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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CIS 마자르 박사 「북한과 핵…」 강연 내용

    ◎“「북핵 장기화」 일관성 없는 정책탓”/한·미 동맹관계 유지속 분명한 대북 압박 필요/북 관리들 김일성 사망 예상… 핵 협상 타결 시도 한반도 및 국제문제전문가인 미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마이클 J 마자르박사(국제안보담당 선임연구원)는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22일 하오 프레스센터 12층강당에서 「북한과 핵,그리고 한반도」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갖고 북한문제에 대한 일관성있는 정책수립과 겸손한 문제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아·태안보협력위원회 창설멤버이기도 한 마자르박사는 현재 CSIS가 간행하는 국제관계전문 권위지 「The Washington Quarterly」의 편집인이며 한·미 두나라의 대북정책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북한과 핵­핵확산방지의 한 고찰」 등 7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다음은 강연내용 요약. ○평양 내부사정 오리무중 북한과 북한의 핵야욕에 대해 연구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원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인지,세계를 위협해 정치·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인지,아니면 남침 능력을 키우려는 것인지.북한의 핵개발 이유를 모르고서는 그 위험에 대해 포괄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우리는 또 북한내부의 정책토론 특성에 관해서도 아는게 별로 없다.일부에서 믿고 있듯이 강경파와 개혁파들사이에 명백한 분열이 있는지,오늘날 평양에서 누가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게다가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아마 알기 어려울 것이다.우리가 영변에 있는 핵폐기물 처리시설 2곳을 사찰한다고 해도 여전히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하리라고 나는 단언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한개 갖고 있는가,아니면 두개인가.우리는 잘 모른다.북한이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우리 정보기관이 말할 때 그것은 추측이다. 내가 북한 핵문제를 연구하면서 배운 것은 그 문제에 대해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가 모르는게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연구과정에서 발견한 몇가지 중요한 사실과 교훈을 얘기하겠다. 세가지 발견중 첫째로,여러분들은 부시 전대통령이 지난 91년9월 한반도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지·해상배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의 중요한 터닦기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발표는 그보다 1년전에 이뤄질 수 있었다.부시의 그같은 핵구상은 90년 8월2일 애스핀연구소 연설문에 포함됐었다.그러나 연설 몇시간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미국은 후세인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키는 어떤 신호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그 구상을 연설문에서 빼버렸다.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주도는 1년전에 시작됐을 것이고 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의 전반적인 과정은 급격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두번째로,클린턴행정부 출범직후 애스핀 미국방장관은 한반도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담한 계획을 내놓았다.그 계획은 미국이 고위급 사절을 평양에 보내고,만약 북한이 핵무기제조작업을 중단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제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거부하면 제재와 봉쇄를 준비해야한다는 세가지 제안을 담고 있었다. 이같은 접근방식은 당시 미정부의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거부됐다.그러나 미국 외교는 결국 국방부계획이 적시한 바와 같이 세가지 요소를 충족시켰을 때만 성공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즉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 평양에 갔고,「합의의 틀」은 북한에 대해 이익 제공을 명시했으며,제재에 대한 미국의 반복된 언급은 위협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한반도 핵철수 90년 구상 마지막 발견은 북한의 94년초 사고방식과 관련돼 있다.그해 4,5월 북한은 핵프로그램 동결 약속을 깨고 원자로에 핵연료를 재장전하겠다고 위협했다.이러한 위협은 커다란 위기를 자아냈고 이 위기는 카터가 평양에 갔을 때야 해결될 수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옵서버들은 북한의 동기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다.그러나 북한으로부터 흘러 나온 새로운 정보들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공했다.일부 북한 관리들은 김일성이 단지 몇달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평양측이 94년초 들었다고 외부의 학계에 밝혔다.그 당시 북한내에서 핵문제 타협을 원했던 층들은 김이 생존해 있는 동안 그의 승인을 받아야만 타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94년 봄의 위기는 세계의 이목을 끈 뒤 김이 죽기전에 거래를 마무리하려 했던 북한 관리들에 의해 도발된 것일 수 있다. 내가 연구과정에서 발견한 몇가지 사실들은 우리가 북한의 사고에 대해 참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제 두가지 교훈으로 화제를 바꾸겠다.하나는 핵확산 금지가 한·미 양국의 국익에 얼마나 부합되는지의 문제에 관한 것이고,다른 하나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일관성 있고 의미있는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첫째,우리 두나라 가운데 어느 쪽도 핵비확산이 국익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 있어서 이것은 범세계적인 문제다.한국에게는 주로 북한문제다.그러나 우리 두나라는 동일한 기본적 결정에 직면하고 있다.핵확산금지는 국익과 외교정책목록의 어느 위치에 놓여져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관리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핵비확산은 절대적인 이해의 문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북한이 단 한개의 핵무기도 갖는 것을 용인할 수없다』는 성명도 나왔다.이러한 목표를 위해 양국은 제재와 봉쇄,심지어는 전쟁불사까지도 위협했다. 때때로 북한에 대한 미국 외교는 핵비확산이 북한과의 관계개선보다 더 중요하고,심지어는 평화롭고 안정된 통일보다도,평화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조건부 관계 개선이 최선 그러나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핵비확산이 절대적인 이해의 문제는 아니다.그것은 많은 이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만약 북한이 한 쪽에 한두개의 핵무기를 들고 있고 다른 쪽에 전쟁이라는 카드를 보인다면 우리는 항상 핵무기쪽을 선택할 것이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나 중국과 불화,대가가 큰 북한해안의 봉쇄보다도 한두개의 애매모호한 핵무기를 선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렇게 균형잡히고 적절한 방식으로 핵비확산을 생각해오진 않았다. 핵비확산의 진정한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고의 혼란은 특히 목표설정과 관련이 있다.우리는 북한 핵개발계획의 완전 중단을 추구하는가,아니면 미래의 핵개발 중단만을 추구하는가.어느 수준까지 모호성을 용납할 수 있는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외교의 첫번째 주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즉 우리는 외교정책에서 핵비확산의 역할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사고하고 잘 정의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교훈은 북한에 대한 전반적 전략과 관계가 있다.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전략이나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의 민주화와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최선의 방법이 북한과 관계개선인지,고립화인지하는 큰 문제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혼란은 시작된다.미국은 쿠바와 이란을 고립시키지만 중국·베트남과 유대관계를 추구한다.우리는 전략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즉 국내 유권자들때문에 북한에 대해 중간적인 자세를 취한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폭넓은 전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문제에 대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지를 모른다.만약 우리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면 중요한 경제투자 제의가 의미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그렇지 않다.고립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제재조치가 올바른 정책이 될 것이다.그러나 적어도 그에 대한 컨센서스는 없다. ○핵 비확산 중요성 정의를 북한의 핵문제는 핵무기나 인권 등 북한에 대한 개별적 정책이 보다 커다란 전략을 벗어나서는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그러한 전략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략적인 틀이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강경에서 온건으로,관계개선에서 고립으로 표류할 것이다. 두가지 교훈을 종합할 때 우리는 먼저 한반도에서의 핵비확산의 진정한 중요성을 정의하고 그 다음 북한으로부터 우리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분명한 전략을 개발해야만 한다.우리가 이 두가지 과제를 완성했을 때에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외교가 강해지고 일관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지난 1월 클린턴 미대통령은 「합의의 틀」을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물론 정치적인 이유때문이었다.이것은 올바른 결정일 수도,아닐 수도 있다.그같은 결정이 보다 큰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게 내 견해다. 핵문제가 한·미관계에 긴장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핵위기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있어 북한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나 협상방식,합의의 형태 등에서 때때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또 일치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양국간 안보관계의 지속이라는 대명제이다.우리의 동맹관계는 지난 40년간 평화라는 대의명분에 이바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자르 인터뷰/“쌀 제공 통한 북한 변화 기대 어려워” 『최선의 대북한 기본전략은 관계개선 추구라고 생각한다』­마이클 바자르박사는 22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의 북한핵을 주제로 한 강연에 앞서 서울신문사와 가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강조했다. ­북한이 서방국가들에 쌀을 요청한데 대해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이라는 시각과 정권의 위기라는 시각이 있는데. ▲쌀문제가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이라든가,북한정권 최후의 위기라든가 어느 쪽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한국이나 일본이 쌀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중국이라도 나서서 북한의 붕괴를 막도록 지원할 것이다.쌀제공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무리다.우리는 회의적인 시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북한정권 붕괴를 강요할 경우 한국에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한·미양국의 바람직한 기본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관계개선 추구인가,아니면 고립화인가. ▲최선의 대북한 기본전략은 조건부 관계개선 추구정책이라고 생각한다.한·미 양국간 의견조율은 계속돼야 한다.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관계가 북한의 이해득실이 걸린 문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관계가 증진될수록 북한의 이해관계는 높아진다.물론 북한이 계속 잘못한다면 이득될 것이 없다는 메시지는 계속 전달돼야 하며 이미 전달됐다.앞으로 남북한간 정치·경제교류가 많아지면 우리는 위기시 이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한·미·일과의 관계를 전담하는북한내 지도층 인사는 문제가 생길 경우 관계악화를 막도록 힘쓸 것이다. ­북·미간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이 늦어지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지만 경수로 제공과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는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뤘다.큰 위기가 없다면 적어도 연내에 연락사무소 개설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망은.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우선 북한이 지도층간의 분열이나 식량부족등 내부문제로 인해 동독처럼 갑작스럽게 붕괴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그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정권이 어느 정도 계속 존재하면서 남북한이 점진적으로 관계개선을 이뤄 통일이 수년간 지연되는 시나리오다. 북한이 2∼4년내에 붕괴한다거나 5∼7년중에 통일이 가능하다는 예상도 있으나 내가 보기에 한반도 통일은 그보다 훨씬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같다.북한은 10년이상 존속하고 결국 두정부의 협상에 의해 통일을 이룰 것으로 본다.
  • 북한 군부의 실세/이하일/김명국/박재경/「최측근 신트로이카」급부상

    ◎본사 통일안보연 발행 「북한인명사전」은 말한다/떠오르는 별 14명… 혁명 1세대는 전역할듯/김정일,올들어 12차례 군관련 활동… 「군심 어루만지기」 나서/측근3명 「군사위」에 보강… 등국 수준 마쳐 병영국가인 북한에선 최고실권자를 누가 가장 가까이서,또 얼마나 자주 「모시느냐」에 따라 힘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그런 의미에서 김정일의 군관련 활동시 그를 수행하는 장령(장성)들은 현재 김의 신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향후 김정일정권 출범시 요직을 차지,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인물로 봐도 좋을 것 같다.현역 병력수 세계 제5위의 북한군.그 북한군을 틀어쥐고 있는 실세는 과연 누굴까.다음은 주요 북한인물 1만6천명의 활동사항을 추적,해마다 내용을 수정·증보하고 있는 서울신문사 발행 「북한인명사전」 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명한 북한군 실세들의 면면이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의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군사분야를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꼽고 있다.동시에 김정일이 각 분야를 차례로 장악·통제해 나가면서 맨나중에 접근한 것도 군부라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이는 김정일의 군경력이 없는 탓도 있지만 그만큼 ▲군부의 지지가 확고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이런 맥락에서 김일성 사후에 이뤄지고 있는 김정일의 잦은 군부대방문과 군관련행사 참석은 다분히 「군부 어루만지기」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즉 김일성사망 이후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물리력을 지닌 군부를 다독거려 이들의 저항을 무마하는 동시에 「최고사령관­전사」간의 친화를 과시함으로써 충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는 것이다. 「북한인명사전」 수록자료분석 결과 지난 연초부터 6월말까지 군과 관련한 김정일의 활동은 모두 12차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그리고 김의 행차엔 대장 이봉원·이하일·김명국 상장 박재경이 밀착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북한군 현역 장령(장성)수는 약 1천2백명.이 가운데 상장(우리의 중장)급 이상 핵심장성들은 거의가 군부 엘리트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군사대학·강건종합군관학교출신들로 김정일의 친위군맥을 형성하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고 있는 실세는 15명 내외인 것으로 분석됐다. 에서 보듯이 12차례의 김정일 군관련 활동 때 대장 이봉원이 9차례를 수행,현 시점에서 그가 김정일의 군사분야 최측근임을 시사했다.차수 최광은 총참모장임에도 불구,김정일을 7번 수행하는데 그쳐 3위에 머물렀으며 대장 이하일·대장 김명국·상장 박재경이 각각 8차례 김정일을 수행,역시 그들이 요즘들어 잘나가는 실세임을 보여주었다.수행 빈도 랭킹 4위는 각각 6회를 기록한 차수 이을설·김광진·상장 김하규가 지켰으며 4회씩을 기록한 대장 김일철·조명록이 5위에 랭크됐다.차수 백학림은 3회로 6위.최근들어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진 대장 박기서는 두번 김정일을 수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봉원(70)◁ 인민무력부 작전국장,525부대사령관,534훈련소사령관 등 요직을 섭렵한 인물로 야전보다는 정치국쪽에서 주로 근무했다.노동당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 시절 함남도당위원회를 맡아 연안파 잔존세력과 남로당계 잔존자들을 대량 색출,김일성유일지배체제확립에 공을 세워 김부자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가 빈번하게 김정일을 수행하는 것은 김의 신임이 두터운 까닭도 있지만 오진우사망으로 공석 중인 인민무력부총정치국장직을 조직담당 제1부국장인 그가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그러나 일부 귀순자는 『김정일의 믿음이 이봉원으로부터 떠난지 이미 오래』여서 당분간 현 직책을 맡다가 곧 예편될 것이라고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하일(65)◁ 대장이자 현직 노동당 군사부장.지난 80년 처음으로 노동당중앙위원에 선임됐으며 제7기(82) 때부터 지금까지 3회에 걸쳐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내고 있다.공식서열 40위.당중앙위위원,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 위원.82년 김일성훈장 수훈. ▷박재경◁ 김정일의 군부대시찰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박의 현직은 인민무력부 선전담당부국장.김정일위상강화작업의 선봉에 서있는 인물이다.최근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11월 최광의 베트남·라오스 순방시 동행,군사외교의 한 축을 맡고 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당중앙위 후보위원. ▷김명국◁ 92년 4월 상장으로 진급하면서 처음 알려진 북한군 작전통.상장진급 2년 후인 94년 4월 대장으로 고속승진.김은 이어 주도일차수 사망(94·7·1)으로 공석이 된 북한군의 노른 자위인 평양방어사령관에 발탁됐다.김일성으로부터도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으며 김정일집무실 파견근무경력도 갖고 있다.당중앙위원,당중앙군사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광진(67)◁ 6·25참전 이후 포병사령관,부총참모장을 거쳐 85년 인민무력부 부부장에 올랐다.그동안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김은 김일성 사후 각종 행사에 참석,군부대 대표로 연설하는 등 급부상하고 있다.최광 또는 오극렬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올라갈 경우 1순위 후임 총참모장으로 점쳐지고 있다.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로 우리에게 낯이 읽은 그는 핵개발과 관련,인민군내에서 제일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차수,당중앙군사위원,당중앙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김하규◁ 포병 출신으로 교도지도국장을 거쳐 지난 92년 포병대회때 「보고」를 맡았다.현직 포병교도지도국사령부 국장,당중앙군사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군관으로 근무 중이어서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김일철(67)·조명록(65)◁ 현직 해·공군사령관으로 2대에 걸쳐 김부자에게 충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북한군내 1.5세대다.특히 김일철은 김정일의 해군 보좌역으로 군부대 및 함정찰 때 수행,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20년째 공군사령관직을 고수하고 있는 조명록도 김정일시대의 군부에서 부상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 군부대시찰시 수행은 않고 있지만 「김정일 군맥」의 파워맨으로 분류되는 장령 중에서 우뚝한 사람으로는 다음의 6명이 있다. ▷박기서◁ 현역 820기계화군단장.지난 92년 4월 김정일이 6백64명의 장성을 진급시킬 때 대장으로 진급했다.82년 4월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86년 2월 당중앙위원에 진출.김정일과 친척관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당중앙군사위원. ▷김두남(67)◁ 김영남 정무원부총리 겸 외교부장의 동생.지난 85년부터 김일성의 무관으로 근무하다 김일성 사후 김명국의 뒤를 이어 김정일의 군사무관을 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군사아카데미 유학경력을 가진 그는 80년 52세 때 당군사부장을 지냈으며 당조직지도부 군담당부장에 기용됐던 엘리트다.대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원응희◁ 425기계화군단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도 상장 박재경과 더불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 ▷김강환(63)◁ 현직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주로 작전분야에서 근무해온 그는 김정일이 북한의 수령 후계자로 공식추대된 80년 6차 당대회서 정치국후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된데 이어 인민군부총참모장에 올랐다.84년 김두남의 뒤를 이어 당군사부장에 임명돼 한동안 김정일의 군사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오극렬(64)◁ 전 인민군총참모장이며 현 당작전부장.김정일의 군부내 오른팔이기도 한 그는 80년대 중반 어린 나이에 인민군총참모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인민군의 무기현대화와 정규전교리발전에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장성우(67)◁ 오극렬 이봉원과 함께 군부내 김정일의 최측근 트로이카로 꼽히고 있다.김의 매제인 노동당 3대혁명소조부장 장성택의 형으로 현직 사회안전부 정치국장.대장으로 노동당중앙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고 있다.백학림이 물러날 경우 사회안전부 후임부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상의 14명이 「떠오르는 별」이라고 한다면 곧 「떨어질 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대부분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활동을 한 혁명1세대들인 이들은 멀잖아 원로대접을 받으며 군복을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의 전면등장과 함께 퇴장이 예상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차수·사회안전부장 백학림,차수·사회안전부장 이을설,3군단사령관 이두익 등이 꼽히고 있다. 최근 북한은 당중앙군사위원에 차수 김광진과 대장 김명국·박기서를 보강한 것으로 확인됐다.당중앙군사위원으로 추가된 이들 3명은 모두 김정일의 측근으로 이번 개편이 김정일 측근세력의 부상과 당의 역할강화에무게가 실린 것이란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특히 당중앙군사위원의 교체는 김정일의 군장악과정 중 마지막 수순으로 분석돼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렇게 볼 때 현재 북한군은 공식적인 김정일 후계체제 출범에 앞서 「과도기」의 위기관리를 담당,권력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김정일의 북한 1년(오늘의 북한)

    ◎노동당 비서 11명 풀가동… 쌀외교 주력/「김일성 유훈」 실천 독려… 식량난 해결 심혈/아·태시대 개막대비,외교관들 대폭 경질/황장엽·김용순·김영남 맹활약… 요인 24명 1회이상 외국방문 김정일이 「상중」이란 이유로 권력 전면등장과 대중앞 출현을 꺼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1년간 김용순 황장엽등 11명의 노동당 비서들에 의해 이끌어져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비록 눈에 드러나게 행보는 하지 않았어도 김정일은 막후에서 노동당비서국을 장악,북한핵타결과 쌀지원,서방을 겨냥한 남방외교 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분석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가 20일 간행한 1995년 개정·증보판 「북한인명사전」이 파악한 북한요인들의 지난 1년 행적 정밀분석결과 밝혀진 것이다.다음은 북한인물 1만6천명을 수록,규모와 내용면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북한인명사전」수록자료분석을 통해 조감해본 요인들의 주요활동과 북한의 지난 1년 결산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없는 북한」을 이끌어온 지난 1년동안 주요 직책에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내 권력의 큰 부침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그러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봉률 사망 등 변수가 돌출,그의 전면등장시 세대교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은 또 숙부인 김영주등 4명의 부주석에게 업무를 분담시킴으로써 충성심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년간 김일성의 유훈이란 그늘막에 숨어서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즉위」시기를 늦춤으로써 자신의 「효자」이미지를 한껏 치켜올리면서 「등극」에 필요한 정지작업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김정일 무얼 했나 김일성 사후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김일성 노선을 충실히 답습,주민들에게 소위 「유훈관철」을 독려해온 것으로 분석됐다.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간단없이 지속돼온 「운동」이나 「전투」에 지쳐 이젠 어떤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도 움직이질 않는다고 한다.따라서 기계 대신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는 김정일에게 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김일성의 「유훈」은 허기진 주민들을 노동현장으로 내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두번째로 김정일은 인민군 끌어안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벽두 제241부대(1.1)방문으로 시작된 김정일의 군선무활동은 지난 4월말까지 ▲제9차 군선동원대회 참가자 접견(1.28) ▲제291부대 여성해안포중대(2.5) ▲해군 155부대(2.6) ▲제1017부대(4.25)시찰로 이어졌다.김정일의 이같은 잦은 군부대방문은 군경력이 없는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면서 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됐다. 세번째로 김정일은 식량난 해결에 사활적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확인됐다.북한이 우리의 대북 쌀지원을 받아들인 것이나 일본에 쌀을 요청한 것도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부주석들의 역할분담 생전에 김일성이 제정받던 외교관들의 신임장은 부주석 이종옥(5회)과 박성철(2회)이 나누어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같은 부주석이면서도 김영주나 김병식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업무분담원칙과 견제(김영주)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주요직책 임면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주요직책에 대해 불과 5건의 인사밖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현준극의 노동당 국제부장 기용이다.현준극은 지난 88년 이래 노동신문의 책임주필 자리를 16년간 지켜온 언론통으로 북한 기자동맹중앙위 위원장직도 겸직하고 있는 인물.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현준극을 당국제부장이란 요직에 앉힌 것과 관련,주중국대사(66년)·당중앙위 국제부장(86년)을 지낸 그의 경력을 사 대중국외교에 무게를 실으려는 행마일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외교관에 대한 인사는 고위직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와 폭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4월30일까지 김정일에 의해 이뤄진 외교관 인사는 대사 26명 신규 임명,경질 15명 등 41명에 이르렀다.아프리카와 아시아지역이 중점 인사대상지역이었는데 이는 향후의 아·태시대개막 대비와 비동맹국 중시차원에서 이뤄진 인사로 풀이된다. ○외국방문 누가 많이 했나 김일성사후 외국을 제일 많이 나다닌 북한요인은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이성대였다.그는 중국 두번,태국·방글라데시 각각 한번씩 모두 네차례 해외 나들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직책이 대외경제와 유관한 탓에 최다 해외방문자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다음으로는 현준극 노동당 국제부장이 3회로 2위,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5명이 두번씩 외국엘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 당·정간부 가운데 부장급 이상과 정당·사회단체장으로 한차례씩 외국을 방문했던 인물은 이종옥 부주석 등 모두 17명이었다.이들의 방문국은 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이어서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난의 심각성과 그들의 수교범위를 한눈에 읽게 하고 있다. ○회담 누가 많이 했나 94년 7월8일 이후 지난 4월30일 사이에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 또는 대표단과 회담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13회를 기록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으로 밝혀졌다.그다음은 대외경제위원회의 이성대 위원장이 3회로 2위,여연구 최고인민회의부의장 등 3명이 2회,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4명이 각각 1회씩을 기록했다. ○담화와 환담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눈 것을 담화로 정의했을 때 이 부문에선 직책이 직책인지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각각 16회씩으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부주석 이종옥은 이들보다 2회가 적은 14회로 2위에 올랐으며 3위는 9회를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돌아갔다.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는 8회,부주석 박성철과 부총리겸 문화예술부장 장철이 각각 6회를 기록했다.부총리 홍성남과 부주석 김병식은 각각 4회를 기록.김정일의 숙부인 부주석 김영주는 단 1회로 말석을 차지했는데 이는 두차례의 공장 격려방문외 김일성 사후 파악된 그의 유일한 공무다. ○면담과 접견 인사차 들른 외빈을 가볍게 만난 횟수로는 부주석 이종옥이 8회로 선두를 지켰다.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6번으로 차석.그 뒤를 각각 5번씩 기록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이었다.
  • 「김일성 유훈통치」 상당기간 지속될듯(북한의 진로:하)

    ◎김정일 지지기반·권력장악력 아직 취약/심각한 경제난 타개책 모색이 최대과제 『김일성동지는 모든 품격과 자질을 지닌 천출위인이고,김정일동지는 수령의 사상과 풍모를 그대로 이어받은 오늘의 김일성이다』 김일성 사망 1주기를 하루 앞두고 7일 저녁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행한 김부자 찬양발언의 일부다. 그러나 죽은 김일성과 산 김정일이 북한주민들에게 미치는 카리스마는 여전히 하늘과 땅의 차이다.이는 김일성이 죽은지 1년이 되도록 그의 이른바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는데서 고스란히 감지된다.김정일 그 자신 마저도 가슴팍에서 아버지의 「초상화」(배지)를 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요컨대 북한사회 전체가 김일성이 생전에 짜놓은 권력의 그물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이는 역으로 김정일이 생전의 김일성에 비해서 북한내에서의 지지기반과 권력장악력 두 측면에서 엄청난 취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김일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충성심을 갖고 있다는 게 최근 북한방문 외국인과 교포들의 대체적 증언이다.그러나 김정일에 대해서는 불만이 내연하고 있다는 소문이다.심지어 식량난과 관련해 『철없는 아이가 정치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주민들도 철저한 정보통제로 남한·서방세계등 외부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과거에 비해서 북한경제가 더 가라앉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즉 70년대초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먹고 살만했는데 김정일이 전면에 나타난 70년대 중반부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점이 김정일체제로 하여금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대안을 강요하는 요인이다.북한당국이 체면손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쌀을 받아들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정일은 권력장악력에서도 그의 아버지에 비해서 상대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물론 김정일은 아버지 세대인 빨치산원로들의 측면지원을 받고 있다.이와 함께 만경대혁명학원·김일성종합대 선후배등 혁명2세대 및3대혁명소조등 소장파를 직계세력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의 주변세력들은 특혜를 나눠갖는데는 익숙할 뿐 김일성과 혁명1세대들처럼 「혈맹」관계가 아니다.따라서 대부분이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1주기가 되도록 권력승계 공식화 시기를 미룬채 자신의 직계세력들을 대거 전진배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일의 심복으로 분류되고 있는 혁명2세대급 인물중에는 지난 4월 평양축전을 주관하고 남한·일본등과의 쌀협상을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만이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그 이외에는 김일성·오진우 장례식 때 김정일의 군부내 최측근으로 알려진 오극렬 부장을 제치고 권력서열 20위권에 갑자기 뛰어든 미지의 인물 김철수 정도가 주목될 뿐이다. 김일성사후 서너차례 공개된 북한의 권력서열 순위는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긴 하나 아직 큰 틀에서는 김일성 생전의 북한권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일성 사망 1년 북한 표정/김일성 시신 안치한 「기념궁」 일반에 공개/금수산궁 개관식 문 목사 부인도 참석 북한은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8일 김일성 사망 1주기를 맞이했다. ○…한달전부터 김일성생가와 동상참배행사를 대대적으로 전개해온 북한은 이날 상오 10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을 생전 모습 그대로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의 개관식을 갖고 그의 시신을 1년만에 공개.이에따라 이 「궁전」은 김일성의 만경대 생가와 동상보다 더 훌륭한 성지가 되어 앞으로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 이날 개관식에는 김정일을 비롯해 총리 강성산,부주석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 김병식,외교부장 김영남등 당·정·군 고위간부들과 각계각층 주민들이 참석했는데 김정일이 붉은 천을 끊어 개관을 선포하고 정치국원 겸 군참모총장 최광이 개관사를 낭독.행사에는 김일성의 처 김성애가 미망인 자격으로 정치국원과 후보위원 사이에 자리했는데 김성애의 공식석상 등장은 지난해 10월1일 추모제 참석 이후 처음.한편 이날 행사에는 방북중인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씨도 참석 추모대회에는 당정치국 휴보위원과 당비서 사이의 상위서열을 이을설 백학림 김광진 김익현등 인민군 차수들이 차지해 북한 권부내에서 군부가 실세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기념사설을 통해 『오늘 우리 앞에는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고 전제,『김일성의 간곡한 유훈에 따라 김정일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해 그의 주석및 총비서직 승계가 임박했음을 시사.이 신문은 또 김정일에 대해 『탁월한 사상과 영도력,걸출한 인품을 지닌 위대한 영도자』로 표현하고 『우리 당과 군대·인민에 있어서 최고사령관 김정일은 곧 김일성』이라고 강조해 눈길.
  • 김일성 사후1년/김정일 노선:중

    ◎겉으론 “폐쇄” 내심은 “개방” 「이중정책」/권력기반 굳히려 김일성 카리스마 이용/“경제난 타개” 미등 서방투자 유치에 적극/“급격한 개혁땐 체제붕괴” 딜레마 해결이 과제 김일성의 뒤를 잇는 김정일체제의 대내외 정책과 노선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북한정권이 여전히 김일성의 유훈통치」에 의해 굴러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점진적인 경제개방의 확대등 변화의 기미가 엿보이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 또한 부인키 어렵다. 사실 김일성의 상속자인 김정일에게는 「주체사상」등 아버지의 유산이 재산인 동시에 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요컨대 김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과 같은 김일성의 「혁명위업」을 계승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최대한 우려먹어야 한다.그러나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으로 인한 체제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이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차원에서 김정일이 6월초 일본·프랑스·벨기에·오스트리아등 서방각국의 경제인 20여명을 초대해 자본주의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는 보도는 의미심장하다.일본의 「주간 현대」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김이 이 자리에서 『자본주의사회로부터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모두 청취하고 인민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겉으로는 「주체사상」이라는 경직적인 이데올로기를 계속 표방하고 있다.더욱이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폐쇄적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강변하는 자세도 여전하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이와 모순되는 실리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를테면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에 이어 대미·대일 수교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비록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끝나긴 했지만 지난 4월 개최한 「평양국제체육문화축전」도 대서방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겨냥한 이벤트였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대외 개방폭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북측은 올들어 미국의 AT&T·스텐튼그룹 등 대기업들과 상담을 벌이는 등 활발한 투자유치 움직임을 보였다. 북측은 올상반기 내내 우리 정부에 대한 격렬한 비방 공세를 펴는 와중에도 남북교역 확대와 우리측 기업에 대한 투자유치에는 적극성을 띠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물론 우리측 당국도 북측의 이같은 정경분리 전술을 간파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에 대한 협력사업 승인에 이어 기술자 13명의 북한방문을 허용한 것이나 고합·국제상사·한일합섬 등에 대한 협력사업자 승인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한 것은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북한 스스로도 종래의 경직성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북한이 우리측의 쌀지원을 받아들인 사실이다.주민소요가 우려될 만큼 절박한 식량난에다 외화부족으로 외미도입 길마저 여의치 않은 막다른 상황이긴 하나 「남조선」쌀을 받기로 한 것은 체면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체제의 행보를 결정적으로 제약하는 아킬레스건은 개혁·개방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체제동요라는 반대급부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바로 이 점이야말로 김정일체제의 앞날에 드리워진 불길한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김일성 사망 1년… 북한 일지 ◇1994년 ▲7.8 김일성 사망.제네바 북·미 3단계회담 시작 ▲7.9 북한,김일성 사망 발표. 북·미3단계 회담 중단 ▲7.19 김일성 장례식 ▲7.20 김일성 추도대회 ▲7.29 북한,한국정부의 김일성 조문불허를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규정. ▲8.13 북·미 3단계 회담에서 관계개선,북핵동결 합의. ▲10.11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단군릉복원 준공식. ▲10.21 북·미 기본 합의문 서명 ◇1995년 ▲2.25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암으로 사망 ▲4.28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문화축전」 개최. ▲5.20 콸라룸푸르 북·미 준고위급회담 개막. ▲5.26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일본에 쌀제공 요청. ▲6.12 김일성 시신 금수산의사당에 영구 안치 결정 ▲6.13 북·미 준고위급회담 타결 ▲6.17 대북 쌀제공 논의위한 남북 당국자 회담 북경에서 개최.▲6.30 북·일 일본쌀 30만t 제고 합의서 교환 ▲7.6 한국,대우 기술자 13명 방북 승인
  • 광주/「백색 가전」 기지로 바꾼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생산현장 르포/가전 3사,총2조2천억 야심찬 투자계획/하남등 6개공단 연계… 최첨단 단지 조성 광주광역시가 21세기의 세계적 산업도시를 향해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이미 분양이 끝난 하남공단을 비롯,첨단과학산업단지·평동 등 6개 단지에는 차세대 핵심 산업인 반도체 및 백색가전 전용단지가 조성되고 있다.그 가운데 백색가전 부문은 대우전자와 삼성전자가 곧 한판 승부에 들어간다.뿐만 아니라 LG그룹도 가세,국내 가전3사의 광주대결이 멀지않아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현장을 찾아가 대기업의 투자실태,공장용지로서의 메리트,공장유치에 힘쓰는 지역주민들의 소망 등을 살펴보았다. 대기업 백색가전 공장들이 광주로 몰려들고 있다. 10년전부터 광주광역시 하남공단에서 백색가전 제품을 생산해온 대우전자에 이어 오는 8일에는 삼성전자가 냉장고 공장을 본격 가동한다.또 LG그룹도 지난달 31일 첨단과학산업단지에 공장부지 10만평을 계약,가전공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조용하던 광주가 가전3사의 생산격전장으로,국내의 백색가전 중심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백색가전」은 냉장고·세탁기·에어컨·레인지 등 고유의 가전제품을 일컫는다.TV·VCR 등 「갈색가전」과 대조되는 가전제품의 통칭이다. 가전3사들은 광주공단에 대한 투자규모도 엄청나다. 이미 터전을 잡은 대우전자는 지금까지 2천억원을 투입,하남공단 11만평 규모에 냉장고·세탁기·레인지 등 거의 모든 백색가전공장을 가동하고 있다.그동안 고용창출은 협력업체까지 합쳐 1만5천여명에 이른다.97년까지는 이 공단에 6천억원을 더 투자해 생산량을 확대,삼성전자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는 전략이다. 처음으로 광주에 진출하는 삼성전자는 2002년까지 5천억원을 투입,매출목표를 2조2천6백억원으로 잡고 있다.협력업체 및 고용효과는 2백개 업체에 1만3천명이 될 전망이다.특히 오는 8일 가동되는 냉장고 공장(광주전자)은 삼성전자로 이름을 바꿔 2002년까지 2천억원을 투입한다.또 첨단단지 8만평에는 연간 7백만대의 컴프레서 생산 등 첨단 정밀부품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LG도 그룹차원에서 첨단단지에 2002년까지 1조1천8백억원을 투자한다.LG는 우선 첨단소재부품·환경관련산업·정밀기계를 중심으로 2002년에 1조9천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신규 고용창출은 7천5백명으로 예상하고 있다.또 2002년까지 하남공단 금성알프스전자에 8백7억원을 확장투자한다.백색가전은 진출을 긍정적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쟁업체들이 잇달아 광주진출을 발표하자 대우전자 직원들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대우전자 오진국 냉장고사업부장은 『삼성 진출을 계기로 더 열심히 일해 경쟁에서 꼭 앞서겠다』면서 『그러나 그동안 닦아 놓은 협력업체의 인력 스카우트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 가전공장들이 이처럼 앞다퉈 광주로 진출하는 데는 상당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우선 공장부지의 분양가가 부산·대구 등 다른 도시의 3분의1 수준인 평당 28만원밖에 안된다.세금감면을 비롯한 각종 행정상의 인허가 혜택도 다른 도시에 비할 바가 못된다. 다음은 산업의 연계성이다.첨단과학산업단지를 비롯,하남·평동·본초·송암·소촌 등 6개 공단이 광주에 몰려 있다.뿐만 아니라 이웃에는 목포 대불공업단지·율촌공단·장항산업단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교통·통신등 사회간접자본도 거의 완벽하게 갖춰졌다. 자연조건과 풍부한 인력도 한몫을 한다.광주지역은 동절기가 짧아 월동비 절감 및 조업시간 연장이 가능하고 공업용수가 풍부하다. 광주시의 유태명 첨단기지지원 담당관은 『지난해부터 「갈색가전은 구미로,백색가전은 모두 광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주민과 힘을 합쳐 대기업의 첨단반도체 및 가전공장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다행히 삼성전자·LG그룹 등의 광주진출 전략구도와 맞아떨어져 광주를 세계적 백색가전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지역주민들의 공장유치 활동도 대단하다.광주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구성한 대기업 유치반,중소기업 유치반은 매년 4차례씩 상경,대기업 설득 활동을 벌이고 있다.김도균 광주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30대 그룹 사장단 및 기획조정실장을 초청,광주의 첨단산업도시화를 호소한 결과 호응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특히 백색가전의 경우는 공장유치가 모든 지역주민의 한결같은 희망』이라고 전했다. ◎대우,85년 첫 공장 건설… 매출 7천9백억/협력사 3백곳 육성·간접자본 확충/전남·조선대출신 채용… 지역발전 기여 광주를 국내 굴지의 백색가전 단지로 탈바꿈시키는데 가장 큰 발판 역할을 한 것은 단연 대우전자가 꼽힌다. 대우는 지난 85년 8월 하남공단에 진출,전자레인지 공장을 세웠다.이듬해에는 구미에서 음향공장을 옮겨온 것을 비롯,진공청소기(87년),가스보일러(88년),세탁기(88년),마그네트론(90년),대형 냉장고공장(92년) 등을 잇달아 세웠다.최근 10년사이에 가전생산 주력기지를 이곳으로 이동한 셈이다. 현재 가전제품 생산량은 연간 전자레인지 3백만대,세탁기 1백85만대,냉장고 20만대,가스보일러 8만대,진공청소기 80만대 등이다. 연간 매출은 지난 92년 3천1백66억원에서 해마다 꾸준히 성장했다.지금은 내수 4천4백39억원,수출 3천4백78억원으로 전체 매출이 7천9백17억원에 이른다. 냉장고사업부의 전용춘 이사는 『10년전 광주 프로젝트를 만들 때만해도 인력을 제외한 모든 여건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며 『더욱이 부품 협력사는 전무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제는 협력사가 3백여개사로 늘었고 교통·통신 등 사회간접자본도 수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갖추어졌다고 설명했다. 대우전자가 들어섬으로써 광주지역의 고용창출 효과도 컸다.박현수 총괄담당 이사는 『직원 1천7백명 가운데 90%가 광주·전남 출신』이라며 『생산분야 엔지니어들을 전남대·조선대·원광대 등 이 지방대학 출신들을 대거 채용,회사 및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우전자는 이런 연유로 이 지역 가정주부들을 6월 한달간 매일 1백여명씩 초청,공장견학과 홍보활동을 벌이는 등 지역주민과의 유대강화에도 힘쓰고 있다.박성훈 세탁기공장장은 『5년전 공장에 불이 나 모두 탔을때 보여준 지역주민의 성원은 정말 대단했다』며 『지역주민의 협조 덕분에 광주·전남지역에서 만큼은 삼성전자·LG전자 등과 시장경쟁에서조금도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우전자는 오는 97년까지 6천억원을 더 투자,이 지역의 좋은 인력을 더 많이 흡수하고 지방대학과의 산학연계도 계획하고 있다. ◎강운태 시장의 21세기 비전/“가전·반도체중심 제조업 활성화”/외국전용공단 일·독서 잇 단 문의 『광주에서는 산업체를 하나라도 더 유치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향 시민입니다』 광주를 첨단 산업단지로 키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강운태 시장.그는 대기업 유치와 투자여건 조성만이 21세기에 광주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강 시장으로부터 광주의 첨단산업도시화 계획을 들어보았다. ­21세기에 광주를 첨단산업단지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기본 구도는. ▲광주에는 장점과 특징이 많습니다.유능한 인력자원과 천혜의 자연조건 등은 광주의 자랑이지요.이를 발판으로 첨단산업화된 과학도시,인간중심의 문화예술도시로 발전시키면 21세기에는 세계적 도시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광주의 산업현황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2차 산업인 제조업의 비중이14%에 불과합니다.2천년까지는 25% 수준으로 올라설 것입니다.제조업도 기왕이면 가전과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시킬 계획입니다. ­공단조성도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80년대초부터 조성한 하남공단은 이미 공장들이 꽉 들어찼습니다.5백80만평을 조성,1차 분양에 들어간 첨단과학산업단지에는 공장용지 50만평중 삼성전자가 8만평,LG그룹이 10만평을 벌써 사들였습니다.특히 평동공단의 외국기업전용공단에는 평당 1천5백원이라는 파격적인 임대조건을 내세운 탓에 벌써부터 독일과 일본의 기업들이 접촉을 해오고 있습니다. ­공단에 대한 대기업들의 반응은. ▲다른 도시에 비해 3분1정도 비용으로 공장용지를 분양하고 「투자촉진조례」를 만들어 3∼5년간 세금면세 혜택도 주니까 관심들이 많아졌습니다.
  • 우리기업의 진출현황과 문제점(떠오르는 동남아건설시장:상)

    ◎바뀌는 수주전략/단순 수주서 「개발형 투자」 선회/한국 따돌리기 일 덤핑공세 강화속/현대,8억달러 공사 따내 동남아시장이 해외건설의 총아로 급부상하고 있다.지난해 해외건설수주액 74억4천만달러의 60%를 동남아시장에서 건졌다.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은 1백%가 넘는 높은 신장률을 보이며 「제2의 중동 붐」을 예고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수성과 현지 업체의 추격도 드세고 우리 업체끼리의 과당경쟁도 우려된다.개발형 투자 등 선진 건설기술도 걸음마단계이다.우리 업체의 진출전략과 문제점,현지 건설시장의 현황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지난 93년초 말레이시아정부가 실시한 테렌가누주 에틴공장 건설공사 입찰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일본의 도요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의 응찰가액보다 무려 1억달러나 싼 값으로 공사를 따냈다. 덤핑을 금기시하던 일본이 덤핑으로 우리 업체를 따돌린 것이다.현대는 앞서 발주한 가스정제공장 2∼4기를 수주한데다 응찰가액도 정부의 예정가보다 낮게 써내 낙찰을 자신했으나 저가로 무장한일본을 예상치 못했다. 놀란 것은 현대만이 아니었다.동남아시장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 모두가 일본이 저가전략으로 돌아섰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실제 일본은 지난 1년6개월간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리 업체에 일대 반격을 가했다.기술만 앞세우던 일본이 「덤핑 부메랑」으로 우리 업체를 공략한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 현지 업체들도 자국 정부의 지원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일본과 현지 업체사이에서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이에 따라 플랜트설비나 항만·교량 등 노하우가 축적된 일부 부문을 빼고는 대부분의 토목·건축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새로운 수주기법으로 무장,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가운데 단순 수주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수주패턴은 설계에서 시공,분양까지 책임지는 「개발형 투자」와 완공후 일정기간 운영한뒤 발주처에 인도하는 「인수 조건부공사(BOT)」.업계의 선두주자는 현대건설과 (주)대우 등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1월 싱가포르에 동남아사업본부를 설치했다.해외지점이외의 별도 사업본부를 설치하기는 현대가 처음이다.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10개국의 수주를 총괄하며 특히 개발형 투자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 부장급 9명으로 투자지원팀을 구성,부지선정과 설계·시공·분양계획을 마련한 뒤,사업파트너를 찾도록 했다.지난 2월 인도네시아의 7위그룹인 리포사와 합작,자카르타 시내와 주변의 신도시에 8억달러규모의 아파트와 오피스빌딩을 짓기로 한 것도 개발형 투자의 성과였다.필리핀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규모의 아파트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주)대우와 동아건설이 지난 93년 라오스에서 따낸 1억5천만달러 및 5억달러규모의 라오스 댐공사는 BOT방식으로 이뤄졌다.라오스가 전기생산량의 15%를 태국에 수출한다는 것에 착안,재원조달 및 송전설비계획 등을 입안한뒤 30년간 운영을 맡는 조건으로 공사를 따냈다. 이밖에 대우는 베트남에서 5천만달러상당의 대하 비스니스빌딩을 개발형 투자방식으로 따냈으며 미국 LA에서 아파트분양을 한 (주)건영도 동남아진출을 준비중이다.삼성건설과 쌍용건설,벽산건설,한신공영 등도 같은 방식의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대건설 오진영 동남아사업 본부장은 『앞으로 15년간 동남아시장은 건설수요가 50%이상씩 늘 것』이라며 『그러나 채산성이 떨어지는 단순 수주방식보다 수익성이 30%가 넘는 개발형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철 말레이시아주재 건설관도 『부동산을 직접 개발하거나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발주처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잘가거래이…”통곡의 교정/“꽃다운넋”대구 영남중32명 어제장례식

    ◎“이승에서 못다피운 꿈 저승에서 필치길”/“한번만 엄마 불러다오” 모정 실신/운구행렬 지날때 대구시민 눈시울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싸늘한 시신이 된 32명의 꽃다운 넋들이 30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발걸음으로 하나,둘 정든 학교를 다녀갔다. 『친구들아 이승에서 못한 일 저승에서 한없이 하고 영원히 나와 같이 뛰어놀고 영혼이라도 행복하렴』 승민이의 유해 앞에서 부르짖는 헌규(14·2학년4반)의 애타는 진혼곡은 봄바람에 실려 허공을 맴돌았다.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일순간에 사라졌구나.아 안타깝구나,이미 이승의 인연은 끝이 났으니 저승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피워보며 꽃송이 육신은 편히 잠들고 모두 모두 훗날 만나 이승의 이야기 나누며 영생하라』 같은 학부모를 위로하러 온 한 촌부는 노제를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즉석에서 조사를 띄워 보냈다. 선생님들도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감추며 어린 영혼들을 어루만졌다. 『오빠…』 하얀 체육복을 입고 하나 뿐인 오빠의 신위를 받쳐든 열두살 은진이도오빠의 교실 책상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흰 국화꽃 한송이를 올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좋은데 가라케라』 은진이는 끝내 아빠의 품에 안겼다. 『재경아,엄마 한번만 불러봐라.엄마 여기 있잖아』 운동장에서 노제를 치르다 재경이 어머니는 실신하고 말았다.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재경이를 「이끌고」 어머니를 「모시며」 꿋꿋하게 버텨온 고등학교 2학년 재학이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준희야 다 잊고 고이 가거래이.이놈들 에미 마음도 모르고…』 준희·준형이 쌍둥이 형제의 꿈이 뛰놀던 운동장에서 어머니는 운구차에 매달려 몸부림쳤다. 『형석아 이놈아 느그 학교데이.느그 친구들도 많이 있데이』 「고 배형석 신위」­동생의 신위를 들고 본관 2층 3학년 10반 교실로 올라간 형진군(17·계성고 2)은 텅빈 동생의 책상에 흰색 국화꽃 8송이를 올려놓고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다 마침내 그렁그렁 눈물을 떨구었다. 『형석이와는 반은 달랐지만 3년동안 항상 도시락을 같이 먹을 정도로 친했는데…』 형석군의 영정을 든 만길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어린 주검들이 영구차에 실려 차례대로 교문을 들어서자 이들을 기다리던 친구,이웃 주민,학교 관계자 1천여명은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학생들은 교문에서 학교건물까지 4백여m를 두줄로 늘어서 친구들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전송했다. ◎제자 보내는 영남중 이길우 교장/운동장서 뛰놀던 모습 선한데/추모비·기념관 꼭 건립… 겨우 사흘전만 해도 사랑스런 제자들이 맘껏 뛰놀던 운동장에서 그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노제가 열리는 것을 사무실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영남중학교 이길우(이길우·63)교장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하늘로 간 제자들이 다시 돌아오진 못하겠지만 재임중에 꼭 추모비와 기념관을 세울 생각입니다』 슬픔에 겨운듯 이교장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다.사고가 나자 아이들을 맡긴 부모들을 볼 낯이 없어 학교에 혼자 남아 밤을 새운지 벌써 사흘째다. 『그렇다고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등교길에 잃은 부모의 마음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훌륭하게 키워달라고 맡긴 제자들을 제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같아서…』­울부짖음 속에서 치러지는 노제가 이교장을 다시 슬픔에 잠기게 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59년 경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교사로 부임한 뒤 37년동안 줄곧 이학교를 지켜온 이교장에게 이번 사고는 참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고가 난 28일 상오7시50분 이교장은 달서구 송현동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다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그러나 그 굉음이 42명의 어린제자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비극의 전주곡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늘이 37년 교직생활 가운데 가장 슬픈 날입니다』 이 교장은 그러나 슬퍼할 수 만은 없었다.사고수습대책위원회와 학부모·유가족들 사이에 마찰을 막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한사람으로 가슴아픈 기억을 안고 살게 됐지만,그래도 29일 밤9시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학교로 전화를 걸어 위로해 준 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 병·의원 AIDS판정 1차검사일뿐(정부시책 이렇습니다)

    ◎국립보건원 최종판정 내려야 통보 □병원 혈액원 보건소 등 일선 의료기관에서 내린 AIDS 양성 판정의 90%가 오진이고 그 판정이 피검사자에게 알려져 정신적 불안과 충격을 주기도 한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사실인가=기본적으로 일선 병원의 AIDS 검진 장비와 시약은 국립보건원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때문에 AIDS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피검사자의 피는 모두 국립보건원에 보내 최종 판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병원 등 일선기관이 국립보건원에 보낸 피검체 가운데 AIDS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되는 사례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그러나 병원 등 일선 기관의 검사 과정을 오진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병·의원 등의 1차 판정 결과가 피검사자에게 알려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만약 병·의원의 검사자가 1차 검사 결과를 피검사자에게 알린다면 그 검사자는 의료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만에 하나 그런 잘못을 미리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최근 병원협회 등에 공문을 보내 병·의원의 1차 검사결과가 피검사자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한 적은 있다.현재까지 병원 등의 1차 검사 결과가 알려져 피검자가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는 사례는 보고받지 못했다. ◎전국 3천4백만필지 지적 재조사/지하시설물 등 체계적 관리돕게 □전국 3천4백만 필지의 지적을 다시 조사하며 지적도도 다시 작성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하며 또 어떻게 추진되나=내무부는 오는 97년부터 20 10년까지 전국 3천4백만 필지의 모든 토지를 대상으로 지적을 재조사해 지적도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뿐 아니라 전기시설,가스시설 등 지하 시설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적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또 지금의 지적도는 필지별 실제 토지경계 현황과 달라 불신이 클 뿐 아니라 소유자들 사이에 분쟁을 빚는 일도 잦다. 지금의 지적도는 지난 19 10년 일제가 토지 수탈과 토지세를 징수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측량기술과 측량장비들이 원시적이었기 때문에 부정확한 점이 많다.내무부가 지난 해 경남 창원시3.1㎦를 대상으로 지적도의 정확성을 점검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내무부는 이를 위해 96년까지 「지적 재조사 측량사업 특별법」을 제정해 97년부터 시·군의 순으로 전 토지에 대해 측량을 다시 하고 지적도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번 조사에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항공사진 측량법을 도입,정확한 지적도 작성이 가능하다. 또 지적도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임야도를 지적도에 통합시키고 도면 축척도 1대 5백,1대 6백,1대 1천,1대 1천2백,1대 2천4백,1대 3천,1대 6천 등 7종으로 되어있는 것을 1대 5백,1대 1천 등 두종으로 단순화한다. ◎이사로 불가피하게 2주택 소유/양도소득세 비과세 1년간으로 □이사 등 불가피한 이유로 일시적인 1가구 2주택자가 된 경우 양도세 비과세 기간은 어떻게 되는가=이사 등을 위해 집을 새로 샀으나 먼저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본의 아니게 1가구 2주택이 된 경우 지난 3월15일 이후 기존의 아파트를 팔았다면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간 1년을 적용받을 수 있다.이사 목적의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아파트 양도세 비과세 기간을 종전의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3월 하순부터 적용하려던 당초방침을 바꿔 정부 방침 발표일인 3월15일 이후 양도한 경우에는 모두 면세혜택을 주기로 했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아파트가 안팔려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아파트는 6개월,단독주택은 1년으로 나눠져 있는 것을 1년으로 통일했다. ◎신행주대교 개통 연기된다는데…/안전성 시험 거치느라 6월말로 □신행주대교의 개통이 늦어진다는 일부 보도가 있는데 사실인가=건설중 부실공사로 무너진 신행주대교의 완공 시기가 당초 계획한 5월 10일에서 6월말로 미뤄졌으며,그 이유는 개통 시기를 6월 지자제 선거에 맞추기 위한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신행주대교의 재시공은 공사중 무너진 다리의 피해를 복구하는 공사이므로 공사 계약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골조공사가 끝났다 하더라도 안전성 여부에 관한 각종 시험을 거쳐야 한다.비파괴 시험,재하시험 등 건전도 시험을 통해 문제가없다고 판정될 때 개통할 계획이다. 준공시기에 관계없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지방선거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준공시기를 맞추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현대건설/동남아 수주 “호조”

    ◎말련 바쿤댐·가스공장 공사 내락/올 40억달러 전망… 국내 해외건설목표의 절반 【자카르타=백문일 기자】 현대건설이 올 하반기에 동남아시아에서만 40억달러 이상의 공사를 수주할 전망이다.이는 올해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목표액 85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셈이다. 24일 현대건설 동남아본부(본부장 오진영 상무)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라와크주에 24억달러 규모의 다목적용 「바쿤댐」을 연말까지 발주키로 하고 현지 개발대행업체 에크란 버하드사에 사업 일체를 일임했다. 현대건설은 이 회사와 바쿤댐의 수주를 전제로 랑카위섬 공항 부지 매립공사를 맡아 사실상 바쿤댐의 공사를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내년초에 착공,오는 2003년에 완공될 예정이며 단일 발주 공사로는 중국 삼협댐(80억∼85억달러 추정)에 이은 세계 두번째 규모이다. 현대는 또 말레이시아 동부 테렌가누주 케르테 일대에 조성되는 석유화학단지에 8억5천만달러 규모의 제5·6호 가스정제 공장도 따낼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그룹 리포사와 합작법인「리포현대개발」을 설립,자카르타에서 총8억달러 상당의 아파트 및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자카르타 서쪽 17㎞의 신도시에 공급되는 41층 및 51층짜리 아파트 2개동 7백16가구는 지난 2월 착공됐다.자카르타 도심에 짓는 지상 67층짜리 오피스 빌딩과 주상복합단지 「리포 라이프시티」는 하반기 착공,오는 97∼98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 오진우 사망이후/북 권력서열 불변

    【내외】 지난 2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사망이후 북한의 권력서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14일 평양체육관에서 김일성의 83회 생일 기념중앙보고대회를 열었는데 이날 「주석단」에는 김정일과 부주석 김영주등 몇몇 간부들만 불참했을뿐 전반적 권력서열에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김일성의 83회 생일기념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은 다음과 같다. ◇정치국위원 강성산(총리),이종옥(부주석),박성철(부주석),김병식(사민당위원장),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최 광(군총참모장),계응태(당비서),전병호(당비서),한성용(당비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만(국방위원),최태복(당비서),홍성남(부총리),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홍석형(국가계획위원장)
  • 북 베일속 실세/김철수는 김영주 아들

    ◎김일성사후 권력서열 20위로 급부상/김정일 족벌체제 강화위해 등용한듯 지난달 25일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장례식에서 일약 북한 권력서열 20위로 자리매김된 「미지의 인물」 김철수는 김일성의 친동생인 김영주부주석의 아들인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5일 『김일성 사망 이후 급부상한 김철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줄곧 신원을 추적해왔다』면서 『최근 제3국의 고위인사를 통해 그가 김영주의 친아들이자 김정일의 사촌동생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계당국은 70년대초까지 조카인 김정일과 후계경쟁을 벌였던 김영주의 친아들이 급부상하고 있는 배경을 분석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당국은 김철수의 부상을 두가지 각도에서 관찰하고 있다. 첫째는 족벌체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일가의 총동원체제를 구축토록 김일성이 유훈을 남겼을 것이라는 가설이다.즉 김정일이 체제안정을 위해 김철수를 등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가 뚜렷한 이유없이 늦어지고 있는것과 연결,김영주가 실질적으로 득세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김영주가 70년대초까지 10년동안 북한의 핵심요직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면서 후계자수업을 했기 때문에 현재 당·정·군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궁금증을 더하는 것은 북한당국이 계속 김철수의 신원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북한의 방송·신문등 선전매체들은 권력서열을 거명할 때 유독 김철수에게만 아무런 직함도 붙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베일속의 실세」가 김영주의 친아들임이 드러나면서 그의 신원도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철수는 상장(중장) 또는 대장급 군장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또 『현재까지의 여러 정황으로 보아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고 있거나 호위총국에서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북 권력서열 20위 오른 김철수/「보위부장」 가능성

    지난달 25일 죽은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장례위원 명단에서 북한의 권력서열 20위에 오른 베일속의 인물 김철수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장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지금까지 북한방송이나 신문등 선전매체들이 권력서열을 거명할 때 유독 김철수에게만 아무런 직함을 붙이지 않았다』면서 『때문에 김철수는 김정일의 북한군장악이나 신변안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실세인물일 것으로 보고 주목해 왔다』고 밝혔다. 김철수는 김일성 생전에는 전혀 노출이 되지 않은 막후의 인물이었으나 진난해 김일성 장례식 때 일약 권력서열 23위로 진입했다.
  • 군부/김정일 버팀목은 혁명 3세대/북장성 60여명 인맥분석

    ◎92년 이후 대거발탁… 현재 준장­대장급 포진/거의 당중앙위원 겸임… 실세중 실세로 부상/혁명1세대 원로 예우 오진우 후임에 최광유력 북한군 실세 장령(장성) 60여명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김정일의 충복이거나 직계들로 대부분 당의 요직을 겸하면서 군의 주요 위치에 포진하고 있다.현재 북한군 장성의 수는 약1천2백명으로 이중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장급 이상 핵심 장성들은 거의가 군부 엘리트코스인 만경대 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강건종합군관학교 출신들이며 김정일친위 군맥을 형성하고 있다. ○떠오르는 세대 혁명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걸쳐 있는 북한군 기축세력 가운데서도 앞으로 김정일체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것으로 예상되는 실세로는 단연 3세대가 꼽혔다.현재 소장(우리의 준장)∼대장급인 이들 제3세대는 대부분이 김정일이 원수진급(92.4.23)과 동시에 북한군 최고사령관으로서 6백64명의 장령들을 승진시켰을 때와 휴전 40주를 계기로 「군최고사령관 명령 제40호」로 99명(중장14명,소장85명)을 승진시킬 때 포함된 장령들이다.특히 이들 「떠오르는 별」 가운데 당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을 겸하고 있는 장령들을 눈여겨 봐야 할 것으로 관측 됐다. 당중앙위원회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의 모든 당사업을 관장하는 당조직의 최고지도기관.당중앙위원들은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총비서와 비서를 선출하고 비서국과 군사위원회 조직결정권을 가짐으로써 그 힘은 실로 막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인민군 장령으로 중앙위원회 위원이나 후보위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일단 그는 향후 북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얘기가 된다.이같은 관측은 이들이 김일성·오진우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이었다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특히 인민군장령으로 중앙위위원이나 후보위원을 겸하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김정일의 후계승계가 김일성에 의해 공표된 이후 보충된 인물들이다.이는 곧 김정일이 집권에 대비,앞날을 내다보고 중앙위원회에 자기 사람을 심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특히 이들 장령들 가운데서도 최근의 김정일군부대시찰이나 행사참석시 수행 내지 동석한 김광진 김봉율 이하일 조명록 김일철 김명국 이봉원 박재경 김정각 정호균 김하규등이 실세중의 실세인 것으로 평가됐다. 이밖에 지난해 김일성의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23위,지난달 25일에 발표된 오진우의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 서열 20위로 발표된 김철수도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이 정도의 서열이면 당정치국후보위원 수준의 거물급이나 그의 신상에 관한 것이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현재 그의 나이는 50대초에 계급은 상장(우리의 중장)급이며 호위총국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면 물갈이 없을듯 북한군의 세대교체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대폭적인 물갈이 형태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김정일이 전권을 장악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활동을 같이 했던 혁명1세대들을 갈아치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외부 세계에서는 혁명 1세대들이 군부 엘리트들로부터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김정일로선 혁명 1세대를 홀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 까닭은 북한정권이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이라는 군사적 권위에 통치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최광 외에도 북한군에는 백학림 이을설 이두익 최인덕 전문섭 김철만 태병렬 이종산 등의 혁명 1세대가 버티고 있다.그러나 이들중 2∼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로의 예우를 받고는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실권은 제2세대와 제3세대들이 행사하고 있어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나 다름없다.이와 관련,전문가들은 지난 73년부터 시작된 김정일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이른바 그 조직기반으로서의 「3대혁명소조」가 군부에도 침투,기반을 형성해왔음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이는 달리 표현하면 형식상·제도상으로는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이 고령의 항일 빨치산그룹으로 돼 있지만 김정일을 떠받들고 있는 신진 엘리트가 실세로 군내부에 포진하고 있음을 의미하는게 된다.따라서 북한군의 세대교체는 몽땅 물갈이하는 식이 아니라 이들 혁명 1세대의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빨치산 1세대들을 권력의 무대에서 퇴장시키거나 이들이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를 하며 사의를 표하고 이를 김정일이 받아들여 빈 자리를 제2,3세대로 메우는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광이 인민무력부장이 될 경우 총참모장은 김광진이나 오극렬 이봉원 김두남 오용방 장성우 같은 2세대중 한사람에게 돌아갈 것으로 관측됐다.즉 김정일이 혁명 1세대이자 인간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최광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예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실세인 제2세대로 하여금 북한 군부를 이끌어 가게 할 가능성이 가장 많다. ○개혁주장 못한다 북한군이 북한의 개혁주도세력으로서 힘을 모을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으로 진단됐다.북한군 장교들은 일단 「선택된 사람들」로 일반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봉급외에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그런 만큼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프리미엄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체제붕괴나 변혁을 초래하게될 개방이나 개혁은 더더욱 주창하고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북한군이 노동당의 지휘를 받고 있기때문에 당방침으로 결정되기 전에는 군부가 앞장서 개방이나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국부적 도발 가능성 북한경제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나빠지고 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등의 국면이 전개되지 않는 한 북한군의 대남도발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됐다.전문가들도 막강한 한미연합전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군부의 군사적 모험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다만 내부적 불안요인 소진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긴장조성의 필요성을 느낄 경우 국부적 도발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이유를 한국과 미국의 도발에 대비한 군비충당 쪽으로 전가하고 있는 만큼 일부 소장 지휘관들이 이판사판의 심정에서 대남군사도발을 주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전쟁」발발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려우나 전면적이고도 계획적인 대남군사도발은 여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 김정일 심복 50여명/북한군부 완전장악/본사 통일안보연 분석

    북한군부는 현재 김정일의 심복인 50여명의 혁명 2,3세대 장령(장성)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또 오진우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인민무력부장의 자리메움은 김의 공식권력승계이후에나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당분간 대대적인 군부개편은 없을 것으로 관측됐다. 서울신문통일안보연구소가 12일 최근의 북한정보를 토대로 60여명의 북한군 핵심 장성들의 동향과 인적사항을 분석한 결과 현재 북한군부에서는 아직도 10여명의 혁명1세대들이 총참모장,호위총국장,중앙군사위원등으로 활약하고 있으나 이 가운데 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은 차수인 최광총참모장등 2∼3명에 불과하고 혁명2,3세들이 김정일의 친위세력으로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뇌사·장기이식 인정 우리나라는 어떤가

    ◎의료·법조·종교계 논쟁 불씨 여전/오진·불법거래 부작용 근절책 필요/“치료 불가능할때 다른 생명에 새삶”/찬성/“살인·상해치사 해당… 신의 뜻에 거역”/반대 우리나라에서 뇌사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3월. 당시 대한신장학회,대한이식학회,서울대학병원이 중심이 돼 대한의학협회에 뇌사를 인정하는 입법을 건의했다.이에 대한의학협회는 의학협회 창립 80주년을 맞은 그해 10월 뇌사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89년1월에는 뇌사연구특별위원회를 구성,같은해 3월 뇌사도 죽음의 일종임을 선언하고 뇌사판정기준을 발표했다. 이어 90년3월 당시 보건사회부로부터 뇌사에 관한 연구를 의뢰받아 죽음의 정의를 수정해 제안했다.92년2월에는 세계 각국의 뇌사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해외조사단을 파견했다.93년3월에는 「뇌사판정기준안」과 「뇌사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88년에 서울대병원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이후 91년까지 뇌사자의 장기공여가 드물게 이루어지다 92년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다.94년11월까지의 추계로는 간장이 34건,췌장 10건,심장 22건,각막 4천5백건,골수 3백건 등이다. 이처럼 의학적으로는 뇌사자의 장기이식이 허용되고 있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생명을 경시할 우려가 있고 현행법상 살인이나 상해치사죄 등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종교계 일부에서도 교리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뇌사를 부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뇌기능의 정지는 더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고 장기이식을 통해 또다른 고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며 가족과 의료인의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뇌사를 인정하고 있다. 또다른 중요한 쟁점은 오진과 장기매매의 가능성이다.뇌사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뇌사로 판단해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때문에 의료계에서는 공신력있는 기구에 소속된 3명이상의 뇌사판정위원만이 뇌사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 ▲뇌사 시점에 따라 민사상의 상속이 달라질 수 있는 점 ▲장기기증의뜻을 의사 등이 묻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와 가족들의 완전한 자율에 맡길 것인지 ▲장기공여 및 이식기구의 주체를 정부로 할 것인지 아니면 민간단체로 할 것인지 ▲장기수여자에게 얼마만큼의 비용을 부담시키고 의료보험의 혜택과 국가보조금지급은 어느정도의 규모로 할 것인지 등도 주요한 쟁점사항이다. 이렇듯 여러가지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여론을 비롯,전 세계가 점차 뇌사를 인정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88년 세종의학연구소의 일반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47%에 불과했으나 92년에 실시된 보건정책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설문대상인원 8백43명가운데 80·2%가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뇌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미국,핀란드,캐나다,아르헨티나,호주,노르웨이,체코,영국,스페인,태국,대만,스웨덴,이탈리아,필리핀,싱가포르 등이다.중국과 일본은 공식적으로 뇌사를 허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학적으로는 인정해 장기이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 「뇌사 인정법」 연내 제정/보건복지부/장기이식 늘어나는 현실 반영

    ◎오진 없게 「뇌사판정우」 구성/상반기중 의학·법조계 의견 수렴 뇌사를 인정하는 법이 올해 안에 제정된다. 보건복지부는 3일 「장기 공여 및 이식에 관한 법률」을 올안에 제정키로 하고 최근 용역조사를 의뢰한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로부터 「장기 공여 및 이식의 관리체계 개발에 관한 연구」를 넘겨받아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복지부는 이를 토대로 상반기 안에 병·의원협회와 의학계·법조계·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같은 방침은 아직 우리 실정법이 뇌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도 의학적으로는 뇌사를 인정하고 뇌사자의 장기 이식이 크게 늘어나 입법화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고 오진·장기 매매 등과 같은 각종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복지부는 또 오는 8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4차 아시아 이식학회 학술대회에서 각국의 입법예와 세계적인 추세 등을 적극 수렴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이식학회 등이 주관하고 아시아 3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이 대회에서는 뇌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아시아권 국가에 뇌사를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서울선언」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공여 및 이식에 관한 법률」에는 심장이나 호흡기의 기능이 상실됐을 때는 물론 ▲뇌의 기능이 회복할 수 없는 경지,즉 뇌사에 이르렀을 때도 사망한 것으로 인정하고 ▲오진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뇌사판정위원회가 뇌사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뇌사를 인정함에 따라 사망 시점이 달라져 일어날 수 있는 민사상의 상속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규정을 포함하게 된다. 또 장기 공여 의사의 타진 방법과 장기 기증을 결정할 수 있는 가족의 범위와 환자의 결정권,사회적 합의에 따라 운영되는 장기 확보 및 배분 기구의 설립,장기 이식수혜자의 비용 부담 범위 및 부유층 뿐 아니라 저소득층에도 장기 이식의 혜택이 돌아가는 조항,장기 매매의 금지와 처벌 조항 등을 담게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와관련,『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하는 것에 대체적으로 찬성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추세인만큼 인간의 존엄성과 재생산이 불가능한 장기의 효율적인 이용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사회 각계 각층이 수긍하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장기 공여와 이식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북 권부의 떠오르는 실력자/「김철수」는 누구냐

    ◎김일성·오진우 장레식 서열23·20위 랭크/“50세 전후의 호위총국 대장” 추정 「김철수는 어떤 인물인가」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사망을 계기로 북한의 김철수라는 베일속의 인물에 대해 북한 관측통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5일 죽은 오진우의 장례위원 명단에 나타난 북한의 권력서열에서 이 미지의 인물이 20위라는 상위서열을 차지한 탓이다.그는 김일성 생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현재도 관계당국에서는 김정일 경호책임을 맡고 있는 호위총국 소속의 고위 군관계자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김일성 사후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에서 일약 서열 23위로 등재되어 일차 관심을 모은 바 있다.그러다가 한동안 막후로 사라졌는데 이번에 3단계나 서열이 상향조정되어 재등장했다. 이는 한때 7위까지 올라갔던 김병식부주석이 이번에 21위로 밀린 사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때문에 그가 북한의 떠오르는 실력자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철저한 당우위의 피라미드식 권력계층구조를 갖고 있는 북한에서 권력서열 20위는 당정치국 후보위원이나 당비서급에 해당하는 실세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다.당비서들로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김기남(23위),김국태(24위),김용순(28위) 등의 서열을 참작한다면 북한권부내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그의 위상이 짐작된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지금까지 공개된 북한자료에 나타난 5∼6명의 김철수란 이름의 소유자와는 다른 인물로 보고 있다.다만 몇가지 첩보를 바탕으로 그가 50대 전후의 연령에 상장(중장) 또는 대장계급으로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호위총국 소속의 군실세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오진우 사망으로 예상되는 인민군의 세대교체 과정에서 급부상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이는 이번에 권력서열에서 북한군관계자로서 그보다 앞선 인물은 최광 총참모장(7위) 김철만 국방위원(12위)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더욱이 그는 지금까지 김정일의 인민군내 측근 중의 측근으로 알려진 오극렬 전총참모장(43위)보다 서열이 훨씬 높았다.
  • 서대숙 교수 평양기류 예각분석(인터뷰)

    ◎남북한 「해빙의 봄」 내년에 온다/미와 수교 끝낸뒤 남북대화 호응 예상/교착상태 타개엔 「막후접촉」이 효과적/북,남한불신 깊어「 한국형 경수로」 거부할듯 미국 하와이대의 서대숙 교수는 28일 남북경색관계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다가 내년쯤에나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또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한국형 경수로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자료수집차 서울에 온 서 박사는 28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최근의 북한동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현재 북한은 김일성에 대한 조문거부 등으로 한국에 대해 좋지않은 감정을 갖고있는데다 미국과의 수교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대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미국측이 미·북합의에 따라 남북대화 재개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지면 내년쯤에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그는 남북교착 상태가 양측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대화에 임하는 남북한의 자세전환이 필요하며 공식접촉보다는 막후접촉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문제 권위자로 북한을 여러차례 다녀온 일이 있는 서 박사는 북한의 한국형 경수로 수용여부와 관련,한국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끝까지 못받아들이겠다고 버틸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했다.한국형 경수로를 설치하려면 한국 기술자만 5백명에서 1천명이 들어가야 되고 7∼8년이 걸리는데 이처럼 오랜 기간에 많은 남쪽사람들이 왕래하게 되는 것 자체가 북측에게 여간 신경쓰여지는 일이 아니고 경수로 같은 중요한 시설에 남쪽사람들이 해코지하는 시설을 하지 않을까 못믿어한다는 설명이다. ○미,핵협상서 실책 서 박사는 한국형 경수로 수용여부가 미·북관계나 남북관계에 이처럼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그동안의 북·미협상과정에서 미국이 큰 실책을 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하고 북한은 언제 또다시 동결키로했던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올지 모르며 이 때문에 미국은 북한에 끌려다녀야 할 형국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하와이대한국학 연구소장인 서교수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 예상시점에 대해 현재의 여러가지 정황이나 움직임으로 보아 김일성의 1년상을 치르고 난 뒤 창당 50돌을 맞는 10월10일에 취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관측했다.그는 김의 승계가 지연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김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다 아직도 김일성의 「상중」인 상태여서 북한주민들의 추도분위기를 보아가며 취임시점을 늦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 박사는 김정일의 후견인이자 권력서열 2위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사망과 관련,그의 죽음에 따른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예견됐었고 그동안 김이 자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서교수는 현재 김정일을 보좌하여 북한을 통치하는 실세들은 당 작전부장 오극렬,노동당비서 김국태등 혁명2세대들이라고 밝히고 혁명1세대들은 예우차원에서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을 뿐 실제는 혁명1세대들이 당·정·군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혁명2세대를주축으로 한 권력개편이 이미 끝났으며 김이 공식취임한 이후 그 명단이 공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월10일 승계 유력 북한의 개방문제에 대해 서교수는 『북한이 개방하면 망하고 개방을 하지않아도 망한다고 보는 시각들이 있는데 이는 북한을 잘 알지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사회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개방을 한다해도 중국의 천안문사태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그는 나진·선봉지구 개발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지 결코 개방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 북최고 정책결정 기구/당 정치국 상무위 어찌 될까

    ◎오진우 사망 이후의 진로는/김일성·오 사라져 김정일 혼자만 위원으로/혁명 1세대 충원… 「고문회의」 격하 가능성/“세습용도 끝났다” 일부선 폐지 점치기도 권력서열 2위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25일 사망함으로써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존치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상무위는 북한 권력의 총결집체인 당중앙위 정치국에 설치된 핵심중의 핵심기구.지난해까지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3명만이 상무위원으로 있었다. 실제로 김일성 생전에 북한의 모든 주요결정은 사실상 이 기구를 통해 이뤄졌다.김일성은 주요 현안이 있을 때 2인의 상무위원 이외에 강성산 정무원총리 등 극소수의 측근을 은밀히 불러 구수회의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김일성·오진우 두사람이 사망하고 김정일 혼자 남게 된 상무위는 어떤 형태로든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정부와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오는 4월 현최고인민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상무위원회까지 개편해 김정일의1인자 등극 내부정비 작업을 마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당장 상무위원을 충원하는 모험은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민족통일연구원의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일이 김일성 1주기에 맞춰 공식 1인자 자리를 승계하면서 일부 혁명1세대 원로들로 상무위원회를 재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김이 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 다수의 혁명1세대로 상무위원회를 충원,자신의 울타리 역을 맡기는 형식을 취할 것이라는 추론이다.말하자면 원로들을 적절히 예우하면서 자신의 측근들을 일선에 전진배치하는 북한권력의 세대교체를 단행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등소평체제 중국의 사례처럼 상무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고문회의 성격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와는 달리 상무위원회가 사실상 김정일의 권력세습이라는 「역사적 기능」을 마쳤다는 점에서 아예 폐지될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다.김일성은 70년 5차 당대회에서 일단 상무위원회를 폐지했었는데 80년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를 부활시켰었다. 이는 김정일이 자칫 새로운 분란의 씨앗이 될 실세 상무위원회 재구성보다는 그 기능을 정치국으로 넘기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그러나 여기에는 김정일이 북한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그 실현가능성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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