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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도 원망도 눈녹듯

    이산의 아픔이 누군들 더하고 덜하랴마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도 뼛속까지 슬펐던 세월을 뒤로 하고 혈육의 정을나눴다. 지난 69년 12월 납북된 대한항공 YS11호의 여승무원 성경희(55·成敬姬)씨는 26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어머니 이후덕(77·李後德)씨와 32년만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납북 당시23세 처녀였던 성씨는 어느덧 초로가 되어 북에서 결혼한 남편 임영일씨(58·김일성대 교수)와 딸 소영(26),아들 성혁씨(24)와 함께 어머니에게 큰 절을 올렸다. 국군포로 출신인 손원호씨(75)와 김재덕씨(69)도 고려호텔에서 남측 동생 준호씨(67),재조씨(65)와 재회했다.국군포로출신의 상봉은 남북 당국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보도하지않기로 했으나 북한 중앙TV가 이날 저녁 보도해 드러나게 됐다. 성씨 가족처럼 납북자 가족 상봉은 지난해 11월 남측 방문단으로 평양을 찾은 김삼례씨(73)와 87년 납북된 동진호 갑판장 강희근씨(49)에 이어 두번째다.손씨 등 국군포로 출신의 상봉도 지난 2차방문 때 이정석씨(70)와 남측의 형 형석씨(81)의 만남에 이어두번째여서 앞으로 납북자 및 국군포로 출신의 상봉 확대가 기대된다. 이날 3차 이산가족 방문단 200명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만난 평양과 서울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됐다.세번째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이건만 아쉬움은 갈수록 깊어지고,만남에끼지 못한 가족들은 선택된 방문단의 상봉을 눈물을 흘리며지켜봤다. 1,000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은 남북 당국이 한시바삐 상봉의 정례화 및 면회소 설치에 힘을 모아주기를 기도했다. 앞서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고려민항기편으로 서울과 평양에 각각 도착,단체상봉을 가졌다.고려호텔에서 남측 방문단 이후성씨(76)는 노환으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 장오목씨(94)를 51년만에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휠체어에 앉아방북한 손사정씨(90)도 50년만에 북측의 아들 양록씨(55)의큰 절을 받았다. 센트럴시티에서는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아들 구인(求寅·68)씨가 형 구관(求寬·74)·여동생 구원(求苑·66)씨와 만났다.또 피바다가극단 총장인 김수조씨(68)가 조카 복겸씨를만나 이산의 한을 달랬다. 평양 공동취재단·이석우기자 swlee@
  • [사설] 세사람이 남긴 시대의 아픔

    세 사람의 죽음이 우리 시대의 아픔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무거운 과제를 던져 주었다.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 갔다가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삶을마감한 ‘훈 할머니’ 그리고 미국 유학 중 유럽 여행을 갔다가 납북된 한 청년의 사망 소식에 이어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실종된 한 노동 운동가가 10년 만에 유골로 신원이 밝혀진 사실 등이 바로 아픔의 사연이다. 18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보낸 훈 할머니의 한 서린 삶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정신대 시위’가 9년째 계속되고 있다.일본에는 아직도 일제의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는 등의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가 제작되고 있다.한·일양국의 과거사는 몇푼의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일본이 역사 앞에 참회할 때 해결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14년 전 납북됐던 이재환씨는 가족들의 송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과정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그 부모들의오열은 바로 이 시대 분단의 아픔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이기도 하다.다시는 이같은 아픔을 우리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서는 안된다.남북 화해협력정책을 추구하는 것도분단의 아픔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992년 8월 실종된 노동 운동가 박태순씨는 실종된 것이 아니고 열차에 치어 사망한 행려병자로 처리돼 벽제묘지무연고 묘역에 묻혔다가 1998년에 화장된 사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밝혀졌다.특히 이 사건은 사망 당시 지문채취 과정에서 관계기관이 박씨임을 확인하고도 ‘신원불상자’로 처리한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의혹 투성이인 그의죽음에 대해서는 역사의 진실 규명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세 사람이 남긴 이 시대의 아픔은 바로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다시는 이같은 굴곡된역사의 희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일 과거사 정리,남북 화해의 실현,민주·인권국가 건설 등의 과제를 하루빨리 완수해야 할 것이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가작/ 복숭아꽃 살구꽃(II)

    (최 영감,하인을 데리고 등장.)최영감: 내가 오는 줄 알았던 겨? 나 와 있게. 어머니: 오셨어유.별 일 읍으셨지유. 최영감: 와! 내가 별 일 이라두 있었으면 하구 바라는 겨. 어머니: 안유.그랄 리가 있남유.그람은 천벌을 받지유. 최영감: 아,쓸데읍는 소리는 집어 치우구.어쩔 거여? 준빈 된겨. 어머니: (조아리며) 내년 거정 여유를 줌 주시면 어떨까요. 최영감: 이 사람,보게 아주 멋대루내.여지껏 참았으면 고맙다구는 못 할 망정,또,아예 멀찌감치 밀어? 어머니: 돈 구녁이 있어야 지유. 최영감: 그람,남이 돈 빌려 갈 땐,돈 구녁이 빵 뚤려 있었남. 어머니: 참는 김에 주금만 더 참아 주셔유. 최영감: (화를 낸다.) 이 보게 더 기인 야기 할 것 읍내.나 자네랑말시름 할라구 온 것 아닐세.오늘은 결정을 지러 온 거내.이 달 보름 안으루 이 집 이라두 비워 주게….물런 과수원거정 포함 해서데이. 어머니: 증말루 너무 하십니다유.이 엄동 설 안에 쫓아내는 법이 어디 있대유…. 최영감: 나! 그람,이만 간데이….(퇴장.)어머니: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다.)(달자 약초 들고 등장.)달자: 엄니! 어디 불편 하시남유.와,그릇케 힘이 하나두 읍시 서 계세유?어머니: 이 일을 어쩐 다냐? 방금 최 영감이 왔다 갔는디,보름 까정이 집을 비우구 과수거정 달란 데이. 달자: 설마유.우리가 이자두 못 갚으니깐.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거겠지유. 어머니: 그 냥반이 말 따루 행둥 따루 하는 사람이 절대 안여. 달자: 그렇다구 너무 걱정하지 마세유.무슨 방법이 있겠지유. 어머니: 영,맘이 게운 하지가 안는 걸…. (이때,이우,상빈,등장.)이우: 마침.니,여기 있었냐? 달자: 아직 야학 갈 시간 남았는디. 이우: 그게 아니구 순님이 널 찾길래…. 달자: 순님은 먼 순님이 찾는다구.나 같은 걸 찾을 순님이 어딨 다구. 상빈: 지가,달자씨! 한티 볼 일이 있어유. 달자: 지는 유,댁이 누군지두 모루구.볼 이유두 분명치 안 내유. 이우: 야아,아랫마을 김 부자 있잔아…. 달자: 그 집 하구 나하구 먼 상관여.먼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간내유. 상빈: 지는 유,고모 집에 처음 왔을 때 부텀.달자씨를 그림자처럼 지켜 왔내유. 달자: 이 사람이,시방무슨 건방을 떨구 있는 겨. 이우: 말이 너무 거칠데이…. 달자: 니,누가 시키지두 안은 일 하구 다니구 글여. 상빈: 화 나셨다면 푸세유.고모님이 먼가 크게 실수하신 게 있다구혀서,사과두 드릴 겸 어려운 부탁 하나 청하구 싶어 왔내유. 달자: 그 댁 마님이 실수하신 것 없내유.큰 실수는 이 구데기가 득실득실한 가난이 실수지유.그란께,사과 할 건더기두 없구유.받아야 할건더기는 더욱 없내유.그리구,청이 있다구 했는디,지가,그 쪽 청거정 책임져야 할 조건은 더 더욱이 읍는 것 같은 디유.볼 일이 다 끝났으면…. 상빈: 달자씨는 누구 한 티나,그릇케 자신에 할 말만 하구.무작정 내 팽겨 치시남 유….그건 크나 큰 실내 지유.지는 유,여기에 동냥을온 사람 아녀유.비록,부모 형제 없는 고아나 다름 없어두,처음 대하는 사람 한티거정.지옥 같은 무시당할 수 읍내유. 달자: 이 사람,먼 말이 이다지두 많데이.상대가 듣기 싫다문 싫은 거지.자꾸 이럴거문….더 이상은 못 바 준게.다른 사람 찾아 가세유.좋은 말 나 올 때.후딱 가세유. 상빈: 지는 유,하늘에서천둥 벼락이 떨어 진 대두,이대루는 절대루못 가 내유.아니 갈수 읍내유.맘대루 하세유.끌어내던지….패어 죽이던지.여기서 한 발짝두 움직일 수 없내유.맘대루 혀세유. 달자: 아주,무식이 절절하구먼.이 것,똥 바가지를 뒤 집어 써야 정신이 바짝 들 난 가배.증말루 사람 환장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술 가졌는 가배…. (어머니 부엌에서 함지박 들고 온다.)어머니: 부엌에서 다 들었는디.유난 떨 것 읍데이.말 들어 보는게 머 어립것냐? 들어나 보구 미주를 쓰던가? 장을 담그던가? 하면 될 것아닌 가배.어??거나 저??거나 순님은 순님 아닌 가배. 상빈: 어디 까정 순님 맞아유. 달자: (방백) 어메! 이것 진짝 괴물 중에 증말루 상 괴물 만났는디. 상빈: 엄니! 지가유,장모님으루 모시겄어유.(무릎을 꿇는다.) 달자씨! 지를 줌 구재해 주시면 안 될까유.만일에 거절하신 다면 이길루 곧장 가서 머리를 까겠내 유. 달자: 아,글씨,와,내가 거기를 구재구 나발이 구를 하냐구유. 상빈: 아까두 말했지만,지를 물에서 건져 줄 사람은 달자씨! 뿐이 내요.더 이상 고모 집에서살아 갈 힘이 읍서유.사춘들에 등살에 더는….머던지,허기가 져서 유…. 달자: 그람,고모 집에서 나와 살면 간단 하내유.지는 유,지푸라기가아니라,물에 빠진 사람 건질 인심도 읍내유. 어머니: (방백) 아무리 내 자슥이지만,으라지게 차단게…. 상빈: 막상,고모 집에서 나오문 있을 때가 있어야 지유. 달자: 그람,안- 나오시면 되구유. 상빈: 그란게,달자씨가 지와 혼인만 허락 하시문 날개를 달구 날아가는 거지유.다시 한 번 애원 하내유.지발,지를 불쌍히 여기 신다문…. 어머니: 보다시피,우리 집 구석은 억망 인디.그라구,저 애가 워낙에고집이 쌔 나서…. 상빈: 그런 걱정은 하시지 마세유.지유,고모 집에서 눈치 밥에 콧물을 빠뜨려 먹구 살었지만 두,전쟁 통에도 오루지 달자씨! 만을 생각하며 껌두 팔구,담배두 팔아.울마 안되는 돈이지만 남 몰래 악착같이 모았어유.(안 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내 보인다.) 자유.보세유.이놈에 돈이 사람에 간이랑 쓸개두 뺏는다는 돈…! 여유. 이우: 엄메….호박이 넝쿨채 굴러 왔데이. 달자: 시방 머 하는 겨.돈이면 다들 눈이 돌아 버릴 줄 아는 가배…. 상빈: 달자씨! 지발,지를… 지와,힘을 모으면 저 과수원도 금방 갤거구만유.희망을 주세유.그려서,온 천지가 복숭아꽃 살구꽃으루 흐드러지게 만들어 바유우. 달자: ……. 어머니: 난 모르겠네.(퇴장.)상빈: 달자씨! 지발유.(매달린다.)달자: 이러지 말 아유.(저 만치 물러선다.) 사흘 동안 생각 하구…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상빈: (야호! 야호…) 만새,만새,만만만새…! (모두 퇴장.)(안방,달석,학교 갈 채비를 하며 종지를 구석에 놓는다.)아버지: 핵교 가는 겨? 달석: 야.와-유.요강 비워 오까유? 아버지: 근디,이게 먼 냄새여?달석: 야,농약 여유.쥐새끼가,지,딱지랑 교과서를 다 찢어 놓구 극성 대서유.쥐약이 읍어서,엄니랑 누이 몰래 헛간에서 농약 쪼금 딸아왔어유.우리 집 같은디,머 먹을 것이 있다구.….오늘,어디,혼 줌 나바라.핵교 댕겨 오께유.(퇴장.)아버지: 공부 잘 혀야 뎌. 아버지: (방백) 내가 너무 호강에 지쳐 오래 살았구먼.처 자슥 고상시켜 가며,집 안 기둥 까정 뽑아 놓구 말여….더 살아서 멋 하겠나.이 만큼 산 것두 다 처 자슥 열성 여….두 딸년거정 팔아 묵는 꼴이니…? 먼,염치루 이 시상을 더 살겨….(인기척 소리 들린다.)아버지: (종기에 담긴 농약을 들어 마시다.)어머니: 이게 먼 남사여 (종기에 담긴 농약 냄새를 맡는다.)종기 깨지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 같다. 어머니: 이게 먼 일여! (아이구.) 이 인간아,이렇게 갈라면 그 동안와! 고상을 사서 한 거래유.(시체 위에 엎드려 통곡한다.)달자: 엄니 먼 일 여유. 어머니: 니그,아부지가…. 달자: (시체 얼굴에 뺨을 대며 오열한다.) 아부지! 이게 왼,일 여유. 찌끔만 더 있으면….뒤겉,과수원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필 틴디….여짓거정두 고상고상 했는디.와! 그러셨슈.와,와! 지두,함께 대려 가셔유……지두유. (모녀의 자그락 거리는 울음,울음,울음.소리,소리… 하늘과 땅을 맞닿게 하면서… 차츰차츰… 암전.) 박광순
  • 대한매일 선정 국내 10대뉴스

    ♠NGO 총선 낙천·낙선운동. 975개 지역·직능 단체가 총선시민연대를 구성,4·13총선에서 3개월가까이 낙천·낙선운동을 펼쳐 우리나라 시민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후보 가운데 86명을 낙선자로 선정,59명을 낙선시킴으로써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운동을 이끈 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 사무처장)씨,최열(崔冽·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씨 등은 비정부기구(NGO)스타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제2경제위기론 확산. 경기과열 논란을 빚은 우리경제는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제2의 위기론’으로 급반전됐다.소비·투자심리는 급랭됐고,기업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한해 내내 몸살을 앓았다.회사채·주식시장이 모두 침체됐다,특히 연말 만기가 몰린 회사채는 기업의 돈가뭄을 부추겼다. 현대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왕자의 난’이후 2∼3개월마다 반복된현대건설의 자금난은 시중의 유동성 위기를 증폭시켰다. ♠IMT-2000·위성방송 선정. 올해 가장 주목을 끈 대형 사업권 경쟁은 단연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과 위성방송이었다.첨단 디지털기술이 집약된 21세기 정보사회의 핵심사업이기 때문이다.관련업계는 한해동안 사업권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연말 사업자 발표에서 IMT-2000은 SK텔레콤과 한국통신 주도의 컨소시엄으로,위성방송은 한국통신 중심의 컨소시엄에돌아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8월15일 한반도는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혈육과 생이별해 한을 품고살아온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50년 만에 서울과 평양에서 재회,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6·15 남북 공동선언 합의사항인 이산가족 방문단교환은 8월과 11월 두차례 이뤄졌다. 내년에는 이산가족 생사·주소확인,서신교환 외에도 상봉 정례화를 위한 면회소도 설치될 전망이다. ♠의약분업 파동. 의약분업이 천신만고 끝에 지난 7월1일부터 닻을 올렸다. 그러나 약사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료계와 약사회의 갈등으로 시작단계부터 파행으로 얼룩졌다.특히 의료계의 집단 휴·폐업은 국민의공분을 사기에 충분했고,정부의 대책 미흡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않았다. 환자들은 수술이나 치료를 제때받지 못해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벤처의 몰락. 희망차게 새 천년을 시작했던 벤처업계는 올해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었다.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 거품이 걷히면서 한때 300선을 바라봤던 코스닥지수는 50선으로까지 밀려났다.투자위축에 따른 극도의자금난으로 숱한 기업이 도산하거나 인수합병됐다.10∼11월에는 정현준,진승현씨 등 젊은 벤처인들의 불법대출 등 비리가 드러나면서 도덕성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 2000년 6월13일.분단 반세기만에 한반도 역사가 다시 씌어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뜨겁게 끌어안는 순간 남북 7,000만 겨레는 감동으로 전율했고,전 세계도 숨을 죽였다.두 지도자는 2박3일 동안 흉금을 터놓고민족과 통일을 논의했다.그 결과 평화 정착과 이산가족 교류 등을 골자로 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영화 'JSA' 열풍. 올 하반기 극장가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제작 명필름)의 독무대였다.지난 9월 개봉후 첫주말 최다관객,최단기간 서울관객200만명 돌파,서울 최다 개봉관 등등.연내에 ‘쉬리’의 서울관객 최다동원기록(244만8,399명)까지 깰 것으로 예상된다. ♠섹스비디오 파문. 인기정상의 여가수 백지영의 섹스비디오 파문은 올해 최고의 ‘사이버 충격’이었다.11월 인터넷에 뜬 섹스비디오는 집단관음증 속에 삽시간에 일파만파를 일으켰으며 사생활침해와 인권유린에 관한 논란을불러일으켰다.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월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노벨상 수상국 대열에 합류시켰다.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다섯 번의 죽을 고비와 6년 간의 옥고,그리고 10년이 넘는 망명과 연금 등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민주화를 향한 장정(長程)의 산물이었다.
  • [기고] 민주화세력 재결집 시켜라

    현재 국민의 정부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국회에서 여당이 야당을 주도하기보다는 야당이 정부를 질타하는 호령만이 들린다.주요 신문은 각종 경제지표를 들먹이면서 경제위기를 과장하는 등 DJ정권 흔들기에 나섰다.지식인사회에는 정부에 대한 냉소 섞인 분위기만이 팽배해 있다.의약분업 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사회 이익집단들은 제몫을 찾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이러한 상황에서 집권 민주당도 방황하는 민심을 추스르기는커녕 사분오열해 내분에휩싸여 있다. 우리 사회의 난맥상은 그 원인을 기본적으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적대적 갈등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1960년대 후 IMF위기를 맞기까지 한국은 국가 주도형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주도한 것은 개발독재를 당연시한 산업화세력이었다.이들은 민주주의·인권·사회복지 등 기본가치를 희생하고 오로지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매달린 채,반공을 국시로,호남을 배제한 영남 중심의 패권적 지역연합을통해 한국을 35년 넘게 지배해왔다.이에 대항해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전제로 호남·충청 소외지역 연합을 구축,마침내 집권에 성공하였다. 민주화세력의 집권은 산업화세력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권력금단 현상을 야기하였다.민주화세력의 집권은 이권 및 지역민원,각종 공직인사 청탁,사회 내부의 인사문제 개입 등에 익숙한 산업화세력에게는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경천동지의 일인 것이다.더욱이 산업화세력이몇십년 동안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매도한 DJ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으로 보편타당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그러므로 산업화세력에게 국가권력 탈환은 자괴감을 다스리고 그동안 지속해온 각종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이들의 반DJ정서는 국정운영 오류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발전의 대승적 차원이 아니라,국정운영실수를 구실로 국가 전체를 흔들고 빼앗긴 정권을 되찾는 데 뿌리를두고 있다.여기에 산업화세력의 특권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주요 신문들은 언론 자유란 미명 아래 하이에나처럼 민주화세력을 물어뜯는,그야말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상태가 바로 우리사회의 현주소 아닐까?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도래한 데에 민주화 집권세력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산업화세력의 ‘죽기살기식’ 권력 금단현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설픈 동진정책으로,절치부심하면서 날을 세우는 산업화세력을 껴안고자 했다.여기에다 집권세력은 개혁주체 세력 형성은커녕,자기 사람 심기와 미래의 권력추구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이로 인하여 권위주의 시대에 언론지상에 오르내린 인사가 민주주의 시대에 또다시중책을 맡는 시대착오적인 결과가 발생하였다.이러한 인사정책으로민주화세력의 대부분은 실망하고 정권의 냉담자로 변하였다. 현 집권층의 또다른 문제점은 사회·경제·언론·문화 부문에서의 산업화세력의 헤게모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여론 악화는걱정하지만 어디에서 여론이 생성되는지에는 그야말로 캄캄 무식이다.여론을 주도하는 계층이 지식인이라는 사실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국민여론이라는 용어는 알지만 그 생성지인 시민사회 개념은 그들에게 아주 낮선 용어인 모양이다.그야말로 시민사회 정책은 불모에 가깝다. 호랑이 잡으려고 호랑이굴에 간,과거 보수적 민주화세력인 YS가 산업화세력에게 필요한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화장’만 해주고 산업화세력(호랑이)에게 잡아먹힌 IMF위기가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화세력은 박정희 신드롬과 정권탈환욕에 사로잡혀 있을 뿐 그들에겐 마땅한 국가발전 대안이 없다.다만 반DJ,목표 없는 정권탈환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현 집권층이 산업화세력의 비이성적 도전을 저지하려면 정권의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우선 추진하는 한편,개혁과 민주화의 각을 세우고 각 분야별로 흩어져 침묵하는 민주화세력을 재결집해야 한다.민주주의에서 결집된 힘이 있어야 권위주의 형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세력에게 악용되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지킬수 있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 金삼례씨 납북아들 강희근씨 13년만의 재회

    “통일되면 오거라,이 에미는 꼭 기다릴 테니…” 13년 만에 재회한 납북 아들에게 김삼례(73)할머니가 남긴 작별 인사였다.2일 오후 남행(南行) 비행기에 오르고서도 눈물은 하염없이흘렀다.평양 땅을 언제 다시 밟을 것이며 아들 희근이가 언제 남으로돌아올지 막막해서였다. 김 할머니가 조기잡이 어선 동진호 갑판장이던 강희근씨(49)의 납북(87년 1월)을 안 것은 꼬박 1년 뒤였다.“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다”며 가족들이 쉬쉬 했기 때문이다. 한의 세월을 보내던 지난 6월27일 손자 현문(16·교동종고 1년)이가 “약주만 드시면 서럽게 우시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편지를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보낼 때만해도불가능처럼 여겨진 상봉이었다.그런 탓인지 지난달 30일 고려호텔 상봉장에서 만난 희근씨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물은 첫 마디가 “현문이는요”라는 남쪽 아들의 소식이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재회의 2박3일간 김 할머니는 아들로부터 못다한효도를 받았다.북한에서 새로 맞은 며느리 김용화씨로부터 수박색 한복을 선물 받고 손자 현민(13)이도 만났다.북의 손자가 절을 하고 지팡이를 선물할 때는 울컥 눈물도 쏟아졌다.이틀째인 1일에는 생일상도 차려 받고 네 식구가 오순도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아들은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다.어떻게 지냈느냐는 어머니 말에 희근씨는 “훈장,시계도 받고 지금은 공업직물공장에 다니고 있다”며“두달 전에는 노동당원도 됐다”고 칠순의 노모를 안심시켰다.김 할머니를 취재하던 북한 기자는 동진호사건이 ‘납치’가 아님을 계속강조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별의 날이 밝았다.고려호텔을 떠나기 전 20분간의 짧은 만남에서 희근씨는 “현문이 공부 좀 시켜주세요.아빠 걱정 말라고 해요” “울지 말고 얼굴 한번 대보세요.얼굴…”이라고 울먹이며 노모의 볼을 비비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김포공항에서 “아들을 만나 너무 좋았지만 우느라고얘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움을 털어놓고 허위허위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집으로 향했다.차창 밖의 낯익은 풍경을 바라보며 남의 논 짓고 엄마도 없는 손녀(20)와 손자를 키우며 살아온 13년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 김 할머니였다. 전경하 홍원상기자 lark3@
  • 2차 남북이산상봉/ 병상 金기창화백·北동생 ‘20분 대면’

    “형님,저 기만이에요.제가 왔어요.일어나서 저 좀 보세요.제 목소리 들리세요…” 산소호흡기를 단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88) 화백은 힘겹게 눈을 떴다.청력을 잃어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분명 동생의 얼굴이었다. 1일 오후 3시30분 서울 삼성의료원 19층.북의 화가 동생 기만(基萬·71)씨의 오열에 남의 형 김 화백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맞았다.49년만이었다. 병실에 들어선 기만씨는 “못난 동생을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를 되뇌었다.김화백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북에서 개선장군이 되어 왔습니다’라고 수첩에 써 보여줬다. 병상에 누운 김화백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을 바라봤다.몸이불편해 거동도 힘들고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서로 꽉 움겨잡은 손으로마음과 마음은 전해지고 있었다. 반세기 동안 쌓인 그리움과 한은 눈물이 되어 그치지 않고 흘렀다. 지난 4년간 패혈증과 고혈압에 시달리던 김화백은 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달 17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삼성의료원 중환자실에입원했다.중환자실에서는 면회가 어려워 1일 오전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기만씨는 김화백의 셋째 동생.서울시립미술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다가 51년 월북했다.김화백은 85년 이산가족 상봉 당시까지 동생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지 않았다.당시 북에 다녀온 사람이 소식을 전해준 뒤 동생들이 북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기만씨는 북의 누이기옥씨(72)가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쓴 편지를 김화백의 손에 쥐어줬다.‘어렸을 때 영양실조로 눈이 멀었던 적이 있는데 큰오빠(김화백)가 업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녀 눈이 나았다.그래서 지금 의사가됐다’는 내용이었다. 김화백의 아들 완씨(51)는 족보와 사진 등을 작은아버지에게 보이며형제상봉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김화백은 71년작 ‘승무’와 자신의작품 5,000점 모두가 담긴 전작도록(全作圖錄)을,기만씨는 ‘태양을따르는 마음’이라는 수묵화 4점을 선물로 주고받았다.남과 북을 달리하며 유명 화가가 된 형제의 상봉은 허무할 만큼 짧은 20분만에 끝났다. 이송하기자 songha@
  • 2차 남북이산상봉/ 어떤 선물 주고받았나

    어제는 치수 재고,오늘은 양복 사고… 이인호씨(79)는 1일 아침 일찍 양복점에 가서 북에서 온 동생 용호씨(69)에게 선물할 양복을 샀다.오전 10시 개별 상봉장인 서울 롯데월드호텔에 허겁지겁 양복을 들고 나타난 인호씨는 “내년 1월이 동생 칠순이라 어제 단체 상봉때 몸 치수를 재서 급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날 개별 상봉때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정성이 담긴 갖가지 선물을주고받았다.남쪽 가족들은 북에서 온 가족에게 한복 내의 양말 칫솔치약 비누 수건 시계 카메라 등 생활용품을 주로 선물했다.반지 귀고리 등 귀금속이나 영양제 반창고 등 의약품을 건네기도 했다. 북쪽이산가족들은 주로 북한산 술과 담배 과자 등을 남쪽 가족에 선물했다.구월산 전경이 담긴 비디오테이프,전통민요 음악 테이프,북한 달력,잡지,김일성 배지 등을 갖고 온 가족도 있었다. 특히 홍응표 평양시 직물도매소 지배인(64)은 자신이 거래하는 공장에 특별 주문한 비단 3필과 딸(미술창작사에 근무)이 그린 금강산 전도를 남쪽 누나 양순씨(74)에게 전해 눈길을 끌었다.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선물 아닌 선물도 눈에 띄었다.탤런트 김영옥씨(63)의 북쪽 오빠 영환씨(70)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유품인 반지와 목걸이 스웨터 등을 전해 받고 오열했다. 일부 가족들은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즉석에서 서로 바꿔 차는 등 못다한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사설] 이산의 恨 모두 풀자면

    분단 반세기 동안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어제 꿈에 그리던 혈육과 만났다.100세나 된 남쪽의 어머니는가슴속에 홍안의 청년으로 묻어두었던 북녘의 늙은 아들을 부여잡고오열했다.이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풀어놓은,하나같이 안타깝고 기막힌 가족사는 다시 온겨레의 가슴을 적셨다.우리는 지난 8·15에 이어두번째로 성사된 이번 2차 방문단 교환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데안도한다.이산가족 상봉사업의 정례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1차 방문단 교환 때만 해도 한차례 일과성 이벤트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이나 열기는 1차 때에 비해 아무래도 못한듯 하지만 이산가족 당사자들의 감격이야 매한가지일 것이다.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부담이나 정치적 잡음의 소지를 줄여 상봉사업의지속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끼 만찬 비용에만 1억5백만원이 들었던 지난 8·15 서울 상봉 때의전례가 되풀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나아가 장충식(張忠植) 한적총재의 월간지 인터뷰와 같이 공연히 남북간 분란의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북한측이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는 바람에 장총재가이번 상봉기간 중 해외출장을 떠나는 어색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하는 얘기다. 상봉단 교환방식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이번 행사에 드는 전체 비용을 1차 때에 비해 절반으로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누차 지적한 것처럼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육로 방문 대신 굳이 서해직항로를 선택한 것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당장 평양 순안공항의 짙은 안개로 상봉단을 태운 비행기 출발이 4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불편을 겪지 않았는가. 앞으로 긴 환영행사 등 허례는 줄이고 가족들간 만남은 자연스럽고밀도있게 하는 방향으로 행사 방식을 더욱 개선해 나가야 한다.3차때부터는 호텔 상봉 방식 보다는 고향방문을 하거나 상봉 가족을 동숙(同宿)하게 하는 등 한층 인도적인 방식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이산가족 교류 인프라를 구축할 때라고 본다.상호 방문을 통한 시범적 상봉은 그것대로 규모와 횟수를 늘려가야 하겠지만 우편물 교환소와 상시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남북이 합의해야 한다는 뜻이다.남쪽에 사는 이산1세대만 해도 123만명이나 된다고 한다.이들이 단 한번이라도 북쪽의 피붙이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매달 100명씩 상봉시키더라도 천년이 걸린다.북측은 상설 면회소라는 이산가족들을 위한 ‘만남의 오작교’를 놓는 데 적극성을 보이기를 바란다.
  • 2차 남북이산상봉/ 단체상봉·만찬스케치

    ‘오마니…’‘아버지 살아계셨군요’.50년의 기다림은 눈물이 되고 오열이 되어 남북으로 흘렀다.30일 서울 반포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과 평양 고려호텔은 단체상봉이 시작되자마자 얼싸안은 가족들의흐느낌과 절규가 뒤섞인 눈물바다로 변했다. ■서울 김책공대 강좌장 하재경씨(65)는 남의 가족들에게 양복에 건메달을 보여주며 “박사 메달”이라고 설명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동생 기만씨(71)는 형의 병세에 관심을 나타내며 “형님 드리려고 조선화 4점을 가져 왔다”고 설명했다.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은 곳곳에서 북측 방문단들에게 ‘혹시 내 가족을 아느냐’고 물어보는 모습이었다.한치기씨(66·서울 신천동)는 ‘흥남 서호,형 지돈,흥남 내호,처남 이춘국,처형 이춘자,서울 한치기·이춘옥’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방북단 버스 앞에서 북한 기자들에게 “가족들을 아는 사람 있으면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김영황 김일성대 교수(69·어문학부)는 누나 옥인씨(81)의 몸을 와락 안은 채 오열속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동생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상봉장은 찾은팔순의 누나도 동생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평양 단체상봉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인민문화궁전으로이동,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량 위원장은 “흩어진 가족,친척 방문단 교환사업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을 발양시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건배를 제의했다. 만찬에는 봉두완(奉斗玩) 남측 단장과 북측에선 량 위원장과 전금진(全今振) 내각 책임참사,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허해룡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머리를 다친 채훈묵씨(82)는 단체상봉장에서 아들 규칠씨(55)가 “싸웠냐고 물어보더라”면서 “너 보려 급히 오다가 다쳤다고 얘기해 줬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앞서 고려호텔에서의 단체상봉에서 방북단에 뒤늦게 낀 김명식씨(89·경기 포천군 화현면)는 조카 정현씨(64)를 만나 부둥켜 안고 통곡했다.그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렇게 너를 만나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면서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남한의 화가 김한씨(72)는 북한의 유명 시인으로 성장한 동생 철씨(67)를 만나 자신이 그린 ‘어린애를 업고 있는 어머니’‘향가(鄕歌)’그림을 선사했다. 조현석 홍원상기자평양공동취재단 hyun68@
  • 2차 남북이산상봉/ 꿈에 그리던 큰오빠 치매 ‘발 동동’

    ‘꿈에도 그리던 큰오빠는 말이 없고…’.남쪽 오빠를 만나기 위해북에서 내려온 서병옥씨(66·여)는 난생 처음 대하는 조카들만 보이고 큰오빠 병상씨는 나타나지 않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모님,저 둘째오빠 아들 준일이에요”.둘째오빠 병서씨(99년 사망)의 아들 준일씨(60·서울 강남구 역삼동)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병옥씨는 그제야 눈물을 터뜨렸다. 5남3녀 가운데 큰오빠 병상씨(88)만 살아있고 모두 사망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특히 큰오빠 병상씨가 치매에 걸려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사실을 알고는 “오빠”를 부르짖으며 오열했다.준일씨는 “큰아버지가 가끔 정신이 돌아오시므로 둘째날 상봉 때는 꼭 모시고 올 것”이라며 고모를 위로했다. 평양에서 두 동생 해조(59)·해범(56)씨를 만난 박해수(朴海洙·71·서울 광진구)씨는 비디오 카메라 등을 활용,이번 상봉을 철저히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해수씨는 평남 신양군 백석리 고향지도까지 구해 고향집 부근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동생들에게 설명해주는가하면 비디오 카메라로 동생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해수씨는 50여장의 친척들 사진을 동생들에게 보여주고 미리 준비한질문지를 보면서 질문하는 등 짧은 상봉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성남 주점화재 ‘생활비 벌려다‘ 주부종업원 참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유흥주점 ‘아마존’화재참사로 숨진 여종업원 6명 가운데 2명이 생활고 속에 자녀 양육비라도 벌기 위해 주점에 취직한 주부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9일 오전 ‘아마존’화재참사로 숨진 여종업원 이모씨(37·서울 강동구 천호2동)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시 수정구 성남병원 영안실에는이씨의 동거남 장모씨(33)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장씨는 “둘째 아들을 잃은 후 큰 아들 학비라도 벌어 보겠다며 주점에 나가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달쯤 전에 앓던 둘째 아들이 끝내 세상을 떠나자 실의에 잠겨 있던 이씨는 아픈 가슴을 추스르고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의 학비를마련하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이씨는 최근 성남시의 속칭 미시촌이라 불리는 유흥주점 ‘아마존’에 취직했다가 결국 변을 당하고 말았다. 이씨와 함께 숨진 종업원 유모씨(37·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3동)도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며 두 자녀를 보살펴 온 주부였다. 4년전 이혼한 유씨는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두자녀를 혼자 키워오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아마존’에 취직해 첫 출근했던 18일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성남병원 영안실에서 유씨의 영정을 지키던 언니(44)는 “두 조카를 데리고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동생이 3일쯤 전에 ‘일자리를 찾아서 이젠 생활이 좀 나아질 것 같다’며 들떠 있었는데 어린 조카들만 남기고 먼저 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오열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남편 잃은 40代아내, 대통령에게 ‘눈물의 편지’

    “남편은 세상을 원망하며 떠났습니다.의사들 파업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남편이 떠나기 전날은 우리가결혼한 지 만 22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피를 토하는 남편을 보며 안타까움에 울기만 했습니다…” 26년째 군생활을 해오다 지난 13일 간암으로 숨진 전명석씨(47)의부인 이활란씨(43·경기도 군포시 금정동)는 25일 남편을 잃기 까지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16절지 6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강원도 삼척 공병대대 인사과에서 근무를 하던 전씨의 몸에 이상이생긴 것은 지난달 10일.배에 복수가 차오고 온몸이 붓기 시작했다. 전씨는 지난달 23일 성남시 분당 국군병원에서 간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시설부족으로 수술을 받을 수는 없었다.그래서 분당과 서울에있는 종합병원 10여곳을 찾아 통사정을 했다.그러나 병원들은 “의료분쟁 때문에 인력이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외면했다. 남편이 결혼 22년 동안 부대일 밖에 몰랐다는 이씨는 “‘의료분쟁중이라도 암환자는 우선 치료해 준다’는 뉴스를 듣고 너무 기뻐하는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면서 “그러나 정부의 발표도,의사들의 약속도 다 거짓말이었다”며 오열했다. 그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남편이 다음 세상에는 의사파업이 없는 곳에서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대통령님,남편이 눈을 편히 감을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사과의 한마디라도 하도록 해주세요.” 지난 15일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을 한 뒤 대전 임시봉안소에 있는 전씨의 유골은 다음달 10일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대한광장] 푸른 하늘을 위하여

    9월의 문화인물로 정해진 시인 김수영의 작품 중에 ‘풍뎅이’란 시가 있다.비교적 초기에 씌어진 시인데 거기에는 소시민적 삶의 어려움과 막막함이 잘 표현되어 있다.시는 목이 비틀려진 풍뎅이가 뒤집어진 채 날지 못하고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 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시의 화자는 그 풍경을 보면서 ‘네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또한 풍뎅이가 그렇게 울고 있어도 ‘소금같은 이 세상은 계속 존속할 것’이라는 절망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누구라도 땅에 누워 통곡하며 울어본 사람은 김수영이 풍뎅이가 등으로 우는 모습에 공감하는 모습에 같이 등이 아프리라.손가락은 잘려 엎어지고 싶어도 엎어질 수도 없고 대신 등을 밀며 그 어딘가로끝까지 밀어붙여야 겨우 살 것 같은 절망감.사는 일이 그렇게 막막하다고 느껴본 일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가 주는 아득한 슬픔에 눈빛이 닿을 곳이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하리라. 아침저녁으로 기온은 내려가지만 낮은 아직 덥다.그러나 오락가락하는 태풍 덕분에 여름으로부터 가을로 성큼 들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들은 온몸으로 빛을 빨아들여 과육에 살을 더하리라.탐스러운 과일을 상에 차려놓고 조상의 음덕을 생각하는 추석도 며칠 남지 않았다.이제 우리는 자신의 고향으로 대이동을 할 것이다.어딘가 갈 데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정처가 있는 것이어서 우리를든든하게 한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명절때 갈 고향이 없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번 추석은 왜 이렇게도 심란한지 모르겠다.분명 50여년간생사조차 몰랐던 혈육들을 만나고 서로의 얼굴을 만지며 오열을 터트렸건만,통일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라고,이를 위해서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 길에 이르는 길인가를 숙고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건만 오늘 우리의 주변은 어수선하다. 남북정상의 공동선언 이후 사실 우리사회는 커다란 변혁기에 들어섰다.그 누구도 우회하여 살 수 없는 민족이라는 커다란 길 앞에서 실로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체감하며 서있는 것이다.비전향 장기수들이북녘으로 가고 인민군으로 간 아들은 교수 박사가 되어 환생(?)하고끊어진 철도는 이어질 것이 확실하며,무조건적인 증오와 적대감으로서로를 보던 냉전시대의 유물들을 걷어내고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며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안되는 통일시대의 초입에 우리는 문득와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적인 모습은 어떠한가.의사들은 생명을 담보로사보타주를 하고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서 한발자국도 못나가고 또어디선가는 은행의 대출비리가 불거지고 한 마디로 난장판같다. 모두들 제 잘난 맛에 아우성들이다.그 난장판 저 안쪽에는 서로의 이익을위한 끊임없는 진흙밭 개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자면 대통령 혼자서 외롭게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인다.큰 매듭을 풀면 작은 매듭은 서로가 역할을 나누어서 풀어야 할텐데 푼 매듭을 일부러 헝클어 더 어지럽게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하다. 드러누워 등으로 땅을 밀면서 우는 풍뎅이가 차라리 편하다는생각도든다. 김수영이 쓴 시 중에 ‘푸른 하늘을’이란 시가 있다.막연하게 푸른하늘을 찬미하는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푸른 하늘’(혁명)에는 피의 냄새가 머금어 있다고 씌어진 시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우리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신작로 어느 한쪽에선 햇빛 앞에서 몸을 말리는 고추도 있고 그때 한가하게 떠가는,그야말로 짙푸른 푸른 하늘이 우리의 도처에 있건만아직 우리는 그 하늘을 만날수 없다는 것인가.조금 멀리 보고 오늘을참아가는,그래서 열릴 푸른 하늘을 진정 볼 수는 없단 말인가. △강형철 숭의여대 교수·시인
  • [대한광장] 팔월의 하루

    팔월 중순의 날씨치곤 너무 덥다.투르판의 화염산 천불동 계곡을 걸을 때와 같은 열기가 방 안까지 밀고 들어온다.TV 화면은 울음바다이다.50여년만의 만남은 젊음을 빼앗겨버린 주름진 얼굴과 굽은 등만보여준다.잃은 것이 젊음뿐이랴.흐르는 눈물은 침침해진 눈을 더욱흐리게 하고,오열은 아물지 않은 가슴을 다시 헤집는다. 꿈에 그리던 만남을 지켜보노라니 꼭 짚어낼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에 가득해진다.다실로 나와 침향을 사르며 구레츠키의 3번 교향곡 ‘슬픈 노래의 심포니’를 듣는다.가슴 속에 묻은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애절함이,그 애절함을 승화시키는 소프라노 돈 업쇼의노래가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침향의 향내음을 타고 가슴으로 밀려온다.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뜰에 나섰으나 타는 하늘은 구름 한 점 허락하지 않는다.나무들은 땀 흘리다 지쳤는지 축 늘어져 있고,늦게 피기 시작한 목백일홍만 빨갛게 익었다.옹기 속 수련은 졸고 있고,무궁화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땅으로 곤두박질 한다.개들은 숨쉬기도 귀찮은지 나무그늘 아래 땅에다 주둥이를 박고 있다. 맑은 날씨 덕분에 공항이 마당처럼 가깝다.저기 ‘고려항공’의 북녘 비행기가 와 있단다.다시는 넘지 못할 것처럼 생각했는데,몇 십만V의 고압선이 보이지 않게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용케도 북쪽 비행기가 바로 넘어 왔단다.하긴 하늘에 무슨 남과 북이 있으랴.모두가 어리석은 사람들의 허망한 장막일 뿐이지. 출가 이후 부처님 전에 서면 늘 해왔던 ‘국운융창 국태민안 남북평화통일속성취’의 축원 속에 나는 늘 바랑을 지고 금강산 묘향산을오르내렸다.그러나 뱃길로 금강산이 열리고 중국으로 백두산 길이 열렸어도 나는 아직 가지를 않았다.가끔 차를 몰고 자유로를 달리며,길게 가로막은 철조망을 보면서 용케도 걸리지 않고 넘어오는 확성기소리를 듣기는 했다.‘그래 언젠가 이 자유로를 달려 개성과 평양으로 가리라’ 다짐만 하면서. 내가 줄곧 꿈꿔온 통일은 이런 것이었다.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갈수 있는 북녘 땅을 지프를 몰고 임진강을 건너,산과 강,작은 포구와 외진 두메산골까지두루 밟아본 뒤,이윽고 허허로운 만주벌판을 떠돌다가 중국의 끝으로 가리.그리곤 뜨겁고 거친 사막을 넘어 혜초스님 가셨던 길을 따라가며 히말라야의 지붕에서 밤하늘의 별을 헤어보리.그리하여 한반도는 더이상 한 조각의 땅덩이가 아닌,온전히 세계와 하나임을 확인해보리. 푸드득 까치가 나는 소리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눈을 들어보니 능소화 꽃송이가 곧장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자태 그대로 툭 떨어지는 능소화는 꽃의 귀족이다.그 꽃송이를 주워들고 다실로 돌아와차를 달이며,프리치 분덜리히가 부른 슈베르트의 ‘시든 꽃’을 듣는다.가수는 35년 전 36세의 젊은 나이로 고인이 되었건만 그 목소리는 남아 지금 이렇게 심금을 울린다. “그녀가 준 꽃이여.나와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가자.너희들은 내 모양을 안다는 듯이 그렇게 슬프게 나를 보는구나” 노랫말과 함께 많은 영상이 스쳐간다.특히 김정일의 그 당당한 모습이,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너희들은 왜 그렇게 시들고,바래고,눈물에 젖어 있느냐.아아,눈물도 5월의 녹색을,지나간 사랑을 되살리지는 못해.봄이 오고 겨울은가 들에 꽃이 피어도 그녀가 준 꽃은 내 무덤에 들어가 있는 거다” 다시 깊게 패인 주름 위에 눈물 흘리는 모습과 그들이 들고 있는 빛바랜 옛 사진들이 떠오른다. “그녀가 언덕을 헤매면서 ‘그 사람은 진실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면 그때야말로 꽃이여,모두 피어라.5월이 되고 겨울은 간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나는 찻잔을 비운다.통일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지금있는 것 그대로 다 놓아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송강 개화산 미타사 주지
  • 생이별의 恨 다시 가슴에 묻고…

    “꼭 다시 와 언니,살아 꼭 만나자”“부디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오마니…”“아버지…” 분단 반세기 만에 감격의 재회를 나눈 남북의 혈육은 너무나도 짧은3박4일을 보낸 18일 생이별의 한을 가슴에 묻고 다시 북으로 남으로헤어졌다. 50년을 고대해 온 만남의 기쁨도 잠시,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기약없는 이별 앞에 오열하고 통곡했다.양측 방문단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이들을 보내는 가족들은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서울과 평양이 다시함께 운 하루였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 등 북측 방문단은 이날오전 대한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남측 방문단도 이 비행기를 타고 오후 서울로 귀환했다.남측 민항기가 서행직항로를 통해 서울∼평양을 오간 것은 분단이후 처음이다. 남북은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김포공항 등에서 방문단과 가족들이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눌수 있도록 배려했다. 장단장은 서울 도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는 비용이 덜 드는방향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측 방문단 중 어머니 생존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했던 량한상씨(69)는 이날 새벽 4시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머니 김애란씨(87)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특별취재단
  • [데스크시각] 장통일의 ‘溫故而知新’론

    50년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흥분과 환희,감격과 통곡,그리고오열 속의 석별로 18일 일단 막을 내렸다.북측 이산가족들이 서울에머문 3박4일 동안 평소에는 기사를 다룰 때 냉정한 기자들도 인간인이상 때로는 벅차오르는 감동과 흥분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7일 통일부장관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북측 이산가족을 초청한 만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TV화면과 신문사진으로만본 북측 이산가족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해방후 첫 남북화해주간에 가진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동포들도 ‘통일열풍’에 휘말려 있음을 알 수있었다. 이산가족들이 서울방문 중 쏟아낸 여러 통일관련 발언을 정치성 구호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번 상봉을 줄곧 지켜본 입장에서,또 15년전 남북 고향방문단 교환을 현장취재했던 경험에비춰볼 때 이번에는 많이 달랐다. 그들이 서울을 떠나기 앞서 오히려남측 가족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감추는 것을 바라보며 진정한 통일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한다. 반세기 만의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면서 갖는 또 다른 소회는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다. 한반도에서는 역사상 두차례 통일드라마가 있었다. 첫번 째가 1,400여 년전 통일신라의 출현이었고 두번 째가 1,000년전 고려의 후삼국통일이었다. 요즘 KBS-TV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는 ‘태조 왕건(王建)’은 고려의후삼국 통일과정을 그리고 있다.21세기 통일시대를 열망하는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준다.왕건의 통일과정이 ‘고되고 힘든’ 대장정의 연속이었던 까닭이다.때문에 어느 시대든 정치지도자들의 미래를 투시하는 안목과 인내심,그리고 국민통합(nation-building)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은 자주 통일을 대전제로 하고있다.그렇다면 통일신라와는 달리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뒤 외세와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이뤄낸 고려의 통일과정은 현 남북당국에게도좋은 비교연구(케이스 스터디)거리가 된다. 고려가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이뤄낸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점에서 이를 잘만 연구,활용한다면 1,000년 만의 통일이 그때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지금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이 9,10월에 계속되는 등 여러 부문에서 급진전하고 있다.그러나 남북관계는 아직 ‘미완성 교향곡’이나 다름없다.잡으면 터질까,불면 날아갈까.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키워온 여인네의 손목처럼 아직 연약하고 무른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김대중 대통령이 17일 남북관계의 ‘속도조절론’을 제기,“북한의 안정된 변화를 위해서 서둘러서는 안되며,북한이 차분히 소화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짐작된다. 서기 900년을 전후한 신라말기 한반도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없는 혼란기의 연속이었다.21세기에 돌입한 한반도의 주변정세 역시혼란스럽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어찌보면 1,000년 전보다 훨씬 첨예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후삼국 시대는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892년부터 고려가 재통일을 이룩한 936년까지 무려 44년간 지속됐다.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불과 2개월 전의 일이다.남북의 이산가족들은 감격의 상봉을 했지만 그뒤에는 아직 분단의 장막이 현실로 자리한다. 이제부터라도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성급함을 버리고 좀더 인내심과지구력을 길러야 한다.남북 양측이 역사 속에서 통일을 배우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를 발휘했으면 싶다. 鄭 鍾 錫 정치팀 elton@
  • 남북이산상봉/ 이선행-이송자-홍경옥씨 기구한 인생 드라마

    “통일돼서 다시 만나면 본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겠다.북쪽에 할아버지를 보내주겠다.그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분단의 부부는 마침내 17일 처음으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잠시나마얼굴을 마주 했다.이송자(李松子·82)씨는 점심 식사 후 북의 아들을 돌려보내고 호텔방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서 잠시 기다리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북쪽 부인하고 하룻밤이라도 손을 꼭 잡고 지낼 기회가 있었으면…”북한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쪽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선행(李善行·81·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송자씨의 기구한 인생드라마는 상봉 사흘째인 이날 클라이맥스에 달했다. 북쪽 아내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남쪽 아내 이송자씨는 그동안 세차례의 상봉과 한차례의 식사 때 서로 얼굴을 지나치면서도 선뜻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자식들 보기도 그렇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던 탓이다. 이선행씨도 남북의 두 아내 사이에서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어색함을 푸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은 바로 북측 안내원이었다. 이날고려호텔에서의 고별 오찬 때 안내원의 권유로 두 아내는 드디어 합석,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먼저 북쪽 아들들이 이선행씨에게 잔을 드렸다.이송자씨의 북쪽 아들 박위석씨(61)가 처음 얼굴을 맞대는 이선행씨에게 “아버님 잔 받으십시오”라고 들쭉술을 권하자,이씨는 “나는 머슴처럼 어머님을받들고 있으니까 걱정마라”고 노령인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북쪽 아들을 안심시켰다. 이선행씨의 북쪽 장남 진일씨(56)도 이송자씨를 “어머님”이라고부르며 “아버지를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진일씨와 동생 진관씨(51)는 이송자씨 아들 박씨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송자씨는 “이같은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두 아내의 대화는 아주 짧게 이뤄졌다.이씨는 홍씨에게악수를 권하며 “반갑습니다.건강하세요”라고 했고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홍씨는 고개만 끄덕였다.진일씨는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이송자씨를) 잘 해드리라고 부탁했었다”고 대신 전했다. 앞서오전 개별상봉에서는 그동안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선행씨와 홍씨가끝내 눈물을 터뜨렸다.이씨는 홍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혼자 애들키우느라 고생 많았어.스물여섯 예쁜 얼굴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졌느냐”며 오열했다.이씨는 사진기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이제 내마지막 소원을 이룰 차례”라며 갑자기 홍씨를 등에 업고 눈물을 흘리며 방 안을 한바퀴 돌았다. 평양 공동취재단
  • 마지막날 아쉬움속 또 이별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나…”“통일돼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오빠” “오마니,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우요…” 17일 낮 서울과 평양의 이산가족 방문단 오찬장은 사흘 전 첫 상봉때와 같은 오열과 탄식의 바다를 이뤘다.사흘간의 상봉중 마지막인이날 오찬은 50년 전 한맺힌 이산에 이은 또 한번의 눈물어린 생이별의 장이 됐다.너무나 짧은 만남과 감격어린 상봉의 기쁨도 잠시,어머니와 아들,남편과 아내,오빠와 누이는 기약없는 재회를 약속하고 하루 뒤면 남과 북으로 흩어질 혈육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끝내 놓지못했다. 서울에서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여동생 춘희씨(60·경기군포)를 끌어안고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북한의 수학자 조주경씨(68·김일성대 교수)도 숙소에서 어머니 신재순씨(88)를 만나 생이별의슬픔을 나누며 재회를 약속했다. 평양에서는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와 남에서 결혼한이선행(李善行·81·서울 망우동)·이송자(李松子·82) 부부가 이씨의 북쪽 부인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방북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와방북단 의료진인 고 장기려 박사의 차남 가용(家鏞·65·서울의대교수)씨도 북측이 별도로 마련한 장소에서 가족을 비공개리에 만났다. 앞서 류미영(柳美英·78) 북측 단장은 16일 오후 23년만에 서울의 둘째아들 인국씨(53)와 막내딸 순애씨(48),손자 등 가족을 만났다. 남과 북의 방문단 200명은 이날 모든 공식일정을 끝내고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고향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북측 방문단은 전날과 같이 두 팀으로 나뉘어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가족들과 개별상봉했으며 창덕궁(비원)을 둘러봤다.남측 방문단도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한 뒤 북한 가극 춘향전을 관람했다. 남북 방문단은 가족 공동오찬에 이어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평양 옥류관에서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최 환송연회를 끝으로 3박4일의 방문중 공식일정을 모두마쳤다. 18일 오전우리측 대한항공기가 북측 방문단을 태우고 김포공항을출발,남북직항로를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이들을 내려놓은 뒤 남측방문단을 태워 서울로 귀환한다. 한편 15년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남북 각 100명의 인원과짧은 시간으로 제한된 데 대해 남북 당국이 하루빨리 면회소 설치,상봉 정례화 등을 통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98년 남북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전 차관은 “상설 면회소를 만들어 이산가족들에게 많은 상봉기회를줘야 한다”면서 “중간단계인 면회소 상봉을 거쳐 중국·대만,동서독처럼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병문·조문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영(全寅永) 서울대교수도 “이산가족문제는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강력한 이슈임을 이번에 생생히 확인했다”면서 “북한의 경우 절대적 지도자가 마음먹으면 면회소 설치 등은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상봉 이틀째 쏟아진 말 말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와 워커힐 호텔,평양 고려호텔 등 이산가족 상봉장은 50여년간 쌓인 가슴속의 한을 토해 내는 이산가족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아마 하늘나라에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남측 임창혁씨가 북측 동생 재혁씨가어머니 소식을 묻자.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한 장밖에남지 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남측 유인자씨가 북한의 국어학자인 부친 류렬씨와의 상봉에서.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리종필씨가 어머니 조원호씨의 생존에 감격해. ●제가 불효한 것 같지만 아버지 어머니 뜻을 받들어 교수,박사까지됐으니 효녀로 생각해주세요. 북측 김옥배씨가 어머니 홍길순씨에게불효를 빌면서.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 됐나. 남측 최성록씨가 북측 아내유봉녀씨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니가 있어 내가 올 수 있었어. 북측 리복연씨가 남측 아내 이춘자씨에게 50년만의 만남을 속죄하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북측 아내오상현씨가 남측 남편 김일선씨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1·4후퇴 때 일주일만 백리 밖에 피난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떠났는데 이제야 돌아 왔습니다. 남측 김상현씨가 북측 누나 상원씨와 만나 생이별에 오열하며. ●아버님 어머님.아들 장수가 왔어요.제가 죽지 않고 돌아 왔어요.광산 김씨 문중의 대를 끊지 않았으니 이제는 걱정말고 편히 눈을 감으세요. 5대 독자인 남측 김장수씨가 북측 누이 봉래씨와 만나 부모님사망에 절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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