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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뉴스 깊이 들여다보기] 최대적자 쇼크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는 농협금융

    [경제 뉴스 깊이 들여다보기] 최대적자 쇼크에도… 책임지는 사람 없는 농협금융

    농협금융이 올 상반기 사상 최대 규모 적자(2013억원)를 기록한 것을 두고 서로 “네 탓”이라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등 현 경영진은 “전임자들의 경영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적자의 주된 원인은 STX조선해양 충당금(4398억원) 폭탄이다. 전임 경영진은 “대출은 그 이전에 이뤄진 것”이라며 전전(前前) 경영진을 탓한다. 자중지란 양상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3월 공개석상에서 “농협은행 부실채권 대부분은 2007~2008년 농협중앙회 신용사업부 시절에 생겼다”고 말했다. 농협금융은 2012년 3월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로 출범했다. 부실을 초래한 직접적인 당사자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신용부문 대표를 맡았던 김태영 당시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지목한 것이다. 그러자 김 전 부회장 측은 “실제 STX조선 보증과 대출이 나간 것은 2004년에서 2008년 사이”라며 또다시 책임을 전전임 신용부문 대표였던 이지묵·정용근씨에게 전가했다. 농협은행과 STX조선의 ‘악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협은행은 2004년 11월 STX조선 선수금환급보증 2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2200억원)를 제공해 주며 거래를 텄다. 이후 2008년까지 불과 4년 새 STX조선에 대한 외화지급보증 규모가 21억 달러(약 2조 3000억원)로 불어났다. 이 기간 신용부문 대표는 이지묵(2003~2005년), 정용근(2005~2008년 6월)씨였다. 2004년에서 2008년 사이 STX조선 지원 결정을 위한 여신심사위원회는 5차례 열렸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대표가 차례로 위원장을 맡아 STX조선 안건을 처리했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당시 회의록을 보면 5차례 회의 모두 불참자를 제외하고는 만장일치로 지원을 결정했다. 정 전 대표 측은 “2004~2005년 당시엔 조선업 경기가 좋았고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 전 부회장 측근 역시 “(김태영 대표가 취임한) 2008년 7월 이후 STX조선 신규 지원은 2009년과 2012년 5000만 달러씩 외화 한도대출 범위 안에서 (신용)대출을 해 준 것이 전부”라며 부실 책임자로 지목된 데 대해 반박했다. 실제 김 전 부회장은 신용대표 취임 직후부터 2009년 9월까지 STX조선 외화지급보증 규모를 11억 4000만 달러로 축소했다. 현 경영진은 견해가 다르다. 농협은행의 STX조선 부실은 2007년 이후 제공한 환급보증(RG)이 결정적이었다는 반박이다. 농협은행이 2007~2009년 STX조선에 제공한 RG 한도 7억 달러는 여신심사부가 아닌 투자은행(IB) 사업부를 거쳐 승인이 났다. 2012년 이후 STX다롄에 제공한 RG 약 4000억원 역시 본부 여신심사부가 아닌 개별 지점에서 승인을 내줬다가 부실이 났다. 부실 책임 공방이 뜨겁지만 역설적이게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 전 대표는 현재 NH투자증권의 기타비상무이사다. 2007년 금융기획담당 상무 자격으로 여신위원회에 참석, STX조선에 8억 달러(약 8800억원) 외화지급보증을 찬성한 박철현 당시 상무는 농협은행 사외이사다. 2008년 12월부터 3년간 리스크관리본부장을 맡았던 조명문 당시 상무는 지난해 초까지 농협자산관리 대표를 맡았다. 농협 사정에 정통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농협 특유의 온정주의와 제 식구 감싸기 풍토를 떨쳐내지 못하면 금융시장의 진정한 플레이어(선수)로 진입할 수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사설] ‘책임지는 리더십 없었다’ 지적한 메르스 백서

    정부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종식 선언을 한 지 1년여 만에 메르스 백서를 내놓았다. 모두 476쪽 분량의 백서가 나온 까닭은 간단하다. 메르스 사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배경을 따져 교훈을 얻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백서는 중앙정부의 대응 조직과 협력 체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짚었다. 60대 남성이 첫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전염성이 낮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은 정부의 오판은 지금 돌아봐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8일 뒤에나 대책본부를 만들었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반성의 초점이 모아졌다. 한국보건사회원구원이 설문한 관계자 291명의 절반 이상은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문제라고 꼽았다. 위기 과정에서의 정부 소통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뻔히 방역망이 뚫렸는데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합당한 이유도 없이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각종 괴담과 유언비어가 퍼졌던 혼란에 정부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로 정부가 스스로 신뢰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다. 이질적인 집단이 대책본부를 꾸린 탓에 일사불란한 업무 조정이 애초에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아프게 새겨야 한다. 백서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느라 책임지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문 응답자의 76%가 지휘관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메르스 대응의 정부 컨트롤타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불요불급한 보고를 요구했으면서도 보고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결코 메르스 사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관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보 소통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는 국민 불신을 배가시켰다. 정부가 앞으로의 위기 상황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정부의 반성을 토대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예방하자는 것이 백서 발간의 취지다. 그런데도 일선 의료기관의 응급실 감염 예방 태도는 언제 위기가 있었냐는 듯 안이해지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방문객 출입 통제 등 권고 수칙 이행률이 최근 몇 달 새 큰 폭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 현장과 시민의 자세가 함께 변하지 않고서는 백서가 백 권이 나온들 헛일이다.
  • [사설] 檢, 가습기 사태 정부 책임도 분명히 가려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이 관련 기업들에만 있다고 보는 사람은 지금 거의 없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앞세워 생명을 경시한 악덕 기업의 부도덕성이야 눈곱만큼도 동정할 여지가 없다. 그와 동시에 철저히 책임이 가려져야 하는 쪽은 다름 아닌 정부다. 정부와 관련 책임자가 누구인지 한창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사정인데 검찰이 정부 책임을 제대로 따져보기도 전에 한 발 빼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니 걱정스럽다. 검찰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소환해 조사하는 중이다. 정부 책임을 따지는 수사 범위는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1996년부터 20년간이다. 검찰은 대부분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그마저도 법리상 직무유기죄 정도만 적용할 수 있어 실질적인 처벌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지레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아도 수사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는 있다. 가습기 사태는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면서 진행된 해묵은 사건이다. 결정적 고비마다 정부 당국과 관계자들이 어떤 실수와 오판을 했으며 책임을 방기했는지 규명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 형사처벌 불가론부터 앞세우며 소극적인 수사를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납득하고 신뢰하겠는가. 가뜩이나 늑장 수사로 정부만큼이나 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대 사건이다. 치명적 유해물질이 15년이나 시중에 버젓이 유통되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는데도 정부나 검찰이나 움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이 한둘 아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했다가 15년이 지난 2012년에야 유해물질로 지정했다. 피해가 줄을 잇는데도 아무 조치 없이 미적댄 것도 도무지 석연치 않은 일이다. 직무태만인지, 기업 유착이 있었는지 반드시 가려야 한다. 지금이라도 검찰은 수사 의지를 곧추 세워야 한다.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전제돼야 진실에 한 치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애초에 정부를 수사 대상에 넣지도 않으려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결정하자 태도를 바꿨다. 국정조사 면피용으로 대충 넘길 생각은 접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에 안전마크까지 붙여준 정부의 행위는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 후세인 죽어 좋은 세상 됐다는 블레어·부시

    영국이 2003년 이라크전 참전 당시 실체를 규명한 보고서가 6일(현지시간) 공개돼 파문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전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끈 원로 행정가 존 칠콧(77) 경의 이름을 딴 ’칠콧 보고서‘가 이라크 참전을 토니 블레어(63) 당시 영국 총리의 오판에 따른 것으로 결론 냈기 때문이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칠콧 보고서를 인용해 “블레어 정부가 평화적 수단을 써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수단이어야 할 군사작전에 즉각 돌입하는 우를 범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침공 명분인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해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2013년 미군이 이라크를 철수할 때까지 15만명 이상이 숨진 거대한 전쟁의 참전 결정이 정보기관의 잘못된 정보에 기반을 두고 내려진 것이다. 특히 블레어 총리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영국군의 군사 능력을 과대평가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는 미국이 무슨 일을 벌여도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착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블레어 총리는 정작 이라크전과 관련한 미국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보고서는 과거 ‘눈가림용’으로 비난 받았던 이라크전 관련 보고서들보다 훨씬 종합적이고도 비판적”이라면서 “칠콧 경은 블레어에 대해 ‘판단착오 혐의는 유죄, 영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혐의는 무죄’로 결론 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칠콧 보고서의 핵심 당사자인 블레어 전 총리는 보고서 공개 직후 런던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여론이 어떻든 당시에는 국익에 최선의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이라크전을 통해 독재자 후세인이 제거돼 세계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됐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이라크전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블레어는 여전히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이라크전 참전을 결정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대변인을 통해 “사담 후세인 없는 세상이 더 살기 좋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면서 “이라크에서 희생한 군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참전 유가족들의 항의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이날 70번째 생일을 맞아 텍사스 주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상이용사들과 자전거를 탔다고 AP가 전했다. 칠콧 보고서는 블레어 전 총리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2009년 칠콧 경을 중심으로 한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이라크전 참전의 과오를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취지였다. 위원회는 문서 15만건 등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블레어 전 총리와 부시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메모 등을 열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발표까지 7년이 걸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英 ‘칠콧 보고서’, 7년만에 공개···“이라크戰 참전은 블레어 오판”

    英 ‘칠콧 보고서’, 7년만에 공개···“이라크戰 참전은 블레어 오판”

    영국이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 참전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규명한 보고서가 진상 규명 작업에 착수한 지 7년 만에 공개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라크전 참전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끈 영국 원로 행정가 존 칠콧 경의 이름을 따 ‘칠콧 보고서’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이라크전 참전 결정이 당시 토니 블레어 정부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전 참전의 명분이 됐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한 명확한 판단 근거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참전 결정이 정보기관의 잘못된 정보와 평가에 기반을 두고 내려졌던 셈이다.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임박한 위험요소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마지막 수단이 돼야 했을 군사작전에 앞서 모든 평화적인 수단을 써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총리였던 블레어는 미국의 결정에 대한 자신의 영향을 과대평가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조건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 역시 착각이었다. 블레어의 이런 오판으로 영국군은 스스로 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나쁜 결정’을 내렸다. 파병 부대들은 사전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참전에 따른 위험 요인들을 제대로 밝혀 내각에 사전에 경고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FT는 이번 보고서가 ’눈가림용‘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기존의 이라크전 참전 관련 보고서들보다 훨씬 전면적이고 비판적이라고 평했다. 보고서는 다만 블레어의 이라크전 참전 결정이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칠콧 경의 말대로 그는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이 아니라 단순히 영국 내 조사위원회를 이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블레어 전 총리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2009년 칠콧 경을 비롯해 로런스 프리드먼 킹스칼리지대 교수, 지난해에 작고한 역사학자 마틴 길버트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출범을 발표하면서 출발했다. 위원회는 문서 15만 건을 검토하고 150명 이상의 증언을 듣고 관련자들에게 반론 기회를 줬다. 방대한 자료 검토에 더해 블레어 총리와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고받은 메모 등 기밀문서의 열람을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발표까지는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260만 단어로 쓰인 ‘칠콧 보고서’는 영국 인기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100만개 단어)의 2.6배, 성경(77만 5000개 단어)의 3.3배 이상의 분량이다. BBC 방송은 12권의 보고서를 모두 읽는 데만 9일이 걸린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데스크 시각] 산은을 때리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안미현 금융부장

    [데스크 시각] 산은을 때리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안미현 금융부장

    산업은행이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 맞아도 싸다.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2조원 가까이 장난을 치는데도 전혀 몰랐고, 퇴직 임원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기에 급급했다.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너덜너덜해져 가는 산은을 보면서 께름칙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대우조선이 부실해진 게 어디 산은만의 잘못인가. 성동조선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진 게 어디 수출입은행만의 잘못인가. 대우조선을 살리자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권 차원의 판단이었다. 정부는 산은과 대우조선의 ‘부실한’ 자료를 믿고 지원을 결정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적나라한 실상이 제대로 보고됐다 한들 ‘정리’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대우조선보다 훨씬 고용 규모가 작은 성동조선조차도 은행들이 손 떼려 하자 정치권은 앞다퉈 압력을 넣었다. 그랬던 정치권이 산은과 수은의 부실 관리를 가장 앞장서 힐난하고 있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이번 기회에 산은을 없애자고 했다. 시장의 구조조정 역량이 부족해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다음 얘기가 더 흥미롭다. “산은이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지면 신한은행이 (징후가 안 좋은 기업 대출을 회수하며) 빠져나갈 것이다. 그다음 하나은행이 손을 털 것이고 우리, 국민은행이 뒤를 따를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뒤집어쓰는 은행은 아마도 농협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시장은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선·해운에 물린 대표적 은행은 산은, 수은, 농협이다. 다른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물린 돈이 적다. 왜 그럴까. 국가경제 혹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며, 조선소 한 곳에 딸린 식솔이 수백 수천 명이라며, 이 정도의 기업을 다시 키우려면 더 큰 돈이 들어간다고 읍소해도 시중은행들은 회생 가능성이 낮다며 냉정하게 곳간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곳이 국책은행이요, 상대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덜 치밀하고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농협이었다. 은행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거다. 당장은 일감도 없고 갚을 능력도 없어 보이지만 다시 살아날 것도 같다. 이 기업이 살아나면 믿고 기다려 준 은행은 비 올 때 우산을 씌워 준 고마운 은행이 된다. 거꾸로 망하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 한 방만한 은행이 된다. 중간에 대출을 회수한 은행이 우산을 빼앗은 차가운 은행이 되는 것도, 리스크 분석이 뛰어난 선진 은행이 되는 것도 종이 한 장 차이다. 물론 분석 능력이 뛰어나면 그만큼 실패 확률이 줄겠지만 어느 구름에 비 올 지 모르는 여건 속에서 싸워야 하는 기업의 명운이란 오판 가능성을 늘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가 철저히 따져야 하는 것은 그 판단이 적중했느냐가 아니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근거와 정당성이다. 정책금융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도 고민해야 한다. 개발금융 시대가 끝났으니 정책금융을 없앨 거면 과도기 고통을 감내할 정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되면 근본적인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산은, 수은,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모든 정책금융기관을 올려놓고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이는 현 정권의 몫은 아니다. 차기 대선을 꿈꾸는 주자들이라면 지금부터 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정권 출범 뒤에는 늦다.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수많은 재편 시나리오가 오갔지만 만만한 산은만 떼었다 붙였다 했다. 이번에도 산은 하나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서 끝낸다면 시행착오는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hyun@seoul.co.kr
  • 부산대 항공학과 교수회 “신공항 입지조건은 이착륙 안전이 우선”

    부산대 항공학과 교수회 “신공항 입지조건은 이착륙 안전이 우선”

    부산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들이 최근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는 영남권 신공항 입지 조건을 밝히며 가덕신공항 건설을 지지했다. 부산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회는 13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공항 입지의 첫 번째 선결 조건은 항공기가 안전하게 이착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며 “위험요소를 내재한 공항은 이착륙 시 큰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안정성을 보장받은 후보군에 대해 이 같은 조건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장애물을 타고 흐르는 상승 또는 하강 기류는 항공기의 활주로 접근 시 예측 불가능한 항공 역학적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용역에 고정 장애물 평가가중치가 적게 반영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치명적인 오판”이라고 덧붙였다. 교수회는 “논란이 되는 항공학적 검토 역시 장애물을 피하는 비행경로 변경 등의 비행방법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비행역학 및 항공역학 측면에서의 위험성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상에 비해 분지에 있는 활주로는 앞서 이착륙한 항공기의 날개 끝에서 생성된 와류의 소멸시간이 길어서 다음 항공기의 이착륙 대기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게 돼 이착륙 횟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며 해상 입지를 두둔했다. 항공기 날개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소용돌이가 사라질 때까지 다음 항공기는 이착륙을 기다려야 하고 그만큼 이착륙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대우 교수는 “김해공항 북쪽에서 착륙할 때는 산 때문에 일종의 선회를 한 이후 착륙절차를 밟는데 이런 비행기술이 안전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항공학적 검토는 항공기가 비행할 수는 있지만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기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교수들은 주장했다. 교수회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항공기 이·착륙과 이륙을 기다릴 때 발생하는 배기 오염물질이 분지에 정체되면서 환경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교수회는 “공항 이용률 증가와 항공공학의 발전으로 앞으로는 더 빠르고 더 큰 항공기가 주력 기종이 될 것이므로 활주로 수와 길이의 확장성이 보장되는 데 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가덕신공항을 지지했다. 교수회는 “최근 논란을 보면 전문가로서 너무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 학자적인 양심을 걸고 평가 잣대의 공정성을 촉구하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문재인 “朴정부 들어 민주주의 훼손···6월 항쟁은 아직 미완성”

    문재인 “朴정부 들어 민주주의 훼손···6월 항쟁은 아직 미완성”

    야권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항쟁 기념식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는 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9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6월 항쟁은 아직 미완성이고 진행 중”이라면서 “정권이 바뀌자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고,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났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6월 항쟁의 힘으로 김대중 정부와 누무현 정부가 들어섰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전해 6월 항쟁의 정신이 이제는 꽃피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해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오는 13일 네팔로 떠날 예정이다. 약 3주 동안 네팔에 머물며 히말라야 트레킹과 지진 피해 구호 활동 등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장에서 문 전 대표는 ‘히말라야에는 혼자 가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정치적 구상을 다듬고 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도 닦고 오려고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국제 제재 비웃는 北 플루토늄 생산 재개

    북한 김정은 정권이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에 들어서고 있다.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견고한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핵무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미 국무부 고위 간부의 전언이니 사실이 아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영변 핵시설 내 5㎿급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를 빼내 식힌 다음 재처리 시설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폐연료봉에서 핵무기 원료 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월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기존의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연쇄 도발을 감행하자 지난 3월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을 사실상 봉쇄하는 강력한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엘리트층의 집단탈출 등 그 효과도 차츰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 도발 의지를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올 초부터 의심스러운 재처리 관련 활동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이 이미 2013년 4월 5㎿급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비춰 보면 지금까지 상당량의 폐연료봉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연간 원자로 가동에 사용된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6㎏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고, 이는 핵무기 2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미 확보한 40㎏ 외에 매년 6㎏씩 지속적으로 비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농축 우라늄은 이와는 별개니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핵위협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급히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어야만 하는 이유다. 더욱 공고한 제재 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핵개발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것은 제재를 ‘종이호랑이’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재 강도가 약해지고 대화 국면으로 바뀐 그동안의 ‘학습효과’ 탓도 클 것이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며 제재 전선에 균열을 내는 것 아닌가. 미국과 중국은 그제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북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상호 약속했다.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한 치의 틈도 벌어져선 안 될 것이다. 북한도 핵무기에 집착하는 한 파멸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열린세상] 도널드 트럼프와 주일미군/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도널드 트럼프와 주일미군/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통파인가, 이단아인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유력 후보자로 확실시되는 힐러리와 트럼프를 비교하며 회자되는 말이다. 힐러리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예일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남편인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퍼스트레이디 경험을 쌓았고,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내는 등 경력이 다채로운 정치가다. 반면에 트럼프는 경영학의 명문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부동산 개발과 호텔, 골프장, 카지노 등을 경영하며 큰 재산을 모은 사업가 출신으로 정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단아로 지칭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은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번 선거 레이스에서 트럼프가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이 적다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해 안보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미군 주둔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걱정으로 벌써 트럼프 주변 참모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 주일 미군이나 주한 미군은 미국, 일본, 한국의 국익이 서로 맞아 주둔하고 있는 것인데 트럼프는 마치 큰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일본과 한국의 국민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은 육, 해, 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해 정원이 3만 6000명이다. 주일 미군 관계비의 내역을 보면 미국이 2016년 주일 미군을 위해 지출한 비용은 약 55억 달러(약 6조 6000억원)이며 일본측 부담은 토지 임차비용 등 시설 제공 비용과 난방비, 군속 인건비 등을 포함해 약 8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인건비와 난방비 등의 예산 약 2조원은 오모이야리 예산이라 하여 미군이 본국을 떠나 객지인 일본에 근무하는 것에 최대한 편의를 제공한다는 선제적 생각을 해 짜인 예산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군기지 내 맥줏집 종업원의 인건비는 일본이 부담하고 있다. 주일 미군은 주한 미군보다 더욱 긴밀한 군사일체화가 돼 미국의 태평양 제해권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 전력 중의 핵심 전력으로 미국의 국익이 투사되는 실체다. 일본으로서도 주일 미군이 없으면 현재의 주일 미군 주둔 비용보다 몇 배나 많은 엄청난 돈을 무기 사재기에 써야 하기 때문에 주일 미군의 존재는 미국이나 일본의 어느 일방적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일이다. 도쿄 근처 요코스카에 주둔하는 미국 제7함대의 함재기 F18 전투기의 수리와 정비는 도심에서 기차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요코다 공군기지에서 맡아서 하는데 퇴근 시간대인 오후 5시쯤 요코다 기지에 착륙하는 F18 전투기의 밑바닥을 본 적이 있다. 도심 근교에서, 그것도 얼마나 낮게 비행해 착륙하는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F18의 하부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생활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일 미군이 일본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일본 국민도 그만한 희생과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설지원비, 인건비 등을 포함해 연간 약 2조원의 예산으로 일본보다는 적은 방위분담금으로 주한 미군을 지원하고 있는데 트럼프의 발언을 지켜보면 두 가지 생각을 유념해야 하겠다. 첫째, 한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주한 미군이 변동 없이 한국에 잘 주둔하는 정책을 견지해야 한다. 카터 대통령 시절에도 미군 철수론 주장이 제기된 바 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은 영구히 한국에 주둔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주한 미군 정책을 펼쳐야 한다. 주한 미군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도 이익이 되지만 한국의 안보와 평화에도 큰 이익이 된다. 미국은 주한 미군을 언제든지 철수시킬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트럼프의 발언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요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도가 높아질 정책 이슈이기 때문에 미국 내 외교 창구를 서둘러 마련해 미국 국민이 오판하지 않도록 군사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하겠다.
  • [사설] 김정은 특사 맞은 中, 북핵 오판 않게 해야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4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그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리 부위원장은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임명됐고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직도 맡는 등 외교 분야의 실세로 등장한 인물이다. 이번 방중은 제7차 노동당 대회 결과를 중국 측에 설명하는 게 주요 목적이지만 핵실험과 대북 제재 등으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북한과 중국이 일단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고 고립에서 탈피하는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면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탐색하는 자리인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리 부위원장 일행과 면담을 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일관되고 명확한 입장’이란 표현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변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앞서 리 부위원장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나 핵·경제 병진 전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지난 3월 역대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했고 중국 역시 결의안 이행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런 와중에 리 부위원장의 방중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발효되고 3개월 뒤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최룡해가 시 주석에게 6자회담 재개 등을 통한 문제 해결 의사를 밝힌 뒤 중국의 대북 제재는 완화됐고 결국 지난 1월 4차 핵실험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지정학적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미·중 패권 다툼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이용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 언론들이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베트남과 일본 순방을 대중 포위전략의 구체화라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자국의 안보적 이익을 앞세워 북한을 비호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불용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중국이 그동안의 유엔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불가피하며 핵 포기 이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이번만큼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해 북한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
  • [사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무고한 피해자 없게 하길

    경찰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등 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그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행정입원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입원은 경찰이 의사에게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요청하면 해당 의사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진단과 보호를 신청하는 제도다. 다만 범죄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전제에서다. 긴급 상황 발생 때 72시간 이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기존의 응급입원제 역시 활용하기로 했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는 결론의 틀에서 정신질환자가 대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강 청장의 발언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소지를 포함해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다. 또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의심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판단 잣대도 문제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측정하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한 가지 기준으로 판정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의견이다. 따라서 점검표에 의존해 입원을 결정하려는 경찰의 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칫 오판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통념과는 달리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비정신질환자의 10분의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강제 입원을 규정한 현행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다. 악용 사례가 잦은 탓이다. 부양 의무자나 후견인 등 보호 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하면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법적 절차를 밟아도 인권침해를 낳는 판에 길거리에서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만을 콕 찍어 낼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 피의자도 조사 과정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범죄 우려의 구분이 쉽지 않다. 물론 실질적인 위험성을 가진 정신질환자의 격리는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에게 범죄자라는 편견의 굴레에 덧씌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치료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신질환자도 도외시할 수 없겠지만 안전 위협 요인들을 더 철저히 파악해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 빈틈없는 치안은 중요한 복지 정책이다.
  • 중국, “92공식 인정 없이 대화 없다” 차이잉원 압박

    중국, “92공식 인정 없이 대화 없다” 차이잉원 압박

    중국이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사진) 신임 총통을 향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도 없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2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대만사무를 총괄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馬曉光) 주임은 전날 성명을 통해 “향후 대만과의 협의 시스템 가동 여부는 대만이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의미를 각자 해석하고 명칭도 각자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인정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92공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 주임은 “지난 2년간 양안 핫라인 등 긴밀한 소통기제를 가동해오면서 양안의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오판과 불일치를 관리해왔으며, 이해와 신뢰증진을 통해 정상회담 등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 일도 현실로 만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민간기구이지만 대만과의 협상을 주도해온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도 이날 성명에서 “대만측 파트너인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92공식’을 인정해야 연락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 같은 반응은 차이 총통의 지난 20일 취임사가 ‘92공식’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차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1992년 양안 간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먼저 찾는 것)라는 정치적 사유, 소통과 협상을 통해 약간의 공통인식과 양해에 이른 것을 역사적 사실로 존중한다”라고만 말했다. 대만의 대륙사무위원회는 “차이 총통은 최대한의 선의로 대화를 유지할 뜻을 밝혔다”면서 “중국의 압박은 양안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대장암, 한국이 세계 1위라고 전해라

    [메디컬 인사이드] 대장암, 한국이 세계 1위라고 전해라

    위암 신규 발생 줄고 대장암 급증 육류 섭취 줄이고 섬유질 먹어야 일반적으로 암이라고 하면 ‘위암’을 떠올리게 됩니다. 남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암 1위를 줄곧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서도 4위로, 다른 암과 비교해 환자 수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립암센터 연구진이 국가 암 등록사업의 1999~2013년 암 발생기록과 통계청의 1993~2014년 암 사망률 통계를 분석한 결과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올해 남성 대장암 신규 환자 예측치는 2만 3406명으로, 남성 위암 신규 환자 수(2만 3355명)를 근소한 차이로 앞설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여성에서는 이미 대장암이 위암을 상당한 격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여성 대장암 신규 환자 예측치는 1만 4562명으로 3위, 위암은 1만 976명으로 4위입니다. 대장암은 보통 ‘서구형 암’으로 불립니다.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서구권에서 환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도 앞으로는 ‘한국형 암’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고려대 구로병원 연구팀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대장암 발병률은 10만명당 45.0명으로 조사 대상 18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국의 통계를 표준화해 분석한 결과 한국 다음으로는 슬로바키아(42.7명), 헝가리(42.3명), 덴마크(40.5명), 네덜란드(40.2명), 체코·노르웨이(38.9명) 등으로 서구권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사 대상 국가 평균은 17.2명, 아시아 국가 평균은 13.7명입니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대장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서구식 식습관에 이제는 ‘한국형 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대한대장항문학회 회장으로 대장암 수술 권위자인 김남규 연세암병원 대장암센터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서구식 식습관 확산’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습니다. 1990년대 1인당 하루 육류 섭취량은 50g 수준이었지만, 2010년에는 100g으로 두 배로 늘었습니다. 위암은 냉장고 보급과 소금 섭취 감소로 발병률이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위암의 중요 원인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도 음식 덜어 먹기, 술잔 돌리지 않기, 물 끓여 먹기 등 생활습관 변화로 감염률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대장암이 남성에서 1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며 “여성에서는 이미 3~4년 전 위암을 제치고 대장암이 갑상선암과 유방암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20~30년 전부터 누적된 서구식 식생활 패턴, 비만 인구 증가가 종합돼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같은 나라는 아시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식 문화를 먼저 받아들이고 비만 인구가 늘면서 우리보다 앞서 대장암 환자가 위암 환자보다 많아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육류·과식 줄이기… 실천이 어렵다 환자 증가세를 우려한 학계도 나섰습니다. 대한암예방학회는 지난달 ‘한국형 대장암 예방수칙’ 10가지를 공개했습니다. 첫 번째가 과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백미나 흰 빵 대신 잡곡밥과 통밀빵을 먹고 채소나 해조류, 버섯 섭취량을 늘리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소고기나 돼지고기, 햄·베이컨·소시지 등의 육가공식품 섭취는 줄여야 합니다. 숯불에 굽거나 탄 고기, 음주를 피하고 운동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심혈관 질환 예방수칙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실천이 어려운 것입니다. 대장암 명의로 알려진 김희철 삼성서울병원 대장암센터장은 “육류 섭취가 많고 섬유질 섭취가 적은 사람들이 문제”라며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집 안에서 누워 지내기만 좋아하는 사람들도 대장암에 취약하다”고 말했습니다. 과하게 굽거나 탄 고기에서는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이라는 발암물질이 나옵니다. 동물성 지방도 담즙산 분비를 늘려 2차 담즙산이 생성되게 하고 이것이 대장암 발병 위험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육류는 나쁘다’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육류 섭취 자체를 중단하는 것은 더 위험한 행동입니다. 김 교수는 “암 진단을 받자마자 육류 섭취를 딱 끊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항암치료를 버텨 내지 못한다”며 “닭고기나 생선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장암과 위암 환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4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위암 환자는 병원에서 처음 진단받을 당시 1기 환자가 74.5%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반면 대장암 환자는 전이암인 3기가 36.3%로 가장 많았고 4기(14.1%) 환자까지 합하면 3기 이상이 절반을 넘었습니다. 5년 이상 생존율이 90% 이상인 1기 환자는 21.2%, 즉 5명 중 1명에 그쳤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내시경 수검률’입니다. 김 교수는 “위암 검진률은 50%에 육박한 반면, 대장암은 27% 수준에 그친다”며 “대장 세척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1㎝ 이상 용종 1년마다 내시경해야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운 출혈을 대변에서 살피는 ‘분변잠혈검사’ 시작 연령을 기존 50세에서 지난해 45세로 낮췄지만 이마저도 귀찮다고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나 형제 가운데 55세 이전에 암이 발병했거나 연령과 관계없이 두 명 이상에서 암이 발병했다면 40세부터 5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가족 발병 연령이 55세 이상이라면 본인은 50세부터 5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김 교수는 “대장내시경 검사상 선종성 용종이 발견됐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며 “크기가 1㎝ 미만이면 절제 후 3년마다, 1㎝ 이상이나 다발성이면 절제 후 1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전체 대장암 환자 중 유전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비율은 15~3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장암으로 진단받았다고 미리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 대장암 환자 5년 이상 생존율은 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2%)보다 높습니다. 외과적 치료 성과가 이미 선진국 중에서도 상위권이라는 의미입니다. 폐나 간 전이가 일어나도 5년 이상 장기 생존율이 25~40%에 달합니다. 김 교수는 “더이상의 치료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환자 스스로 오판하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식품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대장암은 수술 후 예후가 비교적 좋은 암으로, 3375명의 환자를 조사한 결과 수술 후 5년 이상 생존율이 1기는 95%, 2기 87%, 3기 69%로 나타났다”며 “심지어 수술 당시 전이가 있었던 4기 환자도 종양을 완전히 제거할 경우 5년 이상 생존율이 47%에 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랑하기 때문에 살인했다” 스페인 남자 집행유예 논란

    “사랑하기 때문에 살인했다” 스페인 남자 집행유예 논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스페인 남자가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고 줄곧 주장한 끝에 결국 풀려나게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페인어 법원은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그나시오 올라소(42)에게 최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남자는 전과가 없어 2년 이하의 징역은 집행유예로 전환된다. 남자는 바로 석방될 예정이다. 천륜을 짓밟은 사건에 스페인 법원은 왜 이렇게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일까? 문제의 사건은 1년 전 스페인 사라고자에서 발생했다. 올라소는 비닐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씌워 어머니를 살해했다. 질식으로 사망하기 전 어머니는 비닐봉투를 벗겨내려 했지만 아들이 이를 저지한 사실도 확인됐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들이자 피고인 올라소에게 최저 6년, 최고 10년의 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법정에 선 올라소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존경했기에 살해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면서 사건심리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남자의 어머니는 당뇨에 심각한 허리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의사기피증'을 갖고 있어 병원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10년째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한 그는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죽고 싶다며 아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스페인이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스스로 존엄사를 택했다"는 친필 유서를 남겼다. 아들은 "엄마를 사랑하고, 결정을 존중했다"면서 엄마를 죽인 건 사랑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비록 여자가 말기질병을 앓고 있던 건 아니지만 충분히 죽음을 택할 만한 상황이었다"며 어머니의 청을 들어준 아들에겐 형량을 줄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사랑이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판결"이라며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존엄사를 사실상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재판부가 오판을 했다는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 사진=엘파이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사랑해서 존속살인”…스페인법원 집행유예 판결 논란

    “사랑해서 존속살인”…스페인법원 집행유예 판결 논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스페인 남자가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고 줄곧 주장한 끝에 결국 풀려나게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페인어 법원은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그나시오 올라소(42)에게 최근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남자는 전과가 없어 2년 이하의 징역은 집행유예로 전환된다. 남자는 바로 석방될 예정이다. 천륜을 짓밟은 사건에 스페인 법원은 왜 이렇게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일까? 문제의 사건은 1년 전 스페인 사라고자에서 발생했다. 올라소는 비닐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씌워 어머니를 살해했다. 질식으로 사망하기 전 어머니는 비닐봉투를 벗겨내려 했지만 아들이 이를 저지한 사실도 확인됐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아들이자 피고인 올라소에게 최저 6년, 최고 10년의 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법정에 선 올라소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존경했기에 살해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면서 사건심리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남자의 어머니는 당뇨에 심각한 허리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의사기피증'을 갖고 있어 병원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10년째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한 그는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죽고 싶다며 아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스페인이 존엄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스스로 존엄사를 택했다"는 친필 유서를 남겼다. 아들은 "엄마를 사랑하고, 결정을 존중했다"면서 엄마를 죽인 건 사랑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비록 여자가 말기질병을 앓고 있던 건 아니지만 충분히 죽음을 택할 만한 상황이었다"며 어머니의 청을 들어준 아들에겐 형량을 줄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은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사랑이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판결"이라며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존엄사를 사실상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재판부가 오판을 했다는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 사진=엘파이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與 소장파 광역단체장들 당 쇄신 외곽서 군불 때기

    당내 전대 연기·원내대표 추대론 4·13 총선 패배 이후 새누리당 쇄신의 군불이 당 외곽에서도 지펴지고 있다. 소장파 출신 광역단체장들이 당 혁신·민심 회복의 조력자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내년 대선의 ‘역할론’ 가능성도 주목된다.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권영진 대구시장 등은 4·13 총선 직후 수차례 전화 통화 등 접촉을 이어 가며 당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남 지사와 원 지사, 김 시장은 17대 국회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권 시장은 18대 국회 초선 쇄신파가 꾸린 ‘민본 21’ 소속이었다. 이들은 총선 참패 원인으로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정무·정책적 오판, 최악의 공천 파동, 계속된 승리로 오만해진 당 분위기 등을 꼽았다. 김 시장은 24일 통화에서 “계파 갈등은 물론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여러 경로를 통해 당에 전달할 것”이라며 “제2의 천막 당사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남 지사도 “당이 자생력을 갖고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 지사 역시 “당에 있는 분들이 각성하고 국민 뜻을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이들은 현직 단체장 신분인 만큼 별도 모임 구성 등 중앙정치와 직접 연관된 것으로 해석되는 행보는 모두 꺼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물밑·외곽 행보는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남 지사는 25일 당 소속 경기도 지역구 당선자들과 만찬 회동 겸 상견례를 하고 20대 국회 운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친박근혜계가 낮은 행보를 하는 가운데 당내에선 6월로 예정됐던 전당대회 연기론도 제기됐다. 친박계 ‘2선 후퇴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지연 작전을 통해 책임론이 잦아들고 당을 추스를 시간을 갖자는 친박계의 전략으로 해석됐다. 3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을 두고서도 친박계와 비박계가 눈치 싸움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 여소야대 정국에서 유기적인 당·청 관계가 더 중요해진 시점에 친박계는 ‘원내대표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비박계·쇄신파는 ‘친박계는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쪽 모두 표 대결보다 물밑 조율을 통한 추대론이 내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4선 이상 중진들이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는 만큼 원내대표 후보군들도 참석하는 이 자리에서 중지가 모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구마모토 지진 현장엔 ‘인증샷’ 정치인도 ‘호통’ 관료도 없었다

    [World 특파원 블로그] 구마모토 지진 현장엔 ‘인증샷’ 정치인도 ‘호통’ 관료도 없었다

    지진 피해 현장인 일본 구마모토 시내는 20일 이른 아침부터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여진이 이어졌다. 전날 저녁에도 진도 5의 강한 여진이 두 차례나 발생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강진에 이은 여진이 일주일째 계속되면서 피난자들의 피로도 한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재해 당국은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으로 사망한 50대 여성 등 11명이 지진 발생 뒤 병세 악화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 희생자는 59명으로 늘어났다. 이날까지 여진이 687회 발생한 가운데 기상 당국은 “지진 활동이 여전히 활발하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21일에는 시간당 50㎜의 폭우를 동반한 150㎜가량의 많은 비가 예상돼 당국은 ‘토사 경계령’까지 내렸다. 연쇄 지진으로 지반이 약해진 탓에 산사태, 토사 유출 등 2차 피해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구마모토현, 오이타현의 10만이 넘는 피난민에게 언제까지 피난생활을 지속시켜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노약자의 건강악화 등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확산되는 가운데 도시 기능과 시민 생활을 언제까지 ‘비상 모드’로 맞춰놓기도 어렵다. 구마모토 현정부 관계자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날 피난소 곳곳에 간이 진료소와 화장실 등의 시설들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장기전을 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베 정부에게 정상 복귀를 결정해야 할 부담은 여느 때보다 크다. 지난 14일 규모 6.5의 첫 지진 뒤 “후속 강진은 없다”는 기상 당국의 오판으로 16일 새벽 덮친 7.3의 강진에 의해 희생자가 컸다. 집으로 돌아가 잠자다 심야에 덮친 강진으로 집이나 토사가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과 시민 사회는 당국의 책임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지진 피해지역 시찰계획을 밝혔던 아베 총리는 이를 무기한 연기시켰다. “총리가 시찰 가면 (관계자 보고 및 동원 등으로) 자칫 구조작업에 방해된다”는 게 방문 자제 이유다. 지진 피해지역인 구마모토에서 지척인 야마구치를 선거구로 둔 아베 총리로서는 현지 방문을 통해 관심을 나타내고 싶을 만도 한데 도쿄에서 구호·구조활동에 집중할 뿐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피해 현장에 불쑥 나타나 현장 구조 지휘자들을 불러내 보고받고 엉뚱한 훈수와 지시를 쏟아내거나 현장을 헤집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이곳에선 보이지 않았다. 신속한 결정에 따라 수많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화급한 지경에 현장 지휘자들을 붙들고 호통치고, 브리핑을 요구하는 정치인 등의 모습도 이곳에선 없었다. 구마모토 현의 지휘본부를 중심으로 중앙정부, 자위대와 연결한 전문가들의 활약만 두드러졌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피난소의 식수 공급소와 급식대 등에는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피난민들의 대열은 대피 첫날처럼 일주일째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악전고투의 피난 생활이지만 불만을 모르는 듯 불평은 들리지 않았다. 정부 발표와 지시에 토를 다는 이도 없다. 정부나 시민들이나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면서 일상으로의 복귀와 언제 올지도 모르는 후속 강진이라는 두 가지 준비를 함께하고 있었다. 일본 교통의 대동맥인 신칸센 철도가 이날 연결되고, 시내 상점들도 하나둘씩 개점 준비를 하는 등 일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글 사진 구마모토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美군함 9m 앞 스치듯… 전투기 ‘모의 공격’ 훈련한 러

    러시아 전투기가 발트해에서 훈련 중인 미국 구축함에 근접 비행하며 위협했다고 AP 등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 동유럽에서 2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서방 국가와 러시아의 갈등이 이번 사건으로 더욱 고조될 전망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AP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SU24 전투기 2대와 KA27 헬기 1대는 지난 11~12일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로부터 70해리 떨어진 발트해 수역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미 해군 구축함 도널드쿡에 근접해 비행했다. SU24 전투기 2대는 고도 30m를 유지하며 도널드쿡함에 1㎞ 이내로 다가갔으며 특히 12일에는 순간적으로 9m 이내로 근접해 함정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KA27 헬기는 도널드쿡함에 가까이 접근해 사진 촬영을 했다. 당시 도널드쿡함에서는 폴란드군의 헬기가 갑판 상륙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AP는 전했다. 도널드쿡함의 함장은 러시아 전투기가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들의 비행은 “모의 공격”으로 간주될 만했다고 밝혔다. 미국 유럽사령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러시아의 불안전하고 비전문적인 비행 작전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런 행위는 양국 간 긴장을 불필요하게 고조시키고 자칫 오판 또는 사고로 이어져 사상자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SU24 전투기는 시험 비행 중이었으며 모든 안전수칙을 준수했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유럽에 군비를 증강하는 가운데 발생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 발트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은 2014년 이후 러시아의 공세가 거세지자 미국과 나토에 군사 지원을 요청해 왔다. 이에 미국과 나토는 동유럽 국가에 군대를 상시 주둔시키고 합동 군사훈련을 전개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BBC는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번 비행을 통해) 러시아는 고분고분하게 있지 않겠다는 자세와 군사력을 과시하려 했다”고 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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