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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진국/개도국 개발원조 축소

    ◎새기준 마련/대만·홍콩 등 10국 대상서 제외 【도쿄 연합】 선진 각국은 그동안 개발도상국 등에 제공해온 정부개발원조(ODA) 제공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97년부터 공여대상국가 및 지역을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갈 방침이라고 니혼 게이자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이같은 방침은 선진국들의 ODA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실제 ODA가 필요한 저소득국가들에 대한 원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이미 고소득 국가가 된 대만,홍콩,이스라엘등 10개 국가 및 지역은 97년 1월부터 ODA 공여대상에서 제외시킬 계획이다. 이와함께 한국,사우디아라비아,오만,미국령 태평양제도등 16개 준고소득 국가 및 지역에 대해서는 기존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외에 출생률,농업생산비율등 사회·경제개발 지수를 고려한 새로운 기준을 정해 이중 2∼3개국을 선정,99년부터 ODA로부터 졸업시킬 예정이다.
  • 몸바사항/“흑인노예 수출항”… 슬픈역사 간직(아프리카 기행:9)

    ◎「킨타쿤테」 떠난 부두에 범선수십척 “장관”/인도양 교역중심지… 11세기 아랍상인에 의해 건설/올드타운 거리 곳곳에 이슬람 정취 물씬 케냐 동쪽 끝에 위치한 몸바사는 탐욕스런 무역상인들에 의해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수출 중심 항구로 비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오늘날에도 동아프리카의 중요한 무역항이다.처음에는 인도양 위에 떠있는 조용한 산호섬이었으나 지금은 섬이었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몸바사로 가는 가장 훌륭한 여행길은 나이로비에서 기차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질러 몸바사항에 닿는 노정이다.덴마크 공주 카렌이 그의 연인이 되었던 영국인 수렵가 해턴과의 운명적인 첫 해우를 한것도 바로 몸바사를 떠나 나이로비로 향하던 기차여행중에서였다.이 기차를 타면 아프리카 대평원에 뜨고 지는 태양과 아프리카서민들의 생활과 정한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그러나 여행일정에 쫓겼고 열차의 발차시각이 한 밤이라서 비행기를 이용하게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케냐 서쪽에 있는 우간다와 르완다는 유럽의 스위스처럼 바다가 없는 나라다.그렇기 때문에 몸바사에서 내륙으로 놓여진 철도가 없었다면 이들 나라는 현대문명사회와 고립되었을 것이다.몸바사에서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망은 그들에게 있어 라인강과 같은 젖줄인 셈이다.오만의 몸바사에서 따온 지명인데 케냐의 몸바사는 11세기때 아랍상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인도양 횡단교역에 절대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노예시장” 흥청 149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가마는 상거래의 중요한 항구로서 몸바사를 점찍었고 그로인해 이곳에는 노예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니그로들을 사냥하듯 잡아 바깥 세계에 노예로 수출한 악명 높은 항구가 바로 몸바사다.1840년 잔지바르(몸바사 아래쪽의 섬)의 성주가 통치권을 행사할 때까지 아랍과 페르시아,포르투갈,투르크(터키의 한 부족)가 패권을 다툰 각축장이기도 하였다. 1895년 영국이 차지하여 1907년 수도가 케냐로 옮겨지기까지 몸바사는 동아프리카 보호령의 수도로서의 역할에 매우 분주하였다.몸바사에는 두개의 항구가 있는데 섬의 동쪽에 있는 구항은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인도 등지에서 교역물을 싣고 오는 범선이나 작은 선박들이 이용한다.아침마다 이 항구로 들어 온 많은 해산물들로 시청사 주변을 생선시장으로 바꿔 버린다.우기가 되면 수십대의 다우범선(돛이 세개달린 범선)들이 이 구항으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한편 영국이 개발한 킬린디니항은 수심이 깊은 항구로 육지로 둘러싸인 정박지에 16척의 화물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현대적 항만시설을 갖추었다. 몸바사의 중심거리는 음웸베 타야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이곳이 도시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이유는 교통 때문이다.교통문제를 책임지는 감독관이 이 거리 망고나무 아래에서 사파리를 떠나기에 앞서 짐꾼들과 운전사들을 집합시키고 점호를 하는 풍경은 이채롭다.토요일마다 여기서 벌어지는 노상 밴드쇼가 유명하고 여러가지 향신료를 섞은 음식물과 야채를 팔고 있는 저자거리도 볼만하다. ○노상 밴드쇼는 명물 그러나 몸바사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들은 누구나 한번쯤당혹감을 느끼게 마련이다.그것은 여행자가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를 잘못 타서 회교국가인 아랍에 잘못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거리로 나가면 검은 아바이야차림에 얼굴을 차드르로 가린 회교도 여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특히 동쪽에 있는 구항에 인접한 올드타운은 좁은 골목길에 조각장식을 곁들인 발코니가 달린 아랍식 주택들과 이슬람사원들이 들어서 있다.좁은 골목은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고,고층주택들의 지붕은 지난날 포르투갈 침입자들의 공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몸바사를 통치하던 역대 총독들은 전통적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포대기용 천을,그리고 결혼하는 신부에게는 가운을 주면서 축복하였다.죽은 자에게는 넉 장의 무명천을 선사해 왔다니 인생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에 통치자들이 꽤나 신경을 쓴 모양이다.통치술 치고는 고차원적이 아니었나 한다.이곳에 살고 있는 회교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11세기에 몸바사에 상륙하였던 아랍상인들의 후예들이다.그런가하면 수도 나이로비에는 이 나라가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을때 철도부설노동자로 들어왔던 인도인의 후예들이 케냐상권의 대부분을 쥐고 있다. ○인도인 후예 상권 장악 때때로 이런 해묵은 갈등들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큰 충돌 없이 지내고 있는듯 하였다.케냐의 원주민들은 수백년동안 이런 종교와 문화적 차이를 큰 적대감 없이 수용하기도 하고 조화시키면서 살고 있었다.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의 공간적 넓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항 근처에 있는 부두노동자들의 합숙소 벽면에 나란히 걸려있던 그들의 옷가지와 빨래들을 바라보면서 노예시장은 이제 없어졌지만 아직도 밑바닥 생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정한은 남루한 옷차림들에 그대로 묻어있다는 생각을 하였다.아랍사원중의 하나인 아우디보라 모스크가 있는 절벽 뒤의 황무지에는 방치해 둔 계단입구가 있다.교역물자를 나르던 범선의 노예들이 비밀리에 드나들었던 곳인데 이 계단이 끝나는 막다른 동굴에는 그들 노예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해 주었던 맑은 샘물이 있다. 우리는인도양의 초록빛 바다가 창문 아래까지 밀려와 닿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휴가를 맞은 유럽인들이 몰려와 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만끽하고 있는 호텔 앞의 바닷가에는 몇마리의 낙타를 몰고 다니며 손님을 부르고 있는 흑인과 낙타들의 발길이 무척이나 한가로웠다.
  • 이건희 회장 북경발언 “파문”/“화합 분위기에 찬물” 재계서 눈총

    ◎삼성 “본뜻와전” 해명불구 일파만파/“정치 4류·관료 3류·기업 2류/행정규제 풀린것 하나도 없다/승용차 허가 부산 불만해소용”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정부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북경발언」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이회장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정부와 재계는 발언배경과 파장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중국을 방문중인 이회장은 13일 북경의 조어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비보도를 전제로 한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고 정부가 행정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고 하지만,이 정권 들어와서 행정규제가 풀린 것이 하나도 없다』며 『국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1천개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정부를 공격했다.그는 또 『삼성이 승용차에 진출한 것은 부산시민들이 불만을 터뜨렸기 때문이며,삼성과 정부와의 관계가 긴밀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정부와의 관계는 오히려 적대적이라고 했다.이회장이 『정치는 4류,행정은 3류,기업은 2류』라고 한데서 이날 발언의 폭력성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어린이도 파문을 예상할 수 있는 이런 발언의 진의는 무엇일까.비보도 약속을 일부 언론이 깨뜨린 것도 문제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진의를 파악해보자』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의 미묘함을 들어 사건의 확대를 원치 않는 눈치다.그러나 그 진의가 어떻든 청와대까지 거론한 이회장의 발언은 일파만파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는 대체로 「너무 잘 나가는 이회장」의 오만함에 일단 눈총을 주고 있다.삼성 스스로가 정부쪽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회견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이들이 함께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삼성그룹과 경쟁관계인 A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너무 풀었더니 이회장이 안하무인 격으로 나온 것 같다』며 『이회장의 돌출 발언으로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정부와 재계의 화합분위기에 금이 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회장의 발언에는 『정부가 사람 데려오는 것을 막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승용차에 진출한 삼성이 기존 자동차 회사의 임직원들을 자유롭게 스카우트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인 셈이다.그러나 재계는 이 발언이야말로 이회장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으로 입을 모은다. 이회장은 지난해 12월 승용차에 신규 진출하면서 『기존업체의 현직 및 향후 퇴직자중 2년이 지나지 않은 인력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5개항의 각서를 상공부(현 통상산업부)에 제출했었다.인력스카우트 자제를 밝혔던 이회장이 이제와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들먹인 것은 기업인의 위상을 스스로 「장사꾼」으로 격하시켰다는 의견이 많다. 파문이 심해지자,삼성그룹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삼성은 언론기관에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21세기에 초일류 국가가 되려면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지 우리 정부가 4류라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또 『승용차 사업 허가가 특혜라는 시각이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말한 것』이라며 『정부와의 관계가 적대적이라고 한 것은 농담조로 던진 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진의부터 파악”… 공식대응 자제○…청와대 당국자들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정부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한데 대해 공식 대응을 자제해 삼성쪽의 해명이 어느 정도 수용됐음을 시사.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이회장 발언에 대해서는 들은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하고 『정확한 진의를 파악하기에 앞서 현재로서는 얘기할게 없다』고 신중한 자세. 김대통령도 이날 상오 한승수 비서실장으로부터 이회장 발언 파문의 전말을 보고받았지만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 관계자가 소개. 이와 관련,삼성측은 비보도를 전제로 했던 이회장의 발언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즉각 전화 및 팩시밀리를 통해 발언 전문 및 그 진의에 대해 해명했다는 후문. 청와대는 황병태 주중국대사로부터도 이회장의 발언내용을 보고받고 『좀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관들 사이에는 『삼성이 정부와 너무 유착되었다는 비판에 대한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아니냐』고 너그럽게 봐주는 시각도 있지만 『최종현 선경그룹회장이 이상한 말을하더니 이건희회장까지 그러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분개하는 견해도 병존. 때문에 이번 일로 당장 어떤 조치는 없더라도 정부와 삼성간의 관계가 당분간 냉랭해질 수도 있다는 관측.
  • 독 우익/「종전=해방」역사해석에 반기

    ◎고위인사 280명 “잘못만 부각”대전 재평가 주장/사민당 중심 “진실은폐 국수주의적 사고”맹 비난 일본에서 국회 부전결의 채택을 둘러싼 찬반 시비가 확산되는 가운데 독일 우익인사들도 종전 50주년기념일(5월8일)의 역사적 재평가를 공개요구,파문이 일고 있다. 독일 보수우파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2차대전의 해석과 관련,일방적으로 독일의 과오만 부각되고 있다는 반발 심리가 깔린 것으로 개전 책임과 관련한 역사적 진실을 상대화,축소하려는 국수적 사고 방식이 고개들기 시작한 징후로 주목받고 있다. 카를 디터 슈프랑어 개발장관,집권 기민당(CDU) 원내총무를 지냈던 알프레트 드레거 등 전·현직 고위 정치인들과 저명 학자 등이 포함된 보수우익인사 2백80여명은 최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에 공동성명을 내고 2차대전 종전이 독일에 주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 이 성명은 종전기념일을 나치정권 전체주의 체제로부터의 해방일로 보는 일반적 역사해석에 반기를 들면서 『이날은 나치 폭압으로부터의 해방일인 동시에 동구지역 독일인들의 집단추방과 동독에서의 새 억압체제,분단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이들은 지금까지의 2차대전 평가가 일방적이었다면서 『이같은 진실을 호도하거나 억누르고 상대화하려는 어떤 역사인식도 독일의 자화상이나 자긍심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들은 종전기념일 하루 전인 5월7일 뮌헨에서 별도 기념집회를 가질 계획이라면서 성명에 서명자 전원의 이름을 명기하고 찬조금 접수를 위한 은행구좌도 함께 게재함으로써 자신들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확산시키고 지지세력을 규합해나갈 방침임을 시사했다. 이들의 성명은 야당인 사민당(SPD)을 비롯,각계에서 즉각 비판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사민당은 성명을 내고 『지성적 정직성이라는 허울 아래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들고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부채질하는 극단주의』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자비네 로이토이서 쉬나렌베르거 법무장관도 ARD방송 회견에서 우익보수세력의 이같은 시각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시키고 역사적 진실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로 규정했다.이같은 논란에 대해 독일정부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묘한 뉘앙스를 주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다.페터 하우스만 총리실대변인은 종전 50주년 기념일의 의미 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정부는 개입할 생각이 없다면서 『독일정부로서는 이 성명에 대해 공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동시에 유태인 대학살 희생자들과 독일군 전사자들에 대한 슬픔도 종전기념일의 의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 「매미의 지혜」로 섭리를 거스르면(박갑천 칼럼)

    「요화 알라우네」라는 영화를 본 것이 50년대였던 듯하다.40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 받은 충격만은 생생해진다.독일작가 한스 에베르스의 「알라우네」를 영화화한 것이었다.1911년에 쓰인 이 작품은 인공수정에 의해 태어난 생명이 인간들에게 끼치는 재액을 그려나간다. 가지과의 유독식물인 맨드레이크의 뿌리가 만드라고라인데 이는 알라우네라고도 불린다.이 식물은 교수형 당하는 죄수가 숨이 끊기면서 흘리는 정액이 땅에 떨어져 돋아난다는 전설을 지녔다.브링켄박사는 「이상적」인 창부를 찾아내어 그 자궁에다 사형수의 정액을 인공수정한다.태어난 생명이 알라우네인데 산모가 죽는 것으로부터 재액은 시작된다.아름다운 알라우네는 양성을 함께 지녀 모든 남녀가 빠져든다.하지만 그와 관계되는 사람은 하나같이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그를 「창조」해낸 브링켄박사까지도. 이 작품은 사람의 지혜가 섭리의 영역에까지 끼어드는 일이 얼마나 참람되고 두려운 것인가를 경고한다.하지만 인류는 그걸 무시해온다.『순리를 버리고 역리를 따름은 재앙을 부르는 원인이다』(「소학」)하는 가르침에 낯돌려온다.그래서 배자(태아로 발육되기 전의 수정란)의 복제에 성공하여 판박이인간을 만드는 길을 열어놓고 있기까지 하다.섭리만이 알아서 조절해오던 남녀출산의 비율이건만 거기 끼어든지도 오래다.그 결과 불균형문제는 심각해진다.우리의 경우 금세기 안에 6명중 1명이 신부를 못구한다는게 숫자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형편.얼마전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IPU)이 「생명윤리」결의안을 채택한 뜻도 그에 대한 성찰의 촉구였다 하겠으나 얼마나 받아들여질 것인지. 인지의 외람된 역리추구가 스스로 알라우네를 배출시켜 나가는건 아닐지.「장자」의 말을 한번 음미해보자.­『얕은 지혜는 깊은 지혜를 알 수 없고 명이 짧은 것은 명이 긴 것을 알 수 없다.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말라죽는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이 있는 한달을 알 수 없고 여름에 나왔다가 가을에 죽는 매미는 봄·가을이 있는 한해를 알지 못한다.…』 섭리의 뜻에서 보자면 사람의 지혜가 버섯·매미보다 나을게 없다.하건만 사람들은 옅은지혜에 저라서 취하여 오만해져 있다.눈앞의 편익에 어두워져 해도 될 일과 안해야 할 일을 구별못한다.마침내 다다를 길이 어디일 것인고.
  • 북한/1천명당 군인 52명 “세계1위”/세계군비93년 실태보고서

    ◎GNP대비 군사비 한국 50위·북한 2위/세계총액 8천억달러… 6년새 30% 감소 한국은 93년 군사비로 전년대비 2억9천만달러 늘어난 1백19억3천만달러를 써 이 부문 세계 10위를,북한은 21위를 각각 기록했다고 미군비관리군축국(ACDA)이 28일 밝혔다. ACDA가 이날 공개한 「93∼94년 세계 군비지출및 무기거래」(93년불변가격 기준)란 제목의 보고서는 북한의 정확한 군비지출 규모는 언급하지 않은 채 20위(50억1천1백만달러)인 스웨덴의 바로 뒤에 랭크시켰다.북한은 90년 64억7천7백만달러,91년 48억9천4백만달러에 이어 92년에 56억2천만달러를 군비로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총생산(GNP)대비 군사비 비율은 구체적 숫자가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이어 2위(4위의 오만은 21.5%)에 올랐고 한국은 3.6%로 50위에 랭크됐다.93년 전세계 평균은 3.3%로 피크이던 83년에 비해 2.4%포인트 낮아졌다. 병력은 북한이 93년 현재 1백20만명으로 중국·러시아·미국·인도에 이어 5위인데 비해 한국은 75만명으로 8위이고,인구 1천명당 군인수는 북한이 53명으로 1위,한국은 16·8명으로 15위이며,군인 1명당 군사비는 한국이 60위(1만5천9백달러),북한이 4천달러선인 1백20위였다. 무기수출은 한국이 5천만달러로 17위인 반면 북한은 21위(3천만달러)였다.93년 전세계의 무기거래(인도분 기준)는 2백20억달러로 피크였던 84년의 7백66억달러에 비해 현격히 줄었고,미국은 이중 47%인 1백3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수출해 러시아의 26억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무기수입은 한국이 93년중 8억7천5백만달러를 써 사우디아라비아(51억달러)·미국(14억달러)·이집트(11억달러)·이란(10억달러)·터키(9억7천5백만달러)·헝가리(8억7천5백만달러)에 이어 7위를 기록한 반면 북한은 「수입액 제로」로 표시됐다. 한편 세계의 군비지출 총액은 동유럽과 선진국의 지출감소로 인해 93년 현재 8천6백80억달러로 군비경쟁이 치열하던 87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펴낸 박용구옹(저자와의 대화)

    ◎“한·중·일 바른 관계 정립에 도움됐으면”/중국·일본생활 통해 얻은 교훈 정리/“타국 낮워보는 패권주의가 불평등 관계 형성” 문화예술계의 원로 박용구(81)옹이 최근 한국·일본·중국 3국관계를 문명사적으로 조명한 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펴냄)를 출간했다.평생을 음악·무용 등 공연계에 몸담은 그가 일종의 외도를 한 셈이다. 그러나 세 나라에서 모두 살아봐 느낀 점이 많은 그로서는 할말도 많았을 테고 따라서 너무 늦게 말문을 틔운 감이 없지 않다. 『동아시아의 지난 역사는 「기록게임」에 의해 좌우되어왔습니다.상대보다 먼저 역사서를 통해 주변국을 배타적으로 규정하고 불평등관계를 합리화해온 것이지요』 그는 서기전 1세기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이 쓴 「사기」가 이웃국가를 오랑캐로 낮춰보는 패권주의적 화이사상을 확립시킨 뒤 2천여년동안 동아시아가 불평등한관계에 휘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또한 일본이 8세기에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통해 「사기」의 화이사상을 흉내낸 신국사상을 자국민에게 주입함으로써 아시아를 불행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려면 서로의 잘못을 깨닫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중국과 일본이 오만을 버리는 것과 함께 「기록게임」의 패배자인 한국도 한때 「소중화」를 자처하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것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3국관계에 인류 전체의 존망이 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21세기에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는 황화론에 대비해서라도 3국은 뭉쳐야만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박옹은 3국 국민이 각기 위정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바람직한 3국관계를 유도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했다. 박옹은 지난 40년경 만주 하얼삔에서 성악가로 활약하다 귀국했으나 월북작곡가 김순남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자유당정권의 박해를 받자 50년 일본으로 밀항한 비운의 인물.일본에 머무르다 자유당정권이 무너진 뒤 고국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5·16」군사정권에 의해 재일동포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내가 살아온 80년이선인들이 살다간 8백년보다도 더 변화가 많은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박옹은 자신이 겪은 고초가 잘못된 3국의 역사관계에서 비롯됐다고 깨달은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혔다.그는 이 책이 『한·일·중 동북아시아 세 나라가 앞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하고 바랐다.
  • “지방행정개혁 실현하려 출마”/첫 여성민선시장 후보 전재희씨

    ◎현직시장으로 파악한 광명시 과제풀터 『여성들의 사회활동참여를 활성화,국력이 배가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3일 민자당의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제1호이자 여성시장 후보 1호로 확정된 전재희 광명시장(46)은 소감을 대신해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속에 지난해 4월 우리나라 첫 여성시장으로 취임한 전 시장은 『나이와 성을 초월,시대적 소명인 개혁과 지방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는 민자당의 권유를 받아들여 망설임끝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장에 당선된다면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일은. ▲공직생활을 해보니 가장 능률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시작한지 2∼3년 때인 것같다.현직 시장으로서 파악한 주거환경개선 등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과제들을 결단성 있게 완수하겠다. ­부군도 공직자로 알고 있는데 민선시장출마에 반대하지 않던가. ▲서로 공직생활을 함께 하며 최대의 후원자요,지지자가 돼있다.서로 이해하고 격려해주고 있다.부부란게 그런 것 아닌가. ­지난 1년동안의 시정을스스로 평가한다면. ▲평가는 내가 아니라 주민들의 몫이다.나는 여성시장이 아니라 광명시장으로 불리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그렇게들 불러주고 있다. ­선거전에서는 직업공무원으로서 경험하지 못한 험난한 일도 겪을텐데…. ▲국민학교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돼 본 일이 있으나 이런 자리에 나서리라는 생각은 평생 못해 보았다. 시민의 뜻을 묻는 일에 자신감을 갖는다면 오만일 것이다.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진솔히 말씀드리고 시민의 선택에 따를 뿐이다. ­광명은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데 선거전략이 있다면. ▲야당세는 그만큼 시민들의 비판정신이 강하다는 뜻이며 이는 진취적인 기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시민들이 내가 열심히 하려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여야를 떠나 의미있는 경쟁이 될 것이다. 전 시장은 조달청 인천지청장으로 있는 부군 김형율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대구출생 △영남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13회 △노동부 노동보험국장·직업훈련국장 △광명시장
  • 러시아의 냉전회귀 현상/홀로보프 영 킹스 칼리지 교수(해외논단)

    러시아정보기관은 미국의 주요 러시아연구기관으로의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러시아주민의 활동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에 대해 영국 킹스 칼리지의 「공산주의이후 안보연구프로그램」대표인 E·M·홀로보프 교수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글에서 그러한 제한움직임은 냉전으로의 회귀라고 지적하고 러시아가 체첸사태와 같은 대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안보·방위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서방세계와의 교류를 활성화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그의 기고문 요약이다. 러시아의 체첸공화국 무력진압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민주주의정치를 추구하는 한 그를 지원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서방세계가 그러한 다짐을 할 때 러시아정부의 일부 부서는 「국가기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일반시민의 움직임을 제한하도록 제의하고 있었다.냉전으로의 회귀현상이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연방방첩국은 서방의 주요 러시아연구단체의 활동을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랜드연구소·포드재단·하버드대학의 러시아·동구센터·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를 비롯,미국의 주요연구소들은 미국정보기관의 전위대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그러한 연구소들의 진정한 목적은 러시아의 안정을 무너뜨리는 일이며 그들은 첩보원을 고용,정보를 수집하고 러시아의 정보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두뇌유출」작전을 편다고 비난했다. 러시아보고서는 서방연구기관들이 세계의 유일한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한 워싱턴의 외교정책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것은 파격적인 형태의 정보수집을 통해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종합전략이라는 것이다.정보수집방법은 러시아연구원과의 접촉,여론조사실시,재정·기술지원 타당성조사를 빙자한 정보수집 등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미국의 유명한 3개 대학과 저명한 2개 모스크바센터에 의해 지난 1993년 3만9천명의 러시아인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도 모범적인 상호협력의 예가 아니라 미국이 믿을 만한 러시아정보를 얻기 위한 「재앙의 계획」이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러시아사회는 편집병의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 있다.러시아보고서의 작성자들과 같이 사람들은 미국정부가 그렇게 강력하고,보고서에 나온 기관들의 다양한 활동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믿을까.보고서의 분석은 민주주의사회,비정부조직,정보의 자유에 대한 혼란스러운 오해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방첩기관은 서방세계의 연구기관 지원시스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많은 연구소나 대학 프로그램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그러나 민간이나 비정부조직으로부터도 지원을 받고 있다.모든 서방연구기관이 완벽한 객관성을 갖고 활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또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정부의 첩보원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지나친 생각이다. 보고서의 작성자들은 분명히 언론자유의 개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다.러시아신문을 읽고 분석하는 서방전문가들에게 위협은 무엇인가.만약 국가기밀이 신문에 보도되면 러시아정부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그러나 연구원들은 무엇이 국가기밀이고 아닌지 일반적으로 잘 모른다.정말로 무엇이 국가기밀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국가기밀이다. 러시아방첩기관보고서에 담겨 있는 아이디어는 러시아정부의 정책을 반영하는 것일까.대답은 「그렇다」다.러시아 외무부는 알렉산더 루츠코이 전부통령의 해외방문특권을 거부했다.이유는 범죄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국가비밀을 갖고 해외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지금 러시아정치권의 주요이슈는 서방세계의 문화침략·경제착취·정치적 오만 등에 대한 비판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연구원들은 지금 방첩기관보고서에 함축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그들은 외국인과의 접촉이 중대한 의심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그들은 서방국가로부터의 장학금·연구지원금을 계속 받아야 할지 불안해 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서가 함축하는 의미는 더욱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만약 진지한 내부토론,특히 방위나 안보문제에 대한 논의가 봉쇄된다면 러시아는 체첸에서의 대실패와같은 어려운 문제에 빠질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저명한 러시아전문가들은 공산주의시대의 꼭두각시상황으로 돌아가 그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단지 윗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말만 정부에 말할 것이다. 러시아의 방첩기관은 이 때문에 과도한 통제기능을 버리고 「암흑시대」로부터 탈출하여야 한다.러시아정부·국회·과학센터·학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서방기관들과 교류를 해왔다.러시아방첩기관 분석가들도 이러한 교류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 미국 비판(임춘웅 칼럼)

    우리에게 미국은 과연 무엇일까.구세주인가 오만한 지배자인가.비정한 강자인가 의리의 돌쇠인가.서부의 무법자인가 정의의 사도인가. 어느 쪽인 것일까.미국은 그 모두 일수도 있고 그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다.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비친 미국의 모습은 아주 단순했다.크고 환한 얼굴이었다. 최근들어 미국의 모습이 바뀌어가고 있다.천의 얼굴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달라지고 있는 미국의 모습은 미국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데서 나타나고 있는 전과 다른 여러가지 행태에도 원인이 있지만 미국을 보는 우리의 눈이 바뀌어 가고 있는데서 오는 측면이 더크다.일본에서 『No라고 말 할 수 있는 일본인』이 베스트 셀러가 됐던게 6년전인 1989년.지금 한국에서 『No』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부쩍 는데는 최근에만도 몇가지 촉매가 있었다.북한의 핵문제를 푸는데 북한과 미국이 숙덕숙덕하는 사이 우리는 뒷짐만지고 서 있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라든지,미군 헬리콥터 격추사건,클린턴대통령이 북한의 종교지도자들을 만나고시치미를 떼려한 일들이 모두 한국사람들의 심기를 뒤틀어 놓았다.며칠전에는 미국대사관이 대사관부지로 확보해 놓은 서울 정동 전경기여고 자리를 상업용지로 전용할 수 있도록 우리정부에 요청한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무렵 어느 신문 사설의 제목이 「미국의 오만과 한국의 굴욕」이었다.이 사설 속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식민종주국 처럼 행세한다』느니 『미국정부는 유독 한국에서 지배자 같은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둥 사뭇 도발적인 어휘들을 구사하고 있다. 그동안에도 미국비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세칭 반체제 쪽에서나 썼던 말이지 서울의 버젓한 종합일간지 사설에 등장하는 어투는 아니었다.이 사설은 좀 지나쳤지만 최근 한국의 신문사설이나 각종 칼럼에 미국을 비판하는 글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일주전 나온 미국국방부의 새 「동아시아방위전략」에는 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이룩한 경제적 번영은 그들의 자주의식과 자신감,독자성 확보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고 있다.근자 한국언론을 의식한 언급인 것 같아 흥미롭다.미국은 역사상 어느 나라보다 관대한 강대국이긴 해도 약소국의 주권이나 체면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는 나라다. 한국인의 대미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나 할까.한쪽으로 너무 기운 추가 제자리에 오기 위해서는 다른 쪽으로 얼마간 가야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그런 측면에서 보면 요즘의 경향이 크게 잘못된 것같지는 않다.균형을 잡기 위한 복원운동의 하나쯤으로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과 잘 지내야할 많은 이유가 있다.미국의 한국에 대한,한국인의 미국인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부터 새출발해야 할 것이다.
  • 서울대 졸업식 김종운 총장 치사

    새 인생도정의 출발점에 선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몇가지를 당부하고자 합니다.저는 먼저 지식인의 윤리를 강조하고 싶습니다.여러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나라 최고의 지식인들입니다.이 말은 이제 여러분이 습득한 지식에 대한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이제 여러분은 실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므로,그말은 곧 우리 사회와 이웃을 올바르고 복된 길로 인도해야 할 남다른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우리 사회가 시련이나 난관에 부닥치면 그것을 앞장서서 해결할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우리 주위의 비합리적인 것이나 비효율적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솔선하여 개선해야 할 사람도 바로 여러분입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더라도 개인의 안위나 이익보다는 사회와 이웃의 복리를 우선하여 생각해야 하고,그런 공동의 선을 위하여 진력하여야 할 것입니다.그것이 남보다 탁월한 지능과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의 도덕적 의무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임감,사명감이 행여 오만이나독선으로 빗나가서는 안될 것입니다.남을 위해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신의 의로움에 도취하는 것입니다.그것은 세상에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뿐이라는 그릇된 환상에 빠지게 하고 그 결과 자기만이 옳다는 착각을 갖게 합니다.우리는 숭고한 이념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이 나중에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되어서 실패한 많은 예를 역사에서 보아왔습니다.여러분이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늘 겸손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창조적 사고를 할 것을 부탁합니다.지난 20∼30년간 여러분의 선배들은 국가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그들은 이 나라의 민주화의 초석을 놓았을 뿐 아니라,우리의 경제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제고하였습니다.그들의 노력 덕분으로 지금은 정치,경제,문화,학술 등 제분야에서 기본적인 여건은 갖추어진 상태입니다.여러분은 이제 그것을 토대로 하여 한 차원 높은 발전을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특히 여러분은 앞으로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지금까지는 남을 따라 잡기 위해서 남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받아 들이고 모방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남을 앞지르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새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창조적인 사고가 없이는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저는 여러분이 이후로도 계속 탐구하는 태도를 견지하기를 당부합니다.여러분들 중의 대부분에게는 오늘로 제도교육이 끝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배우는 것 자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운 것은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와 훈련에 불과합니다.이제부터 여러분은 가장 종합적이며 난삽하고 심오한 연구 대상인 인생과 맞부딪치게 됩니다.이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풀어 나가려면 지금까지 습득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과 훈련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그것은 언제나 배우고 생각하는 탐구적인 태도를 가져야만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풀브라이트(외언내언)

    지난 9일 타계한 미국의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상원의원(89)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50∼60년대 풀브라이트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은 그시대 야망에 넘치던 한국청년들에겐 선망 이상의 것이었다.이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중에 이현재 전국무총리 조순 전부총리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 현홍주 전주미대사 등 저명인사들이 줄줄이 끼어있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풀브라이트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현재까지 1백20개국에서 자그마치 10만여명.우리나라에서만 1천1백여명에 이른다.풀브라이트의원은 상원에 진출한 직후인 46년 미국과 세계의 이해증진을 목표로 이 장학재단법을 제안했고 이 재단이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수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미국유학의 기회를 제공해온 것. 그러나 풀브라이트의 진면목은 60∼70년대 미국 리버럴세력의 기수로 미국정치에 미친 강력한 지도력에 있다.그는 월남전개입을 극력 반대,반전운동의 정치적 지주역할을 했으며 그의 저서 「권력의 오만」은 반전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됐었다. 59년부터 74년까지 상원외교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이름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의회의 통제력을 상징하기도 했다.같은 민주당소속이면서도 케네디 대통령의 월남전 초기개입과정에서부터 그는 월남전의 부도덕성을 줄기차게 비판했다. 「권력의 오만」에서 그는 『미국은 역사이래 강대국들이 스스로 쇠락의 길을 걷게한 오만한 권력행사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었다.그의 선견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에서 뒷받침됐다. 미국 현대사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한 위대한 리버럴리스트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미 군정 3년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7)

    ◎일 관리 47년 8월까지 행정 참여/초기 미군정요원 배치안해 정책 혼선/친일파 중용… 「부일배경찰」 85% 넘어/소 의식한 본국반대불구,「한국군」 창설추진은 성과 한국의 미군군정은 미 제6·7·40사단으로 구성된 제24군단의 38도선 이남 점령임무 수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일본 민간인의 본국귀환,법과 질서유지,미국의 정책 속에서 정부역할 수행이 당초의 주임무였다.미군정은 1945년 9월12일 주한미군 본부 내에 독립된 사령부 성격을 띠고 「주한미군정」(USAMGOK)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진주한 제24군단 병력 가운데는 군정을 수행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군정부대는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10월21일 인천에 내렸다.그것도 한국점령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주요지역 통치를 위해 훈련받은 요원들이었다.그 병력은 4개 전술보조부대와 캘리포니아 몬테리에서 민정훈련을 받은 20개 중대로 충원되었다.그들은 먼 항해 끝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사실을 인천상륙 1주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의 군정은 전술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점령지역을 통치하는 과정에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되었다.지방이 특히 심했다.서울에서는 인공 산하의 치안대 활동이 멈추었으나,일부 지방에서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들을 체포할 정도였다.이 가운데는 행방불명이 된 미군도 있다.전남의 경우 제40사단과 교체한 제6사단 20보병연대는 인민위원회를 반대하면서 치안대를 공공건물로부터 몰아내는 등의 강공책을 썼다. 미군정의 군정장관으로 육군소장 A V 아놀드가 임명되었다.지난날 총독이 행사한 권한을 손에 쥔 군정장관은 전술부대에 소속하지 않은 모든 군정요원을 지휘했다.군정장·차관 밑에 총독부 정무총감 위치와 비슷한 민정장관을 두었는데,그 자리는 B B 프레스코 대령이 맡았다.그리고 8개의 부와 9개의 국을 설치했다.이들 기구는 1946년 5월10일 확정한 새 편제에 따라 11개위 부,4개의 처,86개의 국으로 개편되기까지 존속했다. 「주한미군정청」(USAMGIK)이라는 공식명칭은 1946년 1월4일부터 사용되었다.처음의 「주한미군정」의 약어 「USAMGOK」의 끝자리 3자 GOK가 조롱하는 말 GOOK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한달이 모자라는 3년 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면 미군정의 정책은 어떤 것이었으며,한국에 남긴 군정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에 적은 표현을 빌리면 「점령당국(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마치 모래수렁 같았고 점령당국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술한 그는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성채를 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워싱턴뜻과 배치 미군정은 초기의 정책을 수정,선회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에따라 1945년 11월 무렵에 수립된 새로운 정책은 크게 네가지를 목표로 했다.그것은 앞으로 탄생할 한국정부를 고려하면서 보수진영과의 제휴,경찰력 강화,군대의 창설,좌익의 탄압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들 정책은 워싱턴 고위층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그러나 군정에 파견한 국무성 관리들이 이 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군출신 두각 한국군 창설과 경찰력 강화 등 미군정의 새로운 정책은 남한 통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미군정은 1945년 11월13일 국방경비대,육군부와 해군부를 통괄하는 군사국을 설치했다.J R 하지는 점령 초기부터 한국군 창설문제에 관심이 있었다.소련을 의식한 워싱턴 고위국으로부터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겼다.1946년 6월 국방경비대는 통위부로,군사국은 조선경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군조직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군정은 1945년 12월초에 60명의 장교를 선발,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켰다.이들은 당시 국방경비대 고문 이형근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었다.이가운데 40명은 일본군 출신이고 광복군 출신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 출신들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 국군 창건 이후에도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광복군 출신들은 저만큼 뒤쳐져 있었다. 경비대에게는 내부소요 진압임무가 돌아갔다.1946년 후반기가 저물면서는 파업,폭동과 더불어 몇몇 경찰서가 불타는 등 소요가 잇따랐고 좌익좌파 3당은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1947년 9월에는 좌익검거 선풍이 불었다.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남로당과 민애청등의 지하 좌익세력들이 10월15일부터 한라산에 입산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비대는 폭 넓은 소요를 진압하는 두가지 무기의 하나로 평가되었다.다른 무기는 국립경찰이었다.군정은 1945년 9월17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경무국을 인수받았다.경찰을 헌병사령관 L E 쉬크 준장의 통제 하에 두었는데 일본인 경찰관들에게까지 「USMG」라는 군정 완장을 지급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특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제서야 일본인 경찰관들의 자리를 한국인들로 메꾸었다. 헌병사령관 밑에 있던 경찰은 11월30일부터 국방군 사령관이 지휘했다.그리고 해방이 되던해 10월 워싱턴 3성조정위원회로부터 한국 경찰 내의 친일파와 미움을 사는 기구를제거하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하지만 경찰의 볼썽 사나운 관행은 계속되었다.군정청이 피의자에 대한 폭행 금지명령을 내리자 대신 소방관을 시켜 폭행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1946년 4월 소방서가 경찰과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동료였던 터라 그런 부탁쯤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해방된 이 땅의 경찰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일제에 강한 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다시 썼기 때문에 부일배 경찰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나 되었다.1945년 10월 당시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간부의 53%,하위직 25%가 일본경찰 출신임을 시인했다고 한다.A W 그린이 「경찰의 오만 무례는 끝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경찰의 일제 잔재청산은 요원했는지 모른다. 일본인 관리들도 상당 기간동안 군정에 참여했다.1945년 12월 군정청에 지방행정과가 생겼을 당시 일본인이 감독책임을 맡고 있었다.1947년 8월15일까지도 일본인들이 군정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미 대통령 특사인 육군 중장 A C 웨드마이어가 작성한 「한국의 정치·군사 상황보고서」가 그것이다.이 보고서는대일 전승기념일(V J­DAY)이후 북한지역 5백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일본인 관리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청산 장애로 웨드마이어 보고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한국에서는 과거 7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든 경제요소는 물론 기술계층까지를 지배했다.그래서 지금 부산역장을 지냈던 한국인이 철도청장이 되고,직업학교 출신이 큰 수력발전소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일반 관료직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승계되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사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한국 점령기간 내내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자손을 출산하기 보다는 일본인 임신에 산파 역할 만을 해왔다」고….이는 군정의 유산으로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요소로 작용했다. “영어 아는 보수적 인사 많이 썼다”/군정고문 2인의 전문·보고서 발굴/“「일서 완전 해방」 한국인 열망 외면”/미학자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포함한 보수인사들을 그토록 많이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이에대한 해명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찾아낸 W R 랭던의 「국무성장관에게 보내는 전문」(1945년 11월26일)에 잘 나타나 있다. 랭던은 당시 미 국무성이 한국에 파견한 하지장군의 정치고문.그가 작성한 전문 보고서는 「초기에 보수적 인사들을 많이 뽑아썼다」고 시인하면서 「생면부지의 대중 가운데 누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보고서는 「고위직을 보수인사에서 고른 까닭은 한국인들이 사치스러워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역시 NARA에서 입수한 미군정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1945년 10월10일)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랭던의 전문보다 앞선 이 보고서는 다만 당시의 한국적 상황을 「한국인들은 친일파를 일본인보다 더 증오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보수주의자들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했지만,이런 낙인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고 「많은보수주의자들의 존재는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대해 미 미들버리대 C L 호그 교수는 「한국분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남한의 초기 통치과정에서 일본인 관리들과 일제의 경찰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은 정복자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무감각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정부와 경찰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히 훈련된 요원들을 일본에만 보낸 워싱턴과 최고사령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지구촌 재변… 보복은 아니라 해도(박갑천 칼럼)

    기상예보가 엉뚱하게 틀리는 일이 있다.갑작스런 기상변화는 첨단장비도 무력하게 하는 모양이다.이럴때 하는 불경스런 농담­『하느님도 사람과 같이 노시나봐』.하느님만의 영역에 대해 인간들이 뭘안다고 개느니 눈오느니 나불대니까 울컥해진 심정으로 기상상태를 바꿔 골탕먹인다는 뜻이다. 비록 같은 차원은 아니라해도 절대자는 인간과 어떤 감응을 주고 받는다고 여기면서 살아오는 인간들이다.선악을 구별하여 화복을 내린다고 하는 생각부터가 그렇다.간절히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고도 생각한다.그 맥락에서 세평나쁜 사람이 떵떵거리는 걸 보면서는 절대적 존재를 원망하기도 한다.사마천이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사기;백이열전)고 탄식하는 것도 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적존재부터 부인하는 생각도 물론 있다.또 인정은 한다더라도 그의 영위가 인간의 가치기준과 일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말하자면 그 영위는 인간으로서 헤아릴수 없는 그만의 영역이라는 뜻이다.그러한 꼬투리는 가령 「열자」(천서편)에서도 볼 수 있다. 「열자」는 그 존재를 절대자·곡신 혹은 무같은 말로 표현한다.만물을 생성케 한 그 무는 영원히 그 작용을 하되 의식적으로 무엇을 생성한 것은 아니며 변화하도록 작용하는것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그러니 그 「절대자­무」가 인간의 가치기준에 따르는 작용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다만 그 영위를 말없이 영원히 계속하는 현상이 인간들에게 믿음을 준다(천불언이신;예기;악기편)고는 하겠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도 자신의 뜻에 반하는 하자가 났을 때는 영위의 영속화·정상화를 위한 반작용만은 일으키는 것 아닐까.한 번의 번개에 37억 5천만Kw의 전력을 낸다는게 영위의 편린이지만 인위의 갖가지 오만한 가해에 감기들고 피부병 생겨 신음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그래서의 반작용을 가해에 대한 의도적 보복이라 생각하는 건 인간의 양심에 따른 성찰일 뿐 영위의 정상궤도화를 위한 재채기며 긁적거림 그것 아닐 것인지.어쨌거나 가해의 불이익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구촌 예저기서 천재가 잇따른다.지진에 가뭄에 홍수에 폭설에.이 현상들이 인간의 가해와는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여기서 겸손만은 배워야 한다.하잘 것없는 지식에 취해 도전하고 훼손해온 인간들이 아닌가.
  • 미의회/대중제재 적극 지원/미·중「무역전쟁」… 당사자·주변국 반응

    ◎미 행동 성급… 양국 다 피해우려/중국/원만 해결을/대만·홍콩/반사이익 기대/베트남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는 4일 『6개월간 검토를 거쳐 제재대상 품목을 선정했다』고 말해 이번 대 중국 무역보복조치가 상당기간 동안 작업을 통해 이뤄진 것임을 시사했는데,그는 이번 제재조치가 발효되는 26일 이전에 중국협상대표들과 다시 만나 협상이 타결되길 기대.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중국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미국을 기만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행정부측의 대응을 적극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 닌텐도사도 『중국의 불법적인 지적재산권 침해 만연으로 인해 미국측이 제재조치 외엔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라면서 『결국 강력한 행동만이 중국의 지적재산권 도둑질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중국정부를 강력히 비난. 미국 영화산업연합의 잭 발렌티 회장도 『중국은 컴펙트 디스크를 한해에 수백만장씩 쏟아내는 공장을 폐쇄조치해야 함은 물론 지적재산권을 보호할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지지 의사를 표명했으나 『아무도무역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말해 파국을 원치 않음을 분명히 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의 무역보복조치에 대해 오만하고 성급한 행동이라는 반응들. 5일 북경시내 백화점에서 쇼핑중인 한 시민은 『우리의 법적 체계가 초보 단계이고 법을 집행할 공무원 수가 부족한데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결국 양국 모두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우려. 대외무역경제합작부의 한 관리는 미국이 중국측의 양보와 추가협상 제의를 기대하는데 대해 『미국에 대한 맞보복 조치를 선언한 우리 대변인의 발표 외에는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강경 입장을 고수. ○…무역의존도가 높은 대만은 2대 수출시장인 미국·중국간의 무역전쟁이 현실로 나타나면 대만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으로 우려,본토에 대한 추가투자자제를 촉구하는 한편 7일 긴급재계지도자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본토에 진출해 있는 2만5천개 대만기업(투자액 2백억달러 규모)은 대부분의 생산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고 그중절반 정도가 미국의 이번 보복관세 대상품목이어서 중국내 대만기업들은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생산품을 대만을 거쳐 수출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중국 수출품의 통과무역기지인 홍콩은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상품의 1.9%인 4천7백만달러어치가 차질을 빚으며 국내총생산(GDP)이 0.1%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면서 원만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촉구. ○…중국과 국경을 맞댄 7천2백만 인구의 베트남은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아시아국을 비롯한 외국의 해외투자 유망대상지가 중국으로부터 베트남으로 넘어오는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수출길이 막힐 중국상품이 베트남으로 몰려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등 희비가 교차. ◎미·중 상호 무역보복 내역 ▷대중 보복 대상품목 미국이 오는 26일부터 1백% 보복관세를 물리기로 한 중국산 수입품 35개 품목은 다음과 같다.(달러 표시는 93년10∼94년10월 수입가기준) ▲액자 등 플라스틱 소품(4억6천5백만 달러) ▲전화자동응답기및 휴대용전화기(1억8백만달러) ▲스포츠용품(7천8백만달러) ▲보석함등 목제품(7천만달러) ▲바퀴 크기가 55㎝이하인 소형자전거(6천5백만달러) ▲기타(캔디,구연산,고무장갑,가죽 트렁크및 대형 가방,축하 카드,실크장갑,손수건및 스카프,금과 플래티넘 보석류,주방용구,구리 소품,직조비용 비천공 카드,화장품 케이스,목제인형,야구 방망이,손목시계,사무용 철제가구와 부품,조명기구,서핑 보드,낚싯대 등) ▷대미 보복 7개항◁ 1,각종 오락기,녹음기,레이저디스크,담배,술,화장품,카메라 필름,자동전화교환기등에 정상관세 외에 1백% 특별관세를 부과한다. 2,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와 TV 프로그램,비디오,레이저 디스크의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 3,미 영상제품협회,국제 지재권연맹,상업용 소프트웨어연맹,미 소프트웨어출판협회와의 무역합작관계를 잠정 중단한다. 4,미국 영상제품협제조회사의 중국 지부 및 사무소설치에 관한 신청서 수리를 잠정중단한다. 5,미국의 화학·약품 제조상사가 중국의 「화학·약품행정보호조례」에 근거해제출한 신청서의 수리를 잠정중단한다. 6,대형승용차 합작생산 협상을 잠정 중단한다. 7,미국기업과 그 자회사의 중국내 투자회사설립에 대한 승인을 잠정중단한다.
  • “신세계 열자” 상업성 벗기 힘찬 몸짓(브로드웨이 “새바람”:1)

    ◎뮤지컬·미술·춤·패션… 창조의 수도/1백년 영화거부,인간성 회복 도전/문화·경제적 흡인력 바탕…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 미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심장을 자처하는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에 새시대를 맞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세계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시발로 하고 있는 브로드웨이는 1894년 첫 뮤지컬 아도니스의 대히트 이래 미술·건축·뮤지컬·영화·오페라등을 꽃피우며 「20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왔다.이제 1995년으로 문화의 꽃밭으로서 새세기의 원년을 맞은 브로드웨이.그 약동의 현장을 나윤도 뉴욕특파원의 취재로 약 20회에 걸쳐 싣는다. 『나를 살게 해주오 모든 불빛이 붉게 빛나는 브로드웨이에/오가는 사람 모두가 행복에 넘쳐 보이는 그곳에/사람들은 어리석은 꿈을 말하며 그 꿈의 실현을 기도하는/꿈이 헛됨을 알아도 결코 떠날수 없는 마을에//브로드웨이 불빛마다에 상심한 가슴들이 달려있고/불빛들은 수많은 슬픔을 이야기 하네/머리위의 불빛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무엇인가를 갚아야 할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하워드 존슨 「브로드웨이 불빛」) 브로드웨이의 새세기는 서설로 시작된다.세계인의 꿈과 기대,사랑과 동경,그리고 이별과 슬픔,절망과 좌절을 한데 받아온 브로드웨이 1백년을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로 승화시키는 대서사시의 첫장은 현란한 불빛보다도 고즈너기 내려앉아 제막을 기다리는 하얀 광목천 처럼 소담스런 백설축제로 와닿는다. ○정형의 구속 거부 새세기를 여는 오늘 브로드웨이의 첫아침은 지난 1백년의 역사를 거부한다.상업성을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쌓아온 브로드웨이의 영화(영화)는 또 하나의 바벨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뮤지컬 1백년,영화 1백년으로 응축돼온 브로드웨이에 『인간은 어디로 갔는가』의 외침이 메아리져 온다.그러나 새세기는 인간상실에서 벗어날 설렘에서 어느때 보다 힘찬 발걸음으로 다가온다.신성과 인간의 모독을 청산하고 신성과 인간의 경건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남쪽끝 배터리파크에서 북으로 북으로 뻗어올라가 맨해튼섬을 종단하여 브롱스까지 30여㎞ 길이로 이어져 있으며 지난 1백년동안 수많은 가지에 자양분을 공급해온 맨해튼의 척추이자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브로드웨이는 그 길의 생김새부터 정형의 구속을 거부하고 변형의 자유를 추구한다.남북으로 뻗은 애브뉴와 동서로 뻗은 스트리트로 바둑판 처럼 구획된 맨해튼 한복판을 굽이굽이 헤치며 남북으로 달리는 브로드웨이는 많은 애브뉴들과 만나면서 스퀘어(광장)라는 독특한 공간을 창출해왔다. 이는 결국 도전의 역사이고 그 숱한 도전 속에서도 브로드웨이는 새로운 만남에 대해 질시와 반목보다는 관용과 융화를 통해 거대한 용광로처럼 포용해 나감으로써 브로드웨이의 신화를 만들어왔다.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하는 배터리파크 북쪽의 1번지 「볼링 그린」공원을 출발한 브로드웨이는 왼쪽으로는 월드트레이드센터,오른쪽으로는 월스트리트를 거느리며 국제 금융의 중심가로 당당하게 시청앞 광장까지 북상한다. 여기서 브로드웨이는 미술의 거리이자 패션의 발상지인 소호로부터 첫번째 도전에 직면한다.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태리도 작은 도전이다.미로처럼 퍼져나간 구시가의 골목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도전을 모두 포용하여 브로드웨이는 4번가와 만나는 워싱턴 스퀘어에서 하나의 용광로를 이룬다. 히피들의 퍼포먼스 혹은 반전주의자들의 반전집회는 물론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한 스트리트 퍼포먼스의 본고장인 워싱턴 스퀘어는 백남준의 굿판을 주제로한 비디오 아트 예술도 훌륭하게 융화시킨다. 워싱턴 스퀘어를 떠나 또 북상하던 브로드웨이는 예술의 도시 그리니치빌리지를 지나며 14번가에서 파크애브뉴(4th.)와 만난다.이는 두번째 도전이며 거대한 유니언 스퀘어를 만들어낸다.이어서 23번가에서는 세번째 도전인 피프스(5th.)애브뉴와의 만남이 이뤄지며 여기서 만들어진 매디슨 스퀘어는 남부 브로드웨이 최대 오아시스인 메디슨 스퀘어 파크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인파 몰려 네번째 도전은 아메리카스 애브뉴(6th.)와 만나는 34번가에서 이뤄지며 헤럴드 스퀘어를 창출한다.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맨해튼 상업문화의 표본인 메이시백화점의 생스기빙(추수감사절) 퍼레이드의 종점이기도 하다. 다섯번째 도전은 브로드웨이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세븐스(7th.)애브뉴와 만나는 42번가의 타임스 스퀘어가 바로 그 현장이다.맨해튼의 40여개에 달하는 뮤지컬극장이 몰려있는 이곳은 브로드웨이 생명력의 원천으로 늘 수많은 인파로 밤낮없이 북적댄다. 여섯번째 도전은 에잇스(8th.)애브뉴와 만나는 59번가로 맨해튼 최대의 오아시스인 센트럴파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는 콜럼버스 동상이 높이 받들어진 콜럼버스서클이 자리잡고 있으며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일곱번째 도전은 콜럼버스 애브뉴(9th.)와 만나는 65번가에 위치한 링컨 스퀘어에서 이뤄진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뉴욕주립극장을 비롯,줄리어드음대 등으로 구성된 링컨센터는 타임스 스퀘어의 뮤지컬에 비길수 있는 미국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덟번째 도전은 암스테르담 애브뉴(10th.)와 만나는 72번가로 이탈리아 음악가 베르디의 동상이 서있어 베르디 스퀘어라고 불린다.부근에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바브라 스트라이센드,아놀드 슈와르제네거등 수많은 인기스타들이 몰려 살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베르디 스퀘어를 지난후에는 107번가에서 웨스트엔드애브뉴(11th.)와 만나면서 줄곧 함께 올라간다.모닝사이드 하이츠라는 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콜럼비아대학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브로드웨이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학구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어서 브로드웨이는 할렘의 중심가인 125번가와 만나 랩과 힙합등 흑인음악과 만난후 줄곧 북상하여 168가에서 세인트 니콜러스 애브뉴와 만나면서 미첼 스퀘어를 형성한후 폭도 좁아지고 조용한 거리로 변하여 브롱스로 연결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모여들게 하는 브로드웨이의 엄청난 흡인력은 오늘날 맨해튼을 인간의 창조력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의 수도로 만들었다.뮤지컬의 수도,오페라의 수도,출판의 수도,건축의 수도,미술의 수도,박물관의 수도,고전음악의 수도,춤의 수도, 재즈의 수도, 패션의 수도, 광고의 수도, 금융의 수도, 법률의 수도, 경영의 수도, 신문의 수도, 잡지의 수도가 되고 있으며 또 다이아몬드의 수도, 레스토랑의 수도이기도 하다.혼잡함의 수도,범죄의 수도,세금의 수도,오만의 수도,경멸의 수도등 악명도 따라다닌다. ○상업주의 중병 앓아 맨해튼이 이같은 수도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 신성모독의 도시로 신대륙의 타도시들과 차별화되면서부터였다.청교도의 도시 보스턴, 퀘이커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볼때 맨해튼섬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설한 뉴암스테르담은 신성보다도 이윤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신성모독의 수도였던 것이다. 1643년의 한 선교보고서에는 당시 뉴암스테르담의 5백명 거주자들의 언어가 18개에 달할 정도로 뉴암스테르담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들의 유일한 공통가치는 상업이윤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후 17세기말 네덜란드 세력이 밀려나고 영국의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맨해튼은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적의 수도로 변모했다.당시 부패한 영국 총독은 세계각국의 보화를 강탈해 오도록 해적활동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맨해튼은 조선의 수도,산업의 수도로 발전해왔으며 1830년 대에는 금융의 수도로,1860년 대에는 공업의 수도로,19세기말에는 문화의 수도로 변해왔다.2차대전 이후에는 유럽세의 약화로 맨해튼은 유엔의 수도가 되면서 명실공히 세계의 수도로 등장했다.그러나 극도의 상업주의를 바탕으로 구축된 맨해튼은 최근 십수년간은 세기말의 중증을 앓아왔다. 이제 새세기를 맞는 맨해튼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인간을 회복하는 인간의 수도로,절망의 도시가 아니라 소망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새해아침 브로드웨이는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 서설의 의미를 깨닫는다.이제 브로드웨이 구석구석을 찾아 심연에서 우러 나오고 있는 재탄생의 벅찬 고동과 몸짓을 생생하게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 세계질서의 중추역 꿈꾼다(일본 「21세기 야망」:1)

    ◎돈·기술·정보·인재… “일본은 있다”/하이테크산업에 전력투구… 초일류 유지/군사·정치 대국화로 줄달음/“슈퍼파워 재팬” 냉정한 직시로 「불행한 역사」 반복 막아야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19 95년을 맞아 과거청산을 「선언」하고 유엔상임이사국 진입을 적극화하는등 경제 뿐만아니라 정치·군사면에서도 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변화하는 일본과 그들의 21세기 위상을 조망해본다. 일본의 1995년을 여는 아침해는 그동안 움츠렀던 전후 반세기의 역사를 거부한다.경제적 「슈퍼 파워」 일본은 패전후 50년동안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이제는 과거 침략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며 국제정치무대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일본의 하루는 해가 후지산 너머로 진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빅토리아여왕의 영국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이다.일본의 첨단기업과 연구소의 하루를 마감하는 불이 꺼지기전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일본 공장과 연구소의 불이 켜진다.지구촌 곳곳의 일본공장에서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의 엔화는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패전의 참담한 잿더미속에서 경제신화를 창조한 일본.그러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일본이란 말처럼 우리에게 착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도 드물다.가까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깝지않은 나라.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보려해도 가슴속 감정이 앞서는 나라.그러나 미국·유럽과 함께 21세기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일본의 변화하는 21세기 위상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이 「세기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실현이라는 전략적 선택의 성공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전후 일본정치의 틀을 만든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국가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성장에 집중투자하는 국가정책을 채택했다.일본은 미국의 전략적 우산아래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1% 미만만을 방위비에 지출하며 경제분야 투자에 집중했다. 일본 경제성장의 결정적 도약의 계기는 잘 알려진대로 한국전쟁이었다.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당시 중국·소련등 공산주의세력의 팽창을 막는 방패국가로 일본의 경제건설을 적극 지원했다.미국은 이에앞서 일본군대의 광적인 팽창주의 야심과 그들을 지원했던 재벌의 유착관계가 아시아침략의 원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일본의 민주화란 이름아래 이들의 해체를 단행했다.재벌해체 이면에는 사실 일본경제체제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반공·보수주의로 급선회 일본을 아시아 반공국가 지원을 위한 군수기지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경제지원 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그러나 미국의 지원과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적절한 전략적 선택 때문만은 아니다.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정치적 안정과 관·민협동체제 아래 정말로 열심히 일한 일본의 근면한 손과 과학적 두뇌의 기술인맥이다.그들은 선진기술을적극 받아들이고 미국과 유럽이 지적오만에 빠져있을 때 밤을 밝히며 우수한 상품을 개발·생산해냈다. 일본은 또 미국이나 유럽이 「개인의 현재를 위한 소비」를 즐길 때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저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맺다.전후 일본은 산업시설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자본부족도 극심했다.그러나 국내 저축률이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지며 많은 돈을 저축했다.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었던 게이샤(일본기생)들조차도 미군에게서 받은 달러를 암시장이 아니라 은행으로 갖고 갔다고 한다.일본정부는 저축된 자금을 우선순위가 높은 산업발전에 집중 투자했다.지금은 자본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미래를 예비하는데 있어서 저축 뿐만이 아니라 인재를 아끼는데도 탁월했다.일본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과 전쟁의 패배라는 참담함속에서도 폐허가 된 국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을 전쟁의 죽음으로부터 보호했다.그 방패막이 역을 맡았던 것이 일본해군의 단기 장교제도다.일본은 「단기 현역해군주계과사관」이라는 제도로 우수한 인재들을 온존시켰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육군 쫄병으로 징병되어 전장에서 이름없는 병사로 죽어가서는 안된다.그것은 일본의 손실이다.인재를 남겨놓지않으면 일본은 멸망한다』.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단기 해군장교로 임관했던 3천여명의 인재들은 전후 관료·기업·경제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오늘의 일본을 만드는데 크게 공헌했다. 인재를 아끼는 것은 일본의 기업관에서도 잘나타난다.일본은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않는다.인간을 교육을 통해 부가가치가 더욱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가치창조자」로 보고 있다.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기업관을 배경으로 일본기업은 특히 역경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일본기업은 70년대 1·2차 석유위기를 맞자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로 바꾸고 하이테크화를 서둘러 경쟁력을 강화했다. 1985년 9월 22일.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 5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가 열렸다.그 결과는 엔고의 가속화를 알리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로 나타났다.플라자 합의 직전의 환율은 1달러당 2백40엔이었다.그러나 89년초에는 1달러에 1백20엔으로 엔의 가치가 두배나 올랐다.일본경제를 이끌어온 자동차·전자등 수출기업들은 한때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그러나 일본기업들은 경영의 합리화·하이테크화에 박차를 가하며 엔고를 극복 국제경쟁력을 더욱 높였다.그러한 노력은 지금 더욱 강도를 높이고 있다.플라자 합의는 전후 40여년간 세계경제에 군림해온 「막강한 미국」의 종언을 의미한다. 일본 첨단기업들은 80년대 기술의 스승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했다.컴퓨터계의 거인 IBM까지도 일본전기(NEC)·히타치·도시바·후지쓰등 일본 첨단기업들의 도전으로 경영위기를 맞았다.세계의 거리에는 도요타·닛산·혼다등 일본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다.소니가 미국의 혼이라고 하는 콜롬비아영화사를 구입하고 미쓰비시가 록펠러빌딩을 사들인 것을 비롯,일본기업들은 엔고를 활용,「세계의 부동산」을 사들였다.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의 광인」들도 세계 일류를지향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땀을 흘려왔다.일본은 더욱이 미국의 「정보 슈퍼하이웨이」 구상에 대응,정보분야 투자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통계지표(93년)로 더욱 분명해진다.무역흑자 1천4백억달러,해외순자산 7천억달러,1인당 국내총생산(GDP)3만3천7백64달러,외환보유고 9백90억달러,차관공여 2천4백10억달러,그 앞에는 모두 세계 최고라는 접두어가 붙는다.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경제의 거의 15%를 차지하고 있다.일본의 93년 GDP는 4조2천75억달러로 미국(6조2천8백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1950년 일본의 GNP는 미국의 20분의 1에 지나지않았었다.그러나 지금은 거의 3분의 2수준이며 2000년대는 미국과 비슷해질 전망이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그의 새로운 저서 「21세기 준비」에서 「일본은 기술에 의해 주도될 미래 변화에 가장 준비가 잘돼 있는 나라」라고 지적했다.미래학자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볼때 과거의 지중해 시대에서 현재의 대서양시대를 지나 앞으로는 태평양시대가될 것으로 전망하며 일본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국가권력문제의 권위자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과거 4반세기에 걸쳐 세계경제에서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본의 몫이 두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얼마전까지만해도 국제질서와 세계경제 게임룰을 만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세계 제일의 무역적자국과 채무국이 되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일본에서 빌려오지않으면 안되는 처지로 전락했다.미국만이 국제룰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으며 일본도 경제게임룰을 만드는 강대국이 됐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앞으로의 세계는 국경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냉전의 이데올로기 전쟁시대가 끝나고 국경없는 경제전쟁시대가 도래하며 일본이 쌓은 부의 축적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발족에 따른 자유무역의 확대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볼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는 예측한다.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일본이 경제대국으로만 안주하지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사실이다.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적 영향력도 행사하겠다는 것이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이다. 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는가.우리는 일본의 실체를 감정적 판단으로 덮는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일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기에 지나지 않는다.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며 강대국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바로 보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광복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뜻깊게 하는 참다운 역사인식일 것이다.
  • 올해는 유엔이 정한 「관용의 해」

    ◎인종·세대갈등 풀게 「평화의 문화」 전파/유네스코 난민교육 프로그램등 활용 『폭력,죽음,편협함은 세상을 더욱 어둡고 잔악하게 만들 뿐이다.우리가 열린 마음과 진보와 평화의 정신으로 그같은 문제들을 해결할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관용 이외에는 없다.우리들 각자의 관용은 세대간,성별간,개인간,집단간의 관계에 있어 오만함을 피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우리는 관용의 문화 정착을 위한 필수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관용은 평화의 새로운 이름임에 틀림없다』 유엔이 창설 50주년을 맞아 95년을 「관용의 해」(Year for Tolerance)로 정하고 새로운 반세기를 위한 인류의 행동지표로 내세운 「관용선언문」의 일부분이다. 유엔이 95년의 캐치프레이즈를 다소 추상적 개념인 관용으로 내세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즉 유엔 50주년의 기념이 단순한 한해 동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그 정신을 전인류가 영원히 간직해 평화건설에 한걸음 더 가까이 나갈수 있도록 하자는데 참뜻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용의 해 프로그램은 유네스코에 의해 추진되고 있으며 요란하고 화려한 행사위주가 아니라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평화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이른바 「평화의 문화」를 지구상에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실시될 관용의 해 행사계획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관용선언문 공표=지난 93년 4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됐던 법학자·철학자·종교가·사회학자등 전문가들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관용선언문 초안을 유엔총회에서 관용에 대한 국제적 원칙으로 선포하고 그 정신의 구현을 위해 회원국 모두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관용증진=유네스코의 기존 교육프로그램을 활용,개개인이 사상의 교환등 사고의 자유스러운 흐름을 촉진하고 다른 의견의 청취및 수용을 위한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한다. ▲통신을 통한 관용증진=정보및 개인의견의 자유스런 흐름을 촉진할 수 있는 통신체제의 구축을 통해 표현의 자유및 표현의 교통을 촉진시킨다. 구체적인 활동계획으로는 먼저 개인적,정부적,비정부적(NGO)관심의 제고를 위해 유엔과 사이먼 위젠탈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관용회의가 1월중 뉴욕에서 개최된다.또 관용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학술심포지엄이 레바논 빌로스에서 국제인간과학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며 한국의 경희대와 유네스코가 공동주관하는 국제학술세미나도 계획되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은 구 유고와 소말리아·캄보디아등에서 실시한 적이 있는 난민교육과 엘살바도르에서 내전 직후 실시됐던 분쟁후 평화구축 프로그램등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며 유네스코 산하 국제교육국 주관으로 관용 교과서를 편찬하고 비디오 테이프등이 제작되고 있다.
  • 르완다·보스니아 종족학살 최대비극/되돌아 본 지구촌 ’94

    ◎중동·남아공·아일랜드 평화 큰 걸음/아·구·미주 경제블록간 경쟁 격화 예고/부패스캔들·폐페스트 공포로 “홍역” 94년 역시 수많은 사건·사고가 지구촌에서 벌어졌다.제각기 별개의 사건들인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다.하지만 굳이 두드러진 한가지 추세를 끄집어낸다면 종족분쟁으로 대표되는 정치 측면에서의 분열과 블록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경제 측면에서의 통합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두드러졌던 한 해였다. 이같은 양극화 현상은 앙골라·라이베리아 내전 등의 휴전 돌입,남아공·북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었던 기대 이상의 평화 진전 및 반세기만에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찾은 미국과 북한,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를 낳은 중동 각국간의 관계 개선에 비해 눈에 띄게 심했던 보스니아와 르완다,체첸공화국 등에서 목격된 비극적 분쟁에서도 뚜렷한 대비를 나타냈다. ○명암 뚜렷이 갈려 국제정치면에서는 냉전구조 와해 후 단결목표를 잃은 각국이 아직 윤곽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새 국제질서를 어떻게든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확립하기 위해 끝없는 암중 대결을 계속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미국에 밀리기만 하던 러시아는 옛 영화를 되찾으려는 듯 코지레프 외무장관,옐친 대통령 등이 미국에 대해 러시아를 배제한 국제사회의 안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경고를 잇따라 내놓았다.또 그동안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했던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하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오랜 동맹관계에 있던 서유럽도 보스니아 내전 해결 방안을 놓고 미국과의 대립을 서슴지 않았다. ○미·러 대립 새국면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이념 대립에 따른 대결 구도는 사라졌다.그러나 종족대립과 종교갈등 등이 그 빈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하면서 아프리카와 옛 소련,동유럽 등지에서 과거와는 다른 국지적 분쟁이 94년 지구촌의 새 이슈로 떠올랐다.종족·종교갈등은 분쟁의 최대 원인으로 부각됐다. 소수 투치족에 대한 다수 후투족의 학살로 시작돼 5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 내전과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주민들에 대한무자비한 「종족 청소」가 끝없이 이어진 것은 94년 지구촌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됐다.분리독립을 선언한 체첸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전격 무력침공은 「도를 지나친」 인권탄압이란 비난을 불렀고 성탄절을 앞두고 벌어진 알제리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비행기 납치와 인질 살해극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해야 할 성탄절을 피로 물들게 했다.협상을 통한 통일성취로 부러움까지 샀던 예멘은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예멘측이 다시 독립을 시도,전쟁까지 치른 끝에 무력으로 독립 움직임을 잠재웠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또다시 쿠웨이트에 침공 위협을 가해 걸프전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도 했다. ○러 인종분규 이슈화 이같은 사건들은 국제정치 분야에서 확실한 중심 핵이 사라짐으로써 옛 체제속에서의 협조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구심점을 잃은 국제정치무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소리만 커졌고 구멍난 협조체제의 균열 사이를 종족·종교갈등과 이해대립이 비집고 나왔다.옛 소련의 자멸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란 뜻하지 않았던 지위를 얻은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를 굳히려 했지만 소련의 공백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기대 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하는데는 실패했다. 그 반면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경제 분야에서는 세계경제를 하나의 협조틀 속에 묶는다는 취지 아래 오랜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내년초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그러나 WTO체제가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불투명하다.협조체제 구축보다는 치열한 경쟁에 따른 이해 마찰의 소지가 아직도 더 크다.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올 한해 지구 전체에서 큰 유행을 이룬 통합의 물결은 경제주도권을 잡기 위한 통합경제세력간의 경쟁이 격화할 것을 예고해 주고 있다. ○WTO성공 불투명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지대(EEA)의 창설과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미주자유무역지대(AFTA)로 확대·발전시키려는 움직임,가장 활발한 경제성장을 계속한 아시아지역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출범 노력등 94년 내내 이어진 활발한 통합 물결은 정치분야와는 달리 경제분야에서는 어떤 틀을 형성해 간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같은 경쟁 심화는 한편 실질적인 경제 성과와는 관계없이 경제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해 국민들로 하여금 보수화의 길을 걷게 했다.그 대표적인 예가 40년만에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미국 중간선거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깨끗한 정치와 개혁을 내걸고 출범한 일본 연립정권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민·사회 연정에 정권을 내준 것이라든지 독일의 콜 총리가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경신하면서 재집권한 것과 프랑스 좌파정부의 몰락,동유럽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옛 공산정당들의 부활 추세 등 보수화의 물결은 올 한해 지구촌 곳곳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도 세도사건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지만 유럽,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도 부정·부패 스캔들은 94년 주요 뉴스로 연일 현지 언론들을 장식했다.지난 3월 화려한 출범식을 가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끝내 부패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임,단기총리로 막을 내렸다.프랑스에서는 끝없는 각료들의 부정·부패 스캔들로 현직 각료가 구속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영국에서 전해진 살을 파먹는 괴박테리아 소식과 인도에서 발생한 폐페스트 소식은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공포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지옥이 따로 없는 참극을 빚은 르완다는 곳곳에 널린 난민들의 시체와 불결한 위생 상태로 온갖 전염병의 발원지가 됐으며 그밖에도 아프리카와 동남아,러시아와 동구,또 중국에서도 페스트와 콜레라,디프테리아,홍역 등 갖가지 전염병의 발병 소식이 전해졌다. ○종파갈등 더욱 심화 한편 연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연말 일본에서 일어난 강진,유난히 잦았던 호우·가뭄 등 자연재해와 일본에서의 여객기 추락과 에스토니아호 침몰 등 많은 인명피해를 낸 대형사고 앞에서 인류는 엄청난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기만 한 존재를 다시 실감해야만 했다.「인간복제」실험은 그 결과가 가져올 가공할 사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논란을 빚었으나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의 메디컬센터연구팀이 결국 이 연구를 중단해 인간의 오만에 대한 자성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이 총리,아랍 첫방문/오만 국왕과 정상회담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사상처음으로 걸프지역 아랍국인 오만을 26일 급거 방문,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과 회담을 갖고 중동 평화정착 방안을 논의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방송과 오만의 관영 ONA통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 라디오방송은 라빈 총리가 고위보좌관들과 함께 하루 일정으로 오만을 방문,카부스 빈 국왕과 회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총리가 걸프지역의 아랍국을 방문한 것은 1948년 유태국가 창설이후 처음이다. 이스라엘과 오만 사이에는 아직 외교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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