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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라진 정치복원 행보

    정국 정상화를 모색하려는 여야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여야 수뇌부가 대화정치 재개가 시급하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는가 하면 정치현안에 대한 여야간 협상도 속도감을 더해가는 분위기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귀국하면서 밝힌 ‘정국 수습의지’도 여야의 대화를 재촉하고 있다.1일 김대통령의 신당지도부와의 오찬에서도 ‘대화’의 필요성이 강조됐다.김대통령은 국정에 비협조적인 야당의 행태를 지적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자”고 제안했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몇 가지 단서는 달았지만 대화 재개에 비중을 뒀다. 이총재는 ‘단서’에서 김대통령의 신당창당 행보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여권은 총재회담을 통한 대화정국의 기조에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이번 주말을 지나 다음주 초쯤 총재회담이 가능할 거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대화 분위기 고조에도 불구하고 여야 총재가 머리를 맞댈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선거구제 조율’ 등 총재회담에 앞서 공동여당간 혹은 야당 내부에서 사전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옷로비’사건 등 현안에 대한 해법에도 여야간에 적지않은 시각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구제와 관련,공동여당은 ‘합당-선거구제’ 함수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여야간에도 총재회담에 앞서 선거구제 ‘대안’모색과 관련한 물밑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옷로비’ 해법도 그렇다.김대통령은 이날 신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어쨌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다시 사과했다.대치정국에 대한 정부·여당의 책임도 강조했다.그러면서 김대통령은 “특검에 맡길 것은 맡기겠으며 여당에 불리한 측면이 있더라도 모든 것은 투명하게 밝힐 것”이라고 천명했다.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이총재는 ‘특검제 확대’를 다시 강조,특검의 활동범위에 대한 막판조율이 주목된다. 야당은 정형근(鄭亨根)의원 처리문제와 관련,‘정치적인 해결’을 모색중이다.김대통령이 이에 대해 “정의원 사건을 포함해 모든 것이 투명하고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말하며정도(正道)를 강조한 것도 여야 협상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예상을 낳고 있다. 하지만 대화정치의 큰 틀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여야 수뇌부에 확산되고 있어 이번 주말을 고비로 대화정치 국면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민기자 rm0609@
  • 金총리 “총선뒤 내각제 추진”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일 “연말쯤 총리직을 사임하고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거듭 밝히고 “내년 총선 뒤 내각제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김총리는 육사 8기생 모임인 23동지회와 87년 미국 체류 당시 결성된 모임인 가락회(加樂會) 회원들을 삼청동 공관으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총리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데 선거법이 일정기간 전에 현직을 떠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면서 “원래 내년 정월에 돌아가려다가 중국 방문이 취소돼서 앞당겨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도운기자
  • “대화 분위기 깰라”부드러워진 與野

    ◆정치권 움직임 새 천년을 한달 앞둔 1일 여야 지도부는 대화정국으로 가기 위해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권은 조건없는 대화를,한나라당은 다소공세적인 자세를 취하면서도 대화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이날 청와대를 방문,오찬과 주례보고를 통해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만섭(李萬燮)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당직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정치가 자기 소모적인 대결로 시종하는바람에 총체적인 정치불신을 야기,각 선거구에서 현역의원에 대한 지지가 격감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여야가)진지한 자세로 대화를 통해 국사를 끌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기자회견에 대해 ‘기대와는 어긋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으며 대화로 정국을 풀겠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화를 하자면서 신당에서 손을 떼라는 등 도저히상대방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은 대화와 타협의 기본 자세가 돼있지 않은 것”이라고 불쾌해했다.이어 “이총재의 기자회견은 여권 지도부의 유화 제스처에 대해 틈새를 노려 우위를 점하려는 제스처가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정국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총재도 김대통령과 인식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같은 기본정신을 살려 여야 관계 복원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측도 대체로 여야 대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사철(李思哲)대변인은 이총재가 김대통령의 신당간여 부분을 언급한 부분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자 이날 오후 총재단·당직자 연석회의가 끝난 뒤 “이총재가 김대통령이 신당 창당에서 손을 떼라는 것은 기자회견의 본질이 아니다”면서 “이는 국정운영을 정상화하도록 국정 운영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이총재도 “전체적인 (기자회견)맥락은 대화정국 조성에 있다”고 밝혔으며총재단·당직자 연석회의에서 온건론자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동형 최광숙기자 yunbin@
  • 金대통령, 與지도부 오찬 발언 요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일 국민회의 총재단과 고문단·지도위원·당10역·총재특보단 등과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발언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새천년 의의 인류는 다섯번의 큰 혁명을 겪었다.인간출현혁명,농업혁명,도시문명 등장,사상혁명,산업혁명에 이어 여섯번째 큰 혁명이 21세기 뉴밀레니엄혁명이다.21세기는 지식과 정보,문화창조력이 생산의 핵심이다.21세기는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도전의 시기이지만 우리의 지적수준과 문화 창조력에비추어 노력 여하에 따라 한국 웅비의 시대도 될 수 있다. ■대북정책 북한은 전쟁이냐,이대로 가느냐,개방을 향한 변화냐의 세 가지선택 상황에 있다.전쟁은 북한을 괴멸시킬 것이고,이대로 갈 경우 파탄은 불가피하다.중국과 베트남처럼 개혁과 개방의 길로 가야 하지만 그것이 남북비교에서 체제유지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안심하고 체제를 개방할 수 있도록 햇볕정책을 채택했다.햇볕정책은 국제사회에서 큰 평가를 받고있다. 일관성과 성의,확고한 의지로 밀고 나가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정치현안 정치가 다른 분야의 발목을 잡고 있어 국민 불신을 사고 있다.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있다.하지만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여당이 잘할 수없다.나는 야당을 할 때 명분이 있는 일은 적극 협력했다.이제부터 진지한자세로 국정을 끌고가야 한다.언론문건과 옷로비 사건,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부산발언 등 모두를 투명하고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이것이 여당에 불리할 수도 있다.비록 여당에 불리하다고 해도 밝히는 것이 정도(正道)다. 신동아그룹의 로비는 실패한 로비다.대형로비를 실패시킨 것은 국민의 정부가 평가받아야 할 사항이다.그러나 로비대응 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나 책임져야 할 사람이 나타난다면 철저히 책임을 추궁해야 하며 로비사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됐다면 이 점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신동아그룹의 로비는 실패했고,부실경영으로 인해 한국경제에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 처벌을 했으며,현재 금감위 관리하에 재생의 길을 걷고 있다.특별검사에게 맡긴 사항은 특별검사의 처리대로 맡기겠다. 정형근 의원의 부산발언에 대해‘10년전 일을 다시 들춘다’는 말이 있지만 10년전 일을 오늘의 일로 만든 것은 정의원 본인이다.현직 대통령이 간첩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았다고 말한 것에 대한 진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언론문건 문제도 ‘이강래(李康來)청와대정무수석이 작성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그러나 이제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고있다.이것 역시 여야간 합의한 대로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어찌됐건 여러가지 문제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신당 신당은 21세기 도전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필수적 선택이다.현존 정당은 어떤 명분으로도 지역정당이다.21세기의 혁명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전문적 인물들과 당을 만들어 21세기에 대응해야 한다.신당은 어떤 경우에도전국정당이 되어야 한다. 신당은 전국정당과 안정의석을 갖는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신당의 공천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천할 것이며 능력과 애당심,당선 가능성을 중시할 것이다.내년 선거는 공명선거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공명선거를 치를 것이다.정리 박대출기자 dcpark@
  • 金鎔采비서실장 문답

    김용채(金鎔采) 총리비서실장은 30일 국무총리실 출입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조기 당 복귀 배경 등을 설명했다. 김총리가 당 복귀를 앞당긴 이유는. 당에서 계속 요구했다.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고당 인사들이 계속 요청했다. 언제 마음을 바꿨나. 1주일 전인 것 같다.그때쯤 총리가 12월로 예정된 중국과 싱가포르 방문을취소하도록 했다. 김총리가 후임을 추천하나. 모르겠다. 박태준 총재가 후임이 되나. 본인이 원한다면 가능성이 크겠지.그런데 박총재가 한다고 하겠는가. 박총재가 아니더라도 자민련 쪽에서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봐야지.그런데…. 대통령과 조기복귀를 상의했나. 안했다.본인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그러나정치적으로 해석할 것은 없다. 청와대 쪽에서 놀라지 않았나. 놀랄 것이 뭐있나.이미 가기로 한거고 날짜만 조금 차이가 나는데.오늘 오전에 남궁진 정무수석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라. 명예총재로 돌아가나. 그렇다.박태준 총재가있으니까. 김총리가 복귀하면 공동여당 관계는 어떻게 되나. 양당 관계는 강화될 것이다. 합당은 물건너 간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이도운기자 dawn@
  • 예술학교 대학승격 차질 우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한국예술대학교’로 개편하려는 문화부와 학교 관계자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한국예술대학교 설치를 위한 특별법’제정안에 교육부와 대학 예술분야 관계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올 정기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뒤 내년 초에 정식 대학으로 출범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법안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발의되어,지난 26일통과시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다만 공청회를 열어 반대의견을 수렴한 뒤학교이름을 당초의 ‘국립예술대학교’에서 ‘한국예술대학교’로 바꾸고,이론분야에서 일부 학위과정을 제외하는 등 일부 내용의 수정이 이루어졌다.그러나 예술대학의 국립대학화를 반대하는 기존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회의실 복도를 점거하고,일간신문에 성명서를 광고로 내는가 하면,여야당사의 항의방문을 계획하는 등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자 30일 현재까지 법안의 상임위상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양쪽의 주장은 아직까지는 평행선을 달린다.예술학교쪽에서는예술분야의 인재를 효율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관장하는 고등교육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무엇보다 실기전문석사(MFA)나 실기전문박사(DFA)같은 유연한 학위제도를 갖추지 못하면 다른 교육기관과 호환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특별법을 제정하면 초·중등학생을 위한 예비학교를 설치함으로서 예술인재 양성에 필수적인 유아기부터의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여기에 교육법상 ‘각종학교’라는 현재의 법적 지위로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도 내세운다. 문화부도 ‘예술학교의 예술대학 전환은 시대적 필요’라고 말한다.이에 따라 박지원장관은 지난 28일 종합대학의 예술대학장들을 초청,오찬을 나누며법안 통과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기존 대학 관계자들은 “예술학교의 예술대학 전환은 기존 대학의 예술분야 죽이기”라고 반발한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컨서버토리가 필요하다고하여 그동안 국가가 지원해주었음에도,설립 취지를 이루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기존 대학과 차별성없는학교를 만들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기본적으로 ‘예술학교를 예술대학으로 승격시킴으로서 위상도 높이고,각종 처장 등 간부들의 자리도 늘리려는 문화부의 부처이기주의’로 규정한다.그러면서 “기획예산처가 기존의 국립대학을 민영화하는 문제를 검토하고,유사학과를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등 정부의 구조조정 분위기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렇게 되자 예술학교쪽은 30일 “이 문제와 관련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예술교육 제도와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관계자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토론회를 갖자”는 제안을 내놓았다.“법 제정은 예술학교의 처지만을 염두에 둔것이 아니라 예술교육계 전체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거대한 개혁의 물꼬를트는 역사적 작업”이라면 기존 대학교수들의 동참을 요구하던 지난 28일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타협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한-필리핀 통상협력 강화

    [마닐라 양승현특파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한·중·일’ 정상회의참석을 마치고 29일부터 필리핀 국빈방문에 들어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전 말라카냥궁에서 조셉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무역·통상분야에서 실질적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 정상은 무역·통상분야 교류확대를 위해 반덤핑규제 완화와 빠른시일내 선적(船積)전 검사 폐지,필리핀산 바나나 관세인하 등 열대과일의 한국수입 확대 및 검역절차 단축 등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 대통령은 특히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한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요청에 “한국은 북한이 다른 국가와 관계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것을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외교관계 수립에 앞서 한국정부와 충분히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또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렸던 양국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필리핀 해군 현대화 사업과 ‘일리한’ 지역의 발전소 건설사업,필리핀 정부가추진중인 부동산 등기 전산화 사업 등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필리핀 경제4단체가 공동 주최한오찬연설에서 “수교 반세기를 맞아 두 나라의 협력이 동아시아 협력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뒤 양국 기업인들에게 ▲양국 경제관계의 전략적제휴관계로의 발전 ▲농업기술 분야의 협력 강화 ▲관광 분야 협력 강화 및발전 등 4가지 발전방향을 제안했다.특히 인프라 스트럭처 분야와 코드분할다중접속 방식(CDMA)이동전화 등 통신분야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30일 오전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고,수행기자 간담회를 가진 뒤 3박4일간의 필리핀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다. yangbak@
  • 김대통령 필리핀 방문, 양국 頂上회담 성과

    [마닐라 양승현특파원] “지금도 필리핀의 많은 민주 인사들과 두 나라의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했던 지난 80년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9일 필리핀 경제 4단체가주최한 오찬에서 행한 연설의 한 토막이다. 이번 한·필리핀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러한 가치체계의 공유로 볼 수 있다.다시 말해 수교 반세기를 맞아 양국간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에 대한 정상간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김대통령도 회담에서 “필리핀과 한국은 일각에서 제기된 ‘아시아에서는민주주의가 적합치않다’는 주장이 맞지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이러한 이념의 공유야말로 두나라가 단순한 우방 이상의 진정한 친구이자 동반자라는 반증”이라고 양국관계를 표현했다. 두나라 정상은 이를 기초로 필리핀과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문제를 협의하고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현안의 후속조치와 무역·통상분야의 확대 문제를논의했다.김대통령은 먼저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을 지원한다는 우리의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이어 2000년 1월부터 필리핀산 바나나의 수입관세를 현행 60%에서 50%로 낮추겠으며 수입농산물의 법정 검역기간 단축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또필리핀 산업연수생의 한국파견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연장에서 김 대통령은 세일즈외교를 펼쳤다.필리핀의해군 현대화 사업,발전소 건설사업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요청한 것이다.양국간 교류협력의 영역을 단순 무역차원이 아닌 전략적 제휴관계로 발전토록 꾀한 셈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로평가된다. yangbak@
  • [현장] 지나친 환대에 무색해진 국제경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몇차례 국제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50·창원시 대방동)는 ‘F-3코리아 그랑프리대회’를 주관하는 경남도가 대회에 참가한 선수·임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초 예상을 빗나간 광고 유치 부진과 2배 가까이 불어난 경주장 건설비로적자 대회가 뻔한 줄 알면서 매일 선수단을 특급 호텔과 유명 관광지로 초청,호화판 오찬과 만찬을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대회조직위원회가 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동원한 ‘레이싱 걸’에게 외국선수들과춤추게 하고 술을 따르게 했다. 도는 자동차 관련산업을 육성시킨다는 취지로 이번 대회를 유치했다.이를기계공업도시인 창원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호기로 삼고 갖가지 계획도 세웠다.그중 한가지가 선수단의 환영연에서 송별연에 이르는 오찬과 만찬 및위안행사. 도는 이번 대회를 전후해 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들의 주관으로 모두 7차례의 오찬과 만찬행사를 열고,‘선수 위안의 밤’과‘출연진 댄스페스티벌’을 두 차례 가질 계획이다. 지난 23일 선수단이 도착하자 도지사는 도청 도민홀에서 선수·임원 환영만찬을 베풀었다.식사는 인터내셔널호텔에서 날라온 양정식이었다.24일에는 창원호텔에서 ‘선수 위안의 밤’이 열렸으며,25일에도 도의회 의장과 행정부지사,농협 경남본부장 등이 주관하는 환영만찬을 했다. 대회가 시작된 26일 도교육감과 경남경찰청장,경남은행장 주관으로 국내선수와 진행요원에게 저녁 식사대접을 했으며,이어 27일에는 인기 연예인 등이 참가하는 호화 전야제가 호텔에서 열린다.그리고 28일에도 대규모 오찬행사와 송별파티가 계획돼 있다. 이밖에 26일 ‘도지사와 함께하는 선수 위안의 밤’이 열렸으며,‘출연진댄스페스티벌’은 28일 열린다. 김씨는 “대회가 열리면서 겪는 교통체증과 소음 고통 등은 참을 수 있지만외국선수들을 불러와 지나치게 환대하고,우리 딸들이 그들에게 헤픈 웃음을흘리며 술을 따르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도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자존심마저 버린 데 대해 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참가 선수들에게 창원시와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필요한 행사”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구겨진 도민들의 정서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정규 전국팀기자 jeong@
  • 與 대폭 물갈이 임박

    ‘여권 물갈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신당창당준비위의 공식 출범으로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현역의원이든,원외위원장이든 예외없이 공포감에 휩싸여있다. 곧 휘몰아칠 ‘태풍’의 강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국민회의측은 대규모 물갈이를 대세(大勢)로 받아들이는 기류다.한 핵심 관계자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 내년 4월 총선에서 당선이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교체하겠다는 게 수뇌부의 의중”이라고 말했다. 물갈이 기준으로는 신당준비위원 분포도가 제시된다.전체 3,648명 가운데외부인사는 2,444명으로 1,204명인 당내인사의 두배다.이를 감안해 물갈이폭은 최소한 40∼50%가 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호남지역이 우선 거론된다.구체적인 물갈이 규모까지 나온다.광주 6곳중 4곳,전남 17곳중 12∼13곳,전북 14곳중 8곳 등이 대상이라는 소문이 나돌고있다.동교동 가신 출신 의원들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역시 예외가 아닌 분위기다.여권의 또다른 핵심 인사는 “수도권에서 출마할 경쟁력있는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면서 “다만 현역의원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그러나 “연말까지는 정리돼야 총선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걸림돌은 한 둘이 아니다.우선 현역의원들이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의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회의가 제때 못 열리는 사례가허다하다. 상당수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몰두하느라 국회를 비우기 때문이다.이들이 기득권을 외치며 버티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원외 지구당위원장이라고 해서 그냥 물러날 자세가 아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12일 원외위원장 90여명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한 것도 도닥거리기 위한 차원이다.지난해 8월 통합한 국민신당파에 약속한 지분 20% 보장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기에 선거구제 문제가 가로막고 있다.유동적인 자민련과의 합당 여부는가장 빼놓을 수 없는 지연 요인이다. 박대출기자 dcpark@
  • 김대통령 한광옥 비서실장 발탁 인선 뒷얘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과 김정길(金正吉)정무수석을 교체하는 등 청와대 비서실의 대폭 개편을 결심한 시기는 언제일까.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지난 20일쯤일 것으로 관측된다.25일 신당창당준비위 발족에 맞춰 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청와대 비서실의 위기관리능력 미흡 지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19일 김전비서실장으로부터 사퇴 의사를 전달받았을 때만 해도 강한 신뢰를 표시하며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총재의 언급 이후 김대통령은 동교계의 맏형인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고문 등을 관저로 불러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이미 2개월 전부터 옷로비 의혹과 언론문건 파문을 둘러싼 청와대의 위기관리 능력을 지적하는 조기개편 건의가 잇따르던 터였다. 이어 20일 오전 김실장과 김정무수석이 다시 관저로 올라와 거듭 사의를 표명하자 “내일(21일) 점심때 얘기하자”며 아무런 언질없이 돌려보냈다.김대통령이 이때 마음 속으로 교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김실장도 교체발표가 있은 뒤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해 보자”는 김대통령의 말에서 교체를 감지했다고 털어놓았다. 김대통령은 이날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도 불러 의견을 구한 것으로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오찬뒤 한부총재를 불러 넌즈시 의견을 타진했다.이때 김대통령은 최근 정국상황을 논의하면서 “비서실장에 누가 적임이냐”고 떠봤고,한부총재는 “대통령과 당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추천해 김대통령이 깔아놓은 포석에 ‘걸려들었다’는 전언이다.김대통령은 당시 “그러면 한부총재가적격”이라며 최종 결심을 구했다는 것이다. [양승현기자]
  • 金重權실장 · 金正吉수석 문답

    청와대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과 김정길(金正吉)정무수석은 22일 오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한 뒤 기자들에게“내년 총선에 출마,대통령이 새로운 정치구상을 펼치는 데 일조하기 위해신당행을 결심했다”며 사임 배경을 털어놨다. ●사임 동기는. (김실장)비서실장을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대통령을 보좌해 왔다.당면한 과제로 영호남이 하나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왔으나 아직도 내가 생각한 그런 화합의 장이 펼쳐지지 않고 있어 총선출마를 결심,신당행을 택했다. (김수석)대화로 풀어가는 정국을 만들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다행히 진실이밝혀졌으나 집사람이 옷로비 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내려 수석으로 있는것이 큰 부담이 됐다. ●대통령과 상의했나. (김실장)지난 19일 관저에서 대통령과 조찬을 했는데,국정운영에 강한 믿음과 신뢰를 줬다.그러나 20일 김정무수석과 함께 집무실로 올라가 사임의사를분명히 말씀드렸다.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21일 관저에서 오찬을 함께하자고했다.오찬에서 다시 ‘원하든,원치 않든 정치에 뜻을 둔 비서관들이 있다는지적을 받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후임 인선은. (김실장)아직 확정되지 않고 검토 단계로 알고 있다. ●다른 수석들의 출마는. 나와 김수석뿐이다. ●출마 예상지역은. (김실장)대구·경북 어느쪽도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된 뒤결정할 것이다. (김수석)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당에서의 역할은. (김실장·김수석)구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양승현기자
  • 金대통령, 창원 바르게살기 전국대회 참석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서경원(徐敬元) 전의원 밀입북 사건과 이에 따른언론자유 문제를 언급했다.검찰 재조사 이후 첫 공식 언급이다.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 10회 바르게 살기 운동 전국대회와 지역인사와의 오찬 자리에서다.경남지역인 만큼 지역정서 문제도 거론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지역인사 오찬에서 IMF 위기 2주년이 다가오고 있는 점을상기시키며 “나라의 붕괴위기를 넘기게 됐다”고 강조했다.앞선 전국대회연설에서는 이보다 훨씬 강도높게 “국민과 함께 다짐하고 결의한 대로 1년반만에 IMF 외환위기를 완전히 이겨냈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언론자유 문제를 거론했다.“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현 정부가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제한뒤 과거 서 전의원 밀입북사건때와 최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빨치산’ 발언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비교했다. “과거 언론은 나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서 전의원으로부터 턱도없는 1만달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결국 야당총재였던 내가 공산당에게 돈이나 받은 것처럼 비쳤다.80년 내란 음모사건때도 사형언도를 받자 용공분자라는 보도도 했다.당시 언론은 알고도 쓰지 못했다.그에 비해 지금은 야당이 대통령을 빨치산이라고 말하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나는 역사 속에서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앞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길에서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그러면서 지역갈등 문제를 끄집어냈다.김대통령은 “나같이 지역차별로 고통받은 사람도 없다.아무 죄없이 영남지역에서 차별을 받아왔다”고 말문을 열었다.이를방치하면 조상과 후손에 죄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한나라 ‘단합?’/이총재-비주류 중진 골프치며 “잘해봅시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당내 비주류의 ‘수장’격인 김윤환(金潤煥)·이한동(李漢東) 전 부총재,이기택(李基澤) 전 총재권한대행이 지난 13일서울 근교에서 골프를 쳤다.이 총재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주요 당직자회의를 주재한 뒤 중간에 합류,이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번 골프 회동은 이 총재와 이한동 전 부총재의 ‘관계 개선’을 위해 허주(虛舟·김윤환 전 부총재 아호)가 어렵사리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총재측의 골프회동 제의를 몇 차례 사양했던 이 전 부총재도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허주의 간곡한 권유에 못이겨 승낙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인지 모임에서는 허주가 대화를 대부분 이끌어 갔다.김 전 부총재는 “총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총재를 중심으로 뭉쳐야 선거에도 이기고,국민들 보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 이 전 부총재와 이 전 대행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전 부총재에게 선수(先手)를 빼앗긴 이들은 ‘좋은 얘기’라고 거들었다는 것이다.이에 이 총재는 “고맙다.주류·비주류를 따질 게 아니라 총선 승리를 위해매진하자”고 화답했다.정치적인 얘기는 이 정도 선에서 끝났다. 다른 참석자들은 이같은 모임을 주선한 허주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허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종의 역할을 내세워 공천 지분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金대통령의 정국 소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2일 국민회의 원외지구당 위원장 오찬에서 정치개혁과 여야관계,언론자유 등 최근 정국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한달여 만이다. 김대통령은 정치개혁과 여야관계를 먼저 꺼냈다.“이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며,여당인 우리들의 책임이 크다”고 여권 자성론(自省論)을 제기했다. 이어 야당의 협조를 거론했다.“정치는 여야가 같이 하는 것으로,야당이 잘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취임 초 야당의 국무총리 인준안 처리 거부 등의 사례를 다시 적시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지난 13대 여소야대 시절과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야당총재로서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압력을 비판하는 등 국정에 적극적으로협조한 사례들을 상기시켰다.“나는 애국심을 갖고 야당총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며 현 야당의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화두(話頭)는 신당으로 넘어갔다.대통령은 “새 천년을 맞아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했다.김대통령은 “2000년에 대비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하고,인터넷 시대에 대응할 정치체제가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물론 불안해 하는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을 다독거리는 것도 잊지않았다.“몇 %의 물갈이는 근거가 없다” “선거구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다”는 게 김대통령이 이들에게 건넨 얘기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은 언론자유에 접근했다.현 정부의 언론자유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사례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의 장외집회 발언을 꼽았다.“야당이 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빨치산에 비유하는 그런 소리를 하는세상이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90%가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누차얘기하지만,정부가 개입해 언론개혁을 하면 안된다”고 거듭 지론을 강조했다.양승현기자 yangbak@
  • “새천년 걸맞는 정치체제 필요”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데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고,여당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뒤 “새천년을 맞아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지식과 정보,문화창조력에맞는 정치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만섭(李萬燮)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 지도부와 원외지구당 위원장 1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정치는 여야가 같이 하는 것이므로 야당도 잘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 여당의 한계”라면서 “내년 총선을 통해 반드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여당의 안정세 확보가 중요하다”고강조했다.또 “여당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생활이 안정된다”며 “총선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구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라면서 “선거구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연히공천한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언론문제에 대해 언급,“국민의 90%는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부가 언론을 억압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된다”면서 “나는 언론의 자유를 확고히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과거 언론의 자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지를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이 정상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을 경우국민의 권리로,또는 이해당사자로 시정을 요구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합당등 朴총재 뜻 따르겠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9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오찬회동을 갖고 합당문제와 중선거구제 문제 등과 관련,“당총재의 마지막 결심을 따라야 하며 나도 솔선해서 따르겠다”고 밝혀 ‘선(先)중선거구제 관철,후(後)합당논의’라는 박총재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김총리는 지금까지 합당문제 등에 대해 ‘당론’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김총리는 또 “정기국회를 마무리짓고 내년 초 당에 돌아가 여러분과같이 뒹굴겠다”고 밝혀 내년 1월초 당복귀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金총리·朴총재 화기에 찬 만남 이모저모

    김종필(金鍾泌·JP)총리와 자민련 박태준(朴泰俊·TJ)총재가 9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일본 정부로부터 1등 훈장인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을 받은 박총재를 김총리가 축하하는 자리였다.자민련 소속 의원 34명과 당무위원,고문단도 합석했다. 두 사람의 공식 회동은 지난달 14일 이후 근 한달만이다.JP와 TJ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최대한 예우하는 발언을 주고받았다.최근 JP가 외견상 합당 추진에서 한발 물러서는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JP는 인사말에서 “당의 총재는 박태준총재이므로 ‘박총재님’을 정점으로굳게 뭉쳐야 한다”면서 TJ에게 한껏 무게를 실어줬다.이어 “정당이라고 해서 도에 지나친 갑론을박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당론화됐을때 거기서 벗어나면 당원의 자격이 없다”며 내각제 개헌유보에 반발,신당 창당을 모색중인김용환(金龍煥)의원을 겨냥했다. TJ는 이에 대해 “명예총재가 당에 돌아오면 ‘정치 10단’의 관록을 갖고적절한 방향으로 지도해달라”고 치켜세웠다.이어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있었지만 ‘자민련은 자민련’이라는 기치 아래 한덩어리로 뭉쳐 공동정권의한 축으로서 역할을 다해왔다”면서 “당이 어느때보다 어렵지만 현재 결정된 당론에 따라 당세를 확장하기를 당부한다”며 ‘합당반대’의사를 거듭확인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요르단國王 새달4일 방한

    요르단의 압둘라 2세 빈 알 후세인 국왕 내외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으로 다음달 4일부터 6일까지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8일 발표했다. 김 대통령과 압둘라 2세 국왕은 4일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 사이의 실질협력 증진 방안과 한반도 및 중동지역 정세 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협의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대국 진출 기업들의 자유로운 기업활동과이익보호를 위한 이중과세 방지협정 체결을 방침이다. 특히 지난 83년 후세인 전 국왕의 방한에 이어 요르단 국왕으로서 2번째인압둘라 2세 국왕의 이번 방한으로 우리의 대 중동외교가 한 차원 높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 대변인은 설명했다. 압둘라 2세 국왕의 방한 일정은 12월4일 경제 4단체장 주최 오찬,공식환영식,정상회담,국무총리 면담,김 대통령 주최 국빈만찬에 이어 5일에는 전방시찰,대우자동차 공장 방문,요르단 주최 관광설명회 참석 등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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