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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영 별세⑨]故 장진영 마지막 길 배웅나선 톱스타들

    [장진영 별세⑨]故 장진영 마지막 길 배웅나선 톱스타들

    국화를 닮은 그녀, 장진영이 위암투병 중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민국 톱스타들이 연이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지난 1일 늦은 오후 께 부터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이병헌, 송혜교, 황정민, 정준호 등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故 장진영과 생전에 함께 작품 활동을 했던 배우 박해일, 김주혁, 김승우, 송일국, 한재석은 비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와병 중에도 긍정적인 성격과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장진영답게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대개 고인이 사망한 당일에는 갑작스런 비보에 당황한 나머지 조문객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장진영의 경우 이례적으로 첫날부터 빈소를 찾는 동료, 선후배는 물론 연예 관계자,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후 7시를 넘긴 시각 가장 먼저 김민종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김민종은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이후 안재욱과 차태현은 빈소에 동행했으며 박철, 김유미, 이덕화, 김석훈, 엄정화, 임수정, 이범수, 이승연, 박경림, 이의정, 엄지원 등이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향했다. 생전 장진영과 친분이 돈독했던 여배우들은 그녀의 죽음에 오열하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전도연, 유선, 김아중, 한지민 등은 눈과 코가 빨개질 정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한편 장진영과 지난 8월 28일 혼인신고를 마쳐 법적부부가 된 연인 김 모씨가 빈소가 마련된 직후 병원을 찾아 말없이 빈소를 지켰다. 오늘(2일) 오후 3시 유족 및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진영의 입관식이 엄수된다. 지난해 9월부터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였던 장진영은 지난 1일 오후 4시 3분 서울강남 성모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故최진실 모친 “진실아~”

    [NOW포토] 故최진실 모친 “진실아~”

    26일 오전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故 최진실 모친이 절도된 딸의 유골함을 되찾은 뒤 경찰 부축을 받으며 오열하고 있다. 서울신문NTN(양평)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고 최진실 모친, 유골함 되찾고 오열

    [NOW포토] 고 최진실 모친, 유골함 되찾고 오열

    26일 오전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故 최진실 모친이 절도된 딸의 유골함을 되찾은 뒤 경찰 부축을 받으며 오열하고 있다. 서울신문NTN(양평)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경찰 “故최진실 유골함 절취자, 공범·여죄 집중 수사”(종합)

    경찰 “故최진실 유골함 절취자, 공범·여죄 집중 수사”(종합)

    고(故) 최진실의 유골함 절취범이 공개 수배된 지 이틀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경기도 양평경찰서는 26일 오전 11시 수사브리핑을 통해 “지난 25일 23시 10분경 대구에서 피의자 박모씨(41)를 검거, 추궁한 결과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피의자 박모씨는 일단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체포됐으며, 그 밖에 ‘사체 등의 영득죄’ 등 몇 가지 추가 혐의가 적용될 전망이다.지난 24일 범인의 인상착의가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한 뒤 20여건의 시민 제보를 받아 수사를 벌여온 경찰은 당일 오후 10시 20분경 대구에서 신빙성이 높은 제보를 접수했다.25일 오전 6시 수사대를 급파한 경찰은 제보 내용을 토대로 사실 여부 확인 등 주변 탐문을 실시했다.피의자 박모씨의 주거지를 탐문해 인적 사항을 발췌, 사용하는 휴대폰 번호를 확보하고 그동안 자체 조사된 자료와 대입해 일치된 사실들을 추려냈다.경찰의 연고선 추적 결과 피의자 박모씨는 평소 대구광역시에서 생활 중 지난 1~2일 사전답사 차 양평을 다녀왔고, 범행 당일인 4~5일 역시 양평에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특히 박모씨가 소유한 1톤 트럭 ‘80 더 XXXX’의 차량 추적결과, 고속도로 톨게이트 진출입사항 행적 등의 결과도 모두 범행 시기와 비교해 일치했다.또한 박모씨가 대리석을 구입하기 위해 통화한 양평관내 모 석재상 주인에게 범행 당시 CCTV 동영상을 확인시킨 결과, 박모씨와 동일 인물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이를 토대로 경찰은 피의자 박모씨의 대구 집에서 잠복 대기 중 유골함 및 범행에 사용한 용의차량, 도구 일체 등을 발견해 추궁했고 박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경찰조사에서 박씨는 “최진실(영혼)이 내 몸에 들어와 있다. 최진실이 대리석으로 된 납골묘가 답답해 못 있겠으니 흙으로 된 묘로 해달라.’해 그렇게 해줬을 뿐”이라고 진술했다.경찰에 따르면 박모씨는 대구에서 싱크대 설치(수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전과나 정신 이상 등의 병력은 없었다.경찰은 “범행수법이 무척 대담하고 치밀한 점 등을 미뤄 동일 범죄 여부 및 여죄도 계속 수사 중”이라며 “구속 시기와 현장검증은 충분한 조사를 마친 후에 판단, 다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한편, 고 최진실의 유골함은 이날 양평경찰서 수사브리핑 현장에서 고인의 모친에게 인도됐다.유골함을 인도받은 고 최진실의 모친은 “살아서도 못 지켜주고 죽어서도 못 지켜주고, 엄마로서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오열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서울신문NTN 조우영 기자(양평) gilmong@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엄마 품으로 돌아온 ‘고 최진실 유골’

    [NOW포토] 엄마 품으로 돌아온 ‘고 최진실 유골’

    26일 오전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故 최진실 모친이 절도된 딸의 유골함을 되찾은 뒤 오열하고 있다. 서울신문NTN(양평)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안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파란만장한 이승에서의 삶을 접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인동초(忍冬草)의 ‘후회 없는 삶’이 산 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남겨지는 순간이었다.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참석자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유지(遺志) 계승의 각오를 눈물로 대신했다.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5시 직전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안장식은 고인을 태운 운구 차량이 국가원수 묘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진행됐다. 장엄하고 차분했지만, 고인을 보내는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깝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희호 여사와 직계가족, 장의위원, 민주당 및 동교동계 인사, 국민의 정부 관계자, 전직 비서관,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국군 의장대의 조악 연주와 함께 고인과 이별하는 마지막 의식이 시작됐다. 고인에 대한 경례와 종교의식에 이어 헌화 및 분향,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순서대로 이뤄졌다. 종교의식은 천주교에 이어 기독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치러졌다. 천주교 의식은 고인과 각별한 사이인 함세웅 신부가 집전했다. 불교는 조계사 주지 세민 스님, 기독교는 이해동 목사, 원불교는 이선종 서울교구장이 집전했다. 하관식을 위해 고인이 이동하자 이 여사를 비롯해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조금씩 토해냈다. 고인을 실은 향나무관이 아래로 내려가자 유족들의 울음 소리는 높아졌다. 이어 허토 의식이 진행되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오열하며 고인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허토 의식은 이 여사가 먼저 흙을 뿌리며 시작됐다. 이어 홍일·홍업·홍걸씨, 친인척, 고인의 전직 비서관, 장의위원 관계자, 민주당 인사, 국민의 정부 인사, 현 비서실 인사, 일반 조문객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관에 흙이 뿌려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 터에서 가져온 흙 한 줌도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임하던 이 여사도 허토 의식을 마친 뒤 꾹꾹 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 듯 눈물을 쏟아냈다.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으면서도 이 여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한참 동안 오열했다. 홍걸씨가 옆에서 이 여사의 등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나눴다. 이어 군악대의 진혼곡과 조악 연주를 뒤로한 채 고인은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정치권의 한 참석자는 안장식을 마친 뒤 “국장 기간 내내 고인의 생전 말씀과 인연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텼지만, 끝내 이렇게 가시고 나니 이제야 ‘김대중’과 함께 ‘한 시대’를 보냈다는 사실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밀려온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분의 마지막 길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과제를 엄중히 이어 가겠다.”면서 “그것이 ‘김대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김민희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DJ입원 전 민주화 동지들과 최후의 오찬

    “하다 못해 벽을 향해 고함을 지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6월25일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어온 민주화 동지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공개됐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해동(75·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목사는 21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키면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최후의 오찬’ 당시를 생생하게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즐겨 찾던 서울 신수동에 있는 음식점 ‘거구장’에서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위원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시종 비장한 어조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잘 때 집사람과 손 잡고 기도를 한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늙고 일할 힘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겠다.”면서 “절대 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옳은 건 옳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확실히 지는 방법이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하라. 투표 바르게 하라. 하다 못해 벽을 향해서 고함을 지르더라도 행동만 한다면 우리는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이 목사는 “전에 없이 김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사정을 알아 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결정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오뉴월 뙤약볕에 두 시간가량 앉아 계시면서 무리를 했고,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의 상처도 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한참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쳐다 보면서 “가까이서 지켜 본 그 분은 인간적이고 실력을 갖춘 위대한 분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목사가 그 분과 두 번이나 함께 감옥에 갇혔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이희호 여사 “꼭 일어나셔야 해요” 끝내 오열

    “하느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남편을) 저희에게 보내주세요….” 18일 오후 1시20분쯤, 이희호 여사는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맞댄 채 속삭이듯 애원했다. 이 여사는 이날 오전 남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중환자실에서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심박동 곡선은 심상치 않게 움직였다. 홍일, 홍업, 홍걸 3형제 등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오후 1시25분쯤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 김 전 대통령의 윤철구 비서관, 안주섭 전 경호실장 등이 급하게 호출됐다. 김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각자 고별인사를 건넸다. “사랑해요.” 가족들이 김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다. 남편의 모습은 이 여사가 한평생 지켜봤던 모습 중 가장 평온한 얼굴이었다. 오후 1시43분, 의료진이 “사망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순간 이 여사와 가족, 측근 20여명은 끝내 흐느끼고 말았다. 이 여사는 남편의 오른쪽에 앉아 자신이 직접 짠 벙어리장갑을 낀 남편의 오른손을 부여잡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이 여사는 전날 저녁 7시45분 마지막 면회를 하면서도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꼭 일어나실 거예요. 하느님께서 당신을 지켜주고 일어나실 힘을 주실 거예요. 꼭 일어나셔야 해요.”라며 간절히 갈구했다. 그러나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반자였던 남편은 영영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동안 꿋꿋하게 버텨오던 이 여사는 끝내 오열하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한때 자리에 누워야 했다. 홍업씨와 홍걸씨가 자리를 지켰다. 이 여사는 오후 5시30분쯤 추스르고 일어나 빈소로 향했다. 슬픔을 억누르고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헌화하고 조문객을 맞기 위해서였다. 박지원 의원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반드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냉정한 상태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 “당신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영원히 잠들었다. 6일 오전 전남 해남읍 국제장례식장에서 열린 조씨의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주민, 체육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었다. 교회·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이날 영결식은 발인 예배를 시작으로 묵념, 조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큰아들 성웅씨의 부대 대대장으로 근무했던 해군 특수전여단 문석준 중령은 조사에서 “고인과 마지막으로 이별해야 하다니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던 고인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큰아들 성웅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장지를 향해 떠날 때 부인 이성란(44)씨가 “나도 따라갈래.”라며 오열하며 발을 동동 굴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씨가 타계한 4일 오후 그 충격으로 음독까지 시도했던 이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친지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차에 올랐다. 발인을 마친 운구차는 조씨의 고향인 해남군 학동리 생가 주변에 도착해 노제를 지낸 뒤 계곡면 법곡리 자택 주변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조씨는 생전 그의 유언에 따라 ‘재기’를 위해 지은 자택 옆에 묻혔다. 해남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쌍용차 공권력 진입] 대형새총·불붙은 승용차…도장공장 앞 일촉즉발 대치

    [쌍용차 공권력 진입] 대형새총·불붙은 승용차…도장공장 앞 일촉즉발 대치

    법원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있던 노조원들의 퇴거명령 강제집행을 시도한 20일 쌍용자동차 공장 주변은 경찰병력이 투입되지 않아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나 21일 새벽까지 위기감이 감돌았다. 오전에 출근, 잔무를 처리하던 직원 1000여명은 오후 6시쯤부터 퇴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쌓인 도장공장에서 농성 중인 700여명의 노조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회사측에서 물과 가스공급 및 음식물 반입을 금지했으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후 7시에는 촛불문화제를 갖고 안전을 기원하기도 했다. 오후 11시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도장공장 옥상에서 새총으로 경계하던 노조원들은 교대로 자리를 지켰다. 정문 주변 천막에는 당초 50여명의 노조원 가족과 민주노총 소속 다른 사업장 노조원들이 있었으나 이날 밤 절반 정도가 귀가한 가운데 20여명이 남아 있었다. 경찰도 정문 주위에 300여명을 배치하는 등 모두 3400명의 병력으로 공장 안팎에 대한 봉쇄를 늦추지 않았다. 노조와 경찰측은 이날 여러 차례에 걸쳐 대립국면을 이어갔다. 첫 대립은 오전 9시쯤, 경찰이 34개 중대 3400여명을 공장 주변에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오전 10시쯤에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병력 300여명이 공장 안으로 투입돼 노조원 700여명이 점거 중인 도장공장 100m앞 진입로까지 접근한 순간이었다. 같은 시간 법원집행관과 채권단 5명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 퇴거명령 최고장을 전달하려 했다. 오전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도장공장 진압 가능성을 언급한 터라 공장내 위기감은 팽팽한 상태였다.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노조는 불붙인 타이어 10여개를 정문쪽으로 굴리고 바리케이드로 세워둔 승용차를 불태우는 등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경찰은 도장공장 진입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공장내 시너가 쌓여 있어 진압을 실행하지 못했다. 법원 집행관도 이날 퇴거명령 최고장을 전달하지 못했다. 일부 노조원들이 대형 새총을 이용, 볼트 등을 쏘며 반발하는 가운데 3차례에 걸친 최고장 전달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오전 11시30분쯤 평택공장을 떠났다. 노조원들과 가족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700여명의 노조원 진압을 위해 3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도장공장 내에는 각종 인화성물질이 가득해 경찰 투입시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 간부 아내 박모씨의 자살 소식까지 전해져 현장은 오열과 한탄 속에 휩싸였다. 한편 회사측 직원 300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쯤 정문을 통해 공장 안으로 들어와 약식집회를 가진 뒤 400여명은 본관으로 향했고 600여명은 연구소로 들어갔다. 나머지 2000여명은 집회 뒤 공장에서 나와 쌍용차 안성 공도읍 연수원으로 갔다. 직원들이 근무를 시작한 본관 건물 유리창 곳곳은 노조원들이 새총을 쏘면서 생긴 구멍으로 흉측한 모습을 연출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고미영씨 사고로 본 한국 고봉등정] “도전정신 강한 맏언니였는데…”

    [고미영씨 사고로 본 한국 고봉등정] “도전정신 강한 맏언니였는데…”

    “미영이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히말라야의 칼날능선에서 끝내 생을 놓아 버린 산악인 고미영씨의 사망 소식 앞에서 가족과 지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오열했다. ●“이달초 건강히 잘있다 전화” 가족들은 13일 고인의 셋째 언니 고미란(46)씨의 서울 잠실 집에 모여 눈시울을 붉혔다. 고씨의 부모 고재은(83)·최부산(68)씨는 식음을 전폐한 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오빠 고석균(44)씨는 “지난 3월 히말라야 등정을 떠난 이후에도 1~2주에 한 번씩 위성전화를 했다. 이달 초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만 해도 ‘건강하게 잘 있다.’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2남4녀 중 막내였지만 누구보다 씩씩하고 강했던 동생이 주검으로 돌아온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오빠는 “평소에 ‘만약 내가 죽으면’ 같은 얘기는 입 밖에도 안 꺼냈다. 조심하라고 해도 항상 ‘내가 왜 죽어?’라며 되받아치는 아이였는데…” 하며 가슴을 쳤다. 가족들은 지금 히말라야에 비가 와 헬기를 통한 구조가 지연되고 있지만 시신을 수습하면 현지에서 화장해 16일쯤 서울 국립의료원에 빈소를 차릴 계획이다. 전북 부안 선산에 놓을 묘비도 주문했다. ‘히말라야 11좌 등정 산악인 고미영’이 묘비의 문구다. 오빠는 “미영이의 유골이 오면 절반은 선산에 뿌리고 나머지는 오은선씨와 김재수 대장에게 고산(高山)에 뿌려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다. 그게 미영이의 뜻일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후배 여성 산악인의 우상”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의 산악인 이명희(36·여)씨에게 고씨는 바람막이 같은 존재였다. 이씨는 “도전정신이 강한 맏언니이자 우상 그 자체였다.”며 연신 울먹였다. 이씨는 “언니의 최종 목표는 히말라야 8000m 14개좌 등정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후배들과 함께 험난한 암벽코스를 택해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언니가 8000m 14좌 등반을 마친 뒤 후배들과 함께 높은 봉우리에 오르고 싶다고 말한 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함께 꾸기로 한 꿈을 시작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언니 우리는 어떡해.”라며 목놓아 울었다. 김민희 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 ‘스타킹 왕중왕’ 김지호, 장애 넘고 앨범발매

    ‘스타킹 왕중왕’ 김지호, 장애 넘고 앨범발매

    스타킹이 낳은 스타 김지호(시각장애1급·17)가 앨범을 발매했다. 김지호가 보컬로 있는 블루오션 소속 한빛 예술단은 7일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구성된 5인조 밴드 블루오션이 오늘 오프라인 앨범을 발매했다.”고 전했다. 블루오션은 지난 5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하 ‘스타킹’)에서 2PM의 닉쿤을 비롯한 게스트들을 오열하게 하며 화제가 됐던 김지호가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그룹이다. ‘스타킹’ 3연승과 상반기 왕중왕에 오르며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찬사를 들었던 김지호는 선천성 녹내장으로 16번의 수술을 받고도 끝내 시력이 회복되지 않은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김지호는 사랑을 주제로 발라드, R&B, ROCK, JAZZ 네 가지 색으로 꾸며진 앨범을 발매하며 좌절과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김지호는 “음악을 통해 장애는 결코 좌절이나 벽이 아니라는 인식을 전파하며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나갈 것”이라고 앞으로의 각오를 전했다. 한편 블루오션은 김지호 외에도 재즈피아니스트 양한규, 기타의 이준희, 드럼의 엄진용, 베이스 김미선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모니를 이루는 5인조 밴드다. 사진제공 = SBS 화면캡처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 천국서 행복하게…” 호흡기 떼자 한줄기 눈물

    “엄마, 천국서 행복하게…” 호흡기 떼자 한줄기 눈물

    “엄마, 아…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천국에 가서 아버지도 만나고…. 행복하게…” 마침내 인공호흡기 전원이 꺼지자 가족들이 오열했다. 1년반 가까이 할머니의 입에 씌워졌던 인공호흡기는 23일 오전 이렇게 제거됐다. 가족들은 핏기 없는 김모(77) 할머니를 찬찬히 살피며 숨을 죽였다. 국내 첫 존엄사가 진행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08호실. 495일 동안 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왔던 김 할머니가 친인척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세상과 이별을 고할지도 모르는 순간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의 신호탄인가. 숨이 뚝 끊길 것 같던 김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차마 세상을 놓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대신 전하는 듯했다. 김씨의 존엄사 집행은 김씨가 이날 오전 9시쯤 9층 중환자실에서 15층 1인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작됐다. 단발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김씨는 얇은 이불을 목까지 덮은 상태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유동식 공급 튜브와 인공호흡기를 각각 코와 입에 낀 김씨는 수액을 계속 공급받고 있는 탓인지 얼굴이 약간 부어 있었다. 간혹 입술을 달싹이거나 눈가가 떨리기도 했지만 의료진은 의미없는 동작이라고 설명했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 곁을 지킨 세 딸은 말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오전 9시50분쯤 주치의 박무석 교수 등 의료진 5명과 사위, 손녀 등 가족 11명, 법정대리인인 신현호 변호사, 서부지법 김천수 부장판사 등이 김씨의 침대 주변에 모이자 김씨가 17년 간 다녔던 보광동교회 홍경표 목사의 집도로 임종예배를 진행했다. 20분 뒤 예배가 끝나자 가족들은 ‘어버이 은혜’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가족들은 김씨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어루만지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를 나눴다. 오전 10시21분쯤 주치의인 박 교수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호흡기는 김씨의 입에서 떼어졌다. 3분여 뒤 인공호흡기 전원이 꺼졌고, 가족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호흡기를 제거한 뒤 30분~1시간 뒤면 임종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상과 달리 김씨는 숨을 한번 몰아쉰 뒤 자발호흡을 계속하고 있다. 하루종일 눈을 뜬 채 잠들지 못하던 김씨는 오후 9시30분쯤 의료진이 눈에 붕대를 덮어주자 잠이 들었다. 밤새 환자 상태를 확인한 주치의 박 교수는 “혈압 62~107㎜Hg, 산소포화도 96~97%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급성폐렴이 오지 않는 한 오늘 밤은 무리 없이 넘기실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측은 김씨가 숨을 멈출 때까지 수액과 영양 등을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사망할 경우 시신은 부검 절차를 거쳐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다. 김씨는 지난해 2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 출혈에 따른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자녀들은 기계장치로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평소 어머니의 뜻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시론] ‘노무현 유지 정치’에만 기댈 건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시론] ‘노무현 유지 정치’에만 기댈 건가/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민주당 인사들이 ‘노무현 유지’ 정치를 위하여 엊그제 서울광장 점거 농성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인파가 500만명을 돌파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한 데 따른 자신감에서 내린 단안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치열한 해석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마저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선구자로 전혀 다르게 평가되고 있는 마당에, 그의 자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인의 유지를 미화하여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정한 비판이 요구된다. 우선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실조의식에 빠져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유혹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자살예찬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노란 물결’에 취한 아이의 모방 자살로부터 민중항쟁을 선동하는 자살까지 등장한 바 있다. 또한 언론계·종교계·학계·사회단체들까지 나서서 추모정국을 장기화하려는 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소통의 부재’와 ‘차이의 존중’을 외치면서 기실 그 자신들도 당파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1000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이 판에 박은 듯한 시국선언문에서 남북경색의 책임까지 현 정부에 전가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규정하고, 현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만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임기 5년의 대통령중심제 국가이고, 대통령은 임기 중에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리 수사는 임기 만료 후에 개시되며,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 모두가 그런 절차에 따랐다. 따라서 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헌법과 국가 권력체제의 구조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실존적 결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유서엔 분명 스토아의 운명사상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순교)보다는 ‘카토의 죽음’(자살)에 더 가깝다. 로마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폼페이우스를 지지했던 카토는 전쟁에서 지자 카이사르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아프리카 벽지에서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카토와 노무현의 죽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카토는 공화정의 수호라는 대의 앞에서 동료들을 피신시키고 자결하였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가족의 돈 문제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이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그의 정부 각료들, 민주당, 그를 지지해 왔던 진보 언론과 방송들, 심지어 노사모까지도 모두 떠난 상태였다. 그 참담한 좌절 속에서 그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라는 스토아의 지혜를 받아들였다. 프로이트는 모세가 유대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으며,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유대교가 생겨났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의 부친살해 가설에 비추어 노무현을 죽인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민주당과 그 추종자들이다. 지켜주지 못했다고 오열했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회한과 당혹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제 주군의 주검 앞에서 그 죄를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대학교수들이 줄줄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민주당 인사들이 장외투쟁을 하더라도 이 진실만큼은 덮을 수 없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유지 정치’가 가능할지 모르나,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유지 정치’는 환상과 착시 현상에 근거한 시대착오적 발상일 뿐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 교수
  •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김춘추 탄생으로 시청률↑

    ‘선덕여왕’ 태종무열왕 김춘추 탄생으로 시청률↑

    미래의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8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연출 박홍균 김근홍·극본 김영현 박상연)에서는 유승호가 연기할 신라 제 29대 임금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나 눈길을 끌었다. 천명공주(신세경 분)의 남편 진골 김용수 공(박정철 분)은 태자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오산성 토란 작전에 출전했으나 미실(고현정 분)의 계략으로 전사한다. 미실은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 천명공주에게 “계양성의 주인 같은 건 떨쳐버리고 도망쳐라. 이게 나의 마지막 연민”이라고 협박해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에 천명공주는 미실을 피하기 위해 용수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숨긴 채 출궁해 승려가 된다. 천명공주는 죽은 남편 김용수의 동생 김용춘(도이성 분)에게 미실로부터 아기를 지키고 화랑의 세력을 되찾기 위해 국선 문노(정호빈 분)를 찾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1년 뒤 사찰에서 출산한 천명공주는 아들에게 ‘세월’을 의미하는 춘추라는 이름을 붙인다. 천명공주는 “미실이 세월 앞에선 자신도 어쩔 수 없다고 한 말을 떠올려 춘추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장차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는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이요원 분)이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장차 김유신(엄태웅 분)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룰 인물로 성장한다. 시청자들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오열하던 천명공주의 애처로운 모습이 슬프다.” , “자신과 아기를 지키기 위해 조용히 일을 도모하는 천명공주의 활약이 기대된다.”며 천명공주와 김춘추의 전개에 관심을 표했다. 한편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8일 ‘선덕여왕’의 일일 전국 시청률은 20.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고, 일일 수도권 시청률은 지난 2일보다 2.1% 증가한 23.8%로 전체 시청률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 = MBC ‘선덕여왕’ 캡처)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경호관 “죽고 싶은 심정” 울먹여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경호관 “죽고 싶은 심정” 울먹여

    경남지방경찰청은 2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상황을 검증하기 위해 경남 김해 봉하마을 뒷산에서 서거 당일 시간대별 행적을 짚어나가는 현장검증을 벌였다. 현장검증은 오전 5시35분부터 시작해 3시간가량 걸렸다. 현장검증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수 비서관과 함께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 및 법의학 전문가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 수행했던 이모 경호관의 안전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이 경호관은 “미칠 지경이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며 괴로운 마음을 표현했다 무전용 리시버를 귀에 꽂고 점퍼 차림에 흰색 마스크와 회색 모자, 등산화를 착용해 당시 상황을 재연한 이 경호관은 현장검증에서 수차례 울먹이는 등 힘겨워했다. 이 경호관은 사저를 출발한 직후의 상황은 비교적 담담하게 당시의 기억을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 오전 5시47분쯤 사저를 출발해 등산로 입구 마늘밭에서 일하던 주민 박모씨에게 “마늘 작황이 어떻노.”라고 물었고 박씨는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안좋심더.”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호관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는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이 떠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했고 간간이 울먹였다. 당시 정토원까지 뛰어가는 대목에서는 “몸이 안 좋아 못 뛰겠다.”고 말해 경찰 대역이 뛰어갔다 왔다. 경찰은 이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에서 정토원까지 왕복한 시간이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으나 현장 경찰관이 재연한 결과 2분43초로 조사돼 진술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발견된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는 고개를 숙여 한동안 오열했다. 이 경호관은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전 대통령을 발견하기까지의 긴급했던 당시 과정을 보여줬다. 이 경호관은 정토원 등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찾지 못하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산 아래로 내려왔다. 부엉이 바위 입구에 있는 나무다리를 건너오면서 불현듯 “바위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현장검증에서 이 경호관이 말했다. 이 경호관은 “하산 도중 부엉이 바위 아래에 물체 같은 것이 보여 가 보니 노 전 대통령이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시각은 6시51분쯤. 이 경호관은 즉시 휴대전화로 경호동에 있는 신모 경호관에게 연락해 “차를 빨리 대기시켜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어깨에 들쳐업고 산 아래로 내려와 2차례 인공호흡을 실시한 뒤 6시59분쯤 경호차량 뒷좌석에 태워 김해 세영병원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호관이 사라진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다 들른 정토원에서는 이 경호관과 정토원 선진규 원장 간의 맞대면도 있었다. 이 경호관이 정토원 요사채 앞에서 선 원장을 확인한 뒤 합장하고 “VIP 오셨나요.”라고 물었고, 선 원장은 말 없이 오른손을 가로저은 것으로 확인됐다. 선 원장은 이 경호관의 말이 맞다고 한 뒤 위치만 조금 앞쪽이라고 조정했다.김한수 경남경찰청 강력계장은 “이번 현장검증은 이 경호관이 일부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진술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선덕여왕’ 위한 소화의 희생에 시청자 눈물

    ‘선덕여왕’ 위한 소화의 희생에 시청자 눈물

    미래의 선덕여왕 덕만을 지키기 위해 소화(서영희 분)가 목숨을 버리려 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2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연출 박홍균 김근홍·극본 김영현 박상연)에서는 덕만과 소화가 덕만의 정체를 눈치 챈 미실(고현정 분)의 호위무사 칠숙(안길강 분)을 피해 사막으로 달아나는 장면이 전개됐다. 칠숙은 소화의 혼잣말을 우연히 듣고 덕만이 신라의 사라진 쌍둥이 공주임을 감지했다. 15년 동안의 추적 끝에 덕만을 찾은 칠숙은 “이제 임무를 완수하고 신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덕만과 소화를 추격한다. 덕만은 유사에 빠진 소화를 구하려 하지만 소화는 덕만을 살리기 위해 밧줄을 칼로 끊어버리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오열하는 덕만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은 “소화와 덕만의 애절한 모습이 슬프다.”, “누구보다도 몰입도 높은 배우 서영희의 소화를 계속 보고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의 집계에 따르면 2일 ‘선덕여왕’의 일일 전국 시청률은 2일의 18.2%보다 2.1% 증가한 20.3%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굳게 지켰다. (사진 = MBC ‘선덕여왕’ 캡처)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광장] 유월의 레퀴엠/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유월의 레퀴엠/노주석 논설위원

    다시 유월이다. 박종철의 영문 평전 ‘박종철, 유월의 노래’(Park Jong Cheol, The Song of June)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종철 6월의 전설’ 번역본이다. 1987년 유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그의 책 출간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유월의 광장을 떠올렸다. 지난 22년 동안 겪은 유월은 뜨거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유월이 시작된 것도 공교롭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핏줄속에 ‘투쟁’이라는 DNA를 지닌 승부사 노 전 대통령이 오월의 마지막 주말에 몸을 던진 게 우연의 일치일까. 혹시 자신의 죽음이 가져올 후폭풍까지 계산한 것은 아닐까. 권력을 쥔 자에게 유월은 혹독했다. 시작은 오월이다. 오월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집권 2년째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월의 기억은 뼈아프다. 1년 차에 경험한 촛불시위에서 극복의 노하우를 익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거 후폭풍으로 몰아칠 ‘조문정국’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묻고 싶다. 이 대통령은 왜 봉하마을에 조문 가지 않았나. 참모들의 잘못이 칠할이다. 대통령의 안위를 내세우며 숨어버렸다. 정치에도 ‘스토리 텔링’이 중요하다. 감동이 없는 정치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는 이 대통령이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문에 나서는 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었다. 정국 주도권을 놓치고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계란 세례를 받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김형오 국회의장, 박근혜·박희태 한나라당 전·현 대표 등이 줄줄이 퇴짜를 맞았을 때 정면 돌파하는 대통령의 위엄을 보여줬어야 했다. 한낱 범부의 상가에도 조문을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의 대우는 다른 법이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뚫던 그 기백과 저력은 어디로 갔나. 이 대통령은 상대 진영의 유월 공세를 저지할 힘을 비축하지 못했다. 지지자 상당수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두고두고 꼬리표로 따라다닐 허물이 됐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미학을 논하는 목소리가 ‘노무현신드롬’ ‘노무혀니즘’으로 번지고 있다. 유감스럽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죄가 크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라. 어떤 이유로도 자살을 미화해선 안 된다. 우리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며 단발령에 항거했던 민족이다. 그의 자살에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 또한 오열하는 이만큼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중이기에 험담을 삼갔을 뿐이다. 피의자가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변신하는 사회는 하류사회다. 그는 난관을 돌파했다기보다 포기했다. 도덕적으로 훼손된 자신을 견디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맹수처럼 스스로 떠났을 뿐이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회로 삼으려는 정치세력이나 무리들이 ‘유월의 레퀴엠(진혼곡)’을 틀어놓고 반전을 꾀하고 있다. 타인의 죽음에 기대려는 자들의 발호다. 지루한 다툼을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가려는 속셈마저 읽힌다. 순수한 추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진보와 보수의 소모적 대결,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북핵의 위협, 100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로 상징되는 나락에 빠지기 일보직전의 경제가 각각 놓여 있다. 입맛에 맞는 한 가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헤쳐나갈 것인가. 유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이명박 정부의 운명이, 한국호의 미래가 걸려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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