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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계명(鷄鳴)/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탉 한 마리, 마당을 호령합니다. 그 기세가 당당하다 못해 오만불손합니다. 늘어뜨린 붉은 벼슬에, 윤나는 갈기털을 곤두세우면 엉덩이 펑퍼짐한 암탉을 연방 곁눈질하던 이웃집 수탉들, 풀이 죽어 겨뤄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애가 타 죽을 요량으로 덤벼도 보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가히 마당의 제왕답습니다. 그가 거느린 암탉만도 예닐곱 마리나 됩니다. 겉보리 모이를 줄 때면 맨 앞에 서서 찍어둔 암탉만 골라 먹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 판에 어쭙잖은 강아지라도 끼어들었다가는 콧잔등에 생채기만 낸 채 폼 구기기 십상이지요. 그런 수탉을 아무도 괄시하지 못합니다. 암탉이 달걀 쑥쑥 낳도록 용쓰는 것도, 이웃집 닭들이 짚검불 헤쳐 마당을 함부로 어지르지 못하게 하는 일도 다 이 놈 몫이니까요. 그러나 이 놈의 진짜 몫은 따로 있습니다. 신새벽, 어깻죽지에 잔뜩 힘을 실어 홰를 치면서 토해내는 우렁찬 계명(鷄鳴)을 듣노라면 날 새는 줄 모르는 떠돌이 귀신들, 혼쭐 빠지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닭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그 수탉처럼 모두가 어깨에 힘 잔뜩 넣고, 모가지 뻣뻣하게 세워 세상을 활보했으면 좋겠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청진기/박만호

    (무대)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301호와 401호 (등장인물) 남:소리감별사 여:빨간 구두의 여인 의뢰인1:50대 초반 의뢰인2:30대 중반 의뢰인3:30대 초반 할머니:꿈속의 환영 딸:중학생 (소리에 대해) 소리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연기한다. 극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극적 요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소리를 측정하는 청진기는 ‘호른’의 유려한 곡선 음관을 부착한 특별한 도구이다. ●제1장 어둠 속에서 “영호야- 영호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룸 아파트 아래 위층인 301호와 401호가 서서히 드러난다. 스탠드만 침침하게 켜져 있는 아래층 301호는 실내가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 위층 401호는 아직 어둠 속에 싸여있다. “우웅 우웅-”하는 진동음이 들리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귀마개를 벗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린다. 이어 아파트의 여러 생활소음들이 와글와글 들려온다. 다시 귀마개를 하고 눕는 남자. 이때 다급한 뾰족구두 소리. 쫓기듯 달려와 위층 401호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구두를 벗고 룸으로 들어서는 여자.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진다. 아래층 침대에 누웠던 남자가 슬며시 몸을 일으킨다. 플래시를 켜서 천장을 비춰본다. 위층 여인의 숨소리가 평정을 되찾는다.“끼리리리-”하며 냉장고 가동 소음이 시작된다. 냉장고를 비추는 플래시. 새벽 4시를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와 함께 암전된다.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의 실내가 드러난다. 침대와 평범한 실내가구들. 구석 쓰레기통에는 호른 나팔과 야구방망이가 처박혀 있다. 탁자에서 남자에게 소리 감별을 받고 있는 의뢰인들. 호른을 닮은 청진기로 손목시계들을 검진하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리:(손목시계) “째각 째각 째각 째각-” 남자:이게 불량입니다. 태엽이 긁히는 소리가 나는군요. 의뢰인1:계측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남자:0.5데시벨의 소음이군요. 계측기는 보통 플러스 마이너스 1데시벨의 오차를 가지고 있지요. 다음 분. 의뢰인2:(믹서기 3개를 탁자에 놓고) 동방가전에서 출시한 신제품입니다. 모델별 소음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주는 청각적 영향 말이죠.(뚜껑을 살피는 남자에게) 저... 뚜껑이 아니라 작동시의 소음만 분석해 주시면. 남자:모든 소리를 다 분석해야죠. 의뢰인2:우리가 필요한 건. 남자:다시 말하지만, 소리는 복합적입니다. 의뢰인1:감별사님을 믿고 따르세요. 남자:G-1800, Q-300, A-7, 이 세가지 모델의 소리 중에서 A-7이 가장 우수합니다. 의뢰인2:그럴리가요.A-7이 가장 구형인데. 남자:신제품이 G-1800이죠? 이건 실패작입니다.110데시벨의 고주파 파동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고객만족도가 어찌 될까요? 다음 분이오. 의뢰인3: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포도주 2병을 내밀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입니다. 소리:(뾰족구두)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포도주 병을 살펴보다가, 뾰족구두 소리에 눈길을 돌리는 남자. 초인종 소리. 남자가 청진기를 벗고 문을 연다. 복숭아 접시를 들고 들어오는 이층 여자) 여자:안녕하세요? 저는…. 남자:위층 401호 분이시죠? 여자:어머나, 어떻게 아셨죠? 남자:(여인의 빨간색 뾰족구두를 보며) 내 추측이 맞았군요. 빨간색일 거라 생각했죠. 어젯밤에 구두 소리를 들었어요. 여자:어머나, 새벽 4시가 넘어 들어왔는데. 남자:새벽엔 더 잘 들리죠. 여자:한데 색깔까지 어떻게 아셨나요? 남자:검은색 구두였다면 소리가 더 낮게 깔리거든요. 낡은 가죽이라 세월의 나이가 느껴지던데요.15년 된 캥거루 가죽입니다! 여자:호호호- 점쟁이신가봐! 어제 이사왔어요. 인사도 드릴 겸 복숭아 좀 드시라고요.(남자에게 복숭아 접시를 건네며) 어머나, 손님들이 많이 계시군요. 남자:제 의뢰인들입니다. 여자:무얼 의뢰 받으시는데요? 남자:소리요. 의뢰인1:제품의 소리를 감별해 주시는 거죠. 의뢰인2:그 느낌까지요. 의뢰인3:감별사님은 기계보다 정확하시죠. 여자:우리 아파트에 대단한 명인이 살고 계시는군요. 저…이것도 감별이 되나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가 잘 안 들리거든요. 남자:(휴대전화를 검진하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가 작게 설정된 거 외엔.(진동음을 조정하고) 들어보세요. 소리:(휴대전화 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남자:커졌죠?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주며) 이웃사촌이니 감별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여자:아유, 고마워요. 남자:소리를 놓치면 후회가 크답니다. 여자:맞아요. 일년 전에 정말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이 있어요. 샤워 중이었거든요. 제 인생이 걸린 중요한 기회였는데….30분 늦게 연락하는 바람에 바이 바이! 근데 감별사님은 소리를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남자:기억되어 있는 소리들 때문에 분석이 되는 겁니다. 여자:이 세상 소리를 전부 기억하고 계세요? 남자:한 번 들으면. 의뢰인2:스리쿠션 때린 당구공처럼요? 의뢰인3:구구 팔십일 구구단처럼요? 여자: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남자:망각이 안돼요. 모두:오!…. (다시 포도주 병을 검진하는 남자. 가만히 주시하는 사람들) 소리:(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아르마냑 17년산이군요. 의뢰인3:네! 맞습니다. 남자:색깔도 소리를 냅니다. 적포도주는 백포도주보다 0.3데시벨 정도 고음을 지닙니다. 잔에 따를 때, 잔을 부딪칠 때, 적포도주는 유혹의 소리를 발산하지요. 좋은 술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우와!…. 의뢰인2:선생님. 그 차이를 일반인도 인식할 수 있나요? 남자:그들도 분명 듣습니다. 말로는 표현하진 않지만, 마켓에서 돈으로 표현하죠. 의뢰인들:(박수치며)니즈는 욕망이다! 여자:전 들을 수 없거든요! 색깔이 소리를 낸다고요? 그런 황당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죠? 왜들 무조건 믿는다고만 하시죠? 남자:이걸 쓰고 한번 들어보세요. (여자에게 청진기를 건네는 남자) 여자:이건 호른의 음관이잖아요! 남자:제가 특별히 제작한 청진기입니다. 여자:(쓰레기통에 처박힌 호른의 나팔부분을 발견하고) 저기서 떼어내 만드셨나요? 남자:네. 난 새로운 악기가 필요하거든요. 여자:이 청진기가 악기라고요? 남자:그럼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악기죠. 여자:혼자만 듣는 게 어떻게 악기가 되죠? (청진기를 던지며) 이건 장난감에 불과해요. 남자:진정하세요. 이 세상은 소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소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제발…. 이리 오셔서 들어보세요. 호른 소리를 음미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호른 주자가 될 수 있듯이, 이 청진기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거죠.(청진기를 여자에게 씌워주고 백포도주를 흔든다.) 들리나요? 눈을 감고 들어 보세요. 소리:(백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여자:들려요. 남자:이번엔 적포도주입니다. 소리:(적포도주) “출렁 출렁 출렁 출렁-” 남자:안단테 칸타빌레로 사라지는 아련한 고음의 잔상이 왼쪽 귓전을 스치죠? 여자:(청진기를 벗으며) 들려요…. 하지만 차이는 모르겠어요. 의뢰인1:허허허- 소리 감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의뢰인2:그래서 우린 의뢰를 하러 오고요. 의뢰인3:기계보다 정확하시니까요. 여자:흥, 정말로 듣지 못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남자:듣지 못하는 소리라…. 있죠. 잠들었을 때. 여자:밤에도 안 자고 전부 듣는다면서요. 새벽 4시에 제 구두소리도 듣고. 남자:낮에 자나보죠? 여자:농담하세요? 어째 좋은 이웃이 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휭하니 나가버리는 여자. 의뢰인들도 일어선다.) 의뢰인1:허허허. 성질도 급하시네. 오늘도 좋은 감별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2,3:최상의 분석이었어요.(박수치며) 엑설런트! (모두 나가면 하품하는 남자. 위층 402호로 들어서는 여자. 소리를 읊조린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남자, 위층의 소리를 의식하며 침대 밑에서 박스 하나를 꺼낸다. 박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자. 스케이트 신발의 줄을 풀렀다가 다시 매더니 하품하며 드러눕는다. 조명 분위기가 바뀐다.) (탁자 위에서 남자의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코를 고는 남자. 이어 부르는 소리) 소리:“우웅 우웅 우웅- 영호야. 영호야-” 남자:(몸을 뒤채며) 순이니…. 인라인 스케이트 사놨다. 어여 신어봐….(부스스 얼굴을 들고) 엥! 내가 자고 있었나. 순이니? 순이 왔니? 날 저물었는데 얘는 뭐하고 안 들어오나. 어휴, 말을 말아야지. 세상 좋아졌다. 맨땅에서 스케이트를 다 타고.(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해보며) 돈 쓰게 만드는 기술도 가지가지여. 앉아서 이런 거만 연구하는 놈들 천지니. 어뗘. 순이야. 아빠도 멋져 보이냐? 아빠도 소싯적에 얼음지치기 한가닥 했다. 외날 썰매 모르지? 우선 중심을 잘 잡고…. 긴 꼬챙이 하나를 다리 사이로 넣고 얼음을 팍팍 찍으면서 달리는 거여. 대가미 방죽에선 아빠가 일등했다. 니 이렇게 차려입고 씽씽 달리면 동네 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 순이야, 얼른 들어온나. 인제 호른을 필요로 하는 나이트클럽은 없다. 그러니 아빠는 내일이면 배 타러 가야헌다. 한동안 못 보니까 얼른 와. (시계를 흘낏 보다) 아니 근데 이누무 지지배가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하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 거여. 내 이년을….(휴대전화 메시지를 발견하고) 얼래, 이게 뭐여.“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려 근데.“아빠. 로데오광장 빨리….” 20분전에 온 거네. 로데오 광장? 하하- 요것이 눈치 하난 빨라요. 거기서 스케이트 타고 싶다 이거지? 다른 애들처럼. 오냐. 아빠가 가마. 근데 얘가 스케이트 사논 걸 어떻게 알았지? 돈 없다고 등짝을 후려패서 학교 보내 놨더니…. 하여튼 귀신이여 귀신.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가는 남자. 그 열린 문으로 여자가 은밀하게 들어와, 가구들 뒤에 무엇인가를 붙여 놓는다. 감별사의 청진기를 보고 자기 심장에 대본다.) 소리:(심장박동) “쿵 쿵 쿵 쿵-” (남자가 돌아오는 기척. 얼른 복숭아 가져왔던 접시를 드는 여자. 남자가 힘없이 들어선다.) 여자:어머! 오셨네요. 문이 열려 있기에 접시를 가져가려고요. 아깐 제가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어디 산책 다녀오세요? 남자:근처 로데오 광장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즐거워지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지요. 웬 처녀가 글쎄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자:어머나, 그래서요. 남자:후후후. 당황스러워 혼났습니다. 여자:그 아가씨 아빠가 감별사님과 비슷한가 보죠. 남자:하긴…. 그 아가씨도 우리 딸애와 비슷하긴 했어요. 여자:따님이 있으세요? 남자:……. 여자:참, 그거 잘 타세요? 스케이트요. 남자:내 스케이트가 아닙니다. 여자:누구한테 선물하시려나 보죠? 남자:……. 여자:호호- 말씀하기 싫으신가 봐요.(문으로 가며) 그럼 또 뵙겠습니다. 남자:일년 전, 휴대전화 소리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죠? 소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여자:감별사님. 좋은 이웃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여자 나가면, 남자는 박스를 옆에 낀 채 홀로 서성인다. 조명 분위기 다시 바뀐다.) 남자:어휴! 몇 분 차이로 이게 뭐여. 속 터져. 쬐금만 더 기다리지 않고선.(박스를 놓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며) 이누무 기지배는 대체 어딜 간 거여. 소리:“삐- 삐-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남자:아! 눈부시다. 눈부셔. 왜 이리 눈이 부시지? 불을 끌 수도 없고. 순이야, 어여 연락 좀 해라. 아빠 이러다가 죽는다잉. 일주일째 이러고 잠 한숨 못 잤다.(침대에 드러누우며) 이러다 아빠 죽겠다. 순이야. 순이야…. 소리:(진동소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남자:(벌떡 일어나 휴대전화 확인하며) 아니잖아. 어디지? 아래층 201호여! 죽겠네.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뛰어가는 남자.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남자(E):여보세요,201호 아저씨! 전화 왔어요- 얼른 휴대전화 좀 받아 봐요. 201호(E):돌겠네! 안 받으려던 건데. 알았다니까- (휴대전화 진동소리 겨우 멈춘다. 다시 들어오는 남자) 남자:싸가지 없는 놈. 끝까지 안 받네. 매너들 없어. 소리:(TV 끝나는 소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치이-” 남자:302호 미친놈. 오늘도 저 모양이야. 꺼라. 제발 좀 꺼라. 바로 옆방에서 이러면 어떡하냐.(앞쪽 베란다로 나와서) 302호- 텔레비전 좀 끄쇼. 시끄러워 살 수가 있나. 이웃들(E):조용히 좀 해요. 남자:302호, 조용히 하라잖아요∼ 이웃들(E):301호, 당신이 조용히 해∼ 당신 때문에 못자. 아저씨 날마다 이게 뭐예요. 남자:이런 우라질. 귓구멍이 거꾸로 뚫렸나. 나는 니들 때문에 못자- 아! 눈이 터질 것 같네. 그래도 안 끈다 이거지. 니기미! 대한사람 살아야 길이 보전도 된다. (야구방망이 들고 나가는 남자.302호 문 부서지는 소리. 비명소리. 순찰차 사이렌 소리) (위층 401호 여자는 나지막이 뭔가를 읊조린다.) 여자:“쓱쓱 만져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궁글궁글 쓸어 주면…뭐든지 다 낫는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 ●제2장 무대 밝아지면, 아래층 301호 침대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남자.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말씨가 점차로 사투리 운율로 변해간다. 남자:백두산이 다 닳기 전에, 대한사람 살고 보자는데 웬 말들이 많은 겨.(수건을 풀며) 돌아와 보니 문은 닫혀있고 불은 꺼져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거여. 그냥 빈집이여. 빈집.(귀마개를 벗으며) 기껏해야 한 삼일이면 됐지. 왜 삼일이 열흘 되고 달포 되고 한달 되느냔 말이여. 왜 삼일이 석달 되고 석삼년 되느냔 말이지. 이상타. 참말 이상한 일이다. 어무이는 금가락지 끼워주면 훨훨 날아간다 허지, 딸년은 스케이트 있어야 씽씽 달려간다 하지. 아! 나도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고 부산으로 가서 외항선 탔다 했지? 석달 열흘만 꾹 참고 다녀오자.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허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거여, 시방 이것이. 태평양 넘어 동지나해 건너 알류산 열도 거쳐 부산항에 도착, 광복동 시장에서 딸년 인라인스케이트하고 어무이 서돈짜리 금가락지 서둘러 해가지고 와보이, 종적이 묘연한 것이여. 여편네 줄려고 야들야들한 속곳 둘둘 말아 끼고 왔는디, 입을 사람이 없는 거여. 세상 참 얄궂네. 인생 허망타. 어무이도 없지, 딸자식도 없지. 여편네도 없지∼ 소리:(진동음)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얼른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남자.“새로운 메시지가 없습니다.”라는 안내음. 실망하는 남자. 이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남자가 문을 여니 의뢰인들이 의뢰품들을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들:좋은 아침입니다. 의뢰인1:(전자레인지를 탁자에 놓고) 부품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남자:(청진기로 검진하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흠…흠… 소리:(전자레인지) “위이이잉-” 남자 : 모터가 낡았으니 교체하세요. 다음. 의뢰인2:(책들을 놓으며) 신나라출판사의 기획 시리즈 견본품인데요. 남자:(책장 넘기며) 책도 소리를 가집니다. 종이 지질에 따라서 소리는 천차만별입니다. 소리:(종이) “펄렁 펄렁… 팔랑 팔랑… 풀렁 풀렁…” 남자:이건 모조지, 이건 아트지, 이건 하드보드에 코팅까지. 아트지는 반짝 반짝! 모조지는 서글 서글! 3데시벨의 편차가 있네요.(표지를 보며) “세계의 미스터리”라…. 이 제목에는 모조지보단 아트지가 어울립니다. 미스터리는 반짝반짝해야죠. (여자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몰래 엿본다.) 의뢰인3:(돌멩이 2개를 놓으며) 심산인테리어에서 의뢰한 겁니다. 남자:(돌을 살피며) 흥미 있는 소재이군요. 돌의 소리는 가장 심원한 소리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질이니까요. 돌의 소리는 음악의 근본입니다. 돌로 만든 악기인 편경의 소리는 국악의 표준 음정이죠.(돌을 부딪쳐 본다.) 오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소리입니다. 소리:(돌) “딱 딱 딱 딱-” 의뢰인들:정말 탁견이십니다. 남자:저 전자레인지는 전에도 감별해 드린 건데요. 저를 시험하시나요? 의뢰인1:예? 오해십니다. 남자:칠일 전에도 해드렸고, 한 달 전에도 했습니다. 의뢰인1:청진기가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기계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죠. 청진기는 거짓을 모릅니다. 여자:(앞으로 나서며) 감별사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시나요? 의뢰인1: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인가 봅니다. 확인해 보죠. 여자:(모두 자신을 쳐다보자) 어머나! 안녕하세요. 호호호- 문이 열려있지 뭐예요. 의뢰인1:소리 감별은 회사의 일급 기밀입니다. 여자:한심한 출고담당 재교육도 중요하죠. 의뢰인1:(전자레인지 들고 나가며) 성질도 급하시고 변덕도 심하시군요. 흠, 흠. 여자:오늘의 분석은 어땠나요? 의뢰인2: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의뢰인2,3도 나간다. 남자가 문을 잠그더니, 얼른 여자를 데리고 구석으로 간다.) 남자:혹시 이 아파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못하셨나요? 여자:글쎄요? 남자:이사 온 뒤로 다른 주민들 보신 적 있나요? 여자:네… 봤죠. 남자:이상하지 않던가요? 여자:네. 남자:언제부터인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잠만 자고 있어요. 모든 활동이 중지된 겁니다.201호는 휴대전화를 안 받는 버릇이 있고,302호는 지가 무슨 애국시민이라고 날마다 애국가를 시청하더니 모두 조용해 진 겁니다. 여자:에이, 고급 아파트는 원래 조용하잖아요. 남자:(눈치를 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나는 저 의뢰인들을 믿지 않습니다. 여자:(놀라며)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남자:뭔가 수상쩍은 음모가 있어요. 의뢰 물품이 변하지 않고 있어요. 여자:날마다 똑같아요? 남자:일주일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요. 예전엔 한달 주기였죠.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나는 새로운 소리를 원합니다. 여자:좋아하는 음악은 자꾸 듣기도 하잖아요. 가령 호른 연주는 어때요? 남자: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 2악장 로만자… 호른은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날마다 다릅니다.(청진기 곡선음관을 어루만지며) 호른을 통해서 들어야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하지만 누가 날마다 같은 구름을 보고 싶겠소. 누가 날마다 같은 바람을 맞고 싶겠소. 출고담당 직원의 미스라고 둘러대지만 실수가 아닙니다. 치밀하게 반복되는 순환시스템이죠.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이 세상이 죽어가는 것처럼. 저들이 소리를 뺐어가는 겁니다. 아…. 이러다가는 당신의 잠꼬대마저 뺐어갈지도 몰라요. 여자:어젯밤에 제가 잠꼬대했나요? 남자:(흉내 낸다.) “쓱쓱 만져 주면… 궁글궁글 쓸어 주면…” 여자:어머, 어머! 저를 너무 속속들이 아시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가야겠어요. 남자:어젯밤에 당신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 여자:네? 남자:잠꼬대 소린 정말 너무 오랜만에 들어 봤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당신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가버린다면 당신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여기 계세요. 여긴 안전하니까. 여자:(남자를 경계하며)감별사님은 소리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사실은 소리가 무서워요. 여자:왜요? 남자:너무 진실하니까. (이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온갖 소리들. 서로 뒤섞여 아비규환의 아우성처럼 난무한다.) 소리:“찌르르르… 출렁출렁… 저벅저벅… 쿵쾅쿵쾅… 우웅우웅… 영호야∼영호야∼” 여자:이게 뭐야?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남자:(귀를 막으며) 아!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씨끄러. 듣기 싫어. 아아악- (남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나가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야구방망이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으며 발광하다가 쓰러진다. 여자는 놀라서 남자를 부둥켜안는다. 소리들이 그친다.) 여자:여보… 여보! (병원 가운을 입은 의뢰인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침대에 뉘고 벨트로 사지를 결박한다. 남자를 청진기로 진단하는 의뢰인1) 여자:아… 어떻게 된 거죠. 무서워요. 무슨 소리였죠? 그이는 괜찮은가요? 의뢰인2:안심하세요. 본 특병동의 소리치료 시스템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의뢰인1:상태가 좋지 않아.2단계 프로그램도 실패야. 발작 증세가 멎지를 않네.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내일 수술 일정 잡도록 해. 의뢰인3:근데 보호자께서 동의서에 아직 서명을…. 의뢰인1:그깟 동의서 하나를 여태 못 받아? (여자에게) 똑바로 들으세요. 내일도 서명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겁니다.(의뢰인2에게) 자네 수련의가 왜 그 모양이야. 그럴 거면 딴 병원으로 가. 내가 이젠 환자한테 훈계까지 받아야 돼? 내가 저를 시험한다고? 미친놈이 입만 살아서. 한데… 어떻게 알았지? 의뢰인2:환자는 지각능력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주의력 증가 기제가 너무 왕성해서 그렇습니다. 환자의 소리 분석은 정상입니다. 의뢰인1:믹서기 회사에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했잖아. 의뢰인2:그건 생산부장의 말이고요. 오늘 아침에 마케팅팀장과 통화했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반기더군요.2차 분석도 의뢰하겠답니다. 일시적인 “해리성 황홀경”입니다. 의뢰인1:속단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의 진단은 정서적인 판단이 앞서고 있어. 의뢰인2:“뇌손상에 의한 퇴행성 기억장애”란 과장님의 진단은 측두엽의 손상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거 아닙니까? (쓰레기통에서 부서진 호른 나팔을 꺼내서 안고 있던 여자가 나선다.) 여자:선생님, 우리 그이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1:미치겠네 정말. 아까 발작하는 거 못 봤어요? 가족도 몰라보잖아요. 여자:예전에 연주하던 곡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냈단 말이에요. 의뢰인1:단편적인 기억 정도는 모든 환자들이 다 가지고 있어요.(부적뭉치를 던지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맘대로 행동하면 퇴거조치시킬 겁니다. 여자:이 부적에 어떤 힘이 있다고 믿으세요? 미신에 불과하다면서요? 의뢰인1:그게 아니고…. 의사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 아닙니까. 협조요. 협조! 여자:협조했잖아요. 가구며 소지품들 가져다가 집안처럼 꾸며놓고… 순이더러 로데오 광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별 이상도 없는 이가 왜 딸을 몰라보나요? 왜 아내도 몰라보나요? 그저 지쳐서 그런 걸 거예요. 집에 가서 잘 요양하면… 고요한 호숫가를 찾아서 호른도 불면서 푹 쉬면 나아질 거예요. 의뢰인1:흥, 호른 분다고 치료가 되면 병원이 뭐하러 있어요! 도대체 의사를 뭘로 보는 거요? 기물을 파손하고 상해를 입힌 환자는 완치되기 전엔 퇴원할 수 없습니다. 내일까지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의뢰인3에게) 진정제 5밀리그램…. 아니 7밀리그램 준비하고, 면회는 금지시켜. (의뢰인1,3 나간다. 흐느끼며 부적을 줍는 여자. 창문으로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의뢰인1이 보인다.) 여자:흑흑흑…. 날더러 어떡하라고요. 기다려라. 기다려라…. 벌써 세 달이 됐어요. 의뢰인2:왜 그토록 소리에 집착하는지 그 압제의 요인을 찾아야 하는데…. 기억 과잉이 문제입니다. 뇌의 측두엽에 너무 많은 소리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서, 컴퓨터가 다운되듯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치의께선 손상된 부위를 제거하지 않으면 발작이 계속된다고 보십니다. 삭제키를 눌러야 리소스 부족에서 해방되니까요. 여자:그러면 과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면서요. 의뢰인2:대신 새 기억은 지킬 수 있습니다. 여자:그토록 찾던 딸이 눈앞에 나타나도 못 알아보는데, 앞으론 영원히 그렇게 되겠죠? 이 빨간 구두요… 15년 된 캥거루가죽 맞아요. 저이가 나이트밴드 아르바이트 뛰어서 첫 월급으로 사준 우리 결혼 선물이죠. 이거 신고 난생 처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어요. 이 호른은 방직공장 월급 일년을 꼬박 모아서 제가 사준 거예요.(호른을 쓰다듬는 여자. 창가에서 귀 기울이는 의뢰인1) 서귀포 밤바다는 그날 따라 왜 그렇게 고요했는지, 저이가 부는 호른 소리가 수평선 끝까지 울려 퍼졌어요.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3번 2악장 알레그로. 그게 저이가 아는 유일한 연주곡이죠. 순이를 낳게 되어서 사범대학을 그만뒀으니… 이 모든 걸 다 잊어버리겠죠? 의뢰인2:아마 그렇게 되겠죠. 여자:그렇게 되면, 우린 이 세상 안 산 거나 같네요. 시골 고등학교 밴드부 남학생이 부는 호른 소리에 바람나 쫓아다니다가…. 외아들 사범학교 나와 선상님이 평생소원이던 홀어머니 가슴에 못질하고, 남자 앞길 망쳤다고 원망들은 촌년이… 저승 가서 어머니까지 못 알아보는 산송장 만들어 놨다는 소린 죽어두 들을 순 없네유. 차라리 청진기 쓰고 세상의 소리에 미쳐서 사는 게 나아요. 저인 소리를 사랑했으니까. 저이 어머니도 소리를 벗삼아 사셨으니 하늘나라에선 서로 알아보겠지요. 의뢰인2:사모님…. 여자:선생님도 저이가 미쳤다고 보세요? 의뢰인2:의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하나 있지요. 알 수 없습니다…. (의뢰인3이 주사기 가지고 들어온다. 의뢰인2가 여자를 부축해 나간다. 의뢰인3이 주사할 준비를 하는데, 창문에서 지켜보던 의뢰인1이 들어와서 부서진 호른을 들어본다.) 의뢰인1:아까 몇 밀리그램이라 했지? (쳐다보는 의뢰인3) 3밀리그램만 투여해. 의뢰인3:3밀리요? 네…. (주사기 용량을 조절해서 남자의 팔에 주사 놓고 나가는 의뢰인3) 의뢰인1:길영호씨. 지금 혼자서 호숫가를 거닐고 있소? (입으로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3번을 불며 빠져든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빠밤 빠바바밤 바밤바 빠바밤- (이층 401호로 힘없이 들어서는 여자. 부적 뭉치를 탁자에 놓다가 세어본다.) 여자:하나, 둘, 셋, 넷…. 분명 다섯장을 붙였는데. 한 장이 살아있어! (암전) (무대 밝아지면, 병실 분위기가 나는 아래층 301호. 환자복이 입혀진 남자가 침대 벨트에 묶여있고, 의뢰인2를 따라 여자와 딸이 들어선다.) 의뢰인2:휴, 제가 미친 거 같네요. 주치의가 회진오시기 전에 끝내셔야 합니다. 여자:고맙습니다. 순이야, 어서. 딸:아빠! 제가 왔어요. 어째 잠만 자는 거야. 흑흑흑…. 아빠 일어나세요. 눈떠- 아빠- 여자:여보! 순이가 돌아왔어요. 이제 일어나세요. 다 잘되었어요. 저도 직장 잡아 돈벌이해요. 지난 일은 잊고, 정신 좀 차리세요. (여자와 딸이 벨트를 풀고, 사력을 다해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리 흔들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무너져 태아처럼 웅크리는 남자) 딸:흑흑흑…. 엄만 대체 무얼 한 거야! 아빠가 저리 되도록. 여자:엄만 안 해본 거 없다. 귀신 쫓는다는 복숭아도 들이고, 부적도 붙여보고, 약손으로 아픈 데 쓸어주시던 할머니 소리도 해보고….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이년아, 니 아빠 이리된 것 다 너 때문이다. 나가버릴 거면 그냥 나가지 메시지는 왜 남겨! 딸:난 그냥…. 아빠가 기다릴 것 같아서…. 여자:그걸 아는 년이 세 달이나 안 들어와! 니 메시지 못 들었다고, 또 올지도 모르니까 지켜봐야 한다고, 휴대전화에서 눈도 못 떼고 일주일을 뜬눈으로 지새우셨다. 그러다 결국 쓰러지신 겨. 산송장 되신 겨. 집으로 가요, 여보. (남자의 환자복 윗도리를 벗기고 몸을 쓸어주며 사복으로 갈아입히는 여자와 딸.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리를 하게 된다.) 여자:“우리 아기 예쁜 배, 할미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할미 손은 약손. 궁글궁글 쓸어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소리를 받아 부르는 할머니의 환영. 문으로 들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할머니:어여 일어나거라. 영호야. 된장찌개에 밥 말아먹고 어여 핵교 가야지. 온나 온나. 어여…(미소 짓는 남자) 우리 외동이, 온나 온나. 딸:엄마! 아빠가 웃어. 여자:어디? 정말! 여보, 어디 좋은 곳 유람이라두 하는 게유? 할머니:아유, 찌린내. 요 녀석 바짝 섰네. 쯧쯧쯧. 이부자리는 한강이구. 늦게까지 숙제하더니 곤했던 게여. 그려 됐다. 옷 갈아입자. 아부지 모르시게 저리 치워놨다. 인나렴. (여자와 딸이 남자의 아랫도리도 사복으로 갈아입힌다. 할머니는 싱크대로 가서 도마를 꺼내 칼자루 끝동으로 마늘을 다진다.) 소리:(마늘 다지는) “쫑 쫑 쫑 쫑-” 여자:여보,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눈을 떠요. 딸:아빠. 눈 떠.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흑. 아빠. 제발! 남자:불…. 불이여…. 딸:뭔 불이 나? 남자:집에 불났다. 어쪄 어무이. 할머니:간밤에 어매가 호롱불 꺼놨다. 걱정 말그라, 불 안 났으니. 밥 다됐다. 소리:(찌개 끓는)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마침내 힘없이 눈 뜨는 남자) 할머니:됐다. 눈 떴다! 딸:아빠! 여자:여보! 할머니:어매는 좀 쉴란다. (이젠 할머니가 기력이 다한 듯 눕는다. 중얼거리며 그 옆으로 다시 무너지는 남자) 남자:왜 이리 자꾸 졸리지. 어무이 괜찮으셔유? 주무시는가베. 순이야, 엄마는 일 나갔니? 밥은 먹었니? 그래 아빠 잠깐 눈 좀 붙였다 일어날 테니 뭔 일 있으면 깨우렴. 아주 잠깐이다…. 아빠가 일어나서 떡볶이 해줄게. 설탕도 넣고 달달하게…. (모로 쓰러진 남자 어느새 코를 곤다.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아들과 손녀를 보더니 천천히 문으로 걸어 나가며 아들을 부른다.) 할머니: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남자) 남자:어무이! 딸:아빠. 꿈에 할머니 봤어? 남자:순이야. 혹시 할머니가 뭐라 하셨니? 딸:언제요? 남자:돌아가시기 전에. 딸:(할머니 목소리로) “애비야…. 영호야! 영호야….” 남자:그래… 맞았어. 어무이가 날 부르는 소리였어.(딸을 안으며) 순이야. 할머니가 아빠를 불러주셨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가신 줄 알았다. 여보, 어무이가 나를 불러 주셨대. 날 용서하신 거여. 여자:여보, 흑흑흑…. 딸:내가 아빠를 얼마나 깨웠는 줄 알어? 남자:기특한 것. 아빠가 잘못했다. 어무이, 지가 죽일 놈입니다. 여자:아니에요. 지가 죽일 년이에요. 남자:어무이 손은 약손이여. 암…. 그렇구 말구. 딸:할머니 손이 약손? 남자:니 여섯 살 때, 맹장염을 앓았단다. 할머니가 밤새 순이 배를 문질러 주셨대. 할머니 약손으로. 니가 잠이 들어서 새벽이 됐는데, 아빠가 나이트 일 마치고 와보니 이미 혼수상태인 거라. 그래 아빠가 들쳐 업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거여. 딸:애게, 약손이면 맹장도 고쳐야지. 남자:아픈 걸 잊게 해주셨잖니. 그러니 약손이지. 이렇게 배를 쓸어주시면서…. (약손 소리를 함께 부르는 가족. 할머니가 밖에서 창문을 열고 함께 부른다.) 가족:“우리 아기 예쁜 배, 엄마 손은 약손, 쓱쓱 만져 주면 뭐든지 다 낫는다.” 할머니:“우리 아기 동그란 배” 가족:“엄마 손은 약손” 할머니:“궁글 궁글 쓸어 주면…” (노래하다가 침울하게 그치는 할머니) 할머니:인자 이 손 약발도 다 떨어졌는가부다. 이 손으로 아범 뺐어가려던 저승사자들 다 쫓아 버렸는데 이젠 안 되는가부다. 내 다시는 약손 안 할란다. 남자:어무이, 이참에 그 달랑무 소리도 그만 두세요. 동네 애들이 벌써 순이를 놀린대요. 할머니:내 그리하마…. 달랑무 소리두 안 할란다. (창문을 닫는 할머니. 의뢰인1이 방으로 들어선다. 긴장하는 의뢰인2) 의뢰인2: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어제 2단계 프로그램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옷은 환자가 갈아입고 싶다고 해서…. 의뢰인1:음…. 잘했구만. 길영호씨. 이제 환청이 들리지 않습니까? 남자:네, 사라졌습니다. 의뢰인님. 의뢰인1:허허허…. 잊으세요. 불필요한 소리들을. 불필요한 기억들을. (의뢰인3이 호른 케이스를 하나 들고 들어온다.) 의뢰인3:지금 도착했습니다. 의뢰인1:(케이스를 남자에게 주며) 퇴원하게 되면 이게 필요하실 겁니다. 여자:호른이잖아요? 의뢰인1:제가 30년간 가지고 있던 겁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죠. 한적한 호숫가를 찾게 되거든 연락 한번 주세요.(나가며) 한번 들으러 가고 싶군요. 의뢰인2:선생님! 의뢰인1:자네가 “알 수 없습니다.” 하는 순간, 나도 알 수 없어 졌다네. 의사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남자:선생님. 신은 이 수많은 세상의 소리를 어찌 다 들을까요. 의뢰인1:허허허- 다 듣다간 신도 입원해야지요. (마주보고 씩 웃는 그들. 의뢰인들 나간다.) 남자:어머니더러 달랑무 못 파시게 한 그것이 내내 걸리는 거여. 바깥출입도 안 하시구 말수도 적어지더니 그냥 가신 거여. 여자:제 잘못이에요. 동네 푼수들 말만 듣고…. 남자:어무이는 소리 힘으로 사신 겨. 그게 어무이 약손이여. (문이 열린 채다. 그 문으로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어머니가 다시 들어와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뭔가 바람에 날려 쿵- 엎어지는 소리) 할머니:영호니? 영호야- 야가 삼일씩이나 어딜 간 거여. 저게 누구여. 영호지. 어여 어여 온나. 세상에! 야가 못 먹어서 눈이 십리는 들어갔네. 집 놔두구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겨. 들어가 밥 묵자. 엄매가 된장국 끓여놨다.(흰 고무신을 주며) 봐라. 흰 고무신 사놨다. 따습지? 어여 신어봐. (흰 고무신을 받아 침대 머리맡에 놓았다가, 가슴에 끌어안고 웅크리는 남자) 소리:(소년) 흰 고무신 때 타면 어쩐대유. 소리:(할머니) 영호야 자니? 엄매는 그깟 금가락지 없어도 된다. 영호만 있으면 된다. 소리:(소년) 어무이. 흰 고무신… 내 눈 내리면 신을란다. 소리:(눈 밟는) “뽀작 뽀작 뽀작 뽀작” 할머니:멋지다. 헌헌장부 났다. 남자:남학생들이 줄줄 따르것다잉. 손이 얼은 것 좀 봐. 요리로 들어와. 어여. (어느새 인라인 스케이트 신고 헬멧 쓰고 서있는 딸. 아빠 엄마 있는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문가에서 고개 끄덕이던 할머니, 달랑무 팔러 가신다.) 할머니:달랑무∼ 있어. 푸성귀나∼ 달랑무∼ 있어. 무대 서서히 어두워지며 암전. ■ 희곡 당선소감 게으른 며느리에게 시켜야 할 일은 두부 만드는 일이랍니다. 느긋하게 일해야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진다죠. 군대 지휘관도 게으른 사람이 좋답니다. 게으른 천재여야지 괜히 아랫사람 생고생 시키지 않는다는 건데…. 요건 사실 게으른 아랫사람들의 소망이죠. 부지런한 천재 즉 이순신 같은 양반 만났다간 그저 죽었구나 하고 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지요. 안 뛰면 바로 곤장 맞지요. 난중일기 쬐금 보니까, 임진왜란 발발 전에 이 어른 매일 하는 일이 순찰 나가서 하급지휘관 곤장 치는 게 주업무이시더군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하셨으니 백전백승의 신화를 창조하셨던 게죠. 선친께서 제 원래 이름자에 늦을 만(晩)자 하나를 넣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느즈막히 입문하게 되었나 봅니다. 작은 상 하나를 펴놓으시고 늘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셨던 아버님께서는 교단 은퇴 후에 스스로 책 몇 권을 출간하셨죠. 그러곤 집안잔치가 있으면 친구 분들께 그 책을 선물하던 낙으로 사셨습니다. 평생 글을 쓰시던 열정은 정말 프로작가 못지않으셨지요. 이제부턴 저도 작심하고 자세 가다듬어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은 상 앞이 아니라 PC 앞이 되겠네요. 축하해주는 벗님들, 사랑하는 영두와 영소, 그리고 가족들. 더불어 삶의 위안과 기쁨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울러 미흡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력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중앙대 교육대학원 무용 석사과정 ■ 심사평 세상이 어수선한 탓인지 응모작들 중에서도 투신자살, 노숙자, 입시부정, 로또복권 등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담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그리고 각종 드라마 매체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대화체의 이야기 구사에는 능숙해졌으나 막상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작품은 드물었다. 최종적으로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희곡들은 박만호의 ‘청진기’, 김성제의 ‘바다로 가는 성북행’, 그리고 류세균의 ‘달 속의 그늘’이었다. 공사판의 살인사건을 그린 ‘달 속의 그늘’은 밑바닥 인생들의 성격설정이나 대사구사에 능숙했으나 극 구성이 너무 평이하고 결말 부분을 배영감의 감상적인 인생고백으로 가져간 점이 지적되었다. 지하철 승강장을 배경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상처받고 억압된 두 모자의 아픈 일상을 포착해낸 ‘바다로 가는 성북행’은 살아있는 독특한 정서가 심사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식당 파출부인 엄마와, 성전환 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돈벌러 가는 여성적 아들의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일상적 대사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극적 상황과 행동을 충분히 연극적으로 객관화시키지 못했고 극이 아직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있다. 현대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소음과 어린 날에 듣던 정겨운 소리들을 대비시킨 ‘청진기’는 ‘소리’를 극적으로 전경화시킨다는 아이디어나, 신경증환자인 남편을 아내가 의료진과 공모해서 연극적으로 치유한다는 설정 등이 충분히 연극적이며 대사나 극 전개 기법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비인간성/어린 시절의 순수함’이라는 대비가 도식적이며, 극전개의 생략과 비약이 과도한 점에서 어느 기성작가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다소 걸렸다. 결국 각각 장단점을 갖춘 ‘청진기’와 ‘바다‘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나름의 완성도와 무대적 상상력을 높이 사 ‘청진기’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김철리(연출가)·김방옥(평론가)
  • ‘전자 라이벌’ 삼성·LG전자 사상최대 실적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나란히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초밥론’의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주먹밥론’의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은 거의 1년 내내 ‘위기’와 ‘인재’를 강조했다. 잘 나가는 기업들이 위기 운운하는 바람에 경기가 더욱 위축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전 세계와 싸우는 글로벌 기업들로서는 위기 아닌 때가 없다는 반론이다. 윤 부회장은 ‘잘 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며 올 한해 수도 없이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12월 월례사에서 “지금 삼성전자는 최대의 실적을 내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지만 잠시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면서 “역사 속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고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창립 35주년 기념사에서도 IBM, 필립스 등의 사례를 들며 “지금은 초일류로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추락하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잘되는 사업도 5년,10년 후에는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지속적으로 발굴·육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잘 나가면 착시현상이 생기고 오만해지고 방심하게 된다.”는 것이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김 부회장도 7월의 CEO 메시지에서 “아무리 그럴 듯한 ‘도전적 목표’(Stretch Goal)라도 위기의식 없이는 이룰 수 없다.”면서 “위기의식은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채찍질하면서 스스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12월 메시지에서는 “최근 환율이 급락하면서 경영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이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이제부터 비상경영을 한다는 각오로 다각적인 위기관리를 해나가기로 했다.”고 위기경영을 선포했다. 인재를 중시하는 것은 같지만 보는 시각은 약간 달랐다. 윤 부회장은 “아날로그 시대의 인재는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창의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전략가 확보도 급선무”라며 ‘디지털 인재’를 강조한다. 김 부회장의 인재상인 ‘Right People’은 독하고 실행력이 강하며 전문역량을 갖춘 ‘강한 인재’,‘독한 인재’를 의미한다. 실제 김 부회장은 최근 인사에서 인도시장을 개척한 김광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나이지리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 키예프 등 해외 오지에서 묵묵히 성과를 창출해온 4명의 부장을 임원으로 발탁했다. 윤 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초밥이든 휴대전화든 부패하기 쉬운 상품의 핵심은 속도이며 디지털 시대에는 2개월만 늦어도 경쟁에 뒤진다.”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스피드와 타이밍’이다. 한번에 끝내자는 ‘주먹밥론’으로 유명한 김 부회장은 ‘현장 경영자’라는 별명답게 “사무실이 ‘녹화방송’이라면 현장은 ‘생방송’과 같은 존재며 현장은 지식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말을 남겼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사설] 신중치 못한 李총리의 대선언급

    권위주의 정권 시절 집권측은 야당을 다루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동원하곤 했다. 이제 그러한 수단은 거의 사라졌다. 여권이 야당을 설복시키기 위해서는 명분과 함께 인내,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권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절제와는 거리가 멀어 안타깝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언론과의 회견에서 대선 전망을 한 점도 그렇다. 야당을 자극하고, 생각이 다른 국민은 실망하고 싫어할 고도의 정파적 발언을 왜 총리가 하는가. 이 총리는 “2007년은 시대흐름으로 보면 2002년보다도 훨씬 좋아지는 상황으로,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다음 대선에서 여당 후보의 승리를 점쳤다. 나아가 정동영 통일·김근태 복지부 장관 중 누가 나으냐는 질문에 “누가 후보가 돼도 결과는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일반인이 대선전망을 해도 싸움이 나는 게 우리사회다. 국정의 중심에 있는 총리가 공식인터뷰에서 야당을 자극하고, 여권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어디로 봐도 적절치 못하다. 한나라당은 당장 “총리가 어려운 나라 상황을 걱정하기보다 대선 승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며 이 총리가 오만하다고 성토했다. 지금 여야는 4대 입법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첨예하게 대치중이다. 총리가 정파를 떠나 중재자의 역할은 못할망정 도리어 간극을 벌려서야 되겠는가. 이 총리는 두달전쯤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고 발언해 정국을 한참동안 경색시킨 바 있다. 그런 이 총리가 지난 5일에는 지구당사무실에 경찰이 들어간 사건을 항의하기 위해 단식농성중인 권영길 민노당 의원을 찾아 정중한 사과를 했고, 권 의원은 단식을 풀었다. 권 의원에게 보인 예의와 배려를 일관되게 갖는다면 정국은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다.
  • [지진 해일 대재앙] 전염병 공포… 매장 급급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등 피해국들은 28일 대대적인 구호 및 복구 작업에 들어갔으나 장비와 인력 부족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구호작업보다도 전염병 창궐 방지를 위한 시체 처리 등에 매달리다 보니 집과 생계수단을 잃은 생존자들은 앞으로 며칠간 최악의 고통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최대 인명피해를 기록한 스리랑카에 도착한 구호팀들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참상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무너진 건물 잔해를 빼고는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일부 자원봉사자들만이 흩어진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을 뿐 사람들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여진으로 24∼48시간 안에 또 다른 해일이 덮칠지 모른다는 경보가 내려지자 해안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고지대를 찾아 내륙으로 대피했다. ●“전염병 예방이 급선무” 울부짖는 생존자들 인도에서는 또 다른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뜨거운 날씨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막게 만드는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도 잠시, 시체 처리에 여념이 없다. 부패에 따른 오염을 막지 못하면 전염병이 크게 번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또다시 대규모 피해를 막기 힘들다는 경고에 따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과 부모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땅 속에 파묻거나 바다 속으로 던져넣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지원에 나서고는 있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유엔은 48시간 내에 구호팀과 구호물자를 실은 수송기 100여대가 피해지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48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가 당장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하던 보건체계는 완전히 무너져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아프리카 연안국까지 비상 이번 쓰나미 대재앙은 피해 지역에서도 새 기록들을 쏟아냈다. 지진으로 인한 해일은 진앙지로부터 7000㎞ 가까이 떨어진 동아프리카에까지 여파를 미쳐 소말리아에서는 100여명의 어부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등 아프리카 동부 연안국가 곳곳에서 저지대가 침수되는 피해를 불렀다. 오만, 예멘 등 중동 국가들도 해안지대 가옥들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으며 정부 당국은 해안지대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기도 했다. ●해일경보체제 도입 논의 영연방 국가들은 내년 1월 인도양 연안 모리셔스에서 재해에 대한 조기경보체제를 갖추는 방침을 논의할 것이라고 돈 매키넌 영연방 사무총장이 27일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도와 스리랑카, 몰디브 등은 모두 영연방 국가들로 해일경보체제만 갖춰졌더라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일본과 호주도 각각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해일에 대한 경보체제를 신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한국인 51명 연락두절…사망 3만명 넘을듯

    한국인 51명 연락두절…사망 3만명 넘을듯

    ●한국인 51명 연락 두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해역에서 26일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한국인 피해가 27일 오후 10시30분 현재 사망 2명과 실종 1명, 부상 14명, 소재 미확인 51명으로 집계됐다. 외교통상부는 “사망자와 부상자는 모두 태국에서 발생했으며, 소재 미확인자는 태국 49명과 인도네시아 3명”이라고 밝혔다. 소재 미확인자로 분류됐던 몰디브 거주 박모씨와 스리랑카를 여행 중이던 김모씨는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태국의 소재 미확인자 49명 중 대다수인 35명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여행온 여행객”이라면서 “사고발생 시점에 실제로 있었는지 다른 우리 국민과 현지인으로부터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소재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태국 이외에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교민이나 장기체류자 5명도 현재 연락이 되지 않아 소재 미확인자로 분류됐다.”면서 “해당 공관은 이들의 안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사망 3만명 넘을듯 2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을 강타한 지진과 이후 발생한 강력한 해일로 28일 0시 현재(한국시간) 비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가 2만 3000여명을 넘어선 데 이어 추가 사망자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사망자가 3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되는 등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지진 후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인도 등에서는 최고 리히터 규모 6.5에 달하는 여진이 수십차례 감지되고, 진앙에서 상당히 떨어진 걸프지역 예멘·오만에서도 경계령이 내려지는 등 지진 공포가 중동 일부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각국은 피해 지역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수백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에 대한 긴급 구호에 나섰지만 아직 통신이 두절된 지역이 많아 인적ㆍ물적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 파악된 것보다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들이 아직 위생설비 마련이나 본격적인 복구작업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시체 수습 및 추가 피해 방지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그 영화 어때?] 룩앳미

    소통이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일까. 누구나 자신의 본모습과 진심을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다양한 권력망에 의해 진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른다고 불평하는 나 자신조차, 타인을 나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있는 게 우리의 모습이니까. 영화 ‘룩앳미’(Look at Me·24일 개봉)는 상당히 수다스러운 작품이지만, 등장인물의 대화는 제대로 이어지는 법이 없이 툭툭 끊긴다. 의미없는 질문만 던진 채 대답은 듣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화제로만 겉도는 이들은, 오로지 체면과 겉치레의 수단으로 말을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거울 뒤에 숨은 채 상대방을 바라보면서도 ‘나를 바라봐 달라.’며 상대방만을 나무란다. 유명한 작가인 에티엔은 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실상은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차 있다. 딸 롤리타가 들어보라고 준 테이프는 포장도 뜯지 않았고, 형식적으로만 관심을 갖는 척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롤리타는 무관심한 아빠에게 늘 불만을 품지만, 아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사귄다. 롤리타의 성악 선생이자 작가 피에르의 부인인 실비아는 롤리타가 유명 작가의 딸인 것을 알자 태도가 돌변하고, 피에르는 에티엔을 이용해 유명 작가가 되자 무명시절의 친구들을 업신여긴다. 호수 위 백조처럼, 겉으로는 고상한 듯 보이지만 속에선 온갖 권력관계를 이용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영화는 이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유머스럽게 비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으면서도 이내 쓴웃음으로 번지는 건 아마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랄하고 냉소적인 ‘프랑스식 유머’를 쏟아내는 영화는,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을 넓은 포용력으로 감싸안는다. 이중적인 인물처럼 보이던 실비아는 점차 남편의 가식과 에티엔의 독단을 참지 못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한다. 롤리타도 그녀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 진실한 남자친구를 만난다. 그렇다고 섣불리 화해의 손을 내미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복잡한 관계망에 놓인 현대사회 속 사람들은 영원히 소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친구 세바스티앙을 향해 말없이 외투를 벗어주는 롤리타처럼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만은 지우지 말자는 게 영화의 목소리다. 국내에서 단관개봉으로 5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타인의 취향’의 프랑스 출신 아네스 자우이 감독 작품.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15세 관람가.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럼즈펠드 사면초가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한때 조지 부시 행정부의 ‘록스타’로 추앙받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미운 오리새끼’ 신세가 돼버렸다. 위기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로부터 촉발됐다. 네오콘의 기관지 위클리 스탠더드는 지난달 말 발행본에서 “부시 대통령은 오만한 럼즈펠드를 버리라.”고 촉구했다. 그 당시만 해도 네오콘의 핵심인사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장관으로 올리려는 시도 정도로 보였었다. 하지만 최근 심상찮은 분위기가 흐른다. 그에 대한 공격이 보수진영의 본류로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중진으로 대중적인 영향력도 있는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이 지난 13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내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지적하면서 “그를 신임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일단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럼즈펠드 장관도 실수를 연발하고 있다. 그는 “이라크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내지 않은 것은 나와 무관한 결정”이라면서 토미 프랭크스, 존 아비자이드 전·현직 이라크 주둔군사령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해 보수진영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또 지난 8일 쿠웨이트 주둔 미군을 방문했을 때 한 병사가 장갑차량이 부족하다고 호소하자 “갖고 있는 군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지, 갖기를 원하는 군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질문에 럼즈펠드 장관이 좀 더 병사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답변과 위로를 했다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상원 공화당 대표를 지낸 트렌트 로트(미시시피) 의원은 16일 “럼즈펠드가 군복을 입은 장병들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현 상황에서 럼즈펠드가 기댈 언덕은 임명권자인 부시 대통령뿐이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이 매우 일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그래서 계속 일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도 다음달 말 이라크에서 총선이 예정대로 실시되면 럼즈펠드 장관을 교체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daw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다시 볼테르를 생각한다/구본영 정치부장

    대학원 시절 존경했던 두분 은사의 엇갈리는 행보를 지켜보기란 개인적으로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몇달전 수도 이전 논란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일단락되기 전까지 얘기다. 김안제 전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시민단체인 ‘수도 이전 반대 국민연합’을 이끈 최상철 공동대표가 그 분들이다. 기자의 기억으론 평소 두분은 서로 더없이 친분이 두터웠고 등을 돌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수도 이전문제에 관한 한 두분의 철학과 이론이 끝내 평행선을 달렸다. 정치·사회적 논쟁치고 순도 100%의 정답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두 분에겐 결례인지 모르지만…. 사실 주관적 가치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책 결정시 시공을 초월한 무오류의 진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혹여 내 말만이 절대선이라는 주장이 있다면 무지에 기초한 오만이거나, 자신마저 속이는 위선이기 십상일지도 모른다. 이른바 ‘4대 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가파른 대치를 지켜보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과거 조선노동당 가입 여부와 관련한 논란의 중심에도 “나만 옳고 너는 전적으로 글렀다.”는 오만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국가보안법상에 인권 유린에 악용될 독소조항이 있다면 마땅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세계사의 흐름에 비춰 퇴행적인 ‘우리식 사회주의’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을 여기에 오염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법체계상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다수 여론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과거 분단국으로 이념 갈등을 겪었던 독일도 통일됐지만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해 형법 이외에 국보법과 이름은 다르나 헌법보호법, 사회단체규제법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국보법의 명칭과 조항을 그대로 ‘사수(死守)’할 일도,‘목숨을 걸고’ 폐기할 일도 아닌 셈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정파를 초월해 호소력 있었던 지도자로 평가 받는 인물로 링컨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이 대체로 손꼽힌다. 임기 중 비명에 간 링컨과 케네디는 차치하고, 나머지 두 사람, 즉 민주당의 FDR와 공화당의 레이건은 모두 연속 당선기록으로 그 설득력을 공인 받았다. FDR의 트레이드마크로, 흔히 요즘 한국형 뉴딜로 재조명되고 있는 뉴딜정책을 꼽는다. 하지만, 미 역사상 뉴딜정책만큼 논란많은 정책도 없다. 일부에선 미국을 대공황의 수렁에서 건져낸 원동력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뉴딜정책이 근본적으로 반시장적이라면서 계속했다면 실패가 예견된 정책이었다고 간주한다. 때마침 터진 세계2차대전으로 인한 수요 확대가 미국 경제를 살렸을 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노변정담’류의 라디오 연설에서의 대중 설득이 미 역사상 전무후무한,FDR의 4선 성공의 견인차였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올해 세상을 떠난 레이건도 ‘위대한 전달자’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대중적 호소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수정 헌법으로 3선 길은 막혔지만, 사실상 그의 후광에 힘입어 부통령이었던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H 부시가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기까지 했다. 루스벨트나 레이건의 설득력의 요체는 반대자나 상대 당의 감정도 다치지 않게 하는 데 있었다. 상대의 처지에 대한 역지사지가 그 핵심이었다. 생산적인 토론과 타협은 실종되고 위 아래 할 것 없이 험구, 아니 핏발선 저주만 판치는 우리의 척박한 풍토를 되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기자는 그래서 새삼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오래된 경구를 떠올린다.“당신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게 말할 권리만큼은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 [사설] 툭하면 국회의원에게 전화하는 중국

    한나라당 황우여의원 보좌관에게 지난 9일 전화를 걸어, 무례한 발언을 한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의 행위는 중국의 외교적 오만함이 도를 넘었음을 보여준다. 이 참사관은 황 의원의 탈북난민 강제송환 저지 국제캠페인 참여에 대해,“국회의원이면 높은 자리인데 이런 행위를 하면 되느냐.” “(탈북자문제에)강하게 나오면 우리는 더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마땅히 중국정부의 사과와 적절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대사관의 무례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천수이볜(陳水扁)타이완총통 취임식 참석 의원들에게 전화로 불참을 종용했고,8월에는 지안(集安) 고구려유적 답사 의원들에게 비자발급을 제때 해주지 않기도 했다. 대사관의 외교활동이 이런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중국대사관의 행위는 형식상의 무례함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어 심각하다. 지금까지 중국정부가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탈북자들의 경우, 대부분 한국행을 허용해온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탈북자들이 강제북송의 운명에 처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내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본국 입장을 설명했을 뿐이라는 중국대사관의 해명을 그대로 믿고 싶다. 한국어로 말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참사관의 한국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그래도 외국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대사관도 민감한 사안은 전화보다 직접 의원들을 만나고, 통역을 통해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기 바란다. 양국 우호를 위한 중국측의 진지한 노력을 기대한다.
  • 여야 “더 협상은 없다” 접점없는 마이웨이

    여야 “더 협상은 없다” 접점없는 마이웨이

    “더이상 협상은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17대 국회가 침몰하고 있다. 개원과 함께 스스로 내걸었던 ‘상생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국가보안법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둘러싼 여야간 정쟁은 기싸움 수준을 넘어섰다. 서로에 대한 멸시와 냉소는 물론이고 동료 의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내팽개친 채 연일 ‘이전투구식 설전(舌戰)’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고도 여야는 13일 “참을 만큼 참았다.”며 각자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단독으로 연말 ‘반쪽 임시국회’를 강행한 반면 한나라당은 “할테면 해보라.”며 법사위 점거 농성을 계속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를 잇따라 열어 전체 상임위를 단독 강행키로 하고,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 처리를 목표로 정한 61개 민생·개혁 법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가 이날 여당 단독으로 소집됐고, 통일외교통상·문화관광위 등 일부 상임위의 전체회의 또는 법안심사소위가 여당 및 민주노동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또 한나라당이 계속해서 임시국회를 거부할 경우, 새해 예산안도 여당 단독으로 심의해 처리키로 했다. 열린우리당은 특히 한나라당의 국보법 폐지 당론 철회 요구를 일축하고,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계속 시도키로 해 또한번 물리적 충돌을 예고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법사위 점거와 관련,“여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의사진행 방해에 끌려다니거나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중임을 시사했다. 국보법 처리문제와 맞물린 ‘이철우 의원 파문’과 관련해서도 열린우리당은 ‘고문·조작 의혹 국정조사’ 방침을 재확인하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을 과거사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칼날을 곧추 세웠다. 한나라당도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국보법 폐지 등 4대 법안에 대한 합의처리 약속을 요구하며 임시국회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국보법 개폐와 관련한 당론을 빠르면 이번 주에 마련해 “당론도 없이 반대만 한다.”는 열린우리당의 공격을 차단키로 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국회 파행의 근본적 이유는 여당이 오로지 보안법 폐지 등 4개 분열법을 밀어붙이는 데 올인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여당은 국회 파행을 자기들이 하고도 엉뚱하게 책임을 야당에 몰고, 일부 언론이 이를 잘못 보도해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임시국회 소집도 단독으로 하고 진행도 단독으로 한다는 것은 수의 힘으로 4대 법안과 예산안 등을 단독으로 강행처리한다는 힘의 정치 선언”이라고 규정하고 “오만한 태도를 벗어나 지금이라도 수에 의한 단독처리 강행 방침을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철우 의원 파문’과 관련해서도 한 핵심 당직자는 “이 의원이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과거 운동권에서 행했던 자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며 “이 의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지 않는다면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강경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아트 & 이슈] ‘크리스마스 캐롤’ 연습실을 찾아

    [아트 & 이슈] ‘크리스마스 캐롤’ 연습실을 찾아

    지난 2일 찾아간 가족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의 연습실은 온기로 가득했다. 풍성한 합창소리에 이끌려 들어간 그곳에는 36명의 전문 배우들과 5명의 장애우들이 한데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수화를 하는 천사, 앞이 보이지 않는 마을사람, 행동이 조금 느린 말리 유령, 목발을 짚은 구세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눈 먼 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재란(21·청각장애2급), 우정호(47·시각장애1급), 길윤배(35·지체장애 3급), 박마루(40·지체장애2급), 윤선혜(8·시각장애1급) 등은 저마다 지닌 ‘달란트’에 맞게 배역을 부여받았다. 이들의 신체적 결핍은 극을 더욱 아름답고 완벽하게 만드는 기막힌 장치가 된 셈이다. 작은 배역이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가 “기부 좀 하라.”며 채근하는 구세군 역의 박마루씨의 네 박자 걸음은 경쾌했다. 쉬는 시간 복도를 오가면서 몇 줄 안 되는 대사를 외우고 또 외운다. 마을사람 역의 우정호씨는 출연자 한 명과 팔짱을 낀 채 무대에 오른다.“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떨릴 게 뭐 있겠냐.”며 웃던 그는 연신 노래를 따라 불렀다.10년 전 시신경 위축으로 시력을 상실한 뒤 실의에 빠져 있던 우씨는 “뭔가 한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거울 앞에서 오만가지 표정을 지어보이던 말리 유령 역의 길윤배씨는 턱시도 스타일의 무대 의상을 입어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제가 언제 이런 옷을 입어 보겠어요.”연극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장애인이기에 끊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그. 이번 무대를 통해 용기를 얻은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계속 배우의 길을 걷고 싶다.”며 눈을 반짝인다. 극단 관계자들만 보면 “제가 언제 식사 좀 대접하지요.”라는 흑심(?) 섞인 농담을 던지곤 아이처럼 웃었다. 가장 어린 선혜는 꽤 비중있는 역을 맡았다. 스크루지 영감의 마음을 움직이는 팀이다. 원래 다리가 불편한 소년으로 나오지만 선혜가 연기할 땐 시각장애자로 나온다.“내 소원도 들어주세요∼.” 티없이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첫날, 왈칵 눈물을 쏟아낸 엄마는 연습실의 딸을 다시 쳐다보지 않는단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함께 호흡하고 움직인지 한 달째. 일반인들에겐 당연한 생활이 이들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행복이 ‘한겨울밤의 꿈’으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다시 혼자 남겨지는 상상은 표정을 어둡게 했다. 서울예술단은 해마다 장애인들을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이번 공연에는 불우 청소년으로 구성된 구세군 악단(4명)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은 성탄절 단골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 익숙한 이야기에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이벤트를 덧칠했다는 ‘삐딱한’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세상의 냉랭한 시선을 녹이기에 모자람이 없다.23∼30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523-0984.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사법고시 여성합격자 역대 최다 24%[명단]

    사법고시 여성합격자 역대 최다 24%[명단]

    사법시험 2차 합격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 본격적인 ‘사시 1000명 시대’로 진입한 가운데 여성 합격자 비율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군법무관 임용시험 합격자도 처음으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추월하는 등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법무부는 올해 제46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1009명과 제18회 군법무관 임용시험 2차 합격자 15명의 명단을 2일 발표했다. 사시 2차 합격자가 1000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합격자 명단은 인터넷 서울신문 www.seoul.co.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시 2차 합격자는 남자 763명(75.62%), 여자 246명(24.38%)이다. 여성 합격자는 지난해 190명(21%)보다 56명이 증가했으며 지금까지 가장 높았던 2002년 2차 시험의 239명(23.92%)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5명을 선발한 군법무관 임용시험 2차에서는 여성 8명이 합격해 반수를 넘어서는 ‘여초’ 현상을 보였다. 예년 2∼3명에 불과했던 여성 군법무관 합격자가 크게 증가한 것은 군의 여성차별에 대한 우려가 줄어든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군법무관 임용시험 경쟁률은 15대1로 5대1인 사시보다 높았다. 이번 사시에서 법학 전공자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74.13% 대 25.87%로 나타났다. 또 2차 시험의 최저 합격점수는 총점 331.5점, 평균 47.36점이었다. 군법무관 2차 시험의 최저 합격점수는 총점 342점, 평균 48.86점으로 나타났다. 법무부는 오는 15일부터 3일간 3차 면접시험을 실시한 뒤 24일 최종 합격자 명단을 발표한다. 한편 법무부는 2차 시험 문제 가운데 모 대학 고시반의 모의고사 문제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었던 50점짜리 형사소송법 1번 문제에 대해 “두 문제에 예시된 사례는 기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질문의 취지나 배점 등에 차이가 있다.”면서 “이번 사안이 시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어려워 채점 결과를 그대로 반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논란의 책임을 물어 앞으로 해당 문제은행 출제위원은 국가고시 위원으로 위촉하지 않기로 하는 한편 소속 기관에 통보했다. 법무부는 내년도 제47회 사시 및 제1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 일정을 이날 함께 발표했다. 이달 13일부터 내년 1월12일까지 응서원서를 교부, 내년 1월6일부터 12일까지 원서를 접수한다.1차 시험은 2월27일, 합격자 발표 및 2차시험 장소 공고는 4월29일로 확정됐다.2차 시험은 6월21일부터 24일까지 치러지며 합격자 발표는 12월2일, 최종 합격자는 3차 시험(12월13∼15일)을 거쳐 12월23일 발표한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제46회 사법시험 제2차시험 합격자 명단 (응시번호순) 11100023 장정주 11100061 곽상호 11100073 추교진 11100089 신동환 11100109 김주혁 11100144 박병규 11100185 정대영 11100295 최종필 11100355 박영수 11100451 최혜원 11100509 이원표 11100530 박성철 11100551 황수현 11100652 박종선 11100655 노윤상 11100680 이종광 11100683 강자영 11100698 박성화 11100711 김호경 11100749 윤정원 11101103 이성복 11101111 황현아 11101279 임은수 11101333 박성찬 11101598 김지현 11101769 전광희 11101830 이우만 11101929 강신범 11101937 김성룡 11102061 최우진 11102266 이한본 11102372 전미정 11102410 김명준 11102506 이정엽 11102609 윤 평 11102613 정성민 11102626 최규진 11102670 이광헌 11102681 김학겸 11102975 최석림 11103003 나강민 11103079 강소현 11103112 서범석 11103212 강수구 11103260 최정규 11103274 박영준 11103292 박상수 11103299 이수균 11103322 유민종 11103370 정남숙 11103402 장성두 11103493 이윤희 11103566 김영민 11103592 김진혁 11103593 이승민 11103630 배관진 11103635 오유경 11103808 이규성 11103811 왕호습 11103901 김동선 11103993 서지용 11104019 정왕재 11104214 김칠구 11104261 이재경 11104316 이승기 11104317 신지혜 11104318 백주연 11104374 조현락 11104393 김윤주 11104415 이정진 11104568 송광석 11104571 박일규 11104640 김도연 11104677 이보영 11104730 이혜정 11104827 김선민 11105014 김준혁 11105080 윤정노 11105120 이호석 11105201 김형원 11105384 송인호 11105415 마 순 11105479 안국현 11105503 김민산 11105532 여경은 11105555 강종협 11105563 지윤섭 11105564 박지훈 11105568 황정열 11105579 윤상우 11105632 하종민 11105679 황규경 11105690 온대현 11105727 이승주 11105732 강신업 11105876 이지연 11105898 남영주 11105925 임정윤 11106002 이동현 11106132 오대영 11106183 이용은 11106253 김상훈 11106375 이광일 11106464 이임표 11106489 최지현 11106520 임창현 11106577 김영란 11106630 윤형주 11106653 최문수 11106794 정윤아 11106798 정호석 11106843 김희영 11107016 도영오 11107074 유 진 11107208 김일진 11107276 이창민 11107299 신순옥 11107304 이재은 11107450 홍봉주 11107453 김혜진 11107467 배진호 11107476 박세환 11107564 최승준 11107595 김진호 11107648 강석률 11107667 김신규 11107695 김현정 11107730 최우제 11107743 오미영 11107879 김윤정 11107883 정만선 11107906 성 빈 11107912 장종필 11107954 김성진 11107987 권창환 11107998 조무연 11108021 강기언 11108116 임황순 11108175 김옥수 11108288 김기현 11108330 홍석표 11108331 최혜승 11108332 주민정 11108375 김경환 11108411 김광순 11108424 최덕순 11108434 유재혁 11108687 이재연 11108815 김경래 11108845 채지혜 11109094 원종우 11109101 변영진 11136002 이도식 11136003 김주은 11136004 소정수 11136006 김상문 11136007 신준익 11136013 김성범 11136015 김동욱 11136021 이 진 11136022 류경은 11136023 송성영 11136028 최용락 11136031 김현우 11136034 김경남 11136042 조윤철 11136043 엄성윤 11136045 강창일 11136049 이재희 11136050 백광현 11136051 설지혜 11136052 김학재 1136053 길준호 11136055 최준용 11136059 최단비 11136060 김준범 11136061 이진욱 11136064 최현오 11136067 김종수 11136071 송태원 11136072 김희동 11136075 박경홍 11136079 김동호 11136080 조현선 11136082 조아리 11136085 장인호 11136089 한수연 11136092 송원일 11136102 추경준 11136103 하효진 11136104 이병군 11136106 장현선 11136112 최환석 11136114 주재현 11136115 강유진 11136117 오현일 11136118 이혜성 11136119 조건웅 11136123 김용균 11136125 이현규 11136126 정유선 11136127 현광활 11136128 이정운 11136132 임태완 11136134 강남석 11136137 류일청 11136139 성은지 11136140 박상인 11136142 신은숙 11136144 유완석 11136145 김태완 11136150 김 참 11136155 류상현 11136159 정창훈 11136165 박진묵 11136170 방성현 11136171 김정옥 11136175 이준채 11136178 허진민 11136180 정일권 11136186 박경규 11136194 이정상 11136199 남철우 11136202 이 욱 11136205 장재윤 11136206 여치동 11136208 문종일 11136210 윤소현 11136211 고일영 11136224 허정현 11136229 곽균열 11136237 소민호 11136238 권구철 11136239 김영아 11136245 김승일 11136249 서용구 11136254 서정식 11136255 조지영 11136263 김완기 11136269 정충원 11136270 정승일 11136274 최광선 11136276 김대환 11136280 배현미 11136282 서보형 11136285 조중일 11136291 김진희 11136296 공영일 11136304 용순덕 11136305 박세연 11136308 이상혁 11136310 송봉준 11136311 이인수 11136317 정기승 11136319 황병각 11136329 오정민 11136330 윤권원 11136336 전상우 11136339 오대환 11136341 김영환 11136346 박병철 11136347 윤봉규 11136349 김승기 11136353 유춘호 11136355 이진호 11136358 신상철 11136359 이상용 11136364 우경순 11136368 이창엽 11136374 박형진 11136378 유동현 11136379 오정국 11136381 현영수 11136382 이승희 11136385 류희상 11136392 이현우 11136395 황재훈 11136400 조동희 11136401 황정임 11136402 원서연 11136403 박정민 11136406 심용재 11136407 이경식 11136409 신현두 11136413 소택영 11136414 이춘우 11136417 황일우 11136420 진상욱 11136421 신동주 11136423 이재욱 11136424 최원영 11136425 윤현규 11136426 이창임 11136433 한광수 11136436 길경주 11136437 손태진 11136438 정현순 11136439 한상원 11136443 송종화 11136444 박나리 11136445 천헌주 11136446 박상범 11136454 전 훈 11136455 김동현 11136458 이동희 11136460 신사도 11136461 정한별 11136462 남기정 11136463 강창식 11136469 정지은 11136476 원영일 11136495 손영실 11136496 이주형 11136505 송준현 11136510 노정윤 11136513 이상숙 11136518 조미화 11136529 정다은 11136530 김봉률 11136532 서충식 11136536 김동훈 11136543 조동환 11136546 전 성 11136551 김미진 11136554 한상형 11136566 박순애 11136567 박창은 11136568 오승민 11136569 김주현 11136578 이정화 11136584 류정민 11136585 최용환 11136587 박준형 11136591 고진흥 11136593 박승혜 11136600 김동명 11136603 권오건 11136607 박규석 11136615 오승준 11136618 김성규 11136619 남성덕 11136624 조민행 11136627 이주희 11136630 김주관 11136644 윤 덕 11136647 양희진 11136649 안정한 11136651 배진재 11136660 심 판 11136661 이양원 11136667 박은경 11136668 김종훈 11136671 이재성 11136681 용석남 11136687 변환봉 11136689 변우섭 11136695 정 용 11136701 서선일 11136702 황병삼 11136703 김현곤 11136704 권영국 11136706 김현재 11136711 이정희 11136716 조대행 11136720 현진희 11136722 왕성국 11136728 박윤경 11136731 서동석 11136733 김유진 11136734 이 민 11136736 김성수 11136741 장진영 11136746 김여경 11136750 송성현 11136753 문상원 11136754 정창래 11136763 신혜성 11136768 최성진 11136771 강신열 11136772 최상민 11136776 오성규 11136777 손윤경 11136786 박 철 11136791 성승현 11136797 김성중 11136807 민경택 11136820 조준성 11136825 박현숙 11136827 진화원 11136828 윤경호 11136835 이상훈 11136836 유철희 11136842 장진영 11136844 김재성 11136845 탁기주 11136856 임재남 11136857 이현철 11136858 지창구 11136860 황진우 11136863 이순명 11136864 김영석 11136880 정유진 11136881 강민구 11136889 송찬흡 11136891 김진형 11136899 임종석 11136904 윤지영 11136907 임연진 11136908 이애정 11136912 김태주 11136918 김혜연 11136921 남효정 11136922 여경진 11136923 정호진 11136925 주형훈 11136927 김범준 11136928 노희준 11136936 김선아 11136941 이태근 11136947 원은자 11136954 김태훈 11136955 임응수 11136957 송주희 11136959 박종혁 11136961 박태신 11136964 류태일 11136965 이형범 11136966 황선기 11136969 황보현 11136971 주규환 11136973 나현채 11136976 임소정 11136978 김문수 11136979 이강우 11136988 소창범 11136990 강동환 11136995 이상엽 11136997 임성룡 11137002 장기석 11137004 이규진 11137006 윤영원 11137013 김주복 11137014 김성진 11137018 김범수 11137019 김상순 11137026 김서원 11137034 박철경 11137035 권홍철 11137037 이종권 11137041 박찬훈 11137042 이기철 11137044 남상권 11137051 류홍열 11137056 이상욱 11137061 이문섭 11137062 이창섭 11137065 박소은 11137067 이해빈 11137072 이명재 11137073 장재익 11137074 이승환 11137075 이지영 11137077 이동현 11137078 이봉민 11137085 한종무 11137086 오미영 11137092 안혜림 11137093 김욱태 11137094 박중규 11137095 김정두 11137100 길명철 11137102 김종규 11137104 장영재 11137105 한종환 11137107 전아람 11137108 홍진영 11137110 김정주 11137111 박가현 11137115 강은주 11137116 권기호 11137123 박영만 11137124 박기년 11137128 성보석 11137129 여연심 11137131 김경렬 11137135 장환석 11137136 최철호 11137137 정성언 11137140 이동환 11137145 정용주 11137147 이호진 11137148 박준섭 11137154 김삼용 11137156 이준범 11137157 윤중렬 11137159 호규찬 11137163 조준오 11137164 이수경 11137165 허익수 11137166 박재용 11137167 박상수 11137172 이지형 11137174 오석현 11137178 안영신 11137179 문일환 11137180 하동길 11137181 김세욱 11137182 이준민 11137183 김희진 11137184 이세정 11137185 강동원 11137186 이수암 11137191 문하경 11137193 김규식 11137195 이소림 11137196 김민겸 11137197 황형주 11137199 안준영 11137211 박은주 11137212 배철성 11137213 박지용 11137214 김동욱 11137216 김홍섭 11137217 최성아 11137218 배헌수 11137226 신영국 11137228 임인섭 11137238 유정현 11137240 서정희 11137241 문지석 11137244 박건영 11137245 남대주 11137246 장은희 11137248 양승현 11137251 이은철 11137252 신일수 11137253 송영복 11137255 김영호 11137257 안익성 11137260 정하경 11137261 진재경 11137263 오세풍 11137272 박형진 11137276 이남억 11137279 최용수 11137293 이종훈 11137294 정다운 11137309 박준범 11137310 김선희 11137314 강순영 11137315 김민철 11137318 김민석 11137322 박세길 11137323 김은영 11137324 서인덕 11137325 조수경 11137326 고의중 11137327 이희숙 11137328 이수정 11137331 김성민 11137333 김정헌 11137336 이태현 11137346 이연경 11137347 정승혜 11137348 김익현 11137349 박지윤 11137350 최연석 11137371 홍정일 11137372 김준영 11137373 박정열 11137375 김정훈 11137376 이진욱 11137377 김상용 11137380 윤병관 11137384 최정은 11137385 윤선경 11137386 강보경 11137388 김한근 11137392 김광호 11137396 이광진 11137398 김윤식 11137404 김용우 11137407 이윤근 11137418 육대웅 11137424 송현순 11137425 김장곤 11137435 조재철 11137436 김정연 11137440 손인준 11137444 우동선 11137446 이승환 11137447 김혜선 11137450 조호성 11137451 박종선 11137455 문영기 11137458 이재훈 11137461 한민열 11137462 서재옥 11137471 김 현 11137474 손계준 11137476 박지영 11137477 정홍철 11137480 김경민 11137485 차동경 11137486 이수진 11137489 홍민영 11137490 김지현 11137491 서여진 11137492 문경훈 11137493 이상훈 11137496 김승우 11137498 손형주 11137501 최영관 11137505 윤남현 11137508 최수봉 11137520 한주실 11137521 이지훈 11137525 공일규 11137528 이선호 11137529 신동준 11137530 이숙미 11137531 김정택 11137532 신지정 11137535 노정주 11137536 강성필 11137539 김성욱 11137540 이치현 11137541 이율림 11137545 고상범 11137547 정장석 11137548 장한익 11137555 나하나 11137559 이영근 11137563 강용구 11137568 이우상 11137573 이승규 11137581 정혜선 11137583 이유현 11137584 류준구 11137585 박지환 11137586 서전교 11137589 임채권 11137602 이탁순 11137604 유상호 11137605 임수혁 11137608 손명지 11137611 노연주 11137615 이대우 11137619 손탁현 11137621 윤원일 11137629 이수현 11137630 배창원 11137632 김기표 11137636 조원석 11137640 김태형 11137647 김용신 11137651 신상훈 11137654 조정명 11137659 이종기 11137663 홍계선 11137664 김상준 11137671 김태영 11137676 정진우 11137681 김종수 11137682 노영진 11137685 기수현 11137687 최희정 11137694 성병규 11137695 신동호 11137696 박종일 11137704 이상섭 11137705 강형래 11137712 김형규 11137717 김정민 11137718 고은별 11137721 안성용 11137722 설정은 11137726 한종훈 11137729 이재훈 11137730 박주송 11137742 이금호 11137752 김한규 11137772 이지은 11137774 이진욱 11137775 류수홍 11137785 김창균 11137802 황영주 11137805 조선영 11137807 김지현 11137814 강기남 11137815 이정기 11137820 구본준 11137822 최윤환 11137823 하대영 11137829 이재만 11137831 오대호 11137842 김지훈 11137843 김차곤 11137844 정성균 11137849 채동우 11137851 천대원 11137855 김병채 11137861 류상훈 11137866 성정훈 11137876 조은수 11137877 김주영 11137892 박진석 11137903 김태우 11137907 김계현 11137911 권은집 11137913 임호현 11137914 고정한 11137916 한재상 11137921 유영춘 11137930 최미라 11137937 정재헌 11137938 구정훈 11137940 유진범 11137942 황인목 11137957 박정교 11137960 박성구 11137963 조무연 11137966 임웅찬 11137968 김덕은 11137971 이석동 11137976 정재호 11137987 이광철 11137989 김수홍 11137991 김경준 11137992 이규원 11138004 이상헌 11138017 박헌홍 11138020 전은한 11138024 박현진 11138025 정원석 11138026 김태윤 11138030 오주석 11138031 이민규 11138035 장진호 11138039 김장범 11138041 최재홍 11138049 정상권 11138050 김보현 11138063 정수현 11138072 이항영 11138074 노홍기 11138075 김성후 11138076 남신향 11138077 조용일 11138086 김승남 11138088 박길환 11138092 노영재 11138095 안민영 11138096 이 성 11138097 이승학 11138099 강영철 11138101 이누리 11138103 주범석 11138107 김지언 11138108 정병환 11138110 최유덕 11138111 김병조 11138113 최보현 11138117 이정환 11138131 이현백 11138132 안상섭 11138134 이인환 11138141 고임석 11138148 박민준 11138150 강지훈 11138151 황민서 11138152 정영주 11138156 정영대 11138162 김성민 11138164 이원상 11138166 전현정 11138171 노석준 11138174 김은경 11138175 김태종 11138176 신도욱 11138177 강태훈 11138179 김명옥 11138183 송규현 11138184 한문혁 11138187 노미정 11138188 구민회 11138194 김진규 11138196 양홍석 11138200 김호장 11138202 윤제영 11138203 이시전 11138205 최용호 11138208 정광연 11138209 박세진 11138213 김 혁 11138217 김상윤 11138220 이형우 11138229 김재진 11138230 최준영 11138237 유지연 11138238 이용주 11138239 남수연 11138250 박정혁 11138257 이현석 11138260 소순식 11138264 김승휘 11138266 박수정 11138267 홍수원 11138268 조은경 11138271 이호명 11138272 김 해 11138274 마창규 11138277 최지수 11138281 박경택 11138286 용태호 11138290 최우진 11138294 박주언 11138296 이태호 11138306 전휴정 11138307 정혜운 11138308 강호민 11138309 구본우 11138317 배윤경 11138319 남태욱 11138324 김국식 11138326 임상빈 11138328 김소현 11138330 정경주 11138332 우진택 11138333 김현우 11138338 이성우 11138342 최형승 11138343 조영욱 11138346 최영휘 11138349 하 령 11138355 이경은 11138360 강희경 11138364 공성록 11138365 박현경 11138366 강은옥 11138367 김지연 11138379 안재열 11138383 송봉주 11138384 허성규 11138385 김보현 11138386 남연화 11138387 송지훈 11138393 안용식 11138408 김대홍 11138409 임상수 11138412 김지영 11138413 박성범 11138414 안순섭 11138419 차현철 11138425 조성재 11138431 김정찬 11138433 김이경 11138445 최재욱 11138448 장영일 11138449 오흥록 11138455 정용진 11138457 김종철 11138460 박윤희 11140001 옥치돈 11140100 문은경 11140242 이용관 11149012 정영호 11149022 이보현 11150092 이정기 11150200 최일환 11159006 손영찬 11159014 조진규 11159019 이태순 11169004 이상옥 11169010 김민조 11169012 이유희 11169015 김영호 11169018 차병문 11169019 이희우 11169021 문 옥 11169023 소정운 11169024 강판천 11169028 김성운 11169029 추길환 11169031 김경지 11170002 한호동 11170131 유병진 11170151 이용희 33300007 윤도연 33300011 박성용 33300018 조 인 33300029 김기천 33300043 최종혁 33300089 부광득 33300115 장재원 33300322 성종훈 33300444 최재만 33300465 안수정 33300472 정윤섭 33300508 문형석 33300514 김주연 33300524 윤지혜 33300528 이수웅 33300536 손경애 33300542 김광훈 33300575 박지영 33300585 김민규 33300587 복동일 33300616 조용민 33300689 이장욱 33300708 박원철 33300738 홍종기 33300746 정현주 33301137 이학승 33301220 오지연 33301248 서재식 33301468 서종수 33301560 김수연 33301631 오만석 33301632 송명현 33301690 사공민 33301691 성미경 33301732 김진필 33301764 김은미 33301800 박진무 33301849 김승룡 33301947 김은수 33301959 주장선 33302050 김광중 33302216 송준구 33302260 신지현 33302264 지영선 33302382 심홍걸 33302407 윤수정 33302425 남궁태형 33302452 박준석 33302468 유종권 33302478 김미은 33302539 이진규 33302596 이소정 33302607 손은영 33302634 이향희 33302647 심재광 33302657 박준상 33302670 김봉진 33302721 차정현 33302842 강연욱 33302846 류인성 33302888 곽정훈 33303003 이혜민 33303009 고세경 33303040 장재원 33303041 김기원 33303046 이중재 33303049 최용대 33303098 이환범 33303112 이용구 33303122 박상배 33303178 육삼신 33303186 김도현 33303225 김용진 33303228 이강임 33303234 조상준 33303358 나수진 33303395 허승혜 33303396 지현정 33303397 김지영 33303398 구은미 33303422 박희성 33303490 주수옥 33303510 김광남 33303568 성승용 33303718 이민형 33303754 김호용 33303756 진수장 33303764 조영성 33303775 이기숙 33303870 이종근 33303972 채명성 33303982 이 석 33303999 이성환 33304025 김승주 33304236 박영준 33304278 김태형 33304326 민병국 33304473 이주성 33304479 임주호 33304505 심승우 33304509 나 경 33304610 이주희 33304625 장재덕 33304741 서범석 33304792 김창규 33304819 방종훈 33331016 박향철 33331020 이지현 33331101 김종운 33331119 조준우 33340049 김병준 33340126 김성현 33340153 우 철 33340219 조재철 33350028 오영진 33350125 이미정 33350126 손주환 33350129 이국희 33360055 정몽구 33360208 류재규 33370051 김완수   군법무관임용시험 합격자 명단 (응시번호순) 22209011 이인희 22209013 배 찬 22209017 김난형 22209019 엄세용 22209025 고건영 22209032 박성완 22209081 윤현정 22269003 박성희 33300017 배상윤 33301372 최정윤 33301606 이지훈 33302601 구영우 33302996 김민정 33303091 이명재 33304622 손복희  
  • [씨줄날줄] 김유정驛/이용원 논설위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빙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가 작다)”/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김유정(1908∼1937)의 단편소설 ‘봄봄’의 한 대목이다. 발표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인데도 읽는 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끔 만드는 매력은 여전하다.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다닌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지적인 오만함, 도회(都會)의 냄새가 스며들 틈이 없다. 고향마을에서 함께 산, 그리고 지금도 농촌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 움직인다. 딸을 미끼로 어리숙한 노총각을 4년째 새경 없이 부려먹는 ‘장인님’이나, 멍청한 듯하면서 이악스러운 ‘장인님’에 끝까지 맞서는 ‘나’는 모두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김유정이 태어난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고 ‘김유정문학촌’이라 이름 붙은 기념관이 있다. 게다가 4월 말에 열리는 김유정문학제를 비롯해 절기에 맞춘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이만 해도 으뜸의 대우를 받는다 하겠는데 경사가 하나 더 생겼다. 실레마을 앞 신남역이 1일 이름을 김유정역으로 바꾼 것이다. 역에 사람 이름이 붙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춘선에서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신남역은 1996년 TV드라마 ‘간이역’의 무대가 돼 한때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하루에 일곱번 열차가 서는 작은 시골역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김유정역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문학애호가들의 눈길을 끄는 명소가 되리라. 김유정역뿐이겠는가. 우리 문화·역사를 살찌운 이들의 이름이 방방곡곡에서 되살아난다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씨줄날줄] 자학사관/이기동 논설위원

    위태위태하게 대치하던 이 땅의 진보·보수진영이 엉뚱하게 ‘자학(自虐)사관’을 매개로 공개 일합을 겨루었다. 뉴라이트(New Right)운동을 내건 자유주의연대가 창립선언문에서 “노무현정권은 자학사관을 퍼뜨리며…과거와의 전쟁에 자신의 명운을 걸고…”운운하자, 한 친노(親盧)인터넷 매체가 곧바로 “자학사관 운운하는 자유주의연대는 일본 극우파와 쌍둥이…”라고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자유주의연대가 자학사관을 언급한 취지에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과거사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를 논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하나 ‘자학사관’이란 단어를 쓴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일본 극우파들은 과거 일제가 자행한 난징학살, 위안부 등에 대해 사죄하자는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자학사관이라고 반박한다. 자유주의연대는 자신들의 진의를 왜곡한 사이버테러라고 항변하나, 한치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는 전장에서 이런 용어를 쓴 것은 큰 실수다. 신지호 교수 등 운동권 출신 486지식인들이 모여 극우와 극좌를 모두 배격하고, 여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다원주의 사회건설에 이바지하겠다며 나선 게 뉴라이트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지적풍토는 이들이 추구하는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내 눈에는 올드(old)라이트와 구분이 안 된다.”는 열린우리당 유시민의원의 반응은 일찍이 예견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급기야 뉴라이트를 한국판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까지 등장하자, 자유주의연대는 인터넷 매체를 향해 이달말까지 공개토론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한바탕 이념전이 눈앞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좌우와 진보·보수, 여기에 민족주의와 반미친북, 친노·반노까지 가세해 피아구분도 안 되는 일대 혼전이 벌어질 것 같다. 자유주의연대는 일제와 6·25를 겪은 이 땅에서 순수한 이념논쟁이 가능하다고 진정 믿는 것일까. 자유주의연대는 출범 일주일이 채 못돼, 이렇게 진보세력의 최대 공격목표가 되고 말았다.‘보수는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진보의 오만은 배격돼야 하지만, 이런 척박한 지적 풍토까지 포용하는 것은 뉴라이트운동의 과제다. 하지만 아직 이들의 내공이 여기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권 친위대들의 천박하고 비열한 궤변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진지한 지적 토론속에서, 유연한 대안 이념의 출현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물건 팔고 싶으면 ‘USA’ 티내지마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기업 브랜드에서 미국을 지워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 색다르면서도 심각한 과제를 던져줬다. 전세계적으로 고조되는 반미 분위기 속에 앞으로 4년간 어떤 생존 전략을 세워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국가 브랜드 전문가인 사이먼 안홀트는 “미국이 부시의 재선이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던졌다.”면서 “이제는 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오는 ‘역풍’을 기다릴 차례”라고 말했다. 안홀트는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정부와 유엔, 세계은행 본부의 브랜드 이미지를 자문해주고 있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브랜드 전문가이다. 안홀트는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 2.0’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세계속에서 미국의 국가 브랜드는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면서 “이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각국의 반대가 너무 심해 미국의 기업과 문화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진단했다. 안홀트는 상품과 서비스가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화 시대에도 기업의 상품은 국가 브랜드의 후광을 크게 받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만든 품질좋은 현대보다 독일이 제작한 BMW가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 벨기에 초콜릿이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 영국산보다 훨씬 잘 팔리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안홀트는 현 단계에서 미국의 국가 브랜드는 ‘뚱뚱하고 오만하고 석유를 탐닉하며 권력에 굶주린 카우보이’라고 규정하고 “현재 세계 최고 브랜드의 63%가 미국 기업의 것이지만 4년 뒤에는 얼마나 남아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광고업계, 학계 및 정책담당자 연합체인 BDA의 카리 에그스퓨얼러도 “반미감정이 전세계 지역과 산업분야 전반에서 미국 기업의 이익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홀트는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코카콜라에 대항해서 어느 나라에 ‘메카 콜라’라는 상품이 등장하는 식의 대응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대응이 성공할 가능성도 작다고 분석한 뒤 “예컨대 독일의 레스토랑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받지 않는 식의 반응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측했다. 안홀트는 이에 대해 “하루빨리 미국이라는 브랜드를 벗어던져라.”고 충고하고 기업 고유의 브랜드 강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어 “해외시장에서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와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사업의 운명이 달린 것처럼 윤리적 경영에 힘쓰라.”고 주문했다. 에그스퓨얼러도 “현지 시장을 샅샅이 파악해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반미감정도 시장 조사의 주요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dawn@seoul.co.kr
  • [Doctor&Disease]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박사

    [Doctor&Disease]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박사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암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는 반면 발병 유형이나 전파의 속도가 훨씬 위협적인 감염성 질환의 문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질환이 얼마나 가공스러운지는 조류독감이나 사스 파동으로 입증됐지 않습니까? 암은 개인의 고통일 수 있지만 감염질환은 국가나 인류의 재앙일 수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ANSORP)’대표로 이 문제에 관한 WHO의 아시아권 파트너이기도 한 송재훈(47·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 박사는 ‘항생제 내성(耐性)’에 대해 묻자 작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의 경고가 허풍이 아니라 의학적 진정성을 가진 현실의 문제라는 점은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막막했다. ‘인류의 재앙’이 항생제 내성에서 비롯된다는 말인가. -그렇다.1940년 ‘기적의 약’이라는 페니실린이 임상에 사용된 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지만, 세균은 인간보다 앞서 이런 약제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왔다. 세계적인 세균학자들이 ‘항생제로 미생물을 박멸하겠다는 발상은 오만이자 착각’이라고 뼈아픈 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현재의 첨단 의학도 이 미생물을 어쩌지 못한다. 통상 한가지 신약 개발에 10∼15년이 소요되는 반면 세균이 이 신약에 맞설 내성을 갖추는 기간은 길어야 1년이다. 이게 재앙의 근거다. 약제에 대한 세균의 적응이 그렇게 위협적이란 말인가. -1940년 페니실린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1950년대에는 포도상구균의 90%가 이 약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었다. 이 내성균을 치료하기 위해 10년이나 연구해 1960년 메티실린을 개발하자 불과 1년 뒤에 MRSA라는 내성균이 생겼다. 또 이 내성균에 듣는 반코마이신이 개발됐지만 머지않아 또다른 내성균이 나타났다. 바로 ‘슈퍼박테리아’다. 정말 두려운 일이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이미 세계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일단 내성균이 발생하면 전파는 순식간이기 때문이다.WHO도 이를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폐렴구균 내성률이 70%,MRSA 내성률은 80%로 세계 최고수준인데, 이게 문제다. 송 박사는 항생제 내성의 문제가 특히 사망률과 사회·경제적 파급효과에서 두려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성률이 70%라는 건 10개의 균주 가운데 7개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이렇게 말한다.“일단 내성균에 감염되면 질병 치사율이 최소 2배에서 최대 13배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실제로 약제에 반응하지 않는 신종 ‘다재내성결핵균’에 감염된 환자 1명의 치료비가 일반 환자의 100배나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약분업 이후 오·남용 사례가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성균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도 문제다. 이는 내성균 문제가 한 지역이나 국가, 권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근거가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내성 문제를 다룰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급 병원이나 국가 차원의 내성균 감시·조사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는 이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는 의사도 많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스나 조류독감을 항생제 내성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접촉으로 전파되는 사스보다는 조류독감이 훨씬 심각하다. 올 겨울이 위기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게 만약에 대인(對人)전파능력만 갖춰지면 가히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걸 통제하려면 항바이러스제제 확보가 관건인데, 백신 제조능력이 없는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선 사스 파동때 보았듯 우리나라의 질병 조기대응체제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는 점이다. 송 박사는 조류독감과 같은 바이러스의 출현은 매우 위험한 징조라며 이렇게 덧붙였다.“독감은 호흡기전염으로 통제가 안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위협입니다.WHO가 깊이 고민하고 국제 공조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인데, 중국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 WHO와 전 세계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며 바짝 긴장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소강국면이지만 올 겨울이 고비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지금 이게 터지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미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질병보다 국가안보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콩고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문제가 됐을 때도 미국CDC(질병통제센터)가 제일 먼저 출동했다. 반면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예산도 미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하고, 감염문제를 다룰 의사도 전국적으로 50명 정도다. 이런 체제로는 예측할 수 없는 질병에 맞서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ANSORP같은 기구를 정책적으로 지원,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는 “항생제 내성의 문제는 인류가 마주칠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의 공유가 중요하다.”며 “정부는 물론 의·약사와 환자, 제약회사가 합의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향후 10∼20년 뒤에는 페니실린 개발 이전의 혼란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송재훈 박사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서울중앙병원 감염내과 교수▲미국 마요(Mayo)클리닉 감염내과 교환교수▲현,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 성균관의대 내과학교실 교수▲현, 항생제 내성감시를 위한 아시아네트워크(ANSORP)대표 및 아시아·태평양 감염연구재단 이사장
  • [사설] 美 우파의 오만함을 경계한다

    보수성향의 한 미국 학자가 본지와의 인터뷰(11월10일자)에서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부시의 재선을 비상사태로 봤다더라. 부시의 낙선을 바란 청와대 인사가 누군지 안다.”고 운운한 것은 충격적이다. 당사자인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한반도전문가로, 그가 속한 미국기업연구소(AEI)는 부시행정부의 보수기조를 뒷받침하는 핵심 싱크탱크이다. 발언내용이 부시행정부내 정서의 일단을 대변했다면 지나칠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발언이 한·미관계를 다루는 학자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만약 대선 승리감에 도취한 부시행정부내 강경 우파들 사이에 이런 고압적이고 오만한 한국인식이 퍼져 있다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이번 미국대선은 미국내뿐 아니라 국제여론까지 첨예하게 대립시켰다.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반대해온 프랑스·독일 정부가 공공연히 부시의 재선에 반대입장을 피력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 역시 부시 재선을 반대한 쪽으로 분류됐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근거 없는 분류이다. 발언내용을 접한 청와대 고위인사도 부시 재선을 반대한 우리쪽 인사가 누군지 알면 가르쳐 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그동안 한·미간에 크고작은 고비가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양국관계가 더욱 평등하고 균형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진통으로 보면 된다. 미국 우파들의 오만한 ‘한국 때리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 조야의 반한 분위기 해소에 주력하기 바란다. 북핵 6자회담 재개와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기지 이전, 이라크사태 등 앞으로 양국간 협조가 긴요한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국익 추구라는 대원칙을 지키되,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할 언동은 자제해야 한다. 때마침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방미중이고,20일쯤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양국 정부 모두 바람직한 동맹관계 재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 “안 오르면 후회” 제주 오름 트레킹

    “안 오르면 후회” 제주 오름 트레킹

    육지에는 겨울이 오고있지만, 제주는 가을에 점령됐다. 도로가의 억새가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고 돌담 안, 밀감밭에는 노랗게 익은 귤들이 이국적이다. 제주도에선, 그것도 가을의 제주도에선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그 유명한 성산일출봉도 아니고 우도, 섭지코지도 아니다. 바로 ‘오름’이다. 여기저기 야트막하게 솟아있는 제주도 오름에서 늦게 만난 가을은 아쉽게 떠나보낸 서울의 가을보다 더 감미로웠다. 가을 제주도의 오름에 올라보지 않고 제주도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그건 오만이다, 무지(無知)다. ●오름에서 맞이하는 아침 제주도에 있는 기생화산구인 오름은 제주사람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이다. 이름없는 민둥산처럼 보일지라도 예로부터 부르던 이름이 있고 나름의 전설과 사연이 깃들여져 있다. 또한 오름은 사람들이 마을제사인 포제를 지내는 곳이며 땔감을 구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말과 소를 방목해서 기르는 천연목장이며 아이들이 여름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를 꺾고 노는 자연학습장이자, 겨울철에는 썰매를 타고 노는 놀이터다. 오름은 아직 관광지로 개발이 된 곳이 별로 없다.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다. 그래서 포털사이트 다음의 ‘제주오름사랑’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일출이 아름다운 밧돌오름으로 가기로 했다. 새벽 5시, 약속 장소인 대천동 사거리로 향했다. 숙소였던 중문에서 1시간 거리였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건만 회원들은 모두 모여 있었다. 오명필(42)회장은 “오늘은 송당에 있는 안돌, 밧돌이란 2개의 오름을 올라 일출을 본다.”고 회원들에 이야기한 후 먼저 밧돌오름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비포장 나무숲을 따라 20분을 가자 오른 편으로 오름이 나왔다. 그러나 마땅히 등산로가 없었다. 산과 달리 오름은 내 발길이 가는 곳이 바로 길인 것이다. 삼삼오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발목까지 올라오는 풀들을 밟으며 걷는다. 자유롭다, 편안했다. 마치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부드러운 선을 닮은 길을 지나갔다. 발밑에 와닿는 풀의 폭신함과 새벽이슬의 신선함이 잠들어있던 나의 세포를 깨우기 시작한다. 평지를 지나는가 했더니 오르막이 시작됐다. 어느새 숨이 거칠어진다. 어슴푸레 보이는 봉긋한 봉우리는 내 손에 잡힐 듯 보였지만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침 안개가 깔려있는 마을과 여기저기 솟아있는 오름이 만들어내는 제주의 새벽 풍경은 무채색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아름다웠다. 제주를 벌써 세번씩이나 다녀갔건만 이런 황홀함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그동안 제주의 겉모습만 보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탁 트였다. 오름 아래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는 마치 바닷물결이 일렁이듯 넘실댔고, 이름모를 섬처럼 안개 위에 솟아있는 수많은 오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조물주가 붓을 휘저어 그린 걸작이었다.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제주의 매력에 그만 넋을 잃었다.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해가 뜬다.” 새벽 여명이 붉은 빛을 가득 뿜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구름에 덮여 완벽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시시각각 변해가는 구름의 빛깔이 더해진 제주오름에서 맞는 일출은 감동, 감동 그 자체였다.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몇차례나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로 앞에 있는 안돌오름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에는 이름모를 야생화들. 하얀색 노란색 보라색 수줍은 듯 이슬을 가득 머금고 피어있었다. 꽃향유, 쑥부쟁이, 물매화…, 아니 계절을 잊은 진달래까지. 정말 오름은 야생화의 천국이었다. 안돌오름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쇠똥, 말똥들. 오름이 천연목장임을 실감케 한다. 오름의 풀들이 길게 자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말과 소들이 풀을 뜯어먹기 때문이란다. 내려와 안돌을 오르니 어느새 7시30분이다. 회원들은 커피와 빵을 먹으며 앉아 오름의 아침을 맞이했다. 오름을 사랑하는 그들은 이야기한다.“여기는 산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가 있어요”,“오름에서 느끼는 부드러움은 꼭 어머니 품 같아요.”,“비교적 짧은 시간에 올라 제주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랬다. 그들에게 오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동네 뒷산과 같은 존재였다. 8시가 가까워지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오름을 내려왔다. 가는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철조망을 넘었다. 정말 입구도 출구도 올라가는 길도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되는 곳이 오름이다. 2시간에 걸친 오름기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오름 트레킹의 멋과 맛, 제주도의 일출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서. □오름이란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기생 화산구(寄生火山丘)를 말하며 그 어원은 ‘오르다’의 명사형이다.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는데 지질학적으로 보면 오름은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 쇄설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제주도의 오름은 주로 100만년 전후의 화산 활동결과로 이루어진 화산도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의 화산 활동은 크게 5회의 분출 윤회로 구분되며 적어도 79회 이상에 달하는 용암 분출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오름은 단단한 암석이 아니고 스코리아라는 흙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식생이 정착하여 있으므로 빗물을 머금어 물이 흐르거나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막아준다. 즉 하천이 메마르고 지하수를 얻기가 어려운 제주도에선 수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가세요 오름트레킹은 제주 에코 여행(064-763-6606)이 전문이다. 해안가 트레킹, 오름트레킹 모두 할 수 있는데 차량과 가이드비를 포함해 하루에 일인당 주말 6만원, 주중 5만 5000원이다. 고객이 원하는 코스를 만들어주는 맞춤서비스가 자랑이다. 제주도의 할인 항공권이나 숙박과 렌터카는 대장정여행사(1577-4241)를 추천한다. 일반 항공권요금에 1만∼2만원을 더하면 렌터카와 펜션을 2박 3일동안 빌릴 수 있는 다양한 패키지를 마련하고 있다. ■강추!!! 제주 오름 5곳 제주도는 386개의 오름이 있다.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산굼부리 한곳이며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대부분이 목장으로 사용돼 오름주변에는 소나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져있다. 그래서 오름트레킹을 잘하려면 철조망을 잘 넘어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도로에서 멀지 않고 가족이나 연인들이 가 볼만한 오름을 소개한다. ●아부오름 일명 앞오름. 도로변 가까이에 있어 15분이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깊이 20m, 둘레 50m나 되는 굼부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민란을 소재로 한 영화 ‘이재수란’의 주요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안쪽 등성이는 바깥에 비해 가파른 편이고 넓은 바닥에는 삼나무가 심어져있다. 영화 촬영 당시에는 이 곳에 촬영 세트가 세워졌지만 촬영이 끝나자 모두 철거돼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천사거리에서 1112번 도로를 타고 구좌읍쪽으로 5분 정도 가다보면 삼거리를 만난다. 거기서 수산리쪽으로 우회전을 해서 3분 정도를 가면 삼거리. 거기서 좌회전을 해서 3분정도 가면 좌측편에 앞오름이라는 돌푯말이 나온다. 차는 길에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면 된다. ●백약이오름 백가지 약초가 자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백약이’이다.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아도 푸근함이 풍기는 오름이다. 밑에는 소황금이라는 야생화의 자생지로도 잘 알려져있다. 백약이는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하며 분화구는 둘레가 1500m 깊이 49m로 제법 큰 화산체이다. 오름의 한쪽으로는 삼나무 숲, 반대편은 풀밭을 이루고 있는데 이쪽으로는 완만하여 오르기 쉽다. 이곳에 오르다 보면 말이 뛰어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어 정겹다. 백약이에 오르면 널찍한 분화구가 먼저 보이는데 내부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 마치 원형 돔 축구장을 보는 듯하다. 내려가서 둘러봐도 좋다. 분화구의 트랙이 올록볼록하게 높고 낮은 물결처럼 길을 이루고 있어 오르락내리락 걸어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백약이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솟아난 오름들을 볼 수 있는데 ‘송당’지역이 오름의 천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아부오름을 가는것 처럼 1112번도로 대천동 사거리에서 구좌읍쪽으로 가다가 수산2리로 우회전을 해서 10여분을 달리면 오른쪽으로 시멘트 포장된 조그만 길이 나온다. 이기로 3분 정도를 들어가면 ‘소황금자생지’라는 푯말이 나온다. 여기가 백약이다. ●용눈이오름 능선의 곡선이 아름다운 오름을 꼽으라면 당연히 용눈이오름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이 오름은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내려 기이한 경관을 빚어내며 오름 대부분이 연초록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성이마다 왕릉 같은 새끼봉우리가 봉긋봉긋하고 오름의 형세가 용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라는 데서 용논이(龍遊), 또는 마치 용이 누워 있는 형태라는 데서 용눈이(龍臥)라고 불린다. 오름 기슭에는 용암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언덕이 산재해 있다. 송당 사거리에서 16번도로로 15분을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화도’라는 이정표를 보고 죄회전하면 된다.10분 정도 달리면 돌로 테두리를 한 무덤들이 나온다. 바로 거기가 용눈이오름의 시작이다. 무덤들 앞을 잘 살펴보면 용눈이오름표지석이 보인다. ●수월봉 아름다운 제주바다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오름이 수월봉. 한라산과 차귀도, 당오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수월봉에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캐러 왔다가 동생 수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오빠인 노꼬가 17일 동안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이 절벽 곳곳에 솟아나 샘물이 되었다는 애틋한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이 오름은 남쪽면에 기상대가 있어 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12번도로로 대정을 지나 한경으로 접어들어 고산사거리에서 죄측으로 수월봉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산굼부리 천연기념물 제263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마르(Marr)형 화구 관광지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오름이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한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주차장에서 40분이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입장료는 3000원. 조천읍 교래리 사거리(1112번 도로와 1118번 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1112번도로 구좌읍쪽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에 산굼부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도 가보세요 제주도의 11월은 노란색이다. 봄의 유채꽃보다 약간 짙은 색깔로 어딜 가도 노랗게 익은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제주도 귤밭에서 가족들과 귤을 따는 것도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제주도에는 많은 체험농장이 있지만 최남단 감귤농장(064-764-7759)은 사계절 내내 수확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확한 귤은 자신이 직접 살 수 있는데 무농약 감귤이 5㎏기준으로 1만 5000원이다.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가을에는 바다속 시야가 좋아 잠수함체험이 인기다. 특히 마라해양군립공원내 송악산부근 바다를 구경하는 남제주 안덕면에 있는 제주잠수함(064-794-0200)을 추천한다.30분간의 바다속 여행에 다이버들이 수백마리의 줄돔, 볼락 등 물고기를 몰고 다니는 아름다운 산호섬도 놓치면 섭섭하다. 어른 4만 9500원, 아이 2만 9700원. 잠수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해저탐험증을 선물로 준다. 글 · 사진 제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한나라 “미흡하지만 고민흔적 보여”

    한나라당은 9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과를 표명한 형식과 내용 모두에 미흡하다고 실망하면서도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강경 일변도에서 호의적인 자세로 달라진 분위기여서 등원 가능성을 한껏 높게 했다. 물론 최종 등원 여부는 10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정하겠지만 현재로선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려운 쪽으로 바뀌는 것 같다. 박근혜 대표는 이 총리의 사과 직전 가진 긴급 원내대책회의에 이어 바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뒤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서 의원총회에서 당론을 모으겠다. 항상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오지 않았느냐.”고 등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여옥 대변인은 “이 총리로서는 고심어린 역작이었던 것 같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인 뒤 “책임 총리로서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국회의장과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사과를 종용당하면서 마지못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책임총리로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고 토를 달았다. 한나라당에서는 국회 파행이 길어질수록 여론이 악화될 것에 대비해 어떤 형식을 취하든 등원을 하자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소장 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모임’도 긴급 모임을 갖고 이 총리의 사과 여부에 상관없이 ‘정치적 파면’을 선고하고 전격 등원하자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면 이 총리가 이강진 공보수석의 성명 형식으로 입장을 밝힌 것과 한나라당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가 언급되지 않은 것에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도 잇따랐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진솔한 사과로 보기 어렵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에 대한 사과도 국회에 대한 사과도 아니다.”면서 “마지못해 사과하는 듯한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등원 여부에 대해 “의총에서 논의하면 난상토론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지도부에서 ‘등원 결단’을 해서 결정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입장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중도파 성향의 ‘국민생각’의 회장인 맹형규 의원은 “성의있는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총리 사과에 연연하지 말고 등원하되 파면권고결의안을 제출해 총리와 국정을 의논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당내 보수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자유포럼’의 이방호 의원은 “사의를 간접 표현한 것에 불과하고 오만한 태도를 그대로 나타냈다.”면서 “이 총리의 유감 표시와 관련없이 당 자체적으로 등원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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