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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병이 총구 방향 틀어 2차 희생 막았다

    신병이 총구 방향 틀어 2차 희생 막았다

    4일 발생한 강화도 해병부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한 신참 병사의 용감한 행동이 피해를 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찬(19) 상병이 총기를 난사하는 순간 막사 인근에 있던 권혁(19) 이병은 총소리를 듣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달려와 김 상병이 들고 있던 총기의 총부리를 잡고 제압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이병은 총부리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김 상병이 더는 총기를 난사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권 이병은 오른쪽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에 총을 맞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고 당시 권 이병이 총구의 방향을 틀어 2차 피해를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다만, 권 이병 역시 부상을 당한 뒤라 온전한 정신에서 이야기했는지 알 수 없어 정확한 사실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초소에는 소대장을 포함해 30여명이 근무 중이었던 데 비해 피해가 적어 권 이병의 희생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권 이병은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총기 난사 사고로 숨진 병사 4명 가운데 이승렬(20) 상병과 권승혁(20) 일병의 시신은 헬기로 이날 오후 9시 5분쯤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됐다. 나머지 이승훈(25) 하사의 시신은 이날 자정을 넘겨서도 이송되지 못하다가 새벽 늦게서야 도착했다. 이에 앞서 박치현(21) 상병과 권 이병은 오후 4시쯤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과정에서 박 상병은 사망했다. 시신이 도착하자 유가족들은 구급차에 몰려들어 내려지는 시신을 보며 오열하기 시작해 통곡소리가 100m 밖 장례식장 입구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날 이후 4시 50분쯤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한 박 상병의 어머니는 장례식장 입구에 주저앉은 채 “내 아들이 죽었다.”고 오열하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상병은 경호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제대를 1년도 남겨두지 않고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국군수도병원의 빈소를 찾은 이 상병의 고종사촌형인 개그맨 임혁필(39)씨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해병대 간다고 할 때 못 가게 해야 했었다.”며 울먹였다. 이 상병은 지방대 보디가드 학과를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평소 해병대를 나온 임씨를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해병대 사령부는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합동 빈소를 마련했으며, 숨진 장병들이 모두 도착하는 대로 유족들과 논의해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빈소에는 아직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유족들이 동의하면 언론에 공개할 방침이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해병대 2사단 강화도 해안 초소 주변에는 충격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초소에서 불과 5m가량 떨어진 해안도로 건너편엔 민가 수십 채와 상가 건물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총성을 들었다는 주민 이영수(47)씨는 “보통 사격 훈련을 할 때 연속적으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나는데 오늘은 규칙적으로 소리가 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조금 지나 군인 4명이 속옷 차림으로 초소 안에서 나와 전력질주해 도망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평소 장병끼리 막사 옆에 있는 유적지 돈대에서 족구도 하고 화기애애했던 부대인데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초소 바로 뒤쪽 민가에 사는 김모씨는 “집에 있는데 군인들이 욕하고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 같더니 갑자기 커다란 총성이 들렸다.”며 “마지막 총소리를 듣고 담 너머로 막사 쪽을 봤는데 쓰러진 병사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다른 1명이 심장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학준·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비를 부르는 남자’ 박용하 1주기 추모제

    생전에 ‘비를 부르는 남자’라고 불렸던 한류스타 고(故) 박용하의 1주기 추모제가 빗속에 30일 경기 파주 약천사에서 열렸다. 중간중간 폭우가 쏟아지는 등 비가 주룩주룩 내려 슬픔을 더했다. 팬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쉼없이 흘렀다. 추모제에는 유족을 비롯해 고인의 일본 팬클럽 서머 페이스 재팬(Summer face Japan) 회원 1500여명 등 국내외 팬들이 참석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로 애도 편지를 낭독한 배우 박광현은 “용하야, 잘 지내고 있니. 아프진 않니. 춥진 않니. 믿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라며 울먹였다. 모두 하얀색 우비를 입고 쏟아지는 폭우에도 2시간여 끝까지 자리를 지킨 참석자들은 추모제가 끝난 뒤 고인의 유골이 안장돼 있는 경기 성남 분당 메모리얼 파크로 이동해 고인을 추모했다. 1994년 MBC ‘테마게임’으로 데뷔해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발돋움한 고인은 일본에서 ‘욘하짱’으로 불리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큰 행사를 열 때마다 비가 내려 일본 팬들은 그에게 ‘아메오토코’(雨男)라는별명을 붙여주었다. 지난해 6월 30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본에서도 사진전과 필름 콘서트 등 추모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이은주기자 erin@seou.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여기 방이동(서울 송파구)인데요, 노래방 문 좀 따주세요.”  지난해 9월 20일 밤 10시. 119신고센터에 20대 여성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닷새 전 노래방 문을 연다고 나간 A(당시 46세)씨를 애타게 찾던 첫째딸(당시 28세) 목소리였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간 지하 노래방은 앞뒤로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119 대원이 한참을 씨름하던 잠금장치를 절단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뭔가 썩는 냄새였다. 노래방 주인 A씨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자살이라고밖에는” 유서 2장과 소주병  자살이었다. 한눈에 들어온 현장은 그랬다. 시신이 누워 있던 노래방 내실 탁자에서는 유서가 담긴 흰 봉투와 먹다 남은 소주병 2개가 나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구구하게 긴 사연이 담겨 있었다. 1년 전 남편 유산으로 시작한 노래방이 생각만큼 잘 안돼 속상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3남매가 엄마 마음을 몰라줘 섭섭했다는 사연, 자신은 재미있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정겹게 인생을 살라는 당부 등이 이어졌다. 노래방과 살던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숨겨놓은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 출금 비밀번호는무엇인지 등도 적혀 있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인쇄돼 마지막에 도장까지 찍힌 유서는 남이 썼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A씨의 왼쪽에는 피묻은 칼이 놓여 있었다. 노래방 부엌에 있던 식칼이었다. 칼은 명치와 왼쪽 손목 2군데에 상처를 냈다. 치명상은 명치 쪽인 듯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A씨는 평소에 자살을 고민해 왔고, 결국 어느 날 노래방 문을 잠그고 술을 마신 뒤 1차로 손목을 2차례 긋고 나서 다시 명치 부위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보였다. ●“누구라도 최후의 순간에는 주저하기 마련, 그러나…”  자칫 억울하게 묻힐 뻔했던 A씨 피살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은 베테랑 형사였다. 자살 치고는 현장이나 시신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A씨가 자살한 쪽방은 성인 2명 정도가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크기. 그나마 가로로는 누울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벽에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혈액의 양도 이상하리만큼 적었다.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도 주저흔(hesitation marks)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주저흔이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치명상 주위에 생기는데 송곳에 찔린 듯한 작은 것부터 1~2㎝까지 많게는 수십개가 남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사망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많고 외부로 흘러나온 혈액이 많으면 타살로 간주하기 쉽지만 자살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명적인 곳을 못 찾거나 주저하게 돼 스스로 여러 곳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도 “자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A씨가 워낙 솔직하고 화통해 우울증이나 자살과는 거리가 먼 데다 유서도 어색하다고 했다. 유서에는 “내가 글씨를 잘 못써 PC방 점원에게 워드(워드프로세서)를 배웠는데, 유서 쓰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엄마가 어느 결에 워드를 배웠는지도 의문이고, 굳이 유서를 워드로 작성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유서 속 단어들이 평소 엄마의 말투와 전혀 달랐다. ●생활반응이 말해 주는 사건의 진실  A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 결정이 났다. 치명상은 가슴에 난 창상이었다. 찔린 곳은 한 곳이었지만 칼이 만든 상처의 끝부분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같은 곳을 정확하게 두 번 찔렀을 때에나 생기는 현상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치명상이 난 곳을 정교하게 찾아 두 번 칼을 꽂을 리 없다.  자살 현장이 조작됐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시신 왼쪽 손목의 상처였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의 상처에 ‘생활반응’(生活反應·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적은 출혈량 등을 감안했을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그었다기보다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만든 가짜 상처로 결론났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범인이 누구이기에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남의 가족사를 줄줄이 꿰고 있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3남매 중 하나일까.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정작 범인 색출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유서 봉투에서 둘째 딸(당시 25세)의 헤어진 동거남(당시 25세)의 지문이 나왔다. A씨 사망현장에 그가 있었다는 얘기다. 친척집에 숨어 있던 동거남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1년 넘게 A씨의 둘째딸과 동거를 해왔지만 최근 자주 다투면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건이 나기 한달 전 동거녀가 가출하자 노래방에 찾아가 “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A씨에게 면박을 당한 뒤 모욕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결혼식은 못 치렀지만 1년 이상을 사위처럼 살면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상주 노릇까지 했는데 장모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큰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게재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 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할 땐 미제사건 2) 죽음의 성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 직전의 성적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오열했던 남편 부인을 독살하다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 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성전환 여성 恨풀다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대변 속 100억분의 1g DNA 난관 속 사건 푼 ‘최후의 단서’ 7) 정관수술한 지능적인 연쇄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10) 급성 수분중독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호흡이 지목한 범인은 그의 아들이었다-화재사 속에 숨은 타살의 흔적찾기 13) 車운전석 그녀의 주먹쥔 양팔-‘에어컨은 억울했다’
  • 지경부 ‘끗발 1위’… 1년 12명꼴 요직 꿰찼다

    지경부 ‘끗발 1위’… 1년 12명꼴 요직 꿰찼다

    “흔히 얘기하는 ‘끗발’ 있는 자리에 머물다 산하기관으로 내려가야 요직을 차지할 수 있다고들 합디다. 연구·개발(R&D)비를 더 타내려는 관련 기관이나 협회에선 우리 부처 공무원의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한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는 고위직에 근무하다 정년이 가까워지면 산하기관으로 내려가는 인사관행이 진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각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공기업은 물론 유관 협회 등 이익단체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몸담고 있는 협회나 단체의 권익 옹호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공정경쟁의 원칙을 깨뜨려 사회적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297개 공기업 중 올해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135곳(47.2%)에 이른다. 이곳 수장자리를 놓고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일부 민간 전문가, 경영인 등이 경쟁하고 있으나 힘 있는 부처의 ‘낙하산 인사’가 다수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최근 차관급 인사가 단행된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에선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경부는 1, 2차관이 모두 바뀌면서 이들과 고시 기수가 비슷한 실장급 인사들이 대거 옷을 벗고 산하기관이나 협회로 옮길 전망이다. 1차관이 교체된 국토부도 전세대란과 LH이전안 등의 후폭풍이 만만찮은 형국이다. 여기에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의 기관장 임기가 곧 만료된다. 미래희망연대 정하균 의원이 공개한 최근 5년간 공기업 이직자 수에선 82개의 관련 기관을 거느린 지경부가 59명으로 수위를 차지했다. 산업지원 정책과 R&D예산 배정을 주무르는 대표적 경제부처이기 때문이다. 이어 보건복지부(36명), 교육과학기술부(29명), 국토해양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각 23명), 농림수산식품부(22명) 순이다. 1억원 이상 고액 연봉을 받는 이직자 수는 지경부 출신이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기획재정부는 11명에 그쳤으나 1인당 평균 연봉에선 1억 522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전문성이 감안된 공기업 기관장 인사와 달리 유관 협회로의 이직은 중앙부처의 ‘전관예우’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지경부와 국토부는 각각 82개와 49개의 유관 협회를 갖고 있다. 국토부 산하 대표 건설단체인 대한건설협회 부회장에는 박상규 전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 한국주택협회 상근 부회장에는 권오열 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이 내려가 있다. 이들 단체의 상근 부회장은 아예 국토부 몫으로 분류된다. 유상열 전 건설교통부 차관도 한국감정평가협회장을 맡아 감정원 공단화 등에서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지경부와 전신인 산업자원부, 통상산업부 등에선 과장급 공무원들의 이직이 두드러진다. 일찌감치 몸값을 인정받고 유관 기업으로 옮기는 경우다. 실제 지난해 지경부의 6급 이하 공무원 퇴직(정년퇴직 제외)은 단 한건도 없었으나 5급 이상 공무원들은 30건에 달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 보험금 노린 살인·자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3) 보험금 노린 살인·자살

    “범죄를 통해 얻게 될 기대효용이 합법적인 대안활동으로 얻게 될 효용보다 클 때 범죄는 발생한다.”(게리 베커·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001년 10월 어느 날, 밤 9시를 갓 넘긴 시각. 전남 담양의 한 병원 응급실로 20대 여성 A(당시 28세)씨가 후송됐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그녀. 호흡도 혈압도 잘 잡히지 않을 만큼 위독했다. 15분간의 심폐소생술로 혈압이 다소 오르면서 고비를 넘기자 의료진은 서둘러 A씨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환자는 다음 날 오후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며 결국 오후 4시 50분 눈을 감았다. 운전을 했던 남편 K씨는 “모두 나 때문”이라며 오열했다. 사고가 난 곳은 고속도로의 터널 앞이었다. K씨는 조수석에 부인을 태우고 시속 80~90㎞로 달리는데 갑자기 들짐승이 튀어나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핸들을 급히 오른쪽으로 돌리는 통에 터널 입구를 들이박았고, 그 충격으로 아내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119구급대원의 생각도 비슷했다. 하지만 A씨의 시신을 검안한 검시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자의 몸에서 죽음에 이를 만큼 결정적인 상해는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열했던 남편, 부인을 독살하다 부검대에 오른 A씨의 몸에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흔적이 역력했다. 가슴은 멍이 들었고, 앞가슴뼈와 2, 5번 늑골이 부러졌다. 가슴뼈는 약한 편이어서 건장한 성인 남성도 심폐 소생술을 받다 부러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몸 안에 교통사고의 흔적은 존재했다. 복강 안에는 270㏄ 정도의 유동혈이 고여 있었다. 외부의 힘을 못 견뎌 찢어진 간우엽(우측 간)에서 피가 흐른 것이 원인이었다. 부검의는 출혈량 등으로 봤을 때 직접적인 사인을 교통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신 그는 안구와 눈꺼풀 사이 결막에 생긴 작은 변화에 주목했다. 일혈점(溢血點)이 보였다. 일혈점은 교통사고가 아닌 목졸림 등 급성 질식사에 흔히 나타나는 소견이다. 혈액과 위장의 내용물에서도 타살의 흔적이 나타났다. 청산염이 발견됐다. 혈중 농도는 1.14㎍/㎖. 흔히 청산가리로 불리는 청산염은 극소량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맹독이다. 부검 결과를 근거로 경찰은 남편을 추궁했고, 결국 “부인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평소 채무 때문에 부부 싸움이 심했던 그에게 부인 명의로 돼 있는 8억원 상당의 생명보험 2개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차 안에서 비닐봉지로 부인을 질식시킨 후 조수석에 태웠고 바로 터널 벽을 향해 내달려 사고를 가장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청산염을 어떻게 먹였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40대 가장, 가족에 보험금 남기려 자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보험금은 남겨진 가족이 경제적으로 기댈 버팀목이 돼 준다. 하지만 거꾸로 양심을 배반하고 스스로를 파탄내는 악마의 속임수로 변하기도 했다. 그 유형도 다양하다. K씨처럼 배우자의 목숨을 팔아 보험금을 챙기려는 비정한 남편이 있는가 하면 가족을 위해 자기 남은 목숨을 돈으로 바꿔 주려는 못난 가장도 있다. 어차피 범죄이긴 마찬가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2004년 8월 전북 정읍의 시골마을. 지체장애인 B(당시 44세)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농수로에서 떨어지면서 차에 불이 났다. 운전자 B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불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 검안의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화재’를 직접 사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담당검사는 차를 산 경위나 보험 가입시기 등 정황이 의심스럽다고 봤다. 차에 불이 난 이유도 불분명하다며 시신 부검을 요청했다. B씨의 기관지와 인후부는 매연에 덮여 있었다. 혈중 일산화탄소의 농도가 37.6%에 달했다. 화재 당시 사망자가 한동안 호흡을 유지하며 살아 있었다는 증거. 여기까지만 보면 검안의가 말한 사고사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결국 사인이 뒤집어졌다. 혈액에서 5.63㎍/㎖ 청산염이 검출됐다. 위에서도 같은 성분이 나왔다. 혈중 알코올농도 역시 0.10%였다. 사망자는 만취 상태에서 청산염을 먹은 뒤 차를 몰았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당일의 행적과 보험특약 사항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사망자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B씨는 사고 이틀 전 직접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 신체사고에 대해 최고 1억원의 보험료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3년 전 찾아온 중풍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고 생활했던 그가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 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생명보험 관련 범죄로 적발된 인원은 3357명에 달한다. 보험사기로 적발된 5만 4994명의 6.1% 수준으로 최근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인원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27.2%(2639명→3357명), 금액 기준으로는 24.3%(475억 8100만원→591억 3600만원)가 늘었다. 보험업계는 전체 보험금의 약 10%가 사기에 연루된 부당한 보험금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7) ‘삼민주의’ 쑨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孫文·1866~1925). 그가 내세웠던 ‘삼민주의’ 곧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구국주의’이다. 삼민주의는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할 수 있게 만든 혁명 정신이었고, 외세로부터 중국의 통일을 지켜낼 수 있게 하는 이념적 모토였다. 쑨원의 유훈을 받든 장제스나 마오쩌둥 등에 의해서 삼민주의는 재해석되고 계승되었다. 그리고 지금 쑨원은 중국과 타이완 양쪽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성공한 혁명가 쑨원. 이상이 우리가 보통 상식으로 알고 있는 쑨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쑨원의 삶은 이와 달랐다. 현실의 쑨원은 혁명가로 이름을 내건 이래로 단 한번도 혁명 봉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신해혁명을 알리는 1911년의 우창 봉기까지도. 한마디로 쑨원의 삶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무엇이 혁명 봉기에 계속 실패한 그를 성공한 혁명가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만드는가. 쑨원에게 혁명이란 과연 무엇이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쑨원은, 혁명은 또 어떤 의미인가. ●직업 혁명가 쑨원의 탄생 1800년대 청나라가 외국에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유일한 곳 광둥성 광저우. 근처 농촌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은 외국인과 그들의 생활 및 문화에 대해서 낯을 가리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자가 으레 그러했듯 그의 집안에도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버는 친척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쑨원은 하와이에서 일하는 형 덕분에 근대적 교육과 기독교에 접할 수 있었고, 이후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청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고, 중국은 점차 서구 열강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었다. “대체로 중국과 조약을 맺은 나라는 모두 중국의 주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 나라의 식민지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한 나라의 노예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노예가 되어 있다. … 이것을 보아도 중국이 안남이나 조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중국을 반(半)식민지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내가 만든 명칭에 따르자면 ‘차(次) 식민지’라고 불러야 한다.”(‘민족주의’ 제2강, 1924년 2월) 1895년 전근대시기 세계 최대 제국의 하나였던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 서구 열강도 아닌,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에 중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중국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기감은 강력한 민족주의적 신념과 혁명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쑨원을 몰고 갔다. ‘만주족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건설하자.’ 혁명이 그의 답이었다. 쑨원은 요동치는 정국을 틈타 혁명 봉기를 도모했다. 하지만 쑨원의 봉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청 정부의 감시와 단속에 발각됐다. 함께 거사를 도모한 동지들 중 일부는 정부군에 잡혀 처형을 당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이 거사로 쑨원은 반체제의 길로, 직업적 혁명가의 길로 들었다. 이후 혁명은 그의 삶이 되었다. 한번은 쑨원이 해외의 지원자를 모으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갔다가 런던 주재 중국 공사관 관헌에게 잡힌 일이 있었다. 쑨원의 자칭 ‘피랍’ 사건은 그의 이름을 중국보다도 해외에서 먼저 반체제 혁명가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쑨원은 하와이를 필두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가는 곳마다 중국혁명을 역설했다. 그들로부터 한두 푼 피땀이 가득 밴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그는 혁명의 불길을 살리고,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하기 위해 항상 봉기를 일으켰다. 그것의 성공과 실패는 상관없이 그는 항상 격동하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온몸으로 부딪쳤다. ●혁명, 다시 한번 더 1905년 쑨원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보황회와 힘겨운 각축을 벌였다. 그는 혁명과 공화를 기치로 내건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중국동맹회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당시 쑨원만큼 서구 열강을 다루는 교섭에 뛰어나다고, 해외 화교 사회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자가 드물었던 덕분이다. 쑨원은 중국혁명에 열강들이 개입할까 항상 우려했다. 쑨원에게는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중국의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쑨원이 도모했던 봉기들, 가령 광둥, 광시, 윈난 등 남서부 변방의 봉기들은 모두 실패했다. 1911년에 일으키려고 했던 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쑨원에게는 중국 국내에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쑨원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도 냉담해졌다. 열강들은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지켜낼 수 있느냐, 쑨원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쑨원이 기댈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중의 불만과 혁명적 열기뿐이었다. 쑨원은 자신을 대하는 서구 열강의 시선이 냉담해질수록 민중의 혁명적 열기에 의지했고, 그것을 혁명 이상으로 녹여 내는 작업에 매진했다. 삶이 계속되듯 쑨원의 혁명은 계속되었다. ●1911년, 혁명정신을 갖고 온 사나이 쑨원은 우창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열 번째 패배’에서 잠시 낙담한 뒤,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고 움직이고 있던 찰나였다. 우창 봉기가 성공했다는 소식이었지만, 쑨원은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워싱턴, 런던, 파리를 경유해서 귀국하는 긴 행로를 선택했다. 긴 항해를 마치고 1911년 말 상하이에 도착한 쑨원.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 쑨원의 답은 간단했다. ‘혁명 정신’을 갖고 왔노라. 쑨원이 세계를 돌고 돌아 귀국한 까닭은 바로 열강들에게 중국 혁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위해서였다. 열강의 이권 다툼으로 중국이 사분오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쑨원에게 중국 혁명의 성공은 외세의 중국 분할 없이 전 영토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형태로 공화제 혁명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보여 줬던 통일된 중국에의 염원, 이것이야말로 쑨원을 중국을 낳은 아버지로 추앙받게 만든 힘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 쑨원이 보여준 행적도 중국의 통일이라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화정에 맞춰 비밀결사의 구태를 벗은 동맹회는 국민당으로 거듭났다. 국민당의 대표로 선출된 쑨원은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군사적인 기반이 약했던 그는 초대 대총통의 자리를, 당시 베이징을 중심으로 기반을 잡고 있던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에게 양보했다. 쑨원에게서 혁명은 공화정의 수립으로 완성됐기도 했지만,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강하고 하나 된 중국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1912년 마침내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그러나 혁명 정신의 완성태로 보였던 공화정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임시약법은 믿었던 위안스카이 등 정치가들에게 유린당했다. 아첨, 뇌물, 협박과 살인이 횡행했다. 설상가상으로 1915년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군벌의 난립으로 중화민국의 기반은 흔들렸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쑨원의 방식 “또 다른 거사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나는 모든 일을 직접 지휘하겠다.”라고 쑨원은 미국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중화민국의 성립과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진 듯 보이는 쑨원.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국민당을 재정비하고, 혁명 세력을 결집시키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삼민주의로 혁명 정신을 다잡았다. 1923년 쑨원은 마침내 광둥을 진원지로 한 통일을 위해 북벌을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혁명의 시작점에서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1925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쑨원은 단 한번 성공한 1911년의 혁명에서 무참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쑨원은 결과물로 주어진 현실을 견주고, 재고, 제도화하는 정치에 서툴렀으므로 새로 만들어진 공화정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쑨원은 그 실패에서 혁명이 결코 공화제라는 정치체제의 수립만으로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다. 쑨원은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혁명 정신은 유효하고, 중국은 통일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쑨원은 중국의 통일을 향한 외침, 북벌을 선언한 채 죽었다. 그는 혁명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그 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혁명이란 오로지 길 위에서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만 말해지지 않던가. 그래서 쑨원에게 혁명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지금 여기 혁명의 이름으로 그는 항상 살아 있다. 이것이 바로 ‘혁명가’ 쑨원이 갖는 의미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부실 PF 뇌관 없애나] 주택협회 PF사태 대책회의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인한 주택업계의 위기가 확산되면서 한국주택협회 회원사 중역들의 모임인 운영홍보위원회가 18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주택·건설사업 PF 대출 문제점’을 주제로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운영홍보위 위원장을 맡은 동부건설의 김경철 상무와 권오열 주택협회 부회장 등 회원사 및 협회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경철 상무는 “국내 토목건축공사업면허 1호인 삼부토건에 이어 동양건설산업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사태가 심각하다.”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당초 27일 예정됐던 회의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의 건설사 금융권 만기연장 협의 지원 ▲시행사의 PF 대출 시 시공사 지급보증이 아닌 보증전문금융기관의 보증서 제출방식 도입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EV) 활성화 등의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상상 밖 대통령 암살 ‘9·11’보다 충격적”

    “상상 밖 대통령 암살 ‘9·11’보다 충격적”

    “링컨 대통령의 암살은 9·11테러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지난 2009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암살 전모를 담은 책을 펴내 주목을 끌었던 앤서니 피치.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링컨 암살과 관련된 사실들을 소개했다. 지금 미국은 남북전쟁 발발 15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로 떠들썩하다. 그중에서도 역시 남북전쟁의 ‘주인공’인 링컨의 암살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과거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피치와의 인터뷰는 링컨이 암살당한 ‘포드 극장’에서 이뤄졌다. 백악관에서 걸어서 10~20분 거리에 있는 그곳은 지금도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링컨 사망일인 이날도 관람객들로 붐볐다. 링컨 암살 현장인 무대 바로 옆 2층 발코니는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링컨 암살은 당시 어느 정도의 사건이었나. -그 시대에 대통령이 암살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이 아침에 백악관 창문으로 나와 신문 배달을 하러 온 소년과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나누던 시절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은 지금으로 치면 9·11테러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나마 9·11테러는 대낮에 발생했지만 링컨 암살은 한밤중에 일어났다. 그때는 휴대폰도 TV도 없었다. 등불로 어둠을 밝히던 시절이니 공포가 얼마나 심했겠나. 당시 암살 소식을 전해 들은 워싱턴 시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서 안 나왔다. →대통령한테 경호원도 없었나. -그렇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대통령 암살이란 건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링컨이 처음으로 암살당한 대통령이 된 것이다. 존 윌크스 부스가 암살을 결심했던 것도 백악관 뜰에서 링컨의 연설을 직접 듣고 나서였다. 1865년 4월 11일 수많은 인파가 백악관(지금의 후문 쪽)으로 몰렸다. 48시간 전에 남부군이 항복해 링컨이 명실상부한 영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링컨은 백악관 2층 정중앙의 창문을 열고 국민들에게 “이제 흑인도 마땅히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인파에는 부스도 끼어있었다. 그는 링컨의 연설에 격분해 친구들에게 링컨을 저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너무 위험하다.”며 말렸다. 그러자 부스는 “오늘 링컨의 연설이 그의 마지막 연설이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4일 그는 링컨에게 총을 쐈다. →암살 당시 상황은 어땠나. -4월 14일 부스는 포드극장 2층의 대통령 자리로 몰래 올라가 링컨의 뒤통수에 대고 총을 발사했다. 그러고는 1층 무대 위로 뛰어내려 달아났다(직접 보니 뛰어내릴 만한 높이였다). 옆에 앉아 있던 영부인은 달려온 주치의에게 “죽은 거예요? 그를 살릴 수 있어요?”라며 울부짖었다. 당시 주치의는 3일 전 백악관에서 링컨이 연설할 때 안색이 창백한 것을 보고 걱정이 돼 뒤늦게 극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총을 맞은 뒤에는 어떻게 됐나. -극장 건너편에 있는 피터슨 하우스(군인들이 머물던 건물)로 옮겨졌다. 혼수상태에 빠진 링컨을 보고 영부인이 울부짖다 혼절하자 전쟁장관은 “저 여자를 내보내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소리쳤다. 그 후 영부인은 생전의 링컨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건물 밖에는 인파가 몰려와 링컨을 걱정했다. 하지만 링컨은 저격 9시간 만인 15일 7시 22분 숨졌다. 그의 옆을 지키던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전쟁장관은 자제력을 잃고 오열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역사가 됐다.”고 말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링컨의 시신은 성조기에 싸여 백악관으로 옮겨졌다. →부검은 했나. -그렇다. 백악관 후문 쪽 2층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방에서 사망 4시간 30분 만에 부검이 이뤄졌다. 지금은 대통령 가족 식당으로 사용하는 곳이지만 당시엔 응접실이었다. 군의관이 머리 윗부분을 절개한 뒤 새끼손톱보다 작은 총알을 끄집어냈다. 그 작은 탄환이 인류의 거인을 잠재운 것이다. 부검을 했던 의사들은 링컨의 몸이 생각보다 강건한 데 놀랐다. 젊은 시절 레슬링으로 단련된 몸이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사분오열 한나라

    사분오열 한나라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조짐으로 여권이 사분오열되고 있다. 당장 유치 경쟁에 열을 올렸던 영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 움직임이 예고됐다. 당내에선 의견 조율 실패에 따른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4·27 재·보선뿐 아니라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야권에 틈새를 노출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밀양 신공항’ 유치를 추진했던 대구·경북 출신 의원들은 28일 국회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고 ‘불복’ 입장을 천명했다. 이들은 ‘짜맞추기’, ‘대국민 사기극’까지 거론하며 “결코 승복할 수 없는 절차상의 중대한 하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지평가위의 30일 결과 발표에 따라 ‘불복 선언 뒤 반(反)정부 투쟁’이라는 행동 방침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시당 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정부가 신공항 백지화나 결정 연기라는 승복할 수 없는 결과를 발표하면 곧바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밀양이 지역구인 조해진 의원도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의 백지화 결정은 최대 악수가 될 것”이라면서 “이번 재·보선은 물론 내년 총선·대선에서 여야, 계파 구분 없이 현 정부를 상대로 날 세우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 지역 의원들도 수위가 낮긴 하지만 불만을 드러냈다. 부산시당 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과는 별개의 문제”라면서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15~20년 걸리는 확장사업을 하는 대신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의원들은 여권 내 불협화음에 따른 민심 이반을 걱정했다. 한 초선 의원은 “신공항 문제가 백지화로 귀결될 경우 여론은 ‘그것도 하나 조정 못하느냐’며 여권 전체를 싸잡아 비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권 분열에 따른 야권의 틈새 공략을 걱정했다. 실제로 야당의 공세가 가시화되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빗대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공약을 너무 자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는데, 세종시 문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충청권 의원들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절차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는 “이반된 영남권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권 입지를 흔들려는 시도가 있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집채만한 쓰나미 볼 때마다 푸껫서 쓸려 간 동생 생각나”

    “집채만한 쓰나미 볼 때마다 푸껫서 쓸려 간 동생 생각나”

    일본 동북부의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솟구쳤던 지난 11일. 한 50대 남성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05년 태국 푸껫 지진해일 참사 때 막내 동생을 잃은 가수 고영준(53)씨였다. ‘알뜰한 당신’ ‘황성옛터’를 부른 원로가수 고(故)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장남인 그는 애꿎은 담배만 거푸 피워댔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새벽 5시까지 소주 4병을 비웠다. 술에 만취해 아무리 게워 내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동생의 마지막 얼굴이 가슴까지 차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그 막막함과 애끓는 심정을….” 그가 혼잣말로 나직이 곱씹었다. 산더미 같은 검은 물살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 속에 누군가가 휩쓸려 가는 건 아닌지, 동생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인단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그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번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해일은 이렇게 ‘지진 참사’ 유족들에겐 더 큰 아픔이 되고 있다. 아비규환인 참사 현장이 화면에 잡힐 때마다, 살려 달라고 외치는 부상자들이 보일 때마다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영준씨는 함께 살던 이모님 두분과 아내를 연이어 잃고, 장인과 어머니까지 타계한 상태에서 동생까지 세상을 뜬 터라 상처가 더했다. 숨을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고,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날이 지속됐다. 그는 “그 유명한 영화 ‘해운대’도 못 보겠더라. 그 물살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라면서 “우연히 뉴스로 일본 지진 장면을 보고 며칠간 잠을 못 이뤘다.”고 말했다. 그가 한달이나 찾아 헤매던 동생은 아버지 기일 하루 전날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버텼느냐.”는 물음에 그는 “음악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잘 아는 작곡가가 동생을 위해 지어 줬다는 자신의 노래 ‘눈물 젖은 빵’ 한 소절을 불렀다. “진흙탕에 뒹굴고 가시밭길 걸어 보고…쓰라린 사연 하나 가슴에 없으면서 어찌 인생을 안다 하겠니.” 그는 가사가 자신과 닮았다며 쓸쓸히 전화를 끊었다. 지난달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아들을 잃은 유상철(57)씨도 이번 일본 지진 참사에 가슴 시리기는 마찬가지. 주뉴질랜드대사관에 따르면 유씨는 언론과의 접촉도 마다하고 현지에서 아직 찾지 못한 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우석동 뉴질랜드 영사는 “일본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무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면서 “자녀 생각이 나는지 홀로 밖에 나가 오열하는데 주변에서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 한다.”고 전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카다피 또 기괴한 연설 “시위대 약 먹고 환각상태서 싸우는 중”

    카다피 또 기괴한 연설 “시위대 약 먹고 환각상태서 싸우는 중”

    ‘피의 금요일’을 몇시간 앞둔 24일 밤(현지시간) 외신을 통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공개적인 선언을 할 것이라는 긴급 뉴스가 떴다. 순간 각 언론은 리비아 소요 사태가 극적인 반전을 이루거나 적어도 유혈충돌을 앞두고 의미있는 상황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막상 카다피 국가원수의 발언 내용이 공개되자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은 “역시 이상하고 기괴한 내용”이라는 김빠진 반응을 보였다. 카다피 국가원수의 발언은 이날 알 아라비아 TV와의 전화통화 생중계 형식으로 소개됐다. 그는 먼저 “숨진 시위대에 애도를 표한다.”면서 “그들은 모두 리비아의 자식들”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이 리비아인을 조종하고 있다.”면서 “오사마 빈 라덴이 진정한 범죄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카다피 국가원수는 “오로지 나만이 도덕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면서 “리비아는 오사마 빈 라덴에 결코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 놓았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여러 차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 비교하면서 “상징적인 지도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또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제 정신인 사람은 참여하지 않을 것”, “환각을 몰고 오는 약을 먹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라며 횡설수설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리비아인에게 약을 먹여 반란을 촉발시켰다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외신은 “알 카에다를 부각시켜 서방의 동정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냐.”고 비아냥거리는 의견을 함께 싣기도 했다. 최후의 요새인 트리폴리에서 반정부 세력과의 결전을 몇시간 앞두고 카다피 국가원수는 한층 더 기괴하고 상식을 벗어난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준 셈이다. 카다피의 이 같은 발언은 이날 알 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AQIM)가 반정부 시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낸 이후 이뤄졌다. 이와 관련, 일부 외신은 카다피가 막무가내식으로 광기 어린 독설을 쏟아내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BBC 등 외신들은 ▲카다피를 호위하는 군 ▲사분오열된 경쟁세력 ▲서부지역의 지지 부족 ▲막대한 원유자원 등 4대 기반이 독재자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선 아들 등 측근이 이끄는 군부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리비아 정규군은 4만여명뿐인 데다 제대로 훈련받지도 못해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두 번째 버팀목은 카다피가 족장으로 있는 알카다파 부족이다. 카다피는 41년 통치기간 동안 자신의 부족 출신 인사를 주요 보직에 앉혀 보안군을 장악했다. 제대로 된 야권이 없는 것도 카다피가 건재할 수 있는 이유다. 카다피의 마지막 보루는 440억 배럴 이상으로 추산되는 풍부한 원유이다. 서방권은 만일 카다피가 권좌에서 축출되면 석유 시설을 파괴하는 등 과격행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박찬구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매몰자들은 오열했다···’돼지 생매장 현장’ 동영상 공개

    ‘구제역’ 돼지가 생매장 되는 마지막 모습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와 5개 종교(천도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35개 단체 등은 2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천도교 대교당에서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생매장 돼지의 절규’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지난 1월11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의 두곳의 매립지에서 생매장 당하는 1900마리 돼지의 매립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구덩이에 던져진 돼지들의 절규는 지옥을 연상시키는 말 그대로 충격 장면이었다.  돼지들이 산 채로 포클레인에 실려 구덩이 속에 내던졌고, 짓눌리고 깔리자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지만 돼지들은 그 위에 쌓여만 간다. 현장을 발 앞에서 본 동물단체 관계자는 충격에 촬영을 하다가 오열하고 만다.  인근 축산농가 주민은 “매몰된 다음 날까지 땅 속에서 나온 돼지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동물사랑실천협회는 “괴롭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영상을 널리 공유해 줄 것”을 부탁했다. 협회는 “생매장 위주로 이뤄지는 현행 구제역 살처분 방식이 동물에게 끔찍한 고통을 줄뿐 아니라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침출수 등 각종 환경오염을 발생시킨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또 비인도적인 살처분 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대안 모색을 촉구했다.  동물단체들은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으로 인해 매몰된 동물의 수는 지난 18일 총 880여만마리에 이른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인간이 저지른 이 무참한 생매장은 반드시 벌을 받을 것” “생매장은 하는 사람도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 “돼지들의 절규에 내 마음도 찢어지듯 아프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f(x) 루나 ‘으라차차’ 열창에 유현상 독설 왜?

    f(x) 루나 ‘으라차차’ 열창에 유현상 독설 왜?

    걸그룹 에프엑스 멤버 루나가 ‘으라차차’ 열창에도 불구하고 혹평 받았다. 루나는 지난 6일 방송된 MBC ‘오늘을 즐겨라-록을 즐겨라’ 오디션에 참가해 심사위원 유현상 인순이 김종서 윤도현 등 록의 전설들 앞에서 럼블피시의 ‘으라차차’를 불렀다. 이날 방송에서 루나는 오디션 전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노래 연습을 하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막상 오디션이 시작되자 냉정한 심사위원들의 모습에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지켜본 심사위원 유현상은 노래가 끝난 뒤 “지금 록을 했다고 여기 나와있냐”며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난 안 나왔을 것”이라며 독설을 쏟아냈다. 이어 “음악을 이해하는 감정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긴장된 루나의 노래가 ‘록’의 요소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마치 발라드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음악 이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심사평을 들은 루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해 눈물을 쏟아냈다. 심사위원단은 당황하며 루나를 달랬지만 폭풍오열은 계속됐다. 조혜련은 루나의 오열을 보고 “워낙 열심히 하는 아이라 지금 심사위원들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아서 울음이 터진 것이다”고 설명했다. 방송직후 시청자들은 “노래에 자부심이 강해서 그런가” “저번에도 SBS ‘스타킹’에서 울었던 것 같은 데” “안타깝긴 한데 이번 기회에 성숙하기를” 등 다양한 소감을 전했다. 사진 = MBC ‘오늘을 즐겨라-록을 즐겨라’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
  • [정국 현안 분야별 해법-과학비즈니스벨트] “4월 추진위 발족… 토론 뒤 결정”

    이명박 대통령이 1일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해 “위원회가 공정하게 부지를 선정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대선 당시 공약했던 충청권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두고 사분오열된 정치권의 대립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원칙을 묻는 질문에 “국회에서 통과된 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에 따르면 4월 5일 이후 추진위원회가 발족하고, 그 위원회가 부지를 선정하게 돼 있다.”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내가)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패널이 과학비즈니스벨트 지역으로 충청권을 지목한 대선 당시 공약에 대해 묻자 “지난번 대국민 발표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공약이 선거 과정에서 있었다.”면서 “그것에 의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 공약집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내가 선거 유세를 충청도에 가서 했으니까, 표 얻으려고, 내가 관심이 많았겠죠.”라고 말했다. 또 “국가 백년대계이니 과학자들이 모여 과학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좌담이 끝난 직후 자유선진당이 “분노를 느낀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역시 “세종시에 이어 또다시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시크릿가든, 잊지 못할 엔딩장면 베스트7

    시크릿가든, 잊지 못할 엔딩장면 베스트7

    ‘시크릿가든’의 인상 깊은 엔딩 장면은? SBS 특별기획드라마 ‘시크릿가든’(극본 김은숙, 연출 신우철 권혁찬)은 그동안 엔딩장면을 통해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켜왔다. 그 중 시청자들을 밤잠에 들지 못하게 했던 베스트 엔딩 장면을 모아봤다. # NO.1 베스트 엔딩장면-17회 뇌사상태인 라임(하지원 분)과 영혼체인지를 위해 빗속으로 차를 몰고 가는 주원(현빈 분). 라임이 영화 ‘다크블러드’를 촬영하다가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자 주원은 비가 오면 자신들의 영혼이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착안해 라임이 자신의 몸으로라도 살 수 있도록 하려 한다. 라임의 이마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하며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사랑해. 사랑한다”라고 읊조리는 주원의 대사는 절절한 진심을 고스란히 드러났다. # NO.2 베스트 엔딩장면-12회 라임과 주원, 눈빛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확인한 눈맞춤 동침. 라임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의 주원이 빛을 발한 장면이다. 바닥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던 라임 앞으로 다가가 마주보며 눕는 주원. 라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주원을 쳐다보며 깜짝 놀라지만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오래도록 서로를 바라보고 있게 된다. 라임은 주원에 대해 한 번도 밝히지 않은 속마음을 드러내며 ‘그래도 와라 내일도 모레도’라고 애틋한 사랑의 눈빛으로 응시해 아름다운 엔딩장면을 연출해냈다. # NO.3 베스트 엔딩장면 - 2회 라임의 액션 촬영장에서 감독에게 진지하게 얘기하는 주원. 라임은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던 주원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상황. 백화점에서 액션장면을 찍고 있던 라임에게 감독이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을 주자, 백화점 사장이라며 주원이 멋지게 등장한다. “저한텐 이 사람이 김태희고 전도연입니다. 제가 길라임씨 열렬한 팬이거든요”하며 숨 막힐 듯한 미소를 날리던 주원. 두 사람 앞에 펼쳐진 사랑을 예고하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 NO.4 베스트 엔딩장면-16회 라임의 아버지가 주원을 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홍(박준금 분)이 라임에게 무릎을 꿇다. 분홍은 납골당에 갔다가 자신의 아들 주원을 엘리베이터 사고에서 살리고 대신 순직한 소방관이 라임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결국 라임에게 찾아가 엘리베이터 사고에서의 충격이 너무 커 그 당시 기억까지 잃어버린 주원을 위해 헤어져달라고 애원한다. “돈으로 다 보상하마”라고 오열하며 라임 앞에서 무릎까지 꿇는 분홍의 모습과 라임, 주원의 안타까운 운명에 시청자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다. # NO.5 베스트 엔딩장면-15회 엘리베이터 안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는 주원. 주원의 몸을 하고 있던 라임은 박상무(이병준 분)에게 보라는 듯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고 ‘다크블러드’ 오디션 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박상무의 계략에 의해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 순간 비가 내리게 되고 라임의 몸을 했던 주원과 영혼이 뒤바뀌게 된다. 눈을 떠보니 엘리베이터에 갇혀있게 된 주원은 폐소공포증으로 인해 호흡곤란 증세까지 보이며 정신을 잃게 돼 시청자들 또한 숨죽이며 몰입하게 했다. # NO.6 베스트 엔딩장면-5회 자신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라임과 주원의 외마디 비명. ‘신비가든’ 백숙집에서 받아온 의문의 꽃술을 동시에 먹은 라임과 주원.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라임과 몸이 바뀐 주원은 찜질방에서 깨어나고, 주원과 몸이 바뀐 라임은 옆에서 자고 있는 오스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며 동시에 ‘악’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엔딩 장면을 이끌어냈다. # NO.7 베스트 엔딩장면-8회 경찰서 앞에서 비를 맞으며 다시 자신의 영혼으로 돌아와 뛸 듯이 기뻐하는 라임. 주원과 라임은 영혼이 바뀌었다는 놀라운 상황에 적응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게 된다. 특히 주원의 몸을 한 라임은 백화점 VVIP에게 주먹을 날려 경찰서에 갇힌다. 라임 몸의 주원은 라임에게 “큰 잘못을 했다. 절대 안 빼줄 거다”라고 큰소리치고 경찰서를 나간 순간 하늘에서 비가 내려 본래 자신의 영혼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하는 라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엔딩장면이다. 한편 ‘시크릿가든’은 앞으로 단 2회분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 오는 16일 종영을 앞두고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길라임 유령설’ ‘새드 엔딩설’ 등 수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 사진=화앤담픽처스 서울신문NTN 손재은 기자 jaeni@seoulntn.com
  • 李·安 vs 李·任 대립? 靑 신·구 참모갈등?… 靑 선택은

    李·安 vs 李·任 대립? 靑 신·구 참모갈등?… 靑 선택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거취 문제가 여권 내부의 해묵은 권력투쟁설을 다시 들춰내고 있다. 지난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 요구가 불거진 뒤 여권에는 특정세력 간의 갈등설과 특정정치인 간의 알력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청 간의 갈등은 이미 숨길 수 없을 만큼 노출됐고, 당은 당대로 사분오열의 기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재오·안상수 대 이상득·임태희’ 11일 여의도를 뒤덮은 권력투쟁설은 ‘이재오·안상수 대 이상득·임태희’의 갈등 구조였다. 친이계를 양분한 이상득 의원 측과 이재오 특임장관 측의 오래된 경쟁 관계라는 구도 속에서 안상수 대표와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전면에 나서 맞서게 됐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관측은 감사원장 후보 추천을 고리로 하고 있다. 임태희 실장은 정동기 후보자를 추천하고 지원한 반면, 이재오 장관 측은 호남 출신의 제3의 인물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은 정동기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평소 이재오 장관과 관계가 좋은 안상수 대표가 정동기 불가론에 동조하면서 당 지도부를 움직여 청와대를 겨냥한 사퇴요구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친 이상득 측과 친 이재오 측 갈등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 당내에 확실한 입지를 구축해 가는 상황에서 누가 친이계를 주도해 박 전 대표에 맞서거나, 또는 협력하느냐의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2012년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누가 한나라당의 당권을 잡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이재오 장관 측은 “이번 사태를 개인 간의 갈등 구도로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 같은 해석을 일축한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청와대 참모들의 일방 통행에 대한 지적이 당에서 많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이번 인사를 통해 터져나온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측근은 “이 장관도 정동기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문제 제기에 불안해하고 걱정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 장관이 안 대표를 통해 ‘거사’를 했다느니 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부의 갈등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 임 실장 체제와 지난달 말 청와대로 돌아온 옛 참모진인 이동관 언론특보·박형준 사회특보가 갈등구도를 빚으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정 후보자의 문제점이 필요 이상으로 언론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안상수 책임론 후폭풍’ 당·청 충돌은, 청와대에 상당한 내상을 입혔지만, 당내에도 상당한 충격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거사’를 주도한 안상수 대표에게 만만찮은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일을 극단적으로 끌고 갔다는 책임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안 대표와 함께 청와대와의 조율에 참여한 원희룡 사무총장은 소속 의원들로부터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정동기 불가론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강력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는데, 꼭 그런 방식을 동원했어야 했느냐.”고 따졌다. 일각에서는 안상수 의원 개인의 사심(私心)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친이명박 직계의 한 초선의원은 “이번 인사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동기 후보자를 임명하겠다고 안상수 대표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를 안상수 대표가 수긍한 뒤 이제 와서 이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안 대표가 (청와대의) 뒤통수를 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 인책론’ 이번 사태의 화살은 결국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인책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 후보자를 임명한 것은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임태희 실장 등 참모들이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시작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8·8개각 때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부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경부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한 것도 결국은 청와대 참모들이 책임졌어야 할 부분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친이 소장파의 한 의원도 “이번 일을 놓고 당·청 간 권력투쟁이라고 말하는데, 권력투쟁은 청와대가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인사검증의 실패와 관련해서는 특히 인사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8·8 개각 후유증이 불거진 후 청와대는 인사검증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정 후보자가 7개월간 7억원 급여를 받은 부분과 관련,“불법사실은 없지 않으냐.”면서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단을 해왔고,결국 이 같은 판단이 정 후보자의 낙마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최종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주변 인물 중에서 ‘썼던 인사를 다시 쓰는’ 인사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잘못됐다고 조언을 할 만한 참모가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책론과는 별도로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비난이 가장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靑 대응에 따라 결과 달라져’ 사태 추이와 관련,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청와대 대응에 따라 향후 결과가 달라진다.”고 내다봤다. “청와대가 당의 지적을 수용하고, 당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면 윈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청와대 권력과 민심을 등에 업은 당이 충돌한 것인데, 일단 당이 이길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제왕적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도 결국은 당에 졌다.”면서 “청와대 수석들이야 임기가 끝나면 끝이지만 당은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청와대가 당의 주도를 존중해야 레임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성수·이지운·이창구 홍성규기자 sskim@seoul.co.kr
  • [인사]

    ■헌법재판소 ◇관리관 승진 △기획조정실장 신판식◇이사관 승진△심판사무국장 김정성△심판자료〃 권오섭◇부이사관 승진△재정기획과장 이규현△심판자료〃 김성수◇서기관 승진△재정기획과 이성환◇국장 전보△행정관리국장 박부용△공보관(헌법연구관) 박준희◇과장 전보△제도기획 전득환△정보화기획 정원국△인사관리 김희△심판사무2 양철수△자료편찬 윤용오◇과장 파견△국방대 김정희△통일교육원 김병운 (2011년 1월 1일자) ■조달청 △차장 김명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관 승진 △중앙선관위 기획조정실장 한승철◇선관위 상임위원 전보△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김도윤△부산 류원홍△인천 남래진△광주 이재휴△대전 이기영△강원 김범식△충북 김원기◇선관위 상임위원 승진△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윤원구△전남 박삼서△경남 이두호△제주 유영인◇이사관 전보 <중앙선관위>△공보관 이재일△감사관 황재덕△선거기획관 이성룡△법제〃 추형관△조사정책관 조장연△정당국장 손재권△사무처 김영선 김성중 양금석 정태희<선관위 사무처장>△부산 최예식△울산 김규조△경기 정성종△충북 이정규△전북 전선일△경북 임성식△경남 하용주◇이사관 승진△중앙선관위 사무처 조원봉 한일남<선관위 사무처장>△서울 안효수△대구 손세현△인천 이은철△대전 최병국△강원 장기찬△충남 박진규△전남 고재억◇부이사관 전보 <중앙선관위>△재외선거기획관 정훈교△선거연수원장 권오열△정당과장 정영택△선거연수원 교수기획부장 진종호△사무처 김기봉 김대년 이재태 정정식 최용대<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사무국장 이계형<선관위 사무처장>△광주 박이석△제주 고승한◇부이사관 승진 <중앙선관위>△정보화담당관 장용훈△선거기록보존소장 엄흥석△선거1과장 유병길△조사1〃 윤석근△직무교육〃 이언근△사무처 원찬희<서울선관위>△관리과장 김호문◇서기관 전보 <중앙선관위>△상임위원 비서관 허철훈△법규안내센터장 서정욱[담당관]△공보 문병길△홍보 서인덕△감사 임성규△인사 옥미선△국제협력 김정곤[과장]△총무 이재화△선거2 김신기△재외선거정책 김대일△재외선거관리 이동규△법제 박영수△조사2 하명호△의정지원 송봉섭△정치자금 김판석[선거연수원]△전임교수 이기화 임석근△시민교육과장 이용섭◇서기관 승진 <중앙선관위>△사무총장 비서관 김상범△공보담당관실 신우용△감사담당관실 김재원△선거기록보존소 김성덕△선거1과 박광섭△정당과 윤재현△교수기획부 강순후△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이남근△사무처 나성하 박종진<전남선관위>△홍보과장 이남오<선관위 사무국장>△사하구(부산) 김영도△수영구(부산) 임채만△포항시북구 장경조△안동시 강일호△영덕군 곽규성△창원시성산구 김명수△통영시 전용환△김해시 박태성△거제시 오영빈 ■한국조폐공사 ◇1급 승진 △기술처장 이흥균△홍보실장 전재명△화폐본부 주화처장 정명국△ID본부 관리처장 신기방◇2급 승진△생산관리실장 이욱현△차기주민증사업단장 이범우△화폐본부 생산조정실장 이재만△ID본부 생산처장 서태원△ID본부 박욱서◇1급 전보△공공사업처장 성낙근△해외사업단장 조병호△신성장사업〃 박탁서△제지본부 관리처장 김종술◇2급 전보△창립60주년사업단장 최인규△조달실장 박봉철△시설현대화〃 최근수△비서〃 강상구△제지본부 생산조정〃 신현우△기술연구원 전략생산연구〃 김종균△감사실 감사1팀장 한상학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본부장·단장·실장급 △경영기획본부장 장익△초중등교육정보화〃 김진숙△학술연구정보화〃 조순영△정보기술지원〃 이성태△국제협력단장 한태명△감사실장 윤주한△전략기획〃 박근수 ■디지털타임스 △대표이사 사장 조명식 ■중앙대의료원 <의료원>△기획실장 박인원△임상의학연구소장 차영주<중앙대병원>△진료부원장 김경도△교육수련부장 임인석[진료과장]△내과 최병휘△외과 지경천△소아청소년과 최응상△산부인과 이상훈△정신과 이영식△정형외과 장의찬△신경외과 김영백△흉부외과 손동섭△성형외과 김우섭△안과 문남주△이비인후과 양훈식△피부과 서성준△비뇨기과 명순철△마취통증의학과 김진윤△영상의학과 심형진△방사선종양학과 박석원△신경과 권오상△재활의학과 서경묵△진단검사의학과 차영주△병리과 이태진△가정의학과 김정하△핵의학과 석주원△응급의학과 김찬웅△치과 최영준 ■국민은행 ◇본부장대우 승진 <영업부장>△명동 김병옥△여의도 박순옥△서여의도 김철홍<법인영업부장>△명동 정호열△여의도 권오강△서여의도 전귀상<지점장>△인천국제공항 이성희△강남역 이종탁△선릉역 한윤기△양재역 조성열△거여동 권홍주△송파 백동호△목동8단지 김정노△구로동 김명철△종암동 최승호△마포역 강홍만△서교동 정순일△내방역 황경문△서초동 심영권△신사동 김종필△신자양 이오성△무역센터 이장희△압구정서 김형률△언주로 홍완기△문래동 안병선△양평동 안병린△여의도 최명동△증권타운 차형근△광화문 이기범△종로중앙 이치한△명동중앙 백조현△무교 송연숙△서소문 윤웅원△소공동 박철웅△경안 이제경△용인 김활수△평택중앙 박주홍△의정부중앙 변수우△마두역 강익환△일산 정선문△주엽역 곽영희△동수원 김철오△수원 이한응△영통 최상운△부천중동 박상철△상대원 이종현△선부동 이경화△안산 이수용△평촌범계 한경수△구월동 민영현△서인천 정영은△고현 이형래△옥포 전대식△진주 이상훈△창원 강영호△울산 강대현△부산 김병남△부전동 박기원△온천동 박용진△포항남 이정구△내당동 정언영△대구 정재주△성서 금병하△광주 오평섭△전주 박재균△유성 김성수△청주서 김정기△둔산선사 전운선△길동 김종국△대치동 전유문△마산 한정헌△보라매 오관기△오산운암 강길성△장한평역 박병일△정자동 김정국△종로5가 팽경진△청량리 이명규<기업금융지점장>△삼성센터 박정현△삼성타운 장지인△서린동 이원록△스타타워 강재규△분당 이명규△강남파이낸스 김영규△도곡 김해경◇부장 승진△IB사업 우상현△여신IT개발 이문창△수신IT개발 이은석△IT채널개발 이호준◇지점장 승진△대치남 전성일△도곡렉슬 진광표△도곡역 이용성△도곡중앙 윤재원△매봉 전종환△수서역 김교란△잠실엘스 김기영△발산동 신재천△낙성대역 유영근△북한산시티 이창길△수유역 한해선△광흥창역 손주호△연서 박석운△은평로 전기병△논현사거리 최철수△서초중앙 장흥만△이수교 정대성△광장동 이계성△구의남 박지수△면목동 김영혜△중곡서 김익주△사당북 김순금△신길사랑 이승진△양평역 문원희△대학로 염명순△전농동 이근재△곤지암 양용현△수지동천 서이주△안중 장문순△용인보라 노정이△죽전 김기현△태전동 지운용△강릉중앙 김인남△도농 정회철△삼척 손성호△의정부금오 김용식△일동 이기철△토평 송연석△홍천 허이△곡선동 정진학△권선동 김재천△당동 김도현△동탄능동 이민종△동탄하늘빛 변창배△영통남 김홍계△천천동 안상원△화성봉담 고건석△동암 유형산△부천위브더스테이트 이청하△부천테크노파크 강영헌△모란역 김정호△분당중앙 최미경△분당효자촌 박형식△창우동 최갑식△KT 김병윤△검단사거리 진영옥△고촌 박명순△송림동 김학무△장기동 노명균△김해삼계 정성욱△내서 동희운△삼천포 우민석△팔용동 윤한웅△범어사역 노영일△부곡동 박태문△울산구영 김삼호△울산동평 임시민△웅상 서영휘△좌동 황일철△광복동 조상길△괴정역 김진용△금곡동 백봉현△동대신동 동경진△동삼동 오정훈△중앙동역 박영돈△개금동 최영석△광안동 안기표△명륜동 송동섭△사직동 김병수△수안동 권광남△수영 박태영△양정동 이성건△전포동 원소희△대구메트로팔레스 김용재△동대구 추철엽△방촌동 최경섭△범물동 시종수△칠곡 이재열△하양 이상섭△구미인동 권순보△대곡동 유점환△동성로 안태근△상주 신동계△월성동 이동말△평리동 김세연△광주금호 전안중△무진로 김재윤△신제주 문성삼△용당동 심상곤△해남 정태원△화순 박정군△남원 한상견△두암동 박종열△문흥동 김국현△부안 심우석△신창 소병은△아중 이선기△오치동 김영수△운암동 김진△일곡 강종식△가경동 정공훈△반석동 송창호△산남동 김범열△송강 윤영환△청주남문 김영한△둔산한양 장성규△부여 김경택△신부동 안건호△쌍용서 김인태△용문역 김동섭△천안사직동 김만석△태안 안길종△홍성 이현수△당진기업금융 이남주△진영기업금융 이상태△수송동 최대규◇PB센터장 승진△대치 장명화△부천중동 문용술△서초 최강현△송도 정동락△청담 이원국△해운대 박규배◇지점 개설준비위원장 승진△뭄바이사무소 김찬흥△목동2단지 노완택△중계역 김기옥△서울스퀘어 한인석△동백중앙 원용명△일산덕이 박찬용△가오동 임향순△가좌마을 노종민△강동롯데캐슬 김재환△단계동 김기형△대구비산동 이영호△대봉동 천종만△덕정 정금식△두정역 최명식△마석 김태진△복수동 김상규△봉화산역 박재욱△부천여월 성현모△불로동 이응섭△산곡4동 조기성△산본궁내동 이성호△상대원2동 김종훈△소만마을 이재문△시흥능곡 차진회△아시아선수촌 양세욱△예천 구의본△왕십리뉴타운 권기인△원동 문종렬△은평뉴타운 강석옥△의성 박창록△의왕역 김문주△이촌동 정해영△인제 유성기△인창 주봉환△인천공항신도시 정순학△일원역 윤영대△정평동 오성진△제주서광로 우광철△중계본동 박남태△중흥동 김갑규△직산 정해용△진접금곡 김일찬△청학 신상우△춘의테크노파크 한인수△통영죽림 송천석△파주북시티 정기훈△파크리오 김시열△호원동 박정근◇부점장 대우 승진 <조사역>△비서실 이기노△HR그룹 정하진 변성수◇부점장 대우(수석팀장) 승진 <영업부>△여의도 길동환△명동 신관철△서여의도 조환성<법인영업부>△여의도 이수용△명동 손동기△서여의도 강승열<지점>△인천국제공항 백성준△강남역 박시춘△양재역 오우교△선릉역 조여익△대치동 송대섭△송파 안승철△길동 왕준성△거여동 류상기△목동8단지 남종기△보라매 홍석훈△구로동 구광석△의정부중앙 두팔수△종암동 양해성△서교동 김명경△마포역 최충완△서초동 정희복△신사동 이권형△내방역 정채곤△신자양 이기원△무역센터 이장원△압구정서 강태희△언주로 이수열△여의도 김선정△양평동 이학수△증권타운 김제흠△문래동 정공은△종로중앙 김남우△광화문 윤우중△종로5가 이대노△장한평역 김용승△청량리 박종대△소공동 오재택△무교 이상기△명동중앙 송재용△서소문 류경택△용인 박태용△평택중앙 노한덕△경안 김대환△주엽역 김선찬△일산 이기섭△마두역 강종규△안산 신승현△선부동 김영일△부천중동 임채훈△상대원 이춘암△정자동 이성준△오산운암 김영내△동수원 윤승욱△영통 최병열△수원 유종금△평촌범계 김종태△구월동 유춘식△서인천 문헌섭△진주 임채양△창원 김호영△고현 김정우△마산 곽종봉△옥포 김효식△울산 윤승주△부산 손영식△부전동 김대일△온천동 도용하△포항남 최영호△성서 김광수△내당동 최상재△대구 허경순△청주서 김성규△유성 김덕주△둔산선사 조종률△광주 한민섭△전주 김종희<기업금융지점>△스타타워 김경신△서린동 박복규△삼성센터 박윤현△삼성타운 변성균△분당 임승환◇부장 전보△재무관리 임필규△자금 김창원△영업기획 이정호△기업영업추진 정상철△글로벌사업 문영소△퇴직연금사업 김동익△외환업무 이홍교△프로젝트금융 박형수△신금융사업 윤일현△캠퍼스플라자사업단장 김종란△고객만족 강대명△수신 이규진△여신상품 임호영△카드업무지원 김준수△카드영업추진 전영산△카드회원추진 이몽호△여신심사 김종찬△여신심사부 수석심사역 김정태 류범규 함명각 홍성구△총무 강현구△IT서비스운영 신용채△직원만족 정석영△인재개발원 최원우△신탁 신선균△수탁업무 김철△리스크관리 이우열△신용감리 이규홍△준법지원 신화영△준법감시인 법무Unit 김채윤△비서실장 신홍섭△경영감사부장 직무대행 김희숭◇지점장 전보△런던현지법인장 김기홍△개포동 나경만△남역삼 이종일△대청역 김영규△동역삼 이인걸△삼성역 구본승△스타타워 원경욱△역삼동 민동선△역삼역 조정희△한티역 양영석△강동구청역 성종훈△둔촌서 이은수△명일역 최병길△서잠실 이재림△석촌동 김권석△성내동 하덕일△암사역 지두환△잠실역 정용택△천호동 차정호△훼밀리아파트 하용수△가양역 소충영△등촌1동 최수영△목동역 하성목△목동파리공원 박원선△발산역 김학조△방화동 함경식△신월동 박성규△양천 오경록△우장산역 권두현△화곡동 최재섭△화곡본동 신두순△가산디지털 백승균△가산패션타운 김창덕△개봉남 백정곤△고척동 이도형△구로벤처센터 김선용△구로 이민수△금천 김진형△독산동 한상돈△시흥동 변동호△신도림역 김남영△신림동 김사무△조원동 김정태△공릉동 곽덕환△노원역 강석정△노원 손주섭△돈암동 이승식△삼선교 김인숙△상계역 최용진△수락산역 이용곤△수유동 김진도△쌍문북 황기연△쌍문역 이동익△중계동 안성열△중계북 이규철△창동 조성백△태릉역 서남종△남가좌동 정연정△도화동 김용호△마포 최길복△북아현동 오영희△상암 김영민△서대문 장명△성산 김대관△아현동 정기영△역촌동 박종태△역촌역 김정기△연희동 변동수△홍제동 심재욱△강남대로 곽수석△남부터미널 이환택△반포중앙 안수영△반포 정호규△방배역 이창근△삼성타운 이명현△서초2동 차기범△서초남 우치구△서초로 이수진△서초무지개 양종렬△서초북 홍영란△양재남 김환국△이수역 장석윤△잠원동 김정수△구의동 이규창△군자역 박상철△금호동 정상권△마장동 김경문△망우동 정현구△묵동 문철웅△상봉역 김서기△성수역 곽명선△신내동 김선주△옥수동 김진홍△중화동 박윤영△화양동 김승수△강남구청역 김양래△논현역 김동선△압구정동 심미란△영동 김호진△테헤란로 양철수△테헤란중앙 조승현△학동사거리 송인성△학동 정윤식△노량진중앙 안성수△노량진 김동억△대림동 박기암△대방동 김운태△대방로 정선택△신길서 강영모△여의도리버타워 김강수△여의도중앙 양원모△영등포2가 박춘실△영등포구청역 박준명△영등포로 김형권△영등포 김양균△영등포하이테크 최현규△흑석동 김한옥△광교 윤현종△광화문역 김동섭△동아미디어 허진△서린동 박왕섭△신용두 노태섭△이문동 이상원△장안동 곽경환△장안북 김형군△제기동 배영한△청계 이재웅△홍릉 위대복△남대문 최인석△남영동 강병훈△동대문패션타운 홍승표△동부이촌동 김점현△서소문로 전일선△신평화 김기응△을지로입구 최현묵△중부 최성헌△청계3가 유병용△태평로 전병훈△퇴계로 김용구△한강로 이일복△구갈 전부영△송탄남 박희수△수지중앙 오종현△평택 이충열△강릉 강성주△구리역 강명수△남양주 이재훈△덕소 정우택△의정부서 김영민△진접 김해연△춘천 이돈근△평내동 이종구△회천 강창규△금촌중앙 주낙경△문산 우상호△벽제 고정주△원당 허판△일산북 기경욱△중산 이정식△탄현 박준우△행신동 최광식△행신역 차임섭△화정역 김준원△과천 이창주△금정동 공승배△매교동 이경자△매탄동 이완영△북수원 김순태△산본역 이두종△산본 박현배△의왕 박정운△인계동 한용철△파장동 송희석△포일 최해복△동암역 이종갑△부개동 이건배△부천서 고성태△부천중앙로 정진우△부평 최진복△산곡동 송기봉△산곡북 김도영△소사 석명국△송내동 안윤경△역곡역 김영규△오정동 문중옥△용종동 김병수△원종동 양길영△작전동 오석성△분당구미동 김온섭△분당양지 이규봉△서현역 이길성△야탑동 염규승△은행동 임일수△이매동 한어성△태평역 김성중△LH 허정수△국토연구원 김득중△상록수 김태헌△시화 장영진△시흥 나광근△안산단원 문경호△안양동 김종만△안양 이상원△원곡동 김동명△월피동 정재동△철산역 홍학기△가좌공단 김종국△간석동 권준화△구월북 오영수△김포 김기호△동인천 이황희△만수6동 김재룡△석바위 유병남△숭의동 고재현△신포동 이영기△연수 노병환△용현동 이철재△학익동 최창수△김해 최문림△도동 추병구△동마산 안병구△석동 김성언△신마산 김진호△진해 고영훈△창원중앙동 김창수△기장 한태진△무거동 최용석△신해운대 전현수△양산 박대근△전하동 우원식△해운대우동 윤용웅△구포 손병건△덕천동 이동범△사상역 김채신△사상 최동길△신평동 안상현△충무동 김말룡△화명동 이동관△가야 김승철△남천중앙 정미향△대연동 강영욱△문현동 정용삼△부산진 길도원△서면중앙 류재익△초량 이경제△경주 김성원△동천동 윤장섭△범어동 백진영△시지 이종화△영천 정영배△포항중앙 박임성△포항 박낙현△김천 조재범△남산동 김유곤△대구용산 김철섭△상인동 오상혁△안동 김종배△이곡동 강석곤△형곡동 이영수△동광양 박성영△목포 이병수△봉선동 유종택△서귀포 김시형△순천 안동근△여수 김석진△여천남 양한승△여천 이건주△연북로 김성모△일도 고지선△진월동 김경범△태인동 이승재△화정동 고재욱△광산 이종승△군산 김갑신△금암동 김창권△동림동 정회안△서신동 문성주△송천동 정인호△익산 최재앙△첨단 박희숙△평화동 박종필△풍향동 정왕식△대덕특구 주왕식△대전원동 장준오△대전은행동 이이섭△제천 최병열△논산 오광옥△대천 김석운△둔산갤러리아 여양구△쌍용동 양철수△아산배방 권주창△정림동 김연석△반월공단기업금융 윤중근△성서공단기업금융 나상흠△강북 이선우△남양산 오규원△시화공단 윤영춘△충무로역 위황◇센터장 전보△명동PB 정영석△목동PB 김효종△스타시티PB 김영길△압구정PB 윤설희△잠실롯데PB 박홍기△강서심사 안인찬△강남심사 김쌍철△남서심사 김명신△동남심사 박지호△강북심사 서성화△대출실행 곽희동△여신관리집중센터 개설준비위원장 조경복△업무지원 김용범△자금운용지원 황민택△서울콜 강길호△대전콜 임채능△업무상담 김남균 ■비씨카드 ◇부문장 전보 <부사장>△전략 김종근△고객서비스 이강혁△경영지원 박부영<상무>△가맹점서비스 조중화△마케팅 안병수△IT/프로세싱 윤병한◇상무 승진△생활서비스본부장 박귀순◇이사 승진△IT본부장 김진호◇이사보 승진△전략기획부장 정명철◇부장 승진 <부장>△카드발급 강기성△홍보 박상진△생활서비스기획 조정범△IT Biz개발 안상호△가맹점운영 조용문<팀장>△차세대 Biz추진 이혁구△인사관리 정찬식◇부장 전보△감사 이경훈△준법감시 박정우△회원사기획 김준△회원사사업(고객사영업 겸임) 여재성△보험사업 박현철△여행사업 최충근△MD사업 창병균△글로벌사업 주상민△네트워크개발 김진완△가맹점기획 박용현△가맹점서비스 권기동△제휴영업 손용선△영업지원 안광오△강남영업 김정환△강북영업 이준화△남부영업 김성환△중부영업 박상범△호남영업 김미수△마케팅기획 장홍식△상품운영 황장우△채널운영 채병철△플랫폼사업 송병식△IT기획(차세대IT기획 겸임) 허진영△IT개발(차세대IT개발 〃) 이홍석△IT운영(차세대IT기술 〃) 이덕수△회원청구 신동은△고객서비스 김상겸△국제카드운영 이중규△변화추진 김경주△신사업추진 서거정△모바일사업 장석호△시너지사업 유재환△경영관리 김진철△재무관리 임표△총무 이정호△HR서비스 김의찬 ■메리츠화재 ◇임원 신규선임 <본부장>△자동차보험 정병두△중부권 김명환△Agency1 정병재△Agency3 박용주◇임원 보직변경 <사업부장>△신채널 이경수△개인영업 이상국<본부장>△마케팅 조영환△Agency2 최영배◇부서장 <팀장>△마케팅 정세형△채널전략 황정국△신채널영업지원 김경환△중부권본부마케팅 송성일△손사지원 신성영<지역단장>△대전 유호율△광주 박흥철<영업단장>△GA1 박양호△GA2 김기영△GA3 박규영△서울Agency1 최후락<센터부장>△보상집중 이용환△호남보상서비스 강일 ■현대그룹 ◇승진 <홍보실>△상무보 김홍인 ■현대상선 ◇승진 △상무 임재훈 강호경 김찬호△상무보 최종철 남상돈 임석종 정유섭 김길수 김경태 ■현대증권 ◇승진 △상무 김원배 김병영△상무보 김주섭 김신환 노태일 조성대△상무보대우 이대희 김선경 이재형 서상택 신용각 ■현대아산 ◇승진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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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욱◇전보 <상무>△충청지역본부장 최영민△호남〃 서창선△선임계리사 김희철△퇴직연금컨설팅 문종배 김인수<이사>△방카슈랑스영업1본부장 금진호△홍보실장 김응상△대구지역사업본부장 윤진권<부장>△FC영업본부장 김종흠△방카슈랑스영업3〃 권성호 ■미래에셋증권 ◇승진 <부사장>△코리아리서치센터 한상춘<전무> [사업부대표]△법인 나병윤△리테일 이만희<상무>△WM서초센터지점개설준비위원장 변주열[본부장]△전략기획 구원회△퇴직연금컨설팅1부문1 김영빈<상무보>△준법감시인 이봉민△코리아리서치센터장 황상연△PF1팀장 한원동[본부장]△채권랩&신탁 이진명△퇴직연금컨설팅2부문3 김진희△Equity Trading 전경남<이사>△HR본부장 이병성[실장]△재경 박철교△브랜드전략 윤자경[팀장]△전략 김성하△리스크관리 김종철△PBS 김준영△금융상품마케팅 조성식△법인2 추민호△파생상품운용 이민우△금융상품컨설팅1 박정대△기업금융2본부1 기승준△RP운용 이창훈△상품운용1 김선욱[지점장]△부산 박한기△창원 여운상△강서 배왕섭△삼성역 전진희◇전보 <상무>△경영서비스부문대표 변재상 ■삼탄 ◇승진 <삼탄>△부사장 임재정△이사 유헌재△이사대우 이강협△상무 최병현 이종범△이사 이기만 Irawan△전무 박상은△이사 장영범
  • 수온 낮아 실종자 생존 가능성 희박

    남극 해역에서 조업 중 침몰한 원양어선 제1인성호의 사고 원인은 일단 기상악화로 밝혀졌다. 특히 사고 해역의 수온이 낮아 인명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해역의 낮은 수온을 꼽았다. 해경은 사고 해역의 수온이 0~1도라고 설명했다. 국제해사기구(IMO) 수색구조 매뉴얼에 따르면 특별한 보호복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2도 이하 수온에서 생존 가능 시간은 45분에 불과하다. 2~4도의 수온에서도 1시간 30분 이상 살아 있기 힘들다.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체온증에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체온이 35도 이하가 되면 심장, 뇌, 폐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해경은 전체 승조원 42명 가운데 구조 또는 숨진 것으로 확인된 25명이 사고 직후 배 밖으로 탈출해 찬물 속에서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 조업 선박이 구조에 참여해 비교적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온이 워낙 낮아 선원 대부분이 저체온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망자 5명 가운데 1명인 한국인 최씨는 구조 후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수온이 높았다면 당연히 살아남았겠지만 저체온증 때문에 구조 직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실종자 17명의 생존 가능성 또한 높지 않은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실종자 가운데는 국제 옵서버 자격으로 승선한 김진환(38)씨도 포함돼 있다. 국제 옵서버란 어장환경 같은 조사업무를 맡는 사람으로, 남극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려면 반드시 국제 옵서버가 조업 선박에 승선해 어장환경 조사를 하도록 돼 있다. 인성실업은 메리츠화재에 최대 300만 달러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선원법에 따라 선주는 사망한 선원 유족에게 선원별로 승선 당시 평균 임금 1300일분을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평균 임금의 120일분을 장례비로 별도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실종 선원 가족에게 우선 통상임금 1개월분과 승선 당시 평균임금 3개월분을 지급하고, 실종 기간이 1개월을 초과할 때는 사망한 것과 같은 보상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인성실업 부산지사는 오전 10시 30분쯤 사고 소식을 듣고 사고 수습에 나섰다. 사무실은 선원 가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유영섭 선장의 처남 김선수(50)씨는 “TV 뉴스를 보고 달려왔다.”면서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1등 기관사 문대평(44)씨의 어머니 이순애(74)씨는 아들의 실종 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목 놓아 울었다. 한편 부산해양경찰서는 구조된 1등 항해사가 귀국하는 대로 불러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부산 김정한·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사망자 ▲최의종(33·1등 항해사·서울 강일동) ▲하종근(48·1등 기관사·경남 창녕) ▲조디(28·선원·인도네시아) ▲도디 푸노모(23·선원·인도네시아) ▲엔구엔 트엔(24·선원·베트남) ●실종자 ▲유영섭(45·선장·경남 양산) ▲안보석(53·기관장·부산 동삼동) ▲문대평(44·1등 기관사·전남 장흥) ▲조경열(55·조리사·부산 동광동) ▲김진환(37·옵서버·부산 거제동) ▲파오시(27·선원·중국) ▲이강건(23·선원·중국) ▲리우롱윤(41·선원·중국) ▲팡킹송(39·선원·중국) ▲반타안(21·선원·베트남) ▲반손(25·선원·베트남) ▲송하오(28·선원·베트남) ▲수파로디(47·선원·인도네시아) ▲사푸트라(30·선원·인도네시아) ▲사나디야(27·선원·인도네시아) ▲마스쿠르(31·선원·인도네시아) ▲헤르마완(23·선원·인도네시아)
  • [열린세상]한 사람/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열린세상]한 사람/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올 12월은 유난히 뒤숭숭하다. G20 서울 정상회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왜 낭보가 없었으랴마는 느닷없이 터진 북의 연평도 도발이 피해당사자들에게는 물론 국민들, 나아가 전세계인에게 큰 충격과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국내적으로는 미해결 과제로 표류 중인 여러 현안들과 갈등요인들, 그리고 이기주의의 파편들이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저자특강 초빙으로 여전히 빼곡한 강의 일정 현장에서 만나는 서민들의 가슴은 혹한이 오기도 전에 이미 꽁꽁 얼어 있다는 느낌이다. 과연 누가 닫힌 이들의 마음을 열어줄 것이며, 누가 오그라든 이들의 손을 펴줄 것인가? 그들을 위로한답시고 주유하는 필자마저 올 연말엔 문득 고독한 영혼이 되어 ‘한 사람’이 마냥 그리워진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내 곁에 있어줄 그 ‘한 사람’이 절실히 그리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2010년을 ‘한 사람’ 단상으로 출발했다. 연초에 영화를 소개하는 한 케이블 방송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왔다.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소개하면서 그 메시지를 통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취지를 듣고, 그냥 쉽게 수락했다. 기억을 뒤져 보니 빈약한 목록 가운데 1994년 오스트리아 빈 유학시절에 본 ‘쉰들러 리스트’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회주의자였던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 크라코에 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나치 당원이 되어 뇌물을 바치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한편 공장 노동자로 죽음의 수용소에 잡혀 온 유대인들을 차출 받아 인건비 한 푼 안 들이고 공장을 운영한다. 그러면서 유대인 회계사 스턴과 가까워진다. 이후 쉰들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의 공장이 ‘천국’이라는 소문이 돌아 위기를 느끼지만 독일군에게 뇌물까지 바쳐가며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빼내오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러던 중 쉰들러는 수용소의 나머지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것이란 얘기를 듣는다. 독일군의 만행에 회의를 품고 유대인들을 구해낼 결심을 한 쉰들러는 스턴과 함께 구해낼 노동자 리스트를 작성한다. 영화 제목인 그 생명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바로 그 대목에서 필자는 최고의 명장면을 만났다. 쉰들러와 그의 유대인 동료 스턴이 1000명이 넘는 구명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그것이 모두 그 두 사람의 기억에서 나온다. 어떻게 그 많은 이름을 일일이 기억해 낼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거기서 두 가지 메시지를 발견했다. 우선, 쉰들러가 그들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구해 낼 때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물건 하나하나를 팔아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기억이 났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1000명이라는 숫자가 그냥 한꺼번에 1000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쉰들러 리스트에 속한 사람들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독일군의 손에서 구출된다. 그 후 독일의 패배로 전쟁은 끝이 나고, 쉰들러는 소련군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공장을 떠나기 직전 유대인들은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을 새긴 반지를 만들어 그에게 건넨다. 쉰들러는 유대인의 따뜻한 환송에 감동과 아쉬움을 교차하며 오열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대사는 긴 여운으로 만인의 가슴에서 오늘도 공명하고 있다. “더 살릴 수 있었어. 돈을 좀 더 벌었더라면…. 난 돈을 너무 많이 탕진했어. 이 차를 팔았으면 10명은 구했을 텐데. 이 (금)핀은 두명 아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구했을 텐데….” ‘한 사람’은 영화 속에만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어둠이 깔리고 있는 동네 뒷골목 그 어디쯤에서 그 한 사람이 콜록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기억 속의 쉰들러는 사제인 필자의 신원을 부단히 확인시켜 준다.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 [인사]

    ■기획재정부 ◇부이사관 승진 △법사예산과장 권오열△국제경제〃 지규택 ■대한지적공사 △감사 정연석 ■인천도시개발공사 △기획조정실장 직무대리 오문권△단지사업본부장 김대년△건축사업〃 송기태△사업지원〃 맹기호◇처장△기획 윤태흥△감사 김인규△단지사업 정치오△검단사업 홍성찬△주택사업 최동일△재생사업 이순복△경영지원 김명환△예산관리 박흥식△민자사업 박영인△건축기획 박기완△단지기획 한형호△보상 서경호△분양 라원율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김병섭 ■경향신문 △문화부장 문학수 △엔터테인먼트부장 오광수 △체육부 선임기자 하재천 △사진부 선임기자 권호욱 △스포츠칸 체육부장 권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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