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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의 탈 쓰고 온 ‘정치적 우생학’

    과학의 탈 쓰고 온 ‘정치적 우생학’

    우생학의 망령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 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하고 개량해 인류의 유전적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봤던 유사과학이었다. 우생학을 신봉했던 대표적인 집단이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였다. 미국의 역사연구가이자 정책 활동가인 낸시 오르도버는 우생학이 나치의 전유물이 아니며 미국이 그 선두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우생학이 과학의 탈을 쓰고 정치와 결탁했다는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선택 교배와 생물학적 결정론은 인간의 지능, 빈곤, 범죄를 유전의 문제로 둔갑시켰으며 우생학적 설명은 개인의 결함을 강조함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은폐했다. 또 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기술적,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을 내세우며 이민 제한 같은 정책 개입을 합리화했다. 이는 공공의 이익, 사회 발전이라는 언어로 작동했다. 혐오와 차별은 합리성의 외피를 쓰고 제도화됐다. 오르도버는 우생학이 과학의 권위를 바탕으로 작동했다고 지적한다. 1917년과 1924년 이민법을 중심에 두고 우생학자들이 통계와 지능 검사 등을 동원해 입법 과정에 개입한 방식을 다룬다. 이들은 백인우월주의에 기대 ‘부적격자’라는 범주를 마치 과학적 분류처럼 제시했고 이런 담론은 백인들의 불안을 자극하며 정치인의 언어를 통해 확산됐다. 우생학자들에게 이민이 외부로부터의 위험이었다면 내부의 위험은 퀴어, 성 소수자였다. 의학과 정신의학, 성과학은 동성애와 젠더 비규범성을 진단, 분류, 교정의 대상으로 만들며 병리화했고 이런 과학적 판단은 법과 정책을 통해 제도적으로 작동했다. 저자는 피임제와 단종수술이 어떻게 인도주의적 정책의 이름으로 강제됐는지 추적한다. 개인의 신체에 대한 국가의 이런 개입은 유독 가난한 여성, 유색인 여성, 장애인에게 집중됐다. 저자는 이를 우생학과 자유주의의 공모로 분석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단종수술 등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지적한다. 우생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폐기됐지만, 저자는 여전히 사회적 비용, 생산성, 성장 등의 단어 뒤에 숨은 혐오와 차별이 우생학적 논리와 단단히 얽혀 있다고 경고한다.
  • 김영록 지사, 광역통합 1호 전남광주특별시 여정 시작

    김영록 지사, 광역통합 1호 전남광주특별시 여정 시작

    “전남과 광주, 지역 정치권이 대한민국 광역통합 1호 특별시를 향한 역사적 대합의를 이뤄 전남광주특별시를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7일 행정통합 명칭과 소재지 합의 관련 성명서를 통해 “전라남도와 광주시를 넘어, 하나로 뭉친 ‘전남광주특별시’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광주·전남 통합특별법 검토 4차 간담회에서는 행정통합 특별시 명칭을 ‘전남광주특별시’, 약칭을 ‘광주특별시’로 정하고, 주청사 지정 없이 전남 동부청사, 전남 무안청사, 광주청사, 세 곳으로 분산 운영하되, 이 순서대로 명기하기로 했다. 김 지사는 “논의 과정에서 약칭을 광주특별시로 하는 것은 자칫 주사무소를 광주로 두겠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며 “그러나 오월정신의 숭고한 역사를 전남이 온전히 품겠다는 대승적 결단으로, 이를 포용적으로 수용했다”고 말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라는 이름을 320만 시도민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시켜 대한민국 광역 통합 1호 특별시의 품격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다. 김지사는 특히 “전남도민의 광주로의 집중 우려를 해소하고, 소멸 위기에 처한 전남을 먼저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전남의 동부청사, 무안청사를 광주청사 앞에 배치했다”며 “320만 광주·전남 시도민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울특별시 이후 대한민국 두 번째 특별시 출범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1950년대 대표시인 공중인 작품집 출간

    1950년대 대표시인 공중인 작품집 출간

    시인 공중인(1925~1965)의 작품집 ‘또 하나의 무지개’(북 레시피 펴냄)가 출간됐다. 그는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나 1946년 김윤성·정한모·조남사와 ‘시탑’ 동인으로 활동하며 등단했다. 이후 ‘신세기’ 편집기자와 ‘희망’과 ‘여성계’ 편집장, ‘자유신문’과 ‘삼천리’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공 시인은 영국 낭만주의와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매우 현대적인 서정의 세계를 노래했다.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라일락’처럼 전통적 운율에 기초한 정감어린 작품도 적지 않다. ‘라일락’은 ‘한 떨기 라일락의 / 푸른 숨결이 그리워 / 오월은 저렇게 푸르렀나 보다’로 시작한다. 공 시인은 6.25전쟁 기간에는 밀려드는 공산군의 격퇴를 절절하게 호소하는 애국시를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 전파에 띄워 보내기도 했다. 1951년에는 육군사관학교 교가 공모에 작곡가 김순애와 참여해 당선됐다. 공 시인이 지은 육사 교가의 가사는 ‘동해수 구비 감아 금수 내 조국’으로 시작한다. 신경림 시인은 생전 “195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이 공중인”이라면서 “신문에 시를 연재했는데 가판에 그 사람의 시가 없으면 안 팔릴 정도”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시인의 아들로 이번 시집 출간을 주도한 공명재 전 계명대 교수는 “지금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별로 없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던 독자들로부터 열렬히 사랑받으셨다는 점에서 행복한 분이셨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무지개’는 역시 아들이 주도해 2015년 펴낸 아버지 시집 ‘무지개’에 실리지 않은 작품을 모은 것이다. 시 ‘묘비명’에서 ‘내 노래의 무덤은 하늘의 무지개’라고 한 것에서 시집 제목을 ‘또 하나의 무지개’로 정했다고 한다.
  • 강기정·김영록,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 공동 선언

    강기정·김영록,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 공동 선언

    광주시와 전남도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인 국립5·18민주묘지 오월영령 앞에서 광주·전남 대부흥의 새 역사를 열어가기 위한 행정통합을 즉각 추진하기로 공동 선언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2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합동참배를 마친 뒤 민주의문 앞에서 광주·전남을 하나로 묶는 ‘통합 지방정부 추진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두 단체장은 ‘광주와 전남은 인공지능(AI)과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맞아 남부권 반도체 벨트의 중심축이자 대한민국 미래 핵심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 광역 차원의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시·도 통합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와 조직 특례를 부여하고, 교부세 추가 배분과 공공기관 우선 이전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검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이야말로 광주·전남이 행정통합을 추진할 최적기라는데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양 시·도는 이번 공동선언을 통해 광주·전남 행정통합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즉각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양 시·도는 시·도 통합의 동반상승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의 과감한 재정·권한 이양과 특례 확보에 공동 대응하고, 미래지향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해 지역발전과 시·도민 삶의 질 향상을 함께 도모하기로 했다. 통합 추진의 모든 과정은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공동 선언문에는 광주·전남 행정구역 통합과 맞춤형 특례를 담은 ‘통합 지방자치단체 설치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국가 행정권한과 재정권한 이양을 통해 연방제 국가에 준하는 실질적 권한과 기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례조항을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 시‧도는 광주와 전남이 동수로 참여하는 ‘광주·전남 통합추진협의체(가칭)’를 설치하고 양 시·도 부시장(정무)을 당연직으로 하는 4인의 공동대표를 두기로 했다. 또 행정통합은 시·도민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광주광역시의회와 전라남도의회의 협조를 구하는 한편 시·도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통합안을 마련한 뒤 이를 바탕으로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강기정 시장은 “이 대통령이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인공지능·반도체·에너지 산업을 키우고 인재 양성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며 “정부의 의지와 지역의 결단이 맞물린 지금이 행정통합의 최적기”라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이어 “발표문에는 없지만 사실상 6·3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뽑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며 “시·도민 의견을 모아 광주·전남이 대한민국 제1호 행정통합 모델로서 부강한 광주·전남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신속하고 책임 있게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록 지사는 “이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로 통합 지방정부의 과감한 지원에 나서고, 정부가 파격적 인센티브를 약속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광주·전남 대통합의 최적기”라며 “광주·전남의 가장 큰 숙원인 행정통합이 성공하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어 “빠른 시간 내에 통합을 이루고 6월 지방선거를 통해 통합 단체장을 뽑아 7월 1일부터 전남·광주 대통합의 새로운 역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광주전남통합특별법의 2월 말 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광주·전남의 행정통합 가능성을 거론하며 “쉽지 않아 보였던 광역단체 통합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대전·충남에 이어 광주·전남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지역 주도 성장’의 새 길을 열어야 한다는 데에 국민의 뜻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라고 남겼다. 그러면서 강기정 시장과 김영록 지사가 ‘행정통합 추진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언론 기사도 함께 소개했다.
  • 5·18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안성례 전 광주시의원 별세

    5·18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안성례 전 광주시의원 별세

    광주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이자 광주시의원을 지낸 안성례 전 관장이 28일 별세했다. 87세. 안 전 관장은 193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57년 전남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다. 전남대 영문학과 대학원생 명노근씨와 결혼한 그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시위대를 치료하는 데 힘썼다. 남편인 명씨가 5·18 주동자로 몰려 구속되자 서울 명동성당에서 투쟁하는 등 석방 운동에 앞장섰다. 구속자들이 풀려난 뒤에는 동지들과 민주화운동구속자가족협의회(민가협)를 꾸려 회장을 맡았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그사이 구성된 5·18 광주문제특위 위원장을 맡아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앞장섰다. 2006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가족을 잃은 어머니·아내 등이 모인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을 맡아 6년간 이끌었다. 유족으로 자녀 윤석, 혜원, 규원, 지원, 진 광주시의원 등이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 발인은 30일 오전 11시 30분. 장지는 국립 5·18 민주묘지다.
  • ‘5월의 증인’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별세

    ‘5월의 증인’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별세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이자 광주시의원을 지낸 ‘오월의 증인’ 안성례 씨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안 전 관장은 1938년 11월 19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57년 전남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다. 전남대 영문학과 대학원생 명노근 씨와 1959년 결혼, 1964년 광주기독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시위대를 치료하는 데 힘썼다. 남편인 명씨가 5·18 주동자로 몰려 구속되자 서울 명동성당에서 투쟁하는 등 석방 운동에 앞장섰으며, 5·18 구속자들이 풀려난 뒤에는 석방 운동을 함께한 이들과 함께 민주화운동구속자가족협의회(민가협)를 꾸려 회장을 맡았다. 1989년에는 광주·전남여성문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그사이 구성된 5·18 광주문제특위 위원장을 맡아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2006년엔 5·18 민주화운동에서 가족을 잃은 어머니·아내 등이 모인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을 맡아 6년간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자녀인 명윤석, 명혜원, 명규원, 명지원, 명진 광주시의원 등이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광주 천지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11시 30분, 장지는 국립 5·18 민주묘지다.
  • ‘일상은 신비’ 그 비밀 깨닫는 그때, 그대는 다시 청춘!

    ‘일상은 신비’ 그 비밀 깨닫는 그때, 그대는 다시 청춘!

    우리의 일상은 한없이 작고 사소한 것의 집합이다. 일상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 어찌 이념이나 민족, 국가와 같이 커다란 것들을 마음에 품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은 색깔이 바랬을지라도 그 속에 담긴 피천득(1910~ 2007)의 문장은 하나도 낡지 않았다. 애초 지어질 때부터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게 세상에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어 문장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에 있는 피천득의 글이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는 제목으로 새 옷을 입고 독자와 만난다. ●아들 향한 사랑의 편지 새로 실어 “우리는 십팔 년 정든 집을 떠났다. 그 집에서 소년 소녀였던 너희들이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너는 전문의가 되었다. 나는 늙고 너의 큰 상나무, 회기동 집에서 네가 샀던 작은 나무가 이층집보다도 훨씬 더 높은 나무로 자라고 서영이가 사다 준 화분의 장미는 담장을 면해 뻗었다. 이 모든 것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지니고 대문을 나왔다.”(1980년 4월 3일, 아들 피수영에게 보낸 편지 부분) 피천득은 시인이자 서울대 영문과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친 학자였다. 하지만 한국문학 독자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인연’을 비롯한 아름다운 수필 덕분일 것이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라는 제목은 ‘인연’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책에서 눈여겨볼 점은 아들 피수영(82)에게 보낸 편지가 새롭게 수록됐다는 것이다. 피천득은 그의 딸 피서영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아버지로 기억되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도 이에 못지않았다. 피수영 박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신생아 의료 체계를 정착시킨 명의(名醫)로 잘 알려져 있다. 피천득이 작고한 뒤 그의 작품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여든 살의 나이로 하나로의료재단 고문에서 물러날 때까지 평생 환자를 돌봤다. 이 책에는 피수영에게 보내는 편지 일곱 편이 실려 있다. 미국에서 전문의로 일하던 아들에게 보낸 것들이다. 자녀들을 멀리 떠나보낸 노년의 외로운 일상과 아들을 향한 걱정이 편지에 절절하게 묻어난다. “논개와 계월향은 멋진 여성이었다. 자유와 민족을 위하여 청춘을 버리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그러나 황진이도 멋있는 여자다. 누구나 큰 것만을 위하여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오히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나의 사랑하는 생활’ 부분) 개인이 일상에서 느낀 소회가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되는 것. 이것이 수필이 부리는 마법이다. 이런 지혜는 어려서, 젊어서 가지기 어렵다. 피천득이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수필’)이라고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이상은, ‘언젠가는’)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목표만 생각하며 앞만 보고 내달린 청춘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일상이 신비로 가득 차 있었음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젊다고 믿는 이는 늙지 않아” 그리하여 노년은 슬프다. 하지만 무엇이 노년인가. 언제부터 우리는 인간을 노인이라고 부르는가. 젊음을 잃어버렸을 때인가. 우리는 언제 젊음을 잃어버리는가. 영원히 젊다고 믿는 이는, 늙지 않는다. 일상이 신비로 가득하다는 걸 깨달을 때, 청춘은 다시 시작된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오월’ 부분)
  • 대전 ‘오월드’ 재창조, 옛 명성 되찾는다

    중부권 대표 종합테마파크인 대전 ‘오월드’가 옛 명성 회복에 나선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3일 ‘보물산 프로젝트’ 하나로 추진 중인 오월드 재창조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3300억원을 투입, 시설을 전면 개선하는 등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오월드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2002년 문을 연 오월드는 매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가족 중심의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방문객이 123만명을 기록하고 2021년 누적 2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최근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올해 68만여명에 그칠 전망이다. 시설 노후화와 초등학교 저학년 눈높이에 맞춰진 놀이기구, 출산율 감소 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운영 주체인 대전도시공사는 지난 18일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사업 타당성 평가를 통과했다. 플라워랜드와 버드랜드 자리를 익스트림 어뮤즈먼트 구역으로 조성해 초대형 롤러코스터(4개)를 설치하고, 조이랜드는 패밀리 어뮤즈먼트로 조성해 가족 단위와 수도권 청소년까지 유입한다는 계획이다. 사파리 구역을 2만 5000㎡에서 3만 3000㎡로 확대하고, 동물 복지와 관람 편의를 동시에 충족하는 동물원이 들어선다. 늑대 사파리와 함께하는 글램핑장(20동), 워터파크, 대전의 추억을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미니어처 공간 등도 조성한다. 다만 공사가 공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어서 재정 부담을 안게 됐다. 
  • 오월드 옛 명성 되찾는다…대전시 ‘재창조’ 사업 시동

    오월드 옛 명성 되찾는다…대전시 ‘재창조’ 사업 시동

    중부권 대표 종합테마파크인 대전 ‘오월드’가 옛 명성 회복에 나선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3일 ‘보물산 프로젝트’ 하나로 추진 중인 오월드 재창조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2031년까지 3300억원을 투입, 시설을 전면 개선하는 등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오월드를 조성하는 내용이다. 2002년 문을 연 오월드는 매년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가족 중심의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방문객이 123만명을 기록하고 2021년 누적 2000만명을 돌파했지만 최근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올해 68만여명에 그칠 전망이다. 시설 노후화와 초등학교 저학년 눈높이에 맞춰진 놀이기구, 출산율 감소 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운영 주체인 대전도시공사는 지난 18일 행정안전부 산하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사업 타당성 평가를 통과했다. 플라워랜드와 버드랜드 자리를 익스트림 어뮤즈먼트 구역으로 조성해 초대형 롤러코스터(4개)를 설치하고, 조이랜드는 패밀리 어뮤즈먼트로 조성해 가족 단위와 수도권 청소년까지 유입한다는 계획이다. 사파리 구역을 2만 5000㎡에서 3만 3000㎡로 확대하고, 동물 복지와 관람 편의를 동시에 충족하는 동물원이 들어선다. 늑대 사파리와 함께하는 글램핑장(20동), 워터파크, 대전의 추억을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미니어처 공간 등도 조성한다. 다만 공사가 공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어서 재정 부담을 안게 됐다. 이 시장은 “사업을 완료하면 연간 300만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도시 재생은 물론, 대전이 체류형 관광도시로 변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목포에 ‘전남 5·18 기념공간’ 조성···2029년 12월 개관

    목포에 ‘전남 5·18 기념공간’ 조성···2029년 12월 개관

    전남 목포에 ‘전라남도 5·18 기념공간’을 오는 2029년 개관 목표로 건립한다. 전남도는 2026년 정부예산에 ‘전남도 5·18 기념공간’ 조성사업 설계비 2억 9000만원이 우선 반영됐다고 7일 밝혔다. 도는 목포역 인근의 한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오는 2029년 12월 개관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기념공간은 3층 규모로 국비 56억원 등 92억원을 투입해 전시실과 교육실, 미디어아트실, 북카페, 다목적실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전남 전역에 흩어져 있던 5·18 기록을 한데 모으고, 치열했던 항쟁과 숭고한 연대의 서사를 오롯이 담아낼 계획이다. 유공자와 유가족을 위한 치유 공간이자, 미래 세대가 전남의 민주화 역사와 오월 정신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가꿀 방침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무도한 국가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전남 전역에서 터져 나왔던 도민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고, 민주화 성지 전남의 위상을 드높일 이 뜻깊은 공간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다시는 국가 권력이 민주주의를 흔들지 못하게 하겠다”며 “빛의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남의 오월 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 증거로 길이 남도록 도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 김영록 지사, 5·18기념공간 조성 국비 확보 환영

    김영록 지사, 5·18기념공간 조성 국비 확보 환영

    김영록 전남지사는 ‘전라남도 5·18기념공간 조성’ 사업이 2026년 정부예산에 반영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 지사는 “이번 국비 확보로 국가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전남 전역에서 터져 나왔던 도민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는 민주화 성지 전남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게 됐다”며 “온 도민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하고 앞으로도 오월 정신 계승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특히 “목포역에 항쟁본부를 설치해 5·18 최후의 항전을 이끈 것은 전남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라고 평가했다. 전남도는 이번 국비 확보로 목포역 인근에 ‘전남 5·18 기념공간’을 조성, 전남 전역에 흩어져 있던 5·18 기록을 한데 모으고 치열했던 항쟁과 숭고한 연대의 서사를 담아낼 계획이다. 또 유공자와 유가족을 위한 치유 공간이자, 미래 세대가 전남의 민주화 역사와 오월 정신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가꿀 방침이다. 김영록 지사는 “오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다시는 국가 권력이 민주주의를 흔들지 못하게 하겠다”며 “빛의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남의 오월 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 증거로 길이 남도록 도민의 지속적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 강기정 “5·18 DNA,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켰다”

    강기정 “5·18 DNA,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켰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12·3 불법계엄 1년’을 맞아 2일 서울지역 대학생들에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 때마다 시민에 의해 바로 세워졌다”면서 “80년 광주가 고립됐을 때 광주를 세상에 알린 김의기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의 민주주의를 완성하자”고 말했다. 강 시장은 이날 오후 사단법인 김의기기념사업회 초청으로 서강대학교에서 ‘오월광주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강 시장은 특강에 앞서 서강대학교 로욜라 동산에 위치한 김의기 열사 추모비를 찾아 학생들과 함께 헌화·참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렸다. 김의기 열사는 서강대학교 재학 중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1980년 5월 30일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긴 뒤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산화한 민주열사다. 강 시장은 불법계엄 1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80년 5월의 DNA 어디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과 김의기 열사의 정신을 되새겼다. 강 시장은 강연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시민항쟁의 역사적 의미, 12·3 불법계엄 극복 과정 그리고 5·18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원동력을 ‘5·18의 DNA’로 설명했다. 강 시장은 “김의기 열사처럼, 고립되고 외로웠던 광주의 손을 잡아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광주가 있고, 5·18이 세계 속에 빛날 수 있었다”며 5·18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한 세상의 수많은 ‘나·들’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강 시장은 “김의기 열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을 가르친 선배”라며 “우리는 김 열사의 정신을 이어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더 단단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로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계엄선포 국회사전동의제 도입 등을 들었다. 그는 “계엄 이후 주장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는 최근 정부가 국가공무원법에서 복종의무를 삭제함으로써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강 시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태원 ‘사고’를 ‘참사’로, ‘사망자’를 ‘희생자’로 칭한 광주, 불법계엄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청사 폐쇄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들과 함께 ‘헌법수호 비상계엄 무효선언 연석회의’를 열 수 있었던 힘도 ‘5·18 DNA’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의 이날 특강은 김의기 열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10차례 걸쳐 진행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적 실천’ 강좌의 마지막 강의로 진행됐다. 한편, 서강대학교 학생들은 1981년부터 매년 5월 추모제를 이어오고 있으며, 2019년 설립된 ㈔김의기기념사업회는 ‘김의기 장학회’·‘의기문화상’·‘의기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왜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할까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왜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할까

    어릴 적 우리집 마당 한켠에는 장미가 있었다. 오월이면 새빨간 꽃을 피우던 장미. 11월이 되면 아빠는 어디선가 볏짚을 한가득 가져와 가지만 남은 나무 주변을 감싸 주었다. 며칠 전 길을 걷다 볏짚 옷을 입은 배롱나무를 보고 어릴 적 장미 생각이 났다. 대학교 4학년이던 시절 수목원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나는 나무에 겨울옷을 입히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알게 되었다. 볏짚이 나무를 꽉 조여서는 안 되고, 너무 헐거워 눈과 얼음에 볏짚이 쉬이 손상되어서도 안 된다. 단단하면서도 적당히 둘러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철사나 스테이플러로 고정해서도 안 된다. 겨우내 나무에 입힌 옷이 무사한지 모니터링하고, 봄이 오면 다시 옷을 벗겨 주어야 했다. 그때 내가 옷을 입혀 준 나무는 배롱나무, 단풍나무, 장미 정도였다. 지금도 길가 가로수와 아파트 화단, 공원 등지에 있는 어떤 나무는 옷을 입고 또 어떤 나무는 옷을 입지 않는다. 우리는 왜 특정 나무에만 겨울옷을 입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겨울나무에 옷이 왜 필요한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과 들에 살던 나무는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의 길가, 정원, 화단 등으로 옮겨 왔다. 겨울옷은 나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종의 장치다. 겨울옷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나무 보호대는 18세기 미국 초기 정착민들에 의해 발전했다. 당시엔 야생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거나 나무줄기를 천연 재료로 감쌌으나, 19세기 들어 도시화되며 더욱 효과적인 수목 보호가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에서 나무 보호대가 보편화되었다. 겨울 가로수의 볏짚 옷을 본 사람들은 ‘나무도 사람처럼 추위를 타나 보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나무에 겨울옷이 필요한 이유는 훨씬 다양하다. 겨울옷은 겨울 한파에 나무껍질이 갈라지거나 깨지는 것을 막고, 폭설과 얼음에 의해 가지가 휘거나 부러지는 것을 방지한다. 건조한 겨울바람은 식물의 수분 손실을 유발해 심하면 식물을 죽이기도 하는데, 겨울옷은 나무의 수분 손실이나 탈수를 최소화한다. 겨울에는 식량이 부족해 굶주린 동물들이 많다. 이들로부터 보호하는 일 또한 겨울옷의 역할이다. 동물 중엔 나무껍질을 씹어 먹는 종도, 나무를 뚫고 나무 내부나 땅속까지 파고들어오는 작은 곤충도 있다. 우리가 겨울 내내 눈길과 언 땅에 뿌리는 염화칼슘 역시 나무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나무 밑동까지 제대로 피복한 겨울옷은 염화칼슘에 의한 나무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겨울 햇빛은 나무줄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 겨울철 고광도 햇빛은 수피를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수피의 온기는 세포 활동을 자극한다. 해가 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물관부·체관부 등의 조직이 파괴되고, 수피가 갈라지거나 변색돼 죽은 조직을 드러낸다. 이를 ‘일광화상’이라 부른다. 겨울 햇빛만이 나무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서리로 인해 나무줄기에 균열이 생기고 뿌리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어린 나무는 서리, 햇빛, 건조 등 겨울철 환경에 무척 취약하기 때문에 종을 가리지 않고 겨울옷을 입혀 주는 것이 좋다. 물론 모든 나무가 겨울철 피해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모든 나무에 옷을 입힐 수도 없다. 우리나라 중북부의 조경수 중 수피가 얇아 겨울옷이 필요한 종으로는 배롱나무, 단풍나무, 사과나무, 자작나무, 장미,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몇 해 전 나는 조금 특별한 겨울옷을 입은 나무들을 보았다. 근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동네 벚나무 몇 그루에 귀여운 뜨개옷을 입혀 준 것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나무에 뜨개옷을 입히는 활동이 늘고 있는데, 이는 겨울옷 본연의 기능을 기대하기보다는 겨울철 휑해진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심미적 효과와 가로수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목적에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겨울옷을 입혀 줄 때엔 나무 밑동부터 시작해 최소한 첫 번째 큰 가지까지 피복하며, 햇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소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나무를 감싸는 소재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 재료인 볏짚이, 외국에서는 삼베와 폴리프로필렌 원단이 주로 사용되는데 이 소재들은 모두 통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며 구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무에 옷을 입힌다는 것은 언젠간 옷을 벗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예가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겨울옷을 나무에 입히는 것으로 한 해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의 겨울옷을 벗기며 한 해를 시작한다. 우리가 도시의 나무에 들이는 반복된 수고와 비용, 연구, 원예 지식 같은 것은 나무가 원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생지에서 살고 있던 나무를 우리 곁에 데리고 온 ‘대가’에 가깝다. 나무가 원하는 것과 우리가 나무를 데려온 대가. 이 둘은 같은 말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야생의 배롱나무에는 겨울옷이 필요하지 않지만, 도시의 배롱나무에는 겨울옷이 필요한 것처럼. 도시의 나무에 볏짚을 입히고 벗기는 일, 나무를 돌보는 일이 시혜나 적선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 ‘내란의 밤’ 분노로 지새운 광주, 성장으로 ‘빛의 혁명’ 완수한다

    ‘내란의 밤’ 분노로 지새운 광주, 성장으로 ‘빛의 혁명’ 완수한다

    광주시는 ‘12·3 불법계엄 1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3일 벌어진 반헌법적 계엄 상황 당시 광주의 긴박했던 대응 과정을 공개하며, 이를 도시발전의 동력으로 확장하겠다고 2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27분 계엄이 선포되던 순간, 광주는 전국 어떤 곳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계엄 선포 10여분 만에 강기정 광주시장의 지시로 비상대응 체계가 긴급 가동되고, 실·국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시청으로 집결했다. 이어 계엄 선포 30여분 뒤인 밤 11시에는 첫 대책회의를 개최해 비상 상황을 시민과 신속하게 공유했다. 광주시는 이어 12월 4일 0시11분 계엄 선포 2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에 시장, 시의원, 시민사회단체, 5·18단체, 학계, 종교계 등 광주지역 각계 대표들이 참여한 ‘헌법수호 비상계엄 무효선언 연석회의’를 개최했다. 연석회의에서는 반헌법적 계엄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군·경에는 시민 보호를 그리고 공직자들에게는 시민의 일상 안정에 최선을 다할 것을 권고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결의했다. 당시 전국에서 이같이 신속 대응에 나선 도시는 광주가 유일했다. 광주시는 이를 ‘오월의 DNA가 발현된 순간’으로 평가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과 대통령실의 오전 4시30분 계엄 해제 발표 이후에도 광주 대응은 계속됐다. 날이 밝은 4일 오전 9시, 시민들은 동구 5·18민주광장으로 모여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강기정 시장은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비상상황을 공유한 뒤 국회를 찾아 대통령 즉각 퇴진과 시민 일상 안전을 촉구했다. 광주시는 이후 공공기관장 회의, 5·18단체 간담회 등 후속 논의를 이어가며 지역 상황을 점검했으며 민생·안전을 책임질 ‘지역민생안전 대책반’을 구성, 민생안전에 행정역량을 집중했다. 광주시는 지난 1년 동안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지속해서 제안했다.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대통령의 무리한 계엄을 방지할 ‘국회사전동의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 입법화 등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정책 논의도 주도했다. 광주시민들 역시 ‘민주적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시민들은 추운 겨울 금남로에서 매일 촛불을 밝히며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불태웠다. 극우 집회가 예고되었을 때 광주시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공격할 수는 없다”며 단호히 ‘불허’ 조치를 내렸다. 그 현장에서 시민들은 5·18의 대동정신을 실천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떡국과 핫팩을 나눠주고, 커피·빵·김밥 등을 함께 나누려는 시민들의 ‘선결제’ 릴레이가 이어졌다. 광주시는 광장 주변 편의시설, 화장실, 나눔부스를 안내해 연대 공간을 행정이 함께 지켜냈다. 광주시는 이같은 시민 대응을 ‘빛의 혁명’으로 기억하며,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12일까지 ‘빛의 혁명, 민주주의 주간’을 운영한다. 또 계엄 저지 1년이 되는 3일에는 광주공동체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12·3 비상계엄을 통해 우리는 오월정신의 생명력을 다시 확인했다”며 “망월묘역을 ‘빛의 혁명 발원지’로 조성하고, 당시 연대의 중심이었던 적십자병원을 리모델링해 오월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이어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 입법화 등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더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광주시는 ‘민주주의 도시’로서의 역할에 멈추지 않고 도시 성장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고 있다. 6000억원 규모의 AX 실증밸리 사업, 국가 NPU컴퓨팅센터 설립, AI모빌리티 실증도시 조성 등의 추진을 통해 ‘인공지능 관련 규제프리 실증도시’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 내란 저지 1주년… 광주서 ‘빛의 혁명’ 기린다

    1980년 비상계엄에 항거한 ‘민주의 성지’ 광주에서 다음달 초 ‘빛의 혁명, 민주주의 주간’이 운영된다. 광주시는 불법 비상계엄 저지 1주년을 맞아 ‘빛의 혁명, 기억과 연대’를 주제로 다음달 1일부터 12일까지 ‘빛의 혁명, 민주주의 주간’을 운영한다고 26일 밝혔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광주가 지켜온 민주·인권·평화의 가치, 그리고 5월 정신을 전 국민과 함께 나누고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광주시는 기억(Memory), 목소리(Voice), 연대(Solidarity), 빛(Light) 등 4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시, 강연, 포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해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3일에는 5·18민주광장에서 광주공동체 기자회견이 열린다. 회견에는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위법성을 공식 선언하고 해제를 요구한 ‘광주공동체 연석회의’ 구성원들을 비롯해 오월단체, 시민사회단체 등 200여명이 참석해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시청 시민홀에서는 1일부터 10일까지 ‘2025 광주 시정보도 사진전’이 열린다. 광주독립영화관에서는 3일부터 6일까지 한강 작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계엄 관련 다큐멘터리를 무료로 상영한다. 역사민속박물관에서는 9일부터 ‘노벨상 수상 1주년 기념전’(가칭)을 열어 한강 작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를 재조명한다. ‘5·18정신의 세계화’에 기여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10, 1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국제포럼이 열린다.
  • 대전, 반려동물 산업 키우고 인재 양성

    대전시가 산·학·연·관 협력을 통해 반려동물 산업 육성과 인재 양성에 나선다. 산업 기반 확충과 전문 인력 배출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25일 지역 6개 대학과 연구기관·기업 등 10개 기관과 ‘반려동물 산업 성장 기반 조성 및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충남대와 기초과학연구원, 중앙백신연구소 등이 참여했다. 대전은 반려동물 관련 대학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 인재 양성 기반을 갖췄다. 다만 산업 현장 경험 기회 부족과 실습 기관 확보의 어려움을 겪었다. 협약 기관은 관련 학과 학생을 위한 현장 견학과 직무 체험·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동물보호센터·동물병원·연구시설·동물원 등 인프라를 활용한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시는 보건환경연구원과 동물보호사업소 등을 통해 직무 체험 및 현장 견학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구기관과 산업체, 대전도시공사(오월드)는 연구시설 견학과 현장 체험, 야생동물 사육관리, 직무 멘토링 등 실무중심 교육을 지원한다. 각 대학은 참여 학생 모집과 행정지원·안전관리를 통해 학생이 지역 반려동물 산업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될 예정이다. 대전의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약 20만 가구로 반려동물 놀이터와 동물보호센터 설치 등을 확대하고 있다.
  • 경찰, ‘장동혁 5·18묘지 참배’ 막아선 시민단체 수사

    경찰, ‘장동혁 5·18묘지 참배’ 막아선 시민단체 수사

    경찰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당 지도부의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막아선 시민단체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18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장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지난 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시도했으나 현장에서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시민단체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경찰은 당시 신고 없이 기자회견 형태의 집회가 열린 것으로 보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이다. 앞서 장 대표는 묘역 초입인 민주의 문에서부터 시민단체 회원들이 가로막았으나 어렵게 전진하며 추념탑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추념탑 앞에서도 참배에 반발하는 행동이 거세지자 장 대표 등은 오월 영령에 5초간 묵념하는 것으로 참배를 갈음한 뒤 현장을 빠져나왔다. 경찰은 장 대표의 이름으로 바치는 조화를 부순 시민단체 회원에게는 재물손괴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촬영된 바디캠 등에 찍힌 영상 등을 토대로 시민들을 특정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입건 범위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 ‘한청’ 떠난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 새 식구

    ‘한청’ 떠난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 새 식구

    국내 최고령 호랑이 ‘한청’을 떠나보낸 백두대간 호랑이숲에 새 식구가 찾아왔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수정)은 13일 대전 오월드에서 지내던 백두산 호랑이 ‘미령’이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으로 이주했다고 밝혔다. ‘아름답고 영리한’ 호랑이라는 뜻을 가진 미령은 2021년 5월생 암컷이다. 미령의 호랑이숲 합류는 오월드와 업무협약에 따른 것으로, 지난달 22일 무진동 항온·항습 차량에 수의사와 사육사가 전 구간 동행해 상태를 점검하며 안전하게 옮겨 왔다. 현재 기초 건강검진을 마치고 내실에서 환경 적응 중이라고 수목원을 설명했다. 수목원은 미령의 안정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뒤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축구장 5.4개 크기(3.8㏊)의 호랑이숲은 백두산 호랑이의 자연 서식지에 맞춰 조성했다. 현재 우리(수컷·14)와 한(수컷·11)·도(암컷·11) 남매, 태범(수컷·5)·무궁(암컷·5) 남매 등이 살고 있다. 이규명 백두대간수목원장은 “지난 6일 스무 살 한청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미령이 찾아와 감회가 새롭다”면서 “국제 멸종위기종인 백두산 호랑이가 수목원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변신과 언어: 암소가 된 이오와 한강 ‘희랍어 시간’[폐허에서 무한으로]

    변신과 언어: 암소가 된 이오와 한강 ‘희랍어 시간’[폐허에서 무한으로]

    편집자 주 망각忘却은 모든 문장의 운명입니다. 오래된 책은 잊힌 문장으로 가득한 폐허廢墟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폐허에서 무한無限을 찾는 것 아닐까요. 먼 옛날에 쓰인 문장을 가지고 와 이어 써보려고 합니다. 저의 심폐소생으로 책이 부활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글 역시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온라인으로 연재하는 이 시리즈는 기사도 소설도 아니고 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옛날과 오늘날을, 필자의 짧은 상상력으로 접붙이는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 독자에게 문운文運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4. 변신과 언어: ‘변신 이야기’ 이오와 한강의 ‘희랍어 시간’ 이오의 먹이는 나뭇잎과 쓴맛이 도는 풀이었다. 이오는 침상 대신에, 건초도 깔리지 않은 땅바닥에서 잠을 잤다. 가엾은 이오가 마실 것은 강의 흙탕물뿐이었다. … 불만을 말하고자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오의 입에서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나지막한 소 울음소리였다. 이오는 제 목소리에 몹시 놀라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어떤 ‘변신’은 지극한 슬픔의 기록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변신하기 전의 모습을 간직하며, 추억하는. 무한한 변신 속에서 우리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회복(回復)은 가능할까요. 온갖 변신이 난무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이야기 한편을 가지고 와 보겠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암소로 변해야 했던 가엾은 존재, 이오의 사연입니다.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입니다. 빼어난 이오의 미모가 최고신 유피테르(제우스)의 눈에 들고 맙니다. 그가 신들 가운데서도 유명한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유피테르가 이오를 탐하고자 합니다. 이오는 원치 않았지만,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유피테르에게서 영원히 도망칠 순 없었습니다. 결국 유피테르와 이오는 정사를 나누는데요. 그 모습을 아내인 유노(헤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늘을 구름으로 뒤덮었죠. 이걸 이상하게 여긴 유노가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곳엔 유피테르와 함께 새하얗고 아름다운 암소 한 마리가 덩그러니 있었지요. 유노는 남편에게 이 암소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추궁합니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암소는 이오입니다. 유피테르가 만약에 대비해 변신시켜놓은 거죠. 끝까지 잡아뗐지만, 유노의 촉은 날카로웠습니다. 그 암소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죠. 유피테르는 비겁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암소를 줘버립니다. 유노의 수중에 들어간 이오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의 감시를 받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소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고 말았죠. 가엾은 이오의 입에서는 언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의 울음만이 튀어나왔을 뿐입니다. 이오는 여기에 깜짝 놀라는데요. 이게 핵심입니다. 이오가 ‘여전히’ 놀란다는 것이죠. 소의 모습을 하게 됐지만, 이오는 여전히 이오였습니다. 이오의 변신이 슬픈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오 자신은 물론, 이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이오가 원래 누구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신하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때 이오는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오에게는 언어가 있었지요. 언어를 상실한 자의 슬픔. 언어를 가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이오 이야기 옆에 한강의 책을 잠시 펼쳐놓아 보겠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한강,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은 실어증에 걸린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이의 교감을 그린 소설입니다.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 당장 내게서 언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생각’이 과연 가능한가요. 생각조차 언어인데 말이죠. 어쩌면 언어의 상실은 존재의 근본적인 부정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도 했는데, 집이 사라진 존재는 어떻겠습니까. 불안하겠죠. 여자는 심리치료사에게 상담 치료를 받습니다. 심리치료사는 그녀에게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심리치료사에게 여자는 펜을 집어 이렇게 씁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이해는 언어로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모종의 이유로 언어를 잃어버린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오의 슬픔도 그렇습니다. 이오가 왜 슬픈지, 소가 돼 보지 못한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곁에서 슬퍼하는 것이 전부일지도요. 언어를 잃어본 적 없는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의 슬픔은 그리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꽤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외국어를 마주할 때입니다. 요즘은 영어를 포함해 외국어 한두 개쯤은 편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그래도 문제는 바뀌지 않습니다. 외국어는 외국어입니다. 모국어처럼 편해질 순 있어도 모국어 그 자체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로서 기쁨과 슬픔을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가로 저는 다와다 요코가 떠오릅니다. 다와다의 강연을 묶은 책 ‘변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말하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고립되고 벌거벗은 채로 공중에 떠다니게 됩니다. 마치 단어가 아니라 새를 내뱉는 듯한 느낌이 들지요.” 입에서 새가 튀어나오는 느낌. 나지막이 소의 울음을 토해내고 그 모습에 너무나도 놀랐던 이오의 슬픔이 포개어집니다. 낯선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 무언가를 끊임없이 내 안에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이토록 슬픈 일입니다. 다시 한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희랍어 시간’에서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굉장히 다채롭게 해석됩니다. 문학평론가 전기화는 실어를 “세계와 불화하는 과정이자 불화의 결과 그 자체”(‘겹쳐지고 얽혀드는 사랑의 이야기’)로 분석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세계 안에 위치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세계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주장하는 수단이 바로 언어죠. 우리의 세계에, 언어를 잃어버린 자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있어도 주장할 방도가 없죠. “이따금 그녀는 자신이 사람이기보다 어떤 물질이라고, 움직이는 고체이거나 액체라고 느낀다. 따뜻한 밥을 먹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밥이라고 느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할 때 그녀는 자신이 물이라고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결코 밥도 물도 아니라고, 그 어떤 존재와도 끝끝내 섞이지 않는 가혹하고 단단한 물질이라고 느낀다.” 그녀가 느끼는 이물감, 고립감은 아마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불쌍한 이오에게로. 이오의 아버지 이나코스는 딸을 눈앞에 두고도 애타게 그녀를 찾습니다. 이오는 아버지의 손을 핥기도, 아버지의 뺨에 입을 갖다 대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그 암소가 이오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결국 마지막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발굽으로 땅바닥에다가 이름을 쓰지요. 물론 그리스어로 썼겠지만, 알파벳으로 상상한다면 이오의 이름은 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IO’. 만약 이오의 이름이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이오와 이나코스는 영영 해후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언어와 망각에 관한 에세이 ‘에코랄리아스’(조효원 역, 문학과지성사)의 저자 대니얼 헬러 로즌은 이오의 이야기에서 기발한 통찰을 건져 올립니다. 변신 이후에도 ‘남는 것’으로서의 글쓰기.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요컨대 글쓰기는 소의 창조물이다. 즉 글쓰기는 목소리가 완전히 소멸됨으로써 만들어진 잔여인 것이다.” 그렇습니다. 소가 되면서 이오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의 안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굽으로 땅에 이름을 새기는 행위, 즉 글쓰기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했습니다. 헬러 로즌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화자가 있든 없든 언어는 남는다. 그러나 그 자신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다르게만. … 그것은 변신이 궁극적으로 모든 언어, 모든 말 하나하나의 매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님프가 아니게 된 님프가 발굽으로 모래 위에 남긴 글자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희랍어 시간’의 한 에피소드. 여자는 수업 시간에 그리스어로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대학원생은 장난스럽게 “이분이 희랍어로 시를 썼어요”라며 강사에게 말했지요. 이 강사가 바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그 남성입니다. 강사는 그녀에게 그 시를 잠깐 봐도 되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가버립니다. 그녀는 공책에 무엇을 적은 것일까요. 이제 소설의 마지막입니다. 시력을 잃기 직전인 남자는 그나마 의지하고 있던 안경을 떨어뜨리고, 극한의 어둠에 휩싸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그를 구출한 건 말을 잃어버린 그녀였습니다. 여자는 그를 부축하고 남자의 집까지 동행합니다. 어두운 남자의 집에서 둘은 대화합니다. 아니, 대화라고 할 수 없겠네요. 남자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남자는 계속해서 묻습니다. “내 말이 들리나요?” “거기서, 듣고 있나요?” 말할 수 없었지만, 여자는 똑똑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안정을 찾은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부르겠느냐고 묻습니다. 말할 수 없는, 말하지 않는 여자는 그의 손바닥에 이렇게 적습니다. “아니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첫 버스를 / 타고 갈게요.” 말이 멈춘 곳, 말이 멈출 수밖에 없는 곳에서 우리는 글을 씁니다. 헬러 로즌의 말마따나 화자가 있든 없든 언어는 남으니까요. 글은 글쓴이보다 오래 남아서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오가 발굽으로 흙 위에 이름을 쓴 것.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적은 것. 이것은 글쓰기의 예술, 문학의 강력한 은유입니다. 한강이 ‘희랍어 시간’(2011) 이후 ‘소년이 온다’(2014)를 펴냈다는 사실은 퍽 의미심장합니다. ‘오월의 광주’라는 절대적인 고통으로 나아가기 전, 언어에 관해 깊은 묵상을 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변신은 또한 상실이기도 합니다. 변신은 문학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이지요. 바로 ‘늙음’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늙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죠. 변신은 매분, 매초 이뤄집니다. 단 1분도, 단 1초도 우리는 젊어질 수 없습니다.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늙어갈 수만 있습니다. 일상의 변신, 늙음. 이 ‘늙어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일의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가 프란츠 요제프 베츠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옮깁니다. 이 내용은 국내에 번역된 유일한 마르크바르트의 책 ‘늙어감에 대하여’(조창오 옮김, 그린비)에 실려있습니다. “저의 생은 하나의 단편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는 차안에서도 피안에서도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완성도 아니고 목표점도 아니고 단순히 곧 끝에 있을 것입니다!”
  • 첫서재… 서툰 첫 마음들이 모여들어와 그날의 떨림이 내려앉은 공간[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첫서재… 서툰 첫 마음들이 모여들어와 그날의 떨림이 내려앉은 공간[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서너 해 전 ‘첫서재’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20개월 프로젝트로 운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재 이용료는 편지로 받고 ‘다락’(스테이) 숙박비는 5년 후 돈이 아닌 무언가로 대신할 수 있는 곳이라니요. 남형석씨는 북카페 같고 책방 같기도 한 첫서재를 “저마다 책을 보고 사색하며 각자의 서투름을 쌓고 설렘을 챙겨 가는 공간”이라 했습니다. 20개월만 운영하기로 했던 프로젝트는 어느새 5년을 넘겼습니다. 운영 방식은 공유 서재로 바뀌었지만 이제 5년 전의 서툰 첫 마음들이 하나둘 답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나의 처음이었던 날들 당신에게 강원 춘천 ‘첫서재’의 벽면 가득한 편지를 꼭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한 자 한 자 짚어 읽어 가며, 낯선 서재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서로의 고요를 곁눈질하는 다정한 얼굴들을 같이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 내가 함부로 대했던 그 수많은 시간을 비로소 바라보게 하는 정적, 낯선 고요.’ 그 가운데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편지입니다. 편지를 쓴 이는 43년 된 고등학교 친구와 첫서재에서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했습니다. 잊었거나 함부로 대했던 지난 시간을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겠지요. 43년 된 고등학교 친구라면 예순을 맞은 의미 있는 여행이겠습니다. 지금껏 이어졌다면 둘은 사소한 오해와 무수한 화해의 시간을 거쳐 오늘에 다다랐겠고요. 첫서재는 공유 서재이지만 그보다는 마음과 마음으로 써나간 편지 같습니다. 미리 다녀간 누군가 건넨 소품과 메모와 그림과 책 속 여러 개의 마음이 곱게 포개어져 있습니다. 글책지기 남형석씨는 MBC 기자입니다. 아내인 그림책지기 문정윤씨와 첫서재를 열었지요. 기자로 시작해 피디가 되었고 몇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면 “그러면 그렇지” 합니다. 기자니까, 피디니까.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습니다. 그가 쓴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난다)는 첫서재의 봄이 누군가의 계절에 가닿은 이야기입니다. 책은 기자 생활이 점점 무감해져 서서히 무너지는 어느 날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는 휴직한 후 딱 20개월만 다르게 살아 보기로 결심하지요. 예를 들면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오래 묵은 소망 하나를 꺼내는 겁니다. 소설가까지는 너무 거창하고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꿈 같은 것이겠습니다. 그렇게 문을 연 첫서재에 사람들의 서툰 처음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라일락이 보이는 서재 육림고개 남쪽, 야트막한 고개를 오릅니다. 약사동 주민들이 권진규 조각가의 기법을 배워 빚은 테라코타 작품이 보입니다. 오르막의 힘듦이 금세 잊히는 건 ‘흙으로 빚은 세상’이 반기는 까닭이겠지요. 저는 담장 위의 모자(母子)상을 보자 미소 짓고 맙니다. 담 너머에는 인형을 닮은 엄마와 아기가 살고 있을 테지요. 이렇듯 누군가의 꿈에 이르는 길은 그의 꿈길을 닮았습니다. 고갯마루 가까이에 이르자 1963년에 지은 집과 동갑내기 라일락 고목이 보입니다. 전 주인이 1977년부터 사십 년 동안 살았다는 이 집이 바로 첫서재입니다. 남형석씨와 문정윤씨는 마당까지 모두 합쳐 서른 평이 될까 하는 집을 공유 서재로 고쳤다지요. 옛집의 흔적을 남긴 타일 벽이 인상적이네요. 집안 역시 옛 방을 글책방과 그림책방, 라운지,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다락으로 꾸몄습니다. 마당의 라일락 나무 곁에는 새로 꾸민 독립서재가 오붓하고요. 글책방은 라운지 왼쪽에 있습니다. 남형석씨가 좋아하는 책들을 서가 가득 채웠습니다. 저는 마쓰이에 마시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와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이 유독 반갑습니다. 또 한쪽에는 ‘처음노트’의 책들이 쌓여 갑니다. 누군가 첫 기억의 책들을 추천하면 남형석씨가 구매해 책장을 채웁니다. 그림책방은 라운지 오른쪽입니다. 모두 문정윤씨가 좋아하는 그림책들입니다. 화사한 그림들 곁에는 ‘그림책 세 줄 상담소’가 있습니다. 세 줄 상담 쪽지를 건네면 그림책테라피스트 문정윤씨가 그림책을 추천하는 방식이지요. 이용하는 이들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일기나 편지를 씁니다. 서향의 집이라 늦은 오후에는 햇살이 길게 스며 맑은 음영을 연출하겠지요. 그때쯤에는 하루 끝에서 멍하니 뉘엿한 볕을 쬐어도 좋겠네요. ●비밀의 문을 열면 첫서재는 현재 공유 서재로 운영 중입니다. 오전 11시에서 오후 7시까지 하루 단위로 비용을 받고 공유합니다. 예약한 한 팀이 건물 전체를 사용하지요. 이틀을 대여하면 퇴실하지 않고 다음 날까지 이어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숙박업소가 아니니 침구류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사랑스러운 서재와 다락에서 낮과 밤 그리고 다음 날의 이른 아침을 맞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 같은 운영 방식을 기획했던 건 아닙니다. 그리고 2021년 봄만 해도 스무 달이 되는 2022년 가을까지 운영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세 가지 프로젝트가 중심이었습니다. 서재의 이름과 같은 ‘첫서재 프로젝트’는 2시간 이용료를 편지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수신인은 명확하되 부칠 수 없는 편지여야 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똬리를 튼 그리움 하나는 있잖아요. 두 번째는 ‘첫, 다락’이었습니다. 삶의 전환이나 영감이 필요한 1인에게 최대 4박 5일 동안 첫서재의 다락을 무료로 내어주었지요. 세 번째는 12칸짜리 진열대를 활용한 ‘첫, 작품’입니다. 창작자 12명의 작품을 수수료 없이 전시 판매했습니다. 숙박비와 수수료는 5년 뒤에 돈이 아닌 ‘무언가’로 돌려주면 되었습니다. 그림이든, 시나 소설 또는 손 편지 한 장이어도 충분했습니다. 저는 편지를 쓰러 가야지 생각하다가 며칠을, ‘첫, 다락’ 신청 메일을 써봐야지 하며 제 안의 꿈을 뒤적이다 몇 달을 흘려보냈지요.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해를 넘겨 20개월이 훌쩍 지나 첫서재가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후회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며칠 전 우연히 첫서재가 잠깐의 틈을 가진 후 공유 서재로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 가지 프로젝트는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얼마나 반갑던지요. 남형석씨와 문정윤씨는 20개월 후, 고민 끝에 춘천에 정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남형석씨는 예정대로 복직해 통근하고 서재는 문정윤씨가 주로 돌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5년째입니다. 돈이 아닌 답장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돌아오기는 했을까요? 오는 14일 서울 대학로 업스테이지에서는 뮤지컬 ‘카페 론리’가 초연합니다. 스물네 살의 유아교육학과 대학생은 ‘첫, 다락’에서 며칠을 보내고 뮤지컬 작가의 꿈에 도전했습니다. 첫서재를 떠올려 쓴 ‘카페 론리’는 5년 지나서 보낸 ‘숙박비’가 되었고요. 남형석씨는 2020년 12월 6일 브런치스토리에 첫서재를 준비하며 ‘당신이 뮤지컬이나 연극배우 지망생이라면 쉼과 영감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5년 지나 그의 말은 기적 같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사서였던 어떤 이는 다락에 머무는 내내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자신의 꿈을 찾아 프랑스로 떠났고 종종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처절하게 힘든’ 유학 생활이지만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감각만으로 모든 것이 상쇄된다’고 했다네요. 첫서재에서 잠을 깬 첫 마음들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문득 낯선 정적을 맞닥뜨릴 때, 그들은 아마 첫서재의 기억을 떠올릴 겁니다. 어딘가에 내 인생의 서툰 처음이 있지 하며 말이지요. 문정윤씨는 가끔 처절함보다 강렬한 그 마음들을 떠올립니다. “서울에 살 때의 서투름은 들킬까 봐 무서운 것이었어요. 왜 이것밖에 못 할까 하는. 춘천에서의 서투름은 그럴 수 있지 하는 너그러운 감각이에요. 좀 서투르면 어때요?” 첫서재의 다락은 우리 마음속 꼬깃꼬깃한 편지처럼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화장실 가는 문을 열면 또 하나의 문과 계단이 나옵니다. 옛 아궁이가 있던 윗자리입니다. 꿈의 군불을 지피는 곳이라는 의미일까요. 한 평 남짓한 자그마한 다락에서 오늘과 다른 내일을 떠올렸을 그들을 상상합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락문 안쪽에 붙은, 꼬마 손님의 시 같고 편지 같은 ‘비밀의 문’을 읽고서 저는 한 번 더 당신에게 꼭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비밀의 문을 열면 작지만 아름다운 다락방이 나온다.” ●나와 점순과 김유정 김유정의 고향은 춘천입니다. 그는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고향 동네를 산에 묻힌 형상인데 ‘마치 옴푹한 떡시루 같다고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고 했지요. 옛 김유정역은 김유정문학촌이 위치한 실레마을에서 가깝습니다. 초록 지붕의 아담한 역 건물이 향수를 자극하고요. 이름은 김유정역이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2년 후(1939) 신남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김유정역 역장 캐릭터 이름이 ‘나신남’입니다. 맞이방에는 옛 경춘선의 시간표를, 역무실에는 기차역의 소품을 전시해 살아 있는 박물관 같습니다. 철길을 따라서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걸어 볼 수도 있습니다. 기차의 ‘멈춤’ 위치를 표시하는 표지판 아래 적힌 ‘너무 멀리 와버렸다’ 등의 위트 있는 글들은, 김유정 소설에 나오는 나와 점순이 같은 연인들의 포토존으로 사랑받기도 합니다. ‘동백꽃’이 피기에는 이른 계절이지만 시월의 김유정문학촌은 가을이 조금씩 물들어 갑니다. 저는 김유정역을 나와 김유정생가와 김유정이야기집을 거닐며 그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김유정기념전시관에는 신대엽 작가가 그린 ‘유정고도’가 그의 생애를 8폭으로 표현했네요. ‘김유정의 사람들’에는 1930년대 같이 활동한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등 구인회 작가와 판소리 명창 박녹주 등이 담겼고요. 그 시절의 김유정은 풋풋한 사랑을 해학적으로 써나갔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칠 만큼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팔도 명창대회에서 박녹주에게 반해 연애편지를 보내 고백하지만, 그녀가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협박에 가까운 편지나 혈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폐결핵으로 투병하던 생의 끝에서는 친구 안희남에게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요즘 나는 가끔 울면서 누워 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고요. 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은 나와 점순 위로 노란 동백꽃의 아찔한 향기가 퍼지며 끝이 납니다. 이때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을 부르는 사투리라 합니다. 잘못 적힌 이름은 그의 생을 닮아서, ‘봄봄’의 한 장면을 본뜬 조각상을 지날 때는 봄날의 생강나무 꽃향기가 가을 하늘 속으로 아득하게 퍼지는 듯하였습니다. 김유정문학촌에서 금병산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책과인쇄박물관이 나옵니다. 여러 권의 책을 포개 놓은 듯한 4층 건물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고이 접은 쪽지 편지 모양이지요. 충무로에서 30년 일한 전용태 관장이 만든 박물관입니다. 그는 신문사 윤전기 앞에서, 또 인쇄소 납 활자를 조판하며 평생을 보냈지요. 1층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쇄소 광인사인쇄공소를 구현했습니다. 2층과 3층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 초간본 등을 전시하고 있고요. 올해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나온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활판으로 꼭꼭 눌러 새로 찍은 김소월의 시집이 눈길을 끕니다. 활자 인쇄를 체험하고 싶을 때는 스무 자 정도의 글을 지은 후 활자를 조판해 나만의 엽서를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까치 발자국처럼 새겨진 글자는 오돌토돌하여 입체감이 도드라집니다. 저는 활판 엽서 한 장을 사서는 야외 정원으로 나옵니다. 한참 늦게나마 제 안에 숨이 붙어 있는 서툰 꿈을 떠올려 적어 보아야겠습니다. ●첫서재 -오전 11시~오후 7시(예약 필수), 연중무휴, https://www.instagram.com/first_book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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