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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와바라 시세이 다큐전/ 日 사진작가가 담아낸 60년대의 한국풍경

    사진은 리얼리티의 기록이다.동시에 그 리얼리티에 대한 사진가의 견해도 함께 기록한다.좀 거창하게 말하면 사진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하나의 수단이다.일본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사진·67)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전한다. 구와바라는 지난 64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두세 차례씩 한국을 방문,한국의 현실을 기록해온 일본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전문작가.그의 고향인 시마네현 쓰와노에는 그를 기념하는 ‘쓰와노 다큐멘터리 포토 갤러리’도 세워져 있다. 구와바라의 사진전이 28일부터 새달 2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열린다.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베트남 파병,판문점 모습,시골 풍경 등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던 1960년대 당시의 한국 풍경을 흑백사진에 담았다.이번 전시는 2001년 1월 일본 전철역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와 일본사진가 세키네 시로(關根史郞)를 추모하기 위해 결성된 ‘신오쿠보 SPIRIT’ 실행위원회(위원장 추광호)가 주최하는 것.60여점의 출품작 중엔 최근 연결공사가 추진중인 경의선 문산역 철도변 수로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의 모습(1963년),시멘트 교량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청계천고가도로 현장(1968년),베트남에 파병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와 국군묘지의 아들 무덤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1965년)의 모습 등이 포함돼 있다.구와바라는 ‘보도사진의 성자’로 불리는 미국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보다 10년이나 먼저 미나마타병과 관련된 사진을 발표해 주목받은 ‘환경주의자’.그는 유진 스미스의 충격적인 ‘도모코 사진’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보도사진가의 진정한 임무는 그처럼 사실을 보여주고 참상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사진에 담아온 그는 실제로 지난 89년 ‘한국-격동의 4반세기’라는 사진전을 한국에서 처음 열면서 거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구와바라는 지금도 변함없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암울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사진작업의 화두로 삼는다.“포토 저널리스트로서 한국의 근대사는 가장 ‘혜택받은 취재의 현장’”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02)2000-9737. 김종면기자 jmkim@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1부 이제는 수평적 리더십이다 ④지역.세대.계층 통합

    1.국민통합과 정치의 몫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기 위해,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2001년 12월10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출마선언) 대부분의 대통령이 그랬지만 노무현 당선자는 유난히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향후 국정운영 원칙의 하나도 국민통합이다. 그리고 국민통합의 과제로 지역갈등 해소와 노사화합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요구되는 국민통합의 과제는 지역갈등 해소와 노사화합에 그치지 않는 훨씬 더 복잡하고 커다란 문제다. 정치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전적 정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있는 배분’이다. 한정된 가치나 재화를 공정하고 권위있게 배분해야만 이기적 존재들인 사회구성원들의 통합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상태에서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두려워 사회계약에 따라 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정치란 질서를 확보하고 자기 정체성을 상호간에 꾸준히 확인해 가는 국민통합을 통해 운명공동체인국가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국민통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국민통합이란 국민들 사이에 상호의존성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심리적 또는 사회적 거리감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기본 생활을 영위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럼 우리 국민은 이같은 상태를 경험해 보았을까. 지난해 6월 월드컵 감동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한국 축구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고 4강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느꼈던 감정과 행동으로 보여준 열정이 바로 국민통합의 발로이자 결과였다. 2.'통합의 지도자' 외국 예 국민통합을 위해 전력을 다한 지도자로는 인도의 간디를 들 수 있다.독립을 앞두고 종교와 계급,그리고 인종적 분열로 유혈 충돌이 반복되는 혼란 속에서 그는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힌두교인 인도와 이슬람교인 파키스탄으로 분리,독립되고 말았다. 실제 국민통합에 성공한 지도자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란 이름 하에 악명 높았던 남아공 백인정권의 흑백차별정책을 종식시킨 업적을 남기며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특히 백인정권 지도자들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흑인차별의 종식을 성취해낸 탁월한 정치력으로 인종을 뛰어넘는 국민통합을 이룩했다. 그는 이를 위해 대통령 재임 중 자신을 27년간 감옥에 가둔 백인들에게 일체의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흑백화합을 위해선 관용과 화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통치철학이었던 것이다. 반면 분열의 위기에 있었던 국가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통합시킨 지도자는 프랑스의 드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과연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놓고 10년 넘게 사분오열돼 있었다.이때 다시 등장한 드골은 국민들에게 비상 대권를 포함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며 5공화국을 수립,식민주의의 과감한 청산과 함께 국가발전계획을 추진했다.결국 그의 권위주의에 가까운 강력한 리더십으로 프랑스는 분열위기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듯 국민통합의 리더십은 상황과 지도자에 따라 매우대조적인 방법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3.국민통합의 전제 새 정부가 국민통합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우리 국민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연령,학력,성별,소득을 초월하여 평등주의 성향이 매우 높은 반면,타인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았다. 이는 일종의 피해의식이나 심리적 불안지수가 높은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국민통합의 성공 여부가 형평성과 공정성의 유지에 달려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민들은 이 둘(형평성과 공정성)을 합쳐 “공평하다.”는 말을 즐겨 쓰는데,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단속됐을 때 운전자들이 마음 속으로 승복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왜 나만 잡느냐.’는 형평성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또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대해 항상 그 숨어있는 의도가 무엇이냐에 관심을 갖는데,이는 공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형평성과 공정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책 수립과 결정,그리고 집행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진입장벽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진입장벽이 사회 곳곳에 놓여 있어 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출신지역 때문에 인사에서 차별받거나,지방대학 출신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에 불리하다거나,가난해서 자녀들에게 과외를 못시켜 원하는 대학에 못갔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례들이 모두 현실적으로 차별을 느끼게 하는 진입장벽이다. 따라서 투명성 제고와 진입장벽 제거를 통한 형평성과 공정성의 확보가 국민대통합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다. 4.계층통합 방안 김대중 정권 5년 동안,우리는 미증유의 경제 위기와 대규모 구조 조정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면서 만신창이의 한국 경제를 어느정도 본 궤도에 올려 놓았다.그리고 이는 현 정부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계층,지역,세대간의 격차가 크게 확대됐고,노무현 정부는 ‘사회 격차의 해소’라는 엄청난 부담을 떠 안게 된 것이다.대한매일과 KSDC가 공동으로 실시한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새 정부가 가장 힘써야 할 부분으로 응답자의 가장 많은 38.7%가 ‘빈부격차의 해소’를 꼽았다.사회 격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임계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회 성원들 사이의 상대적 격차는 소득,소비,기회의 모든 수준에서 일관되게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국민들 사이의 소득 불균형은 정치적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으며,비정규 고용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역시 크게 확대됐고,젊은 세대가 정규직의 일자리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사람들이 바라는 교육과 삶의 기회는 수도권 중에서도 특정한 지역에 더욱 집중되고 있고,남녀 차별은 여전히 최 선진국이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확대되는 사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이를 위해 새 정부는 우선 정당한 격차와 부당한 격차 사이에 옥석(玉石)을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개인과 사회의 활력과 발전을 자극하는 정당한 격차는 꼭 필요하고 유지돼야 하지만,부당한 사회 격차와 기득권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위화감을 확대시키는 차별은 근본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새 정부는 이를 위해 다음의 핵심 정책 과제를 구체화하고,이를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부당한 부(富)의 세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주식의 편법·변칙 증여를 차단하고,재산세와 상속세를 강화해 자신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의 세습에는 제한을 가해야 한다. 둘째,사회적 기회 구조가 특정 지역,인맥,집단 등에 편중되고,사회적 박탈감과 정치적 균열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이를 위해 의사 결정과 인사의 모든 측면에서 유리알 같은 감시와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고질적이고 심각한 사회 격차가 시정되지 못하는 부문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제도적으로 문제를 해소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여성 고용의 할당제 확대,동일노동·동일임금제 도입을 통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 등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필요하다. 이러한 모든 개혁들은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추진될 때 국민적 설득력과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일부에서는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사회 격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 사회적 기초를 파괴하는 부당한 구조적 사회 격차를 방치해선 안 된다.경제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부당한 사회 격차와 불균등을 정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할 때 정치가 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5.갈등구조 극복 과제 통합에 반대되는 현상은 분열인데 분열은 집단간의 갈등에 의해,갈등은 국가 내의 집단을 구분하는 균열요소에 의해 발생한다.그러나 균열이 바로 갈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우리가 잘 아는 스위스는 다수인 독일계를 중심으로 프랑스계와 이탈리아계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인종이라는 균열요소로 인해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반대로 미국은 인종간의 균열이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지난 1992년 LA흑인폭동은 균열이 갈등화된 사례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갈등 수준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그리 심한 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아직 분단으로 대치중인 국가이고,부존자원의 결여로 지속성장을 해야 하는 환경적 제약을 국민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조그마한 갈등이라도 그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며 심리적 긴장도를 높여준다.따라서 갈등의 예방과 관리,이를 통한 통합의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집단을 구분짓는 균열요소로는 종교,계급,이념,인종,세대,지역,성 등이 지적된다.우리나라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균열요소는 지역,세대,이념,빈부차이라고 하겠다. ●지역화합 국민대통합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역화합이다. 지역갈등은 두가지 차원으로 구성돼 있다.지난 대선에서 다시 한번 나타났던 영·호남 대결구조에 의한 정치적 갈등과,수도권과 기타 지역의 발전 격차 등에 의한 경제적 갈등이다.이 두가지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앙집권화가 돼 있는 정치·경제구조를 개선,실질적인 지방분권화가 이뤄져야 한다.그런 면에서 차기정권이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의 중심지를 현재의 수도권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일단 지역균형을 이루려는 시도라고 평가할 만하다. 대한매일과 KSDC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국민들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역균형발전(44.5%)과 공정한 인사(31.6%)를 꼽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7일 제안한 ‘국가균형위원회’를 국회 내에 설치해 지역 불균형 투자 및 개발,지역 편중인사에 관한 불균형 측정 지표를 개발하고,이같은 불균형 지표를 토대로 불균형 지역 개발 및 지역편중에 대해 대통령에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아울러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균형 발전기금의 운영도 검토해 볼 만하다. 공정한 인사를 위해 차기 정부는 우선적으로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실시해야 한다.국정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 등 이른바 권력 빅4뿐만 아니라 장관들도 인사청문회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기정권의 과제 차기 정권의 집권기간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이념갈등과 세대갈등이다.특히 세대 차이는 이념적 차이와 명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분열의 위험성이 높다.문제는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의 마련이 어렵다는 데 있다. 이념적 차이는 남북문제와 한·미관계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최근의 여중생 압사사고에 항의하는 SOFA개정 시위가 젊은이들에게는 주권국가 국민들의 정당한 주장으로,나이든 보수층에는 한·미동맹을 해치는 반미시위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남북문제와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둘러싼 합의과정이 국민통합의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이 과정은 정부의 일방주의가 되어선 안 되며,조급함을 버리고 국민대의기관인 국회 내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방향성이 결정돼야 할 것이다.세대 갈등은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정서적·감성적 부분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그리고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전환하면서 정보격차에 따른 세대간 이질감은 어느 때보다도 폭증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어느 사회에나 일정 수준 존재하는 세대간 갈등은 젊은층의 가치관을 사회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해소돼 왔다.향후 사회의 중추세력은 성장하는 세대에 의해 장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관 수용은 불가피한 것이다.다만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인권,평등,삶의 질 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는 점을 구세대에게 꾸준히 설득시키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6.통합 이데올로기 창출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이 10년 이상 진행되고 있지만,중첩적 갈등구조 속에 빠져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해체 이후 새 시대에 맞는 통합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는 역대 정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초기 산업화가 진행된 지난 60∼70년대의 국민통합은 “잘 살아보자.”라는 국민들의 욕구를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묶어낼 수 있었다.그러나 지난 80년대 말 이후 정치권은 권력장악을 위해 지역이라는 균열구조를 정치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잠재적 갈등을 현재화시켰고 그 결과 분열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차기 정권은 통합 이데올로기를 형성해나가야 한다.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으로 이어지는 중국 개혁·개방의 초기 지도자들은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창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후 개혁·개방에 따른 현상적 모순과 심리적 혼돈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 국민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발전에 대한 자신감과 중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이데올로기를 꾸준히 개발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민대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는 어떤 모습이 돼야 하나.노무현 당선자의 성향이나 현재 담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집단의 성격으로 볼 때 배타적 민족주의의 모습을 띨 경향이 높아 보인다.이는 차기정권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세계화 시대에 대외 상호의존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배타성은 국가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라도통합 이데올로기는 개방성과 평등성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기획의도및 필진 대한매일과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가 연중 기획물로 준비한 ‘이제는 수평적 리더십이다’라는 시리즈의 네번째 테마는 ‘지역·세대·계층 통합’입니다. 다음 달 취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대통합을 누차 언급한 바 있고,실제적으로도 국민들은 노무현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분야로 국민통합을 들고 있습니다.이에 따라 지역과 세대,계층을 뛰어넘는 국민대통합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고,외국의 사례는 어떤지 등을 심층 분석했습니다.이번 기획의 대표 집필은 명지대 김도종 교수와 한림대 박준식 교수가 맡았습니다.
  • [대한포럼]가신정치의 끝인가

    김대중 대통령과 파란만장한 정치격랑을 40년 동안 함께 헤쳐온 동교동계가 이제 정치무대의 뒤편으로 영영 사라질 것인가.현 정권 출범 직후부터 동교동계는 정치적으로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그건 권력의 핵으로서 동교동계가 갖게 될 파워의 측면에서가 아니라,한국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던 YS의 상도동계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동교동계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예측이었다. 문민정부 집권말,옛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분화를 거듭하던 상도동계는 YS 퇴진 이후 거의 정치적 위상을 잃어버린 채 지리멸렬했다.당시 상도동계는 내부 주도권 경쟁과 최형우 의원의 은퇴,당선 가능성을 내세운 특정후보 지지세력과 국민신당 합류파 등으로 사분오열된 형국에서 대선을 치렀고,패배의 충격까지 겹쳐 허우적거리던 때였다. 과연 동교동계는 상도동계를 거울 삼아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로 자연스럽게 귀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물음의 핵심은 DJ 이후 국민의 지지 확보 여부로 모아졌다.그러나 돌이켜보면동교동계 역시 상도동의 닮은꼴이었다.권노갑 고문과 한화갑 의원간 신·구 갈등과 당선 가능성을 앞세운 후단협의 패착….어느 것 하나 다른 구석을 찾기가 힘들다.누가 ‘권력은 주식회사가 아닌 독점기업’이라고 했던가. 김 대통령이 그제 동교동계의 해체를 지시한 것은 결국 대중화에 실패했음을 뜻한다.평생토록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에게 ‘이제 알아서 길을 찾아라.’고 매몰차게 떨쳐버린 것이다.직접 언급하지 않고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한 절차의 어색함에서 DJ가 ‘동지들에게’ 품었을 회한과 흉리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그러나 이는 동교동계의 자책점이었다.또한 오늘의 정치는 DJ도 더이상 어쩌지 못할 만큼 상황이 변했고,풍토 역시 저만치 떨어져 나앉았다. DJ와 YS,그리고 JP의 가신정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무엇보다 그들만의 독특한 카리스마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그 내용은 따지고 보면 정치자금을 마음대로 주물러왔고,정적으로부터 가신들을 항상 보호할 수 있었으며,‘말뚝을 꽂아도 국회의원에 당선시킬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누가 감히 정치생명을 걸지 않고서 거역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김 대통령의 동교동계의 해체 지시는 더이상 이러한 능력이 없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셈이다.바로 가신정치의 종언(終焉)으로 새로운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아직 JP가 무대에 서 있으나,그 역시 ‘서산을 붉게 물들이고 싶은’,화려한 정계은퇴를 꿈꾸는 개인적인 미학 차원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가신정치의 끝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치의 출발임이 분명하다.그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잇따라 고향인 부산·경남에서 이회창 후보를 이기지 못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됐다.한국정치가 서서히 연고나 지역주의를 이용한 조직이나 세가 아닌 노선이나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이해된다.또한 인터넷 혁명은 정치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표시다.끝없는 자기변혁 없이는 언제 2선 후퇴를 요구받을지 모를 일이다. 가신정치의 끝은 아직 미답의 영역이다.2004년 4월,17대총선에서도 텃밭에선 여전히3김의 유훈(遺訓)정치가 이어질지,아니면 정치권의 빅뱅으로 귀결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다만 우리는 엄청난 정치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yangbak@
  • 제3세력 교섭단체 ‘산넘어 산’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자민련,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李漢東)후보 등 제3세력이 추진 중인 독자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그동안 유보 입장을 밝혀온 자민련이 지난 23일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참여키로 전격 결정했으나, 정작 교섭단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후단협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후단협은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최명헌(崔明憲) 대표,이윤수(李允洙) 장성원(張誠源) 의원 등 9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가졌으나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최명헌 대표는 회의 후 “내부 이견으로 유보했다.”면서 “자세한 사정은 이야기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앞서 자민련은 이날 오전 마포 당사에서 김종필(金鍾泌) 총재 주재로 긴급의원총회를 갖고,전국구 의원 5명과 김학원(金學元) 총무 등 소속 의원 6명이 공동 원내교섭단체에 참여키로 했다. 후단협이 이처럼 입장을 번복한 데는 소속 의원들이 교섭단체 구성파와 민주당 복당파,한나라당 입당파로 사분오열(四分五裂)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대체적인 분석이다.실제로 14명의 후단협 의원들 가운데 총무위원장인 설송웅(설松雄) 의원이 복당할 예정이고,박종우(朴宗雨) 장성원(張誠源) 김덕배(金德培) 의원 등은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나머지 의원들 가운데 3∼4명은 한나라당에 입당할 것으로 보인다. 후단협의 한 의원은 “당초 설립 취지였던 후보단일화가 합의된 만큼 여기서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과 제3신당을 염두에 두고 교섭단체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고인 민족사랑 영원히…”故손기정옹 영결식…대전 현충원 안장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옹의 영결식이 1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고인의 약력 소개에 이어 장의 위원장을 맡은 이연택 KOC 위원장의 조사,헌화 및 분향,발인 순으로 진행됐다.이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근대사의 영욕을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오로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한국 체육발전을 위해 달려오신 선생님의 숭고한 뜻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외손자인 이준승씨가 영정을 앞세운 가운데 마라톤 후배인 황영조(국민체육공단 마라톤 감독)가 체육훈장 청룡장을 들고 뒤를 따랐다.운구는 전기영(유도) 김영호(펜싱) 오교문(양궁) 박시헌(복싱) 안재형(탁구) 차영철(사격) 김경훈(태권도) 박장순(레슬링) 등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맡았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올림픽공원 국기광장과 만리동 ‘손기정 기념공원’에서 각각 노제를 올린 뒤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고인의 유해는 유족들의 오열 속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박준석기자 pjs@
  • ‘개구리소년 타살’ 안팎/ 두개골 수십곳 흉기자국

    ‘개구리 소년들’의 사인이 끔찍한 타살로 결론나면서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어떻게 살해됐나. 경북대 법의학팀에 따르면 소년들은 머리가 흉기와 둔기에 의해 난타되는 등 끔찍하게 살해됐다.우철원군의 두개골에는 좌우 옆머리에 직경 2∼3㎝ 가량의 구멍을 비롯해 직사각형 모양의 찍힌 자국(가로 2㎜,세로 3∼5㎜)이 10여개 나 있는 등 모두 25군데 가량의 상처가 발견됐다.김종식군 또한 오른쪽 이마를 비롯해 직사각형 모양의 흉기 자국이 두개골 이곳저곳에 있었으며,왼쪽 팔목이 부러진 것은 범인의 공격을 막으려다 생긴 일로 법의학팀은 판단했다.김영규군 유골에는 흉기에 의한 상처가 오른쪽 옆머리에 2∼3개 나 있었다.상의와 바지가 벗겨져 묶인 것은 범인이 김군의 눈을 가리고 몸을 결박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수사 방향은. 조선호 수사본부장은 “법의학팀이 정신 또는 성격 이상자가 예리한 드라이브 등 흉기로 이들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해 중점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그는 “소년들의 실종 당시 와룡산에 고라니 사냥꾼들이 출몰했다는 주민들의 진술에 따라 성서지역의 공기총 소지자 120여명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겠다.”고 덧붙였다. ◆유족들 “끝까지 규명을”. 개구리소년 가족들은 법의학팀의 ‘타살’ 발표에 ‘사필귀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종 당시부터 타살에 대한 가능성을 강력히 제기했던 유족들은 “이번 발표로 경찰이 시종일관 주장한 자연사나 동사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56)씨는 “법의학팀의 발표로 아이들이 타살된 것으로 밝혀진 만큼 경찰이 부모나 아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골에서 사인을 발견하지 못한 조호연·박찬인군의 유족들은 “우리 아들도 친구들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같이 타살됐을 게 분명하다.”며 “더 조사해 반드시 사인을 밝혀달라.”고 오열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
  • 후단협 ‘연쇄 탈당’안팎/ 민주 ‘내부 분열’ 가속화

    민주당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김명섭(金明燮) 강성구(姜成求) 의원이 1일 탈당하고,김원길(金元吉) 박상규(朴尙奎) 의원이 ‘4일 탈당’을 예고함에 따라 향후 대선정국이 급격한 변화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들은 탈당 명분으로 ‘후보 단일화’를 강조한 만큼 최근 공론화돼가고 있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의원간 단일화 움직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과 및 배경 이날 오후 7시쯤 지구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김명섭 강성구 의원은 “앞으로 박상규 의원 등과 행동을 같이할 계획”이라며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앞서 박상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후보단일화의 밀알이 되기 위해 김원길 의원과 4일 탈당을 결행하기로 했다.”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만큼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후단협의 탈당에 가속도가 붙는 까닭은 현재 사분오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후단협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실제로 최근 후단협 소속 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선대위에 참여하거나,한나라당행(行)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후단협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후단협이 많은 모임을 가졌으나 특별한 논의의 진전이 없지 않았느냐.”며 “이런 가운데 정 의원의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후단협 의원들 사이에 많은 동요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 우선 두 의원의 탈당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후단협의 탈당 도미노를 부추기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4일 탈당’을 발표한 김원길 박상규 의원은 후단협의 핵심인물이라는 점에서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명헌(崔明憲) 공동대표은 “나는 3일을 생각하고 있으나 일부에선 더 빨리 하자고 한다.”면서 “현재로선 교섭단체 구성(20명)에 약간 못미치지만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 등을 포함하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단협이 조만간 탈당을 결행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후단협내 C,S,H 의원 등의 한나라당 입당설(說)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강성구 의원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해 자칫 후단협의 탈당 명분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설송웅(^^松雄) 총무위원장은 이와 관련,“전체 모임을 갖고 같이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도 “두 사람의 탈당으로 (탈당)일정이 크게 앞당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단일화 논의 후단협의 집단 탈당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현재 단일화 방식을 놓고 상당한 이견차를 보이고 있는 노 후보와 정 의원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 후보는 “‘후보단일화 불가’ 입장만 고수한 나머지 의원들을 떠나 보냈다.”는 당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게다가 후단협의 집단탈당이 분당(分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노 후보의 주장만 내세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도 마찬가지다.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하락을 보이고 있는 그로서도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민주당을 뛰쳐나온 의원들이 ‘경선 수용’을 요구할 경우,이를 외면만 할 수는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양측간 후보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집단탈당이 오히려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당직자는 “집단탈당이 ‘노 후보 흔들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면서“그럴 경우 노 후보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 단일화 논의에 역행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내다봤다. 홍원상기자 wshong@
  • [사설] 민주, ‘지리멸렬’ 끝은 어딘가

    새 천년의 희망을 당명에 담았던 민주당의 ‘지리멸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최근 전용학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데 이어 김민석·신낙균 전 의원이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 21’에 합류했고,내주 초엔 반노그룹 소속의원 20여명이 집단탈당할 것이라고 한다.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후보단일화 논의가 있었지만,친노·반노 세력간의 갈등만 더욱 노골화됐다.이런 가운데 노무현 후보는 “한 사람만 남아도 끝까지 가겠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당 내분의 봉합 기미는커녕 사분오열의 갈등만 심화되고 있는 게 지금 민주당의 자화상이다. 헌정사에 집권당이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더욱이 선거를 두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모습은 이미 정권 재창출을 포기한 것처럼 비친다.하지만 우리는 민주당의 행보를 두고 이리저리해야 한다고 훈수할 생각은 없다.정권 재창출을 위한 몸부림이건,소속 의원들의 자구 노력이건 전적으로 자신들이 판단하고,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더 이상노무현 후보의 리더십 부재나 반노·비노 세력의 무책임을 따질 이유도 없다고 본다.다만 민주당의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이전투구가 정치권의 앞날을 혼미스럽게 하고,국회 태업까지로 이어지는 난맥상에 대해선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집권당의 지위를 포기했다는 수사만으론지금의 정치혼란의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민주당은 이미 당 구성원간에 동질성을 잃은 지 오래다.한 지붕 밑에서의 삿대질은 구성원 모두를 추하게 할 뿐이다.명분이 어떻든 갈라설 요량이면 깨끗하게 갈라서고,남는 사람은 남아 새 출발을 다짐하길 기대한다.질질끌며 혼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국민들을 짜증스럽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죄악이다.오로지 정권 재창출이 목표라면 더욱 그렇다.
  • 한반도 분단 읽어내기 다르면서 같은 두시선

    우리에게 분단은 천형인가,유한한 시련인가.남북간에 해빙의 길이 뚫리는 지금도 여전히 이 질문은 유효하다.비록 확신하는 미래일지라도 예정이 현실을 앞설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이호철(69)의 ‘남녘 사람 북녁 사람’(민음사)과 김문수(63)의 ‘꺼오뿌리’(도서출판 주류성)는 한반도의 분단을 읽어내는 탁월하면서도 치열한 시선을 담았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눈길을 끈다. 이호철은 잘 알려진 월남 작가.전쟁중인 지난 52년 18세 소년으로 단신 월남해 부두 노동자,제면소 직공,미군부대 경비원 등을 전전하다 소설로 일가를 이룬 대가.최근 북한에 사는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해 그의 이력이 새삼 회자되기도 했다. 그의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은 이런 그의 고행과 열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고교 3학년생이 전쟁중 군인으로 나섰다가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겪은 삽화를 중심으로,실존인물을 군데군데 등장인물로 배치한 자전적 소설이다.적어도 분단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절박하고 뜨거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실제로 그는 “이제야 내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이 작품에 많은 고뇌를 쏟았다. 이호철이 스스로를 전쟁의 와중에 투신시키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분단’을 말한다면,문학 외에 한눈을 팔지 않는 것으로 정평있는 김문수는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서로 낯선 중국 관광객들의 기행 낙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로소설(road novel)로,‘마치 관광버스의 행적처럼’점층적으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꺼오뿌리(狗不理)란 ‘개차반’을 일컫는 중국식 표현.작품에서는 조금은 헤픈듯 명랑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박민식을 반어적으로 지칭한다.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단신 월남해 자수성가한,전형적 이산가족이다. 이렇듯 두 주인공의 흡사한 상처를 배경으로 말은 물꼬를 트나,물길은 전혀 다르다. 이호철은 철저하게 나이 어린 인민군 병사의 시각으로 전쟁과 그 전쟁에 몸을 담은 사람들을 투시한다.그러나 이 작품은 파브르의 곤충기처럼 단선적인 관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평론가 정호웅씨의 지적처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개별 현상들의 직접성에 갇히지 않고,작가 특유의 이념과 생각으로 개개의 인물과 사건,나아가 시대를 통찰하는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반면 ‘꺼오뿌리’는 박이 고향 종성에 가까운 두만강변에서 조촐하게 시제(時祭)를 올리면서 반전을 시작한다.이전의 여로소설이 분단소설로 내재의 의미를 바꾸는 것. 이 대목에서 밝고 명랑한 박이 쏟아내는 오열은 우리가 익히 겪은 ‘오랜 이별 짧은 만남’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압축해 보여주는,우리 민족 공통의 처연한 회한이기도 하다.“오마니,오마니! 민식이가 왔슴메다.죽디 않구 살아서리 왔슴메다.오마니,아방께서두 생존해 계시겠지비.빨갱이 눔들한테 반동지주로 몰려갰구서리 매르 맞고 앓아 누워계셨는데….” 줄담배를 피워대며 혼잣말을 토해내는 꺼오뿌리의 독백이 여전히 가슴에 와닿는 것은 그의 절규가 ‘나라도 그랬겠다.’싶은 리얼리티를 얻고 있기 때문. 작품의 주류적 정서는 이어지는 박의 오열로 압축된다.“오마니가 제 신발짝에 오마니 머리타래 짤라 고취가뤼랑 같이 옇어주세서 얼어 안죽고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슴메다.남한에서 참한 체에딸으 만나서리 장개들어 얼라르 여섯이나 뒀잲슴메까!” 최근 독일 푸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초청강연을 하게 된 이호철은 강연 발제문에서 “통일은 남북 양측 권력이 공히 그 지나친 고압성에서 벗어나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그런 점에서도 지금은 진정한 애정을 섞어 현 북한의 입장을 널리 이해하며 사심없이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호철과 김문수는 서로 다른 눈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그것은 바로 ‘사람’이고 ‘통일’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본회의장 스케치/ ‘막말 국회’서 ‘썰물 국회’로

    11일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은 전날 ‘욕설’ 공방에 비해 다소 차분해졌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이 대선에만 한눈이 팔려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사상문제’를 거론해 잠시 소란이 일었다.그러나 최근 사분오열돼 있는 당내 속사정을 반영하듯,민주당 의석에선 예전과 달리 거친 항의를 하지는 않았다. 김 의원은 “노 후보는 대한민국 후보인지,조선노동당 후보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그가 대통령이 되면 친북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철기(鄭哲基) 의원은 “용갑이가 육× 떨고 있네.”라고 극언을 퍼부었고,전갑길(全甲吉) 의원은 “아들 군대나 보내라.”고 비꼬았다.배기운(裵奇雲) 의원은 “에이,저질이다.”며 질의를 폄하했고,대부분 의원들은 “에이∼”라고 야유를 보냈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본회의장에 잠시 들렀을 때,질의 중이던 한나라당 최병국(崔炳國) 의원이 공교롭게도 정 의원과 정의원의 부친인 고(故)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을 비난해 눈길을 끌었다. 최 의원은 “현대는 지난 92년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시 500억원 이상의 기업자금을 빼돌린 전력이 있다.”며 “현대가 이번에 또다시 기업자금을 빼내 대선자금으로 쓴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그러나 정 의원은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 등과 대화를 나누며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이었다. ◆국무총리 임명 후 첫 국회 대정부 질문에 참석한 김석수(金碩洙) 총리의 답변은 대체적으로 무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총리는 지난번 인사청문회 때와는 달리,의원들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넘기는 등 다소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선 이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 반대’라는 한나라당측 주장과 관련,“남과 북이 이미 약속한 김 위원장 답방은 조기에 성사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관기/ 業의 고리를 풀어주소서

    부산의 아시아드 주경기장은 나와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지난번 월드컵 폴란드전과의 경기 때에도 여기에 와서 취재를 했었다. 그땐 바닥에 깔린 초록빛 융단과 붉은 악마들의 온통 시뻘건 응원이 눈과 귀를 부시게 하더니,오늘 개막식 행사에선 알록달록 자유분방한 관중석 빛깔과 관중들이 손에 들고 두들겨대는 나무주걱이 사람을 혼미 속으로 빠뜨린다.그 주걱은 주최측에서 관중들에게 전달한 선물 겸 박수용 타악기이다. 마지막 입장객인 남북 대표팀이 들어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처음부터 쉼 없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두들겨대던지.남북선수들이 함께 입장할 땐 또한 모두들 뛰쳐 일어나 얼마나 눈물겹게 아우성치던지.개막식이 막을 내린 지금까지도 그 딱딱이 주걱 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달라붙어 있다. 언론 매체를 통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생생하게 현장에서 맛보는 감동은 바로 오늘 같은 그런 것이리라. 동아시아 한편에 재앙의 폭풍이 휘몰아친 이래 반세기나 흘렀건만 땅 속으로 스며든 피눈물과 저주는 아직껏 정화되지 못하고 이 땅을 더렵혀왔다.저 어두운 땅 속으로부터의 오열과 원성은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다.뉴욕·파리·코펜하겐이 서울과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건만 평양과 서울의 낯빛은 천양지차로 달라져 버렸다. 그런데 마침내는 이 낯설음을 뛰어넘어 남과 북이 나란히 손에 손 잡고,웃음 띤 환한 얼굴로 당당히 진군해오는 가운데,저 하늘 가득 울려 퍼지는 딱딱이 주걱소리. 37억 아시아인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오늘은 ‘하나의 아시아’,잠정적이고 상징적이지만 일단은 ‘하나의 코리아’,그리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 ‘아름다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다. 근세에 와서 서구의 침탈로 말미암아 피억압과 피식민의 아픈 기억들을 나누어 가진 아시아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반세기 동안 으르릉거리던 남과 북이 서로를 다독이고 웃으며 행진하니 오늘 밤 ‘화합’의 의미는 남다르다. 마침 오늘 밤 바닷바람 불어 밤기운은 알맞게 쌀쌀하고 해양도시 부산의 위풍당당한 얼굴 너머로 화합의 합창은 우렁차기만 하다.막막한 암흑 속에서북소리 울리며 집중조명 같은 횃불이 타오르면 방사선으로 뻗친 환상적인 행렬들이 새로운 탄생을 합창하면서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생명감을 연주해 낸다. 경기장 가득 황홀한 빛의 아우라가 퍼져 나가면서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채화되어 날아와 합쳐진 성화가 통일의 염원을 노래하고,환상의 수레로부터 달려온 빛과 물안개가 저 아련한 구름 사이로 굽이굽이 넘쳐흐른다.나는 여태껏 이토록 천지를 뒤흔드는 우람한 축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삼국시대가 이윽고는 통일신라로 마감되었고,후삼국시대의 쟁패가 영원하지 못하고 마침내는 고려로 통합되었듯이,어떤 나라 어떤 역사에서든 불화와 분열은 영원할 수 없으리.우리는 오늘 이 순간부터 어떻든 하나되는 길목에서 있다.그리고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갑론을박 그 말 많던 한반도기에 얽힌 삽화들은 이젠 사라져 버려라.우리는 어느덧 이런 기도를 마음 속에 품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오오,천지만물을 주재하시는 조물주시여,죄와 고통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날 수 있게끔,반세기나 이어져온 우리네업(業)의 고리를 이제 그만 제발 풀어주시옵소서. 박영한/ 소설가.동의대 교수
  • 개구리소년 유골발굴 이모저모/ “유골이 웬말” 부모들 오열

    26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와룡산의 개구리 소년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는 허겁지겁 달려온 유가족들의 오열로 메아리쳤다.유가족들은 그동안 와룡산 일대를 이 잡듯 수색했다는 경찰의 말만 믿고 11년반 동안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맨 것이 한스럽다고 흥분했다. ◆김영규군의 아버지 현도(59)씨는 발견된 유골과 유류품을 보고는 몸서리쳤다.“영규가 맞는 것 같아요.실종 전날 사준,‘상인’이라고 적힌 푸른색상의 체육복을 입고 나갔거든요.이 신발도 영규 것 맞아요.” 11년반 동안 아들이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김씨는 경찰이 수거한 푸른색 옷과 신발을 보고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함께 발견된 다른 소년들의 유해도 예감상으로 모두 영규와 같이 나간 애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구리 소년 박찬인군의 아버지 근서(51)씨는 공무집행 방해로 교도소에 구속되는 바람에 어머니 김임자(50)씨만 현장에 달려와 유골을 확인했다.김씨는 “찬인이가 실종된 뒤 평소 성실했던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신경도 예민해졌다.”면서 “남편에게 찬인이 유골 발견 소식을 알려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 대부분은 현장에 달려와 유골과 유류품을 확인했으나 지난해 남편을 잃은 김종식군의 어머니 허도선(47)씨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허씨가 현장에서 심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여 가족들이 말렸다는 후문.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는 경찰 30여명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비를 폈다.경찰은 인근 주택에서 전기선을 끌어와 현장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혔다. ◆실종된 어린이들이 다녔던 성서초등학교 교사들은 이날 오후 개구리소년의 유골이 와룡산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학교 이영숙(48) 교사는 “4년 전 부임하면서 어린이 5명이 실종됐다는 말을 듣고 무척 마음이 아팠으나 언젠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원했는데 유골로 발견됐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 교사는 “학교에서는 실종된 어린이들이 돌아오면 언제든지 복학할 수 있는 길을 터놓기 위해 정원외 특별관리를 해온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종사건 발생 당시 근무했던 교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지만 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매년 3월이 오면 실종 어린이들이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골 최초 발견자인 최환태씨가 개구리 소년에게 걸린 현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 한 경찰 관계자는 “현상금 4200만원은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거나 실종 어린이를 발견했을 때 주도록 돼 있다.”면서 “최씨의 경우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것에 해당되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반면 다른 관계자는 “현상금을 건 6개 기업이 수사 진척이 없자 이를 도로 가져갔다.”며 “없는 현상금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했으나 보상금은 7년동안 이자까지 붙은 채 은행에 예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 대구 한찬규·김상화기자 cghan@
  • [열린세상] 룰라 현상

    그는 가난과 궁핍이 철철 넘치는 북동부 오지 세르탕 출신이다.자동차 공장 선반공으로 일하다 군정에서 민선 정부로 넘어오는 과정에 금속노련의 지도자가 되었다.그가 주도한 성공적인 파업과 압력 행사로 브라질의 민주화가 한 발 앞당겨졌다.루이즈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사람들은 그냥 ‘룰라’라고 불렀다.뛰어난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자연스레 신당 노동자당(PT)의 지도자가 된 그는 연이어 벌어진 대통령 선거에 세 번이나 출전해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1994년과 98년에 있었던 선거전 초반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1위를 달렸다.그렇지만 지난 두 번 연속 기득권층의 벽을 뚫지못하고 결선투표에서 번번이 패배했다.‘가진 자들의 브라질’은 대학교도 나오지 않은 노동자 출신이었던 그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지식인의 대명사였고 국제금융권이 지지했던 엔리키 카르도주 대통령이 연임하여 집권했지만,브라질의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외채는 지난 8년간 계속 늘었고,경제 실적도 신통치 못했다.고비용의 정치구조는 온존했고, 부패 스캔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빈곤층도 늘어났고,실업도 증가했다.중간계층도 이제 기득권층과 국제금융권이 유포한 ‘깨어진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드디어 룰라의 외침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거전이 시작되자 이전처럼 국제금융권과 언론사들은 룰라의 당선이 브라질 경제의 신인도를 떨어뜨려 디폴트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위협했다.국민들에게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온 위협이 이번에는 쉽게 먹히지 않았다.실제로 룰라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오를 때마다,상파울루의 주식지수나 헤알 화의 가치는 떨어지고.국가위험도는 상향조정되었다.그럼에도 룰라의 지지도는 계속 상승세를 지켜나갔다. 8월에 35% 수준을 유지하던 지지도는 현재 41% 수준으로 올라갔다.여론조사 기관 복스 포풀리에 따르면 결선투표 없이 1차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80%라고 한다.설령 결선투표에 가서 누구와 붙더라도 이긴다고 한다.현재 여당후보로 나선 조제 세하 후보는 19%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서,‘가진 자들의 브라질’은전전긍긍하고 있다.3위를 달리는 시호 고메스 후보와 세하 후보의 싸움이 너무 격렬하여 식상한 국민들이 오히려 룰라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과거 선거에서 그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유권자 비율은 50%나 되었다.그러나 지금은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지도 상승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그는 지식인,해방신학자,노동자,교사들의 정당인 노동자당의 강령을 유럽 사회민주당 수준의 프로그램으로 재조정했다.집권하더라도 국제금융권에 대한 의무를 방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기업인 출신의 프로테스탄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아울러 폭로와 비방보다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전국을 누비며 설명하는 강행군에 힘을 쏟았다.이러한 변신에 이타마르 프랑쿠 전 대통령은‘다른 사람’이 되었다고,‘정치적으로 성숙했고 협상할 줄도 아는 안정감있는 인물’로 변신했다고 격찬했다.브라질 최대의 정당인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거물로 대통령을 지낸 바 있는 사르네이와 프랑쿠가 지지를 표명하자,여당 블록은 사분오열되었다. 미국 대사 도나 리낙 여사도 룰라와 만나 미국과 브라질의 관심사를 나누었다.룰라가 사사건건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기에 여간 불편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리라.무엇보다 그는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의 협상과정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이다.그는 메르코수르(남미남부공동시장)의 통합을 더욱 전진시켜,이 블록을 바탕으로 미국과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현재 미국의 협상 진행 방식은 ‘병합’이지‘통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여 공동체를 건설하는 급진적인 운동단체인 무토지노동자운동(MST)에게도 이제 소요를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그가 당선되면 ‘농지개혁’을 실시하여 무단점유와 폭력행사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절단하겠다고 말했다.그는 기득권자들에게는 좀 덜 위험스러운 인물로 변신했고,국민 대중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10월6일 브라질 국민들의 대답을 기다려보자.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5차 이산상봉 첫날/‘만남의 금강산’ 또 눈물의 메아리

    반세기만의 만남에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5차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3일 오후 금강산 온정각휴게소 단체상봉장에 북쪽 가족이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자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여기저기서 반가움의 울음을 토해냈고 상봉장은 곧 흐느낌으로 가득찼다. 50여년 동안 몽매에도 잊지 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형,동생,아들,딸의 얼굴을 한참 비벼대고 어루만진 뒤 울음을 그친 이들은 그제서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지을 수 있었다. 북의 권오설(81)씨는 반세기 동안 딸 셋을 키우며 수절한 아내 박중하(81)씨에게 “내가 불효자지.당신,고생했어.”라고 말했다.박씨는 그동안의 고생과 전쟁통에 전염병으로 숨진 아들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50년 동안 끊겼던 부부의 연이건만 다시 잇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네살 때 헤어진 아버지 이상설(74)씨를 만난 남측의 딸 영옥(54)씨는 “어머니는 아버지랑 헤어진 뒤 3년만에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할머니도 10년 전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고 말했고 이씨의 대답은 ‘목놓은 통곡’이었다.52년 전 헤어진 북의 아버지 이규염(82)씨를 만난 진옥(60)씨는 “아버지,나 모르겠어? 아버지,한번만 안아줘.”라고 말하며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태평양을 건너온 심민자(75·여·미국 LA)씨는 북쪽의 동생 수영(70)씨를 만나자마자 손을 부여잡고 “혼자 4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는 네가 북에서 죽은 줄로만 알고 눈물로 보내다 15년 전 돌아가셨다.”고 애절한 사연을 전했다. 혈육을 찾아야 하는 절박함 앞에는 불치병도 어쩌지 못했다.북의 형 이영식(68)씨를 만난 폐암 2기의 영훈씨는 언제 몸이 아팠냐는 듯 형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또한 남쪽의 신성균(68)씨는 음악가였던 북의 형 명균(71)씨를 위해 플루트로 ‘고향의 봄’ 등을 연주하기도 했다.남측 최고령자인 김순규(93) 할머니는 자신만큼 늙어버린 딸 최순옥(72)씨의 얼굴만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북의 가족들은 이날 단체 상봉에 이어 저녁식사를 한 뒤 다음날 만남을 기약하면서 각자의 숙소인 해금강호텔,설봉호와 금강산여관으로돌아가 흥분된 첫날 밤을 보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박록삼기자 youngtan@ ■南시각장애인 상봉기/ 이마상처 더듬으며 “오빠 맞네” “우리 오빠 맞아,오빠…” 52년을 절절히 그리워했던 피붙이를 알아보는 데는 정겨운 목소리 하나면 충분했다.앞못보는 눈은 반백년을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에도 부족했다. 남쪽의 선천성 시각장애인 여동생 김근래(68)씨는 오빠 학래(74)씨가 “근래야.”하면서 자신을 부르자 대뜸 오빠임을 알아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손가락으로 오빠의 얼굴을 더듬어보다 이마의 상처를 확인한 뒤 “오빠,맞네.”하며 다시 오열했다. 학래씨는 “근래가 어렸을 때부터 앞을 못봐서 항상 안쓰러웠다.”면서 “오빠로서 눈을 못고쳐준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하지만 학래씨는 “영영 못볼줄 알았는데 살아서 널 만나게 되니 아주 좋다.”고 기뻐했다. 다른 남매들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각별했던 오누이였다.남동생 준래(73)씨는 “근래가 형님 얘기만 나오면 아무 일도 못하고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6·25때 오빠의 등에 업혀 피난길에 나섰던 곱디 고왔던 열여섯살의 누이는 전쟁통에 인민군이 돼 북으로 간 오빠를 정감있는 목소리와 푸근한 등판의 느낌으로 52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다.근래씨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오빠의 목소리를 귀에 새겨놓으려는 듯 상봉 내내 한 마리 어린 새처럼 오빠 곁에 꼭 붙어 있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박록삼기자
  • [9·11테러 1주년] (상)현장르포: 아물지 않는 상처

    전대미문의 9·11테러가 일어난 뒤 지난 1년 미국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다방면에서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겪었다.충격에서 조금씩 회복해 가는 뉴욕시민들의 모습과 증오와 비탄속에서 상처의 치유를 모색하는 미국사회,그리고 대 테러전의 와중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국제사회의 재편 움직임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참사 폐허에 관광객 물결 [뉴욕 백문일특파원] 비행기 자살 공격으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세계무역센터(WTC) 자리는 이제 현대판 ‘성지 순례지’가 됐다.하루 평균 방문객은 2만 5000명,연간 900만명 이상이 다녀간 셈이다.공식 확인된 사망자와 실종자는 2819명.그러나 정확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맨해튼 월가 전철역에서 내려 북서쪽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앞서가는 행렬만 따르면 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거리 이름이 여운을 남기는 ‘처치(Church)가’와 ‘리버티(Liberty)가’가 만나는 교차로에 이르자 마천루 사이로 횅하게 뚫린 참사 현장이 드러났다.지반을 다지는 듯한 굉음소리가 요란하다. 얼핏 보면 일반 공사장과 다를 게 없다.둘러쳐진 철조망과 어지럽게 널려있는 철골더미.그러나 그 가운데에 우뚝 솟은 녹슨 철 십자가와 철조망에 걸린 꽃다발,군데군데 세워진 성조기 등은 이곳이 ‘그라운드 제로(피폭의 중심지)’임을 말해준다.남쪽의 도이체방크 건물은 붕괴 위험이 있어 아직도 문을 닫고 있다. 방문객들은 남쪽 철조망 너머의 폐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가족 단위로 온 경우가 많다.시카고에서 온 제임스 킹은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현장을 보여주러 왔다.”고 했다. 다른 한 켠에선 희생자 가족들이 1주년 특집을 준비하는 현지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소방대원인 20대 초반의 아들이 구조작업을 벌이던 도중 숨졌다는 남미 출신의 한 부인은 끝내 오열했다.방문객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구조작업에 나섰다 오른쪽 팔을 못쓰게 된 뉴욕소방국(FDNY) 미드맨해튼의 전 부서장 클레언시 싱글턴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잔해에 깔린 동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WTC 맞은편에 있는 트리니티 성당에 딸린 묘지는 순례의 두번째 코스다.그 울타리에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신문기사가 걸려있다. 이들을 기리는 글을 써놓은 깃발과 모자도 있다.자원봉사자들은 펜을 들고 추모의 글을 남길 사람을 기다린다.방문객들은 인근 상점에 들러 WTC가 새겨진 모자나 티셔츠를 산다.뉴욕소방국(FDNY)과 뉴욕경찰국(PDNY) 이니셜은 기념품의 로고가 됐다. WTC 터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원웨이’선물점을 운영하는 한인 교포는 “아침 일찍 피자나 꽃 등을 배달하거나 청소를 하다가 테러를 당한 불법 체류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첼시 진’이라는 옷 가게는 당시 잿더미로 덮인 옷과 WTC에서 날라온 서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테러 직후 ‘유령의 도시’같던 맨해튼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됐다.50∼60%까지 뚝 떨어졌던 주변 사무실의 입주율은 80∼90%대로 올라섰다.건물 뒤쪽에 사무실을 임대한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지만 적어도 ‘고층빌딩 기피증’은 사라지고 있다.주변 26개 아파트 7000가구에도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키로 하자 주민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관객이 급감,위기에 몰렸던 브로드웨이의 극장가 역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밤 10시40분,뮤지컬과 연극공연이 끝난 46번가 일대에는 갑자기 쏟아진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Beast)’가 공연되고 있는 런트 폰테인 극장의 스태프 조제트 소토는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러 온다.지난해보다 훨씬 나아져 주말 표는 거의 매진된다.”고 말했다. 영화 스파이더 맨의 무대가 된 타임스퀘어 맞은 편 음식점 ‘록시’의 점원은 “9·11을 잊을 수는 없지만 추가 테러 경고에 겁먹지 않는다.”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맨해튼 중심가 호텔에 방을 구하려면 적어도 10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70%까지 요금을 깎아준다던 얘기는 옛말이 됐다. 그러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5월 말 잔해 제거 작업이 끝났음에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 가족들은 1주기가 되도록 영결식조차 못 치르고 있다.정부가 1인당 평균 150만달러의 보상금을책정했지만 보상을 신청한 가족은 620명,이 가운데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일부다. 유골을 찾기 전까지 보상이나 WTC 재건은 있을 수 없다는 절규의 목소리도 나온다.시 보건당국에는 아직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가 2만점이나 있다. 비행기 여행을 꺼리거나 정신병원을 찾는 환자도 줄지 않고 있다.초등학교에서는 9·11 테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고층빌딩마다 보안요원이 배치돼 있고 공공기관과 공항 출입에는 까다로운 보안검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이 겉으로는 충격에서 벗어난 듯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충격과 잠재적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mip@ ■WTC 재건축 계획은/ 70층 이상 금융빌딩 세울듯 [뉴욕 백문일특파원] 9·11 테러 1주기가 다가오지만 붕괴된 세계무역센터(WTC)의 재건계획은 아직도 진행형이다.지난 7월 1단계로 6개안이 제시됐으나 밋밋하다는 부정적인 반응만 얻었다.그러나 공청회와 1차 설계공모 등을 거치면서 기본적인 개념은 정해졌다.무엇보다도 남부맨해튼의 포괄적인 개발과 실추된 ‘미국의 자존심’을 되살리려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건계획을 전담하기 위해 주정부와 뉴욕시가 설립한 남부맨해튼개발공사(LMDC)는 지난달 19일 전세계 건축가와 도시계획가 및 조경설계사 등을 대상으로 공모조건을 밝혔다.16일까지 신청을 받아 이달 말 5개팀을 선정한다.이가운데 연말까지 1팀을 정해 최종적인 마스터 플랜을 만들 예정이다. 논란을 거듭한 WTC의 재건축 여부는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 역할을 할 수 있는 오피스 빌딩을 짓는 것으로 정리됐다. 꼭 같은 층수의 쌍둥이 빌딩을 세울 필요는 없다.역사의 현장을 되새길 기념비를 세우고 쌍둥이 빌딩이 섰던 터를 하나만이라도 보존하는 것으로 대신키로 했다.다만 맨해튼의 스카이 라인을 복원시킨다는 취지 아래 적어도 70층 이상의 건물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개발공사와 WTC의 소유주인 뉴욕 및 뉴저지 항만청은 민간투자 촉진의 일환으로 통근자와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편하도록 도로,지하철,항만시설,도보 등과 종합 연계된 교통센터의 건립을 필수요건으로 꼽았다. 지금까지 5000건에 이르는 재건 계획안이 접수됐으며 개발공사 웹 사이트에는 각종 단체와 시민 등으로부터 하루에도 수백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9·11테러 이후 주요일지 2001년 ◆9월12일 부시 미 대통령,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유엔 안전보장이사회,테러 비난 결의문 만장일치로 채택 ◆9월13일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배후로 지목 ◆9월21일 탈레반,미의 빈 라덴 인도 요구 거부 ◆10월2일 나토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방위권(제5조) 발동 ◆10월7일 미·영 연합군 아프간 공습 개시 ◆11월3일 북부동맹,카불 입성 ◆12월11일 알 카에다 항복 선언 ◆12월22일 카르자이 아프간 과도정부 수반 취임 2002년 ◆1월30일 부시 대통령 이란·이라크·북한 ‘악의 축’으로 규정 ◆1월31일 미군,필리핀서 아부 사야프 공격작전 개시 ◆5월23일 부시 대통령,사담 후세인 축출 천명 ◆5월24일 부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대테러 협력’조약 체결 ◆8월1일 미국,아세안과 대테러 협약 체결
  • “고통없는 세상서 편히 쉬소서”故이주일씨 어제 영결식

    온 국민의 가슴에 웃음을 심어주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본명 鄭周逸)씨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9시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연예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영결식에는 유족과 100여명의 동료·후배 연예인,고인을 사랑한 팬 등 1000여명이 참석하여 ‘이 시대 최고의 광대’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당신은 웃음의 제왕이었습니다’ 탤런트 이덕화씨의 개식사와 코미디언 박인수씨의 약력소개가 끝난 뒤 송해씨의 조사가 이어지자 장내에는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송씨는 “누가 뭐래도 당신은 웃음의 제왕이었다.”면서 “62년 굴곡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이가 외롭지 않게 당신의 웃음을 간직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오열의 60분= 영정 앞 VTR에서는 그가 살아생전 녹화했던 마지막 쇼의 한토막이 방영됐다.“왜 이렇게 가혹한 벌을 주십니까? 바보처럼,고생하면서,남을 웃기면서 살아온 죄밖에는 없습니다.” 그가 대사를 끝내고 주저앉자 화면속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고,다음 순간 빈소는 울음바다가 됐다.◆아들 곁으로= 장명수 한국일보 사장은 고인의 신문연재 회고록을 단행본으로 만든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를 부인 제화자씨에게 증정했다.가수 최진희씨는 추모곡 ‘천상재회’를 부르다 솟아나는 눈물에 노래를 잇지 못했다. 경찰차의 호위를 받은 운구행렬은 오전 10시쯤 경기도 성남 고인의 농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곧바로 성남시립 화장장으로 향했다.이곳에서 화장한 유해는 강원 춘천시 경춘공원 납골묘에 안치됐고,위패는 먼저 떠난 아들이 있는 서울 봉은사에 봉안됐다. 고양 주현진기자 jhj@
  • 이주일씨 빈소 이모저모

    27일 일산 국립암센터에 차려진 고 이주일씨의 빈소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인과 팬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동료 선·후배 연예인들은 이날 영정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등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장례 집행위원장인 코미디언 한무씨는 이날 오후 4시40분쯤 가장 먼저 썰렁한 빈소로 달려와 눈물을 머금은 채 분향했다. 한씨는 “고인이 죽은 아들 걱정을 많이 했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면서 “월드컵만 보고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던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눈물을 떨궜다. 병상을 지키다시피 했던 이용식씨는 “형”하고 오열하며 헌화한 뒤 10여분간 영정 앞에서 대성통곡했다. 공동 집행위원장 석현씨도 “고인이 생전에 너무도 큰 일을 많이 했고 죽어가면서도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면서 “장학회나 동상 건립 등 범연예계가 참가하는 기념사업이 추진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6일 구성된 장례위원회에는 이덕화씨를 위원장으로,코미디언,가수,탤런트,영화배우 등 190여명이 참가했으며,방송사 제작본부장들도 집행위원에 포함돼 있다. ◆이씨가 숨을 거둔 순간 병상 옆에는 주치의인 국립암센터 이진수 부속병원장과 함께 부인과 두 딸,사위 등이 남아 임종을 지켜봤다. 이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여서 유언을 남기지는 못했다. 병원측은 이날 오후 4시쯤 이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1호 분향실에 빈소를 마련하고 이씨의 시신을 옮겼으며 30분 뒤인 오후 4시30분쯤 영정을 설치했다. ◆국립암센터 중환자실에서 10여일째 의식불명상태였던 이씨가 이날 오후 3시5분쯤 숨졌다는 소식이 국립암센터측에 의해 즉각 알려졌으나 잠시 후 의료진의 심폐 소생술로 다시 살아나 ‘사망’이 ‘생존’으로 정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러나 10분정도 숨을 이어가던 이씨는 오후 3시15분쯤 정식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사인은 비소세포성 폐암.이씨는 지난해 10월 17일 한양대 부속병원에서 건강검진 중 폐암 판정을 받았다. ◆방송 3사는 이씨가 타계한 27일 밤 ‘코미디언 이주일 추모 특집’을 긴급 편성,방영했다. 이씨와 ‘웃으며 삽시다’를 연출했던 MBC 장태연예능국장은 “이씨는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돋보였던 분”이라면서 “인생선배로서,코미디언으로서 무척 존경했었다.”고 애석해했다. 고양 한만교·노주석 이송하기자 mghann@
  • 서해교전 전사 故한상국 중사 영결식

    “서해바다에 뿌려진 당신의 피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씨앗이 될 것입니다.” 6·29서해교전 때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한상국(韓相國·27) 중사의 영결식이 11일 오전 9시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해군장으로 열렸다. 영결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장대환(張大煥) 신임 총리서리,이준(李俊) 국방장관,이남신(李南信) 합참의장,한·미연합군 리언 J 라포트 사령관 등 정부 각료와 군 수뇌부 등이 대거 참석,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정부와 군 수뇌부가 거의 참석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던 서해교전 전사 해군장병 4명의 지난달 1일 합동영결식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헌화,분향,묵념,운구 순으로 진행됐다.서해교전의 생존자인 황창규(27) 중사가 추도사를 읽자,유족들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고 장 총리서리도 눈물을 훔쳤다. 한 중사의 아내인 김종선(28)씨는 오열을 하다 한 때 정신을 잃어 부축을 받았다. 한상국 중사는 93년 광천상고를 졸업한 뒤 95년 해군에 입대,지난 12월부터 고속정357호의 조타장을 맡았다.서해교전 당시 조타실이 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불길에 휩싸였으나,한 중사는 끝까지 조타실을 지키며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군측은 밝혔다.고속정 357호의 생존자들은 “배·가슴 등에 파편을 맞은 상황에서도 한 중사는 357호를 구하기 위해 조타실의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중사에게는 일계급특진과 함께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한 중사의 유해는 성남시립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됐다. 오석영기자 palbati@
  • 韓중사 유해 41일만에 가족에게

    해군 해난구조대(SSU) 소속 잠수요원들은 하루 반나절에 걸친 힘겨운 수중작전 끝에 6·29서해교전 당시 실종된 고속정 승조원 한상국(韓相國·사진) 중사의 시신을 찾았다. 침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대한 수색 및 인양작전을 개시한 지 이틀째인 9일 오전 11시 연평도 서남쪽 29.3㎞ 해상에서 2인 1조의 잠수 요원들이 수심 20m 아래 모래펄에 처박힌 선체를 뒤지기 시작했다.시정거리가 채 1m도 안되는 탁한 서해 바닷물속에서 수색작업은 손으로 더듬더듬 헤집어가며 진행됐다. 오후 5시25분쯤 고속정의 반파된 조타실 안의 키와 편대장 의자 사이에서 사람으로보이는 물체를 찾았다.잠수 요원들은 위치를 재확인한 뒤 물위로 올라와 대기중이던다른 잠수 요원들과 교대했다.시신 인양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시신은 구조함인 청해진함으로 옮겨졌다.바다 속에 41일 동안 잠겨 있던 한 중사의 시신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하지만 해군 전투복 가슴 한쪽에는 ‘한상국’이라고 적힌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한 중사의 부인 김선미(가명·27)씨 등 일가족은 군용 헬기편으로 연평도에 도착,시신을 확인한 뒤 오열을 터뜨렸다. 오석영기자 palbati@
  • [현장] “못다핀 영혼 평안히 잠들어라”

    “효순아 미선아,우리 모두 너희를 가슴에 묻었다.평안히 잠들어라.” 31일 오전 10시40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 2리 마을회관. 미군 장갑차에 피지도 못한 채 희생된 두 여중생의 어린 영혼을 보내는 49재가 처연함과 숙연함 속에 치러졌다. “자식을 못 지킨 부모로 아무 할말이 없습니다.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49)씨가 말끝을 잇지 못하자 35가구가 사는 효촌2리와 행사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이날 49재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소속 시민단체 회원과 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분향에 이어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살풀이 순으로 진행됐다. 같은 시간 미선양의 어머니 이옥자(48)씨와 몇몇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을 영원히 떠나 보내는 곳에 차마 있지 못하겠다.”며 의정부의 한 사찰에서불공을 드렸다. 주민 윤훈자(34)씨는 “아이들이 희생된 이후 마을 주민 전체가 일손을 놓고 고통과 충격에 빠졌다.이제 두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이날 행사장엔두 여중생의 장례가 치러진 직후인 지난6월17일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2사단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유순득(45·여)씨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숨진 미선양의 오빠 규진(18·경민고 3년)군의 친구인 아들 정현구(18)군으로부터 두 여중생의 죽음을 전해 들은 후 시위를 시작한 유씨는 “사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미군 책임자가 처벌돼 어린 영혼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49재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1㎞ 떨어진 사고 현장까지 “살인미군 구속하라,양키 고홈”을 외치며 행진했다. 사고 현장에 흰색 국화가 놓여질 때 멀찌감치 도로변에는 효순양의 어머니 전명자(48)씨가 홀로 풀숲에 머리를 떨군채 오열하고 있었다.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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