 신유섭 조민지 (경남) 정아현 박지민 우효은 이여명 이예영 장유정 손재영 이미진 이경영 김채린 전혜리 양화영 김종화 김정근 지민정 (제주)오한해 한희주 현수연 김미연 최지은 김홍유 강서연 김리선 ●단체상 대상 포항제철동초등학교(포항) 금상 휘경초등학교(서울) 은상 중앙초등학교(충주) ●지도교사상 대상 김정호(경북 포항제철동초등학교) 금상 이현희(서울 휘경초등학교) 은상 주대생(경남 거제 계룡초등학교)
  •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땅거미가 질 무렵, 낯선 마을에 들어서도 밥짓는 향기가 가득한 마을은 따스해 보인다. 거기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먹던 음식, 내 어머니의 솜씨보다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음식맛이라면 ‘남도’를 으뜸으로 치게 된다. 남도 중에서도 순천은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은 곳이다. 특히 이맘때 순천은 짱뚱어가 맛있는 철이다. 겨울잠을 자러 갯벌로 들어가기 전의 짱뚱어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맛도 좋고 영양도 만점이다. 가을에 떠나는 남도 별미여행, 일단 속을 헛헛하게 비웠다. 맛있는 음식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 자꾸 입에 가득 침이 고였다. ●순천만의 가을 나들이 아무리 짱뚱어가 손짓해도 해지는 순천만을 놓칠 수는 없는 일. 일단 대대포구로 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배를 타고 나간 순천만은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썰물에 드러난 광활한 바다의 속살, 갯벌과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수로, 군데군데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는 갈대와 보랏빛의 칠면초, 다가가면 푸다닥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는 이름모를 철새들의 군무,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빠알간 저녁놀까지 누구나 10대의 문학소년·소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왼쪽의 여수반도와 오른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여 드넓은 순수한 갯벌인 순천만에서 해안까지 펼쳐진 갈대군락이 무려 5.4㎞. 유기물이 풍부한 탓에 조개, 갯지렁이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다. 수로주변에 있던 갈대밭에서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갯벌에서 자리잡아 갈대군락이 이뤄졌다는데 이상하게도 갈대밭이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원형의 갈대밭은 마치 세포증식을 하듯 합쳐져 타원형에서 더 큰 원형으로 커져가고 있다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혼자 앉아 바다와 파도와 갈대와 철새들과 친구하며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가는 길 :서순천IC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순천시내와 청암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818번 지방도를 타면 순천만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대대포구는 이정표가 없어 지나치기 쉬우므로 대대마을에서 길을 반드시 확인할 것.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을 돌아보는 유람선이 운행중이다. 보통 6명 기준으로 3만원을 받는다. 대대포구에서 순천만을 따라 해안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30분이 소요된다. 대대포구 어촌계장(019-605-0511)에게 연락하면 된다. 바닷가에서 두어 시간 놀다 보니 배가 출출해져서 그만 짱뚱어를 맛보러 일어섰다. 짱뚱어 요리를 잘 한다는 해돋이 가든(061-742-8745)으로 갔다.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좋지만 친척들이 직접 잡아오는 짱뚱어를 쓰기 때문에 맛과 신선도가 최고다. 짱뚱어는 요즘 가격이 많이 올라 보통 마리당 2000원선이라고 한다. 구이는 잘 달군 프라이팬에 짱뚱어 애(내장)를 복아 기름을 만들어 굵은 소금과 함께 짱뚱어를 굽는다. 고소한 맛이 별미. 짱뚱어전골 또한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 호박과 시래기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한 후 살아있는 짱뚱어를 넣고 끓인 전골은 구수하다. 소화가 잘 되고 영양가도 풍부한다. 보통 4인 가족 기준으로 3만 5000원. ●낙안읍성의 음식축제 마침 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열리고 있는 낙안읍성으로 가봤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음식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낙안읍성 안에 설치된 천막에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장식된 음식들이 즐비하다. 연포탕, 생각촉김치, 붕장어회, 미역수제비, 돔배젓…. 듣도 보도 못한 남도의 음식들이 즐비하다. 또한 스님들의 발우에 정갈한 나물과 떡 등 선암사 사찰음식도 눈길을 끈다.‘눈’으로만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입’으로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난전에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을 사다 먹어봤다. 저절로 ‘역시 맛은 남도야!’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배를 채웠다가는 낙안 팔진미를 먹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낙안읍성은 전시를 위한 민속마을이 아닌 사람들이 그곳에서 먹고 자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짚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 사이로 빨간 감이 열린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해질녘이면 초가지붕 옆 굴뚝에서 모락모락 저녁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타리에 호박꽃, 지붕 위에 주렁주렁 커다란 박이 열리는 곳. 어린시절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둠이 짙게 깔릴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던 추억을 깨워주는 고향마을 같은 곳이다. 낙안읍성의 초가에서 하룻밤 묵으면 밤에는 온갖 풀벌레소리에, 새벽에는 성 안팎에서 주고받는 수탉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해뜰 무렵 높이 약 4m, 둘레 1.4㎞의 성벽을 산책하는 것도 운치있다. 성벽을 한바퀴 돌아보면 초가지붕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낙안읍성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논과 주렁주렁 빨갛게 익은 감과 어우러진 가을아침 풍경이 넉넉함을 준다. ●남도음식문화축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제11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남도 22개 시·군에서 우리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700여종의 음식과 송광사, 선암사 등 사찰음식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한솥밥나눔행사, 떡만들기, 홍탁 삼합 체험 등 다양한 참여 이벤트와 줄타기 공연, 짚물공예, 야외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곁들인다. 낙안읍성에 가면 주막 평상에 앉아 낙안 팔진미를 먹어 봐야 한다. 낙안팔미는 더덕무침과 조기, 표고버섯 무침, 녹두부침개, 도토리묵, 꼬막, 돼지고기, 게장 등 갖은 반찬에 남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반찬이 바뀐다.1인분 1만원. 동동주는 5000원. 찾아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종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송광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27번 국도를 타고 약 10㎞ 가면 된다.낙안온천(061-753-0035)이 차로 5분 거리에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유황과 게르마늄이 많이 함유된 국내 최고의 온천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5000원. ●조계산과 보리밥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산중에 정말 맛있는 보리밥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 찾아갔다. 조계산(884m)은 남동쪽에 태고종 고찰 선암사, 북서쪽에 조계종 송광사를 품고 있는 명산이다. 조계산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길로 해발 600고지에 문제(?)의 보리밥집이 있다고 한다. 선암사로 해서 보리밥집을 들러 점심을 먹고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 선암사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무지개모양의 다리가 나온다.‘야 멋지다’하는 생각에 다가가서 보니 보물 400호 승선교였다. 최근 보수공사를 끝내고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주문 앞에는 불교의 심오한 정신을 담고 있는 조그마한 연못인 삼인당. 천년고찰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선암사로 들어섰다. 삼층석탑, 푸른 하늘이 처마 끝에 걸려 있는 대웅전, 야생차밭 등 볼거리가 많다. 꼭 들러야 할 곳이 ‘해우소’다. 정호승 시인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노래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 해우소는 몸 속의 오물뿐 아니라 세속의 욕심과 번뇌까지 버리고 돌아가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하다. 보리밥을 먹기 위해 가야 하는 굴목이재 산행은 6.7㎞, 보통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선암사 들머리에서 ‘송광사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섰다.15분여를 걷자 길 왼쪽에 쭉쭉 뻗은 편백나무 휴양림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온갖 나무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냄새를 맡으며 가파른 경사길을 올랐다. 오래간만에 흙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른다. 계곡가에 앉아 땀을 식히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쉬엄쉬엄 올랐다. 배바위 정상까지가 약 1.5㎞인데 1시간이 더 걸렸다. 보리밥 먹으려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바위에서 내리막길로 15분쯤 가면 조계산 명물인 조계산보리밥집(061-754-3756)이 보인다.1인분에 5000원. 반찬을 담은 작은 접시가 커다란 쟁반에 가득하다. 변변한 밥상도 없다. 누구나가 평상 위에 앉아 쟁반에 놓인 채로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이 집의 맛이다. 돗나물, 참나물, 호박나물, 부추무침 등 갖은 나물들과 멸치젓, 구수한 시래깃국이 나온다. 참기름과 고추장이 담긴 큰 대접에 보리밥과 나물들을 넣고 썩썩 비벼서 한 입 가득 넣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인 동동주 한잔 들이켜보니 부러울 게 없다.“힘들여 올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동주, 야채파전, 도토리묵이 각각 5000원. 보리밥집에서 송광사 갈 때는 반드시 윗길 등산로로 가야 한다. 아래쪽 큰길은 장안마을, 깨금골로 빠지는데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쉽다. 여기서 송광사까지는 3.7㎞로 가득찬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내려가도 2시간이 못돼 도착한다. 계곡물소리, 잡목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걷기에 그만이다. 송광사 경내는 대숲과 편백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법정 스님이 오래 기거하셨다는 불일암도 들러 볼 만하다. 가는길은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주암나들목(IC)에서 빠지면 송광사, 승주나들목에서 나오면 선암사다. ●순천여행 팁 순천은 시티투어버스를 무료로 운행한다. 순천역에서 오전 9시30분과 10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순천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061)749-3328,www.sc.go.kr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시인 김남주는 글로 ‘지금’을 말한다.‘당신은 묻습니다/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투쟁과 그날 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에서) ‘김남주 평전’을 쓴 대구가톨릭대 강대석(철학과) 교수는 “시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가로서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 평했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사랑하고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시에서 적었다. 이처럼 사랑과 증오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지난 70∼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한 민중시인 김남주. 1994년 2월,48세로 사망(췌장암)하기까지 길지 않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는 470여편의 시를 남겼다. 감옥생활 9년3개월 동안 칫솔을 갈아 우유곽에 300여편의 시를 눌러냈다. 암울한 시절, 햇볕으로 나온 시들은 희망의 메시지로 퍼져나갔다. ●제도권이 싫다. ‘해남의 수재’이던 시인은 광주의 명문고교에 들어가지만 사회과학서적과 더 가까워졌다.1965년 2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이었다.“좋은 학교, 우수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상만 지켜야 되겠느냐.”며 시위 참가를 소리쳤지만 메아리로 끝났다. 번민하던 그는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같은 고향이자 해남의 2대 수재였던 평생 친구 이강(58)씨는 “시인은 마음씨가 선(善)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박석무(광주 5·18기념재단이사장) 선배가 남주한테 ‘물봉(호구)’이란 별명을 지어줬겠느냐.”고 웃었다.“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꺾지 않던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시인의 삶은 저항과 투쟁의 연속이었다.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3남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머슴살이로 중농을 이룬 부친으로서는 남주가 그의 분신이자 희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유달리 영어를 잘했던 그는 영국시인 바이런의 시를 암송하던 꿈 많은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때 광주 미문화원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원서를 훔쳐 읽었던 일화도 있다. 시인이 전남대 영문과를 택한 것도 외국의 진보적인 서적을 맘껏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학생활 내내 강의실에 나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밖으로만 돌았다. 강대석 교수는 “시인은 끝까지 지식인과 혁명가의 순결을 지키며 살았다.”고 그의 평전에 기록했다. ●나는 꿈꾼다. 고등학교 때 늘상 자취방에서 함께 뒹굴었던 이강씨는 “당시 광주 계림동에 헌 책방이 즐비했는데 책을 유달리 좋아했던 남주는 시간만 나면 이곳에 들러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엄청난 독서량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상적 토대로 자리매김된다. 이씨는 “당시 남주의 인식론은 아나키즘적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반미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모순의 근원을 미국에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지인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봤다. 허점을 보이지 않고 피해를 안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인은 늘 “글쓰는 사람들이 재주는 있지만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는 철학사상이 빈곤한 게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싹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학 졸업반이던 73년 3선개헌 반대운동의 불쏘시개가 된 지하신문 ‘함성’으로 이어졌다. 반공법 위반으로 첫 구속되는 계기다.75년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김남주를 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데뷔작인 ‘진혼가(1974년)’에서 ‘공포(고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라고 정의했다. 78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에 참여해 소식지인 ‘민중의 소리’를 제작해 돌렸다.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9년만인 88년 가석방된다. 이 해 연인이자 동지였던 박광숙(교사)씨와 가정(1남·현재 14살)을 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으로 5년가량 모처럼 창작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스스로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라던 시인이 대학시절,“그래도 얘기가 통하는 친구”라고 말했다는 이경순(전남대 영문과) 교수의 회고다.“그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스스로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늘 말했지요. 그의 빼어난 언어감각이나 해독 능력에 혀를 내둘렀어요.”지난 74년 이래 시인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던 염무웅(영남대·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교수는 “그가 살았던 때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고 읊어야 할 만큼 가혹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그 시대를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외친 김남주의 삶이 곧 시였고 투쟁”이라고 말했다. ●김남주를 알자. 시인의 생가에는 현재 동생인 덕종씨가 살고 있다. 전국에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남주의 실천적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 문화제를 열었고 출판계에서는 그의 평전과 시선집을 잇따라 펴냈다. 염 교수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시선집을 출간했다. 혁명가로서 뼈대를 갖추기 전에 써낸 소박한 시에서부터 옥중시, 현실의 고뇌를 담은 시 등 120편을 골라냈다. ‘민중시인 김남주 해남기념사업회’의 김경윤(해남공고 교사) 회장과 지역회원 80여명이 김남주 문학관 건립에 힘쓰고 있다.2000년 5월에는 광주시립 민속박물관 앞쪽에 시인의 시비도 세워졌다. 해남군도 내년부터 2년으로 잡고 11억원을 들여 생가 터에 전시관과 창작실, 소공원 등을 만든다. ■시인의 주요시집 ▲ 진혼가·잿더미(74년) ▲ 나의 칼 나의 피(87년) ▲ 조국은 하나다(88년) ▲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89년·옥중서한집) ▲ 사랑의 무기·솔직히 말하자(89년) ▲ 학살(90년) ▲ 사상의 거처(91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91년) ▲ 이 좋은 세상에·저 창살에 햇살이(92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녹색공간] 부담없는 ‘밥 먹구 가’/오한숙희 여성학자

    내 별명은 ‘밥 먹구 가’ 아줌마다. 집에 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밥 먹구 가.”라고 하기 때문이고 우리 집에 와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두고 살림하는 친구들은 꼭 자신들의 남편을 닮았다고 비난한다. “남자들이야 자기가 상 차릴 거 아니니까 뻑 하면 그런다지만 너는 왜 그러냐. 엄마나 언니를 믿고 그러는 모양인데 집에서 밥 한번 먹이는 게 보통 일인 줄 아니?제발 밖에서 해결해.” 나도 한때는 바깥밥을 선호했었다. 집에서 음식을 차리면 주인되는 사람, 특히 안주인은 제대로 앉아 이야기 한번 못해 보고 손님 시중 드느라 쉼없이 움직여야 하고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손님들은 미안하고 결국 헤어질 때면 먹고만 간다는 아쉬움이 드는 게 보통인지라 시켜 먹는 게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내가 주인의 입장일 때도 집밥보다는 주문음식이 손님을 더 배려하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시킨 음식은 맛이나 내용의 신뢰성도 의심스러운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대접을 하자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결과적으로 손님초대 자체를 꺼리게 되고 말았다. 사실 나는 신혼초부터 손님초대에는 겁이 없는 사람이었다.“다섯명만 모이면 아무 때나 집들이 한다.”고 호언장담했다. 나의 집들이 준비는 간단했다. 돼지삼겹살과 소주, 채소, 과일이 전부였다. 채소는 손님들에게 씻으라면 뭔가 기여한다는 마음에 좋아라 했다. 고기야 둘러앉아 구우면서 먹으면 되는 것이니 김치 썰어놓고 밥 좀 해 놓으면 상차림 끝, 말미에 밥상 앞에 앉아 과일깎기로 주인노릇도 끝이었다. 손님들의 평가는 “솔직히 처음에는 잡채 한 접시 없는 집들이가 실망스러웠지만 못 먹은 것도 아니고 이런 집들이라면 열 번도 하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어느 날 집근처에서 유기농 채소재배집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자신있게 예전의 ‘겁없는 손님 초대’를 되살려냈다. 채소 대여섯 가지에 현미오곡밥, 계절 나물 한두 가지, 김치 정도면 모두들 환호했다. “채소가 이렇게 고소한 줄 몰랐어요.”“잡곡밥이 거친 줄만 알았는데 꼭꼭 씹으니까 달아요.”“ 집에서 직접 차려 주니까 가족처럼 여겨주는 거 같아 더 정겨워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반응은 역시 “이 정도라면 손님 초대가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는 먹을 것이 귀한 세상이 아니다. 먹을거리 자체가 모임의 핵심프로그램인 단계를 넘어섰다. 나의 진짜 손님대접은 음식보다는 말나누기에 있다. 음식의 가짓수보다 오가는 이야기가 풍성해야 하고, 혀끝을 자극하고 눈을 현혹시키는 양념덩어리의 조리음식보다 제 색깔과 모양 그대로 사람의 몸에 영양분이 될 수 있어야 좋은 음식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음식 대접 때문에 사람 집에 사람이 쉬 오갈 수 없다는 것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음식을 둘러싼 체면부터 벗어 던져야 한다. 음식에 화려한 치장을 시키느라 드는 여자들의 수고를 아껴야 한다. 단순하고 건강한 식탁에 부담없이 사람들을 청할 때, 우리의 힘과 시간을 음식 준비가 아닌 만남과 사귐에 쏟을 때, 비로소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한숙희 여성학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