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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처마” 신강지역(서역 문화기행:1)

    ◎동서문물 교류 실크로드의 중심지/중국 서쪽끝 고원… 불교·회교 전파경로/천산 남·북로­중로 등 실크로드 세갈래 길 모두 거쳐/분지·사막에 위구르족등 47개 민족 거주… 고승 혜초·고구려 고선지장군 발자취 남겨 지난 6개월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속에 연재해온 중견작가 4인의 연작문화기행 「아랍서 지중해까지」를 끝맺고 새연재 「서역 문화기행」을 싣습니다. 집필은 허새욱 고려대 교수(중국문학)가 맡습니다. 서역,즉 오늘의 신강은 동양에서 가장 높은 고원과 드넓고 황량한 사막지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동·서문화가 최초로 교차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돈황 보다도 1∼2세기 앞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자 이슬람교의 최초 경유지이며 또한 변새문학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인 고선지 장군과 고승 혜초도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사막과 고원이라는 열악한 지리적 환경을 극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일궈온 이곳의 어제와 오늘이 허교수의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각으로 다뤄질 것입니다. 북경에서 비행기로 네시간남짓 날아서 신강의 성도 우루무치(오로목재)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주나라의 다섯번째 황제인 목왕이 서왕모를 만났다는 천지를 가기 위해 정거장으로 가던 길이었다.겨우 9월 중순인데 가로수 잎새들이 떨어져서 아스팔트위를 소리 치고 뒹굴고 있었다.때마침 손수레를 끌고 노새들이 줄을 지어 오는데 손수레는 비닐을 깔고 시냇물을 담고,거기서 팔뚝만한 잉어들이 팔딱거렸다. 필자는 그 손수레 행렬을 따라가면서 잉어 한근에 얼마냐고 물었다.『한근에 3위안(한화 3백원 상당)』이라고 내뱉듯이 대답하면서 노새와 함께 뛰어갔다.풍년에 무값이었다.월척 한마리라도 15위안이면 넉넉히 살수 있기에 말이다. ○만년설 녹은 설수흘러 그만큼 담수어가 흔하다는 말이다.서역에는 담수어 뿐만이 아니다.백초의 왕이라는 감초말고도 포도와 파란 푸성귀가 흔하고 서역 가는 곳마다 훤칠한 천마가 길쭉한 허리에 미끈한 다리를 뽐내고 있었다. 그것들을 기르고 그것들을 살찌게 하는 물이 흔하다는 말이다.가도 가도 황막한 사막에 물이 풍족하다는 말은 믿기지 않았지만 신강의 사막을 거닐다 보면 도처에 땅속으로 흐르는 우물 「카레즈」가 있고 아예 봇물처럼 꿈틀거리며 흐르는 복류수를 만나게 마련이다.그것들은 신강에 와서 조금만 눈여겨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북으로는 알타이산맥,서로는 천산산맥,동으로 곤륜산맥,남으로 파미르 고원,그 사방의 산맥들을 덮고있는 만년설이 녹아서 내린 푸르디 푸른 비취빛 설수인 것이다. 그러나 서역은 분명히 먼 곳이다.청나라 건융24년(1759),청나라가 이 땅을 재통일하고 「신강」으로 고쳐 부르기까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줄곧 「서역」으로 불렀었다.고구려의 명장 고선지가 절도사로 군권을 장악했던 곳이요,신라의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에서 말하는 「서역」은 물론,오늘날 서정주의 「귀촉도」에서 「눈물 아롱 아롱/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3만리」하는 「서역」도 여기를 말함직하다. 전국시대의 「산해경」을 비롯,「목천자전」,그리고 중국문학사상 양대상고작품의 하나인 「초사」에는 신강이 신선들의 거소로 등장했다.「초사」에 나오는 「현포」나 「낭풍」은 오늘의 곤륜산이요,「초사」에 나오는 「서해」는 오늘의 보수톤호를 말한다. 그것들은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서역」이지만,실제의 서역 또는 전국시대로 소급된다.한무제가 기원전 138년부터 장건을 비롯,위청,곽거병등의 사절이나 장군을 파견하기까지 여기엔 오손이나 흉노등 원주민들이 36개의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열국의 혼전시대를 보이고 있었다.그토록 기나긴 혼전시대를 겪고 기원전 60년에야 한나라는 오뢰(지금의 신강성 윤대현)에다 「서역도호부」를 창설,신강을 정식으로 중국의 판도에 편입시켰다. 하지만 그 땅은 풍운의 역사였다.총면적 1백60여만㎦의 넓이에 47개민족을 망라한 1천3백여만명이 산다. 그 넓이가 전중국의 6분의 1이요,우리나라(남한)의 17배에 상당하지만 그 안에는 동서의 길이 1천5백㎞에 남북의 길이 6백㎞,53만㎦의 타림분지와 38만㎦의 석유분지인 중가르분지,그리고 5만㎦의 투루판분지를 안고 있다.그 분지에 7백여하류와 50여 호수를 안고 있지만 그 절대면적이 사막이다.그중의 타클라마칸사막은 33만㎦이다.타클라마칸은 우리말로 「들어가면 나올수 없다」는 뜻.그래서 누구나 신강을 죽음의 계곡쯤으로 생각했었다. 파미르고원에서 히말라야산맥까지를 지구의 지붕이라면 신강은 지구의 처마에 해당했다.그 지붕을 넘으면 옛날 페르시아를 뚫고 지중해를 만난다.그러니까 중국의 최서단일 뿐 아니라 동서를 가르는 장벽인 셈이다. 그러나 이 처마와 장벽을 통해 인도의 불교와 중동의 이슬람교가 들어왔다.그 최초의 전도노선인만큼 기원1세기부터 불교의 동점을 따라 간다라,아잔타의 미술이 서역의 문화를 거느리고 들어왔다. ○실크로드 복지로 관심 쿠처(고차)의 크잘천불동에 착굴된 2백36개의 석굴이 돈황의 막고굴보다 1세기 앞선 미술이 그를 증명하고 당나라의 현장법사와 우리 신라의 혜초스님이 인도를 취경차 오가던 길이 여기란 사실로도 이 땅이 중원이나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말해준다. 그런가하면 신강은 또한 서역문학의 현장이다.그 열악한 지리조건 때문에 중원의 문인들이 왕래하기에 어려웠지만적어도 전쟁문학을 생산한 최전선이요,중국 신마소설의 무대란 점에선 결코 간과할 수 없다.당나라때 「변색시」파로 알려진 고적이나 음참 등의 문학이 여기서 생산되었거니와 명나라의 걸작 「서유기」의 무대로 화염산을 비롯한 여러 현장이 있다. 신강이 보다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실크 로드의 복지란 데에 있다.장안에서 로마까지의 그 가운데 토막인 셈이었다.그런데 돈황에서 파미르고원,혹은 흑해로 가는 남로·중로·북로등 세갈래길은 모두 신강을 횡단하거나 종단했다. ○혜초는 중로따라 귀국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남로는 동서를 교통하는 하이웨이에 상당했는데 그 남로란 돈황을 출발,서쪽으로 옥문관을 통과,곤륜산맥의 북쪽과 타클라마칸사막의 남단을 뚫고,지금 중국 핵실험의 첨단기지인 뤄부보(나포박)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3세기까지 왕국으로 실재했었던 누난의 고성을 지나 지금의 찰크리트(약미),첼첸(차말),케리아(우전),호틴(화전),야르칸트(사차),타스크르칸(탑십고이간)등을 경유해 파미르고원 아래로 해서 중앙아시아로 뻗는길이다. 중로는 양관을 통과,천산산맥의 남쪽과 타클라마칸사막의 북단을 뚫고 신강의 가슴을 횡단하는 길인데 한나라때 차사전국의 수도였던 투루판(토로번),지금 파인쿠어렁(파음곽릉)몽골자치주의 수도인 쿨러(고이근),한대의 「서역도호부」와 당대의 「안서도호부」의 소재지였던 쿠처,그리고 옛날 소륵국의 수도였던 카스칼등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장장 2천㎞를 말한다. 마지막 북로는 역시 옥문관을 통과,서북쪽으로 종단,하사크스탄의 토크마크를 뚫고 곧장 지중해로 뻗어나간 길인데 거기엔 참외의 고장으로 알려진 하미(합밀),지금 신강성의 성도인 우루무치,그리고 농목의 고장인 우쑤(오소),훠청등이 있는 아름다운 초원에 젖과 꿀이 풍성한 길이다. 「대당서역기」와 「왕오천축국전」의 기록에 따르면 현장법사는 중로를 따라 인도에 갔다가 올때는 남로를 택했고,혜초법사는 중로를 따라 귀국길에 올랐었다. 필자는 비록 그 세갈래를 완주할 수 없었지만 그 세코스의 요지 대부분을 강행군했다.육로·철로는 물론 공로를 많이 이용한 데다 밤낮도 가리지 않았다. 남로가 황막한 백색이라면 중로는 긴장의 적갈색,북로는 목가적인 청록색이었다.그도 그럴것이 남로는 비록 가장 창연한 옛길이라지만 뒷날 황량한 폐허가 많은데다 지금의 주민 또한 대부분 위구르족이었고,중로는 타림분지의 가슴을 뚫는 중앙대로로 역사를 자랑하는 석굴이나 오늘의 부를 공급하는 유전이 몰려 있었다.그 마지막 북로는 인력으로 개간한 농지에다 천연적인 초원이 많아서 얼핏 분지요 사막임을 잊게 했었다. 그러나 신강은 황·백·청의 3색평면도란 인상을 씻을 수 없었다.보이는 것이 사막이라서 황이요,타클라마칸사막같은 백사에 산마다 봉우리가 백설인데다가 길마다 가로수로 선것이 백양이라서 백이요,산마다 음지는 전나무요 오아시스마다 초원이라서 청이었다.
  • 파리/한국 화가들(아랍서 지중해까지:22)

    ◎허름한 탱크창고 자리에 화실이…/「소나무회」 조직… 배우·음악인 함께 모여 고국 향수 달래 우리가 소나무회라는 한국 화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비오는 날 하오였다.해외동표예술상을 탄 한묵선생의 특집프로에서 그 소나무회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건물도 사람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 파리 시 20구에 있는 허름한 그 건물은 원래 국방부 관할의 탱크창고 였다고 한다.프랑스 영화사에서 2억원에 사겠다고 하는데도 화가라는 이유 하나로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인의 작업실로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미묘한 문제도 개입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오직 프랑스이기에 가능하다고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일행의 친구이기도 한 소나무회원 박동일은 파리에 온지 벌써 13년째로 그 세월이 바로 엊그제인 것 같다고 말하며 이웃 작업실의 젊은 화가들을 불러모았다. 우리는 지붕위로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뜨거운 차와 포도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벌써 20여년전 내가 그들의 나이 만할때 파리를 지나가던 교수나 화가 작가들을 보면서 어쩐지 생소하게 느끼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 조금 쓸쓸해졌다.그들도 지금의 우리를 그렇게 생소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그 당시 나는 이응로선생의 화실에서 선생의 일을 거들었다. 선생은 동양미술학교(1964년 개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따로 개인 작업실을 시외에 갖고 있었다.동양미술학교는 대부분 프랑스인들이고 독일 사람과 일본 사람도 있었다.한국인도 몇 있었는데 화가 방혜자,배우 윤정희,연극 박사논문을 쓰던 이숙희등이다.선생댁 거실에서 커다란 책상을 몇개 붙여놓고 열서너명 정도가 화선지에 먹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직 사람은 그림그려라 선생은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하였다.그것이 선생의 독특한 인생관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된다.즉 선생은 예술에 대한 재능같은 것은 무시하고 오직 사람이면 그림을 그려야한다,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그런가하면 또 「세계무대로 나가는 길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예술로 세상을 제패하는 일에 대해서 누누이 얘기하셨다. 선생이한창 작업을 할때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돌아와보니 자신의 자리가 없어져 있더라고,파리라는 무대가 한달이면 벌써 새사람이 떠오르는데 3년이란 공백기간이 자신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노라는 한탄도 하셨다.「예부터 나라이름을 빛낸 사람에게는 그 죄를 묻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 도 하셨다. 나는 선생의 일을 거들며 그분이 열과 성을 다하여 작업하는 나날을 보아왔으며 늘 고국에 대해 절절이 가슴 아파하던 일들을 잊을 수 없다.선생의 화실은 우리나라의 저 깊은 산골 장작불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무렵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선생의 화실에 가는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는데 간혹 선생이 떠오를 때면 사건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분이 지녔던 진실이 장작불에 달궈진 쇠붙이처럼 되어 무엇인가를 뚫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한사람의 어떤 진실이란 그것이 진실이기만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아니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야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관선생은 그 시절 혼자 파리에 잠시 머물고 계셨던걸로 기억된다.어느 저녁 시테 기숙사 친구 방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남관선생이 무슨 일로인가 거기에 오셔서 처음 뵈었다.남관선생 역시 큰 분이라는 무게를 그날 밤 느낄 수 있었다. 시테 기숙사 속에 있는 숲,그곳에 떨어져 있던 낙엽의 음영,짙은 안가,그리고 거대한 홀인 기숙사 식당에서의 식사시간,그곳 기숙사에 살던 화가 심경자·최수화,파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병주,한국인 유학생들,교수,그때의 생활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하에 떠올릴 수 있다.지하철에서 듣던 아코디온 소리 「장미빛 인생」과 함께. 특히 식사시간 티켓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쟁반에 음식을 분배 받을때 매일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같은 것들은 그 당시 몰랐던 고마움으로 이제 다가든다.누군가가 수고를 하여 그 많은 학생에게 맛있게 영양가도 골고루,그러나 그렇게 저렴한 값으로 먹게 해주던 것에 대해. 그 당시 백건우 윤정희 부부도 떠올릴 수 있다. ○한국인유학생 7천여명 날이 어두워서 그림수업이 끝나는 날은 백건우가 윤정희를 데리러왔다.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앞날을 향해 살아가던 모습을,그것 역시 그 당시는 잘 몰랐으나 이제와서 되돌아다볼 수 있다. 「보자르(국립미술학교) 학비가 한달에 3백프랑으로 보험료 정도인데 재료는 공짜로 나온다.그러나 사립학교인 요리나 보석학교는 석달에 1천만원이 넘는다.미술학교에서 석고데생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운다는 개념이 아니다.일년동안 다녀도 선생에게 무슨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한국인 유학생은 약 7천명이고 제일 싼 지붕밑 다락방값은 30만원 정도다」 이런 얘기들을 그날 소나무회원들에게서 들었다. 마침 한국문화원에서 한인전시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여 그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나오다가 현관에 놓여 있는 한인회보를 보니 대사관을 비롯해 파리 한글학교,한인들의 천주교회당,외환은행 소식 등이 있었다. 한국문화원 전시실에는 여러 형태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 따로 있는 비디오아트실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우리는 어둠 속에 선채 잠시 영상을 보았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순수미술은 사그라지고 있으며 팝아트라든가 TV·비디오아트쪽이 성행하고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소통을 하는 방송채널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세계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그곳에서 후배들을 보러온 김창렬·오천석선생들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신부관에 있는 김인중신부는 뉴욕전시회에서 며칠전에 돌아왔으며 다음날 다시 전시회일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한국인이 몇명 있다는 소식에 우리 일행은 놀라워했다. 외인부대를 제대한 한국인이 의류를 가지고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불 외인부대에 한국인도 우리가 영화로 보아서 친숙히 알고 있듯 범법자들,삶의 맨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목숨을 내놓고 택하는 그곳에 한국인도 있다니,그리고 제대를 하여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니 그들의 삶이 몹시 흥미로웠다.프랑스 혁명기념일 입장식에 나온 외인부대가 T셔츠바람에 머리를 기르고 몸에는 문신을 새긴 제멋대로의 모습인 것을 친구는 TV로 보았다고했다.소르본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유학생도 경험삼아 외인부대에 신청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들을 꼭 만나보고 싶었으나 노출되기를 꺼려하여 수소문 끝에 전화로 통화만 할 수 있었다.제대후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목소리에 힘이 있고 단정하였으며 절대로 외인부대나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할 수 없노라고 만나기를 거절했다. 파리에서 오직 하나뿐인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물랭의 여주인은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그곳에서의 노후를 계획하다가 양로원에서 호박나물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에 생각이 미치자 고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그렇다,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이국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때마다 더구나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같이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자유로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꼭 들던 것이­. 2,000년을 바라보는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국경 같은 것은 점점 의미 없이 무너지고 전인류가 하나인 국제화시대가 도래한다고는 하지만 물랭호텔 여주인의 말에서 과연 하는공감을 받은 것은 오직 나 개인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국이든 이국이든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 같기만 하고 진정한 따스함?진정한 소통이 되어지기 힘들게 살고 있다고는 해도 멀리멀리 두루 돌아다녀볼수록 그 반대편 저곳에 있는 집이라는 이미지,가장 자기를 붙들어주는 그것은 고국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 태 총각들/「잠자다 죽는 병」 번져/원인불명 야면돌발사 증후군

    ◎90년이후 4년간 1천여명 희생/“처녀귀신 탓” 액땜 여장까지 성행 「잠자다 죽는 병」이 혈기왕성한 젊은 태국 남성들 사이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의학자들에 의해 원인불명야면돌발사망증후군(SUNDS)」으로 불리는 이 해괴한 병은 건강한 남자가 밤에 잠자다 까닭없이 죽는 병인데 여자에게서 발생한 사례는 없었다. 이 병이 90년 처음 공식 보고된 이후 4년여간 태국에서 발생한 희생자만도 1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태국 정부는 특히 이 병으로 해외에서 죽은 태국 근로자가 지난 90∼93년 3년동안 싱가포르 80명,사우디 아라비아 57명을 합쳐 약 2백명이라고 밝혔다.태국보사부는 이 기간중 싱가포르에서 사망한 다른 태국 근로자 1백37명의 대부분도 사인이 불분명하다면서 이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태국정부는 노동자들이 많이 나가 있는 싱가포르나 사우디아라비아,브루나이,대만에 보건관을 파견해 이들의 보건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태국정부는 원인규명을 위해 국내 의학자들을 동원하고 미국,유럽,싱가포르 의사들에게 의뢰까지 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이처럼 죽어나가자 태국 일부지역에서는 생전에 남자와 짝을 짓지 못한 처녀귀신들의 소행때문이라는 미신이 널리 퍼지고 마을입구마다 남성 상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특히 태국 북부 우본 라차타니주 일부 마을에서는 3년전 이 병으로 죽어나가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남자들이 처녀귀신을 쫓는다며 가발을 쓰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 여장을 하거나 병원을 찾아와 성전환 수술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남성 상징물 설치덕택에 효과를 봤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있는데 반퉁 냥 오아크 마을의 푸수리라는 50대 농부는 처녀귀신들이 나타나 자신의 남근을 절취해가는 꿈을 꾼후 집앞에 2m의 모조 남근상을 세운 후부터는 꿈에 귀신들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 「르네상스」(외언내언)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상스」.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40대이상의 장년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명소였다. 60년대초 서울 종로1가 영안빌딩4층 르네상스에 들어서면 흐릿한 조명속에 클래식음악의 선율이 감미롭게 흐르고 안락한 소파에는 눈을 지그시 감은 감상객들이 삼매경에 도취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음악인들은 물론이고 문화예술인들,대학생들이 즐겨찾던 음악의 메카이자 문화예술의 사랑방이었다. 아직 무명이었던 작곡가 윤이상씨가 이곳에서 작품발표회를 가졌고 김만복,임원식씨 등이 악보를 갖고와 지휘연습을 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대학생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인기가 높았다.70년대까지 고전음악을 제대로 들을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르네상스였으니까. 르네상스가 문을 연것은 대구피란시절인 51년.음악애호가였던 박용찬씨가 8천여장의 음반을 두대의 트럭에 싣고 피란감으로써 시작되었다.전화에 시달리던 문화인들에게 르네상스는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환도후 54년 인사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59년 종로1가로 이사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60∼70년대에 걸쳐 르네상스는 황금기를 맞지만 80년대들어 팝뮤직의 성행과 오디오의 보급에 밀려 사양길을 걷게 된다. 적자의 누적으로 87년 르네상스는 마침내 문을 닫았지만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전국에서 「르네상스를 지켜달라」는 격려전화와 편지가 쇄도,화제가 되기도 했다.젊은날의 꿈과 낭만이 배어있던 추억의 공간을 오래오래 보존하고 싶은 마음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르네상스는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음악감상실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설립자인 박씨는 문을 닫으면서 그가 평생수집했던 귀중한 음반 1만1천여장을 포함,오디오기재와 희귀자료등을 모두 문예진흥원에 기증했다.소년시절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꿈꾸었던 음악애호가 박용찬씨.그가 우리 음악계에 큰 업적을 남기고 타계했다.
  • 그린씨어터 「살찐 소파…」(객석에서)

    ◎「아마」 수준에 머문 「신세대 연극」 『소비에트가 무너지던 날 난 김포공항에서 스포츠신문을 고르고 있었어.세계지도에서 내가 귀순하고 싶은 나라들이 일시에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고 할까.갑자기 ××같은 세기가 되어버린 거 있지』 극단 그린씨어터의 창단기념작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황지우작,주인석연출)가 공연되고 있는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무대. 구석기시대 다산성여인상을 연상케하는 살찐 소파에 핀조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멍하니 앉아있던 주인공 「나」의 자조적인 넋두리가 시작된다.이어 배우들이 쏟아내는 극렬한 정치언어가 그로테스크한 무대장치와 함께 섬뜩한 느낌을 전한다. 「살찐 소파…」는 70,80년대 격동의 역사현장을 격렬하게 체험한 지식인이 90년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인식의 단절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공황을 묘사한 작품.이데올르기 붕괴이후 대체이념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지식사회의 정체성 위기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물질적 풍요속에 변혁의지를 상실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지식인의 소시민적 안일함과 민중에 대한 기만,이중인격적 행태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등 「신세대연극」다운 패기를 보인 점도 신선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어둠의 시절 「가위눌린」세대의 현실적 아픔만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을뿐 그들의 오늘의 존재이유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전혀 보여주비 못해 아쉬웠다.정신적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 끝없이 자신을 학대하는 주인공의 「대안없는 반성의 심리」는 관객의 정서를 일정부분 결합시켜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예술적 성취와는 거리가 있어 한낱 불건강한 자기위안의 연극으로 떨어지게 했다는 느낌이다. 황지우시인의 동명시를 극화한 작품인 만큼 「살찐 소파…」에는 문학적 향기가 진동한다.「나는 너다」「너는 나다」등 고승대덕의 선문답같은 상징적 시어와 현란한 대사들은 극의 격을 한차원 높여주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이는 곧바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연기경력이 일천한 배우들이 관념적 언어를 무대언어로 적절히 소화하지 못해 간혹 말을 씹는등 연기와 대사가 겉돌아 원작이 추구하는 메시지의 질감을 떨어뜨린 것.특히 극 후반을 장식하는 시「산경」의 알레고리는 관객들에게 적잖은 「사고의 고통」을 요구했다.「산경」의 환상적이고 설화적인 세계를 떠받쳐줘야할 무용연기는 관능의 냄새만 풍겼지 신체언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해 오히려 극의 온전한 이해를 방해했다.단조롭게 반복된 배경음악도 주술적인 톤으로 극의 신비화에만 일조했을뿐 전체구도속에 녹아들지 못했다. 수족관 혹은 공기족관으로 설정된 메인무대 또한 공기방울효과에만 의존하는등 시각적 이미지화작업이 부실해 폐쇄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획득하는데 실패했으며 11대의 TV세트를 동원한 비디오아트 역시 연극행위와의 유기적 결합에 이르지 못해 관극의 초점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컨대 한정된 그릇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한 이 연극은 참신한 발상법에도 불구,대학생수준의 실험적인 「아마추어극」에 머물고만 인상이다.
  • 오대호주변 8개주(현장 세계경제)

    ◎미국경기 회복 중핵으로 각광/자동차 등 고부가산업 크게 발전/컴퓨터칩·「빅3」등 수출지향전략 한몫/작년 4.9% 성장… 미 전체평균 웃돌아 녹슬어 빛을 잃었던 미국 중서부 경제가 힘차게 재기,지역을 넘어 미국전체 경제에 광택을 선사하고 있다.오하이오주부터 아이오아주에 이르는 미 중서부 8개주는 오대호에 연해 있지만 동서 해안 양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답답한 오지에 해당된다.일찍부터 자동차나 철강산업 등 미국 제조업의 터전으로 「러스트(녹)벨트」라 불렸으나 세계경제가 하이테크화하고 또 미국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하락하면서 거의 전지역에 사양산업의 그을음이 끼고 녹이 슬게 됐다.전자·항공·생명공학등 첨단분야에서 미국의 우월한 위치가 다시금 주목될 때도 이같이 전도유망한 하이테크산업이 태평양·대서양 연안에 편중돼 중서부는 별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돌파구 찾기가 어려운 한가운데에 갇혀있던 중서부가 최근 회복기 미국경제의 중핵으로 각광받는 것이다.우선 이지역의 상징인 디트로이트의 3대 자동자회사들이 일본등 외국업체에 통쾌한 역습을 가하고 있다.갈수록 많은 회사들이 수출지향 사업을 강화,국내가 아닌 세계전체 규모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거의 5년동안 「죽어」있던 중서부의 경제는 컴퓨터 칩,의료기기,금융업 등 요즘 가장 수익좋은 산업이 전통적인 제조업과 비슷한 크기로 성장하는 내적 변화를 달성했다. ○고용인구 증가 뚜렷 소프트웨어 및 생명공학 중소기업들이 미시간이나 위스콘신의 대학도시 주변에 몰려있다.위스콘신의 케노샤,미시간의 플린트 등 자동차산업의 침체로 대량 해고의 현장이 됐던 이지역 중소도시들이 다시 번영을 구가한다. 한마디로 별 볼일없던 중서부 경제가 여타 미국 지역을 앞질러 선두에 올라있다.93년도 중서부지역의 연 경제성장률은 4.9%로 미국 전체의 3%를 크게 웃돌았다.특히 해외수출은 딴 지역의 두배나 되는 속도로 증가(93년·15%)하고 있다.미국 전체에선 마이너스가 기록된 제조업 고용인구에서 중서부는 지난해 1.7% 증가를 기록했고 올해는 증가율이 더 커질 전망이다.전 산업 측면에서 봐도 경기침체 직전의 91년 구인 규모를 기준치로 할 때 회복기의 현재 미국전체는 1백20에 가까운 정도지만 중서부는 1백40에 육박하고 있다.또다른 중요 지표인 인구동향에 있어서도 지난 89년엔 13만4천명이 감소 했지만 올해의 경우 10만3천명의 순 증가가 예상된다. ○철강생산 33% 담당 미 50개주를 8∼9개 지역단위로 묶을 때 중서부 말고도 2개지역 정도가 고성장지역으로 꼽힌다.남부의 동쪽지역,중서부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부지역이 그러하나 잠재 화력과 현재의 충격량에 있어선 중서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중서부는 미국 전체 승용차 생산의 44%,트럭의 28%,철강의 33%를 각각 떠맡고있다.특히 이지역는 인구가 5천4백만명에 달해 경쟁지역인 남동부와 북서부 두곳을 모두 합했을 때의 1·5나 된다.해외수출 물량에서도 올 1·4분기동안 중서부는 단독으로 2백80억달러에 이른 반면 다른 두 지역은 합해서 2백10억달러였다. 이에따라 질좋은 노동력이 저절로 이 지역에 유치된다.시카고,인디애나폴리스,오하이오의 콜럼버스등에 유수한 대졸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거품」 후유증없었다 중서부의 경제적 부활은 부분적으론 몇가지 요인이 운수좋게 겹치는 데서 설명될 수 있다.이 지역은 지난 80년대 부동산붐과 거품폭발 경제의 예외지대였고 냉전이후 축소일변도의 군사방위산업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행운을 지녔다.그래서 캘리포니아나 북동부 등이 속수무책으로 감수해야 했던 타격에서 벗어났으며 여기에 태평양·대서양연안의 캘리포니아와 뉴욕이 어쩔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이민문제도 처음부터 면제된 처지였다. 중서부는 민간기업,주정부 구분없이 제조업 경쟁력하락·경기 장기침체·실업증가 등의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역이용,다른지역보다 한발 앞서 구조재조정,질위주의 관리·경영,이노베이션중시의 내부개조를 시도했었다.이런 노력과 앞서의 수동적인 행운이 합쳐 부흥에 성공한 것이다.
  • “93 엑스포장/첫 과학공원으로 대변신

    ◎9개월간 새단장… 새달7일 일반에 첫선/「미래기술의 장」등 18개 상설전시관/갈릴레오공원 등 갖춰 “놀면서 학습”/입장권 2∼3개 전시관 묶어 판매… 예약제 도입 93대전 엑스포의 열기로 가득 찼던 도룡벌 19만평이 국내 최초의 과학테마공원인 「엑스포과학공원」으로 탈바꿈돼 오는 8월7일 일반에 공개된다. 「놀며 배우는 과학공원」의 운영을 맡게된 엑스피아월드측은 약 9개월의 재개장 준비기간을 거쳐 한빛탑·우주탐험관등 18개 상설전시관을 열며 각종 놀이시설을 확충,가족 나들이 명소로 큰 인기를 모을 전망이다. 엑스피아월드측은 지난해 엑스포동안 장시간 대기로 짜증스런 관람이 되었던 점을 보완,각 관별로 세분화·차별화된 패키지 입장권(2∼3개의 전시관을 묶음)을 개발하고 예약시스템을 도입했다. □상설전시관=「전통·도약의 장」은 대전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대전관과 공원의 상징으로 대전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빛탑으로 구성된다.또 우리 역사를 길로 표현한 정부관도 있다. 「과학·탐험의 장」은 컴퓨터그래픽영상으로 생생한 우주여행이 펼쳐지는 우주탐험관,과거 이동수단부터 첨단 교통수단을 전시하는 자동차관으로 꾸며져 인류의 꿈과 미래를 보여준다. 「자원·통신의 장」에 마련된 재생조형관에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의 거북선형 비디오아트가 전시되고 재활용온실에는 음식찌꺼기로 유기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자연의 장」은 아이맥스 3차원 입체영화가 있는 인간과 과학관,오감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세계최대의 아이맥스 영상관인 지구관,자연생명관으로 구성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게 된다. 「미래기술의 장」은 미래컴퓨터·로봇사물놀이·우주여행등을 선보이는 테크노피아관,지름 27m의 옴니맥스화면에 자연생명의 아름다움을 펼치는 이미지네이션관,미래의 교통수단 자기부상열차관,소재관,전기에너지관등 5개 전시관이 들어서 관람객을 환상적인 미래세계로 이끈다. □휴식공간=과학교육 기능별로 특화한 갈릴레오·다윈·아르키메데스·아인슈타인등 4개 소공원을 조성,동상을 세우고 관람객의 사고하는 휴식공간으로 「과학자의 거리」를 만들었다. 또 엑스포의 미래항공관을 철거한 자리에 마련된 미래공원은 사각패널·분수·까치집,돌로된 달력이자 해시계인 스톤헨지등이 설치돼 어린이들에게 자연생태계에 대한 흥미를 키울 것으로 보인다.보조시설은 장애인센터를 비롯,미아보호소·유아휴게소·물품대여소·진료소등이 운영되고 1천4백여대규모의 대형주차장이 마련됐다. □이벤트행사=평일에는 각종 퍼레이드·캐릭터쇼·마칭밴드등이 상설 운영되고 주말에는 대형축하쇼·불꽃놀이·열기구축제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또 분수춤·환경안개·연출조명등의 「물의 축제」와 레이저·대형이미지영상·서치라이트등을 이용한 「빛의 축제」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10월말까지는 상오9시30분부터 하오10시,11월부터는 상오10시부터 하오8시까지 개장된다.입장료는 어른 3천원,어린이 1천5백원이며 전시관 관람료는 어른 1인당 1천5백∼2천5백원선이다.
  • 드라마 주제가 음반제작 본격화/MBC

    ◎전담기구 설치,첫작품 「사랑을…」 준비 문화방송은 인기 드라마의 주제가 등 관련 음악을 담은 드라마 음반제작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하고,방영 중인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첫 음반으로 준비중이다. 이를 위해 자회사인 MBC예술단 내에 마스터 테입 제작과 음반 판매관리를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했다.LP,컴팩트 디스크,카세트 등으로 제작중인 「사랑을 그대 품안에」 관련 음반은 이달중 발매될 예정이며 음반의 판권은 MBC가 소유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드라마의 타이틀 곡 및 삽입곡 제작을 담당 PD 등 드라마 제작팀이 외부의 음반 기획자들에게 관련 음악을 의뢰,방송에 사용하고 음반 기획자가 판권을 소유하는 것이 통례였다.이미 음반이 발매되어 수십만장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린 MBC­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오아시스)「질투」(도레미·서라벌)「걸어서 하늘까지」(한양)「파일럿」(지구)「마지막 승부」(도레미)등이 그 좋은 예. 수익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프로그램음악의 음반제작 및 판매관리에 직접 나선 문화방송은 이번 「사랑을 …」을 시작으로 점차 대상 프로그램을 넓혀 갈 계획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는 이미 20∼30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곡 및 삽입곡 제작을 뮤직 라이브러리 형태로 독립된 자회사에 맡겨 제작·판매,수익사업화하고 있다.
  • 물의 시대/김홍명(굄돌)

    어떤 일에서 소외당하거나 별 볼일 없게 되었을 때 흔히들 「물 먹었다」는 표현을 한다.세상에 가장 흔한 물을 먹었으니 대접이라 하기에는 오히려 구차스러운 인사를 받고 말았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물이 또한 귀했다는 사실은 비단 사막의 오아시스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옛날 그 유명했던 「북청물장수」나 대동강물을 팔았다는 김선달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처럼,우리에게도 물은 오랫동안 소중한 존재였다.나그네의 타는 목마름을 풀어준 한 바가지의 물에 담긴 지혜를 인연으로 맺어진 우물가의 사랑이 구약성서에서도 전해온다. 오늘날 범람하는 인간군과 그들이 발전시킨 무분별한 문명은 인간자신에로 행하는 부메랑효과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그 결과 자연은 황폐화하고 인간생태계는 파괴되어 마침내는 우리 모두의 생존에 적신호를 울리고 있다. 그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환경운동이니 녹색운동이니 공해추방운동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 자연을 회복하려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산업화사회의 부산물일지언정 그 이상으로나아갈 수는 없다. 그러한 운동들이 산업화과정의 도도한 물결 역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와 발전의 혜택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세계에서 자연의 위기는 아직까지 그저 관심사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자를 동원하여 급속히 산업화과정을 밟은 우리사회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했다.몇달전의 낙동강폐수에 이어 이제 영산강의 오염이 문제되고 있다.현재처럼 문외한들의 안일한 처방,시간을 기다리는 수법을 가지고서는 아무 해결책도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문제는 현정부의 책임은 아니다.현정부는 이를 이어받았을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물과 공기의 보장은 현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환경을 감시하는 「그린피스」가 때마침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그저 깨끗한 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상품이 되어 팔리는 「물의 시대」를 맞아 깨끗한 공기를 상품으로 파는 시대를 또한 우려하게 된다.
  • 덴마크의 「레고그룹」/어린이 「테마파크」 수출 상품화(월드 마켓)

    ◎68년 개장 「레고란트」 국제적 명소로/곧 영·미에 개장… 상품·회사 동시홍보 「테마파크」(주제공원)를 수출한다. 전세계의 어린이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덴마크의 장난감회사 레고그룹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교외 칼스배드에 99년 개장을 목표로 1억달러를 투자,「테마파크」를 세우기로 결정해 본격적인 테마파크의 수출이 시작됐다. 플라스틱 조립식 장난감인 「레고」생산업체인 이회사는 68년 덴마크의 빌운트에 25에이커(약3만평)넓이의 테마파크인 「레고란트」를 개장,어린이들의 대대적인 호응을 받으며 이 업계에 진출했다. 4천5백만개의 레고조각으로 만들어진 빌운트 레고란트는 매년 1백29만명이나 찾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이곳에서 아동들은 레고조각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황야」「자유의 여신상」「유럽의 수도」들을 두루 볼수 있으며 축소형 도로에서 운전교습을 받은뒤 「레고면허증」을 받기도 한다. 레고측은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칼스배드에 레고란트를 완공하면 매년 1백80만명의 미국인들이 찾아와 한사람당 적어도 15달러를 소비,연간 매출액 2천7백만달러를 올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레고측은 이곳을 기존의 다른 공원들과는 달리 완전히 어린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차별화 한다는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다.영업시간을 하오8시까지 제한하고 10대들의 출입도 막아 3∼13세까지의 아동과 부모들만 입장토록 해 폭력화되고 소란스런 공원이 아닌 미국에서 가장 「평온한 오아시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레고가 미국수출을 계획한 것은 미국전체가구중 75%(유럽90%)가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데다 아동들은 13세가 되기 이전에 레고 장난감을 15박스정도 구입했다는 자체 시장조사결과에서 비롯됐다. 3년전 처음 주제공원의 수출을 결정한 이후 레고사는 그동안 2억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후보지를 물색,레고란트 수출품 제1호와 2호는 96년과 99년 각각 영국 런던교외 윈즈와 미국서부의 칼스배드에서 개장키로 결정됐으며 97년 후보지가 발표될 제3호는 미국동부연안이 될것 같다. 지난 44년간 조립식 장난감 레고생산에 주력,연간 20억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 회사는 레고란트가 자체의 수익성은 물론 회사상품(레고)의 개념을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더 큰 판매수익도 올리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2만2천쪽 의정서 무게 1백75㎏/마라케시각료회담 이모저모

    ◎백25개국서 대표단… “서명에 4시간” 예상/미국·EU선 2백명씩 파견,막전·막후 활동 ○…GATT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마라케시는 자연환경이나 경관이 의식이나 「축제성격」의 회합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지중해의 카사블랑카 남방 2백41㎞에 위치한 모로코의 고도 마라케시는 종려나무로 둘러싸인 서부 사하라의 오아시스로 기온은 섭씨 20도에 조금 못미치고 바람은 서늘한데다 햇볕은 좀 따가울 정도다. 회의장인 팔레데콩그레(회의궁)가 있는 핫산오세로 주변엔 호텔등 검붉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건물들에 게양된 모로코 왕국 국기도 붉은 바탕에 황색선 별이 그려진 것이어서「붉은 도시」라는 말리 더욱 실감된다. 마라케시는 인구 50만.이국적인 정취를 좋아하는 지중해 건너의 유럽인들에겐 관광및 휴양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회의장소로 마라케시가 선택된 것은 모로코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하기도 했지만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캐나다의 몬트리올,스위스의 제네바 등 주요 대륙을 순회하면서 열려온 UR관련 회의가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한번도 열리지 않은 점이 특별히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주최국인 모로코도 회의 개막을 앞두고 마라케시 시내의 주요 간선도로를 새로 포장하고 건물에 새로 칠을 하는등 이번 회의에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고. ○…프랑스 항공을 비롯,모로코에 취항하는 주요 항공사들은 12일(현지시간)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중간 경유지인 카사블랑카에 기착하지 않고 회의가 열리는 마라케시에 먼저 승객을 내려주는 특별서비스를 제공. 이 바람에 파리에서 프랑스 항공편으로 출발한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등 한국대표단은 카사블랑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마라케시에 도착,남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번 회의에는 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GATT) 회원국 1백23개국과 회원국은 아니지만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 참여한 중국 알제리 등 총 1백25개국의 정부 대표단 5천여명이 참석.이는 7년 반을 끌어온 UR 협상중 가장 많은 국가와 인원이 참가한 것. 미국 측에선 캔터 무역대표부 대표와 브라운 상무장관을 비롯한 2백명이,EU에선 브리탄 부위원장 겸 대외경제 담당 집행위원 등 2백명이 대표단으로 참석,막전·막후 협상을 전개했다. ○…각국 대표들은 2만2천쪽에 무게만도 1백75㎏에 달하는 의정서를 검토한후 대표가 사인하게 된다.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은 마라케시 각료회의 개막일인 12일 하오 본회의에서 1백25개 참가국중 14번째로 기조연설을 했다. 한국대표의 연설순서는 신청순서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알파벳순으로 진행되는 최종의정서서명은 61번째가 될 예정이다.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특별연설을 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어부통령은 회의 폐막전날인 14일 하오 본회의에서 특별연설을 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모로코 방문은 이번 행사를 빛내려는 모하메드 하산 모로코 국왕의 특별초청에 따른 것. 고어 부통령의 연설이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취임전부터 환경보호를 강력히 주장해온 열렬한 환경보호론자인데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후속 라운드로 환경과 무역을 연계시키자는 주장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측 수석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던 하타(우전)외상은 호소카와(호천)총리의 사임으로 국내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회의가 개막된 12일(현지시간) 현재까지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를 취재중인 한 일본기자는 『정부는 하타외상이 참석하지 못할 것에 대비,마쓰나가(송영) 전미국대사를 정부대표로 임명했다』고 밝히고 14일 하오로 예정된 정부대표연설도 마쓰나가씨가 하게 될 것이라고 전언. 그는 또 『하타외상은 참석하더라도 14일 늦게나 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만약 오게 되면 고어 미부통령과 만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두사람간에 오갈 이야기는 경제문제보다는 일본의 정국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
  • 서울신문/깨끗한 산하 지키기“시동”/전국서 환경오염사례 감시·고발

    ◎지사·지국장 1백명 감시위원 위촉 서울신문사가 벌이는 「깨끗한 산하 지키기 운동」을 전국에서 활발하게 전개할 환경감시위원 위촉장 수여식이 14일 상오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이한수서울신문사사장등 본사 임원과 국·실장,운동본부위원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사장은 서울신문사 전국 지사·지국장 가운데 선정된 1백명의 환경감시위원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인사말을 통해 『우리 세대의 잘못으로 오염된 산하를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없다는 각오아래 이 운동을 시작했다』면서 『이 운동으로 서울신문사가 국민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위촉된 환경감시위원들은 전국 각 지역에서 환경오염사례를 감시하고 적발,운동본부에 알리는 환경의 파수꾼 역할을 하게 된다. 참석자들은 행사가 끝난 뒤 「깨끗한 산하 지키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서울신문사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전경련의 「만장일치 절차」가 걸림돌/「2통」 지배주주 선정 진통

    ◎대기업 이해관계 얽혀 끝까지 “이전투구”/체신부로 「공」 넘어가면 엄청난 혼란 초래 첫단추부터 잘못 됐다.체신부가 제2이동통신의 지배주주 선정문제를 전경련에 위임한 것이 화근이었다. ○체신부 우려표명 ○…청와대와 체신부는 23일 지배주주 결정을 둘러싸고 재계가 진통을 거듭하는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면서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체신부의 한 관계자는 『컨소시엄 구성을 전경련에 의뢰한 마당에 뭐라고 말할 입장이 못된다』며 일단 전경련이 이 문제를 매듭짓기를 희망. 그는 『전경련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공」이 다시 체신부로 넘어온다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이 경우 체신부는 당초 방침대로 2통참여 희망업체 모두에게 동일지분을 배정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발표를 미루며 진통을 거듭하는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대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때문이며,둘째는 만장일치라는 회장단의 절차문제 탓이다.23일 회장단 회의엔 지방 출장중이던 B그룹의 회장이 일정까지 취소하고 참석해 반대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이 때문에 회장단은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밥그릇 싸움” 비난 ○…2통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문제가 해결 난망으로 비쳐지자 일각에선 전경련의 사업자 선정이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 실정.그러나 체신부로 사업권을 반납하면 2통사업은 사실상 무산되기 때문에 가능성은 없는 편. 전경련은 「밥그릇」싸움만 하다 국가통신 사업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비난을 우려하고 있어 금명간 속전속결로 결정할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도 유력하다.회장사인 선경그룹은 이날 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책을 논의하는 한편 여론의 동향에 촉각. 특히 항간에 『1통을 선택한 선경측이 경쟁 대상이 될 2통을 무력화하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펴고 있다』는 악성 루머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혼탁한 분위기를 가중시키는 루머로는 『모회사가 청와대측과 관련이 있다』『모회사는 원료공급을 내세워 회장단의 몇개 회사를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들로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 ○“양사에 최후 통첩” ○…전경련은 2통 지배주주 선정과 관련,눈치보기에만 급급하며 아리송한 말만 되풀이.조규하 전경련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대결정을 이미 내렸다.양사에 최후 통첩을 했다』고 말한 뒤 곧 『지배주주는 결정되지 않았다.양사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 2통에서 빼버리겠다는 「올 오아 나씽」(전부 또는 전무)만 알렸을 뿐』이라고 말문을 돌리기도. 조부회장은 이어 『미세한 차이가 있으나 밝힐 수 없다.더이상 자율 합의를 이끄는데 관여하지 않겠다』고 횡설수설.또 『전경련이 자율 합의를 말할 계제가 아니다』라며 오락가락. 금호그룹의 지배주주 포기와 관련,조부회장은 『어떠한 압력도 행사한 적이 없다.금호가 포철 및 코오롱과 같은 지분을 갖는다면 단일 지배주주를 포기한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기자회견에서 금호가 지배주주를 포기했다는 말을 번복. ○아전인수격 해석 ○…전경련 조부회장이 말한 「올 오아 나씽」을 놓고 포철과 코오롱은 각각 「아전인수」로 해석.포철은 『전경련이 포철을 지배주주로 선정한 데 대해 코오롱이 계속 반대한다면 코오롱에 단 1%의 지분도 주지 않겠다는 최후 통첩』이라고 해석.반면 코오롱은 『양사간에 자율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배주주를 선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포철 내정설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 ○…24일 포철 내정설이 보도되자 포철은 직원들끼리 자축하는 등 상당히 고무된 모습.코오롱은 『포철의 장난에 언론이 놀아난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번 보도가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코오롱은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린 적이 없다.모두 소문에 불과하다』고 주장. 한편 금호그룹은 포철과 코오롱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금호가 지배주주 협상대상에서 빠진데 대해 크게 분개.금호는 『포철과 코오롱의 합의를 전제로 경영권 포기의사를 밝혔을 뿐』이며 『자율 합의가 실패한 시점에선 금호도 지배주주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반발.또 『전경련이 컨소시엄 구성 시안에서 1%의 지분을 일방적으로 배정한 것은 차별적인 처사』라며 시안 취소를 주장.
  • 이어령 전장관 회갑잔치 “전통예술 한마당”

    ◎가야금·판소리·사물놀이 등 어우러져 축하/이대제자 41명이 쓴 회고담 등 책 4권 봉정도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이 화갑을 맞았다.이전장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나이가 이제야 육십인가』하고 되물을 것이다.대학교수로,문학평론가로,신문사 논설위원으로,출판인으로,소설가로,장관을 지낸 행정가로,문명비판가로 그의 이름을 너무 오래전부터 자주 들어온 탓이다.그러나 육신의 나이에 반해 그는 아직도 창창하기만 하다. 「계유년생 바람닭」 이전장관의 화갑연이 3일 하오3시부터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그가 23년동안 몸담은 이화여대제자와 정·관계인사,문화계인사,문인등 그를 흠모하는 각계사람 4백50여명이 모인 가운데 큰잔치로 치러졌다. 이날 화갑연은 지난89년12월 갑작스런 초대 문화부장관직 수락에 따라 교수직을 떠난지 4년만의 「마지막수업」이 치러진다는 언론보도때문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주인공은 『환갑날은 하루 쉬어야지 무슨 강연인가.망년회에 온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그답지 않은 짧은 답사로 끝내 아쉬움을 안겨줬다.그러나 이전장관은 미리 준비한 「별의 관측자가 아니라 별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윤동주의 서시 구조분석과 글을 쓰는 의미」란 제목의 강의록유인물을 통해 『진정한 시인에겐 환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마지막수업」에 갈음하는 여운을 남겼다. 이날 잔치는 황병기의 가야금연주,이매방의 승무,안숙선의 판소리,김덕수패의 사물놀이등 정상급 국악인이 출연해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사위를 선사,식장을 발디딜 틈없이 꽉채운 참석자들의 흥을 돋웠다.이어 이화여대 국문과 제자 41명이 쓴 스승 이어령에 대한 회고담 「영원한 기억속의 작은 이야기」와 제자 학자 31명이 쓴 논문 「구조와 분석」 시편과 소설편 각1권씩,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에 이르기까지 64명의 각계인사들이 쓴 「64가지 만남의 방식」등 무려 1백30명의 필자가 총동원된 책 4권이 봉정됐다. 『사적인 회갑연은 싫다』면서 화갑연을 극구 사양했지만 부인 강인숙교수(건국대 국문과)와 함께 인간문화재 황혜성씨가 정성들여 마련한 전통회갑상에 앉아 두 아들이 올리는 술잔을 받는 그의 모습에서 참석자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끊임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하나를 느꼈을 것이다.
  • 테크노아트/“곧 주요예술로 등장”/과기진흥재단,「과학+예술」세미나

    ◎양쪽분야의 조화문제 집중 조명 『비디오아트등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난 테크노아트도 진정한 예술의 범주로 묶을수 있는가』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사무총장 윤영훈이 3년째 마련하는「과학+예술」세미나가 지난 11일 서울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렸다. 세미나에서 포항공대 박이문교수는 「하이테크아트는 정말 예술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세가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첫째,날로 발전하는 과학지식과 과학기술을 어떻게 에술의 향상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을까하는 문제이며 다음은 보기에 상반되거나 아니면 이질적인 과학과 예술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조화시킬수 있느냐는 사회학적인 문제이며 예술과 과학이 개념적으로 양립하고 상호관계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철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티와 테크놀로지아트」를 발표한 미술평론가 이종숭씨는『테크노아트가 아직까지 현대미술의 주변부 문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 주변부 문화현상이 문화의 중심부로 부상한 것이 역사의 보편성이므로 테크노아트도 멀지않아 문화예술의 중심부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원광연교수는「컴퓨터혁명과 인공현실의 실현」이란 주제발표에서『사진·영화·TV등 신기술을 통해 새로운 매체가 생기면 대부분 예술과 오락으로 연결됐다』면서『컴퓨터를 이용,현실감을 만들어내는 인공현실(가상현실·Virtual Reality)감도 하나의 예술의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비온뒤 땅 굳는다” 두정상 화답/한·일 경주정상회담 열리던날

    ◎김 대통령 “미래 여는 유익한 만남 됐다”/화기넘친 만찬뒤에 같은층서 하룻밤 김영삼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총리는 6일 하오 경주 보문단지내 힐튼호텔에서 양국 새정부 출범이후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만찬을 함께 한뒤 호텔 같은 층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등 시종 화기 넘친 분위기 속에 우의와 신뢰를 다졌다. 양국 정상은 7일 상오 조찬을 함께 하고 공동기자회견을 가진뒤 경주 일대 유적을 관광할 예정이다.호소카와총리는 관광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이한한다.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단독정상회담을 예정보다 1시간25분이 많은 2시간25분동안 계속하면서 격의없고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현안을 논의. ○2시간 25분간 회담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먼저 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에 대해 언급,『개혁이 성공해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을 확고히 할수 있다.그것이 한일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의 번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평가. 양국 정상은 과거사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에 이어 북한 핵문제와일·북한수교,러시아의 동해 핵폐기물 방류문제등으로 대화를 풀어나갔다. 회담을 마무리하며 김대통령은 『일본측이 회담장소를 다른 곳으로 제의했지만 경주는 천년의 고도로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할수 있었던 수도였고 3국을 통일한 승자의 도시』라면서 『호소카와총리도 일본 총리직을 오래 계속하면서 개혁을 성공하라는 뜻에서 경주로 초청했다』고 설명. 호소카와총리는 『한국과 일본내에는 서로가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었고 「한·일 신시대」또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등 말로는 여러 얘기가 있지만 말·슬로건보다 중요한 것은 양국 정상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고 마음 가볍게 서로 왔다갔다 하며 무엇이든 의논할수 있는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오늘 김대통령을 만나보니 얼마든지 그런 관계를 구축할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고 친근감을 표시. 두 정상은 이어 확대회담 장소인 파인룸으로 옮겼으나 만찬시간에 쫓겨 10분동안 배석자들만 소개하고 회담을 마쳤는데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소개말고는 더 얘기하기가 어렵겠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 ○…이날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유병우 외무부 아주국장은 『호소카와총리처럼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를 하는 정치인은 처음 봤다』면서 『두분이 너무 진지하고 기분좋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다 지났는지도 몰랐다』고 분위기를 설명. 유국장은 『지금까지 몇차례 정상회담을 경험해봤지만 오늘처럼 자연스럽고 우애깊은 자리는 처음』이라면서 『아마 영원히 기억에 남을 최고의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고 첨언. ○「오아비」를 「진사」로 한편 일본 외무성이 당초 호소카와총리에게 준 만찬답사에는 사과의 표현이 일본어로 「오아비」(사과와 사죄의 중간정도)였으나 호소카와총리가 이를 바꿔 「진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이경재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이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고 전언. ▷만찬◁ ○…호소카와총리를 위한 공식만찬은 단독정상회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예정보다 30분이 늦은 하오 7시 30분쯤 시작. 양국 정상내외는 이에 앞서 만찬장인 다빈치룸에 함께 들어서 우리측 10명,일본측 9명 등 참석자들을 접견. 만찬에는 확대정상회담 배석자외에 우리측의 경우 박관용비서실장,의전장,주일대사 부인 등이 참석. ○김 대통령 건배제의 우리 정부는 양국 정상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도록 자리를 나란히 배치하고 그 곁에 상대국 부인이 앉도록 했는데 당초 계획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게 했었다. 환한 얼굴로 입장,이날의 정상회담이 원만히 진행됐음을 시사했던 양국정상은 식사를 들기 전에도 웃음속에 대화를 계속. 만찬은 김대통령의 건배제의와 건배사에 이은 호소카와총리의 답례 건배순으로 진행. 준비된 식사는 순 한식으로 주 메뉴는 ▲3색 밀쌈말이 ▲호박죽 ▲옥돔찜 ▲신선로 ▲갈비살구이 및 밥과 만두국. 여기에 밑반찬으로 맛김,2색나물,오이소박이,백김치가 나왔고 포도주를 곁들였다. ○“사진 잘 내달라” 농담 ▷회담장도착◁ ○…이날 낮 12시5분 호텔에 먼저 도착한 김대통령은 하오4시12분쯤 호소카와총리를 태운 승용차가 호텔입구에 들어서자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현관 앞으로 걸어나가 영접.김대통령은 외빈용 캐딜락승용차에서 내리는 호소카와 총리와 반갑게 악수하며 『반갑습니다.환영합니다』라고 인사. 호소카와총리도 『반갑습니다』라고 답례하고 손여사와도 악수하며 인사를 나눈뒤 부인 가요코(개대자)여사를 소개,김대통령 손여사와 차례로 인사. 이어 양국정상내외는 호텔1층 로비에서 함께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사진기자들에게 『사진을 잘내 달라』고 가볍게 농담.김대통령은 이어 『어제까지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 비가오고 있다』며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반가운 사람이나 귀한 손님이 오면 비나 눈이 온다』고 인사. 이에 호소카와총리는 『비온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한국말이 있듯이 일한관계도 그렇게 새로운 관계로 발전됐으면 좋겠다』고 화답.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그 속담이 많이 쓰인다』며 『비온뒤 땅이 굳어지듯 됐으면 한다』고 응답. ○머릿기사 일제 보도 ○…일본의 신문들은 7일자 조간에서 한일정상회담 기사를 양국 정상의 사진을 곁들여 1면 머릿기사로 크게 취급하고 호소카와(세천호희)일본총리가 식민지배 등 과거사와 관련,한국민에게 깊이 사죄했다고 일제히 보도. 도쿄(동경)신문은 「수상,식민지 지배를 사죄」제하의 1면 머릿기사에서 호소카와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초래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깊은 반성과 사죄를 하고 싶다』며 솔직한 사죄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조간신문들은 이밖에 별도의 해설기사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이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일제히 분석.
  • “그림값 비싸고 국제교류 폐쇄적”(미술화제)

    ◎미 미술지/외국시각서 한국미술계 해부 미국의 미술전문 월간지 「아트 인 아메리카」 최근호가 한국미술계의 난맥상과 정부의 그릇된 미술정책등을 낱낱이 파헤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월간「미술세계」10월호에 인용,게재된 「한국으로부터의 보고」(Report from Korea)란 글에서 이 잡지는 한국 미술계의 현황과 특성을 외국인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지적,한국미술계에 경종을 울려주고있다. 이 글은 우선 한국 유명화가의 경우 보통 작품1점당 가격이 5만∼8만달러(한화4천60만∼6천5백만원)로 매우 비싼 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국내자금의 해외유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한국정부의 보호무역주의적 통화정책으로 해외화상들이 한국에서 외국작품을 판매하는것은 극히 어려워 이들이 한국 미술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가들은 국내전시만 고집할뿐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전시회를 갖지않고,서양화상들 역시 한국전시를 꺼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 정부가예산을 지원하는 전시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단 두곳 뿐이며 일반 전시활동은 결국 1백개가 넘는 개인화랑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화랑은 상업화랑과 비상업화랑의 구분이 매우 애매하고 대부분이 세들어 있는 형편이라고 밝히기도. 게다가 대부분의 화랑이 수입을 낮춰 보고하기 위한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일이 일반화돼 있으며 이러한 관행은 서구인들의 진출을 한층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맥과 학맥위주의 경직된 한국화단에 관해서도 언급,서양화단의 경우 박서보 윤형근씨가 구축한 정상에 근접해야만 호평을 받고 혁신적이며 이단적인 새로운 시도는 무시당한다고 비평했다. 이와함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의 말을 인용,『한국미술계의 권력구조는 서울대와 홍익대의 경쟁관계를 통해 이해할수 있으며 두 대학의 갈등은 객관성있는 전시와 해외전시를 어렵게 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한국의 문화체육부는 미술계에 어느정도 자금지원을 하고있으나 어떤 전시도 직접 주관하는 예는 없으며 이는 일본정부의 잘 조직된 지원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고 덧붙였다.
  • 잠자던 과학교육 일깨운 “엑스포 충격”(교육 개혁해야 한다:2)

    ◎현장서 진단하는 문제점·개선방향/상상 못했던 최첨단세계에 경탄/“현장학습·실험 중시” 새진로 각성 ▷외우기론 안된다◁ 『야,열차가 뜬다』 『처음보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요즘 93대전 EXPO 행사장은 초·중·고교생들의 탄성으로 가득하다. 학생들이 「대전」에서 받고있는 「과학의 충격」은 대단하다. 지난 21일 상오10시쯤 엑스포 자기부상열차관에서 미래의 교통수단이라는 최첨단 자기부상열차를 탄 남춘천국민학교 4학년 학생 80여명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전시장 탄성·환호 열차가 레일위를 떠서 달린다는 사실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한 놀라움이었다. 『열차가 떨어지지는 않나요』부터 『열차가 뜰 수 있는 다른 원리는 없나요』라는 질문까지 아이들은 동승한 자기부상열차 안내요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부었다. 인솔교사 이말숙씨(34)는 『이틀동안 엑스포를 단체관람시켰는데 아이들이 그토록 대단한 호기심을 나타낼 줄은 미처 몰랐다』면서 흐뭇해했다. 어린 국민학생들만이 놀라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일 하오 대전엑스포 전기에너지관안의 미래 주거도시 모형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전시물을 구경하던 조영재군(17·천안북일고 1년)은 넋을 잃은 채 미래의 주거도시모습과 주택시설을 관찰하고 있었다. 조군은 『앞으로 공대를 지원하려고 하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는 장래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었고 이론위주의 공부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다』면서 『그러나 이곳에 전시된 태양에너지로 움직이는 첨단미래도시의 모습과 주거모습을 보고 나의 미래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준민군(대전 대덕고 1년)은 지난 19일 하오 정보통신관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화상통신장치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원리장치를 직접 조작하며 자리를 뜰줄 몰랐다.『정보화산업의 기술이 이렇게 최첨단에까지 도달해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는 것이 박군의 말이었다. ○국제화시대 실감 지난 21일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온 이동하군(16·충남 공주중3년)은 엑스포에 전시된 각종 첨단 과학기술이 자신이 평소 학교에서배운 기초 과학지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평소 실험은 거의 없고 외우기만하는 학교공부에 갑갑함을 느껴왔던 이군이 엑스포를 보고 가슴이 마구 뛴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엑스포는 아이들에게 「국제화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충격」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하오 4시쯤 국제전시구역의 중국관을 관람하고 나오던 권봉근군(15·경남 함양중 2년)의 표정은 다소 들떠있었으나 『세계 1백7개국을 여행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오히려 진지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평범한 곳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19일 재생조형관에서 만난 김양신양(14·수원 영복여중1년)은 백남준씨의 고물 TV을 이용한 대형 거북선 비디오아트 전시물등 각종 재생 예술품들을 보며 『폐자원을 활용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만들어 낸것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그동안 죽은 교육을 시켜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곤 합니다』 21일 학생들을 인솔하고온 황성배교감(59·서울 홍익사대부중)의 말이다. ○“미래에 자신감” 『그동안 학교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이론공부,그것도 외우기 뿐이었어요.아이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 준 적도 없고 학생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교육을 너무 등한히 해왔어요』 단체관람학생들의 진지한 관람을 바라보며 최락훈교사(51·전북 전주중앙여중)는 『엑스포를 통해 부족한 현장교육을 보완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우리의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대전엑스포를 관람한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모두 2백50여만명으로 전체의 45%정도.나머지 학생들도 앞으로 모두 엑스포를 관람하게 된다. 학생들은 생생한 과학교육현장에서 내일에의 꿈을 가꾸고 있다. ◎현미경 관찰법 등 기초부터 착실히/흥미·관심 이끌 노력을/투자 등 혁신책 세워야 ▷어떻게 가르칠까◁ 많은 학생들이 대전EXPO를 보고 놀라고 있다는 사실은 학과시험과 입시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맹점을 가장 단적으로 증명하는 현상이다. 교과서와 이론 위주의 수동적인 주입식·암기식교육이 우리 청소년들을 「과학 지진아」로 만들었다는 심각한 상황을 우리는 너무 늦게 목격하고 있다. 지난해 한 교육전문기관의 조사결과 과학과목의 경우 전체 이해도가 50%미만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국민학교때는 2.1%,중학교 22.4%,고등학교는 과목별로 25∼42%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들이 「과학」에서 이처럼 멀어지고 있다. 오는 21세기는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경제성장은 과학기술과 정보력이 기초가 되어야한다. 학교교육은 학생들이 21세기의 첨단과학기술시대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을 쌓도록 해주는 데 목표를 두어야한다. 특히 과학교육은 이를 위해 학생들의 창조력개발과 자발적 탐구정신의 함양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과학과목의 탐구정신은 현장교육·실험실습등을 통해 개발된다. 탐구활동은 크게 보고 듣고 느끼거나 만지는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 데 이제까지 우리교육은 보고 듣는 수준에서 그것도평면적인 교육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과학교육을 위한 예산가운데 초·중·고교생 1인당 1년예산은 5천5백50원,순수 실험재료비는 1인당 1천4백38원에 불과했다. 이러한 투자로 과학교육 운운하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열악한 과학교육비가 결국 「값싼 과학」을 만드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선학교에서 예산부족을 핑계삼아 과학교육을 등한시하는게 아니냐는 점이다. 과학적 탐구방법을 가르치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령 현미경같은 평범한 실험도구로 조그만 나뭇잎 하나를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도 얼마든지 탐구정신과 과학적 상상력을 기를 수 있다. 유전공학자가 새로운 유전자법칙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도 최첨단 전자현미경 덕택이 아니라 현미경을 통한 꾸준한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꾸준히 탐구정신과 상상력을 통한 과학적 창조력을 배양할 기회가 없어지며 일선교사들도 시험점수 잘따는 학생을 길러내는데 신경 쓸 뿐 이미 과학은 안중에 없는게 현실이다. 엑스포를계기로「과학」에 새로운 흥미와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학생들이 계속 탐구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과학교육 혁신책을 마련하는 일이 우리교육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기본원리 충실」로 이룬 “선진화”/실습캠프 설치… 일선교사 철저한 재교육/미국/초중고 실험기자재비 전액 국가서 지원/영국/「이과 진흥법」 제정,6천5백억 투입 착수/일본 ▷외국의 경우◁ 미국·영국·일본 등 과학선진국들은 학생들의 과학교육을 전부 현장위주 또는 실험·실습위주로 실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기초과학을 중시하여 기본원리교육에 치중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창의력 개발과 흥미유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영국의 과학교육은 현장견학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 하나만 봐도 우리 교육현실과의 현격한 차이를 실감나게 한다.동물·식물·곤충·지질부등 6개 연구부와 4개 지원분야에 8백60명의 전문인력이 1천3백만 파운드의 예산으로 연구·전시·교육활동을 하고 있으며 6천6백만점의 표본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이같은 박물관과 함께 초중고 교사가 실험실습을 위해 기자재와 비용 내역서를 작성,제출하면 국가가 이를 전액 지원하는 제도를 구비해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살아있는 교육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각급학교에 오버헤드 프로젝트(컴퓨터 영상화면조작기기)·슬라이드·영화필름등과 각종 실험실실습장비를 갖추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여기에다 주별로 다양하게 개발된 프로그램을 수업시간에 실시하고 있다.특히 전국을 일률적으로 포괄하는 시간편제가 없고 각 지역별로 일선 학교가 형편에 맞게 교육을 실시하도록 다양한 모델을 준비해놓고 있다. 학생들의 과학적인 사고배양을 목표로 하는 일본은 실험실습을 반드시 병행해 과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고등학생들에게 직접 실험실습계획을 작성,실험을 통한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문부성은 「이과진흥정비법」을 만들어 실습기자재를 확충해왔으며 앞으로 12년간 국민학교엔 4백64억엔,중학교에 4백70억엔의 국비와 지방비를 들여 실험실습기자재를 확충키로 했다. 우리나라의 경쟁국인 싱가포르의 경우 교사들에게 학교자료실을 개방,슬라이드·비디오등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과학교사 협의회는 고급중등학교에서 배우는 각종 과학교재를 개발,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90년 5월 연방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교육·인력자원분과위원회를 설치,과학교육을 연방차원에서 조정하고 있는 미국은 92회계연도에 위원회 예산의 65%인 19억달러를 국립과학재단과 초중등 과학·수학교육에 배정해 집행했다. 이는 연간 학생 1인당 과학실습비가 교육부예산의 1%정도에 지나지않는 우리나라의 형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미국은 이와 함께 학생들을 위한 실습을 강화한 과학캠프등을 운영하고 과학교사의 과학적인 배경을 향상시키는 재교육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초·중등교육과정 개편,고졸자에 대한 직업훈련제도 확충,생산현장에서의 기술활용 증대와 함께 초중등 학교와 대학간의 고속정보망을 마련,과학도서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정부간의 정책연계성을 확보,현장실습을 통한 초중고생의 과학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최근 일본이 컴퓨터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실을 중시해 각 대학마다 「연구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 2자치지역 어떤곳

    ◎예리코/예수가 세례받은 역사적 고향/가자/「인티파다」 시작된 지중해연안 팔레스타인의 자치대상 1호인 예리코시는 요르단강 서안의 역사적 고도로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문이며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으로 가늘고 길게 뻗친 가난한 인구과밀 지역이다.이들 지역은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골란고원,동예루살렘 등 이스라엘 점령지 4곳의 총인구 1백80만명 대비 44%,총면적 7천4백62㎦ 대비 5%를 차지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낮은 도시인 예리코에는 요르단강 서안 인구의 1.5%인 1만5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고 경계선내에는 유태인 정착지가 없다.평균 해면보다 2백50m나 낮은 요르단강 근처 푸른잎이 무성한 오아시스에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의 현대식 중심부는 9천년전에 세워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고도의 폐허에서 2㎞떨어진지점에 건설돼 있다.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200년에 그들 성직자들의 나팔소리로 예리코의 거대한 성벽이 무너진뒤 이 도시를 정복했다. 고도의 폐허에서 2∼3㎞ 떨어진 곳에 예수가40일간의 금식기간중 사탄의 유혹을받은 유혹의산과 예수가 요르단강에서 세례받은 장소가 있다. 한편 가자지구는 ㎦당 2천3백50명꼴의 인구과밀지역으로 팔레스타인 피란민이 대부분인 77만5천명이 비참한 수용소나 임시막사에서 살고 있다.지난 87년12월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의하는 인티파다(봉기)가 시작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의 빈민지구였다. 가자지구 주민 3만∼4만명은 이스라엘로 통근하면서 일용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나 지난 3월 점령지 봉쇄 이후 발이 묶여 있다. 이 지역에는 점령지까지 포함하는 예레츠(대)) 이스라엘주의를 부르짖는 약5천명의 완강한 유태인 정착민들도 살고 있다.
  • 여류명창 성창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5)

    ◎동·서편제 통달한 판소리의 달인/혼신 다한 소리인생 40년… “한 서린 득음” 정평/빼어난 성조·변화무쌍한 음색에 관객 매료/서예·국악기에도 깊은 조예… 「심청가」로 인간문화재에 성창순은 본래 강산제 「심청가」로 인간문화재가 된 여류명창의 한사람이다.음이 낮고 처절한 「심청가」는 전곡이 지나치게 구성지고 구슬퍼서 극장공연 첫날에는 소리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곡이기도 하다.그러나 일명 서편제로 불리는 성창순 「심청가」는 4시간반의 완창을 변화무쌍하고도 맛갈지게 구사하여 지루감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부친 심봉사를 그리워하며 심황후가 기러기편에 편지쓰는 대목에서 「한자쓰고 눈물짓고 두자쓰고 한숨쉴제 눈물이 먼저 떨어져 글자마다 수묵이 되어」는 이조가곡과도 같은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애절한 계면조뿐아니라 흥부가중에서 「놀부심술타령」 「제비로정기」 「왼갖비단타령」등 숨막히게 전개되는 자진몰이 휘몰이 속에다 우람지고 담대한 가락을 얹어 「달기가 승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흥·청의 심맥 고수 그는 판소리는 넘어가는 가락과 내뽑는 목청에 흥과 청을 담아 판소리의 심맥인 「흥청거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지키고 있다.그래서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 흥취가 넘치고 그의 연희는 유유하고 자적하다. 최근 몇년간은 남도락에 심취하여 지난봄 국악대공연에서는 느린 육자배기에다 잦은 중몰이장단,개구리타령으로 절정을 이루더니 흥타령에서 축 늘어진 후 진도아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을 살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생전에 객기로 맘대로 놀아볼거나」 가사의 끝이 「거나」나 「구나」로 끝나는 육자배기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잘 부르려면 가장 어려운 곡으로 「그의 육자배기는 늦은 진양조장단에 한이 듬뿍 배어 멋으로 일렁이는 유장한 가락이 일품」이라는 것이 황병익교수(이대)의 말이다. 지난 6월에는 KBS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현악과 판소리 「춘향가」의 협연을 갖기도 했다. 이「춘향가」관현악곡은 작곡가 김희조씨가 성창순명창과의 협연을 위해 8개월간에 걸쳐 재구성하여 편곡한 것으로 생소한 관현악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마치 수만군을 거느린 여중호걸처럼 2시간30분의 완창을 당당한 풍모로 이끌어나갔다. 한복차림에 쥘부채,고수 한사람의 북장단에 의존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색다른 멋과 음악적 변화를 보인 역시 돋보인 무대로 지적된다. 북반주에 맞춘 판소리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아니리」와 「발림」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는 관현악연주에도 그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곧고 시원한 통큰소리,익살과 애조와 애원의 성음치레로 관객의 흥겨움을 흥청망청 당겨주었다. 타고난 재능과 기량이 번뜩이는 재인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운명을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며 「죽으면 죽었지 2등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배짱이 그것이다. ○예향 광주서 출생 그의 판소리 입문부터가 말못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도 단가 한마디씩은 부른다는 전남의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부친은 권번에서 북을 가르치던 명고수 성원목씨.어릴때부터 북장단을 즐기고 동네 굿구경에 날저무는 줄 모를만큼 예살(예살)이 거센 편이었으나 부친은 이를 극구 말려 걸핏하면 매맞기 일쑤,집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다.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오히려 부친에게 『나는 소리를 배우겠소,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어쨌든 시집이나 가서 고생하는 여자는 되지 않을 거요』하고 맞섰다.그리고 몇날을 울며불며 밥을 굶고 몸져눕자 「딸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부친이 져주었고 광주 북동에 있는 소리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생이 『저아이는 소리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라』고 했다.대경실색을 할 일이었으나 그는 내색없이 『소질이 없기는 왜 없어.두고보라지,내가 못해낼 줄 알고?』 이러고 학교를 때려치우고는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버렸다.그때 나이 15세.그러나 여기서도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시절에 만난 오정숙·박옥진은 스승으로부터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로 죽어도 남에게 뒤질 수 없는 그의 심경은 못내 참담하기만 했다. 『두고보자.지금은 너희가 나보다 나은 줄 알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들의 소리연습을 엿보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라면 다소 자신이 있었다.어릴때부터 부친의 북장단이 귀에 익어 어떤 악기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가야금·거문고·칠현금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한번 제대로 배우고 말겠다는 집념을 떨치지 못했다.그렇게 4년을 보내고 5·16직후 국극단이 해산해버리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성사근처 와룡동에 정착하여 박초월씨에게 거문고를 배우다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만정 김소희씨의 문하에서 동편제소리인 강산풍월과 심청가 바디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전처음 『갈고 닦으면 좀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그후 김소희씨의 권유로 보성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에 있는 정응민선생을 찾아나섰다.보성소리는 판소리 서편제중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연고를 맺고 있는 소리꾼들만의 소리제로 우조·평조·덜렁제·경두름제의 다양한 음색과 감칠맛이 특색이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인적없는 여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30리길 산골,밥상을 갖다놓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만큼 바닥이 기울어지는 누추한 단칸방에서 그는 그를 구제하는 소리의 진수에 빠져 모진 고생을 감내하는 뼈저린 과정을 거쳤다.하루 15시간에서 어느때는 18시간,삭신이 늘어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으나 불에 구운 왕소금으로 부운 목을 달래면서 그는 오로지 소리에만 매달렸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혹독한 겨울,여름내내 4개월동안 긴장마가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기울어진 방에 앉아 목청을 뽑던 고된 수련과 공력은 이제는 그의 일생일대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그로 인해 박유전∼정응민∼그의 아드님인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계보에 4대째로 「소리호적」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부친이 소리를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또다시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 했다.이번엔 남들이 듣고 있는 명인·명창 칭호가 그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보성에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이번엔 하성이 나오지 않았다.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환갑이 다된 박록주선생을 모시고 안양에 있는 삼막사로 들어갔다.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있었으나 몸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스승은 『명랑하게 불러라.소리는 미련해야만 한다.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그리고 인분을 먹어야만 낼 수 있다는 소리를 너는 네 집념과 오기로 백일만에 끌어냈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한스럽고도 깊고 장려한 그러나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진양조 여섯박자를 능란하게 엮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적벽가」에 나오는 한문의 뜻을 알기 위해 이번엔 우전 신호렬선생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마음이 밝아지자 눈도 밝아지는 듯했다. ○청명한 소리 얻어 68년부터 명창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해외공연,75년 남원 춘향제때는 우산을 쓴 관중들이 빽빽이 늘어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자신이 취해 빗소리도 관중의 술렁거림도 들리지 않았었다.그리고 내게서 빠져나간 소리가 관객의 가슴속에 전달됐다가 다시 내몸속으로 들어오는 자유자재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이른바 「소리가 앵기면서」 솟구치는 환희가 분류처럼 가슴 한복판을 꿰뚫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동편제 서편제의 갈래를 성큼 뛰어넘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초월의 경지,요즘은 소리속에 온자한 깊이가 배어들고 있는 시기다.더구나 지난해 4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한 부군 양명환씨가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소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이루고 싶은대로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그는 명창 칭호에 손색이 없는 반듯한 예술가의 단행을 평생 지키고 싶은 또하나의 소원을 지니고 있다. ▷연보◁ ▲1934년 1월10일 전남 광주출생 ▲1950년 광주여고1년때 김연수 창극단입단,조선국극단등 여성국극단에서 창극 활동 ▲1955년 공기남선생에게 「심청가」2년 사사,한만갑제 거문고 김난주씨에게 사사,강태홍제 가야금 원옥화씨에게 사사,춤광대 김영철씨에게 칠현금 사사 ▲1961년 만정 김소희씨에게 「심청가」「흥보가」3년간 사사 ▲1964년 전남 보성 정응민씨에게 강산제 판소리(박유전판)「심청가」「춘향가」「수궁가」사사 ▲1965년 박록주씨에게 안양 삼막사에서 백일공부 ▲1965년부터 우전 신호렬씨에게 한문과 서예 사사 ▲1968년 신인서예전 서예부 특선,제17회 국전 서예부 입선,국악협회 주최 명창대회 「춘향가」로 세종상 ▲1969년 김소희씨와 일본 교포위문공연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판소리「흥보가」「민요」공연,유럽지역 순회공연(파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1977년 「심청가」완창(4시간30분) 서울시민회관별관 ▲1979년 「춘향가」완창(5시간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0년 일본 와세다대학서 「심청가」공연 ▲1981년 제1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심청가」완창공연 ▲1984년 신재효100주년기념공연 「춘향가」공연(국립극장 대극장) ▲1985년 「춘향가」전판공연(국립극장대극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후보자 지정·국악협회 이사 ▲1988년 「심청가」 서독 쾰른음대 초청공연 ▲1990년이후 해마다 국악대공연 ▲1991년 강산제 판소리「심청가」로 인간문화재 지정,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춘향가」공연 ▲1992년 「심청가」완창(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야외음악당 공연,일본 도쿄서「심청가」공연,대한민국 국악제 독창,사단법인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설립·이사장취임 ▲1993년5월 호주 브리즈번 세계음악제에 한국대표로 출연,6월 KBS국악관현악단과 「춘향가」완창공연,부산문화극장에서 판소리 5마당 큰잔치 「심청가」공연,7월 새한전통예술 보존회 설립기념 「민족예술국악대공연」 ▲1977년부터 국악고·추계예술대·단국대·전남대 출강 KBS 제1회 국악대상 수상·국악부문 방송대상 수상 「춘향가」「심청가」「흥보가」(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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