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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연출가 유덕형(이세기의 인물탐구:36)

    ◎실험·전위적 무대로 연극계에 선풍/갈등­대립 이원성 강조… 살아있는 예술 추구/70년대 「알라망」「초분」으로 국제적 명성얻어/“작품마다 충격과 감동” 호평… 81년 「산씻김」이후 긴 침묵 서울예전 학장실에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은빛쇳조각으로 만든 해와 달과 별과 지구모형이 문을 열고 닫을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인다.아마도 외부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햇빛따라,구름따라 좀더 현란한 변화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또는 모빌의 움직임에서 금속성의 차가운 음향이 들렸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모빌은 실내공간에 고요히 고정되어 절제된 미동만으로 색다른 소우주를 형성해내고 있다.이것이 바로 유덕형연극의 내면세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모빌은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다.미국에서 본 칼더의 작품을 그가 본떠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이다. 그는 남산을 배경으로 한 창을 등지고 앉아 태양을 둘러싼 행성의 움직임을 때때로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뭔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모색하려는 기미다.그러나 그의 의중을 꿰뚫어 알 사람은 그곳에는 한사람도 없다. 60년대말 한국 연극계에 회오리를 몰고온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잇는 10여년 참으로 많은 감동과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그리고 그의 행적을 논할 때마다 「새로움」이라든가 「최초」 또는 「충격」은 그를 둘러싼 당연한 수식어가 돼버렸다. ○젊은 연출가에 찬사 첫번째 충격은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다.이 연극에서 그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다른 연극과는 달리 무대전체가 싱싱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을 살렸다.사이키델릭 조명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율동,그가 연극에서 추구해마지않던 이원성의 문제가 여기서도 제기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연극의 재미를 고조시켜 나갔다.이른바 물질문명과 기계문명,황금만능주의 속에서 한 인간이 무기력하게 세뇌당하는 과정을 입체추상으로 그리고 있다.관객 또한 연극의 화려함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컴도 한국연극계의 거목인 동랑의 2세로서가 아니라 한 재능있는 젊은 연출가의 지적탐험과 실험정신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그러나 보수주의와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하려는 일부 계층의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빛과 소리와 움직임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초분」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한번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뿌렸다. 「초분」의 첫번째 공연은 극도로 제한된 극한상황에서도 무대의 확대가능성,무대조작의 자유분방함이 시도되었고 질서와 혼란이라는 대립개념을 앞세워 주술적인 대사와 침묵,행동 또는 움직임과 정지에 대한 실험이 변증법적으로 이어졌다.해탈과 열반,샤머니즘과 토테미즘,다양한 색깔의 조명은 시각연극,움직이는 연극,살아있는 회화의 무대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이번에도 평자와 각 매스컴이 「초분」호평 일변도였으나 그의 부친인 동랑은 전혀 이와 의견을 달리했다. 『너는 관객을 친구로 생각지 않는다.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것은 관객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철저한 실험정신을 내심 사랑한 그는 『겪어야 할 아픔이라면 철저하게 겪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인74년 이 연극을 가지고 뉴욕공연길에 올랐다. 여전히 갈등대립의 이원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한국공연에서의 모던댄스를 고도로 절제된 동양무술로 바꾸고 음과 양 제의적 동작과 시적 무대만으로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의 가슴을 일시에 움직였다. ○연극의 새방향 제시 세계적 연극이론가인 그로토프스키와 로열셰익스피어 극단 연출가 피터 부룩은 『새로운 연극이 찾고 있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했음을 명쾌하게 호평했다.이 뉴욕공연중 그가 그처럼 존경하던 부친의 타계소식에 접했고 그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단지 『연극인이면 언제나 무대에 남으라』던 부친의 평소 소신대로 그는 그시간에 무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음해 세번째 「초분」을 공연했다.이번에는 관객의 지적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초분」이 지닌 무수한 대립의 감정을 미련없이 깨뜨려버렸다. 예를 들어 조명도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로,의상도 흑백,선·리듬·시간과 공간·무게의 모든 다이내믹스까지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앞의 두 공연을 미련없이 무효로 돌려버리게 됐을때 그는 비로소 성숙을 느꼈다.아마도 연륜과 체험의 대가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깨달음일 것이다.이제 일반관객도 그의 실험극들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시종 「충격」과 「실험정신」 「전위정신」이 깃든,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완벽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꾀하려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아마도 신들린 상태가 아니라면 감히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다양한 시도를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인 것같다. 충격도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69년 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연출작품발표회」를 가진 것과 2년후 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초청으로 「알라망」연출,국제극예술협회(ITI) 명예회장 로자몬드 길더여사로부터 『이 연극은 피터 부룩도 질투할만하다』는 세계무대에서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73년 ITI 모스크바총회때 한국대표로는 처음 공식참가하게 되자 그는 한때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소련 입국소식은 국내 주요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고귀국후엔 각신문에다 소련방문기와 소련에서 찍어온 사진을 연재했다. ○동낭선생의 큰 아들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비중있는 위치인 동낭 유치진선생과 희곡작가인 심재순여사의 3남매중 장남.누나부부도(유인형·안민수씨)도 연극연출가다. 한때는 과학문명시대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연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영문과로 다시 전과,음악·발레·그림·사진찍기에 집착했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무대장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학교에 다녔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외에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영상연극의 기수인 로버트 윌슨.브루클린음대 아카데미서 막올린 「요시프 스탈린 생애와 시대」는 저녁 7시에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이어진 12시간짜리 공연으로 시각적·청각적 공간,어느 순간에도 보이는 것,들리는 것으로 일관된 특이한 무대로 감명받았다. 연극에서는 그가 아무리 한국전통을 강조할 때라도 언제나 실험적·전위적이란 말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며 그것은 아마도 「창조하는 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라는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그럼에도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작품에 임하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바닥이 보이는 듯한 절망감에 빠진다. 그의 연출에서의 이원성처럼 그는 성격·처세·취미에서 이중구조 내지 복합삼각주와도 같은 형태를 띤다. 헌칠하고 깨끗한 외모에 만년청년같은 모습,지금도 블루진과 하얀 터틀넥에 골덴자켓이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토론이나 의견을 말할 때는 점점더 목소리가 고조되어 온힘으로 말하고 한번 입을 다물면 말을 잃은 소년처럼 우울한 구석을 비치기도 한다.이따금 「크레믈린」이란 별명을 듣지만 일상생활이나 예술에서 미혹이나 현혹은 없다.예의가 바르고 지적이며 낯가림이 심한 편. 미국유학시절 트리니티대에서 만난 부인 제니스 유도 본래는 아동극 연출가.그와는 문화·풍속·민족 모든 것이 다른 이질이란 점에 호감을 느꼈고 그는 신비한 것,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좋아한다. 연대신방과를 나온 아들 태균(23)은 뉴욕대서 연극연출,딸 미아(20)는 브라운대서 오페라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사람은 두가지일을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에 그는 「산씻김」이후 긴 침묵을 지키면서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대전엑스포등 행사와 여러 연극의 조명에만 손댈뿐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칼더의 모빌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교라는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그곳에 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그에겐 등장인물이고 스태프다.학교의 프로그램 모두가 극중사건이다.정말 학교마당에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대사연습에 열중한 학생들과 밤낮없이 왁자지껄하다.더구나 예술전문대 학장이란 문화운동을 할 수 있는 자리다.미국에서 종족음악 강의를 하겠다고 국악을 소재로 한 작곡을 부탁해오면 사람을 부르고 중매를 서기도 한다. ○무대 조명에만 손대 그런중에도 작품에 대한 집착은 핵심에 도사려 있다. 인간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나,극단적인 이상주의 추구는 어디까지인가,예술에서의 완성은 있는가.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회화의 세계,그러나 내용·색깔·동작·대사 모든 것을 절제하고 생략한 맨 마지막 정점.그의 예술의 끝은 태양을 응시하던 카뮈의 요나처럼 어쩌면 무대위에 「점」하나를 찍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38년 1월 서울출생 ▲196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66년 미 트리니티대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68년 미 예일대 연극대학원 박사과정 ▲1963년 미 댈라스 연극센터연구단원(체호프 「세자매」,셰익스피어 「코미디 오브 에러스」연출) ▲1966년 캐나다·미국연극계 시찰 ▲1967년 미국교육연극연합회(AETA)회원,뉴욕 레인즈 무대미술제작요원,엘비 「작은앨리스」,포드 「빨간인디언」,오스본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연출,마이클 케인 「라생문」연출·장치·의상·조명(댈라스시어터 센터서 4개월장기공연) ▲1969년 극단드라마센터 상임연출가 ▲1970년 서울연극학교교장 ▲1971년 국제극예술협회(ITI)런던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필리핀 연극제참가 ▲1973년 ITI 모스크바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제3분과 이란연극제참가 ▲1974년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 ▲1976년 ITI 베네수엘라 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유엔주최 「환경의 해」세미나 및 페스티벌,캐나다밴쿠버회의 참석 ▲1977년 유엔주최 「세계어린이의 해」 기념행사 준비위원국 뉴욕회의 한국대표 ▲1979·81년 제3세계 연극연구소(TWITAS)뉴욕회의 운영위원회 참석 ▲1969년 유덕형 연출작품발표회,김종달작 「갈색 머리카락」,브르크작 「낯선 사나이」,유치진작 「자아비판」등 연출(드라마센터),윤대성작 「미친 동물의 역사」(70년),해럴드 핀터작 「생일파티」(70년),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알라망(Alhamang)」연출(71년),동랑레퍼토리 오태석작 「초분」(73·74년 뉴욕·75년 서울),오태석작 「태」(74년),유치진작 「마의 태자」(75년),동랑레퍼토리 미국 및 유럽 순회공연(77년),최인훈작 「봄이 오면 산에 들에」(80년),이현화작 「산씻김」(81년)등 연출,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공연 「한여름밤의 꿈」(85년),동랑청소년극단 윤대성작 「방황하는 별들」(85년)「꿈꾸는 별들」(86년),오닐작 「밤으로의 긴 여로」(88년),88예술단창단공연 오태석작 「새불」등 조명. 서울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부위원장,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ESTE)한국본부이사,예술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위원,한국방송공사 자문위원,서울올림픽조직위 문화식전국장,서울올림픽 폐회식 제작단장,대전엑스포 전문위원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장 동아연극상,서울신문 문화대상,마닐라시장 문화표창상,한국연극 영화예술상,중앙문화대상
  • 기아 미 진출채비 광고대행사 선정

    【뉴욕 연합】 기아자동차의 미국현지법인인 기아 모터스 아메리카는 지난 29일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광고회사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골드버그 모저 오닐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등 미국 신문들은 31일 기아와 골드버그 모저가 3천만달러 수준의 광고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도했다.
  • 오페라극장(외언내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나 이와 마주하고 있는 시티오페라 또 시카고의 시립오페라,샌프란시스코 파라마운트 예술극장등은 1년내내 표가 예약되어 갑자기 현지에 가서 오페라를 감상하기란 좀체로 쉽지않다.남이 취소한 표를 구입하여 임페리얼 시어터나 유진오닐극장에서 「젤롬로빈슨스 브로드웨이」,데이빗 헨리황의「마담 버터플라이」를 봤다고하면 이는 대단한 행운에 속한다.대부분 관객은 각 오페라하우스 후원회의 멤버로 가입되어 있거나 일반관객의 경우 1년에 두편 또는 네편을 미리 예약해두는 식이다.따라서 관객은 1년전 적어도 5∼6개월전부터 내가 볼 오페라를 기다리게 되는 셈이다.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페라공연장에 가기위해 아침부터 정성들여 치장하고 고급옷을 입고 고급향수를 뿌린다. 휴식시간도 우리나라처럼 오페라 4막중 2막이 끝나고 10분 20분이 아니라 50분에서 1시간정도로 여유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그시간동안 오페라하우스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특별메뉴를 즐기기도 하고 가벼운 음료로 담소,이시간이야말로 각자의 치장취미를 감상하는등 고급문화를 향수하는 사람만의 긍지를 느긋하게누리는 시간이라 할수있다. 우리도 오랫동안 열망했던 오페라극장을 갖게됐다.오는 10월 문화의 날부터 70일간에 걸친 오페라향연을 펼치게된다니 여간 기대가 크지않다.오페라 티켓도 예약하고 후원회멤버가 되기도 하고 또 휴식시간에는 명화가 걸린 오페라 식당에 앉아 그곳에서만 맛볼수 있는 특별 메뉴를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오페라극장의 레스토랑이 극장이 채 정식개관하기도 전에 결혼예식이니 피로연장으로 쓰여진다 해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그렇게 돈이 벌고싶었다면 처음부터 오페라극장 근처에는 얼씬하지 않는것이 좋을뻔했다. 예술의 전당측도 오페라극장의 레스토랑은 어디까지나 극장소속이라는 명분을 또렷이 앞세웠어야 한다. 장삿속만 밝은 업자에게 임대하여 물의를 빚는 자체가 무능하고 무신경한 처사다.오페라극장 레스토랑도 극장못지 않은 「명소」임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 금수물품 수출관련/부시 법정소환 될듯

    【휴스턴 AFP 연합】 조지 부시 전미국 대통령이 재임당시 발생한 이라크에 대한 화학무기 개발용 물품 불법 수출계획과 관련,법정 증언을 위해 소환될 수 있다고 에일렌 오닐 담당 판사가 지난 26일 밝혔다. 부시 전대통령이 법정 소환될 경우,이라크와 리비아에 대한 화학무기 개발용물품 수출계획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이라크계 미국인 이산 바르부티씨에 관한 사항을 질문받게 된다.
  • 미 명출판편집자 카민즈의 편집관/「편집자란 무엇인가」

    「편집자란 무엇인가」 연필한자루로 일세를 풍미한 미국 램덤하우스출판사의 명편집자 삭스 카민즈(1895∼1958)의 편집일생을 그의 아내이자 조언자였던 도로시 카민즈가 편집하고 일지사 발행인인 김성재사장이 번역한 「책편집의 세상」. 이 책은 삭스 카민즈가 유진 오닐,월리엄 포크너,싱클레어 루이스등 당대의 작가들과 40년이상 주고 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편집관을 보여준다.또 편집과 씨름하는 한 사나이의 모습과 그와 함께한 당시 미국문학의 한 시기를 적은 연대기이기도 하다. 『쓸모없는 바위를 푸른 연필로 두들기기만 하면 향기로운 샴페인을 내뿜게 할 수 있는 편집자』란 평가를 받은 「탁월한 편집자」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도로시 카민즈지음 김성재옮김 5천원.
  • 인간소외/환경파괴/현대문학이 풀어야할 과제

    ◎유네스코·펜클럽 주최 아시아문학심포지엄/중·일·태국 등 14국서 3백여명 참가/21세기 대비 문화·문학의 문제점 점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회장 문덕수)가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주최한 「아시아 문학의 주요쟁점에 관한 서울 심포지엄」이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렸다.이번 서울 심포지엄은 유네스코가 세계를 5개권역으로 나눠 21세기에 대비한 지역별 문제점을 미리 점검해 정보를 수집하고 앞으로의 지원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아시아 지역 14개국 18개 펜센터에서 참가한 20여명의 주제발표자를 비롯,한국펜 회원 3백여명이 참석했다.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등 동북아 국가들로부터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스리랑카 몽골등의 문인들이 총망라돼있다.발제내용도 각국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이 반영돼 공통된 하나의 주제로 묶긴 어려웠지만 민주화문제,산업도시화에 따른 사회변화와 인간소외문제등이 폭넓게 거론되어 주목을 끌었다. 이형기교수(동국대)는 「산업사회의 도전과 한국시의 응전」에서 산업사회의 문제상황으로 황금만능주의와 과도한 자연수탈을 우선 지적했다.『인간소외를 포함한 산업사회의 소외상황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고발의식이야말로 현대시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고 주장한 그는 시의 세속화를 요구하는 상업주의의 도전도 한국의 현대시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지적했다.이교수는 이 논문에서 산업사회의 도전에 한국의 현대시가 어떻게 응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이승훈 신경림 최승호등의 시를 예로 들었다. 「한국소설에 나타난 남녀가족관계」를 발제로 가지고 나온 김우종교수(덕성여대)는 1917년 발표된 이광수의 「무정」에서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소설속에 나타난 남녀관계중 「씨받이 여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김교수는 이 논문에서 『한국의 근대문학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윤리관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작업부터 해나갔다』고 분석했다.그러나 『남녀불평등의식이 타당성을 상실한 지금도 아들선호사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 한국의 작가들은 남아선호사상의 허구성부터 깨뜨려야 한다』는 김교수는 『진정한 남녀평등의식을 바탕으로 한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문학작품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상해펜센터 사무국장인 루오 루오씨는 「중국 신시 70년」을 통해 1919년 5월4일 신문화운동기간에 출현한 이른바 중국의 신시가 현대시의 주류를 이룬다고 소개했다.1949년 10월 신중국 창립과 1976년 문화혁명의 종식은 5·4운동과 함께 중국 신시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사건들로 꼽았다.이어 그는 1921년 1월 북경에 결성된 「문학연구회」와 같은해에 발행된 「시」를 중국 최초의 신문학협회,최초의 월간지로 보았다.그리고 30년대에는 프랑스 상징파의 영향을 받은 「신시파」와 「중국좌익작가연맹」이 결성됐다고 중국문학사를 재조명한 그는 50년대는 찬가의 시대로,그리고 문화혁명기였던 66∼76년은 애가의 시대로 분류했다. 이밖에 홍콩의 쉔운춘의 「97년을 직면한 홍콩의 인권에 끼친 문학의 영향」,필리핀의 F 시오닐 호세의 「차용언어로 쓴 시­아시아에서의 영어의 미래」등도 눈길을 끈다. 한편 이번 서울심포지엄동안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중국어로 번역한 대만의 여류시인 장 샹 후아(장향화)씨의 시집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려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 미,6ㆍ25 계기로 초강대국 부상/WP지,「한국전 40년」재조명

    ◎국방비 지출 3배ㆍ병력수 6배 늘어나/외교정책 반공으로 선회… 냉전 본격화 미국에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진다. 승리의 영광도 패배의 치욕도 남기지 않아 오래전에 이미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은 미국의 정치ㆍ군사ㆍ세계전략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고 24일자 워싱턴 포스트가 한국전 발발 40주년 특집 기사에서 회고했다. 다음은 EJ 다이오네 기자가 쓴 이 기사의 요약이다. 한국전은 2차대전 처럼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지 않았지만 월남전 처럼 패배의 치욕도 남기지 않았다. 초기를 제외하면 한국전은 특별히 인기있는 전쟁도 아니었고,또 월남전처럼 극심한 국론 분열도 야기 하지 않았다. 결말도 나지 않고 인식도 잘못된 한국전은 그후 미국이 50년대의 번영을 구가하며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뻗어 나가자 재빨리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한국전은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전쟁」이 돼버렸다. 한국전은 미국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의 정치,대통령권한에 대한 이해,군의 지위,그리고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 등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한국전은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치를 확인해 주었고,또한 월남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깔아 놓았다. 어느 면에서 이 잊혀진 전쟁은 미국 전사상 가장 긴 파장의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 중도 좌파 정책연구소의 리처드 바네트는 『장차 한국전은 월남전보다 더 중요하게 회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역사가들 사이에서 토대를 넓혀 가고 있다. 몇가지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전은 미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군사비 지출은 49년의 1백40억달러에서 53년엔 4백40억달러로 늘어났다. 한국전이 터진 50년 6월 미국은 59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이 휴전된 53년에 이 숫자는 3백60만명이 되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남한침공은 당시 트루먼 정부가 사상 최대의 군비 증강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명백한 군사적 위협의 실존」증거를 제공했다. 역사학자이며 50년대에 출간된 「미국 전성시대」의 저자인 윌리엄 오닐은 『미국의 한국전 참전은 2차대전 후 조지케넌이 제창한 대소 봉쇄정책의 골간 수정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을 공산주의자 수중에 넘겨 주었다는 비난 속에 대소 자세를 경화하고 있던 트루먼 행정부는 북한의 남침 배후에 소련의 스탈린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한국전에 신속히 대응했다. 트루먼은 유엔의 한국 파병 결의를 내세워 전쟁 선포에 관한 의회 승인을 구하지 않았다. 냉전의 중요한 선례가 된 이같은 처사는 월남전 기간중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전은 또 미 공화당에서 고립주의 세력을 약화시켜 공화당 보수파의 대외정책의 근간을 고립주의에서 반공으로 바꾸게 했으며,이러한 변화속에 상원의원 매카시의 공산주의 탄압 입장을 강화시켰다. 역사학자 존 패트릭(캘리포니아대)은 매카시즘을 『전쟁의 성취도가 결여된데 따른 심리적ㆍ정치적 좌절의 소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한군을 38도선 이북으로 몰아냈을때 전쟁을 종결했다면 미국은 신속한 승리를 주장할 수 있었을것이다. 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체결때까지 한국전에서 미국인 남녀 3만3천6백29명이 죽었고 10만3천명이 부상했다. 한국전 종전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휴전이라는 모호한 결론을 성립시킨후 『우리는 하나의 전장에서 휴전을 이뤘을 뿐 세계 평화는 정착시키지 못했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한국전이 후에 월남전까지 이어진 긴 냉전의 시작에 불과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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