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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방서 중심 된 한국문학… ‘포스트 한강’ 다양성 폭발시킬 기회”[한강의 시간]

    “변방서 중심 된 한국문학… ‘포스트 한강’ 다양성 폭발시킬 기회”[한강의 시간]

    한강이 장르 다양성 길 열어줘역사적 사실 넘은 감각의 모방고통받은 이들 소설로 보듬어양질 번역 위한 지원 고민해야세계 속 한국문학 ‘시차’ 사라져깊은 주변부 의식 벗어난 계기개성 있는 작가들 살아남도록독자가 낯선 문학 관심 가져야젊은 연구자 정전화 탈피 노력다양하게 읽히지 않아 아쉬워韓문학 토대 위 한강만의 세계 작가·독자 이은 가교로 남을 것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의 기적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문학이 오랜 시간 축적한 정서와 감각 위에서 실현된 역사적 쾌거다. 세계문학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한국문학은 이제 세계 속에서 ‘시차 없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학사는 그간 다양한 방식과 관점에서 쓰였다. 그러나 2024년 10월 10일 이전과 이후는 상당히 다르게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는 한강처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점으로 한국문학의 전과 후로 구분될 것이다. 한강이 30년 전인 1994년 신춘문예 당선작 ‘붉은 닻’을 통해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딘 관문 역할을 했던 서울신문은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와 향후 한국문학의 전망 및 과제를 짚는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조연정 문학평론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한강의 문학세계를 요약한다면. 우찬제 교수 “여리고 취약한 존재들, 정처 없이 방황하며 상처받은 사람들, 고통 속에서 절명한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비가를 시적인 문체로 ‘가만가만’ 보듬은 작가라 하겠다. 사실이나 진실을 넘어 고통의 심연에서 고통을 고통스럽게 탐구한 작가다. 숨 쉴 수 없는 존재들이 나름대로 숨 쉴 수 있도록 위로와 생명의 음표를 감각적 리듬에 실어 소통한 소설가다.” 이광호 대표 “한강의 중요한 주제는 ‘애도’다. 그러나 애도는 남성적이거나 리얼리즘적인 서사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서사가 필요했다. 그것은 여성적이면서도 시적인 목소리다. 이야기의 힘보다는 강렬하고 참혹한 이미지 그리고 신음 같은 목소리들이 문장을 이끌어 간다. 종래 소설에서는 전경화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강은 ‘육체를 관통하는 시적인 글쓰기’를 수행한 작가다.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2016년 영국 부커상에 이어 이번 노벨문학상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조연정 평론가 “물론 한강 작가 개인의 탁월함과 훌륭함도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한강의 부커상 수상 이후 다종다양한 한국문학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소개됐던 힘도 있었을 것이다. 가령 ‘채식주의자’는 한강이 부커상을 받기 9년 전인 2007년 출간됐던 작품이다. 당시 한국 문단에는 이미 김혜순, 최윤, 오정희, 은희경, 편혜영, 김애란, 황정은, 손보미, 조해진 등 수준급의 작품을 써내는 여성 작가들이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배출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축적된 한국문학의 성과들도 아울러 봐야 한다.” 이 대표 “소설집 ‘여수의 사랑’ 등 초기작에서는 개인의 상처 등 실존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나중에는 그것이 사회적인 트라우마와 여성적인 연대로 나가는 확장성을 보여 준다. 세계인이 관심을 가질 만한 보편적인 고통으로 나아간 것이다. 노벨문학상으로 상징되는 서구문학은 그간 백인 남성의 거대 서사가 주름잡았다. 그것과는 결이 다른 아시아 여성의 새로운 형식의 언어를 발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지형의 변화 가운데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도 한 계기가 될 수 있었겠다.” 우 교수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선 선배들의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철우, 현기영 등의 작가들이 이미 리얼리즘적 관점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3 사건을 재현했기 때문에 한강은 그 위에서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감각할 수 있었다. 한강이 ‘사실의 미메시스(모방)’가 아니라 ‘감각의 미메시스’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한강의 소설을 두고 역사적 사실 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있었던 사건 안에서 고통받은 이들의 영혼 안으로 소설이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봐야 한다.” -‘한강 특수’로 서점가는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 사정은 녹록지 않은 것 같다. 이 대표 “문학은 개성과 다양성의 전쟁터다. 한강도 한국문학 시장에서 대중적이고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채식주의자’가 번역되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기회가 왔을까. 대중적이지 않고 독창적이며 누군가가 보기에는 특이하고 괴상한 문학을 하는 사람이 계속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한국문학 시장은 그런 다양성을 보장할 여력이 안 된다. ‘한강 특수’가 이런 다양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이어질지 저는 의문이다. 독자들이 지금보다 더 낯선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개성 넘치는 작가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앞서 축소됐던 ‘문학나눔’ 사업의 정상화를 포함해 더욱 적극적인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 조 평론가 “한국문학이 다양하게 ‘쓰이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골고루 읽히지 않는 게 문제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다양한 작가의 책을 독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한강으로만 쏠릴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 문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작품은 다양한데 독자들이 거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접하고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 우 교수 “문학 정책을 집행하면서 실용주의적 관점은 지양해야 한다. 책은 공산품이 아니다. 번역 예산을 얼마 들였고 그래서 번역서가 몇 권 나왔는지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좋은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세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양질의 번역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예산을 집행하면서 당장 돈을 들인 만큼 성과를 내는 데에 급급했던 측면이 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한국문학은 도대체 어떤 문학인지 맥을 잡아 줄 수 있는 비평적 담론도 활성화돼야 하고 그걸 펼칠 수 있는 여러 지면이 필요할 것 같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사는 어떻게 기록될까. 조 평론가 “최근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문학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쓰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전화된’ 문학사를 세부적이고 다양한 관점들로 쪼개서 ‘작은 문학사’를 서술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훗날 한강이 한국문학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예단할 순 없다. 202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예외적인’ 수상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한국문학의 두꺼운 토대 위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구축한 작가. 그러면서도 동시대 많은 작가를 독자와 이어 준 가교로 기억될 것 같다.” 우 교수 “한강은 아직 50대 중반이다. 이른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기에 지금까지 쓴 것보다 앞으로 쓸 것이 더 많거나 작품의 깊이가 더 깊어질 수 있다. 한강이 어떤 작가로 기록될지 지금 말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가 다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작가인 것 같다. 한강 이후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변두리에서 중심에 섰듯 장르나 스타일, 감각에서도 주변부에 있던 것들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번 수상을 에너지 삼아 한국문학에도 여러 활력이 생기고 혁신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대표 “그간 한국문학 제도권에 속한 정전들은 거의 남성 작가의 작품이었다. 여기에 비판이 일어나고 여성들의 문학사를 조명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문학사는 삼촌에게서 조카로 움직인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은 한강에게도 해당한다. 제2의 한강이 나올 테지만 그것은 한강과 똑같은 작가가 아니라 조금은 어긋난, 다른 작가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약간의 ‘시차’가 있다고 느꼈다. 시대의 중심에서 뒤떨어져 있다는 감각이다. 번역과 언어의 장벽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강에 의해서 그 시차가 없어졌다. 우리 문학의 뿌리 깊은 주변부 의식을 극복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변방이 아니라는 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것으로 아마 한국문학에 다양성이 꽃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강 이후의 우리 작가들은 세계문학의 중심에 있는 작가들과 동시대에서 읽고 쓸 수 있을 것이다.”
  • “전쟁·폭력적 파괴 커지는 세상 절망… 역사에서 못 배우는 인간 안타까워”

    “전쟁·폭력적 파괴 커지는 세상 절망… 역사에서 못 배우는 인간 안타까워”

    “한강 노벨상 축하, 기쁨 나누고 싶어”토지문화재단 “고통과 악 마주하며생명과 희망 가능성 집요하게 추적” “현재 세계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입니다. 전쟁과 폭력의 파괴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70)은 23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동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세계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지성인으로서 우려를 표한 것이다. 제르맹은 환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1989년 장편 ‘분노의 날들’로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받았다. 20권이 넘는 소설과 함께 예술과 시, 종교에 대한 에세이까지 포함하면 총 40권에 달하는 저작을 냈다. 국내에도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마그누스’, ‘호박색 밤’, ‘숨겨진 삶’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됐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예비평가인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제자로 그의 지도 아래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악(惡)과 용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용서는 우리 문화와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용서의 개념을 각 문화에서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결국 용서란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악을 막아 내는 장치라는 점입니다.” 박경리문학상을 주관하는 토지문화재단은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고통과 악의 실재를 마주하고 동시에 생명과 희망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가”라며 “인간성의 위상과 자신의 얼굴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고 제르맹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르맹은 “박경리문학상을 받게 돼서 놀랍고 무척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번 수상을 통해 이 상이 프랑스에도 알려지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얼마 전 한국인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축하하며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은 대하소설 ‘토지’ 등을 남긴 작가 박경리(1926~2008)의 문학 정신을 기려 2011년 제정됐다. 전 세계 소설가를 대상으로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에게 수여하며 상금은 1억원이다.
  • “내 중심엔 용암 같은 사랑”

    “내 중심엔 용암 같은 사랑”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전제로 하지만 에세이는 나를 전면에 내세우잖아요. 그래서 주저하게 되고 감추고 싶기도 하고…. 문장 하나하나 나아갈 때마다 소설을 쓸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했어요.” 지난해 베스트셀러 소설 ‘구의 증명’으로 사랑받은 소설가 최진영(43)의 첫 산문 ‘어떤 비밀’(난다)이 출간됐다. 최진영은 22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첫 산문집을 쓰면서 에세이를 쓰는 작가들의 담대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작가인 저도 결말을 모르고 쓰는 글이거든요. 그런데 에세이는 아니잖아요. 제 이야기의 결말은 제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재미가 없는 글이라고 여겼는데 원고를 출판사에 드렸더니 너무 재밌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 나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은 재밌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돌아보게 됐죠.” 최진영은 2006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18년간 8권의 장편소설, 4권의 소설집을 내며 이상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하지만 작가로서 소설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에서 최진영은 대학에 입학한 후 친구를 사귀는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소설에 빠진 뒤 졸업 이후에는 학원 강사로 일했다. 낮에는 중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쳤고 밤에는 글을 썼다. 밤마다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그 글을 소설이라는 틀에 담아 보기로 결심한다. 최진영은 책에서 “소설은 문장으로 만든 사진첩”이라고 했다. 분명 지어낸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진심이 담겼기에 그렇다. “날씨는 삶의 좋음을 알려 주는 요소죠. 같은 날씨는 단 하루도 없다는 걸 늘 생각해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산책할 때 바람이 다가오는 느낌과 온도. 그런 것들이 저를 깨어 있게 합니다.” 이번 산문집은 경칩에서 우수까지 24절기에 띄우는 편지들로 완성했다. 이 편지들은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준 것이란다. 그래서 이 책은 지극한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나의 중심에는 폭발하기 직전의 용암 같은 사랑이 있다”(‘귀순이, 사랑하는 나의 엄마’·100쪽)고 했다. “산문집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카페를 찾는 분께 마음을 전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저는 커피도 내릴 줄 모르고 할 줄 아는 건 글을 쓰는 것뿐이니까. 짧은 글이라도 전해 드리다가 그것들이 또 어느 흐름을 만든다면 또 다른 산문집으로 인사드릴 수도 있겠지요.”
  • ‘광장의 문학’서 대안을 찾다

    ‘광장의 문학’서 대안을 찾다

    서점가 쏟아지는 러시아문학 연구서·에세이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거나 광장에 나와 세계의 대안을 찾거나. 최근 서점가에 러시아문학 연구서·에세이가 쏟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최근 북한까지 가세하면서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법. 한국에서 사랑받고 지금까지도 재해석되는 러시아문학은 주로 러시아혁명(1917년) 이전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인간의 실존을 웅숭깊게 사유했던 러시아의 문학과 지성은 100년이 지난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김진영 교수의 ‘광장의 문학’(성균관대출판부)은 한국문학 속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추적한 연구서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소비에트 문학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됐는지 분석했다. ●이효석·이태준도 체호프에게서 영감 한국에서 러시아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작품은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무대에 오른다. 얼마 전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작품도 체호프의 ‘벚꽃동산’이었다. 체호프의 이 작품은 한국에서 1934년 12월 당시 ‘앵화원’이라는 제목으로 극예술연구회가 처음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영향이 확인된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1907~1942)은 10대 시절 체호프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하고 한국 근대 단편소설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이태준(1904~?) 역시 체호프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김 교수는 “1930년대 조선 작가들은 체호프 문학에 비추어 식민지 현실의 절망감을 대리 분출함과 동시에 체호프극 메시지 안에서 ‘절망 속의 희망’을 찾고자 했다”고 정리했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눈 뇌 문학’(열린책들)은 평생을 러시아문학에 헌신했던 그의 연구를 집대성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문학적 성찰’이라는 부제의 책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자유로운 인문적 상상을 펼친다. ‘성경’을 비롯해 다양한 텍스트를 다루지만 그래도 핵심적으로 인용되는 건 단연 러시아문학이다. 특히 러시아문학 고전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등의 문학에서 구현된 꿈, 몽상, 환각, 환시 등의 문제를 현대 인지신경과학의 논의와 접점을 찾아내면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입문자들을 위한 에세이 개정판도 석 교수는 레프 톨스토이(1828~1910)와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읽는 입문자들을 위한 에세이의 개정판도 최근 펴냈다. ‘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톨스토이), ‘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도스토옙스키)로 둘 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돈만이 최고 미덕으로 치부되며 도덕은 무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건질 것이라고는 허무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장 한편에 놔뒀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을 펼쳐 볼 때다.
  • ‘포스트 한강’ 향한 K문학… “다양성 키우고 세계와 소통 도와야”[한강의 시간]

    ‘포스트 한강’ 향한 K문학… “다양성 키우고 세계와 소통 도와야”[한강의 시간]

    주류 작가 외엔 1쇄 판매도 힘들어실험적·독창적 작가 생존 환경 필요젊은 작가 발굴·지방 상주 작가 지원외국 출판인 초청 등 번역사업 확대학문적 비평 활성화로 내실 다져야 한강 작가가 한국인으로, 그리고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 열흘이 지났다. 오는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까지 축하는 이어져야겠지만 이제는 열광 대신 ‘포스트 한강’, ‘포스트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위해 차분히 성찰해야 할 때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2000년대 이후 한류 열풍이 최근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방식의 K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 콘텐츠의 이면에는 한국문학이 있는 만큼, K 콘텐츠의 확장성을 위해서라도 한국문학의 더 높은 도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포스트 한강’이나 ‘포스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콕 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한국문학계에서는 30~50대 젊은 작가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 정서와 함께 특유의 역사성,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요즘 한국문학은 여성, 역사,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에 주목하는 세계 문학계의 흐름에 발맞춰 탁월한 작품성까지 선보이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문학계에서는 ‘포스트 한강’을 위해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 외에도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하는 다양한 소설가가 글을 써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21일 “문학의 핵심은 다양성인데 이른바 ‘주류’로 불리는 작가 외에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경우 1쇄(약 2000부)조차도 팔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문학세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꾸준한 지면과 원고 청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인 안주철 시인은 “한국문학의 저변이 넓어지기 위해서는 한창 커나갈 가능성이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며 “도서관·문학관 등에서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더 확대돼 서울, 경기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문학을 누릴 수 있도록 예산을 더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문학상 발표 후 한국문학을 외국에 집중적으로 알리는 번역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형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올해 초 학술지 ‘외국문학연구’ 제93호에 발표한 ‘영어권 번역문학상의 특징과 한국문학의 영어 번역’ 논문에서 “세계문학에서 한국문학의 존재감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2007)의 영어 번역 ‘The Vegetarian’(2015)의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전후로 나뉜다”고 선언했다. 그는 “한강과 영어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왼쪽)의 수상은 한국문학 영어 번역의 의의나 세계문학 시장에서 한국문학의 존재감과 위상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한강의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는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 독자들과 만났다. 또 2020년 제이크 레빈(오른쪽), 서소은, 최혜지가 김이듬의 시집 ‘히스테리아’를 번역해 국내 작가 최초로 전미번역상을 받았고 2022년 안톤 허(가운데)가 정보라의 소설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겨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교수는 이렇듯 세계 문학계에서 중요한 부커상, 전미번역상 등 도서상들과 노벨문학상은 반드시 영어로 번역돼야 수상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국내 독자들이 선호하는 주제나 스타일과 해외 독자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며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한국문학계의 다양성 확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영어권 문학상을 받은 한국문학 작품들의 작가 대부분이 국내 문학계에서 주변부적 위상의 작가군에 속하는 젊은 여성 작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세계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한국문학의 번역출판 방향성과 전략에 유의미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외국 출판인을 적극적으로 초청해 한국문학을 알리는 사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외국 출판인들과 국내 출판사를 연결하는 것 외에 별다르게 연결고리가 될 만한 행사가 없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초청 사업을 늘려 저작권 판매 확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문학계 분위기와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한국문학번역원 등 관계기관 회의에서 문체부 소속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외국에서 번역을 원하는 국내 도서를 선별하고 재외한국문화원에 이를 보급해 우리 문학을 알리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다. 높아진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도록 학문적인 비평의 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문학의 기초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 소설뿐만 아니라 비평 담론도 활성화돼야 한다는 논리다.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비평이 필요한데 지금 비평 생태계는 자생력을 잃고 고사하기 직전”이라며 “‘문예지 지원사업’ 등 비평가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야 한국문학의 내실을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 소설보다 詩가 먼저였다[한강의 시간]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 소설보다 詩가 먼저였다[한강의 시간]

    문단 데뷔 전 ‘편지’로 윤동주문학상‘이상의 회화와 문학세계’ 석사 논문2013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지 시인선 438호로 유일한 시집“침묵에 더 가까운 인간의 깊은 고통소설에서 시적인 언어 활용 밑바탕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그날의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내 가슴에 잠겨/차마 숨 못 쉬겠네/내게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서울의 겨울 12’ 부분) 소설보다는 시가 먼저였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4)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에 앞서 1993년 문학과지성사 발간 잡지 ‘문학과사회’에 ‘서울의 겨울 12’ 외 4편의 시(얼음꽃·유월·서울의 겨울 6·뱃노래)를 발표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는 그래서 매우 적확하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모여 큰 강을 이룬다. 그것은 어느 때에는 소설이 되고 어느 때에는 시가 된다. 주로 소설을 발표했던 한강은 지금껏 딱 한 권의 시집을 냈다. 2013년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438호로 출간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이다. 1993년 발표했던 등단작 중에서 ‘서울의 겨울 12’만 이 시집에 수록됐다. 눈물과 죽음의 언어가 지배하고 있는 시의 문장은 한없이 축축하다. 시집을 열어젖히는 ‘시인의 말’에 한강은 이렇게 썼다.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둥글게/더 둥글게/파문이 번졌을 테니까//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부분) 한강은 인간 내면의 슬픔을 직시하는 작가다. 슬픔을 들여다보면 눈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많은 눈물을 오롯이 맞이하기 위해 그는 자기의 몸을 ‘텅 빈 항아리’로 만들어 둔다. 더 많은 슬픔을 보려고. 더 많은 눈물을 자기 안에 담으려고. 우리 시대의 모든 아픔이 한강의 몸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그것들을 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세계의 고통을 몸으로 삭인 그는 이윽고 새 생명을 잉태하기에 이른다. 한강의 최근 시는 ‘문학과사회’ 가을호(147호)에 실렸다. 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두 편이다. 두 작품 모두 어둠을 꿰뚫는 시인의 통찰이 엿보인다. ‘(고통에 대한 명상)’은 “새를 잠들게 하려고 새장에 헝겊을 씌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의지로 초래하지 않은 어둠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북향 방’에서도 시인은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기억나지 않고/돌아갈 마음도 없다”고 선언한다. 암전된 세계에서 시인은 “고통에 대한 명상”을 이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 4학년 재학 시절 ‘편지’라는 시로 1992년 교내 윤동주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다. 문단에 데뷔하기 전 한강이 어떤 시를 썼는지 엿볼 수 있다. 이 시를 수상작으로 뽑은 정현종 시인과 김사인 문학평론가는 “굿판의 무당의 춤과 같은 휘몰이의 내적 열기를 발산하고 있다”는 인상적인 심사평을 남기기도 했다. 1993년 졸업 후 잡지사 ‘샘터’에서 사회생활을 했던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에서 2012년 석사학위를 받는다. 석사 논문은 ‘이상의 회화와 문학세계’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이 남긴 그림과 그의 문학세계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이상 역시 시와 소설을 모두 썼던 작가이다. 한강은 논문에서 “이상이 남긴 그림들은 빼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창작자로서의 강한 자의식과 미적 방법론을 시각적으로 표상함으로써 문학세계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실마리가 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인간의 아주 깊은 고통은 산문적으로 발화될 수 없으며 그것은 침묵에 더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는 한강의 문제의식이 그가 소설에서 시적인 언어를 활용한 기본적인 태도에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집은 한 권뿐이지만 그의 소설은 언제나 시의 연장이었으며 시를 쓰는 방식이나 태도로 소설을 써 왔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부고]나상현(중앙일보 경제부 기자)씨 부친상

    ●나인강(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씨 별세, 나상현(중앙일보 경제부 기자)·혜영씨 부친상, 이하영(전 서울신문 기자)씨 시부상, 김태현씨 남편상=19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 발인 21일 (031)787-1500
  • 지구, 이대로 괜찮을까요… 광장과 외침의 기록

    지구, 이대로 괜찮을까요… 광장과 외침의 기록

    지구를 향한 인간의 야만과 폭력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일상에는 물이 엄습한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면 희망은 있을까. 혹여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시인의 고민은 축축하고 처연한 언어로 다가온다. ●광장에선 활동가… 詩 쓰는 일도 병행 시인 윤은성(37)의 새 시집 ‘유리 광장에서’는 꽤 긴 시간 기후 활동가로 광장에 서서 외침을 이어 온 시인 내면의 기록이다. 뜨겁게 대의와 정의를 부르짖는 활동가도 결국은 인간이다. 데모와 행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몰아치는 온갖 상념의 소용돌이. 그의 시는 여기서 시작된다. “계속해서 물어요/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요/비가 오면 노아의 방주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우리는 이곳에 마스크를 쓰고 모였어요/완전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로/눈을 보고 있다고 위로도 해 보지만……우리의 이웃이 움직이지 못할 동안/가닿지 못한 채로/값싼 식사를 하고/아프고 힘든 소식으로만 서로의 안부를/확인하는 시절//어둑해 도로를 확인하기조차 어렵기도 합니다” (‘구름이 있는 광장에 모여서 우리는’·119쪽) 시인의 말마따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2015년 파리기후협정은 전 지구적인 기후 재앙을 피하고자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몇 년 내에 깨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만 난무한다. 모두가 전력을 다해도 위기를 극복할지 미지수다. 하지만 저마다의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아프고 힘든 소식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절”이기에. ●기후 위기의 실체 물의 감각으로 확인 “멀리/얼음이 얼고/모조리 깨지기를 반복하는 겨울//내리는 눈을 맞아 보지 못한 채//한강이 얼고 또 녹는 그 모든 일에/참여하지 못한 채//버스를 타며 졸고/걸려 오는 연락을 받고/고양이 밥에 새로운 밥을 겨우 부어 두고/밤에는 비어 있는 화분을 또 치우지 못한 채//천사를 만나기 어려웠다/겨우내//이름을 부르면/어린 공무원이 무서운 얼굴로 운다”(‘명의변경’·91쪽) 윤은성 작가는 광장에선 데모하고 종이에다가는 시를 쓴다. 하지만 그 역시 ‘생활인’이다. 일상을 지배하는 행정의 세계를 시인이라고, 활동가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걸 챙기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시인은 버스를 타면서 졸기도 하고 고양이의 밥도 겨우 부어 둔다. 하지만 지치기에는 우리 세상의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다. “육지에선 수중에서 쓸 수 있는 폐를 조립하는 엔지니어가 유행해. 바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란 서로의 지느러미를 더듬는 것뿐일 텐데. 우리는 다시 기이한 전화를 하려나. 어둠에 익숙해진 채 움푹한 눈의 흔적만 가지려나. 사람 크기의 묵직한 형체가 다시 해변에 쓸려 오고. 이번 아이들은 입이 닳아 있네.”(‘상괭’·105쪽) 시집에는 물의 이미지가 즐비하다. 시인은 예전 한 인터뷰에서 과거 안산에서 반지하에 살고 있을 때 폭우가 덮쳤던 경험을 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난데없는 폭우를 비롯해 요즘 우리를 엄습하는 기후 위기의 실체는 물의 감각으로 확인되곤 한다. 생명이자 파괴인 물. 그런데도 우리는 물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같이 투쟁해요”… 시인의 절박한 호소 “자신의 목소리로 안전한 해안과 숲을 마련하는/슬프고 강한 사람들을 보는 요즘이야/그럼 내 숲의 초록빛도 한 번씩 밖으로 내비쳐지고……용기를 낼 거야 겹쳐진 꿈은/선명해지기도 하니까”(‘모르는 일들로부터’·70~71쪽) 그렇지만 시인은 용기를 낸다. “미래를 등지고 선 사람들”(‘유리 광장에서’)의 몸을 되돌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살갗이 감추고 있는 게 휘두를 수도 있는 뼈” 혹은 “칼이 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시인도 알지만 그래도 그는 “피곤한 잠에서” 기꺼이 나와 “당신에게로 기울어”진다. 시집 끝에 실린 산문 ‘느린 판단’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같이 투쟁해요.”(154쪽)
  • “누가 죽어야만 달라지는 사회…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쓸게요”[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누가 죽어야만 달라지는 사회…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쓸게요”[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왜 세상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 누군가의 끔찍한 희생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세월호와 구의역 김군 그리고 김용균까지. 세상은 늘 뒷북을 친다. 뒷북이라도 치는 시늉을 하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한국 귀신에게서 사회적 약자 모습 봐 지난 7월 초연 무대를 올리며 호평을 받았던 국내 창작 뮤지컬 ‘홍련’이 오는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뮤지컬 극본을 쓴 극작가 배시현(34)을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뮤지컬 ‘홍련’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장화홍련전’의 주인공 ‘홍련’이 우리 신화 속 ‘바리공주’와 만나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한국적인 판타지다.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귀신 이야기를 보다 보면 죽고 나서 꼭 사또를 찾아가는 일이 많더라고요. 무엇이 그렇게 억울했을까. 우리 세상도 그렇죠. 누군가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잖아요. 저는 귀신에게서 우리나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봤어요. 약자는 왜 언제나 무력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왜 살아 있을 땐 들리지 않는 것일까요.” 국문학을 전공한 배시현은 대학 시절부터 연극을 했다. ‘극문학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연극에 발을 들였는데, 그는 “모든 문제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원래는 연극을 했었는데 어느 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게 됐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을 써 보고 싶게 된 계기다. 그러다 박신애 작곡가를 만났고 함께 ‘홍련’을 구상하게 됐다. “희곡이나 뮤지컬이나 어차피 같은 장르 아닌가 생각했어요. 착각이더라고요. 뮤지컬은 ‘아이 엠’(I Am)의 장르라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는 예술인 거죠. 한 사람 내면의 진폭이 음악을 만나 더욱 커지고 그것이 관객에게 가닿는 것이죠.” ●아동학대 피해 아이들 이야기 ‘홍련’ 뮤지컬 속 ‘홍련’은 자신이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여긴다. 사실일까. 재판의 형식을 빌린 ‘바리’의 씻김굿 끝에 ‘홍련’은 스스로 옥죄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성공한다. 배시현은 이 뮤지컬을 통해 아동학대 피해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도 부족한 시기에 자기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아이들은 뿌리 깊은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단다. “오지랖을 부리는 편이에요. 무엇이 우리를 자꾸 무력하게 만드는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내 안에서 어떤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왜’ 질문 떠오르는 작품 쓰고 싶어 이 작품은 2022년 CJ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지원 사업 ‘스테이지업’에 선정돼 개발됐다. 역량 있는 창작자를 발굴해 창작지원금과 함께 작품 기획개발 워크숍, 전문가 멘토링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간 ‘여신님이 보고 계셔’, ‘풍월주’ 등 22편의 창작 뮤지컬이 실제로 공연됐다. ‘홍련’도 그중 하나다. 배시현은 “이 사업 덕에 안정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며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따봉’ 제스처를 취했다. “조금이라도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저 재밌게 잘 봤다’ 하는 것도 좋지만 감상이 끝난 뒤에도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그런 작품. 꼭 부정적인 게 아니더라도요.”
  • “글로 세상과 연결, 책 속에서 만나고 싶다”

    “글로 세상과 연결, 책 속에서 만나고 싶다”

    포니정 시상식서 담담히 소감 밝혀“특별한 일주일, 일상 달라지지 않길”술도 못 마셔… 여행 거의 안 해못 읽은 책 꽂혀있는 책장 좋아올해 글 써 온 지 꼭 30년 되는 해마치 곱절은 되는 듯 길고 생생참을성과 끈기 잃지 않길 희망내년 상반기 ‘신작’ 출간 가능성책 관련 소통 창구 일원화 언급 “저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저는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써 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4)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 내는 일이었다. 한강 작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HDC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 작가는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땐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다”며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서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무척 기쁘고 감사한 일이어서 그날 밤 조용히 자축했다”며 “그토록 많은 분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한강 작가는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은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 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저와 연결되는 통로를 통일해서 모든 혼란과 수고, 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없애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이 출간한 책과 관련된 일들은 판권을 가진 해당 출판사에,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일은 문학동네 담당 편집자 이메일로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일주일 만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모든 기자회견을 고사했던 만큼 문학계에서는 한강 작가가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을 보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노벨문학상 발표 훨씬 전인 지난달 19일 이전에 결정된 행사였던 만큼 한강 작가는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주최 측인 포니정재단에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축하하는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한 포니정재단은 시상식이 열리는 이날 오전 “오늘 행사는 안전하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비공개로 열리며 취재진의 출입은 제한된다”며 “본 행사는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으로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관련 소감 발표와 질의응답 등 다른 일정은 준비돼 있지 않다”는 내용의 긴급 안내 메시지를 언론에 배포했다. 재단 측이 노벨상 관련 질의응답 등이 없을 것이라고 공지했음에도 이날 시상식이 열리는 HDC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 인근에는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재단 측은 행사장 1층 패스트푸드점을 임시 기자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을 뿐 행사장 내 출입은 원천 봉쇄했다. 오후 4시 한강 작가가 도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강 작가를 만나기 위해 취재진은 행사장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재단 측과 현장 동선 등을 사전에 조율해 취재진과 마주치지 않고 행사장으로 곧장 입장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함께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들 손에는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인파로 인한 불상사를 우려해 시상식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지하 주차장을 통해 나갔으며, 마주친 취재진의 질문에도 별다른 답변 없이 떠났다. 그렇지만 이날 행사에서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 소회와 포니정 혁신상 수상에 대한 소감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으며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한다”며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으로 굴리는 시간”이라고도 했다. 차기작에 대해 한강 작가는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되는데,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며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라고도 말했다. 한강 작가는 “소설을 막상 쓰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길을 잃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들어설 때 스스로 놀라게도 되지만, 먼 길을 우회해 마침내 완성을 위해 나아갈 때의 기쁨은 크다”며 소설가로서의 보람을 고백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한강 작가는 “올해는 글을 써 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라면서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30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한다”면서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소설 한 권도 한 달 만에 뚝딱”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소설 한 권도 한 달 만에 뚝딱”

    TRPG 전문 출판사 차려 집필까지‘메르시아의 별’ 美·英서 동시 출간 “내가 하는 생각을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타인의 생각을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어요. 갑자기 이런 아이디어가 번쩍 들었어요. 한 달 만에 쓴 작품입니다.” 장편소설 ‘늑대 사냥’(사진·읻다)으로 최근 국립과천과학관 주최 SF어워드 대상을 받은 김성일(50) 작가는 1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시점이 특정되지 않은 근미래. 태양계 개발이 가속화하고 있고 그것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이미 지구에 있는 국가보다 힘이 세다. 그 기업들을 운영하는 주체는 인공지능(AI)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어느 날 높은 지능을 가진 늑대가 등장하고 기업은 이 늑대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늑대는 쫓기는 도중 AI 전문가인 어느 할머니를 만나게 되고 그와 엮인다. 이 늑대와 할머니 그리고 사냥꾼이 벌이는 짜릿한 추격전이 소설의 뼈대다.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어요.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는데 고시 공부는 성정에 안 맞더라고요. 그만두고 TRPG 전문 출판사를 차렸죠.” TRPG란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의 약자다. 4~5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하는 일종의 보드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양한 판타지 세계관 안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하면서 즐기는 놀이다. 한국에 TRPG가 생소하던 시절 김성일은 외국에서 TRPG 서적을 들여와 번역하고 간단한 세계관은 직접 쓰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쓴 TRPG 세계관을 한 장르문학 출판사에서 보고는 ‘더 길게 써 보자’고 제안했다. 2016년 그의 첫 작품 ‘메르시아의 별’(온우주)을 쓰게 된 배경이다. 이 작품은 최근 ‘옛 왕가의 피’라는 제목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특히 미국판 출간처는 영미권 4대 출판그룹 중 하나인 맥밀런의 계열 출판 브랜드 ‘Tor’에서 나온다. “‘메르시아 3부작’으로 불리는 트릴로지의 1권이었어요. 한국에선 절판됐는데 미국에선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3권을 한꺼번에 계약하게 됐습니다. 제가 영어권 TRPG 번역을 많이 하기도 했고 자주 읽는 소설도 영어권 SF나 판타지거든요. 제 작품의 분위기가 영미권과 친화성이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메르시아 3부작’은 앞서 미국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번역가 안톤 허가 번역을 맡았다. 김성일은 “작품을 많이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장편소설도 한 달 만에 뚝딱 써내는 만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SF, 판타지, 호러 등 장르문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장르문학은 독자와 작가 사이에 익숙한 요소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익숙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뒤트는 것도 필요하겠죠. 결국 장르문학을 즐기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에 공유하는 커다란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치 하나의 부족(部族)이라고 할까요?” 오경진 기자 장편소설 ‘늑대 사냥’으로 국립과천과학관 주최 ‘SF어워드’ 대상을 받은 소설가 김성일은 16일 “영어권 판타지 소설을 자주 읽어서 그런지 제가 쓰는 소설은 그쪽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며 “향후 영어로 소설을 쓸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 “살인을 멈춰야 한다… 역사 통해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살인을 멈춰야 한다… 역사 통해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한림원 전화, 장난인 줄 알았다주목 원치 않아… 글쓰기에 집중”무크지 ‘보풀’에 산문 ‘깃털’ 발표16일 오전 9시 책 100만부 돌파 소설가 한강(54)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스웨덴 공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며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웨덴 공영 SVT 방송의 지난 13일자 보도에서 한강은 “지금은 주목받고 싶지 않다”며 “이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인 지난 11~12일 사이 한강 작가의 자택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왜 축하하고 싶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강은 “아니다. 아들과 함께 카밀러(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축하했다. 축하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기자가 당신의 부친(소설가 한승원)이 기자회견에서 “딸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적인 상황 때문에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하자 한강은 “뭔가 혼란이 있었던 거 같다. 그날 아침 아버지께 전화드렸을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큰 잔치를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큰 잔치는 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당시에 대해 “인터뷰할 때 장난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진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을 통해 배울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분명히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며 “적어도 언젠가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인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웠던 것들의 아주 분명한 결론”이라고도 말했다. 평생 글을 쓴 작가는 어느 날엔 글을 쓰는 일이 무용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한강은 “1년에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예를 들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다”며 “시간을 들여 계속 글을 쓰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한강은 현재 집필 중인 짧은 소설을 이달이나 다음달 초까지 마무리하고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한강은 지난 15일 온라인 동인 무크지 ‘보풀’에 ‘깃털’이라는 짧은 산문을 쓰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처음으로 공개된 글이다. 한강은 외할머니를 회고하는 900자 남짓의 짧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 국내 서점가에서는 ‘한강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다. 16일 예스24, 교보문고 등에 따르면 한강의 책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후 엿새 만이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문학번역원 사옥에서 ‘한국문학 해외 진출 관계기관 회의’를 열었다. 문체부는 이 자리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을 해외에 집중 조명·소개하는 묶음 지원 사업을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외문화원이나 코리아센터 등 해외기관을 활용해 수요조사를 진행한 뒤 현지 반응 수요 등을 고려하여 맞춤형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 [단독] “노벨문학상 지원 필요” 호소에도 정부 외면… 번역 예산 제자리

    [단독] “노벨문학상 지원 필요” 호소에도 정부 외면… 번역 예산 제자리

    지난 10일(현지시간)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 국내 문학·출판계는 일찌감치 ‘한국인 노벨문학상’이 조만간 탄생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를 뒷받침할 국가적 관심과 예산 지원을 호소했으나 나라의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트 한강’을 위해 양질의 문학 번역가 양성이 급선무지만 정부의 지원은 제자리걸음이다. 15일 서울신문 취재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는 국내 문학·출판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의 해외 활동을 국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이에 따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을 비롯해 김혜순 등 소설·시·아동문학 세 분야에서 3년간 총 10억원 규모의 예산요구서를 지난 4월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한 차례 반려 끝에 문체부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해당 요구서를 기재부에 넘겼다. 그러나 최근 확정된 내년도 문체부 예산안에 관련 예산은 단 1원도 반영되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은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역량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특히 영어·프랑스어·독일어 등 서구권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로 쓰인 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양질의 번역가를 육성하고 작가가 해외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지만 국내 출판사가 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에 정부의 역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체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은 총 76건의 한강 작품 번역 출간을 지원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옮긴 데버라 스미스는 번역은 물론, 영국의 유명 출판사 그란타 포르토벨로에 샘플 번역을 보내는 등 홍보까지 도맡았다. 이후 스미스는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강의 ‘희랍어 시간’도 영어로 옮겼다. 문제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독자의 수요도 늘어나는 것에 비해 번역에 투자하는 예산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번역원에 책정된 정부 예산은 지난해보다 12% 줄었고 ‘해외 출판사 번역출판 지원사업’ 예산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8억원에 그치다가 올해 20억 7000만원으로 찔끔 올랐다. 또 국내 출판사 에이전시를 대상으로 저작권 수출용 원고 번역 지원 사업도 예전에는 소설 한 작품을 완역하면 약 800만~1200만원 정도를 지급했으나 최근에는 이를 없애고 작품 전체의 30~40% 정도 샘플 번역한 것에 약 400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정작 문학·출판계에서는 양질의 번역서를 제때, 다양하게 내놓지 못하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번역문학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시장은 사실상 다양한 번역가들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선의로 작업을 해서 지탱해 온 것”이라며 “정보라의 소설 ‘저주토끼’ 등을 영어권에 알리며 직업 번역가로 자리를 잡은 안톤 허처럼 전문성을 갖춘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번역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지원금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신영균재단 ‘아름다운예술인상’ 황정민 등 5명 선정

    신영균재단 ‘아름다운예술인상’ 황정민 등 5명 선정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은 올해의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자로 배우 황정민을 비롯한 5명을 선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영화 ‘베테랑2’와 1000만 관객 영화 ‘서울의 봄’(2023) 등 굵직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 한국 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연극 예술인 부문에선 한국을 대표해 온 연출가 손진책, 공로 예술인 부문에선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에 이바지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이 상을 받았다. 선행으로 훈훈한 미담을 남긴 예술인에게 수여되는 굿피플예술인상은 어린이, 여성 환자,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기부 활동을 해 온 배우 신민아에게 돌아갔다. 독립영화 부문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반향을 일으킨 김덕영 감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24일 서울 강동구 스테이지28에서 열린다.
  • 서점은 지금 한강 돌풍…100만부 고지 돌파할듯

    서점은 지금 한강 돌풍…100만부 고지 돌파할듯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책이 100만부 판매를 곧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대형서점에 따르면 한강의 책은 이날 오후 4시, 종이책 판매를 기준으로 97만 2000부가량 판매됐다. 예스24는 40만9천부, 교보문고는 33만3천부, 알라딘은 23만부다.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100만부를 이미 넘었다. 3사의 전자책 판매량은 7만부를 돌파했다.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한강의 책은 약 105만부가 판매된 셈이다. 예스24 등 3사의 시장점유율은 약 90%(온라인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계는 이날 늦은 밤이나 내일 오전쯤 100만부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강의 책은 주말까지 큰 폭으로 상승했으나 이날 들어서 판매가 다소 진정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베스트셀러에선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예스24에선 1~8위까지, 교보문고에선 1~11위까지가 한강이 쓴 도서다.
  • 두문불출 한강… 17일 포니정 시상식 참석할 듯

    두문불출 한강… 17일 포니정 시상식 참석할 듯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이 오는 17일 열리는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문학계 등에 따르면 한강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리는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 첫 번째 공식 행보가 된다. 다만 한강은 이날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지 않고 간단한 소감만 전하고 퇴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강의 작품을 출간한 국내 출판사들이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준비했으나 작가가 극구 고사한 바 있다.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지난 11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며 기자회견을 열지 않기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강은 이후 개별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등도 사양하면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고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을 기려 2005년 설립된 포니정재단은 장학사업을 중심으로 인문학 분야 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단체다. 포니정재단은 지난달 19일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바 있다. 한강은 앞서 출판사를 통해 서면으로 전한 소감에서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 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고만 했다. 한강은 오는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낭독할 예정이다.
  • “사위어가는 황혼을 보고 있어”… 스물넷, 인간탐구가 시작됐다 [한강의 시간]

    “사위어가는 황혼을 보고 있어”… 스물넷, 인간탐구가 시작됐다 [한강의 시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작 ‘붉은 닻’당시 대세 민중문학·리얼리즘 탈피개인 기억·고통 탐구로 문단 흔들어‘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이어진 탐구끔찍한 폭력 속 지극한 사랑 피워내50대 중반 된 작가 “이제는 봄으로” “동식은 도로 맞은편의 건물들 사이로 사위어가는 황혼을 보고 있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붉은 닻’의 첫 문장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투고 당시 ‘한강현’이라는 필명을 쓴 한강은 강렬한 ‘붉은 닻’의 세계를 통해 앞선 한국문학 선배들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지의 미학을 예비한다. 당시 대세였던 민중문학과 리얼리즘이라는 경향과 결별하고 개인의 끔찍한 기억과 그것이 직조한 현존재의 끔찍한 고통을 치열하게 탐구한다. ‘시작부터 남달랐던’ 한강의 문학은 결국 소설가로 등단한 지 정확히 30년 만에 세계인을 매혹하기에 이른다. 한강의 첫 소설집은 1995년 출간된 ‘여수의 사랑’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는데, ‘붉은 닻’도 여기에 실렸다. 한강은 ‘붉은 닻’에서 술에 의지해 살다가 죽은 아버지의 환영을 보는 주인공 ‘동식’과 그 가족의 처연한 일상을 그린다. 소설집 표제작 ‘여수의 사랑’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여동생을 껴안고 자살한 사건으로 결벽증에 시달리는 여성 ‘정선’이 또 다른 여성 ‘자흔’을 만나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진원지인 여수로 떠나는 이야기다. 이후 1999년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아기 부처’까지 초창기 한강은 인간의 내면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 트라우마 같은 것에 천착한다. 강박과 불안을 앓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구성된 존재인가. 이제 막 등단한 소설가 한강이 끊임없이 되물었던 질문이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한강을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린 소설 ‘채식주의자’(2007)의 한 구절이다. 주인공 ‘영혜’는 가부장적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 식물로의 변신을 열망하는 인물이다. 위 문장은 ‘영혜’가 꾼 꿈을 묘사하고 있다. 한강은 소설에서 이탤릭체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도 ‘채식주의자’부터다. 인간의 고통과 병은 결국 어떤 폭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한강은 그런 폭력의 이미지를 시적인 문장으로 탁월하게 그려 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폭력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한강은 내면에서 역사로 눈을 돌린다. 이번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심사평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된 작품 ‘소년이 온다’(2014)의 한 장면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은 ‘채식주의자’와 함께 한강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 스페인 산클라멘테문학상을 받았고 아일랜드 더블린문학상, 독일 리베라투르상 후보에 오르며 한강의 소설 중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호명된 작품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소개했던 데버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긴 작품으로 일각에서는 한강의 ‘진정한 대표작’이라고도 평가하는 소설이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2021)의 한 구절이다.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으로 다시 한번 역사의 문제를 환기하는 한강은 끔찍한 폭력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를 피워 낸다. 영어권에서 극찬받았던 ‘채식주의자’ 이후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며 노벨문학상까지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출판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을 거부했던 것과 달리 지난해 이 책으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을 땐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그때 한강은 “작품을 쓰면서 너무 추웠다”며 “겨울에서 이제는 봄으로 가고 싶다”는 따뜻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앞으로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물론 써지는 대로 쓰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개인의 고통에서 생명과 치유의 서사로. 50대 중반이면 아직 작가로서 한창 쓸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은 한강 문학세계의 ‘완성’이 아니라 ‘과정’ 중 하나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4일 “한강은 영매(靈媒)로서 산 자와 죽은 이,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사이에서 끊어진 영혼의 길을 잇는 감수성을 보여 주는 작가”라며 “앞서 한국의 현대사를 굵직한 시각에서 조망했던 선배 작가들의 작업 위에서 한강은 같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인간 내면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더욱 깊이 천착하되 그것을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재현하는 독특한 미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김혜순·이성복·정보라… K문학의 독보적 감각, 세계가 러브콜

    김혜순·이성복·정보라… K문학의 독보적 감각, 세계가 러브콜

    김혜순 美서 문학상… 한국詩 통해이성복 시집도 내년 안톤 허 번역정보라 작품, 獨·中 번역 출간 예정지난 10일(현지시간) 한강 작가의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적으로 한국문학을 향한 ‘러브콜’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수상은 뜬금없이 이뤄진 게 아니다. 서구문학과 다른 한국문학만의 독보적인 감각을 향한 수요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이어진 바 있다. 한국에서 한강과 함께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문인은 시인 김혜순이다. 최돈미 시인이 영어로 옮긴 시집 ‘날개 환상통’이 올해 초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으면서 한국의 시도 국제적으로도 읽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국내 문학계에 심어 줬다. 김혜순은 이전에도 ‘죽음의 자서전’이 한국 시집 최초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죽음의 자서전’은 현재 재독 철학자·번역가인 박술이 독일어로 옮기고 있다. ‘죽음의 자서전’ 독일어판은 내년 2월쯤 현지 대형 출판사인 ‘피셔’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김혜순은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혀 없는 모국어’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낭독했는데,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시인 파울 첼란(1920~1970)의 게오르크 뷔히너상 수상 연설문 ‘자오선’에 비견된다고 평가했다. 첼란의 ‘자오선’은 현대 독일문학에서 세기의 명연설로 평가되는 텍스트다. 김혜순과 함께 한국 현대 시의 거목으로 꼽히는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이 내년에 영어로 번역돼 미국 독자와 만날 계획이다. 이 시인의 책은 미국 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형 문학 전문 출판사 ‘크노프’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한국문학 작품이 소개되는 것은 2011년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이후 두 번째다. 유명 번역가 안톤 허가 번역을 맡았다. 안톤 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소설가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영어로 옮긴 인물이기도 하다. 안톤 허의 번역으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정보라의 2023년 작 ‘한밤의 시간표’도 독일어, 중국어로 각각 번역돼 현지에 소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번역가 최애영, 쥐디트 벨맹노엘의 번역으로 프랑스에 소개됐던 김숨의 소설 ‘떠도는 땅’은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올해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1차 후보에 선정되기도 했다. 번역가 재닛 홍의 번역으로 미국에 소개된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 하성란의 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2020년 미국 출판 분야 전문 주간지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톱10’에 뽑히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마키노 미카가 번역한 소설가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일본서점대상을 차지하며 대중문학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스페인어), 이유리 소설 ‘브로콜리 펀치’(스페인어), 조남주 소설 ‘귤의 맛’(독일어) 등 최근 작가부터 박태원(1910~1986) 소설 ‘천변풍경’(프랑스어) 등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까지 조만간 외국어로 번역된다. 또 한센인이었던 시인 한하운의 작품세계를 연구한 ‘한하운 평전’도 일본어로 옮겨지는 등 한국문학의 다채로운 모습이 조만간 세계인과 만나 한국문학의 매력을 발산할 예정이다.
  • 작품세계 실천하듯 회견 고사한 한강… 수상 연설에 세계가 집중

    작품세계 실천하듯 회견 고사한 한강… 수상 연설에 세계가 집중

    “전쟁 주검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기자회견 사양, 서면 소감만 전해수락 연설문은 작가 문학세계 압축 佛 카뮈·日 오에 등 연설 오래 회자 한강(54)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지난 11일. 한강의 소설을 출간했던 출판사 창비와 문학동네는 “작가의 기자회견은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됐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을 대신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서면 소감을 전했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 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개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이자 국가적 경사인데도 작가는 언론 앞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전한 짤막한 소감만으로는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이 같은 날 전남 장흥에 있는 작업실 ‘해산토굴’ 앞에서 한 기자회견을 보면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한 작가는 “(딸에게) 출판사와 함께 장소를 마련해 기자회견을 하라고 했는데 (딸이)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더니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말했다. 폭력과 죽음이 도사린 세계에서 작가의 영광은 한줌 재와 같다는 의미다. 심지어 한강은 그런 폭력과 트라우마의 세계를 정면으로 직시한 작품을 쓴 소설가다. 그와 어울리는 결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 작가는 딸 한강에 대해 “부모를 뛰어넘은 자식”이라고도 찬사를 보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시상식이 열리는 오는 12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낭독될 예정이다.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은 작가의 문학 세계를 압축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작가가 남긴 작품과 함께 시간이 지나도 끊임없이 회자하는 중요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예술과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던 1957년 수상자 알베르 카뮈, 전후 일본인으로서 서구를 추종했던 정체성을 반성한 1994년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의 연설문이 대표적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노벨상이 서구에 치중돼 있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상은 받지 않았지만 수상한 것보다 더 유명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 한강의 힘, K문학 봄이 온다

    한강의 힘, K문학 봄이 온다

    한국어로 세계 보편성 획득… 언어 장벽 허문 번역 공도 커 바야흐로 ‘한강의 시간’이다. 지금껏 세계문학의 주변부로 존재했던 한국문학의 뿌리 깊은 열등감은 한강의 빛나는 성취로 일거에 해소됐다. 한강 이후 한국 문학사는 조금 더 세계적 보편의 시각에서 쓰일 전망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지금껏 한국 문학사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를 완벽하게 지워 낸 역사적 쾌거다. 폭력의 트라우마 속에서 유려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그의 시(詩)적인 산문은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희구하던 경지에 당도했다. 한강에게는 여러 가지 ‘최초’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앞서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을 때도 그는 ‘아시아 작가 최초’였다. 이번 노벨문학상도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다. 세계 3대 문학상(스웨덴 노벨문학상·영국 부커상·프랑스 공쿠르상) 중 2개를 석권한 작가는 한강을 포함해 8명뿐이다. 문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올라선 한강은 변두리 언어인 한국어로 쓰인 문학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문장으로, 온몸으로 증명했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콤플렉스’는 역사가 꽤 깊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은 1913년 수상자로 ‘시성’(詩聖)으로도 불리는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다. 그러나 한국인의 열등감에 불을 지폈던 건 1968년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수상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눈의 고장(雪國)이었다”는 첫 문장으로도 유명한 소설 ‘설국’을 쓴 가와바타의 문학은 동양적인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이후 한국 문학계는 ‘설국’을 둘러싸고 면밀한 비평을 이어 간다. 그러고는 “우리도 못 할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에서 시인 김지하(1941~2022)나 고은(91) 등의 수상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 이유다. 정작 한강의 이름은 이 명단에 없었다. 전 세계 문학·출판계가 ‘깜짝 수상’이라는 반응을 내놨던 이유다. 그간 노벨문학상은 70대 이상 작가에게 돌아갔다. 여기에 비하면 한강은 아직 많이 젊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찬쉐(71)나 일찌감치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75) 등 쟁쟁했던 후보들을 제쳤다. 중국과 일본의 외신들은 다소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기꺼이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자를 향한 축하를 건넸다. 한국 문단 안에서 한강은 이른바 ‘아웃사이더’ 혹은 ‘은둔형 예술가’로 불린다. 작품활동 외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꺼리기로 유명하다. 한 중견 문인은 13일 “문단 안에서도 (한강과) 친하게 지내는 문인은 극히 드문 걸로 안다”며 “오롯이 작품만으로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끝까지 이뤄 낸 작가”라고 치켜세웠다. 한강의 성취는 한강의 힘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한국어로 된 텍스트를 영어를 비롯한 세계 각국 언어로 옮긴 번역가들의 공이 컸다.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영어로 옮긴 데버라 스미스를 비롯해 지난해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불어로 옮긴 최경란과 피에르 비지우, 소설 ‘희랍어 시간’을 독일어로 옮긴 이기향과 카롤린 리터 등이 한강의 유려한 글이 최대한 손실 없이 세계인과 만날 수 있도록 고심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뒤 2016년 ‘대산문화’에 쓴 글에서 “한강은 이 소설이 독자들을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모색하게끔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고 했다. 한강은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문화예술인 중 한 명이었다. 부커상 수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축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소설 ‘소년이 온다’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 수상을 두고서도 일각에서 정치적인 진영 논리의 언어로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당분간 ‘한강 신드롬’은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과거 창비에서 ‘소년이 온다’를 책임편집한 출판사 핀드 김선영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수상으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분들도 서점을 찾을 테고 그것으로 한동안 침체해 있던 한국문학 시장에 활기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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