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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상도, 이재정에 “무식한 게 자랑 아냐…철 좀 들어라”

    곽상도, 이재정에 “무식한 게 자랑 아냐…철 좀 들어라”

    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이날 이 의원은 자신의 발언 시간에 “사법부는 오욕의 역사가 있다”며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수사에 책임이 있던 검사들이 면죄부를 받았다며, 수사책임 검사들 중 한국당 곽 의원도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언 기회를 요구한 곽 의원은 “제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할 때 유서대필 사건을 해명하라 해서 해명했다”며 “한달 정도 수사팀에 들어가서 일부 참고인 조사를 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사건에서 빠져나와서 내용도 잘 모른다. 그 사건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민사소송 당사자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곽 의원은 그러면서 “그럼에도 이 의원이 유죄라고 했다. 청문회 생중계 현장에서 이런 모욕적인 얘기를 하려면 상대방이 어떤 걸 했는지 좀 알아야 한다”며 “무식한 게 자랑이 아니다. 사과바란다. 나이가 들었으면 철 좀 들어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곽 의원의 ‘무식’ 발언에 발끈했다. 이어 “곽 의원이야 말로 사과하라. 사과가 아니라 의원직을 사퇴해야한다. 경륜이 있으면 철 좀 들라. 무식이 뭔가”라고 대응하며 설전을 벌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헌법의 민주화’를 위한 개헌/김준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In&Out] ‘헌법의 민주화’를 위한 개헌/김준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개헌의 계절이 도래했다. 국회는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개헌 추진의 의지를 천명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지난 7월 국회의장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75.4%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헌에 관한 논의가 궤도에 오르면서 이에 관한 희망과 우려의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들려온다. 개헌의 원칙에 관한 목소리는 시민 주도·참여형 개헌, 자치와 분권을 위한 개헌, 통치구조에 매몰되지 않는 기본권 중심의 개헌,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개헌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다. 아울러 현행 헌법이 30년이 지난 만큼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개헌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견해에도 적잖이 공감이 간다. 반면 개헌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결코 작지 않다. 개헌이 과연 지금 필요한 개혁과제인가라는 질문, 개헌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준엄한 경고,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적 의도와 맥락에 대한 의문 등에도 충분히 경청해야 할 대목이 많다. 사실 현행 헌법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나쁘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실이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배경으로 갖는 데다 기본권 영역도 외국에 견주어 보아도 손색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개헌이 위정자의 불온한 의도를 만족시키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이승만의 재집권을 위한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5·16 군사정변 이후 실시된 1962년 개헌,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던 3선 개헌과 유신개헌, 전두환·노태우가 주축이 된 12·12 군사정변 이후 이뤄진 1980년 개헌까지 대부분의 개헌은 오욕의 한국현대정치사와 궤를 함께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요구가 반영된 개헌은 4·19혁명에 이은 1960년 개헌과 민주화 항쟁의 결실에 힘입은 1987년 개헌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아쉬움이 컸다. 급박한 정세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민들이 개헌과정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개헌 과정에서 첫째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현행 헌법이 과연 민주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이 충분히 민주적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아도 현행 헌법에 적지 않은 흠이 눈에 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지명직 공무원이 담당하도록 한 제71조의 문제, 대통령 선거에서 공동 1위가 나왔을 때는 국회에서 결선투표를 실시하도록 한 제67조 제2항의 문제, 제정헌법 때부터 존재하다가 유신헌법 때 사라진 국민의 헌법발안권,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대법원의 구조, 민주주의와 상치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헌법기관의 존재 등 헌법 구석구석에 민주주의의 결핍이 존재한다. 우리 헌법은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현행 헌법은 더 많은 ‘민주화’를 요청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민주화’의 참된 의미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의 의미를 단순히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소를 강화하고 국가권력의 배분을 분권화하도록 설계하는 것으로 협소화시킬 수 없다. 민(民)이 주(主)가 된다는 함의를 새기며 진정한 개헌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인지 숙고할 때다. 쉽게 채워질 수 없는 질문이 우리에게 놓여 있다.
  • [In&Out] 적폐 청산, 인권위도 예외가 아니다/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전 국가인권위 인권정책과장)

    [In&Out] 적폐 청산, 인권위도 예외가 아니다/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전 국가인권위 인권정책과장)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 발언에 이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가인권위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부처에 속하지도 않고,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국가기구’를 자임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의 업무보고도 당연한 일일까.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에 업무보고를 요구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독립기관으로서 인수위 업무보고 대상기관이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업무협의에는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요컨대 독립기관이니 ‘협의’라면 모를까, ‘보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인수위는 이를 수용했고 결국 ‘업무협의’로 명칭이 조정됐다. 당시 국가인권위의 일원으로 협의에 참여했던 나는 인수위의 박범계 간사위원이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가 미처 독립기관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고를 요구했다. 양해를 구한다”며 정중히 사과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보고’와 ‘협의’의 차이. 보기에 따라서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문제는, 국가인권위의 생명줄이라 할 만한 ‘권위’와 ‘독립성’을 여러모로 상징한다.  국가인권위의 위상 강화는 대통령이나 권력으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위원회 스스로의 독립성에 대한 각별한 긴장과 노력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다. 독립성이 전제되지 않은 위상 강화란 한낱 관료조직의 비대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9년여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인권 유린과 국정 농단을 다반사로 자행하던 때에 국가인권위가 대통령과 권력 핵심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기억이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없다.  그동안 국가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가 권력 앞에 위축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더 나아가 국민의 인권보장기구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관료기구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이는 헌법기구화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한들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게 뻔하다.  무력화된 국가인권위에서 ‘자발적 방출’을 선택한 나는, 당시 정권이 바뀌자마자 내부에서 “종북좌파가 장악해온 국가인권위의 좌편향을 청산하고 순수 공무원을 중심으로 조직을 정상화함으로써 명실공히 국가 공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데에 경악하고, 좌절했다. 그 무렵 청와대는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에게 내 이름도 포함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사명감과 헌신성을 가졌던 인권위원과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쫓겨났으며, 일부 남겨진 이들은 숱한 모멸을 견뎌야 했다. 대신 혐오와 반인권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자들로 그 자리가 차곡차곡 채워졌다. 그렇게 국가인권위는 오늘에까지 권력과 밀월의 시기를 보냈다. 그야말로 감시견의 애완견으로의 전락, 그 자체였다.   국가인권위의 위상 강화도 좋고 헌법기구화도 좋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굴곡진 과거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다. 국가인권위는 진정한 위상 강화를 위해서라도, 오욕의 시기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선 위원장과 사무총장만큼은 물러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엇나갔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아 ‘성찰과 혁신 보고서’를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그 보고서에는 “위상 강화의 도구가 독립성이 아니라 독립성의 도구가 위상 강화”라는 문구가 박혀야 한다. 적폐청산에 국가인권위라고 예외일 수 없다.
  • 김진태 “촛불은 이미 태극기 바람에 꺼졌다”

    김진태 “촛불은 이미 태극기 바람에 꺼졌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9일 “촛불은 이미 태극기 바람에 꺼졌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태극기 민심의 본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태극기는 저한테 눈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특검 연장안이 통과되면 촛불에 밀려 원칙을 저버린 국회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며 “특검 기간 연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검이 마음껏 편향적인 목표를 정한 뒤 수사권을 넘어 밤샘조사에 ‘삼족을 멸한다, 손자까지 감옥에서 썩게 한다’며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최근 독일·캐나다 등 해외에서 진행되는 탄핵 반대 집회에 다녀온 것에 대해 김 의원은 “태극기는 저에게 눈물이다, 요즘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늑대’에, 태극집회를 ‘호랑이에 비유하며 “호랑이 등에 제대로 타지 못하고 늑대가 주변을 얼쩡거리면 다 잡아 먹힌다”며 “괜히 어정쩡하게 까부는 그런 늑대들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기의 대한민국 탈출구 찾아라] ‘태생적 한계’ 전경련 기로… 기업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위기의 대한민국 탈출구 찾아라] ‘태생적 한계’ 전경련 기로… 기업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때가 됐다.”(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대 공동성명) “전경련은 탈(脫)정치를 선언하고 기업 맞춤형 컨설팅을 하는 싱크탱크로 환골탈태해야 한다.”(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존폐 기로에 놓인 전경련에 대한 처방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자진 해산을, 다른 한쪽에서는 개혁을 주장한다. 자진 해산 쪽은 전경련이 스스로 해산 절차를 밟고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것만이 재계가 사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대로 개혁파는 전경련이 가진 노하우, 자산을 송두리째 없애는 것보다 발전적 해체를 통해 재계의 ‘서포터’로 거듭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양쪽 입장이 상반되지만 출발점은 같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61년 설립된 전경련은 삼성, 현대차 등 국내 굴지의 그룹을 회원사로 둔 경제 단체다. 전경련의 55년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 단체는 우리 경제의 산업화 역사와 함께했다. 산업화 초기 재계의 ‘맏형’을 자처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 냈다. 21~23대 회장(1993~1998년)을 지낸 최종현 회장은 금리 인하론을 내세워 성장 견인차 역할을 했다. 24~25대 회장(1998~1999년)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극복 방안으로 ‘500억 달러 무역흑자론’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관료 그룹과 맞서기도 했다. ●비리 빈발… 내부 견제장치 작동 안 해 문제는 출범 때부터 지닌 태생적 한계가 전경련의 발목을 잡아 왔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정경유착’(경제계와 정치권이 부정을 고리로 연결) 사건에는 늘 전경련이 등장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운 일해재단의 자금을 전경련이 앞장서 모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때도 비자금 조성에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회장단이 “음성적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1997년 세풍 사건, 2002년 차떼기 사건으로 이어지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전경련이 개입됐고 2009년 미소금융재단 설립 때도 대기업 모금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내부 견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전경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시발점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의 통로로 이용돼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게 됐다.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많다. 재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단체가 오히려 관변 단체로 변질돼 기업들을 옥죄어 왔다는 것이다. 10대 그룹의 한 대관(對官) 담당자는 “지난해 10월 미르재단 출범 당시 전경련 직원이 전화를 해서 다음날까지 인감도장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면서 “우리는 돈이 없어 못 내겠다고 하는데도 문화사업 융성을 위해 협조하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핵심 회원사 탈퇴 안 하면 해산 시간 걸려 이미 삼성, SK 등 주요 그룹은 탈퇴 의사를 천명했고, 국책은행은 탈퇴 러시에 뛰어든 상황이다. 회원사마저 등을 돌리면서 내년 2월까지 쇄신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럴 바엔 해체가 답”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해체론자들도 “전경련 해체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다”고 말한다. 핵심 회원사가 실제 탈퇴하지 않으면 600여곳의 다른 회원사도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끌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주요 그룹이 앞장서 탈퇴의 물꼬를 터 달라고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해체론자에 맞서 “전경련은 죄가 없다”며 ‘무죄론’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있지만, 그 또한 “해체 쪽으로 프레임이 짜인 이상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대기업이 먼저 헌납을 한 것도 아닌데 정치권이 애꿎은 경제단체를 흔들고 있다”면서 “무작정 해체하면 암울한 경제 상황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기관이 없어져 경제는 더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재계 대변 합법적 창구는 여전히 필요” 이런 이유로 해체보다는 개혁을 통해 전경련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전경련을 없앤다고 해서 정경유착의 폐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대안으로 부상한 미국 헤리티지 모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의 위상을 격상시켜 시장경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싱크탱크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헤리티지 모델은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고, 경제 단체의 존재 이유에도 어긋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전경련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선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면서도 “경제계 입장을 대변하고 조정하고 합법적인 로비를 하는 창구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만우 교수는 “기업마다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전경련이 통합·조율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이외수 “김진태 정신 차려라, 요즘은 건전지 촛불”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7일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 불면 꺼지게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소설가 이외수가 “100만 국민의 함성을 애써 무시하려는 막말”이라고 비난했다. 이외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김진태 의원,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말했군요. 아직도 조선시대인 줄 아십니까. 정신 차리세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 파라핀 촛불 들고 시위하는 사람 없습니다. 모두들 건전지 촛불 씁니다. 푸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저는 건전지 촛불이에요. 비바람에도 끄떡없죠.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을 보여드릴게요’라는 사진을 올렸다. 앞서 ‘진박(진짜 친박근혜계)’으로 꼽히는 김진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 “민심은 변한다”면서 “특검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면 촛불에 밀려서 원칙에 어긋나는 법사위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수사 대상 방대한데 기간 제한…‘순실의 진실’은 시간과의 싸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수사 대상 방대한데 기간 제한…‘순실의 진실’은 시간과의 싸움

    朴대통령, 연장 승인해야 120일 국조는 증인 채택 충돌 불가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 특별검사법안이 17일 어렵사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성공한 특검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특검 임명과 운용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놓고 또 한번 여야가 대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특검의 수사 대상은 청와대 문건 유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부터 최순실씨 일가의 재산 형성 의혹, 최씨의 딸 정유라씨 부정 입학 의혹 등 모든 의혹을 망라했다. 또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 수사 대상의 폭을 넓혀 놨다. 국정조사의 대상과 범위도 조사 과정에서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요구할 경우 확대해서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 대상은 방대한 반면 특검법은 준비 기간을 포함해 수사 기간을 최장 120일로 제한하고 있다. ‘시간과의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검 후보자 지명과 수사 기간의 연장에 대해 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해 놓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야당에서는 “수사 대상인 대통령이 자신을 수사할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검의 자격이 판사 및 검사 경력 15년 이상 변호사로 한정됐다는 점도 지적됐지만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이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특검 처리에 반발해 퇴장하는 등 난항을 겪으면서 야당에서는 한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가능성도 제기됐다. 친박(친박근혜)계 김진태 의원은 “법안이 통과된다고 하면 촛불에 밀려 원칙에 어긋나는 법사위 오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면서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날 본회의에서 특검에 반대한 의원은 김광림, 김규환, 김진태, 박명재, 박완수, 이은권, 이종명, 이학재, 전희경, 최경환 등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기권한 14명도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특검에 여당이 반대하고 있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추천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국정조사에서도 여야 간 대결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도 증언대에 부르겠다고 벼르고 있다. 다만 “정부와 관련 기관·단체·법인·개인 등은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조사(예비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한 점 등은 국정조사 권한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과 임은정 검사/문소영 사회2부장

    ‘마당에 꽃 떨어지니 가련하여 못 쓸겠고, 창밖에 달빛 밝으니 너무 좋아 잠 못 이룬다.’ ‘화락정전련불소 월명창외애무면(花落庭前憐不掃, 月明窓外愛無眠’)이란 한시가 적힌 글씨 한 폭을 선물받은 것은 1997년 겨울이었다. 낙화에 마음이 애달프고, 달빛에 취해 잠 못 이룰 정도이니 사춘기의 여학생 같지만, 이 한시를 쓴 주인공은 그해 81세인 ‘노회한 정치인’ 윤길중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1916년 함경남도 북청 출생으로 2001년 유명을 달리한 윤 전 국회부의장의 행적을 돌아보면 오욕의 역사에 적응한 지식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이른바 ‘정치 철새’나 ‘진보 인사의 변절’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윤 전 국회부의장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수재였다. 경성대 법대와 일본대 법과 재학 중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각각 합격해 강진군수·무안군수로 재직했고, 조선총독부 사무관으로도 일했다. 해방 후 국민대 교수로 옮기고서 그는 제헌국회의 법제조사국 국장 등을 한다. 1950년대 무소속으로 제2대 민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56년 조봉암의 진보정당 창당에 참여해 간사장 등을 맡았다.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됐지만 1년 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4·19 민주혁명으로 1960년 사회대중당을 결성해 그해 7월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됐다. 그 1년 뒤에 5·16 군사쿠데타로 그는 혁신계 정치인과 함께 감옥에 가 1968년 4월까지 7년간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의 삼선 개헌 반대를 한 그는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의 제8대 국회의원이 됐다. 야당 의원에서 여당으로의 전환은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이 계기다. 1980년 12월엔 민주정의당 발기인이 돼 11대, 12대, 13대에 내리 민정당 3선 의원을 지냈다. 그 덕에 11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부의장이 됐고, 3당 합당으로 민자당 상임고문도 했다. 국회를 ‘행정부의 거수기’라고 비웃던 시절 탓인지 국회부의장을 지낸 그를 ‘붓글씨를 잘 쓰는 정치인’이라고 야박하게 평가했다. 까맣게 잊었던 ’윤길중’을 최근 ‘임은정 검사의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사건’ 덕분에 떠올렸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했다. 임 검사는 앞서 같은 해 9월 ‘박형규 목사의 민청학련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 구형’을 했다. 검찰 수뇌부는 ‘윤길중 재심 사건’에서 임 검사에게 ‘백지 구형’을 요구했다. 백지 구형은 법원의 판사가 법과 원칙대로 선고하라는 의미이고, 무죄 구형은 검사가 소신껏 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니, 아주 다른 선고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검찰은 이것을 문제 삼아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 처분을 했다. 임 검사는 취소 소송을 내 1·2심에서 모두 이겼다. 3년 전의 ‘괘씸죄’는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임 검사를 검사적격심사 대상 7명 중 하나에 포함해 놓아 여론을 집중시키고 있다. 임 검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느낌이다. 의연하게 대응하겠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라고 했다. ‘공안 검찰의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온통 붉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임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한 윤길중이란 인물은 ‘종북 빨갱이’가 아니라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민자당 국회의원이자 민정당 몫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다스 베이더의 “내가 네 아비다”라는 확인이 필요한 시절인가. symun@seoul.co.kr
  • 한반도에 드리운 일제 강점의 그림자… ‘암울한 대한제국’

    한반도에 드리운 일제 강점의 그림자… ‘암울한 대한제국’

    111년 전인 1904년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일제 강점의 암울한 그림자가 한반도 주변을 감싸기 시작한 때였다. 대한제국은 서구 열강, 일제의 틈바구니에서 중립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전망이 교차하던 때였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말이 나오기 전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제국주의 질서의 복판이었으니 마음 같지 않았다. 영어로 된 신문이 필요했다. 일본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대한제국의 입장을 열강들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1904년 7월 18일 대한매일신보(The Korea Daily News)의 창간은 시대의 필연이었다. 짙은 어둠 속 작은 불꽃이었고, 둔탁한 북소리 중간에 끼어든 까치 소리였다. 대한매일신보 111년 역사는 자랑스러운 언론구국운동의 역사이자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이어진 굴종과 오욕의 역사이기도 했다. 숱하게 신문의 이름을 바꾸고 소유 주체를 달리하는 과정에서도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1910년)-서울신문(1945년)-대한매일(1998년)-서울신문(2004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우직하게 앞 제호의 지령(紙齡)을 계승하며 영욕을 한몸에 떠안은 인고의 세월이었다. 현재 서울신문은 2001년 전 사원이 출자해서 만든 우리사주조합이 38.9% 지분을 가져 1대 주주인 신문사로 거듭났다. 소유 구조가 바뀐 것은 언론 독립의 완성이 아닌 첫걸음에 불과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서울신문의 노력과 의지는 2015년 새해 벽두에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매일신보 창간호는 지금의 타블로이드판보다 약간 큰 26.5㎝×40㎝ 크기였다. 한글판 2면, 영문판 4면 등 모두 6면짜리 일간지였다.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분실됐다. 16호인 1904년 8월 4일자부터 영인본으로 서울신문 본사 서가에 보존되고 있다. 창간 111주년을 맞은 2015년 새해 벽두 먼지 덮인 영인본을 꺼내 대한매일신보에 비친 111년 전 ‘그때 여기’와 2015년 ‘지금 여기’를 비교해 보려 한다. 급변하는 세상, 원칙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오히려 긴 호흡으로 멀리 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사고와 논설, 잡보(정치사회면) 등을 간략히 훑어본다. 1904년 8월 4일자 신문 가격은 ‘두돈 오푼’이었다. 1892년 대한제국이 발행하고 1902년 중단된 ‘2전(錢)5분(分)’짜리 백동화 하나로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두돈 오푼’ 백동화는 당시 가장 값싼 제작비로 대량 제조할 수 있는 화폐였다. 실제 가치는 3푼 정도밖에 안 되는 금속으로 명목가치 두돈 오푼 백동화를 만드는 것은 7배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만드는 방법도 엽전보다 쉬웠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6년 총예산 중 26.6%인 128만원을 백동화 제조로 창출한 이익금으로 충당했을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더욱 야비하고 악랄하게 활용한 건 일본이었다. 두돈 오푼은 그 질에 따라 갑종, 을종, 병종으로 나뉘었다. 일본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사주전(私鑄錢) 제조, 밀주(密鑄)된 두돈 오푼 수입, 화폐교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악화를 양화로 바꿔 매점매석, 1905년 통화개혁을 앞두고 폐기 처분될 두돈 오푼으로 시골에서 땅을 매입해 농민 등쳐먹기 등의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2015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앞다퉈 저금리 정책을 펴고 있는 때다. 엔-캐리, 달러-캐리 무역으로 차익을 보는 세력들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지만 통화량 증가 및 인플레이션은 필연이다. 애꿎은 제3세계 국가들만 갈 곳 잃은 투기자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한국 역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일제는 대한제국 황무지 개간 사업 계획, 이른바 ‘나가모리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일본 대장성 관방장 나가모리(장삼·長森)가 앞장선 데 따른 명명이다. 개간 대상이 된 땅을 황무지라고 주장하고 개발 논리를 앞세웠지만 황무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토지 수탈의 다른 이름이었음은 물론이다. 구국언론을 자처한 대한매일신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황무지 개간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 보안회(輔安會·보국안민회의 약자)가 1904년 7월 13일 만들어졌고 대한매일신보는 보안회를 적극 지지했으며 창간 4일 뒤인 7월 22일자에 윤치호의 글을 게재했다. 당시 대한제국 외부협판(현 차관) 윤치호는 ‘일제의 요구대로라면 국토의 3분의2를 일본에 넘겨줘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또 8월 18일자 논설에서는 ‘장삼씨의 문제 갱론’으로 제목을 붙여 이를 통렬히 비판했다. 당시 일본 지지(時事)신보가 나가모리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어떤 일을 잘못하는 것은 물론 나쁜지만 그 잘못이 명백해진 뒤에도 이를 고집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고 준엄히 꾸짖었다. 그리고 황무지 개간 계획을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일본의 수작으로 규정짓는 등 일본과의 논리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철도, 지하철, 도로, 터널, 다리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마련에 외국 자본의 돈을 쓰는, BTL민간투자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상황과도 맥이 닿는다. 이익이 없는 곳에 자본이 몰릴 리 없다. 토건사업에 골몰하는 지자체는 자본이 없고, 자본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사업 초기 맺은 불합리한 계약을 둘러싸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자체와 민간자본 간의 소송 다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일진회는 대표적인 친일단체다. 하지만 초기에는 국민계몽운동의 입장을 표방하고 남아 있는 동학 세력들의 보안회를 만들어 함께하는 등 정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대한매일신보의 기사 흐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대한매일신보 8월 24일에만 해도 ‘유신회는 일진회로 개정하였는데 그 취지인즉’ 하면서 기사를 실었다. 당시 ‘병정 일개 소대와 순검(경찰) 30여명, 일본군 헌병 10여명이 나와 금지’하자 회원과 방청자 400~500명이 모여 종로 백목전 도가로 옮겨 행사를 치렀다는 내용으로 꽤 충실히 보도했다. 그러나 기사의 논조가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04년 11월 23일 잡보(요즘 정치사회면)에는 ‘일진회를 박멸하기 위해 비밀운동을 하던 리방협씨를 엊그제 경성 일본 헌병이 포착하여 일본군 사령부에서 심사한즉, 동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발명(변명)하였다’고 보도했다. 다음달인 12월 19일에는 ‘일진회원이 서울에서 떠날 때 단발하는 가위를 사 가지고 가는데 백성들이 말하기를 일진회가 곧 삭발회라고들 하더라’고 항간의 일진회에 대한 조롱 섞인 정서를 전했다. 그 와중에 1904년 10월 30일 ‘본사 광고란’에는 ‘본사 신문 중에 왼쪽에 적은 호수 중 아무것이나 가지고 오시는대로 한 장에 백전 두푼씩 드리리다’고 했다. 신문 한 장에 두돈 오푼이었으니 거의 50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본사에 신문을 보관해야 했는데 어떤 사유로 해당 호수가 없어졌음이 분명하다. 12월 30일 세밑의 대한매일신보 2면 잡보에는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에 젊은 소년인데 술에 취해 한 여인을 계속 힐난하자 장거수(차장)가 발로 차서 내쫓자 모든 사람이 통쾌해하더라’(현대어 의역)는 기사가 실렸다. 술을 사랑하고 술에 관대한 민족성은 1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부녀자를 희롱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던 정서 역시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한·일 정상회담 열쇠는 위안부 해결에 있다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이 어제 한국을 찾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다. 내일까지 머무는 동안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등과도 만나 양국 간 외교안보 현안 전반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방한이 특별하게 주목을 끄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김 실장-야치 국장 채널을 통해 간접 대화를 나누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1월 취임과 함께 지속된 야치 사무국장의 방한 요청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안보 문제만 얘기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사실상 면담을 거부해 왔던 정황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의 방한 배경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야치 국장의 방한을 놓고 양국 정부는 일단 동북아 안보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 정도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그제 “근린 우호국으로서 안전보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황을 설명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미 동맹, 미·일 동맹 관련 현안들을 주로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아베 외교’를 사실상 주도하는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다음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모종의 ‘행동 계획’을 갖고 왔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달 19일 방한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통해 전달한 친서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베이징 APEC 정상회의에서의 양국 정상회담을 제안한 바도 있다. 야치 국장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아베 총리의 보다 구체적 제안을 들고 왔을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리적·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의 두 나라가 새 정부 출범 후 1년 반이 넘도록 온전한 정상회담을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했듯 그저 회담을 위한 회담은 양국 관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지금의 불편한 양국 관계를 풀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이는 취임 이후 과거사 지우기에 몰두해 온 아베 정부가 이제라도 자세를 바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임하는 것이 요체라고 할 것이다. 이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55명만이 생존해 있다. 그나마 8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의 나이에 이런저런 노환을 앓고 있어 여생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으로선 사죄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오욕의 과거사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한·일 관계를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아베 총리가 되길 바란다.
  • [커버스토리] 그래~ 이 맛이야… 괜찮아, 사실이야

    [커버스토리] 그래~ 이 맛이야… 괜찮아, 사실이야

     경기 광주에 사는 30년차 주부 이익순(54)씨는 평소 음식 맛을 내려고 소고기, 해물 등 다양한 복합 양념이 첨가된 ‘다시다’를 쓴다. 글루탐산나트륨(MSG)만 들어가 있는 미원은 김장할 때만 쓴다고 했다. 이씨는 “몸에 나쁜지 알면서도 음식 맛이 안 나 찌개 등을 끓일 때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쓴다”면서 “MSG가 무해 하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봤지만 계속 뜬소문이나 의혹이 제기되는 걸 보면 안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감칠맛’을 내는 대표적인 식품첨가물인 MSG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짠맛, 단맛, 쓴맛, 신맛에 이어 제5의 맛으로 인정받으며 ‘식탁 위의 혁명’으로까지 불렸던 MSG는 도대체 어쩌다 이 같은 ‘주홍글씨’를 새기게 됐을까. ●대상 ‘미원’으로 초보 주부 사로잡아  1908년 일본에서 탄생한 MSG가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원조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사가 자연스럽게 들어오면서부터다. MSG는 음식 맛을 돋우는 마법의 재료로 통하며 ‘뱀가루’라고 불렸을 정도다. 해방 이후 일제 조미료 수입이 금지되자 6·25전쟁 직후 대성공업사가 ‘미소미’를 생산했지만 별 재미를 못 봤다.  본격적인 MSG 시장을 연 건 대상의 창업주인 임대홍 회장이 일본에서 조미료 생산기술을 배워오면서부터다. 임 회장은 1956년 부산에서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신선로표 미원’을 생산했다. 미원은 대성공을 거뒀다. 음식을 준비하는 초보 주부나 음식점에서 미원은 1등 공신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미료 사업이 대 히트를 이어가자 현재의 CJ제일제당(삼성그룹 분리 전)도 MSG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일제당은 원형사를 인수해 1963년 12월 미풍산업주식회사를 차린 뒤 ‘미풍’을 내놨다. 하지만 미풍은 미원의 짝퉁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1세대 MSG의 승리는 미원이 가져갔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세상에 안 되는 것” 세 가지 중 조미료를 꼽으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조미료 시장에 먹구름이 낀 건 1968년 미국의 한 의사가 ‘MSG가 들어간 중화요리’가 가슴 압박감이나 두통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이때 제기된 ‘중화요리증후군’은 이후 MSG와 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당시 불거진 MSG 유해성 논란은 1993년 말 국내 조미료 시장에 고스란히 옮겨 붙었다. ●1993년 럭키 “인체 유해” 네거티브 광고  불을 지른 건 1993년 12월 ‘맛그린’을 내놓은 럭키(현 LG생활건강)였다. 후발주자였던 럭키는 미원과 다시다를 ‘화학조미료’라고 가르키며, 인체에 유해한 MSG가 다량 햠유돼 있다는 도발적 광고를 냈다. 대상과 제일제당은 발칵 뒤집어졌다. 안전성이 확보된 MSG가 건강에 해로운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다.  당시 보사부(보건복지부)는 2주 만에 럭키 맛그린에 대해 광고시정명령을 내리고 피해를 입은 미원과 제일제당에 사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MSG=화학조미료’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데 보름이란 시간은 충분했다. 사실 ‘맛그린’도 MSG만 뺐을 뿐 핵산이나 합성향 등 다른 첨가물을 여전히 사용해 천연조미료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었다. 결국 맛그린은 MSG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과 혼란만 가중시킨 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 여파로 이후 조미료 시장에서 MSG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식품업체는 너도나도 ‘천연’, ‘자연’임을 강조하는 복합조미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제품은 2007년 출시된 CJ제일제당의 ‘산들애’와 대상의 ‘맛선생’이다. 이 제품들은 MSG 등의 첨가물을 없애고 100% 자연재료로 만들어졌음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FAO·WHO “안전하다” 연구 결과 발표  그러는 사이 MSG에 대한 누명은 벗겨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0년과 2012년 ‘MSG는 평생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유엔식량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연합한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도 1987년 230여 건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결과 ‘MSG는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MSG 일일 섭취 허용량을 철폐했다. ●국내선 외면… 세계 시장 매년 2% 성장  국내 소비자들은 MSG를 외면하고 있지만 전 세계 MSG 시장은 매년 2%대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소금보다 나트륨 저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MSG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MSG 제조업체도 수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대상에 따르면 국내 매출은 1990년 이후 2013년까지 400억원 증가에 그친 반면, 수출 매출은 같은 기간 2000억원 이상 늘었다. 대상의 최대 수출국은 일본으로, 2013년 MSG 5325t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매출액으로는 약 101억 458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여전히 MSG를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시선은 따갑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MSG가 건강에 나쁘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효모나 글루타민산 등 조미 소재에 과학적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한번 나쁜 인상이 심어지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사설] 패전 68년, 일본은 올바로 일어서야 한다

    광복 68돌을 맞은 어제 바다 건너 일본 열도가 보여준 모습은 한·일 양국 관계의 앞날과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겨준다. 일본 제국주의 오욕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은 지 68년 된 이날 2차 대전 핵심전범들의 위패를 모아놓은 야스쿠니 신사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참배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이 중엔 직접 참배하거나 대리인을 보낸 일본 중·참의원 190명도 포함돼 있다. 지난 4월 춘계 예대제 때의 168명을 뛰어넘은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의 각료 15명 가운데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 등 3명도 참배했다.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나마 아베 신조 총리와 그동안 참배를 공언했던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한·일 관계를 넘어 일본 스스로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비록 대리인을 통해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고 하나 아베 총리가 참배의 뜻을 접은 것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뜻으로 여겨진다. 동북아에서의 영토 갈등, 역사 갈등을 우려하는 미국 행정부의 뜻도 크게 작용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일본은 68년 전 패전국의 멍에를 쓰고 만든 평화헌법을 개정해 이른바 ‘정상국가’로 다시 일어서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개헌을 공언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일본이 훗날 ‘정상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엔 대전제가 있다. 100여년 전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본은 스스로 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침략의 역사를 축소·은폐하고 미화하는 교과서로 후대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 우기며 국제분쟁화하는 행태는 스스로 정상국가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왜곡된 정상국가화로는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더욱 요원하게 만들 뿐임을 알아야 한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를 직시하는 용기와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을 주문했다. 과거 그 어느 8·15 경축사보다 절제된 한국 정상의 메시지를 일본은 잘 헤아려야 한다. 각 영역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일본의 그릇된 극우 리더십으로 인해 갈수록 간극을 벌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일본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한·일 모두에 유익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그 이전에 단절되다시피 한 양국 간 외교 행보부터 제 궤도로 돌려놔야 한다. 이는 오롯이 자신들의 몫임을 아베 정부는 십분 헤아리기 바란다.
  • [사설] 국정원 의혹, 국정조사로 매듭지어야

    국가정보원이 또다시 오욕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주 검찰의 국정원 정치 및 선거 개입 의혹 수사 결과 발표는 국정원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및 같은 해 4월 총선, 2010년 6월 지방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원 전 원장은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및 정치 관여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국정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존립의 보장과 국익증진을 위해 헌신한다는 목적 아래 1961년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후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재출범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인사들이 수장으로 기용되면서 국가안보라는 본령을 망각하고 ‘정권안보’의 유혹에 빠지는 등 변질 운영되면서 정권교체기마다 적잖은 원장들이 사법처리되는 등 불명예를 겪었다.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 9명의 원장 가운데 6명이 퇴임 이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우리는 검찰 수사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한다. 국정원의 정치·선거 개입 전후로 국정원장이 최고통치권자에게 보고 및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닌지,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뤄진 경찰의 엉터리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배후세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제기된 의혹은 이번 검찰수사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그런 만큼 국정원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한 여야는 그 방법 및 시기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게 옳다고 본다. 국정조사 실시에 따른 정치적 이해득실은 부차적인 문제다. 진실 규명을 통해 국가안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대통령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분명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기관으로서 국정원이 정치 개입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공작정치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정치 관여 금지조항을 어기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상급자의 부당한 정치 개입 지시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것은 물론 감사원 등 외부기관에 이를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 [사설] 더 많은 소신투표 나와야 국회 바로 선다

    국회의원들이 최근 쟁점 법안들에 대해 당론투표가 아닌 소신투표를 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입법이나 현안에 대해 당론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찬반 및 기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선진 정치문화 구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요즘엔 과거와 달리 의원들이 여야 합의나 당론을 공개적으로 비판·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의원들이 정당의 정체성 등을 고려할 때 사안마다 당론과 다른 소신과 원칙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지도부가 획일성을 강요하는 당론을 지양하고 재량권을 보장·확대해 나갈 때 국회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본다.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공정법, 정년연장법, 양도세감면법, 취득세감면법 등 4개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표결을 분석한 결과 여야 의원 절반이 최소한 한 차례 당론투표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들 법안은 여야의 의견 조율과 관련 상임위를 거친 것이어서 당론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정당마다 반대표가 꽤 됐다. 그러다 보니 여야 간 정쟁보다는 당내 싸움이 잦다고 한다. 소신투표 경향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19대 국회 출범 이후 분위기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1인 지배 정당’의 붕괴와 당지도부의 통제력 약화에 기인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의원들이 국회와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고 실천한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52년 정권 연장을 위한 부산 정치 파동과, 1971년 장관 해임을 둘러싼 공화당 항명사태 등은 의정 사상 대표적인 오욕의 역사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명하복’ 식 국회·정당 운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론투표가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을 줄세우고 ‘거수기’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비민주적 요소가 많다. 이제 국회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가 됐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국회가 가장 비민주적이라면 ‘민의의 전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의원들도 자잘한 지역 현안을 나랏일보다 앞세우는 등의 소아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를 욕보이는 의사당 난동과 폭언도 당론투표와 함께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 [원세훈 前 국정원장 검찰 출두] 장세동·임동원·신건 구속 수모… 권영해 징역 5년

    [원세훈 前 국정원장 검찰 출두] 장세동·임동원·신건 구속 수모… 권영해 징역 5년

    1961년 중앙정보부로 출범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까지 50여년간 국가 최고 정보기관 수장을 거친 사람은 원세훈 전 원장을 포함해 모두 30명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재임 시절 통치권자의 최측근이었다. 그렇다 보니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불법 행위를 하거나 정치에 개입한 경우가 많았다. 퇴임 후 상당수가 사법처리를 받은 것은 그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29일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국정원은 오욕의 역사를 이어 가게 됐다. 김종필 전 총리는 중정을 창설하고 초대 부장까지 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뒤 재산이 몰수되고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사태, 5·18사건 등에 대해 칼날을 들이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최고 실세였던 장세동(13대 안기부장)씨가 세 차례나 구속됐고 이희성(9대), 유학성(11대), 안무혁(14대), 이현우(19대)씨는 군사반란과 비자금 조성 및 관리 등의 혐의로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권영해(21대)씨도 ‘북풍사건’ 등 각종 공안사건 조작 등의 혐의로 퇴임 후 네 차례나 기소됐다.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수난사는 계속됐다. 초대 국정원장 이종찬(22대)씨는 퇴임 뒤 국민회의 부총재 재직 시절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담은 ‘언론대책문건’ 유출 파문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5년 ‘안기부 X파일’로 세상에 알려진 국정원의 불법 도청조직 ‘미림팀’ 사건은 국정원 수난사의 정점을 찍었다. 검찰 수사로 미림팀이 1994년부터 3년간 군 수뇌부와 여야 정치인 등 연간 5400여명을 무차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임동원(24대)·신건(25대)씨는 김대중 정부 당시 불법 감청을 지시 또는 묵인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돼 1, 2심에서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덕(20대)·천용택(23대)씨도 각각 미림팀 운영 혐의, 불법 감청 테이프 및 녹취록 활용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28대)씨는 일본 월간지에 재임 시절 대북협상과 관련한 일화를 기고해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지난 1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安風에 흔들리는 ‘文 독주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상승세 앞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경선 후보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민주당 경선 판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그동안 문 후보의 기세에 눌려 있던 비문(비문재인) 주자들은 일제히 ‘문재인 독주체제에 제동이 걸렸다’면서 문 후보에 대한 집중 포화에 나섰다. 후보교체론을 꺼내 든 것이다. 문재인 때리기의 선봉에는 김두관 후보가 섰다. 전날 부산 합동연설회에서 “안 원장의 재부상으로 문 후보의 지지율이 10%대로 내려앉았다.”며 후보 교체론을 꺼내 든 김 후보는 27일 대전 합동연설회에서도 ‘문재인 필패론’을 내세우며 집중 공격을 폈다. 김 후보는 문 후보를 겨냥, “당내 패권 세력은 출마도 선언하지 않은 안철수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하고, 안철수만 바라보는 처지가 됐다.”면서 “내가 후보가 돼야 안철수와 연대, 박근혜를 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질세라 손학규 후보도 ‘문재인 때리기’에 집중했다. 손 후보는 “5년 전 정권을 빼앗긴 데 책임 있는 세력들은 제대로 반성도, 성찰도 하지 않았다. 반성과 성찰 없이 ‘돌아온 참여정부’로는 다시 정권을 달라고 할 수 없다.”면서 문 후보를 민생 실패와 대선 실패, 그리고 총선 패배의 3패 세력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중산층, 중간층, 중부권의 ‘3중’의 지지를 받을 내가 적격자”라며 ‘준비된 대통령론’을 폈다. 문 후보는 이들의 공격에 맞대응하는 대신 ‘박근혜 때리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예봉을 피해갔다. 문 후보는 “5·16 쿠데타, 3선 개헌, 유신독재와 19년 장기집권은 우리 역사에서 깨끗이 씻어내야 할 오욕의 역사”라며 “총칼로 정권을 빼앗고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인 일들이 불가피한 선택이고 최선의 선택이냐.”고 박 후보를 몰아세웠다. 김·손 후보의 공세는 “후보들 간 이전투구는 자제돼야 한다.”는 정도의 호소로 갈음했다. 정세균 후보도 후보들 간 상호공격 자제를 촉구했다. 정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부터 패권적 분열주의, 끌어내리기식 경쟁을 딛고 한마음으로, 한몸으로 뭉쳐야 한다.”고 문 후보가 주장하는 내부 단결론에 가세했다. 대전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권력 검찰 오욕의 역사

    권력 검찰 오욕의 역사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사법연수원생들이 로스쿨 출신을 검사로 임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집단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로스쿨에 부유층, 고위층 자제들이 많은데 학장 추천으로 검사를 뽑을 경우 기득권층 대변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예비 법조인들의 주장을 그릇됐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얼마 전 외무고시를 폐지하고 2013년 부터 국립외교원을 통해 외교관을 선발하겠다고 했다. 현직 외교부 수장이 자신의 자식을 편법으로 외교관에 임용하는 게 우리나라이고 보면 예비 법조인들이 우려하는 사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론은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겠느냐는 것. 이게 한국의 검찰을 보는 국민들의 심정적 위상이다. 현실에서 검찰의 위상은 남다르다. 법무부 외청이면서도 여느 행정부처와는 ‘차원’이 다르다. 같은 고등고시에 합격해도 5급 사무관에 임용되는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합격자와는 달리 3급 부이사관에 임용된다. 출발 단계부터 일반 행정직 공무원보다 더 높은 직급, 더 많은 급여가 보장된다. 그런데도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가 끊임없이 나온다. 원래 일부 문제 검사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요즘엔 검찰의 이미지를 통칭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왜,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을까.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삼인 펴냄)은 검찰의 권한과 조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검찰 개혁 방안을 모색한다. 검사 출신의 김희수 변호사,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4명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전체적으로 책은 검찰 60여 성상의 영욕의 역사 보다는 오욕의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들은 “우리 검찰의 가장 큰 특징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있다.”면서 “국민의 검찰이 되기 위해서는 검찰이 도대체 어떤 조직인지, 검찰의 권한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국민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히고 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이승만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역사를 살펴본다. 특히 ‘반공’을 앞세우던 군사정권 시절, 정의를 외면하고 권력에 아부한 검찰의 모습을 폭로한다. 2부에선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독점 영장청구권, 독점 기소권, 기소재량권, 형 집행권 등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 권력을 해부한다. 3부에선 검찰 권력이 더는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朝·中 군왕 20명 통치술로 본 현대 리더십

    조선과 중국의 군왕들은 어떤 통치술로 난세를 돌파했을까. ‘조선국왕 vs 중국황제’(신동준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는 각기 상이한 통치 환경에서 어떤 통치술을 발휘해 성패의 드라마를 엮어 나갔는지를 비교한 책이다. 조선 왕조 500년을 함께한 중국의 명·청 황제들과 같은 시기에 집권한 조선왕들의 치세를 대비, 역대 군왕들이 위기의 상황에서 내린 결정적 선택에 대한 영광과 오욕의 성적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정치는 부국강병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조 아래 조선 국왕과 명·청 황제의 재위과정과 통치 스타일을 비교분석한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평가함으로써 오늘날 최고 통치자가 지녀야 할 경영의 해법과 위기시대의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조의 ‘위화도 회군’과 홍무제의 ‘홍건기의’라든가 태종의 ‘왕자의 난’과 영락제의 ‘제2창업’, 세조의 ‘계유정난’과 ‘선덕제의 ‘인선지치’(仁宣之治) 등을 통해 양 군왕의 통치철학을 흥미롭게 비교하고 있다. 태종과 영락제의 경우,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와 한나라의 뒤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모두 단명하는 데 그친 것은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 영락제 주체와 같은 창업의 기틀을 이어받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조는 무려 18년 동안 태종과 악연을 맺었다.’라는 부분에 특히 눈길이 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재위 5년(1627년) 정묘호란에 이어 재위 14년(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으며 특히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라고 멸시했던 나라의 황제에게 조선의 왕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 삼전도의 굴욕은 가장 치욕스러운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기술한다. 이렇듯 저자는 재위 시기와 정치적 상황이 비슷했던 조선 국왕 10명과 중국 황제 10명의 통치 방식 및 리더십을 2명씩 묶어 비교 분석한다. 그러면서 고전을 재해석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 가능하도록 재구성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현재 정치인과 CEO들에 관련된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동양 3국의 역대 사건 및 인물에 관한 기존의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는 등 역사 속에서 경영전략과 리더십을 추출해내는 데 연구 성과를 집중하고 있다. 2만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책꽂이]

    ●iWAR(손영동 지음, 황금부엉이 펴냄) 지난해 겪은 디도스 대란은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과 철저한 보안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책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사이버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이 준비해야 할 미래 사업의 방법, 인재 육성 방법 등을 제시한다. 가상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 광범위한 사이버 보안 이슈들을 풀어냈다. 1만 8000원. ●김구 전태일 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 이야기(함규진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역돌이’가 백범 할아버지, 태일이형, 종철이형과 가상 채팅과 이메일을 나누며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해방 전후, 분단과 전쟁 등 현대사까지 짚어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내온 오욕의 세월, 아빠와 엄마가 지내온 격동의 과정들을 한국전쟁, 4·19, 5·18, 6월항쟁 등 주요 쟁점 중심으로 쉽고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1만원. ●중국사유(마르셀 그라네 지음, 유병태 옮김, 한길사 펴냄) 1934년에 씌어진 책이다. 인간과 우주의 연계를 도모함으로써 인간과 사회, 사회와 자연을 분리하지 않는 ‘중국사유’는 이성적 추론에 입각한 서구의 인식론적 비평체계와 다르다고 얘기한다. 서구에서 중국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그라네가 내놓았던 저서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문화에 드러난 문자와 언어, 숫자, 사상의 주개념들을 포괄적이며 유기적으로 정리했다. 3만 2000원. ●청소년을 위한 사랑과 성의 역사(루츠 판 다이크 지음, 전은경 옮김, 비룡소 펴냄) 사랑과 성. 쉬쉬하던 옛 시절과 달라져 온갖 정보와 자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세상이 됐건만 여전히 대를 이어 가는 호기심, 시인·소설가의 깊이 있는 성찰과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폭력과 범죄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 또한 물론이다. 저자는 사랑과 성의 역사는 인간성의 역사라고 얘기하며 동서고금에 드러나 있는 사랑과 성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책의 결론은? 솔직한 드러냄 이상은 없다. 1만 6000원.
  • [서울광장] 자유의 여신상과 광화문 해태/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유의 여신상과 광화문 해태/김성호 논설위원

    뉴욕 자유의 여신상이 건립 125주년을 맞는 내년 10월부터 1년간 폐쇄된다고 한다. 화재에 대비한 별도의 비상계단을 설치하려 관광객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는단다. 보통 하루 최대 3000여명꼴로 관광객이 찾아들고, 정상부분인 왕관까지 오르겠다는 예약자가 11월까지 밀려 있다는데. 뉴욕의 상징이자 미국 대표 아이콘을 보려는 탐방객들에겐 서운한 소식이겠다. 2001년 9·11테러 때 한 차례 폐쇄된 뒤 2004년 재개방했지만, 건립 125주년에 맞춘 폐쇄 조치는 특별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이 세계적 명성과 인기를 끄는 건 의미와 역사성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증한 선물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장장 9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1886년 지금의 자리인 리버티 아일랜드에 세워진 ‘세계를 밝히는’ 자유의 여신상. 건립 후 16년간 뉴욕항의 등대로 쓰인 이후 1세기에 걸쳐 ‘아메리칸 드림’의 선봉 역을 했으니 이름 값은 톡톡히 한 셈이다. 미국 최대도시 뉴욕의 상징이 자유의 여신상이라면 한국 수도 서울의 상징은 광화문 해태상이다. 많은 이들에겐 존재감도 없지만 서울시가 2008년 공식 선정한 대표상징이다. 광화문 전면 양쪽에 얼굴을 약간 돌린 채 마주 선, 사자를 닮은 형상. 일반적으로 독특한 동물상쯤으로 인식되지만 조선 정궁 경복궁 창건 때부터 궁내 곳곳에 세웠던 수호상이다. 화기(火氣)를 제압한다 해서 불기운이 강한 관악산을 노려본다는 풍수지리설이 회자된다. 고래로 부정한 사람을 보면 뿔로 들이받는 신수(神獸)로 여겼다니, 서울시가 상징으로 꼽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해태상이 서울의 상징이란 사실 말고도 그것에 담긴 의미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경복궁 정문 광화문 앞에 세운 수호의 신수를 말이다. 일제에 의해 격하, 훼손된 조선 정궁 수난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 증거인데도 관심에선 철저히 비켜난 소외의 상징이다. 이 땅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뒤 경복궁 구석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면서 거듭 손상된 천덕꾸러기. 박정희 정권 시절 광화문 앞에 다시 세웠다지만 원 자리에선 멀었고 경복궁 복원공사로 또 옮겨졌다가 지난 15일 복원된 광화문 공개와 맞물려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광복절 65주년 기념식 식전행사로 성대히 열린 광화문 현판 제막식에서도 그 수호상인 해태상은 관심 밖이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의 상징이라는 위상이 무색하다. 125년 만에 방재설비 설치를 이유로 폐쇄되는 뉴욕 상징 자유의 여신상과 145년 만에 제자리에 복원된 서울 상징 광화문 해태상.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의 근황을 알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복원사실조차도 감감한 해태상의 대비가 씁쓸하다. 따져보면 독립기념 선물에 불과한 자유의 여신상과 우리 자신의 정신이며 삶의 양식이 밴 문화재 해태상 중 어느 것이 더 값질까. 19세기말 20세기초반 외국인이 촬영해 남긴 서울의 풍경사진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광화문 해태상이다. 한 세기 전 이미 서울의 상징이었던 우리만의 문화재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세태가 서럽지 않은가. 문화재의 복원은 외양 복구에 그치지 않는 정신의 부활이다. 화려한 모습의 환원을 만족해하고 반길 게 아니라 어두운 역사의 그늘을 챙기자는 말이다. 서울의 상징 해태상을 들여다보자. 아니, 수도 복판에 어렵사리 다시 선 수난과 오욕의 상징, 해태상만이라도 찬찬히 뜯어보자. 광화문 현판 제막식에서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복원된 한국역사의 아이콘(광화문)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할 것”이라고 했다. 번듯한 외양에 가려진 소외의 천덕꾸러기가 더 없는지 찾아볼 일이다. 시비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 해태는 왕의 재판이 공정하게 행해지는 시대에 나타난다고 한다.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자고나면 불거지는 비리와 불·탈법의 혼탁함 속에서라도 해태상을 한번 쳐다봄이 어떨지….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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