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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광복 70년 기념 행사 ‘해방 귀국선 탑승객’ 모집

    “광복 70주년을 맞아 1945년 그날 해방 귀국선으로 초대합니다.” 부산시는 ‘1945 해방 귀국선 탑승객’을 모집한다고 6일 밝혔다. 모집 기간은 이날부터 오는 13일까지이며, 모집 인원은 해방 귀국선 탑승객과 행사 참여자 800여명이다. 모든 국민이 대상이며 1945년 귀국자와 그 유가족, 광복과 사연이 있는 이들은 지역에 관계없이 우선 모집한다. 다음달 14일 오후 4시 남항 자갈치시장과 광복로 일원에서 펼쳐질 해방 귀국선 재현 환영 행사는 부산시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개방과 포용, 화합 도시 이미지를 알리고자 마련한 이벤트다. 재현행사는 환영행사, 거리 퍼레이드, 기념 퍼포먼스로 구성된다. 환영행사는 1945년 8월 15일 그날처럼 800명이 넘는 귀국 동포가 해방 귀국선을 타고 고국의 품인 부산항에 도착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방 귀국선이 부산항에 들어서면 환영 예포, 해상 퍼레이드, 환영 오색 헬기 비행이 펼쳐지며 시민과 함께 어울림 한마당 행사를 통해 그날의 감격과 애환을 되새긴다. 환영 거리 퍼레이드는 22개 시민단체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부산항 남항에서 광복로까지 1.8㎞ 구간에서 전개된다. 신청은 부산시(www.busan.go.kr)와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www.festival.busan.kr)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한줄 영상] 예포 발사되는 순간 날아든 새 ‘하마터면’

    [한줄 영상] 예포 발사되는 순간 날아든 새 ‘하마터면’

    예포가 발사되는 순간 새 한 마리가 그 앞을 지나나가 봉변을 당하는 순간이 포착됐습니다. 이 영상은 최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바위산에 자리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 목격된 것으로, 한 관광객의 카메라에 우연히 촬영되었습니다. 다행히 탄알이 없는 공포탄이었기에 치명적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영상=Graham Anderson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나우! 지구촌]독일 방문한 英여왕의 ‘영화같은 의전행렬’

    [나우! 지구촌]독일 방문한 英여왕의 ‘영화같은 의전행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1년 만에 독일을 찾은 가운데, 보기 드문 화려한 의전행렬을 담은 현장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3일 남편 필립공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독일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 정부는 영국 여왕의 환영을 위해 21발의 예포와 의장대 환영 행사를 준비했고, 이후 리무진을 타고 베를린 시내로 들어섰다. 이날 의전 행사에는 오토바이를 탄 경찰병력이 동원됐는데, 이들은 영국 여왕 부부가 탄 리무진 차량 앞에서 브이(V)자 대열로 이동하며 장엄한 스케일을 자랑했다. 폭이 좁은 도로에서는 가늘고 긴 대형으로 철통보안에 나섰고, 베를린 시민들은 보기 드문 화려한 행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독일에서 총 4일간의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동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헌화하는 일정을 시작으로 여왕의 생일 축하를 겸한 가든 파티와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 방문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 프랑크가 마지막까지 몸을 숨겼던 집단 수용소에서는 당시 수용소에서 생활했던 생존자들도 직접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현지언론은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의 이번 독일 방문을 ‘여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왕이 독일을 국빈 방문한 것은 처음이 아니나, 이번 방문에서는 고위 관료와의 만남 보다는 ‘관광’ 위주의 일정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과 남편 필립공은 최근 고령의 나이(89세, 94세)로 국외일정을 최소화 해 왔다. 사진= ⓒ AFPBBNews=News1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헌신 기억할 것”… 폭우 속 시민들 ‘마줄라’ 연호

    “헌신 기억할 것”… 폭우 속 시민들 ‘마줄라’ 연호

    조문 41만명, 15.4㎞의 운구 행렬, 예포 21발, 몇 분 동안의 전체 묵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이 싱가포르 국립대 문화센터에서 치러진 29일 오후 2시까지 싱가포르 전역이 추모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일요일 대목이지만 시내 일부 대형 상가는 리 전 총리 추모를 위해 영업을 중단했고, 카지노업체 젠팅싱가포르도 장례식이 열리는 2시간 동안 센토사섬 카지노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 23일 리 전 총리가 사망하고 공식 조문이 진행된 나흘 동안 시신이 안치된 국회의사당을 조문객 41만명이 찾았다. 싱가포르 인구의 10%가 조문한 셈이다. 공식 추모 사이트에는 85만건의 추모 메시지가 달렸다. 폭우가 내린 이날에도 우산을 든 수천명이 운구 행렬을 직접 지켜보며 “마줄라 싱가포르”(싱가포르에 번영을·말레이어)를 외쳤다. 두 살배기 딸을 안고 운구 행렬이 지나는 도로변을 찾은 켈빈과 맨디 탄 부부는 “우리 딸이 리 전 총리가 누구인지, 그가 얼마나 싱가포르를 위해 헌신했는지 기억하기를 원해 참석했다”고 BBC와 인터뷰했다. 44세 남성 시민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싱가포르 국민 모두가 리 전 총리의 식견과 경제정책 덕분에 번영을 누릴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함께 모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장은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 토니 탄 대통령, 고촉동 전 총리, 옹팡분 전 장관 등 10여명이 추도사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리 총리는 “부친은 싱가포르와 함께 살았고, 함께 숨쉬었다”고 말했다. 장례식 이후 리 전 총리의 시신은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져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화장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장에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회원국 등 18개국을 초청했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토니 애벗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훈 센 캄보디아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등 정상들이 직접 조문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이고리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 윌리엄 헤이그 보수당 하원 대표 등도 참석했다. 비초청 국가 중에서는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 데이비드 존스턴 캐나다 총독 등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에 앞서 리 전 총리 운구 행렬은 ▲싱가포르 초대 총리부터 퇴임 뒤 선임장관까지 싱가포르 최장수 의원인 리 전 총리와 인연이 깊은 옛 의회 건물 ▲싱가포르 독립 뒤 첫 선거가 치러졌던 시청과 파당 광장 ▲정부 및 고용주와 함께 리 전 총리가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여겼던 전국노동조합(NTCU)의 거점 ▲싱가포르가 자생적으로 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리 전 총리가 1987년 구축한 정화·저수지인 마리나 버러지 등 나라 곳곳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이 미친 랜드마크를 거쳤다. 1923년생인 리 전 총리는 1959~1990년 싱가포르 초대 총리를 역임했고, 이후에도 선임장관 등으로 영향력을 유지했다. 재임 기간 어촌 마을에 불과하던 싱가포르를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지만,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해 독재자를 뜻하는 ‘아시아의 히틀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박대통령 “비엔베니도 아코레아”… 교황, 새터민·이주노동자와 일일이 악수

    교황으로 역대 세 번째로 한국 땅을 밟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제스처는 없었다. 앞서 1984년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 한국을 찾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서 땅에 입을 맞췄다. 그런 만큼 돋보인 것은 때로는 은은하고, 때로는 어린아이같이 환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소였다. 교황은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의 기내 영접을 받은 뒤 난간을 잡고 트랩을 천천히 내려와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박 대통령은 교황을 뒤따르며 나서지 않았다. 종종 TV 화면에서도 사라졌다. 앞서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당시에도 각각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공항에서 직접 교황을 영접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지난해 2월 취임 이래 친서를 포함해 네 차례 서한을 전달했고,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고위 인사에게 구두로 초청 의사를 전달하는 등 교황의 방한을 다섯 차례 요청했다. 교황의 사제복인 흰색 수단에 맞춰 연분홍빛 상의와 회색 바지를 차려입은 박 대통령은 교황을 영접하면서 “오셔서 환영합니다”(비엔베니도 아코레아)라며 간단한 스페인어로 환영인사를 전하고 “여행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교황을 모시게 돼서 온 국민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많은 한국인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다. 교황은 박 대통령이 “이번 교황의 방문으로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자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박 대통령은 “행복하고 뜻깊은 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을 환영하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며 세계 가톨릭 교회 최고지도자인 교황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교황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등학생 남녀 화동(花童) 2명이 꽃다발을 건네자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어 교황은 박 대통령과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한 뒤 정부 주요 인사와 주교단, 평신도 환영단의 영접을 받았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에게 평신도 환영단을 한 명씩 소개했으며 교황은 환영단으로 나온 세월호 유족, 이주노동자, 새터민 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평신도 환영단 중에는 교황과 인사를 한 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공항 환영행사는 이것이 전부였다. 의전을 원치 않는 교황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그저 환영단과 인사를 마치고 박 대통령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소형 차량 쏘울을 타고 현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은 쏘울에 올라타는 교황을 향해 “이따 뵙겠습니다”(노스데모스 루에고)라며 다시 스페인어로 인사를 전했다.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알리탈리아항공의 교황 전세기(에어버스 330)에는 7개 한국 언론사 기자를 비롯해 AP, AFP, 로이터, CNN 등 전 세계 유력 언론사 기자 70명도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교황은 우선 숙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바로 이동했다. 교황은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개인 미사 시간을 가졌으며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광진구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로 이동,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직원들을 만나 연설하는 것으로 방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한·중 정상회담] 中 “양국 관계 한층 심화”

    중국 언론들은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사상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다며 한목소리로 양국 관계 띄우기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이날 ‘중국의 꿈과 한국의 꿈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간다’는 제목의 논설에서 “오늘날 중·한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에 와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이뤄지는 시 주석의 방한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양국 관계를 한층 심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이날 칼럼을 통해 “중·한 관계 강화는 지역의 평화·안정을 유지하고, 아시아 지역의 일체화와 진흥을 이끌며, 나아가 인류 문명의 번영과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면서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중앙(CC)TV는 이날 21발의 예포 발사와 의장대 사열이 서울공항에 도착한 시 주석 부부를 맞았다며 한국 내 환영 분위기를 부각했다. 특히 한국 측이 시 주석뿐 아니라 중국의 퍼스트레이디인 펑리위안(彭麗媛)을 각별히 예우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조명했다. 신화통신은 “정치인 가운데 47억원의 재산을 신고한 최고의 갑부이자 여성가족부 장관 출신인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펑리위안을 전담할 파트너로 선택됐다”며 조 수석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환구시보는 “한국인들은 펑리위안이 보여 줄 소프트 파워 외교를 기대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펑리위안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필요하면 할 수 있다”

    지난 25일 늦은 밤(현지시간)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독일은 21발의 예포를 울렸다. 일몰 이후에는 예포를 쏘지 않는 관례를 깬 특별한 환영이었다. 당초 대통령 전용기가 공항에 도착할 즈음 독일 전투기가 엄호비행을 할 예정이었지만 날이 너무 어두워 취소됐다고 한다. 독일이 통상 연중 4차례 정도 국빈을 초청해 왔고 이미 올해 국빈 접수 계획은 마무리됐음에도 박 대통령을 국빈으로 ‘추가’ 초청한 것은 그 자체로 ‘50년 시차를 두고 이뤄진 부녀 대통령의 공식 방문’에 대한 마음의 표시일 수 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을 찾았고, 50년 뒤 박 대통령은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을 찾았다.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문은 통독 전 한국의 판문각 같은 곳이었다. 독일 분단 시기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로서 양국의 승인을 받은 제한된 사람들만 출입했던 유일한 육상 창구였다.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베를린공과대학교 연설에서 “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시작한 철의 장막은 동유럽과 소비에트의 광대한 영역을 거쳐 만주로 뻗어 내려가 우리나라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며 “바로 독일과 한국은 하나는 유럽에서, 또 하나는 극동에서 각각 공산주의의 파괴적 침투를 막고 있는 방파제들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두 나라는 이 세기적 방파제가 되는 과정에 있어 너무도 값비싼 희생을 강요당했다”며 “국토의 양단, 민족의 분단이란 쓰라린 현실은 현대의 가장 큰 치욕이며 인류 이성의 결정적인 자기부정이다. 이 부조리의 현상이 타파되지 않고 있는 한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 자격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세계 유력 지도자들의 많은 방문을 받았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독일 공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나게 된다면 핵문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문제, 그리고 남북 관계 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과 만나 베를린시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설치한 것을 계기로 문화·관광 등 분야에서 실질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베를린(독일)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잠들다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잠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인권 투쟁과 인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삶을 뒤로하고 영면에 들었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만델라 장례식이 15일(현지시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스턴케이프주 쿠누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임시로 설치된 타원형 돔 모양의 대형 천막에서 진행된 장례식은 남아공은 물론 전 세계에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만델라의 시신이 든 관은 국기로 덮인 채 군 포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운구됐으며 이를 군 의장대가 행진하며 선도했다.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만델라 관은 8명의 군인에 의해 장례식장에 입장한 뒤 연단과 객석 중간에 놓였다. 장례식에는 만델라의 두 번째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 세 번째 부인 그라사 마셸 등 만델라 가족들을 비롯해 조문객 4500여명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국 찰스 왕세자,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미국의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은코사자나 들라미니 주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당초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만델라의 오랜 친구이자 투쟁 동지인 데즈먼드 투투 주교 역시 참석해 동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식은 돈 다불라 주교의 기도를 시작으로 만델라의 손자 등 가족과 친구들이 추도사를 한 데 이어 AU 순회의장인 하이을러마리얌 더살런 에티오피아 총리,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순회의장인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자카야 음리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이 차례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만델라가 복역한 로벤섬에서 그와 함께 26년간 복역했던 민주화 투쟁 동지 아흐메드 카스라다는 추도사를 통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달리고 남아공에 존엄함을 복원한 당신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며 작별을 고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추도 연설에서 “오늘은 남아공의 자유 투사였으며 공복(公僕)이었던 만델라의 95년에 걸친 영광스러운 여정이 끝나는 날”이라며 “우리는 민주화된 남아공을 건국한 고인의 마지막 길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경의를 표했다. 장례식 후 만델라의 시신이 든 관은 인근 가족 묘원에 옮겨져 땅에 매장됐다. 다만 장례식 이후 진행된 매장식은 만델라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만델라의 가족 및 친구 45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만델라 관이 매장되는 동안 남아공 군 헬리콥터들이 국기를 매단 채 상공을 날았으며 군용기들이 편대비행을 하면서 그에게 마지막 예의를 표했다. 지난 5일 만델라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뒤 선포된 1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에 진행된 국가적인 추모 행사는 모두 종료됐다. 앞서 10일 91개국 정상과 10만여명이 참석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추도식을 치른 데 이어 11일부터 13일까지 프리토리아 정부 청사인 유니언빌딩에서 진행된 시신 공개에는 조문객 10만명이 찾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英 근위대 사열… 왕실 마차… 버킹엄궁 만찬…

    英 근위대 사열… 왕실 마차… 버킹엄궁 만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3박4일간 영국을 국빈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지상 최고의 의전’을 받았다. 영국 왕실은 연간 두 차례만 국빈 방문 일정을 잡고 초청 국빈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61년 동안 국빈 초청을 받은 나라는 59개국에 불과하다. 이날 박 대통령은 왕실의 공식 환영식에 참석, 근위기병대 연병장인 호스가즈광장에서 근위대 사열식을 가졌다. 환영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를 비롯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최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100여명 규모의 화려한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런던 도심의 그린파크와 런던타워에서는 4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대영제국’의 오랜 전통과 위엄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행사로, 영국 왕실 의전의 최대 하이라이트다. 박 대통령은 환영식에서 왕증세손인 조지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영국 왕실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원했다고 청와대 측이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숙소 호텔에서 호스가즈로 이동할 때 호텔로 찾아오는 소위 ‘영예 수행’ 왕실 의전관의 안내를 받고,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요크 공작)와 자동차에 동승해 이동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기병대장의 안내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와 함께 백마 여섯 마리가 끄는 황금색 왕실 마차를 타고 호스가즈 인근에 있는 버킹엄궁으로 향했다. 박 대통령이 탑승한 마차는 황금색 지붕의 ‘오스트레일리안 스테이츠 코치’로 1988년에 호주가 선물한 마차다. 국빈 방문 시 사용한다. 국빈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버킹엄궁 연회장에서 성대하게 펼쳐진 만찬. 영국 왕실은 초청자 선정에서부터 메뉴와 식기 사용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측에서는 여왕을 포함한 왕족 7명과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글로스터 공작 내외와 켄트 공작 등 140명가량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넥타이 푼 시진핑 ‘자신감·개방’스타일

    넥타이 푼 시진핑 ‘자신감·개방’스타일

    “중국 지도자가 백악관이 아닌 캘리포니아 휴양지에서 넥타이를 풀고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이다.” 7~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서니랜즈에서 열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정상회담에는 시 정권 출범 이후 확 바뀐 중국 외교의 스타일 변화가 압축돼 있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롼쭝쩌(阮宗澤) 연구원은 6일 “시 주석의 외교는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 비교할 때 개방성과 유연함이 돋보인다”며 실용주의를 앞세운 파격이 시진핑 외교의 키워드라고 소개했다. 후 전 주석은 2006년 첫 방미 때 대국의 체면을 내세워 국빈방문 형식을 고집했고, 불발되자 백악관 앞마당에서 21발의 예포를 쏘는 환영 의식을 요구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텍사스 목장 초청도 ‘격’을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시 주석의 첫 방미는 ‘만남’을 의미하는 ‘회오’(會?) 형식이다. 편한 복장으로 쉬운 수사적 표현을 곁들이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줄 예정이다. 그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이 외교무대에서 퍼스트레이디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신중국 건국 이후 전례가 없다. 상황을 주도하는 능동성과 국력 향상에 따른 강한 자신감도 눈에 띈다. 시 주석은 취임 3개월 만에 첫 방미에 나선다. 그것도 중남미 순방을 끝낸 뒤 귀국하는 길에 들르는 형식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총서기 취임 후 4년 반, 후 전 주석도 3년이 걸렸다. 시 주석이 방미에 앞서 동등한 지위를 골자로 하는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내세우는 모습은 첫 방미를 앞두고 미 보잉사 비행기 50억 달러(약 6조원)어치를 구매했던 후 주석의 금전 외교와도 대조된다. 중화권 언론들은 앞서 시 주석 취임 뒤 존 케리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방중했던 것을 근거로 미국이 양국 간 협력을 위해 더 많이 공을 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헨리 키신저가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밝혔듯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 뒤 장 전 주석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던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선지루(沈驥如) 연구원은 “이전 지도부는 미국 등 일부 대국만 관리하는 소극적 외교를 폈다면, 지금은 주변 각국 및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도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 다자 무대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전방위적인 공격 외교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교수는 “전 정권이 출범하던 10년 전과 비교할 때 중국의 지위는 몰라보게 높아졌고 영토분쟁 에너지 확보 등 중국의 이익도 각지에 널려 있다. 외교 전략이 바뀌면서 스타일도 변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등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 추진

    [韓·美 정상회담]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등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 추진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방문 두 번째 기착지인 워싱턴에 도착 직후 알링턴 국립묘지와 한국전 참전 기념비 공원을 참배하고 동포 간담회를 갖는 등 ‘강행군’을 펼쳤다. 박 대통령은 오후 5시쯤 한국전 참전 기념비 공원을 찾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힌 태극기 모양의 화환을 헌화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진행된 참배에는 에릭 신세키 미 보훈처장관과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4명, 한·미 양국의 한국전 참전용사 10명이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해 희생하신 분들과 역대 사령관들께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은 그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3월 이곳을 참배한 사실을 회고하면서 “올해가 정전 60주년이자 동맹 6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애국가와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무명용사탑에 헌화했으며, 묘지 기념관을 찾아 ‘무명용사를 기리는 패’를 증정했다. 박 대통령이 묘지에 도착하자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박 대통령은 손을 흔드는 교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날 저녁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워싱턴 지역 동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전문직 미국 비자 쿼터 1만 5000개 확대 추진, 동포 자녀 한글·역사 교육 등 구체적인 동포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이나 영사 서비스 등 삶의 어려움을 먼저 찾아서 대응하는 ‘선제적 맞춤형 지원’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운영 4대 원칙의 하나인 ‘현장 중심’ 행정 서비스를 동포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방미 수행단에 임종훈 청와대 민원비서관이 포함된 것도 해외동포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듣고 챙기라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마리사 천 연방 법무부 부차관보와 박충기 특허법원 판사 등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한 한국계 차세대 리더들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창조경제로 세워놨는데 (창조경제가 잘되면) 이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조적 리더들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동포 청년들에게 창조경제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큰일 생기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시는데 안보와 경제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우리는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의전보다는 내실

    의전보다는 내실

    다음 달 5일부터 10일까지 4박 6일간 미국을 방문하는 박근혜(얼굴) 대통령의 방문 형식이 ‘공식 실무 방문’으로 정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박 대통령의 방문이 공식 실무 방문 형식으로 진행된다”면서 “이는 등급의 차이가 아니라 의전을 간소화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중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 정상의 방미 형식은 국빈 방문, 공식 방문, 공식 실무 방문, 실무 방문 등으로 나뉜다. 국빈 방문이나 공식 실무 방문, 실무 방문 등은 협의 내용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나 행사에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국빈 방문은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공식 환영식이 백악관에서 열리고 미국 내 주요 인사가 참석하는 백악관 환영 만찬도 개최되며 미 의회 상하 양원 합동 연설도 주선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이후 역대 대통령은 통상 3회 정도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 가운데 1회는 국빈 방문 형식으로 이뤄졌고 첫 방문보다는 임기 중 방문 때 성사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 초반에 양국이 조율할 사안이 많으면 공식 실무 방문이 많이 이뤄진다”면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 실무 방문 형식으로 갔다”고 말했다. 공식 수행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150여명이 될 전망이다. 김행 대변인은 “대통령 전용기 1대만 띄울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 당국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이번 방미 때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방미 이후 중국과의 정상회담도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중국 방문 계획을 밝혔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역대 정부에서는 정권 출범 후 주변 4강과의 정상회담이 보통 미국, 일본, 중국 순으로 진행됐으나 박 대통령이 이번에 중국 방문 계획을 먼저 언급하면서 일본과 중국의 순서가 바뀔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오는 24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 등과 만난다. 박 대통령의 방중 관련 일정도 자연스레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26~27일 일본도 방문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4강 가운데 중국에 첫 특사를 보냈고 지난달 20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처음으로 취임 축하 전화를 하는 등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오늘 취임] 국민 30명과 함께 입장… 취임사 뒤 카퍼레이드도 예정

    [박근혜 대통령 오늘 취임] 국민 30명과 함께 입장… 취임사 뒤 카퍼레이드도 예정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행사는 25일 0시 대통령 임기 개시를 알리는 33차례의 보신각 타종으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공식 일정으로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한다.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리는 취임식은 식전행사와 본행사로 나뉜다. ‘국민대통합’에 초점을 둔 축제형 취임식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때보다 2만명 늘어난 7만명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오전 9시 20분부터 열리는 식전행사에서는 ‘개그콘서트’ 팀이 사회를 보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길놀이 공연을 시작으로 김영임 명창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월드스타 싸이는 직접 가사를 바꾼 ‘강남스타일’을 부른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각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출연진이 시대별 대표곡을 부르는 코너도 있다. 박 대통령이 국민대표 30명과 함께 국회의사당 광장에 입장하면 본행사가 시작된다. 취임식은 국민의례, 국무총리 식사, 취임선서, 의장대 행진 및 예포 발사, 대통령 취임사,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애국가는 소프라노 조수미, 바리톤 최현수씨가 부른다. 명창 안숙선, 가수 인순이, 뮤지컬 배우 최정원, 재즈가수 나윤선씨가 윤학원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민합창단과 함께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을 부른다. 박 대통령 가족석은 26석이 마련됐다.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올케 서향희 변호사, 사촌동생 은희만씨와 은씨 아들 가수 은지원씨 등이 참석한다. 박 대통령 사촌형부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역대 총리 자격으로 초청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참석 의사는 전했으나 실제 참석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초청 인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 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4·19민주혁명회 문성주 회장, 제주 4·3평화재단 김영훈 이사장이 포함됐다. 본행사는 박 대통령이 이임하는 이 전 대통령을 환송한 뒤 중앙통로로 이동해 행진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 박 대통령은 서강대교 입구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친 뒤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한복 차림으로 ‘복주머니 개봉 행사’에 참석하고 청운동·효자동 주민의 환영을 받으며 청와대로 간다. 오후 4시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외교사절 등 국내외 각계 대표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경축연회에 참석한다. 이어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요 외빈 초청 만찬을 갖는다. 만찬주로는 씨 없는 반시로 만든 ‘청도 감그린 아이스와인’이 선정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비장하고 숭고했다. 그 자리에 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글거렸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정부 출범 이후 모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의 기대와 환호속에 국민을 위한 멸사봉공을 다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작 때의 감격은커녕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부하의 총탄에 맞고 숨졌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아니면 쓸쓸하게 해외로 망명했거나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감옥에 갔다. 이틀 뒤면 열한 번째 대통령이 취임한다. 임기를 마친 뒤 더욱 행복해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과 취임사를 되짚어 본다. 5년 전인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섬기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취임식 진행 역시 그에 충분히 호응했다. 무대 위는 국민대표와 각 나라 정상급 인사, 재외동포, 해외기업인 등 외빈에게 내주고 무대 아래에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의 자리를 만드는 파격을 선보였다. 지금껏 취임식 중 가장 많은 6만 405명이 참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대통령의 권위적 모습을 없애기 위해 취임식 엠블럼에도 봉황 문양 대신 ‘태평고’(태평소+북)를 집어넣었다. 장소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늘 이렇게 성대하고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60여년 전에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준비 일정은 숨가빴고 모습은 투박했다. 입헌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순정함과 독립국가를 만들려는 치열함이 그 원동력이었다. 1948년 7월 1일 제헌의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고, 17일 헌법을 공포했다. 그리고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그해 7월 24일 오전 10시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광장에서 첫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취임사 등이 지금에야 뻔한 의례로 여겨지지만 입헌민주국가 건설의 새 역사를 쓰는 참석자들에게는 엄숙하고 가슴 벅찬 걸음걸음이었다. 해방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의 취임사는 비장했다. 그는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면서 “과거 40년 동안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국민에게 주문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후 민의원, 참의원 합동회의에서 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은 8월 13일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통령 취임사’가 아닌 ‘대통령 인사’로 표기됐다. 그는 “4월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의 유산을 물려받은 제2공화국 정부는 이제 국민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독재가 뿌렸던 반민주성과 부패독소를 조속히 제거하고, 과감한 혁신행정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른바 ‘셀프 훈장’으로 논란이 됐던 무궁화대훈장 수여식은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1963년 12월 17일 오후 2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취임식 참석 인원은 3373명이었다. 무궁화대훈장이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에게도 수여된 것은 이때부터다.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건 박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앞에 두고 있다”며 ‘민족의 대단합’을 호소했다. 이날 취임식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지기까지 5대 17년에 걸친 장기집권의 서막이었다. 격동의 현대사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1980년 9월 1일 열린 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됐다. 그동안 사라졌던 대통령 찬가가 다시 불렸다. 전 대통령은 목에 무궁화대훈장을 걸고 붉은색 어깨띠(대수)까지 두르고 등장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개헌 의사를 천명했고, 1981년 2월 개헌을 한 뒤 본격적인 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국정지표로서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 토착화’, ‘진정한 복지국가 이룩’, ‘정의로운 사회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로 국민정신 개조’를 내세웠다. 특히 범국민적인 사회정화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듬해 전 대통령은 개정 헌법에 의해 새로 구성된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에 의해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고 1981년 3월 3일 12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1987년 6월 항쟁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걸거나 어깨에 두르고 나오는 모습은 없어졌다. 예포 발사와 국립국악원의 국악이 취임식에 처음 등장했다. 장소도 체육관을 벗어나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옮겨졌다. 참석자들도 2만 5000명으로 확 늘어났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저’로 칭했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나’로 표현했고, 최규하·전두환 대통령은 ‘본인’으로 자신을 나타냈다. 6월 항쟁으로 국민이 따낸 직선제 개헌에 의해 당선된 만큼 자신을 국민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표시였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된 국민의 정부임을 강조하고, 고도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미치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겠다고 역설했다. 또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북방외교도 강조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환경’의 가치를 내세웠다. 재생용지로 초청장을 만들었고, 꽃가루 뿌리기와 풍선 날리기를 없앴다. 길가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시민동원도 중단했다. 취임식 참가자는 3만 8000명으로 늘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그 전까지 군 출신 대통령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핵심 국정 지표로 ‘신한국 창조’를 내걸고 이를 위해 부정부패 척결, 경제 회복, 국가 기강 정립을 내세웠다. 1998년 2월 25일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꽃동네 주민, 독도경비대원, 마라도 주민, 대학생, 전방 소대장, 청년 노동자 등 국민 대표들이 처음으로 취임식 무대로 올라갔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속에 취임한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참된 국민의 정부’임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이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뒤 총체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면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일주일 뒤에 열려 경건한 분위기였다. 윤도현밴드의 공연을 취소한 것이 그 상징이다. 취임식에서는 운동권가요와 일반가요, 클래식, 국악 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4만 8500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인 2만여명이 일반 국민이었다. 각계각층 국민대표 50명을 국회의원, 외빈 등과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다. 참여의 가치를 앞세운 노 대통령은 지방분권,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로의 도약, 한반도의 평화 증진을 주요 지표로 내세웠다. 임창용 전문기자 sdragon@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링컨·킹 목사 썼던 성경에 선서… 오바마 ‘통합의 2기’ 열다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고 싶어 나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년간 못 이룬 일을 앞으로의 4년 동안 모두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21일 아침 7시 30분쯤(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을 구경하러 나온 존 캐슬러(45)는 설렘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입장권이 없어 취임식장인 워싱턴의 연방의회 의사당에 접근하지 못한 그는 멀찌감치 의사당 건물이 보이는 ‘내셔널 몰’에 서서 찬바람에 떨고 있었다. 취임식을 3시간가량 앞둔 시간이었지만 벌써 워싱턴 시내는 취임식에 참석하거나 구경하기 위한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내셔널 몰 등 시내 곳곳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고 리듬에 맞춰 시민들이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일정은 오전 8시 45분 워싱턴의 유서 깊은 ‘성 요한 교회’에서 부인 미셸 등 가족, 조 바이든 부통령 내외와 예배를 본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부부는 특수 제작된 방탄 차량을 타고 오전 11시 20분 취임식장인 의사당 정면 외부 계단에 마련된 특별 무대로 이동했다. ‘우리 국민, 우리 미래’라는 주제의 취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주재하고 미셸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킹 목사가 쓰던 성경 2권에 왼손을 올려놓고 “나는 미국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미국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킬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라고 선서했다. 예포 21발과 군악대의 대통령 찬가 연주, 멀리 윌리엄스 전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의장의 축복 기도가 이어진 뒤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4년의 국정 운영 방향과 비전을 밝히는 취임 연설을 했다. 이어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 축하 오찬에 참석한 뒤 의사당에서 백악관까지 펜실베이니아 에비뉴를 따라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이날 취임식 구경 인파는 80만명에 달했다. 4년 전의 180만명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재선 취임식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라고 시민들은 입을 모았다. 워싱턴은 취임식 전날인 20일부터 시민과 관광객이 몰리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날 하루만큼은 시민들의 표정에 경기 침체의 그늘이 사라진 듯 밝았다. 관광객이 많은 틈을 타 ‘낙태 반대’나 ‘무인기 폭격 반대’ 등을 외치는 시위대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마저도 관광객들에겐 ‘구경거리’였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빌딩도 눈에 띄었다. 캐나다 대사관은 ‘캐나다는 오바마 대통령께 인사를 보냅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 등 각종 기념품을 들고 “오바마 기념품 사세요”를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밤에는 각종 취임 축하 유료 공연과 무도회가 펼쳐졌다. 한 힙합 공연은 입장권이 최하 500달러에 달했다. 히스패닉계의 축하 공연에는 에바 롱고리아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호세 펠리치아노 등의 유명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남편과 함께 의사당 근처에 나온 린다 허슬(62)은 “올해는 4년 전보다 인파가 줄었지만 인종적으로 다양한 것은 4년 전과 같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2기 임기에는 경제 회복과 이민법 개혁, 총기 규제 등에 더 힘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전쟁은 잊혀졌지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전쟁은 잊혀졌지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모토로 전쟁 중 실종·사망한 장병 유해 발굴에 적극적인 미군의 노력이 또 한번 빛을 발했다. 6·25전쟁 당시 한반도 북녘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가 61년 만에 고향 품에 돌아갔다. 또, 북한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숨진 미 공군 파일럿의 가족들이 60여년 만에 훈장을 되찾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웨버시티에서는 18일(현지시간) 고(故) 윌리엄 슬러스 상병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집을 떠난 지 꼬박 61년 만에 유해로 귀향했다. 미군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 요원들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에서 발굴 작업을 벌이던 중 슬러스의 유골을 발견, 2007년 하와이의 JPAC 본부로 보내 정밀 검증을 벌여왔다. 17세 때 입대해 한반도로 파병됐던 그는 1950년 11월, 최대 격전 중 하나였던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에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하다 아사(餓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마을 주민, 퇴역 군인 등 300명은 눈물을 흘리며 슬러스 상병과 영원히 이별했다. 뉴저지의 포트리 부대 소속 의장대는 영결 나팔을 불고 예포 21발을 쏘며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장병에 대해 최고의 예를 갖췄고 작은 농촌 마을인 웨버시티 주민들은 집집마다 조기를 걸어 슬픔을 나눴다. 오빠의 생사를 몰라 60여년간 시름에 잠겼던 팔순의 여동생 부에나 슬러스 제스터는 “오빠가 마땅히 있어야 할 집에 결국 왔다.”며 울먹였다. 한편, 현역 경찰이 백방을 수소문한 끝에 6·25전쟁 전사자의 훈장을 가족에 돌려줘 감동을 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래리 무어 경사는 최근 자신의 가족들이 보관하던 ‘퍼플 하트 메달’(전쟁에서 다치거나 숨진 장병에 주는 훈장)을 주인의 누나인 코니 해들리 바크먼(84)에게 전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무어는 지난해 숨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중위 토머스 E 해들리 2세’라고 쓰인 전몰자 훈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메달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인을 소수문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퍼플 하트 메달 수상자인 버몬트 주 방위군 소속의 자카리아 파이크 대위의 도움으로 훈장을 해들리 중위의 누나인 코니 해들리 바크먼에게 돌려줬다. 해들리 중위는 22세 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6·25전쟁에 참전해 북한군 보급 열차를 폭격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펜타곤에 오성홍기 걸렸다

    14일 오후 3시(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미 국방부(펜타곤) 연병장(리버 퍼레이드 필드). 육·해·공군 의장대가 부동자세로 도열한 가운데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펜타곤을 방문하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의 연병장 왼쪽 중간부분에 얕은 단상이 마련됐고, 그 맞은편 끝에 양국 국기인 성조기와 오성홍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었다.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팽팽해지는 와중에 중국 국기가 미국 군사력의 심장부인 펜타곤에 걸린 역사적 순간이었다. 양국 국기 아래로 미국 50개주의 주기(州旗)가 길게 게양돼 있었고, 의장대 선두에 성조기와 함께 육·해·공군, 해병대, 국경수비대 상징 깃발 5개를 든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윽고 오후 3시 20분 경찰차와 경호차의 요란한 호위를 받으며 시 부주석의 차량 행렬이 들어왔다. 미군 의전장교가 차문을 열어주자 시 부주석이 내렸고 기다리고 있던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이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펜타곤 건물 안으로 들어가 5분간 환담을 나눈 뒤 연병장으로 걸어나왔다. 패네타 장관의 안내로 단상에 오르는 시 부주석의 발걸음은 총총거리지 않고 여유로운 ‘황제걸음’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단상에 선 가운데 그 밑에 미국의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애슈턴 카터 국방부 부장관, 게리 로크 주중 미대사, 중국 외교부의 양제츠 부장과 추이톈카이 부부장 등이 도열을 마치자 곧바로 중국 국가가 연주됐다. 그와 동시에 연병장 한쪽 끝에 마련된 4대의 대포에서 19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이어 미국 국가가 연주됐다. 미국 참석자들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린 반면 시 부주석은 양국 국가 연주 중 미동도 않고 정면만 응시했다. 이어 시 부주석은 의전 지휘자의 인솔을 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했다. 얼굴은 ‘완전히’ 무표정했다. 병사들 쪽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사열이 끝나면 인솔자에게 악수를 건넨 뒤 단상으로 올라가는 게 통례인데, 시 부주석은 잠시 엉거주춤 서서 어쩔줄을 모르다가 의전 장교의 안내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전통 의상을 입은 군악대의 행진을 지켜보는 것으로 12분간에 걸친 환영식은 모두 끝났고, 시 부주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행사장을 떠났다. 알링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中, 소말리아 인근에 첫 해외기지 건설 추진

    중국이 해외 군사기지를 보유하게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인도양 서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동부의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이 중국의 첫 번째 해외 군사기지 건설 예포지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장폴 아담 세이셸 외무장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해적 대응태세 강화를 위해 마헤 섬에 군사기지를 세워 달라고 중국 정부에 이미 공식요청했다.”고 말했다고 홍콩의 봉황위성TV 등이 4일 보도했다. 중국 국방부장으로는 처음으로 량광례(梁光烈)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이 40여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1일부터 이날까지 세이셸을 공식 방문한 것도 군사기지 건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면적 450㎢, 인구 8만 5000명의 소국인 세이셸은 해적이 들끓고 있는 소말리아와 마주보고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세이셸에 군사기지 건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일단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말부터 아덴만에 해적퇴치 함대를 파견하고 있다. 파견부대 병력의 휴식과 함정 정비, 보급 등의 필요성을 내세운다면 미국 등의 반발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미국이 세이셸에 무인정찰기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의 부담을 덜어 주는 대목이다. 중국이 세이셸에 군사기지를 건설한다면 의미는 적지 않다. 대양 해군을 위한 전초기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강경파 군사전문 블로거들은 “해외에 병력을 주둔시켜 미국에 반격해야 한다.”며 반기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나경원, 현빈 때문에 정치·연예 행사 방불케 한 해병대 마라톤

    나경원, 현빈 때문에 정치·연예 행사 방불케 한 해병대 마라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제3회 서울수복 기념 해병대 마라톤대회’는 군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연예인, 기자 등이 대거 참석해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아무래도 서울시장 선거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과 해병대 입대 이후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현빈이었다. 나 최고위원은 행사장에 도착하자마자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참가자들과 스트레칭을 했다. 그는 한강보 철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범야권 후보로 거론되는 박원순 변호사가 한강에 설치된 수중보의 철거 필요성을 시사한 뒤여서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나 최고위원은 “보를 철거하면 서울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취수원을 옮겨야 하고 옹벽도 철거해야 한다. 수조원이 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수반하며 자연생태 한강 복원이라는 미사여구 때문에 오히려 한강시민공원을 사용하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나 최고위원은 마라톤 출발을 알리는 예포 발사 때 현빈과 나란히 섰다. 나 최고위원은 현빈에게 “공인으로서 책무를 앞장서 실천해준 데 대해 고맙다.”고 인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빈은 붉은 상·하의를 입고 ‘서울 수복기념 최강 해병대’라는 문구가 적힌 띠를 머리에 두른채 출전, 6.25㎞를 완주했다. 지난 3월 7일 입대해 백령도 6여단에서 근무 중인 현빈은 오는 30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제22회 해병대 군악대 정기연주회’의 사회자로 나설 예정이다. 행사에는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 해병대 출신인 민주당 신학용 의원, 가수 김흥국, 배우 정석원 등도 참석했다. 정 전 대표는 축사를 통해 “9·28 수복 정신으로 평양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는 배우 정석원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같은 하동 정씨라며, 정석원에게 대학 전공 등을 물어보고 손수 대회 모자를 씌워주는 등 친근함을 과시했다. 옆에 있던 김흥국은 정석원에게 “여자친구(가수 백지영)는 왜 안 데려왔느냐.”고 물어 좌중의 웃음을 유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오늘 美·中 정상회담] 180도 달라진 美 의전

    미국은 18일부터 시작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최종 점검을 마쳤다. 2006년 후 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저질렀던 실수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예행연습까지 했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에 걸맞게 미국 의전도 180도 달라졌다. 미 권력서열 2위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부부가 직접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나가 후 주석을 맞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한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이틀 연속 만찬을 하는 것도 드물다. 더욱이 대통령 가족들이 사용하는 식당에 초대, 극히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19일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워싱턴 백악관 주변과 워싱턴 기념탑 주변은 중국의 ‘오성홍기’로 붉게 물들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의 2006년 방미는 국빈 자격이 아닌 공식 방문이었다. 국빈만찬 없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점심만 함께했다. 부시 대통령은 대신 정상회담에 앞서 환영식을 갖고 21발의 예포를 발사했다. 당시 후 주석에 대한 미국의 의전은 실수의 연발이었다. 환영식 연단에서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의 팔을 잡아당기는가 하면 사회자가 중국 국가를 타이완 국가로 소개하는 등 최악의 실수들이 이어졌었다. 게다가 후 주석이 연설하는 동안 백악관 주변에선 해외의 반정부단체가 된 파룬궁의 항의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문화가 상대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느냐를 중시하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도 후 주석에 대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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