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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안부 71년 만에 광화문 시대 닫고 세종 시대 연다

    출퇴근 관리 강화… 유연 근무도 확대 행정안전부가 1948년 내무부·총무처 출범 이후 71년째 이어온 서울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고 세종으로 이전한다. 6일 행안부에 따르면 각 부서는 설 연휴가 끝난 7일부터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와 KT&G 세종타워A 건물로 짐을 옮긴다. 2021년 말 준공될 세종3청사에 입주하기 전까지 KT&G 건물을 빌려쓴다. 7∼9일에는 전자정부국과 지방재정경제실, 행정서비스추진단 등 28개 부서가 이사한다. 14∼16일에는 지방재정경제실과 지방자치분권실, 정부혁신조직실 등 38개 부서가 옮긴다. 21일부터 장·차관실을 비롯해 기획조정실과 감사관실, 대변인실 등 35개 부서가 이전해 23일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24∼26일에는 재난안전관리본부 등 세종에 있던 23개 부서가 이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옮겨가는 ‘진짜 이사’는 이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행안부의 전신인 내무부와 총무처 등 중앙행정기관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1983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철거) 건물에서 1948년 7월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행정 기능이 커져 청사 공간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각 정부부처를 한곳에 모으기 위해 정부서울청사를 지었다. 이 부처들은 1970년부터 이 건물을 사용해 왔다. 행안부는 세종 시대가 열려도 당분간 서울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는 만큼 출퇴근 관리를 강화하고 유연 근무도 확대할 방침이다. 서울에 있는 장·차관과 수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이동식 영상회의 시스템도 구축한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주무부처인 행안부가 세종으로 이전해 행정부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앙과 지방 간 연계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문화예술 입힌 골목길… ‘동구 밖’으로 떠났던 사람들 돌아온다”

    “문화예술 입힌 골목길… ‘동구 밖’으로 떠났던 사람들 돌아온다”

    한때 광주의 중심이었던 동구는 199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과 인구 유출 등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침체가 더욱 심화됐다. 2015년 ‘인구 10만명’이 무너졌다. 지금은 9만 4000여명으로 줄었다. 광주 5개 자치구 중 규모가 가장 큰 북구(44만여명)의 4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인구 유턴’과 옛 도심 활성화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도심 곳곳이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젊음·패션의 거리인 충장로가 맞닿아 있다. 1980년 5·18 때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금남로와 무등산 등 역사·문화·생태 자산이 많다. 계림동 등 구도심 아파트 재개발과 재건축도 활발하다. 매년 가을 열리는 충장축제,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한 ‘야시장 프로젝트’ 등이 골목상권을 되살리고 있다. 초선인 임택(56) 구청장을 28일 서울신문이 만나 동구의 현안과 발전상을 들어봤다.→민선 7기 첫해 소감과 새해 포부는. -지난 7개월 동안 동구 발전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던 때와 많이 다르다. 단기적 성과도 내야 하고 행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깨가 무겁지만 서두르지 않겠다. 외적 성장보다는 주민생활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 따뜻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민생과 마을 단위의 복지,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도심 공간 조성에 박차를 가하겠다. 주민 참여와 소통, 연대 등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지역 발전의 디딤돌로 승화시켜 나가겠다.→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이웃이 있는 마을, 따뜻한 행복 동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일자리민생경제, 도시환경마을복지, 생활문화예술, 자치공동체 등 모두 5개 분야 41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청년을 위한 창업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취업과 창업을 꾀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 중장년층 재취업을 위한 일자리이모작 평생학습센터도 건립한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과 생활기반시설 확충을 통한 정주 여건 개선에 힘쓰겠다. 산수동에 마을복지거점센터 1호점을 건립하고, 모든 주민이 어울릴 수 있는 ‘소통 경로당’ 사업도 추진한다. 주민들을 위한 책마을을 조성하는 등 도시공동체 재건에도 소홀하지 않겠다. →도심재생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노후 주택 재개발 등과 별도로 기존 도심에 문화와 예술을 입혀 리모델링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골목과 전통이 서린 건축물 등은 보존하면서 생활 편의와 경제적 활동을 장려하는 방식이다. 동명동 ‘카페 거리’에 대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부터 4년 동안 국비 등 200억원을 들여 거리와 건축물 등을 새롭게 꾸민다. 동명동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부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이후 쇠락하다가 보습학원이 들어서면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을 위한 카페가 하나둘씩 생겼다. 2015년 인근에 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등록문화재인 서석초 앞길과 방치된 공·폐가 등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청년과 예술가를 위한 ‘셰어하우스’, ‘공동 공방’ 등도 운영한다. ‘역사 이야기길’과 ‘예술 골목길’ 등도 만든다. 문화와 관광, 골목과 역사를 곁들인 공간 조성이 도심재생의 핵심 과제이다.→아시아문화전당 활용 방안은. -문화전당 개관 이후 “동구가 젊어졌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주말마다 전당 주변에서 펼쳐지는 프린지페스티벌과 국내 대표적 도시 거리 축제인 충장축제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가장 광주다운 맛과 멋과 역사가 서려 있는 위치에 있다. 금남로·충장로와 맞닿아 있고 인근에 궁동 ‘예술의 거리’, 동명동 ‘카페 거리’, 대인시장, 남광주시장이 있다. 이들 재래시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야시장 프로젝트’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걸어서 30~40분이면 다 돌아본다.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남구 양림동 근대문화역사 거리와도 마주한다. 문화전당을 단순히 관광객 유치에만 활용하지 않겠다. 민선 7기 들어 문화교류협력관을 신설했다. 문화전당과 협업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현재 함께 동명동 ‘디자인 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대 음식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독립서점 등 상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골목상권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도시는 어느 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가 이끌고 가지 않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골목상권은 온몸에 피를 돌게 하는 혈관과 같다. 사람이 많이 찾아들고, 경제적 교환과 정보가 드나드는 삶의 공간이다. 급격한 신도시 개발 등으로 옛 도심 골목은 죽어가고 있다. 구도심인 동구는 더욱이 자영업자 비중이 90%에 이르고, 그중 서비스업 종사자가 90%에 육박한다.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상권은 지역경제를 이끄는 버팀목이다. 그래서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7대 상권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 등 전문가, 상인 대표, 청년 등이 참여한 전담팀(TF)을 꾸리고 경영혁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방안 등을 모색한다. 예컨대 무등산권역은 의재미술관 등을 활용해 문화와 예술을 결합하고, 충장로는 뷰티·패션 분야에 중점을 두는 등 특성화 전략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골목상권 택리지 제작, 공영주차장 확충, 상인·주민 상생협의회 구성,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제정 등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자치구 간 경계 조정이 지지부진하다. -몇 년 전 광주시가 자치구 간 경계 조정으로 북구 두암동 일부가 편입됐다. 그러나 소폭에 그쳤다. 시는 최근 다시 경계 조정에 나섰으나 진전이 없다. 시가 마련한 조정안은 자치구 간 인구 편차를 현재 23.5%(북구 대비 동구)에서 전국 광역시 평균인 18.6% 이내로 조정하고, 8개 국회의원 선거구를 유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우리 구는 인위적으로 조정해 적정 인구를 확보해야 한다. 소지역주의와 정치인들 사이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어 있는 만큼 대승적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다. ‘윈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새해에 시와 5개 자치구가 열린 마음으로 경계 조정 문제를 논의해 해답을 찾았으면 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임택 구청장은 시민단체 두루 거친 ‘민주 투사’ 학생운동권 출신인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지방의원 등을 거친 뒤 지난 6·13 선거에서 당선됐다. 광주시에서 기초·광역의원은 수차례 지냈지만 단체장은 처음이다. 전남 목포 문태고와 전남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왔다. 광주 동구의원, 광주시의원 등을 거치면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았다. 원만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지역 정계에서 ‘롱런’이 기대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참여자치21 의원포럼 대표, 사랑마루협동조합 기획이사, YMCA 좋은동네만들기 추진위 전문위원, 광주노동연구소 상임연구원 등을 지내는 등 튼튼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행복하고 따뜻한 동구 주민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이다.
  • 부산 원도심에 롯데타워 조성.. 330m 랜드마크,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시설로 활용

    부산 원도심에 롯데타워 조성.. 330m 랜드마크,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시설로 활용

    부산 원도심인 중구 광복동에 복합 관광벨트 앵커 역할을 할 롯데타워가 들어선다. 부산시는 중구 광복동 옛 시청사 터에 텅에 부산의 부산 롯데타워를 건립 한다고 28일 밝혔다. 부산시는 최근 롯데그룹에 북항재개발지역에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 랜드마크 건립을 요청했으며, 롯데그룹은 주거 시설 등 과거 사업계획을 백지화하고 ‘도심 속 수직공원’ 으로 타워를 지어 바다와 숲이 만나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내놓았다.롯데그룹은 애초 중구 옛 시청 터와 매립지 등 4만여 ㎡ 용지에 107층짜리 초고층 건물(약 510m)을 포함한 부산롯데타워를 건립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2009년 사업성을 이유로 초고층 건물에 주거 시설을 넣을 것을 요구하며 지금까지 공사를 미뤄왔다.이에 오거돈 부산시장은 취임 이후 줄곧 롯데그룹과 협의를 벌인 끝에 이번 합의안을 도출했다.롯데그룹은 부산롯데타워를 주거 시설을 완전히 뺀 복합문화관광벨트 앵커 시설로 짓기로 했다. 부산롯데타워는 총높이 380m에 건물면적 8만6054㎡로 모두 45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타워 300m 높이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건물 고층부에는 세계 최초의 공중 수목원을 만든다. 공중 수목원은 섬을 이루는 바위 숲 풀 바람 물 등으로 구성된 ‘치유의 숲 정원’과 부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관람할 수 있는 ‘도시의 기억 정원’ 등 모두 6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된다.건물 중층부에는 국내 최초 고층 스카이 워크와 암벽등반 시설 등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만든다.조저층부에는 시 홍보관과 창업지원센터,키즈 테마파크를 포함한 문화·체험 시설이 들어선다.롯데그룹은 오는 10월 착공에 들어가 2022년 완공할 예정이다.생산 유발 효과는 9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29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사기간인 4년동안 2만명 이상 고용 효과도 예상된다. 시는 부산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원도심(롯데타워)과 북항 문화벨트,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연결하는 복합문화관광벨트 구축을 추진한다. 롯데그룹은 타워에 최첨단 조명을 설치해 중국 상하이 동방명주, 일본 도쿄 스카이트리와 같은 야경 명소를 만들기로 했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의 중심상권이며 도심 관광지인 지역 여건을 고려할 때 층수에 얽매이는 ‘형식적 최고’보다는 지역에 이익을 줄 수 있고 도시 품격과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앵커시설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구속 양승태, 25일부터 검찰 소환조사

    구속 양승태, 25일부터 검찰 소환조사

    구속 수감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5일부터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최대 구속기간인 20일이 끝나기 전에 사법농단 의혹 피의자들을 모두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24일 검찰과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1시 58분쯤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구치소에 대기하던 양 전 대법원장을 수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기간을 일단 열흘이다. 법원이 허락하면 1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검찰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끝나는 다음달 12일까지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겨야 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새벽 수감된 점을 감안해 구치소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한 뒤 이르면 25일부터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범죄사실이 40개가 넘을 정도로 혐의가 방대하다. 100명 안팎의 전·현직 판사들을 소환조사하며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에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민사소송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재판거래’ ▲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불법수집 ▲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천만원 조성 등 혐의를 적용했다. 통진당 행정소송 배당조작 등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인 혐의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이 관여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의 재판청탁 의혹 역시 상고법원을 매개로 한 일종의 ‘거래’ 성격이 있는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이 최소한 보고를 받았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다음달 12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만기 이전에 100명 넘는 사법농단 의혹 연루자 가운데 사법처리 대상을 선별해 일괄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재판받을 가능성이 크다.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 구속영장이 한두 차례씩 기각된 박병대(62)ㆍ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기소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수뇌부 뜻에 따라 일선 심의관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데 적극 가담한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57)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고법부장급 판사들도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법리검토를 거쳐 양승태 사법부에서 첫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65) 전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재직 당시 통진당 재산 국고귀속 소송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이인복(63) 전 대법관의 기소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화문광장 3.7배 확대… 시청까지 지하 연결·GTX역 만든다

    광화문광장 3.7배 확대… 시청까지 지하 연결·GTX역 만든다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 없애 보행성 회복 6만㎡ 규모… 역사·시민광장으로 재탄생 이순신 장군상·세종대왕상 이전도 추진 도시鐵 5개 노선 환승 초대형 역사 건설 1040억 투입… 서울시 “연말까지 공론화”차로 한가운데 떠 있어 ‘거대한 중앙분리대’로 전락한 광화문광장이 시민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올해 설계를 끝내고 2021년 5월 완공한다.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를 흡수해 3.7배 더 커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런 내용을 담은 ‘딥 서피스(깊은 표면): 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 등 컨소시엄은 70대1 경쟁을 뚫었다. 광화문 광장이 지닌 600년의 역사성, 3·1운동부터 촛불혁명을 잇는 시민성, 지상과 지하를 이어 보행성을 회복하는 게 목표다. 먼저 지상을 비워 시민 일상에 돌려주고 지하를 연중 문화 이벤트를 선사하는 휴식, 문화, 교육, 체험 공간으로 채운다. 경복궁 앞에는 역사광장(3만 6000㎡), 역사광장 남측에는 시민광장(2만 4000㎡)이 자리한다. 역사광장 초입에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선큰공간(지하층에 채광이나 접근성이 좋도록 입체적으로 조성한 구조)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북악산의 녹음과 광화문 전경을 보며 역사광장과 만나게 한다. 지하에는 시청까지 350m를 연결해 1만㎡의 거대한 지하도시를 만든다. 광화문~시청~을지로~동대문 4㎞엔 지하보행로도 만든다. 설계공모 심사위원장인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교통섬처럼 놓인 광장의 600년 역사와 현대 여러 사건까지 담으며 대한민국 중심 공간으로 상징적 가치를 잘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광장 어디서든 막힘없이 북악산을 볼 수 있도록 이순신 장군상은 옛 삼군부 터(정부종합청사 앞),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나왔다. 박 시장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사안이라 당선작 의견대로 될 일도 아니고 심사위원들 논의로 결정됐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연말까지 공론화를 거쳐 시민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또 시청까지 이어지는 지하 공간을 활용, 광화문우체국과 프레스센터 사이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광화문 복합역사 신설을 추진한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1·2호선 시청역, GTX-A,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까지 5개 노선이 합류하는 초대형 역사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보류됐지만 역사를 되살리고 광화문~경복궁~북악산을 연결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계획은 이어진다. 일제 때 훼손된 월대(月臺·궁전 건물 앞에 놓는 넓은 단)와 의정부 터를 연내 발굴해 복원하고 월대 앞을 지켰던 해치상도 원래 위치인 광장 쪽으로 옮긴다.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 세종로공원 부지에는 클래식 콘서트홀을 새로 짓는다. 아울러 해치광장,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 등 세 곳으로 나뉜 지하공간을 한데 합치는 작업도 벌인다. 사업에는 예산 1040억원(서울시 669억원, 문화재청 371억원)이 투입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그 친인척들이 전남 목포시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의 건물을 투기목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16일 “투기꾼들은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며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부인했다. 전우용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취지의 긴 글을 게재했다. 전씨는 이 글에서 “재작년에 손혜원 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다. 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다”며 “(손 의원이)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혔다. 전씨는 또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전씨는 이어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이다”며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전우용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1999년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이 헐렸습니다. 국도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황금정(黃金町= 현재의 을지로)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황금좌(黃金座)를 1948년에 개칭한 극장이었습니다. 건축사적으로 아주 가치가 높은 건물이어서 많은 사람 - 특히 건축학자, 역사학자, 문화재전문가 - 들이 철거에 반대했으나 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철거 반대 여론이 확산할까 봐 서둘러 허물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본격화하여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흔적을 다 지워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으나, 식민지 폭정을 함께 겪은 집단 기억이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하는 이상, 그 ‘기억의 요소들’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 폭넓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종로구 계동에 있던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가 헐렸습니다. 본래 일제강점기 마포 거부 임종상이 지은 저택이었는데,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습니다. 이 건물이 헐리기 몇 해 전, 고 송남헌 선생의 안내로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집무실이 어느 방이었으며, 회의실은 어디였는지 등에 관해 들은 기억이 생생한데, 게다가 아주 튼튼하게 잘 지은 건물이어서 무너질 기미도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걸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 청사조차 보존하지 못하면서 광복 몇 주년 운운하는 게 참담했습니다. 만약 임시정부 청사가 서울에 있었다면, 진즉에 사라졌을 겁니다. 한 나라에서 역사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해 역사적 건물을 함부로 파괴하는 나라에서, 역사는 아주 하찮은 비중만을 점할 뿐입니다.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많은 건물이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대개는 국공유 건물이었습니다. 절대다수의 개인 건물주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될까 봐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습니다. 아무리 문화재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도, 소유자의 동의 없이는 등록문화재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등록된 건물이라도 소유주가 원하면 해제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제도적 맹점을 악용하는 악덕 건물주도 있었습니다. 재개발 지구 내에 오래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해서 지정되면, 재개발 사업 전체가 중단됩니다. 소유자는 조합 측과 협상해서 건물값을 ‘아주 비싸게’ 받기로 약속한 다음에 등록해제를 요구합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알박기’ 용도로 변질되는 거죠. 이런 사례도 있었으나, 일단 자기 소유 건물이 등록문화재가 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등록을 회피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습니다. 재작년에 손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었죠. 이번에 문제가 된 건물에 대해서도 그때 직접 얘기를 들었습니다.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 등등.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겁니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일에는 입 다물고 있는 게 현명한 선택이란 걸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지역의 역사 경관을 살려 보겠다고 제 돈 들여 애쓰는 사람조차 변호하지 못하면 이 나라의 역사 경관이 건설업자들과 투기꾼들에 의해 소멸해 버리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압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입니다.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들은 문화재 가치가 있는 동산만 사지, 부동산은 안 삽니다. 그래서 도시 재생 사업 지구 내 문화재 가치가 있는 건물은 공공이 사들여 민간에 임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등록문화재 내부와 외관의 1/4은 현상변경 신고 없이 임의로 개조할 수 있습니다. 용도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문화재청이 권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용해야 건물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SBS는 손의원이 해당 건물에 ‘문화재 가� ?� 있다는 걸 알고 자기 조카 명의로 사들였으며, 건물을 함부로 개조하여 오히려 건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와 그에 대한 건물주들의 대응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빡 속을 만한 내용입니다. SBS 취재진이 등록문화재 제도와 도시재생사업, 부동산 투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몰랐다면 너무 불성실하게 취재한 셈이고, 알고도 이랬다면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 ps. 저는 오래된 필지를 뭉개고 건물들을 헐어내는 것보다는 그걸 보존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어야, 도시의 역사가 보존된다고 봅니다. 물론 토건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ps.2.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 건물의 소유주는 모 재벌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 기념비적 건물을 헐었을 때, 이 행위를 비난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귀중한 역사 유산을 헐어버리는 행위에는 침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를 비난하는 언론이 다수인 한, 한국은 ‘역사와 단절된 땅’이 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100초 인터뷰] “위안부 만행 사죄하라” 일본서 1인 시위 나선 서영근씨

    [100초 인터뷰] “위안부 만행 사죄하라” 일본서 1인 시위 나선 서영근씨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앞에 진정으로 사죄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과 일본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며 일본 현지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여성의 남편인 서영근(44)씨다. 그는 자신을 ‘솔란 아빠’라고 소개했다. 첫째 예솔(18, 고림고3)이와 둘째 예란(12, 용천중1)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는 약속이자 ‘다짐’”이 담겨 있다. 지난 10일 서영근씨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서 만났다. 그의 1인 시위는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 그는 3차례 일본을 찾았다. 도쿄에 있는 일본 국회의사당과 도쿄도청사, 도쿄대학, 각 방송국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또 피켓을 단 자전거를 타고 오사카 시내를 달리며 시위를 벌였다.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서씨는 “간단하다. ‘그들이 잘못한 일’이다. 일본에 직접 가서 ‘사죄하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서씨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김용한 영화감독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제작 소식을 듣고 가진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 듣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위안부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가했다. “추운 날 수요집회에 참가한 아이들을 보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늦었지만 두 딸을 가진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그때부터 1인 시위를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서 1인 시위를 하려다 보니 두려움이 앞섰다. 서씨는 “만일의 경우, 일본 극우세력의 공격에 대비해 복대를 두 개나 차고 갔다”며 긴장했던 심경을 밝혔다. 당시 그는 가족에게조차 비밀로 했다. “처음에 도쿄와 오사카를 갈 때, 솔직히 사고를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용기를 냈다”며 “무엇보다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그의 가족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에는 가족 모두 위안부 소녀상이 새겨진 옷을 입고 일본을 찾았다. 서씨의 다양한 시위 방식 중 하나다. 그는 “가족에게 소녀상을 옷에 새겨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가족 모두 흔쾌히 승낙하면서 멋진 추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됐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시위를 하면서 우리 대사관의 냉랭한 태도에 실망감을 느꼈다. 그는 “도쿄대학과 도쿄도청사에서 시위를 마친 날, 지친 상태로 주일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물을 좀 얻어 마시고 화장실을 쓸까 해서였다. 그런데 경비를 보시는 분이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라며 그를 통제했다. 사실상 문전박대다. 이에 서씨는 “애초에 대사관 앞에서 시위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사관 건너편에서 피켓을 들었다. 시위 시작 1시간 후 대사관 직원이 나왔고, 그가 건넨 첫 질문은 ‘왜 왔느냐’, ‘왜 피켓 시위를 하느냐’였다”며 “‘위협받은 적은 없는지’, 혹은 ‘뭘 도와주면 되는지’ 같은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일본 경찰 눈치를 보는 듯한 직원의 모습이 굉장히 마음 아팠다”고 덧붙였다. 이어 서씨는 대사관 직원들을 향해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영화에서는 대사관에서 숨겨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봤다. 힘들게 우리 대사관을 찾아갔는데, 어떻게 물 한 모금 안주고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물론 담당자 분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음부터는 조금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물 한 잔 정도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며 부탁의 말을 보탰다.다행히 일본에서의 시위 중 서씨에게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서씨는 “피켓 시위를 할 때,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국 대학생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거나 음료수를 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다. 또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힘이 난다”며 감사를 전했다. 무엇보다 서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너무 늦게 관심을 갖게 됐고, 그분들의 아픔을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이제 살아계신 할머니들이 몇 분 남지 않았다”며 “(살아계실 때) 일본의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미약하지만 열심히 힘을 보탤 것이고, 그때까지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살아 계시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각오와 소망을 표했다. 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2월 5일과 14일에는 김순옥·이귀녀 할머니가 별세했다. 두 분의 할머니를 포함해 지난해에만 8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단 25명뿐이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들어갈 때처럼 ‘묵묵부답’…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조사 14시간만에 귀가

    들어갈 때처럼 ‘묵묵부답’…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조사 14시간만에 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첫날 조사만 11시간‘징용소송 개입’·‘블랙리스트’ 혐의 부인이르면 오는 13일 추가 소환조사 전망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첫 검찰 조사를 끝마쳤다. 검찰 조사가 시작된 지 14시간 만이다. 양 전 원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징용소송 개입 및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을 수차례 더 소환해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11일 오후 11시 55분 검찰 조서 열람을 마친 양 전 원장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변호인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왔다. 양 전 원장은 ‘오전에 편견과 선입견을 말씀하셨는데 검찰 수사가 그랬다고 보나’, ‘김앤장과 강제징용 재판 논의했다는 문건 나왔는데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있나’, ‘오해가 있다면 풀겠다는데 충분히 설명하셨는지’, ‘후배 법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이날 오전 처음 청사에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청사 정문을 나와 차에 타기까지 고작 12초. 차에 타기 직전, 양 전 원장은 플래시를 터뜨리는 취재 카메라를 향해 잠깐 얼굴을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사법농단 수사를 진행해온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8시 40분까지 11시간 넘게 신문을 진행했다. 이후 조서 열람까지 3시간이 더 걸렸다. 지난해 3월 다스 횡령 및 삼성 뇌물수수 의혹으로 같은 청에 소환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출석 21시간 만에 귀가한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공범 관계이자 법원행정처 하급자였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조사를 받았던 서울중앙지검 1522호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곳에서 검찰은 양 전 원장을 상대로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2가지 의혹을 중심으로 캐물었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부담으로 느끼는 징용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거나 선고를 미루도록 지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나아가 양 전 원장이 전범기업 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한모 변호사를 직접 만나고, 상고심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기각 논리를 주문한 정황도 문건 및 관계자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또한 양 전 원장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정황도 드러났다. 이날 직접 신문은 각각 관련 수사를 도맡아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소속 박주성·단성한 부부장검사가 진행했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2기인 양 전 원장보다 30기수 아래다. 이날 신문을 총괄한 신봉수 특수1부 부장검사도 조사실을 오가며 조사 방향을 지휘했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이날 조사에서 대부분 혐의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이라 모른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묵비권은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앞서 양 전 원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신문은 주로 양 전 원장이 직접 대답하고, 함께 조사실에 입회한 최정숙 변호사 등 변호인들이 보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진행 상황을 검토하고 양 전 원장을 수차례 더 부를 방침이다. 양 전 원장에게 주어진 의혹이 방대해 하루 이틀 안에 조사가 마무리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은 이날 조사한 내용 외에도 ▲국정원 댓글 사건·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 행정소송 등 기타 재판거래 ▲헌법재판소 동향 파악 지시 ▲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하루 휴식 시간을 가지고 이르면 오는 13일부터 양 전 원장을 다시 부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 전 원장에 대한 조사를 완전히 마친 뒤 구속영장 청구 검토에 들어갈 계획이다. 검찰은 지난 6월부터 시작해 양 전 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를 다수 확보해 혐의 소명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법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선 양 전 원장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명단에 직접 ‘v’자 표기를 해 인사상 불이익 부여 여부를 선별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미 구속기소된 점을 고려할 때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지시자인 양 전 원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직 사법부 수장인데다 비슷한 혐의를 받는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이 이미 불발됐기 때문에 실제로 영장이 발부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양승태 소환]연수원 30년 후배가 양 전 대법원장 첫 신문… ‘박영수 특검팀’ 출신 박주성 검사

    [양승태 소환]연수원 30년 후배가 양 전 대법원장 첫 신문… ‘박영수 특검팀’ 출신 박주성 검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첫 신문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된 경험이 있는 박주성(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검사가 진행했다.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에 본격 돌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에 앞서 중앙지검 청사 15층에서 한동훈(연수원 27기) 3차장검사와 잠깐 티타임을 가진 뒤 조사실에 들어갔다. 양 전 원장 측 방어진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연수원 23기 동기인 최정숙 변호사를 중심으로 구축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신문에 박 부부장검사와 함께 같은 특수1부 소속인 단성한(32기) 부부장검사도 번갈아 투입한다. 이들 부부장검사는 양 전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30기 아래다. 단 부부장검사는 2013년 윤 지검장과 함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바 있다. 이날 실무 총괄을 맡은 신봉수(29기) 특수1부 부장검사도 조사실을 오가며 조사 방향을 지휘한다. 검찰은 원칙적으로는 자정 이전에 첫 조사를 끝마칠 방침이다. 이날 조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거래를 한 의혹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검찰은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수사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에 부담이 되던 강제징용 소송을 미루도록 지시한 정황을 파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 변호사와 직접 대면하는 한편, 강제징용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계획을 외교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의혹을 받는다. 나아가 상고심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으로 하여금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정황도 파악됐다. 이 외에도 검찰은 진행 상황에 따라 ▲국정원 댓글 사건·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 행정소송 등 기타 재판거래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사찰 ▲헌법재판소 동향 파악 지시 ▲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차례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날 예정된 출석 시간보다 30분 이른 오전 8시 59분쯤 대법원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양 전 대법원장은 포토라인에 서서 “무엇보다 먼저 재임기간 중에 일어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 일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서 참담한 마음이다”며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고,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원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다”며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고 제가 안고 가겠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기자회견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법원에서 기자회견 한다기 보다는 제 마음은 대법원에서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하는 과정에서 법원을 한 번 들렸다가 가고싶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놀이터 회견’에서 부당한 인사개입이나 재판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이 여전히 똑같냐는 질문에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후 차량에 탑승해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동한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소송에 대해 사법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나’, ‘피의자로서 한 말씀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NHK 기자 ‘한일 관계’ 질문에 문 대통령 “일본, 역사 문제에 겸허해야”

    NHK 기자 ‘한일 관계’ 질문에 문 대통령 “일본, 역사 문제에 겸허해야”

    일본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한국 자산에 대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압류 신청을 국내 법원이 승인하자 일본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에 정부 간 협의를 공식 요청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부 판결에 정부는 관여할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가 좀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 NHK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먼저 한·일 역사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과거 한국과 일본 간에는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다. 35년가량 지속된 역사다. 그 역사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 (1965년) 한일 기본협정을 체결했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문제들이 아직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것은 한국 정부가 만들어 낸 문제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앞서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이 회사의 한국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다고 지난해 12월 8일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말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에 일본 외무성은 전날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 청사로 불러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판결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한 뒤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한 정부 간 협의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저는 일본 정부가 좀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양국이 지혜를 모아서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별개로 해결하고, 미래지향적 관계가 훼손되지 않게 하자고 누누이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 문제를 정치쟁점화해서 논란거리로 만들고 확산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또 “삼권분립에 의해 사법부 판결에 정부는 관여할 수 없다.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라면서 “일본이 한국 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표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는 입장을 가져야 하고, 일본도 불만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일 간에 어떻게 지혜를 모아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한국 사법부가 한일 기본협정으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피해자의 실질적 고통을 치유해주는 데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적 쟁점으로 삼아 공방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 관계로 나가는 데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 효력 발생…日 “청구권협정 따른 협의 요청”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 효력 발생…日 “청구권협정 따른 협의 요청”

    日, 이수훈 주일 대사 불러 유감 표명 외교 해결 시도 후 제3국 참여 중재위 ICJ 제소도 검토… 모두 韓이 응해야 가능 정부 “면밀히 검토 후 대응방안 마련”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이 9일 압류됐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등에 따르면 포스코와 신일철주금이 합작한 PNR는 이날 오후 늦게 강제징용 피해자가 신청한 회사 주식 압류 신청 서류를 받았다. 압류명령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신일철주금은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PNR 주식 8만 1075주(4억여원)의 매매, 양도 등 처분 권리를 잃었다. 이 회사는 신일철주금이 2006년 설립을 제안해 2008년 법인을 설립했고 2009년 11월에 공장을 건립했다. 자본금은 390억 5000만원으로 포스코가 70%, 신일철주금이 30%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정부 간 협의를 공식 요청했다.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오후 4시 30분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 청사로 불러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판결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한 뒤 한·일 청구권협정에 기초한 정부 간 협의를 요청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은 협정의 해석 및 집행에 관련해 분쟁이 발생하면 양국 간 협의를 열어 외교상 경로를 통한 해결을 우선 시도하도록 돼 있다. 그랬는데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제3국 위원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에 회부하게 돼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을 제소하는 방안도 일본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두 다 우리나라가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이 대사는 아키바 차관과 10여분간 면담한 뒤 외무성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한·일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니 이럴 때일수록 두 나라가 서로 관리를 잘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주재로 관계각료(장관)회의를 열고 한국 법원의 자산압류 승인과 관련해 한국에 협의를 요청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한국과의 관계 및 일본 기업의 경제활동 보호를 고려한 전반적인 대응책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관방장관은 참석한 각료들에게 “정부가 하나가 돼 관계 성청(부처)이 연대해 대응하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청구권협정상 양자 협의 요청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실질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점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현 상황에서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야기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며, 따라서 냉정하고 신중하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SNS 타고 퍼지는 한류…전세계로 확장되는 문화영토

    SNS 타고 퍼지는 한류…전세계로 확장되는 문화영토

    “한류는 서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물결’이라기보다 점점 더 확장하고 있는 ‘물줄기’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한류축제 ‘KCON’을 본 뒤 쓴 기사의 한 대목이다.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이 한국 영화를 즐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서양에 비해 한국의 문화는 짧은 기간 급속히 성장했다. 고속성장을 가리키는 ‘한강의 기적´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이른바 ‘한류의 기적’을 일군 셈이다. 전 세계에 통하는 거대한 흐름이 되기까지, 지난 100년은 어땠을까. 또 앞으로 100년 물결은 어떻게 흐를까. ●지난 100년, 경제성장 따라 문화도 성장 ‘문화’라는 단어는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는 것이 관련 분야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1884년 한성순보 ´아세아주 총론´에 “로마의 문화는 그리스에서 취하였고 그리스의 문화는 아시아의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취하였다”라는 표현이 처음 쓰였다. 문화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때는 100년 전인 3·1 만세 운동 이후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외국 사상이 들어오면서 교육진흥운동, 문맹퇴치를 비롯한 국어운동이 전개됐다.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미술, 체육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문화 운동에 눈 떴다. 한데 일제가 이를 막으려 ‘문화’라는 단어를 거론한 것이 흥미롭다. 1919년 8월 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는 이전 총독들의 통치 방식과 다른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것이 이른바 ‘문화정치(통치)’다. 광복 이후 문화의 흐름은 신문·방송·잡지에서 꽃을 피웠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할 무렵, 한국어로 발행되는 일간지는 현 서울신문의 전신인 ‘매일신보’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해 말까지 무려 40종 남짓한 신문이 새로 창간됐다. 이해 8월 26일엔 옛 소련군이 38도선 이북의 방송중계 전용선로를 끊어버리면서 남북한의 방송은 단절됐고,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9월 15일자로 경성중앙방송 등 남한의 방송국을 모두 접수했다.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잡지의 흥행을 불렀다. 휴전 직후 피란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창간한 ‘학원’을 비롯한 잡지들이 서울로 발행지를 옮겨가며 잡지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문화 예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문화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등 ‘문화입법’이 활발해졌다. 특히 경제 성장을 타고 문화 정책이 손질되며 기틀이 잡혔다. 1960년 국립극장 설치법을 시작으로 1961년 공연법, 1962년 문화보호법, 1965년 지방문화사업조성법, 1966년 영화법, 1967년 음반에 관한 법률 등이 줄줄이 제정됐다. 1968년 7월에는 문화공보부가 발족하며 우리 정부에도 ‘문화’를 담당하는 부처가 탄생했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는 네 차례에 걸친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과를 거두며 국민총생산 성장세가 연평균 9.3%, 수출은 연평균 39.9%씩 확대되던 시기다. 1978년엔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성장으로 대중의 문화 욕구가 커지면서 대중문화가 꽃을 피웠다. 상업 라디오와 TV 방송국이 개국하고 주간지가 널리 보급됐다. ‘대중문화’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이때다. 경제 사정이 좋아지자 레저 문화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배낭여행’이란 단어도 생겼다. ●이후 100년… 신흥 시장 열고 기존 시장 지켜야 우리 문화·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한류’는 한국 문화의 향후 100년을 내다보기 위한 주요한 키워드로 꼽힌다. 한국 문화의 외국 진출은 1986년 아시아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맞춰 국공립 예술단체들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해외 무대에 연이어 올랐고 이후 민간 차원의 교류로 이어졌다. 이런 교류의 역사가 ‘상품’으로 결실을 본 대표적인 사례는 ‘난타’였다. 1999년 한국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소개된 ‘난타’는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1년 6개월간 장기공연되는 등 해외 진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됐다. ‘한류’는 1999년 중국 베이징의 한 방송기획사가 한국 가요의 홍보용 CD에 붙인 중국어 타이틀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과 1998년 한국 TV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는데, 한국 인기 가수들의 현지 공연이 성공을 거두면서 현지 신문들이 한국의 대중가요, TV 드라마, 영화, 패션을 포함한 대중문화를 ‘한류’로 부르면서 일반명사가 됐다. KBS가 2002년 방영한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 한류 열풍을 부른 기폭제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한한령, 과거사 문제로 인한 일본의 혐한론 등 악조건 속에서도 한류의 흐름은 여전히 계속됐다. 중국의 한류가 한한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본과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의 한류는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빌보드 1위와 유엔 연설 등 지난해 문화 뉴스의 중심에 섰던 방탄소년단(BTS)은 이제 한류가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 문화산업의 메인스트림인 북미권에서도 의미 있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거와 달리 한류가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음악 콘텐츠는 이제 음반이 아닌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유튜브를 통해 유통된다.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도 영상 콘텐츠 소비 방식을 새로이 만들고 있다. 누구든 플랫폼만 있으면 문화를 유통할 수 있고,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를 재공유한다. 세계가 주목한 우리의 대중문화는 이러한 플랫폼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불어 꾸준히 증가하는 세계 각국의 한류 커뮤니티들은 언제든지 우리 콘텐츠를 즐길 준비가 돼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지구촌 한류현황 보고서’의 한류 커뮤니티 현황을 보자. 2014~2016년 매해 200여개가 새롭게 생겼고 지난해부터는 한류의 확장세가 약했던 북미와 유럽지역에서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까지 감소세였던 일본의 한류 커뮤니티도 다시 늘고 있어 트와이스와 BTS 등에 주목하는 일본 청년층의 호감을 확인할 수 있다. 음반 구매와 공연 관람에 익숙한 일본 젊은층이 한국 아이돌 관련 굿즈(상품)를 구매하거나 공연장을 찾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다. BTS의 성공 역시 전 세계 한류 커뮤니티의 증가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장은 한국문화에 대한 접촉도가 크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한류를 받아들일 나라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한 때다. 예컨대 인구가 많고, 모바일 이용도가 높은 인도네시아는 향후 한류의 확산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로 지목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연구팀의 남상현 박사는 “정책적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신흥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기업은 기존 시장에 집중하는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②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하이는 명나라 말기부터 성장해 1880년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상업 도시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목받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는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를 설치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외국인에게도 건국이념인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보장해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태동했다.●“첫 번째 ‘임정 터’ 못 찾아…대한민국의 숙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찾아간 상하이 최대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일대. 사람과 차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전 세계 패션 브랜드가 건물마다 즐비했다. ‘자본주의 최전선’인 이곳이 정말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고층빌딩이 가득 찬 서금이로(옛 김신부로) 지역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 어딘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이 작가는 “최근 중국인 학자가 첫 번째 임정 터를 찾았다고 간략히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919년 3월 17일 러시아 고려인들이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선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때마침 서울에서도 임정 수립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달 26일 프랑스 조계의 한 예배당에 모였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의견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지도자들의 뜻을 들어 보고 정하자”는 반론이 맞섰다. 하지만 3·1운동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상하이로 모여들고 있어 정부 수립을 더는 늦추기 어려웠다. 앞선 노령정부에다가 서울에 임정(한성정부)이 또 생기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4월 10일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여운형(1886~1947)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시정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따오고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여운형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상하이정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음날 이들은 국무총리에 이승만(1875~1965)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1878~1938), 재무 최재형(1860~1920) 등 6부 총장(장관)을 임명했다. 우리가 국가기념일로 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은 여기서 유래됐다.●왕 아닌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 첫 공식화 그렇다면 두 번째 임정은 왜 상하이에 세워졌을까.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년)를 보면 여기가 왜 임정의 적지인지 잘 묘사돼 있다. “중일전쟁(1937~1945) 전 상하이는 서양 문물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와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조계지로 분할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계지가 시설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망명객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이 다른 조계지에 숨으면 곧 붙들려 갔지만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안전했다. 설사 끌려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항의하면 다시 풀려나올 수 있었다.”(1946년 2월 21일) 상하이정부는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령·한성정부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하고 한국사 최초로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것이다.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운동 전까지 이어져 오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이다. 다만 상하이정부가 추구한 ‘외교독립론’은 훗날 임정이 끊임없이 갈등과 내분에 빠지는 단초가 됐다. 외교적 방법론은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적 역량을 반영한 전략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믿는 무장투쟁론자들을 설득하진 못했다.●쑨원의 부인 추모 능원에 신규식 등 만국공묘 상하이지하철 10호선 쑹위안루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말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쑨원(1866~1925)의 두 번째 부인이자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1893~1981)을 추모하는 곳이다. 공원 한쪽에 외국인 묘지를 모아 놓은 ‘만국공묘’가 나타났다. 묘비를 하나씩 더듬다가 낯선 한국인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획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계자’로 인정받는 신규식(1880~1922)이었다. 나라를 위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한쪽 눈을 가린 채 카이저 수염을 기른 외모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초기 임정을 상하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채호(1880~1936), 신석우와 함께 ‘산동삼재’(산동신씨 가문의 3대 수재)로 불렸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첫 번째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눈 시력을 잃었다. 지인들이 ‘애꾸눈’이라고 놀리자 신규식은 스스로를 ‘예관’(睨觀·한쪽 눈으로 흘겨봄)으로 불렀다.●신해혁명 경험삼아 민주공화정 개념 전파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집에서 독을 마셨다. 때마침 대종교 종사 나철(1863~1916)의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구조됐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의 공화주의 노력을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쑨원과 천두슈(1879~1942), 천치메이(1878~1916) 등 혁명가 그룹과 친분을 맺었다. 쑨원이 이끄는 ‘중국동맹회’(1905~1912·중국 국민당의 전신)에 가입하고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도 직접 참여했다. 1912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자 ‘동제사’를 조직했다. 총재 박은식(1859~1925)을 비롯해 김규식(1881~1950), 신채호, 조소앙(1887~1958) 등 동제사 출신은 후일 임정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7년 7월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임정이 상하이에 자리잡은 건 신규식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가 바로 신규식의 조카”라며 “신규식은 자신의 신해혁명 경험을 독립지사들에게 소개해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민주공화정 개념을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웠다. 신규식은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쑨원은 혁명동지 신규식을 극진히 예우했다. 호법정부의 정치·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제적으로 정식 주권기구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임정이 국민당의 후원을 받아 다소나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해외서 문전박대 뒤 임정 외교독립론 도마에 1922년 대통령 이승만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워싱턴회의에 갔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해 쫓겨났다. 임정의 외교독립론이 논란이 됐다. 신규식은 이런 임정의 처지를 비관해 25일간 단식하다가 같은 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1921년 쑨원을 만났을 때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만세’를 외친 것을 두고 사대적 자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누구보다 중시하던 신규식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그런 굴욕을 참아내며 쑨원을 대한 건 오로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자전거도시 여수’…자전거 이용 활성화 대통령상

    ‘자전거도시 여수’…자전거 이용 활성화 대통령상

    전남 여수시가 전국에서 자전거 타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인정받았다. 여수시는 27일 행정안전부의 2018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우수기관 평가에서 우수기관에 선정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표창장을 받았다. 행안부는 자전거 활성화와 자전거 안전정책을 모범적으로 추진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를 매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시는 자전거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노력했다는 평을 받았다. 여수의 자전거도로는 12월 현재 202.08㎞다.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따라 펼쳐진 자전거길과 옛 기찻길에 조성된 자전거길 등 특색 있는 자전거도로도 21.34㎞에 이른다. 시는 공영자전거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여수 공영자전거 ‘여수랑’은 총 345대로 32개 무인대여소에서 간편하게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 2011년 첫 운영 이후 이용건수는 급격히 늘어 올해는 10만여건을 넘어섰다.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도 자전거를 빌릴 수 있도록 하고 무인대여소에 비가림막을 설치하는 등 이용편의도 높이고 있다. 자전거 안전모 이용 의무화에 맞춰 전체 자전거에 안전모도 비치했다. 출퇴근, 등하교 등 도심 속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자전거 횡단도로도 56곳 설치했다. 자전거횡단도는 횡단보도를 지나는 시민들과 자전거 간 사고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다.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보험 가입과 자전거 이용 활성화 홍보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역 자전거동호회도 자전거 활성화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동호회는 시와 함께 시민 대상 자전거 교육을 하는 한편 자전거 캠페인도 매월 실시하고 있다. 시는 내년부터는 전문가, 시의원, 시민 등이 참여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위원회를 구성해 자전거 관련 사업들을 심의하고, 시민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자전거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안전시설도 갖춰지면서 자전거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자전거 명품도시 조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선시공 후분양, 소비자 선택권 높인 ‘테라팰리스’ 분양 관심

    선시공 후분양, 소비자 선택권 높인 ‘테라팰리스’ 분양 관심

    ‘테라팰리스’는 지하 2층~지상 17층, 전용면적 52~84㎡, 2개 동, 총 78세대규모로 조성된다. 가구 수가 적은데다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중소형 평형으로만 이뤄져 있고 주변 환경이 입지, 교통, 교육, 생활환경 등이 고루 잘 갖춰져 있어 조기 분양이 완료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지가 위치한 자양동은 도심권 직장인, 대학생, 자영업 종사자 등 풍부한 배후수요를 자랑하는 지역으로 지하철 건대입구역(2, 7호선), 구의역(2호선)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멀티 교통망을 갖췄다. 여기에 버스 노선이 집중되는 지역으로 도심 어느 지역으로나 이동이 수월하다. 차량으로도 영동대교, 잠실대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등 강변북로를 통해 서울 어느 지역이든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다 생활인프라도 우수하다. 단지에서 도보 10분거리에 더블역세권과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스타시티몰, 이마트, 로데오거리, 문화예술회관 등이 자리잡고 있어 쇼핑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데다 문화예술회관, 건국대학교병원, 어린이대공원, 뚝섬한강공원도 인접해 있어 건강하고 힐링되는 주거 생활이 가능하다. 학군도 주목할 만 하다. 단지 바로 뒤에는 사립 명문학교인 건국대학교를 비롯해 인근에 화양초, 자양초∙중∙고, 동자초, 구의초∙중∙고, 광양중∙고, 건대부중∙고, 세종대 등 많은 학교들이 밀집해 있다. 명문 학교들이 모여있는 만큼 학원가도 잘 형성돼 있다. 광진구는 다양한 개발 호재를 앞두고 있다. 먼저 서울시 도심권 내 최대 개발구역 중 하나인 광진구 복합업무단지의 개발이 내년 중 착공 예정이다. 광진구 내에 위치한 구의·자양 재정비촉진구역 개발을 통해 옛 동부지방법원 터를 포함한 구의동 246번지와 자양동 680번지 일대 17만7333㎡의 노후 시가지를 지상 28층짜리 공공청사와 보건소·구의회·오피스·호텔·판매시설이 어우러진 복합업무단지로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도 진행된다. 이 사업은 서울 동북권 광역교통의 중심지이면서도 시설 노후와 교통혼잡 등으로 불편이 많았던 동서울터미널을 터미널·호텔·업무·관광·문화시설 등이 결합된 32층 규모의 복합타운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어 지하철 7호선 중곡역 인근인 중곡동 국립서울병원 부지는 종합의료복합단지로 개발된다. 우선 1단계로 종합의료시설인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2016년 완공된 데 이어, 현재 2단계 개발사업이 내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2단계 사업은 지하 2층∼지상 20층, 연면적 5만2,221㎡의 규모로 업무시설과 판매시설 등 사회서비스 시설과 함께 시민 공유 공간 2곳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인근 성동구 성수동 레미콘부지는 대규모 공원으로 꾸며짐에 따라 광진구는 앞으로 업무와 상업, 문화, 주거가 새로이 어우러진 고급 복합주거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테라팰리스’의 분양홍보관 및 현장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해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恨 서린 서대문형무소, 달동네 각박한 삶… 그해 겨울은 스산했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3회 서대문(안산 아랫동네)편이 지난 15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영천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대문역 8번 출구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대문 통술집~석교교회~영천시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어 서대문역사공원에서 서울미래유산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해설을 통해 엄혹했던 경성교도소(서대문형무소) 시절 행해졌던 옥살이와 옥바라지의 고통을 되새겼다. 자락길을 따라 봉수대에 올라 안산 아랫동네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을 내려다봤다.서대문(돈의문)은 행정적으로 한성부 서부 반석방에 속하는 성 밖 십리지역이다. 그러나 서대문은 행정지리학적으로 사대문 안 새문안과 진배없는 특수지역이기도 했다. 서울~개성~평양~의주를 오가는 조선 제1대로인 의주대로와 영은문·모화관 그리고 경기감영의 존재가 조선 수도 한성부 서대문 도시 공간의 핵심 코드이다. 서대문은 1915년 서대문~청량리 간 전차궤도 부설로 말미암아 강제 철거될 때까지 종각~남대문 간 남북대로와 함께 동대문~서대문 간 동서대로의 종착점이었다. 의주로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조선 초(1393년)부터 수원으로 옮겨간 1896년까지 경기감영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 1번 국도는 중국 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연행로(燕行路) 혹은 사행로(使行路)라는 별칭이 따랐다. 조선 제일의 무역로이기도 했다.영천시장 앞 석교교회 앞은 말 그대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모두 6개의 다리 중 북쪽에서 첫 번째 다리가 석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1967년 복개 이전까지 서대문~홍제동~고양~파주~장단~개성~의주를 잇는 의주로를 끼고 무악천이 철철 흘렀다. 다리의 남쪽은 교남동, 북쪽은 교북동이었다. 무악천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욱천(旭川)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으면서 본명을 잃었고 지금은 만초천이라고 불린다. 기봉·기산·봉우재·봉화뚝·모악산·무악재 같은 다채로운 이름을 가졌던 무악산 또한 길마재의 한자표기인 안산(鞍山)으로 개명됐다. 무악은 동봉과 서봉 두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봉우리 사이가 움푹하므로 길마(소에 짐을 실을 때 그 등에 얹는 기구)와 같다 해 길마재라고 불렸다. 안산이란 말의 안장같이 생긴 산이란 뜻이다. 무악(毋岳)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는 풍수지리상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북한산)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어서 이를 달래려고 ‘어미의 산’이란 뜻에서 모악(母岳)이라고 칭했던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무악이라는 신령스런 지명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고 나라를 잃은 탓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어쨌거나 안산에 오르려면 지하철 무악재역에서 내려야 하는 게 우리의 지명현실이다.무악과 인왕산은 북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방어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唐)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라면서 외침 때마다 지키지도 못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남한산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는 왕조를 비판했다. 한성부 서부 반송방은 오늘의 인천처럼 서울을 드나드는 제일 관문이었다. 반송방은 고려 남경 때부터 소반처럼 생긴 반송(盤松)이 많아서 붙은 지명이다. 서지(西池)라는 학교운동장만 한 큰 연못이 지금의 금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이를 반송지, 반송정, 천연정이라고도 지칭했다. 정조는 국도팔영(國都八詠), 서거정은 한성십경(漢城十景)에 속하는 명소로 꼽았다. 도성대지도, 경조오부도 등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서대문 밖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1407년 태종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려고 세운 모화관과 영은문이다. 연못 자리에는 개화기 일본 공사관(청수관)과 죽첨공립소학교(동명여중)가 들어섰다. 하필이면 경기감영을 한성부 관할 지역인 반송방에 뒀을까. 경기감영의 설치 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경기도를 다스리는 경기관찰사는 반송방에 본영, 영평(포천)에 신영을 두고 왕래하면서 업무를 봤다. 지금도 수원에 경기도청, 의정부에 경기 제2청(경기북부청)을 따로 두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경기도는 수도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으므로 중앙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요한 때문이다. 김종서 장군의 집이 서대문 밖 지금의 농업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일행이 일흔 살 노장군의 집에서 철퇴를 휘둘러 즉사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죽지 않았다. 왕에게 반역을 고하려고 부인의 가마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기감영과 사대문을 장악한 한명회의 수하들이 서대문과 남대문의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수양은 다음날 새벽 자객을 보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방원에 의해 척살당한 정도전의 수송동 집이 마구간으로 변한 것처럼 김종서의 서대문 집은 여행객에게 말을 대여해 주는 고마청으로 둔갑했다. 역사의 가설은 성립하지 않지만 김종서의 집이 사대문 안에 있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노릇이다.경기감영 터는 1896년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군부대로 사용되다가 1903년 한성부 청사, 죽첨공립소학교 사택, 고양군청을 거쳐 경성적십자병원(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서는 독특한 장소 변화를 겪었다. 또 서부 경찰분서, 경성감옥 분감, 경성측후소(서울기상청) 등도 들어서 이후 변화상을 예감케 한다. 사대주의의 상징 모화관과 영은문을 헐어내는 대신 독립관과 독립문이 세워졌다. 일본의 자본과 부추김에 의해 세워진 독립문과 독립관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현저동이란 말 그대로 고개(峴) 아래(底) 동네를 말한다. 인왕산과 무악산이 이어지는 무악재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1975년 대통령령에 따라 현저동 절반이 종로구로 편입돼 의주로 동쪽 인왕산 자락은 무악동으로 바뀌었다. 의주로를 중심으로 안산 쪽은 서대문구, 인왕산 쪽은 종로구로 각각 나뉜 것이다. 서대문 밖은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공간 변화가 두드러진 곳이다. 점유주체가 바뀌면서 공간의 이력도 덩달아 달라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적산가옥이 많았던 인왕산 아래 대로변 평동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빈민층이 스며들었다. 염상섭은 ‘삼대’에서 “전차에서 내려서 몇 번이나 물어 홍파동에까지 와가지고 수첩을 꺼내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묘사할 정도였다. 박경리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영천시장엔 한 귀퉁이에 제법 시장까지 선다고 했다. 아무리 공화국의 하늘 아래라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인 이상 먹어야 사는 것 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이 사고파는 일…”이라고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린 영천시장을 그렸다. 현저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현저동 달동네의 각박한 삶이 절절히 펼쳐진다. “여기가 서울이야?” 나의 한 섞인 물음에 엄마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서울의 문밖이란다. 느이 오래비가 이담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우리도 그때 가선 버젓이 문안에 살아 보자꾸나.”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삼청동(삼청공원의 겨울)●일시: 12월 22일(토) 오전 10시~낮 12시●집결장소: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삼성동·대치동 공공주택 3000호… 강남 주민 거센 반발이 변수

    삼성동·대치동 공공주택 3000호… 강남 주민 거센 반발이 변수

    19일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및 광역교통대책에는 서울 시내 32곳(1만 8720가구)의 유휴부지, 국공유지 등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삼성동, 대치동 등 강남의 알짜배기 부지도 포함돼 서울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에 눈길이 간다. 공공주택 건설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넘어서는 것도 관건이다.서울시가 내놓은 개발 예정지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곳은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주차장과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 부지다. 시유지인 서울의료원 주차장(7000㎡ 규모)자리에는 800가구가 들어선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2호선 삼성역, 코엑스, 2023년 옛 한국전력 자리에 들어설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모두 가까운 강남 노른자땅이다. 3호선 학여울역과 대청역 사이에 자리한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 부지(5만 3000㎡)에는 아파트 한 단지에 해당하는 2200가구 공공주택이 지어진다. 두 곳을 합치면 강남 한복판에만 3000가구에 이른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료원 주차장 부지나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등은 서울시의 기존 부지 활용 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이번 공급 계획에 포함시킨 곳”이라며 주택 시장 안정에 힘을 보태고 그린벨트를 사수하기 위한 고심이 컸음을 토로했다. 서울시의 이번 2차 주택공급대책에는 강남 주요 지역뿐 아니라 ‘직주(직장·주거) 근접’이 가능한 도심 주요 지역 곳곳도 포함됐다. 용산구 한강진역 주차장(450가구), 영등포구 대방아파트(300가구), 동작구 지하철 4호선 동작역 주차공원(500가구), 서대문구 연희동 유휴부지(300가구), 신촌동 주민센터(130가구) 등이다. 은평구 수색역세권(2170가구), 강서구 서남 물재생센터 유휴부지(2390가구), 동작구 환경지원센터 일대(1900가구) 등 대단지가 조성되는 곳도 있다. 서울시 주택 공급 방안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방식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박 시장이 지난 7월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으로 부동산 값 급등에 불을 댕겼다는 비판에 휩싸인 만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지 않으면서도 주택난을 해소할 묘안을 짜낸 셈이다. 중랑구 북부간선도로를 터널 형태로 감싸 인공지반(2만 5000㎡)을 만든 뒤 그 위로 1000가구를 올린다거나, 용산구의 빈 업무용 빌딩을 주택으로 바꿔 200가구를 만들겠다는 계획 등이 그 예다. 서울시는 소규모 택지는 당장 올해부터 주택사업승인 등 절차를 밟아 2020년이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는 지난 9월 21일과 이날 발표한 2만 5000가구에 더해 용적률·용도지역 상향, 저층 주거지 활성화 등으로 2022년까지 모두 8만 가구를 더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삼성동·대치동 공공주택 3000호… 강남 주민 거센 반발이 변수

    삼성동·대치동 공공주택 3000호… 강남 주민 거센 반발이 변수

    19일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및 광역교통대책에는 서울 시내 32곳의 유휴부지, 국공유지 등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삼성동, 대치동 등 강남의 알짜배기 부지도 포함돼 서울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에 눈길이 간다. 공공주택 건설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넘어서는 것도 관건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개발 예정지 1만 8720가구 가운데 가장 관심이 쏠리는 곳은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주차장과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부분이다. 시유지인 서울의료원 주차장에는 7000㎡ 규모의 800가구가 들어선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2호선 삼성역, 코엑스, 2023년 옛 한국전력 자리에 들어설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모두 가까운 강남 노른자땅이다. 3호선 학여울역과 대청역 사이에 자리한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 부지(5만 3000㎡)에는 아파트 한 단지에 해당하는 2200가구 공공주택이 지어진다. 두 곳을 합치면 강남 한복판에만 3000가구에 이른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료원 주차장 부지나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등은 서울시의 기존 부지 활용 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이번 공급 계획에 포함시킨 곳”이라며 주택 시장 안정에 힘을 보태고 그린벨트를 사수하기 위한 고심이 컸음을 토로했다.서울시의 이번 2차 주택공급대책에는 강남 주요 지역뿐 아니라 ‘직주(직장·주거) 근접’이 가능한 도심 주요 지역 곳곳도 포함됐다. 용산구 한강진역 주차장(450가구), 영등포구 대방아파트(300가구), 동작구 지하철 4호선 동작역 주차공원(500가구), 서대문구 연희동 유휴부지(300가구), 신촌동 주민센터(130가구) 등이다. 은평구 수색역세권(2170가구), 강서구 서남 물재생센터 유휴부지(2390가구), 동작구 환경지원센터 일대(1900가구) 등 대단지가 조성되는 곳도 있다.  서울시 주택 공급 방안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방식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박 시장이 지난 7월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으로 부동산 값 급등에 불을 댕겼다는 비판에 휩싸인 만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지 않으면서도 주택난을 해소할 묘안을 짜낸 셈이다. 중랑구 북부간선도로를 터널 형태로 감싸 인공지반(2만 5000㎡)을 만든 뒤 그 위로 1000가구를 올린다거나, 용산구의 빈 업무용 빌딩을 주택으로 바꿔 200가구를 만들겠다는 계획 등이 그 예다.  서울시는 소규모 택지는 당장 올해부터 주택사업승인 등 절차를 밟아 2020년이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는 지난 9월 21일과 이날 발표한 2만 5000가구에 더해 용적률·용도지역 상향, 저층 주거지 활성화 등으로 2022년까지 모두 8만 가구를 더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브랜드 순천, 1000만명 모시기… 2019년 벌써 뛰는 ‘현장 실천가’

    [자치단체장 25시] 브랜드 순천, 1000만명 모시기… 2019년 벌써 뛰는 ‘현장 실천가’

    허석(54) 전남 순천시장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 문제에 청춘을 바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순천고(31회)와 서울대 경제학과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전두환 정권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경제관료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고 대학 3학년 때 위장 취업을 했다. 동료들 중 가장 오래인 7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다. 1990년대 고향 순천에 내려와 ‘새벽을 여는 노동문제연구소’를 차려 10년 넘게 임금착취에 힘들어하는 근로자들의 이익을 위해 무료 상담을 해 왔다. 당시 노동부에서는 허 시장을 ‘도깨비’로 표현할 만큼 적색분자로 분류해 왔다.이후 서민들의 아픔을 대변하기 위해 ‘순천시민의 신문’을 창간, 10년 동안 이끌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광주고등법원 조정위원,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문재인 대통령 후보 전남선대위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본선 두 번째 도전 끝에 순천시장에 당선됐다. 허 시장은 시로 승격한 지 70주년이 되는 내년을 ‘2019 순천 방문의 해’로 공식 선포하고 1000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산과 바다, 호수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음식 맛까지 빼어난 순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해 뛰어다니는 허 시장의 하루를 동행취재했다.지난 3일 오전 8시 20분. 시장실에서 김면균 체육시설관리소장에게 사무관 승진 임명장을 수여했다. 시는 허 시장 취임 후 사무관 이상 승진자에게 특별히 제작한 교지 형태의 임용장을 주고 있다. 교지는 조선시대 임금이 4품 이상 벼슬아치에게 내리던 사령장이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청렴결백한 선비정신을 되새기며 업무에 임해 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표시다. 오전 9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직원 정례조회에 참석했다. 대회의실에는 직원 200여명이 자리했다. 이날 서면에 있는 DSR제강이 이웃돕기 성금 1억원을 기탁했고 향동 직능단체가 300만원을 전달했다. 이들에게 감사를 표시한 허 시장은 직원들을 상대로 “여러분이 순천의 경쟁력이자 자부심”이라며 “전국 어디와 비교해도 종합 실력이 가장 낫다”고 자랑스러워했다.직원들에게 청렴결백 선비정신 강조 허 시장은 ‘소통’을 가장 중요시한다. 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와 예산 심의가 열린 것과 관련해 직원들에게 역지사지를 당부했다. 그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 우리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사업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의회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받거나 예산이 삭감되는 사례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고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안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시책으로 추진 중인 허 시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 주민들과 현장 대화를 한다. 읍면동 현황을 직접 보고, 지역민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서다. 결재를 4건 한 후 오전 11시 월등면 주민들과의 현장 간담회를 위해 이동했다. 월등면 숙원사업인 지방도 857호선 지사골재 위험도로를 확인하는 자리다. 주민 30여명은 시장이 차에서 내리자 정겨운 식구 반기듯 열렬히 환호했다. 이곳은 경사가 심하고 볕이 들지 않아 겨울철 상습 결빙 구간으로 교통사고가 빈번한 장소다. 주민들은 또 신월마을 인근 태양광 허가 반대와 3개 마을 배수로 공사를 부탁했다.주민 의견 반영 우선… 결정된 사업도 뒤짚어 허 시장은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듣다 보면 내가 모르는 부분도 알게 돼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법으로 허용된 사업이더라도 지역 정서를 더 우선시한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 해결책을 찾는 점도 중요시한다. 최근 결정된 동물보호센터 건립 부지 ‘원점’ 재검토도 허 시장이 주민 의견을 최우선 반영하는 한 단면이다. 시는 순천에서 연간 유기동물이 500마리나 발생해 승주읍의 옛 전경대 부지에 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동물보호단체가 시내 중심지와 멀어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어렵고, 주민들도 소음과 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의견을 보였다. 냉담한 기류가 계속되자 허 시장은 지난달 29일 해당 마을을 찾아 대화를 나눈 후 주민투표를 제의, 반대표가 많자 과감히 철회했다. 오전 11시 40분. 지역민 문화공간과 학생들을 위해 들어설 월등초 복합 커뮤니티센터 부지를 찾아 학교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17억원 중 시가 7억원을 투자해 농촌마을 학교의 롤모델로 기대되는 곳이다. 점심은 월등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했다. 허 시장은 매주 월요일 점심은 청사 구내식당을 이용한다.13년째 뇌사 친동생… 가슴 아픈 가족사도 허 시장은 어머니가 만든 고들빼기김치를 아주 좋아한다. 노모가 힘이 들어 이제는 김치를 담그지 않아 더이상 맛볼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가족 생각만 하면 먼저 눈물부터 난다. 부모 모두 올해 팔순이다. 아버지는 5월, 어머니는 8월이었다. 가족들과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 보냈다. 허 시장은 부모가 판검사를 원했는데 기대를 어기고 노동운동을 해 항상 죄스러워해 왔다. 팔순 때 부친 발을 씻겨 드리면서 미안한 마음과 끝까지 자신을 믿어 준 고마움에 울컥 눈물이 났단다. 부인 정연옥(52)씨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나 결혼했다. 정씨가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생활할 때 손수 부인 속옷을 빨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그동안 변변한 생활비 한번 주지 못하면서 고생만 시켜 눈물이 많이 나더란다. 그는 “집사람이 완쾌되지 않았으면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친누나는 전남도의원을 지낸 허강숙 전남도 여성가족정책관이다. 성공한 남매 정치인이란 말을 듣지만 잔정이 유난히 많았던 친동생이 13년째 뇌사 상태에 있는 아픔도 갖고 있다. 누워만 있는 동생 몸을 씻겨 주기 위해 남몰래 병실을 찾곤 한다. 공무원노조와 단체협약도 직접 챙겨 오후 2시 시청 소회의실에서 공무원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 노동조합 측에 “협상이 꼬이면 내게 상담하라고 했는데 이젠 협약을 맺는 주체가 됐다”고 웃었다. 순천시지부는 전남 9개 전국공무원노조 중 제일 먼저 단체협약에 서명했다. 오후 3시 시장실에서 순천음식 스토리 만화단행본 제작과 관련해 출판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허 시장은 청년들을 위한 정책에 관한 질문에 “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창업보육센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안 조카가 신용카드로 500만원을 빼 서울 창업보육센터에서 주관한 서바이벌에서 1등 한 후 2년 만에 1000만 달러를 수출하는 회사 사장이 됐다”며 “서바이벌 형식의 청년창업보육센터를 만들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성공 신화를 만들 기회의 땅 순천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허 시장은 지난 10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을 다녀왔다. 그곳 최고 책임자들이 자문위원을 맡아 주기로 했고 업무협약도 맺기로 했다. “자연과 생태 어우러진 도시 만들 것” 시는 2개월 전 세계 최초로 람사르 습지도시 인증을 받아 세계가 인정하는 생태도시로 성장했다. 허 시장은 두바이에서 습지도시 인증을 받고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런 기분을 28만 순천시민들과 함께 누리도록 하겠다는 각오도 되새겼다. 그는 “편안하고 안전한 도시, 자연과 생태가 어우러진 모두가 방문하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현장 행정] 컴퓨터를 로그아웃 합니다…아이들의 꿈이 익어 갑니다

    [현장 행정] 컴퓨터를 로그아웃 합니다…아이들의 꿈이 익어 갑니다

    꿈나무타운 이용객 1년 새 60만명 돌파 외국어 교실·도서관·극장 등 모여 인기“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배울 수 있는 보육·교육의 장으로 만든 용산꿈나무종합타운이 1년 만에 이용객 60만명을 넘겼습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롤모델로 삼고 싶다고 찾는 곳이 됐죠. 별관에 있는 보훈회관을 이전시켜서라도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더 늘리고 산후조리원도 만들어 용산을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요람’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백범로 용산꿈나무종합타운 꿈나무극장.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말이 다음 말로 이어지기도 전에 박수가 이어졌다. 특히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한 보육·교육 공간을 더 늘리겠다는 성 구청장의 다짐에 큰 환호를 보냈다. 구민들은 특히 구가 전문기관에 위탁 운영할 산후조리원을 연다는 데 대해 호응이 컸다. 성 구청장은 “1년에 용산구에서 태어나는 신생아가 1700~1800여명인데 우리 지역에 산후조리원이 부족해 다른 지역에서 산후 조리를 하는 산모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안타까워하며 “부지는 이미 검토해 둔 만큼 법 개정 등으로 길이 열리면 바로 조리원 설립에 착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개관 한 돌을 맞은 꿈나무종합타운은 구 교육 사업 가운데 가장 큰 결실로 여겨진다. 1978년 지어진 옛 용산구청사를 고쳐 청소년 문화의 집, 장난감 나라, 원어민 외국어 교실(6개 언어), 육아종합지원센터, 도서관, 극장, 전통 한옥식 서당 등을 한데 들여보내 영유아부터 아동, 청소년, 성인까지 향유할 수 있는 다채롭고 알찬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인기를 끄는 이유다. 성 구청장은 “제가 클 때는 온 산과 들이 교육의 장이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공기도 나쁘고 폐쇄된 공간에서 컴퓨터, 스마트폰만 가지고 노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깝다”며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는 결단을 내렸는데 어디서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체험과 교육이 이뤄지니 보람이 크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수요도 늘었다. 평일에만 강좌를 하던 용산서당은 내년부터는 주말반도 새로 연다. 원어민 교실에서는 영어 체험 학습 기회가 부족한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위해 방학마다 영어캠프도 내년부터 새롭게 진행한다. “이 나라는 우리 것이 아니라 아이들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사는 세상을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으로 만들어 줘야죠. 꿈나무종합타운은 내년에도 더 알찬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과 부모들을 맞겠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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