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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도시 문화거리](12)’가고파’’고향의 봄’낳은 馬山

    마산은 국민적인 애창 가곡과 동요의 노랫말로 기억되는 도시다.‘내고향 남쪽바다…’로 시작하는 이은상의 ‘가고파’나 삼척동자도 다아는 이원수의 ‘고향의 봄’이 탄생한 고장이 바로 이곳이다. 국민적 시정(詩情)을 대변하는 이 노랫말들의 요람에 살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산시민의 자긍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그런 탓인지 이 고장 사람들의 열에 아홉은 산호공원 산책로에 조성된 시(詩)의 거리를제일의 문화명소로 외지인들에게 소개한다. 실제로 문화도시로서 마산의 위상은,유난히 걸출한 시인을 많이 배출한 면모부터 짚지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천상병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오월이 오면’의 김용호를 비롯해 정진업,박재호,김태홍,이일래 등이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을 폈다. 문화원이 주축이된 ‘시의 거리 추진위원회’가 산호공원안에 시비를세워 도심의 이색 문화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그렇게 조성된 시의 거리는 이제 지역민들의 문화창작 욕구를 해소해주는 창구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해마다 10월이면 문화원 주최로일반시민의 우수창작 시들을 발표하는 축제가 열리는 장소도 이곳.“올해로 4회째를 맞는 행사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참여열기가높아가고 있다”고 행사를 주최하는 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도심의 문화휴식처로 기능하는 곳으로는 6년전 문을 연 문신미술관(관장 최성숙)을 빼놓을 수 없다.미술관이 자리잡은 합포구 추산동 언덕배기는 마산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이 고장 출신조각가 문신이 14년이나 공을 쏟아 만든 미술관은 2,500여평 규모. 2곳으로 나누어진 전시장에는 문신의 조각 105점을 비롯하여 모두 290여점의 미술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문신미술관은 그러나 그 ‘예술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주변풍치도 소담스러워 시민들의 나들이터로 애용되는 건 기본.평일에는 이웃 초·중등학생들의 교양학습장으로,주말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다. 지난날의 문화적 영광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는 것은 지방화 시대에도시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커다란 프리미엄이 된다.그러나 아쉽게도,문화도시로 성장할 남다른 조건이 뒷받침돼 있었음에도 문화적 위상을 다지는데 마산은 한동안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이를 깨달은 시민들이 과거의 영화에 머무르지 않는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펼치는노력은 최근 곳곳에서 성과를 맺고 있다. 지난해 7월에 착공해 내년 2월이면 개관하는 시립박물관은 그 좋은예다.41억원이 투입된 박물관 자리는 문신미술관 바로 아래편.박물관이 문을 열면 3·15의거탑과 몽고정,추산공원,문신미술관 등이 자연스럽게 문화관광벨트로 엮어지게 된다. 문화도시의 겉모습이 될 ‘하드웨어’가 속속 제모양새를 갖춰가는한켠에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소프트웨어’ 개발 열기도 뜨겁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마산국제연극제는 마산문화의 내실을 다지는 대표적인 행사.마산연극협회가 주도하여 해마다 5월에 열리는 이 연극축제에는 올해 러시아 일본 몽골 등 해외 5개 극단이 참가하여 국제적 문화예술축제로 분위기를 바꾸어가고 있다. 향토예술인들의 문화도시 가꾸기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바닷가의 문닫은 시골학교가 어엿한예술촌으로 탈바꿈한 합포구 구산면의 구복예술촌이 대표적이다.서예가 윤환수씨(51·한국서각협회 고문)가 1997년 주도한 이 예술촌은 마산사람들이 ‘콰이강의 다리’라고부르는 저도 연륙교에 가깝다. 풍광이 빼어나 일년내내 지역화가들의전시와 음악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해마다 가을의 문턱이면 시민들을 한데 엮어주는 축제 ‘만날제’가열리는 곳,영양이 높아 ‘깨가 서말’이라는 전어가 요즘 한창 제철을 맞아 잔치를 벌이는 도시 마산.숙원사업이던 문화회관은 2002년이면 완공된다.1,000석의 대공연장과 400석의 소공연장이 갖추어지면‘문화향유 체감지수’가 크게 높아질 거란 기대에 43만 시민들은 잔뜩 가슴부풀어있다. 마산 황수정기자 sjh@. [이렇게 가꿉시다] '젊음의 거리' 조성 활기를. 마산은 특유의 넓고 끝없는 해안이 문화예술인의 서정을 황홀하게 하는가 하면 무학산의 풍경은 예술인의 구미를 돋운다.그속에서 자긍심을 길러온 마산은 훌륭한 문학가,시인,음악인,미술인을 다수 배출했다.이렇듯 풍요한 문화예술은 곧 시민들의 자존심이요 자랑이 되기에충분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은 어느 고장 보다 높은 반면문화욕구를 충족시켜줄 문화공간은 크게 부족하다.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수적이자,문화도시로 가는 지름길인 다양한 문화공간의 건립은현재 가장 절실한 소망이다. 그런 점에서 시가 추산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관광벨트 작업은 반가운 일이다.추산동 시립박물관에서 문신미술관,성덕암,3.15의거탑,몽고정,추산공원으로 이어지는 반경 1㎞구간을 잇는작업이다.전체 4만 5,000여평 가운데 1만 5,000여평에 조각공원과 산책로 등을 만들면,시민들이 여유를 즐기는 문화공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때 인구 50만명을 구가했던 마산시의 인구는 현재 43만명 남짓.이웃한 신생도시들에 밀려 도시발전이 주춤했던 결과다.따라서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을 생기있게 바꿔가는 것도 활기찬 시를 일구어가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시내 창동과 오동동 일대를 젊음의 거리로 다듬는작업에 지역문화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먹거리 공간에밀려 사라졌던 서점이나 화랑들을 복원하는 데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어느때보다 뜨겁다. ◆ 허종성 마산문화원장
  • PCS 3개회사 ‘反SK’ 한배 탔다

    틈만 나면 아옹다옹 싸워온 개인휴대통신(PCS) 3사가 최근 공고한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시작했다.공동보조의주된 타깃은 시장점유율 57%(017 신세기통신 포함)의 거대사업자 SK텔레콤(011)이다. ◆자주 만난다 최근들어 이용경(李容璟) 016 한국통신프리텔,정의진(鄭宜鎭) 018 한국통신엠닷컴,남용(南鏞) 019 LG텔레콤 사장 등 3사사장단이 자리를 함께 하는 경우가 잦다.지난주에도 공정거래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함께 돌며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SK텔레콤보다 후발사업자인 자신들에 유리한 정부정책을 이끌어내자는 게 핵심이다. 이들은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기업결합에 대해 공정위가 부여한승인조건인 ‘내년 6월까지 시장점유율 50% 이하 축소’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무리한 출혈경쟁을 자제한다는 ‘동맹결의’도 했다. ◆공동 마케팅·서비스 가시적인 첫 작품이 5일 발표된 할부판매 기간 연장과 SK텔레콤 전환가입자에 대한 가입비 면제.한통프리텔과 한통엠닷컴은 SK텔레콤 가입자가 기존 이동전화를해지하고 016,018로전환하면 이달부터 내년 6월말까지 가입비 5만원을 면제해준다고 밝혔다.LG텔레콤 역시 현재 정통부에 같은 내용의 약관변경 신청을 내놓은 상태.3사는 또 현재 12개월인 휴대폰 할부판매기간도 24개월로동시에 늘렸다.6일에는 유·무선을 연동해 PCS 가입자끼리는 누구와도 자유롭게 채팅을 할 수 있는 ‘통합 채팅’서비스를 시작한다. ◆장비 함께 쓰자 3사는 중계기와 기지국 공유도 추진하고 있다.이미중계기는 올 연말부터 함께 쓰기로 사실상 결론이 난 상태. 중계기는지하나 건물 안 등 전파가 잘 닿지 않는 곳을 연결하는 장치로 지금까지 3사는 중계기 본체 및 광케이블 등을 따로 가설,중복투자라는지적을 받아왔다.3사는 기지국도 공유하는 이른바 ‘그랜드 로밍’도추진중이다.여기에는 LG텔레콤이 특히 적극적이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예전에도 공동 보조를 취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번번이 한쪽의 약속파기로 얼마있다가 흐지부지됐다”면서 “그러나 이번 만큼은 3사가 힘을 뭉쳐 SK텔레콤이라는 거대통신사업자를누를 수 있는기반을 닦자는 큰 합의가 도출된 상태”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5·18 20주년 소설·詩選集 어느 오월 광주의 상념들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밤꽃'과 시선집 '꿈,어떤 맑은 날'이 도서출판이룸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집(최인석·임철우 엮음)에는 90년대 초까지 발표됐던 중단편 10편이묶어졌다.윤정모의 '밤길'은 최후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광주항쟁의 진실을밖으로 알리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와 밤길을 재촉하는 신부와 청년의 번뇌를쓰고 있다.가해자와 피해자를 부부로 등장시켜 항쟁의 비극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어둠꽃',택시부대 일원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정신이상으로 넋을 놓아버린 남편에 관한 이야기 '어떤 넋두리',행방불명된 누나를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 광주항쟁의 주체와 그들의 분열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문제작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공선옥의 '씨앗불' 등이 실려 있다.이밖에 '녹슨 철길'(문순태)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박양호) '머나먼 광주'(이청해) '어느 오월의 삽화’(채희윤) 등도 수록.시선집(김사인·임동확 엮음)은 주로 90년 이후 쓰여진 100명 시인의 시 101편을 담았다. 5·18 뿐아니라 광주,전라도,민족 등을 다룬 시들이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사투리를 숨기고 표준말로/이야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또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다 보면/당당하게 사투리를강조해서/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숨기는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공포나/드러내는 사람의 광기를 들여다보면/겁이 난다/사투리가 무섭다///(유용주 '사투리가 무섭다'일부)김재영기자
  • 5·18항쟁 문화적 영향/ 문학·출판부문 성과

    문학은 제일 먼저 느끼고 가장 늦게 잊는다.5·18 광주민주항쟁은 잊어버리고 싶으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억울한 피의 기억,죽기 전에 다시 느끼고 싶은 뜨거운 시민 공동체의 삶이 있다.문학이 어찌 5·18을 모른체 할 수 있을까. 5·18을 소재로 한 5·18문학,광주문학은 지난 20년 동안 연면히 이어졌다. 5·18이 가지고 있는,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지형성과 풍부한 문학적 잠재량 등에 비춰 그간의 문학적 노력이나 성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그러나 문학의 바탕이 되는 일반의 관심과 인식을 살필 때,5·18이 전국적·보편적 스케일로 성장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의 피에 절은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않고서 싫증을 내며 창고에다 쳐박아 버렸다면 틀린 말일까.이같은 지역적 한계를 염두에 두면 소설이 주축이 된 지난 20년간의 5·18 문학화는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특히 최근 이삼년 5·18문학의 재흥 기류는 보다 더 확실하다. 5·18 문학은 80년대에는 외적 제약을 비집고 나오려고애를 썼고,90년대에는 내적 관심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사태후 4년 가까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던 5·18은 ‘존재’가 점선,괄호로나마 인정되면서문학화를 출발시켰다.85년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광주항쟁의 전말과 의미를 민중적 전망아래 정리한 보고문학의 역작이나 본격 문학작품은 아니었다.본격작품은 이보다 다소 앞선 84년말 임철우의 단편 ‘봄날’을 꼽을 수 있다.5·18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이 작품은 내용도 항쟁의 당시상황이 아닌 항쟁이후 남은 자의 죄책감에 관한 것이다.이같은 사태이후의 후일담 성격은 알레고리나 우회적 언급을 차용한 작품화 방편을 거둬들인 뒤에도 80년후반 1차 광주문학 활성기의 주조라 할 수 있다. 광주문학을 연 작가 임철우는 이어 4년간 ‘직선과 독가스’ ‘사산하는 여름’ ‘불임기’ ‘관광객’ ‘동전 몇닢’ ‘어떤 넋두리’ 등의 광주 단편을 차례로 발표했다.윤정모의 85년 단편 ‘밤길’도 항쟁 현장을 빠져나온부끄러움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강한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어 주목받았다.국회 광주특위가 가동된 88년에 발표된 중편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방향에서 커다란 편차를 드러내 넓어진 광주문학의 폭을 말해준다.시민군 주체와 관련해 노동자의 주도성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깃발’은 광주항쟁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며 항쟁 와중에 실성한 소녀의 실존적 후일을 그린 ‘저기 소리없이…’에서 광주사태는 역사성이 최대로 희석된 특수한 인간조건으로 확장된다. 80년대 말까지의 5·18문학은 87년과 90년에 차례로 나온 소설집 ‘일어서는 땅’(인동)과 ‘부활의 도시’(인동)에 집약되었다.문순태(‘일어서는 땅’‘녹슨 철길’)한승원 (‘어둠꽃’)이영옥(‘남으로 가는 헬리콥터’)정찬(‘완전한 영혼’‘새’‘슬픔의 노래’)정도상(‘십오방이야기’‘저기 아름다운 꽃 한송이’)공선옥(‘씨앗불’‘목마른 계절’)을 비롯 김중태 김남일 김유택 박호재 김신운 박원식 백성우 이명한 이삼교 홍인표 이순원등이 1차 광주문학의 축대에 돌을 보탰다. 문학의 역사성에 반기를 든 90년대 들어 5·18은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으나 끝무렵 새얼굴의 문학을 솟구쳐 낸다.임철우는 97년말부터 98년초에걸쳐 장편 ‘봄날’ 5권을 완간,다시 광주문학의 기수 역을 맡았다.완성하는 데 10년이 소요된 이 대장편은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기록으로 읽어달라고주문할 만큼 비참하고도 찬란한 당시상황을 세밀하게 복원한다.이어 그때 수습위원으로 일했던 송기숙과 현지 신문사 부국장이었던 문순태는 올해 장편‘오월의 미소’와 ‘그들의 새벽’을 각각 내놨다.80년대에 볼 수 없었던항쟁기간의 디테일 삽입과 함께 화해와 테러를 동시에 모색하거나 노동자 출신 시민군의 마음 끝까지 더듬고자 한다.그리고 시인 황지우는 5·18 당시와 오늘을 역동적으로 엮은 희곡 ‘오월의 신부’를 지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말부터 재기한 2차 광주문학은 장편화와 입체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기억과 껴안음의 새 길을 열고있는 5·18문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뜨겁고 투명한 불꽃을피워낼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5·18은 민중문화 뿌리내린 주역”. 소설가 임철우(46)씨는 이맘때만 되면 예서제서 부지런히 들먹거려지는 사람이다.누구 한사람 ‘5월’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광주이야기를 감히 소설로 썼었다.그러나 여전히 맘은 편치 않다.그날의 이야기가 오늘로 남지 못하고 20년전 과거로 잊혀지는 지금,‘5월 작가’라는 이름표는 버거운 짐이다. “진상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는데,모두들 부담스러워 잊어버리려 하는 게 5월의 역사 아닙니까? 광주시민들에게는 피눈물 솟구치는 현실이 세상사람들에게는 한낱 수습 끝난 과거가 돼있으니까요.5월만 되면 으레들떠서 설치는 언론들도 솔직히 밉상맞고 그렇습니다”그는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소리를 하느라” 청년기의 한 토막을 생으로 바쳤다.1980년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열이틀간의 ‘광주사태’(소설을탈고할 때까지 ‘사태’였다) 현장으로 아득바득 사람들을 이끌어간 소설이장편 ‘봄날’이다.모두 5권짜리 대하소설을 이태전 원고지 7,000장으로 묶어내기까지는 꼭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소설은 단순한 글쓰기 영역이 아니다.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건 “비겁하게 살아남아 치르는 대가”일 뿐이다.전남대를 휴학하고 지역마당극단에서 연극운동에 몰입하던 당시 ‘광주사태’는글쓰기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아니,확신이라기보다는 의무를 주었다고 해야 옳다.등단하기도 전이라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하고 다녔더랬다.광주시내 골목골목을 뒤지며 보이는 것,들리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적어뒀다.그 수첩 기록들이 고스란히 ‘봄날’ 원고속으로 들어갔다. ‘5월 문학’이란 용어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5월 이야기가 한국문학사의 엄연한 한 맥락인데,굳이 거기에 특별한 수식어를 달아 생색내는 것 같아서이다. “80∼90년대의 화두는 광주였습니다.그 화두를 꺼내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는 역할을 문학이 자임했고요.5월 문학이 없었다면 ‘민중문학’이나 ‘민중론’이 목소리를 낼 터전도 없었겠지요.5·18은 우리 사회에 민중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문화예술에서의 민족 주체성을 확인시킨 주역이었어요”그는 5월 이야기를 다시 꺼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5월을 폐광처럼 팽개치는 세상에다 또 그 이야기를 들이민다는 게 맥도 빠진다.“기력이 소생하기를기다린다”며 그가 웃었다.지난 3월 5·18연극 ‘봄날’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요즘 수원 한신대로 출강한다. 황수정기자 sjh@. *6·29선언 계기 활발히 출간. 5·18의 참상을 친구들 간에도 터놓고 얘기하기가 불안했던 시절이 꽤 오랜기간 있었다.활자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지난 85년 5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황석영 기록)가 처음 책으로 묶여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당시만 해도 비밀리에 인쇄를 마치고 제본작업을하다 발각돼 전량 압수당한 뒤 밤새 마스터인쇄로 조금씩 찍고 손으로 제본해 5,000부를 발행,대학가 서점을 통해 은밀히 판매했다.대학가의 필독서로자리잡았다. 5·18 관련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증언록이나 자료집을 간간이낸 것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했던 5·18 관련서적은 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활발히 출간되기 시작했다.‘죽음을 넘어…’도 이때야 정식출판됐다.이제까지 나온 책은 대략 수백종.종류도 시·소설 등 문학물에서 사진기록·자료·증언·수기집,취재기,정치·사회·법적 연구서까지 다양하다.‘광주민중봉기와미국’(이삼성) 등 잡지 등에 발표된 글이나 연구논문들도 많다.5·18 관련주요 서적을 정리한다. 김주혁기자 jhkm@
  • 5·18기념 민중예술제 17일 광화문서 연다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맞아 한번도 서울에서 개최된 적이 없는 민중문화예술제 ‘2000 님을 위한 행진곡’이 17일 오후7시30분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다. 해마다 돌아오는 5·18이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전국 10개 도시의순회공연을 통해 빛고을 정신을 알렸고 이제 서울의 한복판에서 전야제 행사를 갖는 것이다. 임명구 민예총 사무총장은 “그동안 5·18 기념행사들이 광주라는 울타리를벗어나지 못했다”며 “20년,다시 말해 7,300여일 동안 고립되었던 항쟁정신을 전국화하는 문화예술적 실천을 위해 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1부 ‘살아있는 신화 5·18’은 동학,4·3제주민중항쟁,4·19혁명,5·18광주민중항쟁,6월항쟁을 거쳐 발전돼온 항쟁의 정신과 해방의 역사를 춤,영상,풍물,극,음악 등으로 형상화한다. 그동안 ‘모란꽃’,‘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5월극을 꾸준히 발표한광주지역의 대표적인 극단 ‘토박이’와 ‘더 빅 브러더’로 역동적인 군무를 선보인 모던재즈 전문 댄스그룹 ‘포즈 댄스 시어터’,한경탁 박성환 손병휘 김가영 손현숙 윤정희 등 민중가수들이 모인 민족음악인협회 소속 프로젝트그룹 ‘삶·뜻·소리’가 참여한다. 지난 20년간 마당극 운동을 주도해온 놀이패 ‘한두레’와 풍물굿패 ‘살판’도 함께한다. 2부 ‘끝나지 않은 노래’에서는 김영동,정태춘,박은옥,이정열,장사익 등 민중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명해온 음악인들이 한데 모여 광주의 정신을노래한다. 51년전 창립돼 일본의 원자폭탄 반대투쟁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우타고에(노래소리)합창단이 참여해 항쟁정신의 국제화를 모색한다. 한편 지난 3일부터 시작한 민음협의 전국 순회공연은 15일 수원 경기도문화예술회관과 17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계속된다.15일에는 극단 토박이의‘금희의 오월’ 공연도 곁들여진다.(02)364-8031임병선기자
  • [녹지를 가꾸자] 산림행정 간벌·산촌개발 역점

    우리나라는 지난 70년대 초부터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범국민적 치산녹화사업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녹화(綠化)성공국이 되었다. 황폐화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추진한 제1,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73∼87년)은 산림녹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원천이었다. 그러나 산지의 70% 이상이 개인소유로 돼있고 산주 1인당 평균 소유규모가고작 2.1㏊에 이르는 등 소유구조의 취약 등으로 임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있는게 사실이다. 산림에 투자해서 수익을 얻으려면 적어도 5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적인사정때문에 대부분의 산주들은 간벌과 경영임업 등에 소홀히 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녹화된 산림이 제때에 가꿔지지 않아 일본 등 다른 산림 선진국에 비해 숲의 생산성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산림청이 조림이나 산불방지 등이 산림정책의 전부가 아니라며 21세기 산림행정 방향을 간벌과 산촌개발 등에 비중을 두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간벌대상 면적은 106만1,000㏊에 이르고 있으나예산부족 등으로 연간 간벌실행 면적은2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환경·공익적 측면에서도 간벌은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다. 간벌을 했을 경우 하지 않았을 때보다 목재 생산량 등 경제적 가치가 3배이상 된다고 산림청 관계자는 설명한다.간벌을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면 나무의 키만 커지고 줄기는 가늘어 목재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고 병충해에도 취약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는 환경·공익적 가치다.숲이 빽빽하면햇빛이 침투하기 어려워 관목류를 비롯한 작은 나무들과 여러가지 풀 등 하층식물들이 자라지 못하는 주원인이 된다. 반대로 간벌을 통해 하층식물이 발달하면 물저장능력은 2배로 늘어나고 야생동물의 서식공간도 그만큼 활성화된다. 숲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등한시해서는 안될 일 가운데 또 하나는 산촌개발이다.우리나라는 일본보다 10년 이상 뒤진 지난 95년부터 산촌개발에 나섰다. 현재 강원도 춘천시 지암리 등 산림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9개 산촌마을조성사업이 완료됐으며 올해에도 50곳에대한 개발사업이 진행중에 있다. 산촌개발은 설계와 공사를 포함,평균적으로 4년 정도 걸리며 정부에서 마을당 14억원을 지원한다. 임업연구원의 지난 97,98년 정밀조사를 통해 나타난 산촌개발 대상마을은 2,034곳에 이른다. 이처럼 정부가 산촌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산림정책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조림·육림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산촌의 인력이기 때문이다. 산촌의 인구유출을 막고 이들을 산림육성의 전위대로 삼기 위해서는 산촌개발이 불가피하다.산림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촌개발방식은 정주환경개선과 소득사업 지원이다. 정광수(鄭光秀) 산림청 임업정책국장은 “세계 일류의 산림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20세기 녹화임업정책 시대를 마감하고 21세기 새로운 임업정책 추진을 위한 산림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 최용규기자 ykchoi@. *양평 옥천면서 25년째 육림사업 이규현 씨. “간벌(솎아베기)을 한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는 성장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육림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척도가 곧 간벌인셈이지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산77 일대 27만여평에서 25년째 나무를 가꿔오고 있는 이규현(李圭鉉·66)씨는 인근에서 산할아버지로 통한다.전문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틈틈이 익힌 지식과 산경험으로 도내 최고의 육림가로도 통한다. “이웃한 나무들 사이에 성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경쟁력이 뒤지는 나무는말라버립니다.이렇게 되면 입목의 성장도 둔화되고 병충해와 풍해,설해까지입게 되지요” 이같은 경쟁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건강한 입목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잘라서숲의 밀도를 조절하고 남은 나무에 햇볕을 충분히 받게하면 성장률을 2배이상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씨의 산 증언이다. 그는 심은지 15년만에 간벌을 한 잣나무는 이후 10년동안 반지름이 8∼10㎝가량 자랐으나 간벌을 하지 않은 잣나무는 3∼5㎝ 자라는데 그쳤다고 밝혔다.또 나무를 솎아내면 햇빛과 공기가 잘 통하고 나무 사이에서 다른 어린나무가 자라 작은 동물들의 휴식처와 미생물의 온상이 돼 토질도 개선된다고지적했다. “적정시기에 간벌을 해주면 대략 나무의 크기를 2배,부피는 6∼8배 가량늘게 해 가지치기로 없어지는 나무를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3배가량 숲이 느는 효과를 가져옵니다.하지만 반드시 가치치기와 덩굴제거 작업을 병행해야 하죠” 이씨는 우리나라 숲은 이같은 작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면적당 나무식재비율이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간벌과 가치치기등을 위해서는 임도(林道)의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길이 있어야 숲에 가까이갈 수 있기 때문이다.이씨는 25년 전 육림을 시작하면서 관할 행정기관에 임도개설을 요구했고 그 결과 지금은 폭 5∼6m의 임도가 이씨의 산 곳곳을 이어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 중턱 계곡의 2평남짓한 움막에서 생활하는 이씨는현재 자신이 기르고 있는 나무들의 가치가 200억여원에 달한다며 과학적인육림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산골에 자리잡은 '동화 마을' 춘천 사북면 지암리. 호수와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산촌마을’은 현대화된 동화속의 산간마을이다.이곳은 지난 97년 산림청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산촌마을을 되살리고 국토를 균형개발한다는 취지에서 전국 처음으로 산촌현대화 시범마을로 조성했다. 춘천 도심에서 20㎞쯤 거리를 두고 2.2㏊의 넓이에 조성된 46가구(170여 주민)의 조그만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도시생활이 부럽지 않다.간이상수도는 물론 오수처리장,전기,보안등,잘 포장된 도로 등 기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마을 안에는 보건진료소와 마을회관 임산물직판장까지 있어 대부분의 일을자체 해결하고 있다. 인근에는 강원도에서 운용하는 집다리골 자연휴양림과 오월리 고정수렵장까지 자리잡고 있어 언제든 이들과 연계한 휴양·관광마을의 잠재력까지 갖추고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30가구)은 당초부터 이곳에 정착,화전(火田)과 산나물 채취로 생활해오던 화전민들로 요즘은 정부 융자와 각종 주민소득사업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정부는 마을 주변에 눈썰매장과 공동매점을 운영하게 하고 산림을 이용한 산더덕재배와 흑염소를 기르는 임간방목장,시설채소가꾸기 등을 지원하며 생활안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마을이 조성된뒤 정부의 소득지원사업 등으로 개발 전 연간 940여만원에 불과하던 농사외 평균소득이 1,200여만원으로 늘어난 것만 보아도 일단은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주민들은 앞으로 임산물직판장을 활성화하고 인접한 자연휴양림과 고정수렵장 입장객들을 상대로 민박을 유치,농외소득을더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대화된 주택을 짓고 입주하는데 저리의융자를 알선해 줬다고는 하지만 아직 주민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버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춘천시 관계자는 “낙후된 산촌을 개발,잘 사는 마을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산림청 등이 19억여원을 들여 조성한 만큼 주민 소득증대에 더욱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기고] 숲의 생산성 높이기. 국토면적의 65%에 이르는 우리나라 산림은 울창하기는 하지만 쓸모있는 나무가 별로 없다.임업선진국의 경우 ㏊당 축적된 임목이 150∼250㎥에 이르지만 우리는 56㎥에 불과,목재 자급률이 6%에 그치고 있다.따라서 부족한 목재14억달러어치(99년 기준)를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단위면적에서 보다 질이 좋고 많은 양의 목재를 생산하려면 토지의 ‘생산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향상시켜야 한다.먼저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우리처럼 인구가 조밀하고 산업화된 환경에서는 집약적인 산림관리가 요구된다.과거 좋은 나무만 베어내 유전적으로 형질이 우량한 나무가 많지 않은 우리 숲에 집약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품종을 개발하고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우량종묘를 생산,산림수종을 품종화해야 한다.우리 연구원에서는 최근 우량종자를 대량생산할수 있는 무성증식기술을 개발중이다.특히 세계 육종학계에서도 난제로 여기던 침엽수종자 대량복제기술의 개발에 성공하여 내년부터 솔잎혹파리에 강한소나무 묘목을 대량생산,동해안 산불피해지역 등 소나무가 잘 자라는 곳에조림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개발 보급된 묘목의 조림단계에서는 반드시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숲가꾸기기술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가장 훌륭한 조림사업이란 자연을 가장 잘 모방하는것이라는 임업적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심은 어린나무는 주위의 잡초를 제거하고 최대한 비료를 주며 병해충 방제도 잘 하여 생장량을최대로 늘려야 한다. 숲가꾸기 과정에서도 장래 용도에 따라 솎아베기와 가지치기를 차별적으로해야 한다.목재시장에서는 원목의 형질(길이,굵기)이나 목재등급(옹이,무늬)에 따라 용도가 다르고 가격이 수십배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이렇게 시장에 맞추어 나무를 심고 가꾸면 벌채시기에 단위면적당 목재생산량과 판매수입을 알 수 있으므로 조림하는 산주는 예측가능한 투자계획을 세울 수 있고 국가는 투명한 목재수급계획을 수립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이다. 환경이 조화된 집약적인 산림자원의 조성 및 이용기술 개발로 숲의 생산성을 높이면 인간과 숲이 상생하는 21세기 산림비전과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달성할 수 있다. 노의래 임업연구원장.
  • 광주항쟁 장편소설 문순태‘그들의 새벽’

    문순태의 장편소설 ‘그들의 새벽’이 나왔다. 소설류를 별로 내지 않아온 한길사가 펴낸 2권짜리 이 장편소설은 5·18 광주항쟁을 다루고 있다.사람을 떠난 권력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와너나를 가리지 않는 공동체가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창조할 수 있는가라는관점에서 5·18은 희귀한 소설적 광맥이다.그러나 5·18에 관한 일반의 관심이 아직도 지역적으로 보편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소설적 광맥에 관심을기울이는 소설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그리고 이 광맥을 차분히 천착하기에는 지금껏 여기에 눈길을 주어온 소설가들의 피돌기는 너무 빠르다. 문순태는 “이 소설을 탈고하고 나서 20년 만에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20년 전 5·18 당시 신문사 부국장이었던 작가는 항쟁기간 내내 광주에 남아 모든 것을 직접 보고 겪었다. 이 직접 체험은 커다란 자산이기도 하지만 소설을 쓰는 데 꼭 좋은 것만은아니라고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다.거대한 역사적 경직성 앞에서 소설적 형상화 작업의 어려움을끊임없이 실감한다는 것이다.“진실 드러내기와 문학적 형상화 사이에서 그동안 많은 갈등을 겪었다”면서 작가는 “진실 드러내기보다 소설미학에 치중하게 된다면 영령들의 죽음을 욕되게 할 수도 있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새벽’은 진실접근을 주로,소설적 형상화를 종으로 삼았다. 그간심심찮게 제기된 ‘5월문학은 이제 식상해 있으니 버전을 바꿔야 한다’는소리를 무시하고 정공법을 고집한 것이다.아직 밝혀야 할 5·18의 진상이 수두룩한 것과 마찬가지로 5·18을 우회하지 않고 제대로 다룬 소설 또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 문순태의 판단이다.기껏 재작년 임철우의‘봄날’과 올 초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 정도인데 내면화 등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되도록 실체를 수용하면서 광주 사람들이 어떻게 당시 상황에 대응했는가를그리고자 한 ‘그들의 새벽’은 특히 계엄군 철수후 구성된 시민군의 핵심을이룬 사회 밑바닥의 기층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구두닦이,양아치,철가방,호스티스,가정부,공장 직공 등 밑바닥 청소년들이 무엇 때문에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끝내 죽음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에 ‘그들의 새벽’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항쟁이 터지기 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 젊은이들은 항쟁 초기엔계엄군과의 대적을 대학생들이나 다른 번듯한 사람들이 할 일로 시답지 않게여겼지만 점차 목숨을 바칠 자기 일로 받아들인다.그들은 계엄군의 최종 진압이 가까와 지면서 얼마든지 도청을 빠져나와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사수하다 죽음을 맞았다.작가는 그들의 이 선택을 ‘생존을 위한 마지막 자존심’으로 풀이하고 있다. 항쟁 기간을 정공법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그들의 새벽’에는 소설외적인 사실자료가 많고,기층민 주인공들의 사연과 소설적 얽힘에는 통속적이고 억지스러운 데가 없지 않다.그러나 이는 양적으로 분명 ‘초기’ 수준인5·18 소설문학의 어쩔 수 없는 흠점으로 보인다.문학 바깥에서 5·18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지역적으로나 여러 모로 보다 광역·보편화할 때 보다 ‘소설적인’ 작품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올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여성 선언] 가정폭력, 가정만의 문제인가

    이 햇살 찬란한 오월,어두운 병상에 누워 고통받고 있는 한 여성을 생각한다.아직은 ‘피해자 김씨’로만 알려져 있는 이 여성은 한달전 남편에 의해정신과 육신이 처참하게 짓이겨진 엽기적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남편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른 아내에게 저지른 범죄는 어느 폭력 영화에서조차도볼 수 없는 잔인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손발을 철사로 묶어 전기충격을가하고,끓는 물을 온 몸에 들이붓는가 하면 인두와 담뱃불로 전신을 지졌다. 얼굴과 하복부를 커터로 조밀하게 그어 놓고 흘러내리는 피를 빨아먹기까지했다고 한다.심지어 생이빨을 펜치로 뽑고,식칼로 배를 찔러 휘저어 소장을천공시킨 상태에서 세시간 동안 방치해 두었다는 이 가공할 범죄의 가해자정선호는 비명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 이웃 사람에게 뻔뻔스럽게도 “나도여성의 인권을 아는 사람인데 폭행을 하겠느냐” 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폭력의 양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단순히 가정 내의 문제로 치부되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정사의 얼굴을 한 천인공노할 범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위 ‘정선호 사건’에서 보듯이 이는 희대의 어떤 살인사건보다 더 잔인무도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범죄 행위다.그러나 적용되는 법률은 가정폭력(7년 이하의 징역)과 상해,살인미수(10년 이하의 징역)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만약 실정법과 기존 판례를 이유로 범죄의 내용과 관계없이 관대한 처분이 내려진다면,우리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범죄를 방조하고 비호하는 공모자가 되고 말 것이다. 화상으로 부풀어오르고,온 몸이 난자된 피해자 김씨의 사진을 앞에 두고 나는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사람에게는 누구나 인권이 있고,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그러나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분명 있는 것이다.범죄의 경우도 우발적인 것과 의도적인 것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정선호 사건’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며,그 극도의 잔인성과 장시간에 걸친 가학은 철저하게 의도된 범죄이다. 이것을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누가 법을 신뢰하며 따를 것인가. 몇 년전,한 여성이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20년 후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말했고 여성단체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정선호 사건’ 역시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떠나 인간이기를 거부한 인간과 비인간의문제이다.게다가 가해자인 정선호는 기껏해야 벌금이나 내고 말 것이라며 참회의 빛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현행 법률로 부족하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이 인간 아닌 인간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처벌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정선호의 중형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과 피해 여성인 김씨의 치료비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최초 발견시 생존율이 20%밖에 되지 않았다는 김씨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병원비마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어쩌면 정신적으로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고통을 품고 살아갈 이 여성이 다시 온전한 삶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잔인한 고문 현장에서 차라리 죽기를바랐을지도 모를 이 여성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간에 깊은 이해와 인간적 존중이 절실하게필요로 한 이 시대에,이번 사건이 한번 나왔다가 세간에 잊히고 마는 일이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기를 바란다.나는이 칼럼의 원고료를 그녀에게 전달할 것이다.성금 모금계좌 수협 183-61-031222 인천 여성의 전화 032-527-0092 ◆임수경 美코넬大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 광주민주항쟁극 ‘오월의 신부’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서예관사이에 난 돌계단을 따라 우면산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으로 아담하게 자리잡은 야외무대가 보인다.크지도,작지도 않은 반원형의 무대와 1,2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계단식 객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인 황지우가 처음으로 희곡을 쓰고,김광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이연출한다해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연극 ‘오월의 신부’(18∼27일 오후8시)가 이곳에서 관객을 맞는다.양옆으로 빽빽이 둘러선 5월의 신록과 밤하늘을배경삼아 ‘광주의 영령들’을 불러내기에 제격이다싶다. 공연을 2주 앞둔 지난 4일 밤,40여명의 배우와 스탭들이 처음으로 야외 연습에 나섰다.실내에서만 연습을 하다 나온 탓인지 대사전달이 잘 되지않자 성악가출신의 발성지도 전문가 서상권이 연신 까다로운 주문을 쏟아놓는다.“그렇게 하면 뒤쪽에선 대사가 하나도 안들려요.배에 힘을 주고 좀더 크게 소리를 내봐요”.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연출가 김광림이 안되겠다 싶은지“마이크를 쓰긴 써야겠는데…”라고 중얼거린다. ‘오월의 신부’는 20년전 피와 절규로 얼룩졌던 한 도시의 아픔을 이야기한다.하지만 이념의 잣대로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거나 이미 알려져있는 참혹한과거를 낡은 필름 돌리듯 되풀이하진 않는다.대신 그때 그곳에 머물렀던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그리고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에서 흔히 등장하는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립구도가이 연극에선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오월의 신부’는 그보다 계엄군이 철수한 도청을 접수했던 시민군의 인간적 갈등을 주요한 모티브로 채택했다.도청사수와 투항이라는 두가지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고 번민하는시민군의 모습을 통해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무대는 간결하다.9m높이의 벽이 무대를 빙둘러 서있고,거기에 15개의 문이나있다.20여명의 코러스들은 이 문을 드나들며 역동적인 시민군의 활약상을재현하기도 하고,공포에 떠는 시민들의 갈등을 형상화한다.대사는 다분히 시적이고,움직임은 마치 춤을보는 듯하다. 단순하지만 힘있는 윤정섭의 무대에 조명디자이너 이상봉이 깊이있는 빛을더할 예정.계엄군의 최후진압작전을 앞둔 새벽,두 젊은이가 혼배성사를 치를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천송이의 꽃가루는 이 연극에서 가장 아름답고,슬픈 장면을 연출한다. 강신일(장신부역)백익남(김현식)등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출연진 상당수가경력 10년이상의 중견급 배우들로 탄탄한 앙상블을 자랑한다.당초 광주에서도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여러 사정상 서울에서만 공연하게 됐다.봄날 저녁,도심의 숲한가운데서 만나는 스무해전의 광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앞에 다가올까.(02)762-0010이순녀기자 coral@
  • [외언내언] 탤런트와 빵집주인

    ‘오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어린이날 노래는 이제 노인세대라도어려서 몇번쯤 불러 본, 가장 오래된 가락이 됐다.78회 어린이 날을 맞아 5일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져 그 의미를 되새겼다.어린이 헌장은 ‘대한민국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으로 존중되며,바르고 아름답게 씩씩하게 자라도록 해야한다’고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이날 기원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3·1운동후 어린이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1923년 천도교 소년협회가 중심이 돼소파 방정환선생의 지도로 5월1일이 어린이 날로 정해졌다.그후 1927년 5월첫째 일요일로 변경돼 해를 거듭할수록 민족정신고취 행사로 자리잡자 조선총독부가 39년 이를 폐지했다. 광복후 어린이 날에 대한 의미가 되살아나 46년부터 5월5일이 기념일이 되었으며 57년 2월 동화작가협회 이름으로 어린이 헌장이 제정됐다.당시 헌장전문은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헌장은 88년 시대변화에 맞게 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민족의 이같은 수난사를 반영하듯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과거에는 대통령과 장관·장군·판사 등으로 권위적 직업을 선호했으나 요즘은 현실로눈을 돌리고 있어 흥미롭다.어린이날을 앞두고 한 대학교수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탤런트·운동선수 등 유명인이 25%로 1위를 차지했고 부자(20,5%),사회사업(18%)이 뒤를 이었다.대통령과 장관은 10위(7%)로마지막 순위였다.어렵고 배고프던 시절과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인간을 위한,자신을 위한 직업관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다이이치(第一)상호보험이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희망조사’에서는 남자 1위는 목수이고 다음으로 인기 운동선수·경찰관·구조대원 순이었다.여자는 빵집주인이 3년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꽃집주인·선생님·미용사가 그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의식이 현실적으로 변하고있지만 일본어린이 보다는공익적인 성향이다.나라 잃은 어린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못배우고 천대받던 시절 어린이를 올바르게 기르는 일이 나라를 되찾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어린이날 정신은 귀중한 경험이었다.21세기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나라의 번영과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건실한 어린이들이건강한 사회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어린이날의 정신이 기념일만의 행사가되지 않도록 쉼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는 공동체가 희망있는 사회이다. 李基伯 논설위원 kbl@
  • 광주항쟁 20돌 기념극 2편

    십수년을 ‘불순한 폭도’로 규정돼 억울한 침묵을 강요당하고,이후 ‘민주항쟁’으로 복권돼서도 여전히 치유되지않는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그들의 이야기가 2000년 봄,서울과 광주에서 되살아난다.광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무대에 오르는 ‘임철우의 봄날’과 ‘오월의 신부’.두 작품 모두살아남은 자의 회상이라는 연극적 구성을 통해 우리 시대의 ‘역사 불감증’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이다. 10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막오르는 ‘봄날’은 소설가 임철우의 5권짜리 동명소설을 토대로 했다.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극중 주인공은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으로 그때의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고통받는 인물.극은 주인공의 기억을 좇아 초기 진압군의 극단적 폭력이 몰고온 시민들의공포와 분노,그리고 폐쇄된 병영생활에서의 억압과 고통스런 훈련에서 비롯된 병사들의 맹목적인 증오심과 폭력성을 교차해 보여준다. 주남마을,송암동 양민학살,도청앞 광장에서의 집단 발포,도청 최후진압 작전 등 당시 상황이 극적으로 전달되는 한편에서는 시민군 및 지식인들의 고통과 분노,그리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공수부대 병사들의 심리적 혼란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연출가 김아라는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혼재된 ‘연극적 퍼포먼스’로 만들었다.50명의 배우들이 다역으로 출연해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펼치는 동안 대형스크린에서는 다큐멘터리 영상,사진,신문기사등이 투사돼 역사적 사실감을 높인다.김씨는 “민중의 대서사극으로서 특정 개인이 아닌 다수의 아픔과 염원을 담아내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밝혔다.장민호 권성덕 신구 김갑수 등 쟁쟁한 중견연기자들을 비롯해 서울·광주 연극협회 소속 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춘 것도 뜻깊다.12일까지 서울공연,5월18∼20일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02)765-54765월 중순 광주와 서울에서 공연되는 ‘오월의 신부’는 시인 황지우가 처음쓴 희곡을 야외무대화한다.지난해 9월 초고를 마치고,여러차례 손질을 가해완성도를 높인 작품으로 시적인 대사와 웅장한 음악이 양대 축으로 극 전반을 이끈다.극은 당시 시민군과 뜻을 같이 했던 장신부가,도청 진압작전에서살아남았으나 정신이 온전치못한 빈민운동가 허인호를 돌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광천동 들불학교 교장 오민정,그녀의 애인 김현식,대학 총학생회장 강혁,고아 이영진,건달 김광남 등 광천동의 낙원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도청에서 마지막 생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이 절절하게 그려진다.도청 진압작전을 앞둔 새벽,오민정과 김현식이 장신부앞에서 혼배성사를 하는 장면은 광란의 역사에 희생된 순수한 젊은이들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광림교수가 연출하고,강신일 이두일 강세동 등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광주비엔날레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돼 5월11∼14일 행사장 야외무대에서 선보이고,이어 5월18∼21일 서울 국립국악원 야외무대에서 공연된다.(02)3673-0792이순녀기자 coral@
  • 진보작가 송기숙씨 새장편 ‘오월의 미소’

    소설가의 펜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역사적 사건이 있는가 하면 펜이 돌멩이에 부딪히는 양 소설가를 좌절시키는 역사가 있다.그런데 다른 것 제쳐두고 돌멩이같은 역사에 문학과 이야기의 길을 내려고 자꾸자꾸 펜을 들이대는작가들이 있다. 송기숙이 장편소설 ‘오월의 미소’(창작과 비평사)를 냈다.5·18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행정적으론 반듯해졌지만 5·18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피하고 싶은 역사의 험로이다.또 5·18은 한국의 작가들에게 한번은넘어야할 악산(惡山)으로 다가오나 머리속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통과의례로서가 아니라 악산에 더 끌리는 진정한 등산가처럼 5·18의 흉악한 돌산을 오르고 또 오를 그런 작가도 여럿이다.송기숙도 그중 하나다. ‘자랏골의 비가’(1977) ‘암태도’(1981) ‘녹두장군’(전12권 1989∼94) 등 역사성 짙은 소설을 쓴 작가는 70년대부터 두번의 옥고를 치르며 교육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나섰으며 80년 5·18때 공수부대 철수후 구성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5·18 이후에는 항쟁에참여한 700여명의 구술을 받고 정리하는 작업을 주도했다.즉 작가는 5·18을 매우 잘 아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5·18을 잘 아는 작가가 쓴 ‘오월의 미소’에서 5·18은 어떤 색조로 흐르고 있을까.5·18하면 피빛이 먼저 연상되는 많은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수있다.혹시 발을 들여 놓는 즉시 괴기스러운 색깔로 변해버리는 악산의 하늘빛같지는 않을까.5·18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항쟁의 핏빛 기록이 아닌 소설을 보기 위해 책을 펴든 독자들에겐 다행히 ‘오월의 미소’는 그다지 험상궂거나 원색적이지 않다. 작가는 독자를 끌기 위해 알면서도 부러 색채를 순화한 것인가.그렇다기 보다 20년 가까운 세월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퇴색에 더 가깝다. 1980년 당시 재수생이었던 주인공은 좋아하던 여고생과 그 언니가 공수부대원에게 능욕당하면서 5·18의 한가운데로 내동이쳐지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공수들의 비인간적 만행을 차례로 목도한다.공수들에 대한 복수에 모든 것을 던지며 목숨을 걸고 시민군에 가담했던 주인공은 계엄군아닌 민간인 여자를 쏘아버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른다.시민군 가담전력이나 오발사고가 행정적으로 반듯해진 가운데 주인공은 사회생활에 복귀하고 십여년의 시간이 흐른다.5·18이후의 시간이 무심히 흐를 리 없다. 정신이상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여고생 친구의 언니는 고향에서 자살하고,주인공은 사업상 알게된 공수단 장교가 의문스럽게 익사하는 현장에 있게 된다.그리고 이 두 남녀의 영혼혼사를 지켜본다. 그러면 주인공 자신은 어떤 사연과 변화를 겪는가.5·18 주동자들을 용서하려는 정치 바람에 동참할 수 없어 테러를 꿈꾼다.화해 쪽으로 한걸음 떼기와항쟁정신의 불씨지피기가 20년 세월이 가져온 퇴색의 생산물로서 이 소설의주제다. 이런 화해시도니 테러모의니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질 독자도 있을 것이다.자연스런 퇴색이 아니라 섣부른 변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분명 ‘오월의 미소’는 5·18이란 악산을 너무나 가뿐하게 넘어버렸다는 인상을 피할수 없다.그러나 오르고 또 올라야 할 악산이라면 처음부터 위험한 코스에 달려들 필요는 없다.송기숙은 반드시 이번보다 더 무서운 길로 더 꼼꼼히 오르는 등반을 시도할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사이버 변호사 ‘로이’ 탄생

    인터넷상에서 무료로 법률 자문을 해주는 ‘사이버 변호사’가 등장했다.㈜오세오월드(대표 崔容碩)는 2일 종합법률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인터넷사이트(http:///www.oseo.co.kr)에서 법률정보 자동검색엔진 ‘로이’(Lawie) 프로그램을 새로 개설,서비스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로이는 일반인들의 전세,교통사고,음주운전 등에 관한 법률상담에 자동으로 응답하도록 설계된 컴퓨터 응용 소프트웨어다.상담자가 처한 상황을 준비된 서식에 따라 입력하면 대처방안을 자동적으로 보여주는 법률정보 자동검색엔진이다.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화 버튼(700-2452)만 누르면 전화자동응답 시스템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변호사업계도 “변해야 산다”

    변호사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도우미 변호사 제도’도입,‘사이버 개업’등 틈새시장 공략을 위한 아이디어가 백출하고 있다. 특히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눈높이 낮추기’경쟁양상도 나타나고 있다.낮은 가격에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승부를 걸려는 자세다. 이는 사법시험 선발 정원이 늘어나면서 최근 확산되는 추세다.가만히 앉아서 고액의 수임료를 챙기던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경기도 의정부변호사회 소속 정성호(38·사시 28회) 변호사는 최근 개인 고문변호사 제도를 도입했다.불과 1만원의 가입비로 평생 법률상담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본격적인 송사 전단계에서 민원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법률서비스다. 전세보증금과 점포명도 및 물품대금 분쟁 등에 걸쳐 필요한 법률적 조언을하는 방식이다. 정변호사는 평생 전담 변호사제도 가입자가 늘 경우에 대비,이번주중 웹사이트를 구축할 예정이다.인터넷 법률상담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이같은 ‘사이버 법률상담’은 이미 몇군데서 성업중이다.강형구(姜亨求·43) 변호사가 개설한 ‘왕초보의 나홀로 소송’사이트(www.wangchobo.co.kr)와 일종의 ‘사이버 로펌’사이트인 ‘오세오월드’(www.oseo.co.kr)등이 그것이다.여기에선 적어도 악질 브로커나 전관예우를 탐하는 변호사를 만날 염려가 없음은 물론이다. 몸을 낮춰 ‘낮은 데로 임하는’ 변호사들도 생기고 있다.낮은 가격으로 고품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들의 모토다. 사시37회 동기생인 박희준(36) 이순우(35) 변호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이들은 기존 변호사 선임비용의 10분의 1 수준인 30만∼50만원만 내면 소송과 관련된 일체의 서류작성을 사무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행,의뢰인이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의뢰인에게 성공보수료 등과 같은 추가비용을 받지 않아 그동안 비용부담으로 소송을 포기해온 행정민원과 소액사건 관련 의뢰인들의 문의가늘고 있다는 소식이다.이순우 변호사는 이를 법률서류 작성분야의 일종의 도우미역으로 정의했다.특히 “증거가 완벽한 소액사건이면 소장만 제대로 써내도 상대측으로 하여금 소송을 포기시킬 수 있다”며 특화 배경을 설명했다. 구본영기자 kby7@
  • 아르헨 군부독재 98명 체포영장

    [마드리드 AP 연합] 스페인의 발타사르 가르손 판사는 2일 지난 76∼83년아르헨티나를 군사통치했던 호르헤 비델라,에두아르도 비엘라,레오폴드 갈티에리 등 3명의 전직 대통령과 당시 군사평의회 위원 12명 등 모두 98명에 대해 테러와 학살,고문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지난해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그스토 피노체트 체포영장을 발부해 영국에서 체포되게 했던 가르손 판사가 이번에 영장을 발부한 군 장성중에는 에밀리오 마세라 전 해군사령관,도밍고 바시 전 투쿠만 주지사와 기예르모 수아레스 마손 전 육군제1군단장 등이 포함돼 있다. 비델라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은 76년 이사벨 페론 전 대통령을 축출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차례로 대통령에 취임,히틀러의 나치정권 때와 같은 철권통치를 펼쳤다.이 기간중 9,000명 이상의 반체제 인사들이살해되거나 실종된 것으로 공식 발표됐으나 인권단체들은 희생자가 최고 3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가르손 판사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기간중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스페인인 600명의 실종 및 납치사건에 이들의 책임이있다고 주장했다.피노체트 사건때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독재자들을 스페인 법정에 기소하려는 노력이 당사국간 외교분쟁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해도 이들이 곧바로 체포돼 스페인법정으로인도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83년 민주주의로 복귀한 뒤 비델라 등을 재판에 회부해 징역형을 선고했으며 5년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이들에 대해 사면조치를 발표하는 등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리 나름대로의 과거청산작업을 펼쳤었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메넴대통령은 이후에도 가르손 판사의 수사협조 요청을 거부해 왔는데 차기 대통령 당선자인 페르난도 데 라 루아가 이 문제에 어떤 대응을 보일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가르손 판사의 체포영장 발부를 일제히 환영했다.실종된 민간인들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아르헨티나의 인권단체 ‘오월 광장 어머니회’의 알바 란질로토 간사는 군부독재시절의 납치범과 강간범,고문범들이 아직도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며 “우리를 대신해 외국에서 정의가 추구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0)’민중교육’지 사건

    1985년 2월12일 치러진 제12대 총선은 학생과 민주화 운동권의 적극적인 참여로 야당인 신민당 선풍 현상을 일으켜 제1당으로 부상시켰다.대학생들은서울의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사건(5월23일)을 계기로 반군부 독재 운동을 격화시키기 시작했다.문공부는 봄부터 ‘김대중 옥중 서신’‘타는 목마름으로’ 등을 압수 수색했고,7월에는 민중미술 ‘힘전’전시회를 중단시켰다.집권 민정당은 이종찬(당시 여당 원내총무)의원을 비롯한 온건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문 11조 부칙 3항으로 된 학원안정법을 마련하여 여름 방학때 통과 시키려했다.세칭 학원 안정법 파동의 시작이었다.학원 소요나 집회시위 등 시국 관련법 위반 학생에게 재판 없이 검사가 ‘선도’처분을 내릴수 있다는 내용이 그 골자였다.학원 안정법 통과를 위한 여론의 세몰이 회오리 속에서 끔찍한 필화사건 하나가 속죄양으로 떠올랐다.바로 ‘민중교육지사건이었다. 시인 김진경(당시 양정고 교사,현 한국교육 연구소 연구위원)은 ‘오월시’동인으로 함께 참여했던 윤재철(성동고 교사.지난 9월 복직),고광헌(선일여고 교사,현 한겨레신문 문화부장)과 함께 1984년 초부터 문학을 통한 교육개혁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무크지 ‘민중교육’ 창간작업에 들어갔다.서울을 중심으로 주요 지방까지도 망라할 수 있는 참여교사 조직을 만든 후 ‘민중교육’이 실천문학사에서 선보인 것은 1985년 5월이었다. 교육 관련 논문과 시평 및 시·소설·수필·현장의 목소리·서평·학생들의작품·번역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담아낸 이 무크지는 곧 사회의 화제로떠올라 주목을 받게 되었다.특히 김성재(당시 한신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유상덕(성동고 교사),심성보(보성중 교사,현 대구 교대 교수),임은경(서울대 사대 학생,현 교사) 등이 참여한 권두좌담 ‘분단 상황과 교육의 비인간화’와,특집 ‘교육의 민주화’(집필 김진경·윤재철·이철국·심임섭·이규환),교육 시평 ‘스포츠문화와 학교 교육’(고광헌) 등은 한국 교육의위상을 객관적으로 자리매김 해준 글들이란 평을 들었다. “교육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명제죠.또 그것은 자율성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의 온갖 제도·구조·가치관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변혁의 기능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인간은 사회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 면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부단히인간다움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두가지 큰 목적”(27쪽)이라는 기본 정신을 내세운 이 무크지는 그 인기의 상승도와 함께 기존 교육계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윤재철 시인이 밝힌 바(‘교육 민주화의 횃불’)에 따르면 “책이 나온 한달 뒤인 6월 25일 경 서울 여의도고교 교장이 ‘민중교육’지가 불온하다며서울시 교위 학무국장에게 책자를 전달하고,학무국장은 그것을 시 교위 담당 안기부 조정관에게 내용의 검토를 의뢰함으로써 비롯되었다”(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분단시대의 피고들’ 398쪽)고 한다. 이어 관련 교사들의 언동을 관찰하는 등 내부 단속을 펴다가 7월18일부터 경찰에서 소환하기 시작했다.때를 맞춰 문교부의 보도의뢰에 따라 텔리비전들은 ‘민중교육’지가 학생운동 조직이었던 삼민투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뒤,7월31일(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 기자회견에서 학원 사태를 해결코자 법률 보완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그날)에는 각 교위를 통해 관련교사를 파면 등 중징계 하도록 하달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20) 무역의 나라-고려

    903년 3월,왕건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를 내려가 나주지역을 점령하였다.909년에는 해군 대장군으로서 나주를 지키면서 후백제가 절강성의 오월국에보내는 사신선을 나포하기도 하였다.그는 경기만의 함선을 거느리고 영산강하구와 인근 섬에서 창궐하는 해적들을 소탕한 백선(百船)장군이었다. 해양세력인 그의 가계는 매우 독특하다.선조 호경은 백두산 산신이다.작제건은 주몽처럼 신궁으로 서해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단군신화나 해모수신화등과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고려의 건국신화는 바다와 관련이 있다.하늘과 바다의 만남,산신과 해신의 결합에서 탄생한 것이 왕건이다. 경기만은 한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해륙교통의 요지이고,중핵에 있다.그 가운데에 위치한 강화도 일대는 해구(海口),혈구(穴口)라고 하여 서울과 개성,해주 등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것이다.해상세력이 해양력을 바탕으로 물류체계를 장악하면 경제력과 정치력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인 거점이다.왕건의집안은 황해 남부와 경기 서부, 강화도가 만나고,황해와 한강 하류와 예성강이 합쳐지는 소지중해와 같은 이곳에서 성장한 해상토호이다.송악(개성)은후에 해양경영을 염두에 두고 계획도시로 조성되었다(한재수 설). 고려는 처음부터 해양활동이 매우 활발하였다.북방의 요나라를 견제하고,문화를 받아들였으며,무역을 위해서 한족과는 자주 교섭하였다.태조때부터 황해를 건너 후양(後梁)과 교섭했으며,송(宋)이 건국한 다음부터는 본격적이었다.송은 거란을 치기 위해 고려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160여년간 고려는 송라에 57번을,송은 고려에 30번의 사신을 보냈다.2년에 한번 꼴로 사신단이 오고간 것이다.이 때 탁월한 외교관이었던 서희(徐熙)는 7년동안 끊어졌던 외교를 바다를 건너 재개시키기도 하였다.송과의 교섭은 해양이 아니면불가능했다. 송나라에 간 유학생들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기도 하였다.반대로 고려에서 관직을 받은 송나라 사람도 있었다.승려 의통(義通)은 947년 바다를 건너가 영파에서 법(法)을 전파했다.대각국사 의천은 절강성 항주에 머물기도했는데,근래 서호(西湖) 부근에서 고려의 절터가 발견되었다. 고려와 송나라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을 했다.사신선들은 공무역선이었다.송은 고려에 의복 상아 차 칠 옥 물소뿔 악기 술 새(鳥)등을 수출했고,고려는비단 삼 부채 종이 먹 등 수천점을 보냈다.1078년에는 송이 100종이 넘는 품목과 6,000건에 달하는 물건을 보냈고,고려도 그에 상당한 물건을 보냈다.그러나 당대의 문장가이며 관리였던 소동파는 고려와의 무역이 피해가 심하다고 비판적이었다. 민간의 무역은 더욱 발달하였다.고려사에 따르면 1012년부터 1278년까지 266년간 송나라의 상인이 129회 5,000여명이 왔다.황해는 엄청난 무역이 이루어지는 황금의 바다(gold-sea)였다.상인들은 주로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출신이었다.서역상인들도 많이 와서 1024년에는 100여명이 온 적도 있었다.개성은 다양한 인종과 물건들이 모이는 동아지중해의 유명한 국제도시였다.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서 여인의 손목을 잡은 회회인(回回人)은 바로서역의 상인이었다. 반대로 고려인들도 중국의 남방의 여러 도시에 진출하여 살고 있었다.지금도 영파에서는 고려관터를 발굴하고 있다.이러한 교역은 원나라가 세워진 다음에도 지속되었다.원의 세조인 쿠빌라이는 쌀을 강남에서 고려로 3차례 운송하기도 하였다.특히 일본원정을 위해서는 20만석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당시의 항해술과 항로는 어떠했을까? 처음엔 주로 고려의 배로 왔다갔다 했다.태조인 왕건이 사신을 파견했을 때,등주 근처에서 배가 파손하여90여명이 익사하였다.1019년에도 등주 부근에서 배가 파손되었다.어려운 항해였다.항로는 크게 3개가 사용되었다. 첫번째는 예성강 하구에서 출발해 옹진반도까지 나간 다음 황해를 직횡단하여 등주로 들어가는 항로다.초기에 사용됐는데 2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두번째는 역시 예성강구와 산동반도 하단의 밀주를 잇는 항로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동중국해 사단항로다.이 항로는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극(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란 책에 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즉 배는 영파를 출발,보타도에서 바람을 기다린 다음 북상하여 상해만 바깥바다까지 와서 거의 사선으로항해하여 흑산도로 향했다.이어 고군산도 자연도 등을 거쳐 예성강 하구에 도착하였다. 이 항해는 늦봄에 남서풍을 타고 해류의 흐름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다.송사(宋史)에 의하면 순풍일 경우에 흑산도까지 5일이 걸린다고하였다.필자는 지난 1997년 6월 하순에 뗏목 ‘동아지중해호’를 타고 이 항로를 답사했다.항로는 일치했지만,흑산도까지 17일이 걸렸다.동중국해 사단항로는 원양항해구역이므로 고난도의 천문항법에 능숙해야 한다. 원양항해와 대규모 교역은 성능이 훌륭하고 큰 배가 있어야 가능하다.왕건의 전투선은 23m 넓이에,위에 다락이 있었다.동해에서는 여진의 해적선들을격퇴하기 위하여 과선(戈船)을 만들었는데 이름대로 뱃전에는 창검을 꽂았고,앞머리에는 적선을 들이받는 충각을 달았다.70여명이 탈수 있었고 적재용량이 1,000석인 큰 배였다. 송의 사신선은 신주(神舟)와 보좌하는 객주(客舟) 여러 척으로 구성되었다. 객주는 길이가 30m,배높이가 9m 폭이 7,5m이고,돛은 높이가 30m이고,곡식 2,000섬을 실을 수있다.신주는이보다 3배쯤 크다.상인들의 배도 큰 차이가 없었다.이 대형선박들이 황해와 동중국해를 누비며 고려와 중국을 이어주었다. 고려는 장보고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상세력들로 출발해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국제적 국가였다.반면에 조선은 바다를 막아 해양력을 제거하면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이 되어 주변부 국가로 전락하였다.21세기는 바다가 열린 신세기이다.세계질서는 물론이고,특히 동아지중해의 질서는 해양력이 민족의 생존력임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尹明喆 동국대겸임교수]
  • 「考試플라자」변호사‘사이버개업’시대

    ‘이젠 사이버 세계에서 법률상담을 해드립니다’ 정보통신 시대에 발맞춰 일선 변호사들이 속속 ‘사이버개업’을 하고 있다. 사이버개업이란 말 그대로 온라인(On-line)으로 법률사무소를 차리는 것. 법률사무소를 고스란히 개인홈페이지로 옮겨놓은 형태다. 무료법률 상담은 기본.확실히 익명이 보장돼 의료사고에서부터 드러내기 힘든 성문제까지 상담범위가 넓다. 의뢰인이 직접 변호사의 약력,소송 경력,전문분야 등을 검색할 수 있어 브로커도 없다.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인터넷 법률사무소가 늘어감에 따라 법조계의 고질적인 악습인 ‘전관예우’,‘브로커 고용’ 등이 사라질 것으로보고 있다. 지난 4월 사이버 로펌(법무법인)을 개설,화제를 모았던 ‘오세오월드’(www.oseo.co.kr)의 개설 취지도 바로 이것.개설자 중 한사람인 최용석(崔容碩·38)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아는 사람들의 소개나 브로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관행을 바꿔보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인터넷 법률사무소의 장점은 값싼 통신요금만 들이면 안방에서 전문가의 자문을얻을 수 있다는 것.변호사들 역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만큼신뢰를 쌓기 위해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있다.또 전문지식이나 정보 부족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례도 쉽게 찾을 수있다. 회사원 P씨(28)는 “얼마전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상대방의 과실이 일부 인정돼 보상을 요구했지만 보험을 들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때마침 인터넷에서 비슷한 사례를 발견해 E메일로 변호사의 자문을 얻었고,결국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보증피해나 부동산 임대차 문제,이혼문제,의료사고 등 생활 주변의 법률사건들을 자유롭게 상담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지난 7월 ‘왕초보의 나홀로 소송’ 사이트(www.wangchobo.co.kr)를 개설한 강형구(姜亨求·43)변호사는 “인터넷 법률사무소에는 고액의 수임료도,악질 브로커도 없다”면서 “의뢰인은 전화비만으로 궁금증을 풀고,변호사는신뢰를 얻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효과가 있어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것”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
  • 해태 이번주 회생 ‘발판’

    해태그룹이 본격 회생의 길로 접어든다. 지난 7월 해태제과에 대한 채권단의 출자전환에 이어 해태음료가 이번주에홍콩의 투자사인 클라리온과 3,000억원 선에 매각계약을 맺을 예정이다.이로써 해태는 97년 11월1일 부도이후 22개월만에 구조조정이 결실을 맺게 됐다. 해태는 오는 11월말까지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매각과 통폐합 절차를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우선 제과군으로 분류되는 해태산업과 해태가루비를 절차가 끝나는대로 11월초 제과에 통합한다.산업은 과자 및 아이스크림을,가루비는 스낵류를 생산하는 업체로 판매를 제과가 해왔다.한편 제과에 포함된 건설부문은 기존 계약분 공사가 끝나는 대로 청산할 예정이다.제과는 부도이전의 매출을 회복해 올해 7,200억원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음료는 그동안 제일제당이 노려왔으나 막판에 입찰에 불참,홍콩사가 종업원 3,000여명의 고용승계와 경영권을 인수함으로써 기존의 5,000억원대 매출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70여개에 이르는 백화점과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해태유통은 현재 채권단이매각협상을 진행,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매각자가결정되면 유통전문회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해태전자는 7,000여억원에 이르는 부채 가운데 상당부분을 채권단이 출자로 전환해 회생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과거 인켈이 가진 기술력과 상품성이 뛰어나 가능성이 높다.여기에 인켈오디오월드 에어로시스템 등 전자관련 4개사를 통합한다는 계획이다.이밖에 광고대행사인 코래드는 지난해 12월스위스 코론사로부터 3,000만달러를 유치,독자운영하고 있다. 해태는 이처럼 계열사 정리가 끝나는 11월말쯤에는 해태타이거즈와 함께 식품전문사인 해태제과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박선화기자 psh@
  • 서양화가 홍성담 ‘1999 탈옥’전

    ‘오월(五月)화가’‘통일화가’‘인권화가’….서양화가 홍성담(45)에게는 늘 이런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그러나 그는 정작 80년대 민중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활동가로 불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심정이랄까.요즘 그는 한 단계 성숙한 의식과 명상을 통한 자아의해방을 꿈꾼다.1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1999 탈옥(脫獄)’전은 저항에서 명상으로 나아가려는 작가의 의식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1980년 5월 광주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었다.이런 배경 아래서 모순된 현실에 저항하는 민중미술이 태동한 것은 당연한 시대적요구였다.홍성담은 변혁운동의 중심부에서 민중적 사실주의 미술운동을 펼쳤다.89년에는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사건으로 투옥돼 3년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그 감옥의 기억은 지금도 작가의 의식을 옥죄는 심리적 올무다.이번 전시에서는 일련의 ‘감옥’ 연작을 통해 감옥으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을 시도한다.고문과 감옥이라는 소재를명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홍성담의 탈옥’은 무한한 상상의 지평을 얻는다.특히 그의 근작들은 민중미술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줘 관심을 모은다. 전시 작품은 크게 옥중체험을 토대로 한 ‘식구통(食口通)’연작과 ‘밥’연작,물고문 명상시리즈,92년 출소 이후의 대표작들로 나눠 볼 수 있다.옥중장면 그림 가운데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정사각형 캔버스 화판에 흙으로 만든 안료로 그린 ‘밥’연작이다.‘밥’ 사상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수십개의 화판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또 저항과 명상이라는 주제를 차분히 소화해낸 ‘물속에서스무날’도 주목할만한 작품.작가의 물그림 시리즈는 유화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1996)와 같은 직설적인 배설(排泄)의 작품에서부터 연꽃이 피어오르고 물고기 뱃속에서 사람이 잠을 자는 상생(相生)의 경지를 다룬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그 그림들은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을 표현한 ‘십우도(十牛圖)’를 보는 것 같은느낌을 준다.나아가 작가가 대립과 갈등의 터널을 빠져나와 화해와 상생의밝은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내용뿐 아니라 양식적인 면에서도 특색이 있다.작가는 자신의사회적 이념과 내면세계를 도상학적인 형태로 보여준다.부적문양과 물결문양 등 민화나 전통회화의 도상양식이 등장한다.그의 작업은 캔버스에 종이찰흙으로 부조형태의 도상(圖像)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20여가지의 흙과 안료를 발라 색을 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감옥이나 고문 등 강한 주제를 부드러운 흙색으로 녹여내고 있어 색다른 기분이 들게 한다. ‘1999 탈옥’전은 작가가 서울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다.지난 20년동안 우리 역사의 현장을 뜨겁게 지켜온 ‘저항화가’로서 이른바 제도권 미술계에공식 데뷔하는 셈이다.그런 만큼 그의 각오는 새롭다.“멕시코 혁명기의 3총사 화가였던 시케이로스와 오로스코,리베라는 만만찮은 성과를 남겼음에도항상 제3세계 작가로 폄하되곤 합니다.저항성에 치중하다 보니 직관에 의한명상이 부족했던 것도 그 한 원인이죠.저항과 명상이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되는 진정한 리얼리즘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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