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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FC 오성진, 발목부상.. 아쉬운 하차

    청춘FC 오성진, 발목부상.. 아쉬운 하차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오성진이 발목 부상으로 청춘FC에서 하차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오성진은 개인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넘어졌다. 오상진은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팀 닥터는 “오성진 선수의 세 번째 중족골에 골절이 새겼다. 2/3 가까이 뼈가 금이 가있다”면서 “반복적으로 힘이 집중이 되면서, 여러 번의 과정이 거쳐서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는 “5개월 정도의 재활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결국 오성진은 ‘청춘FC’를 떠나기 위해 짐을 쌌다. 동료들의 위로에 오성진은 “나는 상관없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하냐. 정말 좋아했다”라며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청춘FC 오성진 개인훈련 중 발목부상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개인훈련 중 발목부상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개인훈련 중 발목부상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청춘FC’ 오성진 선수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팀에서 하차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오성진이 발목 부상으로 청춘FC에서 하차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성진은 개인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넘어졌고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팀닥터는 “오성진 선수의 세 번째 중족골에 골절이 새겼다. 2/3 가까이 뼈가 금이 가있다. 반복적으로 힘이 집중이 되면서, 여러 번의 과정이 거쳐서 생긴 것 같다. 5개월 정도의 재활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오성진 선수는 “어떻게 하냐”며 엎드려 오열했다. 청춘FC 동료들은 그를 걱정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성진은 “나는 상관 없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하냐. 정말 좋아했다”며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청춘FC 오성진 하차 “엄마 어떻게 하냐” 팀닥터 진단에 오열

    청춘FC 오성진 하차 “엄마 어떻게 하냐” 팀닥터 진단에 오열

    청춘FC 오성진 개인훈련 중 발목부상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청춘FC’ 오성진 선수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팀에서 하차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오성진이 발목 부상으로 청춘FC에서 하차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성진은 개인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넘어졌고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팀닥터는 “오성진 선수의 세 번째 중족골에 골절이 새겼다. 2/3 가까이 뼈가 금이 가있다. 반복적으로 힘이 집중이 되면서, 여러 번의 과정이 거쳐서 생긴 것 같다. 5개월 정도의 재활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오성진 선수는 “어떻게 하냐”며 엎드려 오열했다. 청춘FC 동료들은 그를 걱정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성진은 “나는 상관 없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하냐. 정말 좋아했다”며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청춘FC 오성진, 발목 부상으로 하차 “엄마는 어떡해” 오열에 母 “할 거 다했으니 괜찮다”

    청춘FC 오성진, 발목 부상으로 하차 “엄마는 어떡해” 오열에 母 “할 거 다했으니 괜찮다”

    청춘FC 오성진, 발목 부상으로 하차 “엄마는 어떡해” 오열에 母 “할 거 다했으니 괜찮다” ‘청춘FC 오성진’ 청춘FC 오성진 선수가 발목 부상으로 결국 팀을 떠났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오성진이 발목 부상으로 청춘FC에서 하차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오성진은 개인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넘어졌고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의사는 “오성진 선수의 세 번째 중족골에 골절이 새겼다. 2/3 가까이 뼈가 금이 가있다”면서 “반복적으로 힘이 집중이 되면서, 여러 번의 과정이 거쳐서 생긴 것 같다. 5개월 정도의 재활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의사의 말에 오성진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오성진 선수는 “어떻게 하냐”며 엎드린 채 오열했다. 결국 오성진은 ‘청춘FC’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짐을 쌌고, 선수들이 다가와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두의 위로에 오성진은 “나는 상관없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하냐. 정말 좋아했다”라면서 오열했다. 이에 오성진 어머니는 눈물을 쏟으면서도 “괜찮아. 할 거 다 했잖아”라고 아들을 다독여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사진=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방송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청춘FC 오성진 하차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하차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개인훈련 중 발목부상 “엄마 어떻게 하냐” 오열 ‘청춘FC’ 오성진 ‘청춘FC’ 오성진 선수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팀에서 하차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오성진이 발목 부상으로 청춘FC에서 하차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오성진은 개인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넘어졌고 응급처치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팀닥터는 “오성진 선수의 세 번째 중족골에 골절이 새겼다. 2/3 가까이 뼈가 금이 가있다. 반복적으로 힘이 집중이 되면서, 여러 번의 과정이 거쳐서 생긴 것 같다. 5개월 정도의 재활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오성진 선수는 “어떻게 하냐”며 엎드려 오열했다. 청춘FC 동료들은 그를 걱정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성진은 “나는 상관 없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하냐. 정말 좋아했다”며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문명충돌 시대의 오폭/구본영 논설고문

    오폭(誤爆)은 영어로는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라는 기발한 관용어로 표현된다. ‘(적이 아닌) 친구를 쏜다’는 뜻이다. 물론 실제 상황이 되면 엄청난 비극일 뿐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MSF)’ 병원이 탈레반과 교전 중인 미군에 의해 폭격당한 게 그런 경우다. 스무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주(州)의 MSF 외상치료센터가 공습 목표가 된 배경을 놓고 주장이 엇갈리긴 한다. 쿤두즈 주지사 서리는 외신 인터뷰에서 “병원이 명백히 탈레반의 공격 기지로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MSF 측은 환자 105명과 의료진 80여명이 있었을 뿐이라며 탈레반의 병원 침입 사실을 부인했다. 이런 공방에도 불구하고 국제 여론은 병원을 폭격한 미군에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MSF는 세계 최대의 비군사·비정부 긴급의료구호단체다. 인종과 이념, 종교를 초월해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헌신적 의료 활동을 펼치면서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등 미 수뇌부도 애도와 함께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중동에서 오폭으로 인해 애꿎은 희생자가 늘어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아프간에서만도 2009년 5월 미군의 공습으로 14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최첨단 무인기를 동원한 폭격으로 전투 요원들의 사망 가능성은 줄지 모르나 민간인 사상자는 외려 늘어나는 것도 현대전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피아 구분조차 어려운 전장이라면 민간인 사망자가 줄어들긴 어려운 구조다. 아프간은 물론이고 이라크와 시리아 등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슬픈 운명이다. 며칠 전 러시아가 수니파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한다더니 외려 시리아 반군의 거점을 타격해 큰 피해를 준 게 그 전조다. 가뜩이나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이 늘어나는 근인(根因)은 뭘까. 종파와 민족, 그리고 이념이 난마처럼 뒤엉킨 문명충돌의 현장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일찍이 미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국제 분쟁은 문명 간 충돌 양상을 띨 것이라고 ‘예언’했다. 1996년 저서에서 “이념 갈등이 사라진 자리를 서구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이나 유교 문명권의 충돌로 대치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요즘 중동 사태를 보면 문명충돌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슬람 문명권인데도 사분오열된 종파끼리 더 격렬히 싸우고 있으니…. 소수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에 맞서 수니파 중심의 반군과 IS가 3각 혼전을 벌이고 있는 시리아를 보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은 반군을 지원하는 반면 러시아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돕고 있다. 이 와중에 시리아 민간인들의 질곡은 깊어만 가고 있는 게 비극의 본질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노비 비석부터 천연기념물 숲까지… 옛이야기 따라 도는 전남 함평 한 바퀴

    노비 비석부터 천연기념물 숲까지… 옛이야기 따라 도는 전남 함평 한 바퀴

    시골 어느 마을이건 옛이야기 한 자락 전해오지 않는 곳은 없을 겁니다. 대개 이야기의 얼개나 결말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전남 함평은 좀 다르더군요. 마을 곳곳마다 무슨 이야기들이 그리 많던지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습속으로 이어지고, 이야기 담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을도 있었습니다. 함평은 그렇게 전설 따라 돌아야 제맛인 듯합니다. 해보면 모평마을을 먼저 찾는다. 함평 북쪽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자는 뜻이다. 파평 윤씨 집성촌인 마을에 들면 수벽사가 먼저 객을 맞는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은 고려 장수 윤관(1040∼1111)을 모신 사당이다. 그 옆 제각에는 열녀비가 있다. 정유재란 때 남편이 왜병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막으려다 목숨을 잃은 신천 강씨를 기리는 비다. 더 흥미로운 건 제각 옆의 이끼 낀 비석이다. 키 작고 볼품도 없지만 사연은 절절하다. 신천 강씨 부부가 죽고 어린 아들만 남자 충노(忠奴) 도생과 충비(忠婢) 사월 부부는 주인의 아들을 보살피고 키워 과거급제까지 시켰다. 아들은 노비 부부의 비를 세우라 유언을 남겼고, 파평 윤씨 문중에서는 여태껏 노비에게 제를 올려주고 있다고 한다. 모평마을은 한때 고택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함평 하면 모평마을을 연상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소 적막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둘러볼 곳은 여전히 많다. 천년 세월을 넘어선 안샘과 산비탈에 고즈넉하게 터를 잡은 고택 영양재, 귀령재 등이 마을의 명물. 해보천을 따라 인공방풍림도 조성돼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 숲이다. 저물녘이면 해보천 위로 물안개가 흐르고 늙은 나무들 사이로 해가 진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굽어보는 모습도 멋들어지다. 영양재에 오르면 저만치 해보천이 반짝이고 마을 숲과 어우러진 임곡정이 도드라진다. 조선시대 천석꾼의 집이었다는 김오열 가옥과 파평 윤씨 제실인 임천정사도 멋스럽다. 영양재 옆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마을 뒤를 돌아가는 숲치고는 제법 깊다. 오죽(烏竹)군락지와 야생죽로차밭, 편백나무, 왕대나무, 조릿대 숲을 줄줄이 지나 마을 뒤편 정자로 이어진다. 마을에서 가장 이름난 집은 모평헌(牟平軒)이다.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근 후 15년 동안 건조시킨 소나무로 지었다는데, 견뎌낸 세월이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 집 앞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샘물’ 안샘이 있다. 옛 관아의 우물로 사용됐던 샘인데, 조성된 지 1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여태 한번도 마르지 않았다는 샘물은 임천산의 대나무와 야생차 수액이 흘러들어 물맛 좋기로 소문 났다. 모평마을에서 밀재가 멀지 않다. 영광과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 근동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새벽녘이면 옅은 안개와 어우러져 인상적인 해돋이 장면이 펼쳐진다. 밀재휴게소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용천사도 가깝다. 가을이면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는 절집이다. 지금 꽃무릇은 끝물이고 맨드라미 등 가을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대전리 수문마을로 넘어간다. 함평만에 접한 갯마을로 일년에 한 번 열어보는 물항아리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들머리는 ‘옷밥골재’다. 마을 할머니가 일러주는 고개의 유래가 기막히다. “여그가 땅도 좋고 물도 걸어. 긍께 숭년(흉년) 걱정이 없고 옷도 밥도 절로 난다 그말이여.” 이런 유래를 한자로 단순하게 표현하자니 식의동(食衣洞)이란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 되고 만다. 항아리는 고개 넘어 파출소 앞에 묻혀 있다. 각각 상촌, 중촌, 하촌이라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물항아리가 묻혀 있다. 액운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사연은 이렇다. 옛날 한 스님이 적당한 절터를 찾다 옷밥골재 아래 펼쳐진 마을을 보게 됐다. 첫눈에 명당 자리를 알아본 스님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으나 곧 앞산 자락에 화귀(火鬼)가 서려 있는 걸 확인하고는 탄식하며 돌아가려 했다. 이때 마을사람들이 스님에게 화를 막을 방법을 물었고, 스님은 “산마루에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바닷물과 우물물을 반반씩 넣은 뒤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 보라”고 일러줬다. 주민들은 스님의 주문대로 항아리 세 개를 묻고 물을 채운 뒤 일년을 기다렸다가 매년 2월 초하루에 뚜껑을 열었다. 이게 ‘불맥이제’의 시작이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양의 물을 넣어두는데도 막상 뚜껑을 열면 항아리마다 물의 높낮이가 다르다고 한다. 이때 수위가 가장 낮은 마을이 그해 각별히 조심한다는 의미에서 ‘불맥이’를 연다는 것이다. 이 습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천연기념물에 담긴 이야기도 전해온다. 대동면 향교리에 있는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으로 천연기념물 제108호다. 숲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향교리는 이름 그대로 향교가 있는 마을이자 대동면 소재지다. 왕을 모실 만한 명당터라 알려져 욕심 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공자를 모시는 향교가 앉아야 지기(地氣)에 맞다 해서 향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한데 향교터 남쪽의 신흥동 뒷산이 화국형(火局形)인 것이 문제였다. 풍수사들은 화국을 누르려면 수국(水局)을 만들어야 한다며 향교와 화산 사이에 숲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일대에 팽나무, 느티나무 등 수림 조성에 적합한 나무가 많아 이를 향교 앞에 옮겨 심었다. 이처럼 길가나 도로변에 줄처럼 길게 심어져 가로수 역할을 하는 나무들을 줄나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나무는 무안 청천리 줄나무와 함평 등 두 곳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도 향교와 신흥동 사이 300여m에 걸쳐 40여 그루의 늙은 나무가 남아 있다. 숲그늘이 제법 깊어 쉬어가기 딱 좋다. 이 밖에 대동면 덕산리의 수호신인 ‘아차동 미륵할머니’, 물레방앗간 집 딸 돈내가 마을과 부모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나산면 ‘돈내보’, 효자의 전설이 깃든 신광면 ‘장산들 백비’ 등도 묶어 돌아볼 만하다. 특별한 전설은 없지만 고막천석교(보물 1372호)는 자체로 볼거리다. 고려 때 축조된 다리로 돌을 정교하게 짜맞춘 형태가 퍽 인상적이다. 학교면 고막리에 있다. 저물녘 풍경은 돌머리(石頭) 해변에서 맞는다. 주민들 표현처럼 ‘기가 맥혀 불’ 정도의 해넘이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이름이 독특하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여서 돌머리란다. 돌부리가 해수명당과 연결돼 있다 해서 광산김씨들이 묏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함평만 너머로는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글 사진 함평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61) ▶가는 길:용천사(322-1822), 모평마을(323-8288) 등을 먼저 보겠다면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다소 빠르다. 영광읍내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함평 해보면의 해보교차로까지 간 뒤 옛 24번 국도로 접어들면 모평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공주서천고속도로 함평나들목으로 나와 영광 방향 23번 국도, 838번 지방도 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나비만큼 유명한 것이 함평 소고기다. 한때 전라도 소값을 쥐락펴락했다는 함평 우시장 덕에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금송식육식당(324-5775), 해보면 문장리의 해월축산한우직판장(324-6692) 등이 이름났다. 읍내 함평시장 주변에 음식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육회비빔밥으로 이름난 초록식당(322-5287)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잘 곳:모평마을 모평헌(323-6078) 등에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읍내에 샹젤리제호텔(324-1200) 등 모텔들이 밀집해 있다. 손불면 궁산리 일대는 해수찜으로 유명하다.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된 돌과 삼못초 등 약초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가열한 후 해수가 든 탕에 넣어 데워진 물로 찜질한다. 주포해수찜(322-9489), 함평신흥해수찜(322-9487), 신흥해수찜(322-9900) 등이 있다. 오후 5시 이전에 가야 한다.
  • 노비 비석부터 천연기념물 숲까지… 옛이야기 따라 도는 전남 함평 한 바퀴

    노비 비석부터 천연기념물 숲까지… 옛이야기 따라 도는 전남 함평 한 바퀴

    시골 어느 마을이건 옛이야기 한 자락 전해오지 않는 곳은 없을 겁니다. 대개 이야기의 얼개나 결말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전남 함평은 좀 다르더군요. 마을 곳곳마다 무슨 이야기들이 그리 많던지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습속으로 이어지고, 이야기 담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을도 있었습니다. 함평은 그렇게 전설 따라 돌아야 제맛인 듯합니다. 노비에게 제를 올린다? 해보면 모평마을을 먼저 찾는다. 함평 북쪽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가자는 뜻이다. 파평 윤씨 집성촌인 마을에 들면 수벽사가 먼저 객을 맞는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은 고려 장수 윤관(1040∼1111)을 모신 사당이다. 그 옆 제각에는 열녀비가 있다. 정유재란 때 남편이 왜병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막으려다 목숨을 잃은 신천 강씨를 기리는 비다. 더 흥미로운 건 제각 옆의 이끼 낀 비석이다. 키 작고 볼품도 없지만 사연은 절절하다. 신천 강씨 부부가 죽고 어린 아들만 남자 충노(忠奴) 도생과 충비(忠婢) 사월 부부는 주인의 아들을 보살피고 키워 과거급제까지 시켰다. 아들은 노비 부부의 비를 세우라 유언을 남겼고, 파평 윤씨 문중에서는 여태껏 노비에게 제를 올려주고 있다고 한다. 모평마을은 한때 고택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함평 하면 모평마을을 연상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소 적막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둘러볼 곳은 여전히 많다. 천년 세월을 넘어선 안샘과 산비탈에 고즈넉하게 터를 잡은 고택 영양재, 귀령재 등이 마을의 명물. 해보천을 따라 인공방풍림도 조성돼 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 숲이다. 저물녘이면 해보천 위로 물안개가 흐르고 늙은 나무들 사이로 해가 진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굽어보는 모습도 멋들어지다. 영양재에 오르면 저만치 해보천이 반짝이고 마을 숲과 어우러진 임곡정이 도드라진다. 조선시대 천석꾼의 집이었다는 김오열 가옥과 파평 윤씨 제실인 임천정사도 멋스럽다. 영양재 옆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마을 뒤를 돌아가는 숲치고는 제법 깊다. 오죽(烏竹)군락지와 야생죽로차밭, 편백나무, 왕대나무, 조릿대 숲을 줄줄이 지나 마을 뒤편 정자로 이어진다. 천년간 마르지 않은 샘! 마을에서 가장 이름난 집은 모평헌(牟平軒)이다. 바닷물에 7년 동안 담근 후 15년 동안 건조시킨 소나무로 지었다는데, 견뎌낸 세월이 100년을 훌쩍 넘어선다. 집 앞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샘물’ 안샘이 있다. 옛 관아의 우물로 사용됐던 샘인데, 조성된 지 10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여태 한번도 마르지 않았다는 샘물은 임천산의 대나무와 야생차 수액이 흘러들어 물맛 좋기로 소문 났다. 모평마을에서 밀재가 멀지 않다. 영광과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 근동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새벽녘이면 옅은 안개와 어우러져 인상적인 해돋이 장면이 펼쳐진다. 밀재휴게소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용천사도 가깝다. 가을이면 꽃무릇이 무리지어 피는 절집이다. 지금 꽃무릇은 끝물이고 맨드라미 등 가을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대전리 수문마을로 넘어간다. 함평만에 접한 갯마을로 일년에 한 번 열어보는 물항아리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들머리는 ‘옷밥골재’다. 마을 할머니가 일러주는 고개의 유래가 기막히다. “여그가 땅도 좋고 물도 걸어. 긍께 숭년(흉년) 걱정이 없고 옷도 밥도 절로 난다 그말이여.” 이런 유래를 한자로 단순하게 표현하자니 식의동(食衣洞)이란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 되고 만다. 항아리는 고개 넘어 파출소 앞에 묻혀 있다. 각각 상촌, 중촌, 하촌이라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물항아리가 묻혀 있다. 액운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사연은 이렇다. ‘불맥이제’ 유래는… 옛날 한 스님이 적당한 절터를 찾다 옷밥골재 아래 펼쳐진 마을을 보게 됐다. 첫눈에 명당 자리를 알아본 스님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으나 곧 앞산 자락에 화귀(火鬼)가 서려 있는 걸 확인하고는 탄식하며 돌아가려 했다. 이때 마을사람들이 스님에게 화를 막을 방법을 물었고, 스님은 “산마루에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바닷물과 우물물을 반반씩 넣은 뒤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 보라”고 일러줬다. 주민들은 스님의 주문대로 항아리 세 개를 묻고 물을 채운 뒤 일년을 기다렸다가 매년 2월 초하루에 뚜껑을 열었다. 이게 ‘불맥이제’의 시작이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양의 물을 넣어두는데도 막상 뚜껑을 열면 항아리마다 물의 높낮이가 다르다고 한다. 이때 수위가 가장 낮은 마을이 그해 각별히 조심한다는 의미에서 ‘불맥이’를 연다는 것이다. 이 습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천연기념물에 담긴 이야기도 전해온다. 대동면 향교리에 있는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으로 천연기념물 제108호다. 숲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향교리는 이름 그대로 향교가 있는 마을이자 대동면 소재지다. 왕을 모실 만한 명당터라 알려져 욕심 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공자를 모시는 향교가 앉아야 지기(地氣)에 맞다 해서 향교가 들어섰다고 한다. 한데 향교터 남쪽의 신흥동 뒷산이 화국형(火局形)인 것이 문제였다. 풍수사들은 화국을 누르려면 수국(水局)을 만들어야 한다며 향교와 화산 사이에 숲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일대에 팽나무, 느티나무 등 수림 조성에 적합한 나무가 많아 이를 향교 앞에 옮겨 심었다. 이처럼 길가나 도로변에 줄처럼 길게 심어져 가로수 역할을 하는 나무들을 줄나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나무는 무안 청천리 줄나무와 함평 등 두 곳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도 향교와 신흥동 사이 300여m에 걸쳐 40여 그루의 늙은 나무가 남아 있다. 숲그늘이 제법 깊어 쉬어가기 딱 좋다. 효녀전설 빠지면 아쉽지~ 이 밖에 대동면 덕산리의 수호신인 ‘아차동 미륵할머니’, 물레방앗간 집 딸 돈내가 마을과 부모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나산면 ‘돈내보’, 효자의 전설이 깃든 신광면 ‘장산들 백비’ 등도 묶어 돌아볼 만하다. 특별한 전설은 없지만 고막천석교(보물 1372호)는 자체로 볼거리다. 고려 때 축조된 다리로 돌을 정교하게 짜맞춘 형태가 퍽 인상적이다. 학교면 고막리에 있다. 저물녘 풍경은 돌머리(石頭) 해변에서 맞는다. 주민들 표현처럼 ‘기가 맥혀 불’ 정도의 해넘이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이름이 독특하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여서 돌머리란다. 돌부리가 해수명당과 연결돼 있다 해서 광산김씨들이 묏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함평만 너머로는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글 사진 함평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용천사(322-1822), 모평마을(323-8288) 등을 먼저 보겠다면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다소 빠르다. 영광읍내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함평 해보면의 해보교차로까지 간 뒤 옛 24번 국도로 접어들면 모평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공주서천고속도로 함평나들목으로 나와 영광 방향 23번 국도, 838번 지방도 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나비만큼 유명한 것이 함평 소고기다. 한때 전라도 소값을 쥐락펴락했다는 함평 우시장 덕에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금송식육식당(324-5775), 해보면 문장리의 해월축산한우직판장(324-6692) 등이 이름났다. 읍내 함평시장 주변에 음식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육회비빔밥으로 이름난 초록식당(322-5287) 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잘 곳:모평마을 모평헌(323-6078) 등에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읍내에 샹젤리제호텔(324-1200) 등 모텔들이 밀집해 있다. 손불면 궁산리 일대는 해수찜으로 유명하다. 게르마늄 성분이 함유된 돌과 삼못초 등 약초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가열한 후 해수가 든 탕에 넣어 데워진 물로 찜질한다. 주포해수찜(322-9489), 함평신흥해수찜(322-9487), 신흥해수찜(322-9900) 등이 있다. 오후 5시 이전에 가야 한다.
  • ‘美·수니파 vs 러·시아파’ 일촉즉발… 중동 냉전시대로 회귀하나

    ‘美·수니파 vs 러·시아파’ 일촉즉발… 중동 냉전시대로 회귀하나

    러시아는 1일(현지시간) 반군 연합체인 ‘자이쉬 알-파타’(정복군)가 장악한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이틀째 무차별 공습을 이어갔다. 러시아가 중동에서 군사개입을 단행한 건 198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26년 만이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참석 중 만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른 시일 내에 군사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정부 전복을 노리는 온건파 반군 편에 선 미국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시리아 안보 당국자를 인용한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전투기 4대는 이날 온건파 반군인 자유시리아군과 알카에다와 연계된 알누스라 전선 등이 정부군에 맞서 공동 전선을 구축한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를 집중 폭격했다. 로이터통신 역시 러시아 전투기가 30여 차례 공습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들리브주는 지난 5월 반군이 정부군에게서 빼앗아 점령 중인 지역으로 러시아 전함들이 정박하는 지중해 연안의 타르투스 해군기지는 물론 친정부 세력 중심지인 항구도시 라타키아와 가깝다. 앞서 전날 러시아는 의회의 시리아 파병 요청 승인 직후 온건파 반군 점령지인 북부 홈스 지역에 무차별 공습을 개시했다. 러시아는 극단주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기지 등을 공습 목표로 삼았다고 주장했으나 미 당국자들은 공습 지역이 IS가 아닌 서방의 지원을 받는 온건파 반군들의 기지라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직접 관리하는 반군 단체 기지도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4년 내전’을 앓고 있는 시리아 사태는 러시아의 군사 개입으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400만명 넘는 난민을 양산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위기를 촉발시킨 시리아 내전이 종교·정치적인 역학관계 속에 갈등이 격화되면서 세계 대전으로 확전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외신들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이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당장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가 복잡해졌다. 온건 반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지상군의 시리아 내전 참전을 시사하고 나섰다. 사우디는 “그 결과가 어떨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이란을 싸잡아 비난했다. 알아사드 정권과 IS, 온건 반군 연합체, 쿠르드족 자치정부 등이 얽히고설킨 시리아 내 복잡한 세력구도의 이면에는 4년 전 촉발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자리한다. 주변국의 영향을 받아 촛불을 들고 일어선 시리아 국민들은 무력을 앞세운 알아사드 정권에 무참히 학살당했다. 결국 이듬해부터는 총칼을 든 반군들이 저항의 선봉에 섰다. 현재 시리아는 사분오열된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해 6월까지 알아사드 정권의 정부군이 우세했으나 IS가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눈을 돌리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IS는 국토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여기에 온건파 반군인 자유시리아군이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격인 알누스라 전선과 손잡으면서 10여 개의 다양한 반군 조직들이 군벌처럼 할거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연합체인 자이쉬 알-파타는 지난 봄부터 홈스와 라타키아 인근 전투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잇따라 무너뜨리며 알아사드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또 북부와 서부 일부 지역에선 수백년간 독립을 꿈꿔온 쿠르드족이 자치령을 형성하며 사실상 개별 국가를 이뤘다. 반면 정부군은 수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국토의 3분의1가량을 지키는데 만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리아의 상황을 정치·종교적 이해관계가 얽힌 ‘세계대전’으로 해석한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옛 동·서 냉전구도가 팽팽히 맞선 때문이다. 우선 알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와 중국, 이란의 비호를 받는다. 1970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은 꾸준한 친러·친중 정책으로 정권의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아들인 바샤르는 이 같은 노선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같은 시아파 정권인 이란을 끌어들였다. 이란에 시리아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시리아 영토인 골란고원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맞서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에서 수니파의 세력 확산도 막고 있다. 같은 시아파인 레바논과 이라크의 헤즈볼라 여단, 아프가니스탄의 파테미욘 여단 등이 참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이스라엘은 수니파가 주축을 이룬 온건파 반군이 승리해야 시아파인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을 수 있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알아사드 독재정권과 IS 타파를 이유로 온건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온건파 반군과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터키 정부 등도 서방과 같은 배를 탔다. 서울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눈물 펑펑 흘린 이유?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눈물 펑펑 흘린 이유?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윤보미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폭풍오열 이유?

    ‘위대한 유산’ 윤보미, 폭풍오열 이유?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펑펑 운 사연?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펑펑 운 사연?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오열 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 오열 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가족과 함께 할 시간 3개월..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 가족과 함께 할 시간 3개월..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윤보미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위대한 유산 윤보미, 위대한 유산 윤보미, 위대한 유산 윤보미, 위대한 유산 윤보미, 위대한 유산 윤보미 사진 = 서울신문DB (위대한 유산 윤보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오열 ‘왜?’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오열 ‘왜?’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위대한 유산 윤보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중 폭풍오열..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중 폭풍오열..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윤보미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눈물 펑펑..경악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눈물 펑펑..경악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윤보미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오열한 이유는?

    ‘위대한 유산’ 윤보미, 방송 중 오열한 이유는?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윤보미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엄마를 생각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위대한 유산’ 윤보미, 폭풍오열 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 폭풍오열 이유 알고보니..

    ’위대한 유산’ 윤보미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윤보미는 28일 방송된 MBC 파일럿 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측정 받았다. 윤보미는 남은 인생 약 62년 중 일하는 시간 29년 5개월, 취미 생활 및 혼자 있는 시간 4년 5개월 등을 계산한 결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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