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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여 정상급 외국악단 몰려온다/올 음악무대 “풍성”

    ◎「동구권 편중」 탈피 다양한 음악세계 펼쳐/세종회관·예술의 전당 대관일정 “만원” 92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해외의 뛰어난 음악가와 단체의 내한연주를 즐길 수 있는 해가 될 것같다.20개에 육박하는 국제수준의 교향악단과 10개를 넘는 1류급 실내악단,그리고 전성기에 있는 솔리스트들이 대거 한국을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또 동구권 연주단체의 편중현상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한예정인 동구권 연주단체의 수가 지난 해보다 늘어났음에도 다른 지역 연주단체의 초청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아직 성사가 불투명한 공연도 있지만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의 대관일정을 중심으로 올해 예정된 해외 음악가의 초청현황을 알아본다. ▷1월◁ 빈 국민가극장 관현악단이 19,20일 신년음악회를 갖는다.이 관현악단은 60여명의 단원이 오페레타를 중심으로 빈 특유의 정서를 표출하는 악단으로 알려져 있다. ▷2월◁ 파리오페라관현악단의 수석주자로 구성된 라주모프스키 현악4중주단이 내한한다. ▷3월◁ 르네상스다성음악에 뛰어난데다 폴 사이먼의 유행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사하는 킹스 싱어즈를 비롯,피아니스트로 더욱 유명한 필립 망트르몽이 지휘하는 빈 쳄버오케스트라와 자그레브 솔리스티,필하모니아 현악4중주단 등 실내악단이 줄을 잇는다. ▷4월◁ 몬트리올·이무지치 실내악단과 미국의 포틀랜드 청소년교향악단이 연주회를 갖는다. ▷5월◁ 브룸스테트가 지휘하고 바이올린의 린초량이 협연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가 지휘하는 몬테칼로필하모닉,밤베르크심포니 등 교향악단과 부다페스트실내악단,콘센루스 헝가리쿠스,빈필하모닉솔리스트라,노르웨이 국립음악원 실내악단이 잇따른다.또 부친 다비드의 대를 이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미고르 오너스트라흐 독주회와 카를로스 보넬의 기타독주회도 예정되어 있다. ▷6월◁ 소련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게나리 로체스트벤스키가 지휘하는 스톡홀름필하모닉과 체코심포니,헝가리 국립교향악단이 내한하며 함부르크 모차르트오케스트라와 키예프 쳄버오케스트라 등 실내악단,그리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인 앙드레 와츠의 독주회와 크리스티나 오르티즈의 서울시향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7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서 이름을 바꾼 성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의 내한이 추진중에 있고 뉴욕 팝스오케스트라와 롱아일랜드 유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확정됐다. ▷8월◁ 우리 청소년 연주자가 대거 참여할 아시안 유스오케스트라와 1백5명의 남성으로만 구성된 소련 적군합창단도 내한한다. ▷9월◁ 런던 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호주 실내악단에 이어 피아니스트 라자 베르만이 아들 파벨과 듀오콘서트를 가지며 세계적인 클라리넷주자인 제르바스 드 페이에도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10월◁ 「환상의 지휘자」로 불리는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뮌헨필하모닉과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국립교향악단이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란 어떤 수준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또 바르샤바심포니와 로열필하모닉 팝스오케스트라,폴란드 국립오페라단,빈 소년합창단,산도르 베그가 리드하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가 내한하며 테너 페터슈라이어도 리트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1월◁ 「4계」로 유명한 클라우디아 시묘네가 지휘하는 이 솔리스티 베네티 외에 헝가리 라디오심포니와 바덴바덴심포니 등 교향악단,파리 나무십자가와 스윙글 싱어즈 등 합창단이 공연한다.이밖에 체코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수크도 독주회를 갖는다. ▷12월◁ 「4계」에 있어 이 솔리스티 베네티와 또 하나의 쌍벽인 이 무지치와 클리블랜드 현악4중주단이 내한공연을 갖는다.
  • 흑인치사 두순자씨 집유싸고/LA판­검사 공방

    ◎검,판결 너무 가벼워 재판부 기피/판,“구형대로 선고해야 하냐”묵살 미국 로스앤젤레스시에서 폭행을 가한 흑인소녀를 권총으로 쏴 숨지게한 한 한인교포 두순자씨(51·여)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둘러싸고 한인과 흑인간의 불화가 증폭되면서 판사대 검사의 대립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이라 라이너 로스앤젤레스시 검사장은 18일 『사람을 죽인 두여인에게 징역 10년에 집행유예 5년,벌금 5백달러,4백시간 지역사회 봉사활동,피살자의 장례비 지급 등의 가벼운 판결을 내린 것은 심각한 오심』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앞으로 이 사건 담당이었던 조이스 칼린 판사가 맡는 형사사건에 대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도록 부하검사들에게 지시했다. 이에 대해 판사들은 재판부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분노하고 있다. 두여인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칼린 판사의 상급자로 재판부 배당책임을 맡고있는 리카도 토레스 수석판사는 『라이너 검사의 행위는 한마디로 판사들을 위협,검사의 구형대로 선고토록 하려는 정치적 계략』이라고 비난하고 『앞으로 칼린 판사가 계속 형사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인 사회와도 가까운 것으로 인정돼온 라이너 검사장의 이번 행위는 내년 6월로 예정된 선거에서 3번째 연임을 위해 흑인유권자의 표를 의식한데서 나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두여인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이곳 흑인지도자들은 이날 모임을 갖고 재심을 요청하기로 하는 한편 내년 6월의 선거에서 칼린 판사의 재인준을 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소,KGB해체 결정/정보기구 3개 새로 창설

    ◎국가평의회/경제협정 초안도 승인 【모스크바 AFP AP 연합】 소련 과도기 최고 통치기구인 국가평의회는 11일 국가보안위원회(KGB)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비관영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독립적인 논조를 견지해온 인테르팍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주재로 10개 공화국 지도자와 주요 연방 각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개막된 국가평의회가 이같이 표결했다고 전하면서 첩보 및 국경수비 등 안보업무를 관장할 새로운 기구들을 창설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소 연방 과도기 내각을 이끌고 있는 이반 실라예프 러시아공화국 총리는 이날 소련의 장래를 결정할 경제협정이 오는 15일 서명된다고 밝힘으로써 「새로운 소련」이 곧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임을 예고했다. 인테르팍스도 이와 관련,국가평의회가 경제협정 초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소 연방조약과 함께 향후 소련을 이끌어갈 근간이 될 경제협정 체결과 관련,일부 공화국이 금융 등 주요 부문에 대한 중앙의 통제에 불만을 품고 이를 받아들일 수없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등 마찰이 적지않아 서명에 앞서 상당부분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테르팍스는 또 국가평의회가 KGB를 해체하고 이 기구가 그동안 관장해온 첩보 및 국경수비 업무를 관장할 독립적인 성격의 3개의 중앙정보기구와 공화국간의 문제를 담당할 위원회 등이 설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미 독립한 발트3개 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공화국중 그루지야 및 몰도바(구 몰다비아)를 제외한 10개 공화국 지도자와 실라예프 총리,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 시장,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 및 경제협정 초안작성을 주도해온 급진 경제학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등이 참석했다. 한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협정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공화국들에 대한 중앙은행의 통제와 외채분담문제 등 장애요인이 『조속히 제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최고회의 의장(대통령)도 이날 국가평의회 회동후 기자들에게 경제협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관측통들은 러시아공이 앞서 협정내용이 중앙의 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서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위협해 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옐친의 「태도 변화」등이 경제협정 실현에 부심해온 고르바초프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숙청·암살·테러… 「공포의 권부」/해체되는 KGB 「어둠의 역사」/레닌이 반혁명분자 제거위해 창설/스탈린시대엔 2천만명 숙청… 악명 떨쳐/케네디·지아 대통령 암살등 연루 혐의 볼셰비키혁명 이래 「공포의 권부」로서 소련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무대로 테러,암살,음모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KGB(소련국가안보위원회)가 마침내 그 오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끄는 국가평의회는 11일 KGB의 해체를 공식 결정하고 독립적인 성격의 중앙정보기구와 첩보 및 공화국간 국경문제 등을 담당할 위원회를 새로 설치해 그간 KGB가 맡아온 업무 일부를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KGB의 해체는 공산당의 해체와 공산주의의 몰락,그리고 소 연방의 해체 등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KGB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공산당으로 대변되는 구체제 가치를 수호하는데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지킬 가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직후인 8월28일 KGB의 최고기구인 간부협의회를 해체하고 KGB의 주력부대인 국경수비대 20여만명을 국방부로 이관하는 등 KGB를 사실상 해체하기 위한 첫 조치를 취했었다. 그보다 이틀전인 26일 소련 국민들은 KGB본부앞 광장에 서있던 KGB 창설자 제르진스키 장군의 동상을 끌어내려 이 기구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증오심이 얼마나 깊은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레닌은 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7년 12일 반혁명 음모에 대항한다는 목적으로 KGB 전신인 체카를 창설했다. 당시 체카는 「반혁명」분자들을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1919년말까지 1년 남짓 혁명수호라는 미명하에 1백만명 이상의 소련국민들이 정식재판 없이 처형됐다. KGB가 소련국민들에게 진짜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스탈린의 철권통치를 거치면서부터이다. 스탈린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 조직을 이용,내외국민에서 정적에 이르기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자행했다. 1935년부터 3년여 동안 합동국가정치보안부(OGPU)라는 이름하에 KGB는 악명높은 베리야의 지휘아래 전국민을 대상으로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이렇게 숙청된 사람이 2천만명. 당간부만 해도 수십만명이 숙청당했다. 지금도 KGB의 규모는 국내 사찰요원 4만명,해외 공작요원 2만명,국경수비대 20여만명,기타병력을 합쳐 약 6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 이들은 소련국민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사찰활동을 벌이는 외에 국제무대에서 쿠데타,요인암살 등 공포의 막후역할을 맡아왔다. 멀리는 스탈린의 정적 트로츠키 암살,케네디 암살,81년 교황암살기도,가까이는 88년 8월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 암살사건에 이르기까지 숱한 국제적 음모사건에는 항상 KGB의 「검은 손」이 연루혐의를 받았다. 8월 쿠데타에 크류츠코프 KGB의장이 주모자로 가담한 것은 수년간 계속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들 조직이 얼마나 뿌리깊게 구습에 젖어있었는가를 보여준 좋은 예였다. 국가평의회가 밝힌 새 정보조직이 과연 어느 정도 과거 KGB와 다른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KGB의 해체는 소련의 국가권력이 미행,음모,테러 등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과거와 진정으로 결별하는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 아이들 기르기 무서운 세상(사설)

    이렇게 끔찍하고 이렇게 뒷맛이 우울한 사건도 드물다.10살짜리 오라비가 9살짜리 누이를 흉기로 찌르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강도를 위장하고 불을 질렀다.이런 사건은 입줄에 올리기보다는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오히려 간절하다.그러나 그런 반응도 무책임함이거나 무기력함의 소산일 뿐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자녀를 기른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마주서야 할 문제인가라도 다시한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란 흔히 「천사」에 비유되지만 성장기의 청소년에게는 악의 요소도 내장해있다.교육이나 외부적 영향에 의해 순화시키고 도야해야만 좋은 인격이 완성되어갈 수 있는,모든 가능성을 가진 「요소」들이 아이들에게는 혼재해 있는 것이다. 편애 때문에,또는 질투나 증오심 때문에 어린동생을 해치는 어린이의 예는 동서고금을 통해 의외로 발견된다.그럴 수 있는 인자를 작게든 크게든 내포하고 있는 것이 어린 시절인데 어떤 계기,어떤 기회를 통해 돌출된다.이 사건도 그런 것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청소년 주변과 환경이 그런 돌출을 부추기고 충동이는 조건으로 충만해 있고 그것을 순화하고 조화시키는 기제가 약하다는 데 있다.교육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데 가정은 가정대로 제구실을 못하고 있고 사회는 사회대로 노력과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물신숭배에만 치달아 가치관은 무너지고,품위있게 사는 노력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어가고,이기적인 욕심만 쫓기에 골몰하는 기성세대의 병폐가 자라나는 세대를 일찌감치 부터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사건의 소년만 해도 우리 사회가 지닌 병이현상이 송두리째 투영된 현실속에 내던져져 있었던 셈이다.생계에 쫓겨 완전히 부재상태인 부모밑에서 온종일 전자오락과 폭력비디오에만 노출된채 길잡이가 될 아무런 장치도 없는 가정에서 어린이끼리만 지낸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시청각교재로 악을 학습한 직후,제일 가까이에 있는 약하고 무방비한 동생이 비위를 거슬리며 미움을 자극해오자 그대로 실습에 옮겼고,저질러진 일이 엄청나자 역시 「배운대로」범죄은폐를 기도한 것이다. 따지고보면 소년은 우리사회의 가장큰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어린날 빠져버린 그 무서운 범죄의 늪에서 그가 헤어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살기에 급급해 고달프게 허덕인 부모들로서는 자녀를 둘다 처참하게 잃고 집안을 나락에 떨어뜨린 결과가 되었다. 자식기르는 일이 오늘날처럼 어려운 시대도 없을 것이다.모자라도 안되고 지나쳐도 안되고 방치해도 안된다. 내 가정 내 아이를 나 혼자서 바로잡으려고 애써 보아야 힘에 부친다.이 끔찍스런 사건도 모든 어른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모든 사회정책과 관심이 「아이들 잘기르기」를 목표로 노력하지 않으면 또 어떤 더 끔찍한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 “소는 「한·일경제모델」 본뜰때”/소인이 본 소 장래/특별기고

    ◎유리 타브로프스키/일정기간동안 권위주의적 통치 불가피/혼란 막게·통제·시장경제 병행돼야 쿠데타가 조기진압됨으로써 소련은 국가적 재앙을 맞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그러나 쿠데타를 일어나게 만든 정치·경제·윤리적인 제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곡물수확량은 금년에도 감소했고 인플레는 급등하고 있으며 겨울은 다가오는데 석탄·석유는 턱없이 부족하다. 안정을 보이는 부문도 없지는 않다.일부 기간산업의 생산량이 늘고 있고 많은 군수공장들이 TV·냉장고등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다.특히 단절위기까지 갔던 공화국들의 경제한계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난파선 같은 소련경제를 버리고 뿔뿔이 제갈길을 가기보다는 힘을 모아 배를 수리하는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한 것같다.많은 공화국들이 자기들끼리 경제조약체결을 서두르고 있다.특히 고무적인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대공화국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세력들이 승리함에 따라 이제는 보다 번영되고 안정된새 소련방건설을 위한 「묘수」를 찾아나설때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는 공산독재체제를 해체하는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새체제 건설에는 적합치 않음이 드러났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국·일본·대만·독일등 독제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경제적번영을 이룩한 나라들의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다. 독제체제로부터 민주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정기간 권위주의통치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같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쿠데타가 일어나기전 경제·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데 미온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부문도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한국·일본 등이 중앙집중적이고 군사위주의 경제를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바꾼 경험은 소련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달리 소련에는 70여년동안 모든 자유시장원리가 금지됐었다.잊었던 자본주의의 과거를 되살리고 문명세계의 경험을 다시 배우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개개인이 갖고 있는 뿌리깊은 평등주의의식도 새 국가건설의 큰 장애요소이다.이 평등의식은 곧 부유한 이웃에 대한 증오심과도 통한다. 엄청나게 높은 군사비지출이 그동안 국가경제를 마비시켰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의 즉각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리고 있다.일본과 같이 방위비를 GNP의 1% 수준으로 낮추자는 요구도 있다.1% 수준으로 떨어지지야 않겠지만 군사비 삭감과 대폭적인 병력감축이 단행될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 이제 다시 중앙집중식 관리체제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지금의 경제난,산업중심지들간의 거리·통신·수송상의 문제들을 고려할때 경직된 「고전적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나는 개인적으로 중도의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즉,합리적인 중앙계획경제로 수송·에너지·군사부문생산은 통제를 하되 소비·서비스산업은 자유시장경제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향후 수년간 소련경제는 동아시아·미국·유럽등 특정모델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미래지향적이되 기존체제의 합리적인 점도 공존시키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70여년 지속해온 사회주의경제를 하루아침에 모두 버리려다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이번 쿠데타를 기점으로 해서 최소한 10년의 과도기는 거치게 될 것이다.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공화국에서 권위주의체제가 등장,소위 정치적 과도기까지 거치게 될 것이다.이 정치·경제적 과도기간 동안 소련국민들은 다소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미 언론이 예진한 「철군시한 이후」

    ◎묘침속의 “전쟁과 평화”/5가지 「중동시나리오」/①후세인의 전격적 무조건 철군/②이라크군 철수시작… 외교협상/③미국이 공격유보… 추이 관망/④이라크,이스라엘 선제 공격/⑤미국의 대이라크 공격 단행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15일 밤12시(한국시간 16일 하오2시)가 지남으로써 세계가 미증유의 예고된 파멸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은 오로지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수중에 달려있으나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한가닥 희망이 마지막순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철군시한인 동부시간 15일 밤12시이후 수일동안의 가능한 상황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갑작스런 무조건 철수결정 ▲이라크의 철수시작과 외교협상 ▲이라크의 대이스라엘 선제공격 ▲미국의 당분간 공격유보 결정 ▲미국의 전쟁 돌입결정 등 5가지로 가상했으며 워싱턴 타임스지는 ▲후세인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36∼48시간 공격을 유보 ▲이라크가 수일동안 미국의 대규모 공중공격을 견뎌내기로 각오 ▲국제평화회담을 전제로 철수를 선언 ▲후세인의 무조건 철군발표 ▲이라크의 이스라엘 공격과 분쟁의 확대 ▲전쟁과 함께 이라크에 쿠데타발생 등 6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15일을 넘긴후 후세인이 일방적으로 전면철수를 시작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관리들이 일단 비관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가 마지막 순간 화학 및 핵시설을 비롯한 군사력을 온존한 채 후일을 기약하기로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라크의 단계적인 부분철수 시작라 쿠웨이트 영토의 일부 영유권 주장,이스라엘 문제와의 연계요구 등은 부시로부터 공격명분을 약화시키면서 후세인에게는 미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정치적 선물을 안겨줌으로써 미국측에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주되고 있으나 미국관리 가운데 누구도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할 경우 이는 미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이어져 결국 페만사태는 아랍과 서방세계와의 분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상황이다. 미국이 15일 이후 좀 더 기다리면서 후세인에게 고도의 심리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바꾸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15일이 지나고도 후세인이 건재하다면 연합국측의 분열현상이 확대되는 대신 후세인은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부상돼 속전속결보다 나을게 없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기능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마지막,미국의 즉각적인 공격결정은 그동안 부시대통령에 의해 여러차례 확인된바지만 부시에게는 가장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이다. 부시가 만약 전쟁을 결심할 경우 엄청난 출혈이 불가피한 장기전,세계유가의 폭등,국내 정치적 지지도의 곤두박질,아랍권의 반미증오심의 격화 등 모든 요인을 고려하면서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을 각오도 함께 해야할 것이다.
  • 브레진스키의 페만전 시나리오

    ◎①이라크,무조건 항복선언/②미의 공격에 후세인 굴복/③미,유혈대가 치르고 승리/④전쟁 장기화… 부시,곤경에/“중동사태 돌파구는 막후외교 뿐”/평화 해결이 희생 줄이는 길 이라크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페만사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해온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8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아직도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비밀협상 등을 통해서라도 이라크와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진스키씨는 앞으로 진행될 미·이라크 대결국면을 4개의 시나리오로 정리하고 이라크와 전쟁을 벌일 경우 손쉬운 승리가 예견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평화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내 강경여론 대변자들에 맞서 현실적인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협상을 강조해 온 브레진스키씨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시나리오를 가상하고 있다. 첫째,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해 매일 전쟁위협을 계속하고 무조건 항복을 고집한다. 마지막순간 사담 후세인이 굴복해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하고 배상을 할 뿐아니라 자발적으로 군사력을 약화시킨다. 부시의 강경책이 평가를 받는다. 둘째,사담 후세인이 굴복하지 않고 1월15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부시는 「기습적으로 결정적으로」 군사작전을 감행한다. 수일 이내에 대규모 공습에 이어 미국의 사상자를 최소한 줄이고 이라크의 피해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라크군은 패퇴하고 사담 후세인은 전복된다. 부시는 영웅으로 평가를 받는다. 셋째,사담 후세인이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공습이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그 결과 미 지상군이 영국군 일부가 가담한 가운데 혈전을 벌이지만 비교적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 이라크의 파괴를 환영하고 있는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은 박수를 보낸다. 미국 국민여론은 분열되지만 대체로 최악의 경우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안도한다. 넷째,지상전이 수주 혹은 수개월간 계속돼 미국은 사상자수나 재정적으로 매우 큰 대가를 치른다. 미국이 전쟁에 동참시킨 국가들로부터 반발이 일어난다. 유럽국가들은 개별적으로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한 미국의 순진성을 비웃고 아랍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증오심에 불탄다. 미국내 여론은 심하게 분열된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과 전쟁을 주장한 사람들,우방국과 전쟁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은 국가들을 책망하게 된다. 브레진스키씨는 이 네가지 시나리오중 첫째 및 둘째의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라크를 파괴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걱정할 일이 없지만 셋째,넷째 시나리오가 더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나 이 결과로 중동지역에서 야기될 지정학적 혼돈을 우려하고 미국의 희생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따라서 미국이 손쉬운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비밀협상,유럽주도에 의한 평화안,유엔 사무총장에 의한 중재안 등 마지막 순간의 평화노력을 환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 미ㆍ소 남녀 짝짓기사업 번창(세계의 사회면)

    ◎국제 중개없소 문열자 청혼신청 쇄도/이달 모스크바서 수십쌍이 첫선 모임 냉전종식으로 미소관계가 호전됨에 따라 두 나라의 남녀들을 맺어주는 국제중매사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오랫동안 강한 증오심과 적대감이 존재해 온 만큼 오해도 많았다』고 동업자 로널드 롤밴드와 함께 「미소간 짝짓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소련 이민 진 캔터는 개업 취지를 밝힌다. 양국 사람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 그는 자신한다. 개업 6개월째를 맞은 이 국제중매소에는 주로 여성들인 소련인 약 1천명과 주로 남성들인 미국인 약 2백명이 짝짓기 신청을 해 왔다. 두 나라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우세한 입지에 있는 미국인들이 상대방에 선택될 확률이 소련인들 보다 10배는 높다는 것이 캔터씨의 설명이다. 지금까지는 신청자들의 사진,간략한 이력,신상소개서 등만이 교환되는 정도이지만 10월부터는 모스크바에서 10∼40쌍이 처음으로 맞선을 볼 계획이다. 캔터는 1973년 소련을 떠난후 처음으로 지난 3월 고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양국 남녀 짝짓기 사업에 착안했다. 그때 소련에 새로 등장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이러한 아이디어를 귀띔해 주었을 때만 해도 캔터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미국에 돌아와서 주변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미소간 짝짓기」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등록비 25달러를 내는 사람들에게는 짝짓기 신청자들의 사진과 짤막한 소개서가 수록된 보기좋은 소책자가 제공된다. 소련인들의 등록비는 50루블이다. 소련쪽에서는 한 코페라티브가 이 짝짓기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소련의 신청자중 여성이 75%이고 남성은 25% 밖에 안된다.
  • 영동선 정상화/태백선은 우회운행

    지난번 폭우로 유실되었던 영동선 상정∼청량리역간 오심천 제4교량이 25일 복구돼 이날 하오4시부터 열차운행이 정상화됐다. 철도청은 그러나 태백선 청령포∼영월역 사이 등 일부 구간의 선로복구에는 다소 시간이 걸려 29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청량리∼동해ㆍ강릉사이 태백선 경유 열차는 영주ㆍ철암을 돌아 운행하기로 했다.
  • 외언내언

    「귀축미영」(기치쿠베이에이).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미국·영국을 저주하면서 쓴 말이다. 이때의 국민학생들은 미군·영군을 그리는 그림에서 머리에 난 뿔을 잊지 않았다. 「귀축」이니 뿔이 났을 밖에. ◆「언어에 의한 공격」은 심리학에서도 다룬다. 첫째 배설물이나 성행위에 관계되는 표현은 세계가 공통된다. 우리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욕설. 둘째는 벌받거나 죽거나 지옥에 가라는 식의 저주를 담은 표현이다. 셋째가 정당한 행위를 못하는 저능에 빗대거나 사람이 아닌 동물·괴물 등에 빗대는 표현. 물리적인 공격과 형태는 다르지만 그 또한 공격임으로 해서 가격자는 쾌감을 맛보고 피격자는 모욕·고통을 느낀다. ◆그렇긴 해도 언어에 의한 공격은 단어 선택이 저급할때 가격자가 야비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안 우리가 써온 「북괴」라는 표현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북녘에서 우리한테 대고 쓰는 용어에 비하자면 「양반」. 그들은 교과서에까지 『미제의 각을 뜬다』같은 끔찍한 용어를 서슴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전 한 홍콩지도 지적한 바가 있다. 평양시내 호텔에서 한국어 소개서를 살 경우 그 예문이 살벌하다는 것. 예컨대 『양키는 사람 탈을 쓴 늑대』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언어생활에서 그 용어 선택은 품위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것은 용어뿐 아니라 말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 문제를 두고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68년 이승복어린이가 무장공비한테 죽으면서 한 이 말은 사실이고 거기 공산당의 잔학성이 집약되어 생생한 반공교재로 쓰여오고도 있다. 물론 용어에 「원쑤」 「각을 뜬다」같은 살벌함은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의 분위기에는 증오심 섞인 반공에의 절규가 함축된다. 살벌한 용어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국민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 이 말을 없애기로 했다 한다. 잘하는 일이다. 이건 우리의 성숙성. 점철된 원한을 안아 삭인다는 관용성이기도 하다.
  • 재미작가 김은국씨의 「민족사적 6ㆍ25론」

    ◎한민족,자의건 타의건 「자유로운 삶의 길」로/“살상ㆍ폐허ㆍ굶주림” 고정관념 벗어날때/개개인의 체험 역사적 맥락서 조망해야/반억압 선택은 바로 「인간해방의 길」/이제야 변혁하는 동구를 보니 큰 대가 치렀지만 값진 경험/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6ㆍ25니 8ㆍ15니 그러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이 거창하고 모호한 말을 즐겨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문을 토대로 한 우리의 언어의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에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세상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특이한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겉잡을 수 없는 허황한 상투용어로 한마디하고 넘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다. 8ㆍ15가 오면 언제나 「과거 36년간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로 시작하고 끝나고 6ㆍ25가 오면 으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하여 「조국분단의 쓰라림」 등으로 끝난다. 상투용어란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써먹어 오다보니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지만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상투용어를 빌려 쓰지 말고 자기의 말로써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애써 볼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6ㆍ25를 모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6ㆍ25를 모르는 세대」가 이렇고 저렇고 할때 풍기는 뜻은­그런 표현을 쓰고 사람들에게서 오는­그 세대가 좀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세대가 한심한건 말건 그것은 둘째로 치고 우선 그러면 그 표현이 내포하는 즉 「6ㆍ25를 아는 세대」는 과연 6ㆍ25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생과 역사의 결합 누가 시작한 진담­농담인지는 몰라도 어린애들(물론 6ㆍ25를 모르는)에게 6ㆍ25때 얼마다 먹을 것도 없고 고생했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애들이 「그럼 왜 라면이라도끓여먹지 않았냐」하더라고… 원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한심한 것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6ㆍ25를 아는 세대」가 6ㆍ25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피란만 다녔다는 식으로 「고생」했다고 말을 시작하면 어린애들은 역시 그런 식으로 반문을 할 것이 뻔하다. 고생했다,굶었다,헐벗었었다,많이 죽었다,도시는 폐허가 됐었다,가족이 흐트러졌다­물론 6ㆍ25의 경험속에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간다. 6ㆍ25라는 것이 빚어낸 현상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6ㆍ25를 참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다. 경험이란 것은 왜 그 경험이 있게 되고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경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공동체가 쓰는 상투용어로,또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개인이 쓰는 역시 상투용어로만은 6ㆍ25와 같은 어마어마한 민족공동체적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6ㆍ25를 체험한 세대에게나 6ㆍ25를 모르는 세대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역사관,그 역사관과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개인의 인생관­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는­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6ㆍ25는 「선택」의 경험이라고 여겨진다. 그 「선택」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적인 한가지 한가지의 「작은 선택」들이고 또하나는 커다란 역사적인,나아가서는 철학적인 「커다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다란 역사적인 철학적인 「선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온 것이다. 우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이고 하다 좀더 철이 들고 배우고 사색하게 되면서 그 개인과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인생관과 역사관의 결합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어서 8ㆍ15를 이북땅에서 맞았다. 그 덕분에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 3년여를 북한식 공산주의체제 밑의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은 선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게 중요한몇개만을 들어보겠다. 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의 특이한 「작은 역사」를 무시하고 말살시키려는 주의와 사상을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당 권력체제가 주장하고 실행한 소위 계급투쟁으로 「소지주 계급」의 낙인이 찍힌 우리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때의 우리의 재산이란 한때 가난했던 조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하여 쌓았던 것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본인들과 후손의­노력해온 그들의 구체적인 「작은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추상적인 커다란 주의ㆍ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이해와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말살시키려는 주의ㆍ사상ㆍ정치체제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갖게 했다. 또한 그러한 소위 「계급투쟁」의 발단,심리적 원시점은 인간의 가장 천한 본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는 원시적인 본능을 부추겨서 『잘산다』 『못산다』의 개념과 정의를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만 두는 가엾은 인생의 가치관을 보았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추한 인간의 본능을 『그럴듯한』 정치이념과 주의로 장식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정의감으로 가장시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어떠한 사상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목사이셨던 외조부께서 일본통치하에서도 억압을 당하시고 북한공산체제 밑에서도 억압을 당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의 외조부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의 반항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치이념ㆍ주의사상은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한국은 운좋은 나라 그렇게 하여 내가 6ㆍ25가 일어나기 얼마전 남한으로 넘어 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ㆍ25가 왔을 때 그 전쟁은 나에게는 혹독하게 말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나」를 없애버리려는 권력에는 방항ㆍ대항해야 하는 선택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대한민국이 더 좋아서 더 귀중해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어쩌니 하는 감상을 품고 전쟁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다는 것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특이한 작은 역사,개인의 존엄성­이러한 것들이 보존되고 살아 남아야겠다는 신념과 행동의 선택에서 이윽고 자유에의 「선택」이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인생관 가치관이 그 당시에는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었으면서도 이념적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훗날에 「나」라는 하나의 개인과 그 개인의 경험을 역사와 연결시켜주는 역사관을 찾았을 때 6ㆍ25를 비롯한 지난날의 경험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해방」으로의 과정이라고 본다. 자연의 공포와 횡포로부터의해방,질병으로부터의 해방,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무식으로부터의 해방,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잔인으로부터의 해방­끝없이 많은 인간해방이 필요하고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유」로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혹한 인간역사의 사실이 증명하듯 그것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해방의 과정은 조금씩이나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해야 한다. 개개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여러 작은 「선택」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지극히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ㆍ25란 나에게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고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관과 역사관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흔히 진담­농담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6ㆍ25는 대한민국에도 역시 하나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이끌린 삶 강대국간의 냉전이니,국제정세의 배경이니,국토의 분단이니­「동족상잔의 비극」이니­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6ㆍ25라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한국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 「선택」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주주의체제 쪽으로,공산주의의 국가통제경제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체제 쪽으로,그 당시에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이끌려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간에 개개인의 역사가 존중되고 개개인의 나름대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앞서 말한 인간해방의 역사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고의적으로 그러한 역사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이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6ㆍ25를 전후한 국제정세와 6ㆍ25라는 처참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한국은 어쩌다 싫건 좋건 그러한 길을 선택하게 됐고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 끼여 따라가게 돼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인간역사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상과 결과를 빚어내는 버릇이 있다. 6ㆍ25라는 역사는 어쩌면 한국사회가 자진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의 선택을 한국사회에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선택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지극히 흡족하게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는 6ㆍ25를 겪었기 때문에,또 6ㆍ25를 계기로 하여 전세기적인 인간가치관과 인간통치관에서 탈피하여 전진적인 인간해방의 역사적 흐름에 함께 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기다랗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동독을 비롯하여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루마니아 심지어는 불가리아 등­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생각만 해보면 된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인간해방의 역사이다. 40여년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 밑에서 억압당해 왔던 하나하나의 인간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이루어준 역사의 흐름이 파도를 친 것이다. 불평ㆍ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한」이 어쩌고 하는 우리는 동구의 그들에 비하면­나아가서 소련의 일반 시민들과도 비하면­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6ㆍ25라는 참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헛되지 않게 해준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게 된 것이다. 동구의 그들 뿐인가. 소련의 사정을 살펴보며 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 국민들의 자유독립에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 우크라이나의,그루지야의,아르메니아의,아제르바이잔의 모든 개인들의 자유독립으로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2차대전이후의 세계역사를 소위 냉전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냉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억압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선택한 진영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이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조롱하는 것들에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어왔다고 본다. 그것을 인정 안하다면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동구 사람들의 자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가치관의 대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2차대전후부터의 이른바 냉전은 결국은 정치이념의 대결이었고 인간의 가치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자유와 개방」을 위주로 하는 이념과 절대적인 정치권력 체제속에서의 「인간통치」에 전념하는 이념과의 대결이 아니었던가. 6ㆍ25에 참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하는 감상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고 나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ㆍ25전쟁이 내게는 단순히 부족간의 영토싸움이라든가 조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에서의 권력다툼이라든가 그러한 전세기적인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었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2차대전때 이미 시작되고 그 후에 냉전으로 계속된 이념의 대결이 터져나온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틀렸건 옳건간에 사람은 각자각자 나름대로의 작은 역사를 창조하고 자유와 개방을 이루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풀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가치관과 이념과 역사관을 「선택」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6ㆍ25의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상투용어로 그 경험을 「설명」해 버리려는 것을 싫어한다. 그 전쟁이 그것뿐이었다면 그야말로 전세기적인 관념으로 그 전쟁의 경험을 소화하려는 것이 된다. 그 보다는 「나는」 「우리는」 그러한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였노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은국 □32년 함남 함흥출생.□황해도 황주,중국 만주에서 성장. □48년 평양 제2중(평양고보)재학중 월남. □50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중퇴(6ㆍ25발발로). □51∼54년 육군장교복무. □55년 도미,미들버리대(정치학 및 역사철학전공),존스 홉킨스대(영문학 전공),아이오와대 대학원,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64년 6ㆍ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논문 대신 발표,세계적 명성얻음. □이후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영혼」 등 발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시라쿠스대,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 서울대 교환교수 역임. □현 매사추세츠 소재 「트랜스 리트 에이전시」 (국제저작권대행회사)대표.
  • 공산주의 미진한 청산이 화근/개혁 후발 동구3국의 진통 안팎

    ◎장기 족벌독재로 민주화 여건 미성숙/대체세력없이 공산잔당 집권에 불만 지난해말 시작해 동유럽전역을 휩쓴 변혁의 물결이 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유고 등 소위 개혁 후발국들에 와서 막히고 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동독 등은 이미 다당제 자유총선을 통해 비공산 민선정부를 새로 출범시킴으로써 정치면에서는 일차적인 개혁을 모두 마무리지었다. 반면 이들 3나라에서는 공산당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ㆍ학생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급기야 루마니아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또다시 유혈사태까지 낳고 말았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이온 일리에스쿠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구국전선」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기농성중이던 시위대를 경찰이 공격,1백여명의 사상자를 냄으로써 지난해 12월 차우셰스쿠축출혁명 이래 최악의 폭력사태를 빚었다. 불가리아에서는 지난 10일 40년만에 실시된 최초의 자유총선에서 구공산당인 집권 불가리아 사회당이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부정을 들어 선거무효화와 공산당타도를 외치는 시위와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유고는 최대공화국인 세르비아공화국을 중심으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대통령의 퇴진과 공산지배 종식,다당제총선을 요구하는 대규모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유고연방정부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경제개혁을 보다 가속화하고 연말까지 다당제총선과 공산당지배 종식등을 약속하고 있지만 수도 베오그라드의 시위군중수는 연일 수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들 3나라가 유독개혁과정에서 늦게까지 어려움을 겪는것은 무엇보다 이들이 지금까지 동유럽공산국들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진 정치행태를 유지해왔고 변혁의 출발점도 다른 동구국들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쫓겨나기까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는 25년을 혼자서 집권했고 불가리아의 토도르 지프코프는 35년을 집권했다. 유고의 티토는 1980년 사망시까지 28년을 혼자서 집권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권위는 유고에서 거의 절대적이다. 지프코프와 차우셰스쿠는 쫓겨날 당시 장기독재로 국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족벌독재로 경제도 엉망이 돼 이두나라는 현재 유럽의 최빈국들로 전락해 있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지프코프와 차우셰스쿠를 몰아낸 혁명의 가장 큰 원동력은 이 두 독재자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증오심을 빼놓고는 정치ㆍ사회적인 여건들이 여타 동유럽국들에서 진행되던 변혁에 동참할 만큼 성숙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정황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동유럽국들과 달리 구공산당에 뿌리를 둔 세력의 계승집권을 가능케 했다. 불가리아에서는 지프코프정권하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피터 믈라데노프가 궁정쿠데타로 집권했고 루마니아에서도 역시 구공산당 세력인 일리에스쿠와 「구국전선」이 권력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 공산당에서 이름만 바꾼 불가리아 사회당도 이번 자유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루마니아 「구국전선」역시 5월 자유총선서 예상을 뛰어넘는 대승을 거두었다. 물론 진보개혁세력들은 선거부정이 많았다고 주장하고 「구국전선」이 루마니아의 시민혁명을 훔쳤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지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안이없는 때문이다. 또 이들은 장기독재정권을 무너뜨려준 「구세주」들이다. 하지만 이번 루마니아의 경우처럼 이 세력들의 정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유혈사태로 확대될 경우 이러한 지지는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새 지도세력들이 구공산당과 같은 뿌리임을 극복하고 얼마만큼 과감한 개혁조치들을 취하느냐에 있다고 보여진다. 「구국전선」은 오는 92년까지 명실상부한 다당제총선을 실시한다는 약속을 내세우고 있다. 시위사태가 계속될 경우 이 일정이 앞당겨질 공산도 있다. 유고의 경우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에서 이미 자유총선을 통해 공산당이 패배한 바 있다. 최대공화국인 세르비아공화국공산당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데는 따지고 보면 여타 공화국에 대한 민족적인 반감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연말까지는 다당제 자유총선을 치를 예정으로 있어 최근의 시위사태에도 불구,체제변혁이란 면에서는 앞의 두나라보다 앞서 갈 것 같다.
  • 6ㆍ25참전 소 공군 중국군 위장/소 청년동맹기관지 보도

    ◎51년 3월 중국의 단동기지에서 첫 출격/참전사실 감추려 기체엔 북한공군 표지 소련공군은 51년 3월말부터 6ㆍ25동란에 직접 참전하기 시작했으며 당시의 기지는 평북 신의주와 맞닿아 있는 중국의 단동비행장이었다고 소련 공산청년동맹기관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가 최신호에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소련공군 지휘관으로 6ㆍ25동란에 참전했던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의 말을 인용,51년 3월말 6ㆍ25동란에 최초로 참전한 이 소련 공군부대의 이름은 「제18근위대 항공연대」였으며 첫 전투때에는 부대소속의 전체 전투기가 모두 출격했었다고 보도했다. 또 당시 소련전투기들에는 소련공군이 6ㆍ25에 참전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동체에는 북한공군 표식을 했고 조종사들에게는 중국공군 복장을 입혔는데 이 조치는 이후 40년간이나 「엄격한 비밀」이 되어 왔다고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는 밝혔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따르면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는 이어 6ㆍ25동란중에 소련공군이 사용했던 기종은 MIG­15였으며 주임무는 수풍발전소를 폭격하려는 미군기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는 이와 함께 소련공군이 6ㆍ25동란에 직접 참전하기 시작한 것은 51년 3월이었지만 실제로는 6ㆍ25발발과 함께 참전계획이 세워졌었다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이의 실증자료로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950년 6월이었다. 우리의 연대는 습득한 분사식 제트전투기 미그 15를 타고 공중과녁들에 대한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의 비행훈련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때부터 우리의 길은 동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거기서 첫 분사식 비행사들로 되었다. 51년 2월말에 비행길을 교환하고 적재함들에 폭탄을 적재하라는 새 명령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는 전장에 나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련이 6ㆍ25발발과 함께 공군을 참전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는 바로 51년 3월 소련공군으로는 최초로 6ㆍ25에 참가한 「제18근위대 항공연대」의 지휘관이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따르면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는 당시의 소련전투기 조종사들의 감정상태에 대해서도 언급,처음에는 미군조종사들에게 증오심을 느끼지 못했으나 곧 동료의 전사 등으로 증오심이 생기고 또 이것이 격화되었다고 회고했다. 이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 게재된 알렉산드로 스미르치코프의 회고담은 11일 소련관영 모스크바 방송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모스크바방송은 지난 3월 소련이 6ㆍ25때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7만명의 공군병력을 지원했으며 한때는 이와 함께 5개 기갑사단으로 구성된 지상군을 투입하려 검토한 적도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외언내언

    경기장 난동·폭력이 고질화 되고있다. 폭력선수·심판오심·난동관중이 뒤범벅이 돼 꺼떡하면 운동장은 난장판이다. 고교생들까지 심판에 삿대질·행패를 부리고 홈팀이 역전패 당했다고 불을 지르며 조금만 판정에 문제가 있어도 심판을 폭행하거나 퇴장부터 하고본다. 주로 축구·야구·아이스하키 등 몸이 부딪치는 경기나 기구를 사용하는 종목에서 빈발하고 있다. 대부분 인기종목이어서 더욱 문제다. ◆최근의 것만을 보아도 지난달 29일 대구경기에서 홈팀 삼성이 무기력한 경기를 벌인다는 이유로 관중들이 빈 깡통을 던지다 불을 지르는 소동이 있었다. 지난해 8월 럭키금성과 일화와의 프로축구시합에서 일화팀 박종환감독의 주심폭행사건이 박감독징계·감독사임으로 이어져 경기장 폭행의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게 됐고 금년들어 잇단 농구장폭력도 보통문제가 아니다. ◆5일에는 서울 잠실의 프로야구시합에서 빈볼 시비로 또 집단난투극을 벌이는 불상사가 있었다. 빈볼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삼성과 빙그레와의 대전에서도 선수들이싸움을 벌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여긴 격렬한 편싸움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빈볼 시비의 본고장은 역시 미국. 미국의 프로야구선수들은 자기 몸에 가해지는 위해에는 참지를 못한다는 것. 다치게 되면 프로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만큼 손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어서 빈볼이다 싶으면 그대로 투수에게 달려가 주먹부터 날린다. 또 그래야 예방효과를 있다는 것. 미일의 프로야구선수들을 비교해 보면 미국선수들은 이같이 무조건 대응하고 보지만 일본선수들은 한두번은 참거나 욕을 하는 것이 대부분. 미국보다 일본선수들이 그만큼 감정을 자제한다고 한 통계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관중들의 관전태도가 보다 문제다. 자기가 응원한다는 팀이 패배했다고 해서 빈병을 마구 던지는등의 불미스런 행위는 너무나 도를 넘는다. 요즘에는 지역감정까지 편승해서 폭발적으로 자기기분을 나타내고 더욱 과격해지고 있어 걱정이다. 스포츠는 「파인 플레이」에 묘미가 있다. 보는 것도 그래야 한다.
  • 결혼하객버스 전복/7명 사망ㆍ38명 부상

    ◎어제 수인산업도서 【안산연합】 3일 낮10시20분쯤 경기도 안산시 일동 93앞 수인산업도로에서 결혼식 하객을 태우고 청주로 가던 한서관광소속 경기6거4376호 버스(운전사 이주하49)가 앞서가던 경기2로 1558호 로얄승용차(운전자 김경묵ㆍ52)를 추돌한뒤 중앙분리대를 넘어 뒤집혔다. 사고는 유모씨(57) 딸의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 유씨의 친지등 50여명의 하객을 태우고 청주로 가던 버스가 사고지점에 이르러 앞서가던 로얄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은뒤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차선 도로에 전복돼 일어났다. 이 사고로 김재명씨(62ㆍ부천시 남구 소사3동 266의13)등 버스승객 7명이 숨지고 버스운전사 이씨와 승객 이한철씨(45ㆍ인천시 남구 용현동 346의6)등 모두 38명이 중경상을 입어 인근 고려대의대 부속병원 등에 분산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 7명은 안산 산재병원 및 고대의대부속병원에 안치됐으며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재명 ▲조중원(80ㆍ경기도 부천시 남구 소석3동 266의5) ▲김기태(50) ▲이용관 ▲최병서 ▲오심용 ▲정병렬(55)
  • 5ㆍ16상 상금 희사한 김기춘검찰총장

    ◎“폭력으론 민주사회 건설 못해”/부상으로 입원한 경관방문,위로금 전달 올해 「5ㆍ16민족상」 안보부분 본상을 수상한 김기춘 검찰총장은 17일하오 서울 성동구 홍익동 국립경찰병원을 찾아 상금으로 받은 1천만원 모두를 입원중인 경찰관들에게 위로금으로 기증했다. 김총장은 이에 앞서 출입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시국 등에 관해 평소 소신 등을 털어놓았다. ­화염병사용이 최근들어 다시 늘고 있다. 기회있을 때마다 재임중에 화염병을 근절시키겠다고 장담해 왔는데. 『화염병은 총ㆍ칼 등 살상용 무기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때문에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행히 올해는 화염병사용이 지난해 보다 줄어들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지난 9일의 폭력ㆍ방화시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대협」간부 등에 대해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도록 지시했다』 ­법원에서는 화염병을 던진 피의자의 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화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인가. 『법원의 판결은 왈가왈부할게 못된다. 그렇지만 검찰은 지난해 제정된 「화염병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두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벌할 방침이다』 ­민자당해체주장 등 반정부투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시국사범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은. 『합법적인 시위나 노동운동은 최대한 보장하겠지만 정치적 목적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하겠다. 주동자와 배후조종자를 끝까지 추적,검거함으로써 순수한 국민과 근로자를 보호할 것이다. ­민자당의 신진수의원과 평민당의 이상옥의원 등 정치인에 대한 수사 및 내사로 정국이 떠들썩하다. 이들에 대한 신병처리는. 『수사에는 성역이 없으며 누구든지 죄가 있으면 처벌받게 마련이다. 여든 야든 국회의원의 비리가 드러날 경우 모두 사법처리 하겠다. 검찰은 중립을 지킬 뿐이지 여도 야도 아니다』 이날부상 경찰관들을 위문한 김총장은 『모든 국민은 TV화면에서 난무하는 화염병이 장난감이 아니며 젊은 경찰관들을 불구로 만드는 흉기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화염병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비판해야 할것』이라고 강조하고 『화염병으로 아까운 청춘에 병상에서 불구의 몸으로 신음하고 있는 법집행의 파수꾼들에 대해 국민들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 “15년 옥살이 죄수” 무죄로 판명(세계의 사회면)

    ◎영국경찰도 “고문수사”… 이미지 먹칠/폭탄테러 증거 조작,4명 범인으로 몰아/진범 잡고도 “쉬쉬”… 인권유린 거센 비판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크게 믿음을 얻고 있는 나라,일찍이 인신보호장정 등을 마련해 인권보호에 앞장서 온 나라 영국에서 15년전의 한 오심때문에 검ㆍ경은 물론 불문헌법구조에 이르기까지 인권보호를 위해 사법체제가 대폭 개정돼야 한다는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1974년 10월 런던에서 일어난 아일랜드공화군(IRA)폭탄테러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된 4명이 경찰의 거짓말과 증거조작 그리고 검찰의 조작지시로 15년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것으로 밝혀져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사건과 관련돼 수감중인 또 다른 7명 가운데 1명은 이미 옥사했고 아직도 6명은 항소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974년 10월5일. 런던 남서부의 길포드의 한 술집에서 폭탄이 폭발,5명이 즉사하고 50여명이 중화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뒤에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IRA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북아일랜드 「행동조직(ASU)」이 영국본토에서일으키기로 작정한 폭탄테러의 시작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에 여론은 비등했고 테러수사경험이 거의 없는 관할 서레이경찰서는 허둥지둥 수사에 나섰다. 4천여회의 진술,6천명 면접수사의 기록을 세웠으나 당시 술집내에서 데이트중인 남녀 2명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11월 다시 버밍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21명이 죽고 1백62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경찰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가중됐다. 서레이경찰은 용의자 가운데 하나인 폴 힐을 11월28일 런던시내 아일랜드인 거주지역에서 체포했다. 그의 집을 수색했으나 폭탄등 증거물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1주일 사이에 그는 차례로 「공범」 3명이 있다는 것을 「자백」했다. 3명은 그의 친구 제라드 콘론과 패트릭 암스트롱 그리고 암스트롱(24)의 여자 친구 캐롤 리처드슨(17)이었다. 콘론은 30일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돼 런던으로 압송됐고 암스트롱과 캐롤은 런던에서 검거됐다. 암스트롱과 캐롤은 길포드사건 당시 데이트중인 남녀로 점찍혔다. 힐은 이미 「폭탄제조자」를 불었다. 그들은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와 미성년자인 조카 2명을 포함한 7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힐과 콘론 그리고 암스트롱은 경찰로부터 구타ㆍ살해위협ㆍ기합ㆍ오물먹이기ㆍ가족살해협박을 차례로 받아 경찰의 각본대로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만큼 고문사실을 즉각 부인했다. 그들 4명과 7명은 75년 차례로 재판에 회부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폭탄테러는 계속 일어났다. 그리고 증거가 누적되면서 마침내 75년말에는 ASU멤버가 거의 체포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길포드사건 등의 진범임을 주장하면서 재판을 거부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길포드 4명을 구하려는 「교묘한 술책」으로 간주,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일련의 폭탄테러가 동일범소행이라는 폭탄전문가의 진술은 검찰지시에 의해 경찰기록에서 누락됐고 진범들의 진술은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묵살됐다. 77년 길포드사건 관련자들은 뒤늦게 ASU멤버들의 진술을 증거로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세월은 흘렀다. 1980년 1월. 폭탄테러로 인해감정적 반응을 보이던 여론도 잠잠해 졌다. 이때 오래전부터 결핵으로 거의 활동을 못하던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가 병사했다. 그는 임종시 아들 콘론을 보자 산소호흡기를 떼내고는 『나는 무죄』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당시 병상을 둘러싼 경찰ㆍ교도관 등 어느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주세페가 결핵으로 도저히 테러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확신하고 무죄증명작업을 벌이던 아일랜드카톨릭교회의 사라수녀는 무죄확신을 더욱 굳혔다. 사라수녀의 활동으로 영국의원들이 재조사를 촉구했다. 85년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도 대처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87년 영국 내무성은 마침내 재조사를 시작했고 89년 그들의 자백기록이 경찰각본의 사본으로서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자백이 위조됐음이 드러났다. 이어서 폭탄전문가의견 조작,피고인측 반증의 일방적 묵살 사실도 드러났다. 89년 10월19일 비상항소심에서 「길포드의 4인」의 석방이 결정됐다. 영국정부는 힐에게 1만5천달러,나머지 3명에게는 7만5천달러를 배상했다. 아직도 「폭탄제조자」 6명은 석방을 고대하고 있지만 항소심은 열리지 않고 있다. 「여론재판」「무리한 수사」「엉터리 재판」이 남긴 충격은 크다. 크리스 물린 노동당의원은 『경찰은 75년 진범을 체포했을 때 이미 그들이 무죄임을 알았다』며 『잘못을 끝까지 덮기 위해 영국 사법절차의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조리 왜곡됐다』고 개탄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묵비권 보장등 개인인권의 명시적 보장을 위해 불문헌법체계의 수정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독립된 항소재판소 설치등 사법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조용히 제기되고 있다.
  • 3월을 맞으며(사설)

    3월은 명예로운 달이다. 우리민족이 세계만방에 「독립국임과 자유민임」을 선언한 3ㆍ1절의 달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고서,나라잃었음에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정신운동을 자생적 열기로 합의하였던 그 숭고한 뜻이 오늘 더욱 빛난다. 3월은 또 봄이 바람으로 내음으로 따뜻한 볕으로 우리 곁을 찾아오는 절기의 달이다. 가난하고 힘들고 불편한 사람들에게 어렵던 겨울이 가고 움츠렸던 기개를 펼 수 있는 달이다. 「미운 7살」을 벗어난 어린이가 국민학교에 가고,6년 동안 「어린이」였던 국민학생이 중학생이 되고,새 고교생이 생기고,새 대학생이 생기는 「신입생」의 달이다. 1ㆍ4분기로 시작되는 경제적 분절이 출발하는 것도 3월이다. 모든 실질적인 출발이 이 3월로부터 이뤄진다. 게다가 우리의 3월은 본래의 새로움에 더많은 「새로움」을 얹고 있다. 정국은 거여소야의 인위적 변혁을 시도해 놓았고 국제환경은 거대한 개혁의 물결을 이루고 거슬러 흐르는 새 여울목을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신사고」의 질서를 타고 참여하기를재촉하는 기운이 안팎에서 밀려들고 있다. 3월이 이렇게 아름답고 새로운 달이지만 우리에게는 난제들이 가로막혀 밝고 희망적인 앞날을 예측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겨우 흑자구조를 만드는가 싶던 경제는 순식간에 비틀걸음으로 돌아서고 있고 불황과 실업의 위협은 서서히 숨길을 죄어오고 있다. 잠수함의 토끼처럼 경기를 선행해서 나타내주는 증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과대평가된 우리의 국제경쟁력은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노사는 갈등을 증폭시킬 징조를 보이며 일부 노동운동권에선 3월에 대대적인 투쟁을 벼르고 있다. 벼르고 있는 세력은 노동운동권만이 아니다. 통합반대운동을 활성화 계기로 삼으려는 운동권이 대학가에도 있고 정가에도 있고 재야세력에도 있다. 그 모두가 「3월」을 신호로 삼고 있다. 더욱 우울한 것은 우리 사회가 타락하고 피폐해가는 징후에 단단히 오염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약과 폭력,퇴폐한 풍조를 만드는 일에 모두가 공범이 되어가고 있다. 상업주의와 선정주의의 유혹을 이기심 때문에극복하지 못하고 불감증세를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만연한 징후들은 공직자의 부패와 무기력과 무능을 측면 지원하고 조직 폭력과 사회악을 조장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가정에서 다스려주지 못한 청소년들은 밖에 나가 다른 동료를 물들이고,학교는 그들을 포기하고 사회는 그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더욱 비관스런 일은 잘못은 남에게 핑계대고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는 고질적인 습성이다. 비방하기에만 탁월해진 사회지도자들의 독기와 증오심은 불지르고 분탕질치는 세력의 입지를 합리화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3월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는 회생할 기회를 잃게 될지 모른다. 성장 잠재력도 아주 잃게 되고 황폐함이 극에 달해 붕괴될지도 모른다. 3월은 그러기에는 너무도 숭고한 교훈이 있는 달이다. 나라와 민족은 한번 잃으면 죽음처럼 되물리기 어려운 것임을 일깨우는 달이다. 이 교훈을 되새겨 자제하고 노력하여 소생하는 달이 되게 했으면 좋겠다.
  • 고르바초프,개혁정책 난관봉착도 시인

    ◎“소 민족분쟁 새 연방제로 해결”/개헌통해 「공화국 독립」 제도적 보장/분규지역엔 “전투중지” 최후통첩/크렘린 【모스크바 AP UPI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8일 『헌법개정에 의한 새 연방제 구축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날로 격화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공화국간의 종족분규사태 및 발트3국의 반소운동 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이날 크렘린에서 1천명의 노동자 농민 및 지식인 대표들과 가진 긴급회의에서 남부지역의 유혈소요로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난관에 봉착해 있음을 시인하면서 사태수습을 위해 병력투입이 불가피했다고 강변했는데 소련연방정부는 두 공화국에 이미 2만9천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고르바초프는 사전발표 없이 소집된 회의연설에서 그러나 『공화국의 소연방탈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강경진압과 함께 정치적 해결노력도 포기하지 않을것임을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소련 지도부는 18일 종족분규로 전쟁상태에 이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에 대해 전투를 중지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프라우다지와 타스통신을 통해 보도된 당중앙위와 최고회의 간부회,그리고 각료위원회 명의의 이 성명은 분쟁지역 주민들에게 『이성을 되찾고 유혈사태를 중지하라』고 촉구하고 『오늘의 비극이 중단되지 않으면 내일은 국가적 재난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성명은 또 『이 전투로 인한 첫번째 피해자는 부녀자들과 어린이,그리고 노인들이다. 다른 종족의 어린이와 병사들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의 아들들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범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타스통신은 또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말을 인용,카프카스 이남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현재의 위기는 개혁을 와해시키기 위해 증오심을 부채질하는 과격분자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은 이날 개혁에 관한 제2차 당지도부 회의에서 크렘린 당국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두 공화국간의 분규를 종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조치도 취할 태세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유혈사태는 과격분자들과 모험주의자들,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의 회교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과격분자들에게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목의 가시같은 존재이나 이를 직접 반대할 수 없게 되자 종족문제로 인한 긴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스통신은 현재 이들 지역에는 2만4천명의 내무부소속 보안군과 민병대가 파견됐다고 밝혔으나 정규군과 KGB(국가보안위원회) 국경수비대 병력의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이들 두 공화국과 터키와의 인접지역에서 국경을 따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으며 소련 내무부는 아제르바이잔 시위대가 17일 바쿠 남쪽 젤릴라바드스키 부근에서 이란 국경을 50㎞ 침범했다고 밝혔다. 바쿠의 민족주의 단체 소식통들은 시외곽에 중앙정부가 파견한군대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가 아직까지 설치돼 있으며 17일 시작된 파업이 18일 상오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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