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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조직 개편을 말한다] (끝) 전문가 100인 설문조사

    [정부조직 개편을 말한다] (끝) 전문가 100인 설문조사

    이명박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큰 틀에서는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다. 하지만, 국가 전략기획 기능을 담당할 조직의 형태 등 세부 부문에서는 몇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 정부조직이 잘못 짜여지면 효과적으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그 후유증이나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부조직 개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서울신문은 한국조직학회와 공동으로 조직학 분야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한국행정DB센터에 의뢰,5∼8일 나흘 동안 전임 이상 교수, 상임 연구원급 이상 전문가로 한정해 이뤄졌다. 한국조직학회의 자문을 받아 부문별 쟁점에 대한 해법과 의미를 짚어 봤다. 1.경제부처 어떻게 현재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 관련 주요 4개 부처는 2∼3개로 재편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복수의 안이 경합을 벌이면서, 관련부처들은 ‘동상이몽(同床異夢)’식 희망을 품고 있다. 각각 자신의 부처를 중심으로 기능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 경제원리에 맞다는 주장이다. 우선 재경부는 기존 재정·세제 등의 업무에 예산·기획·조정 기능을 덧붙여 옛 재정경제원(1994∼1998년)의 부활을 고대한다. 이는 외형상으로 기획예산처를 흡수하는 형태가 된다. 반면 기획처는 재경부의 경제정책 기능을 떼어와 옛 경제기획원과 같은 부처로 재편되기를 원한다. 또 금감위는 재경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흡수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으며, 공정위는 최소한 현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조직 분야 전문가 100인 가운데 57명은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금감원 등 금융 관련 조직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경부의 경제정책 기능은 기획예산처에 넘겨 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 등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1부·1처·2위원회는 1부·1위원회 정도로 슬림화할 수 있다. 또 기획처는 현 수준을 유지하고, 재경부의 경제정책 기능과 산자부의 산업지원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34명으로 적지 않았다. 이는 경제부처들을 재정(예산), 정책(세제), 금융 등 3단 정책기능을 중심으로 전문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 현 조직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6명에 그쳤다. 2.시기와 청와대·총리실 역할 조직 분야 전문가들은 이명박정부가 추구할 핵심가치로 경제문제(49명)를 꼽았다.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양극화 해소 등에 압도적인 비중이 놓여 있다. 다만 규제완화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수단들이 양극화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조직 개편작업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완료돼야 한다는 응답이 67명에 이를 만큼 압도적이다. 이는 4월 총선 이후 등으로 개편작업이 늦춰질 경우 새 정부 초기의 정책들이 표류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섞여 있다. 또 정부조직 개편이 일괄적으로 이뤄져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 등도 고려됐다. 아울러 개편작업이 지지부진해질 경우 각 부처들의 자구논리와 뒤엉키면서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개편작업을 총선 이후 본격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은 5명에 그쳤다. 한편, 청와대와 총리실의 역할과 관련, 전문가 51명이 대통령비서실은 주요 어젠다 위주로, 총리실은 일반 국정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박 당선인의 행보와 인수위원회의 움직임을 살펴 보면, 대통령비서실에 권한과 기능이 지나치게 집중돼 사실상 총리실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총리실의 주요 정책조정 기능을 청와대로 옮기고,3개 ‘실’ 가운데 정책실·안보실을 폐지한 뒤 비서실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34명이나 됐다. 또 대통령 비서실과 각종 자문위원회는 물론, 국무조정실까지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13명)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두 의견은 비서실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핵심부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 인수위가 검토에 착수한 청와대 조직개편의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경우 국무조정실은 다른 부처로부터 기능을 넘겨 받지 않는 이상, 적어도 장관급 직위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인수위는 또 경제정책 등에 대한 조정·기획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국가경제회의(NEC)와 유사한 기구를 설치하거나, 현행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가 전략기획 기능을 수행할 바람직한 조직 형태로 52명이 ‘반민·반관’을 꼽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NEC나 국민경제자문회의와 유사 형태의 기구가 전략기획 기능을 수행하면,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 3.산업 부문 조직 개편 산업 관련 기능은 산업자원부를 중심으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게 중론(88명)이다. 이 경우 정보통신부의 정보기술(IT)산업 관련 기능을 넘겨 받는 게 필수적이다. 이 기능은 두 기관간 업무 중복이라는 안팎의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정통부는 정보통신 관련 규제 기능은 방송위원회에 넘기고, 우정사업 부문을 민영화하면 더이상 독립 부처로서 존재 가치가 없어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아 나갈 수 있다. 또 효율적인 중소기업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산자부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특별위원회 등으로 분산된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평가다. 이 때 새 정부가 ‘대기업은 자율, 중소기업은 지원 강화’라는 원칙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이 독립 부로 확대 개편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산업정책 기구가 중복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일 수 있다. 때문에 산자부 내 독립 부서로 두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 다만 산자부가 정통부와 중기청 등의 기능을 흡수할 경우 비대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산업화시대에 걸맞은 기존 조직의 구조조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차산업 부문과 관련해서는 농림부·해양부·복지부 등의 식품 관련 기능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48명으로, 가장 많았다. 참여정부에서는 ‘식품안전처’ 신설로 가닥을 잡았었지만, 새 정부에서는 식품의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관리하기 위해서는 농림부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경우 기능의 절반 가량을 떼어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복지부로 흡수되는 게 낫다는 분석이다. 4.외교·총괄조정 부문 개편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등 외교·안보 부문에서는 현 체제를 소폭 수정하는 선에서 재편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45명)이 가장 많았다. 즉 정책 총괄은 국가안전보장자문회의(NSC)에서, 남북 문제는 통일부에서, 외교·통상 기능은 외교부에서 각각 주도해야 한다는 것. 이는 인수위원회가 최근 통일부에 대한 폐지에서 존치 쪽으로 방향 선회가 감지되는 만큼, 외교부가 통일부 기능 흡수보다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확산에 따른 통상업무 강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가경쟁력 강화 및 일자리 창출 부문과 관련해서는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연구개발 지원기능을 통합하고, 교육부의 평생학습·직업교육 기능과 노동부의 직업훈련·고용 기능을 합치는 방안이 대안(61명)으로 꼽혔다. 현재 교육부와 과기부의 연구개발 지원기능은 중첩돼 있어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또 교육부의 평생학습 기능 역시 노동부와 겹치는 영역이 상당수다. 때문에 연구개발은 과기부로, 평생학습은 노동부로 일원화해야 누수 요인을 없애고 역할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입 단계적 자율화 방침 등으로 권한이 대폭 위축될 가능성이 큰 교육부가 독립 부처로 존속하게 되면 연구개발·평생학습 기능 확장을 통해 관련부처간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총괄조정 부문의 핵심부처인 행정자치부에 대해서는 축소가 대세(54명)로 나타났다. 지방분권이 강화되면서 행자부의 기존 역할과 기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행자부의 공백은 일반행정 기능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안전관리는 안전관리 주무부처 신설을 통해, 인사행정 기능은 중앙인사위원회와의 통합 등 기능별 ‘헤쳐모여’가 바람직하다는 것. 이밖에 건설교통부와 환경부의 역할 재정립도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 조직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8명에 불과했다. 환경부의 경우 에너지 분야에서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 등 관련부처와 업무 연계성을 강화해야 하고, 해양부의 물류 기능 역시 건교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설문조사 참여 100인 명단 유종해(연세대, 전 행정학회장) 문명재·이양수·한상일(연세대) 김호섭(아주대, 전 조직학회장) 유홍림(단국대, 전 조직학회장) 강창현·오열근(단국대) 민진(국방대, 전 조직학연구회장) 이창원(한성대, 조직학회장) 김인철·장지호(한국외대) 김관보·박광국·박석희(가톨릭대) 박상인(서울대) 최창수(고려대) 박통희(이화여대) 이석환·조경호(국민대) 하미승·강황선(건국대) 강제상(경희대) 심익섭(동국대) 오성호·이명재(상명대) 김상묵(서울산업대) 황기연(홍익대) 김주찬(광운대) 이창길·이덕로(세종대) 주재현(명지대) 김완식·배귀희(숭실대) 최창현(관동대) 권기창(한양사이버대) 문병기(한국방송대) 고숙희(세명대) 박종득·전주상(배재대) 박상규(나사렛대) 남상화(호서대) 박기관(상지대) 김광주(경일대) 윤기찬·정병걸(동양대) 옥동석·김동원·진종순(인천대) 김천권(인하대) 오영균(수원대) 홍성만(안양대) 장인봉(신흥대) 박영기(한남대) 김대건·정정화·홍형득(강원대) 조주복·신승춘(강릉대) 최영출·이재은(충북대) 진재구·하민철(청주대) 윤경준(충주대) 곽현근(대전대) 권선필·신열(목원대) 김왕식(공주대) 이하형(대덕대) 배점모(호원대) 정재화(대진대) 이상엽(한서대) 우영제(혜천대) 이석호(신성대) 임재강·정우열(경운대) 정진우(인제대) 주효진(꽃동네대) 안국찬(전북대) 오재록(전주대) 박종주(원광대) 황영호(군산대) 오필환(백석대) 김성기·김호균·최성욱(전남대) 이계만(조선대) 손귀원(목포대) 박영미(초당대) 조선일(순천대) 박성원(서남대) 이시철(경북대) 김용태(대구과학대) 김정기(국제대) 이상철(부산대) 한세억(동아대) 이상진(경상대) 이원일(영산대) 정재욱(창원대) 오승은(제주대)
  • “한국에 왔다며 신년인사 왔는데…”

    “한국에 왔다며 신년인사 왔는데…”

    7일 ‘코리아 2000’ 냉동창고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나 하청업체 직원, 중국 동포들이었다. 하루하루 힘든 노동을 하며 먹고 사는 이들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했다. 특히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고국으로 일하러온 중국동포 12~13명이 사망했다. 생사확인이 안 되다 끝내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김준수씨의 장모 명모씨는 “손녀가 눈치가 뻔해 ‘아빠가 다친 거야?’라고 물어서 할머니가 확인해 보고 온다며 다독이고 겨우 나왔다.”면서 “사위는 딸에게 ‘5일 뒤면 일이 모두 끝나니 그때부터 많이 놀아주겠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오열했다. ●대부분 일용직근로자·하청업체 직원 사망한 중국동포 김용해(26)씨의 고모 김모씨는 “조카가 몇달 전에 중국 지린성에서 한국으로 돈벌러 왔다.”면서 “며칠 전에는 나에게 신년 인사까지 다녀갔다.”며 땅을 쳤다. 김씨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본 뒤 신호가 가다가 곧바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실신했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베스티안병원에는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던 중국동포 부부가 동시에 사고를 당한 사실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응급치료를 받고 입원해 있는 임춘원(44·여)씨는 얼굴에 3도 화상을 입고 몸 전체의 35%에 화상을 입었다. 남편 이성복(44)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중국 지린성에 23세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한국에 온 부부는 창고의 단열재 마감 작업을 했다. 임씨의 담당의사는 “의식도 없고, 얼굴 화상도 심해 세균이 들어가면 폐로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안순식(51)씨는 이천에서 생활하며 주말에만 서울 도봉구 집을 방문하던 가장이었다. 매형 김진세(63)씨는 “용접일을 30년 정도 하면서 아들·딸 다 키우고 효도받는 일만 남았는데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결혼 3개월만에 날벼락 화상을 입은 천우한(34)씨는 서울 구로성심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천씨의 아버지 천종길(61)씨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 관계자는 “천씨는 몸 전체의 50% 이상에 2∼3도 화상을 입었다.”면서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화상뿐만 아니라 기도의 상태도 좋지 않다.”고 전했다. 천씨는 유치원 교사인 부인 전모(30)씨와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그는 경기 성남시 단대동에 신접 살림을 차리고 “출퇴근이 편한 가까운 회사로 옮기겠다.”며 ‘코리아 2000’에서 냉동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 1개월 반 만에 사고를 당했다. 천씨의 아버지는 임신 3개월인 며느리가 충격을 받을까봐 아들의 사고 소식을 며느리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뒤늦게 남편의 동료로부터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전씨는 이날 오후 5시40분쯤에야 병원에 도착해 오열했다. 이경주 서재희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단독]성당가다 실종 연정희씨 가족 눈물의 세월

    [단독]성당가다 실종 연정희씨 가족 눈물의 세월

    실종이 만연하고 있다.4일로 안양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 2명이 사라진 지 11일째다. 오는 9일이면 4명의 여성이 홀연히 사라진 화성 부녀자 연쇄실종사건 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1년이 된다. 하지만 수사는 진척이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개월 동안 미귀가·가출신고는 성인 3만 511건, 청소년 1만 1510건으로 모두 4만 2021건이 접수됐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실종 중에는 분초를 다퉈 대응해야 할 사건이 있는가 하면 장기간 대응해야 할 사건도 있다.”면서 “단순히 결과만 놓고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을 지적할 게 아니라 경찰에는 실종 수사 전담 인력과 조직을 양성해 긴급 대처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장기화된 실종은 민간 용역으로 대처하는 등으로 국가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성과 안양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되짚어봤다. 현관문을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신고 나갔던 갈색 부츠를 벗지 않고 있다. 헌금할 돈 1만원을 들고 성가대 연습을 위해 10분 거리의 성당에 간다며 나갔다가 홀연히 사라진 연정희(21·여)씨. 지난해 1월7일 오후 5시30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여성에게 “(성당으로 가는)사당행 버스 지나갔나요?”라고 물었던 게 마지막 자취였다. 몸이 약해 무던히도 애태우던 딸이었다.4살 때 처음 픽 쓰러진 뒤 아버지 연모(51)씨가 업고 뛴 기억이 생생하다. 수술까지 해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늘 부모의 주의 아래 행동했다.“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부모의 오열은 그래서 나왔다.‘완치됐을 때 감사 기도가 약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라는 부질없는 자책도 부모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모를 정도로 착한 딸이었다. 집과 학교, 성당만 오갔다. 성악 콩쿠르에서 상을 타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에게 기쁨도 안겨줬다. 두살과 열한살 터울의 동생들에게도 마냥 좋은 언니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시곗바늘은 멈췄다. 낌새가 이상해 경찰에 신고했고 휴대전화 위치추적도 의뢰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잡힌 신호가 마지막이었다. 설마했다. 수원 중부서 형사 셋이 달려왔다. 그 즈음 화성에서 부녀자 3명이 사라진 직후라고 했다. 관련 범죄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아는 사람이 데려갔는데 화성 사건과 연관됐다고 보도돼 못 데려오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방송에 기대서라도 찾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우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목격자 제보를 바랐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지만 점쟁이도 여섯 차례나 찾았다. 한 무속인을 불러 기운이 느껴진다는 장소에 가서 가족이 직접 수색하기도 했다. 경찰이 나서기 전에 큰 현수막 3개를 아파트 주변에 붙였다. 전단지도 수천장 뿌렸다. 부질없었다. 5월8일. 경기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앞서 실종됐던 노래방 도우미 박모(37·여)씨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는 ‘천벌받을’ 생각을 했다. 박씨에겐 불행이지만 시체 발견이 단서를 주길 바랐다. 야산 인근 폐쇄회로(CC)TV에 넉대의 자동차가 포착됐다는 소식에 들떴다. 하지만 구식 카메라라 차번호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에 다시 고개를 떨궜다. 한여름 장마 때였다. 목격자를 찾는다는 현수막 한쪽이 누군가에 의해 풀어져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줬나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튿날 현수막은 완전히 나가떨어져 있었다. 아버지 연씨의 마음은 널부러진 현수막처럼 갈기갈기 찢겼다. 하지만 딸이 분명 어딘가 살아있으리란 희망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범죄 피해자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가족 모두가 죽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우리 딸이 당한 범죄가 다른 이들에겐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세워주세요.” 수원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단독] 성당가다 실종 연정희씨 가족 눈물의 세월

    [단독] 성당가다 실종 연정희씨 가족 눈물의 세월

    실종이 만연하고 있다.4일로 안양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 2명이 사라진 지 11일째다. 오는 9일이면 4명의 여성이 홀연히 사라진 화성 부녀자 연쇄실종사건 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1년이 된다. 하지만 수사는 진척이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개월 동안 미귀가·가출신고는 성인 3만 511건, 청소년 1만 1510건으로 모두 4만 2021건이 접수됐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실종 중에는 분초를 다퉈 대응해야 할 사건이 있는가 하면 장기간 대응해야 할 사건도 있다.”면서 “단순히 결과만 놓고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을 지적할 게 아니라 경찰에는 실종 수사 전담 인력과 조직을 양성해 긴급 대처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장기화된 실종은 민간 용역으로 대처하는 등으로 국가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성과 수원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을 되짚어봤다. 현관문을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신고 나갔던 갈색 부츠를 벗지 않고 있다. 헌금할 돈 1만원을 들고 성가대 연습을 위해 10분 거리의 성당에 간다며 나갔다가 홀연히 사라진 연정희(21·여)씨. 지난해 1월7일 오후 5시30분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L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여성에게 “(성당으로 가는)사당행 버스 지나갔나요?”라고 물었던 게 마지막 자취였다. 몸이 약해 무던히도 애태우던 딸이었다.4살 때 처음 픽 쓰러진 뒤 아버지 연모(51)씨가 업고 뛴 기억이 생생하다. 수술까지 해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늘 부모의 주의 아래 행동했다.“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부모의 오열은 그래서 나왔다.‘완치됐을 때 감사 기도가 약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라는 부질없는 자책도 부모 마음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모를 정도로 착한 딸이었다. 집과 학교, 성당만 오갔다. 성악 콩쿠르에서 상을 타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에게 기쁨도 안겨줬다. 두살과 열한살 터울의 동생들에게도 마냥 좋은 언니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시곗바늘은 멈췄다. 낌새가 이상해 경찰에 신고했고 휴대전화 위치추적도 의뢰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잡힌 신호가 마지막이었다. 설마했다. 수원 중부서 형사 셋이 달려왔다. 그 즈음 화성에서 부녀자 3명이 사라진 직후라고 했다. 관련 범죄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아는 사람이 데려갔는데 화성 사건과 연관됐다고 보도돼 못 데려오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방송에 기대서라도 찾고 싶었다. 시키는 대로 우는 모습을 보여서라도 목격자 제보를 바랐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지만 점쟁이도 여섯 차례나 찾았다. 한 무속인을 불러 기운이 느껴진다는 장소에 가서 가족이 직접 수색하기도 했다. 경찰이 나서기 전에 큰 현수막 3개를 아파트 주변에 붙였다. 전단지도 수천장 뿌렸다. 부질없었다. 5월8일. 경기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앞서 실종됐던 노래방 도우미 박모(37·여)씨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는 ‘천벌받을’ 생각을 했다. 박씨에겐 불행이지만 시체 발견이 단서를 주길 바랐다. 야산 인근 폐쇄회로(CC)TV에 넉대의 자동차가 포착됐다는 소식에 들떴다. 하지만 구식 카메라라 차번호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에 다시 고개를 떨궜다. 한여름 장마 때였다. 목격자를 찾는다는 현수막 한쪽이 누군가에 의해 풀어져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줬나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튿날 현수막은 완전히 나가떨어져 있었다. 아버지 연씨의 마음은 널부러진 현수막처럼 갈기갈기 찢겼다. 하지만 딸이 분명 어딘가 살아있으리란 희망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범죄 피해자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가족 모두가 죽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우리 딸이 당한 범죄가 다른 이들에겐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세워주세요.” 수원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가족들 눈물속 작별인사… 온라인엔 ▶◀ 물결

    최요삼이 6명에게 새 삶을 나눠 주기 위해 장기 적출 수술을 받기 직전인 2일 저녁 8시 30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은 차마 터뜨릴 수 없는 슬픔과 눈물로 범벅이 됐다. 챔피언이자 아들, 삼촌으로 아직은 살아 있는 최요삼과의 마지막 면회 시간. 퉁퉁 부어오른 얼굴, 코와 입에 호스를 끼고는 있었지만 목 아래까지 덮여 있는 이불이 오르내리는 게 보일 정도로 그는 분명히 숨을 쉬고 있었다. 어머니 오순이씨를 비롯해 큰 누나 요연씨 등 형제들과 조카들이 방에 들어섰지만 동생 경호씨는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며 형과의 마지막 대면을 피했다. 떠나 보내는 이들은 오열 대신 어깨만 들썩이는 조용한 슬픔으로 최요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인터넷을 통해 최요삼의 뇌사와 장기 적출 소식을 전해 들은 누리꾼들도 눈물바다를 이뤘다.“전문의사가 결정했겠지만 너무 빠른 판단 아닌가.”,“벌써 뇌사판정인가.”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컸지만 “마지막 가는 길을 장기 기증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가는 당신은 진정한 복서이고 진정한 챔피언입니다.”라며 하늘에서 행복하기를 비는 글들도 올라 왔다. 최요삼의 장례식은 5일 권투인장(葬)으로 치러질 예정. 빈소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이 유족 측에 무료 제공하기로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시신은 5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된다. 35년의 지친 영혼을 내려 놓을 곳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 임원으로 있는 전 챔피언 박찬희씨의 요청으로 추모관 측이 특별실 자리를 마련했다. 최요삼이 영원히 잠들 자리는 지난해 2월 세상을 뜬 탤런트 정다빈씨의 유택 맞은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영원한 챔프’ 최요삼 영원히 눕다

    “해는 저물게 마련이지만 눈 시리도록 시뻘건, 그리고 진한 노을을 만들고 가겠다. 보는 이들이 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난해 9월 대륙간챔피언(세계와 동양챔피언 중간급)에 오른 직후 최요삼(35·숭민체육관)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라도 한 듯 이렇게 내뱉었다. 경기에 앞서 “챔피언의 자리에서 복싱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 주고 은퇴하겠다.”는 각오까지 다진 터였다. 그리고 100일 남짓 뒤 복싱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 무언가를 ‘사각의 링’에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12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친의 제사일이었다. ●오늘 0시 1분… 35세 일기로 숨 거둬 지난달 25일 링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투혼의 파이터’ 최요삼이 9일 만인 3일 0시 1분 결국 마지막 숨을 거뒀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뇌사판정위원회는 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장기 등의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장일치로 ‘뇌사’를 판정했다. 종교적·윤리적·법적 문제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거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최요삼은 밤 9시 23분 시작된 장기 적출 수술을 마친 뒤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심장 주위의 대동맥을 묶는 ‘대동맥 결찰’ 절차 직후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아 기구했던 35년 간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전국의 말기 환자들에게 나눠줄 자신의 장기를 남김으로써 유일한 ‘유언’은 실천됐다. 각막과 신장 등 적출된 장기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의해 아산병원을 비롯한 3개 병원에 배분됐다. 호흡기를 이날 새벽 떼기로 한 건 모친 오순이(65)씨의 피끓는 모정 때문. 오씨는 앞서 “결혼도 못해 피붙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누가 제사라도 챙겨 주겠냐.”면서 “내가 없어도 제 아버지의 제삿날에 맞추면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을 것 아니냐.”고 오열했다. ●그러나 6명의 삶으로 다시 피다 1973년생인 최요삼은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프로에 입문, 지난 1995년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을 거쳐 1999년에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6회 KO패, 이후 두 차례나 재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9월 터키아트 잔딩(터키)에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국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챔피언 벨트를 움켜 쥐었다. 그동안 감량의 고통이 심해 “아기를 36번은 낳았을 만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최용수와 지인진 등 한 때 한국 프로복싱계를 쥐락펴락하던 동료들이 생활고 등으로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것을 가슴아파 했다.“언젠가 한국복싱 중흥의 날이 올 것이고, 거기에 내가 앞장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복싱은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에서도 목숨과 맞바꾼 최요삼의 ‘인생’ 그 자체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영원한 챔프’ 최요삼 영원히 눕다

    “해는 저물게 마련이지만 눈 시리도록 시뻘건, 그리고 진한 노을을 만들고 가겠다. 보는 이들이 뭔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지난해 9월 대륙간챔피언(세계와 동양챔피언 중간급)에 오른 직후 최요삼(35·숭민체육관)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고라도 한 듯 이렇게 내뱉었다. 경기에 앞서 “챔피언의 자리에서 복싱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 주고 은퇴하겠다.”는 각오까지 다진 터였다. 그리고 100일 남짓 뒤 복싱을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 무언가를 ‘사각의 링’에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12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친의 제사일이었다. ●오늘 0시 1분… 35세 일기로 숨 거둬 지난달 25일 링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투혼의 파이터’ 최요삼이 9일 만인 3일 0시 1분 결국 마지막 숨을 거뒀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뇌사판정위원회는 7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장기 등의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장일치로 ‘뇌사’를 판정했다. 종교적·윤리적·법적 문제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거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최요삼은 밤 9시 23분 시작된 장기 적출 수술을 마친 뒤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심장 주위의 대동맥을 묶는 ‘대동맥 결찰’ 절차 직후 법적인 사망선고를 받아 기구했던 35년 간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전국의 말기 환자들에게 나눠줄 자신의 장기를 남김으로써 유일한 ‘유언’은 실천됐다. 각막과 신장 등 적출된 장기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의해 아산병원을 비롯한 3개 병원에 배분됐다. 호흡기를 이날 새벽 떼기로 한 건 모친 오순이(65)씨의 피끓는 모정 때문. 오씨는 앞서 “결혼도 못해 피붙이 하나도 없는 마당에 누가 제사라도 챙겨 주겠냐.”면서 “내가 없어도 제 아버지의 제삿날에 맞추면 제삿밥이라도 얻어 먹을 것 아니냐.”고 오열했다. ●그러나 6명의 삶으로 다시 피다 1973년생인 최요삼은 서울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프로에 입문, 지난 1995년 한국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을 거쳐 1999년에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6회 KO패, 이후 두 차례나 재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9월 터키아트 잔딩(터키)에 12회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국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챔피언 벨트를 움켜 쥐었다. 그동안 감량의 고통이 심해 “아기를 36번은 낳았을 만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최용수와 지인진 등 한 때 한국 프로복싱계를 쥐락펴락하던 동료들이 생활고 등으로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것을 가슴아파 했다.“언젠가 한국복싱 중흥의 날이 올 것이고, 거기에 내가 앞장서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복싱은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에서도 목숨과 맞바꾼 최요삼의 ‘인생’ 그 자체였다. 글 / 서울신문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영상 /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명박 시대-진보·신당 어디로] 鄭 당분간 ‘2선 후퇴’ 택할듯

    [이명박 시대-진보·신당 어디로] 鄭 당분간 ‘2선 후퇴’ 택할듯

    17대 대선에서 참패를 당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거취와 당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은 당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내부 체제를 재정비하고 사분오열된 세력을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 후보, 내일 순창·전주 등 고향 방문 정 후보는 20일 오전 당산동 당사에서 의원, 당직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당 및 시·도 선대위 해단식을 가졌다. 해단식은 전날 대선 참패의 충격파가 채 가시지 않은 듯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정 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선거과정에서 단합했듯이 더 단단하고 진실해지고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가 국민으로부터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는 22일 고향인 순창과 전주 등 전북지역을 찾는다.23일에는 광주로 내려가 가톨릭단체가 운영하는 정신지체장애인시설인 ‘사랑의 집’에서 사나흘 머물며 ‘피정’의 시간을 갖는 등 ‘장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은 ‘2선 후퇴’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열릴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을 거머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벌써부터 전대에 나설 인물로 손학규·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 정세균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한길 의원, 추미애 전 의원,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19일부터 계파별 모임을 갖는 등 사실상 전대 준비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적전분열은 공멸” 공감대 그러나 통합신당이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김근태, 민주당 탈당파, 시민사회 등 6개 계파로 이뤄진 만큼 전대를 통해 계파별 지분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각 계파가 대선에서 정 후보가 더블 스코어에 가까운 득표 차로 패배한 것은 정 후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었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불과 111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적전분열은 ‘공멸’이라는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오충일 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의를 표명했으나 최고위원들의 만류로 무산됐다. 최재천 의원은 “당이 총선까지 비대위 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지금까지도 당헌·당규대로 움직이지 않고 거의 비대위 체제로 당이 가동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선병렬 의원은 “당이 친노와 비노, 제3세력으로 갈라지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되며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집단지도체제로 잘 정비해서 전대를 합의에 의해 치르고 공천을 잘해서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도 “모두의 공동책임인데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느냐.”며 당이 총선까지 집단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쇄신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이 계파간 이해관계로 인해 현재의 위기를 적당히 봉합하기보다는 전대를 통해 새로운 지도력을 보여줘야 총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국민에게 당이 쇄신하는 확실한 각오를 보여줘야 떠난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락 박창규기자 jrlee@seoul.co.kr
  • “누나 학비 때문에 자원입대했는데…”

    “누나 학비 때문에 자원입대했는데…”

    총기 탈취범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다 크게 다친 이재혁(20) 병장은 7일 오후 1시쯤에서야 입원중인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박영철(20) 상병(1계급 추서) 사망 소식을 들었다. 박 상병이 꼭 살아있기를 바랐던 이 병장은 오열했다. 박 상병의 미니홈피에는 수천명의 사이버 추모객들이 몰렸다. ●숨지기 직전까지 총기 껴안고 저항 강화병원에 마련된 고 박 상병 빈소에는 가족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박 상병의 아버지 박정명(48)씨는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했고, 어머니 김미경(42)씨는 차마 아들의 주검을 쳐다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할아버지 박인환(73)씨는 “영철이는 ‘누나 학비와 내 학비가 겹치면 부모님이 힘드니 내가 빨리 군대에 가겠다.’고 했다.”면서 “경찰이 꿈이어서 몸을 단단히 해야 한다며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박 상병의 선임병인 임모(21) 상병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원래 박 상병의 초소 근무는 자신이 서던 것이었는데 근무 조정으로 박 상병이 변을 당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또 박 상병은 사고 당시 죽는 순간까지 소총과 탄통을 뺏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괴한의 흉기에 7차례나 찔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숙연케 했다. 해병대는 7일부로 박 일병을 상병으로 1계급 추서했다. 해병대에 따르면 박 상병의 영결식은 8일 사단장으로 치러지며, 화장 절차를 거쳐 다음주 초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이 병장 상태 호전 경계근무를 마친 뒤 500m 떨어진 부대로 복귀하던 두 병사는 뒤에서 달려오던 흰색 코란도 승용차에 치였다. 박 상병은 차량에 받힌 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도로 옆 갯벌로 곤두박질쳤고, 이 병장은 도로에 쓰러졌다. 범인은 차량을 되돌려 이 병장 앞에 멈춰서더니 차에서 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 병장에게 다가왔다. 범인은 유유자적 ‘다친 데 없냐.’고 물으며, 흉기를 꺼내 이 병장을 마구 찔렀다. 격투 끝에 이 병장은 K2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범인의 이마를 가격, 혈흔을 남기게 했다. 그 바람에 당황한 범인은 모자를 떨어뜨려 남겨놓았다. 병실에서 깨어난 이 병장은 오후 들어 부상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강화 이경원·인천 김정은기자 leekw@seoul.co.kr
  • [김석의 갯바위 통신] 전남 여수 금오열도 전갱이 낚시

    요즘 갯바위를 나가 보면 여간 쌀쌀하지 않다.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데 명색이 초겨울이라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체감온도는 뚝뚝 떨어져 한기를 느낄 정도다. 우습게도 요즘 남해안 여수권 금오열도 갯바위에서는 이런 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낚시를 하는 낚시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요즘 한창 시즌인 감성돔 낚시를 하던 도중, 정작 돔낚시는 뒷전이고 갯바위에 떼지어 몰려 있는 전갱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씨알도 흔히 알고 있는 한뼘 정도 크기의 잔챙이 전갱이가 아니다. 큰놈은 30㎝가 넘어설 정도. 큰 씨알의 전갱이들이 감성돔용 밑밥에 현혹돼 갯바위로 모여들기 때문에 낚시인들의 손들이 바빠진 것이다. 사실 잡어로 취급 받는 한뼘 크기의 전갱이들은 낚아서 집으로 가져가 봐야 나중에 손질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굵은 씨알의 전갱이들은 같은 크기의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고급 어종에 속한다.30㎝가 넘어서는 전갱이들은 음식값 비싸다는 일식집에서도 단골 아니면 얼굴(?)보기 어려울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그 맛이나 희소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요즘 여수권 금오도, 안도 일대에서 이런 굵은 씨알의 전갱이들이 갯바위 근처를 떼지어 몰려 다니다 낚시인들이 던져주는 밑밥만 보면 그 주위를 떠나지 않고 편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큰 전갱이들을 한두 시간만 집중적으로 땀흘리며 낚다 보면 20∼30ℓ 크기의 아이스박스가 모자랄 정도로 빈틈없이 채워진다. 이러니 한두 마리의 감성돔 조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지금 여수권 갯바위 곳곳에서 돔낚시는 뒤로하고 전갱이 마릿수 낚시를 하는 이유다. 전갱이들이 갑자기 갯바위에서 물러나면 감성돔 낚시를 병행하기도 하니, 요즘 남해안 바다낚시터는 이래저래 즐거움의 연속이다. 채비는 별다를 게 없다. 감성돔낚시 채비 그대로 갯바위로 가면 된다. 전갱이들이 갯바위에 붙으면 감성돔 찌낚시 채비를 그대로 물고 늘어진다. 이때 채비에 사용하는 목줄만 절반 정도로 줄여서 낚시를 하면 된다.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전갱이들의 동작이 워낙 빠르기 때문에 목줄을 길게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신찌는 0∼2B사이 약간의 무게(10∼15g 내외)가 있는 것을 사용한다. 목줄은 1.5호 정도. 바늘은 감성돔 4호 정도가 무난하다. 바늘이 작으면 챔질 후 쉽게 벗겨질 수 있으므로 큰 것이 유리하다. 목줄은 2∼3m 정도. 바늘 30㎝위에 소형 좁쌀봉돌 하나 물리면 입질받기에 더 유리하다. 소형 좁쌀봉돌이 밑밥 속에서 수면으로 떨어지는 크릴보다 더 빨리 미끼를 가라앉히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미끼에 먼저 반응하는 전갱이들의 입질을 더 빨리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씨알의 고등어들도 간간이 함께 올라오기 때문에 목장갑이나 허름한 수건을 지참해야 낚인 전갱이를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다. 전갱이용 밑밥이나 미끼도 주로 크릴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성돔 낚시의 준비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가족과 함께 갯바위 낚시를 즐기려면 6.3∼7.2m 정도의 막장대를 사람 숫자대로 준비해 가면 된다. 여수포인트 24 출조점 011-9624-0049.
  • [김석의 갯바위 통신] 전남 여수 감성돔낚시

    찬바람 불어오는 이 시기엔 ‘갯바위 왕자’라 불리는 은빛 감성돔 낚시가 제격이다. 중형급 감성돔의 당찬 손맛과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감성돔의 회맛은 낚시인들을 갯바위로 불러들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지금 전남 여수의 대형 바다낚시터 금오열도의 소리도쪽에서 유례없는 감성돔 낚시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남해안 곳곳의 감성돔 갯바위 낚시터에서 늦여름부터 11월 초까지는 감성돔 낚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바다는 감성돔 낚시에 적당한 수온까지 내려가질 않았고, 수많은 고등어와 전갱이 치어 같은 잡어들의 성화에다, 간간이 갯바위까지 유입되는 냉수대의 영향으로 씨알 좋은 감성돔의 손맛을 보기에 다소 힘이 들었다. 하지만 1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성돔 낚시에 적당한 12∼14℃의 바다수온이 감성돔을 갯바위 근처로 끌어들이고 있고, 초겨울 감성돔들이 ‘동계훈련(월동준비)’에 대비, 왕성한 먹이활동을 벌이면서 다양한 수심층에서 감성돔의 입질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초가을 금오열도권의 안도와 금오도쪽의 얕은 수심층에서 30㎝ 전후의 마릿수 감성돔이 올라 왔던 것에 비해, 지금은 금오도권 10m 이상의 깊은 수심층과 소리도권 전역에서 35∼45㎝에 달하는 중형급의 감성돔 입질이 들어오고 있다. 현지 낚시 점주들의 말을 빌리면 올해 11월 초까지는 미끼도둑인 잡어들의 성화가 심해서 민물낚시 떡밥과 유사하게 사용하는 ‘경단’미끼나 ‘작은 게’와 같은 다소 딱딱한 미끼를 사용하여 어렵게 한 마리씩 감성돔을 낚아내곤 했는데, 이제는 1.5호 목줄이 터져나갈 정도의 씨알이 자주 올라오고 있어 낚시할 맛 난다는 것. 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전갱이, 고등어 치어들이 아직 있기는 하지만, 아침 해뜰 무렵 잠깐 잡어들이 설치는 정도라고 한다. 감성돔의 입질이 깊은 수심층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1호 이상 3호까지의 고부력 찌를 사용하여 낚시를 한다면 잡어 입질도 피해가며 수월하게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유용한 정보도 전했다. 이렇게 깊은 수심층에서 감성돔 입질이 들어오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입질파악의 시인성이 좋고, 원하는 수심층까지 한번에 채비가 내려갈 수 있는 장점을 지닌 ‘막대찌’가 인기 상승 중이다. 주로 1호에서 3호 정도의 부력을 가진 막대찌를 사용하는데, 비교적 무게가 있는 것을 골라야 원투하기에 유리하다.11월 중순부터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바다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바람이 불기 때문에 채비를 원하는 곳에 투입할 때 바람을 이길 수 있는, 다소 자중이 무거운 자립형 막대찌를 고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낚싯대는 감성돔 전용 0.8∼1.2호 정도. 원줄은 2∼2.5호 내외면 무리가 없다. 목줄은 큰 씨알의 감성돔에 대비해 1.7∼2호 정도로 먼저 사용해 보고, 입질 빈도가 떨어지면 한 단계 내려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 시기 감성돔 낚시터로 출발하기 전 잊지 말아야 할 팁 한 가지 더!‘감성돔은 변함없이 바닥층에서 입질이 들어온다.’는 것. 여수권 감성돔 낚시문의 포인트 24시 출조점 011-9624-0049.
  • 권오열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2010년까지 81곳 설치”

    “차량의 쉼터인 ‘해피 로드’에서 강원의 절경을 즐기세요.”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강원도 도로의 곳곳에 관광형 차량 쉼터인 ‘해피 로드’를 만들고 있어 올 연말이면 운전 중 잠시 쉬었다 ‘강원 절경’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권오열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이 아이디어를 내 강원지역 도로의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철원에서는 벌써 시범 운영 중이고,12월까지 강원지역 21곳 도로에 완공된다. 대상지는 설악산과 백두대간, 동해바닷가 도로 등이다. ‘해피 로드’란 갓길과 달리 차량을 잠시 세울 수 있는 도로상의 작은 공간. 통행량·속도 위주로 설계, 운영하던 지금까지의 개념이 아니라 도로에 관광과 휴식 개념을 접목한 도로다. 권 청장은 27일 “강원지역의 방문객들이 도로상에 차량을 세울 데가 없어 아름다운 경치를 차창 너머로 지나쳐 아쉬움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지난해 초 고향인 강원도에 처음 부임하면서 관광지를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도입하게 됐다.”고 배경을 소개했다. 권 청장은 “2010년까지 162억원을 들여 연차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81곳을 선정,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악산을 끼고 있는 양양군 오색마을 인근의 44번 국도옆 1000㎡에는 차량 20여대를 주·정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정자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마련된다. 동해와 바닷가 기암괴석, 항구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도 생긴다. 삼척시 임원항 인근 7번 국도변에도 6800㎡의 쉼터가 들어선다. 권 청장은 “설악산 한계령 구간(국도 44호선)의 쉼터는 지난 22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도로를 전면 통제하고 지난번 입은 수해복구 공사와 함께 설치하고 있어 예산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피 로드 개설사업은 지난해 건설교통부의 우수 시책으로 선정됐다.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토연구원에서도 최근 해피 로드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 청장은 “해피 로드는 관광지의 특성을 살려 풍광이 좋은 곳을 우선 선정해 추진하고 있지만 도로 개량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설치하면 예산도 아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했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할머니의 선물

    할머니의 선물

    윤건주 작년 1월 13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가 눈물 흘리시는 것도 처음 보았다. 할머니의 영정을 보았다. 몇 달 전 할머니가 사진이 잘 나왔느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왜 이런 걸 찍었느냐며 화를 냈었다. 그때 보았던 사진을 영정으로 보게 되니 ‘할머니가 정말 돌아가셨구나’ 실감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영정 앞에서 절을 했고, 어떤 이는 할머니의 영정을 보고 오열을 했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할머니께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맹인이셨다. 게다가 30여 년 이상 당뇨병을 앓으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항상 그 배경은 병원이다. 병원을 감도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공기와 환자들의 모습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기실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할머니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던 일들이 떠오른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길잡이가 되어드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조금 고된 일이었다. 할머니는 초등학생인 손자를 번거롭게 한다고 얼마나 미안해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세 살 때 일이다.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다리가 부러져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나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놀란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려다 내 머리에 되려 10cm 이상의 큰 상처를 내시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나는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고, 내 머리엔 큰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무슨 연유인지 그 일이 있은 후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잘 자라질 않았다. 할머니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셨고, 틈만 나면 나를 부둥켜안고 “할매가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하셨다. 할머니는 성당에 다니셨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셨을 때, 진지 드시기 전, 주무시기 전, 그 밖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면 성모상 앞에 앉아 묵주를 들고 항상 기도하셨다. 내가 소풍이나 운동회날 조금 다치기라도 하면 “할매가 기도했는데…”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할머니가 가족들보다는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도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집이 좁아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힘들게 정착한 집을 떠날 수 없다며 혼자 그곳에 남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사 간 집이 할머니 댁과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보고 싶어 안 보이는 눈으로도 자주 우리 집에 오셨다. 내가 가면 될 것을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오시게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사이 키가 많이 자라 또래 친구들과 비슷해졌다. 내 키가 크면 클수록 할머니는 점점 작아만 보였고, 그렇게 크고 넓었던 할머니의 품에 더 이상 안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였나 보다. 짐을 들고 할머니와 어디를 갈 때면, 할머니는 이런 무거운 짐을 들기엔 아직 내가 어리고 힘이 없다며 만류하시곤 했다. 짐을 들고 있는 손 반대편에 있는 할머니의 손…. 크고 따뜻했던 그 손은 이제 작아만 보였고, 검고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이 왠지 안타까웠다. 해가 바뀌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어하셨다. 생일도 아닌데 무슨 선물이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천천히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며칠 후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문안을 갔더니 ‘환자들 때문에 공기가 안 좋은데 왜 왔냐’고 나를 나무라셨지만, 굉장히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꼭 병문안을 와달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오지 말라고 하셨던 할머니가 그러시는 것이 좀 의아했다. 그리고 그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내 할머니가 선물을 주겠다고 하셨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할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받았으니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셔서 직접 그 사랑에 보답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그 사랑에 감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 [한나라 경선 D-1] 후보 4인 최후의 변

    [한나라 경선 D-1] 후보 4인 최후의 변

    17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마지막 합동연설회에서 이명박·박근혜·원희룡·홍준표 네 후보는 한 표라도 더 끌어안으려 혼신의 열변을 쏟아냈다. 이 후보는 “지난 6개월 그 많은 음해와 공작을 오직 당원 여러분의 사랑으로 견뎌냈다.”며 ‘일 잘하는 대통령’을 내세워 대세 굳히기를 시도했다. 이에 박 후보는 “의혹투성이 후보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여권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다.”며 “감동의 대역전 드라마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원 후보는 ‘한나라당 개혁 기수론’으로, 홍 후보는 ‘서민 대통령론’으로 표심을 파고 들었다. ■이명박 후보 “경제 대통령,CEO 대통령이 되겠다.” 이명박 후보는 17일 서울 합동유세에서 최후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를 만들겠다.”며 “모두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아직까지도 서울거리를 걸으면서 시민을 만나면 ‘시장님 수고 많습니다.’고 한다. 그 소리가 싫지 않다.”며 “청계천 복원공사를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대중교통 개편시 불편을 참아준 서울시민에게도 감사를 드린다.”고 서울표심을 자극했다. 그는 서울시장으로서의 업적도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뚝섬 서울숲이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으나 저는 해냈고, 지금 세계가 서울숲을 부러워 한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누가 다음 정권을 찾아올 수 있습니까. 나는 서울시장을 하면서 서울의 신화를 만들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의 신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난 1년간 힘들었던 경선레이스를 떠올리며 “음모공작 속에서도 제 지지율은 늘 1등이었다. 바로 여러분이 지켜주셨기 때문이다.”며 “그 사랑에 보답할 때가 왔다. 대통령이 되어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들어 여러분께 보답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 후보는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약속을 지키겠다. 저를 끝까지 지켜서 어차피 당선될 저를 압도적으로 밀어주시길 바란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 후보는 또 “여기 계신 모든 후보와 하나가 되겠다.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고 모두를 포용하겠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길고 격렬한 경선이었다.”고 소회를 밝힌 뒤 “여기 계신 후보들 고생 많았다.”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박근혜 후보 “진실은 승리할 것입니다. 당원 여러분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십시오.” 박근혜 후보는 17일 밤 결전을 앞둔 심경과 함께 지지를 간절히 호소하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는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 한나라당의 미래를 선택하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는 말로 비장감을 내비쳤다. 그리고는 “지금 이 순간, 지난 10년 세월을 함께 했던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이 저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면서 지난 기억을 더듬었다. “1998년 여러분이 대선패배의 절망에서 오열할 때, 나라 전체가 위기의 늪에서 신음할 때, 여러분과 함께 희망을 시작했습니다.…2002년 겨울 두 번째 대선패배의 춥고 어두운 그 밤 두 번 다시는 여러분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2004년 3월 차떼기당과 탄핵의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날 당 간판을 들쳐매고 황량한 천막당사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지금 이 순간 제가 이기고 지는 것, 제가 죽고 사는 것은 결코 두렵지 않지만, 당이 패배의 길을 가고, 또다시 여러분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될까봐 그것이 두렵다.”는 말로 예의 ‘이명박 필패론’을 거론했다. 그는 2년 3개월간의 당 대표 재임 중 자신이 이룬 ‘업적’을 부각시키기도 했다.“2004년 4월 회초리를 맞으며, 손이 부르터가며 총선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지지율 7%의 절망에서 50%의 희망을 쏘아 올렸습니다.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리셨습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2007년 8월19일, 이제 또 한번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의 호소는 “저 박근혜, 여러분을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저 박근혜, 여러분을 속인 적이 있습니까?저 박근혜, 저 개인을 위해 싸워온 적이 있습니까?” 라는 ‘점층법’에서 절정에 달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원희룡 후보 “‘다음’이 아닌 ‘이번에’ 바꾸겠습니다.‘이번에’ 찍어 주십시오.” 원희룡 후보는 “당에 들어올 때는 개혁의 젊은 피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 그러나 저를 한나라당에 끌어들였던 선배·동지들이 한나라당의 개혁을 도저히 할 수 없다며 독수리 오형제가 되어 날아갔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날아갔다.”면서 “하지만 전 인연과 원칙을 소중히 하고 일관성을 중시한다. 한나라당을 지키겠다.”고 당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전통을 존중하지만 한나라당의 뿌리 위에 당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접붙이고 싶다. 탱자나무에 감귤을 접붙였을 때 감귤나무가 돼 풍성한 수확을 낳듯 대한민국의 당당한 수권정당인 한나라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한나라당의 내일을 책임질 것임을 역설했다. 원 후보는 “지난 1년간 경선을 잘 관리했지만 세력이나 지지율만 보고 아랫물도 윗물을 따라 줄을 서는 풍토는 졸업을 못해 아쉽다.”면서 “그러나 투표소에서는 줄서기와 세력의 유혹에서 벗어나 대의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한나라당의 화합을 대의원 혁명으로 만들어 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박 후보에 대해서는 “미래 없이 과거에 대한 자랑과 변명만 있다.”고 일갈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홍준표 후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원칙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홍준표 후보는 17일 마지막 유세인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을 통해 부의 양극화를 막겠다.”고 주장했다. 홍 후보는 경선과정을 거론하며 “내 개인의 표보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를 안고 오는 데 주력했다.”며 경선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홍 후보는 역대 대통령을 열거하며 “윤보선 대통령은 무능했고,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수천억원을 해먹은 부패한 인물이었으며,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통합은 외면한 채 언론과, 국민과 싸우며 갈등을 부추겼다.”고 비난한 뒤 “대통령은 유능하고, 깨끗하고,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 통합형이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이 홍준표”라고 역설했다. 이어 “저는 개인보다 당을, 당보다 나라를 우선했다. 이제 홍준표에게 주는 표가 사표(死票)가 안될 것”이라며 “만석꾼에게 쌀 한말 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한테 주면 고마워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피살 심성민씨는 누구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피살 심성민씨는 누구

    “항상 말없이 따뜻하게 웃어 주셨는데…. 믿기지 않는다.”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살해당한 심성민(29)씨가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던 뇌성마비 장애인 김민지(27)씨와 조혜숙(37)씨는 31일 갑작스러운 비보에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선생님은 친구처럼 오빠처럼 웃음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며 울먹였다. 조씨도 “나이는 어리지만 좋은 선생님이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너무 놀라 밥도 먹지 못했다.”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심씨는 지난해부터 정신지체,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의 모임인 샘물교회 ‘사랑부’에서 자원봉사 교사로 활동했다. 방송 속보를 보고 이날 오전 4시40분 샘물교회에 나온 심씨의 어머니 김미옥(61)씨는 “살려주세요. 왜 죽여요. 빨리 살려주세요. 우린 못살아요.”라며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씨는 TV를 통해 언론 보도를 지켜보다 끝내 실신해 사무실 옆 휴게실로 옮겨져 링거를 맞기도 했다.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회 의원)씨는 이날 오후 “30년을 키운 아들이 어미·아비 옆을 떠난 것에 대해 부모로서 할 말이 없다.”고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2남1녀 중 장남인 심씨는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진주고, 경상대를 졸업한 뒤 2003년 학생군사훈련단(ROTC) 중위로 예편하고 성남시에 있는 정보기술(IT)업체에서 구매 관련 일을 해왔다. 최근에는 농촌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농업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청송(靑松) 심(沈)씨 10대 종손인 그는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다. 그의 할아버지 심재인(1918∼1949)선생은 1938년 일본 나가사키(長崎縣) 소재 간조농학교 재학 중 일본인들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40년엔 나가사키 간조시에서 비밀결사 재일학생단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노태우 정부는 이런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심씨의 아버지는 25년간 새마을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KBS 기자 출신의 작은아버지도 훈장을 받았다. 심씨는 봉사활동을 떠나면서 동생 효민씨를 제외한 가족 누구에게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에 따르면 심씨는 평소 교회에서 장애학생들을 돌보는 청년부 교사로 일하면서 해외봉사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봉사활동은 지난해 8월 회사 동호회원들과 다녀온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 해외봉사활동이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아프간 협상 중대국면] 배목사부인 “희생자 더없길”

    [아프간 협상 중대국면] 배목사부인 “희생자 더없길”

    “이번 사태의 희생자는 남편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살해된 고 배형규 목사의 부인 김희연(36)씨는 2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타운 피랍자대책위 사무실에서 ‘피랍자 석방을 촉구하는 고 배형규 목사 유가족의 호소문’을 읽다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김씨는 “고통스러운 지난 일주일을 지내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 피랍자들의 석방과 무사귀환을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계속적인 노력과 미국, 아프간 정부의 협력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인터뷰에 나선 김씨는 여전히 남편인 배 목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호소문을 더 이상 읽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호소문을 읽은 뒤 김씨는 “딸아이(8·초등학교 2년)에게는 ‘어젯밤 아빠가 생일이었는데…, 생일날 가장 큰 선물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설명해 줬다.”고 말한 뒤 또 한 차례 한참을 울었다. 이어 김씨는 “(남편의 사망은)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한번만 더 만났으면 좋겠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앞서 이날 대구에서 올라온 임현주씨의 오빠 임철(32)씨는 “피랍자들이 풀려나려면 미국의 역할이 중요한데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샘물교회 측은 분당으로 옮긴 가족대책위를 지원하는 한편 배 목사의 장례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박건형 이은주기자 kitsch@seoul.co.kr
  • [아프간 피랍 중대국면] “제발 돌려보내 주길…”

    [아프간 피랍 중대국면] “제발 돌려보내 주길…”

    탈레반 무장세력이 제시한 협상 마감시한을 20여시간 넘긴 26일 밤 11시쯤 피랍자 가족들은 초조함과 긴장감에 심신이 극도로 지친 탓인지 초췌한 모습으로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27일부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분당타운 지하 1층에 ‘한민족복지재단 피랍자가족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마련해 옮길 계획이다. 앞서 충격적인 한국인 피랍자 살해 소식을 전해들은 피랍자 가족들은 이날 오후 4시20분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제발 돌려보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읽으며 오열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외교통상부 장관, 미국 부시 대통령 등에게 전하는 글을 통해 “울다 지쳐 잠들고 일어나면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떠보면 그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에 또다시 눈물을 터뜨립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호소합니다. 제발 그들이 가족들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피랍자 가족을 대표해 차분하게 호소문을 읽던 제희창씨의 누나 제미숙씨는 배형규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던 중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가족들도 잇따라 눈물을 쏟아냈다. 제씨는 “창희는 1남4녀 중 막내고 외아들이다. 월급 타면 쌀가마 사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그런 애다. 너무 남을 도와준다고 집에서 혼나기도 했다. 지금은 그랬던 게 생각나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류지영 이은주기자 superryu@seoul.co.kr
  • “도둑 잡고 웃던 미소 영원히…”

    “시민의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그대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셨습니다.” 법규를 위반한 오토바이를 단속하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숨진 고 신균식(34) 경사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엄수됐다. 신 경사의 아내 박혜영(28)씨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잠이 든 딸 가영(3)양을 어루만지며 밀려오는 슬픔에 힘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영결식에는 신 경사의 가족과 동료, 국회의원과 기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신 경사와 함께 망원지구대에 근무한 박만선 경장은 고별사를 통해 “함께 중앙경찰학교를 나오며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자던 푸른 약속이 사라졌다.”면서 “짧은 만남 긴 이별이지만 한밤에 도둑을 잡고 웃던 미소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오열했다. 홍성삼 마포경찰서장은 “고인은 항상 먼저 현장에 뛰어간 베스트 파트너였다.”면서 “민생치안 현장에서 항상 앞장선 진정한 국민의 파수꾼이던 고인의 영전에 머리를 숙여 명복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유족과 동료들은 신 경사가 근무하던 망원지구대에서 노제를 지냈고, 신 경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1999년 4월 순경 공채로 경찰에 투신한 신 경사는 이날 경장에서 경사로 진급됐고,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신 경사는 지난 12일 오전 11시15분쯤 서울 마포구 성산초교 앞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고 무면허로 훔친 오토바이를 몰던 강모(27)씨를 단속하다가 오토바이에 받혀 쓰러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뒤 16일 오후 숨졌다. 신 경사를 친 강씨는 살인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서 행복하길…”

    “하늘나라에서 부디 행복하길….” 낯선 이국땅에서 안타깝게 숨진 캄보디아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은 1일 유가족들의 오열과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 ‘눈물 바다’를 이뤘다. 전날 마련된 빈소에는 이날도 100여명의 친지와 친구, 정·관계 인사 등 조문객이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선생님, 왜 여기에 계세요” 빈소에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힘없이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빈소가 차려진 지난 30일에 비해 차분해진 분위기였지만 무거운 침묵 속에 간간이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고 황미혜씨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던 어린이 20여명이 빈소에 들러 헌화하며 “선생님∼”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 어린이는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흐느꼈다. 고 박진완씨의 동생 준완(35)씨는 “희생자들의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냐.”면서 “시간이 흐르면 곧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해찬 전 총리는 “어린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이 크다.”면서 “여행객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2시쯤 회의를 열고 발인 날짜 등을 논의했다. 고 조종옥 KBS기자의 장례는 오는 4일 오전 8시30분 여의도 KBS본사에서 회사장으로 치른다. 유가족들은 하나투어 관계자, 사고 항공사인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 관계자들과 장례비용 문제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날 오전 PMT에어 측은 1000만원의 장례비를 보상하기로 결정했으나 유족들은 이에 거칠게 항의했다. 박씨는 “유족들은 장례 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1000만원으로 통보했다.”고 분개했다. ●보상금 난항 겪을 듯 일부에서는 보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보상 문제를 직접 논의해야 할 PMT에어 본사 측에서는 한국으로 실무자도 보내지 않은 상태다. 또 PMT에어가 생긴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영세한 신생 항공사여서 유가족들이 우려하고 있다.PMT에어 한국 총판매대리점 김주영 영업부장은 “PMT에어가 지금 캄보디아 정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 본사 관계자는 다음 주쯤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유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보상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유족과 하나투어,PMT에어 관계자는 2일 오후 1시쯤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날 대책 회의에서 하나투어 측은 유족에 도의적 차원의 보상금을 책정,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애끊는 母情 애틋한 父情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서울 임일영기자|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나…, 얼마나 무서웠을까….” 27일 오후 1시40분(이하 현지시간)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프놈펜의 칼멧병원을 찾은 19명의 유가족들은 가족의 영정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시신 신원 확인이 지연된 데다 크메르-소비에트프렌드십 병원에서 냉동시설이 갖춰진 칼멧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에야 분향소를 찾았다.●“엄마도 데려가야지…” 영정 앞 통곡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분향소 내부에는 사망자 13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여 있었다. 고 이명옥씨의 어머니 서만숙씨는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사나. 얼마나 산 속에서 무서웠을까.”라면서 “엄마가 대신 가야지. 네가 왜 가냐. 얼마나 착했는데….”라고 울먹이다 쓰러졌다. 고 조종옥(KBS 기자)씨의 어머니인 박정숙씨도 “아이고∼ 종옥아, 왜 휴가를 여기로 왔어.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라며 목놓아 울었다. 아들과 며느리, 금쪽 같은 두 손자를 모두 잃은 박씨는 조종옥·윤현숙 부부 등 4개의 영정을 끌어안고 이름을 외쳐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고 황미혜씨의 동생인 황재욱씨도 할 말을 잊은 듯 “누나∼”만을 외치며 오열했다. 오후 2시쯤부터 신현석·오갑렬 대사와 님반다 국가재난관리위원회 수석부위원장, 통콘 관광부장관 등 캄보디아측 관계자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잠시 뒤 육경건 이사 등 하나투어 직원들이 분향하려 하자 일부 유가족들이 “하지마. 니네가 죽였잖아.”라며 제지하는 소동을 빚었지만 다른 유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분향을 마쳤다. 유족 대표들은 분향소 뒤편에 마련된 시신 안치소에서 희생자들을 확인했다. 안치소는 화물용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들었으며, 드라이아이스 400㎏을 넣어 시신을 냉동보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팔로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 덕분에 아기 시신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락사고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체 수습 작업에 참여했던 현지 교민 문치현(57·용역회사 직원)씨는 “조종석 바로 뒤를 파보니 아이의 발이 보였고 어른 허벅지가 나왔다.”면서 “조종옥씨가 두 팔로 아들 윤민(1)이를 꼭 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 팔을 펴고 아기 시신을 꺼내는 데 애를 먹은 걸 보면 조씨가 끝까지 아이를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문씨는 교민 의료진과 함께 보코르산으로 달려가 마지막까지 시체를 수습한 뒤 이날 칼멧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신의 염까지 맡았다. 24년 전 캄보디아에 이민 온 문씨는 1997년 9월3일 프놈펜 포첸통 공항에서 베트남 항공기가 떨어져 한국인 21명이 숨졌을 때에도 현장으로 뛰어갔다.“당시엔 불이 나서 시체 수습 작업이 너무 참혹했다.”면서 “거의 10년 만에 이런 사고가 또 나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 당한 일이다 보니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바로 뛰어갔다.”고 털어놓았다.●“항로이탈해 육안식별 비행하다 사고” 사고 원인은 추락 여객기의 조종사가 정기항로를 벗어나 육안식별비행을 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항공당국은 이날 정확한 추락 원인을 찾기 위한 블랙박스 판독작업에 착수했다. 캄보디아 정부 고위관리는 이날 한국대사관 관계자에게 “사고기의 조종사가 비록 관제탑의 사전 승인을 받았지만 정기 항로를 벗어나 육안으로 지형을 식별하면서 우회 비행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리는 “바다에서 보코르산 정상 쪽으로 비스듬히 바람이 자주 불기 때문에 항공기가 산에 충돌할 위험을 느껴 조종사들이 자주 산 정상 북쪽으로 항로를 이동한다.”면서 “사고 당일 악천후로 계기비행을 하지 않고 육안식별 비행을 한 것이 확실해 보이며 사고 원인은 악천후와 조종사 과실을 반반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현석 주 캄보디아대사에 따르면 조종사와 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 사이에는 25일 오전 10시30분부터 10시50분까지 4차례의 교신이 있었다.‘고도를 2000피트(600m) 정도로 낮추도록 해달라.’는 기장의 거듭된 요청에 관제탑은 ‘산악지방이라 허가할 수 없다. 고도를 내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관제탑 지시 무시한 조종사 이해 못해”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는 “조종사가 임의로 고도를 강하하거나 자신이 잘 안다고 우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항 활주로 앞 50㎞ 지점에 해발 1080m의 보코르산이 있었는데도 관제탑에서 ‘당장 고도를 높여라.’라고 하지 않고 ‘너무 고도가 낮지 않나.’란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의문점은 목적지까지 50㎞가 남은 지점에서 조종사가 굳이 2000피트로 고도를 낮추려고 했던 점이다.AN-24기와 같은 소형 민간항공기의 경우 활주로를 20㎞ 남겨 놓고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파이널 어프로치(최종접근단계)’에 돌입한다.그 이전에는 고도를 낮출 이유가 없고 악천후로 위험이 다분한데도 기장은 4차례나 고도를 강하하도록 요청했고, 결국 관제탑의 제지를 무시한 채 고도를 낮췄다. 지난 27일 추락 현장에서 회수된 블랙박스의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기록장치(FDR)를 판독하는 데 6개월∼1년이 걸린다.그러나 기장과 부기장간의 대화, 기장과 관제탑 간의 교신이 담겨 있어 원인 분석의 실마리를 제공할 CVR의 데이터를 출력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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