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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통신] 잇단 검사 피살 사건, 범인은 전직 판사 부부

    [미주통신] 잇단 검사 피살 사건, 범인은 전직 판사 부부

    미국 텍사스 주에서 두 명의 검사가 잇따라 피살되어 충격을 주었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전직 판사 부부가 체포되었다고 17일(현지시각) 언론들이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에 의하면 지난 13일 수사 당국은 전직 치안 판사인 에릭 윌리엄스(46)를 피살된 검사들을 협박한 혐의로 체포했으며, 이날 그의 부인인 킴 윌리엄스(46)를 검사 피살과 관련하여 1급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킴 윌리엄스는 범행을 부인하다 결국 살해 혐의를 인정했으며 전직 판사인 남편도 관련되어 있다고 자백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월 31일 텍사스주 코프먼 카운티의 마크 하스 검사가 검찰청사 앞 주차장에서 총기 피습으로 사망한 데 이어 3월 30일에는 하스 검사의 상사인 마이크 머클렐런드 검사 부부가 자택에서 총격을 받고 숨진 채 발견되어 충격을 준 사건이다. 당국은 한때 이들 검사들이 폭력조직 수사를 맡았다는 점에서 일부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주목하였으나 이들 전직 판사 부부가 피살된 검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벌여왔다. 윌리엄스 전 판사는 피살된 두 검사에 의해 지난해 3월 카운티 청사에서 컴퓨터 모니터 3대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으며 재판 과정에서 옛 애인과 검사를 협박한 혐의가 추가됐다. 결국, 이러한 일로 윌리엄스는 변호사 자격과 판사직을 박탈당하자 아내와 공모하여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와 검사 부부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체포된 전직 판사 에릭 윌리엄스(미 ABC 방송 캡처)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덕수궁·인왕산 한눈에~

    서울시 서소문청사에 덕수궁과 정동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생긴다. 시는 서소문청사 1동 13층에 94.88㎡ 규모로 전망대를 설치해 13일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전망대에서는 북동쪽 서울광장과 신청사부터 덕수궁을 지나 북서쪽 정동 일대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왕산까지 뚜렷이 보이기도 한다. 매주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1층 로비에서 13층까지 이어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 전망대 안에는 신청사부터 정동길 사거리 정동교회까지의 모습과 주요 공간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파노라마 사진을 전시한다. 아울러 서울역사박물관의 협조로 1900년대 국제교류와 외교의 주요무대이자 신문 발상지였던 정동 일대 옛 사진도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원래 대회의실 일부와 비품창고였지만 이번에 전망대로 조성하면서 휴게시설인 의자와 테이블 등을 설치하고 창문도 전망창으로 교체했다. 업무공간인 1동 청사 안을 개방한 것은 처음이다. 오형철 시 총무과장은 “서소문청사 13층은 사시사철 바뀌는 덕수궁과 정동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숨겨진 명소”라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외환위기 상흔’ 공공 청사로 재탄생

    ‘외환위기 상흔’ 공공 청사로 재탄생

    16년간 도심에 방치됐던 ‘외환위기 상흔’이 공공기관 청사로 재탄생했다. 광주광역시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8일 옛 화니백화점을 리모델링한 남구종합청사 개청식을 가졌다. 1997년 외환위기로 공사가 중단된 지 16년 만이다. 화니백화점은 1977년 호남에 들어선 최초의 지역 백화점으로 한때 호황을 누렸으나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광주 남구 주월동에 새로 짓던 주월점 공사를 중단했다. 1999년 화니백화점의 최종 부도 이후에도 건물 주인이 일곱 차례나 바뀌었다. 도심 흉물이 공공기관 청사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캠코가 남구에 청사 신축 사업을 제안하면서다. 남구청사는 1995년 서구로부터 분구할 당시 조립식 가설건물로 건축돼 구민들과 공무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구는 청사 신축을 추진했으나 재정 여건이 어려워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남구는 캠코가 제안한 ‘공유재산 위탁개발’을 2010년 11월 받아들였다. 한 달 동안 구민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25차례나 열어 힘겹게 내린 결정이었다. 공유재산 위탁개발이란 캠코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토지 등에 개발사업비를 조달해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실시한 후 장기간에 걸쳐 임대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남구는 2011년에 화니백화점을 105억원에 구입했다. 여기에 캠코가 390억원을 들여 지상 9층, 지하 6층에 연면적 5만 132㎡ 규모의 공공청사로 재탄생시켰다. 이에 따라 재산가액은 105억원에서 478억원으로 4.5배 증가했다. 장영철 캠코 사장은 “청사 지하 1층과 지상 1~4층 일부에 들어서는 상가·편의시설의 임대료로 사업비를 회수할 계획”이라면서 “지자체의 수입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서울시교육청사, 옛 수도여고 부지로

    서울시교육청사, 옛 수도여고 부지로

    용산구가 강북의 교육특구로 도약하기 위한 새 발판을 마련했다. 구는 최근 서울시교육청과 교육청 청사를 후암동 168번지 일대 옛 수도여고 부지로 옮겨 오는 협약을 체결했다. 14일 구에 따르면 현재 종로구 신문로2가에 위치한 시교육청 청사는 시설이 낡고 공간이 좁아 환경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수도여고 이전으로 부지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용산구의 입장과 맞아떨어지면서 협약이 성사됐다. 이번 협약을 위해 두 기관은 부단체장 사전 동의와 실무자 회의를 거쳤다. 최종 협약식은 시교육청 회의실에서 성장현(사진 왼쪽) 구청장과 문용린(오른쪽) 시교육감을 비롯해 주요 간부진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협약에 따라 용산구는 이후 학교 부지에 시교육청 청사를 건립할 때 발생하는 행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협력, 지원하게 된다. 시교육청은 구와 긴밀히 협력해 용산구의 교육 여건 향상을 적극 지원한다. 이번 협약으로 성 구청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강북 교육특구 만들기’도 추진력을 받게 됐다. 교육청 청사가 이전되면 구에서 추진 중인 각종 교육 환경 개선 사업도 교육청 사업과의 상승 효과를 바탕으로 좋은 결실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성 구청장은 “이번 협약으로 용산구는 명실공히 서울의 교육 중심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교육청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교육특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4번째 쪼개고 합치고… 이번이 마지막이길”

    “4번째 쪼개고 합치고… 이번이 마지막이길”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더군요. 제가 속한 수산청이야 만년 패자지요. 해양수산부 소속일 때도 조직의 30%밖에 되지 않는 소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새 정부도 그렇고, 국회도 그렇고,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조직을) 떼고 붙일 때마다 이게 최선이냐고들 따지는데 그 과정에서 잃는 것들은 왜 따지지 않습니까. 공무원들은 새로운 모범답안이 나올 때마다 거기에 적응해야 합니다. 부처가 쪼개지면 동료들과 헤어져야 하고 청사가 옮겨가면 가족들과도 생이별해야 합니다. 이사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분실하는 자료들과 (전임자들의) 노하우도 상당합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게 쌓여 (관료 사회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부분은 누구 한 사람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네요.” 1980년대 후반 농림수산부 수산청 7급 공무원으로 공직사회에 발을 디딘 A 사무관은 22일 긴 말을 쏟아내고는 “이번이 정부 조직 개편 마지막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느덧 50줄에 접어든 그는 1996년 해양수산부로 ‘적’(籍)이 바뀌었다가 2008년 다시 농림수산식품부로 배지를 바꿔달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해수부로 다시 돌아갈 처지다. 짐도 여러 번 쌌다. 첫 근무는 서울역 앞 대우빌딩(수산청)에서 했지만 5년 만인 1996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솔빌딩(해수부)으로 이사했다. 해수부 청사가 자주 옮겨다닌 탓에 2000년에는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으로, 2004년에는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으로 들어갔다. 2008년 해수부가 사라지면서 과천정부청사로 옮겼지만 4년 만에 또 짐을 싸 지난해 12월 세종청사로 내려갔다. “이사라면 신물이 난다”는 A 사무관은 “그래도 선배들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옛 수산청 출신들은 1966년 개청 이후 11번 둥지를 옮겨 다녔다. 그 중 9번은 ‘셋방살이’였다. A 사무관은 세종청사 인근인 대전 반석동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아예 집을 옮겨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이미 두 번이나 전학을 경험한 중학교 3학년생 아들이 “절대 못 간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그는 “공무원이니까 나라에서 결정한 일은 웬만하면 기꺼이 따르고 싶지만 가족이나 동료와의 이별을 아무렇지 않게 강요하는 국가를 보면 때로 서운하기도 하고 때론 화가 치밀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유랑객이라고 부릅니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오전 10시까지는 멍하기 일쑤예요. 그러고는 오후 5시가 되면 (서울) 갈 준비를 합니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공무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설득하는 것, 그런 게 바로 선진행정 아닙니까.”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외교통상부 등 일부 공무원 ‘멘붕’

    외교통상부 등 일부 공무원 ‘멘붕’

    공무원 사회에 또다시 ‘세종청사 이전’이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소속 기관이 서울이나 과천청사에 남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것이 불과 2년 남짓 전인데, 차기정부에서 다시 꼼짝없이 세종청사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서울청사는 배치 계획이 완료돼 새 부처가 들어올 공간이 없다. 또 세종시특별법에서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외교통상부 등 서울에 남는 6개 행정기관을 못박아 뒀기 때문에 신설 부처 등은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서울에 남을 수 없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중추인 교육과학기술부도 세종청사로 이전하고 옛 정보통신부도 이전 대상 조직이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세종시행이 불가피한 이유다. 특히 행안부의 정보화 총괄 기능이 미래창조과학부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행안부 직원 중 일부도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 행안부 정보화전략실 소속 직원 일부와 5년 전 정보통신부 해체 뒤 행안부로 옮긴 직원들은 특히 전전긍긍하고 있다. 새로운 부처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희망자가 없을 경우 자칫 타의로 또다시 소속 부처를 바꾸고 세종시로 내려가야 하는 ‘0순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화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서기관은 16일 “우리뿐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기능 직원들도 자신들의 업무가 어떻게 될지, 개인의 삶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면서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당초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 외교통상부도 좌불안석이다. 통상 기능이 세종시로 이전하는 지식경제부로 넘어가면서 통상 조직 역시 세종시에서 근무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서다. 일각에서는 통상 조직이 지경부와 합쳐지더라도 업무 특성상 ‘서울 잔류’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효율적인 부처 운영을 위해 통상 기능도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통상교섭본부의 한 공무원은 “조직 분리도 충격인데 집까지 (세종시로) 이사해야 할 처지여서 패닉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폐지된 특임장관실 소속 직원 일부와 방송통신위 일부 직원들도 세종시행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의 한 공무원은 “이미 세종시로 옮긴 부처의 직원은 예고됐던 만큼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으나, 이번 직제개편에 따라 이주하는 기관은 준비기간이 짧아 더욱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세종청사로 이사한 지 한 달가량된 국토해양부의 해양 공무원들은 세종시 잔류를 원하고 있다. 감종훈 정부청사관리소장은 “부처를 세종시에 새로 두기 위해서는 이전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치고 공청회를 가진 뒤 대통령의 최종 결재 이후 관보에 고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서 “조만간 세종시특별법과 정부조직법 개정 등을 통해 행정기관 재배치 종합계획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처 종합·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군기시 유적/서동철 논설위원

    새로 지은 서울시청 지하에 엊그제 시민청(聽)이라는 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엔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티갤러리, 공정무역가게 지구마을,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소개하는 톡톡디자인가게가 들어섰다. 시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경청의 마당’답게 청계천의 시민발언대도 옮겨왔다. 옛 청사의 태평홀이 복원된 지하 2층에는 공연전시공간 바스락홀, 결혼식장으로 벌써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벤트홀이 자리잡았다. 청사의 일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다만 7842㎡의 작지 않은 공간을 의미있게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미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이 있다. 지하 1층의 군기시유적전시실이다. 시청 건립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군기시(軍器寺) 건물 터와 호안석축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여기서 출토되어 보물 861호로 지정된 불랑기포의 자포(子砲)와 승자총통을 비롯한 무기류도 전시되고 있다. 조선시대 군기시는 병기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관청이었다.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유적과 유물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발굴 조사로 이어졌다. 군기시유적전시실은 새 청사의 건립과 유적 보존 사이에서 타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과 유적 보존을 동시에 이루어낸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ra Amata) 유적이다. 1966년 아파트 공사 도중 뼛조각들이 발견됐는데, 발굴조사에서 정연하게 퇴적된 11개의 문화층이 나타났다. 특히 맨 아래 문화층에는 인류의 직계조상인 38만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집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니스 사람들은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니스시청이 유적이 있는 지하층과 1층을 사들이고, 2층부터 6층까지는 건축업자가 아파트를 그대로 지어 분양토록 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76년 개관한 테라 아마타 고인류학 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으며 지하의 유적을 보존한 것은 서울시청이 처음은 아니다. 조선시대 육의전 거리였던 종로3가에 빌딩을 신축하며 상점 유구가 드러나자 보존한 사례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육의전박물관이 지난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시청이나 육의전 모두 유적 전체의 원형 보존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도읍한 서울은 어디를 파나 가치 있는 유적이 나온다. 로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시청의 사례는 유적 보존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울 ‘시민청(聽)’ 12일 문 엽니다, 귀도 엽니다

    서울시 신청사에 꾸며진 시민을 위한 공간 ‘시민청’이 12일 문을 연다. 시는 10일 막바지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시민청 내부 모습을 공개했다. 지하 1~2층에 7842㎡ 규모로 들어선 시민청은 매주 월요일을 빼고 오전 9시~오후 9시 운영된다. 시민의 목소리를 새겨야 한다는 의미로 ‘관청 청’(廳)자가 아닌 ‘들을 청’(聽)자를 썼다. 지하 1층에는 신청사 건립 과정에서 발굴된 유물을 소개하는 유적전시실을 비롯해 소리갤러리, 뜬구름갤러리, 담벼락미디어, 공정무역가게 지구마을, 시티갤러리, 다누리, 기념품가게가 들어섰다. 지금까지 청계천에서 진행된 시민발언대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상설 운영된다. 특히 시민청 개관일에는 운영 1주년 기념으로 오후 1~2시 시민의 생생한 발언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지하 1층 시민청갤러리에 가면 전문 사진가가 무료로 찍어주는 가족사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하 1층 톡톡디자인가게, 북스토어를 찾으면 사회적기업이 만든 상품, 서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서적, 공정무역 제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지하 2층은 대관공간 위주로 꾸며졌다. 활짝라운지, 이벤트홀, 워크숍룸 등은 시간당 1만 3000~3만원에 사용할 수 있다. 시민청 홈페이지(www.seoulcitizenshall.kr)로 신청하면 된다. 옛 청사의 태평홀을 복원한 ‘태평홀’은 정책카페, 시민청 아카데미, 토크콘서트, 결혼식 등 다양한 시민참여 활동에 사용된다. 태평홀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은 예약문의가 폭주하는 만큼 해당일 3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 지하 2층의 세미나 공간인 ‘동그라미방’은 옆 공간과 분리하거나 통합할 수 있다. 언약식, 성인식, 공연 등의 용도로 쓰일 ‘이벤트홀’은 중앙 부분의 바닥 일부를 분리 상승시킬 수 있도록 설계돼 이색 영상·화보 촬영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10일 세종청사 첫 차관회의

    정부세종청사에서 10일 오전 10시 30분 첫 차관회의가 열린다. 차관회의 의장을 맡은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6개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지난주로 완료됐다. 세종시로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던 차관회의는 목요일에서 금요일 오후 2시로 변경됐다. 세종시로 이사한 차관들이 금요일 서울에서 차관회의를 마치고,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고 자택으로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였다. 차관회의에 앞서 각 부처 국무회의 담당자들은 지난 8일 영상 모의회의를 개최했다. 10일 열리는 차관회의는 영상회의가 아니라 서울에서 근무하는 차관들이 세종시로 내려가 청사건설 현장 등을 방문하게 된다. 주 1회 열리는 차관회의는 부처 간 원활한 협조를 통해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영상회의 시스템이 구축된 만큼 앞으로 차관회의를 비롯한 각종 부처 간 협의를 위한 회의는 영상회의를 이용하게 된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한국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세종시 시대가 가능해진 만큼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부터 영상회의와 같은 스마트워크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영상회의는 인터넷이 아니라 내부 전용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안에도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실에 이어 세종청사로 이전한 기획재정부도 국회의 예산안 처리 때문에 서울에서 일해야 했던 예산실 공무원까지 모두 세종시로 갔다. 행안부는 세종시 공무원들의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국회와 서울역에 출장형 스마트워크센터를 마련한다. 서울역에 회의 공간이 있으나 출장이 잦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로 항상 만원이어서 예약하기가 어렵다. 행안부는 서울역에 붙어 있는 코레일 건물에 100평 정도의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해 세종시 공무원들이 회의 및 사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도 200~300평 규모로 스마트워크센터가 마련된다. 제2 의원회관이 완공되면서 기존 의원회관의 비어 있는 공간을 활용할 예정이다. 올해 국회에서 예산안을 심의하는 동안 옛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에서 비상 대기해야만 했던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에게 요긴한 공간이 될 전망이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삼청동/서동철 논설위원

    삼청동은 인사동 뺨치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거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마다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하는 곳이 또한 삼청동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곳에 단골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금융연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수위도 사용했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는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를 썼지만, 김대중 정부는 금융연수원에서 멀지 않은 옛 삼청초등학교 자리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이용했다. 역대 정부가 삼청동을 인수위 사무실로 선호하는 이유는 당연히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및 정부청사가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삼청동은 지금도 권력의 주변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권력의 핵심에 가깝다. 국무총리실이 세종시로 이전했음에도 총리공관은 남아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가회동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는 감사원이 광화문 일대 관가(官街)를 감시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삼청동이라는 이름은 도교의 숭배대상인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세 성신(星辰·별)을 모신 삼청전이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삼청동’이라는 지명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종 16년(1521)이니, 벌써 500년 전이다. 최근에는 산 맑고(山淸), 물 맑고(水淸), 사는 사람 또한 맑아서(人淸) 삼청동이라는 이야기도 동네 분위기와 맞물려 그럴듯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삼청동길이 복개된 중학천을 따라 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복개가 마무리된 것은 1960년대이다. 삼청동 계곡에서 발원하여 마을버스 종점, 금융연수원, 총리공관, 삼청동파출소, 국립민속박물관을 지나 경복궁 동십자각에 이르는 삼청동길의 땅밑에는 지금도 중학천이 흐른다. 중학천은 얼마 전 문을 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뒤쪽 지하로 흘러 청계천에 합류한다. 인수위가 금융연수원 터에 자리잡은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무기와 관련된 정부기관이 줄곧 자리잡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병기제조기관인 군기시의 화약 창고인 북창이 있었고, 병기의 근대화에 힘을 기울였던 구한말에는 기기국의 번사창이 들어섰다. 번사(飜沙)란 터지면 천하가 진동하고 대낮처럼 밝아지는 포탄제조법이니, 번사창은 화약공장이다. 고종 21년(1884)에 지은 번사청 건물은 금융연수원 경내에 여태껏 남아 있다. 새 정부가 부국강병에 힘쓰라는 선조들의 뜻이 담겨 있다면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DB를 열다] 1966년 광화문 지하도 공사… ‘속전속결’ 국가적 사업이었죠

    [DB를 열다] 1966년 광화문 지하도 공사… ‘속전속결’ 국가적 사업이었죠

    1966년 7월 23일 광화문 지하도 공사가 한창인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의 모습이다. 지금은 철거된 옛 중앙청 건물이 있고 광화문은 복원되지 않았을 때라 보이지 않는다. 왼쪽 세종문화회관 자리에는 나중에 큰 불이 났던 시민회관이 보이고 정부청사는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지하도 공사를 하느라 네거리 한복판이 깊게 파헤쳐져 있고 버스와 승용차들은 그 주위를 돌아서 운행하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났고 자동차도 덩달아 증가했다. 보행자들이 길을 건너는 것도 불편해졌고 교통사고도 빈발했다. 육군 준장 출신으로 부산시장에서 서울시장으로 영전한 김현옥 시장은 강한 추진력을 지닌 ‘불도저형’ 리더였다. 그는 서울의 교통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1966년 4월 19일 김 시장은 서울 세종로와 명동 입구에 지하도 공사를 착공하는 동시에 신세계백화점 앞 등 여섯 곳에서 육교 공사를 시작했다. 부임한 지 겨우 보름 됐을 때였다. 김 시장은 이것 말고도 도로 공사 등 각종 공사를 군대식으로 밀어붙였다. “24시간 5교대로 단 1분도 쉬지 말고 공사를 하라”며 공무원과 공사 관계자들을 다그쳤다. 광화문(세종로) 지하도는 착공한 지 단 5개월 11일 만인 그해 9월 30일 개통돼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보도가 됐다. 개통 행사에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국무총리도 참석할 만큼 광화문 지하도 공사는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박 대통령은 개통 전날인 29일 밤 경호원 몇 사람만 데리고 지하도를 암행 순찰하고는 흐뭇해하며 김 시장을 불러 치하하고 금일봉을 하사했다고 한다. 명동 지하도는 사흘 후인 10월 3일 완공됐다. 대리석 기둥에 1500개의 조명등을 갖춘 광화문 지하도는 매우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르했을 뿐 날림 공사의 문제점이 곧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 시장이 “동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지하도”라고 자랑했던 광화문 지하도는 완공 6일 만에 금이 간 천장에서 쏟아진 물이 행인들을 덮치기도 했으며 바닥도 내려앉았다. 김 시장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1968년 1월 4일에는 시무식을 마치자마자 서울시청 서쪽(현재 프레스센터와 서울시의회 사이) 지하도와 남대문 지하도 등 14건의 공사를 설계도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부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런 속전속결식 공사는 결국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을 불렀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겨울방학 ‘독서 삼매경’

    겨울방학 ‘독서 삼매경’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시청 옛 청사에 있는 서울도서관에서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노원 부구청장이 150억 마포 재산 찾아줬다

    노원 부구청장이 150억 마포 재산 찾아줬다

    김영호 노원구 부구청장은 요즘 부쩍 체계적인 기록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전임 근무지에서 옛 문서를 뒤져 150억원 상당의 구 소유 재산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마포구 부구청장으로 부임한 그는 업무보고 과정에서 옛 청사부지 3588평 가운데 648평이 학교법인 한양학원 소유라는 말을 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유지에 청사를 지었을 리 없다고 본 그는 즉시 옛 청사 건립 당시 서류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건립한 지 30년도 넘은 터라 관련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전담팀을 꾸렸다. 청도문서고로 보냈지만 역시 자료 확보에 실패했다. 김 부구청장은 직접 당시 일했던 공무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한 퇴직공무원한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문제의 부지는 한양학원이 구에 기부채납하기로 했던 땅이었다. 김 부구청장은 2009년에는 청도문서고와 서울시 도시계획과 서고에서 관련자료도 발견했다. 결정적으로 한양학원이 마포구에 제안했던 1977년 5월 5일 자 공문을 찾아냈다. 제안서에는 성미산에 위치한 한양학원 소유 임야 6000평을 개간해 절반은 청사 부지로 공여하고 나머지는 수익사업으로 활용하게 해 달라는 청원서였다. 결국 기부채납 당시 업무 착오로 소유권을 제대로 이전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한양학원은 소유권을 정식 이전해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년을 끈 소송 끝에 사법부는 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동안 마포구에서 노원구로 자리를 옮겼으면서도 김 부구청장은 판결 소식에 누구보다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특히 150억원에 이르는 국민의 재산을 지켜낸 공무원들의 노력을 구민들이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부구청장은 “개인적으로는 32년 공직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람이지만 행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두고 두고 곱씹어 봐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 문서보관소가 서울에 있다거나, 문서목록만이라도 전자파일로 정리가 돼 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건립계획을 발표한 서울기록원이 체계적인 기록관리를 위한 중추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특정인 업적보다 경제발전·민주화 보여주겠다”

    “특정인 업적보다 경제발전·민주화 보여주겠다”

    “특정 정치 지도자의 업적을 강조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여주려고 기획했다.” 26일 공식 개관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김왕식 초대 관장은 20일 편향된 역사관에 대한 것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는 진보 진영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김 관장은 또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공간이 작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시민사회의 성장과 민주주의’라는 전시 공간 하나뿐인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화 운동의 선구인 4·19혁명 부분도 따로 전시됐고 산업화 과정에서의 그늘진 모습도 보여줘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 공간이 됐다.”고 했다. 옛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사를 리모델링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 따라 총예산 448억여원을 들였다. 부지 6445㎡(1950평), 건축 총면적 1만 734㎡(3247평) 규모이며 지상 8층 건물에 상설전시실 4개와 기획전시실 2개를 비롯해 수장고, 세미나실, 강의실, 카페, 문화 상품점 등을 갖췄다. 자료는 4만여점이고 전시 유물은 1500점 정도다. 상설전시실은 ‘대한민국의 태동 1876~1945년’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기초확립 1945~1960년’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1961~1987년’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 1988~’로 이뤄졌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와 집무 책상 등을 갖춘 대통령실을 별도로 마련한 것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이끈 지도자는 공과와 상관없이 전시되고 알려져야 한다.”며 “퇴임한 대통령만 전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미국 대사관이 이전하면 박물관 규모를 더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조직개편’ 각 부처 반응

    ‘조직개편’ 각 부처 반응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에 몸을 실을 공무원들의 표정은 소속 부서에 따라 엇갈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제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조직의 존폐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만큼 20일 공직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국토부 직원들 해수부 이동 꺼려 ‘한지붕’ 밑에서도 기대감과 불안감이 한데 뒤엉켜 어수선한 대표적인 부처가 국토해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다. 국토부에서의 해양수산부 독립으로 해양·수산 업무의 전문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으로 관련 공무원과 업계는 고조돼 있다. 해수부에 국토부가 맡아온 해양 업무와 농림수산식품부에 딸린 수산 업무를 떼어 내고, 해양자원 개발 업무까지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운업계는 “전문 부처가 생기면 가뜩이나 불황인 해운업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산업계도 수산업 육성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물류 분야 시너지 효과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류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는 내륙·항만·공항 등 육·해·공 교통과 물류 기능을 통합 관리해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는데 해양 업무가 분리되면 시너지 효과가 반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항만개발 등이 원활했던 것도 물류 기능 통합과 국토부 고유 업무인 철도, 도시계획 변경 등의 업무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양 담당 공무원들도 인정한다. 한 해양 담당 공무원은 “부처가 나누어지면 예산이 줄어들어 거대 부처에 있을 때보다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현재 해양 업무를 맡고 있는 젊은 공무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해수부로 옮기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 부활 움직임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농식품부다. ‘수산’ 조직이 떨어져 나가면 ‘식품’ 업무를 쥐고 있을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수산업 관련 법률과 행정조직 등을 분리하려면 엄청난 행정 낭비가 야기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수산청 설치 등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수산업무 공무원들은 세종청사로 이전한 지 3주가 지났지만 아직 이삿짐도 풀지 않고 있다. 교육과 과학 업무가 통합된 교육과학기술부도 민감하다. 박 당선인이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한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정권 당시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로 분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관건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어떤 분야를 아우를지다. 박 당선인은 미래창조과학부를 ‘창조경제 활성화 및 국정 운영을 위한 전담부서’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초과학 위주인 옛 과기부 형태가 아닌 지식경제부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상당 기능을 가져온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구상이다. 국정 운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산 기능에 초점이 맞춰다. 현재 과학기술 관련 예산의 배분 및 조정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맡고 있다. 국과위가 교과부에서 떨어져나간 조직인 만큼 과학 전담 부처가 생기면 국과위 역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교과부의 교육 담당 공무원들은 ‘대학정책’의 미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교육과학의 통합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낸 곳이 바로 대학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정책 중 일부를 채택한다면 대학정책을 아예 과학기술 전담 부처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 시·도 교육청에 인사권과 예산 등 기능의 상당 부분을 내 준 상황에서 교육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경부 “中企업무 지키자” 지식경제부도 온종일 술렁거렸다. 정보통신을 담당한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이 박 당선인의 공약이기 때문. 정보통신 연구·개발(R&D) 기능이 미래과학부로 이관된다면 일부 인력과 조직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부를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지경부가 MB(이명박) 정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낙관론도 있다. 즉 에너지와 수출입, 중소기업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출혈로 조직개편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경부는 중기청이 부처로 승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반기 중견기업정책국을 신설하는 등 선제대응을 했다. 지경부는 중견기업국과 중기청의 중소기업 정책기능을 합쳐 중소기업정책본부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현재의 중기청은 소상공인업무를 전담하도록 소상공인청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대선 캠프에 전달했다. 소상공인청 신설은 소상인·소공인 및 골목상권 보호 차원에서도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보통신기술(ICT) 전담부처 신설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방통위는 내부적으로 지경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로 흩어져 있는 ICT 기능을 통합한 부처 신설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방통위 관계자는 “박 당선인의 공약이 방통위가 내부적으로 바라는 새 조직 얼개와 큰 차이가 없다.”며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부처종합
  • 해양·과기·정통 부서 등 ‘헤쳐 모여’… 소부처 신설·부활 예고

    해양·과기·정통 부서 등 ‘헤쳐 모여’… 소부처 신설·부활 예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내년 2월 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자세가 어느 당선인보다도 확고하고, 일관적인 데다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수여서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한 공약 실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정부 조직개편의 방향과 부처의 분위기를 알아봤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대부처’들에 통합돼 있던 일부 전문 부처들을 떼어내 ‘소부처’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융합과 종합보다는 집행과 책임성에 더 무게를 뒀다. 해양수산과 과학기술, 정보통신, 금융 등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20일 “이들 부처를 전담하는 소부처들의 신설 또는 부활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그동안 해양수산부 부활과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을 전담하는 부서의 신설 등을 몇 차례 공약했다. 방식은 ‘최소 개편’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기구 개편을 예고한 셈이다. 앞서 ‘작은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5년 전 부처 통폐합을 단행해 15부 18청의 대부처 구조를 유지해 왔다. 내년 2월 말 출범할 박근혜 정부는 정부 조직을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조직으로 나눠 끌고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기존의 교육과학기술부,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가 1차적인 조직 개편 타깃이다. 해양수산부가 부활하면 국토해양부는 신설 5년 만에 사라지고, 예전처럼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체제로 운영된다. 해양수산부 부활에는 부산·경남권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정치적 배려가 있었던 만큼 세종시가 아닌 부산에 갈 가능성도 높다. 과학기술 업무는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가진 ‘미래창조과학부’로 확대된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는 미래전략 기능까지 가져갈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결정할 몫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예전처럼 교육 분야에만 집중하거나 혹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 기능을 떼어내 교육부로 이관시켜 교육체육부로 개편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정보통신과 미디어를 관할하는 ‘정보방송통신부’를 만들겠다고 밝혀 왔다. 행정안전부 정보화기획실로 넘어갔던 전자정부 및 개인정보 보호 업무 등도 돌아오고, 지식경제부에 흡수됐던 우정사업본부 등도 정보방송통신부로 귀환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방송통신위원회 체제로는 급변 상황에서 적응하고 적절한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기가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지식경제부는 산업 통상을 담당하는 산업자원부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는 옛 과학기술부의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정보통신부의 정보통신(IT) 산업 정책 및 우정 분야까지 흡수해 방대한 조직과 산하기관을 거느린 공룡부처로서 모든 공직자들의 부러움을 사왔다. 공약에는 없지만 금융위원회에 기획재정부의 일부 기능을 합쳐 ‘금융부’로 확대하는 방향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에서 금융 부분은 떼어내고 예산 기능만을 남긴다는 복안이다. 금융위 산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덩치를 불려오면서 사실상 독자 기관으로 행세하며 정책 실패를 거듭해 온 ‘금융권의 갑’ 금융감독원은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상태다. 정부 내에서 힘센 부처로 불리는 행정안전부도 새 정부에서는 대폭적인 조직 개편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재난안전기능은 새로 생길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옮겨지고, 전자정부 기능 등은 정보통신방송부로 각각 이관될 처지다. 행안부는 중앙인사위원회와 비상기획위원회의 기능까지 갖고 있다. 정부 조직개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책임총리제 실시다. ‘의전 총리’, ‘대독 총리’로 불리던 총리 역할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 보장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의 임명제 총리로서의 역할은 제도적으로보다는 인물과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행안부가 갖고 있는 부처의 정원 관리와 조직 운용권 등을 이관해야 총리실의 기능이 강화될 것이란 논의도 오가고 있다. 정부 조직개편의 칼자루는 인수위원회가 쥐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부처들 간에는 막후 흥정과 비밀 교섭 등 사활을 건 힘겨루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독일의 성직자, 교수.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의 방아쇠를 당겼다. 학자들은 그를 두고 마지막 중세를 살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그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타 종교인이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2017년까지 루터도시 곳곳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 루터의 자취를 좇는 루터도시 순례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시공간을 찾아갔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독일 소도시 여행에서 구도자의 삶을 엿본다. 내가 찾아간 독일은 다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시대였다. 루터가 살았던, 죽었던, 설교했던, 공부했던, 결혼했던, 세례를 받았던 독일의 튀링겐주와 작센안할트주 일대는 아예 루터도시Lutherstad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2017년이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된다.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루터가 부지런히 상기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루터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됐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박물관 안내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슬레벤Eisleben 루터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도시 본격적으로 루터의 자취를 좇는 여행은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시작됐다. 인구 2만5,000명이 사는 아이슬레벤은 우리나라 폐광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구리 채굴로 번성했던 도시의 과거 영화는 시민 계급의 주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한적하기만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년 찾아오는 50만명의 관광객으로 그리 외롭진 않다. 루터가 태어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라는 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 곳곳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는 티셔츠에 머그컵에 부지런히 등장하는 체 게바라처럼 인기 있는 혁명가 아이콘이다. 루터는 갤러리에 걸린 팝아트에도 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루터 시대 먹었던 음식을 재연한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인기다. 도시 광장 한복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루터 동상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객의 사진 포인트.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알았던 소수의 전유물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최초 번역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소수자’로 태어난 루터는 대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일부러 배우고 익힌 후에야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 계층간의 단절이 새삼 놀랍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당시 1,000만권 정도 복사된 최고의 밀리언셀러였다. 지식을 독점하면서 우위를 누렸던 성직자들이 루터를 고운 눈으로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어 갔다. 화답이라도 하듯 루터는 현 루터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상트 안드레아스 키르헤 교회도 예전 그대로다.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단상에 올랐을 노성직자가 아른거린다. 교회를 나와 세상에서 첫 번째 박물관으로 탄생한 루터의 생가로 향한다. 루터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방명록에는 심심치 않게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꼭 들르는 관광지다. 생가 이층에서 창문을 열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상트 페트리 바울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 세계관에서 세상에 태어난 생일은 중요치 않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야 그 삶에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종교인으로서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 이 도시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했다. 교회에는 아기 루터의 머리를 적신 성수가 담겼던 세례 그릇이 복원돼 있다. 새겨진 문구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말씀을 실행한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에서 만난 루터 동상. 이곳은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2 루터를 종이인형으로 형상화한 그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다 3 루터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 ●비텐베르크Wittenberg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다 루터의 본류를 좇으려면 비텐베르크가 빠질 수 없다. 이곳은 50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열했던 땅이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수준 높은 학문이 교류됐다. 루터는 이곳에서 생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치열한 한때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 내걸린 거대한 루터 현수막 아래로 진짜 루터가 등장했다. 은발의 노신사가 루터와 같은 수도복을 입고 추종자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독일식 코스튬플레이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났는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비텐베르크 시민들도 이제는 그냥 그를 루터라고 부른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당시 루터는 중세의 아이돌이었다.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도 많았으니 내가 루터라고 주장하는 가짜 루터들도 출몰할 법했다. 루터가 1511년부터 거주한 수도원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돼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량의 루터 초상화다. 젊은 루터, 늙은 루터, 박사모를 쓴 루터, 수도복을 입은 루터 등등 화가들은 쉴 새 없이 화폭에 루터를 담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 95개 조의 반박문을 1517년 성교회Castle Church에 못 박은 일이었다. 루터는 거침없었다. 교회의 처사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대자보였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 대한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소중한 첫걸음이 됐다. 루터하우스에서 성교회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도보로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중세의 매듭이 묶이고 근대라는 시간이 스멀스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루터는 근대의 불을 인간에게 안긴 프로메테우스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설교로 계속 그 불의 온기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최초로 또 2,000회 이상 독일어로 미사를 올렸던 성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광장 동쪽으로 삐죽이 솟아 있다. 거칠게 생각해 보면 루터는 역사책 안의 인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도 인연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엔 교회 대신 백화점으로 향하는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신나는 ‘빨간 날’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에게 우리는 분명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우리의 관심사를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되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건 거창하다. 다만 구시대의 모순에 하나둘 반기를 들었던 행동들이 모여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용기 덕분에 근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크겠다. 이제 세상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과학적인 합리성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 질서를 꿈꾸는 이때 독일인은 부지런히 루터를 소환하고 있었다. 다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루터도시는 희망의 증거를 내준다. 4 비텐베르크 광장.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걸개가 걸려 있다 5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독일인의 문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을 정도로 루터 역시 맥주를 즐겼다 6 비텐베르크는 루터로 꽉 찬 도시 같다 ●밤베르크Bamberg 천년의 낙차를 여행하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를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베르크만한 곳이 없다. 이름도 생경한 이 도시에 들어서려면 다소 긴 관문을 통과한다. 뮌헨 공항에 내려 세 시간여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도시에 다다르면 여독보다 더 강렬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이동의 피로감은 뒷전이 된다. 밤베르크는 수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다. 볕에 대기가 달궈지기 전 찬 공기와 만난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그 운치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자 밤베르크에는 볕이 가득하다. 조도가 높았다. 워낙 일조량이 적은지라 아이가 태어나면 항우울성 예방주사부터 맞힌다는 독일에서 운 좋은 시작이었다. 골목골목 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담장을 넝쿨이 따라간다. 약속이나 한 듯 건물 위에 얹은 빨간 지붕 옆으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건물과 자연의 보색대비가 도드라진다. 느릿한 걸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휘감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간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는 1993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중심지로 가꾼 밤베르크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황홀한 낙차를 즐기며 걸음걸음을 옮기다 보면 밤베르크가 살아있는 고도古都라는 데 공감이 간다. 레그니츠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잇던 어부들의 집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점이 늘어섰다. 꽤나 낡아 보이는 집들도 아직 짱짱한 현역이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고작 몇백년 된 건물이라고 받아친다. 우리 같았으면 당장 ‘진입금지’를 뜻하는 펜스부터 둘렀을 법한데 10세기에 조성된 이 도시는 현대적인 기능까지 돋보인다. 겹겹이 쌓인 지층처럼 천년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덧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단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선조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이들이 밤베르크 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유명한 곳은 슈렝케를라Schlenkerla로 불리는 양조장. 밤베르크에 있는 8개의 맥주 양조장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이라는 뜻의 의태어가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려는 애주가들로 슈렝케를라 앞은 북적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맥주 맛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훈증을 거친 몰트로 맥주를 빚기 때문에 ‘훈제맥주’로 불리는 맥주는 구운 치즈와 같은 향을 가졌다. 짙은 훈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밤베르크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현 주인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훈제맥주는 ‘적어도 세 잔은 마셔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안주를 공수한다. 맥주는 인류가 천년을 이어온 고급문화의 정수라며 문명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고 한다. 옛 맛을 기억한 손님이 다시 찾아와 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마시자마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리퀴드 타임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덕분인지 밤베르크 성인의 맥주 섭취량은 독일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연중 288L의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까. 중세부터 지금까지 밤베르크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쳤던 루터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밤베르크의 맥주로 미각을 깨웠다면 이제 영혼을 깨울 차례다. 밤베르크의 역사는 건축물로 상징된다. 구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노란빛 구시청사가 위태롭게 자리했다. 반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황제의 대성당Imperial Cathedral과 성미카엘교회St.Michael’s Church는 위풍당당하다. 이 건축물들의 대비가 정치와 종교의 투쟁을 겪어 온 유럽의 역사를 드러낸다고 하면 오산일까. 지금도 밤베르크 시민의 90%는 가톨릭을 믿고 있을 만큼 구교의 위세는 예부터 대단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이 맞닿는 곳에 대성당과 교회를 지었고 교회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몄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천국임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은보화로 교회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밤베르크 교회는 더 나아가 그 당시 가장 희귀했던 식물 578가지를 천장에 수놓았다. 중세 유럽에 처음 전파된 토마토도 보인다. 값지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교회에 있었다. 종교는 교회만큼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에 슬슬 금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시청사 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교는 한뼘의 땅도 허락하지 않았던 탓에 시민들은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 한복판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교의 소유권이 강을 경계로 끝난다는 데 착안한 묘수였다.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시민의식이 한데 모아져 보란 듯이 인공섬 위에 시청을 세웠던 것이다. 그제야 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의 구시청사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싸워서 얻어낸 성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껏 밤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교회와 성당이 아니라 낡은 시청사다. 절대적이었던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라….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루터의 흔적이 보였다. 껑충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자에게 밤베르크는 루터 여행을 매듭짓기에 완벽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모던 아트와 결합된 황제의 대성당 2 실제로 운행되는 증기기차. 밤베르크와 쌍둥이 도시인 퀘들린부르크에서 탑승할 수 있다 3 7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천천히 골목골목을 걷기 좋다 4 슈렝케클라에서 훈제 맥주와 맛보는 전통음식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02-773-6430 ▶travie info 밤베르크 비어 투어 맥주가 없는 밤베르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비어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 내 양조장을 돌며 밤베르크의 맥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다. 밤베르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한다. 비용 1인당 20유로 문의 0951-2976-200 홈페이지 www.bamberg.info ●Travel to Lutherstadt 루터 도시 기행 루터를 더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루터의 도시들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가 학생 시절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는 1483년부터 1501년까지 루터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 멋진 담장이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을 보여 주는 전시품을 통해 루터의 과거를 엿볼 수 있을 뿐더러 현대적인 전시관에는 멀티미디어 기술로 종교개혁을 재현해 놨다. 에어푸르트Erfurt 독일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튀링겐주의 주도다. 중세 도심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시가가 인상적. 구불구불한 골목과 광장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리아 성당과 세베루스 교회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돋보인다. 중세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글로리사’도 볼 수 있다. 매년 11월10일 수천명의 에어푸르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성당 광장에서 마틴 루터의 생일을 축하한다. 슈말칼덴Schmalkalden 섬세하게 복구된 중세 목조 건물들과 뾰족한 계단 모양 지붕이 있는 석조 건물들, 후기 고딕 양식의 성게오르그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빌헬름스부르크성이 도시의 역사를 전해 준다. 슈말칼덴의 군주였던 필립 폰 헤센은 최초의 개신교 선제후 중의 한 사람으로, 카를 5세에 맞서던 인물. 16세기 독일 및 유럽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도시다. 토어가우Torgau 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고 평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루터 도시로 Rail & Fly 밤베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뮌헨공항,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에서는 베를린공항이다. 루프트한자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주 6일, 주 7일 운항하고 있다. 베를린까지는 루프트한자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루프트한자 국제선과 독일철도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Rail & Fly 티켓 서비스도 편리하다. 독일 내 모든 기차역에서 독일 국제 공항까지 이동하는 티켓이 편도 25유로, 왕복 50유로부터 제공된다. 루프트한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lufthansa.com 1 밤베르크에 있는 어부들의 집. 중세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성당에 현대적인 조각을 함께 설치한 독일인들의 부러운 감각 3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중세 독일 기행. 골목길마다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김왕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초대 관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초대 관장에 김왕식(59) 이화여대 교수가 내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9일 시행한 관장 채용 면접에서 김 교수가 최종 합격했다고 12일 밝혔다. 광화문 옛 문화부 청사를 증·개축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개항기부터 오늘날까지 역사를 중심으로 기획·구성됐으며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개관 시기와 전시 내용, 초대 관장 선임 등을 두고 논란이 일면서 개관이 연기돼 왔지만, 오는 26일 정식으로 문을 열기로 했다.
  • [글로벌 시대] 글로벌 리더를 소망한다/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 시대] 글로벌 리더를 소망한다/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우리나라처럼 정치권 뉴스가 1년 내내 주요 메뉴가 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대선을 앞둔 요즘은 쏟아지는 정치 관련 뉴스에 혼란스러울 정도다. 정치에 식상하면서도 국민들의 관심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냐에 모아져 있다. 자원 빈국의 좁은 국토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을 키워야 하고, 이를 이끌어낼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대선과 차기 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근대 이후 우리 정치가 국가발전에 얼마나 기여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평가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경제계 인사들이 정치를 보는 눈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있는 정치권에서는 글로벌 리더십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기업들이 일찍부터 글로벌화를 서둘렀기 때문이다. 일본이 오랜 기간 경제적으로 고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것 역시 대외적인 요인보다는 일본 내 ‘글로벌 에너지’의 고갈에서 찾고 싶다. 기업 운영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즉, 성장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도 당분간은 기업이 성장하는 듯 굴러간다. 착시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착시현상을 간파하지 못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글로벌화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은 아날로그 시대에 단연 글로벌화의 선두에 있었다. 한때 소니의 TV와 워크맨, 도요타와 닛산의 자동차, 일본 종합상사의 세일즈맨은 글로벌화의 총아였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에 대해 자만했고, 변화와 혁신을 등한시했다. 글로벌화의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쇠멸한 이유도 세계를 향해 달리던 ‘말’이 달리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무역 1조 달러 달성의 위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내외 여건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있다. 무역 규모가 더 늘지 못하고 지금의 1조 달러에 머문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신시장 개척의 채찍을 높이 들고 더 넓은 곳으로 내달려야 한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反)정부 시위인 ‘아랍의 봄’의 원인 제공자는 글로벌화를 막고 있던 통치권자들이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단초가 됐지만, 옛 소련이 붕괴된 것도 글로벌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중동에서 글로벌화로 성공한 나라가 있다. ‘창조 경영’의 화두를 던진 작은 도시국가 두바이다. 두바이가 최근 10여년 만에 사막의 기적을 일군 것으로 아는 이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석유 매장량이 적어 자원 고갈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서 라시드 왕은 어촌도시로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간파하고 1970년대부터 국가발전 청사진을 만들었다. 국교(國敎)는 무슬림이지만 다종교와 다문화를 수용하고, 술을 허용했다. 이슬람 국가들의 이단이 되는 길을 택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글로벌화를 통해 물류·관광·금융의 허브를 지향한 결과, 두바이는 수많은 외국인이 오가며 돈을 쓰는 ‘중동의 뉴욕’이 됐다. 현재 두바이에는 자국민이 10%도 되지 않는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죽의 장막’을 걷어낸 이래 글로벌화를 위한 가속 페달을 쉼 없이 밟아 왔다. 세계 어디를 가도 중국인과 중국 상품이 넘친다. 낮은 가격과 물량 공세로 승부하던 중국은 이제 옛말이 돼 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우리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가 국가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은 글로벌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좁은 국토가 아닌 글로벌 빌리지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세계는 급변하는데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글로벌 리더가 우리 정치권에서도 많이 배출되기를 소망해 본다.
  • 마포구 150억 옛청사 30년만에 되찾았다

    마포구가 한양학원과 벌인 토지 분쟁 소송에서 이기고 150억원 규모의 옛 청사 부지를 되찾았다. 29일 마포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마포구가 “기부채납하기로 한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하라.”며 한양학원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이행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양학원은 1977년 성산대로 개통 당시 대로변에 있던 소유 임야 중 일부를 개발하도록 허락해 달라며 마포구에 그중 1만㎡를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구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한양학원 소유 임야 중 2만 4000㎡에 대한 도시계획 변경안을 서울시에 제출했고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이를 승인해 개발이 시작됐다. 그런데 청사가 준공된 이후 이 땅은 한양학원 소유로 남게 됐다. 그러다 구가 2008년 한양학원에 기부채납 이행을 요구했으나 한양학원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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