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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돌연 뛰어든 日무역…아버지의 모험이 한국 가는 운명의 시작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16살이던 1888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돌연 극동 무역업에 뛰어들면서 세 아들에게도 일을 맡기는데, 이는 나중에 베델이 한국을 찾아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토머스 행콕은 15년 넘게 브리스톨의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다가 1886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본 무역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샐러리맨이 불혹(不惑)의 나이에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동업자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지원이 컸다. 19세기까지 ‘대영제국’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글로벌 무역 패권을 장악한 중심 국가였지만 상대적으로 일본과의 무역은 활발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한국과 일본을 지금도 ‘극동’(Far East)이라고 부르듯 당시 영국인들에게 일본은 ‘세상의 끝’이었다. 당시 니콜은 이미 일본에서 골동품 사업으로 상당한 부를 모은 때였다. 그는 영국과 거리가 멀어 경쟁자가 많지 않은 일본과의 무역을 ‘블루오션’(신성장 사업)으로 보고 사업을 키우고자 토머스 행콕에게 동업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토머스 행콕은 니콜과 함께 일본으로 가 효고현 고베에 ‘니콜 앤드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워 일을 시작했다. 당시 고베는 일본이 외국인에게 사업을 허용한 거류 지역이었다. 2년간 일본에서 업무를 익힌 토머스 행콕은 1888년 영국으로 돌아가 런던 중심가에 ‘베델 앤드 니콜’을 세웠다. 니콜이 고베에서 ‘니콜 앤드 컴퍼니’를 통해 일본산 도자기 등을 보내면 토머스 행콕은 런던에서 ‘베델 앤드 니콜’을 통해 이를 되팔았다.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들의 첫 번째 회사가 ‘니콜 앤드 베델’이 아닌 ‘니콜 앤드 컴퍼니’였다는 점이다. 회사 이름에 동업자인 토머스 행콕이 빠졌다는 것은 사업 초기 그의 기여도가 크지 않았음을 뜻한다. 아마도 니콜이 이 회사 설립 자금 대부분을 대고 토머스 행콕은 시쳇말로 ‘바지사장’ 역을 맡은 것 같다.그렇다면 ‘전주’(錢主)인 니콜은 왜 ‘사업 문외한’인 토머스 행콕과 손을 잡았을까. 두 사람의 동업은 추후 베델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지금껏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신문은 베델 취재 과정에서 이들이 동서지간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니콜의 후손을 통해 토머스 행콕의 아내 마사 제인 홀름(1848~?)과 니콜의 아내 세라 홀름(1953~1898)이 자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간 ‘P.A. 니콜’로만 알려졌던 그의 정확한 이름도 찾아냈다. 니콜은 동서인 토머스 행콕이 회계와 영업 일을 해 사업의 기본을 갖췄고 가족이어서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던 것 같다. 1909년 주한 영국총영사 아서 하이드 레이는 조선에서의 베델의 경력을 본국에 소개하기 위한 보고서에 니콜을 베델의 아저씨(uncle)라고 썼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 표현을 후견인이나 보호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서울신문 취재로 이모부를 뜻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59)은 “주로 사무실에서만 일하던 증조 할아버지(토머스 행콕)가 왜 갑자기 안정적인 회사 생활을 접고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후손들도 늘 궁금하게 여겼다”며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동업 관계가 그러하듯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화가 생겼다. 결국 토머스 행콕은 런던에 ‘베델 앤드 니콜’을 설립한 지 3년 만인 1891년 이 회사 이름에서 ‘니콜’을 지우고 ‘베델 앤드 컴퍼니’로 개명했다. 니콜 역시 토머스 행콕과의 교류를 끊고 고베에서 혼자 ‘니콜 앤드 컴퍼니’를 운영했다. 동업이 끝난 것이다. 이후 토머스 행콕은 5년간 혼자 사업을 하다가 1896년 극동 무역을 하는 세 회사와 통합해 ‘프리스트·마리안스·베델·모스 앤드 컴퍼니’라는 긴 이름의 회사를 새로 차렸다. 두 번째 동업이었다. 대외적으로 하나의 회사지만 영업은 기존 네 곳 대표가 독립적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를 묶어 구매력을 높이고 운송·물류비도 줄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 네 개의 무역상이 한데 모인 이 회사 역시 운영이 원활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 이해관계가 부딪혀 ‘팀워크’가 깨졌다. 결국 이 회사는 통합 3년 만인 1899년 총회를 열어 기존 이사진을 교체했는데, 토머스 행콕도 이때 손을 뗐다. 두 번째 동업도 막을 내렸다. 이 회사는 지금도 ‘프리스트·마리안스 앤드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남동부 항구도시 켄트에 터를 잡고 영업 중이다.베델은 아버지 토머스 행콕이 런던에 ‘베델 앤드 니콜’을 만든 1888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와 이모부(니콜)가 함께 시작한 무역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모자란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당시 베델은 16살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다.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독립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혼자서 일을 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는 고베에 있던 ‘니콜 앤드 컴퍼니’에 들어가 이모부에게 실무를 배웠다.토머스 행콕은 1896년 네 무역상을 통합한 회사를 차린 뒤로 줄곧 일본 지점을 맡아 일했다. 하지만 1899년 이들과의 동업이 깨지자 자신의 일본 사업을 도울 새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는 장남 베델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와서 무역 일을 배운 지 10년이 넘어 자금과 능력은 충분했다. 아버지의 동업 실패가 베델에게 창업 기회를 준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같은 해 동생 허버트(1875~1939)와 런던에 무역회사 ‘베델 브러더스’를 세웠다. 이때 토머스 행콕이 50살, 베델이 27살이었다. ‘베델 브러더스’는 베델 형제 무역 사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베델과 허버트는 일본에서 활동했고 런던 사무소는 주로 막내동생 아서 퍼시(1877~1947)가 지켰다. 세 아들이 협력해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본 토머스 행콕은 이들을 믿고 일선에서 물러나 부유한 은퇴 생활을 즐겼다. 이후 ‘베델 브러더스’는 처음 문을 연 런던 쇼디치 폴 스트리트 87·89번지에서 100년 가까이 영업하다가 1991년 영국 중부 리즈로 이전했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최근 경영이 어려워져 폐업했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베델)의 유산이 이렇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베델 회사가 있던 건물은 지어진 지 100년이 넘어 ‘리스티드 빌딩’(등록문화재)에 올라 있다. 바로 옆 사무실인 91번지에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영국인 피터 설링스는 “(베델 브러더스가 있던) 쇼디치 지역은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젊은 시절 극단을 운영했던 곳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에 베델과 같은 숨은 영웅의 이야기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감탄했다. 런던·브리스톨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英항구도시 브리스톨서 유년 보내며 전문대 수준의 교육 받아

    1살 많은 누나와 두 명의 남동생과 자라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 붙인 ‘땅콩주택’ 지금도 英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 베델 할아버지는 바지선 운항하던 선주 어려서부터 일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아 사립학교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서 공부 지역 상인조합 ‘기술인력 양성’ 위해 운영 1904년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삶을 정리한 최초의 기록인 신보 1909년 5월 7·8일자 ‘배설공(公)의 약전(略傳)’ 기사와 베델 연구 1인자로 불리는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의 자료, 수전 제인 블랙(62)과 토머스 오언 베델(59) 등 베델 후손들의 증언, 서울신문 취재 결과 등을 모아 연대기순으로 소개한다.베델은 1872년 11월 3일 영국 남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태어났다. 1873년에 출간된 ‘1872년 브리스톨 인명록’에는 그의 출생지가 ‘Egerton villa, Egerton Road, Horfield’로 돼 있다. 우리 식으로 읽으면 ‘호필드 지역 에저턴 거리에 있는 에저턴 빌라’다. 호필드는 브리스톨 중심에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150년 전 주소를 지금 영국 행정구역에 맞춰 분석해 보니 ‘에저턴 로드’는 현재 비숍스톤에 편입됐고, ‘에저턴 빌라’는 주소명에서 빠져 있다. 서울신문은 베델 후손들의 조언을 토대로 브리스톨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찾아가 150년 가까운 주소 변경 과정을 추적해 그가 태어난 곳이 현재 ‘비숍스톤 에저턴 거리 54번지’임을 확인했다. 지금 주소로는 ‘54 Egerton Road, Bishopston, Bristol’이다.1860년대 지어진 베델의 생가는 단독주택 두 채를 붙여서 지은 ‘세미디태치트 하우스’로, 우리로 따지면 ‘땅콩주택’에 해당한다. 한 집은 2층으로 돼 있고 방 세 개에 거실 두 개 정도를 갖췄다. 지금도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형태인데, 경제적으로 중산층 가족이 산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만난 한 마을 주민은 “(베델 생가를 포함한) 에저턴 거리의 주택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60년대에 빠르게 늘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말했다. 베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 베델은 브리스톨 인근 소도시 클리브덴에서 바지선(단거리를 다니는 화물 운반선)을 운항하던 선주였다. 그는 아들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이 8살 때인 1857년 사망했다. 토머스 행콕은 21살이던 1870년 영국 성공회 전도사인 존 홀름의 딸 마사 제인 홀름(1848~?)과 결혼했는데, 당시 그는 맥주회사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토머스 행콕은 브리스톨에 살면서 네 차례 주소지를 옮겼지만 비숍스톤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다니던 회사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등에는 ‘베델이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 교수는 “19세기 유럽 내 유대인들의 생활상을 감안할 때 그의 할아버지가 바지선 선주였다거나 외할아버지가 기독교 전도사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도 “할아버지(베델)는 일본 고베의 기독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고,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의 삶과 전혀 다르다”고 덧붙였다. 토머스 행콕은 슬하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째가 장녀 미니(1871~?), 둘째가 장남 어니스트 토머스(베델), 셋째가 차남 허버트(1875~1939), 넷째가 삼남 아서 퍼시(1877~1947)였다. ‘배설공의 약전’은 베델에게 두 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고 했고, 지금도 국내 자료 상당수에는 베델이 ‘3남 2녀 가운데 장남’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토머스 행콕의 유언장이나 베델 후손의 증언을 살펴볼 때 그에게 여자 형제는 미니 한 명 뿐이었다. 토머스 행콕이 1870년 결혼 당시 작성한 신고서에는 그의 직업이 ‘회계원’으로 기재돼 있다. 2년 뒤 베델이 태어났을 때 제출한 출생신고서에는 ‘맥주회사 서기’로, 셋째 허버트가 태어났을 때는 ‘상업 서기’로, 넷째 아서 퍼시 때는 다시 ‘회계원’으로 쓰여 있다. 그가 맥주회사에서 금전 관련 업무를 도맡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1881년 영국에서 실시된 인구 센서스와 베델이 학교에 들어간 1885년 9월 작성된 생활기록부에는 토머스 행콕의 직업이 ‘맥주회사 지방순회 영업사원’으로 바뀌어 있다. 이때는 사무실에서 회계 일만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변 지역을 돌며 펍(영국식 맥줏집)을 관리했던 것 같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마지못해 사업에 나섰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배델의 할아버지인 토머스는 선박 소유주로 일종의 자본가였다. 최소한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신문이 찾아낸 베델 생가를 보더라도 그가 어린 나이에 장사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가정 형편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은 “19세기 영국에서 (베델처럼) 사립학교 교육을 받거나 사업차 일본에 건너갈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면서 “할아버지(베델)는 일본에 가서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을 즐겼다고 들었다.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베델은 시내 중심부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1856년 ‘브리스톨 무역·광산학교’로 문을 열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 실업학교였다. 하지만 1885년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의 길드(동업조합)였던 ‘벤처상업협회’가 이 학교를 인수해 시설과 교육 과정을 고치고 교명도 바꿨다. 약전에는 베델이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런던으로 옮긴 뒤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에 사는 동안 브리스톨을 떠나지 않았다. 벤처상업협회는 브리스톨 지역 상인들을 대표하는 이익단체로, 1551년 영국왕 에드워드 6세에게 특허를 받아 법인 조직이 됐다. 영국은 17세기부터 글로벌 무역과 상업을 거머쥐며 ‘대영제국’으로 번영했는데, 벤처상업협회도 나날이 커지는 국력에 편승해 장사일로 큰 자본을 모았다. 이 길드는 유럽 각지 명문 대학들을 돌며 우수 시설과 커리큘럼을 벤치마킹한 뒤 브리스톨 시청 맞은편에 새 건물을 지었다. 당시 베델이 살던 지역에서 유일한 학교였다. 1885년 9월 신학기부터 신청사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베델은 이때 입학했다. 이 학교는 현장 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지금의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다. 시 교육위원회가 작성한 학업 성취도 평가 자료를 보면 베델은 1885~1886년 학기 시험에서 수학 등 세 과목을 통과한 것으로 나온다. 이 학교는 베델이 졸업한 지 6년 뒤인 1894년 ‘머천트 벤처러스 공업대학’으로 또 한 번 명칭을 바꿨다. 이후 브리스톨대학과 서잉글랜드대학, 시티오브브리스톨 칼리지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브리스톨대학은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지역 최고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베델이 다녔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 건물은 지금도 브리스톨시 청사 옆에 남아있다. 지금은 내부를 리모델링해 주거 시설과 오피스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글 사진 런던·브리스톨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대교체 & 황금세대’ 러시아월드컵 4강전을 꿰뚫는 키워드

    ‘세대교체 & 황금세대’ 러시아월드컵 4강전을 꿰뚫는 키워드

    11일 새벽 시작하는 러시아월드컵 4강전을 꿰뚫는 키워드는 ‘세대 교체’다. 준결승에 오른 4개국 모두 4년 전과 비교해 상당한 변화를 추구한 것이 이번 대회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 꼽혀서다.●잉글랜드, 단 2명만 두 대회 연속 출전 실제로 4개국 출전 엔트리의 91명(크로아티아만 22명) 가운데 4년 전 브라질 대회를 경험한 선수는 34명에 불과하다. 슈퍼스타가 아니라 슈퍼스타 후보들이 포진한 ‘황금세대’가 각국의 4강 진출을 이끈 것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나란히 평균연령 26세로 나이지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팀이며, 벨기에도 27.6세(13위), 크로아티아가 27.9세(15위)로 비교적 젊은 축에 든다. 1998년 자국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의 준결승 진출은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프랑스의 상대인 벨기에는 젊은 선수들을 앞세워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32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는 28년 만이고 크로아티아 역시 20년 전 프랑스 대회 3위에 오른 뒤 처음으로 결승 진출을 겨냥한다.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팀은 잉글랜드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거느린 잉글랜드는 그동안 앨런 시어러, 마이클 오언, 웨인 루니 등 특급 스타들을 꾸준히 배출했지만, 메이저 대회에선 굵직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종가의 자존심을 구겼다.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1무2패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그러나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은퇴한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등을 대체하는 자원이 나오면서 브라질월드컵 때의 선수 가운데 대니 웰벡과 라힘 스털링 둘만 남았다. 또 이번 대회에 나선 23명 가운데 무려 19명이 1990년대생이다. 이들은 경험 부족이 약점이 될 것이란 예측을 뒤집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팀 컬러도 달라졌다. ‘킥 앤 러시’로 대표되는 기존의 힘과 스피드 위주의 축구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짧은 패스로 빠르게 전진하는 축구를 구사한다.●프랑스, 10년 걸려 ‘포스트 지단’ 체제 프랑스도 세대교체를 통해 패기와 스피드를 얻었다. 프랑스는 준우승을 거둔 독일월드컵을 끝으로 지네딘 지단이 대표팀에서 떠난 뒤 12년 동안 4강 진출을 하지 못했다. 지단 이후 중원을 장악할 선수가 없었고, 세대교체가 10년 가까이 이어진 탓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브라질 대회를 뛰었던 선수 23명 가운데 6명만 살아남았고, 17명이 새 얼굴로 채워졌다. 특히 제2의 앙리로 불리는 만 19세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의 활약이 반갑다. 음바페 외에도 폴 포그바, 은골로 캉테 등이 향후 프랑스 축구의 10년을 책임질 선수들로 주목된다.●물갈이 완성 벨기에, 신구조화 크로아티아 벨기에는 브라질 대회 이전에 세대교체를 완성한 팀이다. 15명이 브라질에 이어 러시아까지 입성해 4년 전 대표팀 명단과 비슷한 골격을 갖고 있다. 현재 황금세대에 속하는 선수들의 기량과 팀워크가 절정에 이르러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의 꿈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22명 가운데 절반인 11명만 두 대회 연속 출전했다. 젊은 선수들을 ‘필드 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루카 모드리치(33)를 선봉으로 마리오 만주키치(32), 이반 라키티치(29) 등 베테랑 스타들이 역시 조국에 첫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각오로 이끌고 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6골폭풍 해리 케인, 32년 만의 득점왕?

    6골폭풍 해리 케인, 32년 만의 득점왕?

    해리 케인(25·토트넘)이 러시아월드컵 득점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케인이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 부트를 차지한다면 ‘축구 종가’ 잉글랜드 선수로는 1986년 멕시코대회 이후 무려 32년 만이다. 케인의 득점포를 앞세워 잉글랜드도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8강) 이상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케인은 4일 모스크바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롬비아와의 대회 16강전에서 0-0으로 맞선 후반 12분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선제골을 넣었다. 조별리그 G조 2차전 파나마와의 경기에서 터트린 해트트릭을 포함해 조별리그 5골에 이어 16강에서도 한 골을 추가한 케인은 모두 6골을 기록하며 득점 부문 선두를 굳혔다. 공동 2위인 로멜루 루카쿠(벨기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4골)와는 2골 차다. 케인은 사실상 득점왕 레이스를 독주하고 있다. 강력한 득점상 후보로 꼽혔던 호날두가 16강에서 일찌감치 짐을 쌌고 경쟁자로는 4골의 루카쿠와 3골을 넣은 프랑스의 신성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우루과이의 베테랑 골잡이 에딘손 카바니 등인데 벨기에의 루카쿠와 아자르는 8강에서 브라질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고 카바니는 포르투갈과 16강 경기에서 왼쪽 종아리를 다쳐 프랑스와의 8강전 출장이 불투명하다. 케인은 8강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골문을 노린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러시아-크로아티아 승자와 4강 대결을 벌인다. 상대적으로 험난한 대진인 우루과이-프랑스, 브라질-벨기에의 득점왕 후보들보다 유리하다. 케인은 지금까지 월드컵 득점왕의 상징적인 숫자인 6골도 이미 채웠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호나우두(브라질)가 8골로 득점상을 차지한 걸 제외하고는 2006년 독일대회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 6골, 2010년 남아공대회 토마스 뮐러(독일) 5골, 2014년 브라질대회 하메스 로드리게스(콜롬비아) 6골로 각각 최고 득점자의 영예를 안았다. 케인의 활약으로 잉글랜드는 지난 1986년 멕시코월드컵의 게리 리네커(6골) 이후 32년 만에 득점왕 탄생을 꿈꾸게 됐다. 잉글랜드는 리네커가 은퇴한 뒤 앨런 시어러, 마이클 오언, 웨인 루니 등의 스타를 배출했지만 이들은 유독 월드컵 무대에서 부진했다. 공격수들의 부진은 잉글랜드의 조기 탈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잉글랜드는 케인의 득점포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마을 쓰레기 줍던 강아지 8년 만에 공로상 수상

    마을 쓰레기 줍던 강아지 8년 만에 공로상 수상

    10년 가까이 마을 쓰레기를 주워온 개가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환경친화적인 개 ‘데이지(Daisy)’가 특별한 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잉글랜드 헤리퍼드우스터주 우스터시에 사는 9살 코카푸(코커스패니얼과 푸들의 믹스견) 데이지는 주인 주디 오언(Judy Owen)과 함께 매일 하루 두 번 특별한 산책을 한다. 데이지는 산책 중 운하의 통로뿐 아니라 울타리, 덤불까지 샅샅이 탐색하며 숨겨져 있던 쓰레기를 줍는다. 맥주캔부터 커피컵, 플라스틱 병까지 데이지는 마을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집으로 물고 돌아오면 오언은 데이지가 집 정원에 떨어트린 쓰레기를 데이지 몰래 재활용함에 넣는다. 오언은 “데이지는 쓰레기에 매우 애착을 갖는다“며 ”그것이 일종의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맥주 캔의 냄새를 맡고 다가가 물어온 이후로 강아지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데이지가 지난 8년간 마을에서 주운 쓰레기는 거의 5천 개에 달한다. 그리고 마침내 데이지는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시장의 특별한 상을 받았다. 오언은 ”데이지는 지역 환경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는 시장의 공로상을 받았으며, 이 도시에서 이런 포상을 받은 최초의 동물“이라고 기뻐했다.자바 리아즈(Jabba Riaz) 시장은 ”나는 이 상이 쓰레기를 버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기를 바라며,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일을 하고 그것을 줍도록 격려할 것“이라며 ”아마 데이지는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을 돕기 위한 새로운 세대의 동물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노트펫(notepet.co.kr)
  • ‘19세 앙리’,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19세 앙리’,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펠레 뒤 60년 만에 10대 멀티골 폭발적 속도에 늙은 아르헨 좌절아르헨티나와 러시아월드컵 16강전을 치르기 하루 전 취재진 앞에 선 프랑스 대표팀의 주장 위고 로리스(32)에게 리오넬 메시(31·아르헨티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당대 최고의 선수를 어떻게 봉쇄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상대팀 선수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져 살짝 부아가 치밀었을 수도 있지만 로리스는 차분하게 “메시는 아주 특별한 선수”라고 대답했다. 그리곤 “하지만 우리에겐 킬리안 음바페가 있다. 그는 남다른 잠재력을 지녔다. 아주 빠르고 폭발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음바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16강전에서 메시가 버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4-3 승리에 앞장섰다. 전반 11분 역습 상황에 홀로 50m가량 공을 몰고 가서 페널티킥을 얻어내 팀 동료인 앙투안 그리에즈만(27)이 선제골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다. 2-2로 팽팽하던 후반 19분과 23분에는 연달아 골을 폭발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4골 중 3골이 음바페가 관여한 것이었다. 음바페는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던 1998년에 태어났다. 12월생으로 아직 만 20세가 안 된 10대 선수다. 월드컵 본선 한 경기에서 10대 선수가 멀티골을 넣은 것은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78)가 1958년 대회 때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 기록한 이후 60년 만이다. 당시 펠레는 한 대회에서 무려 6골을 기록했다. 월드컵 단일 대회에서 두 골 이상 넣은 10대 선수로 범위를 넓이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와 16강전에서 한 골씩 기록한 마이클 오언(39·잉글랜드)이 마지막이었다. 음바페는 벌써 3골째를 기록하고 있다. 음바페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카메룬 출신으로서 지역축구 AS 봉디의 지도자로 활동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겨 왔다. 축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핸드볼 선수 출신인 어머니에게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음바페는 곧장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1년엔 명문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인 클레르퐁텐에 입단했다. 2013년에는 프랑스 명문 클럽인 AS 모나코에 입단한 뒤 2015년 12월 2일 프랑스 리그앙 SM캉전을 통해 데뷔했다. 16세 347일의 나이로 프로리그 경기를 치르며 티에리 앙리(41)가 가지고 있던 클럽 최연소 데뷔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각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다며 우려하기도 했지만 음바페는 실력으로 잡음을 제압했다. 데뷔한 지 2달이 조금 넘은 2016년 2월 21일 리그앙 트루아전에서 데뷔 골을 터트렸다. 당시 17세 62일의 나이로 앙리의 팀 내 최연소 골 기록까지 깨버렸다. 심지어 2016~17시즌에는 리그에서 15골을 몰아 넣으며 ‘제2의 앙리’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해에는 1억 8000만 유로(약 2300억원)에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은 뒤 리그에서 13골을 터트렸다. 음바페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아르헨티나의 메시와 포옹을 나눴다. 전 세계 언론에선 침울해 있는 메시의 표정과 신성으로 떠오른 음바페의 표정을 대조하며 축구의 세대교체를 상징한다고 대서특필했다. 1998년에 앙리가 프랑스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듯 ‘제2의 앙리’도 20년 만에 영광을 재현해 낼 수 있을지 프랑스 국민의 기대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프랑스와 우루과이의 8강전은 오는 6일 열린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막내 이승우가 에이스의 본색 ‘10번’ 물려받은 이유

    막내 이승우가 에이스의 본색 ‘10번’ 물려받은 이유

    “10번을 받았다고 경기장에서의 역할이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팀 막내 이승우(20·엘라스 베로나)가 핵심 공격수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 10번을 달게 된 마음가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23명의 최종 명단을 제출하면서 등번호도 배정했다. FIFA는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의 등번호를 1번부터 23번까지 할당하도록 하고 골키퍼 가운데 한 명은 반드시 1번을 달도록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이승우의 10번이다. 생애 첫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자마자 공격수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을 달게 됐기 때문이다.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 미셸 플라티니, 지네딘 지단(이상 프랑스), 로타어 마테우스(독일),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이상 아르헨티나)도 모두 이 번호를 달았다. 또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삼바 군단’ 브라질의 공격 열쇠 호나우지뉴와 잉글랜드의 첨병 마이클 오언,‘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도 10번을 등에 새겼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을 터뜨린 박창선,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이상윤, 1994년 미국월드컵 고정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용수가 모두 이 번호였다. ‘축구 천재’ 박주영(FC서울)이 2006년 독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3회 연속 10번을 등에 새기고 뛰었다.그런데 어떻게 이승우가 10번을 받게 됐을까? 소속팀 베로나에서도 21번을 달았고 지난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 10번을 달고 뛰었지만 처음 발탁된 새내기가 10번을 달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코칭 스태프가 선수들의 희망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표팀 예비 엔트리 에 포함됐던 이근호(강원)가 부상 여파로 낙마하면서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이근호의 등번호였던 11번을 선택했다. 황희찬은 유럽 원정 평가전 때 달았던 10번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 달았던 11번을 골랐다. A매치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손흥민(토트넘)의 선제 결승 골을 배달했던 이승우는 코치진의 조정 회의를 거쳐 결국 10번을 물려받게 됐다. 대표팀 관계자는 “대표팀에 많이 들어왔던 선수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하지만 100% 그렇게는 할 수 없어서 기존 멤버들 외에 신참 선수들은 남는 등번호 중에서 코치진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우는 4일(현지시간) 사전 캠프가 차려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교 레오강의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진행된 첫날 훈련에 앞서 “평소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경기장 안에서 보이겠다. 대표팀에서 중요한 10번을 받게 돼 자신감을 느끼게 된 건 사실이다. 자신감 있게 형들과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손흥민(토트넘)은 예전대로 7번,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16번이 배정됐다. 이재성(전북)은 17번을 택했다. 또 다른 신인 문선민(인천)은 18번을 받았고, 조커 김신욱(전북)은 9번을 달고 뛴다. 한편 황희찬은 오스트리아 리그 소속 현역 선수로는 유일하게 러시아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란 또다른 영예를 안게 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세 남자의 비극, 독백으로 풀다

    세 남자의 비극, 독백으로 풀다

    온라인 살인게임 ‘킬롤로지’ 속 캐릭터처럼 잔혹하게 살해된 16세 소년 데이비(이주승, 장률), 아들을 잃고 복수에 나선 아버지 알란(이석준, 김수현), 게임 개발자 폴(김성대, 이율). 영국 극작가 게리 오언의 최신작을 초연한 연극 ‘킬롤로지’(Killology)는 세 남자의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110분간 풀어헤친다.무대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단 한 번도 퇴장하지 않고 각자 언어의 성을 쌓아 올린다. 거의 주고받는 대사 없이 각자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극은 데이비의 죽음을 고리로 연결된 1인극 세 편을 동시에 보는 느낌을 선사한다. 객석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안이함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데이비, 알란, 폴의 독백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극은 관객들이 조각조각 난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다 어느 순간 충격적 실체를 깨닫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알란과 이혼한 후 먹고살기 위해 분투하는 엄마는 데이비에게 무심하다. 폭력이 일상화된 변두리 동네에서 데이비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시들어 간다. 알란이 생일날 선물한 강아지 ‘메이시’는 데이비에게 애정과 온기를 주는 유일한 친구였지만 데이비의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데이비는 동네 소녀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 밤, 살인게임에 빠진 또래들에게 고문당해 살해된다. 데이비의 죽음은 개인적 불운일까, 비극의 원인은 과연 게임일까. 킬롤로지를 개발해 억만장자가 된 폴은 살인도구를 들고 저택에 침입한 알란에게 악을 쓰며 항변한다. “이건 게임입니다. 게임에서 마법을 쓰면 돼지가 날아다니죠.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바보천치도 아니고.” 아들의 죽음이 폭력적인 게임 때문이라고 믿는 알란과 범죄와 게임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믿던 폴, 두 사람은 각자의 말을 쏟아내며 각자의 신념이 깨지는 걸 자각한다. 이 대목부터 이야기는 망가진 세계의 근원을 향해 달려나간다. 폴을 인정하지 않고 본인의 세계관만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폴이 살인게임을 만든 건 부친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다. 데이비가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집을 떠난 무책임한 알란. 아들이 절실하게 애정을 갈구할 때 부재했던 그는 뒤늦게 목놓아 운다. 연극 ‘킬롤로지’는 표면적으론 게임의 폭력성과 모방범죄라는 동시대 사회상을 다루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아버지(부모)의 존재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이 극을 쓰게 된 건 고향인 영국 브린제드에서 2년 동안 청소년 26명이 학교폭력과 소외로 자살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알란의 환상 속에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데이비는 희망을 대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 어디에도 작가가 심어 놓은 희망의 흔적은 없다. 이 극이 뿜어내는 리얼리티의 끝은 세 인물 중 어느 누구도 변호할 수 없는 폭력의 책임 문제와 팽팽하게 맞닿아 있다. 동네 또래 집단의 폭력으로 메이시가 죽던 그 밤, 아무도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는 데이비의 마지막 그 밤, 누군가 무자비한 폭력을 멈추게 하고 소년의 손을 잡아 줬더라면…. 극은 부재했던 희망이 잉태하고 있던 비극적 결말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던 셈이다. 세 개의 테이블과 의자로만 만든 카페 같은 미니멀한 무대는 한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분리된 존재들을, 나란히 놓인 ‘세 개의 거울’은 비틀린 세계를 은유한다. 각자의 감정선을 유지하며 흡인력 있는 연기로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열연은 찬사가 아깝지 않다.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초연된 거친 텍스트를 ‘웰메이드 연극’으로 다듬어 낸 박선희의 연출력도 돋보인다. 오는 7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4만~5만 5000원. (02)766-6007.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영국 초연 현대극, 한국 관객 홀리다

    영국 초연 현대극, 한국 관객 홀리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후예를 꿈꾸는 30~40대 극작가들의 영국 현대극 세 편이 국내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불과 1~2년 전 영국에서 초연된 최신작들이지만 한국 연출가와 배우들의 맛깔난 연기와 연출이 더해지면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올해 영국 최고 공연예술상인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은 게리 오언(46)의 ‘킬롤로지’, 배우 겸 작가 롭 드러먼드(36)의 ‘피와 씨앗’, 세계적 흥행작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작가 사이먼 스티븐스(46)의 ‘하이젠버그’. 세 작품 모두 특유의 작가주의 시선과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돋보인다. 지난해 3월 영국 ‘셔먼 시어터’에서 초연됐던 ‘킬롤로지’(Killology)는 동명의 온라인 살인 게임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소년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체제에 노출된 아이들의 현실과 이를 방조하는 사회 시스템을 고발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질문’이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전해진다는 평이다. 극은 소년 데이비(장율, 이주승), 아버지 알란(김수현, 이석준), 게임 제작자 폴(김승대, 이율)의 독백 만으로 전개되는 ‘1인극 같은 3인극’이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후 인터파크 예매율 1위를 지켰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컬렉티드 스토리즈’ 등으로 인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신선하게 풀어낸 박선희 연출가가 한국 초연 무대를 지휘했다. 오는 7월 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두산인문극장 레퍼토리인 ‘피와 씨앗’은 ‘장기이식’ 문제를 통해 생명윤리의 치명적인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극은 선(善)한 명분이면 기꺼이 희생해야 하는 게 맞는지, 옳다고 믿는 상식은 늘 옳은 것인지 등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제기한다. 지난해 연극 ‘나는 살인자입니다’를 통해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전인철 연출가의 개성 넘치는 재해석과 회화풍 무대가 인상적이다. 12살 소녀 ‘어텀’(최성은), 어텀의 아빠인 장기 복역수 ‘아이작’(이기현), 보호관찰관 ‘버트’(안병식), 할머니 ‘소피아’(강명주, 우미화), 이모 ‘바이올렛’(박지아) 등이 열연한다. 오는 6월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중견 연기자 정동환과 연기파 배우 방진의,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연출가 김민정이 합작한 ‘하이젠버그’는 짜릿하고 기발난 2인극이다. 런던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을 하지 못한 75세의 모태솔로 알렉스와 40대의 볼 장 다 본 거침없는 미혼모 조지가 서로 사랑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어른들의 성장담이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생기발랄한 방진의와 어눌한 정동환의 따뜻한 감성, 그리고 얽히고설킨 예측 불허의 전개를 통해 삶을 반추한다. 두 배우의 흡입력 있는 연기력이 중년층의 입소문을 타면서 40~60대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2015년 미국에서 ‘올해 최고의 연극’으로 선정됐으며, 지난 4일 네이버 전막 생중계에 1만 5819명이 동시 접속해 호평했다. 아시아를 통틀어 한국이 초연 무대다. 오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죽기 전 미녀와 춤을” 92세 할아버지 소원 들어준 여대생들

    “죽기 전 미녀와 춤을” 92세 할아버지 소원 들어준 여대생들

    임종을 앞둔 한 할아버지가 마음씨 좋은 여대생들 덕분에 마지막 소원을 이뤘다. 그 소원은 죽기 전 아름다운 여성과 춤을 추는 것이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州) 서던미시시피대학에 있는 여학생사교클럽 ‘파이 뮤’의 회관에서는 특별한 무도회가 열렸다. 이날 무도회의 주인공은 여대생들이 아닌 폴 소니어라는 이름의 92세 할아버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진주만 공격의 생존자이기도 한 소니어 할아버지는 서던케어 호스피스서비스라는 이름의 지역 호스피스병원에서 지내며 임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파이 뮤’ 클럽 회원들이 이번 무도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소이어 할아버지의 소원은 얼마 전 해당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클럽 회원 제시카 모로 덕분에 알려졌다. 그녀는 “소니어 할아버지가 날 볼 때마다 로퍼스(근처 술집)에 갈래? 지터벅과 왈츠를 가르쳐줄게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처음에 소니어 할아버지의 말을 짓궂은 농담으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력이 쇠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어 춤추는 것은 물론 술집에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할아버지로부터 “내 마지막 소원이 아름다운 여성과 춤을 추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농담인 줄로만 알았던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파이 뮤’ 회원들에게 할아버지의 사연을 공유하고 함께 소원을 이뤄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구급차를 불러 소니어 할아버지를 파이 뮤 회관으로 초청했다. 소니어 할아버지는 비록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지만 여대생들에게 준비된 꽃을 한 송이씩 나눠주고 음악이 나오면 함께 손을 잡는 것으로 춤을 대신했다. 이날 소니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번 무도회는 소니어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가족들도 기쁘게 했다. 손녀 사만다 오언은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안에서만 지냈지만 이번 기회에 밖으로 나올 수 있어 학생들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파이 뮤/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작년 244억 받아… 3년 연속 ‘연봉킹’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작년 244억 받아… 3년 연속 ‘연봉킹’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총 244억원의 보수를 받아 3년 연속 ‘연봉킹’이 됐다. 2일 각 사 2017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 회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는 총 243억 8000만원으로 전문경영인과 최대주주일가(오너) 출신 경영인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권 회장은 급여로 18억 4000만원, 상여로 77억 1900만원을 받았고 일회성 특별상여를 포함한 ‘기타 근로소득 명목’으로만 148억 2100만원을 수령했다. 급여는 전년보다 다소 줄었지만 상여가 46억원대에서 77억원대로 뛰었고 특히 기타 근로소득은 1억 1900만원에서 124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신종균 부회장은 84억 2700만원, 윤부근 부회장은 76억 6900만원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보수로 8억 7100만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되기 이전인 지난해 1~2월 직무 수행에 대해 보수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오너 일가 출신 경영자 중에서는 지난해 별세한 이수영 OCI그룹 회장이 193억 5700만원으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현재 구속 상태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상장·비상장 계열사를 합쳐 152억 3000만원을 받아 오너 경영인 중 2위를 차지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도 지난해 109억 1924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지난해 오너 경영인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80억 900만원의 급여를 받아 순위가 밀렸다. 금융권에서는 안민수 전 삼성화재 사장이 34억 100만원으로 1위 자리에 올랐다. 김창수 전 삼성생명 사장 31억 5800만원,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30억 7700만원 등으로 삼성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고액 연봉을 자랑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17억 8200만원,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12억 4200만원,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11억 4000만원을 받았다. 게임업계에서는 오언 마호니 넥슨 대표가 7억 7200만엔(약 77억원)으로, 제약업계에서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38억 5900만원으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문화마당] 범죄소설가의 죽음과 잘 쓴 부고에 관하여/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범죄소설가의 죽음과 잘 쓴 부고에 관하여/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스코틀랜드 범죄소설 작가 필립 커가 62세를 일기로 지난 3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가는 데 어디 순서가 있겠냐만, 데뷔 후 30년이 넘도록 매해 두 권 이상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여전히 ‘쓰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라는 평가를 받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올해로 60세, 재작년 생애 첫 탐정소설 3부작을 완간하며 건재함을 과시한 스티븐 킹의 나이가 71세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확한 사망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범죄문학계 최고 거장 가운데 한 명(옵서버)으로 추앙받는 이언 랭킨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필립 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그가 쓴 베른하르트 귄터 시리즈는 믿을 만한 도덕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근사한 스토리와 치밀한 조사로 이루어진 비범한 작품이다.” 내가 필립 커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토요일 오후였다. 모처럼 햇살이 좋아서 사무실 대청소를 하던 중이었는데, 친하게 지내는 에이전트가 문자로 알려 줬다. 최근에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베른하르트 귄터’ 시리즈를 펴낸 걸 알기에 신경 써 준 듯하다. 책은 지난 1월에 나왔지만 게으름을 부리느라 늦게 발송한 탓에 작가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오자마자 서둘러 보낼 걸 후회가 들었다. 나는 청소를 그만두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영어권 국가의 독자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애도의 글을 찾아 읽었다. 그의 소설을 도맡아 출간해 온 쿼커스 북스의 편집자가 올린 트윗도 눈에 띄었다. 나도 귄터 시리즈의 한국어판 편집자로서 뭔가 쓰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에도 형식이 있나. 모르겠다. 지금껏 부고를 써 본 적이 없으니까. 이럴 때 내가 애용하는 방법은 잘 쓴 부고를 읽어 보는 것이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으면 잘 쓴 에세이를 읽으면 된다. 여행기를 잘 쓰고 싶으면 잘 쓴 여행기를 읽으면 된다. 한 권으로 어렵겠다 싶으면 여러 권 읽으면 된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읽지 않고 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계속 읽다 보면 그럭저럭 잘 쓰게 된다는 것이 내가 터득한 왕도다. 그래서 ‘함께 가만한 당신’(마음산책)을 펼쳤다. 스물네 살에 1인 출판사를 창업해 65년 뒤 영국 독립출판의 지조라고 불린 피터 오언의 부고가 눈에 띈다. 그는 (1)빼어난 감식안으로 까다롭게 작품을 고르고 (2)웬만해선 절판시키지 않기로 유명했으며 (3)비아냥거림을 들을지언정 동성애자 인권과 여성, 마리화나 같은 사회적 이슈가 담긴 도서를 선도적으로 출간함으로써 (4)도리스 레싱으로부터 “그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책들을 출판해 줬고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무엇보다 “늘 어려운 형편에도 직원들 급여는 상대적으로 후했고 자신의 월급은 아주 작았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문득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부고를 어떻게든 멋지게 써서 한 권이라도 더 팔아 보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든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도록 급여를 후하게 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뭐야, 이거 여우에게 홀린 기분인데. 잘 쓴 부고란 이런 거구나.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조망하게 만드는. 그런 부고를 쓸 수 있을 만큼 더 열심히 읽고 나서 필립 커에 대해 써야겠다. 아쉽지만 이렇게 다짐하고 오늘은 인사만 하는 걸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끝내… 불운에 운 ‘스키 여제’

    끝내… 불운에 운 ‘스키 여제’

    8년 만의 올림픽 金 도전 좌절 22일 오후 눈발이 거세게 날리는 강원 정선알파인스키센터. 복합(활강+회전) 경기 중 회전 마지막 22번째 주자로 스타트라인에 선 ‘스키 여제’ 린지 본(34·미국)도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 도전이어서인지 또렷이 긴장한 표정이었다. 깊은 심호흡을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이어 힘찬 출발과 함께 빠르게 기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다. 기문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순간 잠깐 서 있다가 천천히 슬로프를 내려오며 손을 흔들었다. 이어 동료와 뜨겁게 포옹했다. 스키 여제의 안타까운 생애 마지막 올림픽 레이스였다.본이 또 불운에 울었다. 지구촌 시선이 쏠린 터에 회전을 완주하지 못했다. 앞서 오전 활강에서 1분39초37로 결승선을 끊어 출전자 중 가장 빨랐다. 금메달이 손에 잡히는 듯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 직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전 불운을 평창에서도 비끼지 못했다. 그나마 전날 활강에서 동메달을 따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길 만했다.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여자 최다승(81승)에 빛나는 본이 2006·2010·2018년 세 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거둔 메달은 고작 금 1개와 동 2개다. 본은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회전 경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아는데도 몸이 안 따라 줬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아쉬워했다. 미셸 지생(25·스위스)이 합계 2분20초90으로 ‘깜짝 금메달’을 안았다. ‘스키 요정’ 미케일라 시프린(23·미국)이 2분21초87로 은메달을 땄다. 동메달은 2분22초34를 찍은 웬디 홀드네르(25·스위스)에게 돌아갔다. 시프린은 “두 개의 메달은 황홀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앞선 활강 경기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연연하지 않았다”며 “페이스를 조절하며 경기에 집중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본과 시프린의 대결은 ‘평창 스타워스’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림픽 육상 4관왕(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 빛나는 제시 오언스와 칼 루이스가 한 팀에서 뛰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나 대결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날씨 시샘으로 일정이 꼬이면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은 시프린이 결국 활강과 슈퍼대회전을 포기했다. 당초 세 차례 대결에서 복합 경기 단판 승부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없었다. ‘세기의 대결’엔 구름 관중이 몰렸다. 팬들은 둘로 갈려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했다. 애비 셀바우세크(18·여·미국)는 “둘이 공정한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며 “본이 지난 21일 활강 경기에서 메달을 땄는데 오늘도 그가 우승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급 카메라를 준비했다는 그는 “본이 부상을 털고 재기한 만큼 마지막 무대의 감동을 간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휴가를 내고 한국을 찾았다는 마크 로웬(54·미국)은 “옛 여왕과 새 여왕의 싸움이 기대된다”며 “본이 오늘은 이길 것 같다. 누가 이기든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시프린을 응원한다는 앤드루 맥기(35·미국)는 “그의 패기와 공격적인 레이스가 우승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정선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KBS 93일째 파업… 거리로 나온 아나운서

    KBS 93일째 파업… 거리로 나온 아나운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의 파업 93일차인 5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오언종 아나운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KBS 비리 이사 해임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KBS 노조는 비리 이사들이 해임될 때까지 24시간 무기한 ‘릴레이 발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 기수로 데뷔하자마자 자선대회 2위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 기수로 데뷔하자마자 자선대회 2위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원더보이’로 통했던 마이클 오언(37)이 경마 기수로 데뷔하자마자 2위를 차지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오언은 지난 24일 버크셔주 애스콧 경마장에서 열린 자선 경마대회에 애마 ‘콜더 프린스’를 타고 출전해 당당히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부부로부터 상을 받은 오언은 “무사히 2위로 골인하고 많은 자선 모금에 성공하는 등 멋진 경험을 했다”이라며 “오늘 얻은 것이 굉장히 많다”고 기뻐했다. 그는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공격수로 최연소 프리미어리그 100골을 기록하고, 잉글랜드 대표로 89경기에서 40골을 넣고 2013년 은퇴했다. 일찍부터 경마에 애정을 보여 직접 말을 소유했고 말 훈련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경마에 거액을 베팅한 것이 알려져 물의를 빚자 “경마는 내게 축구를 빼고 유일한 취미라 공인이란 이유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축구선수일 때는 부상 위험 때문에 말을 타지 못했다. 지난 3월에야 처음으로 말 등에 올라봤다. 체중이 덜 나갈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이번 경주를 앞두고 오언은 3주 만에 9㎏ 넘게 살을 뺐고 여러 차례 연습 도중 말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오언은 기수 활동을 이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매우 좋아하고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신다면 얼마든지”라고 말해 자선 경주에 집중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내가 말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싶어 눈을 떼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브라질과 월드컵 8강전을 다시 치르는 그라운드에서 있는 것 같았다. 하루나 이틀 전화가 엄청 걸려올 것”이라며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란 곳을 모두 들러 배를 채워야 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네 아이의 아빠라 절대 다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보탰다. 코넬리우스 라이사트 BBC 승마 전문기자는 “빼어난 기량이었다. 말을 제 포지션에 갖다놓는 등 부분을 보며 전체를 읽었다. 몇달 만에 그렇게 말을 탔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이틀간 수소문 끝에…핸드백 주인 찾아준 노숙인

    [월드피플+] 이틀간 수소문 끝에…핸드백 주인 찾아준 노숙인

    영국 볼턴에 사는 20세 여성 데이지 오언스는 최근 친구들과 클럽에 다녀온 뒤 핸드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은 물론 얼마 전 새로 산 스마트폰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찾지 못할 것으로 체념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다. 핸드백은 물론 그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폴 폴더뱅크라는 이름의 한 남성 노숙인 덕분이었다. 그는 우연히 그녀의 핸드백을 주운 뒤 주인을 찾으려고 무려 이틀 동안 거리를 배회했다고 밝혔다. 그녀가 그에게 핸드백과 함께 전해준 편지에는 그가 어떻게 가방을 주웠고 이틀 만에 찾아올 수 있었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고, 그녀는 이를 촬영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3쪽 분량의 편지에는 그가 가방을 되돌려준 이유로 “현재 난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난 가방의 주인을 찾아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올바른 일이며 옳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그는 핸드백 안에 있던 신분증을 보고 그녀의 주소를 알아냈고 이틀에 걸쳐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길을 잃어 그녀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에게 직접 “데이지 오언스를 아느냐?”고 물으며 돌아다녔다. 다행히 그가 질문한 사람 중에는 그녀를 아는 사람이 있어 그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에게 연락해 무사히 핸드백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친절한 행동에 감동한 그녀는 이 사연을 페이스북에 공개하고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을 빌려주려고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달 18일 시작된 모금 이벤트의 처음 목표 금액은 500파운드(약 75만 원)였지만, 불과 며칠 만에 4배가 넘는 기부금이 모여 목표 금액을 2700파운드(약 406만 원)로 올렸는데 그마저도 넘어 현재 3330파운드(약 500만 원)를 넘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신의 축복이 있기를”, “세상엔 당신처럼 친절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집도 좋지만 그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데이지 오언스/페이스북(위), 고펀드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KBS PD 부장 15명 “국민 신뢰 언론으로” 보직 사퇴

    KBS PD 부장 15명 “국민 신뢰 언론으로” 보직 사퇴

    KBS 아나운서들 광화문서 유인물 배포 방통위, 방문진 회의·속기록 등 확인 중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총파업이 닷새째에 접어든 8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 아나운서 조합원들은 서울 중구 세종대로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에게 ‘다시 KBS로’라는 유인물을 나눠 주며 파업의 이유를 알렸다. 오언종 KBS 아나운서는 “우리가 왜 KBS를 바꿔야 하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자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양사 노동조합은 광화문 광장에서 ‘공동파업 언론노조 결의대회’를 가졌다. 결의대회에는 KBS와 MBC 노조뿐 아니라 SBS와 OBS 등 타 방송사 노조도 집회에 동참해 17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지난 7~8년 동안 MBC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처절한 반성으로 국민이 촛불로 주신 기회를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윤창현 본부장은 “망가진 것은 공영방송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방송들이 적폐의 비빌 언덕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BS PD 부장 15명은 파업에 참가하고자 보직 사퇴했다. 이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보직을 내려놓습니다’라는 성명을 통해 “KBS가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기관으로 거듭나길 소망하는 바람으로 보직을 내려놓고 KBS를 바로 세우기 위한 대열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MBC 노동조합은 전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서 ‘2016 경영평가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것에 대해 ‘김장겸 MBC 사장 감싸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MBC 노조는 “그동안 왜곡·편파 보도로 일관하다 추락한 MBC에 대한 분석이 포함된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것은 방문진의 ‘김장겸 감싸기’”라면서 김 사장과 방문진 이사진의 자진 사퇴를 주장했다. KBS와 MBC 사측은 노조의 업무 복귀를 촉구했다. KBS 측은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KBS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MBC 측은 “최소한의 방송 유지 직원도 없어 방송송출 중단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유의선 이사가 사퇴한 것과 관련해 고영주 이사장 등 구 여권 추천 이사 5명은 성명을 내고 “명백한 외압이자 자유 언론에 대한 탄압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2년간 방문진 이사회 공개 회의록과 비공개 속기록을 입수해 그간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영원한 캡틴’ 내려놓은 잉글랜드 악동

    ‘영원한 캡틴’ 내려놓은 잉글랜드 악동

    ‘삼사자 군단’으로 통하는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웨인 루니(32·에버턴)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표팀을 물러난다.루니는 2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대표팀 감독의 간청을 뿌리쳤다며 “이제 물러나야 할 때인 듯하다”고 밝혔다. 이어 “언제나 열정적인 잉글랜드의 팬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홉 살에 에버턴 유스로 출발한 루니는 열일곱인 2003년 2월 당시 역대 최연소로 발탁됐다. 2개월 뒤 스타디움오브라이트에서 열린 터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고 같은 해 8월 유럽축구연맹(UEFA) 선수권대회(유로 2004) 마케도니아와의 예선에서 데뷔 골을 뽑아내 역대 최연소 득점을 기록했다. 119차례 A매치 출전에 53골을 기록해 보비 찰턴(49골)을 앞질러 역대 최다 득점, 골키퍼 피터 실턴(125경기)에 이어 두 번째 많은 출장을 새겼다. 마지막 A매치는 어시스트 하나를 기록한 지난해 11월 스코틀랜드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예선이다. ‘악동’으로 불릴 만큼 이런저런 궂은일도 많았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전 퇴장으로 비난을 샀고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알제리와의 무승부 이후 팬들을 비아냥대 입길에 올랐다. 4년 뒤 브라질월드컵 때 비로소 본선 첫 골을 기록했으나 16강 진출을 이끌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물러나는 그에게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레그 클라크 잉글랜드축구협회 회장은 “그 세대의 아이콘이자 의심할 여지 없는 레전드”라고 말했고, 그를 처음 대표팀에 발탁한 스벤 예란 에릭손 전 감독은 “내가 현직 감독이라면 월드컵 이후로 은퇴를 미루라고 설득할 것”이라고 애석함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함께 공격을 이끈 마이클 오언(38)은 “똑똑한 타이밍이다. 항상 톱으로 앞서나간다. 잘했어 루니”라고 격려했다. 얼마 전 루니를 “저평가된 공격수”라고 평가했던 역대 득점 3위 개리 리네커(57)도 “선수 중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英, 트럼프 ‘기습방문’설 일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주일 안에 영국을 기습방문할 수 있다는 보도에 대해 영국 총리실이 공식 부인했다.  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제임스 슬랙 영국 총리실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이 수주일 안에 영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순방 기간 중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본인 소유 턴베리 골프리조트를 방문할 수도 있다는 통보를 영국 정부가 받았다”면서 “시기는 이번 주말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오는 14일 프랑스 바스티유의 날 기념식 사이가 될 것이며, 런던 총리집무실에서 메이 총리와 비공식 회담을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반대 시위를 최소화하려고 24시간 전에 방문 최종 확인을 전달할 것 같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백악관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총리로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장을 전달받았다. 연내 방문을 약속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대규모 시위를 우려해 지난달 초 메이 총리와의 통화에서 ‘영국 국민이 환영한다고 느낄 때까지는 방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영국에서는 트럼프의 방문을 꺼리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2월에는 시민운동가와 국회의원, 노동단체가 ‘스톱 트럼프’(Stop Trump) 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빈방문하면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를 열 것”을 선포하고 상근 직원을 채용했다.  ‘스톱 트럼프’ 활동가이자 가디언 칼럼니스트인 오언 존스는 2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트럼프가 시위를 피하려고 영국에 몰래 들어올 것을 계획 중이다. 촉박한 통보에도 이 편견이 심한 사람에게 항의하는 데 참가할 의사가 있다면 리트윗해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박지성 김민지 딸 포착 ‘아빠 눈 닮은 귀요미’

    박지성 김민지 딸 포착 ‘아빠 눈 닮은 귀요미’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뛰었던 박지성과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의 딸이 중계 화면에 포착돼 화제다.박지성은 5일(한국시간) 잉글랜드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마이클 캐릭의 자선경기에 출전해 90분 동안 경기장을 누볐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애플리케이션은 ‘MUTV’에는 경기장 뒤에서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박지성과 그 옆에 함께한 김민지 전 아나운서와 딸의 모습이 포착됐다.김 전 아나운서의 품에 안긴 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 박지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박지성·김민지 부부는 지난 2015년 11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딸을 출산했다.한편 이날 경기는 2006년 맨유에 입단한 캐릭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는데, 박지성은 2008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들과 함께 2008년 맨유팀으로 참가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웨인 루니, 에브라 등이 한 팀을 꾸렸다. 상대 팀 캐릭 올스타는 존 테리를 비롯해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퍼드, 마이클 오언 등이 나섰다. 박지성은 선발 명단에 출전해 오른쪽 윙으로 교체 없이 90분을 소화했다. 공격 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라운드를 왕성하게 뛰어다녔다. 박지성은 경기 후 올드 트래퍼드를 가득 메운 맨유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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