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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국토 기행] 광주 동구

    [新 국토 기행] 광주 동구

    광주시 동구는 구도심이다. 옛 전남도청이 이전하면서 금남로, 충장로 일대의 중심상권이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다. 대인시장, 남광주시장 등 대형 전통시장도 활력을 잃었다. 그러나 대인시장 별장 프로젝트와 예술의 거리 활성화, 충장축제 등 옛 도심 되살리기 정책이 뿌리를 내리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여기에 오는 9월이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연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둥지를 튼 문화전당은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 문화복합시설로서도 손색이 없다. 아시아 문화의 모든 콘텐츠가 담기고 연중 창작활동이 이어진다. 광주의 랜드마크 역할이 기대된다. 운림동 일대는 무등산(해발 1187m) 주 진입로인 증심사지구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외지 탐방객이 크게 늘고 있다. 무등산은 광주 역사의 터전이자 그에 걸맞게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을 품고 있다. 증심사와 문빈정사, 약사암, 의재미술관 등 사찰과 문화재가 즐비하다. 시인과 묵객들이 ‘수정병풍’이라 이름 붙인 정상의 서석대, 입석대(주상절리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남해의 풍부한 해산물을 재료로 차려지는 각종 요리와 맛깔스런 음식은 외지인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싱싱한 횟감이 넘쳐나는 학동 남광주시장 일대 등 어디를 가거나 남도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볼거리] 항쟁의 기억 위에 숨쉬는 예술 ●무등산 따라 흐르는 조선조 가사문학의 산실 동구 운림동 증심사 입구를 거쳐 중머리재~장불재~규봉암~원효사 계곡을 지나면 조선조 시가문화권에 도달한다. 무등산 북동쪽 끝 지점으로 행정구역상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일대엔 시가문화 유적지가 즐비하다.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독수정 등 조선조 정자들을 둘러보며 선조들의 풍류와 낭만을 엿볼 수 있다. 소쇄원은 우리나라 대표 민간 정원으로 꼽힌다. 양산보(1503∼1557)가 스승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 은둔하면서 지었다. 이후 김인후, 송순, 정철, 송시열, 기대승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드나들며 시를 짓고 교류하면서 조선조 가사문학의 산실이 됐다. 바로 아래쪽엔 송강 정철(1536~1593)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식영정이 자리하고 ‘자미탄’(백일홍 개울)으로 불리는 광주호 상류 계곡 건너편엔 환벽당이 서 있다. 최근에 조성된 ‘무돌길’도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10년 지도를 바탕으로 복원된 광주 동구~ 전남 화순~담양 등 무등산 자락을 에두르는 총 51㎞의 탐방로이다. 이 가운데 동구지역은 용추길~용연마을~제2수원지~ 교동~ 선교동정자~광주천길~옛 남광주역~푸른길~광주역에 이르는 10.8㎞ 구간이다. ●예술·창작의 복합문화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중심 도시권에 들어오면 옛 전남도청이자 5·18 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금남로 시작 지점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섰다. 오는 9월 개관한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예술과 창작을 한데 묶은 복합문화센터다. 문화전당은 7000여억원을 들여 13만 4000여㎡ 부지에 전체 면적이 16만 1000여㎡, 지상 4층·지하 4층 규모로 건립됐다. 전당에는 민주평화교류원, 아시아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아시아문화정보원, 어린이문화원 등이 배치됐다. 문화전당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됐으며, 이를 포함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2023년까지 20년간 모두 5조 3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오는 7월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때의 ‘프레 오픈’ 행사를 위해 대형 공연과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전당은 ‘광주의 랜드마크’이자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문화 발전소’로 거듭날 전망이다. ●각종 공연·전시로 제2 전성기 맞은 ‘젊음의 거리’ 충장로 문화전당과 맞닿은 충장로는 옛 광주의 중심 상권이었다. 한때 백화점과 옷가게, 음식점, 술집 등이 밀집해 있고, 전국 패션을 선도했던 곳이었다. 충장로 1가의 전남체신청(우체국)은 우다방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였다. 그러나 2005년 전남도청 이전과 외곽 신도시 개발 탓에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동구는 도심 공동화를 막기 위해 2004년 충장축제를 창설했다. 이후 매년 10월 ‘추억과 향수’를 주제로 난장을 펼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 도심 거리축제로 발돋움했다. 1970~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각종 공연·경연·전시·체험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된다. 이런 축제와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에 힘입어 젊은이들이 다시 몰려드는 거리로 변했다. 지금 충장로 골목길은 평일에도 사람의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문화전당 개관은 충장로의 제2 전성기를 앞당기는 신호탄으로 점쳐진다. ●폐철길따라 조성된 숲 ‘푸른길’·이색 건축물 ‘광주 폴리’ ‘푸른길’은 광주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2000년 폐선된 경전선 도심 통과 구간을 폐선하고 나무를 심어 가꾼 도심 공원이자 산책로이다. 광주역~조선대~남구 진월동 8㎞ 구간이다. 2002년부터 광주시와 시민단체, 민간기업 등이 폐 철길따라 31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숲길이 조성됐다. 동구 계림·산수동 구간은 일부 기찻길을 복원해 놨다. 푸른길을 따라 올망졸망한 옛 주택과 골목길을 돌아볼 수 있다. 동명동 구간엔 카페와 아트숍, 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충장로 등 도심 곳곳에 설치된 ‘광주 폴리’ 건축물들도 이색 볼거리 중 하나다. 광주 폴리는 도심 재생을 위해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설치를 주도하고 있다. 폴리는 2011년 11개, 2013년 8개 등 19개 작품이 설치됐다. 폴리는 도시를 상징하는 ‘Urban’과 장식용 건물을 뜻하는 ‘Folly’를 따 ‘어번 폴리(도시를 상징하는 건물이나 건축물)’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표 작품으로는 구 시청사거리에 놓인 황금색 박스 구조물(The Open Box)이 있다. 문화전당 서쪽 벽면엔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쉬거나 소공연을 할 수 있는 ‘사랑방‘이란 폴리도 만날 수 있다. ●예술품 판매점·갤러리 등 갖춘 대인시장 ‘별장프로젝트’ 문화전당과 맞닿은 동구 궁동 광주동부경찰서~중앙로 300m 구간은 ‘예술의 거리’로 조성됐다. 서울 인사동 거리처럼 갤러리와 화방, 표구점, 골동품점, 소극장, 고서점, 전통 찻집 등이 90여개 들어서 있다. 거리의 야외무대에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며 골동품, 미술품 등의 경매가 이뤄진다. 예술의 거리 끝자락에서 중앙로를 건너면 대인시장에 이른다. 최근 별장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다. 매월 말 시장 상인들과 2008년부터 이곳에 둥지를 튼 예술인들이 펼치는 별난 장터이다. 예술품 판매점과 카페,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 오픈 스튜디오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펼쳐지는 별장 프로젝트는 도심 전통 시장 축제로 자리잡았다. [먹거리] 남도의 손맛으로 버무린 참맛 ●아시아 음식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인근인 동구 광산동 구 시청사거리 일대가 아시아음식문화 거리로 떠오른다. 최근 외국 음식 전문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탈리아 파스타, 베트남 쌀국수, 터키 케밥 등을 즐길 수 있다. 이자까야(일본식 주점)류 업소와 이탈리아 음식점, 인도 음식점 등 10여곳이 영업 중이다. 밤이면 젊은층이 몰려든다. 파히타, 브리토,타코,케사디야 등 멕시코 전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동구는 이곳 일대를 아시아 각국의 음식문화를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아시아음식 문화지구’로 조성할 계획이다. 문화전당 개관에 맞춰 세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다양한 아시아 요리전문가 교육 등을 추진한다. ●지산동 보리밥집 지산동 무등산관광호텔 아래쪽엔 보리밥집이 즐비하다. 요즘은 기호에 따라 나물류를 골라 먹는 뷔페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생겼다. 보리밥과 풍성한 푸성귀는 봄철 입맛을 돋운다. 열무청과 돈나물, 도라지 무침, 고사리나물, 호박무침, 냉이나물, 달래무침 등 10여가지 나물류와 보리밥·참기름을 듬뿍 넣고 비빈다. 수십년 전부터 등산객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보리밥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파전과 도토리묵, 막걸리도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남광주시장 수산물 남광주역과 맞붙은 남광주시장 일대는 수산물 요리집이 즐비하다. 이곳은 경전선이 폐선된 2000년까지는 열차를 통해 전남 보성과 고흥의 득량만 일대에서 올라오는 싱싱한 수산물의 집산지였다. 요즘도 꼬막, 바지락, 굴, 키조개를 비롯해 막 건져 올린 싱싱한 어류의 새벽장이 열린다. 시장 주변엔 자연스레 이런 수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점이 생겼다. 가을철엔 전어, 겨울철은 붕장어, 간재미 등이 주 메뉴이다. 요즘은 새조개와 꼬막 등 패류가 주종을 이룬다. 서대와 준치 등을 미나리 등 푸성귀와 버무려 새콤한 회무침으로 내놓는 음식점도 많다. 철 따라 바뀌는 생선과 조개구이 등도 맛볼 수 있다. 동구청과 문화전당 주변엔 고급 한정식도 산재해 있다. 갈치, 새고막, 낙지 등의 요리가 일품이다. ●증심사지구 닭요리집 증심사지구는 무등산 주요 등산로 입구이다. 연일 등산객으로 붐비는 만큼 음식점도 다양하다. 도토리묵, 파전, 동동주, 칼국수, 보리밥집도 많다. 증심사집단시설지구가 새롭게 조성되기 이전부터 닭백숙 요리집이 즐비했다. 일부 음식점은 닭고기를 이용한 코스요리도 개발해 내놓고 있다. 닭을 부위별로 튀기거나 삶아 채소와 함께 내놓는데 특히 어린이들의 입맛에 맞췄다. 전통 닭찜과 백숙을 내놓는 음식점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中·페르시아·유럽 문화 뒤섞인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 ‘코치’ 히브리어 간판부터 중국식 어망까지 이색 풍경… ‘세계 10대 낙원’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즈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스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방산 비리·세월호 ‘관피아’ 논란에… 국방·해수부 ‘꼴찌’

    방산 비리·세월호 ‘관피아’ 논란에… 국방·해수부 ‘꼴찌’

    ‘국방부는 지난 한 해 징집 사병의 총기 사고와 고위 장교의 성추문, 방산 비리 등으로 국민 가슴을 멍들게 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관피아’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외교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국정과제 이행이든, 규제 개혁이든 낡은 관행을 깨는 일에 소홀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42개 장·차관급 부처를 종합평가한 결과 4곳이 장관급 부처 가운데 ‘미흡’ 판정을 받은 이유다. 국조실은 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2014년도 정부업무평가를 보고하고 외교부와 국방부, 해양수산부, 방송통신위원회가 최하위인 미흡 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차관급 기관에서는 방위사업청, 옛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4곳이 최하위 판정을 받았다. 반면 보건복지부가 전체 1위, 산업통상자원부가 2위, 환경부가 3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기획재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국토교통부 등 6개 기관이 ‘우수’ 평가를 받았다. 차관급 기관에선 산림청이 1위, 관세청이 2위, 경찰청이 3위에 올랐고, 이들을 포함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소기업청, 특허청까지 6곳이 최고 등급을 받았다. 2014년 정부업무평가는 ▲국정과제(50점) ▲규제개혁(25점)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25점) 등 3개 부문에 비중을 두고 실시됐다. 아울러 ▲홍보 및 정부3.0, 협업, 대국민 업무태도, 특정시책 등 기관공통사항(±15점)을 가감점으로 반영해 산출했다. 기재부는 총투자 증가율이 4.4%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5%를 상회하는 등 투자가 성장을 견인하는 성과를 냈으며, 공공기관의 부채 감축 및 방만경영 개선 등으로 공공기관 정상화에 기여했다고 국조실은 평가했다. 산업부는 중국, 호주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시키며 우리나라 FTA 시장 규모를 세계 3위로 끌어올렸으며,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을 2012년 32.1%에서 지난해 34.0%로 높인 공을 인정받았다. 복지부는 기초연금제도 도입,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맞춤형 급여 체계를 개편했으며, 4대 중증질환 및 3대 비급여 항목에 대한 의료비 부담을 경감했다고 국조실은 평가했다. 국토부는 도로폭을 기준으로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는 사선 규제, 자동차 튜닝 규제 등 핵심 규제를 개선했다. 또 식약처는 식품안전 체감도를 2013년 72.2%에서 지난해 73.8%로 끌어올렸고, 관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수 1조 1246억원을 기록해 목표를 136억원 초과 달성했다. 경찰청은 성폭력 재범률을 2013년 6.4%에서 지난해 5.4%로, 가정폭력 재범률을 2013년 11.8%에서 지난해 11.1%로 낮추는 등 4대 사회악 근절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국조실 관계자는 “올 평가에는 정부업무평가위원회뿐만 아니라 부문별 전문가와 정책 수요자, 일반 국민 등 656명을 참여시키고 국민 만족도 조사 결과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경남도, 대표도서관과 기록원 건립한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있는 인재개발원(옛 공무원교육원)과 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이 경남도 대표도서관과 경남도 기록원으로 바뀐다.  경남도는 3일 경남 서부권 개발정책에 따라 인재개발원과 보건환경연구원을 진주로 이전하고 기존 건물을 대표도서관과 기록원으로 각각 리모델링해 2017년에 개관한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에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다. 기존 인재개발원 건물은 사업비 113억원을 들여 도서관과 독서실 시설로 바뀐다. 현재 인재개발원 기숙사로 쓰고 있는 새롬관 1·2층은 좌석 260석을 갖춘 공공 독서실로 꾸며 주민들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대표도서관은 민간장애인 도서관과 연계해 장애인 서비스를 확대하고 실업 청·장년을 위한 취업·창업 비지니스 지원센터도 운영한다. 사이버 도서관 기능을 강화해 인터넷 문화강좌, 인터넷 수능강좌, 전자책과 전자책 모바일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윤성혜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신설되는 도 대표도서관은 기존 공공도서관과 차별화된 다양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인재개발원 옆에 있는 보건환경연구원 건물(지하 1층 지상 5층)은 121억원을 들여 경남도 기록원으로 리모델링해 도와 도내 18개 시·군의 영구 기록물을 보관한다. 도는 도 기록원은 인근에 건립되는 도 대표도서관과 연계해 공적 기록물 공개와 전시 등 다양한 기록문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기존 인재개발원과 보건환경연구원은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옛 진주의료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올해 말 개청할 예정인 경남도청 서부청사 건물로 이전한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현대차 삼성동 한전부지 땅값 32% 올랐다

    현대차 삼성동 한전부지 땅값 32% 올랐다

    올해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가 4.1%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1월 1일을 기준으로 조사·평가한 표준지 50만 필지의 공시지가를 24일 발표했다. 올해 상승률은 글로벌 경제위기 직전인 2008년 9.6% 오른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이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2009년 1.4% 떨어진 이후 6년 연속 상승했다. 각종 부동산 개발과 공공기관이 새로 들어선 지역의 땅값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세종시는 정부청사 이전에 따른 토지수요 증가로 15.5% 상승, 시·도별 상승률 1위에 올랐다. 인천은 2.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시·군·구별 상승률은 전남 나주가 한국전력 등 공기업 이전의 영향을 받아 26.96% 올라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경북 예천도 도청 이전과 인구 유입 증가로 15.41% 상승했다. 울산 동구도 울산대교 건설, 방어택지지구개발 등으로 12.64% 올랐다. 서울에서는 가로수길이 있는 강남 신사동(15.5%), 경리단길이 있는 용산 이태원(10.2%) 등 상권이 활발하게 움직인 곳의 상승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는 중심상업지역 침체 등으로 유일하게 0.04% 하락했다. 고양시 일산서구·일산동구, 경기 양주, 전남 목포 등은 상승률이 1%대 미만에 그쳤다. 관심 지역 가운데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부지 땅은 ㎡당 2580만원으로 전년(1948만원) 대비 32.4% 뛰었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4.1% 상승했지만 현대차그룹이 감정가의 3배가 넘는 고액에 낙찰받으면서 공시지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이 땅은 전체 면적의 96%가 주거지역이란 점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될 경우 훨씬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독도는 2006년 이후 관광이 허용되고 접안시설이 설치되면서 꾸준히 오르기 시작, 올해에도 20.64% 상승했다. 표준지 가운데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네이처 리퍼블릭’ 화장품 상가 토지로 ㎡당 8070만원으로 평가됐다. 지난해(㎡당 7700만원)보다 4.8% 상승했다. 가장 싼 땅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 임야로 ㎡당 145원으로 조사됐다. 권대철 토지정책관은 “지난해 토지 거래가 증가하면서 실제 땅값이 2.0% 정도 올랐고, 지역 간 공시지가 편차를 줄이고 시세 반영률 상향 조정 반영 등으로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전국 3178만 필지의 개별공시지가 산정과 보상평가 등의 기준이 된다. 국토부 홈페이지(www.molit.go.kr) 또는 시·군·구 민원실에서 다음달 27일까지 열람, 이의신청할 수 있다. 개별공시지가는 5월 말 공시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아직도 ‘○○번지’… 갈 길 먼 도로명주소

    아직도 ‘○○번지’… 갈 길 먼 도로명주소

    정부가 도로명주소 이용률 높이기에 비상을 걸었다. 지난해 전면 실시에 앞서 2011년 고시한 뒤 3년이라는 긴 유예기간을 두고도 국민들 뇌리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먹히지 않으면 답답하긴 마찬가지인 지방자치단체들도 벌써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홍보에 가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에서 얻은 성과는 거의 낙제점이다. 행정자치부는 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주소를 많이 이용하는 택배·온라인쇼핑·내비게이션 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도로명주소 활성화에 협조를 당부했다. 공공기관 모든 업무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우편 분야 활용도는 68.9%에 그치는 등 국민 실생활에서의 체감도는 낮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간담회엔 100여명이 참석했다. 간담회 참가자들은 “특히 국민들을 겨냥한 홍보에 더욱 매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조차 옛 주소체계인 지번을 선호하고 고객들 또한 오랜 관습 때문에 옛 체계를 고집하기 때문에 정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TV홈쇼핑 간부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는 것인 만큼 빨리 정착해야 한다”면서도 “고객들에게 새 주소만 가능하다고 안내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 인식되지 않아) 배송을 부탁받은 뒤 도로명주소로 물건을 보내면 ‘왜 허락도 없이 주소를 바꿨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며 “예컨대 주민 반상회에서라도 주부들을 상대로 홍보전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도로명주소 활용률은 택배 분야에서 18.9%를 기록하는 등 아주 낮았다. 택배의 경우 2013년 1.8%에 비해 증가했지만 여전히 초라하다. 온라인쇼핑에서도 146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고객들의 주소를 새 체계에 맞춰 전환한 곳은 17.8%인 26곳뿐이었다. 접수 과정에서도 절반을 조금 웃도는 86곳만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행자부는 배송 접수와 송장 작성에 도로명주소를 최소한 지번과 병기하도록 기술적·인적 시스템 마련을 요청했다. 우수 사례 발표에 나선 GS홈쇼핑에 따르면 배송 주문 때 도로명주소를 사용한 고객은 지난해 1월 416만여명 가운데 1만 1330여명에서 12월 557만여명 중 32만 8000여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내비게이션 기업과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오는 8월 1일부터 국가기초구역번호 시행과 함께 다섯 자리로 바뀌는 새 우편번호 시행으로 도로명주소를 쓸 수밖에 없어 실제 적용률을 한꺼번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서울기록관 vs 서울기록원 ‘이름 전쟁’

    서울기록관을 운영하는 국가기록원과 서울기록원을 추진 중인 서울시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2일 국가기록원과 서울시 등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은 지난달 6일 경기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 산하 나라기록관의 이름을 서울기록관으로 바꿨다. 서울기록원은 현재 서울시가 건립을 추진 중인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다. 서울시에선 서울에 있지도 않으면서 국가기록원이 서울기록관이란 이름을 쓰는 게 못마땅하다. 국가기록원에선 서울시가 과민 반응을 보인다며 불쾌해한다. 하지만 이 사안은 단순한 작명 다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기록물 관리에 대한 정책 혼선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현행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임의조항에서 의무조항으로 개정한 지 8년이 되도록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한 곳은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서울시가 2012년 전담 부서인 정보공개정책과를 신설하고 지난해 1월 ‘기록물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인 서울기록원 설립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현재 건립 준비를 진행 중이다. 은평구 옛 질병관리본부 자리다. 이런 상황에 서울시 입장에선 서울기록관이란 이름을 ‘유사 명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조영삼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장은 “시민들로서는 서울기록관이라고 하면 서울시 기록을 보존하는 곳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며 “국가적 기록관리정책을 수립하는 곳이라면 ‘중앙기록관’ 정도로 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2013년까지 해마다 기록물관리지침을 통해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하기 전에는 지자체 기록물 이관을 보류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엔 “지자체 및 교육청의 기록물은 국가기록원 인수서고 수용 가능 정도 및 기관별 미이관 기록물 규모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이관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달라진 태도를 내비쳤다. 조 과장은 “지난해부터 달라진 지침과 올해 조직개편은 지방기록물관리체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일관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성기 국가기록원 정책기록과장은 “서울기록관은 정부서울청사와 세종청사 등 정부기관 기록물을 관리하는 곳으로 지자체 기록물과는 무관하다”며 “서울시에서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군사 중국을 살리리라

    돈과 힘/존 델러리·오빌 셸 지음/이은주 옮김/문학동네/624쪽/2만 8000원 중국 난징 서북쪽의 징하이사(靜海寺) 안내판에는 영어·중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러한 불평등조약은 치욕의 족쇄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사 속의 중국이 가난하고 약한 국가가 된 주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이곳에서 난징조약에 굴욕적으로 서명해야 했던 나약하고 무기력한 근대사를 되새기는 상징물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청나라 왕실의 아름다운 여름궁전이었던 베이징 서북쪽 원명전은 제2차 아편전쟁 중 영·불 연합군에 불탄 폐허로 남아 있다. 공산당 정부가 잔해 그대로 보존한 왕궁터는 서구열강의 만행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역사박물관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거침없이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외세의 침략과 강점, 내란 등 굴곡 많은 근현대사 속에 어떻게 지금의 강국이 됐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민심과 나라의 힘을 한 군데로 모아간 걸출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핵심 철학은 부강(富强)으로 결집된다. ‘돈과 힘’은 바로 이 부강을 국가적 목표로 추구한 중국 역사의 대표 유명인 11명의 이야기이다. 풍계분(馮桂芬)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사상가부터 서태후, 량치차오(梁啓超)를 거쳐 쑨원(孫文)과 장제스(莊介石), 마오쩌둥, 덩샤오핑 같은 세계적 정치가가 들어 있다. 저자는 컬럼비아대와 베이징대를 거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 재직 중인 존 델러리 교수와 오빌 셸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 두 사람은 강성했던 옛 국력의 회복을 지상명제로 삼은 이들의 의지와 동력을 지금의 중국을 있게 한 으뜸 요소이자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로 보고 있다. 원래 ‘부강’은 2000년 전쯤인 전국시대에 탄생한 고대격언 ‘부국강병’을 줄여 부른 말이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 부국과 강병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갈파한 법가 사상가 한비자의 말이 시초다. 부강을 역사의 갈피 속에서 다시 꺼내 개혁의 기치로 세운 최초의 위인은 바로 청나라대에 민정·재정 담당 지방장관 포정사를 지낸 사상가 위원(魏源)이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는 참담한 현실을 자각,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치국적 정치개혁’이라는 전통 부활을 국력 회복의 길로 보고 전략적 차원에서 서구열강의 문물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외친 그는 ‘황조경세문편’을 통해 사대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태평천국의 반란군을 피해 도피했던 상하이 외국인 거류지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수치심을 느껴야 강해진다’며 자강(自强)을 치국의 핵으로 세운 19세기 후반 정치사상가 풍계분이나 ‘근본적 변화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면서 강(强)은 자유의 필요조건이라고 외쳤던 20세기 벽두의 량치차오의 신민(新民)사상도 눈에 띈다. 국력을 회복하려면 발전을 방해하는 문화적 전통을 폐기하고 새 국가개념을 세워야 한다는 량치차오의 이 사상은 후대 지도자들에게 계승된다. 그 사상은 신문화운동 당시 사회비판 소설을 쓴 루쉰(迅), 신생활운동을 추진한 장제스, 혁명적 신중국의 청사진을 내놓은 마오쩌둥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파괴 없이 건설 없다’는 ‘선 파괴 후 건설’을 모토로 문화혁명을 강요한 마오쩌둥은 ‘진정한 혁명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의 덩샤오핑은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를 앞세워 경제적 수단에 온 관심을 쏟아 비교된다. 책은 11명의 짧은 전기를 엮은 구성이지만 각 인물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저작물과 연설문 등에 연결해 중국 근현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톈안먼 사건 이후 인권·민주화운동에 헌신해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저자들은 류샤오보를 소개하면서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한다. “부강을 추구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두 가지 사조가 미래의 어느 순간 하나로 수렴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날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색점 위에 색점 : 누군가의 흔적 위,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히다

    작가 양주혜(60)는 2006년 광화문 제자리찾기 공사장에 바코드와 색점으로 광화문을 그려 설치됐던 대형 가림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었던 프랑스문화원 설치(1993)에서 시작해 옛 문화관광부 청사 건물, 아르코미술관 외벽, 용산구 한남동 일신빌딩 공사장 펜스, 바닷가, 공터 등 공공적인 성격의 설치 작업과 조형물 작업을 주로 해 온 그가 이번에는 생활에서 친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직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서울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시간의 그물’에는 누군가 사용했던 보자기, 방석, 이불보, 타월과 같은 일상용품과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색점을 찍어 작업한 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천에 그려진 작품들에서는 공사장 가림막, 미술관 외벽 등 공공적 성격의 설치작업과 달리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감이 느껴진다. 유학 시절 읽어 내기 어려운 프랑스어로 된 책 위에 글자를 지워 나가듯 색칠을 한 것이 그가 30여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색점 작업이다. 하나의 색점 위에 또 다른 색점을 찍어 나가면서 지난 시간을 감추고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다. 전시 오픈에 맞춰 기자와 만난 작가는 “내게 색채는 빛의 흔적이고, 점을 찍는 작업은 시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이라면서 “색깔의 배열은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에 사용된 소재들은 모두 누군가 사용했던 것들이다. 심지어 캔버스도 지인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선배들이 남기고 간 것으로 물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에 덧칠을 해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의 흔적이 있는 바탕에 작업을 했더니 마음이 더 편하더라”라면서 “재료와 작업과정 등을 돌이켜 보면 앞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시간과 그 위에 작업했던 시간들이 작품에 중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은 직조에 따라 그 위에 칠해진 물감과 조응해 자연스러운 구김과 우그러짐을 만들며 형태가 변했다. 바탕 천 위에 그려진 점과 선은 직물의 성격과 형태의 흐름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시간과 함께 오래 곰삭아 세상에 나온 작품은 물감을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탓에 무게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작가가 작품과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그는 “한다고 했지만 엄마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면서 “요즘은 누빈 천에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어머니들의 손바느질처럼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던 작업들에 대한 오마주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안중근 의사 유해 GPR 탐지 추진

    국가보훈처는 19일 청와대에서 실시한 신년 업무보고에서 올해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명예로운 보훈’을 주제로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를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1910년 일제에 사형당한 직후 실종됐던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을 위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중국 지역에 대한 지하탐지 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각 지역과 학교 출신의 자랑스러운 호국인물에 대한 자부심을 생활 속에서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면서 “분단 극복을 위해 국민들에게 통일이 왜 대박인지를 적극적으로 알려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국영웅 알리기 프로젝트는 지역별로 고향 출신 전투영웅 추모 시설과 학교별 선배 전사자, 학도병 등 명비를 설치하고 공공기관 청사 회의실에 호국영웅 명칭을 부여하는 사업들이 포함된다. 이 관계자는 “사형 직후 실종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중국의 옛 뤼순 감옥 묘지에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이 있다”라면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지역에 지표투과레이더(GPR)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중국 측에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특히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중국 상하이와 충칭의 임시정부 청사와 매헌기념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의 원형 보존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을 전후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재개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 기록물’ 100만점의 터전 2017년 문 연다

    ‘서울 기록물’ 100만점의 터전 2017년 문 연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2017년까지 은평구 옛 질병관리본부 자리에 시정 기록물 100만여점을 보관할 ‘서울기록원’(조감도)을 건립한다고 18일 밝혔다. 기록원은 지하 2층~지상 5층, 연면적 1만 5920㎡ 규모로 지어진다. 시는 서울시청사의 설계도면부터 30년 이상 된 중요 시정 기록물, 세월호 관련 민간 기록물까지 문서와 사진, 영상 등을 이곳에 모아 관리할 계획이다. 특히 서울시와 자치구 등 개별 공공기관이 나눠 관리하는 기록물들과 청도문서고의 30년 이상 된 9만 7000여권의 자료가 한 곳에 보관되는 의미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청도문서고는 서울에서 5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어 한 달 이용객이 1~2명에 불과하지만 서울기록원이 생기면 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가까이에서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시는 기록원 건립과 관련해 설계공모를 시행, ‘도시와 사람과 자연과의 대화’를 주제로 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기록의 터’(Land Monument)를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공모에는 총 33개사가 응모해 10개사가 최종 작품을 제출했고 당선작 외에도 우수작 1개, 가작 3개 등 총 5개의 작품이 선정됐다. 당선자에게는 기록원 건립공사 설계용역에 대한 기본·실시설계권이 주어진다. 건립공사는 오는 9월 시작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원종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이원종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새해에는 어지러운 정쟁에서 벗어나 민생 경제를 돌봐 달라는 국민의 바람이 간절하다. 특히 서민 생활과 밀접한 지역발전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다. 대기업이 아무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유명 브랜드를 자랑해도 내가 먹고사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떨칠 수 없는 게 대도시 서민들이고 지방의 주민들이다. 이에 따라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올해 지역발전 정책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개발과 건설보다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 현장의 질적 개선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3층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원종 위원장은 “지방행정을 통한 40여년 공직 경험을 행복하게 잘사는 마을을 만드는 데 쏟아붓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공직사회의 변신 몸부림에 대해서도 속내를 내비쳤다.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지역경제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서 국민 욕구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가도 생활환경은 별로 바뀐 게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으면 양보다 질을 원한다. 이제 주민들의 생활 현장으로 한발 다가가서 세심하게 돌보는 것이 지역발전 정책의 근간이다. →역대 정부도 국토개발과 지역발전을 약속했는데. -정부조직에 지역 관련 위원회를 둔 것은 참여정부 때다. 이를 통해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수도권에 밀집된 154개 공공기관을 시·도별로 분산시켜 혁신·기업도시를 조성하는 등 물량 분산형 정책에 집중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전국을 호남권, 충청권, 대경(대구·경북)권 등 7개 광역경제권으로 나눠 SOC 중심의 지역경쟁력 제고에 몰두했다. 이 모두는 나름의 성과를 냈지만 이제는 주민 실생활과 직결된 방향으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올해부터 추진되는 지역발전 정책의 추진안은.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생활권 사업이 있는데 이를 ‘호프(HOPE) 프로젝트’라고 한다. H는 해피니스를 말하는데, 국민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사느냐”고 삶의 가치관을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지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O는 오퍼튜니티를 말한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기득권이든 소외계층이든, 합리적 조건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이다. P는 파트너십으로 손잡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E는 에브리웨어로 전국 어디에 살든지 동등한 삶의 질을 향유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일자리 창출부터 문화 향유에 이르기까지 6개 분야의 17개 과제가 있다. →생활권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 -내 생활 수요가 충족되는 틀에서 지역주민들 스스로 생활 권역을 정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서로 이웃인 충남 천안과 아산처럼 현재 전국에 56개의 ‘지역행복생활권’이 생겼다. 수도권에는 이와 별도로 7곳의 ‘시범생활권’이 편성된다. 서울은 너무 크고 경기권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을 동북, 동남, 서북, 서남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가까운 경기권 지자체와 교통 체계, 문화시설 등을 함께 편리하게 공유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이 63개 특징적 생활권으로 묶인 것이다. 우선 56개 지역행복생활권으로부터 독자적 추진과제를 추천받아 1457개의 추진과제를 선정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이 지원된다. →생활권 사업이 지역갈등이나 ‘님비’(지역이기주의) 현상을 해소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까. -천안과 아산은 KTX 천안아산역 역명 결정을 놓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그러나 생활권 구성을 통해 ‘복합문화정보센터’를 공동으로 조성해 이용하고, 천안에 있는 추모공원도 저렴하게 함께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남 양산과 김해는 폐기물 처리를 두고 서로 다른 고민을 해 왔다. 양산은 기존 매립시설의 반입량이 줄어 세입이 감소하고 민간 위탁비용이 증가하는데, 김해는 새 매립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생활권 사업을 통해 양산 매립시설의 공동 이용과 함께 매립가스 이용설비의 신설에 합의했다. 여기에 필요한 국비 13억 9000만원이 지원된다. 지역발전위가 결정하면 기획재정부가 적극 재정 지원을 하는 게 생활권 사업의 또 다른 효과다. 내년 예산에 총 7000억원이 반영됐다. →나머지인 두 번째 트랙이란 무엇인가. -‘특화발전 프로젝트’다. 시·도별 고유의 특징과 장점을 살려 미래성장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조밀하게 구분된 생활권 사업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전남은 전국에서 해안선이 가장 길고 섬이 많으며 갯벌이 멋진 곳이다. 그래서 해양관광 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주는 40만년 동안 지하에 저장된 용암해수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를 끌어올려 식수, 화장품, 기능성 식품 등을 만드는 것은 딴 곳에선 할 수 없는 사업이다. 다른 별도의 계획을 갖고 있는 서울시와 세종시를 제외한 15개 시·도에서 사업에 착수한다. →오랜 공직 경험과 지방행정에 대한 애정 때문에 자치단체장들에게 전하고 싶은 충고도 있을 텐데. -선거에 당선되고 나면 주민들에게 뭔가 빨리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말만 듣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결정을 하면 방향부터 잘못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나침반을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우리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면 많은 얘기를 듣고 주민의 요구를 파악하며 현재의 상황과 여건을 살펴야 한다. 그다음에 시계를 봐라. 사업 시행의 적정한 시점을 찾으라는 말이다. 하나 더하면 운용 가능한 현재의 예산과 지역 자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고 싶다. 제일 큰 자원은 머릿속에 들어 있고 이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지역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면 주민들의 표는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온다. →머릿속의 자원을 끄집어내라는 뜻은. -전남 함평이 나비축제로 성공했는데, 나비가 어디 함평에만 있는가. 잠재된 사업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것이다. 일본에도 마을이 쇠퇴하며 기차마저 끊어진 곳이 있었다. 누군가가 “산마루를 넘어가는 해가 아름다운 마을이니까 석양 콘서트를 열어 마을을 살리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렇잖아도 기울어 가는데 쓸쓸한 석양을 보며 베토벤의 운명을 공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마을 사업은 명물로 소문나며 성공했다. 기차역도 다시 문을 열었다. 저녁노을이 그곳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 지역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데, 중앙정부는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불평만 하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세월호 사고로 ‘관피아’ 논란이 일면서 공직사회가 얼어붙었다. 어떤 생각이 드나. -구미 선진국이 200~300년에 걸쳐 이룬 발전을 우리는 유례없이 반세기 만에 해냈다. 국민소득은 300배나 늘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을 하는 동안에 부작용이 나왔다. 1970년대 와우아파트 붕괴, 1990년대 성수대교 붕괴 등등. 허겁지겁하다가 필연적으로 ‘양적인 붕괴’를 가져온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질적 붕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부른 붕괴가 아닌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다. 관피아라는 말을 듣는 것은 공직사회로선 매우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다만 손가락 한두 개가 병들었다고 몸이 다 망가진 것은 아니다. 전체 공무원의 부패나 잘못으로 매도돼선 안 된다. 100여년 전에 고종 황제가 보낸 밀사는 헤이그 국제회의장에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이렇게 될 때까지 중심적 역할을 한 조직은 공직이었다고 믿는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을 했고, 군경이 나라를 지켜 냈다. 이제는 절대다수의 건전한 공무원들을 격려해 주면 좋겠다.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대한민국의 사기도 꺾인다. →관피아 탓에 행정고시를 아예 폐지하라는 말도 나오는데. -시험 제도 탓을 하면 안 된다. 옛 과거 제도는 고려 광종 때 시작돼 조선 말 갑오경장 때 폐지됐으니 1000년 가까이 유지된 것이다. 그동안에도 부작용 때문에 폐지론이 나오고 음서 제도로 보완하기도 했지만 결코 없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채용 제도의 탓만 하지 말고 합격 후 공직 운영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행시 대안으로 민간경력채용 제도가 확대되는데. -민간에서 좋은 인재를 데려오는 것은 좋은 취지이고 도입에 찬성한다. 그러나 공직 출신도 우수하다는 점을 알아 달라. 더 좋은 인재를 뽑는 것은 좋지만 배제하고 교체하는 것보다 서로 보완하고 교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정 기간 공무원이 민간에 가서 배우고 민간도 공직에 들어와 공직 가치관이나 지식을 익힌다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공직과 민간의 인사 교류를 말하는 것이다. 민간에 비해 공직에서는 사명감이 중요한 덕목이고, 이를 갖추고 있는 곳이 공직이다. 성경에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공무원연금의 개선론이 한창 논의되고 있는데, 소견은. -연금 구조의 문제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지금 내가 이러니저러니 말할 입장은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면 좋겠다. →기초단체의 지방의원 폐지 등 지방자치 제도의 개선론에 대해선. -정치권과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얼마 전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이 개선안을 발표했을 때 전화를 걸어 “핵폭탄 하나 터뜨리셨다”며 농담을 전한 적이 있다. →공직의 대선배로서 젊은 공직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공직이란 나에게 필요한 곳이라기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돼야 한다. 나 자신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나를 던지는 곳이라는 말이다. 또 “네 스스로 떳떳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과 가치관이 건전해야 하고 처신이 떳떳해야 한다. 또 대접이나 존경을 받으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먼저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실력이 결국 카리스마가 된다. 공직의 옷을 벗는 날까지 공부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아울러 내가 중심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이게 공인의 정신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이원종 위원장은… 서울시장·충북지사 역임 40여년 공직 생활 ‘행정인’ 이원종 위원장은 자신을 ‘정치인’이 아닌 ‘행정인’으로 불러 달라고 말하곤 한다. 지방선거에 두 차례 출마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40여년 공직에 몸담았던 이력에 더 많은 애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며 대학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지만 무작정 서울행 야간열차를 탔다. 장학금을 받고 국립 체신학교에 진학해 마지막 졸업생이 됐고, 이어 체신부 서기보로 공직에 입문해 꿈을 키웠다. 학업도 손을 놓지 않은 데다, 공직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아 서울시의 요직을 두루 거친 행정인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관선 서울시장과 함께 관선과 민선을 합쳐 세 차례나 충북도지사를 지냈고, 대학 총장도 역임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인내, 그리고 꺼지지 않는 열정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고 지인들은 평가한다. 이 위원장은 최근 4쇄 개정판으로 출간된 저서 ‘인생 네 멋대로 그려라’(행복에너지, 2013년)에서 “내가 하고 싶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내 멋대로 인생을 그려 가야 한다”고 말한다. 취업의 어려움 속에 현실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한다. 또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이를 넘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고 했다. ▲충북 제천(73) ▲제천고, 국립 체신학교, 성균관대 ▲한양대 석사 ▲체신부 광화문전화국 ▲서울시 기획담당관·행정과장 ▲서울시 주택·보건사회·교통·내무국장 ▲용산·성동·강동·성북·동대문구청장 ▲청와대 비서관 ▲관선 충북도지사·서울시장 ▲서원대 총장 ▲민선 충북도지사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사장
  • 소방공사 대가 억대 ‘꿀꺽’… 경조화환 납품 ‘뒷돈’

    소방공사 대가 억대 ‘꿀꺽’… 경조화환 납품 ‘뒷돈’

    정부가 공공기관과 그 주변에서 저질러진 각종 부패와 비리를 5개월 만에 모두 1643건, 6046명이나 적발했다. 이 가운데 구속자만 412명에 이른다. 정부로선 공공부문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셈이다. 국무총리 산하 부패척결추진단은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추진한 부정부패 척결 추진 계획에 따라 지난해 12월까지 검찰, 경찰과 합동조사에 나선 결과 이 같은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척결 대상으로 정한 5대 분야별 건수와 비리자는 ▲국민안전 위해 비리 583건, 1393명 ▲폐쇄적 직역 비리 200건, 427명 ▲국가재정 손실 비리 456건, 2675명 ▲반복적 민생 비리 193건, 458명 ▲공정성 훼손 비리 211건, 1093명 등이다. 이들 가운데 국고보조금, 국민안전, 특혜성 계약 등 악질적 비리에 관련된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민간업자 등 800명에 대해선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했고 72명은 소속기관에 징계를 요구했다. 특히 이들 중에는 특혜성 계약·취업 비리와 관련된 11개 공공기관의 임직원 30명이 포함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공공기관이 독과점 성격의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업 진행이 베일에 싸여 각종 부패와 비리가 만연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 부패척결추진단과 검·경이 단기간에 6000여명의 비리자를 적발한 것도 부패가 개별적, 일시적으로 저질러진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공공기관은 민간 사업자 계약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모 공기관의 팀장급 3명은 정보시스템 유지·보수를 위해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전산업체 3곳에서 모두 1억 29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입찰제안평가 때 채점 순위를 바꾸며 평가표를 재작성하는 등 과감하게 비리를 저질렀다. 전문기술 분야인 데다 사후 감독도 느슨한 공기관이라 가능했다. 모 공사 팀장은 소방설비 보수공사를 하면서 관련 업체 8곳에서 모두 1억 2500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공사 사장은 옥상 주차장 바닥 보수공사를 하면서 특정 업체에 유리한 입찰 자격을 부여할 것을 담당자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모 재단 본부장은 800여건의 행사에 필요한 경조화환을 특정 화원 3곳에서 납품받으며 1654만원을 챙겼다. 취업 비리도 흔했다. 모 기관 원장은 인사담당자를 불러 자격이 미달되는 옛 제자 3명을 연구원으로 채용할 것을 지시했고 취업 응시자들은 ‘실무 경력 5년 조항’에 대학원 이력을 포함하는 특혜를 누렸다. 모 공단 차장급 등 3명은 아들 또는 조카가 특별채용되도록 인사담당자에게 부탁했고 취업 응시자들은 성적 우수자들을 제치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운전기사, 비서실 여직원 등은 아예 공고도 없이 채용됐다. 검찰 관계자는 “공공기관 부패, 비리는 관행적이고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범죄인 줄도 모르는 임직원도 있다”며 지속적인 조사를 강조했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이슈&이슈] 청사진은 완벽한데… 뿔뿔이 흩어진 청주시청 기약 없는 ‘상봉의 날’

    [이슈&이슈] 청사진은 완벽한데… 뿔뿔이 흩어진 청주시청 기약 없는 ‘상봉의 날’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의 행정구역 통합으로 지난 7월 1일 통합 청주시가 거창한 출범식을 갖고 출발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시청사 건립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힌다. 2일 시에 따르면 현재 시청은 7곳으로 쪼개져 사무실이 분산돼 있다. 상당구 상당로에 위치한 옛 청주시청을 통합 시청사로 쓰면서 인근에 있는 민간 건물과 산하 상당구청, 청원구청을 별관으로 쓰고 있다. 여러 곳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어 상당수 직원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응석빌딩에는 농업정책과·도시재생과·지역개발과, 청석빌딩에는 주거정비과·창조도시담당관·투자유치과·일자리창출과가 세 들어 있다. 우민타워에는 문화예술과·체육교육과·건축디자인과·여성가족과·도로시설과, 금석빌딩에는 하수행정과·하수시설과가 있다. 생활안전과는 시청에서 1㎞ 정도 떨어져 있는 청원구청에 사무실을 마련해 업무를 보고 있다. 비슷한 거리에 있는 상당구청에는 친환경농산과와 원예유통과 등 7개 과가 들어가 있다. 사무실 임대료만 한 달에 3700만원이 나가고 있다. 현재 통합시청사로 사용 중인 옛 청주시청 건물은 1965년에 지어졌다. 당시 280여명이던 시청 공무원 수는 점점 늘어 현재 2800여명에 달한다. 행정의 효율성과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신청사 건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는 올해 감정평가를 거쳐 토지매입 절차를 이행하고 내년에는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2017년 하반기에 청사 건립 공사에 착수해 2020년 하반기에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부지 면적은 현재 시청을 중심으로 남측으로 청석빌딩, 북측으로 충북농협까지 각각 확장해 총 2만 8450㎡다. 연도별 추진 계획까지 꼼꼼하게 수립했지만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시는 신청사 건립비 2312억원 가운데 1560억원을 국비로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시가 정부 지원을 기대했던 것은 통합 청주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에 ‘정부가 통합시 청사 건립 등에 관해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와 지역 정치권의 요구에도 기초단체 청사 건립을 국비로 지원한 선례가 없다는 점 등을 앞세워 지원을 거부하며 맞서다 주민 간의 자율통합을 높이 평가해 통합기반조성비 명목으로 500억원을 올해 지원하기로 했다. 시는 기반 조성비 500억원을 아껴 뒀다가 청사 건립 공사가 시작되는 2017년에 본격적으로 투입한다며 들떠 있지만 나머지 사업비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대책이 없는 상태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통합과 관련된 추가적인 국비 지원은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500억원은 청사 건립 등 통합으로 인해 필요한 곳에 알아서 쓰라고 준 돈이다. 기재부는 이번 한 번으로 국비 지원을 끝낸다는 게 확고한 방침”이라면서 “추가 지원은 기대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어 “통합 청주시 특별법에 담겨 있는 ‘정부가 청사 건립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500억원은 많이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자 지역에서는 국비 확보를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청사 건립만큼은 상당 부분을 국비로 충당해야 한다며 추가 국비 확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당구청(550억원), 흥덕구청 (600억원)을 지방비로 건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청사까지 지방비로 지으면 지방재정이 거덜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비 확보가 여의치 않아 통합에 따른 재정 인센티브를 청사 건립에 활용할 경우 낙후된 옛 청원 지역과 청주 지역 간의 균형발전사업 등 통합 과정에서 약속했던 각종 상생발전 사업들의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두영 충북경제사회연구원장은 “두 지자체가 하나로 통합하면 지방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기재부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기재부 등을 설득, 정부가 마련하는 예산안에 통합 청주시를 위해 많은 국비 지원이 포함될 수 있도록 지자체, 정치권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동안 지역 정치권이 대통령을 압박하지 않는 등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지방의회들도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우택(청주상당) 새누리당 의원은 “기초단체 청사 건립을 국비로 지원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기재부가 ‘통합기반 조성비’란 구실을 만들어 어렵게 500억원을 지원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얼마 안 돼 또다시 국비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우선 500억원과 통합 인센티브로 받은 교부금, 자체 재원 등을 활용해 청사 건립을 80~90% 진행한 뒤 힘들게 공사를 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에 손을 내미는 게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학계에선 정부가 국비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시가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능성이 낮은 일에 매달리지 말고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통합시청사 위치 등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결정하는 등 청주시가 통합의 시대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중앙정부에 보여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가 통합의 성공 모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정부가 감동해 ‘큰 선물’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민병전 시 청사건립팀장은 “추가 국비 지원 요구, 지방채 발행, 돈을 빌려다 쓰는 방안 등 여러 가지가 검토되고 있다”면서 “시에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기준 면적에 맞춰 최소 규모로 청사를 건립하는 것”이라면서 “재원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준공 시기만 좀 늦춰질 뿐 청사 규모는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현장 행정] 청춘이여, 마음껏 발악하라

    [현장 행정] 청춘이여, 마음껏 발악하라

    “작업실과 녹음실, 공연장의 음향 장비나 악기 등이 잘 갖춰져 있었어요. 게다가 녹음실 대관료는 시간당 5만원인데 일반 개인이 운영하는 곳의 4분의1 수준이고요. 하하하~.” 23일 인디밴드 ‘사람또사람’의 오건훈(33)씨는 마포구 아현동 옛 문화원 자리에 둥지를 튼 음악창작시설 ‘뮤지스땅스’에 대해 “음악작업을 통해 좋은 음원도 내고 공연도 하고 싶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마포구가 마련한 22일 뮤지스땅스 개관식에서 공연을 선보인 그는 “밴드의 일원인 정소임(28)씨와 홍대 인근 클럽에서 월 7~8회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인디음악인이 설 무대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디음악인 양창근(25)씨는 “유튜브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음악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졌지만 음반을 낼 수 있는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진 것 같다”면서 “뮤지스땅스를 통해 음원을 내는 것뿐 아니라 홍보·제작까지 연계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뮤지스땅스는 영어 ‘뮤직’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에 대항해 용감히 싸웠던 프랑스 지하독립군을 뜻하는 ‘레지스땅스’의 합성어다. 사람또사람, 양창근씨처럼 인디음악인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갈 지하본부인 셈이다. 구는 지난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음악발전소와 ‘음악창작소 구축 지원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옛 마포문화원 청사와 기능을 상실한 아현지하보도를 음악창작시설로 조성했다. 지하 1, 2층 1273㎡ 공간에 모두 35억여원의 예산을 들였다. 이곳에는 음악 창작자들을 위한 5개의 개인작업실과 2개의 밴드작업실, 녹음실, 70석 규모 음악전문 공연장 등이 있다. 운영은 가수 최백호씨가 이끄는 한국음악발전소가 맡는다. 음악 교육을 비롯해 창작지원, 벼룩시장, 독립영화 상영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개관식을 기념해 22~27일 재즈, 월드뮤직, 힙합, 발라드,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젊은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뮤지스땅스 그랜드 오픈페스티벌’이 열린다. 개관식에 참석한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음악 창작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홍대 지역이 상업화되고 임대료가 오르면서 인디음악인들이 떠나고 있다”면서 “인디음악인들이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창작 의지가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개관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음악인들이 마포를 떠나지 않고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주민들에게 음악과 소통하는 열린 문화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대구 집창촌 자갈마당 일대 재개발 계획 ‘윤곽’

    대구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인 자갈마당이 폐쇄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와 대구시의 강력한 폐쇄 방침에다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중구와 함께 도시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국비 지원을 통한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 자갈마당 일대를 재개발할 방침이라고 16일 밝혔다. 시의 계획은 대구역에서 달성공원까지 1632m 구간에 70억원을 들여 현대적 감각의 ‘순종황제 어가길’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인근의 경상감영 달성길과 근대골목길, 패션한방길, 봉산문화길, 남산100년 향수길 등과 연계한 관광문화 중심지로 정비할 방침이다. 항일역사가 깃든 수창초교의 담장과 벽면을 스크린 삼아 영상예술을 연출하는 등 거리갤러리 조성도 추진 중이다. 시는 또 경찰과 검찰 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범죄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범죄 수익 몰수와 추징에 나서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도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 조정회의에서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로 구성된 자갈마당 폐쇄를 위한 시민연대는 엄연히 불법인 자갈마당의 영업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폐쇄 운동에 나섰다. 자갈마당에서 100여m 떨어진 옛 전매청 부지에 1245가구에 이르는 아파트가 최근 분양된 것도 자갈마당 생존의 변수다.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자갈마당은 예전과 같은 영업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자갈마당의 토지 소유자가 많아 대구시가 사는 데 한계가 있고 윤락여성들의 인권문제 등도 복잡하게 얽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시 관계자는 “성매매 집결지 폐쇄라는 정부 방침도 정해진 만큼 자갈마당 일대 재개발이 조기에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언론·출판의 자유

    판례의 재구성 20회에서는 음란 표현물 등도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06헌바109)을 소개한다. 해당 결정을 비롯해 언론·출판의 자유에 해당하는 범위에 대한 헌재 결정의 변화와 이에 대한 해설을 헌법 분야의 권위자인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듣는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은 면허제나 검열, 형벌 등의 형태로 종종 이를 억압해 왔다.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을 비롯해 이후 정권에서도 사전검열제 등을 만들어냈다.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헌법 제21조 제4항)고 명시하면서 제약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윤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음란 표현은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최모씨 등 4명이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음란영상 등을 배포·판매하는 등의 행위를 형사처벌하도록 정한 옛 정보통신망법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소원사건(2006헌바109)에서 재판관 만장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란물을 배포,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규정한 해당 법률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음란 표현도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는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헌재가 1998년 ‘음란 표현은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지 11년 만에 선례를 변경한 것이다. 헌재는 1998년 출판사 및 인쇄소의 등록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제청사건(95헌가16)에서 ‘음란이란 인간 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표현의 해악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거나 심대한 해악을 지닌 표현은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을 수 없다’며 ‘음란은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으로서,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크게 해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9년 헌재는 결정문에서 ‘음란 표현을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 밖에 있다고 해석하면 음란 표현에 대해서는 명확성의 원칙, 검열금지의 원칙 등에 입각한 합헌성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며 ‘법률에 의한 제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금지원칙 등 기본권 제한에 대한 헌법상의 기본원칙도 적용하기 어렵다’고 전제했다. 보호 영역 밖에 있을 경우 형사처벌이나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한 행위에 대한 합헌성 심사나 법률적 근거에 의한 제한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헌재는 이어 ‘음란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헌법상 보호마저도 부인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며 ‘음란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는 해당하되 다만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김희옥,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헌법 제21조 4항은 언론·출판 자유의 헌법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으므로, 그 한계를 벗어난 표현은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보호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며 선례 변경에 반대하는 별개 의견을 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장성 출신 지휘부에 군기 빠짝 든 안전처

    ‘23일 오전 11시 53분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인근 우정사업본부) 우정총국 전시실을 관람하던 어린이 실수로 소화가스 누출 11명 부상, 응급처치 병원 이송.’, ‘전남 영암군 2곳과 보성군, 전북 김제군 일대에 25일 AI(조류 인플루엔자) 경계경보 발령.’ 24일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발표한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 내용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군을 통솔하던 장관 후보자와 역시 군 장성 출신으로 안전처 장관 물망에까지 올랐던 차관 후보가 이끄는 조직이라 더하다. 안전처에 따르면 이성호 차관은 부처 출범 직후부터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층에 설치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매일 아침 9시 재난 상황회의를 주재한다. 분위기가 옛 안전행정부·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듯 다소 경직됐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긴장된 모습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또 상황감시 근무가 3교대에서 4교대로 전환돼 더욱 빡빡해졌다. 직원들이 야근 중 눈을 붙이기 위해 상황실 한쪽에 뒀던 간이침대는 사라졌다. 이런 변화는 안전처 지휘부가 신속한 재난 대응을 위해 빈틈없는 상황 관리를 주문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송래 중앙소방본부장은 “언제든 긴급한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실에 15분 내에 도착하겠다”며 청사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안전처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재난 때마다 끊이지 않는 늑장 대처를 최소화하고 대응 역량을 키우겠다는 출범 캐치프레이즈를 담은 변화”라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새’ 인문학을 말하다

    ‘새’ 인문학을 말하다

    새 문화사전/정민 지음/글항아리/596쪽/3만 7000원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허공을 훨훨 나는 새는 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힘찬 날갯짓을 하는 새를 보면서 비상을 꿈꾸고,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새를 대하는 방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는 ‘미물’이 아니었다. 새들의 생태에서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가 하면 인간사의 귀중한 가르침을 얻곤 했다. 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어 시문을 짓고, 새를 회화의 소재로 삼아 특별한 의미를 담기도 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등 여러 면에서 인간보다 나은 새는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설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신간 ‘새 문화사전’은 옛 문헌과 회화를 넘나들며 새의 인문학적 함의를 풀어낸 책이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가 한시를 연구하다 생긴 새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맛깔나게 갈무리했다. 저자는 한시와 설화 등 새와 관련한 옛 문헌과 한시, 설화 등 고전문학은 물론이고 조선의 산수인물화와 영모화, 민화, 중국 명청 시대의 그림 등 새가 표현된 회화작품과 도자기의 그림들을 총망라해 옛사람들에게 의미가 남달랐던 새 36종의 상징성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서설에서 “새는 우리 선인들의 삶 속에 늘 함께 있었다. 수많은 한시와 설화 속에 새들은 참으로 다양한 형상과 의미로 우리의 삶에 끼어들고 있다”면서 “새의 행동, 새의 생태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세계의 도덕적 준칙에 따라 판단되어 좋고 나쁨이 결정되었다”고 적었다. 책은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한 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희작(喜鵲)이라고 해서 기쁜 소식을 상징하는 까치다. 옛사람들은 까치와 호랑이를 한 화면에 담은 ‘까치호랑이’를 기쁜 소식을 알린다(報喜)의 뜻으로 신년에 그려 내걸었다. 옛사람들은 길러준 은공을 간직해 은혜를 갚는 까치 이야기, 새끼를 지키려 집단행동을 하는 까치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는 도리를 되새겼다. 닭은 어둠 속에 떠오르는 광명의 빛을 가장 먼저 알고 힘찬 소리로 맞이하기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邪)의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정월 초하루에 집안의 재앙을 물리쳐 달라고 거는 그림의 소재로 닭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는데 고결한 자태 때문에 선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새였다. 옛 그림에서 선비들의 거처를 그린 그림에는 마당 한편에 으레 학이 한두 마리쯤 등장한다. 길상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의미로 신년에 그려 거는 세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고한 정신을 중히 여긴 선비들은 학을 마당에 놓아 기르면 학의 무궁한 생명력과 고결함이 삶 속에 깃들 것으로 믿었다. 허균은 화가 이정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평소 꿈꾸던 거처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하면서 말미에 바위에서 이끼를 쪼고 있는 학 두 마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밤눈이 유난히 밝고 귀가 예민해서 낯선 사람의 기척이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꽥꽥대며 야단법석을 떨어 집에서 개 대신 키웠던 가금이 거위다. 주세붕의 문집 ‘의아기’에는 제 주인이 죽자 슬피 울고 제 벗이 죽자 목이 메는 거위이야기를 빌려 그만도 못한 사람들의 행태를 돌아본 내용이 실려 있다. 왕희지는 특히 거위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빛깔과 자태로 보는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새들도 다룬다. 깨끗함의 표상인 백로는 우리말로 해오라기다. 선비들을 위한 축원의 뜻으로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 옛 문헌에 비취새란 이름으로 나오는 물총새는 화려한 깃털과 예쁜 자태로 인해 그림과 시에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도 물고기를 겨냥한 물총새가 등장하고, 서거정은 화려한 비단옷에 금빛 부리를 한 물총새를 그린 시를 3수나 남겼다. 탁목(啄木)은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를 가리킨다. 한시 속에서는 철없는 존재, 쓸모있는 재목을 못 쓰게 만드는 파괴자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목은 ‘탁목’에서 애꿎은 나무의 벌레를 쪼지 말고 탐관오리들을 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비아냥한다. 기러기는 이동할 때 위아래의 차례를 지키고 한 번 정한 배필은 죽어도 바꾸지 않는다 하여 고대로부터 결혼의 폐백으로 사용해 왔다. 전국시대 위나라 양왕의 묘에서 출토된 죽간은 때가 되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줄 아는 기러기의 이동으로 땅의 기운과 인사의 변화를 짐작했던 옛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죽간에는 기러기가 제때 오지 않으면 먼 데 사람이 배반한다고 적혔다. 서양에서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재앙을 불러오는 재수 없는 새, 어미를 잡아먹는 패륜의 상징으로 여겼다. 직박구리는 춘궁기에 ‘피죽, 피죽’ 우는 소리가 피죽 달라고 보채는 백성의 울음소리 같다 하여 호로록피죽새라고 불린다. 고려 때의 최승로는 ‘호로로’ 우는 것으로 듣고 호리병 들고 술 한 잔 하자는 시를 남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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