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다시본다] (4) 대를 잇는 시니세 생존법
이번 취재는 중소규모의 기업이나 음식점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시니세라고 하면 저울의 다니타, 제약회사인 류칵산(용각산), 간장의 기코망, 건설의 시미즈 등 폭넓다. 한때 일본을 석권했던 마쓰시타 전기도 시니세에 포함시킬 수 있다.
대를 잇는 가게나 기업들이 많은 유럽처럼 일본의 시니세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일군 기초이자 저력이다. 기술, 장인, 경영의 노하우를 대물림하면서, 전통을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의 반성에서 일본식 경영이 쇠퇴하고, 미국식 경영이 밀려들면서 시니세의 존재방식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 시니세 기업의 합병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최근 복고붐을 타고 시니세식 경영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후계자 선정문제, 장인의 감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호 등으로 시니세가 과연 어떻게 생존해 나갈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별취재팀|일본에는 대를 잇는 가게(기업),‘시니세(老鋪)’가 많다.500년 넘은 곳만 700개가량 있다는 통계도 있다.
‘잃어버린 10여년’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몇몇이 문을 닫았지만, 시니세의 대부분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새것의 홍수 속에 전통을 고집하는 이들 시니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본을 읽는 키워드의 하나로서 시니세를 찾아본다.
일본 전통과자(和菓子·와가시)의 간판격인 ‘도라야’가 도쿄의 롯폰기 힐스 빌딩에 ‘도라야 카페’를 낸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벤처기업의 신흥부자들이 몰려 있는 유행의 첨단 롯폰기에 400년된 일본과자집이 들어선다?” 전통의 맛 하나로 승부해 온 도라야가 지구촌의 맛이 모인 롯폰기 힐스에 진출해 자리잡을 수 있을까, 그 자체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라야의 17대째 CEO인 구로카와 미쓰히로는 “제안이 왔을 때 주 고객이 젊은층이라는 말에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망설임도 잠시, 젊은세대의 입맛을 분석한 뒤, 도전해볼 만하다며 카페 문을 열었다. 콩이나, 잣, 팥고물 같은 일본 과자의 필수재료에 젊은층 취향을 가미해 제리, 카스텔라, 빵을 만들어냈다. 도라야의 브랜드에, 웰빙 건강식품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선호, 옛것과 현대를 절묘히 배합한 신제품과 가게 인테리어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안겨다 줬다.
2004년 웬만한 중견기업에 맞먹는 159억엔의 매상을 올린 도라야에 이 카페의 실적은 미미한 것일 수 있지만, 오래된 가게들이 어떻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는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새것에 호기심이 많고, 유행에 민감한 일본인의 입맛을 브랜드의 힘이나 전통만으로 지켜내기 힘든 까닭에 이 회사는 20년 전부터 많은 돈을 들여 정밀한 입맛조사를 하고 있다.
기술자인 ‘쇼쿠닌(職人)’을 키우는 방법도 과거와 다르다. 구로카와 사장은 “처음 3년간은 청소만을 시키는 옛 방식은 하지 않는다. 쇼쿠닌이 되려면 10년 정도는 필요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에 기술정보를 공개하기도 하고 외부 연수를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종업원 800명 중 200명 정도가 쇼쿠닌인 도라야는 기술자 중심의 경영방침은 여전하지만 “기계로 만들어서 제대로 된 맛이 난다면 굳이 손으로 만들기를 고집하지 않는다.”(구로카와) 시니세의 강력무기인 소비자의 애정과 신용, 그 결정체인 브랜드의 힘을 유지하는 데는 전통도 과감히 변형시키는 유연한 사고가 경영에 녹아있는 듯 보였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받는 유일한 강점
‘미마스야’는 올해로 창업 100년을 맞은 선술집이다. 도쿄의 간다 뒷골목에 있는 미마스야는 그 흔한 자동문 하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무명천(노렌)을 젖히고 미닫이 문을 열어야 가게에 들어설 수 있다. 기자가 찾아갔던 시간이 저녁 7시 무렵이었는데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한 샐러리맨으로 득실댄다.
이곳을 3대째 잇고 있는 오카다 가쓰다카(59)는 대학을 졸업한 후 가업을 물려받았다. 손님들이 잘 보이도록 메뉴와 가격을 써놓은 나무판이 벽면에 걸려 있고, 가게 곳곳을 떠받치는 기둥, 목제 테이블 어느 곳 하나 세월의 손때가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간단한 모둠회, 일본식 미꾸라지탕, 이면수 구이 같은 500∼1400엔짜리 메뉴들은 퇴근길 한두잔에 배를 채우고 귀가하는 서민들에겐 딱 알맞다. 맛이야 고급 술집에 댈 수 없어도,100년의 세월이 만든 안온한 분위기가 60여명의 손님들에게 입맛을 더하는 듯했다. 이 가게 단골인 선술집 평론가 오타 가즈히코 도호쿠공예대학 교수는 “이곳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변화를 하되 손님이 눈치를 못 채도록 하고, 손님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안심하게 된다.”고 그 비법을 설명했다.
●장인의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가게도
이쑤시개 하나로 300년간 장사를 해온 ‘사루야’는 이쑤시개를 손으로 깎는 장인들이 몇명 남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위기라면 위기입니다.” 주식회사 사루야의 사장인 야마모토 가즈오의 상황인식이다. 장인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최대량은 2000개인데 450개 들어가는 수제 이쑤시개 한 봉지의 판매가격이 1500엔이니, 기껏해야 꼬박 하루를 일하고도 6000엔 정도밖에 못 버는 셈이다. 그나마 도쿄 인근의 지바에 있던 장인은 없어지고, 오사카쪽밖에 남지 않았다고 야마모토 사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그렇지만 활로가 없지는 않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내는 슈퍼마켓용 이쑤시개 공급이 1년 매상 1억 5000만엔 중 60%를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사루야의 브랜드가 들어가는 수공 이쑤시개는 중국에서도 들여오기 시작했다.“세월이 흘러도 이쑤시개 수요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야마모토 사장은 수제 이쑤시개의 전통은 중국산을 통해서라도 잇겠다는 생각이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장인이 만들어낸 이쑤시개로 브랜드를 지켜가겠다는 생각이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1951년 도쿄에는 잿더미 속에서도 전통을 부활하고 지켜가자는 뜻에서 ‘도토우노렌카이(東都のれん會)’라는 협회가 결성됐다. 가업 승계 3대·창업 100년 이상, 도쿄 시내에 자기의 가게를 갖고 있는 엄격한 조건을 갖춘 시니세 55개 점포가 모인 것이다. 김, 기모노(일본 전토의상), 전통과자, 이쑤시개, 빗 같은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된 이 협회는 일본의 독특한 가업승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협회의 고문격인 호소다 야스베는 “세월이 흐르고 길러야 생존하는 이끼 같은 존재가 시니세”라면서 “이끼처럼 지키고 키워가는 것이 바로 시니세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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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년된 민물장어집 ‘지쿠요테’|특별취재팀|도쿄의 번화가 긴자의 180평에 자리잡은 민물장어집 ‘지쿠요테(竹葉亭)’ 본점은 1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어둑한 돌다리를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다다미가 깔린 80년된 목조 건물에 다다른다. 침침한 불빛 아래의 널찍한 상이 보인다.1980년 부엌을 개조하고,3년 전 방바닥이 흔들거려 손을 본 것 말고는 처음 지어진 모습 그대로다.7대째 사장인 벳푸 마코토(60)는 “정원이건 실내건 가급적 손질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장어의 배를 갈라 그대로 굽는 간사이(關西)지방과는 달리 등을 갈라 한번 쪄낸 뒤 구워, 소스를 발라내는 간토(關東)지방 요리법을 고수하고 있는 이곳에는 하루 100명의 단골손님이 드나든다. 보통 한명에 1만 2000엔 정도의 코스요리를 먹는다고 할 때 하루 100만엔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1평에 6100만엔, 일본에서도 1급지로 불리는 긴자에 지쿠요테가 깔고 있는 땅값만 111억엔. 요리 장인 10명을 포함한 종업원 30명의 인건비, 재료비, 유지비 등을 계산하면 가게를 갈아엎고 빌딩을 지어올리는 편이 짭짤할 법하지만 장어구이를 고집하는 까닭은 뭘까.
“노렌(가게 입구에 쳐진 무명천)을 지킨다는 생각입니다.” 이들에겐 고객과 맺은 신용의 상징, 노렌이야말로 시니세 어디를 가든 걸려 있는 최후의 보루이자 자랑인 듯 보인다.
이곳의 요리부는 일본 정통요리(가이세키)를 만드는 5명과 민물장어만을 다루는 5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민물장어부는 이 가게에 15살 때 들어온 대장(56)이 요리장이다.‘꼬치꽂기 3년, 칼로 다듬기 5년, 굽기 평생’이라는 업계의 속담처럼 대장은 다듬어진 장어를 구워, 그릇에 담아내는 일만 한다. 두번째(61세), 세번째(36세) 장인까지만 요리의 전 과정이 가능하다. 이들은 장어를 다듬거나 장어에 바르는 양념장(다레)을 전담한다. 네번째(22세) 요리사는 꼬치를 끼고, 막내(18세)는 온갖 잡일을 하며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운다.
도쿄 대공습 때 장이 든 단지를 먼저 대피시켰을 만큼 양념장에 쏟는 정성은 각별하다. 전국의 10개 지점 어디서나 똑같은 지쿠요테의 장어구이 맛을 내는 비결은 바로 장인이 이어온 양념장에 있다는 것이 벳푸 사장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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