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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佛 샤퀴테리, 伊 살루미…돼지의 화려한 변신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佛 샤퀴테리, 伊 살루미…돼지의 화려한 변신

    하루 10시간 넘게 빡빡하게 진행된 요리학교 수업. 마치는 순간만을 온종일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건 지루하거나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그곳’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누리던 모든 걸 뒤로하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홀로 지낸다는 건 기대보다 그리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생활 동안 가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 갖가지 돼지 가공품을 파는 ‘살루메리아’였다.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돼지 가공품에서 나는 비릿한 고기 냄새와 짠내, 퀴퀴한 곰팡이 내음으로 가득한 공간. 진열장에 놓인 살루미를 넋 놓고 구경하는 동안에는 걱정과 불안이 느껴지지 않았던 탓일까. 수업이 끝난 후 발걸음은 언제나 근처 살루메리아로 향했다. 여러 가지 살루미를 조금씩 사서 기숙사로 돌아와 와인 한 병을 딴 채로 앉아 그날 수업을 정리하는 건 하루를 마감하는 나만의 조촐한 의식이었다.이탈리아에서 돼지고기로 만든 육가공품을 통틀어 살루미라고 한다. 여기에는 돼지 뒷다리로 만든 생햄인 프로슈토부터 말린 소시지인 살라미, 삼겹살을 염장해 만든 판체타나, 볼살로 만든 관찰레, 목살로 만든 코파 등이 포함된다. 살루미를 파는 가게를 살루메리아라 부른다. 살루미는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돼지의 살코기뿐 아니라 각종 부속물을 소금에 절여 보존기한을 늘리고 맛과 풍미를 더한 육가공품은 고대부터 유럽인에게 사랑받는 식재료였다.당시 살루미를 만드는 기술은 문명국 로마제국보다 그들이 야만족이라고 무시했던 게르만족이 한 수 위였다. 농경보다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게르만족인지라 고기를 염장한 후 가공하는 기술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로마인은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 지역에 살던 게르만족에게 와인을 수출하고 육가공품을 수입했다. 특히 지금의 프랑스 지역에 거주하던 게르만 일파인 골족의 육가공품을 선호했다. 부유한 로마인들에게 골족이 만든 육가공품은 연회에 필수적인 음식으로 통했다. 그 때문일까.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육가공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에서는 육가공품을 일컬어 샤퀴테리라고 한다. 이탈리아 살루미 협회에 등록된 살루미 종류는 2백여 가지지만 프랑스에 알려진 샤퀴테리 종류는 두 배가 넘는다. 살라미와 비슷하게 생긴 소시송이나 프로슈토의 친척뻘인 잠봉, 곱게 간 돼지고기에 닭이나 오리의 간을 섞어 만드는 파테와 테린 등이 대표적이다. 소금에 절이는 것뿐 아니라 익히고 찌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샤퀴테리는 살루미와 마찬가지로 주로 차가운 상태에서 제공된다. 메인 메뉴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로 나오거나 간단한 와인 안주로 가볍게 먹는 용도로 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선 나라마다 특색 있는 육가공품을 찾아볼 수 있다. 살라미에 훈제한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스페인의 초리조, 독일의 익힌 소시지 부르스트도 대표적인 육가공품이다. 부르스트는 고기를 곱게 갈아 각종 향신료를 넣고 유화시킨 후 케이스에 넣어 익혀서 만든다. 익히지 않고 말려서 발효시킨 살라미나 초리조와 비교하면 덜 짜고 한 끼 식사로 그냥 먹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 프랑크소시지, 비엔나소시지 등으로 알려진 소시지가 그런 것들이다. 부르스트가 우리에게 익숙한 소시지의 맛이라면 살라미와 초리조는 폭발적인 감칠맛을 자랑한다. 얇게 썰어낸 살라미 한 조각을 씹으면 입안에서 짠맛과 감칠맛이 짜릿하게 느껴진다.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드는데 이럴 땐 성스러운 보혈, 붉은 와인 한 모금이 필요하다. 살루미나 샤퀴테리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육가공품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나 염소, 오리, 닭 등 다양한 고기를 이용한 제품도 흔하다. 재미있는 건 어디서 만드는지,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어떤 레시피로 만드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육가공품의 반대편에는 장인들이 만드는 개성 넘치는 육가공품들이 있다. 살루미나 샤퀴테리를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레시피만 안다고 해서 단번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온전히 경험과 노력에서 나오는 산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하나의 잘 만든 공예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 국내에서 살루미나 샤퀴테리 같은 육가공품을 만드는 건 어렵다고 했다. 풍토와 재료가 유럽과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로 된 육가공품을 맛보려면 유럽에 가거나 수입된 제품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엔 사정이 나아졌다. 도전적이고 열정 넘치는 요리사들이 주축이 되어 국내에서도 유럽식 육가공품을 만드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내 사정에 맞게 유럽과는 차별화되는 맛으로 국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 동네마다 차고 넘치는 카페 대신 개성 있는 육가공품 가게가 하나둘 들어서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파스타를 산뜻하게 즐기는 방법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파스타를 산뜻하게 즐기는 방법

    호된 겨울을 겪었기 때문일까. 사계절 중 유독 봄이 반갑다. 비록 미세먼지와 황사란 불청객이 수시로 찾아오긴 하지만 지난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었던 만큼 작은 날씨 변화도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봄을 느끼는 방법은 많다. 한껏 얇아진 봄옷을 입고 개나리꽃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걷거나 쉬는 시간에 잠깐 테라스에 앉아 포근한 햇살을 만끽하며 망중한을 느끼는 것도 봄에 할 수 있는 일이다.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에서 보낸 그해 4월은 그동안 겪어 왔던 어떤 봄보다 극적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칙칙한 들판이 초록빛으로 가득 찼다. 운동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절로, 밖에 나가 뛰게 만드는 풍경이랄까. 주말 오전마다 읍내 주변 포도밭을 하염없이 달렸다. 하루는 한 할머니가 언덕에서 무언가 캐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쑥이 자라나 싶어 호기심에 다가갔다. 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것은 바질이었다. 이미 한 봉지 가득 바질 잎을 담은 할머니는 봄이라 집에서 바질 페스토를 만들 거라고 했다. 싱그러운 바질 향 가득한 페스토를 듬뿍 넣은 파스타는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봄을 느끼는 방법 중 가장 풍요로운 방법이리라.페스토란 일종의 양념장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식물과 견과류 그리고 오일을 으깨서 뒤섞어 놓은 이탈리아식 퓌레다. 퓌레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과일이나 채소를 으깨서 걸쭉하게 만든 액체로 토마토 과육이 느껴지는 토마토소스를 생각하면 쉽다. 그대로 먹기도 하고 다른 요리에 첨가되거나 바탕이 되는 역할을 한다. 페스토는 주로 빵에 펴 발라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 쓰인다. 페스토의 대표주자는 바질 페스토다. 이탈리아 리구리아 지방의 제노바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페스토 알 바질리코, 페스토 제노베제로 통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질과 잣, 마늘, 치즈, 소금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절구에 한데 넣고 으깨서 만든다. 싱그럽고 달콤한 바질과 치즈의 감칠맛, 그리고 올리브 오일의 풍미가 한데 어우러져 한 입 베어 먹으면 봄이 입안에서 춤추다 못해 폭발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왠지 봄과 폭발은 어울리지 않지만, 입안에서만큼은 가능한 일이다. 바질 페스토를 한 입 먹어 보면 리구리아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천재적인 생각을 해낸 것일까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음식의 출발은 재료다. 산지가 많은 리구리아가 자랑하는 식재료는 잣과 품질 좋은 올리브다. 여기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허브인 바질과 마늘, 그리고 치즈가 더해져 페스토가 탄생했다. 재미있는 건 리구리아와 접해 있는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 지방에 비슷한 음식이 있다는 점이다. 이름도 비슷한 피스투다. 페스토와 다른 점은 잣과 같은 견과류를 넣지 않고 묽게 만들어 수프로 먹는다는 정도다.제노바와 멀리 떨어진 남쪽 섬 시칠리아에도 페스토의 사촌이 존재한다. 시칠리아 서쪽 끝 트라파니 지역의 페스토 트라파네제가 그 주인공이다. 트라파니식 페스토는 제노바식과 몇몇 재료에서 차이가 난다. 바질과 올리브 오일은 동일하지만 트라파네제에는 잣 대신 아몬드가, 그리고 약간의 토마토가 들어간다. 제노베제가 싱그러운 녹색 빛깔을 자랑한다면 트라파네제는 토마토 때문에 붉은빛을 띤다. 이 때문에 붉은 페스토, 페스토 로소라고도 불린다. 트라파네제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시칠리아의 지중해 무역거점이었던 트라파니 항구에는 제노바 출신 항해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들은 고향 음식이 그리웠고 바질 페스토도 그중 하나였다. 한 요리사가 제노바 선원에게 팔 요량으로 잣 대신 시칠리아에 풍부한 아몬드, 그리고 때깔 좋은 토마토 등을 넣고 페스토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트라파네제 페스토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여느 음식에 대한 전설이 대부분 그렇듯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트라파니식 페스토가 시사하는 건 되도록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바질과 잣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입맛 당기는 페스토를 만들 수 있다. 페스토라는 음식이 가지는 본질적 특성, 식물과 견과류 그리고 오일의 조합이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한동안 고수 맛에 빠져 고수 페스토를 만들어 먹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고수 향이 독할 것 같지만 풍미를 부드럽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따뜻한 파스타를 만들 때 한번 프라이팬 위에서 살짝 볶아주면 향이 반감된다. 열을 가하면 향이 쉽게 휘발되는 걸 역이용한 셈이다. 고수뿐 아니라 시금치, 미나리 등 특유의 향미를 가진 채소라면 무엇이든 페스토로 만들 수 있다. 견과류는 잣 대신 호두나 아몬드, 캐슈너트, 땅콩 등을 이용해도 좋다. 각 재료의 특성과 조리에 따른 성질 변화만 알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해 자기만의 시그니처 페스토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봄나물을 이용해 페스토를 만드는 일은 봄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 ‘SF 선구자’ 큐브릭 감독 관련품 경매…총 1억2000만 원 낙찰

    ‘SF 선구자’ 큐브릭 감독 관련품 경매…총 1억2000만 원 낙찰

    ‘20세기 영화 거장’ 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의 상징적인 물건들이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에서 열린 경매에서 총 9만 유로(약 1억20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에 팔렸다. 이탈리아 경매업체 ‘보라피’의 토리노 경매장에서 열린 이번 경매에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그의 혁신적인 작품에 사용된 소품과 의상, 그리고 홍보물이 출품됐다. 이 밖에도 큐브릭 감독이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쇼핑 목록도 경매에 등장했다. 특히 영화 ‘샤이닝’에서 광기에 빠지는 주인공 잭 토랜스를 열연한 영화배우 잭 니컬슨이 입었던 재킷은 무려 1만9000유로(약 2500만 원)에 낙찰됐다. 최저 낙찰가 1만 유로(약 1300만 원)의 2배에 달하는 값이었다. 또한 큐브릭 감독의 미국 작가조합(WGA) 회원증은 경매 시작가 1000유로(약 130만 원)를 크게 넘는 1만3000유로(약 1700만 원)에 낙찰돼 이목을 끌었다. 한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공상과학(SF) 영화의 선구자로 영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영상을 만들어낸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완벽주의자로 불릴 정도로 기술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했으며 창의적인 촬영 기법으로 미려한 영상을 만들어 많은 영화 감독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진로 고민 적기는 고교” “형편 따른 격차만 키워”

    “진로 고민 적기는 고교” “형편 따른 격차만 키워”

    ‘한국에서도 갭이어(gap-year)가 가능할까.’정부가 ‘중·고교 휴학제’ 도입을 본격 추진한다. 학생들이 1년쯤 교실을 벗어나 꿈을 찾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고등학교 휴학제(의무교육인 중학교는 유예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 분야 공약이기도 하다.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입시 공부에만 매몰된 학생들에게 1년쯤 스스로를 알아볼 시간을 주겠다는 것인데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최근 ‘중·고등학교 휴학제 개선 방안’ 정책 연구를 발주했다. 중·고교에서 현재보다 휴학을 폭넓게 할 수 있도록 사유와 기간, 절차 등을 정비해 ‘휴학제 표준안’을 만드는 게 목표다. 또 휴학 기간에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휴학이 끝난 뒤 어떻게 복학시킬지 등도 검토한다. 휴학제가 도입되면 중·고교생이 약 1년간 봉사, 여행, 직업 활동 등을 하며 진학·진로의 방향을 정할 수 있어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교육당국의 기대다. 지금도 고교에서 휴학을 할 수는 있지만 사유가 질병 등으로 제한적이다. 교육부는 2022년까지 전면 도입할 ‘고교 학점제’(희망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해 배우고, 기준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와 휴학제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오디세이학교의 정병오 교사는 “학생들이 교육 과정을 떠나 진로를 고민해볼 적기는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 때”라면서 “진로교육은 교실에 앉아 적성검사를 받거나 직업의 종류를 공부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이러한 갭이어 제도가 일반화돼 있다. 여행, 진로 교육, 강연 등 갭이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방학 등을 이용해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는 청소년 층의 문의가 전년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교육당국은 특히 학교의 교육 방식과 맞지 않거나 또래 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휴학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보통 자퇴하는데 휴학제가 있다면 일정 기간 등교하지 않아도 공교육 안에서 진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학교 밖 체험 프로그램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휴학제부터 도입하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현재 시행 중인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대도시와 농어촌 간 학교 밖 프로그램의 차이가 커 문제인데 같은 문제를 답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 형편이 좋은 학생들만 휴학제를 활용해 학생 간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엽 한국교육개발원 박사는 “학생들에게 진로 고민의 시간을 준다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휴학 뒤 해외연수나 사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 간 차이가 벌어지고 학교를 다니기 싫은 아이들이 휴학을 남발하는 부작용 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유럽 사회와 비교해 또래의 집단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1년을 쉰 뒤 복학하면 1살 어린 학생들과의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식 쌀 요리, 파에야와 리소토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유럽식 쌀 요리, 파에야와 리소토

    “이탈리아 요리라는 건 없다.”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식문화를 가르치던 엔리코 교수가 말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겠다고 유학 온 학생들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의 뜻은 각 지역마다 고유한 요리와 식문화가 있기에 ‘어느 지역 스타일의 요리’라는 건 있어도 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의 상징과도 같은 파스타와 피자는 남부, 리소토는 북부의 음식이다. 이탈리아 전통요리라는 책을 펼쳐 놓고 세심하게 살펴보면 재료부터 조리법까지 워낙 다른 것이 많아 하나로 묶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이런 느낌을 스페인에서도 받았다. 워낙 땅도 넓고 역사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곳이라 지역마다 요리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스페인도 언어와 문화가 달랐던 지역을 한데 묶어 탄생한 나라다. 오늘날 스페인 내에서 카탈루냐나 바스크인들의 독립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스페인 식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스페인 요리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스페인 요리는 없다”고 답하리라.그래도 ‘스페인 요리’ 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건 파에야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파에야라고 하면 널따란 팬에 담긴 쌀, 그 위에 고기나 해산물과 같은 각종 고명이 먹음직스럽게 담긴 요리를 떠올린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가 파에야라면 이탈리아엔 리소토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요리 모두 쌀 요리라는 것이다. 밀 문화권에 속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어째서 이들은 빵이 아닌 쌀을 요리해 먹게 된 걸까.중앙아시아와 인도, 중국 등이 원산지인 쌀이 유럽에 건너오게 된 건 8세기 무렵이다. 이미 쌀을 주식으로 먹어 왔던 아랍인들이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점령하면서부터 유럽의 쌀 역사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북부에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뒤인 15세기 즈음이었다. 스페인 남동부와 이탈리아 북부는 몇 안 되는 유럽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다. 강수량도 풍부하고 비옥한 습지가 많은 이 지역에서는 밀농사보다 쌀농사가 더 적합했다.쌀은 밀보다 단위 면적당 칼로리 생산량이 3배나 높다. 대신 많은 물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고, 모를 심고 수확할 노동력이 풍부하다면 밀보다 쌀을 재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스페인은 넓은 호수와 습지를 이용해 대규모로 쌀을 경작했다. 그렇다고 밀을 완전히 대체할 만큼은 아니었다. 쌀은 단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식재료 중 하나로 취급받았다. 스페인처럼 경작지가 넓지 않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쌀은 밀보다 비싼 고급 식재료였다. 제노바와 베네치아 상인들이 해로로 이탈리아산 쌀을 수출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이들 지역에서 원래부터 파에야와 리소토를 먹어 온 건 아니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파에야와 리소토가 등장하게 된 건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19세기경 고급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발간한 요리책에서 리소토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건 밀라노식 리소토다. 사프란으로 노란 빛깔을 내고 소고기 육수와 버터, 치즈 등으로 맛을 낸 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만 봐도 꽤 호화스러운 음식임을 알 수 있다. 파에야도 비슷한 시기의 요리책에 언급된다. 스페인 남동쪽에 위치한 발렌시아는 파에야의 본고장이다. 넓은 팬에 각종 재료를 넣어 볶는데 닭이나 오리, 토끼뿐 아니라 개구리나 달팽이를 넣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리소토에 비하면 파에야는 꽤나 소박한 음식이다. 스페인 세비야에 머물면서 파에야를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나니 문득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리소토를 만들던 경험이 떠올랐다.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요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요리는 같은 뿌리가 아닐까. 리소토는 재료와 쌀을 기름에 한 번 볶은 후 육수를 천천히 붓고 저어 크림 같은 질감을 내는 요리다. 반면 파에야는 볶은 재료에 육수를 붓고 쌀을 맨 마지막에 넣고 한 번만 저어 눌어붙은 볶음밥 같은 형태로 낸다. 조리 과정과 결과물만 얼핏 보면 다른 요리지만 쌀을 대하는 방식은 같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 쌀을 먹는 법을 생각해 보자. 쌀에 물을 붓고 끓여 밥을 짓는다. 다른 곡식을 넣거나 특별한 향기를 입히기 위해 향채를 넣는 경우를 빼고는 물 이외에 다른 것을 첨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쌀로 만든 밥 그 자체의 맛을 중요시하고 필요한 다른 맛은 반찬으로 대체한다. 밥과 찬이 있는 동아시아의 식문화다. 반면 파에야나 리소토의 경우는 다르다. 쌀에 맛을 적극적으로 입힌다. 쌀을 파스타면 정도로 인식한다고 할까. 고기나 해산물, 채소 육수를 부어 쌀에 재료의 맛을 배게 한다는 점에서 보면 두 요리는 닮아 있다. 물로 지은 밥과 각종 맛있는 요소들을 넣어 지은 밥. 아시아인과 유럽인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쌀도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한 끼, 북유럽의 스뫼브레드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한 끼, 북유럽의 스뫼브레드

    인류 역사상 가장 억울한 음식을 꼽으라면 햄버거가 아닐까. 사실 일반 샌드위치와 비교하자면 외양과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 다르다 뿐이지 음식물을 빵으로 둘러쌌다는 개념으로 보자면 둘은 같은 음식이다. 그러나 샌드위치는 간편한 건강식으로, 햄버거는 정크푸드니 패스트푸드니 하며 온갖 멸시를 받아 왔다. 최근 들어서야 햄버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같이 곁들여 먹는 사이드 메뉴, 즉 감자튀김과 콜라가 영양 불균형의 주범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햄버거만 놓고 보자면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섬유질 등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다. 복잡한 조리과정도 필요 없다.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바쁜 현대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끼니 중 하나다.햄버거가 미국을 대표하는 샌드위치라면 북유럽을 대표하는 샌드위치는 스뫼브레드다. 일반적인 샌드위치와 다른 점은 빵이 한쪽밖에 없다는 점이다. 슬라이스 한 호밀빵 한쪽 위에 버터나 스프레드를 바르고 삶은 계란, 치즈, 햄, 절인 청어, 연어 등 각종 재료를 얹어 먹는다.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뿐 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스뫼브레드는 대비되는 색깔의 재료를 위에 얹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스뫼브레드를 보고 있노라면 먹어도 될까 조심스러우면서도 한껏 식욕이 돋는다. 먹기 아까운 스뫼브레드를 한 입 베어 물고 나니 문득 의문이 생긴다. 어째서 빵을 한쪽만 사용하게 되었을까.음식물을 빵에 끼워 먹은 역사는 오래됐지만,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샌드위치가 생겨난 건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샌드위치라는 음식은 18세기경 영국에서 비롯됐다. 샌드위치의 시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딴 것으로 음식을 간편하게 먹기 위해 고안됐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귀족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샌드위치는 산업화와 함께 서민들의 삶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집과 일터가 가까웠을 때엔 식사를 집에서 했지만, 열차를 이용해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도시락이 필수였다. 굳이 데울 필요가 없고 빠르고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샌드위치는 장거리 출퇴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와 더불어 각지에서 변형된 샌드위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속에 어떤 재료를 얼마큼 채워 넣느냐에 따라 간식거리이자 점심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이탈리아의 파니니, 미국의 햄버거, 북유럽의 스뫼브레드, 프랑스의 크로크 무슈 등이 샌드위치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샌드위치는 사실 그렇게 식욕을 자극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 같다. 1940년대 ‘식습관의 기원’을 쓴 H D 레너는 “샌드위치의 표면, 빵이 가장 먼저 보이기에 음식에 대한 생리적 욕구와 심리적 욕구,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느낄 수 없다”고 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샌드위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임엔 틀림없다. 위에 덮는 빵 한 조각을 포기함으로써 샌드위치의 시각적 단점을 보완한 스뫼브레드는 덴마크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덮개가 없으니 어떤 재료가 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줬기 때문이다. 또 어떤 재료를 올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형이 가능해 여러 음식을 차려 놓고 골라 먹는 이른바 ‘바이킹식 뷔페’를 선호하는 북유럽인들의 취향에도 맞았다. 모름지기 북유럽식 스뫼브레드라고 하면 호밀빵을 쓰는 것이 정석이다. 밀이 풍부한 남유럽의 상황과는 달리 북유럽은 척박한 환경에서 밀을 제대로 키우기가 어려웠다. 북유럽인들은 전통적으로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호밀을 이용해 빵을 만들어 먹었다. 흰 빵에 비해 거친 호밀빵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몫이었다. 한 때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상황은 역전됐다. 우리가 쌀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북유럽 사람들에게 호밀빵은 그들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는 음식이다. 스뫼브레드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호밀빵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준다. 호밀빵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구할 수 있는 빵이면 무엇이든 괜찮다. 자른 빵 한 면에 버터를 발라 준다. 버터를 바르면 빵 위에 지방층이 형성돼 재료의 수분으로 인해 빵이 눅눅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버터 외에 돼지나 닭의 간으로 만든 파테, 마요네즈, 치즈 스프레드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 이제 창의력을 발휘할 때다. 냉장고를 뒤져 올리고 싶은 재료를 마음껏 올리면 된다. 탄수화물은 빵으로 충분하니 영양소를 고려해 단백질과 채소를 올리는 걸 추천한다. 올리브오일이나 샐러드드레싱, 발사믹 식초가 있다면 살짝 떨어뜨려 주면 완성이다. 녹색과 붉은색, 노란색을 띠는 재료들을 사용하면 시각적으로도 꽤 먹음직스러워질 수 있다. 봄맞이 집들이나 파티용 음식으로 딱이다. 재료가 무엇이든 어떠랴. 잊지 말아야 할 건 빵 위에 올린 음식, 스뫼브레드의 정신이다.
  • 서울형 고교 자유학년제 오디세이학교 첫 입학식

    고교 1학년 때 국어·영어·수학 등 교과 공부는 줄이고 진로·적성을 찾는 활동을 주로 하는 오디세이학교가 정식 개교했다. 오디세이학교는 5일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입학식을 열었다. 이 학교는 고1학생을 대상으로 보통 교과 수업 외에 인문학과 문화예술 등 대안 교육을 위주로 진행한다. 지난해까지는 학교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성격이었으나 올해는 정식학교인 ‘각종학교’로 전환돼 개교했다. 오디세이학교 입학생들은 서울 시내 일반고와 자율형공립고에 학적을 둔 학생들이다. 1년간 대안 교육을 받은 뒤 2학년부터는 원래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이날 입학식에서는 시사만화가인 박재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오디세이학교 명예교장으로 위촉될 예정이었으나 성추행 논란 후 위촉이 취소됐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금요 포커스] 4차 산업혁명과 항공우주 기술/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금요 포커스] 4차 산업혁명과 항공우주 기술/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아서 C 클라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목성 유인탐사선과 이 탐사선의 주 컴퓨터인 인공지능 ‘HAL9000’이 등장해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바야흐로 우리 일상에까지 도래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인류는 화성 유인탐사를 추진하고,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주요 의제로 다뤄 전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또 같은 해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벌인 바둑 대국으로 4차 산업혁명은 순식간에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4차 산업혁명이란 컴퓨터, 인터넷 등으로 촉발된 ‘정보화’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 생태계의 변혁을 의미한다. 자동화, 데이터 교류 및 제조 기술을 포괄하는 것으로 IoT를 통해 방대한 빅데이터가 생성되고 AI가 빅데이터를 해석해 적절한 판단과 자율제어를 스스로 수행함으로써 초지능적인 제품 생산 및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새로운 산업혁명이 발발하는 것이다. 항공우주 분야에도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거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드론이다. 자율비행과 커넥티드 특성을 갖는 드론은 다양한 센서, 빅데이터, 머신 러닝 기술과 융합해 농업, 건설, 감시,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우주 발사체 분야 스타트업 ‘렐러티비티 스페이스’(Relativity Space)는 발사비용의 90% 절감을 목표로 발사체 전체를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위성 레이다영상 분야에서 딥러닝을 이용한 정밀 해석은 지하자원이나 유적 발굴처럼 앞으로 다양한 영상 이용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위성통신 분야에서는 ‘원웹’(OneWeb)이 648기의 초소형 통신위성을 발사해 2020년까지 전 세계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초고속 우주 인터넷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위성은 에어버스에서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여 대량 생산한다. 세계 주요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치열한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다양한 국가 전략과 정책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생산공정, 조달·물류, 서비스까지 통합관리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생산 자동화 및 엔지니어링 분야를 정보기술(IT) 기반으로 통합하려는 미국의 ‘매뉴팩처링 USA’,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노동집약적 제조방식을 지능화하려는 중국의 ‘제조 2025’, 초스마트사회를 구현하려는 일본의 ‘미래투자전략 2017’ 등이 대표적이다. 선진국에 견줘 다소 늦었지만 한국도 ‘소프트웨어 강국, ICT 르네상스로 4차 산업혁명 선도 기반 구축’을 국정과제의 하나로 선정하는 등 4차 산업혁명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도 지난해 12월 확정된 ‘드론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을 적용한 ‘한국형 K드론 시스템’을 구축,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 초 발표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도 다양한 첨단위성을 개발해 국민생활 향상과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고 AI, 빅데이터 기술과 우주기술을 융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하고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전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항공우주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우리의 강점인 ICT와의 융합을 통해 ‘뛰어넘기 전략’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차세대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체계적인 정부 전략을 바탕으로 산학연이 연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모은다면 항공우주 분야는 향후 우리의 기술혁신과 국민경제의 중심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깝고도 먼 일본의 맛, 야키토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깝고도 먼 일본의 맛, 야키토리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으레 듣는 것이 “바다가 가까워서 좋았겠네”라는 소리다. 살면서 바다가 가까워서 좋다고 느낀 적은 특별히 없었다. 집이 바닷가 근처가 아닌 이상 부산 사람이라도 바다 구경은 꽤 수고스러움을 요하는 일이다. 가까운 곳은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먼 곳보다 잘 찾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쪽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남쪽으로는 적도 아래 인도네시아까지 부지런히 다녀 보았건만 정작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짧은 일정으로 도쿄를 방문한 건 말로만 듣던 일본의 수준 높은 외식산업과 식문화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요리사의 눈으로 도쿄 구석구석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보다 10년은 앞서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도쿄라고 한다. 그야말로 각국의 요리를 최고 수준으로 맛볼 수 있는 미식의 성지이지만, 정작 마음을 앗아간 건 엉뚱한 곳이었다.신주쿠 역 서쪽 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모이데요코초’라는 골목이 있다. 직역하면 ‘추억의 골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엔 서너 평 안팎의 작은 꼬치구이(야키토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닭꼬치구이는 이미 익숙한 음식이지만 수십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는 메뉴와 어수선하면서 동시에 묘하게 정갈한 분위기,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라운 미각 경험은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먹기 좋게 작게 자른 고기를 나무 꼬챙이에 꿰어 숯불이나 철판 등에 구워 내는 요리를 야키토리라 한다. ‘야키토리’의 ‘토리’가 닭을 뜻하기에 ‘닭꼬치’로 번역되지만 돼지고기나 소고기, 말고기를 이용한 꼬치구이도 모두 야키토리로 통용된다. 돼지고기, 특히 각종 특수부위를 이용한 야키토리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의 명물이다. 믿기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닭을 비롯한 소, 말 등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실은 생활에 쓸모가 있는 가축의 도살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재산보호 차원의 이유가 컸다. 닭은 시간과 낯선 이의 침입을 알려 준다는 명목으로 식육이 금지됐다. 그렇다고 그동안 누구도 고기를 먹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이나 생선을 먹는 것은 허용됐다. 기록에 따르면 닭꼬치구이가 일본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17세기 무렵이다.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일본 땅에 상륙한 남만인을 통해 닭 요리법이 전해졌지만 대다수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양계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닭꼬치구이는 지체 높은 분들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로 통했다. 야키토리가 저렴한 술안주의 대명사가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23년 벌어진 간토 대지진과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도쿄 시내 곳곳에 탄생했다. 간장과 설탕 대용으로 쓰는 사카린으로 만든 소스를 발라 구운 야키토리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육계 산업이 육성되면서 공급이 많아지자 닭은 저렴한 식재료로 자리잡았고 주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쏟아져 나오는 역 근처에 야키토리 집들이 들어섰다.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한 잔의 술과 어울리는 값싼 안주로 이만 한 것이 없었으리라. 요리의 관점에서 보면 야키토리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야키토리의 스타일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소금과 양념(다레)이다. 재료 위에 가볍게 뿌려지는 소금은 원재료가 신선하고 좋을 때 빛을 본다. 양념은 각종 내장으로 만든 야키토리에 더 어울린다. 집집마다 비장의 양념 레시피가 존재하는데 대부분 간장과 된장, 설탕, 미림, 청주의 범주 안에서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건 야키토리는 가게 수만큼 각각의 스타일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맛이나 스타일에 정답이 없듯 야키토리를 구워 내는 요리사들은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단지 소스를 얇게 펴 발라 굽는 곳도 있는 반면 된장과 미림을 푼 국물에 푹 담갔다가 간장을 발라 구워 내는 곳도 있다. 감칠맛을 내는 된장과 간장 그리고 단맛, 거기에 숯에 구워 풍미를 한층 배가시킨 야키토리는 공식으로 따지면 결코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제아무리 무적의 공식이라고 해도 야키토리를 굽는 기술과 정성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육즙을 많이 증발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지 않고 속이 고루 익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뜨거운 열원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완벽한 야키토리를 굽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장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야키토리 집이 수없이 많아도 같은 맛을 내는 야키토리 집은 없다고 한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인다움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씨줄날줄] 인면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면조/이순녀 논설위원

    경보음을 뜻하는 영어 ‘사이렌’(Siren)의 어원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마녀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뱃사람들을 홀린 뒤 암초로 유인해 배를 난파시키는 치명적인 존재다.세이렌을 최초로 언급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구체적인 모습이 묘사돼 있지 않으나 고대 그리스 유적과 문학작품들에는 여성의 얼굴과 새의 몸, 혹은 여성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있다. 어린아이나 죽은 자의 영혼을 발톱으로 채 가는 악행을 일삼다 아르고호 원정대에 의해 추방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하르피이아’도 여자 얼굴에 독수리 몸을 한 인면조(人面鳥)로 묘사된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여자를 일컫는 영어 단어 ‘하피’(harpy)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동양 신화에도 사람 얼굴과 새의 몸 형상을 한 상상 속 동물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면조가 불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인 반면 동양에선 극락에 깃들여 사는 신성한 존재, 장수를 상징하는 길조로 여겨지는 게 다르다. 중국 고전 ‘산해경’에는 “머리 아홉 개에 사람의 얼굴과 새의 몸을 하고 있고 이름은 구봉이라 한다”는 등 인면조가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중국 고대 도교서인 ‘포박자’에는 “천세(千歲)는 새고, 만세(萬歲)는 날짐승인데 모두 사람의 얼굴이나 몸은 새이며, 수명은 마치 그 이름과 같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대 인도 신화와 불경에 나오는 인면조 ‘가릉빈가’(迦陵頻伽)는 자태가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묘해 ‘부처의 말씀을 전하는 새’로 불린다. 지난 9일 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인면조가 화제다. 모자를 쓴 남성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인면조가 고구려 시대 복장을 한 무용수들과 춤을 추는 장면에서 깜짝 놀랐다는 이들이 많았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개회식의 ‘신스틸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송승환 총감독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평화를 다 같이 즐기는 한국의 고대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덕흥리, 삼실총, 무용총 등 여러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인면조를 확인할 수 있다. 화제성과 별개로 호불호는 나뉜다.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잘 활용했다는 긍정적인 의견과 더불어 익숙지 않은 외양 탓에 기괴하고 무섭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어쨌든 고분벽화에 박제돼 있던 인면조가 세상 밖으로 나와 널리 회자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닌가 싶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와인만큼 다채로운 올리브 오일의 세계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와인만큼 다채로운 올리브 오일의 세계

    이탈리아 요리와 프랑스 요리의 차이점은?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탈리아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주로 쓰고 프랑스에선 버터를 사용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프랑스와 인접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선 프랑스 못지않게 버터를 듬뿍 넣은 전통요리가 주를 이룬다. 반대로 이탈리아와 인접한 남부 프랑스 지역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한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올리브가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올리브의 기원은 중동이요, 유럽에서 올리브를 가장 먼저 재배한 건 그리스인이었다. 그리스인은 기원전 8세기쯤부터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기보다 무역을 통해 식량을 조달했다. 그들이 가진 수출 자원은 주로 올리브 오일과 와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식민지가 있었던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일대에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를 심어 무역 규모를 넓혔고 여기서 벌어들인 부 덕에 오랫동안 지중해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에선 그리스인이 남긴 유산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도나무와 그리스 신전, 그리고 올리브 나무다. 시칠리아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도 지천에 널린 올리브 나무였다. 긴 회녹색 잎을 가진 올리브 나무는 그 색깔과 생김새 때문에 금방 눈에 띈다. 흥미로운 건 올리브 열매가 기대와는 달리 지독하게 쓰고 떫다는 점이다. 올리브 열매 안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 때문이다. 흔히 접하는 올리브 과육 맛을 생각하고 열매를 생으로 따 먹었다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올리브 열매는 강한 알칼리 용액과 염수에 담갔다가 발효 과정을 거쳐 쓴맛을 제거한 일종의 올리브 피클이다. 절인 올리브 과육도 독특한 향미로 사랑을 받지만 대부분의 올리브 열매는 오일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수확한 올리브를 으깬 후 한 번만 압착해 짜낸 것을 두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라 한다. 대개 이 엑스트라 버진 오일을 놓고 최고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엑스트라 버진 오일에도 종류가 있고 소위 ‘급’이 있다. 수확 시기나 품종에 따라, 제작 방식에 따라 그 풍미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지금까지 확인된 올리브 품종은 전 세계적으로 1000여종에 이른다. 유럽 내 최대 올리브 오일 생산국인 스페인(50%)과 그 뒤를 잇는 이탈리아(25%)는 자체 올리브 품종만 100가지가 넘는다. 그만큼 맛과 향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스페인에서도 수준급의 올리브 오일이 생산되지만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의 강점은 압도적인 다양성에 있다. 스페인 내 올리브 생산 업체가 120개인 데 비해 생산량이 절반 정도 되는 이탈리아에서는 무려 513개 업체가 올리브 오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브랜드마다 사용하는 올리브 종류와 압착기술, 지향점 등이 다른 만큼 개성 넘치는 오일이 생산된다. 품종과 제조방식, 그리고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올리브 오일은 여러 면에서 와인과 닮아 있다. 와인처럼 올리브 오일도 시음평가 과정이 있다. 어떤 오일에서는 상쾌한 풀내음이 나기도 하며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 향이 나는 올리브 오일도 있다. 올리브 오일을 한 숟갈 맛보면 목이 따갑고 칼칼해지는 이른바 매운맛이 나기도 하는데 이는 품종과 기후의 차이일 뿐 품질과는 무관하다. 주로 햇빛이 강한 남쪽으로 갈수록 매운맛이 강한 경향이 있다.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올리브 오일이 있지만 주방에선 딱 두 가지로 나뉜다. 막 써도 되는 오일과 조금씩 아껴 써야 하는 오일이다. 대개 전자는 풍미가 거의 없는 저렴한 올리브 오일이며 후자는 풍미가 제법 좋은 값비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다. 까다로운 셰프가 있는 일부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선 조리방식과 재료마다 다른 종류의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1ℓ에 만원 안팎의 엑스트라 버진 오일은 거의 식용유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자체 풍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반면 강한 개성을 가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은 그만큼 값이 비싼 편이다. 이런 오일은 열을 가하면 그 풍미가 다 날아가버리기에 주로 샐러드에 뿌리거나 마지막에 참기름처럼 음식에 살짝 뿌리는 용도로 쓴다. 올리브 오일은 잘 쓰면 음식 맛을 더욱 돋우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기껏 만들어 놓은 음식을 망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음식의 풍미가 섬세하다면 가급적 향이 강한 올리브 오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어떤 올리브 오일을 살지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이다. 다양한 올리브 오일의 차이를 경험해 보고 본인 취향과 요리 목적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식도락의 즐거움일지니.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삼겹살은 한국에서만 먹는다고?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삼겹살은 한국에서만 먹는다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 중에는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쓰이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솔푸드’다. 솔과 푸드, 영혼과 음식이라는 단어가 붙어서일까. 흔히 솔푸드는 ‘영혼의 음식’ 내지는 ‘깊은 감동을 주는 추억의 음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원래의 솔푸드는 미국 남동부 음식, 그중에서도 주로 노예로 끌려와 농장에서 고된 일을 하던 흑인들이 주로 먹던 음식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당신의 솔푸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은 ‘당신의 미국 남부 흑인 음식은 무엇입니까’가 되는 셈이다.솔푸드는 대개 튀기거나 한 솥에 많은 재료를 넣고 끓여 만드는 고열량 음식이 대부분이다. 빠르고 간편하게 높은 열량을 섭취해야 하는 노동자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프라이드치킨도 그중 하나다. 흑인 노동자들의 아픔이 녹아 있는 솔푸드가 어째서 한 개인의 추억 속 음식이라는 뜻으로 변형됐는지는 도통 알 턱이 없지만, 이른바 한국인의 솔푸드 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바로 삼겹살 구이다.매년 황사철이 되면 삼겹살이 먼지를 씻어내는 데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등 효능에 관한 각종 기사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와 안 그래도 비싼 삼겹살 수요를 더욱 부추긴다. 한편에선 서양에서는 별로 가치가 없어서 버리다시피 하는 값싼 삼겹살을 우리나라가 비싸게 수입해 판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방이 많아 몸에도 좋지 않은 부위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비판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서양에서 삼겹살은 버리다시피 하는 값싼 부위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돼지를 두고 ‘노즈 투 테일’(Nose to Tail), 즉 ‘코부터 꼬리까지’란 표현이 있다. 돼지의 모든 부위를 모두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비단 돼지에게만 적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도축한 고기를 그냥 버리는 경우는 없다. 껍데기와 피, 내장, 뼈 등 부속물을 이용한 요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고기를 먹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코파 디 테스타’는 영락없는 우리의 돼지머리 편육이고 돼지족으로 만든 소시지 ‘잠포네’는 외관상 족발이다. 이를 본 한국인 열에 아홉은 ‘이탈리아 사람들도 이런 걸 먹네’ 하며 신기해한다. 우리만 먹는 게 아니라 우리도 먹는 것이다. 삼겹살의 모양은 돼지의 품종과 사육방식,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기에 지방이 끼어 있다기보다 지방에 고기가 끼어 있는 듯한 모양새다. 그만큼 지방의 비율이 다른 부위에 비해 많다. 이것은 요리에 있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주방의 화학자’ 해롤드 맥기는 우리가 인지하는 고기 맛은 지방에 축적된 맛 분자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살코기가 아니라 지방이 고기 맛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기름기 적은 소고기에 돼지기름을 넣고 구우면 그 맛이 소고기보다 돼지고기의 맛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또 지방이 많을수록 육질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도 선사해 준다.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소고기가 왜 비싼지 생각해 보면 쉽다. 삼겹살이 다른 부위에 비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이 많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다. 우리야 생삼겹살을 얇게 잘라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서양에서는 대부분 염장이나 훈제 등 한 차례 가공을 거친 후 소비한다. 대표적인 것이 염장한 삼겹살에 연기를 쐬어 훈제한 베이컨이다. 염장과 훈연은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고안된 조리법 중 하나다. 둘 다 유해한 미생물의 발생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재료에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 유럽에서 훈제향을 특히 좋아하는 건 유럽 북부 사람들이다. 길고 추운 겨울을 버티려면 염장과 훈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장모님만 빼고 다 훈제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훈제향을 입힌 음식을 선호한다. 반면 남유럽 사람들은 훈제보다는 향신료를 이용한 염장 육가공품을 선호한다. 이탈리아에선 소금에 절인 삼겹살을 ‘판체타’라 부른다. 얇게 저며서 빵과 함께 그냥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탈리아 요리에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지방이 많다는 이유로 다른 요리에 지방을 더하는 데 사용해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계란 노른자로 만드는 ‘카르보나라’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도 판체타다. 많은 레시피에서 판체타가 없으면 베이컨을 대신 사용하라고 조언하지만 사실 그 둘은 전혀 다른 재료다. 외국에서 삼겹살이 싸다는 건 이젠 옛말이다. 유럽 정육점에 파는 생삼겹살 가격을 보면 다른 부위에 비해 특별히 저렴하지도 않다. 늘 그렇듯 새로운 소비를 부추기는 건 미디어다. 인기 요리사들에 의해 삼겹살을 이용한 조리법이 방송을 타면서 특정 기간 삼겹살 가격이 급등했다는 유럽발 기사도 심심찮게 보인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의 식문화를 세계에 소개한다고 한다. 어쩌면 삼겹살 구이 문화는 우리만 알고 있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지도 모르겠다.
  • [발효 음식 이야기] 신화·성서에 단골손님… 식수난도 해결한 酒님

    [발효 음식 이야기] 신화·성서에 단골손님… 식수난도 해결한 酒님

    야사에 따르면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어느 날 토기 단지에 포도알을 담아 놓고 ‘독’이라고 적은 뒤 이를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한 후궁이 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다 이 독 단지를 발견했다. 후궁은 독을 마시고 자살하려고 했으나, 이 독은 죽음 대신 즐거움과 활력을 선사했다. 후궁은 뜻밖에 발견한 이 놀라운 음료를 왕에게 바쳤고, 왕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와인이 인류에게 한 최초의 선물인 셈이다. 잘못 마시면 독이 되지만 적절히 즐기면 인생의 활기와 사랑을 가져다주는 와인의 특성이 고대에 이미 입증됐다고도 할 수 있다.프랑스 와인 관련법에 의하면 와인이란 포도에서 추출한 즙이나 자연 상태의 포도알 속에 함유된 즙이 효모에 의한 알코올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생산물이다. 최소 8.5%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와인은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지만, 복분자주와 같이 유사한 과일을 활용해 발효시켜 만든 과실주도 넓은 범위의 와인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와인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기원전 3000년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견된 상형문자 석판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와인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수메르의 영웅인 길가메시의 모험담을 담은 이 석판의 내용 중에는 길가메시가 신들이 인간을 벌하기 위해 대홍수를 퍼부었을 때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은 전설적인 인물 우트나피슈팀을 만나는 부분이 나온다. 여기서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시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술인 포도주와 백포도주를 일꾼들에게 마치 강물이나 되는 것처럼 퍼줬다”고 말한다.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그루지야 지역에서는 와인을 담는 용도로 사용된 항아리가 출토됐고,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법이 새겨진 유물이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포도를 발로 밟아 즙을 짜낸 후 커다란 토기 안에 넣고 발효시켰다고 한다. 이때 진흙으로 덮은 뚜껑에 포도밭의 위치와 와인을 만든 사람, 주조 연도 등을 기록했다고 한다. 현대의 와인 분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또 기원전 2000년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에 적힌 와인의 상거래에 대한 언급은 최초의 와인 관련 공식 문서다.●18세기 佛 와인 생산 탓 밀 재배 부족도 와인은 서양의 역사와 문명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스 신화에는 아예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할 정도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의붓어머니인 헤라의 질투에 아시아와 이집트를 떠돌다가 포도 재배법과 양조법을 배워 와 그리스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도 와인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건강에 이로운 식이요법을 설명하면서 와인을 예로 들었다. 그리스 문화를 계승한 로마제국에 의해 와인 양조법은 로마의 통치를 받던 유럽 전역과 지중해 연안 등으로 널리 퍼졌다. 이것이 현재 유럽의 와인 산업의 시초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에는 수질 관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오염된 물을 마시고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로마제국 군인의 식수로 와인이 사용되기도 했다.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성경에도 와인이라는 단어가 500번 이상 등장하며, 길가메시 서사시의 우트나피슈팀과 비슷하게 대홍수 당시 방주를 만든 노아가 최초의 포도 재배자로 나온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중세시대 수도원을 중심으로 와인이 전해졌으며, 종교 예식의 성찬용으로 주로 사용됐다. 1679년 프랑스 오빌러 수도원의 수사인 동 페리뇽은 오늘날의 샴페인을 개발해냈다. 이때부터 와인병의 마개로 코르크가 상용화됐다. 이렇게 수도원에서 전문적으로 와인을 주조하면서 와인 재배 면적이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특히 프랑스의 와인이 유명했는데,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 북부 유럽 등으로 수출됐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멕시코 정복자인 에스파냐인 코르테스가 신대륙에 포도를 심으라고 명령하면서 미주지역으로도 와인이 전파됐다. 17세기에는 남아프리카, 18세기에는 호주 등에도 퍼졌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와인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주식인 밀의 재배량이 부족해질 지경에 이르자 정부에서는 포도 재배 면적 제한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발효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생물학자 파스퇴르에 의해 발효 과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양조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도 비슷한 시기다. 유럽의 와인산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무렵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에서 건너온 ‘필록세라’라는 포도나무 뿌리 진드기로 인해 대표적인 와인 생산 국가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포도 재배 지역이 황폐해졌다. 그 대안으로 이 진드기에 대한 저항 능력을 가진 미국산 토착 포도 품종과 접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지금까지도 프랑스 포도 재배지역의 대부분이 이 접목법을 사용하고 있다. ●1968년 국내 첫 상업적 와인 생산 우리나라에는 중국 원나라 세조가 사위인 고려 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구한말 기독교 선교사들이 포도주를 본격적으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적으로 정식 생산된 최초의 국산 와인은 1968년 한국산토리의 ‘선 리프트와인’, ‘로제와인’, ‘팸 포트와인’이다. 와인은 크게 색깔과 제조 방법에 따라 구분된다. 우선 색깔에 따라서 레드, 화이트, 로제와인으로 분류되는데, 이때 와인의 색을 결정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껍질이다. 보통은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과 같은 화이트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야 화이트와인이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포도 껍질의 ‘안토시아닌’ 성분을 제거한 레드 포도 품종으로도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로제와인은 레드 포도를 활용해 발효하는 과정에서 포도 껍질과 액이 접촉하는 시간을 짧게 해 색을 연하게 한다. ●레드와인은 껍질째 발효… 침용 거쳐 와인은 통상 7~14일 동안의 알코올 발효과정을 거치는데, 이후 종류에 따라 유산발효 과정(강한 사과산을 부드러운 유산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진행하기도 한다. 발효가 끝난 와인 원액은 일정 기간 숙성한 뒤 시장에 출시한다. 화이트와인과 달리 레드와인은 대부분 유산발효 단계를 밟는다. 또 레드와인은 수확한 포도를 껍질째 발효하기 때문에 침용 과정이 필요하다. 즉, 포도를 으깨 발효시킬 때 포도 껍질이나 씨 등 고형 물질이 원액 위에 둥둥 떠오르는데, 보다 풍부한 풍미를 위해서 펌프 등 도구를 사용해 이를 지속적으로 포도 원액에 접촉시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제조방법에 따라서는 탄산가스를 함유한 스파클링와인, 양조과정 중 브랜디 등을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주정강화와인, 탄산가스가 없는 일반적인 스틸와인 등으로 나뉜다. 이후 포도의 품종과 생산지 등에 따라 세부적으로 다시 분류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와인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 수준이다. 국내 시장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성장했으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연간 와인 수입량이 2008년 2877만ℓ에서 2009년 2300만ℓ로 급감하는 등 일시적인 침체기를 겪었다. 이후 2010년에 다시 2456만ℓ를 기록하면서 회복세로 돌아선 뒤 꾸준히 증가해 2016년에는 3737만ℓ까지 늘었다. 또 레드 스틸와인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스파클링와인, 주정강화와인 등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인기를 끄는 추세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사들이 와인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가격이 저렴한 와인이 많이 보급돼 와인의 대중화가 이뤄졌다”면서 “도수가 약한 술을 가볍게 즐기는 쪽으로 음주 문화가 변화하면서 다양한 음식과 곁들일 수 있는 스파클링와인이 급부상하는 등 와인 선택의 폭도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伊 양대 치즈, 그라노 파다노와 파르미지아노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伊 양대 치즈, 그라노 파다노와 파르미지아노

    한 번쯤 이탈리아 요리를 집에서 해 보겠다고 마트를 찾으면 으레 당면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바로 파스타나 리조토에 쓸 치즈를 고르는 일이다. 단단한 경성치즈가 필요한데 대개 선택지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이하 파르미지아노)와 ‘그라노 파다노’ 두 가지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가격도 일, 이천원 차이라 그냥 싼 걸 살까 하다가도 그래도 비싼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 치즈를 들었다 놨다 해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으리라. 대체 이름도 요상한 이 치즈들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장 보는 이의 마음을 이리도 괴롭히는 것일까.유럽에서 치즈 종류가 많기로는 프랑스와 어깨를 견주는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치즈의 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다. 이를 영어식으로 줄인 이름이 많이 들어봤을 법한 파르메산 치즈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일부 지역에서 엄격한 규칙에 의해 생산되는 치즈에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진하게 풍기는 복잡 다양한 풍미와 폭발하는 감칠맛이 특징이다. 흔히 피자집에서 볼 수 있는 가루 형태의 미국산 파르메산 치즈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그렇다면 그라노 파다노는 무엇인가. 그라나 파다노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광범위하게 생산되는 경질치즈로 파르미지아노와 거의 유사한 제조과정과 특징을 갖고 있다. 일각에선 그라노 파다노가 파르미지아노에 비해 풍미가 떨어지고 비교적 가격이 낮아 품질이 한 단계 낮은 치즈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대단한 오해다. 어디까지나 그 쓰임새와 특성이 다를 뿐 품질의 우열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치즈는 대부분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칼슘과 인 등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성분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음식 맛을 돋우는 감칠맛까지 갖고 있어 전통적으로 유럽의 식탁에 치즈는 빠지지 않는 식재료다.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치즈 제조기술이 유럽에 전파된 후 유목생활을 하는 유럽 각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치즈가 만들어졌다. 남는 우유를 가공해 만드는 치즈는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하면서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 치즈 제조 기술이 급격히 개선되었고 오늘날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치즈의 형태와 제조법은 중세에 완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라노 파다노와 파르미지아노는 12세기쯤 이탈리아 북부의 수도사들에 의해 탄생했다.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유에 효소를 넣고 56도 정도 온도에서 저어 주면 단백질이 뭉쳐지면서 치즈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이 덩어리들을 원형틀에 넣고 모양을 잡은 후 소금물에 담갔다가 일정한 시간 동안 건조 숙성을 시키면 치즈가 완성된다. 두 치즈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친 입자감이다. 그라노 파다노의 그라노는 이탈리아어로 곡물 낱알을 뜻하는데 씹으면 까슬까슬한 단백질 결정이 느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치즈에 비해 수분이 거의 없어 단단한 특성 덕분에 오래 저장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풍미 또한 남다른 편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치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사용되는 원유가 다르다. 젖소의 종류에 따라 우유의 맛이 달라지고 같은 종류의 젖소라도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일반 곡물 사료를 먹은 젖소의 원유를 사용하는 그라노 파다노에 비해 파르미지아노의 경우 목초를 먹은 특정 젖소의 원유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지방 함량의 정도다. 그라노 파다노는 원유 위에 뜨는 지방을 걷어낸 상태에서 치즈를 만드는 데 비해 파르미지아노는 탈지유와 원유를 섞어 만들어 지방 함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장기간 숙성을 통해 풍미가 깊어지는데 미묘한 풍미 차이는 두 치즈의 지방 함량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에밀리아로마냐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파르미지아노와는 달리 그라노 파다노는 이탈리아 북부 대부분의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만들어진다. 생산량은 그라노 파다노가 월등히 많은 편이다. 생산에 걸리는 시간도 차이가 난다. 그라노 파다노의 경우 지방이 적어 최소 9개월이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지만 지방 함량이 많은 파르미지아노의 경우 적어도 12개월은 숙성을 시켜야 판매가 가능하다. 두 치즈의 가격 차이는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접할 수 있는 두 치즈는 대부분 최소 숙성기간을 거친 어린 치즈들이다. 오래 숙성된 것에 비해 풍미는 떨어지지만 그만큼 풍미가 섬세해 요리에 사용하기 좋다. 장기 숙성된 그라노 파다노나 파르미지아노는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음식이 된다. 이탈리아에서 강한 술과 함께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디저트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 이제 마트로 다시 돌아와 보자. 어떤 치즈를 사야 할까. 사실 정답은 없다. 여유가 된다면 되도록 두 치즈를 사서 먹어 본 후 취향에 맞는 치즈를 찾으라 권하고 싶다. 강판에 갈아서 파스타와 리조토 맛을 완성하는 조미료로 사용해도 좋고 조각내어 와인 안주로 먹어도 좋다. 중요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두 경질치즈를 칼로 썰지 말고 그냥 큼직하게 손으로 거칠게 잘라서 한 입 먹어 보자. 입자감이 살아 있는 경질치즈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시진핑 신년사 키워드 ‘발전’… 집무실엔 ‘탈빈곤’ 사진·AI 서적

    시진핑 신년사 키워드 ‘발전’… 집무실엔 ‘탈빈곤’ 사진·AI 서적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신년사에는 13억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된다. 트위터로 활발히 소통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신년사는 시 주석의 생각을 알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데다 세계 2대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는 인민대회당에서 발표한 전년과 달리 책과 사진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을 배경으로 한 중난하이(中南海) 집무실에서 발표했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시 주석 책장의 장서와 사진을 분석해 그의 새해 의도를 읽어 내기도 한다. 지난 5년간 시 주석의 신년사 단어를 분석해 세계인이 주목하는 중국의 2018년 계획을 살펴보았다.2013년 국가주석직에 오른 시 주석은 2014년 이후 매년 신년사를 발표했다. 인민대회당에서 서서 발표한 2017년을 제외하면 모두 만리장성 그림과 수백 권의 책 등이 진열된 책장을 배경으로 한 집무실이 신년사 발표 장소였다. 서울신문은 지난 5년간 발표된 시 주석의 신년사를 단어 빈도 통계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의미 있는 단어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7번 등장한 ‘발전’이었다. 이어 대중 6회, 실현 5회, 개혁·홍콩·세계·빈곤이 각 4회 등장했다. 전년 신년사에서 제일 많이 등장한 단어는 개혁이었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개혁과 전면이 8번, 지속 6번, 세계·대중 5번, 빈곤이 4번 사용됐다. 신년사는 시 주석의 통치 후반기로 갈수록 길어졌는데 2014년에는 5분여에 불과했지만 뒤이어 10분가량으로 분량도 늘고 사진과 동영상도 사용해 우주선 발사와 같은 성과를 과시했다. 2016년 신년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중국, 국제, 동포, 세계로 모두 6번씩 나왔다. 2015년 신년사에서는 인민이 14번, 생활이 8번, 세계와 개혁이 각각 6번 사용됐다. 2014년 신년사에서는 인민과 공동이란 단어가 7번으로 가장 많이 쓰였다.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살펴보면 시 주석이 점차 개혁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중국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신년사의 주제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15년에는 항공기 추락 사고와 지진, 2016년에는 여객선 전복 사고, 톈진항 폭발, 선전 산사태 등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언급으로 인민들을 위로하는 말도 있었으나 갈수록 공산당이 이룬 성과에 대한 자랑이 신년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시 주석이 신년사를 발표한 집무실 책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숫자판이 없는 붉은색 전화기 두 대다. ‘훙지’(紅機)라 불리는 이 전화기는 공산당 전용 전화로, 중국 공산당 권력의 상징이다. 세계 인구의 5분의1이 사는 중국에서 단 3000명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 주석이 사용하는 두 훙지 가운데 하나는 인민해방군에 보안전화를 걸 때 쓴다. 다른 하나는 공산당 간부, 지방 성의 서기, 국영기업 책임자, 관영언론 편집장들과 통화할 때 사용한다. 4자리 숫자의 번호만으로 이루어진 훙지는 암호화돼 감청이나 도청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화기를 들면 베이징 징시호텔에서 24시간 근무하는 인민해방군 교환수들이 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 준다. 여성 교환수들은 3000개 이상의 번호를 외우고, 모든 지방 사투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징시호텔은 말만 호텔일 뿐 공산당과 인민해방군 간부들이 대규모 회의를 여는 곳으로 경비와 보안이 삼엄한 것으로 유명하다.2010년 언론인 리처드 맥그리거가 ‘중국 공산당의 비밀’이란 책을 펴낼 때만 해도 훙지를 가진 사람은 300명 정도라고 설명했는데 그동안 증가한 공산당원의 숫자만큼 훙지의 숫자도 10배 이상 늘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난하이로 터전을 옮기면서 당의 핵심 인물임을 입증하는 훙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국가공무원이 국장급 이상의 직위에 오르면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를 지급하는데, 중국 공산당은 훙지를 준다. 홍콩 일간 빈과일보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로 서방 지도자들처럼 가족과 같은 사적 관계를 맺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의 집무실 책장에 배치된 15장의 사진도 신년사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집중 토론 대상이다. 이 가운데 9장은 올해 새로 등장한 것들이다. 새롭게 배치한 사진 중 4장은 시 주석이 중국의 가난한 농촌 마을을 방문한 장면들이다. 농촌의 빈곤 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이다. 2013년 후난성 화이안현의 한 마을을 찾았을 때 시 주석은 “나는 인민 대중을 위한 공복”이라고 말했다. 2016년 장시성을 방문했을 때는 “빈곤과 싸우는 우리의 노정에서 단 한 가족도 빈곤 속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9장 중 한 장은 지난해 10월 19차 당 대회 직후 사진이다. 이때 새로 선임된 상무위원과 함께 1921년 중국 공산당 1차 전국대표대회를 비밀리에 연 상하이 회의장을 방문해 공산당 선언을 외쳤다. 또 인민해방군 열병식 사열 장면, 네이멍구 국경수비대 격려 사진도 있다. 이는 강군(强軍)을 향한 시 주석의 의지라는 해석이 있다. 지난해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아 홍콩을 직접 방문해 홍콩 어린이들과 찍은 사진, 지난해 5월 연 제1차 국제 일대일로 포럼 사진 등으로, 말로 못다 한 신년 메시지를 대신했다. 기존에 배치했던 6장은 꾸준히 시 주석의 신년사 배경으로 등장했던 젊은 시절 사진과 가족과의 사진들이다. 아버지 고 시중쉰(習仲勛)의 휠체어를 미는 모습, 딸을 뒤에 태우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장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사진 등을 통해 평범한 아버지이자 가족의 일원이며 어른을 섬기는 시 주석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시 주석의 외동딸 시밍쩌(習明澤·26)는 2015년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한 번도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시 주석과 비교하면 딸은 미국 유학생이지만 서방 언론이 ‘신비한 중국 공주’로 묘사할 정도로 대외 활동은 거의 없다. 중국 네티즌들은 매와 같은 눈으로 매년 수백 권의 책이 꽂힌 시 주석의 책장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열렬한 독서가로 알려진 시 주석의 독서 목록을 통해 그의 뇌 구조를 그려 보려는 노력이다. 올해 시 주석의 책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인공지능(AI)에 관한 책 두 권이었다. 페드로 도밍고스 워싱턴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의 ‘마스터 알고리즘’과 미래학자 브렛 킹의 ‘증강현실’이 시 주석의 책장에 꽂혀 있었다. 두 책은 모두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다룬다. 첨단기술에 관한 책 외에도 ‘전쟁과 평화’, ‘노인과 바다’, ‘오디세이’, ‘레미제라블’과 같은 서양 고전도 그의 장서 목록에 포함돼 있다. 경제서적도 있었는데 윌리엄 괴츠먼의 ‘돈이 모든 것을 바꾼다’, 미셸 부커의 ‘회색 코뿔소가 온다’ 등이다. ‘공산당 선언’, ‘자본론’과 같은 칼 마르크스의 고전부터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와 같은 중국 지도자의 저작도 그의 책장에서 빠지지 않는다. 중국 언론은 시 주석이 책장에 비치한 책들은 ‘지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고도의 장치라고 평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올림픽 오디세이] 방대한 문화ㆍ역사, 한 치 로고에 담다

    [올림픽 오디세이] 방대한 문화ㆍ역사, 한 치 로고에 담다

    2015년 9월 2020도쿄하계올림픽 대회조직위원회는 일본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 사노 겐지로가 제작한 대회 엠블럼에 대해 사용 중지 결정을 내렸다. 앞서 2개월 전 조직위는 일본 국내외에서 응모한 104점의 후보작 가운데 알파벳 ‘T’를 모티브로 한 사노의 작품을 선정해 도쿄올림픽 공식 엠블럼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다. 엠블럼 자체가 외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주장이었다.주경기장 건설계획 변경으로 한 바탕 곤욕을 치렀던 조직위원회는 부랴부랴 조사에 착수했고, 벨기에의 그래픽 디자이너 올리비에 도비가 두 해 전 디자인한 한 극장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비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디자인의 구도와 글씨체가 비슷하다”며 “사노가 그대로 베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2년 전 세상에 나온 내 작품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며 표절 의혹을 드러냈다. “작년 11월 이미 디자인을 내정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세계 각국의 상표를 확인한 뒤 올림픽 엠블럼 디자인을 발표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며 사노의 표절 의혹을 완강히 부인한 조직위는 그러나 네티즌의 계속된 추궁에 시달리다 결국 엠블렘 채택을 철회했고, 이듬해 4월 에도시대의 문양인 ‘이치마쓰모요’를 테마로 삼아 다양한 모양의 남색 사각형 체크무늬로 꾸며진 새 엠블렘을 발표했다. 흔히 올림픽 로고라고 불리는 엠블럼은 개최국의 특성과 정체성, 문화·역사까지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상징물 가운데 하나다. 해당연도 개최국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제작하지만 승인 여부는 물론, 향후 저작권과 소유권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갖는다. 올림픽 엠블럼은 선수들의 유니폼 등을 비롯해 올림픽 스폰서에 의한 홍보 자료에 사용되는 IOC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 엠블럼이 사용된 건 1932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대회부터다. 프랑스 샤모니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렸던 1~2회 때는 대회 포스터만 사용됐는데, 레이크플래시드 조직위는 포스터와 같은 디자인의 엠블럼을 만들어 좀 더 집약적으로 대회를 표현했다. 흑백으로 단조롭던 색상도 1952년 오슬로(노르웨이) 대회부터 컬러를 썼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루테피스크에 글뢰그 한잔, 북유럽의 겨울나기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루테피스크에 글뢰그 한잔, 북유럽의 겨울나기

    연말 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민족 최대의 명절’에 설, 추석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포함시켜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뜬금없이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명절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한 민족이 매년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비록 서양에서 유래한 것이긴 하지만 이젠 우리 삶 깊숙이 자리잡았기에 충분히 명절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게 성탄절 명절론자의 주장이었다. 반론도 만만찮았다.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날을 기념하는 우리만의 음식이 없다는 것. 명절의 진정한 의미가 가족 간에 한자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인데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지 연인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날에 머물러 있다는 게 불가론자의 이유였다.한편에서 이런 논쟁을 하든가 말든가, 유라시아 대륙 정반대 편에 있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명실상부한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정확하게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유럽의 여러 민족이 일 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이 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단지 선물을 주고받는 날 이상으로 가족애와 정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12월 중순 찾은 북유럽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완연했다. 이 시기 유럽 주요 도시 곳곳에선 너 나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연말을 맞아 열리는 일종의 장터인 셈이다. 장터에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듯 크리스마스 마켓의 백미는 역시 다채로운 먹거리다. 그중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바로 향신료를 넣어 만든 따뜻한 와인이다. 영어로는 멀드와인, 독일에서는 글뤼바인, 프랑스에선 뱅쇼, 북유럽에선 글뢰그 등으로 불린다.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와인에 시나몬과 정향, 팔각 등 각종 향신료와 과일과 같은 부재료를 넣고 끓인 후 따뜻하게 데워 마신다는 공통점이 있다.왜 와인을 이렇게 끓여 먹기 시작했을까. 마셔 보면 그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된다. 겨울 추위를 단번에 녹이는 데 이보다 좋은 특효약이 없기 때문이다. 향신료는 고대부터 유럽인들에게 입맛을 돋우는 조미료인 동시에 약재였다. 향신료를 기반으로 한 약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향신료 가게는 우리로 치면 한약방 같은 곳이었다. 자체로도 영양가 있는 와인을 따뜻하게 데워 향신료까지 더했으니 이보다 좋은 겨울철 음료가 또 있을까. 북유럽과 같이 추운 지방에서는 보드카나 스냅스 등 독한 증류주를 더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멀드와인을 마시며 추위를 견딘다. 멀드와인에 함께 곁들여 먹는 게 있다. 생강으로 만든 과자인 진저 브레드다. 빵(브레드)이라고 하지만 사실 쿠키에 더 가깝다. 시금털털한 맛의 멀드와인에 달콤함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북유럽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먹거리는 바로 사슴고기로 만든 햄버거다. 북유럽의 사슴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꽃사슴의 모양새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소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엘크와 순록은 같은 사슴과이지만 꽃사슴과는 종이 다르다. 고양이와 호랑이의 차이랄까. 엘크와 순록은 과거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매년 찾아오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운송수단이자 식량, 그리고 옷감 등 자재를 제공해주는 유익한 동물이었다. 삶 속에서 함께하다 보니 북유럽과 북미에서 사슴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만큼 흔한 식재료다. 사슴 버거라고 해도 흔히 접할 수 있는 햄버거와 그 맛이 비슷하니 괜한 공포감이나 기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실 북유럽에 간 목적은 단 하나. 통조림 안에서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을 맛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수르스트뢰밍을 먹는 계절은 여름. 아쉬운 대로 겨울철에만 먹는다는 루테피스크를 맛보았다. 악취를 자랑하는 수르스트뢰밍도 흥미로운 음식이긴 하지만 살펴보면 루테피스크도 그 태생이 범상찮다. 루테피스크는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를 양잿물에 담가 흐물흐물하게 만든 걸 뜻한다. 보통 버터를 발라 굽거나 쪄서 먹는다. 기원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겨울철 말린 대구를 삶을 때 쓸 땔감이 부족해 강알칼리성 용액, 즉 잿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후 삶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개발된 조리법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흐물흐물한 젤리 같은 식감이 재미있는 루테피스크는 북유럽 겨울철 별미다. 원래는 삭힌 홍어에 견줄 만큼 특유의 냄새를 자랑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점차 강한 맛을 거부함에 따라 악취가 덜한 루테피스크가 점차 개발돼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는 자극적인 향을 자랑하는 루테피스크는 그 자취를 거의 감추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루테피스크와 사슴고기로 식사를 하고 글뢰그를 마시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장면. 민족 최대의 명절을 보내는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다.
  • [올림픽 오디세이] 동네 의사, 알고 보니 전설의 동계 5관왕

    [올림픽 오디세이] 동네 의사, 알고 보니 전설의 동계 5관왕

    1980년 대회 남자 전관왕 9일 동안 500~1만m 석권 은퇴 후 사이클 선수·의사 변신미국 유타주 파크시티 ‘헤이든 정형외과’ 원장이 동계올림픽에서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긴 사람임을 알아채긴 어렵다. 진찰실에 가늠할 만한 기념사진 한 장도 없었다. 스스로도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에릭 헤이든(59·미국)은 지금껏 22차례 동계올림픽에서 단일 대회로 유일하게 전관왕에 오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미국) 대회 남자부에서 첫날 500m를 시작으로 1000m와 1500m, 5000m에 이어 마지막 종목 1만m에서 14분28초13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뽑았다. 1988년 캘거리(캐나다), 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딴 보니 블레어(53·여)는 “6년에 걸친 내 올림픽 성과를 아흐레 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앞서 헤이든은 1977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헤렌벤(네덜란드)을 시작으로 1980년 밀워키(미국) 대회까지 금메달 7개를 따내 1인자 자리를 예약했다. 그러나 헤이든은 단일 올림픽 5관왕의 영예를 마지막으로 미련없이 빙판을 떠났다. 노르웨이에서 잠시 하키 생활을 하다 이듬해 프로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1985년 이탈리아 도로사이클 경주인 지로 디탈리아에서 완주한 헤이든은 같은 해 전미선수권에서 도로 부문 챔피언에 올랐다. 주행 중 충돌 사고로 완주에 실패했지만 1년 뒤 프랑스 도로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도 참가한 그의 이름은 1999년 미국 사이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세 번째 도전은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이었다. 1996년 캘리포니아대에서 레지던트를 마친 그는 미국프로농구(NBA) 새크라멘토 팀닥터를 거쳐 2002년부터 2014 소치동계올림픽 때까지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주치의로 후배들을 돌봤다. 소치 땐 “미국 스포츠에 진 빚을 갚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돼지 뒷다리의 재발견, 프로슈토와 하몽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돼지 뒷다리의 재발견, 프로슈토와 하몽

    딱히 가치는 없으나 버리기에 아까운 것을 두고 ‘계륵’이라고 한다. 후한 말 진퇴양난에 빠진 조조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래를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평소 먹는 닭 요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닭 갈비뼈에 붙은 살은 나름대로 맛은 있지만 먹기가 까다롭고 별로 먹을 것도 많지 않다.돼지고기 부위 중에도 계륵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뒷다리다. 삼겹살과 목살에 비해 가격이 절반에서 3분의1 수준이다. 이유는 있다. 다른 부위에 비해 지방이 적고 근육이 많아 구우면 질기고 삶으면 퍽퍽해져 한국인이 좋아하는 구이용과 수육용으로는 그다지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싼 가격 덕분에 얇게 저며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등으로 이용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에 비해 식감이 퍽퍽한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식당에서 가끔 먹게 되는 퍽석한 돼지고기는 저렴한 뒷다리살일 공산이 크다. 먹기가 이다지도 불편한데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생산자에게도 요리사에게도, 그리고 먹는 사람에게도 썩 유쾌하지 않은 게 돼지고기 뒷다리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계륵 취급을 당하는 뒷다리지만 산 넘고 바다를 건너면 대접은 180도 달라진다. 유럽에서 돼지고기 뒷다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딱 두 곳 있다. 바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스페인 사람들은 가장 하찮은 부위를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맛을 가진 식재료로 탈바꿈시키는 신통한 재주를 갖고 있다. 털을 제거하고 통째로 씻은 뒷다리를 소금에 절인 후 장시간 건조하는데 이를 두고 이탈리아에서는 프로슈토 크루도, 스페인에서는 하몽이라고 부른다. 돼지 뒷다리를 영어로 햄이라고 하는데 프로슈토 크루도와 하몽은 익히지 않고 소금에 절여 반건조한 생햄이다. 인류가 언제부터 생햄을 먹어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60년 로마의 정치가 카토가 쓴 저작물로 여기엔 생햄을 만드는 과정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이를 근거로 이탈리아가 생햄의 발상지라고 우기는 이들(아마도 이탈리아인이 아닐까)도 있다.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무시했던 변방의 민족에게는 싸움뿐 아니라 수렵한 짐승을 말리고 절이는 데 탁월한 실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농경민족인 로마인들이 수렵·채집을 주로 하던 외부인들과의 물물교환 속에서 생햄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원조가 누가 됐든 생햄은 식량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편으로 생긴 하나의 부산물이다. 소금에 절여 건조하거나 연기에 훈제한 고기 표면에는 유해한 박테리아로부터 내부를 보호해 주는 일종의 보호막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보존 기한이 극적으로 늘어나면서 독특한 풍미가 더해진다. 보호막 덕에 고기 안의 단백질은 부패하는 대신 안전하게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며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의 농도가 많게는 20배까지 증가하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맛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프로슈토는 이탈리아의 파르마에서 생산되는 프로슈토 디 파르마다. 특정한 곡물을 먹인 암퇘지 뒷다리를 사용한다. 보통의 프로슈토가 6개월 이상 숙성돼서 나오는 반면 ‘프로슈토 디 파르마’는 9개월에서 많게는 2년까지 숙성시킨다. 숙성 기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하몽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하몽은 도토리를 먹인 흑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다. 최상급은 3년 정도 숙성시킨다. 프로슈토와 하몽은 언뜻 보면 형제 같아 보이지만 맛에 있어서는 완벽한 남이다. 프로슈토 디 파르마가 잘 익은 과일향, 은은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풍미를 보여 준다면 하몽 이베리코 데 베요타는 남성적이다. 오래 숙성시키고 염도도 강해 강렬하고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탄성을 자아내는 놀라운 풍미를 보여 준다.최고급 프로슈토와 하몽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음식이기에 별다른 조미 없이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그냥 먹거나 과일, 치즈와 함께 서빙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리사들이 별로 손을 댈 게 없다. 그렇다고 꼭 그렇게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주방에서 생햄은 훌륭한 조미료로도 대접받는다. 치즈와 토마토의 경우처럼 MSG, 즉 글루탐산나트륨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각종 다양한 요리에 감칠맛을 더하는 부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국의 음식문화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프로슈토야말로 지구상에서 만들어지는 생햄의 정점에 있다고 믿는다. 스페인 사람들이 하몽에게 그러하듯 말이다. 두 나라 사람에게 둘의 우열을 묻는다는 건 자칫 첨예한 국가 간 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있는 민감한 문제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바다. 자기네들 것이 최고라고는 해도 막상 서로의 생햄은 먹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지만 말이다.
  • [올림픽 오디세이] 춥고 눈 내려야 성공…평창 날씨 어떤가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은 22차례 대회 가운데 가장 따뜻한 지역에서 치러진 것으로 기록됐다. 개막 일주일 뒤 최고기온 19도를 찍었다. 이날 스키 남자 크로스컨트리 15㎞에 출전한 노르웨이의 크리스 에스페르센은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땀을 뻘뻘 흘렸다. ●위도만큼 해류·지형 등 요건도 중요 소치의 위치는 동경 39도43분13초, 북위 43도35분07초다.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북도 끝과 같은 위치다. 느낌에는 추운 곳이다. 그러나 독일 기상학자 블라디미르 쾨펜에 따르면 소치는 11개 기후 종류 가운데 온난습윤기후에 속한다. 연안의 바다, 즉 흑해가 기후의 열쇠다. 비열이 높은 바다와 해류가 소치 부근의 공기를 따뜻하게 유지시켰다. 장벽같이 둘러친 캅카스산맥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를 차단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약 70만t 규모의 눈 저장탱크를 5개나 만들었다. 1998년 나가노대회는 적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렸다. 위도상으로 소치에서 한참 떨어졌고 심지어 서울보다 낮은 위도인 36도38분에 위치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대회보다 자연 기후적 측면에서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는다. 나가노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지붕’이라 일컫는 일본 알프스를 머리에 이고 있다. 히다와 기소, 아카이시 등 거대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서쪽으론 3000m급 온타케산·노리쿠라타케산 등이 늘어섰다. 우리나라 동해에서 불어 내려오는 습한 바람이 산들을 넘으며 풍부한 눈을 만들어 낸다. 고원지대에다 내륙성 기후의 특성상 연교차도 크다. 연평균 기온은 11.3도에 불과하다. ●평창 평균 영하 4.8도·적설 41㎝ 전망 동계올림픽에서 날씨는 대회 성공을 가름한다. 11일 기상청은 대회 기간 평창의 평균기온과 상대 습도를 영하 4.8도와 67%로 내다봤다. 평균 최고기온은 0.2도, 최저기온은 영하 9.8도다. 평년 평균 적설량은 41.3㎝로 전망됐다. 강릉 평균기온은 2.4도다. 최고기온은 6.9도, 최저기온은 영하 1.4도, 강수량은 38.2㎜, 적설량은 15.2㎝로 나타났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이유로 급격한 기후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다. 2010년 밴쿠버대회도 내내 내리는 비와 따뜻한 날씨 때문에 ‘제1회 봄 올림픽’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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