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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비축 대폭 늘린다/현재 27일분 저장… 98년까지 46일분으로

    ◎2003년가지 2조 투입… 1억5천만배럴 목표 석유 수요는 매년 급증하는 반면 비축물량은 이에 못미친다.오일쇼크의 악몽이 언제 또 재현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70년대 1.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비축의 필요성이 높아졌다.정부는 79년 한국석유개발공사를 설립,비축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음에도 국내 석유수요의 급증으로 비축물량은 오히려 줄고 있다. 석유 비축물량의 확대는 간단하지 않다.비축기지를 건설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일단 건설하면 수정이나 보완이 어렵다.비축유는 석유 수요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휘발성인 경질제품은 장기 저장시 손실이 크므로 특수 저장시설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석유비축 시설은 현재 경남 온산과 서울,경남 거제,경기도 구리기지 등 모두 4곳.원유 2천7백만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경남 거제는 국내 최대의 지하기지로 14개 비축탱크를 갖추고 있다.1개의 크기는 잠실경기장과 맞먹는다.지상기지인 온산은 원유 1천3백만배럴을 저장할 수 있다. 또 석유제품을 저장하는 서울 기지는 30만배럴을 비축할 수 있는 소규모 지상기지이고,경기도 구리기지는 1백60만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지하기지이다. 작년 말 현재 정부의 석유 비축량은 4천2백만배럴.우리 국민이 27일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여기에다 민간 정유회사에 비축하도록 의무화한 29일분을 합쳐도 비축물량은 모두 56일분에 불과하다.세계에너지기구(IEA)는 최소한 90일분의 비축을 권고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경우 실제로 이보다 더 많은 양을 비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도 오는 98년까지 7천1백38억원을 들여 지금 4개인 비축기지(비축량 4천2백만배럴)를 8개(9천1백만배럴)로 늘리는 제2차 석유비축 계획을 수립,신·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전남 여천(2천9백80만배럴)과 거제(1천2백만배럴)에 원유비축용 지하기지를,경기도 구리(1백40만배럴)에 석유제품 비축용 지하기지를,경기도 용인(2백50만배럴 규모)과 경북 칠곡·전남 곡성(3백만배럴)에 지상기지를 각각 건설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비축기지가 완공되더라도 폭증하는 석유 수요의 추세를 감안하면 98년의 비축물량은 여전히 목표치 60일분에서 14일분이 모자라는 46일분에 불과하다. 정부는 최근 비축목표 60일분을 채우기 위해 모두 2조6천4백17억원을 들여 20 03년까지 6천2백50만배럴의 비축기지를 추가로 확충,전체 비출물량을 1억5천3백65만배럴로 늘리는 3차 석유비축게획을 마련, 추진하기로 했다. 민간 정유회사에 대한 의무비축물량도 하루분을 늘린 30일분으로 상향조정,정부와 민간을 합쳐 모두 90일분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 「신뢰의 경제학」/프란시스 후쿠야마 저/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신뢰는 현대사회 발전에 필수 덕목”/범죄·민사소송 증가는 인적유대 상실탓/계 등 「신용연합」 통해 부 이룬 재미 한인사업체가 본보기 미국을 비롯한 현대사회는 갈수록 개인주의화하고 있지만 탈산업의 보다 현대적인 사회가 안정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서로 믿는다는 신뢰의 「전근대적」 덕목이 강력히 요구된다고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박사는 주장한다.후쿠야마의 최신저작 『신뢰:사회적 덕 및 풍요의 창출』 중 「신뢰의 경제학」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제적 경쟁력은 사회에 내재된 신뢰의 정도라는 단 하나의 문화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다음 몇가지 20세기 경제 화제를 들어보자. 70년대 초반 오일쇼크 때 일본의 마즈다와 독일의 다이믈러벤츠사는 판매량 격감으로 파산위기에 몰렸다.이들은 스미토모 트러스트와 도이체방크 등 두 은행이 각각 주도한 거래업체들의 연합으로 구제됐다.모두 이 업체를 구하기 위해 당장의 이익을 희생한 것인데 특히 벤츠사는 아랍 투자자들의 손에 막 넘어가기 직전이었다.또 미국에서는 83,84년 불경기 때 중부내륙에 소재한 뉴코르 철강회사가 큰 타격을 입고 곧 무너질 지경이었으나 예전 농부였던 노동조합 결성이전의 종업원들과 경영진들은 1주 2,3일로 조업일수와 임금을 줄이면서 해고없이 버텨나갔다.경기가 회복되자 뉴코르는 굉장한 임직원 일체감과 함께 미국 유수의 철강회사로 올라섰다. 그리고 독일 공장에서는 작업반장이 손아래 종업원의 일거리를 모두 다룰 줄 알아 유사시에 그들을 대신하는데 반장이 종업원 개별면담을 통해 일거리를 배정하고 능력을 평가한다.승진에서 크나큰 융통성이 발휘되며 대학교육이 아닌 광범위한 사내직업훈련을 통해 엔지니어 직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 얘기들에는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아래 경제적 연기자들이 누가 주인공이랄 것이 없이 서로를 돕는다는 공통점이 있다.이들의 공동체는 명문화된 규칙과 규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된 윤리적 습성과 도덕적 상호 책무감에 바탕을 두는 문화적 집단이다.이 습성은 구성원들에게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며 공동체를 지지하기로 한 결정은 결코 경제적 자기이익에 기초하지 않는다.훗날의 더 나은 경제적인 대가를 계산하고 한 행동이 아니며 연대감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신뢰의 결여로 경제적 성과가 낮을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사회적 파장까지 생겨난 예를 들어본다.50년대 발전이 늦은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를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이곳의 돈많은 시민층은 국가가 할 일이라는 이유로 이 도시가 긴급히 필요로 하는 학교,병원은 물론 노동력이 풍부한 여건에서도 공장건설에 투자하는 것을 기피했다.또 프랑스는 독일과 달리 상관인 작업반장이 아랫사람을 정직하게 평가한다고 보지 않아 반장이 종업원의 일자리를 배정하는 걸 금지,직장 연대감이 얕고 이에 따라 일본에서와 같이 감량경영아래의 기술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도시안의 소규모 사업체는 흑인소유가 아주 드물다.이 업체들은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이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하나의 이유는 현미국흑인 「빈곤계층」의 상호신뢰 결핍 현상을 들 수 있다.한국인 사업체는 굳건한 가족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같은 민족사회 내의 재정적 신용 연합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반면 도시거주 흑인 가족은 아주 취약하며 신용연합같은게 전무한 실정이다. 문제점은 사회학자 제임스 콜로먼이 이름붙인 「사회적 자본」,즉 공동목표를 위해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이다.자본이란 것이 점점 더 토지,공장,생산기구,기계보다는 인간의 지식과 기술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서 인적 자본이란 개념이 생겨났는데 콜로먼은 지식,기술 외에 인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서로 연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추가했다. 「연합하고 제휴할 수 있는 능력」은 한 사회가 얼마나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느냐에 달려있다.이와 같이 공유한 가치관으로부터 신뢰가 생겨나며 신뢰는 구체적이며 커다란 크기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미국을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현대사회는 신뢰및 사회적 유대감의 쇠락 현상이 뚜렷하다.강력범죄와 민사소송의 폭증,가족구조의 해체,동네·교회·조합·클럽·자선모임 등 사회 중개단위들의 쇠퇴 등을 우선 들 수 있다.경찰력 유지및 범죄자 격리비용,재판소송 비용이 증가일로인데 이들 비용은 사회의 신뢰 상실로 인해 부과된 직접세라고 할 수 있다.미국등 많은 선진국들이 물적 자본 뿐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고 기존 분량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이를 소모하고 있다.아주 복합적이며 신비하기 까지한 문화적 과정을 거치고서야 사회적 자본은 축적된다. 이같은 신뢰의 중요함에 비춰볼 때 역사의 종말과 함께 도래할 진보적 민주주의는 전적으로 「현대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들 자신의 기능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 꼭 필요한 몇몇 전근대적인 문화적 습성들과 병존해야만 제대로 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법,계약,경제적 합리성 등은 탈산업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인 토대이지만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이것들은 상호성,도덕덕 책무,공동체에 대한 의무,그리고 신뢰 등 이성적 계산보다는 습관에서 배어나는 전근대적덕목들과 혼효되어야 한다. 이 덕목들은 근대사회와 어울리지 않은 엉뚱한 사회착오적 품성이 아니라 현대적 토대의 성공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 기아/「크레도스」에 사운 걸었다/중형시장 석권… 적자 반전 노려

    ◎4년간 5천억 투입 개발… 올 시판/내년 내수 14만­수출 2만대 “야심” 기아자동차가 다음달부터 시판에 들어갈 2천㏄급 중형 승용차 새 모델 「크레도스」에 사운을 걸었다.크레도스는 「신뢰」를 뜻하는 라틴어.콩코드의 후속 모델이고,세피아 스포티지에 이은 세번째 순수 독자모델이다. 「13년만의 경영적자」와 「중형차 시장에서의 완패」.기아의 지난 해 경영 성적표는 최악이었다.그 요인을 콩코드 후속모델의 개발지연에서 찾으면서 크레도스로 이를 일거에 반전시킨다는 구상이다. 기아는 지난 90년 10월 G카의 암호명으로 크레도스 개발에 나서 개발비 1천억원,투자비 4천1백억원 등 모두 5천1백억원을 투입했다.지난 해부터 시판 중인 아벨라의 총 투자비 3천7백억원보다 1천4백억원을 더 투입한 것으로 기아로서는 사운을 건 투자금액이다.올해는 월 1만대씩 모두 6만여대를 국내에 판매한 뒤,내년부터는 매년 14만대를 판매할 계획이다.지난해 내수에서 18만대를 판 쏘나타를 제치고 중형차 부문 1위를 노린다.중형차뿐 아니라 최고의 베스트 셀러카에도 도전한다는 청사진도 세웠다. 해외시장 진출 전략도 만만치 않다.내년에는 2만대,97년에는 4만대,98년에는 6만대를 수출할 계획이다.이렇게 되면,기아의 최대 주력으로 떠오르게 된다.지난 해 기아의 내수 판매중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세피아로 10만1천5백94대. 기아는 크레도스에 모든 역량을 투입할만큼 절박하다.기아는 지난 해 6백9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지난 81년 판매량 부진에다,오일쇼크가 겹쳐 적자(2백66억원)를 기록한 뒤 13년만의 적자이다.이에따라 임원들은 올해부터 보너스를 받지 않는다.월급도 한 직급씩 낮추는 비상경영 상태다. 기아는 프라이드·콩코드·캐피탈의 트로이카 체제로 지난 90년부터 내수 승용차(지프는 제외) 판매에서 대우를 따돌리고 2위에 올라섰으나,지난 해에는 3위로 밀렸다.지난 해의 내수 판매량은 23만8천6백2대로,대우의 28만4천7백96대보다 4만6천1백94대나 적었다.승용차 내수 점유율도 22.7%로 가장 성적이 좋았던 93년의 27.9%보다 5.2% 포인트나 낮아졌다. 기아가 지난 해 고전한 주요인은 중형차의판매부진 때문.지난 해 콩코드의 판매량은 1만6천5백75대에 불과했다.쏘나타Ⅱ 뿐 아니라 대우의 경쟁차종인 프린스(7만6천20대)에 비해서도 훨씬 적었다. 크레도스는 콩코드보다 내부가 넓어졌고,딱딱한 외관인 콩코드와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가격은 쏘나타Ⅱ보다 다소 높게 결정할 방침이다. 처음에는 2천㏄를 시판한 뒤,연말에는 1천8백㏄까지도 판매한다.또 내년 초에는 2천5백㏄를 판매,현대의 마르샤와도 한판 대결을 할 방침이다. 크레도스의 시판에 따라,현대·기아·대우자동차의 중형차 자존심 경쟁은 볼만하게 됐다.한승준 기아자동차 사장은 『기아의 모든 힘을 크레도스 판매에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 영국/일본(세계화 외국에선)

    ◎영국/70년대 잇단 총파업 마감… 새 협력틀 모색 유럽 대륙에 있는 기업들이 공장을 영국으로 옮기고 있다.네덜란드의 다국적기업 필립스가 네덜란드에 있던 TV공장을 옮겼고 미국 대형가전회사인 후버는 프랑스의 진공청소기 공장을 영국으로 옮겼다. 지난해 7월 삼성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구주본부를 영국으로 옮겼다.기업들이 수송여건이 좋은 유럽대륙을 마다하고 굳이 섬나라 영국을 찾는 것은 투자여건 때문이다.영국의 임금이 비교적 싼 것과 노사분규가 유럽국가 가운데 최저수준이라는 것이 주요이유다.기업들이 군침을 삼킬만한 투자최적지로 꼽힌다. 영국에서는 최근 노사분규가 일어났거나 분규의 조짐이 있다는 신문·방송기사 한건을 찾아보기 힘들다. 17년전만 해도 잭 존이나 휴 스캘론같은 영국의 노조지도자들은 정치지도자들만큼 유명했다.또 그만큼 영국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컸다. 보수당과 함께 노동당이 양대정당으로 버티고 있을 정도로 노동자의 권익은 철저히 보장받는 노동자의 천국이 바로 영국이었다.노조의 총파업으로 정권이 바뀔 정도로 막강했고 79년 학교 병원 청소 철도 등 공공분야의 총파업이 일어났던 「불만의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파업이 잇따르자 캘러헌 당시 노동당내각은 불신임을 받아 물러나고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여사가 새 총리로 등장했다.노조의 천국에서 노사분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대처내각의 출범 때문이다. 대처 총리가 이른바 노조파업만능주의,높은 인플레이션,낮은 경제성장률로 요약되는 「영국병」을 고치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은 「노조를 죽이자」(Kill the Union)는 슬로건으로 대표된다. 대처는 노조의 강력한 힘이 시장경제를 왜곡시켜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시장경제원리 회복과 기업의 근로자복지부담 경감과 노조세력 약화에 노동정책의 초점을 맞췄다.대처는 「철의 여인」답게 노사분규 과정의 노조간부의 면책특권을 없애는 등 5차례에 걸쳐 고용법을 개정했다. 특히 사용주가 노조를 인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노조의 날개는 잘려나간 셈이었다.79년 1천3백만명에 달한 노조조합원도 92년에는 9백만명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크고 작은 파업건수도 연평균 2천건을 웃돌았으나 이제는 10분의 1 수준인 2백건 안팎이다.하지만 대처 정책의 상대적인 실정의 하나로 부의 분배왜곡 현상이 지적되고 있으며 이는 노조의 약화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이제는 상호 협력하는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기업주는 노조를 적으로 생각할게 아니라 종업원과의 협력을 통해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종업원의 의견을 듣고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고통도 이익도 함께” 20년새 분규 90% 격감 일본의 노사관계는 대단히 안정적이다.노사분규가 적다.70년대초 연평균 9천여건이었던 노동쟁의가 80년대 들어 3천∼4천건으로,90년대 들어서는 1천건 이하로 뚝 떨어졌다.이에 따른 노동손실일수는 70년대초 1천만일 정도에서,90년대 들어 10만일 이하로 줄어들었다.『노사관계의 안정이 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물론 도움이 된다』고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의 가이바라 나오타케 국제국장도 평가한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노동자 입장에서 패배를 의미할 수도 있다.현재 일본 노사관계가 그렇다.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상승률은 91년 4.4%,92년 2.0%,93년 0.3%,94년 1.7%,95년 2.8% 수준에 그치고 있다.이 때문에 지난달 연합의 아시다 진노스케회장은 올해 춘투가 사실상의 패배라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이 단위기업에 안주하는 경향과 불경기 엔고현상 등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속에서 노동세력의 운신의 폭은 대단히 좁은 상태다.해외사업 비중이 60%인 치요다 화공건설의 혼다과장은 『엔고와 불경기에 사원을 자르지 않고 월급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지경』이라고 말한다. 기업주들도 올해는 엔화가 20%이상 오르는 어려운 형편에서 임금인상을 결정했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물론 오랜 쟁의의 역사를 통해 노·사·정 모두가 노력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70년대초까지 일본은 노사갈등과 쟁의로 몸살을 앓았다.「1달러 블라우스」가 전세계의 비난을 받는 저임금시대도 겪었다.그러나 70년대 2차례오일쇼크와 80년대의 엔고현상이 계기를 제공했다.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의 오랜 역사적 전통과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문화도 배경을 이룬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처럼 노사관계가 안정되기만을 바라기보다는 안정에 이르는 그들의 노력을 배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소유분산이 매우 잘된 기업체제,주주보다는 종업원을 우선시하는 기업경영방식,단기이익배분보다는 장기적인 기업발전과 기술개발에 치중한 결과 경쟁력이 제고되는 선순환 등이 곧잘 지적된다.「고통은 함께,이익은 나만」이 아니라 「고통도 이익도 함께」라는 점에서 기업측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도쿄신문의 혼다기자는 『미국회사들이 대단한 불경기속에 대량해고가 진행중이었을 당시에도 회장들의 연봉은 최저 1백만달러를 넘었다.종업원을 잘 자른다고 봉급을 많이 받는 건지 의문이었다』면서 『일본은 우선 이사들이 보너스를 반납하고 위에서부터 해고가 진행된다』고 말한다. 일본정부도 편파적 개입이 반발을 초래한다는 과거경험을 바탕으로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엄정중립을 지켜왔다. 노조측도 마찬가지다.기본적으로 회사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일본 사회에서 삶의 질 개선은 기업이 잘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기업이 잘 된다면 현재의 고통은 참아도 되고,이익이 사원들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이 때문에 연합의 가이바라 국장은 『불필요한 쟁의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한국성장모델의 개도국 이전(최택만 경제평론)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경제를 「개도국 성장의 모델」로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IMF는 지난 23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이례적으로 한국경제와 브라질경제를 비교한 특집을 통해 『한국은 국민들의 높은 저축률과 정부의 정책선택의 성공으로 가장 모범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격찬했다. IMF 보고서는 전망의 정확도가 높고 세계각국이 정책수립에 중요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평가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또 이 보고서는 최근 몇년동안 우리경제에 대한 외국언론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완전히 뒤집고 있어 각별한 관심을 갖게한다.더구나 IMF는 한국과 브라질 경제를 연대별로 비교분석하고 있어 신뢰도를 더해 주고 있다.이 보고서는 60년대와 70년대까지 두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거의 비슷했고 70년대 중반까지 수출신장률도 동일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한국경제가 브라질경제를 크게 앞서기 시작,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브라질보다 두배가량 높다고 밝혔다.IMF는 한국경제의 성공은 70년대말의 제2차 오일쇼크 때 강력한 안정화정책을 추진하면서 과감한 산업구조조정과 개방화를 추구한 데 있다고 분석했다.반면에 브라질은 팽창정책을 추진,살인적인 인플레를 초래했고 마침내는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병진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지난 77년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한국사람들이 달려 온다』(The Koreans are coming)는 특집기사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은 일본인인데 이들을 오히려 게으르게 보이게끔 할 수 있는 국민은 한국인』이라면서 우리국민의 근면성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지난 86년에는 영국의 이코너미스트지가 『오는 2032년에는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87년이후 노사분규가 격렬해지자 89년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인들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같다』고 보도한 것을 비롯해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프랑스의 피가로,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세계 유수신문들이 한국경제가 선진국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다행하게도 지난 92년 세계은행(IBRD)은 한국경제가 선진국경제권으로 이행과정에서 과소비와 경기과열 등 성장통(성장통·Growing Pains)을 앓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IBRD가 우리경제가 선진국 병에 걸린 것이 아니고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분석한 데 이어 IMF가 한국경제를 개도국 성장의 모델로 평가함으로써 외국언론의 보도는 사시적 시각임이 확인된 것이다.이들 국제기구의 평가를 계기로 국내 경제연구기관이나 학계가 스스로 「한국형성장모델」을 정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국제기구의 평가에는 유교문화권의 교육열,국민들의 근면성,가정 및 직장에 대한 충실성,자기계발에 대한 높은 가치 부여 등 경제주체들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기 쉽다. 따라서 한국 경제를 오늘의 위치에 올려 놓은 경제주체인 정부·기업·가계 등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서 「한국형성장모델」을 개발하여 개도국에 전수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서두를 때가 되었다고 본다.우리는 일본이 부머랭효과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로 부터 경제개발모델과 주요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개도국에 성장모델을 이전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된다.IMF가 한국경제를 「개도국 성장의 모델」로 평가한 뒤 개도국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한국이 검증을 거친 경제개발플랜은 물론 기술 등을 개도국에 이전한다면 전수 받은 국가는 경제발전을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이다.개도국은 이른바 후발효과를 얻을 수 있다.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높여 우리의 당면과제인 선진국경제권으로의 진입을 앞당기고 개도국의 성장과 발전에도 결정적인 전기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 일 기초단체장 99% 무소속 “탈정당화”

    ◎「지방자치제 1백년」어제와 오늘/지자체 이익 최우선… 「정책 대결」지양/“정당 개입은 혼란만 초래”/전전 교훈 일본의 지방자치제는 1백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현행 자치제는 48년에 제정된 헌법과 함께 전면 실시돼 온 것이다. 일본의 기초자치단체는 시·정·촌이 해당되며 이들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은 모두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일본의 공직선거법은 모든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있다.또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사이에 특별한 차별을 두고 있지도 않다.따라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지방자치단체의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있고 정당의 추천,지지,공인을 얻어 선거에 임할 수도 있다. ○55년 이후 가속화 이처럼 정당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정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게 일본 기초자치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정당소속 후보는 중앙선거보다는 광역의 경우가 훨씬 적으며 기초자치의 경우에는 광역보다도 「탈정당화」의 경향이 더욱 뚜렷해서 무소속후보들이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탈정당화는 지난 55년 자민당 결성으로 보수1당 장기집권체제가 구축되면서부터 가속화됐다.그 배경으로는 2차대전이전의 지자제 실시시기에 보수정당들의 개입으로 극심한 부패와 혼란을 겪은 바도 있었고,한국전쟁 이후 성장과 개발의 시대를 맞아 각 지방자치체들이 일치단결해 지방의 개발이익을 도모하는 일에 열중하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다.이에 따라 지방차원에서 정당간 경쟁,정책의 대결은 사실상 배제됐다. 무소속 의원은 55년 도·도·부·현통일지방선거에서 32.8%를 차지했으며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선거에서는 무려 94.4%를 기록했다.무소속 단체장의 경우는 광역이 85.6%,기초가 98.3%나 됐다. ○혁신계 한때 득세 하지만 부의 편재 등 성장에 따른 부작용과 복지에 대한 주민들의 희망등이 표출되고 중앙에서 미·일안보조약 반대투쟁이 치열해지면서 6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당계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이 늘어나게 됐다.그 결과 사회당계열의 단체장이 행정권을 장악한 「혁신자치체」가 등장하고 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정당간의 치열한 다툼이 전개되게 됐다.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같이 혁신 단체장·의원이 많이 배출됐으나 이 시기에도 기초자치단체는 여전히 무소속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혁신자치단체는 주민복지와 환경을 정비한 공로를 남겼다.그러나 7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오일쇼크로 저성장시기에 들어서면서 재정적인 문제를 낳고 자민당이 혁신자치체를 무너뜨리기 위해 중도 정당과 연합추천전략을 편 결과 혁신계 진출은 줄어들게 됐다.혁신계는 퇴조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복지 환경분야에서 혁신계의 정책을 상당 부분 흡수했다. ○일부선 비판론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탈정당화 현상이 조금씩이나마 허물어지고 있다.지난 91년 무소속 비율은 도·도·부·현의원이 15.9%,시·정·촌 의원이 74.8%로 낮아졌다.다만 단체장의 경우 「당선제일주의」의 지방정치인들이 각 정당의 연합추천·지지를 받으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어 지사는 1백%,기초는 99.2%가 여전히 무소속 당선자들이다.일부에서는 지방자치제의 탈정당화,탈정치화에 대해 ▲정당과 정책이 배제된채 이권에 의해 중앙과 지방이 연결됨으로써 부패정치를 낳기 쉽고 ▲무소속의원등이 많아 장기적인 책임행정의 구현이 어렵게 된다는 등의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하지만 일본의 지방자치,특히 기초자치단체들은 정당참여보다는 탈정당화의 전통을 고수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한국,세은 수혜국 졸업/32년간 차관누계 87억$…경제개발 큰 몫

    ◎개도국 지위벗고 이젠 공여국으로 격상 한국이 세계은행(IBRD)차관대상국으로부터 완전 졸업하게 되었다.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 세계은행의 이사회는 20일(한국시간 21일) ▲부산시 도시교통확충을 위한 1억달러짜리 차관과 ▲부산폐수처리및 군산폐기물 소각시설건립을 위한 7천5백만달러짜리 차관등 2건의 한국에 대한 차관을 승인한 것을 끝으로 한국이 세계은행차관대상국에서 완전히 졸업했음을 밝힌 것이다. 원봉희세계은행대리이사는 『우리나라가 차관대상국으로부터 졸업을 했다는 것은 세계은행의 장기저리차관을 더이상 받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국이 그동안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으로 개도국의 지위를 명실상부하게 벗어남을 공표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1962년 1천4백만달러규모의 제1차 철도차관을 시작으로 32년동안 한국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장기저리차관의 제공과 정책조언을 통해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동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세계은행이 그동안 한국에 제공한 차관으로 사용한 프로젝트의 분야별 항목을 보면 도로,철도,항만,댐,전력,상하수도,농업,교육,경제구조조정등으로 되어있다.비율별로 보면 에너지등 하부구조에 46%,교육·보건분야인 사회부문에 13%, 농업용수·관개·종자개량등 농업에 8%가 쓰여졌다. 세계은행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공여한 차관금액의 누계는 총 1백20건에 87억1천9백만달러(한화 6조9천2백억원)이며 현재 이가운데 상환하지 않은 잔여금액은 약 2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세계은행차관졸업으로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받는 수혜국입장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공여국으로 그 위상을 바꾼 것은 사실이나 이제부터 우리는 개발도상국의 차관자금은 어느 국제금융기구에서도 받을 수 없으며 필요한 자본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직접조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본래 IBRD규정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4천8백66달러이상이면 졸업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한국은 1인당 GNP가 7천4백66달러로 벌써 졸업을 했어야 했다.지난 91년부터 세계은행측은 한국의 졸업을 계속 종용했왔던 것이다.한국은 이번에 「졸업」하면서 과거 오일쇼크등과 같은 현상이 재도래하거나 통일이 갑작스럽게 성취될 경우에는 다시 IBRD의 차관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노르딕 국가들(현장 세계경제)

    ◎새로운 경제 틀짜기 고심/불황·산업·인플레의 악순환/복지비 지출 늘어 적자 “눈덩이”/덴마크/실업률 12.2%… 사상 최고치/스웨덴/지난해 적자,GDP의 13%/핀란드/매년 GDP 4.5%씩 감소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일컬어져온 북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고민에 빠져있다.개인의 책무와 평등의 미덕을 강조하는 루터주의가 깊이 스며있는 노르딕(북유럽) 국가들은 무자비한 자유시장경제와 공산주의식 계획경제 사이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제3의 길을 마련했었다. 사회민주주의는 국가라는 기구는 시장경제의 결실을 재분배하는데 쓰여져야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믿음도 나눠줄만한 부가 많을때 가장 잘 작용하는데 노르딕 국가의 사정은 결코 넉넉한 것같지는 않다. 정부는 재정적자와 공공부채에 허덕이고 실업률은 30년대 대공황때보다 훨씬 「포악한」 실정이다.각국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함으로써 이같은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그러나 먼저 가입한 다른 국가들의 경험은 EU가입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보여주고 있어 이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노르딕 국가들은 공히 상대적 저성장속에서 비대한 공공부문에 어떻게 재원을 조달해야하는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덴마크는 80년대 공공지출을 대폭줄여 이 문제를 해결했고 노르웨이는 「오일달러」를 모두 쏟아 부었으며 아이슬란드는 복지수당을 깎아 이 문제에 대처했다.80년대 팽창을 누리다 불황속으로 추락한 스웨덴과 핀란드는 불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해 대책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는 통화팽창과 연이은 부동산가격 폭등과 인플레로 더욱 악화됐다.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정부는 차례대로 안정을 찾기위해 환율을 유럽통화단위인 에퀴(ECU)에 고정시키기도 했으나 결과는 이자율폭등과 은행도산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은 경제규모가 큰 만큼 문제도 심각하다.일각에서는 스웨덴의 퇴락한 모습을 보면 고소한 느낌마저 든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다.1870년부터 근 1백년동안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한 스웨덴은 강력한 중앙정부와 고학력 엔지니어덕분에 70년 세계 최강의 부국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경제성장률 둔화 그러나 현재의 스웨덴은 과거의「환영」밖에 남은게 없다.지난해 재정적자는 GDP의 12.9%에 도달했고 대부분 외채인 공공부채도 GDP의 83%나된다.이같은 부채위기는 90∼93년간 GDP가 6% 감소로 더욱 악화됐다.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70년대초반 이후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70년 스웨덴의 1인당 GDP는 구매력기준으로 OECD에서 4번째였으나 92년 13번째로 떨어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73년 오일쇼크를 시발로 시작된 불황에 팽창정책과 크로나 평가절하로 대응한 것이 주원인이다.정부는 내수부진을 만회할 요량으로 불황의 기미가 보이는 업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서비스를 창출하는 팽창정책을 일관,지난해 정부지출은 GDP의 73%에 도달했다. 이같은 와중에 90년부터 시작된 메가톤급 불황으로 3년동안 산업생산이 17∼18% 감소했다.실업률도 9∼14%로 늘어나 이에 비례해 각종 수당등 사회보험비용의 지출이 느는 반면 세수는 줄어들었다. ○어자원도 고갈 스웨덴이 처한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노르딕 국가에 거의 공통적이라고 해도 타당하다.핀란드는 역시 91∼93년사이 GDP가 해마다 평균 4.5%씩 감소했다.소련붕괴로 수출의 15%가 갈곳을 잃었다.재정적자와 공공부채도 거의 스웨덴수준인 8%와 73%이다.그중 낫다는 덴마크도 실업률이 12.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80년대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편 노르웨이는 실업률이 5.8%,인플레율 1%에 불과하다.그러나 이 또한 막대한 석유수입을 쏟아부은 결과였다.국제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어자원에 대한 의존율이 높은 아이슬란드는 어자원의 고갈로 인한 수입감소와 지난 7년동안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한 결과 올해 실질 가계소득은 87년보다 20%나 줄었다.외채도 많고 실업률도 5%다. ○EU가입 대비해야 덴마크를 포함해서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국가의 경제를 개혁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물론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수출증가와 생산성 향상에 힙입어 경제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복지국가에 걸맞게 공공부문의 역할이 커 국민들의 의존도 또한 높다.따라서 특히 공공부문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신뢰성있는 경제정책으로 이자율을 하락시켜 경제의 내실을 기해 유럽연합 가입으로 입게될 충격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복지천국」의 명성 뿌리째 흔들/실업수당받고 빈둥빈둥… 납세자만 골탕/보건·탁아관련 공공부채 갈수록 급증 노르딕 국가의 복지제도가 불안하다.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국민들은 복지비용의 주재원인 고액세금에 짜증을 내고 있고 정부는 늘어나는 사회보장비용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요컨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북유럽 국가의 복지정책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항상 좀 더를 외치지만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각국이 평균 10%선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들은 일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핀란드의 경우는 실업률이 무려 19%에 이른다.높은 실업의 배후에는 정부가 지급하는 실업수당등 넉넉한 보험혜택이 기다리고 있어 굳이 세금을 내면서까지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실업자들은 정부와 나머지 납세자들의 짐이된다.노르딕 국가에서 정부가 사회보장에 지출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높다.스웨덴의 경우 GDP중 사회보장에 대한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미 80년대 33%를 올라섰다.당시 미국은 15%수준이었다.노르딕 국가중 최저치를 기록한 핀란드조차 27%로 벨기에과 룩셈부르크·덴마크를 제외하면 EU평균치보다 훨씬 높다. 이같은 과도한 복지비용은 80년대말 불어닥친 불황과 더불어 각국 정부 살림에 주름살을 더해 갔다.지난 20년동안 낮은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공공부문의 팽창으로 누적된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는 복지국가의 발목을 잡힌 셈이다. 스웨덴의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는 지난해 각각 GDP의 12.9%와 83%에 이르렀다.핀란드도 약 8%이상의 재정적자와 GDP의 73%의 부채 때문에 복지정책의 변화를 고려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널려있다. 우선 정부에 의존하는 국민이 지나치게 많아 일거에 공공지출을 감축할 수없다.스웨덴은 국민의 65∼70%가 공공분야에 밥줄을 대고 있고 덴마크에서는 국민의 3분의 2가 공공부문 종사자이거나 연금수혜자다.문제는 이들과 보건·탁아·교육및 행정분야 종사자의대다수로서 노르웨이의 경우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원들을 통해 자기이익을 관철하고 있다. 핀란드 여성은 3세 이하의 자녀에 대해서는 모두 육아보조금을 지급받고 있으며 스웨덴 여성은 GDP의 6%를 육아보조금으로 받아챙기는데 공공지출의 감축에 선선히 응할리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후한 복지혜택은 필연적으로 납세자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며 중과세는 결국 취업의욕을 막는 디스인센티브로 작용한다.GDP에서 차지하는 세금을 보면 덴마크가 50%인 것을 비롯,스웨덴 49%,노르웨이 46%등 미국의 30%에 비해 월등히 높다.개인소득세비중도 유럽평균 25%의 배에 가까운 40%선이다. 결국 실업자도 넉넉하게 감싸안는 복지정책은 「버릇없는」국민들만 양산한 셈인 것이다.
  • 일 경기 활황국면 진입/거품경제 따른 불황 작년말 끝나

    ◎경제기획청/본격적 호황 회복엔 시간 걸릴듯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경제는 거품경제뒤의 불황이 지난해 10월 끝났으며 경기가 활황국면으로 진입해 있다고 일본 경제기획청이 17일 발표했다. 경제기획청은 이날 경기순환에 대해 검토작업을 벌여온 「경기 기준일부 검토위원회」의 보고를 인용,이같이 선언했다. 이로써 일본의 거품경제뒤의 불황은 지난 91년 4월부터 30개월 지속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불황기간은 전후기록으로는 지난 80년 2월부터 83년 2월까지 36개월동안 계속된 제2차 오일쇼크 불황에 이어 두번째로 긴 것이다. 경기 순환의 최저점은 매월 발표되는 경기동향지수 가운데 생산 및 상업 판매액등 11개의 지수를 이용해 산출해 낸 것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불황으로 기업과 가계의 수지가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설비투자 및 소비가 되살아나 본격적인 호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최저점에서 최저점까지의 경기순환 사이클로서는 86년 12월부터 93년 10월까지 83개월동안 지속된 「헤이세이(평성)경기」라는 거품경제기가 전후 최장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일 경제위력 얼마 못간다”/영 경제평론가 분석서 화제

    ◎증시 무기력·은행 악성부채 증가/정경유착·부패 심화가 주요원인/“땅값 인하·적자기업 정리” 대안 제시도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일본경제의 위력은 일본 자체의 내재된 모순으로 멀지않아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분석서가 출판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 출신으로 국제경제평론가인 크리스토퍼 우드는 자신의 최신 저서 「일본주식회사의 종말」(TheEndofJapanInc.,사이몬&슈스터사 발행)에서 『일본은 현재 큰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동안 일본을 피폭의 재앙과 오일쇼크등에서 이겨날 수 있게 해왔던 원동력인 단결력을 바탕으로한 이른바 「전후질서」가 기업가·관료·정치가들의 부정적 결탁으로 더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드는 『자민당의 오랜 지배와 엄청난 뇌물정치등은 정상적인 정책결정과정을 파괴시켰으며 높은 땅값에의 지나친 의존은 재정체계의 혼란을 가져왔고 사무직 근로자들의 생산성 저하도 크다』고 말하고 『특히 냉전의 종식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전략적 관심을 무역논쟁으로 바뀌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지난 40년간의 번영 이후에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던 자민당이 최대의 라이벌이던 사회당과 연합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자본증식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주식시장은 무역의 활기를 잃게 했으며,은행은 악성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정보혁명으로 최고의 활기를 띠는 정보산업에서 일본 하이테크 회사들의 기여가 줄어들었고,일본 노동력 안정의 주요인이었던 종신계약제도도 점차 폐지돼가고 있다고 우드는 덧붙였다. 우드는 『적자를 보는 기업은 과감히 정리토록해 새로운 자본이 새로운 경제적 감각을 지닌 새로운 비즈니스에 투입될 수 있게 해야하며 땅값을 70%까지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하고 『이같은 충격요법들은 은행제도에 큰 쇼크를 주고 광범위한 실업을 발생시키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강력한 일본경제를 만드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특수강판매 호조/자구노력 가시화/삼미그룹 재도약 “시동”

    ◎무리한 증설 등 영향 줄곧 적자행진/비바백화점 매각·가법인 흑자 “재기” 김현철회장이 이끄는 삼미그룹은 유난히 기복이 심하다.잘 나갈 땐 한없이 잘 나가지만,한번 주춤거리면 넘어질 위기까지 맞는다. 삼미는 80년 초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매출액 순위 17위까지 뛰어올랐던 유망한 그룹이었다.10층 빌딩이 고작이던 60년대에 서울 관철동에 31층짜리 3·1빌딩을 지어 재계를 놀라게 했던 떠오르는 별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좋을 때 기업을 무리하게 확장,금이 가기 시작했다.해운과 목재가 주력 기업이었으나 특수강·조선·금속·전산·유통업과 프로야구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여기에 창업자 김두식회장의 갑자스런 별세와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지난 84년 도산위기에까지 몰렸다. 30대 초반에 경영을 떠맡은 김회장은 결단을 내려,주력이던 해운사업을 넘기고 회사의 상징인 3·1빌딩을 과감하게 매각하는 자구책을 썼다.적자를 면치 못하던 특수강을 주력 업종으로 전문화하는 비상식적인(?) 결단을 내렸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단행된 기업매각,통폐합,부동산 처분 등의 감량경영은 결국 4년만에 삼미를 국내 기업 중 가장 알찬 회사로 탈바꿈시켰다.특히 남들이 갸우뚱하게 여기던 특수강으로의 업종 전환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자동차 산업의 호황과 함께 특수강은 84년부터 연 평균 30∼40%씩 신장했다.이 때문에 계열사 수를 12개에서 4개로 줄였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예전의 2배로 늘었다. 「특수강왕」을 노리며 맹렬히 뛰던 김회장은 그러나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85년과 86년 세계적인 특수강의 호경기를 맞아 창원공장의 증설을 비롯,시설투자에 3천여억원을 투입했다.금융부담이 큰 상황에서 89년 캐나다의 최대 특수강 회사인 아틀라스도 인수했다.이로써 세계 최대의 특수강그룹이 됐지만 「빛 좋은 개살구」마냥 줄곧 적자만 나다 92년 또다시 어려운 고비를 맞았다. 삼미의 자구노력은 다시 시작됐다.비바백화점 등 부동산의 매각에 나서는 등 채권 은행단에 제시한 자구계획을 하나 하나 이행했다.그러자 제일은행 등 9개 은행들이 총 1천3백억원의 자금을 지원했고,이를 바탕으로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일이 풀리려 했던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특수강 경기도 다시 찾아왔다. 올 상반기 삼미특수강은 3천6백6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전년 동기대비 16%의 신장이다.금년 목표인 8천억원의 매출이 무난한 상황이다.더욱이 그동안 「애물단지」 노릇을 하던 캐나다 현지법인이 첫 흑자를 실현해 완벽한 도약이 가능해졌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한다.삼미는 지금 제3의 도약 내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재계의 시선은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선 삼미호의 앞날을 주시한다.
  • 경제규모 40년간 2백35배 커졌다/한은,53∼93분석

    ◎1인 GNP 111배/교역 규모 426배/외환 보유 184배/GNP 53년 14억불서 작년 3,200억불/실업률 70년까지 6.4%… 91∼93년 2.5% 6·25전쟁이 끝난 뒤(53년)40년 만에 인구는 2배 늘었으나 경제 규모(GNP)는 2백35배나 커졌다.1인당 GNP는 1백11배,교역규모는 4백26배,외환보유액은 1백84배가 됐다. 15일 한국은행이 국민소득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53년부터 작년까지의 주요 총량지표 변동추이를 분석한 결과 전체 경제규모는 53년 14억달러에서 작년에는 3천2백87억달러로 커졌다. 전후 공급물량의 절대부족으로 60년까지는 19억달러에 불과했으나 성장위주의 경제개발 계획이 시행되면서 70년 81억3천만달러(세계 33위),80년 6백4억6천만달러(27위),90년 2천5백17억9천만달러(15위),93년 3천2백87억달러(12위)로 급증했다. 따라서 1인당 GNP도 53년 67달러에서 60년 79달러,70년 2백52달러(세계 80위),80년 1천5백92달러(61위),90년 5천8백83달러(41위),93년 7천4백66달러(38위)로 커졌다. 성장을 주도한 수출입 규모 역시 53년에는 수출 4천만달러·수입3억5천만달러,60년에도 수출 3천만달러·수입 3억4천만달러에 불과했으나 60년대 중반부터 교역규모가 부쩍 늘어나며 70년 28억2천만달러,80년 3백98억달러,90년 1천3백48억6천만달러,93년 1천6백60억4천만달러로 비약적으로 증대됐다. 외환보유액의 경우 53년과 60년,70년에 각각 1억1천만달러,1억6천만달러,6억1천만달러에 그쳤다.만성적인 외환부족 시대였다.그러나 교역규모 및 대외신용도가 높아지면서 80년 65억7천만달러,90년 1백48억2천만달러,93년 2백2억6천만달러로 급격히 커졌다. 생산자 물가의 경우 60년까지는 전후의 만성적인 물자부족으로 연 평균 21.5%가 올랐다.61∼70년에도 공급이 달려 13%의 높은 수준이 이어졌으며,71∼80년에는 성장위주의 정책에 오일쇼크 등 대외경제 여건 악화가 겹치면서 19.9%의 높은 상승률에 시달렸다. 그러나 80년 대 들어 안정위주로 정책이 바뀌고 대외여건도 호전되면서 81∼90년 3.4%,91∼93년 2.8%로 안정됐다.소비자 물가 역시 66∼70년과 71∼80년은 각각 연 평균 13.8% 및 17%였으나 81∼90년은 5.5%,91∼93년 6.5%로 비교적 안정추세다. 성장 잠재력을 알 수 있는 저축률과 투자율의 경우 53∼60년까지의 연 평균 저축률은 11.1%,61∼70년 15.5%,71∼80년 22.7%로 같은 기간의 투자율 11.5%,18.8%,28.7%를 밑돌았다.부족분은 외자에 의존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81∼90년의 저축률은 31.1%,91∼93년 35.3%로 같은 기간의 투자율 30.8%,36.8%를 웃돌거나 엇비슷해 국내 저축으로 대부분의 투자액을 충당했다. 70년까지 연 평균 6.4%였던 실업률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71∼80년 4.1%,81∼90년 3.5%,91∼93년 2.5%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년까지 12%,70년까지 17.5%,80년까지 26.3%,90년까지 30.7%로 계속 커지다가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는 등 산업구조가 선진화되며 작년에는 27.8%로 떨어졌다.
  • 일본/고용구조 와해 대량실업 예고(현장 세계경제)

    ◎엔고로 기업 불황… 성과급제 도입/「종신고용」 주춤… 감원발표 잇따라/조직의 비대화·승진 적체·생산성 감퇴 등 문제점 부각 불황의 날카로운 이빨에 뜯겨 일본의 「자애로운」 고용구조가 와해되고 있다.종신고용,연공서열식 승진,가족주의로 압축되는 일본의 고용방식은 고성장 뿐 아니라 낮은 범죄율 그리고 사회평등을 달성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그러나 같은 선진국조차 선망하던 이 제도는 점점 퇴색의 길을 걷고 있다. 엔화강세로 수출주도형 성장이 막대한 타격을 입은데다 내수확대마저 어려워 불황에 빠진 일본 대기업들은 전통적인 종신고용제를 문제삼으면서 일본 기업문화에 생소한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 일본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중의 하나가 종신고용제라는 인식에서 진행되는 중이다.선진국들이 부러워해 마지않은 저실업률(2.8%)을 달성해왔던 종신고용제는 서구의 일반적인 기업문화인 사용자의 해고의지 상존­사기저하­숙련기술상실­실업의 악순환을 막는 휼륭한 방패였다. ○화이트칼라 급증 수출주도로 경제기적을 이룩한 일본은 항상 일감이 마련돼 있어 직원들이 수십년씩 회사를 떠나지 않고 일하는 전례가 정착됐다. 하지만 이방식은 조직의 비대화와 승진적체,생산성감퇴라는 부작용을 또한 낳았다.제1차 오일쇼크이후 세계적 불황속에 성장이 둔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는 꾸준히 늘어났다.화이트칼라가 총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0년 36%(1백20만명·상장회사기준)였으나 90년에는 56%(3백50만명)에 이르렀다. 화이트칼라의 증가는 두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하나는 승진정체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성 둔화이다. 77년 부장급 화이트칼라의 25%가 44∼49세의 중년이하였으나 10년뒤 이비율은 15%로 줄였다.일본최대 양조회사 「기린맥주」의 경우 84∼92년사이에 생산직 직원은 29%를 줄인 반면 화이트칼라는 배로 늘렸다.화이트칼라는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지 못하고있다. ○가족혜택 사라져 시간당 생산성에 있어 70년도 통계치를 1백으로 잡을 경우 90년 화이트칼라는 1백5로 블루칼라(생산직)의 1백10에 미치지 못했다.최근 수년동안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전체 상승률에는 못 미친다.89년이후 전체생산비는 줄었어도 판매및 관리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는 기현상이 생겨 사용자연합측은 화이트칼라의 생산성이 미국의 3분의 2에 불과하다고 불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불평은 곧 구조재조정(리엔지니어링)이라는 명목하에 대량 감원사태로 이어졌다.지난해 일본최대의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관리직 사원 5명중 1명을 본직에서 애매한 특수사업에 재배치하겠다는 경고장을 내놨다.마쓰시타전기는 화이트 칼라의 생산성을 지금보다 30%나 더 향상시킬 수 있다며 다그친다.또 한때 할일없는 직원을 위해 버섯농장,주제공원,퇴직자 주택사업 등에 투자했던 일본제철조차 97년까지 7천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혼다도 예외는 아니다.80년대 합의적 의사결정을 실험했다가 이젠 철저한 개인책임주의와 성과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전역에 걸쳐 기업의 직원에 대한 가족주의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객 뿐만 아니라 고용인 가족에 대한 접대의 전통과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일본이었지만 올해 대기업이 4대 백화점 매출액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40%에서 20%로 반감해 버렸다. ○수당·상여금 삭감 일본의 기업들은 아직까지 감원보다는 종신고용의 틀은 유지하면서 수당·보너스 삭감을 택하는 쪽이 많다.하지만 기업체마다 성공에 대한 보상과 실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라는 원칙을 적용하는 추세여서 종신고용의 안전판은 무너지고 있다.
  • 국토­상처받기 쉬운 갈대/지명관(시론)

    요즘 서울과 춘천 사이를 자주 오가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파스칼의 말을 되씹곤 한다.그는 「자연속에서 가장 연약한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했다. 그가 살고있던 17세기에는 아직 자연이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인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그러니까 자연을 한번 정복하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소원이었다.나는 경춘선 차창에 기대어 소양강 강물을 내려다보고 그너머 병풍처럼 이어지는 검푸른 산들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저 강물 저 산들,그리고 춘천을 감싸고 있는 호수들이 언제까지 저렇게 깨끗하고 시원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정말 오늘에 있어서는 최대의 자원이란 자연그대로의 산과 물과 공기가 아니겠는가. 지금은 자연이 인간들 앞에서 그지없이 무력하게 놓여져 있다.인간보다 연약한 것이 자연이다.또는 인간이나 자연이나 우리 국토나 다같이 「하나의 갈대」처럼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이라고 해야한다.그러므로 이 모두가 정답고 부드러운 손길을 필요로 하고있다. 우리 정부는 2001년까지 8년간에 걸쳐 1조1천5백억원을 들여 「백제문화권」의 「대개발」을 서두른다고 하더니 이제는 또 마찬가지로 2001년까지 총7조3천9백1억원을 들여서 「제주도 국제관광지 개발」에 힘쓴다는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균형개발법」을 시행하여 서해안도 남해안도 동해안도 그야말로 거의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개발을 하고 각지역을 대도시와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토개발」이 이번에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상과 실천노력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된다고 하니 가히 「획기적인 변화」라고 자화자찬할만 하다.이렇게 21세기를 향하여 밝은 구상을 보여주면서 한걸음 한걸음씩 건설해 간다고 하니 정부관리의 복지불동도 이제는 끝난 것인가 하고 기대를 걸게된다.그러니까 그 정책에 대해서 여기에 이것저것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다만 우리의 자연,우리의 국토는 우리의 몸과 같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이라는 현대적인 자연관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자연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몸보다도 상처를 받으면 영원히 또는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이니셔티브로 그러한 개발이 진행된다고 하니까 우리의 지방자치가 어느정도의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고 묻고 싶어진다.일본에서는 스스로 「삼할자치」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공해없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토지를 제공해주고 사립대학인데도 부지를 제공하며 교사건축비마저 마련해주는 예가 적지않다. 그리고 이번의 국토개발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민자를 유치한다고 했는데 일본의 동북지방에 있었던 한가지 예를 소개하고 싶다.어떤 대건축업자가 20여만평에 고급주택지를 조성하려고 했다.그러나 그 지역이 외진 곳이라 시내에 있는 여자대학에 8만평이라는 토지를 제공해서 그 지대를 밝은 지역으로 만들었고 고급주택지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이처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지역을 함께 만들수 있는 마음가짐과 지성이 아쉽다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일본이 경험한 좀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만 더하려고 한다.1970년대초 토건업자 출신인 다나카 가쿠에이총리때 얘기다.그는 고도성장에 의한 도시집중을 피하려고 「일본열도 개조론」을 전개했다.초과밀도시에서 공장을 지방으로 재배치하고 여러지방에 25만인구의 도시를 건설해가며 전국을 1일 행동권으로 하는 교통망으로 연결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에 일본국민도 상당히 흥분했었다.그러나 한해에 물가가 16%나 뛰고 지가는 42%나 폭등했던 것이다.거기에다가 그러한 국토개조론의 전제가 되었던 고도성장이 사실은 끝나가고 있었고 오일쇼크등 대외적인 조건도 악화되었다.이리하여 그 거대한 토건업자적인 꿈은 그야말로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전국에 그 상처만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2백만가구 아파트건설은 좋았지만 그것으로 임금이 폭등하고 농촌에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게 된 쓰라린 경험도 있지 않았던가.건설도 개발도 좋다.그러나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공론이 돼서는 안된다.국민도 자연도 국토도 무리하게 거칠게 다루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진노하는 법이다.그렇지만 문민정부의 국토개발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싶다.
  • 프랑스(외국원전 어떻게 운영하나:2)

    ◎55기 가동… “지역경제 도움” 주민 환영/“방사능누출 없도록” 샘플 2만개 채취 프랑스는 농업국으로 자원이 별로 없다.1차 오일쇼크 때 에너지의 해외의존도가 78%였다.충격이 컸음은 물론이다. 오일 쇼크를 계기로 프랑스는 원자력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삼게 된다.지난 60년 사하라 사막에서 핵폭발 실험에 성공한 프랑스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서 선두 주자로 나선 셈이다. 프랑스에는 현재 5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원자력 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70%이다.남는 전력은 영국과 독일에 수출한다.원전을 수용하는 국민들의 행태 역시 매끄럽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1백㎞ 떨어진,세느강 상류에는 프랑스전력공사(EDF)의 노장 원전(1백36만㎾급 2기)이 있다.파리시민들은 그러나 상류의 노장원전을 의식하지 않고 세느강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한다.노장 때문에 오염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다.현지 주민과의 잡음도 없다.많은 노력과 공이 든 것은 사실이다. 노장원전이 들어설 80년대 무렵 파리의 「노장 스톱」이라는 반핵단체가 한동안 반대시위를 한적이 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체는 시민들과 멀어졌다.많은 주민들은 오히려 지역경제 활성화를 들어 호의적이었다.노장은 파리의 상수원 지역에 무리없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우리로 보면 팔당에 원전이 들어선 격이다. 그러나 창업보다 수성이 중요한 법.노장원전은 87년 가동 이래 방사능 오염 등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역주민 고용만 2백여명이다.직원 기숙사를 지으면서도 한 곳에 몰아짓지 않고 주민과의 융화를 고려,분산해 지었다.연간 1억1천만프랑(1백65억원)의 영업세와 2천7백만프랑의 재산세를 지방세로 낸다.지역 중소업체에 보수비 명목 등으로 연 1억3천만프랑을 지불함으로써 지역경제를 도와주고 있다.그러나 원전지역이라고 전기료를 깎아주거나 개별적인 보상은 없다. 홍보부장 빠르동씨는 『지원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과 환경』이라고 말했다.『우선 발전소 사고가 없어야 합니다.주민들과 대화의 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요.주민의 이해증진을 위해 원전관련 전시회를 열고 직원들이 체육대회 등 지역행사에 참가해 호흡을 같이 합니다』 원전 주변에는 수질검사소 한 곳과 대기측정소 4곳이 있다.채소나 젖소의 방사선 쬐임량을 체크하고 발전소 구내에서 지하수를 뽑아 검사한다.밖으로 배출하는 하수의 기준치는 자연방사선의 40분의 1이다.생태학자,환경단체와 원전주변의 생태계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의견을 교환한다.조사한 자료와 정보는 주민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지역정보 위원회에 통보한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파리 북서쪽 노르망디 해안의 목가적 도시,쉘부르.이 전원도시가 속한 꼬땅뎅 지역은 프랑스 최대의 원자력산업 단지이다.핵연료 재처리공장인 꼬제마사의 재처리 시설과 라망쉬 폐기물 처분장,핵잠수함 건조시설,프라망빌 원전이 모두 이곳에 있다.92년 11월 일본이 「사용 후 핵연료」를 꼬제마에서 재처리,플루토늄 1t을 싣고 떠났던 곳도 쉘부르항이다. 꼬제마사는 우라늄 채광에서 핵연료 재처리까지 한다.재처리 시설은 1백기의 원전이 1년간 사용하는 1만4천t의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재처리할수 있다.꼬제마 역시 재처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방사선 누출을 극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한다. 공장 주변의 젖소와 대기,빗물,지하수,생선,모래,잡초 등에서 2만가지의 표본을 추출해 보건성 감독 아래 6만가지 분석을 한다.중앙 환경감시센터의 컴퓨터에는 공장 환기통에서 측정되는 방사선과 크리톤,할로겐 등 원소별 수치,주변의 방사능 세기가 2분마다 나타난다.자연 방사능의 세기도 가장 약할 때를 기준으로 해 그것보다 높으면 경보가 울리게 돼 있다. 이곳의 컴퓨터 환경정보는 컴퓨터 정보은행인 「미니텔」에 연결돼 지역 주민은 물론,프랑스 어느 곳에서도 알 수 있다.홍보책임자 나탈리 샤뚜씨는 『재처리 시설 때문에 경보가 울린 적은 없다』고 했다.87년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때 딱 한번 울렸었다. 90년대 들어 프랑스의 반핵운동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잠잠해졌다.원전시비도 사라졌다.원전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환경에 주는 영향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 특허청/“특허개혁 5개년계획 추진”/안광구청장에 듣는다(국정탐방)

    ◎심사기간 단축… 공정성제고 노력/심사관수 늘리고 선행 기술조사 외부 의뢰/정책자금 특허 기술에 집중공급/96년까지 자료전산화… 중복투자·분쟁 예방 □대담=조남진 생활과학부장 미국은 지난91년 한햇동안 일본의 1천6백여 회사를 지적재산권 침해혐의로 무더기 제소 했으며 기술료만 매년 2백억달러씩 챙기고 있다.일본은 거꾸로 92년 미국에 신규특허의 45.7%인 2만1천건을 등록함으로써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국경없는 기술전쟁,특허전쟁이 시작됐다.기술전쟁시대에 대비,기술개발을 효율적으로 관리·지원해주는 업무를 맡고 있는 곳이 특허청이다.특허청이「정보의 사랑방」으로 탈바꿈을 선언하고 나섰다.특허행정의 선진화·국제화를 통한 도약을 위해 특허과제 1백개를 선정하고 「특허개혁 5개년계획」을 추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는 안광구특허청장(51)을 만났다. ○「정보의 사랑방」 선언 안청장은 지난63년 제1회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한 뒤 상공부 산업정책관,특허청 항고심판소장,상공부 기획관리실장 등을역임하면서「한국무역론」「일본기업,왜 강한가」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기술전쟁시대를 맞아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특허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어떤 전략을 갖고 계십니까.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세계특허출원 건수는 60년 90만건이던 것이 82년 1백80만,91년 3백20만건으로 늘었습니다.세계각국이 산업재산권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우리나라도 92년 12만8천건으로 세계6위를 기록했습니다.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길은 기술개발 뿐이며 이를 뒷받침할 산업재산권에 대한 총력체제를 갖춰야할 시점입니다. ­최근 특허권 출원율이 급증하는 주된 이유는. ▲세계경제는 70년대 초반까지 전반적으로 고도성장기였습니다.그러나 두번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성장이 둔화,수요가 한정됨으로써 모든 나라가 세계시장을 서로 많이 점유하려는 판매노력이 치열해졌습니다.이에 따라 종전 선진국기업들은 단순히 상품생산­판매수익에서 최근에는 기술료에 의존하는 지적재산권이「기업의 주요한 원천」이라는 생각으로 변한 것입니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특허개혁 5개년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산재권보호에 총력 ▲이 개혁안은 크게 특허청 내부및 산업계에 대한 외부개선안으로 나뉩니다.내부적으로는 심사·심판의 신속·공정성을 확보하고 자료및 정보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입니다.밖으로는 산업재산권 출원인들에 대해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고 발명된 성과를 빠른 시간내 권리화하며,국내외 산업재산권 정보를 신속하게 입수,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특허개혁 1백개과제를 효과적인 추진하기 위한 「발명진흥법」을 마련하겠습니다. ­발명진흥법은 어떤 내용입니까. ▲지난57년 제정된 발명보호법이 현재는 비현실적인 것입니다.발명진흥법의 가장 큰 목적은 발명분위기 진작과 특허등록된 기술의 상품화를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직무발명보상제를 실시하고 선행기술조사를 외부에 의뢰하는 심사처리의 신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합니다.또 특허기술의 상품화를 돕는 법적 기관인 특허기술사업화알선센터를 설립하는 것등입니다. ­우리는 발명의식을 고취하는 유인동기가 부족한데 다른 나라들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이 특허국장을 겸임할 정도로 개인의 창작·발명에 관심이 각별해 거대 미국 건설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일본도 20세기초부터 일본의 왕세자가 매년 우수발명품을 고안한 사람을 뽑아「은사」를 내려 발명의식 진작에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나라는 5월에 열리는 발명의 날,11월 우수발명품전시회가 고작입니다. ○사업화 알선센터 운영 ­새로운 개념의 신지적재산권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인간의 창작품을 지적재산권으로 규정,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등 으로 보호해왔습니다.그러나 첨단기술의 발달과 지적재산권의 이용형태에 따라 세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따라서 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의 중간영역인 컴퓨터프로그램·반도체칩배치설계보호권,저작권과 산업재산권이 혼재하는 상품화권등 새로 생겨나는 분야를 말합니다.특히 분야가 다양하고 제도 도입에 따른 이해득실이 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연구검토돼야 할 것입니다.따라서 국제동향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지적재산권연구소와 같은 전담연구기구의 설치가 시급한 실정입니다. ­지난9월말현재 특허및 실용신안 출원에 대한 심사미처리건수는 11만8천여건이며,평균 심사처리기간도 미국 1년7개월,일본 2년6개월에 비해 2년10개월로 오래 걸리는데 개선책은 있습니까. ○전문연구기관 필요 ▲특허청 초기였던 77년 심사관수는 68명,특허출원건수는 2만5천6백75건인데 비해 92년말에는 건수로는 5배가 증가한 12만7천8백여건이나,심사관수는 2·5배만 는 1백70명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첨단산업분야 출원이 늘고 내용 또한 고도화되어 어려움이 가중됩니다.따라서 심사관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심사관의 기술담당범위를 축소시켜 전문화를 유도해나가겠습니다.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중인 자료조사시스템 구축등 특허전산화계획을 조기에 끝낼 예정입니다.심사촉진을 위해서는 산업기술정보원에 92년 4백5건,93년 6백52건등 선행기술조사를 의뢰하고 있습니다.­특허를 획득하고도 사장되는 것이 60%이상을 웃돌고 있습니다. ▲좋은 발명을 해 특허를 얻은 발명가및 사업자들에게 상품화할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특허청의 주요업무입니다.현재 특허기술의 실용화를 위해 기술평가지원,각종 정책자금지원 추천,시제품제작비지원등을 하고 있으나 예산부족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앞으로 각종 정책자금 취급기관의 특허기술에 대한 지원이 최우대 받을수 있도록 가산점을 부여할 예정입니다.또「특허기술기업화상담센터」의 운영을 활성화,특허기술의 거래·알선등을 장려함으로써 측면지원하겠습니다. ­첨단기술의 개발과 기술의 국제화로 전문성과 국제화가 필요한 변리법인 도입등 변리사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은데. ▲특허출원내용의 첨단화·고도화 추세에 맞춰 미흡하지만 지난91년부터 변리사 선발인원을 연 15명에서 30명으로 늘리고,올해부터 급증하고 있는 전기·전자분야의 과목을 변리사 시험과목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또 산업재산권의 국제화및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진전에 따른변리업무 개방등에 대비하고 있습니다.변리사의 국제 업무처리능력을 높이기 위해 수습변리사에 대해 미·일등 선진국의 산업재산권 법제에 대한 연수를 신설,강화하고 있습니다.세계적 지적재산권 연구기관인 미국 프랭클린 피어스 로센터와 국제특허연수원과 상호학점 취득을 인정토록 하는 공동약정을 체결,연수도 장려하고 있습니다.이밖에 변리사제도의 개선책을 위해 연구용역을 주었으며 94년중 변리사법을 개정할 방침입니다. ○내년 변리사법 개정 ­최근 우루과이라운드등 선진 각국의 산업재산권과 관련한 통상압력은. ▲산업재산권에 대한 국제협상은 WIPO와 우루과이라운드 GATT(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통한 협상채널이 있습니다.그러나 WIPO는 GATT와는 달리 산업재산권의 무역관련 측면보다는 법적·제도적 개선에 치중하고 있으며 산업재산권 침해물품의 교역에 대한 제재수단이 없는 형편입니다.따라서 선진국들은 강제력있는 우루과이라운드 GATT를 통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특허제도도 많이 국제화돼 크게 우려할 문제는 없습니다. ­특허전산화 7개년계획은 어떻게 돼 갑니까. ▲증가하는 특허출원과 심사시 선행기술조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방대한 산업재산권자료 관리및 출원이전 선행기술조사를 통한 기술개발방향 결정과 중복투자,특허분쟁의 사전예방을 위해 특허전산화는 꼭필요합니다.96년까지 국내외 특허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심사·심판에 활용하는 한편 이를 공중통신망에 띄우고 특허출원을 하는데 종이없는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올해안으로 영문특허·실용신안 검색시스템 개발을 끝내고 94년까지 해외 특허자료 구입및 국내 특허자료의 가공을 통해 특허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나갈 계획입니다.
  • 유가 내년초까진 「1배럴 12∼15불」/15불선 붕괴 배경과 전망

    ◎OPEC 감산합의 실패가 하락 부채질/성수기 접어들어 더 떨어지진 않을듯 국제유가가 요즘 계속 내리막이다. 최근 3∼4년간 「겨울철 강세,여름 약세」라는 상식과도 어긋나게 움직이고 있다.국제 시세를 대표하는 두바이유,오만유,브렌트유,서부텍사스 중질유 등 현물가격도 지난 25일 배럴당 12∼15달러로 88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유가 폭락세는 기본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약세가 공급이 수요(하루 2천4백50만배럴)를 30만 배럴 초과하는 데다 선물시장의 투기적 상황이 가세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여기에 지난 23∼2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석유수출국기구)총회에서 회원국들이 추가 석유감산에 합의하지 못하고 지난 9월의 합의사항(하루 2천4백52만배럴 상한)만 준수키로 하고 폐막된 점도 유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총의에서 회원국들은 유가회복을 위해 OPEC의 감산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지만 입장대립으로 추가감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이들은 유가폭락의원인이 OPEC 회원국의 과잉생산보다 선진국의 수요둔화와 비OPEC 산유국의 과잉생산에 있다고 보고 있다.이 때문에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요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극적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OPEC가 추가감산에 실패,유가폭락세가 이어지나 성수기인 동절기에 접어든데다 현재 유가가 88년 이후 최저수준이라는 점에서 추가하락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사우디 쿠웨이트 등 주요 OPEC 회원국이 현재 시장의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어 추가하락의 경우 OPEC의 긴급대응도 기대된다는 것이다.따라서 내년 1·4분기까지 OPEC가 하루 2천5백만배럴의 생산을 유지하면 유가는 배럴당 12∼15달러를 보이리란 전망이다. 연간 5억배럴 내외의 원유를 수입하는 우리에게 유가하락은 호재다.배럴당 1달러만 떨어져도 연간 5억달러의 외화를 절감할 수 있고,원유하락폭 만큼 가격경쟁력도 높아진다.걸프사태 때 정유사가 본 손실을 보전하느라 아직은 유가하락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덜 돌아가나 손실보전이 끝나고 내년초 유가연동제가 실시되면 가격하락의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내 에너지 값이 전반적으로 낮아 에너지 과소비 현상이 지속되는 점은 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할 사안이다.73년 55.5%였던 수입에너지 비율이 지난해에는 93.6%로 높아졌다.에너지소비 증가율은 12.5%로 세계 2위다.이렇게 수입의존적이고 과소비적인 구조에서 제3의 오일쇼크라도 닥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 일 중고차 수입… 중국에 밀수출 극성(오늘의 북한)

    ◎북 외화벌이 백태 연변에 「그림공장」… 예술도 상품화/「기생조」조직,외국관광객 상대 봉사활동/죽제 일용잡화·들쭉술도 주요 품목으로 북한의 외화사정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 관광객들에게 그림장사를 하는가하면 중국에 중고자동차를 밀수출하는등 각가지 외화벌이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 연변을 다녀온 통일원 관계자들은 최근 북한의 흥미로운 외화벌이 사례들을 전했다.북한에서 꽤 이름있는 월북화가들이 중국을 찾는 한국 사람을 상대로 그림 판매에 나선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이들 북한화가 9명은 연길시에 아예 「그림공장」을 차려놓고 동양화등을 대량 「제작」,판매원을 내세워 이곳을 찾는 남한 관광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더욱이 이들은 우리 기업가들에게 「대전엑스포 관람객들을 상대로 대량판매가 안되겠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올들어 특수식물 재배단지를 잇따라 조성하고 있는 것도 당면한 외화부족을 타개하기위한 자구책이다.최근호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죽제 일용잡화의 원료확보를 위해 강원도 고성군에 수백정보에 이르는 대규모 참대숲을 조성했다는 것이다.이밖에도 들쭉술을 만드는 원료인 들쭉나무단지와 수출용 사과나무단지등도 북한 각지에 대대적으로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중국 접경지역에서 북한이 중국으로 중고자동차를 대량 밀수출하고 있는 사실도 외화조달을 위한 북한당국의 안간힘의 하나이다.최근 중국을 방문한 정부관계자에 따르면 경제개방 이후 자동차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겨냥,북한이 중국 지방정부 당국자들과 짜고 차령 10년 안팎의 도요타·혼다등 일제 승용차들을 밀매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는 일본 대장성이 최근 발표한 「동아시아경제정보」자료에서 북한이 올해 대일수입품 가운데 1위가 중고승용차인데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북측은 올상반기중 20억1천만엔어치에 달하는 총4천8백22대의 일제 중고차를 수입한것으로 밝혀졌는데 북한의 당면한 유류난을 감안할때 이중 상당수가 중국으로의 밀수출용임을 어렵지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공공연한 비밀인 이른바 「기생조」가 운영되고 있는 것도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의 하나이다.북한 노동당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전담하는 8국5과에서 관장하고 있는 이 기생조는 평양과 금강산·묘향산지역의 호텔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북한당국은 지난 78년이후 공식적인 환율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북한은 이미 지난 80년대 중반 일본정부가 수출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곤경에 빠진 자국의 대북한 수출기업에 무역수출보험을 지급한 시점에서 국제적인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외화부족 사태를 몰고온 가장큰 원인은 무역역조의 누적이다.무역진흥공사의 추계에 따르면 92년 한해만하더라도 북한은 6억3천8백만달러의 무역수지 적자(수출 9억1천6백만달러,수입 15억5천4백만달러)를 기록했다.여기에다 지난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수차례의 대외차관 지불연기로 국제신용이 실추,차관도입이 원활치 못한데다 중국과 러시아가 청산계정을 철폐하고 원유도입시 경화결제를 요구함으로써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 “안전정책은 대안 없었던 선택”/퇴임 이틀앞둔 최각규경제팀 공과

    ◎임금 고졸상승 경기침체 불러/“총수요 집착 성장 감퇴” 비판도 6공 마지막 2년의 경제를 담당하고 물러나는 최각규경제팀의 재임기간만큼 경기논쟁이 많았던 시기도 찾기 어렵다. 안정에 집착해 성장잠재력을 죽였다는 비판이 재임기간내내 있었다.지난 연말부터는 이른바 「급브레이크론」도 등장했다.기업체질을 과신,경기를 급랭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했다는 비판이다. 퇴임을 이틀 앞두고 최부총리는 안정정책이 대안없는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새삼 회고했다.다만 미시산업정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쉬움을 지적했다.산업정책을 통해 경기낙폭을 줄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후회다. 최부총리팀은 총수요관리,기업경쟁력강화를 정책축으로 일관했다.취임했던 91년 초,경제는(90년기준)성장 9.3%,물가 8.6%,국제수지적자 21억달러였다.92년말 성적표는 물가 4.5%,성장 4%대,국제수지적자 40억달러대로 짜여있다. 『경제에서 최선은 고성장·저물가·국제수지흑자이고 최악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기업경쟁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가 일부의 비판을 못이겨 총수요관리를 포기했더라면 저성장 고물가의 스테그플레이션과 국제수지적자확대를 가져왔을 것이다』 최부총리는 지난 몇년간의 우리경제 어려움을 오일쇼크에 견줘 「임금쇼크」로 규정했다.민주화바람과 함께 온 고임금행진이 경제를 망쳤다는 것이다.『4년에 걸쳐 임금상승률이 생산성향상범위를 넘었다.기업의 경쟁력이 있을리 없다.기술개발로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그런속에 과소비 광풍이 왔다』그는 취임과 함께 임금억제를 최우선과제로 역설했지만 이를 현실화시킬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고,92년에야 경제위기감을 밑에 깔고 총액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재임기간중에 수많은 기업도산이 있었다.반면 물가가 잡혔고 임금인상자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거품이 많이 걷히면서 어느정도 기업체질도 강화되고 있다.이런 것들이 앞에 나타난 결과다. 그러나 전체정책에 대한 옳고 그름은 더 시간이 필요하다.안정화 일변도가 장기적으로 「쓴약」이 돼 지속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인지,일부의 비판대로 성장잠재력을 죽인 것인지는 시기적으로 새정부의 경제팀에 의해 검증받을 수 밖에 없게 돼있다. 최부총리는 아쉬움으로 두가지를 꼽고 있다.앞서의 미시산업정책에 대한 미진함이 하나고,또 하나는 경제팀 조직이 경제가 어려울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는 불협화의 경험이다. 『총수요관리책을 지속하되 지난해 하반기이후 산업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보완하려했다.그러나 이것이 재벌규제를 위한 「신산업정책」을 쓰려한다는 오해를 받았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부총리는 경제팀내 협조부족에 대해서는 현직을 떠난후에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했다.다만 경제팀의 기능과 조직을 어떻게 개편해야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알게됐다고 했다. 최부총리는 4∼5월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에 가 경제공부를 할 계획이다.한국경제에 대해 압축성장의 좋은 점만 연구를 해왔는데 그는 선진경제에 진입하기위해 한국경제가 해결해야 할 장애에 대해 연구할 생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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