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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뼈가 있는 자화상’에 담긴 뭉크의 가족사와 뭉크의 실수 [비욘드 더 스크림]

    ‘팔뼈가 있는 자화상’에 담긴 뭉크의 가족사와 뭉크의 실수 [비욘드 더 스크림]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은 뭉크가 판화로 표현한 자화상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적으로는 뭉크의 슬픈 가족사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며, 외적으로는 판화 제작 과정에서 뭉크의 실수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특별전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 볼 수 있다. 전시회는 지난달 22일 개막했으며,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린다. 이은경 도슨트(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는 ‘팔뼈가 있는 자화상’에 대해 “뭉크는 평생동안 80여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번 서울 전시회에 의미있는 3점의 자화상이 전시되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팔뼈가 있는 자화상’은 뭉크의 아픈 가족사가 담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도슨트는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뭉크미술관을 방문해 톤 한센 관장과 카스퍼 테를레고르 코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이 도슨트는 “뭉크는 5살에 어머니, 9년 뒤인 14살에 누나, 26살에 아버지, 32살에 남동생의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된다”면서 “팔뼈가 있는 자화상은 남동생이 사망 직후 만든 작품으로 뭉크가 그린 자화상 가운데 가장 우울한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뭉크는 1863년 군의관인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1817~1889)와 어머니 로라 캐서린 비욜스타드(1838~1868) 사이에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뭉크가 5살 때인 1869년 어머니가 30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9년 뒤 뭉크가 14살 때인 1877년에는 누나 소피가 어머니와 같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과 폐질환에 대한 공포가 일생동안 집요하게 엄습하여 고독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는 그의 작품과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은 ‘죽은 어머니와 아이’(1897~1899), ‘병실에서의 죽음’(1893년)에 잘 나타나 있다. ‘팔뼈가 있는 자화상’은 묘비석과 상당히 유사하다.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창백한 얼굴 그리고 앙상한 팔뼈와 상단의 묘비를 연상시키는 장식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뭉크는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이미 자신은 심리적으로 죽은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특히 ‘팔뼈가 있는 자화상’의 상단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알파벳의 ‘D’와 ‘N’이 거꾸로 새겨져 있다. 이는 제작 과정에서 좌우가 바뀌는 판화의 특성을 깜빡하고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도슨트는 “이 작품은 뭉크의 초기 판화작이라서 아직 판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뭉크의 실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작품에 담긴 격렬한 감정들”…뭉크미술관 톤 한센 관장이 전하는 ‘뭉크 감상법’ [인터뷰]

    “작품에 담긴 격렬한 감정들”…뭉크미술관 톤 한센 관장이 전하는 ‘뭉크 감상법’ [인터뷰]

    “뭉크가 작품을 그리며 느꼈던 그날의 특별한 감정을 경험해 보세요.”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뭉크미술관의 톤 한센(54·Tone Hansen) 관장은 “60년 이상 적극적인 예술 활동을 했던 뭉크 작품의 대부분은 불안, 질투, 우울과 같은 존재론적 테마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뭉크가 작품을 그렸던 125년 전(뭉크가 살았던 세기말인 1899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감정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는 ‘뭉크의 고향’으로 불리는 오슬로 뭉크미술관으로부터 대여받은 9점의 작품이 전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뭉크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에서 온 작품들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1916년 오슬로 외곽의 에켈리에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서 살며 그린 후기 작품이다. 뭉크의 노년을 엿볼 수 있는 뭉크 특유의 모더니티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그는 “뭉크미술관에서 대여한 9점은 뭉크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면서 “서울 전시는 한국인들에게 뭉크의 예술 세계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전시에는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대여받은 ‘절규’, ‘마돈나’, ‘뱀파이어’ 등 뭉크의 대표작 140점이 총출동했다. 특히 뭉크미술관에서 총 9점의 주요 작품들을 서울 전시를 위해 보냈다. ‘아스타 칼슨’(Aasta Carlsen·1888~1889),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Man and Woman by the Window with Potted Plants·1911), ‘남과 여’(Man and Woman·1913~1915), ‘모자와 외투를 걸친 모델’(Model with Hat and Coat·1916~1917), ‘목욕하는 여인들’(Women in the Bath·1917), ‘흐트러진 시야’(Disturbed Vision·1930), ‘밤의 정취’(Evening Mood·1932~1934), ‘초대받지 않은 손님’(Uninvited Guests·1932~1935), ‘자화상’(Self-Portrait·1940~1943) 등이다.한센 관장은 노르웨이 국립 예술아카데미(Norwegian National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했으며, 오슬로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헤니 온스타 예술센터(Henie Onstad Kunstsenter)에서 큐레이터와 디렉터로 11간 근무한 뒤 2022년부터 뭉크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오는 9월에 한국을 방문해 한국 미술 시장을 돌아보고 서울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회도 돌아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센 관장과의 인터뷰는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이은경 도슨트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 전시는 아시아권 최대 뭉크 전시회다. 작품 감상 포인트는. “관람객들 각자의 입장에서 뭉크가 느꼈던 그날의 특별한 감정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60년 이상 적극적인 예술 활동을 했던 뭉크 작품의 대부분은 불안, 질투, 우울과 같은 존재론적 테마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125년 전(뭉크가 살았던 세기말인 1899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저는 작품을 보며 뭉크의 격렬한 감정을 느끼려 하고 있다. 뭉크의 작품들은 감정적 깊이가 깊고, 작품을 통해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 - 뭉크미술관에서 서울에 대여한 작품은. “뭉크미술관에서 총 9점의 주요 작품들을 서울 전시를 위해 보냈다.(태블릿PC로 보낸 작품을 보여주며) 대여한 작품은 ‘아스타 칼슨’,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 ‘남과 여’, ‘모자와 외투를 걸친 모델’, ‘목욕하는 여인들’, ‘흐트러진 시야’, ‘밤의 정취’, ‘초대받지 않은 손님’, ‘자화상’ 등이다. 이 중에 개인적으로는 ‘흐트러진 시선’과 ‘밤의 정취’,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를 가장 좋아한다.”뭉크미술관에서 온 작품 중 ‘자화상’(1940~1943·14섹션)은 삶의 끝자락에서 완성한 자화상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자신의 모습과 투명한 신체와 뒤에 펼쳐진 어두운 그림자 등 ‘도플갱어 모티브’를 이용해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듯한 작품이다. ‘흐트러진 시야’(1930·14섹션)는 실명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려는의지를 담았다. 뭉크는 1930년 안구 출혈로 오른쪽 눈은 실명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왜곡된 세상과 올바른 시각이 겹쳐 보인다. 에켈리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뭉크는 주변에서 작품 소재를 찾았다. ‘밤의 정취’(1932~1934·14섹션)는 따뜻한 색조와 섬세한 붓놀림을 통해 평온함과 고독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무성영화에 심취했던 뭉크는 영화적인 표현에도 관심이 많았다.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1911·12섹션)는 빛 반사 등 사진의 요소를 활용해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움직임에 대한 사진적인 표현을 선보였으며, ‘목욕하는 여인들’(1917·3섹션)은 강렬한 여성의 이미지를 투명하게 덧입히면서 마치 이중 노출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모자와 외투를 걸친 모델’(1916~1917·12섹션)는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촬영한 듯한 작품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1932~1935·14섹션)은 고정된 공간 속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됐고, ‘남과 여’(1913~1915·12섹션)는 천장의 빛이 화면 안으로 사라지면서 소실점이 뚜렷하게 만들진 모습을 포착했다. ‘아스타 칼슨’(1888~1889·1섹션)은 1880년대 뭉크의 초기 실험적인 작품으로 붓질과 스크래치 자국 등과 같은 제작 과정의 흔적을 통해 부조적인 느낌을 준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나. “몇 년전 광주 비엔날레에서 가본 적이 있다. 프리즈 아트페어와 전시가 끝나는 오는 9월에 4~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려 한다. 한국의 미술관과 한국 시장도 둘러보려 한다. 물론 서울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회도 보고 싶다. 한국 음식 중에는 잡채와 파전을 좋아한다. 막걸리도 좋아한다.”- 뭉크미술관은 어떤 곳인가. “2021년 새롭게 개관한 뭉크미술관은 절규, 뱀파이어, 마돈나와 같은 뭉크의 작품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뭉크 작품 12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절규’의 3개의 다른 버젼으로 전시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은 근현대 미술관으로서 관람객들은 뭉크 작품 외의 작품 또한 감상할 수 있다. 뭉크미술관은 예전에는 없었던 대중적인 체험, 월드클래스의 근현대 예술품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콘서트, 공연예술 및 토크쇼 등의 좋은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뭉크미술관은 예술가, 다양한 관람객 및 직원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대여하는 등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예술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떠오르는 신예작가 또는 이미 자리매김한 예술가이건, 현존하거나 또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예술가이건 상관 없이, 뭉크미술관은 항상 현재에 관심을 두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질문들을 탐색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은, 뭉크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뭉크미술관은 ‘그게 누구건 어디서 왔건 간에, 살아서 숨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미술관이 되고자 한다.”- 뭉크미술관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너무 유명한 ‘절규’를 빼고 꼭 한 점을 이야기한다면 ‘태양’이다. ‘생명과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뭉크가 어떻게 완벽하게 추상적인 작품을 그리는 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매우 복잡한 이미지이고 그 스케일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다.- 절규가 전세계인들에 사랑받고 있는 비결은. “절규는 환상적인 자연의 비명이다. 절규를 통해 비명을 지르는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독창적이라고 생각한다. ‘절규’라는 작품은 작가인 뭉크보다 더 유명하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에게 제가 뭉크미술관에서 일한다고 말했다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절규의 고향’에서 일한다고 말한다. 사실 절규가 뭉크 생전에는 별로 유명한 그림이 아니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그림이었지만 나중에 유명해졌다. 절규가 ‘이모티콘’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제가 아는 작가의 그림 중에 유일하게 이모티콘이 있는 그림이다. ”- 뭉크미술관에서 절규는 어떻게 전시되나. “절규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로 여러가지 버젼으로 그려졌다. 뭉크는 4개의 채색 버전의 절규를 그렸다. 이 가운데 2점이 뭉크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뭉크는 절규를 석판 버젼으로 제작했다. 뭉크가 판화 버젼을 얼마나 제작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대략 30여점의 절규 판화본을 제작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뭉크가 직접 채색한 핸드컬러드 판화본을 포함하한 6점의 절규 판화본을 뭉크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절규의 다양한 버젼을 관람할 수 있다. 4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유화, 파스텔 및 판화 버젼의 절규를 전시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파손에 매우 약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전시하지 않고 하루 중 특정 시간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전시중이다.”- ‘뭉크의 도시’로 불리는 오슬로에서 뭉크의 삶은. “오슬로 또는 크리스티아니아(1925년까지 사용된 오슬로의 옛 이름)는 뭉크의 예술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티아나가 근대도시로 도약하게 됨에 따라 1880년대부터 나타난 사회 생활의 변화는 뭉크의 전 생애를 아울러 그의 예술세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테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뭉크의 ‘생의 프리즈’ 연작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중요한 모티브는 근대 격동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오슬로에서 자란 뭉크는 도시의 예술과 문화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서 맺게된 주요 인물들과의 관계는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을 적으로 여겼던 뭉크는 결국 상당기간 해외로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뭉크는 세기말 즈음을 ‘적의 도시’로 언급하기도 했다. 도시와 애증의 관계였을지라도, 뭉크는 1916년 그가 53세가 되던 해에 에켈리에 집을 구매해서 1944년 죽을때까지 살았다. 에켈리는 오슬로 외곽에 위치한 시골지역으로 뭉크와 도시간의 말년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뭉크는 도시와 거리를 두고 싶어했지만 멀리 떠날수도 없었다.”- 오슬로에는 뭉크와 관련된 장소들은. “뭉크는 엥게브레드 카페에 고정석이 있을 정도로 이 카페를 애용했고, 왕궁부터 에게르토르게트까지 연결되는 오슬로 메인거리인 칼 요한거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칼 요한거리에 위치한 그랜드카페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여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상류층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람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뭉크는 모더니즘의 예술가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유화, 그래픽, 드로잉, 조각, 사진, 영화에서 보여준 뭉크의 지속적인 실험 정신을 통해 뭉크가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전세계 예술사에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의 예술작품의 숨결을 경험하기 위해 뭉크미술관을 방문하시기를 추천한다. 뭉크미술관은 가장 방대한 양의 뭉크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과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 뭉크의 명작, 그리그의 선율… ‘피오르’가 빚은 낭만을 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뭉크의 명작, 그리그의 선율… ‘피오르’가 빚은 낭만을 품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세계문화유산, 피오르, 그리그, 뭉크.’노르웨이 서부 해안 도시 베르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행 키워드다. 문화,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낭만과 힐링’의 도시 베르겐은 네 가지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베르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브뤼겐 역사지구’가 있고, ‘피오르 여행’의 관문 도시답게 탁 트인 바다가 도시를 마주하고 있다. 베르겐 출신의 세계적인 낭만주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가 살았던 ‘트롤하우겐’과 노르웨이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베르겐미술관’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아렌델 왕국의 모티브가 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낸다. 여름은 북유럽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지난달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새롭게 떠오른 시원한 인기 여름 휴양지’로 베르겐이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덥지 않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베르겐을 꼽았다.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베르겐을 돌아봤다.# 세계문화유산 ‘브뤼겐 역사지구’ 베르겐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항구를 따라 이어진 파스텔 색조의 아름다운 목조 건물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구시가지 중심인 브뤼겐 역사지구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뾰족한 삼각형 지붕으로 이뤄진 붉은색, 노란색, 흰색 건물들은 북유럽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원색의 건축미가 뛰어난 브뤼겐 역사지구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베르겐은 1070년 올라프 3세(1050~1093)가 세운 도시로 12~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로 번성했다. 중세 북유럽 상인연합체인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현재는 인구 25만명이 살고 있는 노르웨이 제2의 도시다. 역사지구 골목 안에는 한자동맹 당시 부유한 독일 상인들이 부둣가에 정착하며 세웠던 목조건물을 만날 수 있다. 여러 번 큰 화재를 겪었지만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이어 오고 있다. 지금도 62채가 남아 있다. 1702년 건립된 한자박물관은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인근에 있는 베르겐 어시장에는 청정 바다 북해에서 잡아 올린 연어와 대구 등 다양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11세기 초부터 이어 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시장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플뢰위엔산(해발 320m)에 오르면 베르겐의 탁 트인 전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베르겐 어시장 인근에 있는 탑승장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정상까지 8분 정도 걸린다. 플뢰위엔산은 일몰 시간에 맞춰 올라가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는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 운행된다. # ‘피오르’ 여행 관문서 만나는 장엄함 많은 사람들이 베르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덮고 있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 낸 협곡인 ‘피오르’를 보기 위해서다. 노르웨이 북서쪽은 말갈기처럼 들쑥날쑥한 복잡한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피오르가 만들어 낸 협곡이다. 피오르 여행의 출발점은 ‘피오르의 수도’로 불리는 베르겐이다.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4대 피오르인 ‘송네 피오르’와 ‘게이랑에르 피오르’가 있고, 남쪽으로는 ‘하르당게르 피오르’, ‘뤼세 피오르’ 등 많은 피오르가 얽혀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는 길이가 204㎞에 이른다. 베르겐에서 북동쪽으로 140㎞ 떨어진 구드방겐에서 플롬까지 2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가며 피오르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U자형 협곡에는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 낸 폭포와 에메랄드빛 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노르웨이 관광청에서 개발한 여행 코스인 ‘넛셀투어’는 고속열차, 버스, 페리, 산악열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480㎞를 횡단하며 웅장한 자연과 송네 피오르를 감상할 수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 그리그의 숨결 ‘그 겨울 지나 봄이 가고, 봄이 또 가고 여름이 가면, 한 해가 저무네….’ 베르겐은 ‘솔베이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이다. 솔베이의 노래는 문학의 거장 헨리크 입센(1828~1906)의 극시에 곡을 붙인 ‘페르퀸트 모음곡’에 나오는 노래로, 노르웨이 민요에서 영향을 받았다. 솔베이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난 남편 페르퀸트를 기다리며 부르는 애틋한 사랑 노래다. 노르웨이인들의 서정이 느껴지는 애절한 곡이다. 그리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은 그가 1885년부터 죽기 전까지 22년간 살았던 저택인 트롤하우겐이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한적한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바다가 굽어보이는 트롤하우겐에서는 박물관, 별장, 콘서트홀, 오두막집 작업실 등을 볼 수 있다. 오두막집에서는 그리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피아노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그는 이곳의 절벽 묘지에 성악가인 아내 니나와 영면에 들었다. 트롤하우겐은 도심과 베르겐공항 사이에 있다. 시내에서 1번 트램을 타고 호프역에 내려 20여분(1.8㎞) 걸어야 한다. 택시를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 뭉크의 진화 볼 수 있는 베르겐미술관 베르겐미술관(KODE)은 오슬로 뭉크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뭉크 작품을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베르겐미술관은 주제별로 4개(KODE 1~4)의 전시관 건물이 있는데 뭉크 작품은 3전시관(KODE 3)에서 볼 수 있다. 베르겐미술관은 1889년 사업가 크리스티안 순트가 소장품을 기증한 이래 부자들의 작품 기증과 기부로 세워졌다. 1916년 노르웨이 최고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라스무스 마이어가 뭉크 작품 등을 포함한 유명 작가의 작품 962점을 기증했다. 미술관은 뭉크를 비롯해 하리에트 바케르, 니콜라이 아스트루프, 요한 크리스티안 달 등 노르웨이 대표 화가들의 작품 등 4만 3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KODE 3에서는 뭉크의 예술적 진화 과정에 따라 ‘카를요한거리의 아침’(1892), ‘해변의 달빛’(1892), ‘여자의 세 시기’(1894), ‘소녀’(1884), 멜랑콜리(1894~1896), ‘질투’(1895), ‘임종’(1895), ‘병실에서의 자화상’(1909) 등 초기 작품부터 후기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베르겐미술관의 작품과 동일한 모티브로 뭉크가 그린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뭉크 전시회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 볼 수 있다. 뭉크는 한 가지 모티브로 시기와 계절에 따라 유화, 파스텔화, 판화 등으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한가람미술관에는 ‘카를요한거리의 저녁’(1896~1897)과 ‘여자의 세 시기, 스핑크스’(1899), 멜랑콜리 III(1902) 등 핸드 컬러드 판화 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여행수첩] ■항공 : 서울에서 베르겐까지 직항편은 없다. 오슬로, 파리,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유럽 도시에서 편도 항공료는 10만~30만원이다. 베르겐공항에서 도심까지는 12㎞ 떨어져 있으며, 1번 트램(44크로네)이나 공항버스(169크로네)를 이용하면 된다. 도심까지는 45분 정도 걸린다. ■호텔 : 베르겐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이다. 브뤼겐 역사지구 주변 호텔을 이용하면 여행하기 편리하다. 호텔은 위치와 시설 규모, 요일에 따라 1박에 20만~40만원까지 다양하다. ■관광 : 베르겐 카드를 구입하면 버스와 트램 무료 탑승과 함께 미술관, 박물관, 수족관, 콘서트홀, 관광명소 등을 무료 입장하거나 할인받을 수 있다. 카드는 여행자센터나 앱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24시간 380크로네, 48시간 460크로네 등이다. 1크로네는 128원(6월 현재)이다.
  • 준비 과정까지 ‘블록버스터’… 한국 미술전시史 다시 쓰다 [뭉크의 명작 속으로]

    준비 과정까지 ‘블록버스터’… 한국 미술전시史 다시 쓰다 [뭉크의 명작 속으로]

    세계 각지 개인 소장가 찾아 설득140점 공수 ‘메이저 미술관 전시’‘주도적 해석’ 큐레이터 재조명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은 전시 수준뿐 아니라 준비 과정도 한국 미술전시사에 길이 남을 전시다. 뭉크 전시의 미술사적·미술행정적 의의를 이해한다면 전시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미술계에서는 한 작가 또는 화풍을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를 일반 전시와 구분해 ‘메이저 미술관 전시’라고 부른다. 해당 작가 또는 화풍에 대한 전문 큐레이터가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들을 선별한 다음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장품들을 모아 한자리에 전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에 대한 깊은 지식뿐 아니라 개인 소장처 정보도 파악해야 하며 수십 군데의 기관과 협상해 각 기관의 조건에 맞춰 보험, 운송, 보관 등을 진행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고 준비 기간은 보통 3년에서 5년이 소요된다. 이런 전시를 할 수 있는 미술관은 선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이번 뭉크전은 노르웨이,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 멕시코 개인 소장가 작품들까지 모두 140점(개인 소장작 126점)이 공수된,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진정한 의미의 메이저 미술관 전시다. 뭉크는 생전에 이미 노르웨이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았고 전업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판매했다. 따라서 뭉크가 말년에 남은 작품들을 오슬로시에 기증했음에도 많은 주요 작품들이 여전히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개인 소장가들은 미술관과 달리 자신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지 않고 작품 보호를 이유로 대여에도 소극적이다. 이번 전시의 주최 측은 각국의 뭉크 전문가들을 통해 뭉크의 주요 작품을 가진 개인 소장가들을 찾아내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선보인 126점의 개인 소장품들이 언제 다시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다. 특히 뭉크가 판화 위에 직접 채색한 핸드컬러 프린트의 경우 노르웨이의 미술관들에서도 이번 전시와 같은 대규모 전시가 이뤄진 바 없다. 개인 소장품을 모아 오는 절차가 매우 어려운 까닭이다. 한국의 뭉크 전시를 전해 들은 유럽의 미술 애호가들이 개인 소장품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시의 4대 요소는 작품, 전시장, 관객 그리고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을 소재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전시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과거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곤 했지만 이제는 깊이 있는 해석을 요구하는 관객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뭉크를 전공하고 수많은 뭉크 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뭉크를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의 교두보를 마련한 혁신가로 소개한다.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작품, 전시의 제목과 내용 선정, 전시장 동선과 디자인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뭉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 ■전시 팁: 작품을 감상하며 소장처를 확인할 것. 뭉크는 사후 작품을 모두 오슬로시에 기증했기에 전시된 개인 소장품은 대부분 생전 판매된 것이다. 뭉크 생전 어떤 작품들이 팔렸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 125년을 거슬러… ‘뭉크의 고향’서 온 모더니즘 예술과 만나세요 [뭉크의 명작 속으로]

    125년을 거슬러… ‘뭉크의 고향’서 온 모더니즘 예술과 만나세요 [뭉크의 명작 속으로]

    불안·질투·우울 테마로 현대 관통 사진적 표현·영화적 요소 활용도한센 관장 “뭉크의 실험 정신 담겨”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는 ‘뭉크의 고향’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으로부터 대여받은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뭉크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에서 온 9점의 작품 대부분은 에드바르 뭉크(1863 ~1944)가 1916년 오슬로 외곽의 에켈리에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서 살며 그린 후기 작품이다. 뭉크의 노년을 엿볼 수 있는 특유의 모더니티를 잘 보여 준다. 대부분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뭉크미술관의 톤 한센 관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뭉크미술관에서 대여한 9점은 뭉크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면서 “서울 전시는 한국인들에게 뭉크의 다양한 작품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9점 중 개인적으로 ‘흐트러진 시야’, ‘밤의 정취’,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를 좋아한다”면서 “60년 이상 적극적인 예술 활동을 했던 뭉크의 작품 대부분은 불안, 질투, 우울과 같은 존재론적 테마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작품이 지금도 공감을 받는 것은 125년(뭉크가 살았던 세기말인 1899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러한 감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뭉크미술관에서 온 작품 중 ‘자화상’(1940~1943)은 삶의 끝자락에서 완성한 자화상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자신의 모습과 투명한 신체, 뒤에 펼쳐진 어두운 그림자 등 ‘도플갱어 모티브’를 이용해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듯한 작품이다. ‘흐트러진 시야’(1930)는 실명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1930년 안구 출혈로 뭉크의 오른쪽 눈은 실명에 가까웠다. 이로 인해 왜곡된 세상과 올바른 시각이 겹쳐 보인다. 에켈리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던 뭉크는 주변에서 작품 소재를 찾았다. ‘밤의 정취’(1932~1934)는 따뜻한 색조와 섬세한 붓놀림이 평온함과 고독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무성영화에 심취했던 뭉크는 영화적인 표현에도 관심이 많았다. ‘화분이 놓인 창가의 남녀’(1911)는 빛 반사 등 사진의 요소를 활용해 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움직임에 대한 사진적인 표현을 선보였으며 ‘목욕하는 여인들’(1917)은 강렬한 여성의 이미지를 투명하게 덧입혀 마치 이중 노출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모자와 외투를 걸친 모델’(1916~1917)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 같은 작품이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1932~1935)은 고정된 공간 속에서 사물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영화적인 요소가 가미됐고 ‘남과 여’(1913~1915)는 천장의 빛이 화면 안으로 사라지면서 뚜렷하게 만들어진 소실점을 포착했다. ‘아스타 칼슨’(1888~1889)은 1880년대 뭉크의 초기 실험적인 작품으로 붓질, 스크래치 자국 등과 같은 제작 과정의 흔적을 통해 부조적인 느낌을 준다. 한센 관장은 “뭉크는 모더니즘 예술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그가 유화, 그래픽, 드로잉, 조각, 사진, 영화에서 보여 준 지속적인 실험 정신을 통해 전 세계 예술사에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면서 “서울 전시가 한국 사람들이 노르웨이와 뭉크미술관을 방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현대판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으른들의 미술사]

    현대판 모나리자 뭉크의 ‘절규’ [으른들의 미술사]

    뭉크의 대표작 ‘절규’의 배경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에케베르크 언덕이다. 뭉크는 이곳에 오면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누나의 장례식을 치른 곳이 이 언덕 근처였으며 레우라가 수용된 고스타드(Gaustad) 정신병원도 이 근처에 있었다. 뭉크는 여름 해 질 녘에 친구들과 함께 에케베르크 언덕을 산책 중이었다. 뭉크는 현기증이 나서 잠시 멈춰 섰다. 뭉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갑자기 해가 지고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고 불처럼 혀를 낼름거렸다. 나는 지쳐서 난간에 잠깐 기대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고, 나는 불안에 떨며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을 가로지르는 무한한 비명을 들었다.” 뭉크가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 이 증상은 공황발작 증상이다. 가슴이 뛰고 어지럼 증세를 보인 뭉크는 난간에 기대섰다. 친구들은 뭉크의 상태를 알지 못해 앞으로 걸어갔고, 남겨진 뭉크는 기진맥진해서 불안에 떨었다. ‘절규’는 뭉크가 그 순간 느꼈던 현기증과 불안, 공포를 그린 것이다. 핏빛 하늘과 일렁이는 움직임은 뭉크의 신체와 정신 상태를 알려준다. 공황장애, 불안, 고독 등 현대인의 일상이 된 불안장애를 그린 이 그림은 ‘현대판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현대인의 고독과 불안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되었다. 낙서, 뭉크의 소심한 복수핏빛 구름 속에 자세히 보면 “이 그림은 미친 사람만 그릴 수 있다”라는 작은 낙서가 있다. 이 낙서는 작품이 제작되고 10여 년 흐른 1904년 처음 발견되었다. 미술관은 관람 도중 이 작품에 불만을 품은 어느 관람객이 낙서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2021년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작품 복원 과정에서 필체 감정을 통해 이 낙서는 뭉크 본인이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박물관은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뭉크가 1895년에 낙서한 것으로 보았다. 1895년 이 작품이 전시되자 뭉크의 정신 상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의학도인 샤펜베르크(Scharfenberg)는 뭉크 집안은 유전적으로 정신질환을 보유한 집안이라 뭉크 예술도 병들었다고 비난했다. 뭉크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왜냐하면 뭉크 자신도 강박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데다 여동생 레우라 마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샤펜베르크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라서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뭉크는 일기에 “나는 예술을 제작할 때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나의 예술은 늘 건강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뭉크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상처받은 뭉크가 홧김에 낙서했다고 결론 내렸다. 요즘 말로 하면 뭉크가 작품 댓글에 대댓글로 응수한 셈이다. 이처럼 뭉크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언쟁을 하면 화를 참지 못하고 반드시 어떻게든 복수했다. 뭉크와 언쟁을 벌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돼지나 두꺼비로 변하는 귀여운 형벌을 받았다. 뒤끝이 긴 뭉크는 복수도 소심하게 그러나 위대한 예술로 한 셈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4점의 채색본을 포함해 50여 점에 달하는 판화본이 있다. 뭉크는 채색본을 1893년에 두 점, 1895년과 1910년에 각각 한 점씩 그렸다. 4점의 작품들은 재료도 각각이며, 작품 구성도 조금씩 다르다. 4점 모두 유명해서 절도범들의 단골 표적이 되었으며 도난사고도 빈번했다. 뭉크의 ‘절규’는 노르웨이에서 국보로 대접받는 작품들이다. 뭉크는 판화 위에 채색을 가해 유일무이한 판화본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채색 판화본 두 점 가운데 한 점을 만날 수 있다.
  • “뭉크가 채색한 ‘절규’ 판화 단 2점… 그중 하나가 서울에 걸려 있다”

    “뭉크가 채색한 ‘절규’ 판화 단 2점… 그중 하나가 서울에 걸려 있다”

    “서울에서 전시되는 채색 판화 ‘절규’는 뭉크가 직접 제작한 작품으로 매우 아름답고 멋진 작품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의 전시를 총괄하고 있는 전시·컬렉션 부문장인 카스페르 테글레고르 코크는 “‘절규’ 채색판화는 뭉크미술관에서도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면서 “이는 뭉크가 판화를 찍은 뒤 그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빨간색, 파란색, 녹색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대를 졸업했으며 2022년부터 뭉크미술관 전시·컬렉션 부문장을 맡고 있다.그는 “서울 전시는 뭉크미술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전시회”라면서 “뭉크미술관에서 이번 전시에 중요한 작품 9점을 보냈다”고 밝혔다. 뭉크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 대부분은 아시아에서 공개된 적이 없다. 이 중 1895년 파스텔로 그린 ‘뱀파이어’와 1906 ~1907년 작품 ‘표현적으로 그린 헨리크 입센의 유령 세트 디자인’, 1915년 작품 ‘해안의 풍경’과 ‘옐로야의 봄날’ 등 4점은 뭉크미술관을 제외하고는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는 뭉크미술관을 비롯해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대여받은 ‘절규’, ‘마돈나’, ‘뱀파이어’ 등 뭉크의 대표작 140점이 총출동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절규’는 판화 위에 뭉크가 채색한 핸드 컬러드 작품이다. 채색판화는 전 세계에 두 점이 있는데 서울에 온 것은 뭉크미술관 것이 아닌 개인 소장품이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이은경 도슨트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뭉크미술관서도 적극 지원대여 9점 대부분 아시아 미공개작‘뱀파이어’ 등 4점은 외부 첫 전시뭉크 예술세계 들여다볼 수 있어 -서울 전시에서 뭉크의 ‘생의 프리즈’ 연작 전시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뭉크미술관에서도 이런 형식으로 전시가 이뤄지나. “현재 우리 미술관은 상설 전시 형태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뭉크 작품 전시가 ‘생의 프리즈’ 형태로 구성돼 있다. 이전에는 우리 미술관도 ‘생의 프리즈’ 형식으로 구성한 기획 전시를 했다. 2021년 새롭게 오픈한 뒤엔 뭉크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에 세 가지 버전의 ‘절규’가 있는데 어떻게 전시되나. “‘절규’만을 전시하는 별도 공간에서 유화, 파스텔, 판화 3가지 버전이 돌아가며 전시된다. 3면의 가벽 속에 작품이 한 점씩 들어 있고, 30분 간격으로 한 개의 벽만 오픈되는 방식으로 선보인다. 유화나 파스텔 버전보다는 판화 버전을 더 자주 공개하고 있다.”‘절규’는 오해가 많은 명화작품 속 인물, 비명 지르는 게 아냐자연의 절규에 놀라 귀 막은 것뿐뭉크 수작업 채색판화 매우 희귀 -세 작품을 동시에 전시하지 않는 이유는. “작품들이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만일 유화 버전을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전시한다면 작품의 색이 바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은 아니지만 50년 후에는 어두운 붉은색이 핑크색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화 버전은 하루 중 2시간, 즉 30분씩 4번만 전시된다. 변질 속도를 늦춰야 하기 때문에 항상 볼 수는 없지만 정해진 시간에 감상할 수 있다. 파스텔과 판화 버전도 같은 이유로 전시 횟수가 조정되는 것이다.” -‘절규’가 다른 작품에 비해 빛에 민감한 이유는. “‘절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 중 하나인데 정말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빛에 매우 민감한 종이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절규’는 어떤 작품인가.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판화 버전이지만 그 위에 수작업으로 채색한 핸드 컬러드 작품이다. 개인 소장품으로 매우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다.” -판화는 뭉크가 직접 채색한 작품인가. “물론이다. 뭉크가 흑백으로 판화로 찍은 후에 그 위에 수채화 물감으로 빨간색, 파란색, 녹색을 직접 그려 넣은 것이다.” -‘절규’ 속 인물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절규’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손으로 볼을 감싼 게 아니라 자연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자연의 절규에 너무나 놀라 소리도 낼 수 없이 입만 벌리고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절규’는 아마 이 세상 명화 중 가장 오해가 많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뭉크미술관에서 서울 전시에 보낸 9점은 어떤 작품인가. “서울 전시회를 맡은 큐레이터인 디터 부흐하르트 박사가 우리 미술관에 대여를 요청해 선정한 것이다. 요청을 받은 여러점 중에서 파손되기 쉬운 작품이나 이동할 때 진동 등에 취약한 작품들을 제외하고 9점을 골랐다. 9점은 모두 뭉크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리 미술관에서도 서울 전시회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뭉크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매일 좋아하는 작품이 달라지는데 ‘절규’나 ‘마돈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생명의 춤’(Dance of Life)이다. 뭉크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연극 무대와도 같은 방식으로 보여 준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등장해 사랑에 대한 종합적인 감정을 한 화폭에서 보여 주기 때문이다.” -2004년 ‘절규’와 ‘마돈나’ 도난 사건 이후 작품의 보안은. “예전의 미술관은 보안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출입이 용이해 들어가서 그냥 들고 나오면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 지은 뭉크미술관은 보안관리 대책을 단단히 세웠다. 작품을 가지고 미술관을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었다. 보안 사항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작품들이 모두 벽에 잠금 장치로 고정돼 있다.” -도난당했던 작품의 상태와 복원은. “‘절규’와 ‘마돈나’가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왔을 때 두 작품 모두 파손이 심한 상태였다. 특히 ‘마돈나’의 파손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마돈나’는 작품 뒤편을 지탱하던 프레임이 뜯겨서 제거된 상태로 발견돼 어렵게 복원과 보존을 해야 했다. ‘절규’는 작품 아래쪽을 보면 색깔이 변한 걸 볼 수 있다. 어두운 빨간색이 조금 옅어졌다. 도난 때 발생한 손상이다. 물이 작품에 스며들면서 색깔이 변질됐는데 이런 부분은 복원이 불가능하다. 우리 미술관에는 탁월한 작품 복원 실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어 작품이 변질되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대응하고 있다.” 뭉크미술관의 전시 형식은유화·파스텔·판화 버전 ‘절규’ 보유 빛에 민감한 종이에 그려져 있어한 작품당 30분씩 돌아가며 공개 - 마지막으로 작품 관리는.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품의 보존과 보호다.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한 수장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장고는 기후에 따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어 작품의 상태를 장기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들이 빛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색이 바래지 않도록 전시실의 조도를 낮춰 작품이 빛에 덜 노출되도록 하고 있다.”
  • 뭉크, 동병상련을 느끼다 [으른들의 미술사]

    뭉크, 동병상련을 느끼다 [으른들의 미술사]

    ‘멜랑콜리’는 뭉크의 동료 야페 닐슨(Jappe Nilssen)이 오스가르스트란 해안가에 앉아 수심에 잠긴 듯 손으로 턱을 바치고 있는 장면이다. 이곳은 뭉크가 1889년부터 여름을 보낸 오스가르스트란이다. 오스가르스트란 해안가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구불거리는 선은 갈 곳 몰라 방황하는 젊은이의 마음 선이다. 이 작품은 ‘우울’, ‘저녁’, ‘질투’라는 여러 제목으로 불린다. 뭉크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닐슨의 무기력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보면 닐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안 풍경 저 멀리 부둣가에 한 커플이 서 있다. 부둣가에 닐슨이 짝사랑한 연인 오다 크로그가 남편 크리스티안 크로그와 함께 배를 기다리고 있다. 크로그 부부는 배를 타고 섬으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갈 것이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들이 즐긴 자유연애오다와 크로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의 핵심 구성원이다. 크로그는 뭉크의 예술 초기 뭉크의 그림을 수정해주며 뭉크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넨 스승이다. 오다도 크로그의 미술 수업을 듣던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오다는 제자라는 인연에서 스승 크로그의 아내가 되었다.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에서 사랑, 연애, 질투, 불륜은 구분이 없었다. 크로그, 오다, 예게르는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이들 셋이 사회적 제약이 없는 연애를 즐겼다. 오다는 남편 크로그 뿐 아니라 예게르와도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다. 오다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클럽 내에서 크로그, 예게르와 시끌벅적한 사랑을 한 오다는 다시 열 살 연하 닐슨에게 추파를 던졌다. 닐슨은 유부녀인 오다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순진한 닐슨은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이 권장하는 자유연애가 맞지 않았다. 닐슨의 사랑은 오직 오다만을 향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남편과 함께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닐슨의 심정은 무너졌다. 그러나 닐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의 상실감사랑 때문에 무너지는 심정에 대해 뭉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뭉크 역시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인 유부녀 밀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는 닐슨의 상실감을 잘 알고 있었다. 뭉크 역시 밀리와의 사랑을 정리했다고 믿었지만 오슬로 카를 요한 거리에서 밀리를 보자 마음이 요동쳤던 기억이 있다. 뭉크는 6년 전 감정이 되살아났다. 한 공간, 두 개의 감정이날의 감정은 뭉크가 어느날 해안가를 걷다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돌 틈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고 하늘은 잿빛이 되었다. 뭉크는 만사가 허무했고 갑자기 죽음이 떠올랐다. 그 순간 선창가에 세 사람이 보였다. 뭉크는 휜 옷을 입은 여성이 밀리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밀리가 아니라 오다였다. 뭉크는 닐슨을 맨 오른쪽에 배치하고 크로그 부부를 저 멀리 배치함으로써 그들 간의 심리적 거리를 강조했다. 사실 이들 사이의 거리는 급격한 원근법으로 표현한 것보다 더 멀었다. 한 공간에서 두 개의 다른 감정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았지만 뭉크는 닐슨의 감정만을 부각시켰다. 사랑하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못해 절망감에 빠져 우울한 닐슨은 뭉크 자신이었다. 이 작품이 1891년 오슬로에서 전시되자 또 많은 이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이 작품 역시 완성작이 아니라 초벌이나 습작 정도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많은 비난 중에서 유일하게 크로그만 이 작품을 극찬했다. 크로그는 ‘이 작품에서처럼 색채가 울려 퍼지는 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라며 노르웨이의 상징주의 그림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크로그는 이 작품의 배경에 하나의 점으로 서 있는 사람이 자신인 줄 몰랐다. 이번 전시에는1891~1894년 뭉크는 ‘멜랑콜리’를 여러 유화본으로 그렸다. 또한 뭉크는 목판화로 ‘멜랑콜리’ Ⅰ-Ⅲ까지 여러 번 변조해 목판본의 질감과 색상 변화를 실험했다. 뭉크는 닐슨이 느낀 이 상실감에 대해 모티프를 여러 차례 변화를 선보였다. 이후 이 작품의 무대는 뭉크 작품의 주 무대가 되며 비극적인 감성은 ‘절규’로 이어진다. 특이하게 이 작품은 유화본과 판화본이 좌우가 바뀌지 않았다. 이는 뭉크가 판화본을 제작할 때 미리 좌우를 뒤집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미리 좌우를 뒤집어 제작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뭉크는 좌우가 바뀌는 판화를 유화와 동일하게 하고 채색함으로써 판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개인 소장본에서는 채색이 되어 유화와 같은 닐슨의 심리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 ‘절규’의 시작을 만나다… 뭉크, 그 이상을 남기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절규’의 시작을 만나다… 뭉크, 그 이상을 남기다[조현석 기자의 투어노트]

    노르웨이 오슬로는 표현주의 창시자인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도시다. 뭉크가 예술가로 성장한 도시이자 삶의 마지막을 함께한 도시다. 그가 작품으로 표현했던 삶과 죽음, 고독, 사랑, 질투, 우울, 불안 등 실존적 주제의 중심에는 오슬로라는 예술 공간이 있었다.뭉크는 ‘아버지로부터 광기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정서적인 불안과 고독이 평생을 따라다녔지만 이를 그림으로 세밀하게 승화시켰다.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전시회는 9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올해는 뭉크 사망 80주기가 되는 해다. 뭉크의 흔적을 따라 오슬로를 돌아봤다.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그의 대표작 ‘절규’는 오슬로 시내와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며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괴로워하는 얼굴은 인간의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됐고, 세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작품이 됐다. ‘절규’는 현재 진행형이다. ‘절규’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 앨범 표지는 물론 이모티콘 등에도 활용되면서 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뭉크의 삶과 예술이 함께한 도시 오슬로 곳곳에는 뭉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 화실, 그가 속해 있던 예술 그룹 회원들과 다니던 카페 등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가 영면에 들어간 ‘우리 구세주 공동묘지’도 오슬로에 있다. 뭉크가 평생 어두운 그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낙천적으로 변했고, 풍경과 인물을 그렸다. 노르웨이 옛 화폐인 1000크로네(NOK) 지폐에 나오는 ‘태양’은 밝고 웅장한 작품으로 노르웨이 국민들이 ‘절규’와 함께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유화 1100여점, 판화 1만 8000여점, 드로잉·수채화 4500여점, 조각 6점과 92권의 스케치북, 편지, 다량의 석판 등을 남겼다. 그는 죽기 전 작품 2만 8000여점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절규’와 ‘마돈나’ 등 상당수 작품들은 유화, 파스텔, 판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했다.●‘절규’ 영감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 뭉크의 그림 속 풍경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절규’의 영감을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이다. 뭉크는 1892년 1월 22일 쓴 일기에서 ‘어느 날 저녁 나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길 한쪽에 도시가 있었고 아래에는 피오르가 있었다. 나는 피곤함과 아픔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서서 피오르 너머를 바라보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자연을 관통하는 비명을 느꼈다. 비명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장면을 그렸다. 구름을 실제 피로 그렸다. 그 색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것이 ‘절규’가 되었다’고 적었다. 절규에는 크리스티아나(오슬로의 옛 이름) 피오르의 짙고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일그러진 풍경에 동요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뭉크가 에케베르그 언덕에서 하이킹을 하다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 언덕에서는 뭉크가 ‘절규’에 담았던 핏빛 하늘의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중앙역에서 19번 트램을 타고 에케베르그 공원에 내린 뒤 전망대를 지나 숲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들어가면 뭉크가 산책했던 장소를 만날 수 있다. 뭉크가 화폭에 담은 곳은 에케베르그 언덕 외에도 오슬로의 메인 거리인 카를요한 거리다. 카를요한 거리는 오슬로 최대 번화가로 노르웨이 왕궁까지 이어지며 뭉크의 삶에서 중요한 여러 장소와 이어진다.●아파트·화실·카페 등 흔적 가득 남아 뭉크가 첫 스튜디오를 임대한 곳은 의회 건물 바로 건너편에 있다. 또 1800년대 후반 예술가들의 인기 장소였던 그랜드 카페와 뭉크가 많은 전시회를 열었던 미술관도 근처에 있다. 또 뭉크가 1904년 그의 대작 ‘생의 프리즈’를 전시한 공간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카를요한 거리를 모티브로 시기와 계절에 따라 다양한 거리 모습을 그렸다. 1890년 작품 ‘카를요한 거리의 봄날’은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그렸지만, 1891년 그린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이라는 작품은 불안한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살았던 아파트와 묘지가 남아 있다. 뭉크는 노르웨이 북쪽 농가 마을인 오달스브루크 뢰텐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은 오슬로에서 보냈다. 당시 오슬로는 ‘크리스티아니아’로 불리던 곳이었다. 뭉크는 군의관인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1817~1889)와 어머니 라우라 카테리네 비욀스타(1838~1868) 사이에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누나 요한 소피와 남동생 페테르 안드레아스, 여동생 라우라와 잉게르 등 3명의 동생이 있었다. 오슬로의 삶은 뭉크가 한 살 때인 1864년 아버지가 아케르스후스 요새의 의료 책임자로 임명돼 오슬로로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군의관인 아버지의 봉급은 매우 낮았고, 개인 사업을 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그의 가족은 늘 빈곤에 시달렸다. 그들은 값싼 아파트를 찾아 이사다니며 시내 여러 곳에서 살았다. 처음 거주한 집은 오슬로 네드레 슬로츠게이트9에 있는 아파트로 5살 때까지 살았다. 이 집은 아버지의 직장인 아케르스후스 요새와는 도보로 10분(700m) 떨어진 카를요한 거리 인근으로 지금은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거리로 변했다.●가난과 죽음의 공포 화폭에 담아내 이후 그는 필레스트레데트 30, 토르발트 마이어스 게이트 48, 포스베이엔 7, 올라프 라이스 4번가, 슈우스 광장1 등 1889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오슬로에서 살았다. 뭉크는 이후 프랑스와 독일 등을 오가며 활동하다 말년에는 다시 오슬로 외곽에 있는 에켈리(1916~1944)에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외부와 고립된 채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필레스트레데트 30에 살던 1869년 폐결핵을 앓던 어머니가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해 뭉크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담은 그림이 1897~1899년 그린 ‘죽은 어머니와 아이’다. 포스바이엔 7에 살던 1877년에는 누나 소피가 어머니와 같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 의지하던 누나의 죽음은 1893년 작품 ‘병실에서의 죽음’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폐 질환에 대한 공포가 평생 집요하게 엄습해 고독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런 성품은 그의 작품과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세 버전의 ‘절규’ 품은 뭉크 미술관 뭉크는 죽은 뒤 ‘우리 구세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묘지에 가려면 중앙역에서 37번 버스를 타면 된다. 묘지에는 노르웨이 유명 인사들이 함께 묻혀 있는데 뭉크 묘지 인근에는 노르웨이 대표 극작가인 헨리크 입센(1828~ 1906)의 묘지가 있다. 오슬로에서는 뭉크가 기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뭉크 미술관과 노르웨이 국립미술관뿐만 아니라 오슬로 시청 뭉크의 방, 호텔 콘티넨털 바보만,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 등에서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은 뭉크 미술관이다. 미술관에서는 뭉크가 사용하던 그림 도구 등도 볼 수 있다. 미술관은 1963년 시 외곽에 있었으나 전시실이 좁아 뭉크의 작품을 모두 전시할 수 없게 되자 오슬로시에서 2016년 새로운 뭉크 미술관을 세우기로 했다.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현재 뭉크 미술관은 2021년 10월 새로 문을 연 곳이다. 뭉크 미술관은 현대식으로 지어진 13층 건물로 11개의 전시실이 있다. 미술관 총면적은 약 2만 1367㎡로 옛 뭉크 미술관보다 전시 면적이 5배 늘었다. 미술관에서는 3점의 ‘절규’를 만날 수 있다. 절규는 4점의 유화·파스텔 그림과 46점의 석판화 프린트로 제작됐다. 1893년 파스텔과 유화로 1점씩 그렸고 1895년 석판화가 제작됐다. 1895년 파스텔로 1점을 더 그렸고 1910년에도 템페라 작품을 남겼다. 별도의 독립 전시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3점의 ‘절규’는 30분 간격으로 1점씩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미술관에는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에 그렸던 벽화 ‘태양’을 전시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 밖에도 ‘마돈나’, ‘아픈 아이’, ‘마리의 죽음’, ‘병실에서의 죽음’, ‘자화상’ 등 많은 작품이 있다.●국립박물관엔 ‘생의 프리즈’ 연작 미술관은 중앙역에서 도보로 8분(600m) 거리에 있는 오슬로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와 나란히 위치해 있다.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수~일 오후 9시)다. 입장료는 160크로네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는 뭉크의 ‘생의 프리즈’ 연작을 별도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뭉크의 작품 58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4점의 ‘절규’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1893년 유화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병실에서의 죽음’, ‘사춘기’, ‘재’ 등 초기 작품부터 1920년까지의 작품이 있다. 특히 노르웨이 브륀율프 불스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1891년 뭉크의 작품 ‘니차의 밤’을 사들인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다. 국립박물관은 1837년 세워진 노르웨이 최초의 공공 박물관이다. 2003년 국립미술관, 건축 박물관, 장식 예술 디자인 박물관, 현대 미술관 등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2022년 새로 지어진 국립박물관은 독일 건축가 클라우스 슈베르크가 설계했다. 박물관의 전체 면적은 5만 4600㎡에 달하며 90여개의 전시실이 있다. 박물관에는 그림은 물론 19~20세기 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뭉크 작품 외에도 노르웨이 화가 라르스 헤르테르비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등도 소장하고 있다. 국립박물관은 브륀율프 불스 광장에 있으며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월요일 휴무)다. 입장료는 200크로네다. 오슬로대 아울라 캠퍼스에 있는 벽화 ‘태양’은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다. 오슬로대 100주년 기념식에 지어진 새 홀을 장식하기 위해 1916년 현장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당시 이 대형 그림들은 실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스타일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작품은 토요일 특정시간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한다. ●시청·대학·호텔 곳곳에도 뭉크 작품 오슬로 시청의 뭉크 방에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큰 그림이 있다. 이 방은 시청의 정규 개장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콘티넨털 바 보만에도 뭉크의 그림이 걸려있다. 1932년 호텔 소유주 아르네 보만 한센이 오슬로 미술상에서 뭉크의 그림 12점을 사들인 것이다. 뭉크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도 많이 남아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속한 예술 그룹 크리스티나 보헴의 아지트였던 그랑카페와 잉에브레트 카페 등이 남아 있다. 뭉크의 아지트인 그랑카페는 카를요한 거리의 랜드마크와 같은 그랜드호텔 1층에 있는 카페로 많은 예술가가 영감을 떠올린 곳이다. 내부에는 1874년 문을 연 이래 간직해 온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극작가 헨리크 입센도 매일같이 방문했다고 한다. 메뉴판에는 입센의 글이 적혀 있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메뉴가 있을 정도로 그와 깊은 인연이 있는 레스토랑이다. 그랜드호텔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숙박하는 공식적인 호텔로 뭉크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857년에 문을 연 잉에브레트 카페는 뭉크가 수십 년간 자주 찾던 곳이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의 회원인 크리스티안 크로흐, 한스 예거, 오다 라손과 함께 구석진 방에 주로 앉았다고 한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뭉크가 오슬로 예술가협회 회원 자격을 취소하는 편지가 담긴 액자가 전시돼 있다. 뭉크는 잉에브레트에서 긴 밤 파티를 즐긴 후 이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행수첩] →항공 : 오슬로까지는 특정 시기에 운항하는 전세기를 제외하고는 직항편이 없다. 파리, 암스테르담, 뮌헨 등 유럽 도시나 중동의 두바이, 카타르 등을 경유해야 한다. 요금은 출발일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120만~180만원(일반석 기준) 정도다. →호텔 : 오슬로는 유럽 도시들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편이다. 오슬로 중앙역 근처 2~3성급 호텔이 1박에 20만~40만원 정도다. 중앙역 인근에 숙박하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Oslo Lufthavn)이나 시내 이동이 편리하다. 중앙역에서는 뭉크 미술관이나 카를요한 거리를 도보로 갈 수 있다. →교통 : 오슬로 공항에서 공항 쾌속 열차인 플뤼토게를 이용하면 중앙역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240크로네다. 오슬로 패스를 구입하면 오슬로 시내의 버스, 트램, 지하철, 페리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노벨평화센터 등 주요 관광지 30여곳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요금은 24시간 520크로네, 48시간 760크로네, 72시간 895크로네 등 3종류를 판매한다. 플뤼토게나 오슬로 패스는 앱을 깔아 구입하면 편리하다. 5월 현재 1크로네는 127원이다.
  • 뭉크가 전하는 인생 사용 설명서… 빛과 어둠 ‘생의 프리즈’를 만나다 [막 오른 뭉크展]

    뭉크가 전하는 인생 사용 설명서… 빛과 어둠 ‘생의 프리즈’를 만나다 [막 오른 뭉크展]

    청년 뭉크가 묻고 노인 뭉크가 답생로병사 겪는 인간의 삶 떠올라20세기 초 전시 방식 그대로 체험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하는 그림은 뭉크의 청년 자화상이다. 전시의 마지막 역시 뭉크의 자화상으로 끝맺음으로써 이번 전시는 뭉크로 시작해 뭉크로 끝난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무 살 청년의 불안한 시선에선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불확실성이 더 커 보인다. 반면 마지막 자화상은 ‘세상 살아 보니 살 만하더라’라고 답하는 것 같다. 스무 살의 뭉크가 인생을 묻고 여든 살의 뭉크가 그 해답을 주었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섹션은 섹션4 ‘생의 프리즈’다. ‘생의 프리즈’란 뭉크만의 전시 방법으로 뭉크의 작품을 테마 순서에 따라 띠 형태로 늘어놓은 것을 말한다. 뭉크는 전시를 마치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의 삶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현재 ‘생의 프리즈’ 방식대로 전시하는 곳은 오슬로 국립미술관뿐이다. 이곳 한가람미술관에서도 ‘생의 프리즈’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마지막에 퍼즐룸을 마련해 20세기 초 ‘생의 프리즈’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생의 프리즈’는 뭉크의 삶을 그린 그림일기다. 뭉크의 사랑은 밀리 테울로브의 감미로운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여름밤: 목소리’에서 뭉크의 사랑도 ‘생의 프리즈’도 시작된다. 그러나 사촌 형수를 사랑한 뭉크의 사랑은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테울로브와의 사랑은 늘 어둠, 숲속, 달빛 아래였다. 테울로브와 첫 키스를 나눈 기억을 그린 ‘키스’와 ‘재’의 무대 역시 어둠 속이다. ‘마돈나’는 또 다른 뮤즈 다그니 율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율은 뭉크의 인생에서 독특한 역할을 한 여성이다. 뭉크는 율을 사랑했지만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뭉크는 ‘마돈나’에서 율의 신성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담았다. 판화본에만 있는 태아와 정자 모양 형태는 임신, 출산, 죽음이 공존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마돈나 도상이다.‘절규’는 ‘생의 프리즈’의 중심 테마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판화 위에 채색을 가함으로써 판화이자 유화라는 독특한 판화본을 선보인다. ‘절규’는 고독과 불안, 강박을 겪는 현대인의 일상을 예언한 그림이다. 우리는 우울증, 수면장애,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절규’ 속 주인공과 같은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뭉크 예술의 특징은 개인의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하게 하는 데 있다. 더 나아가 이 테마는 19세기를 정의하는 언어가 됐다. 섹션4의 네 번째 벽면은 죽음 테마다. 이 벽면을 장식한 것은 엄마와 누나의 죽음에 관한 기억들이다. 뭉크는 엄마의 죽음에 관해 ‘매우 슬펐던 것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열네 살 사춘기에 겪은 누나의 죽음은 뭉크 인생 내내 따라다녔다. 뭉크는 ‘병든 아이’를 40여년에 걸쳐 여섯 번이나 반복해 그렸다. 뭉크는 ‘병든 아이’ 얼굴만 클로즈업해 여러 색의 판화본으로 제작했다. 뭉크는 영양실조에 걸린 소녀를 모델로 ‘병든 아이’를 그렸다. 어느 날 중년 여성이 뭉크를 찾아왔다. 자신을 ‘병든 아이’ 모델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뭉크에게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뭉크는 여성이 원하는 만큼의 액수를 쥐여 주고 돌려보냈다. 뭉크 예술의 힘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뭉크는 67세에 일시적 시력 손상을 겪었다. 그러나 뭉크는 건강한 눈과 건강하지 않은 두 눈으로 본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뭉크는 절망과 공포를 외면하거나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해서 마주하며 아픔을 치유했다.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140점은 뭉크가 전한 ‘인생 사용 설명서’다.
  • 같은 제목 다른 버전·양면 회화까지… 140점의 ‘뭉크’와 만나다

    같은 제목 다른 버전·양면 회화까지… 140점의 ‘뭉크’와 만나다

    22일 관람객을 맞이하는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는 초년의 뭉크 ‘자화상’(1882~1883)부터 노년의 ‘자화상’(1940~1943)에 이르기까지 140점의 작품을 14개 섹션으로 나눠 감상하도록 했다. 대표작 ‘절규’(1895)를 비롯해 ‘마돈나’(1895), ‘불안’(1896), ‘뱀파이어’(1895) 등 주요 작품과 최초 공개(노르웨이 뭉크미술관 제외) 작품들까지 만날 수 있다.전시를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 큐레이터와 양수진 전시 코디네이터는 주목할 만한 섹션으로 섹션1, 2, 4, 5, 14를 꼽았다. 섹션1은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에서의 초년: 자연주의, 인상주의 및 상징주의와의 만남’을 주제로 지역의 소박한 풍경과 사람들을 기록했다. ‘그물을 고치는 남자’(1888), ‘카바레’(1895) 등이 대표적이다. 섹션2 ‘프랑스에서의 시절: 달빛, 키스, 생 클루의 밤까지’에는 뭉크의 ‘생의 프리즈’ 시리즈에서 가장 상징적인 모티프인 ‘키스’(1892)와 ‘달빛 속 사이프러스’(1892) 등을 전시했다. 전 세계에 2점밖에 없는 뭉크의 ‘절규’(1895) 채색판화는 섹션4에서 만날 수 있다.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들이 자행됐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이 작품은 20세기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섹션5 ‘공포와 죽음’에서는 ‘불안’, ‘재’(1896), ‘병든 아이’(1896), ‘뱀파이어’ 등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섹션14에서는 뭉크의 말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930년 제작된 유화 ‘흐트러진 시야’는 묘사된 두 인물의 빠른 움직임을 나타내는 왜곡된 신체 원근법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스스로 고립된 상태에서 고독과 노화라는 주제에 점점 더 집중한 뭉크의 노년을 엿볼 수 있다. 색감·기법 따라 14개 섹션 선별전 세계 2점 뿐인 ‘절규’ 채색판화 고독·노화에 집중한 노년 작품들“1, 2, 4, 5, 14 섹션에 특히 주목을”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 작품을 비교 감상하거나 뭉크의 실험성을 엿볼 수 있는 양면 회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이다.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질병, 죽음을 겪어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뭉크가 5세였을 때 결핵을 앓다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3세가 되던 해 뭉크도 결핵에 걸렸지만 살아남았고, 이후 누이인 소피에가 극심한 고통을 겪다 사망하는 것을 목도했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며 ‘병든 아이’와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뭉크는 23세였던 1886년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열린 연례 가을 전시회에서 ‘병든 아이’를 처음 그렸다. 뭉크는 붉은 머리카락의 누이가 창백한 얼굴로 흰 베개에 머리를 기댄 채 죽어가는 모습을 재현하고 싶었다. 피곤한 눈꺼풀의 움직임, 속삭이는 듯한 입술, 남아 있는 작은 생명의 깜박임 등을 표현하려고 했다. 동판화 ‘병든 아이’(1894)는 회화 버전과 좌우 반전된 구도를 취하는 반면 이어지는 판화 시리즈는 소녀의 머리와 어깨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병든 아이 I’의 다색 석판화에서도 이 축소된 구도를 유지했다. 석판화에서 뽑아낸 다양한 색상의 인상은 뭉크에게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 준다. 절규, 그 이상의 ‘뭉크’여러 버전의 ‘뱀파이어’ ‘병든아이’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볼 수 있어양면 작품 ‘난간 옆의 여인’도 눈길 ‘뱀파이어’는 회화, 드로잉, 판화 등 여러 버전으로 존재한다. 뭉크는 자전적 기록에서 “이것은 경고다…. 여기 이 그림은 사랑이 죽음과 함께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말했다. 뭉크는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석판화를 만들었다. 첫 번째 버전은 창문과 커튼 모티프로부터 공간적 관계를 느낄 수 있지만, 더 규모가 큰 두 번째 버전은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뭉크는 여기에 크레용 외에도 석판화 잉크를 사용했으며, 긁어내는 기법을 이용해 인물을 더욱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채색판화 버전과 아주 희귀한 파스텔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뱀파이어’ 모티프를 통해 뭉크는 사랑과 고통, 입맞춤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작품을 창조했다. 이와 함께 섹션3에서는 양면 회화를 만날 수 있다. 앞면은 ‘난간 옆의 여인’(1891)이, 반대편에는 목탄으로 드로잉한 작품 ‘목소리’(1891)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사용했던 ‘로스쿠어’라 불리는 작품에 대한 극단적 처리 방식이 적용됐다. 작품을 날씨에 자연스럽게 노출해 작품의 노화 과정을 그대로 담아 시간이라는 요소를 작품에 도입했다. 부흐하르트 큐레이터는 “전시를 위해 매우 독특하고 실험적인 색감과 제작기법이 적용된 작품을 선별하다 보니 섹션14에 이르게 됐다”며 “작품 설명을 읽기 전에 전시된 걸작들을 먼저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모두의 가슴에 살아있는 뭉크… ‘절규’ 넘어 영감 얻는 전시 될 것”

    “모두의 가슴에 살아있는 뭉크… ‘절규’ 넘어 영감 얻는 전시 될 것”

    “에드바르 뭉크는 노르웨이 사람뿐 아니라 전 세계인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화가입니다. 누구나 그의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어요.”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대사는 지난 2일 서울신문과 만나 “‘노르웨이의 자랑’ 뭉크의 수많은 작품을 서울에서 한국과 노르웨이 수교 65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에 만날 수 있어 정말 큰 기대가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뭉크의 작품 ‘다리 위의 소녀들’(1901)이 그려진 목걸이를 걸고 왼쪽 가슴에 태극기와 노르웨이 국기가 교차하는 배지를 달았다. 서울신문사가 창간 120주년을 맞아 오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주한 노르웨이대사관이 공동 후원한다. 오빈 대사는 “전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 개인 소장품까지 다양한 뭉크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며 많은 사람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뭉크는 단연 노르웨이의 자랑이다.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함께 노르웨이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힌다. 오빈 대사도 “우리의 문화예술사에 없어선 안 될, 매우 상징적이고 자랑스러운 존재”라며 “어릴 때부터 뭉크를 배우고 그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접하며 자라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문화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의 자랑 ‘뭉크’인간의 내면 그리며 ‘인류애’ 서사국적 무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 물론 오빈 대사가 한껏 기대를 불어넣는 이유가 뭉크의 국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비욘드 더 스크림’을 언급하며 “가장 대중적인 ‘절규’(1895)를 넘어 다양한 뭉크의 작품을 통해 그가 그려 낸 인간 내면과 감정을 마주하면 누구든 공감하고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치밀하고도 강렬하게 표현한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자리라는 얘기다. 죽어 가는 누이와 그 옆에서 고개를 푹 떨군 이모의 모습을 기억한 ‘아픈 아이’(1886), 금단의 사랑이 빚어낸 ‘질투’ 시리즈 등 그의 척박하고 힘겨운 삶의 경험은 사랑과 아픔, 슬픔, 고독, 절망 등을 깊은 색채로 투영한다.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뭉크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의 찬란한 빛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태양’·1910~1913), 삶의 기쁨을 자화상에 비추기도 하며 시간에 따른 변주도 훌륭하게 빚어낸다. 오빈 대사는 “뭉크는 결국 인간의 내면을 그리며 인류애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적과 국경에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오빈 대사의 남편인 톰 오빈도 함께했다. 부부는 즐거운 소풍을 다녀온 아이처럼 지난여름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과 뭉크의 작품을 해석한 서적 등을 보여 줬다. 톰 오빈은 “이번 전시가 한국 국민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많은 사람이 ‘절규’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영화 ‘나홀로 집에’나 ‘스크림’ 속 장면처럼 우스꽝스럽게 기억하기도 한다”며 “‘절규’ 안에도 여러 색깔이 서로 다른 감정들로 엉켜 있고, 많은 선과 색이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절규’의 다채로운 면모를 발견하듯 뭉크의 다소 어둡고 암울한 느낌의 작품뿐 아니라 밝고 섬세한 후기 작품들까지 한자리에서 제대로 느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숨결을 더한 뭉크의 작품을 서울에서 만난다는 게 오빈 대사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서울시극단이 지난 3월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입센의 작품 ‘욘’을 무대에 올렸다. 올여름에는 인천국제공항~오슬로 직항 항공편도 뚫린다. 양국 수교 65주년을 맞는 올해 많은 과제를 풀어내고 있다. 서울에서 만나는 ‘뭉크’밝고 섬세한 후기작까지 한자리에양국 수교 65주년 맞아 더 뜻깊어 2022년 9월 한국에 부임한 오빈 대사는 “이미 끈끈했지만 양국 간 교류가 모든 분야에서 더욱 활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출전할 만큼 수준급인 그는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등 겨울 스포츠에 대한 양국의 관심이 높아지길 바란다”며 “정보기술(IT), 전자제품, 자동차, 화장품 등 한국의 많은 산업이 노르웨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오빈 대사는 “노르웨이 사람의 80%가 해안가에 살다 보니 언제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저 넓은 세상 끝에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늘 궁금했던 것처럼 한국도, 양국 관계도 늘 기대된다”고 밝혔다.
  • 뭉크의 혼 담긴 작품 51점, 한국 왔다

    뭉크의 혼 담긴 작품 51점, 한국 왔다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회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위해 12일 뭉크의 고향 노르웨이에서 그의 작품 51점이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대한항공 제1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뭉크의 작품을 옮기고 있다. 이번에 도착한 작품은 13개의 미술관 혹은 소장자로부터 들어왔으며 한국 전시에는 처음 공개되는 오슬로 도시박물관의 소장작 뭉크의 자화상과 뭉크의 대표작 ‘뱀파이어’, ‘병든 아이’, ‘마돈나’, ‘불안’ 등이 포함됐다. 뭉크전은 오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 미국이 거부한 팔 유엔 가입, 한국은 왜 찬성표 던졌을까

    미국이 거부한 팔 유엔 가입, 한국은 왜 찬성표 던졌을까

    우리나라가 최근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중 한국을 포함해 12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영국과 스위스는 기권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해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부결됐다. 2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찬성표를 던진 건 팔레스타인의 가입 적격성,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중동 평화 달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정치적 프로세스의 추동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역시 냉전으로 인해 40년 넘게 유엔 회원국 가입을 못 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정부를 세워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으로, 1993년 당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미국의 중재로 체결한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남반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견인하려는 의지를 보여 준 측면도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한국을 포함해 안보리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12개국 대사들을 순차적으로 초치해 ‘강한 항의’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렌 마모스타인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은 “이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지난해 10월 7일 대학살이 벌어진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정치적 손짓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자는 요구는 테러리즘을 향한 보상’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2011년에도 유엔에 정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지만 당시 안보리 이사국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표결까지 가지 못했고, 이듬해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해 현재까지 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4월의 끝자락, 지친 당신을 위로할 클래식 음악의 향연

    4월의 끝자락, 지친 당신을 위로할 클래식 음악의 향연

    2024년이 밝은 지 100일이 지났고 4월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에 조금씩 지친 마음을 위로할 클래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힐링 공연을 찾는 이를 위해 다채롭게 준비된 무대에 어느 음악회를 찾아갈지 고민하는 즐거움이 크다.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는 ‘2024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화려하게 개막한다. 올해로 19회를 맞는 축제에는 최근 TV 예능에 출연해 화제가 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피아니스트 박상욱, 앙상블 노부스 콰르텟, 아벨 콰르텟 등 60명의 음악가가 참여한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아트스페이스3, 윤보선 고택에서 총 14차례 열린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올 인 더 패밀리’(All in the Family)다. ‘가족’의 의미를 동일한 국적과 민족적 배경을 가진 작곡가들,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 작곡가들 등 여러 각도에서 해석한 공연이 열린다. 클라라 슈만, 보니스 등 시대를 앞서갔던 19세기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한 갤러리 콘서트 ‘선구자’, 조영창-이화윤, 무히딘 뒤뤼올루-마리 할린크 등 부부 음악가들의 무대 ‘나보다 나은 반쪽’, 베토벤, 브람스 등 조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한 작곡가들의 곡을 들려주는 공연 ‘방랑자’ 등이 준비돼 있다. 5월 5일까지 쉬지 않고 공연이 매일 열린다.지난달 대망의 제800회 정기연주회를 마친 KBS교향악단은 24일 제801회 정기연주회 ‘깊은 밤 들려오는 유목민의 노래’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연다.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카렌 고묘가 협연한다. 이번 공연은 고묘가 국내 교향악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도쿄에서 태어나 몬트리올과 뉴욕에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탁월한 음악적 역량과 활기, 강렬함을 갖춘 일류 아티스트”(시카고 트리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최근엔 파비오 루이지가 이끄는 댈러스 교향악단, 욘 스토르고르가 이끄는 시카고 교향악단 외에도 뉴욕 필하모닉과 피츠버그 교향악단, 스페인 국립 관현악단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1부에서는 고묘의 협연으로 현대 최고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칭송받는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한다. 스탈린 체제에서 겪었던 억압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투영된 곡으로 특히 후반부에 바이올린의 장대하고 화려한 카덴차가 유명하다. 고묘의 비르투오소 초절기교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해방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큰 기대를 모은다. 2부에서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8번을 연주한다. 이 곡은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소박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경쾌하고 희망차게 표현한 작품이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지역에서 계속되는 사회·정치적 격동 속에서 자유를 향한 갈망과 보헤미안 색채를 강하게 느끼는 무대를 감상하며 음악에서 위로와 영감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다음날인 25~26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하델리히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지휘는 오카페카 사라스테가 맡고 ‘2022년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가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사라스테는 전 세계적으로 지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핀란드 출신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정확함과 예리함을 동시에 갖춘 에너지 넘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오슬로 필하모닉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와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고문을 역임했고 2023년부터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델리히는 핀란드 작곡가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동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그는 이 곡에 대해 “색채와 질감, 성격이 모두 풍성한 작품이다. 바이올린 작품들 가운데 독보적이다”라고 소개했다. 절제된 애수와 엄청난 격정의 대비,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과 비르투오소적인 불꽃 같은 기교로 가득 찬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협주곡을 하델리히가 어떻게 해석할지 기대된다. 2부에서는 닐센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손꼽히는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 단 두 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인간성의 회복과 전쟁에 대한 회상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시향은 2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2024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 III: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도 개최한다. 올해 세 번째 실내악 정기공연으로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 12번’, 데이비드 랭의 ‘미스터리 소나타’ 전 일곱 악장 가운데 3악장 ‘슬픔 이전’과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발라드’, 멘델스존의 ‘현악 팔중주’를 감상할 수 있다.지난 3일 개막해 연일 클래식 음악의 성찬을 선보이는 ‘한화와 함께하는 2024 교향악축제’ 역시 마지막 한 주가 남아 4월의 끝을 장식할 예정이다. 남은 기간 교향악축제는 23일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24일 과천시향, 25일 수원시향, 26일 광주시향, 27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무대로 이어진다. 대망의 마지막 공연은 28일 인천시향이 세계적인 소프라노 황수미와 함께 장식한다. R석 기준 5만원이라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국내 교향악단들의 명품 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 한국이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찬성표 던진 배경은

    한국이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 찬성표 던진 배경은

    우리나라가 최근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권고하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표결에서 15개 이사국 중 한국을 포함해 12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영국과 스위스는 기권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해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부결됐다. 21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찬성표를 던진 건 팔레스타인의 가입 적격성,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중동 평화 달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정치적 프로세스의 추동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역시 냉전으로 인해 40년 넘게 유엔 회원국 가입을 못 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정부를 세워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으로,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미국의 중재로 체결한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남반구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와 협력을 견인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한국을 포함해 안보리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12개국 대사들을 순차적으로 초치해 ‘강한 항의’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렌 마모스타인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은 “이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지난해 10월 7일 대학살이 벌어진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정치적 손짓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자는 요구는 테러리즘을 향한 보상’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2011년에도 유엔에 정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지만 당시 안보리 이사국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표결까지 이르지 못했고, 이듬해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 지위를 획득해 현재까지 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시대를 앞선 기법, 실험적 소재… 뭉크의 심오한 세계 빠져들 것”

    “시대를 앞선 기법, 실험적 소재… 뭉크의 심오한 세계 빠져들 것”

    “노르웨이 국민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절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는 ‘절규를 넘어’ 뭉크의 심오한 예술적 유산을 보여 줄 것입니다. 특히 시대를 앞서간 회화적 표현 기법,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소재, 독창적인 채색 판화에 초점을 맞춰 그의 예술 세계 전체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한국 관람객들도 뭉크의 매혹적인 세계에 빠지게 될 거라 믿습니다.”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 기념으로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전을 기획한 오스트리아 큐레이터 디터 부흐하르트(53)는 15일 이번 전시를 이같이 소개했다.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미술사, 미술 복원을 전공한 큐레이터이자 미술 이론가인 그는 2003년부터 20년 넘게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16회에 걸쳐 뭉크 전시를 기획한 ‘뭉크 전문가’다.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과 협업하며 에곤 실레와 장 미셸 바스키아 전시,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 전시 등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의 전시도 다수 선보인 바 있다.“이번 전시는 뭉크의 연대기적 요소를 넘어 예술가로서 뭉크의 급진적인 면모와 우리 삶의 단면들을 다 아우르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려 합니다. 유년 시절의 불행에 따른 공포와 불안감, 외부로부터의 충격 등이 작품에 반영돼 왔지만 불우한 삶만 산 게 아니라 유머도 지니고 생애 후반에는 도시 외곽에서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 이름을 얻은 드문 작가였죠. 그는 다양한 방식과 소재를 적극 활용해 미술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 왔습니다. 한 예로 그림을 그린 다음 바람이나 햇빛에 노출시키며 작품과 자연이 서로 교감하게 했는데, 환경과 교감하는 예술을 주도한 이는 그가 첫 주자 아닐까요.”그는 특히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뭉크가 끊임없이 변주한 채색 판화 작품에 주목해 줄 것을 강조했다. “판화 위에 다시 채색을 해 작품에 독자성을 부여한 채색 판화는 판화와 유화의 중간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뭉크가 처음 시도했습니다. 유화와 마찬가지로 단 한 작품만 존재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한 전시에서 다양한 채색 판화를 소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죠.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갤러리, 개인 소장가들에게서 모은 다양한 판화 작품을 한국 관람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이번 전시에는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이나 오슬로 도시박물관 등 미술 기관뿐 아니라 개인 소장가들이 각각 ‘숨겨진 보석’처럼 품고 있던 작품들이 다수 나와 미술 애호가들의 눈을 즐겁게 할 예정이다. “뭉크는 물감을 붓에 발라 그리는 용도 외에 굳힌 후 긁어내고 다시 덧칠해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일부러 상처를 입히는 등의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이런 그의 실험은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잭슨 폴록 등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현대미술에 크게 이바지했죠. 이렇듯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예술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가 교감하고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자 합니다.”이번 전시는 ‘절규’ 등 뭉크의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판화, 드로잉 등 140점을 선보여 최근 20여년간 유럽 밖에서 열린 뭉크 회고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는 점, 개인 소장가들의 소장품까지 모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시라는 점 등에서 놓쳐서는 안 될 전시라는 평가가 나온다.그와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국 뉴욕의 미술 거래 및 전시 기획 컨설팅사 댄지거아트컨설팅의 이유경 컨설턴트 겸 변호사는 “작품 규모로 봤을 때 2006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연 뭉크 전시는 137점, 2019년 일본 국립서양미술관의 뭉크 전시는 100점 규모(뭉크미술관 소장품)였다는 점에서 2000년대 후 유럽 밖에서 열린 뭉크 전시 가운데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전시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 레이탄패밀리재단·개인 소장
  • 가족의 죽음, 욕망과 공포… 어둠을 거닐며 빛을 갈구한 예술가

    가족의 죽음, 욕망과 공포… 어둠을 거닐며 빛을 갈구한 예술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곁에는 공포, 슬픔, 죽음의 천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봄날의 햇살 속에서도, 여름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현대인의 불안감을 표현한 걸작 ‘절규’로 노르웨이 미술을 전 세계에 알린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말년에 유년 시절을 회고하며 한 말처럼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했다.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 뢰텐에서 군의관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와 학자 가문 출신 어머니 레우라 뭉크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엄마 역할을 대신했던 한 살 위 누나 소피에 역시 뭉크가 14살 때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병실에서 죽음’(1893)과 ‘병든 아이’(1907)는 각각 어머니와 누이의 임종 순간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기억은 뭉크를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1880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 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모의 지원을 받아 국립 공예학교에 입학했다. 프랑스 파리로 국비 유학을 떠났던 1889년에는 뭉크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주거지를 자주 옮기다 보니 연락받지 못해 사랑하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마저 놓쳤다. 이 역시 뭉크를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 이때 뭉크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 한스 예게르를 만나게 된다. 예게르를 만나면서부터 우리가 흔히 아는 뭉크 고유의 스타일이 시작된다. 뭉크에게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밀리 탈로. 뭉크는 진실했지만 그녀에게 뭉크는 많은 남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이때 받은 상처는 ‘뱀파이어’(1895)에 잘 표현돼 있다. 두 번째 여인은 다그니 유엘. 그녀에 대한 뭉크의 감정은 1894년 작품 ‘마돈나’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뭉크는 여성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란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관능적 존재지만 남자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팜파탈이라는 생각 말이다. 마지막은 툴리아 라르센. 그녀는 뭉크에게 집착하며 결혼하자며 자살 소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총기 오발 사고로 뭉크의 왼손 가운뎃손가락은 완전히 부서졌다. 이후 극심한 여성 혐오로 평생을 독신으로 산다. 결국 뭉크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라며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는다. 퇴원 후에는 오슬로 인근 교외 에켈리에 집과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생애 후반 20년 넘게 혼자 산다. 공포, 불안, 갈등, 욕망, 죽음 등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주로 캔버스에 옮긴 뭉크지만, 자기 작품들을 보는 이들은 그런 어두움을 극복하길 바란 희망의 화가이기도 하다.
  • 절규, 그리고 그 너머… 혁신가 뭉크, 시작과 끝을 아우르다

    절규, 그리고 그 너머… 혁신가 뭉크, 시작과 끝을 아우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 140여점 선봬전 세계 기관·개인 소장작 모아대체 불가능 존재감 알린 ‘절규’ 불안한 심연 표현한 자화상 등독창적 기법 통해 강렬한 울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절규’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예술의 전모를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로 본다. 서울신문이 창간 120주년을 맞아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주최하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이 그 무대다. 이번 전시에는 노르웨이 대표 화가인 뭉크의 ‘절규’ 등 주요작 140점이 대거 나온다. 노르웨이 뭉크미술관, 오슬로 도시박물관, 미국 세라 캠벨 블래퍼 재단 등 전 세계 23개 기관과 갤러리, 개인 컬렉터의 소장작을 촘촘히 모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뭉크 전시를 10회 이상 기획한 뭉크 전문가인 큐레이터가 전시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 개인 소장가들을 한 명 한 명 설득해 이뤄진 전시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귀한 자리이기도 하다.주제별로 14개 섹션으로 이뤄지는 전시는 “뭉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울렀다”고 할 정도로 그의 생애와 창작 활동의 주요 순간들을 꿰는 유화, 수채화, 파스텔화, 판화, 드로잉 등을 두루 모아 놨다. 화가로 첫발을 내디딘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에서의 청년 시절부터 프랑스에서 새로운 화풍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발전시키던 시절, 말년까지 비극적 삶을 예술로 찬란하게 꽃피웠던 예술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절규’로만 잘 알려진 뭉크의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표현 기법 실험에 초점을 맞춰 그의 작품 세계를 더 입체적으로 느껴 볼 수 있게 한다. 기존 예술 문법을 벗어난 강렬한 형태와 색채로 현대미술에 뚜렷한 인장을 남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비와 눈에 노출시키거나 사진, 무성영화 프레임을 그림에 적용하는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무너뜨리는 시도를 이어 갔다.작품별로는 그를 현대미술사에 대체 불가능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절규’(채색 판화본)를 비롯해 평생 몰두했던 ‘생의 프리즈’ 연작,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며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자화상’, 여성의 창조성에 더해 치명적인 여성과 연약한 여성을 결합한 ‘마돈나’, 그에게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리운, 어린 시절 겪은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에서 잉태된 ‘아픈 아이’, 여성의 나체를 통해 욕망, 질투, 증오 등 극한의 감정을 표현한 누드 연작, 내면을 투영한 풍경화 등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통렬한 호소력으로 인간의 감정을 화폭에 옮겨 온 뭉크는 ‘자화상은 화가의 영혼의 창’이라는 표현과 더없이 어울리는 작가다. 그는 화업을 시작한 1880년대 초반 청년기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81년의 생애 동안 2만 5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 가운데 70여점의 회화와 20여점의 판화, 100여점의 수채화, 드로잉 등은 자신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자화상이다. 뭉크 전문가인 스웨덴 큐레이터 이리스 뮐러 베스테르만은 저서 ‘뭉크, 추방된 영혼의 기록’에서 “뭉크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심연과 변화무쌍함을 탐구했던 최초의 화가”라며 “뭉크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세상에 대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기에 그의 자화상에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소외와 고독, 삶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이 드러난다”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3점의 자화상을 감상할 수 있다. 그가 크리스티아니아의 왕립드로잉학교에 다니던 18살에 그리기 시작해 19살에 완성한 ‘자화상’ (1882~1883)과 뭉크의 자화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 죽음을 한 해 앞둔 시점에 그린 자화상(1940~1943) 등이 나와 청년기와 말년의 자화상을 비교해 보며 삶과 예술, 심상의 변화를 짚어 볼 수 있다. 생명의 원천, 사랑, 이별, 절망, 노년, 죽음 등 삶의 순환과 죽음을 그려 낸 그의 핵심 작업이자 현대미술사의 중대한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생의 프리즈’를 이루는 대표작들도 고루 소개된다. ‘여름밤. 목소리’(1894~1895), ‘마돈나’(1895), ‘키스 Ⅳ’(1902), ‘뱀파이어Ⅱ’(1902), ‘질투Ⅱ’(1896), ‘절규’(1895), ‘불안’(1896), ‘카를 요한의 저녁’(1896~1 897), ‘임종의 자리에서’(1896) 등 20여점을 ‘생의 프리즈’ 섹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숲을 향해서Ⅱ’(1915), ‘벌목지’(1912) 등 작가가 자신이 머물렀던 숲, 해안, 뜰, 마을 풍경에 내면을 투영한 풍경화들도 다수 나온다.뭉크는 한 가지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실험을 이어 나간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전시에서도 다양한 버전으로 구현된 같은 주제의 작품을 서로 비교하며 감상해 볼 수 있다. 채색 석판화로 제작된 6점의 ‘뱀파이어’와 4점의 ‘마돈나’가 함께 나오는 것이 한 예다. 작가가 판화 위에 다시 채색을 해 작품에 독자성을 부여한 채색 판화는 뭉크가 활발히 시도한 기법인 데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채색 판화 작품 규모는 유럽에서도 한자리에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뭉크의 채색 판화는 그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로, 회화에 담으려 했던 메시지를 변형시키거나 확장한 시도에서 판화를 자기 작품의 ‘보급판’이 아닌 작품을 확장, 재평가하기 위한 매체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양특례시 지속가능성 지수 ‘아시아·태평양 1위’

    고양특례시 지속가능성 지수 ‘아시아·태평양 1위’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 2일 경기 고양특례시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뛰어난 도시’중 한 곳으로 소개했다. 9일 고양시에 따르면 BBC는 2023년도 기준 글로벌 마이스목적지 지속가능성 지수(GDS-I)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스웨덴 예테보리(세계 1위), 노르웨이 오슬로(세계 2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세계 8위), 프랑스 보르도(세계 9위), 대한민국 고양시(세계 14위)를 소개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뛰어난 도시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마이스목적지 지속가능성 지수(GDS-I)는 환경사회인프라도시마케팅 전담조직 등 총 4개 부문 69개 평가항목에 대해 지속가능한 저탄소 미래도시 수준을 평가한다. 지난해의 경우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31개국, 100여개 도시가 평가에 참여 했다. 비유럽권에서 가장 높은 순위 고양시는 100여 국 가운데 14위를 차지 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위에 올랐다. 해당 순위는 비유럽권에서 가장 높은 순위다. 북유럽국가 도시들이 상위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유럽국가 중에서는 고양시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BBC는 “고양시는 2023년 전시컨벤션분야 ISO20121(이벤트 지속가능성 경영관리 시스템) 국제인증을 취득했으며, 킨텍스는 빗물 재활용을 통해 화장실 연못 정원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도시 내에 68개의 공원, 인구 1명당 100㎡ 이상의 녹지·수면 면적, 424km의 자전거 도로를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양시는 마이스산업 유치, 발굴, 홍보를 전담하는 고양컨벤션뷰로를 운영하여 마이스 산업 및 도시마케팅 전반에 지속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고양컨벤션뷰로는 지속가능성 전문위원회 구성 및 정례회의 개최, 지속가능성 캠페인, 마이스 전략 수립, 행사개최 매뉴얼 개발 등의 사업수행을 통해 지속가능성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이동환 시장은 “국내 최대 전시·컨벤션센터인 킨텍스가 세계적인 마이스산업 중심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국제적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확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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