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오판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한창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2·28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4-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92
  •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은 조작”

    1980년 ‘신귀영 일가 간첩사건’이 경찰의 공작 계획에 따라 조작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외항선원인 신귀영(71)씨 등 일가 4명을 간첩으로 기소해 3년에서 15년간 복역시킨 사건에 대해 조작사건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폭행가혹행위죄와 불법체포죄가 인정되므로 피해자측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경은 1980년 재일교포 신모(81)씨가 조총련 간부라고 단정하고 내사를 벌이다 증거를 찾지 못하자 치안본부장이 승인한 공작 계획에 따라 한국에 사는 가족 신귀영 일가를 불법체포한 뒤 40∼67일간 불법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가해 허위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씨 등이 가혹 행위와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했다고 1심에서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나 법원이 증거재판주의에 어긋나는 위법한 판결을 내렸고,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신귀영 일가를 직접 수사했던 전직 경찰관 6명을 조사한 결과 대체로 신씨 일가를 불법감금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전직 B경사는 “신귀영 일가에게 뭉둥이를 써 가혹행위를 하고 물고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전기고문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진실화해위가 전했다. 진실화해위는 80년 부산지검이 이 사건을 송치받아 형식적인 수사절차만 거쳐 기소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자로서 직무를 버린 처사이고, 법원은 허위 조작 개연성이 높은 상태에서 중형을 선고하고 상소를 기각했다고 지적했다. 또 신귀영씨 등이 두 차례 재심을 청구했을 때 1심에서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으나 대법원이나 부산고법에서 결정을 뒤집은 것은 오판을 시정할 기회를 저버린 처사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재일교포 신씨의 동생인 신귀영씨와 신복영씨, 사촌처남 서성칠씨, 오촌아저씨 신춘식씨 등은 외항선원으로 65∼79년 일본을 왕래하면서 군사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80년 기소돼 부산지법에서 신귀영씨와 서성칠씨는 징역·자격정지 15년, 신춘식씨는 징역·자격정지 10년, 신복영씨는 징역·자격정지 3년·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여의도 in] 조기숙 “與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게 최고” 심재철 “이거야말로 건방죄 물어야” 반격

    한나라당 심재철 홍보위원장은 2일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은 국민정서법 위반죄와 여론편승 거부죄’라고 주장한데 대해 “노 대통령의 잘못은 국민정서 오판죄와 민심순응 거부죄”라고 반격했다. 심 위원장은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조 전 홍보수석의 주장에 대해 “여당이 싫다는 여론은 무시하는 게 최고라고 했는데 참 오만하기 그지 없다.”면서 “이거야 말로 건방죄를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조 수석이 노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진보언론과 학자들에 대해 “어용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신어용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해괴한 논리”라고 비난했다. 한편 조 전 수석은 최근 출간한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노 대통령의 잘못은 국민정서법 위반죄, 여론편승 거부죄”라고 한 뒤 “노 대통령만큼 겸손한 사람을 이제까지 살아오며 보지 못했고, 밖에서 청와대를 아마추어라고 하는데, 안에 들어와 보니 프로도 이런 프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열린우리당을 ‘기율없는 콩가루 집안’에 비유,“초선의원이 108명이나 되니 위계질서가 없고 팝콘처럼 튀어서 의견조율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진단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제2의 베트남전 되나” 우려 목소리도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진 않는다. 하지만 2006년 1월 미 지도부의 이라크전(2003∼현재) 대응은 베트남전(1959∼1975년)의 닮은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야당과 군부 등의 ‘철군’ 여론을 뒤로한 채 2만여명의 병력 증파안을 내놓자, 베트남전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우려와 비판섞인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전황에 대한 미 지도부의 오판과 1968년 1월 베트콩의 정월 대공세 이후 병력 증파,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남베트남에 책임을 이양시키려 한 정책이 2006년 1월 부시 대통령의 ‘마이웨이’와 판박이란 설명이다. 미국은 결국 1973년 베트남에서 철군을 시작했고, 전쟁은 1975년 4월30일 북 베트남의 사이공 함락으로 끝이 났다. 우선 꼽히는 닮은 꼴은 정부에 스며있는 잘못된 낙관주의다. 또 병력 증파가 수렁에서 벗어날 해법이란 믿음도 그대로다.USA 투데이는 이날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은 1969년 임기 중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월남의 평화 전망이 더없이 밝으며, 월맹을 이길 가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그의 연설 이후 미군이 사이공을 포기할 때까지 2만 1000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국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꼭 닮았다는 것. 물론 베트남전은 북베트남인 전체와 게릴라들을 상대로 해야 했고, 병력이 50만명 이상 투입된 대규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두번째는 자문단 의견의 무시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연구그룹(ISG)의 철군 의견을 거부했다. 존슨 대통령 때도 그랬다. 회고록에서 존슨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회의속에서 갈등을 빚었다.”면서 “당시 전쟁을 수행한 장군들은 베트남 현지군의 역할로 상황이 진전되고 있다고 보고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당시 대외정책 자문그룹(Wise Man)이 언론의 비관적인 보도에 휘둘리는 것 아닌가 우려했다.”고 밝혔다. 당시 자문그룹도 베트남전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보며 철군을 주장했다. 존슨 대통령이 당시 국민들에겐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내심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발을 더 깊게 담금으로써 ‘승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을 드러낸 부시 대통령의 내심은 어떨까.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사설] ‘평화의 바다’ 제안 신중치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동해 명칭을 ‘평화의 바다’로 부르는 방안을 언급한 것은 경솔했다고 본다. 청와대는 공식 제안이 아니며, 동해 명칭 포기도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동해 명칭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독도 영유권, 배타적경제수역(EEZ) 및 어로 문제를 감안할 때 그렇게 불쑥 던질 사안은 아니었다. 앞으로 한·일 협상에서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평화의 바다’와 ‘우의의 바다’ 등을 예로 들어 말했을 뿐이며 참모진과는 사전 토론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회담 의제에서 빠져 있던 미묘한 사안을 정부 외교라인과 공식협의 없이 가볍게 거론한 점은 외교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18세기 이전까지 고지도에서 ‘동해’와 ‘코리아해’ 표기가 월등히 많았다.‘일본해’라는 명칭의 확산은 일제 침략 역사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1990년대 이후 우리의 동해 명칭 되찾기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제는 일본이 쫓기는 처지가 됐다. 국민 공감대도 없이 노 대통령이 갑자기 절충안을 제시함으로써 각계의 역사 바로잡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학계 일각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한국이 확실히 가지되 인근 수역 조업을 한·일이 공동으로 하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평화의 바다’ 개념이 거론된다. 노 대통령의 제의에 독도 주권이나 조업 문제 타협의사가 깔려 있다면 더욱 곤란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본에 오판할 소지를 줘선 안 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시비를 거두고 동해를 ‘평화의 바다’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면 모를까, 우리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 독도 영유권과 조업권, 동해 명칭, 동해 해저지명을 엮어 명분과 실리를 취하는 외교력이 아쉽다.
  • 배갈 36병을 2시간에 마신 미녀 4명의 그후

    ‘미녀 4걸이 술과 한판 승부를 벌이다.’ 중국 대륙에 늘씬한 몸매의 미녀 4명이 모여 술 시합으로 벌이며 곤죽이 되도록 마시는 추태를 부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 주룽포(九龍坡)에 살고 있는 젊은 늘씬한 여성 4명이 2시간 동안 ‘얼궈터우술(二鍋頭酒) 을 무려 36병이나 마셨다가 모두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얼궈터우술’은 곡류를 원료로 해서 당화 발효를 거쳐 증류하는 방법으로 제조한 대표적인 중국 서민들의 술이다.11년간의 숙성시켜 출시하는 만큼,향미(香未)가 향긋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특히 색깔은 무색이고 지방분이 많은 중국 음식에 안성맞춤이다.도수는 55∼56%이며,가격은 보통 음식점에서 2∼3위안(약 240∼360원,125㎖ 기준)으로 비교적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많이 즐기고 있다. 구랍 29일 밤 11시쯤,충칭시 주룽파 한 훠궈(火鍋·샤브샤브 요리와 비슷)전문 요리점에 쭉 빠진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 4명이 들어섰다.이들 미녀 4명이 음식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모든 손님들의 눈이 한꺼번에 이들에게 쏠렸다.이들 미녀 4인방이 원체 늘씬하고 미모가 뛰어난 까닭이다. 붉은 스웨터에 스키니 진을 입어 팔등신 미녀임을 한껏 자랑하는 한 아가씨가 “라오판(老板·주인이나 사장),여기 얼궈터우술 12병!”하고 호기롭게 소리쳤다.술을 주문한 이들은 곧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 떨기에 바빴다. 잠시 후 훠궈 요리와 얼커토우술 12병이 나오자마자,이들 미녀 4인방은 마치 누가 빼앗아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그마한 잔에 따라 빠른 속도로 들이켰다. 이들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훠궈 요리는 손에 대지 않은 채 얼궈터우술 12병만을 깨끗이 비워버렸다.라오판은 물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도 하나같이 이들의 주량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술병의 크기는 125㎖에 불과하지만,도수가 55∼56도짜리여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한 두잔만 마셔도 취해버리는 엄청난 독주이다. 따라서 독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마시면 마치 목구명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도저히 삼킬 수도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반시간이 지나자,붉은 스웨터의 아가씨는 또다시 “라오판,여기 24병 추가!”라고 왜장쳤다.깜짝 놀란 주인 장(張)모씨는 “벌써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사고날지 모르니 그만 먹는 것이 어떠냐?”고 권고했다. 이에 한 아가씨는 “우리를 뭘로 알고 이러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그녀는 “우리 4명은 누가 술이 센지 시합하고 있다.”며 “주량이 적은 사람이 지는 것으로 승부를 내고 있다.빨리 술을 갖다달라.”고 말했다. 장씨는 할 수 없이 24병의 얼궈터우술을 내놨다.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또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24병의 얼궈터우술이 동나버렸다.다 마신지 10분여쯤 지나자 이것으로 ‘미녀 4인방’은 완전히 ‘시체’가 돼 버렸다. 한 아가씨는 온몸에 요리를 쏟아 화려한 옷이 얼룩덜룩 보기 흉했고,옆에 있던 한 아가씨는 얼굴에 핏기 하나없이 창백했으며,또 한 아가씨는 연신 구토를 하고,마지막 한 아가씨는 술이 너무 과해 입에서 피까지 토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장씨는 곧바로 경찰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보냈다.이틀이 지난 이들 ‘미녀 주당 4걸’은 다행스럽게도 생명이 위험한 순간을 넘겨 병원에서 퇴원,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대선정국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인명진 한나라 윤리위원장 “높은 지지 덫 될수도”

    [대선정국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인명진 한나라 윤리위원장 “높은 지지 덫 될수도”

    “대통령 선거까지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고 자연인으로 남겠습니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고 반듯한 모습을 갖추면 다시 교회로 돌아와 목회활동에 전념하겠습니다.” 지난 10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에 취임한 이후로 당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명진(61) 목사. 그는 21일 서울 구로동 갈릴리교회에서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저를 벌써부터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치인이 될 소양도, 소질도 없다.”면서 “목사 인명진으로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좌절과 희망이 교차한 2개월 인 목사는 지난 2개월동안의 정치권 생활에 대해 “좌절도 있고, 희망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인 목사는 당에 들어와 보니 당원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변화 의지가 없었던 점을 보고 좌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면서 당직자들이 변하고 있어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며 만족했다.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의 성추행 사건 발생이후 사무처 직원들이 송년회를 취소하고 사회봉사활동에 나선 점을 달라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인 목사는 “아무런 존재도 아닌 저같은 사람이 윤리위원장으로서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고, 경고를 하자 당 중진이 스스럼없이 따르고 당직자들이 수긍하는 모습에서 한나라당의 미래를 보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인 목사가 윤리위원장으로 옮겨오면서 한나라당은 당규에 징계 방안 중 하나로 사회봉사활동을 삽입했다. 그는 “정치인들의 윤리의식에 대해 자포자기했던 국민들이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진정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진정성을 믿게 됐다.”면서 “사회봉사는 당원권정지(제명)보다는 경징계에 해당하지만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몇배 강했다.”고 자평했다. ●대선 후보들에게 가차없는 징계권도 행사 그는 대선 경선과정에서도 ‘추상’과 같은 징계를 내릴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대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는데 당이 너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국민들은 당에 조건부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도 이를 오판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고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나라당은 내년 대선에서 또 패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당내 경선에서 단호한 조치를 취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나는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만큼 경선 과정에서 해당행위가 나올 경우, 해당 후보 본인에까지 연계해 책임을 지우겠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이회창은 원균에 가까워”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당내 비판이 터져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15일 의원총회에서 “이회창씨는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했다. 한번도 패한 적 없는 불패의 군대를 이끌고 그랬다.”면서 “이회창씨는 충무공이 아니라 원균에 가깝다. 역사를 보면 원균은 그나마 (이 전 총재보다) 나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최 의원은 또 “이회창씨는 1차 때는 아들 병역,2차 때는 아들·딸 빌라 문제 등 본인 과오로 패배를 초래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력이 강해 이길 수 있었으나 이회창씨의 착각과 오판이 (패배하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이 발언하는 동안 곳곳에서 고성이 터져나오는 등 의총장 분위기가 일순 험악해졌다. 원내 지도부가 그를 발언 도중에 연단에서 끌어내기도 했다.김형오 원내대표는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미칠지 충분히 인지하는 의원이라고 생각해 말을 하도록 공개했는데 이럴 줄 몰랐다.”고 유감을 표했다. 최 의원은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더이상 시간을 늦추지 말고 쐐기를 박겠다는 생각에 발언했다.”며 공개 비판의 이유를 설명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野 “이재정 통일장관 절대 불가”

    한나라당은 20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절대 불가’ 입장을,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적절’ 판단을 내렸다.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은 거부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두 후보에 대한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 후보자에 대해 국회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동시에 국회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동원해 ‘거부’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방침이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을 반대하는 동시에 노 대통령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6·25전쟁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북한 인권 현실에 대한 외면 등을 감안할 때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국가관과 역사인식이 매우 부족하고 편향되어 있다.”면서 “그런 친북적 사고를 가지고는 북핵사태는 물론 균형잡힌 남북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으며, 북한의 오판만 불러올 뿐이다.”고 지적했다. 강창희 최고위원도 “이재정씨야말로 북한에서 임명한 통일부 장관인지를 의심케 할 만큼 우리의 역사관과 대북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의식을 갖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거부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 경우,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가 불가피해 노 대통령이나 이 후보자에게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이념이나 전문성 등 모든 면에서 이 후보자가 통일장관직을 수행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민병두 “토지공개념 국민투표 해보자”

    “토지공개념을 도입할지 여부를 국민투표로 한번 물어보자.” 열린우리당 홍보기획위원장 민병두 의원은 15일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다락 같이 오른 집값 앞에서 절망한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발상이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민 의원은 “문민정부 때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던 것처럼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전셋값 동결’이라도 하자는 여당내 소장 의원들도 많다.”면서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집의 구매를 미뤄왔다가 내집 마련을 할 수 없게 된 피해자들이 참여정부의 지지자라는 상황’에 대해 그는 “정말 죄송하고 할 말이 없다.”면서 “부동산과 일자리, 교육은 ‘계층 양극화 3요소’인데, 참여정부에서 모두 심화됐다.”고 자탄했다. 여당의원 중에서 공개적으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사퇴’를 요구해 지난 14일 추 장관을 비롯해 청와대 정책·홍보라인 등 고위 공직자 3인의 옷을 벗기는 계기를 만들었던 민 의원은 지난 8월 김병준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사퇴도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이끌어 냈었다. 그는 여당내 ‘야당’으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민 의원은 이날 정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확대 정책에 찬성하면서도 “강남을 대체하기 위해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주요한 정책인 국가균형발전을 망가뜨리는 것”이라면서 “강북지역을 공영개발을 한다든지, 강남 이외의 부심을 강화하는 방향이 올바르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인터넷 댓글을 다는 청와대가 왜 민심을 읽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민 의원은 “참여정부가 시도한 ‘전선의 정치’,‘대결의 정치’의 성공 여부는 민심에 달렸는데 청와대 보좌진들은 아무래도 민심보다는 대통령의 생각에 더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라면서 “청와대는 지금은 어렵더라도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고, 역사를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착각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론을 제기하면 ‘반역사적인 세력’으로 간주해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소수파로 정권을 잡은 경험이 참여정부를 더욱 고립시켰고,‘순혈주의’적 편협한 사고가 포용정치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경찰의 날’ 342명·5개기관 포상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경찰 직원 339명, 경찰 산하기관 5곳, 일반인 3명이 포상을 받는다. 정부는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 이택순 경찰청장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열고 훈·포장과 표창장을 수여한다. 김상환 경남경찰청장 등 28명이 홍·녹·옥조 근정훈장을, 김종명 로스앤젤레스 주재관 등 32명이 근정포장을 받는다. 대통령표창은 134명, 국무총리표창은 147명이다. ■경찰의날 포상자 명단■ ● 홍조근정훈장(5명)=김상환(경남경찰청장) 박기륜(경찰청 외사국장) 윤재옥(경찰청 기획정보심의관) 유근섭(서울경찰청 교통지도부장) 이종기(충남경찰청 차장) ● 녹조근정훈장(21명)=김치원(경찰청 총경) 김장완(경찰청 총경) 정임수(경찰청 총경) 박진규(경찰청 총경) 이철규(서울청 총경) 이기태(서울청 총경) 박환두(부산청 총경) 조두원(대구청 총경) 임창수(인천청 총경) 손정근(울산청 총경) 구본걸(경기청 총경) 이병찬(강원청 총경) 유승원(충북청 총경) 신찬섭(충남청 총경) 양태규(전북청 총경) 박동신(경남청 총경) 주용환(서울청 경정) 장종찬(서울청 경정) 이재술(경기청 경정) 윤주홍(전남청 경정) 류상열(경북청 경정) ● 옥조근정훈장(2명)=이세곤(서울청 경위) 홍승표(제주청 경감) ● 근정포장(32명)=김종명(LA주재관 경무관) 강찬조(경남청 경무관) 윤하용(경찰청 총경) 백승호(경찰청 총경) 김영식(경찰청 총경) 이주민(경찰청 총경) 이승철(서울청 총경) 김정석(서울청 총경) 김정훈(경기청 총경) 이병무(경찰청 경정) 이정열(경찰청 경정) 추경엽(서울청 경정) 이노구(부산청 경정) 유윤근(울산청 경정) 장치암(경찰청 경감) 김정환(경찰청 경감) 윤철수(운전면허관리단 경감) 박종열(서울청 경감) 강승관(경기청 경감) 송석명(충북청 경감) 손성옥(충남청 경감) 이수정(전남청 경감) 김정욱(제주청 경감) 백승욱(서울청 경위) 이광섭(대구청 경위) 김석우(강원청 경위) 박주식(전북청 경위) 우태곤(서울청 경사) 장양수(부산청 경사) 김영식(인천청 경사) 김주성(경기청 경사) 박창수(경북청 경사) ● 대통령표창(개인 134명)=주상룡(경찰청 경무관) 조규철(경찰청 총경) 김귀찬(경찰청 총경) 조성훈(서울청 총경) 양종열(서울청 총경) 김상호(서울청 총경) 김병화(서울청 총경) 김금석(서울청 총경) 김사웅(서울청 총경) 변항종(부산청 총경) 김경열(부산청 총경) 최종헌(인천청 총경) 우희주(경기청 총경) 이재열(강원청 총경) 김영성(충남청 총경) 이상선(전북청 총경) 노병현(전남청 총경) 이성억(경북청 총경) 김임곤(경남청 총경) 한공익(제주청 총경) 장향진(경찰대학 총경) 임병하(경찰청 경정) 최석환(경찰청 경정) 박채완(경찰청 경정) 설광섭(경찰청 경정) 박명수(경찰청 경정) 이상덕(경찰청 경정) 김수(서울청 경정) 박명춘(서울청 경정) 김병임(서울청 경정) 유상욱(서울청 경정) 김병규(서울청 경정) 이상주(서울청 경정) 김성호(서울청 경정) 윤중섭(서울청 경정) 안기욱(서울청 경정) 김성윤(서울청 경정) 김갑식(서울청 경정) 전기완(종합학교 경정) 김주수(부산청 경정) 이흥우(부산청 경정) 김주전(부산청 경정) 김성훈(부산청 경정) 박범규(부산청 경정) 양시창(부산청 경정) 조석하(부산청 경정) 조정필(인천청 경정) 정지용(인천청 경정) 오성환(경기청 경정) 박수영(경기청 경정) 윤규근(경기청 경정) 박복선(경기청 경정) 이용완(강원청 경정) 김희중(강원청 경정) 정성기(충북청 경정) 조성호(충북청 경정) 김해중(충남청 경정) 신두섭(충남청 경정) 이재섭(전북청 경정) 박석일(전남청 경정) 김태금(전남청 경정) 민성태(전남청 경정) 권봉관(경북청 경정) 류재응(경남청 경정) 김경석(경남청 경정) 박이용(경찰종합학교 경감) 김인규(경찰청 경감) 김윤호(서울청 경감) 장창우(서울청 경감) 김진우(서울청 경감) 심성보(서울청 경감) 서호갑(부산청 경감) 서송국(부산청 경감) 김대원(울산청 경감) 박정국(경기청 경감) 윤형철(경기청 경감) 황오익(경기청 경감) 이태훈(경기청 경감) 임연빈(충남청 경감) 오인엽(충남청 경감) 박승관(전북청 경감) 최철웅(전남청 경감) 홍경 식(전남청 경감) 박정철(경북청 경감) 이종찬(경북청 경감) 김도태(경북청 경감) 신현기(경남청 경감) 이상재(전남청 경감) 조병국(경찰병원 경감) 유승한(전남청 경위) 고제부(서울청 경위) 유중규(서울청 경위) 최종환(서울청 경위) 정종천(서울청 경위) 서학주(서울청 경위) 한윤석(서울청 경위) 이정기(서울청 경위) 한성은(부산청 경위) 박종윤(부산청 경위) 이상우(부산청 경위) 김삼곤(대구청 경위) 박민수(대구청 경위) 김재옥(인천청 경위) 송상근(울산청 경위) 신동민(경기청 경위) 이명희(경기청 경위) 김동현(경기청 경위) 김기선(경기청 경위) 방의홍(충남청 경위) 전영호(충남청 경위) 길관영(전북청 경위) 정경석(경찰청 경위) 조무성(전남청 경위) 송충진(서울청 경위) 서병철(경북청 경위) 김정규(경북청 경위) 신문준(경남청 경위) 김덕수(운전면허관리단 경위) 박동운(서울청 경위) 김영근(경남청 경사) 이길형(제주청 경사) 이준일(서울청 경사) 김진천(서울청 경사) 윤은용(인천청 경사) 고영종(경기청 경사) 이방희(경기청 경사) 박석중(경기청 경사) 박현수(강원청 경사) 윤철현(충북청 경사) 김은영(전북청 경사) 김주희(경북청 경사) 홍성규(홍보자문위원회) 유영구(경찰박물관자문) 이황우(자체평가위원회) ● 대통령표창(치안종합성과 우수 5개 관서)=경남지방경찰청,대전 북부경찰서,서울지방경찰청 기동37중대,제2610 전투경찰대,포항남부경찰서 방범순찰대 ● 국무총리표창(147명)=최재천(경찰청 경정) 김동자(경찰청 경정) 김상철(경찰청 경정) 박근주(경찰청 경정) 임창락(경찰청 경위) 이인춘(경찰청 경위) 이인표(경찰청 경위) 김광욱(경찰청 경위) 이문재(경찰청 경위) 윤돈원(경찰청 경감) 황영근(경찰청 경위) 김진구(경찰청 경위) 황대영(경찰청 사무관) 이호동(서울청 경정) 서규병(강원청 경위) 서동엽(병원 고위공무원단) 임남희(운전면허관리단 경감) 이문수(서울청 경정) 김신조(서울청 경감) 이재천(서울청 경정) 이형세(서울청 경정) 윤광춘(서울청 경정) 김대권(서울청 경정) 박병옥(서울청 경정) 박동수(서울청 경정) 김세헌(서울청 경위) 김동락(서울청 경정) 강대원(서울청 경정) 조성태(서울청 경정) 신현택(서울청 경정) 최승렬(서울청 경정) 유수만(서울청 경사) 류근원(서울청 경사) 이병구(서울청 경위) 조성학(서울청 경사) 박현수(서울청 경사) 김이식(서울청 경위) 박희주(서울청 경위) 권정택(서울청 경위) 신치우(서울청 경위) 김광현(서울청 경사) 문성평(서울청 경사) 김낙현(서울청 경사) 편유현(서울청 경위) 박덕 화(서울청 경위) 형치구(서울청 경위) 김혁태(서울청 경위) 이명환(서울청 경위) 박월동(서울청 경위) 김경우(서울청 경위) 오재일(서울청 경위) 박재구(부산청 경정) 윤희굉(부산청 경위) 김우성(부산청 경사) 이서우(부산청 경위) 남형옥(부산청 경사) 최승철(부산청 경사) 이미근(부산청 경위) 오판석(부산청 경위) 노상환(부산청 경정) 장준직(부산청 경위) 강정도(부산청 경위) 김광년(대구청 경정) 석명기(대구청 경정) 김영완(대구청 경감) 김수용(대구청 경위) 김영석(대구청 경위) 김황덕(대구청 경사) 박정주(인천청 경감) 김난영(인천청 경감) 서정열(인천청 경감) 구남회(인천청 경위) 장광섭(인천청 경위) 정지남(인천청 경사) 진상도(울산청 경정) 김영곤(울산청 경사) 박용학(울산청 경사) 현인기(경기청 경정) 서동현(경기청 경감) 한기성(경기청 경감) 박상현(경기청 경감) 이청림(경기청 경감) 박헌영(경기청 경감) 윤중묵(경기청 경위) 김학용(경기청 경위) 양은석(경기청 경위) 전병윤(경기청 경위) 서영권(경기청 경위) 김광수(경기청 경위) 신양균(경기청 경위) 신호동(경기청 경사) 박종득(경기청 경사) 홍성선(경기청 경사) 하상식(경기청 서기) 위강석(강원청 경정) 김영관(강원청 경감) 김명수(강원청 경위) 권혁춘(강원청 경위) 김재수(강원청 경사) 황광서(충북청 경감) 구웅회(충북청 경위) 조대희(충북청 경위) 이철호(충북청 경위) 향희연(충북청 경사) 안문용(충남청 경감) 오희령(충남청 경감) 신태권(충남청 경위) 김석우(충남청 경위) 이홍구(충남청 경위) 구자관(충남청 경사) 서동인(충남청 경장) 조표연(충남청 경사) 박상봉(전북청 경정) 유택기(전북청 경감) 심명섭(전북청 경감) 곽원박(전북청 경사) 이인화(전북청 경사) 배영근(전북청 경사) 황의흔(전남청 경감) 전태호(전남청 경감) 홍여표(전남청 경감) 김영택(전남청 경위) 박록현(전남청 경감) 홍동오(전남청 경정) 양정숙(전남청 경위) 한금택(전남청 경감) 송하영(전남청 경감) 김향춘(전남청 경감) 정재기(경북청 경정) 이길호(경북청 경정) 명광준(경북청 경정) 김승동(경북청 경감) 이상영(경북청 경위) 장동규(경북청 경위) 박정호(경북청 경위) 이성희(경북청 경사) 최정식(경북청 경사) 김한수(경남청 경정) 이두호(경남청 경정) 박명서(경남청 경감) 정기준(경남청 경위) 유형민(경남청 경위) 김태식(경남청 경위) 김관섭(경남청 경위) 우선호(경남청 경위) 강익창 (제주청 경위) 홍도표(제주청 경위)
  • 박근혜 “北 때문에 죽을순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7일 “우리가 북한에 백보 양보해 북한 때문에 손해는 볼 수 있지만, 북한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10·25재보선 지원유세차 호남을 방문한 박 전 대표는 해남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제가)전부터 포용 정책의 정신과 기조는 쭉 찬성해 왔지만, 지금은 북한이 7000만 민족을 위기로 몰아 공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핵실험을 했고 이제 2차 실험까지 한다는데도 계속 그런 (포용)정책을 펴나가면 되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과 현 정권의 포용 정책을 비교·평가해 달라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지만,“포용 정책은 과거 7·4 남북공동성명 이후부터 과거 모든 정권에서 있었고, 그때그때 형편과 경제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면서 “그러나 어쨌든 가장 우려했던 북한 핵문제가 터진 것은 지금 현 정권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지금 이 정권이 뭐라고 얘기했느냐.”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얘기하는 등 북한으로 하여금 완전히 오판할 수 있도록, 오히려 북한이 핵무기를 갖도록 방조 내지는 조장했다.”고 꼬집었다. 중단 여부로 논란 중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지원은 중단해야 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핵무장을 하도록 재원 마련에 도움이 되는 사업들도 잠정적으로 일체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화순·해남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사설] 북핵제재, 한·중 공조가 중심 돼야

    유엔 안보리가 북핵 결의안의 가닥을 잡았다. 본격적인 대북제재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 채택될 결의안은 즉각적인 군사조치 가능성은 배제했다. 미국과 일본이 내놓은 초안보다 상당히 순화된 내용이다. 그러나 북한선박 해상 검문과 북한의 해외자산 동결, 대북 무기수출 금지를 천명함으로써 파상적인 제재를 예고했다. 특히 미국은 결의안과 별개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관련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 북의 반발과 이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다음 주 한국과 일본을 찾는다. 대북제재를 실천할 본격 행보에 착수하는 것이다.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검색이 단행되면 북·미간 대치는 정점으로 치달을 것이다. 북핵 제재는 북의 추가 오판을 막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추진돼야 한다. 다만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제재와 더불어 북한과의 대화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어제 한·중 정상이 회담을 통해 유엔 안보리의 적절한 대응조치를 지지하면서도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한 것은 올바른 대응방향이라고 본다. 어떤 경우에도 북의 추가 도발과 무력 충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미국의 PSI에 가급적 단계별, 선택적으로 참여키로 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라 하겠다. 특히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우리 해군 또는 해경이 북한 선박 검문검색에 참여함으로써 돌발적인 무력 충돌 사태를 야기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미국도 북과 마주한 우리의 안보환경을 감안, 전면적인 PSI 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와 중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북핵 제재로 고조될 한반도 안보 긴장을 냉각시킬 방안을 양국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 또한 미국 등 국제사회는 제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있어서 한·중 양국의 역할이 중심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北 핵실험 파장] 사흘만에 ‘포용론’ U턴

    지난 9일 북한 핵실험 직후 노무현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은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북한에 대해 “위험한 불장난을 한 것”,“이 마당에 포용정책만 계속 주장하긴 어렵다.”고 했다. 핵실험이란 엄청난 상황에서, 대북 정책의 전면 재고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그 기류는 바뀌고 있다. 최소한 현상적으론 그렇게 보인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확대를 상정했다가 당정간 갈등이 불거지자 원칙선으로 물러섰다.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2일 국회에 출석,“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고 (밖으로) 나올 나라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엔의 조치 동참 필요성도 밝혔으나, 제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핵 실험 하루 뒤에만 해도 정부 당국자들은 금강산관광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에 대한 정책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께서 지침을 주신 게 있으니….”라며 대북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물론 북·미의 극한 대립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수단과 대화를 통한 해결이 동시에 병행돼야하고, 대화의 과정에 남북 관계의 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분명하다. 하지만 ‘핵실험’직후, 너무 일찍 목소리를 낮추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 상황에서 대화를 강조하는 것이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시각이다.●국민들에겐 혼선, 북한에 대해선 상황 오판줄 수도 정부의 이같은 기류 변화는 대북 강경정책에 반대하는 여당의 목소리, 즉 정치논리를 의식하거나, 정부내 통일부·외교부 등 힘겨루기의 과정 또는 결과로 보인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포용정책 한계’언급과 관련,11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동교동계의 교감도 이뤄지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향후 대북 조치의 핵심인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김근태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대표자들과 만나 “여당이 책임지고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의장은 PSI와 관련,“당과 긴밀히 협의하지 않는 공직자는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도 조금씩 변했다.“핵실험과 포용정책의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대화와 제재)어느 하나 포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적절히 배합돼야 하며 궁극적으로 무력 사용 없이 불행한 사태 없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사흘 동안의 정부 기류변화와 관련,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변화한 것은 없으며, 유엔 결의안을 준거틀로 조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당의 목소리, 각 부처가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결국 유엔의 결과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핵실험 후도 한·미 갈등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PSI에 대한 한·미간 입장 대립은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인터뷰 등을 통해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핵 실험과 관련한 한명숙 총리 등 우리 정부 수뇌부가 밝힌 미국 책임론에 대해 신중치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설사 그런 판단을 내심 하고 있더라도,“핵실험에는 어떤 이유도 정당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는 지적이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사설] 북, 2차 핵실험은 절대 안 된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어제 핵실험 계속 여부는 미국 대응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압력이 가중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1차 핵실험 강행 후 조여오는 국제 제재에 막무가내로 반발만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자멸의 속도만 빠르게 할 뿐이다. 현재 공식·비공식으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나라들은 핵실험을 한 차례 한 것이 아니다. 핵폭탄 개발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다섯 차례 이상 반복·재현 실험을 해야 한다. 어제 일부 일본 언론들이 북한의 2차 핵실험설을 보도, 한때 세계가 긴장했던 이유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나서면 이는 대외 협상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국제사회가 판단하면 무력까지 검토할 정도로 제재의 강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미·일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못하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1차 실험의 진상을 빨리 규명해야 한다. 첫 실험 당시에 지진파 규모가 작았고, 실험 추정 지역의 지형변화가 없으며, 방사능 물질이 아직 검출되지 않은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핵실험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북한이 과장해서 발표했다면 국제사회의 대응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반대로 북한의 핵실험을 정치적 의도에서 무시해서도 안 된다. 실체를 명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 북핵 폐기 압력이 힘을 얻게 된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핵물질과 기술의 이전이다. 미국은 내심 북한 핵기술의 외부 확산을 군사제재 검토의 레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북한이 비민주 국가 혹은 테러집단에 핵기술을 전파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면 한국·중국이 말려도 미국이 군사압박에 들어갈 여지가 크다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 [사설] 이제는 북핵에 단호히 대처해야

    지난 10여년 북한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 우리와 국제 사회가 펼친 지난한 노력이 북의 핵실험과 함께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북은 끝내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제 북핵은 현실이 됐다. 장래의 위협이 아니라 당장 7000만 한민족과 지구촌의 안녕에 도전하는 현재적 위협이 된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북핵이 다르듯 이제 그 대응도 달라야 한다. 시급한 과제는 안보태세 강화다. 무엇보다 대북 정보력을 높여야 한다. 북 핵실험 직후까지도 우리 정보당국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미 북의 핵실험이 예고된 터에 정보수집에 이런 허점을 드러냈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전군 경계태세 강화는 물론 북한 동향 감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첩보위성을 통한 감시뿐 아니라 미국·중국과의 긴밀한 정보교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의 도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유엔 등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북핵 공조도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북의 핵실험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도발적 행위’로 규정하고 단호한 대처를 천명했다. 남북관계를 비롯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사태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도 분명히 했다. 북이 파국의 도발을 감행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에 동참, 북의 추가적인 오판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외교안보적 도전에 직면했다. 현존하는 북핵을 해체해 한반도 비핵화를 복원해야 하는 과제에는, 지금까지의 북핵 예방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북의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한반도 긴장을 최소화하는 고난도의 외교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이뤄내야 한다. 대북제재와 별개로 6자회담 재개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협력해 북한·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하도록 총력외교를 펴야 한다. 특히 미국의 군사제재로 한반도가 위기 국면에 놓이지 않도록 북·미 대치의 완충 역할에 가일층 힘을 쏟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대북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포용정책은 남북간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확대에 크게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큰 틀에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섣부른 존폐 논란보다 북핵 위기를 헤쳐갈 초당적 협력이 더 절실하다. 한나라당은 대북포용정책 폐기와 책임자 문책 요구를 자제하기 바란다.
  • [北 핵실험 정치권 반응] 與 “용납못할 도발”

    [北 핵실험 정치권 반응] 與 “용납못할 도발”

    열린우리당은 9일 긴급 지도부회의를 열어 북한의 핵 실험을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공동 대처를 촉구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던 종전의 태도에서 강경 기류로 급선회한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날 낮 12시30분 점심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국회 의장실에서 김근태 의장 주재로 긴급 비상대책위 회의를 갖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회의 직전 대변인의 긴급 브리핑도 이뤄졌다. 김 의장은 회의에서 “북한 핵실험은 잘못된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난폭하게 위반한 것”이라면서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 규탄했다. 김 의장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자행한 핵실험은 도발적 행위이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해치는 것”이라면서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이어 “여야가 협력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공동 대처해 나가야 한다.”며 초당적인 대응을 당부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북한 당국은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정부는 유엔이나 국제사회와 공조해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에서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북한이 오판에 근거해서 무모한 핵실험을 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공개 경고했다.”며 규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사설] 北 핵실험 세계평화에 대한 도전이다

    북한이 어제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이성을 상실한 행위다.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북한 정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북한이 그동안 벼랑끝 전술로 이득을 얻긴 했지만 이번 핵실험은 경우가 다르다. 한반도 비핵화를 깨뜨렸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도발행위였다. 여기서 덮지 못하면 주변국의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동북아를 넘어 세계평화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북한은 한민족을 파멸 위기로 몰아넣으면 핵무장을 인정받거나, 많은 반대급부를 따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크나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를 서울 한복판에 터뜨리면 수십만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북한은 또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마쳤다. 때문에 한국·미국·일본은 물론 중국·러시아가 북핵을 인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클럽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한국·일본에 이어 타이완도 핵무장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처럼 동북아 주변환경은 인도·파키스탄과 비교하기 힘들다. 북한의 핵보유가 용인될 국제 조건이 전무한데 이를 무시하는 북한의 무지가 안타깝다. 엄포용 외교전략 측면에서도 북한은 잘못된 판단을 했다. 북한은 단계적으로 도발 강도를 높여왔다. 핵시설 봉인제거, 흑연감속로 가동, 핵무기 보유선언, 연료봉 인출과 재처리, 미사일 발사 등이다. 이같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포괄적 접근방안을 새로 만들어 북한이 6자회담장으로 돌아올 경우 줄 수 있는 보상방안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핵실험 강행은 이런 대화 노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반대급부가 커지기는커녕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핵실험이 내부 결속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북한 정권은 깨달아야 한다. 노동당 창건 61주년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핵실험을 함으로써 이른바 강성대국의 면모를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제재 강화로 주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면서 핵무기만 움켜쥐고 있으면 김정일 독재체제가 유지된다고 보는가. 국제사회의 경제·금융 제재가 확대되고, 군사조치가 논의되기 시작하면 북한 사회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북한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핵보유국 위치를 인정받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핵무기를 가졌다가 폐기한 전례가 있다. 옛 소련이 붕괴한 뒤 우크라이나는 핵미사일 176기, 핵탄두 1800기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러시아·영국과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에 관한 안전보장각서’를 체결하고 모든 핵무기를 없애거나 러시아로 넘겼다. 관련국의 경제지원과 다자안전보장이 대가로 주어졌고, 이는 핵폐기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북한은 우선 추가 핵실험이나 핵기술 이전을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를 약속한 ‘9·19 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북·미대화를 통해 이견을 절충한 후 6자회담에 복귀, 핵폐기-보상 협상을 본격화하는 것만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다.
  • [北 핵실험 파장] 정부 성명 전문

    정부는 10월9일 북한의 함북 지역에서 핵실험으로 추정되는 징후를 포착해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도중 북한이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발표함에 따라 회의 성격을 국가안전보장회의로 전환하고 아래와 같이 정부의 공식입장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1.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 북한은 10월9일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2. 금번 북한의 행위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뒤흔드는 중대한 위협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열망하고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기대를 짓밟는 행위이다.3. 북한의 행위는 6자회담 당사국간 합의한 ‘9·19 공동성명’상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며, 지난 7월15일 채택한 ‘유엔 안보리 결의 제1695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인 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도발적 행위다.4. 이번 행위는 남북이 지난 1991년 합의한 바 있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무효화시킨 것으로서 이후 발생하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점을 재차 분명히 밝혀둔다.5. 북한은 핵무기와 모든 관련 계획을 즉각 폐기,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에 복귀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국제규범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6. 우리 군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해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북한은 이를 직시, 여하한 경우에도 결코 오판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7.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할 것이며,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즉각 논의하는 것을 지지한다. 아울러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여야 지도자들과 사회지도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조율된 조치를 냉철하고 단호하게 취해나갈 것이다.
  • [사설] 북 핵실험 막을 국제 공조 도출해야

    북한의 핵실험 강행 움직임에 국제사회가 단호한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미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북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다소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한 대응을 다짐했다.EU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우려와 경고도 잇따른다. 유엔 안보리는 북의 핵실험을 저지할 다각도의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북한 핵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의 실질적 위협이라는 점에서 이를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단호한 자세와 엄중한 경고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같은 경고만으론 북의 도발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북의 핵 카드에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목적 외에 실제로 핵클럽, 즉 핵 보유국의 대열에 올라서려는 의지도 담겼다고 봐야 한다. 이란 핵문제에서 보듯 핵을 갖게 되면 그 자체로 협상의 우위를 점하게 되며, 각국의 이해 차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대응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이는 북한의 오판이다. 핵실험을 강행하는 순간 북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국제사회의 응징에 직면할 것이고, 결국 체제 붕괴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북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담도 크다. 북의 도발을 저지할 안보비용 증가는 말할 것 없고, 주변국의 핵 무장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 시점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계속된 국제적 노력의 목표가 대북 제재가 아닌 북핵 저지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의 오판을 엄중 경고하되 동시에 다른 공존의 길도 함께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신속하고 긴밀한 국제공조가 절실하다. 북측 상황을 감안하면 핵실험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6자회담 재개와 북·미 대화 동시 실현을 위해 정부는 모든 외교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북핵에 자위적 측면이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처럼 북이 오판할 실마리를 더는 주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