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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일만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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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희망/오일만 논설위원

    누구나 한 번쯤은 삶 자체가 희망과 절망의 시소게임이나 줄다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망 앞에서 한 걸음 움츠렸던 발걸음을 희망의 힘으로 두 걸음 힘차게 내딛던 경험이 있을 법하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의 싹을 보려는 안간힘, 이것이 혹독한 외부 환경에 전전긍긍하며 생사를 넘나들던 인간들이 살아남은 비결이다.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희망이란 감정을 끄집어내 인간의 생존 지침서나 다름없는 DNA에 촘촘히 아로새겨 놓았다. 믿음이 강한 곳으로 에너지가 흐르고 또 그런 방향으로 운명을 개척해 온, 바로 긍정의 힘이다. ‘두려움은 당신을 감금하고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억울한 무기수의 탈출 과정을 그린 영화 ‘쇼생크 탈출’의 메인 포스터에 나오는 글귀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면서 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배회하는 우리네 삶이 오버랩됐다. 굽이굽이 굴곡 많은 것이 인생살이다. 간혹 힘들고 어려운 난관에 직면해 있을 때, ‘슬픈 날을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쓴 푸시킨의 시구를 떠올리면 어떨까.
  • [씨줄날줄] 일대일로와 인도·태평양 전략/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일대일로와 인도·태평양 전략/오일만 논설위원

    아시아 지역의 맹주 다툼이 치열하다. 전통적으로 대륙세력 중국과 해양세력 일본의 다툼 속에 최근 떠오르는 경제 대국인 인도가 가세한 구도다. 일본은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준 이후 절치부심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일본은 이런 위기 극복을 위해 1951년 체결한 미·일 군사동맹을 활용했다. 미·일 군사동맹은 원래 소련을 겨냥한 것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목표물로 삼았다. 중국이 일본 경제를 추월한 직후인 2011년부터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천문학적인 무역·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중국을 막는, 미국판 이이제이(以夷制夷 )나 다름없다.21세기 들어 아시아에서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바로 인도의 부상이다. 12억 8000만명의 인구 대국 인도가 급격한 경제발전을 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인도는 2017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6위가 확실시된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중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 1962년 티베트 독립 문제 등으로 중·인 전쟁을 벌였고 지난해 6월에는 소국 부탄을 둘러싸고 양국 간 군사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도의 야심 찬 경제 개발은 중국과의 경제 전쟁으로 불이 붙고 있다. 중국 역시 인도의 부상을 잔뜩 경계하며 파키스탄 등을 이용해 인도 견제에 나서는 형국이다. 인도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다. 미·일·인 3국은 지난 7월 인도 근해에서 군사 훈련을 했고 지난 10월엔 벵골만에서 3국 간 합동 훈련을 하면서 군사적?경제적 협력을 강화 중이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공유하는 태평양 주변국들과 연대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호주에 인도를 끌어들인 4자 연대가 기본 구도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짙다. 이 전략은 원래 아베 총리의 작품이다. 지난해 8월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으나 트럼프를 설득해 이번에 구체적인 구상으로 발전했다.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파워와 일본 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집념, 중화부흥을 외치는 중국의 열망, 새로운 경제 대국을 향한 인도의 질주가 대립하는 아시아 지역은 실로 21세기 생존경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로선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감성의 진화/오일만 논설위원

    4차 혁명 토론회에서 문뜩 떠오른 생각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 인간의 자리를 빼앗기는 요즘 무리 지어 사는 우리 인간들의 사회적 본능도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다. 외동으로 자라나 혼술과 혼밥을 먹다가 고령의 나이에 접어들어 독거 노인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들이 이제 자연스럽다. 600만년 동안 집단생활을 하며 사회적 동물로 살아온 인류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인간의 감성도 마찬가지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감성이 풍부한 방향으로 진화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기쁨과 슬픔은 타인과의 공감대 형성을 도와 무리의 협력을 증진시켜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 분노와 공포는 긴장감을 높이는 호르몬을 내 보내 근육의 민첩함을 돕는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갈리는 야생에서 절대적이다. 자동차로 비교하면 감성은 가속 페달이요, 이성은 브레이크에 해당된다. 감성의 제어 역할이 이성인데, 감성이 메마르면 이성 역시 할 일이 없어진다. 감성과 함께 이성을 발전시켜 온 인간 진화의 비밀이다. 4차 혁명시대, 인간이 살아남는 최종 병기는 역시 감성이 아닐까.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거미줄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요염하고 청순한 자태를 자랑하던 능소화가 지고 난 뒤였다. 여름 내내 아파트 화단에서 피고 지는 능소화의 매력에 취했던 터라 아쉬운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화단 한 모퉁이에 진을 치고 있던 무당거미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제법 넓게 퍼져 있는 거미줄에 다양한 곤충들이 전리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무당거미란 놈은 호랑이라도 잡은 사냥꾼처럼 제법 큼직한 꿀벌 앞에서 거만하게 앞발을 치켜세우고 있다. 막 걸렸는지 발버둥치는 꿀벌에게 거미란 놈이 일격을 가할 찰나였다. 어릴 적 같으면 후두두 거미줄을 치웠을 법도 한데, 문뜩 엉뚱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거미줄은 이 곤충에게 밥줄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먹고살겠다고 바동대는 생명체의 밥그릇을 뺏는 것은 몹쓸 짓 아닌가.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꿀벌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순리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생존 법칙에 인간이 끼어들게 되면 이 또한 생태계 교란이 아닌가. 불운하게도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꿀벌에게 조의(?)를 표한 인간은 밥줄이 걸린 출근길을 서둘렀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시황제’의 집권 2기/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시황제’의 집권 2기/오일만 논설위원

    중국 공산당은 96년의 역사를 가진 장수 정당이다. 1921년 7월 23일 1차 당 대회 당시 전체 당원은 53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9000만명에 육박하는 매머드 정당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격렬한 권력투쟁을 피할 수 없었지만 숱한 시행착오 끝에 현재 5세대 지도자 시진핑 지도 체제를 만들어 냈다.1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은 1935년 열린 ‘쭌이(遵義) 회의’에서 당권을 쥔 이후 1976년 사망까지 41년간 진시황을 능가하는 1인 독재 권력을 누렸다. 신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마오는 말년에 극좌 노선에 기반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현대 중국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인물로도 기록된다.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은 1978년 권력을 장악한 뒤 1982년 12차 당 대회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천명하고 전면적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1인 독재 폐해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덩샤오핑은 생전에 ‘집단지도체제’(集體領導)와 ‘격대지정’(隔代指定)이란 장치를 고안했다. 집단지도체제는 공산당 상무위원들에게 권력을 분점시키면서 1인의 독주를 방지했다. 격대지정은 5년 연임이 가능한 당서기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차차기 후계자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살아남은 3세대 지도자 장쩌민은 덩샤오핑 사후 ‘7상8하’(七上八下)의 권력 구도를 확립했다. 7상8하는 상무위원에 대한 일종의 나이 제한으로 ‘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는 묘한 규정이지만 현재까지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다. 18일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가 열렸다. 이번 당 대회는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집권 2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향후 5년간 중국 권력 구도를 확정하는 의미가 크다. 현재 7명의 상무위원 가운데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한 5명의 상무위원들의 퇴임이 예상된다. 신임 상무위원으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왕양(汪洋) 부총리,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 서기,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당 서기, 리잔수(栗戰書) 당 중앙판공처 주임, 천민얼(陳敏爾) 충칭(重慶)시 서기 등이다. 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가 강력하게 밀고 있는 후춘화와 시 주석의 심복 천민얼이 강력한 후계자들이다. 6세대 후계 구도는 19차 당 대회 폐막 다음날(25일)에 개최되는 19차 1중전회에서 결론이 난다. 집권 1기 내내 권력을 집중시킨 시주석이 1인 독주의 마오쩌둥의 길로 갈 것인지, 덩샤오핑의 유언에 충실한 지도자로 남을지 관심거리다. oilman@seoul.co.kr
  • [서울광장] 네오콘보다 무서운 ‘트럼프 리스크’/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네오콘보다 무서운 ‘트럼프 리스크’/오일만 논설위원

    우리는 지금 3차 북핵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1차 위기(1993년)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2002년)으로 야기된 2차 위기 때와 사뭇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 특히 대북 정책이 실패한 네오콘의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민들의 걱정이 크다. 네오콘은 미 공화당 신보수주의자들로 ‘힘이 곧 정의’라고 믿는 집단이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세계 패권을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명확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신봉한다. 조지 W 부시 정권(2001~2008년) 초기 권력을 장악한 이들은 이라크전을 주도했다. 미국을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이 북핵 문제 해결 기회를 고의로 무산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협정 타결 이후 대화의 시기였다. 당시 북한 군부의 2인자인 조명록이 2000년 미국으로 날아가 클린턴을 만났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과 회동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끝내고 북의 체제 보장과 핵 폐기를 빅딜하는 역사적 합의를 목전에 뒀다. 2001년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군단이 명확한 물증도 없이 핵 의혹을 증폭시켰고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몰아갔다. 미국의 저명한 북한 전문가이자 CNN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마이크 치노이는 자신의 저서 ‘북핵 롤러코스터’에서 “북한의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네오콘들이 일방적으로 무시했고 국제질서 재편을 위해 북핵 위기를 증폭시켰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네오콘의 전략은 그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수됐지만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과 난폭성, 정책의 비일관성까지 겹쳤다. 세계가 경악하고 있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한반도는 전쟁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군사 옵션을 선호하는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족집게 정밀 타격으로 북의 반격 능력을 괴멸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선제공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는 참으로 끔찍했다. “90일간 미군 사상자 5만 2000명, 한국군 사상자 49만명, 민간인 포함하면 사망자가 100만명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더 참혹하다. 개전 하루 만에 최소한 3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한반도는 폐허 그 자체가 된다. 트럼프의 동북아 전략도 의미심장하다. 북핵을 고리로 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와 중국 견제 전략으로 요약된다. 이것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남한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다. 수교 25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파탄 일보 직전에 놓였고 동북아 군비경쟁으로 떠밀리는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충실했던 네오콘의 전략과 정확하게 부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네오콘식 전략은 북한 리스크를 상수로 만들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 국민이 떠안는 구조다. 최근 사드 보복을 포함해 ‘북한 리스크’로 인한 경제 피해액이 28조원(현대경제연구소 추산)에 이른다는 분석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정권의 광기와 군사 옵션으로 치닫는 트럼프의 무모함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치킨게임’을 중단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는 1993년 3월 1차 핵위기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를 기억한다. 그는 평양으로 날아가 당시 김일성 주석과 회담해 평화적 해결의 단초를 만들었다. 현재 치킨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김정은과 트럼프 누구도 먼저 대화를 제의할 수 없는 구도다. 2차 핵위기 당시 중국의 중재로 6자 회담이란 출구를 마련했지만 냉랭한 북·중 관계 탓에 동력을 상실했다. 남북 수교국으로 중재를 제의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최근 북한과 관계를 회복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적격이다.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독립 100주년, 라트비아/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독립 100주년, 라트비아/오일만 논설위원

    발틱해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는 여러 모로 한반도 운명과 닮았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까닭에 13세기 이후 줄곧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야 간신히 독립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호시탐탐 발틱해의 부동항을 탐냈던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됐다가 소련 붕괴 직후인 1991년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라트비아인에게 20세기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는 라트비아는 면적(6만 4500㎢)이 남한의 3분의2에 불과하고 인구는 200만명 안팎이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인구의 3분의1이 죽거나 독일로 끌려가는 재앙을 당했다. 소련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13만명의 라트비아인이 해외로 망명했고 1953년까지 12만명의 라트비아인이 죽거나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 800년 이상 혹독한 역사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라트비아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지켜 낼 정도로 자주 의지가 강하다. 공용어로 사용하는 라트비아어는 인도유럽어족의 갈래로 옛 형태를 잘 보존한 언어로 평가받는다. 라트비아인들의 자유 의지는 독립전쟁 당시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표출되기도 했다. 라트비아가 소련의 압제에서 벗어난 사연도 극적이다. 1989년 독·소 불가침조약 50주년을 맞아 발트 3국 국민 200만명이 탈린(에스토니아)~리가(라트비아)~빌뉴스(리투아니아) 등을 잇는 ‘인간사슬’을 만들었다. 장장 620㎞의 거리에서 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발틱의 길’을 외치며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소련의 강점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주권을 되찾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04년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에,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각각 가입하며 친서방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되찾은 라트비아가 내년 독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강소국을 꿈꾸는 라트비아는 정보기술(IT) 산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라트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80%에 웃돌고 인터넷 속도도 세계 17위에 기록될 정도로 IT 바람이 거세다. 라트비아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드라우기엠을 조성할 정도로 의욕이 넘친다. 지난달 28일 만난 라이몬츠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은 “IT 산업을 통해 경제 발전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혹독한 역경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우리처럼 라트비아가 ‘발틱의 기적’을 만들어 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길섶에서] 가을 남자/오일만 논설위원

    대체로 남성들이 가을철에 민감한 감정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평소와 달리 감상적인 생각에 젖을 때가 많아지고 때론 허무감과 좌절감이 짙어 오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동서양의 진단은 다르다. 서양 의학에서는 호르몬으로 설명한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로 접어들면서 신체가 흡수하는 비타민D가 적어져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의 합성이 저하된다. 더욱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저하되면서 남성들이 유독 가을철에 외로움과 쓸쓸함이 크게 느낀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음양의 이치로 설명한다. 양기가 가득 차는 봄이 오면 음의 성질을 지닌 여성들이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반면 음기가 차는 가을엔 양기가 강한 남성들이 강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주역의 설명이다. 동서양을 떠나 가을 남자들에게 유용한 것은 야외 활동이다. 햇볕을 쬐며 비타민D를 흡수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행복의 정복’의 저자 버트런드 러셀 역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외부 활동과 산책을 권하는 이유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오일만 논설위원

    세컨더리 보이콧의 역사는 짧지 않다.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들을 일괄 제재하는 의미에서 ‘제3자 제재’라고 불린다. 이 방식은 1973년 2차 중동전쟁 직후 아랍 국가들이 적국인 이스라엘에 적용했다. 이른바 ‘알제리 선언’이다.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나라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중동 석유에 목줄을 매고 있던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가 1978년 양국 관계가 단절된 적도 있다.마카오 소재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제재도 마찬가지다. 미국 재무부는 2005년 북한의 불법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과의 거래를 중단시켰다. 대량 인출 사태가 벌어지자 BDA는 김정일 통치자금으로 알려진 2500만 달러를 동결했다. BDA 제재 이후 중국 24개 은행이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은 북한은 2007년 2월 단계적 비핵화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제재에서 벗어났다. 세컨더리 보이콧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된 사례는 이란에서다. 강경 보수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노골적으로 핵 개발에 착수하자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4차례 제재 결의안을 주도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해외 금융기관의 미국 내 거래를 금지하는 국방수권법(NDAA) 등을 발효시켰다. 이란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2012년부터 2년간 실업률은 20%로 치솟고 인플레이션은 40%대에 이르렀다. 석유 수출 금지로 인한 손실은 1600억 달러(182조원)나 됐고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산이 10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이란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식 세컨더리 보이콧에 서명했다. 북한 경제에 타격은 크지만 이란의 경제 구조와 다른 점이 변수다. 석유 수출에 국가 경제를 의존하는 이란과 달리 북한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이다. “원유 수출 자금이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인 이란과 달리 북한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이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라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조치는 북한의 대외 거래에서 90%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타깃이다. 북한과 거래할 때 국제 무역은 물론 미국이 장악한 글로벌 금융망에서 퇴출한다는 최후통첩의 의미가 있다. ‘미국이냐, 북한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북한과의 신규 거래 중단을 결정하면서 일단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 은행들이 본격적인 제재를 당할 경우 미·중 간 충돌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많다.
  • [씨줄날줄] 고 김광석 부녀 사망 의혹/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고 김광석 부녀 사망 의혹/오일만 논설위원

    가수 김광석은 21년 전(1996년) 32살의 나이로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경찰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가 개인사 고민 때문에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철저하게 묵살됐다. 그의 사인에 얽힌 의혹이 희미해질 무렵, 지난 8월 말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개봉됐다. 그의 노래 속에 담긴 자전적 인생 이야기를 통해 그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해부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기자다. 그는 김씨 사망 당시 경찰기자로 이 사건에 의혹을 품었고 20년 넘게 홀로 추적했다고 한다. 그는 “100개의 뉴스를 읽으시는 것보다 영화를 보시면 사건의 전말과 서해순의 실체를 곧바로 체감하실 수 있다. 바로 그게 기자로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라고 말했다.이 영화 덕에 세상이 요동쳤다. 고인의 타살 가능성은 물론 그의 외동딸 서연양의 10년 전 사망 사실도 밝혀졌다. 친모인 서씨가 이를 숨기고, 딸이 보유한 고인의 저작권을 누려 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정의의 법으로 악마의 비행을 막아 달라”는 그의 호소는 강렬했다. 검찰은 서연양 사망 사건과 관련한 고소장이 제출된 직후 재수사에 착수했다. 영화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김광석법’이 탄생할 조짐이다. 공소시효가 만료돼 더이상 수사가 불가능한 살인 사건이 재조명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2000년 8월 이전의 살인 사건도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고 용의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 재수사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 등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김광석법’ 입법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도 활기를 띠고 있다. 김광석법이 탄생한다면 제2의 도가니법으로 기록될 것이다. 2011년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영화(도가니)가 만들어졌다. 460만명을 동원한 이 영화 때문에 그동안 솜방이 처벌로 일관했던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됐다. 이제 관심은 김씨의 부인이자 서연양의 친모인 서해순씨에게 쏠려 있다. 그녀는 김씨 사망 이후 미국을 오가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끝난 직후인 2012년 귀국했다고 한다. 골프장 옆 고급 빌라에서 호화 생활을 해 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서씨는 22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살인자 취급을 하며 인권을 유린했다”며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그 진실이 법정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 [씨줄날줄] 노후 헬기, 퇴역 초계기/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후 헬기, 퇴역 초계기/오일만 논설위원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래 지난해 10월까지 한국이 도입한 미국산 무기는 총 36조 360억원어치로 미제 무기 구입 1위국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연감을 보면 2014년 78억달러(약 9조1300억원)어치 무기를 계약했고 이 가운데 90%가 미국산이다.한국이 국제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큰손임에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정황이 많다. 심지어 ‘호갱’이란 굴욕적인 말도 듣는다. 총사업비 17조원에 이르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이 대표적이다. 2013년 9월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비교 우위 평가를 받던 보잉사의 F15SE 기종에서 록히드마틴사의 F35A 기종으로 갑자기 변경했다. 우리 군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4개 핵심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도 구매를 결정했다. 기종 변경에 대해 당시 김 장관은 ‘정무적 판단’이라는 아리송한 해명을 했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연계설이 아직도 돌고 있는 이유다. 최근엔 노후 헬기와 퇴역 초계기가 구설에 올랐다. 35년 사용하던 시누크헬기(CH47D) 14대를 2014년 당시 김 장관의 구두 지시 이틀 만에 도입이 결정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의원은 “노후 헬기 처분 1년 만에 해당 기종의 수리 부속 판매가 중단됐고 심지어 우리 군이 성능 개량 사업 자체를 중단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국방부나 방사청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계약을 했고 앞으로 15년 정도 더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다. 더욱 가관인 것은 초계기 S3B 도입 건이다. 40년 가까이 미군이 쓰다가 애리조나 사막에 폐기 처분한 기종이다. 2012년 10월, 당시 ‘잠수함 도발 대비 TF’가 2009년 전량 퇴역 후 사막에 보관 중인 이 기종을 콕 찍어서 도입을 건의했다.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의 지시로 일사천리로 구매가 추진되다 노후한 점이 말썽이 되자 12대로 축소됐다가 지난해 10월에야 최종 포기했다고 한다. 구매가 불발돼 다행이지만 무기 구입을 둘러싼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확한 정보가 아쉬운 대목이다. 내년 국방 예산은 43조 1177억원이다. 올해 예산(40조 3000억원)에 비해 6.9% 증가했고 전력 유지와 방위력 개선 사업은 전체의 20조원이 훌쩍 넘는 57.3%를 쓴다. 경제 활성화와 복지 예산에 쓰일 우리의 혈세다. ‘그 많은 국방비 어디에 썼느냐’고 질타한 군 최고 통치자의 심정이 국민의 마음이다.
  • [길섶에서] 가을 하늘/오일만 논설위원

    ‘심오한 책을 읽더라도 가을 하늘에 취해 책을 덮는, 그런 마음으로 사세요.’ 요즘 가을 하늘은 학창 시절 어느 수필가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눈이 시리다. 주말 산행길 나뭇잎 사이로 언뜻 비치는 하늘은 말 그대로 창공의 해맑음이 묻어난다. 살랑살랑 얼굴에 닿는 가을 바람까지 가세하면 행복감이 온몸을 감아 도는 느낌이다. 중국의 석학, 린위탕(林語堂)은 ‘진정한 독서인은 가는 곳마다 책’이라고 했다. ‘산과 물이 책이요, 바둑과 술도 책이고 발길 닿는 여행도 책이 된다’고 갈파했다. 심오한 철학서에 담긴 내용보다 대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에게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독서도 경계했다. 책을 많이 읽어 박식한 사람이 되기보다 마음속 깊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교양인을 당부한 것이다. 독서의 계절이 왔다고 억지로 책을 읽으려는 강박 관념 대신, 때론 가을 하늘에 눈길을 파는 마음 자세가 그립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소중히 생각하고 인생을 ‘이승의 소풍’쯤으로 여기는, 그런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 [길섶에서] ‘왕따’의 친구/오일만 논설위원

    어느 청소년 상담 세미나에서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부모가 손을 들었다. 망설임의 표정이 역력하다. 어렵사리 입을 뗀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4개월 전에 한국에 돌아왔고 14살 중2 딸아이가 학교생활 적응이 어렵다는 하소연으로 이어졌다. 워낙 치열한 학업 경쟁 때문에 다들 여유가 없어선지, 전학 온 그 학급에서 누구도 딸에게 눈길을 주지 않더란다. 고민은 여기서부터다. 최근 방황하는 딸에게 손을 내민 친구가 생겼는데, 그 학생이 학교의 대표적인 왕따 학생이란다. 딸에게 친구가 생겨 좋아해야 하는데 사실 겁부터 났다고 한다. ‘그 친구와 다니다가 왕따당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었다. 상담자의 답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사춘기 예민한 시기, 누구와 사귈지는 딸에게 맡기라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간섭에 반감만 커진다. 대신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 혼란스런 사춘기, 그 힘든 여정을 혼자 겪는다는 것은 참으로 감내하기 버거운 일이다.” 깜깜한 시골길, 강아지 온기만 있어도 그 두려움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법인데...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윤내현(78) 단국대 명예교수. 그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였다. 그가 한국 고대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말 하버드대 옌칭(燕京)연구소에서 충격적 사실을 목도한 뒤부터다. 서고에 쌓여 있는 중국 사서 내용이 당시 남한에서 사실(史實)로 통용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진실에 대한 갈구 때문에 한국 고대사로 영역을 넓혔고 이후 40년간 ‘기자조선고’를 시작으로 ‘고조선 연구’ 등 방대한 저술을 내놓았다.우리 역사학계에 윤 교수처럼 광범위한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인용한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완벽한 중국어 덕분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조선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흐르고 있는 난하(鸞河) 유역임을 밝혀냈다. 그 통치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이 중국의 요동과 만주 지역을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제국임을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한 이병도 박사와 그의 제자들, 이른바 ‘주류 사학계’로부터 거센 공격에 직면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추종자로 매도당했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이 쓴 ‘고조선사’를 일부 인용한 것을 이유로 종북학자로 몰려 정보기관의 조사도 받아야 했다. 학자적 양심마저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시대,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최근 ‘고조선 연구’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한국사에서 단군조선만큼 시련을 겪은 부분은 없다’고 술회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고대사의 핵심 쟁점인 한사군(漢四郡) 위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가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남한 사학계에 통용되던 평양 일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난하 동쪽이었다. 이는 단채 신채호나 위당 정인보, 성호 이익 등이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 사학계에서 참으로 ‘위험한 주장’으로 통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 사학계의 태두는 이병도·신석호 박사다.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인물들로 후에 학술원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사학계에 막강한 인맥을 만들었다.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의 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신화로 폄하했고 공간 축소를 위해 한사군의 위치를 이용했다.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낙랑군의 군치(郡治)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박사 등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낙랑군 수성현 위치와 관련해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28자의 말을 남겼다. 그 역시 정확한 사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낙랑군 유물과 관련해 점제현 신사비 등 다수가 일제 날조설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완용의 조카로 알려진 이병도 박사는 타계 3년 전인 1986년 조선일보에 기고문을 보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이며 고대사는 복원돼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식민사관에 기여한 학자로서 말년의 ‘양심선언’이었지만 이미 사학계의 중추 세력이 된 제자들은 그를 ‘노망’으로 몰았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역사의 검증’을 이야기했다가 사학계로부터 호된 비판을 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우리 사학계가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일제가 주장해 온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반박하는 등의 공로 등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곡된 실증사학이 날조해 낸 타율성과 정체성이란 식민사관의 핵심 프레임 자체를 깨지 못했다. 해방 후 70여년이 지났어도 왜곡의 유산을 청산 못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그 폐해는 너무도 크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다.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윤내현 교수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당당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작업,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oilman@seoul.co.kr
  • ㈜참숯, 훈제 소금& 훈제 오일 국내 생산 성공

    ㈜참숯, 훈제 소금& 훈제 오일 국내 생산 성공

    한국인들은 유난히 훈제향을 좋아한다. 음식에서 은은히 느껴지는 숯불향은 풍미를 한층 살려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가정에서 숯불로 음식을 조리하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바비큐 그릴 등 특수한 설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숯불을 피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참숯이 15년 간의 연구를 통해 스모크향(훈제) 소금과 스모크향(훈제) 오일 개발에 성공하며 주목받고 있다.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주)참숯은 지난 40년간 참숯을 생산하고 연구해 온 숯 전문 기업이다. 대한민국 참숯명인 김성필 대표는 지난 7월 초 국내 최대의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그간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 훈제소금(발명특허제:10-0868937호)과 훈제오일(발명특허제:10-0948516호) 공법을 개발했다. 이어 FDA, 한국식품과학원 안전성검사합격 대량생산 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과 공급을 진행 중이다. 훈제소금과 오일은 아직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식재료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검증된 식재료다. 특히 ㈜참숯의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은 국내산 천일염과 국내산 참나무의 훈향이 결합된 프리미엄 저염 소금이므로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전통 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목초액을 사용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첨가물 규정에 따른 정제된 스모크향을 이용하여 천일염에 스모크향을 첨가했다.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은 요리에 사용했을 때 음식의 풍미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특유의 잡내를 잡아준다. 육류, 생선, 나물, 국 등 어떤 요리에나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예를 들어 육류 요리에 사용할 경우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이 가진 숯불향 덕분에 바비큐 그릴 없이도 숯불에 구운 듯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일반 소금의 2/3만 사용해도 음식의 풍미를 살릴 수 있어 염분 섭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프리미엄 건강소금 제품이다.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고 음식의 저장성을 강화하는 다양한 화합물이 함유돼 염장식품에 사용할 경우 저염 식품가공이 가능하다. 참나무 스모크향 오일은 참나무숯 목초액을 스모크향으로 정제하여 식용유에 첨가한 프리미엄 오일이다. 각종 식품 가공품의 산패와 산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뛰어나고, 음식의 저장성을 연장하며, 신선도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 일반 식용유처럼 사용하면 되므로 편리할 뿐만 아니라, 육류와 생선요리에 사용하면 참나무숯의 스모크한 향이 음식의 풍미를 끌어올린다. 특히 생선 요리의 비린 맛을 잡아주는 동시에 생선 본연의 고소함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휴가철 나들이를 즐길 때에도 바비큐 그릴 없이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과 오일만 있으면 숯불에 구운 듯한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는 “그간 훈제향 소금, 훈제향 오일은 수입 식품으로 일부 소비자에게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비싼 가격과 한정적인 판매처 등으로 일반 소비자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참숯의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과 참나무 스모크향 오일이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함에 따라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도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간편하게 참숯의 향이 가미된 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나무 스모크향 소금과 오일은 ㈜참숯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능소화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올해 여름은 능소화(凌霄花)에 취해 살았다. 유난히 비도 많았던 여름, 아침마다 물기를 머금은 주황색 향연에 빠졌다. 능소화와 처음 대면한 것은 지난 겨울쯤일 것이다. 앙상한 가지 몇 가닥이 아파트 화단에서 1층 창틀을 휘감고 있었지만 정체를 몰랐다. 언제부턴가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진 줄기에서 잎이 나더니 여름철에 접어들자 실로 놀라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닌가. 풋풋하면서도 농염한 묘한 매력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한자부터가 특이했다. 능멸할 능(凌)과 하늘 소(霄)를 쓴다. 하늘을 능멸할 정도로 뻗어 오르는 기상 때문에 ‘양반꽃’이라는 별명도 있다. 꽃말은 그리움·기다림인데, 슬픈 사연이 있다. 궁궐에 살던 소화(霄花)라는 궁녀가 임금에게 버림받고, 그 넋이 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시들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활짝 핀 자태 그대로 꽃을 떨군다. 한껏 최고조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 순간 생을 끝내는 가인의 풍모가 있다. 매혹적인 꽃 속에 독을 품고 있다고 하니 궁녀 소화의 한(恨)이 아직 풀리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일본 제국주의의 뿌리가 참으로 질기다. 해방을 맞고도 70년이 넘었건만 우리의 제도와 문화 곳곳에 아직도 일본식 용어가 남아 있다. 전체적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적 식민지 잔재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천황 만세’를 외쳤던 친일파가 해방 이후 역사적 단죄를 받지 않고 득세한 것은 반공을 국가 정책으로 삼은 미국의 세계 전략 덕분이다. 일제의 잔재가 더욱 고착화된 것은 군부 독재 시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일권 국무총리 등 권력 핵심부는 일본 육사나 만주 육사를 거치면서 일본식 교육을 신봉했던 인물들이다.이들의 그늘 아래 친일파들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유지·발전시키면서 세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다.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요한 교육을 주입한 것은 일제의 차별적인 억압 정책을 관철하기 위함이다. 군부 독재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손을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 사물에 대한 주체적 회의와 사유를 거세해 말 잘 듣는 순종형 인간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 창의를 앞세우는 민주주의적 가치관은 독재 체제 유지에 걸림돌일 뿐이다. 친일 기득권과 군부 독재의 결합, 이것이 식민주의 유산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근본적 이유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모든 법률에서 사용하는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원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시대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동적이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적 개념으로 국제노동기구와 세계 입법례에도 없다고 설명한다. 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일본 노동법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군부 독재 시기였던 박정희 정권이 1963년 ‘노동절’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왕을 위한 충군애국을 강요한 교육칙어나 유신시대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어야 했던 통치 시스템의 뿌리는 같은 것이다. 이참에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일제 식민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아직도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식민사관이다.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적 뿌리이자 우리의 혼이라는 점에서 식민사관의 폐해는 지대하다. 국회 동북아역사 왜곡특위가 밝혀낸 것처럼 식민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왜곡된 역사를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 전성시대/오일만 논설위원

    바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명인 서봉수’는 다소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국 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19살 나이에 당대 최고수 조남철 국수를 꺾었다. 우연히 바둑을 접한 그는 변변한 스승도 없이 저잣거리에서 내기 바둑으로 실력을 키웠다. 단기 필마로 십여 년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일본 유학파, 무림고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다. 길거리 싸움꾼답게 바둑 이론에도 없는, 변칙 스타일로 상대를 괴롭혔고 질긴 생존력과 강인한 승부 근성으로 잡초류의 대명사가 됐다. 불세출의 천재로 불렸던 ‘조훈현 국수’에게 숱하게 짓밟히면서도 잡초처럼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여기서 쌓인 내공으로 그는 마침내 1992년 제2회 응창기배에서 우승, 세계 최고수 반열에 올랐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를 보면서 가끔 부조리한 사회·경제적 상황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우리 청년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오른다. 금수저 출신의 온실 속 화초들과 달리 아무리 밟혀도 실력 하나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잡초들의 전성시대를 기대해 본다.
  • [씨줄날줄] 中 막후정치 본산, 베이다이허/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中 막후정치 본산, 베이다이허/오일만 논설위원

    베이다이허(北戴河)는 보하이만에 위치한 조그만 어촌이었다. 청조 말기 이곳을 조차했던 열강들이 피서지로 개발했고 1930년대 중·일 전쟁 전까지 제국주의 식민지의 휴양지 색채가 농후했던 곳이다. 신중국 수립 후 마오쩌둥이 이곳에 95호 별관을 마련했고 1958년 여름부터 중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베이징을 싫어했던 마오가 이곳에서 정치국 전체회의를 열고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 설립 등 중대 결정을 내렸다.이후 간헐적으로 주요 회의가 열리기는 했지만 비밀·막후 정치의 본산이 된 것은 덩샤오핑 시대부터다. 막후 실세였던 덩은 이곳을 ‘휴양지 겸 회의 공간’으로 바꿔 매년 여름 2주간의 일정으로 느슨한 워크숍 형식의 회의를 주재했다. 국가 법률이 정한 공식 회의가 아닌 만큼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원로들에겐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창구가 됐고, 각 계파들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막후 정치의 장으로 이용한 것이다. 여기서 결정된 사안은 그해 가을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의 형식으로 공개되고 이것이 이듬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의 미래가 결정되고 권력 이동과 정책의 향배를 가늠하는 풍향계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 홍콩 등 중화권 언론들은 권력 수뇌부들이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어 베이다이허 회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번 회의는 공산당 권력이 재편되는 19차 당대회와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핵심 권력인 차기 상무위원 명단이 드러나고 시진핑 국가주석 이후 미래의 권력이 결정된다. 10년 전(2007년) 이곳에서 시 주석이 5세대 지도자로 결론이 났다. 덩이 확립한 격대지정(隔代指定), 즉 현직 지도자가 차차기 지도자를 결정하는 원칙 때문이다. 현재 권력의 장기 집권을 막으려는 일종의 견제 장치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은 ‘시진핑 띄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관영매체에서 시진핑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반부패 드라마를 통해 그의 공적을 찬양하고 있다. 최근 차세대 지도자로 불렸던 쑨정차이를 낙마시킨 그가 내친김에 시진핑 사상을 공산당헌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22년 이후 장쩌민식의 상왕 정치로 갈지 러시아 푸틴 방식을 따라 10년 집권 관례를 깨고 1인 장기집권으로 갈지, 이번 회의에서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서구식 다당제를 거부하는 중국의 막후정치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 [길섶에서] 만리포의 추억/오일만 논설위원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바다로 피서를 가기는 쉽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돈과 시간이 드는 피서 자체가 부잣집이나 누리는 호사였다. 설령 마음먹는다고 해도 교통편이 나빠 ‘개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바다에 필이 꽂혔지만 딱히 수단이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거리던 때였다. 운이 좋았다. 큰형이 친구들과 서해안으로 놀러 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아무리 사정해도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전을 바꿨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에 집을 나서는 형을 무조건 따라나섰다. 거금의 용돈을 쥐여 주며 회유했지만 타협에 응하지 않았다. 완행열차에 매달려 홍성역까지 갔던 일이나 엉덩방아를 찧으며 만리포에 도착했던 기억이 새롭다. 코끝으로 밀려왔던, 생애 첫 바다 내음은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사각사각 모래알의 촉감과 노을진 해변의 운치, 야영장 곳곳에서 타올랐던 모닥불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본격적인 휴가철, 만리포의 추억을 떠올리며 바다로 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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